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5 00:38
성공의 비결-하나님 말씀 생각
본문 : 마13:8-9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좋은 땅이라' 과거 번역에는 옥토라 이랬는데 옥토라 말은 중국 말 한문 글자를 따서 한 것이니까 우리 나라 말이 아니라 이래서 뭐 '좋은 땅이라 이랬는데 농부들이 다 옥토라 하면 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어도 좋은 땅이라 하면 잘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 말은 언제 바로 갖추어지련지? 한글 학자라는 사람들은 그저 무슨 별스러운 소리만 하면 그게 실력 있는 건 줄 알고, 찬송가도 이 새찬송가 번역해 놓은 것 보면 찬송가 뜻도 모르면서 제가 제 주장을 내세워 가지고 해서 그런 찬송 절수는 볼 때마다 '고약한 사람이 하나 들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를 어지럽게 했다'그렇게 그 행위가 밉습니다. 사람은 미워할 수 없지만 그 행위는 아주 미워요.
그 모양으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은 지나간 때에 해 내려온 일이라면 그 일을 안 바꿔야 됩니다. 말도 안 바꾸고 또 방편도 안 바꾸고 같은 것이면 한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두 사람 알고 있는 것 쓰는 게 좋고 두 사람 알고 있는 것보다는 세 사람 알고 있는 것 쓰는 것이 일을 훨끈 더 속성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믿는 신학 술어도 일반적으로 쓰는 술어를 쓰는 것이 좋고 과거에 있던 술어를 쓰는 게 좋은데 그것 가지고는 옳은 뜻을 나타내지 못하게 될 때에는 더 잘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술어도 그런 단어도 그렇게 만들어서 말을 만들어서 조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 구원은 구원이면 다 됐지 이제까지 내려오는 모든 신학 술어가 구원이라 하는 것 한 말뿐인데, 구원이면 구원 한 말뿐인데 뭣 한다고 또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그렇게 별스러운 말을 하느냐?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라는 그 두 가지로 구원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두 가지로 표현하는 그 표현을 했으면 그 시작한 사람이 창작자요 그 사람이 귀한 일을 한 사람이오.
그러나 필요 없는, 구원이라는 한 마디로 다 되는데 별스럽게 기본 구원 건설구원이라는 그런 새 말을 만들어 냈다고 하면 복잡한 일을 해서 하나님 앞에 뒤에 가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오. 사람들은 아무 가치 없는 자꾸 새것을 새서 유행을 좋아하고 새것을 좋아하는 그런 죄악의 습성이 있어서 자꾸 그렇게 하는데 무엇이든지 옛것과 새것이 꼭 같은 것이면 옛것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구원에 복잡해지지 안하고 헛된 모든 감각과 그 지각을 소비하지 않게 됩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지난번 대구집회 때에 이 시뿌리는 비유를 말씀했습니다. 제일 방어선, 제일 방비할 것은 길가 뿌린 씨를 방비해야 되고, 두번째는 돌밭에 뿌린 씨 이게 안 되도록 방비해야 되고, 세번새는 가시떨기 위에 뿌린 씨 되지 않도록 방비를 하면 됩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뭣이 제일 어려운고 하니 옥토에 뿌린 씨 되기가 제일 어려운데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데는 제일방비 제이방비 제삼 방비가 있으니 제일 먼저 방어해야 되는, 옥토에 뿌린 씨로 자기가 살려고 하면 제일 먼저 막아야 될 것이 길가에 뿌린 씨요, 그 다음으로 막아야 될 중요한 방어는 돌밭에 뿌린 씨요, 마지막으로 막아야 할 중요한 것은 덤불 위에 뿌린 씨인 것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어떤 것이 옥토에 뿌린 씨인고 하니 그 뿌린 씨가 지기를 땅기운을 먹어야 자라는데 먹은 것만치 자라게 되는데 땅기운을 먹는 그 일에 방해를 안 받아야 됩니다. 뿌린 씨가 땅기운을 빨아먹어야 그것이 움이 트고 또 새싹이 나오고 자라게 되는데 어떤 것에게 방해를 받아 가지고 땅에 심기워진 그 씨가 옥토에 뿌린 씨가 되지 못하느냐? 그것은 일차적으로 길바닥에 뿌린 씨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은 아예 움도 나 보지도 못하고 땅속에 심기워져서 지기도 받아 보지도 못하고 그 씨는 절단났습니다.
두번째는 지기는 받기는 받았지마는 그만 밑에 돌이 있어서 땅기운을 조금 받고 받지 못한 그것이 뭣이냐 하면 돌이 방해를 해서 못 받았습니다.
이것은 돌의 방해도 받지 안하고 아주 무성하게 자라는데 덤불이 위를 덮어서 가리워서 그 결실을 못 했습니다. 그러면 옥토에 뿌린 씨에 제일 큰 적이 뭣이냐? 길바닥에 뿌전 씨요. 길바닥이라 말이요, 제일 큰 적이 길바닥이요, 두번째 큰 적이 돌이요, 셋째 적이 덤불이라. 그러니까 자기에게 심기워진 하나님의 말씀, 들은 바의 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를 먹고 자라는 것인데, 거게. 밭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영육 곧 자기를 말합니다. 자기를 말한 것인데 자기를 다 먹어야 그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됩니다.
자기를 다 먹어야 하는데 자기를 먹으려고 하니까 길바닥이 방해를 합니다.
길바닥이 방해한다는 방해하는 길바닥은 무엇을 비유한 것입니까? 가만 있어.
누가 좀, 누구를 물어볼꼬? 조는 사람을 물어야 펄 건데. ○조사님, 졸지는 안하는데. 뭣이지? 녜, 그것은 이제 말한 대로 세상 지식입니다. 세상 지식.
세상 지식이라는 것은 말이 지식이요 지식이 말이요 그게 방해합니다.
둘째 적인 돌밭이라고 하는 그 돌은 무엇입니까? 돌은? ○ 집사? 돌은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입니다.
셋째로 덤불은 이 세상 사건들 모든 물질들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옥토에 뿌린 씨가 되려고 하는 데에는 일차적으로 옥토에 뿌린 씨가 자기 마음을 먼저 다 먹어야 됩니다. 자기 마음을 먹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몸을 먹습니다.
몸을 먹고 나면 그 다음에는 모든 행동을 다 먹게 됩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 하는 그 말씀과 같은 말씀이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마음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게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서 자기 마음에 떠나지 안하면 옥토에 뿌린 씨요.
하나님의 말씀이, 이 말씀이 자기 마음에, 이 말씀이 자기 마음에 지금은 들어 있고 저 말씀이 들어 있고, 그러면 이 말씀을 생각하고 저 말씀을 생각하고 생각한다 말이오. 생각하는 건 마음 아닙니까? 그렇게 먼저 자기 마음을 이 말씀이 차지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이 말씀이 자기 몸을 차지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자기 행동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논리적으로 이렇게 말해 가지고는 별맛이 없고 그러나 자기가 이제 옥토에 뿌린 씨가 되려고 하면 하기가 어렵지는 안 하는데, 어렵지는 안 하는데 '아주 누구든지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그만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옥토에 뿌린 씨가 돼야 우리가 성공을 하는데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데에는 여러가지 뭐 길바닥이고 뭣이고 그런 것 다 돌밭이고 덤불이고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만 딱 생각하면 됩처 다. 옥토에 뿌린 씨가 되려면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생각되면 그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는 데에 세상 사건이나 물질이나, 자기에게 대해서나, 또 세상 인간들이 말한 이 지식 이런 것들이 들어오면 그만 옥토에 뿌린 씨는 틀렸습니다.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만 계속 생각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됩니다.
자기에게 무슨 사건이, 사건 속에서 우리가 살고 또 이 세상 지식 속에서 사는데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 말씀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도록 악령이 미혹을 줘서 혼돈이 됩니다.
우리가 물질 속에서 살고, 사건 속에서 살고, 세상 지식 속에서 살고, 자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만 계속 생각하고 그런 것을 생각지 안해야 된다' 하는 말이니 말 같지 많은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갯가에 가니까 조개가 여러 수십 종류가 납니다. 가보면 이런 저런, 구멍을 보면 이 조개가 들었다 또 저 조개가 들었다. 또 흙이 조금 도두락하게 높은 것 보니까 요 속에는 뭣이 들었다. 좀 깊은 것 보니까 뭐 속에 들었다 잡는 사람은 그것을 다 아는데 이 사람은 보니까 이 조개도 있는데 이 조개도 잡지 안하고 저 조개도 잡지 안하고 뭐 자꾸 그래 돌아다녀.
그 사람은 자기에게 아주 필요한 조개를 구하려고 왔는데 자기 병에 좋은 조개, 필요한 조개를 잡으려고 갔으니까 다른 조개는 많이 있지 마는 그것은 자기 눈에 띄지 안하고 그것은 보이지 않고 그것 하나, 다른 사갊이 '여기 큰 조개 여기 있습니다. 이것 잡으십시오.' 나는 지금 나 잡는 것 딴것 필요 있어 내가 잡으러 왔다고. 그 많은 조개 가운데서도 그 사람은 그것만 찾아서 잡습니다. 그러니까 조개가 많은 종류가 있는 갯가이지마는 그 사람은 자기가 필요한 자기에게 필요한 한 조개, 한 종류의 조개 그것만 잡으려고 찾는 그와 같이, '여게 어찌 여기 나왔느냐?' '여게 누가 온다 해서 마중 나왔다' 고 이러니까, 다른 사람이 있다가 '여보 여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이 아닙니다.' '저게도 사람이 옵니다. 저리 사람이 나갑니다.' 사람 오는 사람을 자꾸 소개를 해도 아니라, 아니라, 아니라, 아니라, 아니라. 자기가 목표한 그 사람이 오니까 그 사람을 자기가 영접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는 세상 속에 살지마는, 물질 속에 살지마는, 자기라는 자기 속에 살지마는, 세상 모든 이런 저런 말 속에 살지마는 자기가 밤낮 사모하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 뿐이라. 그러면 사람이 세상에 살수가 있느냐? 그러면 잘 살 수가 있습니다.
자기 어떤 현실에서라도 물질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합니다.
물질이나 뭣이나 그것을 우리가 말해서 자기 현실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자기 현실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자기 현실 속세는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여러 수십 종류가 자기 현실의 요소가 돼 가지고 그것들이 구비돼 가지고 자기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 속에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사모하고, 자기가 기억하고 자기가 지금 사모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그 현실에서 사모합니다.
이러니까 이런 현실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을 하고 저런 일이 와도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니까 생각에서 행동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그 생각으로 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그 생각에 와서 생각을 점령하고, 그 생각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그 생각에서 나온 그것이 그 사람의 움직임을 점령하고, 하나님 말씀만을 생각하는 그 생각이 움직임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하는 그 생각이 움직임을 점령해 가지고 해 놓은 그 일, 그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그 생각이 자기의 생각 전부가 되면 자기의 움직임은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는 그 생각에, 생각대로 움직임이 되어집니다. 그 생각대로 움직임이 되면 해 놓은 일은 하나님의 말씀만 생각하는 그 생각대로의 해 놓은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란 놈은 자꾸 혼란을 시켜 가지고 인간을 망치게 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꾀우려고 한번 달라 들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네 온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거든 모든 돌로 하여금 떡이 되도록 해라.' 이렇게 딱 미혹을 줬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게 아니라, 떡이 필요하기는 필요하다. 그러나 떡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만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는 그 생각대로 행동하고, 하나님 말씀 생각하는 그대로의 일을 해 놓으면 밥도 있고 지위도 있고 권세도 있고 영광도 있고 장수도 있고 다 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지 안하고 사실대로 바른 대로 딱 말을 하니까 마귀란 놈이 거게서 패전했습니다. 일차 패전 이차 패전 삼차 패전을 하고 난 다음에는 마귀란 놈이 도망을 치고 천사들이 와서 수종을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꼭 안 그럴 것 같은데 해 보면 됩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자기 생각에 돈도 용납지 말고, 권세도 용납지 말고, 뭐 자기라는 자기도 용납지 말고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섭시오. 하나님 말씀만 생각해서 그 생각 속에 하나님의 말씀만 가뜩 차고 딴것이 차서 있지 안하다고 하면 반드시 그 사람은 옥토에 뿌린 씨로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 그렇게 말씀을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는 이것은 말로 해 봐야 논리로는 잘 모르는 것이오.
논리해 가지고는 제 논리로 해 가지고는 제가 아무리 명철한 사람으로서 논리에 대해서 철투철미한 정연히 할지라도 논리 가지고는 모릅니다. 왜? 이것은 인간의 논리를 탁월한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실천하면 성신이 오셔 가지고 가르쳐 주셔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나 내나 옥토에 뿌린 씨가 되고자 하거든 자기의 마음을, 마음이 돈을 영접하면 돈 생각이 되는 것이고, 권세를 영접하면 권세 생각이 되는 것이고, 마음은 선합니다. 마음은 악한 것 아니오. 마음이 악한 게 아닌데 그 마음에 무엇이 들어오느냐? 마음에 무엇이 들어오면 마음하고 들어온 것하고 둘이 합작이 되면 그것이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엇이 들어오든지, 들어온 그것하고 마음하고 둘이 합작되면 그게 생각이라.
이러기 때문에 돈 생각이 되면 그 사람의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돈에 대한 움직임을 하게 됩니다. 세상 권세나 지위에 대해서 생각했으면 그 생각이 들어오면 반드시 그 사람의 움직임은 지위나 권세나 그런 움직임이 됩니다. 그 움직임이 되면 그 일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에 다른 것을 용납지 말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만 용납해서 네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만 가득 차면 그 다음에 그 마음에 뭣이 나옵니까? ○○씨? 무슨 생각 돈 생각? 하나님 말씀 생각 나온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 생각나오면 그 하나님 말씀 생각이 뭘 점령합니까? 움직임을 점령합니다. 자기 활동을 점령하요.
그러면 성질의 활동도 그게 점령하고, 욕심의 활동도 그놈이 점령 하고, 취미의 활동도 그놈이 점령하기 때문에 나쁜 놈이 점령하면 결국, 돈 생각이라면 그놈이 점령하기 때문에 그대로 되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영접해서 가득 차면 하나님 말씀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모든 좋은 것을 하나님의 영감과 진리대로의 것만 만들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나쁜 게 뭣이냐 하면 공상, 따라합시다. 공상! 공상! 빌 공(空)자 생각 상(想)자, 소용 없는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이것 저것 이런 것 저런 것, 이런 것을 마음에 용납하면 이 생각이 나오고 저런 것을 마음에 용납하면 저 생각이 나오고 또 무엇을 마음에 용납하면 그것에 대한 생각이 나오고, 이래서 마음에 딴것이 들어오면 딴 생각이 자기에게 솟아 나오고 생각 그놈이 모든 걸 점령 다 합니다. 이래 가지고 다 사용 다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결혼 한 자와 결혼 안 한 자가 다르다.
왜? 결혼 안 한 자는 그 마음을 하나님에 다 드려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 해서 그 마음에 하나님만 내주해 계시지마는 결혼한 사람은 마음을 둘로 나누게 된다. 어떻게 해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해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해서 마음을 두 가지로 나누게 된다.
또 나누어져야 되지 나누어지지 안하면 아예 이혼을 하든지 해야지 나누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결혼하면 벌써 자기는 반쪼가리 사람이 됐습니다.
반쪼가리가 둘이 합해서 온 쪼가리가 된 것 같지마는 실은 반쪼가리 사람이 되는 것이라. 그런고로 마음을 나누지 말고 한 가지로 하나님 말씀만 마음에 용납해라. 그래서 답답해서 성령이 말씀하기를 그랬습니다.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같이 하고, 남편 있는 자는 없는 것같이 하고, 세상 물건이 있는 자는 없는 것같이 하고, 세상 물건을 쓰는 자는 쓰지 않는 것같이 하고, 모든 애로가 있는 자는 애로가 없는 것같이 하고, 그 없는 것같이 하라. 그말은 네 마음에는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만 자꾸 영접해서 가득 채워라. 그렇게 말했어.
내가 어제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서, 그 사람이 나이 칠십이라 이러는데 그러니까 모두 깜짝 놀래. '그 사람이 나이가 지금 아직까지 시집가도 될 만한 그저 한 오십됐거나 말았거나 그런데 나이가 칠십 이라, 그렇게 됐어요?' 칠십은 칠십이라. 여게 와 앉았어. 앉았는데, 칠십이라.
'그 사람 뭘 먹어서 그럴까? 뭘 먹어서 그럴까?' 그렇게 저한테 반문하는 소리를 들었어. 그 반문하는 말 속에는 아마 그런 말 같애요. 뭘 먹어서 그렇게 칠십인데 오십밖에 안 보이도록 그렇게 안 늙고 그럴까? 그 뭘 먹어 그럴까? 그 식품을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말은 목사님도 그 식품 먹었으면 좋겠다 하는 아마 그런 것이 첫째일 것이고 혹 자기도 그런 식품을 먹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것을 묻기 때문에 내가 답을 그래 했습니다.
'그는 소비 절약자다. 소비를 안 하고 절약을 했으니까 그게 저축이 돼서 그런 것이지 소비 안 해 그런 것이지 좋은 식품 먹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면 소비를 뭘 소비를 안 했을까요?' 이러기 때문에 내가 그 다음에 답이 그래 했어.
'그는 일찌거니 혼자 돼 가지고 혼자 살았다. 그러니까 또 상대방에서 또 말하기를 '혼자 사는 사람들이 더 늙고 더 험하고 그렇던데요.' '그것은 사람 보기는 혼자 사는 것 같지마는 실은 혼자 사는 자가 아니고 혼자 살지 않는 데도 그는 뭣인가 소비하는 구멍이 있어서 생산보다 소비가 많기 때문에 항상 곳간이 비어 가지고 있어 그렇다.' 내가 그런 말을 하고서 그쳤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의 모든 정력과 진액을 하나님과 진리에게 바쳐서 하면 그것은 전부 영생입니다. 하나도 죽지 많습니다. 하나님과 진리에게 바쳐져 가지고서 일단 거기에서 쓰여져서 없어지면 없어진 게 아니라 그것이 전부 영생할 재료로 다 변화됐습니다. 전부 영생으로 변화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길이 있는데 악령 이놈이 우리를 꼬와 가지고 어짜든지 그 선악과 먹는 것과 같이 사람을 요 구멍으로 후려 놓고 저 구멍으로 후려 넣어 가지고, 제일 넓은 구멍을 다 내비두고서 나중에는 좁으단한 한 구멍으로 제일 좁은 구멍으로 집어넣어서 그 구멍밖에는 모르고 그 구멍으로 그만 그저 일생을 기어 들어가서 죽는다. 그 제일 좁은 구멍을, 제일 좁은 감옥을 가리켜서 무슨 감옥이라고 말을 했지요? 무슨 감옥이라고 말했어? 신경 감옥. 잘 알았어.
낚시하면 팔뚝이 까딱거리는, 하나의 그 신경 중에도 말초신경인데 그 신경 하나가 까딱거리는, 그만 취미에서 왜 그 취미가 나왔느냐? 마음에 그것만 자꾸 용납하니까 마음에 나오는 생각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일생을 그걸로써 바친다.
그런고로, 참 우리가 어리석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해 놨는데 이 말씀은 너무 우리에게 탁월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잘 몰라. 하나님 말씀은 너무 우리에게 탁월돼 있기 때문에 거리가 머니까 그만 초절되어 있는 그런 것과 같이 돼 있어요. 왜 초절이 됐느냐? 하나님 말씀에 연결만 되면 사는데 왜 연결이 안 되고 초절됐느냐? 초절된 것은 말씀을 듣고만 있었지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행함이라는 그 동가리가 똑 끊어져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아무리 육십육 권이 자기 속에 가뜩 다 찼어도 자기와는 그 말씀과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실효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하나님 말씀만 가득 차면, 그것이 옥토에 뿌린 씨인데, 가득 차면, 그러면 뭐? 하나님 말씀만 자꾸 자기 마음 가운데 자꾸 채우고 밥도 안 먹고 굶어 죽으라고? 하나님 말씀만 자기 마음에 가득 차면 자기에게 생각 나오는 것이 말씀 생각만 나옵니다. 나오는 것이 전능의 성령과 진리 이 둘이 능력만 나오니까 그 능력이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지었고 그 능력이 지금도 우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은 다 자기 것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마지막 결론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먼저, 자기 마음에 하나님 말씀만 자꾸 용납하고 하나님 말씀만 자기 마음에 자꾸 들어오면, 하나님 말씀을 자기 마음에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생각이 나옵니다. 생각이 하나님 말씀을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말씀을 자기 속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동시에 자기에게 말씀대로의 생각이 자기에게 나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자기가 '내가 하나님 말씀을 이래 할까 저래 할까?' 생각하니까 생각이 뭐 있는 줄 알아도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동시에 거게 생각이 나와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율법을 묵상하는 자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전부 망하는 것도, 죽는 것도, 고생하는 것도, 고통하는 것도, 병드는 것도 전부가 마음에 하나님 말씀 외에 딴것 들어온 그놈이 차차 차차 커져 가지고서 그 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장성한즉 사망 낳느니라' 그말은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그것이 조그만한 것이 들어와도 그게 차차 차차 커져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죽고 망하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우리 마음에 채울 것 기도하고, 이 말씀을 묵상하고 저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을 새김질하고 저 말씀을 새김질하고, 그러면 어리석은 생각에는 '그래 가지고 밥이 나오나 뭐이 나오나?' 하나님 말씀만 자꾸 묵상하고 새김질하고 사모하고 자꾸 이렇게 되면 거게서 모든 행복을 만들어내는 생각이 나옵니다. 모든 행복을 만들어 내는 생각이 나오요.
모든 행복을 만들어 내는 생각만 나오면 그 생각이 일을 춥니다. 그 생각이 차기의 모든 자기에게 있는 힘을 맡아서 주관해 가지고서 성공을 하게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말씀 외에 딴것을 우리 마음에 용납지 안하면 그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그러면 못 먹고 살 줄 알아도 그러면 일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사장노릇도 잘하고, 아내노릇도 잘하고, 남편 노릇도 잘하고, 어머니노릇도 잘하고, 자녀노릇도 잘하고, 친구노릇도 잘하고, 뭐 부하노릇도 잘하고, 상관노릇도 잘하고, 수하노릇도 잘하고, 상전노릇도 잘하고 종노릇도 잘하고 전부 다 잘됩니다. 그러니까 요것을 꼭 잡고 한번 실행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