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본지위와 동산에서 쫓겨난 이유

   선지자선교회

1980. 1. 5. 토요일 새벽

 

본문: 창세기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이 에덴동산에서 된 사실을 기록해 주신 것은 에덴동산은 인류 시조가 타락하기 전 하나님에게 받은 본 위치입니다. 본위치.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의 위치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그 위에 계시고 만물 위, 하나님 밑에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 위치입니다.

 

여게 있을 때에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그들만을 위해서 소망하셨고 역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그들이요 그들의 기업은 모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그들만을 위해서 노력하시고 그들은 모든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또 그들에게 온갖 은혜를 베풀 수 있는 이런 위치를, 소망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소망이었고, 기업으로는 모든 하나님의 지으신 것들이었고, 거기는 어떤 핍박도 없었고 자유와 생명과 평강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 지위인데 여기서 범죄함으로 이 지위를 빼앗기고 좇겨나서 자기 지위 아닌 위치에서 인간은 살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이것을 회복 할 수 없는 본 지위를 빼앗긴 타락한 위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본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둘째아담이 우리의 중보자로 오셔서 에덴 동산을 회복시켰습니다. 처음 주신 에덴동산은 변동될 수 있는 에덴 동산이지마는 두 번째로 예수님이 대속으로 회복시켜 주신 에덴동산은 영원 불변적인 것으로 주신 것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인 본 지위 회복은 영원불변입니다. 또 영을 이 본지위 회복해 주신 것은 영원 불변입니다.

 

그러기에 기본적인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고 영의 중생도 영원하여 영생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은 아직까지 법적으로는 얻었지마는 실질적으로는 얻지를 못하고 죄 아래 있습니다. 이는 범죄로 영을 죽였기 때문에 영으로 인하여 또 살아나야 합니다.

 

영은 육의 주격이기 때문에 전부가 죽었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를 살리시는 길 밖에는 없지마는 주격을 살렸기 때문에 주격에게 이 에덴동산의 지위를 다시 복구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 주격인 영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살리시지 영을 제외하고 직권으로 하시시를 않습니다. 이것은 그 주격을 주격으로 대우하시고 월권하지 아니하십니다, 이래서( )는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그 육체를 살리는 역사를 하시지 직접 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이 심신에게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꾸 인식시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육이 한 현실, 한 현실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을 회복시켜 주신 인간의 본 지위를 회복시켜 주신 이 지위를 현실에서 한 번씩 한 번씩 통과하게 됩니다. 요 본 지위의 생애를 빼앗기지 아니하고 고대로 통과하면 통과된 것은 살았습니다.

 

고것을 가리켜서 생명이 생명 생활하여 승리한 것을 생명의 면류관 주신다. 또 영생을 가졌다. 영생은 생명을 가진 것 말하는 거 아닙니다. 생명이 영원한 사망 할 것을 영원한 생명으로 옮겼을 때에 요것을 영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영생은 생명에 속한 것이고 중생된 생명은 종자적 근원적 생명이고 요 생명이 심신을 사로잡아서 심신이 요 생명과 함께 살았을 때에 산 고것은 영생입니다. 영원히 살았단 말입니다. 영원히 죽을 것이 영원히 살아났습니다. 이러면 다시는 반복이 없는 변동이 없는 요 구원입니다.

 

이래서 에덴동산 생활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한 번씩만 하면 한 고 요소는 다 영생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우리에게 주신 성도의 본 지위입니다. 여기서 타락한 것은 영원 사망이 되고 여기서 타락하지 않은 타락하지 아니한 요것은 영생이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영생이 소망되었고 또 하나님이 소망되었습니다.

 

포도나무 비유에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은 전적 에덴 동산에 있는 본 지위에서 타락하지 아니하고 본지위에 있는 자를 위하여 전적 역사하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예수님이 회복시켜 주신 영이 있는 지위, 우리의 심신이 이 지위에 있을 때에는 이 지위에 있을 때에는 본인이야 알든지 못하든지 요 지위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저의 하나님으로 모신 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시요 주권자이십니다. 주권자를 모셔서 주권자된 것입니다. 대주재자를 모셔서 주재자가 된 것입니다. 제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니님을 저의 하나님 삼았으니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저의 것이 된 것입니다. 요것이 우리의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신 본 지위입니다

 

또 소유로는 어떤 소유를 가지느냐? 하나님의 모든 지으신 피조물 이것은 우리의 것을 삼게 해 주신 것이요. 또 우리가 이것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땅을 정복하고 이를 다스리라' 하신 그것이 본 지위에 있을 때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된 이 지위에 있을 때에는 모든 피조물이 복종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고 악령에게 유혹을 받습니다.

 

사람으로서 제일 권위 있는 것은 어떤 것이 권위 있는 것이냐 인간이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 아무리 얻어 봤자 하나님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 얻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요 에덴동산생활 타락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 지위, 본 위치 요 위치만 빼앗기지 아니하고 요 위치만 자기의 처소로 삼아서 있으면 이것은 천상천하에 하나님 다음의 존귀한 자요 권위자입니다. 무식해도 좋습니다. 병신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요 위치는 고깃덩어리의 건강하고 약하고 껍데기 모양이 잘나고 못나고 그런 거는 이 근방에 상관하지 못합니다. 인간으로 말미암은 지식이 있고 없고 그런 것들 다 초월한 존재입니다. 이런 것들 다 초월한 위치요 초월한 종류의 것이기 때문에 그 이하의 것들이야 어떻든지 상관하지 상관 없습니다. 없지만,그러기에 일반 성도들도 그러하고 더욱 은사교권에 있는 교역자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요 위치만 빼앗기지 아니하고 요 위치만 있다면 제일 권위 있는 교역자입니다. 제일 영광이 있습니다. 그의 성과가 제일 큽니다. 어데 있어도 상관 없습니다. 사람들이 구별되는 이 교파, 저 교파, 이 나라, 저 나라, 이 입장, 저 입장 그런 것을 다 ( )초월한 이 위에 이 썩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신 요 위치. '너희가 내 안에 있어라' 말씀하신 대로 요 위치만 요것을 우리가 빼앗기지 아니하고 요것만 가지면 다른 것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하나님도 내 것이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도 내것이요. 그들이 멸시를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나에게 주시고 나는 모든 것을 다른 것에게 주고 중보자 되는 것입니다. 천대와 멸시를 받아서 매장 당하다가 죽임을 당해도 그는 만물의 통치자 됐습니다. 그의 기간은 통치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믿는 이 일은 하나의 공상에 지내지 못하고, 하나의 공상에 지내지 못하고, 과학적이 아니고 실질적이 아니고 하나의 공상, 하나의 논리, 하나의 궤변, 하나의 신화 이러니까 실질적이 아닌 그런것을 보고 그것만 생각해서 사람이 어떻게 출세하며 어떻게 성공을 하며 어떻게 모든것을 점령을 소유를 할 수 있겠느냐? 너무 예수 믿는 것이 쉽게 보이고 허무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대가리를 싸매고 에이, 비이, 씨이 이거 무슨 방언을 배워야겠다. 방언 공부를 해야 되겠다. 이 어학 공부를 해야 되겠고 이거 가지고는 안된다. 과학을 배워야 되겠고 인간들의 통계를 배워야 되겠고 이것 가지고는 너무 실질적이 아니고 너무 공상적이고 너무 허무적이기 때문에 이것만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음식의 양념처럼 하나의 우리의 생애에 필요한 요소중의 하나지 이것을 전부 삼아서는 안된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 힘이 많으니까 그렇게 여깁니다. 명철한 사람들이 너무도 단순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깁니다.

 

이것이 나아만 대장이 그렇게 쉬운 물에 씻는 거 그까짓 거 가지고 일이 되겠느냐 그는 몰라서 그렇습니다. 몰라 그런 것은 어려운 줄을 몰라 그렇소. 결과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몰라 그런게 아니라 제가 무능, 무지하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을 못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시퍼 보이지마는 저를 따른 사람은 저보다 위에 있소. 그것 쉬운것 아닙니다. 그것의 어려움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지식, 자기를 죽이는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모든 체험, 경험, 모든 유사의, 역사의 내려오는 통계, 세상과 자기를 부인해 버리는 그 걸음인데 그 걸음이 쉬운 것 아니요. 제가 몰라 그렇지. 저는 옆의 그 사람의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인해서 가서 씻어서 나았지마는 저는 그 사람의 그 믿음의 혜택으로 나았지 나아만 대장은 그것을 지키지를 못했소.

 

그것이 이제까지 역사를 부인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요. 역사를 부인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을 부인하고 들어가는 것이요. 역사만 아니라 오늘까지 온 모든 자연을 부인하고 자연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역사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자기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없는 것을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받은 것인데 이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했습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요.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은 다 이 일입니다. 모든 일은 자기 부인케 하는 것이요. 세가지를 부인케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을 부인하고 창조주를 위에 세우는 것이요. 이게 어려운 일입니다. 쉬운 일 아니요. 모르고 해 나가는 가운데서 하나씩 둘씩 되어지는 것이지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자기가 깨닫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회복된 성도의 본 지위 본, 위치 생활 이것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좇겨나지 아니하고 여기에서 살려고 하니까 얼마나 어려운지. 죄인중에 괴수 죄인이란 말은 삐뚤어진 것 중에 삐뚤어진 게 제일 많다는 말이요.

 

어떻게 본 지위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본 지위 생활을 할라고 하니까 이렇게 잘못된 게 많이 발견됩니다. 안하는 자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소. 삐뚤어진 게 있소. 송장이 무엇을 알겠소. 소경이 무엇을 보아서 삼라만상의 그 오묘를 그가 실감하겠소.

 

예수 믿는 생활이 힘이 쥐이지 아니한는 것은 너무 실질적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은 그는 예수 믿는 생활을 할 줄을 모르고 예수 믿는 생활이 뭐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쉽고, 해 보지 안했기 때문에 이 생활을 하면 과연 이건 인간이 상상 못 할 결과가 맺어지겠구나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신앙 생활 아니하고 안해 봤기 때문에 신앙 생활의 이 가치가 정말로 천상천하에 제일 존귀한 결실을 맺을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그가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시퍼 봐서 아니하고 허무하다고 해서 아니하고 과학중에 과학인데 물질 과학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인 인간 과학인데 인간 진리인데 모르기 때문에 아니하고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야! 그 일이 허무하다 하는 것이요. 해 본 자는 천상천하에 이 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어. 힘으로도 능으로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만할 수 있는 이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일 어려운 일이요. 힘드는 일이요. 존귀한 일이요. 제일 실력 있는 일이라.

 

이러니까 제일 보배로운 결실을 받겠고 제일 높은 대우를 받겠고 모든 피조물 위에서 점령하고 통치할 수 있다 그말이요. 해보니까, 이러니까 바울은 살아갈수록 점점 어려워지고 점점 어렵고 점점 무겁고 점점 삐뚤어지는 것이 자꾸 실수가 더 많고 그 분이 예수를 믿기 전에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자라 했소. 구약 성경 지키는 데는 하나도 못 지킨게 없었어.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었어. 깨닫고 이일을 할려고 하고 보니 이제 어려운 게 왔지.

 

우리가 다른 것을 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요 위치에서 살면 요기에 전심전력 다 기울여 죽을 힘까지 다 들여서 죽도록 충성하지 아니하면 요 위치를 빼앗기지 않을 수 없소. 요 위치 생활을 벗어날 수 없소. 뭐 이거 버리고 무슨 허영을 가지고 무슨 허망을 가지고 허욕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고 이리 돌아다니고 저리 돌아다니고 어디가서 뭐하는지 모르겟어. 제일 작은 교회도 상관없어. 인간 없는 데는 인간이 없는데는 일면이 없어 그렇지.

 

이러기 때문에 사람 없는 데는 가면 안돼요. 아담 노릇을 못하기 때문에 안돼. 해와 노릇은 사람 없는데도 상관없어. 우리의 승리와 성공은 하나님이 주신, 타락 했다가 인간의 본 지위에서 타락한 여기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본 지위를 회복 받아 가지고 예수님이 있게 하신 요 위치 요것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쫓겨나지 아니하고 요게 사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요 승리입니다.

 

이러기에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거 본 지위에서 쫓겨나게 되는 원인인 요것을 우리가 범하지 않을려고 싸우는 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요게 우리는 전심전력 다 기울여야 됩니다. 요것만 범하지 아니하면 됐소. 좇겨나지만 않으면 됐소.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라"(26:2)' 너희들이 내 안에 있어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해. 요게 우리의 회복된 본 지위인데, 요기에서 쫓겨났을 때에는 만물이 저희의 저주가 되고 하나님도 저를 저주하고 모든 피조물도 저를 저주하고 전체가 저를 저주합니다. 저는 전체가 해하는 자가 됩니다. 그들은 일시지미는 우리는 영원히 결정되는 것입니다. 잘 되면 영원이 잘 됩니다. 못 되면 영원히 못 됩니다. 요것이 우리의 싸울 대상입니다. 요것이 우리가 취할 성공이요.

 

목회자도 이 교회로 이동하면 거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에덴동산 생활을, 본 지위 생활을 거게서 사형장에 나아갔으면 사형장 거게서 주님이 주신 그 성도의 위치, 고 위치를 빼앗기지 아니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 위치만 상실하지 않으면 이것으로써 모든 걸 다 뺏겨도 상관없소. 그게 다 내것이라.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요. 모든 피조물도 내 것이라. 하나님은 나에게 당신의 전부를 나에게 기업으로 은혜로 주시고 나는 그것 가지고 만물에게 충만케 해 줄수 있어.

 

그러기에 우리가 딴 것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또 여기에만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서 요것만 되면 어학 하나도 못해도 상관 없어요. 통역해 줄 사람 꽉 찼어. 실지로 그런지 모르겠는데 요새는 뭐 그 사람이 무슨 나라 사람 어떤 나라든지 전체는 안되겠지마는 거기에 가담한 나라는 그 나라 방언으로 말하면 여러 나라 사람으로 그 나라말 그 나라 말로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그 말로 들린다고 한국말로 말하면 일본 사람에게 일본 말로 들려 지고 영국 사람에게는 영국 말로 들려진다 하는데 그게 돼 있는가 몰라. 그게 말뿐인가. 됐어? 그게 돼 가지고 있어? 입에 대는가? 귀에 대는데 귀에 대고 있으면 내가 한국말로 하면 들린대요. 영국사람에게는 영국 말 영어로 들린대요.

 

그러면 뭐 모든 것 다 이것만 되면 다 돼. 주인공이 됐는데 무슨 상관있어. 그게 다 거기서 나가는데 이런 존귀한 지위,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교회로 통해서 발산된다 그 말이요. 발휘된다 그말이요. 모든 만물은 발등상이니까 하나님 몸 밑에 있다 그 말이지.

 

만물 안에서 만물이 모시고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물에게 충만케하는 그 충만케하는 이것이 교회의 일이지. 교회의 하는 영원한 직책. 그러기에 예수님이 주신 우리 본 지위. 요것을 빼앗기지 아니해야 되는데 우리가 요것을 뺏기지 않는 것이 우리의 시련이요. 우리의 참 능력이요. 우리의 실력이요 우리의 권위인데 요것이 우리가 안돼요.

 

요것을 우리가 못해서 요기 차지 안됩니다. 요것을 우리가 못해서. 지난 밤에도 여러가지를 말했는데 이제 우리가 은혜받는 그 아담의 기본 기본 위치에 있는 기본 교권이라 사람들이 말하는 요 은혜받는 피은자, 수은자, 은혜를 입는 자, 요자의 위치가 요것이 해와의 타락에서 고것을 우리가 볼수 있는데 고걸 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데 고게서 모자라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더 첨부해서 똑똑히 해 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고 순위가 첫째가 하나님 잊어버린 거. 하나님 없이 언행심사 한 것, 하나님 없이 어데서든지 하나님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내가 고때에 대우하는 것이 요것이 '저가 나를 안즉'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저를 높이리라' 우리가 고게서 하나님을 하루 몇십 번 몇백 번도 하나님을 배척할 수 있소. 부인할 수 있소, 하나님의 멸시 할 수 있소, 이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때까지는 우리를 끝없이, 끝까지 사랑하시기로 하나님이 작정 하셨기 때문에 참자 참아 주자 했습니다. 요게 우리의 권위 입니다.

 

자기 현실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요것을 인정하는 요게 권위인데 요게 없어. 자기 현실에서 하니님의 그 뜻을 따라서 하나님과 동거하는 하나님이 나와 같이 해 동거하는 것을 자기가 알고 있는 거 '저가 나를 안즉' 요게 고속에 들었습니다. 이게 우리 어려워. 가다 보면 그만 하나님 안보인다 그기요. 하나님 잊어버렸어. 여기에서 하나님 대우가 딴 대우 아니요 요게 하나님 대우요. 이 일은 어려워도 하나님이 하라 하신다 지상 명령인데. 아 요것은 현재에 하나님이 금하신다. ( )요것은 하나님을 지금 대항하는 것이다. 하니님을 시기하는 것이다. 요것이 하나님을 이기고 버리는 것이다. 요것이 우리가 제일 어렵습니다. 요게 제일 어렵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힘을 쓸 일이다. 요거 힘 쓰면 거기서 다 나오요.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요것을 힘써서 요것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해로운 것이 우리를 만지지 못해요.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를 못해. 주위에서 빙빙 돌고 우는 사자와 같이 빙빙돌고만 있지 요것이 우리에게 접선하지 못해. 하나님을 내가 잊어버렸을 때에 그것이 와서 부딪히고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그것이 나를 와서 지배를 해. 하나님이 나를 지배할 때에 딴 것이 나를 손을 대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 그들이 와서 접하지 못해. 하나님을 내가 배반치 안했을 때에 그들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그때 부텀 그는 나를 피동시킬려고 나에게 능동이 될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요. 당장 고게서 배반하는 것을 우리가 환하게 알 수 있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고게서 하나님을 자기가 영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거하고 하니님을 ( )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는 것은 고게서 환하게 판정된다 그거요. 요것이 우리가 제일 첫째 힘드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가 못해서 탈입니다. 이것만 하면 그 다음 거는 하기가 쉬워. 이것만 하면 그 다음에는 돼요. 이것을 우리가 제일 첫째 힘드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가 못해서 탈입니다. 이것만 하면 그 다음 거는 뭐 하기가 쉬워. 이것만 하면 그 다음에는 돼요.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제 1계명입니다. 이것이 1계명이요.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것이 첫째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이것만 되면 그 다음에는 다 돼요. 모든 것이 여게서 고장나 가지고 있지 이기 안돼 그렇지 이것만 되면 다 돼요.

 

1계명 지키면 2 계명으로 부터 10계명까지 지킨다는 것은 그것은 저절로 지켜집니다. 1계명이 제일 어려워 요. 첫째 요것이 제일 어려워.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는 이분을 상대해서 이분과 관계를 가지고 이 분과 교제를 하고 이 분과 손을 잡고 이랬을 때에 비로소 둘째인 자기 위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자기 위치를 다스릴 수 있소.

 

다스린다 말은 자기 위치, 자기 현실이 자기 위치인데 자기 거처인데 자기 처소인데 자기 처소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은 자기 처소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주님에게 피동이 돼 가지고서 자기 현실을 상대한다 그 말입니다.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주님에게 피동되는 것으로써 그 현실 생활한다는 요게 어려워. 요게 우리가 어려워요.

 

요걸 우리가 못하는 데에서 비참한 것이 자꾸 돌아옵니다. 요것이 무엇을 결정 지우느냐 하나님의 능력이냐 피조물의 힘이냐 요것이 여기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가 사느냐 하나님의 능력 버리고 피조물의 능력으로 사느냐 요거 결정됩니다. 요게 우리가 어려워.

 

요것만 하면 거게는 만능이 들었어. 만능이 들다니? 하나님의 모든 힘은 내 힘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힘만 가지고 살면 나는 어쩌고? 나는 하나님이 맡아. 자기에게 대해서는 하나도 할게 없어. 하나님이 하시지. 하나님의 능력 받아 가지고 자기는 살면 돼. 살면 뭣 하는데? 그 능력 받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 살리는데 그것만 자기 할 일이지. 그것이 우리의 위치입니다.

 

하나님 능력 받아 가지고 자기 영광스럽게 하는 거 아니야. 하나님 능력 받아 가지고 자기 존귀케 하는 거 아니야. 하나님 능력 받아 가지고서 자기 좋게하는 것 아니라 그 능력 받아 가지고서 봉사합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자로서 자기를 보호하는 것은 하나님 보호하는 것이라. 다스리는 것은 고게 피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환경에 피동 아니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주기철 목사님이 고 자기 현실에 피동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으로써 현실을 접했어. 현실은 현실은 저거는 저거대로 손양원 목사님에게 하셨고 저거는 저거 저거할 대로 했고 손양원 목사님은 하나님에게 피동된 피동된 그대로 했어. 요것이 자기 위치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요게 어려워. 우리가 요걸 요게서 실패해요.

 

어떤 사람이 나를 뭐 대적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여게서 실패입니다. 우리 실패는 자기에게 실패가 되지 자기 밖에 상관이 없어. 실패도 성공도 자기 안에서 나옵니다.

 

지킨다.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네가 요것을 잘 보호하고 이것을 ( ) 자가 없도록 요것을 빼앗기지 말고 요것을 잘 보관해라 네가 파수해라 하는 것이요. 우리는 우리 현실에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거 외에는 용납지 말아라. 상대하지 말아라. 우리 현실에 어떤 것이든지 고것은 좋은 것이든지 두려운 것이든지 큰 것이든지 작은 것이든지 그것을 내가 막바로 접선하면 안돼.

 

막바로 접선하지 말고 막바로 상대하지 말고 일단 상대하기 전에 하나님이 나에게 보관시킨 것인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인지 이것부터 먼저 우리가 발견하고 난 다음에 우리는 그것을 접해야 실패가 없습니다. 요 말이 좀 어려운 말인데 자기에게 어떤 현실이 부딪혔든지 아 이 현실은 좋다, 나쁘다, 크다, 우습다, 슬프다, 평안하다, 요것은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위치를 지키는 것은 그러기 전에 고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보관하라고 하나님이 나로 지키라고 하나님이 고것은 나에게 보관시키고 나에게 지키게 하셨고 내게도 주셨다. 요것부터 발견해요. 요럴 때에 요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현실에 어떤 것이 부딪혔든지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먼저 발견하고 고걸 접해야 되지 요것이 왜 선물이 됐느냐? 아 요건 나에게 선물이다. 아니요.

 

어째서 선물이 됐노 하는 고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고걸 접해야 됩니다. 고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우리가 접하는데에서 실패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우리 현실에 우리 현실이 자꾸 바꾸어지지 않소? 우리 현실이 바꾸어지는데 거게는 수많은 요소들이 다 끌어들여서 합해가지고 부딪힙니다.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하나님 없이 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물로만 접하지 주님이 나에게 주신것으로만 내가 접하지.

 

'동산을 지키라' 말은 거게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은 용납지 말라 그 말이요.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것 그것만 내가 용납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지 않은 것은 다 물리쳐라 그 말입니다. 요기 좀 어려운 말이라. 아주 좀 어렵습니다. 동산에, 하나님이, 네가 어떠하지? 동산이 현실 알지? 네 압니다. 요걸 네가 지키라. 아무도 가져가지도 못하게 지키라. 다른 것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지키라. 고게 지키는 것입니다. 가감하지 못하게 지키라 말입니다.

 

우리의 현실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선물로 주신 것 요 연결 여러분들이 하기 어려울 건데 그 연결을 지금 말해도 못 알아 듣기 때문에 뚝 떨어져 가지고 지금 말합니다. 현실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 외에는 용납지 말아라. 하니님이 주신 선물 외에는 네가 용납하지를 말아라.

 

하나님 주신 선물만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선물만 네가 용납하고 이 선물도 뺏았기지도 말아라. 선물만 용납하고 선물 뺏기지도 말아라. 요기 지키는 것인데 선물만 용납하라니? 자기에게 어떤 현실이든지 고것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고 접하지 말고 어떤 현실이든지 왔으면 고게서 하나님이 요것은 왜 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이것을 발견하고 접하라 그 말입니다.

 

발견한 후에 왜 이것이 나에게 선물이 되는지 발견을 하고 난 다음에 고것을 네가 접하고 또 빼앗기지 말아라. 고 선물을 빼앗기지 말아라. 요거 못 알아 듣는 말인데 요거 못 알아 듣는것 같은데 요 느끼지를 못하는 것 같애. 네 위치를 지키라. 네 처소를 지키라. 네 현실을 지키라. 어떻게 지켜? 네 현실에는 주님이 너에게 주신 거 외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또 주님이 너에게 주신 것 뺏기지 말아라. 다니엘에게 사자굴을 줬는데 사자 구덩이에 집어 던지는 사자 구덩이에 던져서 사자 밥이 되는 고 현실을 네가 아, 나를 죽일라 한다. 사자가 뭣이다. 네가 거게 대해서 그걸 네가 거기 대해서 연구도 생각도 접촉도 하지 말고 이것을 주님이 주셨나 안 주셨나 요것을 착안해라. 주님이 주신게 아니면 용납지 말아라.

 

주님이 주신 것인 것을 발견하기 전에는 네가 접하지 말아라. . 고것을 주님이 뭐 때문에 주신 것을 네가 발견해라. . 주님이 요것 때문에 주셨구나. 고것이 너에게 선물인 것을 네가 발견하고 난 다음에 고걸 접해라.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 기쁘게 여겨? 선물이 왔으니까 기쁘게 여기지.

 

되나 안되나 아, 나의 현실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 그런 덩더꿍이 그런 소경 노릇은 소용이 없습니다. 요것은 뭣 때문에 나에게 필요하냐? 요건 요거는 뭐 때문에 내게 필요하냐? 요거는 나 때문에 내게 대해서 뭣 때문에 필요하냐? 요 배척은 내게 뭐 땜에 필요하냐? 요 배신은 나에게 뭐 때문에 필요하냐? 요 명예, 영광 요거는 나에게 뭣 때문에 필요하냐? 고걸 알아서 주님이 과연 요거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에 주님이 나에게 주셨다.

 

요것을 네가 먼저 발견하고, 고거는 뭐입니까? 발견했으면 고것은 자기가 용납해야 됩니까, 아니해야 됩니까? 지키는데 고것은 자기가 자기 것으로 받아야 돼요? 안 받아야 돼요? 자기가 지킬 것입니까? 안 지킬 것입니까? 어찌 돼요? 자기에게 요것은 없어서는 안될 요것을 주님이 나에게 주셨다 했으면 자기가 지켜야 자기 것으로 이렇게 보호해서 지켜야 될 것 중에 들었소? 안 들었소? 들었지.

 

그러면 고 다음에는 뭐이요? 고 다음에 할 일은 뭐이요? 안 뺏겨야지. 뺏기지 않아야지. 고것을 빼앗기지 않아야지. 자기 것으로 이용하면 자기가 뺏기지 않지. 자기가 이롭게 이용하지 못했으면 뺏긴 것이지. 이게 어렵습니다.

 

그 다음에 넷째는 요 해와는 중보자를 바꿨소. 자기 이 머리를 바꿨어. 자기의 머리는 아담입니다. 자기의 중보자는 아담이요. 그의 둘째 타락은 동산을 다스리지 아니한 것인데 아담의 둘째 타락은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 아담의 둘째 타락입니다. 아담의 타락과 해와의 타락이 다릅니다. 해와는 중보자를 바꿨소.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중보자는 아담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현실 생활에 우리의 현실 생활에 해와의 면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워주신 중보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중보자가 있소. 이 중보자를 바꾸지 아니해야 됩니다. 중보자를 뺏기지 아니해야 돼요. 중보자가 누군데. 아이도 될 수 있고 어른도 될 수 있고 자기 교회 목사도 될 수 있고 자기 선배도 될 수 있고 자기 후배도 될 수 있고 인간애가 아니요.

 

하나님이 나에게 세워주신 중보자. 하나님께서 어느 사람인가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셔서 하나님이 통해서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것, 해와는 제가 하나님에게 직접 말씀을 못 받아요. 아담을 통해서만 저는 받아. 이러기 때문에 둘째범죄가 이미 받은 거, 다스리지 않은 것이 죄라. 둘째 죄라.

 

우리가 어떤 면은 내가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줘야하는 그 중보 역할을 할 때도 있지마는 어떤 때는 중보자를 통해서만 내가 받지, 중보자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받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이것도 범위가 넓어서 여러분들이 알기 어려워.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 다하지 아니하시고 이 사람을 통해서 이 진리를 가르쳐 주고 저 사람을 통해서 저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 자기에게 확신을 통해서 자기에게 알려준것은 고 확신을 통해서만 알려주시지 직접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고면에는 고 사람에게서 그에게 하니님이 알려주시는 요것을 바로 받아야 되지 고것은 그 사람을 통해서는 받아지는데 고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받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는 안돼요.

 

이러니까 요것이 또 혼돈되니까 또 따라오지 못하니까 여러분들이 또 초절해서 말할 수 밖에는 없어. 하나님이 나에게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서 나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이 쓰셔서 나에게 알려주시는 요것을 구별해 가지고 하나님이 요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것인지, 마귀가 요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주는 것인지 요걸 구별하라 그 말이요. 요것이 해와의 넷째 타락입니다.

 

그러기에 복 있는 사람은 어떨 때는 하나님이 길 가에 가는 미치광이 통해서 나에게 알려 주실 수 있어. 미치광이 통해서 미치광이가 내 중보가 될 때가 있어. ( ) 어떨 때는 나에게 지도자 되는 목사가 자기 목사가 자기에게 마귀의 일꾼이 되어 지도 되는 때가 있어. 요것을 구별해서 지도자를 바꾸지 말라

 

(이하 녹음 없음)

 

지도자를 바꾸지 말라. 거꾸로 뚱딴지 같이 듣는 사람은 지도자는 백목사는 불변의 지도자인데 백 목사를 바꾸지 말라. 그 말로 들어가지고서 지도자는 자기 뿐이라. 그러니까 자기 바꾸지 말라 하더라 그렇게 들어가지고서 귀신 노름으로 저 죽이고 남 죽입니다.하나님이 미치광이를 통했든지 당나귀를 통했든지 하나님이 쓰셔서 자기에게 지도하는 요것을 요것만 자기 지도자로 받고 자기 중보자가 있어야 돼. 이 중보자를 바꾸면 안돼. 해와는 바꿨어. 바꿨기 때문에 죽었어.

 

이러니까 나귀만 지도자요? 어떨 때에는 발쌀 거리는 쥐가 바쌀 거리는 그 소리가 자기에게 지도자 될 수도 있어. ? 하나님께서 특별 계시, 자연 계시로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발람은 당나귀가 자기의 중보자인데 고게 대해서는 자기의 중보자인데 배반했기 때문에 저는 죽었지.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지도자인데 한 분 뿐이십니다. 며칠 전에 권찰회때 이 말씀을 했는데 요한 복음10장에 담으로 넘어오는 자, 문으로 들어오는 자, 문은 예수님이 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는 문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내가 그에게 무었이든지 받아 들이려거든 받아 들이려거든 무엇이든지 받아 들이려거든, 무슨 말이든지 받아 들이려거든 요게 하나님이 나에게 세우신 중보자인지 마귀가 나에게 세운 중보자인지 요것 구별 못하면 저는 이제까지 지켜나와도 거게서 그만 타락입니다. 헛일입니다.

 

아무리 신실한 선배라도 그를 통해서 나에게 올 때에 요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중보자로 하나님이 이것을 나에게 전달해 주는 것인지, 변질 돼 가지고서 마귀가 이 사람을 통해서 나에게 전달하는 것인지 전달해 오는 것을 봐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해와는 중보자를 바꿨습니다. 아담을 버리고 아담을 잊어버리고 중보자를 잊어버리고 배암을 자기의 중보자로 삼았습니다. 배암이 자기에게 지도합니다. 배암의 지도를 받아야 돼요. 이러고 나니까 중보자 바꾸고 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혼돈 됩니다. 이제 가감돼요. 하나님의 말씀이 가감이 돼.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성을 뺏기고 나니까 이제는 자기 밖에 남은 것이 없어.

 

이러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됐어. 이러고 나니까 자기 위주가 됐으니까 이제는 선악과를 먹게 됐습니다. 탐스럽기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하는 그게 자기 위주가 되면 그리 됩니다.

 

여러분들 자기가 위주, 자기 중심이 돼 가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소? 하나님 위주, 중심의 것을 자기에게는 전체가 해치는 것 뿐이요. 이러니까 적극적으로 그거는 대항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자기 위주로 자기 중심으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자꾸 자기가 취득할라고 노력합니다. 전체가 죽을라고 하는 노력 외에 하나도 섞인게 없어. 전부 죽을라고 하는 고 뿐이라.

 

이러니까 선악과 먹었지. 먹고 나니까 이제는 자기 중보자를 자기 부하를 삼았습니다. 아담을 다스리고 아담을 다스려서 아담 시키는 대로 해야 될 자가 아담을 시켰소. 이러니까 아담은 먹었습니다. 아담이 자기가 하나님 잊어버리고 하나님 말씀 잊어버리고 다스리는 거 잊어버렸고 지키는 거 잊어버리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중보자 자격이 없어. 중보 역할 못했어.

 

중보 역할 못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인간 구별이 없어. 지위 구별이 없어. 지위 고별, 인간 구별, 다 잊어버렸어. 내가 지도해야 될 자인지 지도를 받아야 될 자인지 이러니까 밑에 사람으로 인해서 다 죽었어. 밑에 사람으로 인해서 다 죽었소. 저는 안갈라 했는데 밑에 사람이 붙드니까 끌려 갔습니다. 목사를 누가 타락시키는가? 밑에 사람이 메어다가 죽이지. 꼭 해와와 같습니다.

 

이제는 아담이 제가 지도를 받아야 될 자인지 지도를 해야 될 자인지 지금 제가 끌려가고 있는지 끌고 있는지 그거 몰라. 롯이 통솔하니까 제가 지금 그 밑에 있는 모든 식구 통솔한 줄 알지 아니야. 저는 밑에 사람에게 벌써 통솔을 지배당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밑에 사람을 통솔 했지마는 롯은 밑에 사람에게 통솔을 받았소. 그거나 아담이 해와에게 끌려서 먹으라 하니까 먹는 그거나 꼭 같소. 지위 구별, 인간 구별 다 혼합돼 버렸어. 그러고 나니까 여인에게 미혹을 받았어. 그러고 나니까 선악과 먹었지.

 

신약에서 많이 말했지마는 우리가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구약을 우리에게 줘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쓸 데가 어디 있느뇨. 여기서 힘쓰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으로 부터 5장까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이단은 다 여기서 나왔습니다. 뭐 하나님이 모든 것 지은 것을 믿으니까 다 됐어. 입술로만 믿지 믿지 안해. 지은 걸 믿으면 만들어진이 보다 만든이를 멸시해요? 만든 세력은 만들어진이 보다 더 큰데.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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