성전

 

1980. 4. 29. 화새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목적하시고 하나님께서 거하실  그 성전을 마련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성전을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마련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데든지 계시지 아니하는 곳이 없으시고  다 계시지마는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기를 원하신 것은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님은 모든 하나님  노릇을 우리 안에서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곧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인데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하시기로 이일을 성공하시려고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역사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를 통하여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가도록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을 가르쳐서 모든 만물은 발등상이 되고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은 하나님의 몸이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몸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성부 성자 성령의 이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되어 있는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되면 어느 정도 밀접하게 하나 되느뇨? 교회의  중보자가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일 위가 된 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개인 교회가 있고 가정 교회가 있는데  이렇게 교회가 널리 퍼져 있지마는 양이 많아진 것뿐이지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천인 만인이 믿어도 한 사람 같이 그렇게 되어진 것이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 김모 이모 동양 서양의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흩어져 있는 이것은  보이는 교회입니다. 보이는 교회는 일단 죽어야 됩니다. 보이는 교회는 다 죽어  가지고 하나가 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교회는 죽기 전에 하나된 것이 보이지 않는  교회인데 하나된 이 보이지 않는 교회 참 교회가 된 것은 죽음이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세상 교회가 이 교파와 저 교파 이 시대 교회와 저 시대 교회 이  교회와 저 교회 이 교인과 저 교인 이렇게 서로 상층이 되고 하나되지 않는  이것은 다 땅에 속한 것으로 아직까지 성화 되지 아니한 것으로 교회가 아직까지  되어지지 아니한 그것들입니다.

 마치 제철소에는 온갖 잡철의 그 고철 못 쓸 녹난 못 쓸 고철이 있고 그 고철이  한 번 용광로에 들어가서 녹으면 여러 모양의 고철이 전부 녹아서 한 쇠가 되는  것처럼 이렇게 아직까지 이 사람 저 사람 이 교회 저 교회 서로 완력이 있고  서로 대립되어 있는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것은 고철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고  진리와 성령으로 성화 된 것은 천 사람이나 만 사람이나 그 사상이 같고 정신이  같고 지식이 같고 소원이 같고 희로애락이 같고 비판과 평가와 움직이는 것이  같습니다.

 이러기에 단일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 뿐이요 교회의 머리는 곧 하나님이시오  사람이신 예수님이시오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그 신성은 성부 성자 성령이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말이나 성전이라는 말이나 성막이라는 말이나  에덴동산이라는 말이나 다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미개해서 영면에 아주 어렸을 때에는 장소를 가지고서 가르쳤습니다.

에덴동산으로 가르쳐서 이 동산 안에 살아라 이렇게 하셨고 그 다음에 조금  에덴동산 도리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성막을 이렇게, 이렇게 지어라 성막을 지어 가지고 이 성막에서  너희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라 했습니다.

 이래서 성막이 어떻게 성막 구조가 되어있으며 성막 내부가 어떻게 되어있나  이것을 배워 가지고 이와 같이 너희 개인 개인의 인격체도 이래 돼야 된다 하는  것을 은밀히 교훈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성막을 이제 그만 두고 성막과 같은 그 윤곽 종류 그런  것으로 성전을 지어라 하셨습니다. 성전을 지어 가지고 모든 것 중에 성전을  모든 집중에 성전은 거룩하고 이스라엘 모든 회중 안에 회중을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이 성전 안에 계신다 이렇게 했습니다. 이 성전 안에 계시니까 이 성전  안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와 가지고 하나님과의 잘못된 모든 것을 다 해결 짓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구약 때에는 성전이라고 구별된 거게 가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됐습니다. 이러다가 이제는 이 어린 시대가 다 지나가고 신약시대의 장성한  시대에는 너희들이 성전이 다 너희들이 성전이다 이 전지 전능자가 사람의 손에  지은 성막이나 성전에나 거게 계시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이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하나의 형상을 가지고서 우리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점을 가르쳐  보여주는 가르쳐 보이는 이 계시로 이용하신 것이다 하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계시로 이용하신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그 집에 계시지 않는다 곧  너희들이 성전이다 이제는 여기까지 나왔습니다.

 구약 때도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깨달았고 못 깨달은 사람들은 그 형식에서만  따라오다가 말았고 지금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것을 성경에 명문화  시켜서 가르쳐 주니까 말로는 알지마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여기 대해서  이는 지식은 차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같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행사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피조물의 어떤 두려운 것이라도  그 두려운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어 더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제일 두려움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그 사람은 자기 안에 더 두려우신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큰 세력도 자기가 그것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거게 매여 살려고 하지 아니하는 것은 자기 안에 그 능력보다 더 큰 능력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자기가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땅위에 이런 묘한  말 저런 묘한 말 세상에 사천년 동안이나 역사가 계속해 왔으니까 인간들이  지절거리는 말이 참 태산보다도 많고 이 우주에 찰 만치 많습니다.

 이렇게 말한 말 저렇게 주장하는 거 책임은 하나도 지지 못할 인간들이  입술로는 그저 자기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사람의 하는, 하는 말은 옳아서 이기는 것 아닙니다. 그 시대에는 그 사람이  제일 힘이 있으면 그 사람보다 더 강한 사람이 그 다음에 또 낳을 때에는 이  사람의 말은 다 묵살시켜버리고 또 저 사람의 말이 또 서집니다.

 이러기에 땅에 있는 말을 가르쳐서 어떤 사람이 비유하기를 꿩 꼬리 철학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꿩 꼬리 철학이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이 우  모았는데 깃털을 하나, 꿩 꼬리털을 하나 주어가지고서 왔습니다. 자 이게 무슨  털인고 보라 털이 이렇게 큰걸 보니까 코끼리가 제일 크니까 털도 클 것  아니겠나 이건 코끼리 털이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보지는  못했지마는 코끼리라는 짐승은 짐승 중에 제일 크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이것이  분명히 코끼리 털이 분명하다 그래 그때는 코끼리 털로 다 한 시기는 인정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런 게 아니다 이것은 큰 것만 가지고 되는 거  아니고 호랑이가 짐승 중에는 제일 왕이다. 호랑이 그놈이 제일 왕이다.

이러니까 이것은 제일 터럭이 큰 것보다 왕 털이다. 짐승 중에 왕인 호랑이  털이다, 또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럴듯하다 이거요. 그러나 실은 그것은  아주 작은 날짐승 하나 가운데에 꿩이라는 그 짐승의 털이지 그 근방에 오지도  안한 말이라 그 말이오. 그러나 사람이 암만 역설하는 사람이 이렇고 이러니까  이렇다 역설하니까 사람들이 그리 쭉 따라갔다 이거요 세상지식은 다 이런  것입니다. 세상지식은 다 이런 것이오.

 지금은 뭐 어떤 지식 어떤 지식 하지마는 공산치하에서는 그 사람들 지식이  제일입니다. 그 사람들 지식이 제일 바르다고 합니다. 또 그 강한 주장이거든  민주주의는 그렇습니다. 이란의 '호메이니옹' 같은 그런 사람은 최고 그거 아주  거짓부리인데 또 그 진리를 가지고 주장을 하니까 맞다고 이래 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수많은 말들 수많은 지식들 실효가 없는 맞지 않는 온갖 그 주장들  이것들이 가득 찾지마는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그 입술로만 부인하고 생각으로만  부인하는 것 아니라 그것을 확실히 부인하는 자는 자기 속에 전지의 지식을 가진  이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신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세상 지식에게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왜? 그 지식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지식을 접할 때에 이 지식과 지식이 서로 대결해서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모든 지식이 좁다는 것, 그 지식이 짧다는 것 그 지식이 치우쳤다는 것,  그 지식에 대해서는 아무 권위에 책임자가 없다는 것, 이걸 알기 때문에 미혹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믿는 자 안에 다 계시지마는 계시는 것을 자기가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어느 정도 계심의 그 효력이 자기에게 역사하고 있는지 효력은  하나님은 얼마나 역사 하실 라고 하시지마는 자기 마음과 이 몸 이것이 부정하고  반대하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역사가 나오지를 못합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세상에게 복종하지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강제하시려면  강제하실 수 있지마는 못하기 때문에 안됩니다. 그 몸도 그러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벌써 계십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이 누구로  살아났습니까?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합되기를 진리대로  됐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합해서 움직이는 것이 진리대로 움직이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진리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에 중매쟁이입니다. 또 진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화합된 또 인도자입니다. 나를 하나님에게로 결합하도록 나를  인도하신 것이 진리요, 하나님과 나와 하나 되어 가지고서 이 세상살이를 나를  인도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리는 나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한 인도의 빛이오. 또 하나님과 나와  하나된 자가 있으니 세상에서 살 때에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하는 그 삶을  인도하는 가르치는 빛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진리로 영이 살아났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힘은  진리의 힘이오, 하나님의 힘이오, 우리의 본 성격은 중생 된 성격은 하나님은  성격이오, 진리의 성격입니다. 하나님과 진리가 영생함에 우리도 영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속 사람 영은 중생을 해서 벌써 하나님의 전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영 안에 계셔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시고 영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그 모든 역사가 그 사람의 중생 된 영을 통해  나오고 영을 통하여 나온 그 하나님의 역사는 다른 데는 못 갑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나오고 영을 통하여 나온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역사 하셔서 그 마음에 나옵니다. 그 몸에 나옵니다. 그 몸에 하나님의  역사가 그 사람의 몸이 접촉하는 모든 것에게 다 나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역사로  그것을 상대하게 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믿음을 떠나지 아니 할 때에는 모든  사물을 인간을 접할 때에 전지 전능자 하나님이 접하는 거와 같습니다. 이것이  교회요 이것을 가르쳐서 교회는 어떤 것이야 하나님이 충만을 하나님의 모든  하나님 노릇 하는 이 하나님 노릇을 교회 안에서 해 가지고서 교회를 통하여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이 충만해진다  그러기에 무궁세계에는 지극히 작은 풀 한 포기도 교회를 통한 은혜로 이것이  유지되지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이것이 유지되지 못 합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은 무슨 세상인가 하나님의 성전이 하나님의 성전 노릇을 하는  이 일을 지금 연성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중생 된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피조물 되어 오시기까지 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셨고 살아나기까지 하셨고 이렇게 큰 힘들여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세상에서 병이나 낫고 가정에 우환이나 없고 돈이나 가지고 부자로 사는 그 까짓  썩은 것 그것을 위해서 한 것 아닙니다. 그것은 엿새만에 다 지은 것이오,  엿새만에 지은 것이오, 엿새만에 만든 것인데 교회를 만드는 것은 영원 전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아직도 다 만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재림 때까지 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여 만듭니다.

 이러기에 중생 된 자는 세상을 이용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중생 된 자들이 성전  노릇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수족, 하나님의 지체, 하나님의 몸 노릇 하는 이  일을 연성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둬 두고 세상에 온갖 것들을 지어 가지고서 그  시 그 시에 필요한 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도록 이렇게 하셔  가지고서 우리가 하나님의 지체 연성이 되고 하나님 성전 건축이 되고 이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시는 것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그걸 탐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가 이 세상에 권세나 무슨 부요나 어떤 것이나 그것을 크다고  생각하는 자는 예수 믿지 않는 자입니다. 아 교회 안에서 이렇게 뭐 이런 일  저런 일 뭐 하는 것 교회 안에서 집사 장로 권찰 이런 저런 이것을 사소한  일이고 내가 대통령 되고 장관 되고 하는 이일을 큰 일이고 그것이 죽은  소리입니다. 네 그게 죽은 소리요 그것이 전혀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하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총리라는 그 세상을 사용해  자기고서 자기는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하나님 앞에 기도를 끊이지 않을 수 있는  하나님의 지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동하고 정하는 이런 인격을 그 자리에서  만들기 의해서 가진 것이지 그까짓 것을 보고서 가진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것이 있는 것이  그것 위해서 있는 것 아니고 하나님이 그걸 접하면 거기서 예수 믿는 사람  합니다. 거기서 신앙 지켜요. 가난을 줄 때는 거게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순종으로 가난을, 또 부자가 되면 또 순종으로 그 부자를 어디서든지 가난 줘도  순종, 부요 줘도 순종, 사형을 줘도 순종, 존귀를 줘도 순종, 어디서든지  여기서도 순종 저기서도 순종 어데든지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여기서 한번  순종해 봐라 아 이것을 알롱달롱 너무 아름다우니까, 아름다우니까 요 아름답고  고우니 이것 좀 내가 차지하겠습니다. 했으면 틀렸습니다. 고운데 자  어쩌랍니까? 아 고운데 네가 곱다 해라 네 곱습니다. 이것 버려라 네 버립니다.

거기서도 하나님이 곱다 하면 곱다 하고, 더럽다고 하면 더럽다고 하고, 이제  모든 것을 접할 때에 평가도 하나님이 평가시키는 대로 평가하고 하나님을 또  하나님을 따라서 애착도 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필요도하고 하나님을 따라서  그이를 대접도 하고, 접촉도 하고, 하나도 그로 인해서 동하여 내가 거게 따라  자기 안하고 내가 거게 따라가지 안하고 하나님에게만 속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어  그것을 접하는 이 연성을 하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가 재세의 성공인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접하면 이것 때문에 접하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 자기가 만든 것 아닙니다.

 그러면 자기가 사업을 합니다. 사업을 할 때에 이 사업은 나에게 맡긴 것이니까  이 사업은 성공을 해야 된다 이 사업은 성공을 해야 된다 하나님께 욕이  돌아가도 복음이 가리어진다. 이 사업은 성공을 해야 된다 하는 사람이 있고 이  사업에 대해서도 오늘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이 사업을 한다 이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내게는 상관이 없고 하루 하다 말는지 한 시간 하다 말는지 열흘 하다  말는지 그까짓 것 성공하도록 까지 하고 말는지 나는 모른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그 대로 나는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있고 요거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에 이 사업은 기어코 라도 내가 성공을 해야 된다  이렇게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데 그러면 어느 사람이 참 신자입니까? 그 사업을 기울려 성공을 해야  된다는 그 주장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참 신자입니까? 하다가 말는지 중간에  가다가 말는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해도 이일이 실패가 될는지 나는 거  상관없다 나는 다만 시키시는 데에 여게 내가 중점을 두고 여기서만 내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 내 할 일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참 신자입니까? 그 일은  성공을 기어코 라도 해야 된다는 그 사람이 참 신자입니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기는 하는데 어느 사람이 참 신자이지요? 어느 사람이 참 신자입니까? 그  사업을 기어코 라도 성공해야 된다는 그 사람이 참 신자라고 참 신자로 그  사람이 참 책임 있는 진실한 신자로 이렇게 인정되는 사람들 손 한 번 들어  봅시다.와 하나도 안 듭니까? 신앙 아니요. 순종은 하면서도 제가 이 일은  기어코 성공을 해야 된다는 그것은 하나님 시키지 안 하는 것. 제 단독이 하는  행동입니다. 목적은 단독 정한 목적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동하는 것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시간 정하는 것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장소 정하는 것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것이 되고 안 되는 그것 정하는  것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전체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너희들이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도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 하도다" 하는 한 날의 괴로움이  뭐입니까? 그 한 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그것으로 다라 그 말이오. 내일은  모릅니다. 내가 그 사업을 가졌지만은 그 사업을 하다가 오늘밤에 급살 할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모른다 그 말이오, 그것이 연습입니다. 우리가 땅위에 사는  목적이 뭐인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제 말 들으니까 아, 어머니가 그 아이를 예쁘다고 아듬고 젖 잘 먹이고  아듬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아이가 죽었어. 아, 그랬는데 그것을 내가  물어 보니까 나는 가스로 죽었나 이렇게 추측을 했는데 물어보니까 그 집에 구둘  막이 그 새까맣게 탄 데가 있답니다. 거기가 제일 따신 모양이라, 따시다고 항상  아이를 거기 눕혀 놓는 답니다. 이러니까 가보면 알지만 거기서 가스가 올라  왔을 것이라 그 말이오. 이랬는데 그것을 경찰서에 어떻게 고발을 해서 지금  해부를 한다고 그거 공연히 일 장만해.

 그래 가봐라 너희가 헌 고무신이나 연탄 구멍에다가 넣어 가지고 방에 들어가서  코를 거기 대고 있어 봐라 그 고무 탄 냄새가 나면 그게 틀림없이 가스로 죽은  것이고 그게 안 나면 무슨 심장마비로 그리 되는 수 있습니다. 그럴 것이고 그걸  경찰은 치안하는 사람이 무슨 일인지 모르니까 해부를 해야지 경찰관으로서는 그  해부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라 그 말이오.

 우리는 건강하니까 내가 그렇게 자다가 죽지 않을 것이다 생각합니까? 아니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내일 일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다" 하나님이 살게 하시면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도 하지 하나님이 살게 하지 안 하면 일 분도 더 살지  못한다. 그러기에 뭘 제가 이 사업은 내가 꼭 성공을 해야 한다. 어째야 된다,  그게 아니라 그 말이요.

 그런고로 바로 깨닫고 믿어야 되는데 성경을 배우지 못하면 제가 아무리 천하  지식을 다 가져도 그것이 바로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중요한 말 하나 나왔는데 세상에 수많은 지식이 있으나 이 지식은  다 거짓부리 지식인데 시대 시대마다 이 지식이 옳다고 했는데 그 후 시대에  보면 그 아무것도 아니라 그 몹쓸 지식이라 이래 버립니다. 과거에는 이 정치로  말하면 군왕주의가 나와서 참 유일한 법칙으로 알아서 아 죽으면서도 나라 왕을  위해서 죽으면 자기는 참 기쁨으로 죽고 아주 충신이라고 이렇게 했지마는  오늘에는 그 썩은 인간이라 합니다. 썩은 인간, 썩은 인간이라고 오늘 대통령을  위해서 제 생명 버릴 자가 어디 있소? 있기를, 내가 다른 데 따라 자꾸 지식이  달라집니다.

 그 세상 지식은 그 지식은 옳다 해도 그 때에 그 지식을 주장하는 자들이  열변을 토하고 그 자들이 똑똑하고 그 자들이 강하기 때문에 그 자들의 주장이  강하요, 그 후시대는 그까짓 것 기억에도 없습니다.

 전도서 1장에 "해 아래서 새 것이 어디 있느냐 이전 세대를 지금 세대에서  기억치 않는 것 같이 지금 세대 것도 이후 세대가 기억치 아니한다."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인격이나 모든 지식이나  모든 게 질팡 갈팡입니다. 아무 고정된 것이 없소 불변적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 완전자이신 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이  분이 내 안에서 완전의 행위를 다 행하는데 완전한 행위 다 한다고 내가 여기도  가도 저기도 다 하는 것 아니요 하나님이 나에게 하는 거게 대해서는  완전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알게 하는 거기에 대해서는 완전입니다. 전지의  전지자가 우리 안에 있어서 그 전지의 지혜가 내 지혜가 되어 가지고서 모든  것에 대해서 전지하게 된다 그 말은 나와 관련된 데 대해서는 전지합니다. 나와  관련되니 안한 데에는 상관이 없소. 그것 내가 상관할라 하면 그것도 어찌 자기  주관대로 하는 그 사욕대로 나온 것 아닙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알 때 얼마든지 배워야 됩니다. 알아야 되지 그러나 배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것  있어. 더럽히지 안 하면 배울 필요가 없어 성전이 더럽히지 안 하면 하나님의  충만이 그를 통해서 만물에게 다 나타날 건데 누구에게 배워요 배우기를  이러니까 지금이 하는 것도 자꾸 이 무슨 일 하느냐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역사  하는 그 역사를 받아 나오는 그것입니다. 성경기자들도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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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3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800428월새 선지자 2015.11.06
3122 성전/ 학개서 2장 18절-19절/ 820325목새 선지자 2015.11.06
3121 성전/ 학개 1장 1절-2장 23절/ 800518주후 선지자 2015.11.06
3120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800520화새 선지자 2015.11.06
3119 성전/ 학개 2장 10절-14절/ 811203목새 선지자 2015.11.06
3118 성전/ 디모데후서 3장 15절/ 800510토새 선지자 2015.11.06
3117 성전/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800427주전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