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00:45
성령의 능력
1989. 7. 11. 화새벽.
본문: 고린도전서 2장 1절∼5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성경에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자는 주님이 오실 때에 맞이할 수 있고 깨어 있지 에는 자는 주님 오실 때에 맞이하지 못하고 책망 받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깨어 잊는 자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지를 못하지마는, 깨어 있는 자에게는 주님의 날이 도적간이 오지를 못하지마는 자는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와서 모든 것을 도적 다 맞는다.' 그렇게 깨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깨라는 말은 이미 새생명으로 살아났으니, 새 생명으로 살아났으니 산 자의 생활을 하라 자지 말고 하는 말은 생명 있는 사람이 죽은 자와 같은 행동하는 것은 자는 것이요 자는 자가 깬 것은 자기가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으로 움직이는 것은 그것은 깨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자면 도적 다 맞고 깨어 있으면 도적맞지 않는다' 하는 말은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살아난 그 생명 생활 하면 우리가 현실 현실을 만나는 이 세상 모든 생활에서 자기 수입할 것 다 수입하고 자기 것 만들 것 다 만들지마는 만일 자기가 살아난 그 생명이 살지 못하고 죽은 자와 같이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생명이 살지를 못하고, 생명은 있으면서 생명으로 살아서 생명이 살지 못하고 생명 없는 자 같은 그 생활하는 자는 자기의 수입할 걸 수입 다 못하고 다 도둑 맞는다.
자기 수입은 자기 소유도 수입이 현실에서 되고, 자기의 또 행위도 수입이 현실에서 되고, 자체도 현실에서 수입이 되고, 또 하나님도 현실에서 자기 하나님을 삼는 이런 참 영생하는 수입이 있는데 새생명으로 살지 못하면 전부 다 도적 맞는다 하는 말입니다.
또 새생명으로 살면 예수님 오실 때에 그때에 낭파되는 사람 하나도 없고 새생명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방받고 다 낭패당한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도 우리에게 오시지마는 현실 현실마다 주님은 우리에게 늘 찾아오고 계시는데 자기 현실에서 주님 맞이하지 못하면 그것은 다 그 현실에서는 완전히 낭파와 실패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깨어 있으라 말은 우리는 새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났기 때문에 이 생명으로 살아라 그 말이오. 또 산 자로 살라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산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이 완전 공로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완전 공로 이 공로는 사죄의 공로요, 칭의의 공로요, 화친의 공로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공로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사활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이렇게 사는 것이, 성령과 진리와 사활의 공로 이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되면 다 됩니다.
하나입니다.
이래서 세상에는 죽은 자들이 있고, 세상에는 죽은 자들이 있고, 또 세상에는 살았으면서 자는 자들 있고, 또 산 자가 지금 활동하고 산 자가 살고 있는 자 있고 이렇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있어 죽은 자는 죽은 자니까 아무 뭐, 죽은 자 하는 일이 뭐이요? 죽은 자 하는 일은 썩는 것이요 멸해지는 것뿐입니다.
죽은 자로 사는 죽은 자로 지금 세상에 늘 머물고 있는, 시간 시간을 맞이해서 머물고 있는 자 있고, 또 자는 자 있고, 또 깨어 사는 자 있고 세 가지 종류라.
그러면 죽은 자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중생의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다 죽은 자입니다.
그러면 죽은 자 생활이 있고, 죽은 자가 이 세상에서 머물고 있는 거 있고, 또 자는 자 있고, 자는 자는 살아나서 생명은 속에 있기는 있어서 죽지는 안 했는데 생명은 있는데 행동은 죽은 자와 꼭 같이 아무 산 활동이 없다 말입니다. 죽은 송장이나 자는 자나 뭐 속에 생명 있는 것만 다르지. 이러니까 푸푸 이렇게 호흡하는 것만 다르지 딴거는 꼭 같습니다. 그 옆에서 말해도 듣지도 못하고, 뭐 보지도 못하고, 수족도 활동하지 안하고 그저 속에 생명 호홉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이 속에 중생된 이 네 가지 대속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그 연결된, 속에 영은 살아 가지고 이 호홉하고 이런 거는 있지마는 언행심사의 행동은 꼭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다 하는 것을 잔다 이렇게 말했고 또 깨어 산다는 말은 살아난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을 가리켜서 깨어 산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랬는데 여게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도 역연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이 저희의 생명이 됐기 때문에 새생명 이 새생명으로 사는 이 일만 주력을 한다 하는 그 말이오.
새생명으로 사는 생활만 주력을 한다. 그 깨어 살기를 늘 힘쓰고 그것만 한다. 그 외에 딴거는, '깨어서 하는 그 외에는 다른 거는 안 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면 이 새생명으로 살았기 때문에 새생명이 사는 이 새생명 생활 이것만 계속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면 자신이 지금 새생명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새생명 생활, 새생명이 사는 생활, 새생명 생활 이 외에 딴거는 안 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면 자체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고. 그러니까 항상, 그외에 딴거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로 작정했고, 또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하는 것은 이거는 겉사람으로 사는 그 생활이 안 되도록 할라고 겉사람 그것을 내세우지 안하고 겉사람 그것을 죽여서 자꾸 꼼짝 못하게 할라고 애를 썼다 그말입니다.
4절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에도 말로만 가지고 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말하는 것이 성령님이 자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성령의 나타남이 되도록, 자기가 가르치는 말을 할 때에 그 말하는 것이 말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말하는 것이 성령이 나타나는 그 역사가 되도록, 자기 말하는 것이 말만 나오는 게 아니고 자기가 말할 때에 말하는 그것이 성령님이 나타나는 그 역사가 되도록, 그러면 말할 때에는 다만 자기를 살려 주신 그 생명이신, 자기 속에 생명이신 성령님이 나타나실 때에 자기 말을 통해서 나타나시도록, 그러면 자기 말은 껍데기요 속에 알맹이는 성령님이 역사되도록 그렇게 해서,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그러면 자기 말하는 것이 껍데기는 말이지마는 그 말 속에는 성령님이 지금 나타나서 역사하는 것이고 그 무한하신 능력이 나타나서 역사하도록, 자기 말은 하나의 도구와 같고 하나의 예를 들면은 비유컨대는 보자기, 책보따리, 보자기와 같고, 자기 말은 보자기와 같고 보자기가 올 때에 보자기 안에는 성령이 내주해 계시고 또 영생하는 능력이 내주해 계셔서 성령님과 능력이 나타나는 그 말로 할라고 했고, 또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래서 듣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듣는 것이 그 말만 듣고 말만 수입하고, 말만 들어서 말만 차지하고 말만 받아 가지는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그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하기를 힘썼다. 그것 때문에 그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늘 노력했다 하는 그런 말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 기자는 바울인데 바울, 사람이 말한 게 아니고 성경 기자 이 바울이 말했기 때문에 곧 성령님이 말한 것이요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은 하나님 말이요 성령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님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으로 살고 하나님으로 살면 이와 같은 그 언행심사가 나온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이 전도하고 설교하고, 또 사람들을 가르치고, 또 사람들을 개적으로 개인을 대화하든지, 또 대중을 대화를 하든지, 믿는사람을 대해서 하든지, 믿지 않는 사람을 대해서 말하든지 말할 때에 말로만 할라고 하지 안한다.
말로만 하지 안하고 말하는 그 말이 속에 성령이 자기 말을 통해서 성령이 나타나서 역사하시고 능력이 나타나서 역사하시도록 그렇게 되는 그것을 할라고 애를 쓰고 그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러니까 말을 듣는 사람도 그 사람이 말만 듣지 아니하고 성령과 능력을 같이 받아서 틀을 때에 말만 듣지 아니하고 말과 성령과 생명의 그 능력을 받아 사는 그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마는 믿는 사람은 두 사람이 됐기 때문에 자는 자로 살 수도 있고 또 깨어서 살 수도 있습니다. 자는 자로 살 수도 있고 깬 자로 살 수도 있고 그저 살기야 살지마는 자는 자로 사느냐 깬 자로 사느냐? 깬 자로 사는 자의 그 수입은 굉장히 크고 자는 자로 사는 생활은 수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거는 다 썩은 추수합니다. 썩은 농사지어 가지고 썩은 추수한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자는 자로 살 수도 있고 깨어 살 수도 있고 하는데 살기는 그 사람이 다 언행심사의 그 생활 하기 때문에 말하기 때문에 껍데기는 꼭 같습니다. 껍데기는 꼭 같고 속에 알맹이는 중생된 새생명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생명은 가졌지마는 생명의 힘으로는 사는 건 하나도 없고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생명 생활이 없는 생활 한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꼭 생명 없는 죽은 생활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 믿는 사람과 같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속에 중생된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을 내버릴래야 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 생명을 항상 가지게 됩니다. 생명은 가지고 있지마는 생명 없는 자와 같이 자는 자로 살 수 있고 깬 자로 살 수 있다. 자는 자로 살면 전체가 낭파되고 실패되고 깬 자로 살게 되면은 전체가 생명이요, 평강이요, 수입이다. 요것 구별해야 되겠고, 또 말을 하는 데에 개적으로 말을 하든지 안 믿는 사람을 대해서 말하든지 우리가 대인 관계를 할 때에, 대인 관계를 할 때에 껍데기 말로도 나오고 행동도 나오고 서로 이렇게 대면할 때에는 우리의 모든 이 피부까지도 상대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을 상대할 때에 그때에 안 믿는 사람과 같이 껍데기만 이렇게 상대하고 말로만 상대하고 이랄 게 아니라 상대하는 그것이 성령이 내 속에서 내 말을 통해서 나오고, 성령이 내 속에서 내 눈을 통해서 내 입을 통해서, 내 피부를 통해서, 성령이 나를 통해서 나오고 그 능력이 나를 통해서 나와서 그에게 말로만 그랄 게 아니라 그 성령과 능력이 그 말을 통해서 같이 건너가 가지고 전달되기를, 전달되게 할 라고 애를 쓴다 하는 이것이 곧 성령의 뜻이요 원하시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제도 내가, 멀리 들으니까 잘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몰랐는데 성경 기록에 대해서 이 서민의 모든 언어로 기록을 했다 이런 데 대해서, 또 아주 고등 술어 고급 술어 이런 걸 가지고 성경을 기록하지 안했다 이런 대 대해서 말을 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뭐 고급 술어를 쓰시고 아주 고등 술어를 쓰시고 알아듣기에 어려운 문자를 쓰려고 하면은 하나님만치 쓸 사람 어데 있겠소? 하나님이 그래 써놓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럴 것 아니겠소? 이런데 하나님은 어짜든지 표현할 때에는 제일 쉬운 말로, 제일 쉬운 말로 알아듣기 쉬운 말로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아주 서민의 말이며 일반어며 또 아주 쉬운 말로 그렇게 사용을 해서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말에다가 가치를 두지 안하고 도에다가 가치를, 도. 도리, 이치.
말에다가 가치를 두지 안하고 이치에다가 가치를 두니까 그 이치를 잘 표현할 수 있고 잘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아주 서민의 그 말로 가지고 할라고 애를 썼고, 또 이치에 가치를 두지 안하고 말에 가치 둔 사람은 이치야 어찌 됐든지 말이나 어려운 말, 고급 말, 또 아주 귀한 말, 특별히 종교의 특별한 술어든지, 철학 술어든지, 이 무슨 과학 술어든지, 또 어떤 대학자의 술어든지 자꾸 말을 어렵게 해 가지고 말에 가치를 둘라 한 사람과 말에 가치를 둘라고 하지 안하고 도리에 가치를 둘라고 애를 쓰는 것이 다르다.
또 도리에 가치를 두는 것보다도 그 속에 능력과 속에 성령이, 능력이 와서 역사하도록 능력 속에 성령이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도록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 상대방에게 건너가 가지고 역사하도록 그렇게 하기를 힘쓰노라 하는 이것이 성령의 뜻이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양성원 학생들에게 특별히 말하는 것인데 양성원 학생들이 말에다가 가치를 두지 마십시오. 자꾸 말에다가 가치 두는 이게 지금 큰 적입니다.
이래서 보면 속에 도는 하나도 없소. 속에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안한데 말만 이런 말 저런 말 막 고급 술어를 이래 쓰면은 그거 귀가 쫑긋해 가지고 '이거 참 가치 있는 말이다' 이래 듣고 쉬운 말로 하나님의 높은 뜻 이 생명의 뜻을 말해 놓으면 이것은 가치 없다고.
그러기 때문에 다는 아니지마는 이 성경을 한글로써, 한글은 그전에 언문이라 했어. 글 아니라고. 이랬는데 한글로 이래 써놓으니까 '에, 그까짓 거 무슨 가치가 없다.' 어짜든지 몰라서 이 말 한 마디 써놔도 한 페이지를 볼라면 이걸 그냥 보지 못하고 사전을 찾고 또 대학자들이라야 알 수 있는 그렇게 그랬으면 '하, 이거는 높은 책이고 가치가 있고 권위가 있는 책이다.'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그 전부 외식이 들어 가지고 이라기 때문에 지금 신학생들도 그래요. 성경학교라 하면은 가치를 없게 보고, 그러니까 무디 성경학교를 내가 좀 어찌 됐는고 해서 이래 보니까 무디 성경학교가 성경학교라 하니까 이거 천하다 그래 가지고 신학으로 끌어을릴라고 애를 써 가지고, 안 된다 하는 것을 기어코라도 신학으로 억지로 만들어 놓고 신학으로 만들고 난 다음에는 '신학보다는 신학 대학이 있기 때문에 이 한 디딤 더 올라 가지고 신학대학을 만들어야 되겟다.' 또 신학대학을 만들고 난 다음에는 '이거는 신학대학원을 만들어 가지고 여기서 박사를 내도록 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보니까 작년인가 언제부터 무디 성경하교도 지금 이제, 장년부터인가 금년부터인가 이 박사 학위를 거게도 줄 수가 있다 이래 가지고 아주 무디 성경학교가 이렇게 아주 질이 높아졌고 권위가 높아졌다 이렇게 모두 사람을 청해서 무디 성경학교는 바싹 죽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죽어 버리고 그 속에 이제 생명은 없어졌고 껍데기만 날뛰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아마 이것도 이거 어찌 무디 성경학교가 이대로 보수가 돼 나갔을까 하고 거게 관한 것을 제가 이렇게 저렇게 물어도 보고 이래 하니까 그 조사를 한 결과 그렇다고 그래 제게 답이 왔어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외식하지를 말아야 됩니다. 암만 막 어려워서 이거 한 마디를 배울라 하면 못 배우고 외우지를 못해서 그거 떡 배우고 나니까 철학자한테 가도 '이 사람이 유력한 철학자로구나. 유력한 과학자로구나. 이 사람이 대문학가로구나. 대시인이로구나.' 그런 것이 다 죽은 거라 소용이 없고 그 생명의 도만을 이걸 받을라고 애를 쓰고 도에다 가치를 둬야 된다 말이지 도에다 가치를 두지 안하고 문자, 문자 그거 언어에다 가치를 두기 때문에 그 가치 있는 언어가 아니면 아무 생명 없어도 그게 아니면 안 들어요.
그 책자들 봐요. 책자 봐도 생명 보면은 이런 책 가운데 생명은 하나도 없고 전부 생명 죽이는 말 뿐이지마는 뭐 말을 고등 술어 고급 술어 아주 뭐 아주 특수 언어 이런 것을 이래 해 놨으면은 '햐,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이렇게 보는 그런 썩은 인간이 있고, 그 보고 생명이 없는 거라면 '이건 아무 생명 없다' 가장 생명이 많고 풍성하고 말은 아주 서민의 말로 해서 쉽고 아이도 들을 수 있고 다 일반 사람은 다 들을 수 있는 그 말로, 될 수 있는 대로 제일 쉬운 말로 하고 하나님의 도는 정확한 도를 증거한 그것이 제일 가치 있다고 이렇게 봐야 될 터인데 영 삐뚤어져 틀려 버렸어.
이러니까 개혁 해 가지고 신학을 처음에 세운다고 세우지마는 그 세운 것이 얼마 안 가서 그만 신앙은 없어져 버리고 나중에 가서 이 지식만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지식주의가 되고 마요. 웨스터민스트 신학교도 벌써 지식주의 된지가 오래 됐어.
카브난트 신학교도 벌써 이 지식주의된 것이 작년부터던가 벌써 세계 무대에 나서 가지고 이제 그런 것 들여 가지고, 이래야 다른 사람이 알아준다 이래 가지고 하는, 이래서 제가 좋아하고 말하던 카브난트 신학교가 지금 변질이 돼 버렸습니다.
여게도 그럴 거라. 지금 이거는 목회자 양성원이라 하는 것은 딴거 없이 이거 예수 믿는 도리만 이것을 가르치도록 할라고 이렇게 애를 썼는데 자꾸 소용없은 이 지식 위주들이 나와 가지고 자꾸 이래 지금 하나씩 둘씩 이라다가 이것만 이거 하고, 그 강사들도 오면은 '여게 다문 말 한 마디라도 고등 술어를 고급 술어를 써야 되겠고, 또 특수 술어를 써야 내가 유식하게 보여지고, 또 학생들이 가치로 여겨서 취미를 가지겠다.' 이래 놓으니까 자꾸 그래 가지고 부패해지고 자꾸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이래서, '안 됐다.' 법도 지금 가르치고 있는데 내가 아직까지 만나지를 못했어.
그런 것이 필요 없고 다만 그저 법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일반적 법에 대한 법문을 그만 읽히고 하면 돼. 여러분들 뭐 무슨 뭐 이런 법이니 뭐 형법이니 상법이라든지 무슨 윤리법이나 정치법이나 무슨 그런 것을 이렇게 알고 이 모두 세상이 이렇게 하고 있다 하는 그것만 아는 것이지 그 속에 생명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그렇게 그렇다는 그 상식적으로 알면 돼.
알면 되고, 다만 이 성경에다 주력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셋 주간은 꼭 목회 설교록만 읽었습니다. 딴것 안 읽고. 셋 주간은 목회 설교록만 읽었는데 본인들이 설교록만 읽고 설교를 해 보니까, 설교 몇이 했는데 좀 설교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 이 설교록만 육십 몇 권인가 나왔는데 이 설교록만 자꾸 읽어 가지고, 다른 것 없이, 그만 딴거 오면 보면 표가 나.
설교록 읽고 성경 읽고 성경과 설교록 두 권만 자꾸 읽어 가지고 여게 있는 것만 자꾸 읽어서 베껴 가지고 자기가 그만 설교할 때에 원고 치워 버리고 그 배운 그대로만 그저 자꾸 이와 같이 그것만 해 놓으면 일등 설교자 되고 일등 목회자 됩니다. 양떼들은 다 좋아하요.
양떼들은 그거 좋아하는데 제가 인간의 지식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자꾸 지식만 말하니까 양떼들은 소용이 없어. 도를 들을라고 왔지 누가 지식 들을라고 왔겠소? 그래 인제 삼주간을 계속 그것만 읽었는데 어제는 내가 가르치는 것 보니까 조금 위험성이 없고 위험성이 나을라고 좀 하다가 또 이래 다시 꼬리를 감추고 감추고 이래 하는데,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이 말에다가 가치를 두지 말고 진리에다 가치를 둬. 도리. 내가 도리라 말은 길 도(道)자 이치 이(理)자 내가 걸어가는 이치요, 걸어가는 이치.
지식에다가 가치, 단어 말에다 가치 두지 말고 도리에다가 가치를 두고, 도리에다가 가치를 두고, 도리에다가 가치 두는데 도리에 가치 두는 것보다도 뭐입니까? 뭐이요? 능력에다 가치를 두십시오. 능력에다 가치 두는 것보다 뭐입니까? 성령이 와서 역사하도록, 성령은 하나님이오. 하나님이 역사하도록 거게다가 가치를 둬라.
이런데, 학생들이 아직까지 이것을 똑똑히 잡지를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뭐 지금도 세상에 이 모든 아주 이제까지 듣지 못하는 그런 고급어 특수어 이런 뭐 전문어 이런 걸 떡 말하면 '아이구 유식하다.' 항상 아이들 반주깨미(소꿉질) 사는 것 모양으로 '야 밥 먹어라. 배고프나? 뭐 물 마시라.' 뭐 어짜고 하는 이런 이 아주 서민의 알로 하면은 '아이구 그 무식하고 가치 없다.' 이러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 말이오.
자, 여러분들, 양성원 학생들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그라면 말에다가 가치를 둬야 됩니까 말보다도 더 가치를 어데다 둬야 됩니까? 예? 도리에다 가치 두고, 도리보다 가치를 어데다가 둬야 됩니까? 능력에다 둬야 되고, 능력보다 가치를 어데다가 둬야 됩니까? 성령님. 하나님에게 두라 그 말이오.
학생들이 이래 알면 가르치는 사람도 자연히 그럴 터인데 학생들이 그래 안 되면 자꾸 가르처는 사람들이, 자기네들 가진 게 그것뿐이니까. 가진 게 그것뿐이니까 자꾸 그것만 이렇게 나타내고 하면은 좋아하고 또 가르치는 사람은 그것만 가지고 있지 또 학생들이 좋아하지 하니까 자꾸 그것만 가르치기 쉽다 그 말이오. 자꾸 그래서 밑에 있는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강사와 교수를 만들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빨리 가서 주일학생 또 중간반 학생들 새벽기도에 참여를 시키도록 그렇게 연락을 하십시오. 전화도 하고 해서.
오늘 아침에 사중을 말했습니다. 네 껍데기. 속에 겉껍데기 속껍데가 말 껍데기 그 속에 도리, 또 속껍데기 그 속에 알맹이 능력, 또 알맹이 능력 속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이래서 그랬으니까 그걸 요새 구별해 가지고 가치로 삼아서 가지기도 하고 주기도 하고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