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오시면 세 가지 변화

 

1986. 6. 8. 주일오전

 

본문:사도행전 1장 6절∼11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셔 가지고 승천하실 바로 그때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 역사하시는 그 분위기를 보니까 아무래도 좀 이상스럽다 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랬습니다.

그들이 소원은, 하나님 앞에 저주받아서 선지자가 오랫 동안 끊어졌고 육체의 이스라엘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멸망받기 직전입니다. 신앙이 타락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망했고 로마의 식민지가 돼 가지고 모든 면으로 심한 압박과 모든 곤난을 당하는 그때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전 국민들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모든 인류 중에 선택받은 선민의 그 우수성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을 받기로 이렇게 약속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가 절단이 났고 이렇게 이 민족들이 기차게 패망을 하고 있으니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회복해 주실까 하는 그것을 고대하는 것이 그들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온 제자들이 다 이구 동성으로, 좀 분위기가 이상하고 예수님께서 좀 서두는 것이 좀 기이하니까 아마 이제는 이스라엘 회복할 때가 됐는갑다 해서 이스라엘 회복이 이때니이까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들의 당면된 그 소원이 다 이것이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소원이 이것이였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한 박해 가운데 있을 때에 여호와의 구원을 소원했던 거와같이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전부가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소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냐고 물으면서 그들은 기대를 했습니다.

뜻밖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곧 너희들이 소원하고 있는 그 소원, 너희들의 소원, 뭐 이런 소원이나 저런 소원이나 어떤 소원이든지 너희들의 소원하는 것은 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뜻대로 하시기로 그렇게 결정돼 있는 것이니까 너희들은 거기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 그렇게 냉정한 말씀을 했습니다. 요것을 잘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됩니다.

지금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하면 각자들이 자기의 다 소원하는 바가 있고 자기들에게 답답한 난제들이 있으니까 언제 이 난제가 해결이 되며 또 저희들이 좀 새로운 광명을, 좋은 날을 만날까 하는 그것이 모두 다 기독자들이 야비하게 예수님을 믿는 소원들인 것입니다.

타락한 이스라엘들이 할일은 안 하고 엉뚱한 생각을 가져서 하나님 앞에 오랫 동안 징계받을 만한 그런 불법한 행위를 해서 징계를 만났으니까 그 회개할 생각은 가지지 안하고 언제나 이 어려움이 물러갈까 그것만 기다리니까 주님이 거게 대해서 책망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까,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뜻대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들은 알 필요도 없다. 성도들아 너희들이 당면하고 있는 온갖 어려움, 온갖 곤고 그거나 어서 해결되고 너거 욕심대로 그렇게 좋은 날 오기를 기다리지마는서도 그런 것은 너희들이 기다리지 말아라.

이것은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주어서 적당한 때 주지, 줘 가지고 너희들 망하는 그런 것으로 주지 안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너희들이 순서도 밟지 안하고 회개도 하지 안하고 그렇게 항상 사욕으로 망했고 사욕의 소망을 가지고 만물보다 거짓된 너거 욕심이 달성되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을 다 포기하라 하는 것을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오늘 이 말씀에서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두 다 자기에게 어려움 있는 것은 다 물러가면 좋겠고 또 자기가 욕망하고 있는 것은 다 소원 성취가 이루어지면 좋겠고 이렇게만 생각하는 그런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암만 가져 봤자 되지도 안하고 하나님 앞에 진노만 쌓고 맷정만 더 쓰는 것이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게 말씀했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당신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너희들은 이런 것은 생각지 말아라, 너거 할 일이 따로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아주 흉측한 모두 사욕을 가지고, 제 사욕대로 소원 성취가 이루어지면 다른 사람 다 죽으라고? 그런 자들이 소원 성취가 이루어지면 옆에 사람 못 삽니다. 돈이 있어 권세가 있어 자기나 다른 사람에게 유익될 돈이나 권세는 안 주신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면 저 망하고 남 망치기 때문에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게 대한 모든 어려움을 벗어나는 일이나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데 대해서 급급한 그런 나쁜 생각을 버리고 이제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너희의 알 바 아니요」 그러면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이랬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권능받는데 권능받는 이게 문제입니다.

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니고 빚투성이가 어떻게 돼 있어도 그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에게 지금 사형을 받을 만한 그런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은 그런 걸 다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병이 들어서 어찌 됐다는 그런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첩첩이 얽힌 모든 잘못 저질러 놓은 일이 있어도 그런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해결되는 것은 첫째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된다 하는 그것이 첫째입니다.

우리는 어데까지 자기가 영광스러워져 있든지 참 기막힌 곤궁 속에 들었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이라면 성령의 권능받기를 전적 힘써야 합니다. 성령의 권능 받기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는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 권능은 무슨 권능인가? 그 권능은 무슨 권능인가? 그 권능은 고밑에 말해 놨습니다. 권능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는 권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권능을 받으면 너희들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권능 받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되는 권능입니다. 예수님의 증인되는 권능. 성령의 권능 받는 이 성령의 권능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권능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증인은 어떤 것이 예수님의 증인인가? 예수님은 이천여 년 이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 가지고 지금은 신인 양성 일위의 부활한 신령한 영과 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 눈에 안 보입니다.

보이려고 하실 때에는 보이고 보이지 아니하려 할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 가다가 봤고, 베드로가 로마 네로 황제 때에 박해에서 박해를 피해서 딴 데로 도피해 가다가 예수님을 봤고, 그 후 모든 성자들이 성녀들이 때를 따라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산다씽도 예수님을 봤고, 후란시스도 만났고 다 일생을 주님에게 바쳐서 호화로운 세상을 뒤로 두고서 주님으로 더불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라. 주님을 만나고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그 길을 걸어갑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증인 된다 말은 예수님이 아니시면서 예수님을 똑똑히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가리켜서 증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알려 준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님은 나와 같은 이런 분이라 하는 것으로 예수님과 꼭 같은 자 되어 가지고 예수님은 나와 같은 자다 하면서 예수님을 똑똑히 보여 주는 고것이 예수님의 증인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말로만 하고 참된 실상의 증인 노릇을 하지 안하기 때문에 예수교가 이렇게 속화되고 더러워지고 범벅이 되어져서 세상에게 기독교나 뭐 이종교나 불교나 다를 게 뭐 있나 하면서 멸시를 당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직장에서도 멸시, 사회에서도 멸시, 시장에서도 멸시, 정계도 멸시 이렇게 멸시 받는 것은 다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에 쓸데 없어 밖에 버려 사람에게 밟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위에서 온갖 멸시 받았으나 인간의 양심은 다 점령했고 인간들의 궁극적인 그 중심은 다 점령을 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에게로 다 돌아오고 머리를 숙인 것입니다.

기독자들도 예수님의 증인으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런 사람이다, 예수님은 성질은 이러하고 행동은 이러하고 이렇게 산 이런 일을 한 사람이다 하는 예수님의 증인이 똑똑히 된다면 반드시 그 직장에 있는 모든 직원들의 양심은 그 사람이 다 점령했을 것이요 정계에 있으면 정계에 정객들의 양심은 점령했을 것이요 회사에 있으면 그 회사에 모든 사원들의 양심은 다 점령했을 것이고, 또, 그 동리에 살면 그 동리에서 온갖 욕을 할지라도 동민들의 양심은 점령을 해서 어떤 극단이나 곤궁에 닥치면 내가 의지하고 의논하고 바라볼 사람은 땅위에는 저 사람밖에 없다 하는 중심에 존경을 받고 앙모를 받고 참 위기에 자신을 맡길 만한 사람은 인간으로서는 저 사람밖에 없다 하는 그런 사람이 반드시 되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데든지 가서 산 곳마다 다 그러합니다.

목회자가 지나간 곳마다 그때는 몰라도 지나가고 난 다음에 ‘그분밖에는 따를 분이 없고 그분밖에는 참으로 인정할 이가 없다’ 그렇게 인정이 될 때에 그 사람은 가 버리고 말았지마는서도 남은 사람들은 다 그를 **는 사람들이 다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하는 말과같이 예수님의 증인이라 말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되어져 가지고 예수님을 알려 주고 보여 주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노릇을 하든지 뭐 권찰노릇을 하든지 장로노릇을 하든지 전도사노릇을 하든지 목사노릇을 하든지 그 사람이 청산 유수의 어떤 말을 했다 할지라도 말은 흘러갑니다. 아무리 설교 재독을 해서 아무리 기억하라 해도 말은 흘러갑니다.

말은 흘러가고 뭐이 남아 있는가? 자기가 상대하는 사람은 남아 있습니다. 교훈은 지나가도 권찰이면 ‘우리 권찰은 어떻다’ 하는 그 권찰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 권찰이 성경 말씀과 하나가 됐다면 문제가 없고 권찰이 예수님 모양으로 같이 됐으면 문제 없지마는 교훈은 멀고 전하는 그 사람이 앞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교훈은 잊었어도 그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라도 멀리 내가 이사를 와서 그 사람과 나뉘어졌어도 교훈은 잊어 버려도 그 사람을 생각할 때 ‘그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진리가 입혀 있고 그 사람 속에 영감이 들어 있고 그 사람 속에 예수님의 형상이 들어 있으면 그것은 잊어지지 않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죽고 난 다음에라도 천리 만리 멀리 가서라도 교훈은 다 잊어도 그거는 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도 있지마는서도 그보다는 그 사람이 예수님이 행동한 대로 예수님의 행동을 ‘예수님은 이렇게 했다’ 하는 그 행동을 증거하는 것이, 행동으로 증거하는 것이 더 권위있고, 행동으로 증거하는 거보다도 깊은 속에, 속히는 보이지 안해도 예수님은 이러한 분이시다 이러한 사람이시다 하는 것을 자기가 보여 주면 그것은 잘 사라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떠한 말을 했으며 어떠한 행동을 했으며 어떤 소망을 가졌으며 어떤 사상을 가졌으며 어떻게 그분은 살았는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을 땅끝까지 보여 달라고 증거해 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것만침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는 것이지 예수님은 증거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을 제가 신구약 성경을 암만 증거해 봤자 절대로 거게는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여게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이 말씀은 그때가 예루살렘에서 말할 때입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입니다. 너희들이 현재 살고 있는 이 예루살렘 사람부터 너희들에게 증거를 받아야 되고 예루살렘에 증거하고 그다음에 예루살렘에 증거하고 나서 넘쳐서 유대에 증거하고 넘쳐서 사마리아에 증거하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거돼야 되지, 제가 있는 곳에는, 제가 사는 곳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거 없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증거하면은 다 거짓부리로 보기 때문에 증거가 안 되고 아무도 모르는 저 딴 데 가 가지고서 천사같이 제가 날뛰면서 모든 사람에게 말 하나 가지고 되는 줄 알고 하고 있는 그런 자는 다 적기독이요 다 거짓부리입니다.

절대로 예수는 자신으로 증거해야 되지, 자신으로 증거하는 것보다 못한 것은 자기 행위로 증거하는 것이요 행위로 증거하는 것보다 좀 못한 것은 지식으로 말로 증거하는 것이지, 자신으로 증거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증거하는 것은 껍데기요 행동으로 증거하는 것보다 말로 증거하는 것은 껍데기요 말로 증거하는 것보다 남을 속여서 아무도 모르는 데 가 가지고서 천사노릇하면서 증거하는 것은 외식 중에 외식입니다.

선지자들이 자기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했다 그 말을 해석을 잘못하면 안 됩니다.

선지자가 증거를 해도 항상 한 자리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예사로이 듣고 그 말에 대해서 순종하지 안하는 그것이 선지자 대접 안 하는 것이지 선지자는 자기 가정에서 제일 먼저 알고 고다음에는 자기 본교회에서 더 알고 자기 고향에서 점점 더 알고 이래 가지고서 나가는 것이 증거이지.

거게서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빤히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들을 것 볼 것 없이 전부 거짓말이라 인정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저 먼 데 가 가지고서 증거한다는 그런 것은 다 기독교의 증거의 정상이 아닙니다.

이래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이랬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권능 얻는데 무슨 권능 얻느냐? 권능 얻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되는 권능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되는 권능 얻다니?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아니면서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권능 얻는 것은 예수님과 꼭 같은 자 되어지는 그것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서 변화된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권능 얻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자 되는 그 권능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보여 주고 알려 주고 인식 시켜 줄 수 있는, 예수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예수님의 자신을 보여 줄 수 있고 예수님의 행위를 보여 줄 수 있고 예수님의 그 언행을 보여 줄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성령의 권능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첫째로, 뭐 신인 양성 일위이지마는 누가 그걸 압니까? 나사렛 요셉이라는 목수의 아들로 나셨습니다. 목수의 아들.

그 뒤에 증거했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한 걸 알지 그때 그 사람들을 요셉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인데, 왜 그러면 유대법에 결혼식 전에 아이 낳았으면 돌조산을 뭉쳐 사형을 시키는데 왜 그때 견뎠느냐 그것도 모릅니다.

그저, 그들은 뭐인지 모르고 마리아의 아들이니까 마리아의 뱃속에서 나왔으니까 마리아의 아들로 난 한 사람인 것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동태 형제간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요셉이가 마리아로 더불어 동침해 가지고 낳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동생들이 많습니다.

이러니까, 외모로는 암만 봐야 예수님에게 대해서 ‘예수님은 목수 아들, 저거는 어부 아들.’ 이것뿐이지 별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랬는데, 일반인과 예수님이 달랐던 것은 몇 가지가 달랐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우리도 예수님과 세 가지가 같이 돼야 됩니다. 예수님과 세 가지가 같이 돼야 됩니다. 권능받으면 예수님과 같이 되는데 어떻게 같이 되느냐? 세 가지가 같이 돼야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가 일반인과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보내신 아버지만 상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만 이렇게 상대했습니다. 아버지만 상대했지 아버지 외에는 아무것도 상대한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만 상대했습니다. 인간도 상대하지 안하고 요셉이도 상대하지 안하고 마리아도 상대하지 안하고 천군 천사도 상대하지 안하고 아버지만 상대했습니다.

아버지만 상대한 요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고, 얼핏 들으면 모르나 깊이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양심을 쓰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버지만 어떻게 상대했는가? 아버지만 두려워했고 아버지만 믿었고, 아버지만 바라봤고, 아버지만 높였고, 아버지만 섬겼고, 아버지만 생각했고, 아버지와만 의논했고, 아버지와만 동행했고, 아버지 외에는 아무것도 상대하지 안했습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 기독자를,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라’ 예수님은 남편이요 교회는 신부라 하는 것을 다른 교회에서는 욕스럽다고 수치스럽다고 음란스럽다고 이 설교를 전혀 못 합니다. 서부교회에서는 듣든지 안 듣든지 증거해야 되겠다고 해 가지고서 많은 시간을 걸쳐 증거했지마는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라 말은 예수님의 짝이라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짝. 예수님은 아버지 외에는 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만이 짝이었습니다. 둘이만 짝됐소. 교회를 신부라고 말하는 것은 교회라는 것은 예수님만 이래 딱 짝한다 말입니다. 예수님만 상대한다 말입니다. 아무도 상대하지 안해. 천군 천사도 상대하지 안했어. 마리아 요셉이도 상대하지 안했어.

아버지만 상대했어.

열 두 살 먹을 때에 예루살렘 갔다가서 마리아 요셉이가 잃어 버리고 찾느라고 양사방 다니면서 성전에 가니까 예수님이 거게 계셨습니다. ‘우리가 찾아다니며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어떻게 찾을 줄 모르고 여기 와서 있느냐?’ 이라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그는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이리 가서 해도 아버지만을 상대했습니다. 아버지만, 아무도 바라보지 않고 아버지만 바라봤습니다. 아버지만 믿습니다. 아버지만 두려워합니다. 아버지만 높입니다. 아버지만 좋아합니다. 아버지만 의지합니다.

아버지만 의논합니다. 아버지 말만 듣습니다. 아버지만 동행합니다. 아버지 외에는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요거 아십시요.

이것이 예수님이셨는데 우리는 성령이 오시면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 것같이 내 피와 살로 구속받은 자들은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버지만을 상대한 거와같이 우리는, 이제 아버지가 전권을 예수님에게 다 이양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이양했고, 모든 역사와 미래에 전개될 영원한 미래 전개는 예수님에게 다 전임을 했고 전권을 맡겼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만 상대하는 요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요것이 첫째 우리가 할일입니다. 예수님만 상대하는 거, 예수님만 짝을 하는 거, 예수님만 상대자, 예수님만 배우자, 예수님만 나의 짝지, 예수님만 나와 상대, 예수님만 나의 대상, 예수님만이 내 짝이라. 아무것도 짝이 아니고 예수님만이 짝이라.

뭐 이 인간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모든 사물도 아무것도, 현실도 아무것도 짝으로 하지 안해. 주님만이 자기 상대로 짝으로 하는 이것이 성령받아 가지고 첫째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아버지만 상대했으면은 예수님은 그러면 행동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는가? 녜. 아버지만 상대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동은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아버지만 상대하니까 아버지가 이라라 하면 이라고 저라라 하면 저라고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하는 거 요 외에는 예수님의 행동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만 상대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 시키시는 거 외에는 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시키시는 거 외에는 털끝만한 것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시키시는 일만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의 무슨 일을 했는가?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천군 천사에 대해서도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마귀에게 대해서도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모든 전 인류에게 대한 데도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모든 만 사물을 대할 때도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만 했습니다. 아버지만을 상대의 짝으로 삼았고,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니까 아버지만을 짝으로 삼았는데 그러면 행동은 어떻게 했느냐? 행동 뭐 땅 위에 천 가지 만 가지 행동이 있고 천 가지 만 가지 행동의 방편이 있지마는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아버지 한 분만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모든 수많은 천군 천사에 대해서도 그 수많은 마귀에게 대해서도 수많은 인류에게 대해서도 수많은 사물에 대해서도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만 했지 딴것은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의 행위의 형상입니다.

예수님 자체의 형상이 아버지만을 상대한 게 예수님의 자체의 형상이오. 행위는 어떤 모양이였느냐? 행위는 그분 시키시는 대로 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행위에 형상입니다.

그러면, 이라면 됐는데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했느냐? 자신은 어떻게 했느냐? 자신은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에게 맡겼소.

아버지에게 맡기는데 뭘 아버지에게 맡겼느냐? 당신의 영이나 마음이나 몸이나 생사나 당신 자체에 대해서 완전히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당신 자체에 대해서 당신이 털끝만치도 주관하고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다 무슨 계획하고 염려하고 어떻게 한 일 없습니다. 자체에 대해서 순전히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면, 또 뭘 맡겼는가? 그분이 당신의 땅 위에 온 목적과 사명이 있었는데, 도성 인신하신 사명이 있었는데 당신이 가지고 온 사명, 당신의 사업, 당신의 목적, 다시 말하면 당신의 구속사업, 당신의 사업, 당신의 일거리, 당신의 일은 어떻게 했는가? 그일도 털끝만한 것도 당신이 주관하지 안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다 맡겼습니다.

당신 자체를 맡겼고, 당신의 사업을 맡겼고, 다음으로는 당신의 언행심사를 완전히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아버지가 하라 하는 대로 언행 심사 했습니다. 당신이 마음 하나도 당신 주관대로 가져 본 일 없었고 말 하나도 행동한 일 없고 언행 심사의 전 행동은 아버지에게 맡겨서 아버지가 주관하도록 했습니다. 아버지가 주관하게 했습니다.

없는 힘을 ‘뭣을 이런 걸 해야 되겠다’ 당신의 이 모든 심신의 기능을 아버지가 맡아 주관해 가지고서 아버지의 뜻대로 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했지 당신의 그 언행심사를 당신이 털끝만치도 주권하지 안했고 그분에게 다 맡겨서 ‘살든지 죽든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전체를 아버지에게 다 맡겼습니다. 행동을 맡겼습니다.

그다음에 그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성공을 그러면, 당신의 성패를 어떻게 했는가? 당신의 성공을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이렇게 해야 성공이 될 터인데 저렇게 해야 성공이 될터인데’ 그 성공이 인간으로는 볼 때는 완전 실패로 돌아가지마는서도 그 성공을 당신이 꿈꾸지 안하고 아버지에게 다 맡겼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예수님을 이 세 가지로 우리가 땅끝까지 증거하는 것이 성령의 권능 입은 사람이요 우리의 남은 여생의 생애입니다. 세 가지 우리가 성령의 권능은 뭐이냐? 나는 주님만을 상대하고 다른 것을 상대하지 안하고 주님 한 분만을 나는 대상으로 짝으로 삼는 이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다른 거는 성령의 권능이 아닙니다. 물론 병 낫고 이적과 기사가 있지마는 그런 거는 아니오. 그런 거는 다 불탈 것들이요 다 그런 거는 껍데기기들이오.

내가 성령의 권능받아 가지고서 성령의 권능으로 어떤 권능의 사람이 될 것인가? 나는 예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예수님 한 분만을 짝으로 삼아 예수님 한 분만을 상대하는 그 외에,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는 것도 없고, 높이는 것도 없고, 겁나는 것도 없고, 좋은 것도 없고, 탐하는 것도 없고, 사모하는 것도 없고, 위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고, 의논하는 것도 없고 상대가 아무것도 없어.

예수님 한 분만을 나는 상대로 삼아 그분만 짝이 되어서 그분만 상대하지 그분 외에 딴것은, 온 우주에 피조물이 많지마는 하나도 상대 안 하고 예수님 한 분만 상대하는 요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요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이 권능이,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무궁세계의 영계와 물질계와 모든 것을 통치하는 것은 뭐이 통치하는가? 이 권능이 통치합니다. 주님 한 분만을 상대하는 이 능력이 통치합니다.

둘째로는, 성령의 권능이, 예수님의 권능과 같이 성령의 권능이 우리에게 임하면 내가 예수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는 거,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는 거, 주님 한 분에게만 복종하는 거, 주님 한 분으로만 움직이는 거, 그분 한 분으로만 내가 움직이고 그분 한 분으로만 동하고 정하는 거 요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아버지로 인하여 살았으면, 인하여, 아버지로 말미암아 피동 됐는데 예수님이 아버지로 인하여 살 때에 어떤 면으로 인하여 살았던가? 예수님이 천군 천사에 대해서도 아버지로 인하여, 그분 뜻대로, 그분으로 인하여 상대했고 마귀도 그분으로 인하여 상대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마태복음 4장에 마귀가 와 가지고 이렇게 말할 때에 당신 말 한 마디도 안했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했다 했지 당신 말은 한 마디도 말해서 상대하지 안했습니다.

마귀를 대할 때 아버지로 인하여 대했고, 천군 천사를 대할 때도 아버지로 인하여 대했고, 수많은 인류를, 많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따라다녔지마는 그 사람들 대할 때에 아버지로 인해서만 대했지 당신 의견과 주관대로 인간을 상대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모든 만 사물을 상대할 때도 아버지로 인해서, 아버지가 대하라거든. 이거는 대하지 말아라 대해라, 이거는 먹어라 먹지 말아라, 이거는 책망해라 칭찬해라, 여게는 떠나거라 있거라, 모든 사물이나 인류나 마귀나 천군 천사에 대해서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만 동하고 정했지 당신 주관대로 하지 안 한 이 예수님의 증인되어야 될 터이니까 이와같이 나는 예수님 한 분만을 상대해서 내가 모든 인류에나 모든 사물에나 모든 악령에게나 모든 천군 천사에게나 어데서든지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요것을 우리가 세상에게 보여 주는 것이 우리 증인이요 요것이 성신의 권능의 사람이요 성신의 권능은 와서 이거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러니까, 행동이 아버지에게 다 속했어.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될까? 자신 하나 남았는데 자신에 대해서는 아버지에게 완전히 맡겼습니다. 아버지에게 맡겨서 당신의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당신의 그 자체에, 자체에 이 모든 이것이 어떻게 행불행이나 죽거나 망하거나 당신 자체에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당신이 주관하지 안했고 당신이 간섭하지 안했고 염려하지 안했고 완전히 아버지에게 다 맡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 자체에 대해서 주님에게 완전히 맡기는 요것을 세상에게 보여 줘야 됩니다.

주님만을 상대하는 요것을 세상에게 보여 줘야 합니다. 마귀에 대해서나 천군 천사에 대해서나 전 인류에게 대해서나 만사물에 대해서 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만 한 요것을 세상에게 보여 줘야 되고, 하나 보여 줘야 될 것은 내 자신을 완전히 주님에게 맡겨서, 내 자신을 주님에게 맡기면 어떻게? 내 일신의 내 신변이라든지 내 자체가 어찌 되든지 내가 염려하지 안하고 내 자체에 대해서 완전히 주님에게 맡기고, 그다음에는 내가 온 사업, 내가 땅 위에서 이것저것 다 맡은 사업, 의무와 모든 책임과 직무가 있으니까 내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사업을 완전히 주님에게 맡기는 사람 이걸 보여 줘야 될 것이라 말이오. 내 사업을 완전히 주님에게 맡기는 사람. 주님은 아버지에게 다 맡겼어. 당신이 털끝만한 것도 당신이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다 주관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

내 모든 사업을 주님에게 다 맡기는 사람이 되어져야 되겠고, 내 자체를 주님에게 완전히 맡기는 사람이 되어져야 되겠고, 내 행동을, 내 언행 심사의 행동을 내가 털끝만치도 주관하지 안하고 내 언행 심사의 행동을 완전히 주님에게 전임을 맡겼어. 주님이 언행 심사를 주관하지 내가 주관하지 안하고 내 언행 심사를 완전히 주님에게 다 맡기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고, 내 성공은 어떻게 하고? 내 성공도 완전히 주님에게 맡겼어. 내 성공을 주님에게 맡겨 내가 죽을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저는 완전히 실패자다’ 하고 죽을 때까지 실패가 되든지 당신이 죽기 전에 세상이 우러러보는 높은 성공을 하는 게 되든지 내 성공도, 세상으로 끝나지 안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당신의 성공을 다 주님에게 맡겼습니다. 죽을 때에 그는 실패자로서 가나안도 하나도 차지하지 못하고 갔지마는서도 아버지에게 그 성공을 맡기고 갔기 때문에 그는 하늘과 땅에 모든 성공은 아브라함의 성공이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끝까지, 자기의 주관이나 자기의 주관의 견해나 비판이나 평가나 계획이나 완전히 자기를 죽여서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이렇게 자기의 성공을 주님에게 맡기는 이 사람을 세계에 보여 줘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권능이 오면 이 세 가지를 이루어 가지고 이 세 가지를 이룬 대로 세상에게 보여 줘야 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진 대로, 다 이루어 가지고 보여 줄 게 아니라 이루어진 거만치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받아 가지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이 세 가지가 변화되면 변화된 거만치 즉시 즉시 다른 사람에게 가 가지고서 생명이 되고 복음이 되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권능이 와 가지고 이 세 가지로 변화되는 거. 하나는 주님만을 상대하는 것으로 변화되는 거, 하나는 주님으로 인하여서만 동하고 정하는 것으로서 변화되는 거,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면 어떻게? 천군천사에게 마귀에게 모든 인류에게 모든 사물에게 대해서 아버지로 동하고 정하니까 당신은 아무 책임 없고 아무 염려 없어. 그러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마음이 겸손하다.

세째로는 당신을 완전히 맡겼어. 어떻게? 자체를 맡겼어. 당신의 사업을 맡겼어.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다 맡겼어, 언행 심사를 다 맡겼어. 행동을 다 맡겼어.

성공을 다 맡겼어.

이래서, 오늘도 우리가 성령이 오시면 세 가지 변화, 세 가지 변화.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것, 그분으로 인하여 행동하는 것, 자신을 맡기는 것, 요 세 가지를 단단히 기억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렇게 우리 기독자는 참이라는 완전한 데 도달하기 전에는 절대 하나님의 이 피로 값 주고 산 영원한 이 구원, 영광스런 이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요 온전에 도달해야, 바로 돼야 됩니다. 바로 돼야 되지 삐뚤어지면 안 돼요.

썩어지고 없어질 밥 한 그릇을 지어도 이치에 맞아야 되지 안 맞으면 안 되는데 영원한 구원이 아무나따나 진리에 맞지 안하고 될 줄 압니까? 그런 허영과 허망을 버려야 합니다.

고요히 생각하고 이 시간 우리가 회개합시다. 이 세 가지로 회개를 해야 돼요.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회개해야 됩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 안 하고 제까짓 게 일 암만 해 봤자 그거 회개하기 전까지는 구원 안 이루어집니다. 다 헛일하다가 그거 끝나고 난 다음에, 혹 회개하면 다행이지만 안 하고 갑자기 죽어 버리면 그만입니다. 비참한 자 됩니다.

<기도> 주님, 이렇게 참으로 하나님이 사람되시지 않고는, 전부를 기울이시고 또 영원히 하나님이 사람되어 구속하시는 측량 못 할 지극히 큰 구속 사업, 이 사업의 역사도 크거니와 이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이 구원의 지극히 무한히 크고 영광스런 이 구원도 인간의 지식이 표현도 측량할 수 없는 지극한 이 구원을 믿으면 다 자기 것 되는데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썩어지고 없어질 하루밤 나그네와 같은, 오늘 떠나면 끝나는 여기에 마귀가 다 우리 마음을 기울이게 해서 이렇게 영영한 귀중한 문제는 잊어 버리고 등한히 여기고,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 이사갈 장막 생활에 있는 저희들이 땅의 것만 생각하고 있는 저희들을 오늘도 이렇게 안타깝게 교훈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였사오니 이 자리에 참석한 남녀 성도 노소를 막론해서 주님의 피로 인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시켜 주시옵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땅에 없고 영영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권할 수 있는 참된 가치의 옳은 생명의 길, 주님이 걸어가신 주님의 이 형상의 세 가지로 완전히 닮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리하여서 세상에서 주님을 고대로 빠짐없이 보여 줄 수 있는 이 한 사람이 되고야 떠나는 여기에 욕망을 두고 소유도 몸도 생명도 아낌없이 이 시간도 다 바쳐서 기어코라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는, 주님과 꼭 같은, 주님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이 세 가지 면으로 되는 이 일에 주력하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시고 이대로 다 열매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많은 생명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나기 전부터 주님의 택한 자들이오니 성령으로 깨닫게 하사 이제는 아버지 잊어 버린 자가 아니고 아버지를 찾았사오니 만유의 대주재가 아버지 된 것을 확실히 깨닫고 아버지의 품 안에서 아버지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아버지로 의논하고 모든 것을 아버지에 구하여 아버지가 인도하시는 대로 참된 길을 걸어 참된 모든 행복과 평강과 생명의 길에 충만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깨게 하여 주시고 놓지 말아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종들에게도 주의 피의 사랑으로 날마다 불붙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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