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읽는 목적-믿음-2가지 결과

 

1987. 10. 21. 새벽 (수)

 

본문:디모데후서 3장 13절∼17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고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악한 자들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은 그 모든 언행심사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과 자신을 속이는 일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라 말은 어떤 자를 가리키느냐 하면은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자기 중심, 또 넓혀서 혹 모르는 사람들은 민족 중심 애국심으로 국가 중심 그것도 저거 나라기 때문에 저거 민족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분석하면 그거 내나 자기 중심입니다.

세상에는 자기 중심과 하나님 중심 이 두 가지 외에는 없는 세상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복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뭐 부모라도 자식에게 자기 망치고 다른 사람 망치는 거 외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런 것은 다 확정을 지워야 됩니다. 확정. 확실히 정해버려야 된다 그 말이오.

그런데 15절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렇게 참 보배로운 말씀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구원에 이르게 한다 말은 완전한 생명에 이르게 한다 말이요 또 완전한 지능과 평강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런 말씀을, 14절에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뉘게서 배웠다는 이 말은 양면을 말합니다. 첫째 외부적으로는 네가 어떤 사람에게 배운 것을 알아라 하는 말이요 그 속에는 무슨 뜻이 포함돼 있는고 하니 네가 배운 그 사람은 곧 하나님에게 배워 가지고 너에게 말하는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하는 말은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에게 배워서 하나님이 가 하면 가 하고, 나 하면 나 하고, 다 하면 다 하고, 마 하면 마 하고,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그대로 배운 그 사람이 너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것은 곧 하나님에게 네가 배운 것이다.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네가 배운 것은 하나님에게 배운 것임을 알라. 하나님에게 배웠는데 곧 하나님에게 배운 사람에게 배운 것인 것을 알아라.

그러면 우리가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하나님에게 배운 것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곧 자기, 마귀에게 배운 것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도 조심해 가르쳐야 됩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을 성경 기자들에게 배웠습니다.

성경 기자들이 우리에게 기록해 주면서 가르쳤기 때문에 배웠습니다. 그러나 성경 기자들은 제 주장으로 제 자율로 한 것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전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님께 피동으로 가르치지 안하면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망치고 자기 망치고 둘 망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밑에 선두에 쓰기를 “악한 자들은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 그러면 망하지요.

그러기에 자기 중심은 자타를 망친다 요것을 요거는 뭐 요동치 안하고 가져야 돼요. 또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는 어쨌든지 결과적으로 가 보면 자타를 다 구원하고 돕는 사람이 됐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성경의 목적이 뭐인가? 성경의 목적은 사람 온전 행위 온전이 성경의 목적입니다.

이번 주간은 우리 양성원의 학생들은 성경을 읽는 주간으로 했습니다. 성경 읽는 주간은 힘이 많이 듭니다. 이래서 교학실장이 알아서 잘 대접을 하는 줄 압니다.

우리 교회도 그 대접비를 보냈습니까? 아직 안 보냈어?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보낼라고. 안 들어오면 교회 돈으로 대치해 보내지. 그거 들어오도록 냅두고 있어? 오늘 당장 보내요. 그라면 안 돼.

그런데 성경을 읽는 데에 읽는 목적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구경할라고 읽습니다. 궐땜으로 읽는 사람 있습니다. 말하자면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 있어. ‘아, 하루 몇 장 읽으니까 이거 읽어야 되겠다. 이번 주간에는 신구약을 한번 정독하기로 했으니까, 소리 내서 음독하기로 했으니까 이거 읽어야 되겠다.’ 그래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습니다마는 그거는 이제 입학생입니다.

그보다 나은 것은 ‘성경이 뭐라고 말하느냐?’ 성경의 그 지식을 얻기 위해서 지식 목적으로 읽는 사람 있습니다.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 그 사람이,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 그 사람이 제일 어린 사람인데 그보다 더 몹쓸 사람은 ‘성경이 뭐라 하노?’ 구경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은 제일 몹쓸 사람이오. 그 사람은 입학도 안 한 사람이라.

구경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 그 다음에 입학한 사람은 성경을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 ‘이제 성경을 읽어야 되겠다’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 또 그 다음에 조금 이학년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이냐? 성경을 내가 지식하기 위해서 읽습니다. 성경을 지식, 성경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지식할라고 읽습니다. 그것은 조금 상급입니다.

또 그 다음에 제일 상등은 어떤 게 상등이냐 하면 성경을 읽을 때에 믿기 위해서 읽습니다, 믿기 위해서. 믿기 위해서. 믿기 위해서 읽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성경을 읽음으로 요 구구절절에서 하나님과 자기와의 연결을 위해서 읽는다는 그 말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알고 인식하고 행하는 것인데 그 믿음의 목적이 뭐이냐? 믿음의 목적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돼서 하나되는 고 방편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해가 돼요? 믿음은 뭐이 믿음인가?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러니까 성구를 읽을 때에 고 성구로 주 하나님과 자기와의 하나되는 것을 전부 가르친 것이 신구약 성경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은 믿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을 주셨습니다.

믿도록 하기 위해 신구약 성경 주셨는데 믿도록 하기 위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저 여게 뭐꼬? ○○교회 조사님 말해 봐. 믿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주셨는데 그 말은 무슨 말이요? 믿도록 하기 위해 신구약 성경을 줬습니다.

그거 무슨 말이오?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되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사람 있습니다.

믿기 위해 성경 읽는 것이 제일 알속 있게 읽는 사람이고 또 그 다음에는 뭐입니까? 그 밑에는? 지식하기 위해서. 지식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이고 또 그 밑에는?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 또 그 밑에 맨 밑에는? 안 믿는 사람, 그 사람은 안 믿는 사람, 구경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 그 사람은 아직까지 믿음에 입학을 안 한 사람이오. 믿음에 입학 안 한 사람이고 읽기 위해서 읽는 사람은 입학을 한 사람이라.

여기 공산주의자들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그 정치계에 있는 사람, 정치부라고 하요, 거게는. 정치부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읽는 건 ‘성경에 뭐라고 말했는데 이것들이 속고 지금 꼬이고 있는가?’ 해서 성경을 구경하기 위해서 읽는 그거는 안 믿는 사람입니다.

‘아무래도 성경을 읽어야 되겠다’ 해서 성경 읽는 사람은 입학한 사람이라.

그 다음에 이제 조금 입학해 가지고 고등이 되어가는 그런 사람은 ‘성경에 이 지식을 내가 가져야 되겠다’ 성경 지식을 자기 상식으로 자기 신앙 지식으로 가져야 되겠다 해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읽는 사람 있고.

제일 좋은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에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 성경을 읽습니다. 믿음 만들기 위해 성경 읽는다 말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되기 위해서 성경 읽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성경 읽는 목적이 무엇이냐? 믿음의 목적을 가지고서 읽기 때문에 믿음의 목적의 그 결과는 뭣 됩니까? 목적과 결과는 하나입니다. 목적한 대로 결과가 맺어집니다. 목적과 결과가 하나돼요 마지막에는 둘 돼요? 자기가 어데를 목적하고 지금 걸어간다고 하면은 목적과 그 결과는 하나가 돼요 둘이 돼요? 하나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결과는 뭐인가 하니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그 결과가 맺어져. 믿음을 목적으로 하면 믿음을 목적으로 한 사람의 그 결과는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의 결과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밑에는 자기가 지식하기 위해서,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사람, 읽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이 목사들 가운데도 그 지식을 목표로 해서 지식 위주자가 있습니다. 지식 위주자.

지식을 주로 삼아 가지고서 자기가 지성인이 되고 지식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가 지식을 많이 가져서 지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믿는 것 있고 자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 모두 믿는 것 있고 이 두 가지로 마지막에 최종에는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거 가만히 생각하면 학생들이든지 그 모든 것을, 여러분들이 이 말을 듣기 전에는 ‘지식을 해야 믿고 뭐 믿음을 가져야 지식이 있는 것 아닌가?’ 이래 보지마는 요걸 둘로 딱 나눠 가지고 여러분들이 가만히 눈뜨고 보면 압니다. ‘저 교수는 지식 목적의 사람이냐 믿음 목적의 사람이냐?’ 알 수 있습니다. ‘저 목사는 지식 위주의 사람이냐 믿음 위주의 사람이냐? 지식에 속했나 믿음에 속했나?’ 환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저 장로는, 저 권사는, 저 전도사는, 저 집사는, 저 반사는, 저 평신도는,’ 전부 ‘저 사람이 지금 목적이 지식이냐 믿음이냐?' 그렇게 여러분들이 생각을 가지고 그 맞보기 안경, ‘지식이냐 저 사람은 믿음이냐? 뭘 주로 목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냐?’ 뭣을 주로 목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냐 요렇게 구별하면 딱 압니다.

뭐 틀림없이 알아지요. 여러분들이 눈이 어두워서 몰라서 둥둥둥 이라니까 제가 지식을 지금 탐하고 있는 사람인지 믿음을 탐하고 있는 사람인지 그 자체를 분간 못 하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이거 분간 못 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나중에 가서, 지식으로 나가는 것은 내려가는 것이고 믿음으로 가는 것은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것은 힘을 써야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은 저절로 슬슬 구불려서 내려갑니다. 그렇지 않소? 이러기 때문에 신학을 하든지 외국에 가서 유학을 하든지 하는 가운데에 그 두 가지 종류로 딱 나누면 됩니다. 요걸 모르고 일생 동안 거게서 뭐 공부하고 연구하고 하는 사람들은 마지막에 저는 뒈집니다. 그까짓 뭐 책보따리만 됐지 그 속에 생명의 능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뭐라 했습니까? 말에 있지 않다는 건 지식에 있지 않다 말이오. “지식에 있지 않고” 또? “능력에 있다” 했어, 능력에.

이러니까 여러분들도 껍데기 학생되기 쉽습니다. 이번에도 성경 읽으면서 ‘성경에 나는 지식을 목표로 하고 있나 믿음을 목표로 하고 있나? 내가 지금 믿음을 만들고 있나 지식을 지금 점점 만들고 있나? 내가 지식의 부자가 되나 믿음의 부자가 되나 뭐이가?’ 요것을 자꾸 자기가 스스로 경성하고 반성하면서 이래 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제가 고신에 다닐 때에 이 공부하는 데 믿음을 그 신학교 온 목적으로 가진 사람을 별로이 내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다 지식을 목적으로 가지요. 이러니까 시험 칠 때 되면은 전부 이불 속에다가서 이 전등을 속에 넣어 놓고 딱 덮어 놓고 그래 공부합니다. 공부하다가 그만 종치면, 나중에 안 나오면 또 조사를 하니까 종치면 늦게사 이래 나와 가지고서 그저 설교 딱 마치고 불 딱 끄면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가 가지고 기어 들어가요. 그거는 뭐 공부는 해서 제법 하지마는 그래도 하나님이 총명 안 주면 안 돼.

한번 어려운 강의를 세 시간을 계속해서 박윤선 목사님이 강의를 하고서 나중에 그 다음 주간에 시험을 치는데 그때 시험칠 때에 백점한 사람이 없었어, 별로 없었어. 저는 그거 다 생각도 안 했는데 백점했어. 백점한 사람들이 별로 없고 요번에 시험쳐서 다 틀렸다고 이라는데 저는 백점했어. 나는 그거 시험 공부 하나도 안 했어요. 뭐 할 여가가 있어야지? 강의 떡 하고 난 다음에, 금요일날 강의하는데 강의하고 나서 금요일날 밤부터 집회인데. 집회로 월요일날 새벽까지 집회하고서 신학교 왔는데 무슨 공부할 여가가 있어? 그게 뭐이냐? 또 언제든지 보면 그저 새벽기도마다 신학교 새벽기도는 설교 마치면 사람이 없습니다. 다 나가 버리요. 나중에 보다 보면은 한명동 목사님 사모님하고 저하고 둘밖에 없어. 다 가 버려. 저는 그때에 생각하기를, 내가 여게 지식을 가질라고 온 게 아니다. 나는 하나님과 좀 더 연결을 해서 요렇게 믿음을 가지기 위한다는 요런 말로 표현 안 돼도 ‘내가 여기서 하나님으로 부요해지기 위해서 왔지 지식 부자 되기 위해서 오지 안했다’ 이라기 때문에 그저 뭐 시험 공부를 하든지 말든지 하나님을 좀, 낮에 공부할 때 뭐 접촉 못 하니까 접촉이 성글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기도합니다.

끝까지 거게서 남아서 기도한 사람은 제가 제일 끝까지 신학 졸업할 때까지 끝까지 남아서 기도한 사람은 내였습니다. 내가 그래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나는 거기서 그뭐 지식 그런 걸 예사로 여기고 믿음을 거석했어. 이러니까 제가 신학 하고 난 다음에 하기 전에 영감을 뺏기지 안 했습니다.

이래서 말이 있어. ‘신학ㅡ지금은 사 년이지만 삼 년이었이다 말이오ㅡ신학 삼 년에 믿음을 뺏기지 안하면 목회에 성공한다’ 신학 삼 년에 믿음 뺏기고 지식 바꿔 가지고는 뭐 어떻게 유력한 지식이라도 그거는 항상 지식주의요. 보면 항상 지식주의라.

이러니까 귀하게 여기는 것도 뭐 생전 처음 들은 무슨 철학이나 무슨 이런 과학이나 무슨 소식이나 이런 지식을 말하면 눈이 또록또록하게 뜨여서 취미있게 여기지마는 믿음은 말하면 그만 졸고 아무 흥미가 없어. 그거는 뭐이냐? 마귀가 그 속에 주관하고 있기 때문에 믿음이라 하면 제 원수니까 믿음 말만 하면 졸아요. 가치 없어.

이러니까 여기 양성원의 학생들도 여게서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믿음은 말하면 ‘에이고 순 조작배기 켸켸묵은 무식, 무슨 이런 거 뭐 아주 무가치한 거 무식한 그런 것만 말해 준다.’ 이럴 것이고, 저 듣지 못한 뭐 어떤 무슨 높은 지식이나 그런 걸 떡 말하면 ‘이는 참 실력가다. 내가 이걸 배워야 되겠다.’ 그자는 목회 못 해.

성경에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울 것이 없다.

이미 하는 것만 하면 된다.” 그것이 성구 어데 있소? 요한계시록, 무슨 교회에 말했어? 두아디라 교회에 그렇게 말했어.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그 말은 무슨 말이오? 인간들이 희귀하다 하는 인간의 아주 깊고 높은 지식입니다. 사탄의 깊은 것은 과학도 최고의 깊은 과학 그거는 사탄의 깊은 것입니다. 그건 다 속이고 속고 사람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있는 죽이는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지 살리는 지식은 아닙니다. 그 지식이 있는 것만치 사람들은 죽습니다. 병이 듭니다.

이러니까 이번에 성경 공부할 때에 여러분들은 구경하기 위해서 성경 보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이제 읽기 위해서, ‘아무래도 이번 주간에는 정독을 해야 될 터이니까’ 그것도 생각하지 마. 그래서 이번에 내가 말하기를 ‘정독 안 해도 좋다. 그러니까 반만 읽어도 되고 삼분지 일만 읽어도 좋다.’ 말하면서 그날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꼭 요 성경을 읽는 데에나 요 공부할 때에 ‘내가 여게서 지식을 내가 얻는 게 목적이냐? 내 목적이 지식에 목적이냐? 내가 여게 양성원에 공부하면서 지식을 얻어서 지식으로 더 부요해지는 그 지식이 목적이냐 내가 믿음이 목적이냐, 여게서 믿음을 얻어 믿음으로 장성하고 부요해지는 것이 목적이냐?’ 그 목적을 여러분들이 정하는 대로 갑니다.

목적과 결과는 하나입니다. 지식을 목적으로 하면은 그 결과는 뭣 됩니까? 그 결과는 뭣 돼요. 그 결과는 교만 됩니다. 지식으로 목적한 자는 있는 것만치 교만해집니다. 그 결과가 교만이오. 믿음을 목적으로 한 자는 믿음의 목적은 그 결과는 뭐입니까?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바로 아는 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양성원 학생들 좋은 거 시작했는데 지금 계속하는가 모르겠는데 이제, 공부한다고 이래 뭐 공기도 좋지 못한 데 거기 있다가서 그리 뭐 병들지 말고 새벽으로 말이요, 새벽기도 딱 마치거든 나서 가지고서, 가면서 그냥 운동만 하고 갈 게 아니라 가면서 생각하라 말이오. 머리로써는 믿음 생각하고 성경 연구 생각하면은 가면서 모르던 성구가 깨달아집니다. 가면서 모르던 성경 깨달아져요.

또 모르던 일 깨달아져요. 모르는 도리가 깨달아져.

자꾸 이래 가면서 뛰어가면서 이래 가지고서, 요게서 뭐 수원지 산까지 갈라 하면은 십 분이면 갑니다. 설설 엔간히 가도 가. 십 분에 가고 십 분에 오고 가 가지고서 삼십 분만 기도해요. 삼십 분만 바짝 기도하고 이래 오면 몸 좋아지지 믿음 좋아지지 또 자기 인품 좋아지지 전부 다 좋아져.

이런데 ‘아이고 뭐 춥고 이러니까 기도하자’ 하면서 옹글치고 앉았다가 이래 버리면 못 가고 그라면 헛일이라. 지금 ○목사님, 지금 이행합니까? 새벽으로? 예.

가는 거.

새벽으로 자, 새벽으로 거게, 뭐 이래 가면서 고함 지르며 가면, 고함 지르고 이래 가면 안 되니까 이래 가면서 자꾸 주님의 도를 생각하며 이래 가. 그러면 가다 보면은 언제 이 진리를 다 발견도 못 했는데 벌써 산이 닥쳤거든. 닥쳤으면 거기 또 계속해서 또 거기서 기도하고, 또 거기서 하다가서 시간 됐으면 이 내려와야 되겠는데 내려오면서, 내려와야 되니까 부득이 내려오며 또 그 나머지기를 또 기도해야 되겠고 나머지기 생각해야 되겠고 그래 가지고 또 온다 말이오. 자꾸 이래 가지고서,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언제든지 연결이지 끊어짐이 없는 것입니다.

그거 자, 새벽으로 우리 양성원 학생들 산에 새벽기도 가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뻐뜩 한번 들어 봐요. 그 영광이지 뭐, 뻐뜩 들어 봐. 다 가나? 다 가는데, 녜,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 가서 살고 나면 아마 여러분들이 양성원을 그리워할 것이고 ‘아! 여게가 내가 배울 곳이다. 정말로 여기가 내가 지도를 받을 곳이다.’ 하는 것이 깨달아질 것이고 지식주의자는 여기 와서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주의자들은 여기 와야 소용이 없어. 여기 와 배울 것이 뭐 있어? 지식이 뭐 배울 것이야 뭐 딴데같이 그런 쓸데 없는 소리 하지도 안하고 또 배울 것이 별로이 없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단단히 깨닫고 사십시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 그 열여섯 가지를 외우도록 하고, 또 지하철 위해서 또 기도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하는 거 이거 어짜든지 놓지 마십시오. 이거 놓으면 앞으로 인간이 할 수 없을 때에 자기는 멸망받고 맙니다. 이 기도하는 사람은 인간이 할 수 없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와같이 빛납니다. 천인이 만인이 다 엎드러지는데 자기는 그런 것들이 와서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이 과거에 모든 신앙 역사가 다 그렇고 교회 역사도 다 그렇소. 사무엘은 이 일 했기 때문에 사무엘이 사사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은 뭐 아무 용기나 뭐 그런 것 아니오. 이랬으나 그 사사 하는 동안에는 전쟁이 나지를 안했어. 그렇게 전쟁 속에 들어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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