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내재적 증거

 

1984. 3. 31. 토새

 

본문: 베드로후서 1장 1절-2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경을 기록한 이 성경의 내용은 성경 기자들이 가진 마음이요 행동입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그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을 그들이 친히 행동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성경을 기록한 그 사람들의 의사를 기록한  것이고, 소원을 기록한 것이고, 그들의 뜻을 기록한 것이고, 그들의 견해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기자들의 그 마음과 생각과 그 행동들인  것입니다.

 그것은 그러면 어데서 나왔는가? 성경 기자들의 그들의 것인가? 그들의 것은  하나도 아닙니다. 그러면 그들의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들이 이런 것을 다  기록을 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 당신 자체가  그러하심인데. 당신이 성경 기자들에게 성령으로 감화 감동시켜서 성경 기자들을  하나님과 꼭 같은 마음, 뜻. 생각. 소원을 이렇게 감동시켜서 만들어서 이 성경  기록한 성경은 하나님의 그 뜻이요. 마음이요. 성경 기자들의 마음이요 뜻이요  소원이요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기록한 것을 뭐하려고 아렇게 기록했는가? 기록한 것은 택한 자들이  이 성경을 보고, 읽고 듣고 하는 그 순서를 통해서 성경 기자들과 꼭 같은  사람들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받아  가지고 이 성경책을 자유로 읽고, 듣고, 보고, 또 외우고. 명상하고 이렇게  하도록 우리에게 이 접선을 시켜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접선됐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접선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접선 해 주신 그 목적이 어데 있는가? 우리들도 다 성경을 기록한 그  사람들과 꼭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성경 기록한 그 사람들과 꼭 같이 된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성경 기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사와 꼭 같은 사람이 돼 가지고  성경을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 기자들에게 대해서 당신의  그 무한하신 능력을 가지고 성경 기자들을 하나님 당신의 그 마음과 뜻과 생각과  소원과 또 비판과 평가와 모든 희로애락을 당신 그 자체가 당신 자신이 되어  있는 고 당신과 꼭 같은 자가 되기를 원하셔서 당신의 그 생긴 대로 당신에게  있는 고대로 그 성경 기자들을 감동시켜만 드셔서 성경 기자들이 그 성경을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본체는 아니나, 하나님의 본체는  아니지마는서도 하나님의 그 뜻이 무엇이며, 소원이 무엇이며, 성품이 무엇이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미워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당신의 온갖 비판하고  평가하는 그 모든 것이 어떤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것을 우리가  알려면 성경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은 비유컨댄 하나님의 사진판이라 그렇게 비유할 수  있습니다. 마치 그 사람의 용모를 촬영하면 사진에 그 사람의 용모와 꼭 같은  용모가 사진에 박혀 나오는 거와 같이, 이 성경은 하나도 그게 가짜가 없고  가감이 없이 하나님 당신 그 본체 외에, 당신이 어떻게 작용하고 계시는 당신의  속성 그것을 고대로 당신의 능력으로 성경 기자들에게 감동시켜서 성경 기자들과  당신과 꼭 같은 그 의사를 만들었고, 소원을 만들었고, 성품을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당신과 꼭 같은 그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기자들이 그 기록하고 난 다음에 그 후에도 늘 계속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성경을 기록할 때의 그때의 성경 기자들과 하나님과는 본체만  다르고 하나님은 자존자 하나님이시요 성경 기자들은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그  자체 본체는 다르지마는서도 그의 희로애락의 모든 작용은 꼭 같습니다. 같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정확무오하게 또 문서로 기록 했습니다. 문서로 기록해서,  그러면 하나님이 어떠하심과 같이 성경 기자들을 그렇게 꼭 같이 만드셔 가지고  또 그 성경 기자들의 그 어떠함을 고대로 꼭 정확하게 성경에다가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셋이 꼭 같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성경 기자들과 또 문서로 기록된 것과 이 셋이 같은데 얼마나 같으냐  하면 정확무오합니다. 털끝만치도 다름이 없이 꼭 같이 정확무오하게 이렇게  셋이 같습니다.

 그러면 셋이 같은데 이제 이 다음에는 이것을 기록해 가지고서 어데 창고에  재어 놓지 안하고 이것을 기록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에게 이  성경을 주시기 위해서 기록했습니다. 성경을 주시기 위해서 기록했으면 그  기록한 데에는,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성경을 택자들에게 주시는가? 성경을  택자들에게 주시는 것은 그 택자들과 이제는 이 넷이 꼭 같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경을 기록해서 택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넷이 꼭 같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는데, 그러면 이 택자들에게 이 성경을  주신 것은 그러면 또 뭐 하려고 택자들에게 주셨는가? 하나님과 성경 기자들과  이 문서와 성경을 읽는 사람들과 꼭 같이 넷이 꼭 같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택자들에게 주셨는데, 그러면 이 택자들에게 이 넷이 꼭 같도록 하시기  위해서 택자들에게 주신 이유가 뭐인가? 그 목적이 어데 있는가? 그 목적은  이제는 택자들을 통해서 택자들 자체가 그렇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택자들이  접하는 모든 이 사건들, 모든 사건들 모든 물건들 그것이 또 꼭 같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헤아려 봅시다. 첫째, 하나님, 또 그 다음에 성경 기자들, 그 다음에  문서 그 다음에 택자, 그 다음에 모든 사물, 우리가 접촉하는 일과 물건. 사물.

이것이 물론 그 자체는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그 다음에는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요, 그 성경 기자들 말이요 성경 기자들이요, 그 다음에는 문서요,  그 다음에는 또 택함을 입은 모든 사람들이요, 그 다음에는 모든 접하는  사물들이라.

 이러니까, 그 자체는 각각 다릅니다. 사물은 언제든지 암만. 그래도 사물은  사물이지 사물이 다른 것 되는 것 아니고, 또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사람들이지  다른 것 되는 것 아니고, 문서는 문서지 다른 것 되는 것 아니고, 성경 기자들은  기자들이지 다른것 되는 것 아니고, 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그대로 계시지  하나님이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차차 차차 낡아지든지 변해지든지 해서  뭐 딴것 되는 것 아니고 고대로 언제든지 그대로 있으나 무엇이 다른가? 그  자체들은 다릅니다. 그 자체들은 다르지마는서도, 작용은 꼭 같습니다. 작용은  하나님 자체의 작용과 또 이 성신의 감동의 작용, 또 이 성경 기자들의 이 모든  작용, 또 문서의 작용 또 그 문서받아 가지고서 택자들의 작용, 택자들에게 또  받아 가지고 이 모든 사물들이 작용하는 거 이러니까, 이것이 다 꼭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갈 나라는 요한 계시 21장으로부터 죽 보면 거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요한 계시 21장 9절 이하에 보면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라 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이렇게 21장으로 부터 22장까지 죽 보면  상징적으로 기록했는데 요한계시 21장과 22장이 좀 깨닫기가 제일 어려운  장입니다.

 그게 이 성경을 근거해 가지고서 천지 주관하신 주라는 그 찬송을 지은 사람이  '선지 사도 터가 되고 우리들은 돌일세' 하는 그런 찬송을 지은 건데, 우리가  가서 살 하늘나라는 물론 하나님이 따로 계셔서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시요,  또 성도는 언제나 피조물 성도이요, 또 모든 만물은 언제나 사람 밑에 있는  만물들이오. 그런데 그들이 다 선지 사도 성도들이 그 하늘나라에 성문들이 되어  있고, 거리들이 되어 있고 또 성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좀 사람의  말로 그리 간단하게 말하기가 힘드는 건데 우리가 갈 신령한 나라는 그 나라에는  거리나 또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나 그 나라에 사람들이나 천사들이나  하나님이나 꼭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꼭 같은 외형을 가지고 조금도  서로 이거와 저거와 다른 이질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이질적인 것이  없고 전부 같습니다.

 전부 다 같이 되어 있는 그 나라인데, 그 나라가 어떻게 돼서 같이 되어 있는고  하니, 그 당신의 마음이 영감이요, 당신의 그 의사, 당신의 그 모든 속성과  자체를 이렇게 그대로, 사람들이 볼 수 없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당시의 그  본체 말고 본체 말고 본체에 활동하고 작용하는 예를 들면 우리 자체가 있고  우리 마음은 이렇게도 가지고 저렇게도 가지고. 뜻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가지고  하는 것이 다 우리의 그 작용이요 활동 아닙니까? 또 손을 이래도 놀리고 저래도  놀리고 이거도 작용이요 활동 아닙니까? 하나님 그 본체 말고 하나님 본체.

당신이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신 그 작용이라면 한  없는데 그 작용과 같은 그 작용이 그 작용이 나타날 때에 나타 난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이렇게 말해 그 작용이 나타난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러면 영감은 당신의 그 본체의 작용하는 본체의 활동하는 본체의 모든  속성들과 그 역사들을 다 나타내는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는데, 그러면 영감이  거기에서 나와 가지고서 영감이 나와서 우리 사람들에게 접해 가지고 당신과  같은 자를 이래 만드셔서, 그러면 우리 사람이 당신에게 동화됐고 또 당신화됐고  당신에게 동화됐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변화됐고 이래서 그 하나님은 원형이라면  성경 기록한 사람들은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형이요 모형이라.

이러면은 이 종은 종이 하나 있으니까 이 종은 땡! [주: 종을 한번 치심] 이거는  원형이요 이 종과 꼭 같이, 종을 보고서 종과 꼭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 종과 꼭  같이 만든 종의 모형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원형이라고 표시한다면 그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의  모형적 그 의사와 속성을 가지고 고렇게 변화되도록 만들고. 변화 되도록 만들어  가지고 그 변화된 그들이 또 자기네들이 발표한 것이 뭐이냐 하면 문서인데,  육십 육 권 도리 문서를 발표한 것이 또 어떻게 발표했느냐? 자기네들의 그  의사와 성품과 꼭 같은 그때에 성경 기록할 때에 자기들의 그 자체와 꼭 같은  것을 문서로 기록해 내 놓았으니 그것이 성경이라.

 그러면, 성경은 어떤 것이냐? 성경은 성경 기자, 성경 기록한 그 사람들과 꼭  같은 것이 성경이다, 꼭 같은 것이 성경이다. 그러면 꼭 같은 것이 성경이면  성경 기록한 그 사람들은 어데 나왔는가? 그 사람들은 곧 하나님의 그 의사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작용, 하나님의 작용과 꼭 같은  사람들이 돼 가지고 그 사람들이 자기들과 꼭 같은 것을 작용해서 기록해 놓은  것이 문서 성경이다.

 그러면, 성경은 뭐하려고 성경 기록했는가? 성경 기록한 것은 모든 하나님이  택하시고 십자가의 구속을 입히신 모든 자들에게 이 성경을 보내 가지고서 이  성경으로 통하여서 성경 기자들과 꼭 같은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이렇게 보냈다.

 그러면, 성경을 보냈으면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될 때에,  하나님과 꼭 같은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러면 뭘로 가지고 같은 자를  만들었는가? 같은 자를 만들은 것은 만드실 때에 당신이 그 진리와 영감이라는  진리라는 외부를 가지고 영감이라는 외부를 가져서 영감과 진리로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들이 같이 된 자기들이, 하나님과 같이 된  자기들이 자기들의 자체된 것을 발표해서 표시해 놓은 것이 그것이 뭐이냐  신구약 성경이다, 성경이다.

 그런데, 그 성경이 얼마나 정확하게 되었느냐? 그 사람들은 일 호에서 일  호에서 말 한 마디를 해 가지고서 전달하면 귀에 대고 다른 사람 안 들리게  전달하면 일 호에서 전달 꼭 그 말 했는데 이 호도 그 말하고 삼 호도 그  말했는데 저게 한 오십 명 쯤 나가서 끄트머리 가서 보면 영 딴 말 돼 버리고  맙니다. 딴 말 되고 만다 그말이오. 안 그렇습니까? 뭐 말을 무슨 말이든지 하나  꾸며서 그저 우물이 있다. 우물이 있다 이래 샘 샘이 있다. 이랬으면 나중에 가  보면 샘이 있다 했는데 저 끄트머리에서는 샘을 마셨다, 샘이 말랐다, 뭐 이래  가지고 끄트머리 영 딴 말로 변화되지요. 그런데 하나님 자체가 된 고대로  어떻게 그 성경 기자들이 고대로 그 전달을 받아서 변화가 됐을까? 또 변화된  그것도 기이하지마는서도 변화된 그들이 또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전해  줬는데 전해 준 그 성경도 성경은 그만 어느 정도 닮았는가? 그러면 하나님,  영감. 또 성경 기자들. 그게 성경 기자 그 사람들, 또 사람들이 기록한 성경,  벌써 그 다리 수가 몇 다리 건너 와서 있데 여기에 성경은 그라면 어느 정도 그  하나님과 닮아서 비슷한가? 틀림이 없다, 정확무오하다. 하나도 틀림이 없다  정확무오하다. 그러면 여기에까지는 정확무오하게 됐습니다. 그러면 성경  기자들이 그 자체가 변화돼 가지고 성경 기록한 기록돼 있는 문서까지는  정확무오하게 전달이 되어 와서 고대로 돼 나왔습니다.

 그러면 되어 나왔는데 이 돼 나와 가지고서 하나님의 목적이 뭐이냐? 이 문서를  보고 문서를 보는 그 모든 택자들. 중생된 사람들, 구속 입은 사람들이 이  문서를 보고 문서 본 사람들은 그러면 어떻게 될 일을 원해서 그런가? 문서 본  사람들도 성경 기자들과 성경의 문서와 같고, 성경 기자들과 같고 성경 기자들과  하나님과 같은 것처럼 하나님과 꼭 같은 영감이요, 하나님과 꼭 같은  기자들이요. 하나님과 꼭 같은 그 문서들이요, 하나님과 꼭 같은 그 문서를 보고  읽고 하는 사람들이요, 또 하나님과 꼭 같은 모든 접촉한 사물들이라. 이렇게 꼭  같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목적 하시기를 이렇게 목적하시 가지고서  역사하신다.

 그러면 역사하시는데 그때는 하나님이 직접하셨지마는서도 지금 우리에게는  뭘로 가지고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때에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에게  영감으로 감동시켜서 그와 같이 하신 거기에다가 하나 더 첨부 됐다. 성경  기자들에게 그 하나님이 영감으로 감동시켜서 성경 기자들이 감동 받아 가지고  그렇게 자체들이 변화되고 성경 문서를 기록했다, 문서를 기록했는데, 그  사도들은 하나님. 하나님 그 자체의 작용과 영감과 그 나오는 진리로 자체들이  변화돼 가지고서 그렇게 변화가 됐다. 변화가 돼 가지고 문서를 기록했는데  우리에게는 사도들이 사도들이 하나님화 돼 가지고 성경 기록할 그때보다 우리는  우리에게 와서 작용하는 작용은 성경 기자들에게 작용하는 작용보다 그 작용의  역사에 그 수효가 좀 줄어졌는가 늘어졌는가? 좀 줄어졌습니까 늘어졌습니까?  자, 줄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고. 또 늘어졌다고 생각하는 분  많아졌다고 생각 하는 분들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것도 저것도 못 들겠다  그말이지. 우리에게는 우리에게는 우리에게는 성경 기자들에게 그 역사한 그  종류보다 우리에게는 한 종류가 더 있게 됐습니다. 한 종류 더 있는 거는 뭐이냐  면은 문서 계시가 우리에게 더 있습니다.

 성경 기자들에게는 문서 계시가 없었고, 하나님과 그 영감이, 영감의 진리  영감이라면은 영감이나 진리나 꼭 같은 말인데 영감이나 진리나 같은 말인데  영감이 사람들에게 나와 가지고 나타날 때에는 진리입니다. 그 영감과 진리와 또  그들이 고 뿐이었는데, 성경 기자들에게는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만 접했는데,  접해 가지고 그들이 변화됐는데 변화돼 가지고 무엇을 그들이 생산했는가?  변화돼 가지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곧 문서, 이 문서 성경을 그들이 생산했다.

 그러면 생산했는데, 문서 계시를 생산할 때까지는 몇인가? 하나님, 또 영감 자  첫째 하나님. 또 둘째. 영감. 또 셋째, 그러면 영감이 내나 진리입니다. 내나  진리만 나오니까 진리라 말이오. 진리, 또 그들이 이제 이것 가지고서 자체들이  변화 됐습니다. 변화돼 가지고 또 그들이 하나 더 첨부해서 한 것이 뭐이냐 하면  변화되어 가지고서 문서를 기록했으니까 지금까지 오는 데는 몇 개입니까? 다섯  개지요? 다섯 아닙니까? 다섯, 그들은 넷으로 됐고 우리는 다섯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다섯이 우리에게 왔기 때문에 그들보다 줄어지지 안했고, 그들보다  우리에게는 하나 더 첨부됐지, 성경을 기록한 그 자들에게 그 성경 기자들에게  역사한 역사가 우리에게 와서는 줄어진게 아니고. 성경 기자들 그들에게  역사하신 그 역사에다가 더 확실한 예언이 있으니 말씀하신 이 말씀 아, 문서  계시가 하나 더 첨부됐습니다. 그래서 이 문서 계시가 하나 더 첨부됐기 때문에  사도행전 20장에도 말하기를 '내가 삼 년이나 너희들에게 밤낮 눈물 흘리면서  가르치던 이 주와 이 말씀이 너희들을 든든히 세운다' '말씀이 너희들을 든든히  세운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영감, 진리 이를 받아가지고 그 성경 기자들이 변화됐습니다.

성경 기자들이 변화됐는데 우리는 그들이 변화된 그 변화 역사에 변화 역사가  우리에게는 줄어졌습니까. 많아졌습니까? 많아졌습니다. 뭐이 많아졌느냐? 이  문서, 문서이 계시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는 성경 기자들은 문서 계시가 없이  그리 됐는데 우리는 그들보다 문서 계시가 하나 더 첨부돼 가지고서 더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역사하시는 역사가 더 많아진 것은 우리가 그 성경 기자들보다도  더 어둡기 때문에 어둡기 때문에 우리들을 성경 기자들과 꼭 같은 자를 만드시는  데에는 더 확실한 예언인 문서 계시를 이래 주셔 가지고서 우리를 만드실라고  하나님이 작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 그러면 사도들에게는 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 할  때에, 성경을 기록을 하고난 다음에 그 뒤에는 또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성경을 기록하고 그때와 성경 기록할 때와 성경 기록하고 난 다음에 평소와  다르다 그말이오. 평소는 성경 기록할 때 그때가 하나님과, 꼭 같았고. 그들이  작용하는 성경 기록도 꼭 같아서 정확무오하게 기록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록하고 난 다음에는 그들도 같지 안한 점들이 많이 있어서 사람들이 또 실수도  하고. 이래서 성경 기자들이라고 성경 기록한 사람들은 평소에도 정확무오한  사람들이 됐느냐? 정확무오한 사람들이 된게 아니라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들이 기록해 가지고서 그와 같이 됐는데. 그들이 그 정확 무오한  사람들로 돼 가지고 정확무오한 문서를 이렇게 기록해 낸 그들에게는 작용하기를  하나님 곧 영감 진리가 그들에게 작용했는데.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와 그 문서가 와 가지고 작용을 합니다. 문서가 와 가지고 작용하니까 선지  사도들이 성경 기록할 때 그 당시 성경 기록할 그때에 완전화 된 고 완전화 된  고 완전화 되게 한 그 역사보다 우리에게는 문서 역사가 하나 더 첨부 돼  가지고서 역사합니다.

 역사하는데, 그러면 우리만이 아니고. 성경 기록한 그 선지 사도들도 기록할  때는 그와 같이 기록했지마는서도. 기록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 본 약에 영감  아닌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영감을 가지고서 성장만 기록 했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영감대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영감대로 안 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선지 사도들도 영감대로 되어 있지 안하는 것들도 있는데, 영감대로 되어 있지  아니 한 그것은 무엇으로 고거는 그대로 지옥 가고 말 건가? 고거는. 고거는  뭘로 변화 될 건가? 그것은 여전 자기네들이 기록한 그 성경 말씀을 가지고  변화를 받아 가지고서 그렇게 자기네들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성경 기자들과 하나님과는 꼭 같았다. 하나님의  작용이 같았다. 그러면 마치 요것 좀 알기가 어렵지만. 우리에게 이제 나온 것은  이 문서, 이 문서와 이 글이라는 글자 이것 말하는 것 아니고, 문서에 나타난 이  진리와 문서에 기록돼 있는 이 진리와 그 영감인 문서에 기록돼 있는 이 진리와  영감에서 나온 진리와 또 영감과 또 하나님과 이렇게 꼭 같습니다. 추호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기록한 문서와 하나님의 뜻이면 진리인데, 자꾸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이리도 말하고 저리도 각도로 말해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알라고 애를 쓰면 자기가 깨달아질 거고 애를 안쓰면 못  깨달아집니다. 이 문서에 기록 된 이 문서에 기록된 이 진리와 이 문서에 나타낸  이 진리와 영감에서 나 온 그 진리와, 꼭 같습니다. 그러면 영감과 또 그 진리와  꼭 같습니다. 또 그 영감과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본체는 내비두고 영감이라면 하나님이 작용하시는  그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영감이 꼭 같고, 영감과 진리가 꼭 같고.

진리와 성경이 정확하게 꼭 같습니다. 꼭 같고, 또 그 다음으로 이 문서를  통해서 택한자들이 변화된 것은, 안 된 것은 안 된 것은 그거는 다 지옥 가 불타  버리지마는서도, 변화되는 것은 꼭 같이 변화됩니다. 꼭 같이 변화가 됩니다.

그러면 꼭 같이 변화가 되는데, 꼭 같이 변화가 된 것이니까 이 나오기는 많이  나왔지마는서도 성도나 또 성경 기자들 그때 그 사람들이나 또 문서나 진리나  영감이나 하나님과 꼭 같다. 물론 자체는 이 자체에게 영감이 같다 이 자체에게  영감이 같다. 고 영감을 받는 자체들과 종류는 다르지마는서도 종류는  다르지마는서도 내용의 진리는 꼭 같고, 영감도 꼭 같고, 또 하나님과도 꼭  같다.

 그러기 때문에, 꼭 같은 이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살게 되고 같지? 안한 것은  전부 다 도태시켜 버립니다. 다 심판에서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에는 동질이다.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이나 또 그 영감이나 예수  그리스도서나 성도들이나 또 성도들로 인해서 만물을 새롭게 한 모든 새로와진  모든 만물들이나 그것이 전부이 다 동질이다. 동질이요, 본성이 같고, 본질이 꼭  같다. 그러기 때문에, 의사도 같고, 소원도 같고. 꼭 같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충돌이나 대립이나 그런 일을 이 하나도 없다.

 이런데, 그러면 우리에게는 와 가지고 있는 것이 문서만 와 있지 않느냐 문서만  와 있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기 쉽겠는데 문서만 와 있는게 아니라 이 문서  속에는 진리가 같이 있고, 이 진리 안에는 영감이 같이 있고, 또 영감 안에는  하나님이 같이 내주해 계시고 꼭 같이 사도들을 그렇게 성경 기자들을  영감시켜서 그 성경 기록한 고 부분 만큼은 각자 이 사람은 이 성경을 기록했고  저 사람은 저 성경을 기록했는데 기록할 때의 그 때의 기록한 그 부분은 기자와  하나님과 꼭 같았다. 꼭 같아서 고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작용으로 꼭 같았다.

 꼭 같은 그것이 나와 가지고서 우리들에게 성경을 접하게 해 가지고 성경을  읽어서, 구원을 이루도록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라면 그때에 선지자들에게  작용한 것과 사도들에게 역사해서 하나님과 정확무오한 사람, 성경 기록한 고  부분만큼은 하나님과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꼭 같소. 하나님의  완전한 하나님의 모형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모형이 돼서 모형이 돼서 조금도  틀림이 없고. 모형이 되고. 모형이 된 그들이 작용한 그 문서를 기록한  문서까지도 정확무오하게 조금도 틀림이 없이 정확무오하게 그렇게 하나가  돼졌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 역사하던 그 역사가 오늘 문서를 받은  우리에게도 이 문서만이 아니고 이 성경 기자들을 감동시켜서 정확무오하게  하나님화 되도록 그렇게 하게 하던 그때에 역사한 영감, 그때에 역사한 진리,  그때에 역사하던 그 하나님 자체 이것이 우리 보기에 보이지 안해 그렇지 이  성경과 꼭 같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을 우리가 접할 때는 어떤 사람은 문서로만  접하지마는서도 이 문서인데 이 문서가 문서만이 아니고 문서 안에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 문서 안에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진리가 들어 있는데 이 진리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무엇이 창조했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의사를 발표하는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말씀이라 이랍니다. 말씀,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은 제 이위 성자인 하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이라 했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다' 했는데, '말씀으로 천지를 창초하시다' 했는데 그 말씀이 그 천지를  창조했는데 그 말씀이 천지를 창조할 때에 그 말씀이 직접 창조했습니까? 그  말씀이 천지를 창조 할 때에 말씀 창조 이렇게 됐습니까? 말씀과 이 창조에  대해서 그 사이에 하나 무엇이 끼어 있습니까? 뭐입니까? 그 안에 뭐이 끼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 안 끼어 있었습니까? 말씀이 직접 창조했습니까? 말씀이  말씀 이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이 진리라 그 진리가 창조했습니다. 진리가 창조  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은 생존하신 생존하신 하나님 자체요 하나님 자체요, 하나님  자체 그 신적 요소요. 요 좀 어려운 말인데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말씀하신  그 말씀은 신적 요소입니다. 말씀은 신적 요소요, 신적 요소요, 이제 진리는  진리는 신적 요소입니까? 진리는 이것은 신적 요소가 아니라 이 진리는 진리대로  따로 이 개별적으로 있는 이 독자적인 존재입니까? 이건 독자적인 존재입니다.

독자적인 존재.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영감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떨어져 나온 것이 영감입니다.

영감이 또 말씀할 때에 영감이 말씀할 때에 영감이 떨어져 나와서 말씀이  됐습니다. 그러나 말씀까지는 하나님의 작용이요. 말씀을 하셨을 때에 이  말씀하신 말씀이 곧 뭐이냐면 진리입니다. 그러면 진리는 신적 요소가 아니요  진리는 인격 자체가 아닙니다. 진리는 생존한 인격 존재가 아닙니다. 인격  존재가 아니고, 이 진리라는 것은 하나의 이치지, 이것이 인격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의 이치지 인격 존재가 아닌데 인격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이치인 이 이치가  없는 가운데서 모든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요게 믿어지지 안하는 자는 믿어지지 안하는 자는 들리지 안해. 내가 여기에서  봐도 요 지금 영감이 없는 사람 그저 껍데기야, 공산주의 오면 공산 주의 앞잡이  돼. 그 다 내가 모르는 것 같지마는 보고 있다 그말이요. 영감이 가야 되지  그까짓 거 입으로 줄줄하는 것이야 재주 있는 사람은 다합니다. 재주있는 그거  가지고서 영감이 돼야지 영감이 안 되면 안 돼. 자기 인격을 기울이야만 되지  행동 가지고 되는 거 아니야. 마음과 자기 인격을 기울여서 받아야 되지 안  받으면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읽을 때에 이 신구약 성경은 문서뿐이라.

문서에 한 논리라고만 그렇게만 생각하고 이 세상 문서들은 다 그거는 다  논리뿐입니다. 그거는 논리뿐이지 그 속에 무슨 그 능력이 들어 있는 것 아니라.

능력 하나도 안 들어 있습니다. 그거는 논리뿐이요 논리뿐인데, 문서뿐이요 문서  안에는 찍해야 논리뿐입니다. 논리뿐이요, 그 안에 능력은 없다 말이오. 없는데  이 문서 안에는 진리라는 능력이, 이 논리 뿐 아니요 논리 안에 이 진리라는  능력이 있는데 이 진리는 어떤 존재인고 하니 없는 가운데서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실지로 시공 역사를 한 것이 시공 역사를 그 한 지공 존재가 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시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진리가 시공을 했는데. 창조를 했는데 이  진리가 인격 존재입니까? 인격이 없는 것입니까? 인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격 없습니다. 인격 없고 이치입니다. 이치. 바른 이치. 이 진리가 모든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 가운데는 문서로 기록한 이 무신론자도 읽을라면 읽을 수  있습니다. 무신론자도 이 성경을 읽을라면 읽을 수 있고 그들이 또 이 문서  가운데에 있는 그 모든 논리를 그들이 얼마든지 논리 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논리할 수 있습니다. 논리 할 수 있지마는서도 그 안에 있는 진리, 진리는  진리는 그들이 접할 수 있느냐? 진리는 전하지 못합니다.

 요거 좀 아주 좀 어려운 말로서 이렇게 자꾸 알도록 하기 위해서 가르치니까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자꾸 알아서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지금 이  설교록이 나온 거 이 설교록이 지금은 읽을 사이도 없고 이 성경 있으면  그만이지만 이다음에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배워서 지내고 난 다음에 모릅니다.

모르니까 그때 좀 들추어 봐서 그때에 내차 없어지고 난 다음에 필요할 것이라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하는 건데, 이런 것을 어데든지 뭐 아무 데나 문서나  기억되는게 아니라 들어도 그 무슨 말인지 암만 이렇게 말해도 이 말할 때에  귀에도 들려지고 하지마는서도 그 문서로 자기가 그렇다는 것은 논리적인 논리는  자기가, 무신론자도 이 논리를 할 수 있고, 논리는 제가 문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아무리 무신론자라도 이 문서를 읽을 때에 이 문서가 못  읽게 못합니다. 이 문서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문서 거기에는 가 가지고 문서  거기에는 그저 정확하게만 돼가지고 있지 그 인간이 아닌 그 능력이 있는 거는  아니라 말이오. 이 문서 안에 논리가 있고. 그 논리 그것도 무신론자는 할 수  있어. 논리 안에 거기에 이제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 거기에서부텀은 이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이 성경 읽어 줘도 그 진리는 고들에게 접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신론자가 아무리 이 진리를  성경을 백독을 읽으면서 아무리 할라 해도 그 진리는 그들에게는 접해 주지  않습니다.

 진리에서부터 구별이 돼서. 그런데 그 진리를 접하지 못하게 되는데 왜 진리는  접하지 못하게 되느냐? 그들은 문서로는 얼마든지 읽을라면 읽을 수 있고 문서  있는 것 그거 저거 지식대로 이렇게 논리도 얼마든지 할라면 할 수가  있지마는서도 그것까지는 저희들이 이용할라면 이용할 수가 있고, 이용을  당합니다. 거기에까지는 아무 생명의 능력이 있는 것 아닙니다. 생명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이용을 당하지마는서도 그 안에 진리부텀은 그 아에 있는  진려부텀은 능력있는 그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에, 그 진리는 어떤 진리인고 하니  없는 가운데서 우주 만물을 실지로 지은 그 시공 존재 시공의 능력을 가진 것이  그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했고, 이  창조할 때에 이 진리로 창조했는데 이 진리를 진리가 하나님께 나왔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이 말씀하시니까, 말씀하시니까 말씀대로 이  진리가 나타나 가지고서 역사했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무인격 존재의 한 이치요  말씀은 말씀은 그 영감과 진리와 고 사이 경계에 영감을 발표할 때에 말로  발표했고, 말로 발표 한 것이 진리가 돼 가지고서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 성경 안에 있는 진리는 요 진리가 고 사람이 요 성경을 읽을  때에 요 진리의 도우심을 입을라고, 이 진리의 이차 창조하는, 이 진리가 진리가  이차 창조하는데 이차 창조하는 이 진리의 창조를 입을라고 이 진리는 자기보다  무한히 크기 때문에 이 진리의 도움을 입을라고 자기가 간절히 애를 쓸 때에  그때에 이 진리가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을 구원 해 줄라면 구원해 주고 구원해  주지 안할라면 안 해 주고 이 진리 당신의 마음대로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문서는 문서는 욕을 하면서, 이 신구약 성경을 욕을 하면서. 욕을 하면서  주먹으로 쥐 박으면서 읽어도 읽어집니다. 알겠습니까? 문서는 주먹으로 쥐  박으면서 욕을 하면서 읽어도 이 성경은 읽어집니다. 또 성경을 거기에. 성경에  말해 놓은 성경에 이런 이치를 말한다 하는 그 이치도 자기의 머리 좋은 사람이  얼마든지 이치도 이것을 말할 수도, 그 사람의 그 기능의 이 논리는 논리를  당합니다. 논리는 이런 논리라 그렇게 하고 논리도 당합니다. 그러나 고 안에  있는 진리부텀은 그가 암만 접할라 해야 못하는 것이오, 다만. 문서는 문서는 그  이치를 접하게 하고 이치는 진리를 접하게 하는데 무신론자가 문서도 접할 수  있고 거기에 있는 논리도 접할 수 있지마는서도, 그 안에 있는 진리는 이제 그  무한한 능력이기 때문에 제 까짓게 암만 해도 이 진리가 암만 해 봐도 외면해  버리고 접해 주지 안하면 거기에다 접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진리가 자기를  작용하지 안하고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진리 안에는 뭐 있는고 하니 그 진리 안에는 영감이 있습니다. 또  이 진리를 그 사람이 접하고 있으면서 진리 접촉으로서 그만 그만이요 만족이고,  그 다음에 영감을 접하려고 애를 쓰지 안하면 영감은 또 접해 주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진리만 접해지면은 그 사람은 나중에 무슨 사람됩니까?  교만한 사람됩니다. 알겠습니까? 교만한 사람 되는데 그러니까 진리는 접하기는  접했지마는서도 진리의 그 혜택을 받지를 못하니까 그 사람은 교만만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이 진리를 접할 때에 그 사람이 진리에게 좋게 보이고 진리가  그를 불쌍히 여길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되어지는 그것이 뭐냐 하면 영감을  영접할 수 있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인간의 말로 발표하면 겸손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감을 접하고, 그러면 진리도 무한한 능력을 가졌는데, 그러면 영감  능력인가? 영감 능력 아니요. 이 진리도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진리도 독자적 권위 영감 권위 말이오. 영감이 이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영감이  계시기 때문에 이 진리가 있지, 진리가 힘이 있지 그렇게 말하기 쉽다 말이오.

대통령이 말했으면 이 대통령이 한 말 그까짓게 무슨 말이 권위가 있으며,  대통령이 살아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명령 배후에 대통령이 있으니까 이 명령이  권위 있지 대통령 죽어 버리면 이 권위가 어데 있느냐? 이 대통령과 이 명령과  따로 떼어 놓으면 이 명령 자체는 아무 권위가 없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이 진리와 이 진리와 이 영감과 둘이  연결되어서 진리 배후에 영감이 있기 때문에, 영감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영감이 권위 있고. 영감이 계시기 때문에 이 진리가 권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영감 아닌 이 진리는 진리 단독이 그 권위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 없는 가운데 우주를 창조한 창조적 그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면 진리는 독자적 권위를 가졌고. 또 영감은 영감은 독자적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영감은 곧 하나님의 권위와 연결 돼 가지고서 이렇게 권위를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영감 자체도 영감 자체도 권위를 가졌는데 영감이면 그  영감도 독자적 권위를 가졌고, 또 하나님 자체도 독자적 권위를 가졌는데, 그  권위로 이와같이 한번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독자적 권위를 가졌는데, 그  영감은 한번 영감된 것이면 그 영감도 영감도 독자적 권위를 가져서. 하나님이  계속돼야 그 영감이 권위가 있지 하나님이 계속 연결돼 있지 안하면 마치 전선에  전등이 전선에 연결돼야 전구에 불이 켜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영감도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영감이 권위 있지 하나님과 연결돼  있지 안하면 권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언결돼서 있든지  안 있든지 영감 자체가 벌써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전선 끊기느냐 그게 상관이  없다 말이오.

 또 영감이 나와서 진리가 됐는데, 진리도 그 진리가 하나님의 배경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그 진리가 권위 있다는게 아니라 그 진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해도 그 진리 자체가 독자적 권위를 가졌고, 영감도 독자적 권위를 가졌고.

하나님은 또 독자적 권위를 가졌고. 가졌는데 우리가 성경 보는 이 성경은 문서  안에는 이 세상 학문과 같은 이 논리가 있고. 논리 안에 또 진리가 있고, 벌써  진리부텀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가 있고, 또 진리 안에 또  영감이 있고, 영감이 있습니다.

 영감이 있고, 그러면 영감이 있는데 그 영감이 하나님과 연결돼야 영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을 읽을 때에는 어떤 사람은 이 성경을 문서로만 읽는  사람. 문서로만 읽어 가지고서 보면 뭐 잘잘 잘잘 읽었는데 읽기는  읽었지마는서도 그 사람에게 성경을 읽었으니까 '보자 그 성경 그 장수에 뭐  기록이 돼 있느냐 뭣이 기록돼 있느냐?' 물으면은 하나도 모릅니다. 입으로만  잘잘 문서만 참 읽었다 말이오. 잘잘잘 읽어서 뭐 한번 읽어봐라 보자, 그러면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이면 5장을 자르록 다 읽는데 그러면 거개 무엇 무엇이  기록돼 있느냐 그 안에 있는 논리는 하나도 모른다 말이오. 논리는 하나도 몰라.

 그러면, 문서를 읽으면서 문서와 함께 그 안에 있는 무엇을 논해 놨느냐 무엇을  말해 놨느냐 하는 그 논리를 이래 접하는 사람이 있고, 문서와 논리를 접하는  사람이 있고. 문서와 논리 접하는 것으로서 만족하지 아니하고 문서와 논리 그  안에 진리 그 안에는 진리를 접하려고서 애를 써서 진리를 접할라 하는 사람이  있고, 진리를 접하는 것으로서 자기가 만족하지 안하고 진리 안에 영감 있는 그  영감과 접촉을 하려고서 그렇게 애를 쓰는 자가 영감을 접촉하려고 애를 쓰는  자가 있고, 그러면, 영감을 통해서 영감이면 다인데 영감을 통해서 그 자존하신  그 하나님이 영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접해서 그 깊숙이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에게까지 이 문서를 읽으면서 이 문서에서 논리 논리에서 진리, 진리에서  영감, 영감에서 하나님 그 본체, 하나님 자체에게까지 이렇게 자기는 찾아  들어가서 접촉을 하려고서 애를 써서 그렇게 성경을 대하는 사람 있고, 껍데기로  성경을 대하는 사람 있습니다.

 이 도무지 그 속에 영감을 받지 안했기 때문에, 사람에게 보면 사람이 틀리지  안할 수 없는 일이지마는서도, 틀리지 안할 수는 없는 일이지마는서도, 자기가  무엇이든지 하나 생각하고 주장했다가 그것이 틀려도 틀려도 희망 있게 틀린 것  있고 희망 없게 틀리는 거 있습니다. 희망 없게, 고 속에 신이 달라 가치고  틀리는 것 있고, 고 무지해 틀리는 그것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도 다 같이  사랑하는 데도 삐뚤어지게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편이 틀리는 거 그런 거  있고, 방편이 틀리는 거 그런 거 있고, 소욕이 틀리는 거 그런 거 있고, 그 속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말은 같으나 그건 틀린 말인데 틀린  말이라도 그가 무지해서 동기가 목적은 틀림이 없는데 목적은 틀림이 없는데  그가 방편이 틀렸다 그런 거 있고, 방편이 틀린 거 있고, 목적이 틀린 거 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을 접할 때에 이 성경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을 기록한 선지 사도가 그때에 하나님과 꼭같이 정확무오하게 같이 되었고,  같이 된 그들이 기록한 그들의 행사인데 그들이 그들의 소행까지 같이 됐다  소행까지 하나님과 꼭 같이 됐다. 하나님과 그들 자체와 그들의 행동과 셋이 꼭  같이 됐다. 같이 된 여기에다가 문서 하나가 더 첨부돼 가지고서 우리에게 온  것은 그 사도들보다 우리에게는 더 같이 되기가 쉽도록 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하나님 목적은 하나님, 영감, 또 기자들, 또 문서 기록한 그 행동 그  하나님과 기록한 그 사람들과 행동 이 셋이 꼭 같이 됐는데 그들의 행동이 우리  구원에는 첨부가 됐기 때문에 우리도 꼭 같이 되기를 원해서 이와 같이 하시고  있다. 이러니까, 영감될 그때에, 성경 기록할 그때의 영감이나 지금 영감이나  우리가 다시 성경을 기록하는 그것만 안하지 그 변화되고 성화되기는 꼭 같은  작용을 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성경을 접할 때에 이렇게 성경을  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나는 그 책 이름을 가리켜서  목회 설교록이라, 목회 설교록이라. 목회 설교록은 주석이 아닙니다. 목회  설교록은 논리를 위한 논리 문서가 아닙니다. 목회 설교록은 논리 문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오늘 아침에도 말하자면은, 이 영감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도록 진리가 여기에 와서 역사하도록 하는 이것을 알도록 하려고 하니까  이리 저리 말하니 사람 보기에는 뒤죽 박죽 같고 별 뭐 뭐 이렇게 흩어진 뭐 산  가루 같이 이러나, 그렇게 하는 가운데서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영감이 접속돼서  건너 가 가지고서 그가 영감의 사람이 되고 진리의 사람으로 돼서 변화가 되기를  원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참 자기가 변화가 되고 싶어서 이 설교록을 문서로 보는  사람은 문서적인 가치가 없을 것이요, 학문적인 가치가 없을 것이요, 또  논리적인 가치가 없을 것이요, 아주 없는 거는 아니지만 적을 것이요. 또  취미적인 그런 것도 아무것도 별로이 없을 것이요. 다만 이 자기가 문서로  말하는 가운데에 이 문서 속에 논리 들었고, 논리 속에 진리 들었고, 진리 속에  영감 들었고, 영감 속에 하나님이 들었는데 그분을 접해 가지고 자기 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자에게는 보면 이 책을 떨어지지 못할 거라 그말이오. 그러면 그  자는 참 보배로움을 알지마는 그 자 외에는 그 뭐 아무, 그러기에, 외식자는 이  설교록은 읽어야 아무 취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도 많은 말 가운데에 자꾸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것은 그런 가운데서 인간이 인간의 말로 발표할 수 없는 이렇게  저렇게 말할 때에 인간이 발표할 수 없는 그런 속에 인간의 말로 발표할 수 없는  그 신령한 면 세밀한 면 인간의 지식에 없는 인간의 지식에 없는 그 면 그것을  혹 접해 가지고서 접촉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에서 성신의 감화로 변화되는 사람 변화될 것이고.

여기에서 문서적인 가치 무슨 웅변. 웅변적인 가치를 지금 바라는 사람 여기에  와 가지고는 지질 날 것이고. 무슨 조리적인 조직적인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도  낙망할 것이고, 무슨 또 문학적인 그런 것을 바라는 사람도 낙망할 것이고, 다만  이런 가운데서 성령에 접해 가지고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내 자체가 변화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에 여기에서 변화를 받을 것이라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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