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5 00:54
성도의 구원생활
1984. 10. 7. 주후
본문: 야고보서 1 장 5절∼8절 너희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음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가 성경을 모를 때에는 세상이면 다인 줄 알고 세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하든지 짧은 기간이나마 좀 행복을 이루어 보려고 분발했던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다 경험한 대로 세상은 모순과 합리와 변동과 모든 것들로 가득 섞여 있어서 참 사람이 자기 갈 길을 못 찾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는 여생을 걸어갈 인생길을 확정 지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요동되지 않는 그 인생관에서 계속하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놀래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은 다 무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은 이 우주에도 그 범위와 종류가 심히 않고 그 영계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보이지도 아니하고 형체도 그림자도 없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다 지음 받았고. 또 그분이 영원전 주권 의지로 예정하신 예정 그대로 영원히 그 순서가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순서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존재는 참 셀 수 없는 존재인데, 그 모든 것이 자존하신 그분의 목적 하나를 위해서 그분이 예정도 하셨고 창조도 하셨고 보존 관리도 하시고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의 의지로 섭리해 나가서 당신의 영원전 작정한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 하시는 것이니 그는 참 너무 광대하고 복잡하고 영원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종족이나 그 범위를 인간의 지식으로 측량 할 자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인생이 짧다면 짧지마는 또 길다면 그래도 육칠십 년 칠팔십 년 근 백 년 살고 있으니까 길다면 긴데, 그 자기의 일생을 어디로 걸어가며 어떻게 하나님이 예정되어 있는가 하는 그런 것을 매우 궁금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좀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는 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는 말은 현재로부터 미래 영원에 대한 거기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지식하며 어떻게 경영하며 어떻게 움직여 나가야 되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모른다는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다 중생된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지식은 과거와 현재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이고 지혜라 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영원에 관한 것을 가리켜서 지혜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공간적으로도 내 미래가 어떠한지 다시 말하면 내가 지금 여기에 있지마는 내일에 내가 어디로 갈란지 모릅니다. 시간적으로도 모릅니다. 나는 지금 이 땅 위에 있을 것인지 세상을 떠날 것인지 내가 접하고 있을 그 모든 종류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릅니다. 험할는지 순탄 할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의 미래가 심히 복잡해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막막하고 호호한 이 미래라는 것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미래에 대한 내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번민 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에게 묻는 사람입니다.
천상천하에 지음 받은 가운데에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제일 존귀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우주에는 지구와 같은 이런 한 물체들 이 헬 수 없을 만치 가득 차 있고 또 별별 귀한 것들이 많은데, 이 지구가 모든 존재 가운데에 제일 위대한 것이며 또 지구에 버러지 같이 살고 있는 이 사람이 그렇게 중대하다 하는 것을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그렇게 말씀해놨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 하늘의 것을 말하는 거는 영계의 것을 말하는데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개인 개인 이것이 다 될 수 있다는 이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또 사망이나 생명이나 좋은 운동이나 나쁜 운동이나 그 모든 것이 다 개인의 소유로 개인의 영원한 그 한용의 이용의 것으로 되어진다는 것을 그것을 성경에 말씀했는데, 이런 것도 아주 허무한 말 같고 너무 과장한 거짓부리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 하나님께서 똑똑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택함을 입었고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어 가지고 와서 우리를 대형으로 사죄를 주셨고 대행으로 칭의를 주셨고 화친으로 자존자 지극히 크신 우주를 만드신 지구 땅덩어리를 만드신, 여러분들이 혹 가다가서 항공을 하시든지 배를 타고 가시든지 할 때에 그 넓은 바다 넓은 처지 이것을 지으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짓지 아니하신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의 이 사랑을 받아서 이분이 전부를 다 기울여서 우리를 대속했다는 그것도 참 성령의 감동 아니면 믿기 어렵습니다. 또 이분이 우리로 더불어 대화하시기를 원하고 이분이 우리와 대화해서 의논해서 결정한 결과 그대로 영계의 좋은 것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또 영계의 모든 문제 해결도 이 회담에서 결정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고, 땅위의 파괴 역사 건설 역사, 하나님의 긍휼 역사. 성령의 역사 이 모든 것도 하나님과 대화하는 이, 그대로의 이루어진다는 것을 요한계시 8장에 똑똑히 명문해 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기도하는 이 기도는 참 모든 피조물 중에서가 아니고 자존하신 창조주와 이 피조물이 서로 대화하는 참으로 권위 있는 정상회담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속 받은 이 성도들과 자존하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화하는 이 기도 이 기도 그대로 우주와 영계에 영원은 결정되고 그대로 이루어 나간다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것도 너무 과장 같고 다 기만적인 말 같고 그렇게 보여지지마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에 말씀했고 우리가 또 자주 경험하고 체험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게 이 특권인 기도, 절대자로 더불어 대화하는 이 대화의 이 자유의 길이 열린 이 가치를 깨닫고 믿음으로 하나님에게 의논 했을 때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응답해 주시는 것을 얼마든지 경험했을 것입니다. 또 자기가 측량 못할 영원 후의 일도 자기가 가르치심을 받아서 많이 깨닫고 거기에 대해서 기도하며 거기에 대해서 준비해서 벌써 영영 후의 측량 못 할 모든 존재로 더불어 지금부터 이 정상 회담에서 그 때의 일을 주님의 꾀를 의지해서 간구해 가지고 벌써 영원을 마련하고 영원을 교제하고 영원의 화친을 취하고 영원의 자기의 활무대를 마련하고 영원의 모든 존재들에게 대할 때에 선물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무엇을 구할는지 모르나 성령이 가르쳐 주셔서 성령이 빌바를 가르쳐 주신 그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물론 세상이 있는 것들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다 사람들은 이해를 하든지 못하든지 성경은 세상에 있는 모든 이 강대국들이나 모든 민족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이 움직임이 뭣대로 되는가? 이것이 성도의 기도대로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그대로 됩니다.
그런고로, 이런 것도 참 과장한 말이라 과장한 말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기독교는 다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도성인신 했다는 것, 신인 양성 일위가 나 위해서 죽으시고 나 위해서 부활하시고 나로 더불어 대화하시기를 원하시고 나에게 이 권세를 주어서 서로 상대한다는 것 이런 것 다 사람들이 믿지 못할 것들입니다. 또 '모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가 다 너희 것이니라' 하는 것도 믿기 어렵고, '영원히 죽지 안한 영생을 가진 너희라' 너희들은 영생한다는 영생도 믿지 못할 일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셨는데 성경이 말한 성경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느냐' 하고서 그것도 믿지 못합니다.
다만 주의 피공로의 이 속량함을 받은 사람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은 눈에 잡힌 거 보이는 거 모든 것보다 이 사실이 더 확고한 확신이 그 사람에게는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분을 위해서 상상도 못할 허무맹랑과 같은 이 하나님의 계약에 이 소망을 두고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드려서 이 준비에 바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들이 다 어떤 최면술에 걸린 거와같이 그렇게 다 미혹을 받아서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정신이 똑똑합니다. 그들이 말해놓은 예언이라면 예언이 다 맞습니다. 현재에도 그런 분들이 이 세상을 보는 보는 눈은 다 정관입니다. 바로 봤습니다. 다 정평하고 다 정가하고 있습니다. 또 그 미래에 대해서 어떻다고 하는 미래의 결정도 거의가 다 백 프로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인간이 상상 못할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이 사랑과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 가는 걸음은 어떤 걸음이냐? 내가 보이는 범위 좁은 무슨 인간 사회나 또 모든 만물이나 이런 범위가 아니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 모든 존재로 더불어 관계를 지금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로 창조주와도 영원한 관계가 지금 결정되고 모든 인류에게도 멸시와 천대와 존대가 결정되고 모든 영물들에게도 다 관계가 결정되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백성들은 이 세상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생활과 같은 생활이지마는 이것은 영원히 결정되는 것인데, 성도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설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 심판에 가 가지고 서야 됩니다. 그때는 모든 만물들이 다 언론의 자유가 있고 또 각각 다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항의와 항거를 할 수 있고 얼마든지 대적할 수 있고 얼마든지 자유로 모든 존재들에게 상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만물 심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런 복잡한 속에 들어 있으면서 천군 천사도 우리가 다 판정할 것이고 통치할 것이고 모든 세상이 그저 육천 년 동안 밖에는 안 지나갔지마는 육천 년 동안에는 수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도 다 너희들이 다 심판할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걸음은 지금 영원한 관계를 바로 맺어서 얼마든지 개선하고 깨달아서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잘못된 거 있으면 다시 죽기 전에는 얼마든지 개선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로 더불어 관계를 바로 맺는 그것이 성도의 건설구원 생활입니다. 첫째는 창조주로 더불어 관계를 바로 맺고, 그 다음에는 성도로 더불어 관계를 바로 맺고, 그다음에는 천군 천사의 영물들로 더불어 관계를 바로 맺고, 그다음에는 땅 위에 있는 불택 모든 인류에 대해서 관계를 바로 맺고 또 모든 무생물 생물 그 모든 것들과 관계를 바로 맺는 그것이 성도의 지금의 생활인 것입니다.
로마인서 8장에 보면 '만물들이 헛된 것에게 복종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고 다만 조물주의 명령에 따라서 복종한다.' 이랬습니다. 그거는 만물이 사람보다 강한 것도 많고 힘센 것도 많고 큰 것도 많은데, 조그마한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이용이 돼지고 얼마든지 제어를 받고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사람들이 위대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모든 비슷한 불택자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런 것들이 다 복종하지 안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복종을 하고 있으나 때가 되면 그런 것들도 다 자유를 가지고서 항의를 하고 얼마든지 복수하고 얼마든지 시비를 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에 보면 만물이 탄식하면서 그 원치 안하는 것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부득이 복종을 하면서 하나님의 뭇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고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만물의 영장은 택한 백성들인데 택한 백성들이 한 사람이 바로 살면 그 사람과 관련돼 있는 모든 존재들은 다 그로 인해서 살게 되고 그 사람이 잘못되면 모든 존재들이 다 심판 받아 멸망받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유함에 이르기를 원한다. 그 자유함에 이른다 말은 진리와 성령과 주의 대속으로 중생된 자이기 때문에 대속에 합당한 자로 진리에 합당한 자로 영감에 합당한 자로 사는 것을 원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살면 거기에 관계된 것은 다 썩어질 것이 하늘나라에 쌓여진다고 했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 복잡한 미래릍 가지고 있는데, 그 미래에 대해서 자기가 조부라운 그 자기의 지식을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 미래를 바로 밟아 나가겠다고 한다는 것은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이는 무식한 자로서의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복잡한 미래를 돕는 그 우리를 돕는 역사가 절대적인 역사가 있기는 있지마는 또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돕는 일 가운데는 어떤 것이 돕고 있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이 돕고 있습니다. 기묘하게 돕고 있습니다.
세 가지 예수님의 대속이라는 것은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인데 우리가 현실 현실을 만날 때에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는 것은 성문으로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의 이 법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니.
성경을 우리에게 주시고 성경 법칙을 어기지 않는 어기지 안하려면 안할 수 있는 이 길을 예수님의 죽고 부활하심으로서 대형으로 비로소 사죄의 길을 열어 줬습니다. 사죄는 그저 우리의 죄를 당신 이 담당해서 죄 없는 자로 정했다면 그뿐 아닙니다. 죄 없는 자로 살 수 있는 그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영감을 우리에게 주시고 피의 대속이 항상 뒷받침이 돼 가지고 우리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죄를 벗지 안하고 사죄 입은 자로 살라하는 이것이 자기는 모르지마는 사죄 입은 자로 살려고, 또 칭의를 입어 자기가 주장하지 안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양심을 찾아서 양심대로도 아니고 양심을 찾아 양심에게 감동시키는 성신의 감화에 따라서 자기가 움직여 스스로 움직이지 한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 생활을 하려고 현실에서 애를 쓰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바울이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자기가 말도 자기가 능동적으로 말의 발원의 발원의 출발이 자기로 인해서 발원되지 안 하려고 마음의 움직임이 자기로 인하여서 발동되지 아니하려고 자기의 모든 행동이 자기로 인해서 출발하지 안하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칭의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께 피동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나를 주장할라 하는 그것이 이제 그분으로 인해서 자기를 주관하려고 바울이 말하기를, 그러기에 말을 내가 말할 때에 내 마음대로 하는 말 있고 내가 말할 때에 하나님에게 이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이렇게 연구해서 거기에서 심사해서 말씀에 위반되지 안하는 말을 하려고 하는 이 생활에서 이것으로서 만족되지 안하고 내가 하나님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안에서 말하라 하는 것만 하고 생각하라는 것만 생각하고 당신이 내 안에서 나를 주관해야 내가 그분에게 피동되는 이 생활을 하려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의 생명을 얻어서 그 생명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호호망망한 호호망망한 우리의 앞길, 참 책임도 형언 못할 만치 중요하고 또 관계도 심한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 참 많은 것을 살리는 지극히 큰 측량 못할 환영도 있고 측량 못할 원망과 시비도 있는 이런 큰 이 걸음을 우리가 앞두고 있는 것이 구속함을 입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들의 걸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주셨고 우리를 살린 것이 이 무슨 기절했던 그 생명이 살림과 같은 그런 생명이 아니고 이 육체적인 그런 무슨 신경이나 감정이나 정신이나 그렇게 살아나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난 것은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진리 진리로 살아서 진리로 우리를 움직이도록, 영감으로 살아나 성신의 감화가 우리를 움직이는 그 생명으로 살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이 움직임으로 우리가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천하게 여기지마는 영원전 하나님에게 택함을 입은 그 하나님의 목적 속에서 우리가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그때 있어서 한 것이 아니고 당신의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안에서 우리가 존재할 때는 하나님의 예정 그때에 예정 속에 존재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목적 구원이 시발이요 예정 속에 우리가 구원된 것이 예정 구원이 그 다음이요, 예정 구원에서 하나님의 창조구원이 그 다음이요, 창조 구원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이 그다음에 우리구원으로 되고, 그 다음에 우리는 중생되었고 우리는 차차 차차 성화의 걸음을 걷게 되는 것이니 이 걸음이 이렇게 호호망망한 걸음인데 이 걸음을 가는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첫째 예수님의 피의 공로가 있습니다. 피공로가 있어서 이 피 공로를 벗어나지 안하려고 이래 하다 보니까 그것이 대충 이 호호막막한 이 길에 거의 바른 길이 들어섭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에게 크게 돕는 길이 있으니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선포해 놓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들이 걸어가는 길에 발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신 참 아주 깜깜한 어두운 밤에 그저 촛불 같은 이 아주 어둠침침한 아주 흐미한 이런 등불 같은 이 바로 인도하는 빛이지마는 신구약 성경에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것이 우리가 탈선되지 안하도록 많이 탈선되지 않게 대충 이것을 거의 바로 잡아서 우리에게 주는 큰 도움이 되고 그보다도 이제 성신의 감화는 너희들이 사람들에게 성경은 묻지마는 어떻게 할 것은 묻지 말아라. 아무리 성경은 가르칠 권리가 있어도 넨가 어떻게 걸어가야 되나 하는 네 걸어갈 것은 성경이 너에게 가르쳐 주지도 안하고 사람은 못 가르쳐 준다. 이러니까 성경 말씀은 네가 바로 걸어가는데에 바른 인도자가 되는 너희 안에 기름 부음이 너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치나니 그대로 너는 걸어가라 말씀하신 이 기름 부음을 소개하는 중매쟁이가 신구약 성경 말씀이라.
이러니까, 주님의 피가 우리를 탈선되지 안하도록 그 피에 맡겨 가도록 갈려 하다 보니까 탈선되지 안하고 대개는 바른 길이 돼지지 또 이 진리에 이탈되지 안할라 하다 보니까 이 바른 길이 돼지지, 또 영감에 이탈되지 안하고 영감을 찾을라고 이래 하다 보니까 혹 악령의 감화를 착각해서 영감인 줄 알고 하는 그런 일도 있지마는 그래도 그것은 즉시 알게 되고 영감을 알아서, 네 속에 기름 부음이라 말은 네 속에 너를 중생시킨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이래서 너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니까 너는 그대로 있으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돕는 이 큰 역사가 있고, 이제 그러면 우리를 돕는 역사 가 큰 역사가 셋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 돕는 역사가 큰 역사가 있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 혹 생각하기를 이는 불행스러운 현실이라 행복된 현실이라 그렇게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편견 치우친 견해를 가지고 우리는 이렇다 저렇다 속평하는 그런 삼계명을 범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삼계명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 말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섭리를 네가 경솔히 '이거는 내 현실은 안 됐다 불행이다 행복이다, 뭐 오늘은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오늘은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 뭣이 전쟁이 안 났으면 좋겠다.' 이렇게 네가 조부라운 네 주관의 네 사욕대로의 견해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삼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 가지를 인도하시고 하나 더 인도하시는 길은 우리를 현실을 가지고 인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될지 모릅니다.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이 현실을 주시면 그 현실에 하나님이 내 현실을 주셔서 그 현실을 내가 만나 가지고서 그 현실의 짤막한 간단한 고 현실에 내가 주님의 피와 성경 말씀과 성령과 이 셋의 도움을 입어 가지고 그 현실에 이 셋의 도움의 인도를 받아 가지고서 요 현실을 바로 걸어갈라고 할 때에 고 현실을 바로 걸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고 현실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나는 천인 만인의 현실이 많이 있는데 나는 요거 요 현실로 가야 될 터인데 내 소원대로 한다면저 천 리 만 리 먼리 저 사람의 현실을 내가 원할 때도 있으니까 그 현실을 하나님이 조정해서 절대성 있게 주권을 가지시고 그 현실을 내 걸음에 맞도록 내 현실을 나에게 착착 그 순서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현실을 만들어 주지 안한다고 하면은 우리는 호호망망한 그 밀림 속에 들어간 사람이 어디로 가야 길을 알 것이며 호호양양한 그 태평양 바다 같은데 이 전부 물뿐인데 어디로 가야 될까 모르는 것보다도 더 우리는 넓고 망망한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께서 넷째로 우리 걸음이 바로 되도록 인도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있도록 돕는 그 은혜로 주신 것이 현실을 당신 이 주권적으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돕는 것이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와 주님이 주시는 이 현실을 그 현실의 도움에 이 큰 도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고 우리를 연단시키는 연단으로서 우리 주변에 우리 현실이라는 것 수많은 것을 다 종합해서 만들어 가지고서 내 현실을 만들어 짤막한 이 현실이지마는 영원무궁토록 영계와 물질계 모든 것을 능히 통치하고 모든 것을 능히 지식하고 모든 것을 능히 판정할 수 있는 그 모든 구비하고 광대하고 복잡한 그 지식을 우리 현실에서 다 넣어서 실물 교재로 우리를 거기에서 가르치시는 주님의 그 사랑은 참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를 바른 길 걸어가도록 돕는 그 큰 역사의 세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은혜 아래에 있는 우리들이 이 현실을 만난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이 현실은 영원 미래인데 영원 미래인데 이 현실은 영원의 원인이 되어지는 것인데 요 현실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도 크고 책임도 무겁고 수치도 크고 영광도 크고 하니까 이 현실을 이거 어떻게 하라 하나 하는 이것을 깨달은 자는 이 면이 모자라거든 주님에게 고하라. 이것이 우리에게 이제 다섯 째로 다섯 째로 우리에게 완료하는 길을 주신 것입니다. 완료하는 길을 주셨습니다.
완료하는 길은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화의 이 권세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구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너희 중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말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꾸짖지 않는다 말은 당신이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지혜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은 능력이 지혜요 지혜가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가지고서 만물을 지었습니다. 지혜로 지었습니다. 지혜 있고 또 시공하는 무슨 힘이 다른 거 없습니다. 그 지혜를 구하라 그 말은 지능을 다 한테 통합해서 한마디 지혜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다 그말은 끝없이 주신다 그 말입니다. 인제 인제 그만 달라해라 하는 게 아니고 거부하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끝없이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 숨이 자기가 아직까지도 깔딱깔딱 있을 때에는 아직도 할 일은 남았습니다. 우리는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우리는 당신의 은혜를 입을 여유가 남아 있고 또 우리는 모든 것을 지금이라도 고쳐서 다시 재생시킬 것도 있고 복구할 것도 있고 정리할 것도 있고 정비할 것도 있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꾸짖지 안하는 하나님에게 구하라 그러면 주시리라' '그러면 주시리라' 그러면 반드시 주시리라 하는 것이 이 안에 뜻이 있는데 구역에 서는 그렇게 됐는데 여기에는 그저 주시리라 주시리라는 말이나 뭐 반드시 말을 넣지 안해도 하나님이 하시면 거기에서 변동이 없기 때문에 꼭 같은 뜻은 같은 뜻입니다. 그저 에누리하는 우리들에게는 좀 반드시라고 말하면 좀 억세고 강한 것 같다 하지마는 하나 안 하나 하나님에게는 한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지혜라 하는 것은 현재로부터 미래까지에 관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피공로를 주셨고 영감을 주셨고 진리를 주셨고 또 현실을 그저 수많은 현실 억억만도 넘은 현실에서 내게 딱 맞은 내 현실을 딱 만들어 가지고서 고때 갖다 주시는 이 큰 은총 속에 우리가 있지마는 여기에까지 하나님의 돕는 은혜를 입어서 왔지마는 그 현실에서 내가 언행 심사를 어떻게 해야 될는지 모든 존재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할는지 내 속에는 만물보다 거짓된 악령이 거짓말쟁이 악령이 과거에 나를 오랫동안 사로잡고 주관하고 있었고, 또 원죄인 악성 자기중심의 성품 타락성 이 원죄가 우리 속에 아직도 남아서 침노를 하고 있고 우리가 과거에 악령과 악성으로 더불어 살았던 그 영생이 되지 못한 그 멸망의 죄악이 된 그 생활을 과거에 많이 한 것이 이런 종류 저런 종류 모든 종류를 많이 한 그 버릇이 옛 버릇이 있고 습성이 있고 습관이 있으니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런 것들에게 충격을 받아 가지고서 내 앞길을 바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이 앞길을 내가 이렇게 중차대한 이 걸음인 줄 알면서도 내가 갈 수가 없으니 당신이 나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하나님에게 이것을 깨닫고 내 현실에 내 당한 현실에 별별 현실이 다 있는데 그 현실은 예측한 현실도 있고 예측 못 했던 현실도 있습니다. 그런 걸 가리켜서 비상시라 과도기라 또 무슨 극단의 것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현실도 무슨 현실이 올는지 미리 모르는 우리들이며 또 현실이 왔을 때에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내가 해야 되는지 모르니 이 현실을 주님에게 구하면 주시니까 주님에게 구하라 하는 것은 우리가 주님에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에게 이거 구할 때에 '그리하면 주시리라' 우리가 구할 때는 참 진실된 구함을 가져야 얻게 됩니다. 우리가 진실된 구함은 다 우리가 말로 구하는 것이 이게 중요합니다. 말로 구하나 내가 말로는 구하면서 마음은 다를 수가 있고 마음은 말로 구하는 거와 일치되지 안할 수 있으니 우리가 이것을 조심해서 내가 말로 구하는 것과 내 마음이 일치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되겠고. 내가 마음과 말로는 일치되면서 내 행동은 엉뚱한 행동을 하기 쉽기 때문에 내 행동도 내 구하는 데에 합당한 일치된 그 행동을 하는 그것이 이 구함의 바로 진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로 구하고 마음으로 구하고 행동으로 구하고 그러면서 자기 우리 자신에게는, 어떤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작은 우주라 작은 우주라 말하는 사람이 있고 작은 우주가 아니다.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으로 내가 우주 중에는 제일 큰 우주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 사람도 자기 대해서 많은 분야와 많은 부분과 복잡한 그 요소와 기관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 사람의 간증인 줄 압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수많은 것이 종합해 가지고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육체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육체도 그 핵 세포만 말해도 수없는 존재들이 다 집합해 가지고서 살고 있는 것이 육체요 또 그보다도 더 많은 복잡한 수량이 집합해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말로는 구했지마는 내 마음은 엉뚱할 수 있고 말과 마음은 일치됐다 할지라도 또 내 행동은 또 엉뚱할 수가 있습니다. 내 행동까지 일치됐다 할지라도 내라는 사람은 내라는 사람은 정비되지 안해서 내라는 사람은 엉뚱한 사람이 돼 가지고 있으면서 일시로 그렇게 어떻게 감정이나 충격 일시 발동으로서 하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전지자 앞에는 그것이 온전한 구함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이 네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구하라.
6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믿음으로 구하라 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에게 구할 때에 그 구하는 모든 것이 네 욕심이 주장돼 가지고 네 욕심의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 네 처지를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 너를 중심해서 구하는 그것은 믿음의 기도가 아니다. 이 현실을 만났는데 절대자 조물주이신 그분 그분에게 어떻게 하면 들어맞는 내가 현실을 걸어갈 수가 있겠느냐? 네 중심으로 하지 말고 절대자이신 조물주이신 그 분의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그분에게 맡겨 걸어갈까? 이제 그분을 중심해서 네가 구하라. 너를 중심해서 구하면 네 자체가 틀리기 때문에 네 중심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중심되면 그 모든 거기에 여파도 다 거짓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첫째는 하나님 중심으로 구해라. 믿음으로 구하라. 하나님 중심으로 구해서 그것도 네게 이미 주신 은혜가 있으니까 진리의 말씀에 맞추어서 대조해 가지고 거기에 이탈되지 않게 거기에 합치하게 또 영감에 일치되게 또 주의 피에 합당하게 그렇게 해 가지고 구하라. 믿음으로 구하라 하는 것이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지 말라 그말은 의심이라는 것은 자기에게로 돌아 가는 걸 말합니다. 의심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 '아, 믿습니다. 안 믿는 의심이 난다.' 그런 그것도 거기에 들었지만 그런 건 단순합니다. 의심치 말라 그말은 믿음의 대조의 것인데. 믿음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네가 해라. 피동으로 구해라. '의심치 말라'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구하다가 마지막에는 네가 주장이 돼 가지고서 네 주장대로 구하는 자가 되지 말아라 하나님 중심으로 하다가 네 중심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의심치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이렇게 하나님이 이 모든 거 해놓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당신의 뜻에 맞으면 모든 피조물에게 다 맞고 원수에게도 맞고 지옥에도 맞고 모든 것에게 다 맞는데 이분의 뜻을 찾아서 바로 해 나갈라고 하다가 나중에 주인이 바꿔 가지고서 자기중심으로 이렇게 성령으로 시작해 가지고 육체로 돌아가기 쉬우니 여기에 이탈되지 안하도록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치 말라. 하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래 구하면 주실란가 안 주실란가 하는 그런 데서 말하는 것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하라 말은 하나님께 피동으로 구해라. 하나님의 피동으로 구해야 되지 하나님의 뜻은 가라 하는데 너는 네 욕심대로 오라 하는 그것은 암만 구해봤자 그 구하는 거 헛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피동으로 구하라. 하나님을 좇으므로 구하거라. 하나님을 따름으로 구해라. '의심치 말라' 그와 반대로 이제 정반대로 너를 따라서 너를 따라서 구하는 그런 일을 하지 마라.
'의심치 말라' '의심하는 자는'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 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와 같이 하나님 한 분 그분 중심 위주 거기에다 뿌리 박고 그를 근거해서 구하다가 짜빡 잘못해 가지고서 의심해서 자기로 옮겨지면 말이오. 자기로 옮겨지면, 자기로 옮겨지니 옆에 마누라 있으니까 마누라로 옮겨져야 되고 마누라로 옮겨지니까 남편으로 또 옮겨져야 되겠고 또 남편으로 옮겨지니까 친구로 옮겨져야 되겠고 또 물질로 옮겨져야 되겠고 이것 저것 나중에 이 중심 저 중심으로 돼 가지고 하나님 중심을 이탈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너를 끌 그 중심이라 하는 것이 천도 만도 넘으니까 너는 '마치 바람에' 바다에서 바람에 밀려서 이리 저리 출렁거리는 바다 물결과 같이 정함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된다. 네가 확고한 일정인 고 믿음 거기서 이탈되지 말아라.
그러기 때문에, 천국은 마치 겨자씨 나무와 같다 했습니다. 겨자씨는 채소 중의 하나이지마는 자라고 난 다음에는 나무가 되어 가지고서 모든 정처 없는 새들이 와 가지고서 깃들인다. 그거는 죽었으면 죽었지고 심기운 데서 요동하지 않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국은 하나님 중심이 하나님 거기에서 변동되지 안하는 그것이 변동되지 안해야 되지 변동되면 새떼입니다. 변동되면 새떼. 그러기에 그것은 씨 중에 지극히 작은 것이지마는 나물 중에는 제일 큰 나물이 되고 만다. 이러기에 인생이 하나님께 뿌리박고 요동치 안하고 고대로 시종 일관으로 나가면 가장 천한 인간이 가장 존귀한 사람도 될 수가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이러한 사람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정함이 없는 자라.
이러니까, 우리는 이 두 사이에 끼어서 머뭇거리는 일을 하면은 안 됩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든지 저 길을 가든지 작정을 해야 되지 작정하지 안 하면 참 우리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 마귀에게 속했으면, 세상을 보고 사는 자이니까 그가 도와서 지옥을 갈지언정 세상에서는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택한 자들이 암만 마귀에게 속한다고 해도 마귀가 압니다. 알기 때문에 택한 자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떨어질 때까지는 오만 것을 다 주면서 이렇게 유혹하지마는 하나님만 척 버리고 나면은 그다음에는 멸망입니다. 참혹한 멸망입니다.
이 소련이 그런 걸 보이고 있습니다. 월남이 그런 걸 보이고 있습니다. 중공이 그런 걸 보이고 있습니다. 이북이 그런 것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 모두 유혹하는 모든 그 무력들과 세력들과 또 간교한 것들과 이런 것들을 인해서 하나님을 버릴 때까지는 아주 감언이설로 이래 했지마는 하나님 척 버리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몰살시키는 것이 그것이 다 그런 것들이요, 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에 그렇게 유혹해 가지고 멸망받는 것입니다.
애굽에 이스라엘이 들어왔을 때에 바로왕도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어버이라 했습니다. 아버지라 했어.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조건 만나면 다 아버지라 했어. 이렇게 존대했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부러워서 존대했겠습니까? 이렇게 존대했지마는 이스라엘이 정신 차리지 안하고 조심하지 안하고 그들에게 벌로 날뛰고 하나님 버리고 저거 중심으로 날뛰다가 마지막에는 남자 하나도 살려두지 않도록 전부 몰살시키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안했습니까? 그 어려움을 당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야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래도 버리지 안하시고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구출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렇게 중간에서 머뭇머뭇하면 안 됩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에, 너희들이 언제까지나 중간에서 머뭇머뭇 하겠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여호와 하나님께 귀속하고 바알이 하나님이거든 바알로 가고 머뭇거리지 말고 단정을 지우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간에 있으면 우리는 택자들이기 때문에 항상 마귀로 더불어 이라니까 마귀는 우리에게 좋은 걸 줍니다. 세상과 마귀는 우리에게 좋은 걸 주지마는 우리를 꾀워서 멸망시키려는 그 목적과 동기에서 그와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거기에서 단절을 짓지 안하니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도우면 거짓말쟁이가 옆에 붙어 있는데 하나님이도 우면은 하나님이 돕기는 도왔는데 거짓말쟁이가 '보라 내가 너에게 이렇게 도와줬다,' 할 터이니까 하나님이 도울수록이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 마귀의 세상과 더불어 가까워질 터이니까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도울 수가 없지, 하나님이 도우자니 그것을 단정지워서 완전히 획선을 그어서 경계선을 그어서 이렇게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안하고 하나님께 귀속되지 안하니 하나님이 도울 수가 없지. 그 하나님께 도움 받지 못하지, 세상과 악령에게도 아야 우리는 거기에 속하지 안했기 때문에 도움 받지 못하지 이러니까 우리는 중간에서 참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사람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에게 대한 이 소망이 없으면 인생 중에 제일 불쌍한 인생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귀속하지 못하고 이 한편으로 콱 들어붙어서, 예레미야 애가 2장에는 '하나님 앞에 네 마음을 물 쏟듯 쏟아라' 했습니다. 물 쏟든 쏟아 바치라. 쏟아 바치라. 그분에게 네 마음을 다 쏟아 바쳐도 손해 안 가고 속지 않는다. 그분이 널 속이지 않는다. 물 쏟듯 쏟아 바치라 네 자손과 그 모든 그 너와의 불원간에 멸망할 것을 인해서 네가 일어나서 네 눈물이 강같이 흐를지어다. 네 눈물을 강같이 흘려라.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가 너와 네 자손들에게 임할 네 후배에게 임할 것을 보고서 그 하나님의 진노를 보는 동자와 너희들에게 올 하나님의 징계를 보는 그 동자를 네가 쉬지 말아라.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징계를 보는 그 동자를 하나님이 위로 진노를 쳐다보고 밑으로 징계 내려올 이 징계를 보는 그 동자로 쉬지 말아라. 동자를 쉬지 말아라. 그것을 우리가 이번에 베껴 가지고서 믿는 사람들의 인사로 우리는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진지 자셨습니까? 밥 먹었습니까?' 우리는 밥에 대해서는, 걱정 없이 됐습니다. 밥에 대해 걱정할 때가 아니고 우리는 지금 참 울어야 될 때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징계가 오늘이라도 턱 내리면 어찌 됩니까? 6·25에 얼마나 비참했었습니까? 6·25가 낙동강에서 경계가 되고 대구에 일부 침투하다가 그 다음에 중단 되고 말았는데 그때 여기까지 왔으면 뭐 이 남한에 있는 이 사람들 거의 다 몰사 했습니다. 몰사했어. 거기에서는 그 전쟁 가운데에 그들 속에서도 집회하고 큰 소리 하고 사는 거 믿음의 사람들이야 그까짓 거 오든지 가든지 상관이 없지마는 믿음 없는 사람들은 다 몰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해서 우리는 인사말을 하자, 인사말을 하자, 너나 내나 우리는 이 비참한 일을 인해서 강같이 눈물을 흘려야 할 우리들이니 이것을 눈물을 흘리느냐? 줄 때에 내가 눈물을 홀리고 있느냐? 하나님이 진노와 징계로 비참할 것을 월남같이 비참한 것을 보고 있느냐? 월남같이 월남 같이 그 비참할 것을 미리 말했을 선지자들이 있었을 것인데 그 비참을 보고 그들이 울었고 하나님에게 구했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피로 구속한 자의 간구를 다 기울여서 간구하는 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해라. 내가 시행하겠다.' 말했습니다.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과 내가 하나님이 보내셔서 왔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네가 옳은 기도하면 내가 듣겠다 했습니다.
월남에는 그때 신자들이 없었습니다. 캄보디아도 그때에 신앙가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에는 신앙가들이 그래도 있기는 있었는데 그렇지마는 신앙가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의와 정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으면 예루살렘의 죄를 사하고 참아 기다리겠다.' 했는데 그때에 의인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돔 고모라 성에 의인 열 명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참아 기다리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남한에는 얼마나 지금 의인이 있어야 될는지 의인이 있으면 결단코 그들은 멸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지금이 대단히 어려운 때입니다. 월남에 그때에 비참한 죽음이 많았었습니다. 월남에, 캄보디아에, 제가 어떤 그 신문을 보니까 거기에 어떤 미군 장교가 그 참 독실한 신앙가가 있는데 그 신앙가에게 자기 밑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우리 같이 같이 가자 내가, 자기는 미국 시민이 아니지마는 내가 데리고 갈 수가 있으니까 같이 가자.' 이렇게 말 하니까 자꾸 비행기를 타자고 말하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더라고서 '나는 가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우리 민족을 책임지고 이러다가 버리고 가는데 우리 민족 죽을 때에 나도 같이 죽지 당신 따라서 살겠다고 가지 않겠습니다.' 하도 권해 쌓아도 안 올라 해서 어쩔 수 없어서 두고 왔는데 참 그 신앙가가 원통하다고서 그라면 그 뒤에 그분이 본국에 돌아 가 가지고서 그 잡지에 기록해 내서 제가 언제 한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도 아까운 사람도 있지마는 우리는 그 일이 되기 전에 지금 하나님에게 구합시다. 지금 구하면 됩니다. 우리가 매일 정해 놓고서 삼십 분씩 우리의 미래의 이 어려움을 인해서 기도하자고 이렇게 말했는데 기도록에 등록한 사람이 육천 칠백 몇 명밖에 안 됩니다. 육천 칠백 몇 명 밖에 안 돼. 유치반 중간반 장넌반 다 합해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다 합하면 재적수가 삼만 사오천은 되는데 사오천 되는데 이렇게 그 칠천 미만 되니까 남은 사람들은 뭐합니까?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 깨달을 수는 없는 일이지마는 깨닫는 우리들이라도 우리가 지금이 어떤 때입니까? 지금은 뭐 굶어 죽을까 벗어 죽을까 그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언제라도 성도는 그런 걸 하나님께 맡겨 놓고 맡겨 놓고 믿음으로만 살면 이 모든 거 너에게 있어야 될 줄 알고 더해 주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은 이북에서 자꾸 이렇게 하고 있는데 뭐 요번에 쌀 좀 오고 하니까 '이제 화친이 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제는 한국에 긴장 완화는 좀 해결 될 것 같다.' 그거 다 유혹의 말들입니다. 유혹의 말들, 이 쌀 오는 것도 세멘트 오는 것도 모두 다 전술입니다. 다 전술이오. 여기에서도 또 뭐 주고받는 것도 다 전술이요 이거 다 전술의 서로 다 취해서 취하자는 그뿐입니다.
이러니까 그저 우리는 낙관시 하지 말고 우리가 오늘에 회개하고 깨끗이 회개해서 참 우리는 행복됩니다. 왜? 회개 안 하고 일 년을 살아도 꿈쩍없는 때가 있는데 우리는 회개 안 하면 안 될 이 어려운 불덩이가 옆에 와 있으니까 회개를 재촉하니까 우리가 얼마나 행복입니까? 자기가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반드시 그날 재앙이 그에게 오고 행동 하나 잘못하면 그 날 탈이 나서 당장에 큰 화가 일어나고 하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왜? 우리는 세상을 고칠 세상으로 살고 있고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그게 복 있는 사람이지 죄를 암만 범하고 실수를 암만 해도 아무 일 없이 무사로 지나가는 것은 그것은 미끄러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불행스러운 사람이지 행복스러운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에게 이와같이 옆에서 지금 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기 같이 곧 쫓는다 쫓는다 이렇게 말한 이게 회개 안할 수 없고 당신만 바라보지 안할 수 없고 참으로 이리 떼가 우리 주변에 꽉 둘러서서 우리는 돌아볼 여가 없이 목자만 향하여 갈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선 것이 행복되지마는 우리가 강퍅하고 미련해서 이것도 예사로이 하루 이래 지나가니까 그만 마비성이 돼 가지고서 아무 감각 없이 지난다면은 우리의 미래는 이북같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리 가정에 따뜻한 것도 그게 다 없어진다 했습니다. 아무리 부부의 그 기쁜 소곤거리는 의논 소리도 다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모든 숙녀들의 쟁쟁거리는 그 모든 쟁쟁거리는 소리도 다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비참케 하면 참 비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