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5 00:38
성공의 원인 계명지키는 것
1987. 3. 18. 새벽 <수>
본문:요한복음 5장 25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살리는 것이 둘이 있으니, 살리는 것이 둘이 있으니 하나는 예수님이시요 하나는 영감인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살리시면 살아나고 자유케 하면 자유하고, 또 영감인 이 진리가 살리면 살아나고 자유케 하면 자유합니다. 이외에는 어떤 피조물이라도 살리는 능력과 살리는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다” 이랬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나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영은 중생돼 가지고 믿기 때문에 영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또 이 심신으로 된 육은 죽으나 부활합니다. 왜 죽는가? 이 혈육으로 되어 있는,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심신이기 때문에 이거는 모든 해를 받을 수 있는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는 영생하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면에 제한받는 이 부자유한 것이 모든 제한을 초월한 영원하고 완전한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헌옷 벗고 새옷 입는 거와같이 이 심신을 벗고 신령한 것으로 바꾸어 가져 입기 위해서 벗는 것이지 그가 멸망으로 벗는 것 아닙니다.
죽음도 불택자의 죽음과 택자의 죽음이 다릅니다. 안 믿는 불신자의 죽음은 영원히 죽기 위해서 죽는 것이고, 신자의 죽음은 더럽고 낡아질 수 있는 온전치 못한 그 몸을 벗고 신령한 몸으로 바꾸어 입기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때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을 할 때에 그가 평소에 어떻게 살았든지, 그 심신이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산 것은 그 기능이 영생됐고, 어겨서 제 욕심대로 악령 악성 악습대로 산 것은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멸망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는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이미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이 진리, 곧 하나님의 명령, 이 명령은 영생이요 모든 멸망에서 구출하는 것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망에서 무엇으로써 거게서 벗어날 수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으로써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믿는 사람이 행복의 자리에 있다가 왜 불행지느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그 구멍으로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 외에는 그 사람이 멸망에 빠지는 길이 없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기키는 것 외에는 멸망에서 구출하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가정에서도 멸시당하고 사회에서도 멸시당하고 아주 외롭고 천한 그 요셉이가 애굽 나라 총리대신까지 올라간 거, 그 총리대신이 큰 것은 아니지마는 세상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구원을 해서 그렇게 성장되고 존귀하게 향상됐던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명 지키고 지키는 것이 지킬 때에는 곧 멸망을 자초하는 것같이 미련케 보였지마는, 그 계명 지킨 그것이 미련케 보이고 불행스러운 것 같으나 불행이 행복의 원인이 됐고 불행이 행복의 원인이 돼 가지고 거게까지 올라갔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자기가 외롭고 천한 자리에서 존귀한 자리에 올라가는 길은 계명 지키는 것 외에 딴것은 없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권세를 가지고 그를 멸할라고 풀미불을 준비해 놓고 멸할라고 했지마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멸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나라에 하나님과 자기의 영광이 충만케 만들었습니다. 그 뭣입니까? 계명 지킨 그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습니까? 우상에게 절하라 할 때 나는 절할 수 없습니다 하는 것이 막바로 불구덩이 들어가서 멸망받는 것인데도 계명 지키는 자 하나님이 놓지 않습니다. 계명 지키다 불구덩이 들어갔지마는 불구덩이에서 불내음새도 나지 않게 구출할 수 있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계명 지키다가 어디까지 떨어져도 상관없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주님이십니다.
전국이, 모든 관민을 물론하고 전국이 똘똘 뭉쳐 가지고 다니엘 하나 죽일라고 그렇게 단합이 돼 가지고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을라고 했지마는 다니엘은 다른 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했어. 두려워하지도 안하고 떨지도 않했고 그저 하나님 바라보면서 계명 지키는 것만이 구출의 길이다 하는 것을 자기는 알고 있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모든 역경을 다 극복하고 승리하고 남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도 말하기를 하루 종일 도살막에서 잡아 죽일라 하는 양처럼 헤아림을 받고 이랬지마는 반드시 여기서 이기고 남음이, 넉넉히 이기고 남음이 있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다니엘은 이렇기 때문에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계명 그대로 지켰습니다. ‘네가 기도하면 죽는다. 기도하지 말아라.’ 말했지마는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기도하는 것이 그때는 자기 현실에서는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계명 지키는 것이 자기를 구출하는 길인 줄 알았기 때문에 계명 지키다가 사자구덩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받았지마는 계명 지키다가 던지움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거기서 구출해서 그 이튿날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 나라에 충만했고 다니엘의 영광도 온 나라에 충만해서 그 나라에 왕 다음가는 존귀한 자가 되었고 왕도 그 다니엘 앞에는 뻘뻘 떨고 그저 다니엘을 저희 신과 같이 모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살려 주시는 것이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오.
우리가 이렇게 이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 하면 다 되는데 이것을 버려 놓고 뭘 찾고 돌아다닙니까?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 행동하는 것은 다 자살하는 행위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바라보는 자는 결단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를 놓지 맙시다. 지금은 예사롭게 여기지마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큰 환난을 이 삼십 분 기도가 넉넉히 이기고 남음이 있습니다. 그때에 평안하고 수월할 것입니다. 기쁠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환난 닥칠 때에 어째 지나갔는지 뭐 모르고 기쁘고 즐겁게 지내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과거 신사참배의 문제가 있었고 6.25 때가 있었지마는 그런 환란 때 기도하는 사람들은 신사참배 때문에 올라갔고 자유했고, 6.25 때문에 올라갔고 자유했습니다.
결단코 땅위에 있는 모든 환란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자를 높이기 위해서 주님이 그렇게 역사하시는 섭리입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땅의 것을 의지하는 자는 멸망키 위한 섭리요. 노아 홍수 때에 뭐 땅에 있는 모든 방편 다 가졌지마는 다 홍수에 매몰당했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명령만으로써 자기의 생명의 길인 줄 안 노아는 어리석은 것 같았으나 세상을 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