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3:00
성경을 주신 목적
본문: 베드로후서2장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 목적과 소원을 가지고 계시는데 이 소원과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 어떤 분이냐 돈도 그분의 것이요 세계도 그분의 것이요 물질도 그분의 것이요 다 인간도 그분의 것이요 또 이 하늘도 땅도 뭐 별도 공기도 바람도 물도 짐승도 버러지도 이런 식물도 전부 그분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이 소원하시는 것이 내게 대해서 소원하시는 것이 목적하시는 것이 나로 하여금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이기 이루어지기 만을 목적하시고 소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이 두 가지에만 전심 전력을 기울이면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내가 쓸 것이나 그런 것은 뭐 내 직장이나 사업이나 그런 것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온전한 사람되고 온전한 행위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우주라도 애끼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라도 애끼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요 두 가지만 힘쓰는 사람이라면 그나머지기는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가 없고 요 두 가지만 힘쓰면 그 나머지기는 하나님께서 요 두 가지를 달성하는 데에 모든 것을 적절하게 모든 것을 알맞게 필요한 대로 모든 것을 알맞게 다 요것을 하나님이 전부 일으켜 주십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요 두 가지를 목적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거기서 어두워집니다.
요 두 가지만을 목적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무엇이 오면 이 일은 내기에 유리한 일이다 이것은 내기에 없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기가 이 일은 나쁘다 좋다 하는 고것이 어디서 나오느냐 사욕에서 나옵니다. 사욕 사욕이 어떤 것이 사욕인가 사욕은 하나님의 목적 과 소원인 요 소원 요것이 성령의 소욕이라 하나님의 욕심이요 너희들이 육체의 소욕으로 살면 사망이요 성령의 소욕으로 살면 생명과 평강이라 그러면 성신이 소욕한다 말은 성신의 욕심이라 그 말이요.
그러면 하나님의 욕심을 우리 욕심으로 살면 전체는 생명과 평강만 이루어진다 그러면 하나님의 욕심을 우리 욕심으로 삼는다 하나님의 욕심이 뭐인데 하나님 앞에 감사함니다 하고 어떨 때는 하나님 앞에 이거 와 이렇습니까 섭섭하게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왜 그러냐. 다 같은 사람으로 꼭 같은 형편을 당했는데 한 사람은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입으로만 감사하는 기 아니라 진정 감사를 합니다.
그 사람이 감사하는 것을 보면은 세상 사람과 감사가 다른 것은 세상 사람은 다 보통으로 다 그 일반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감사하는 것은 돈은 와야 감사하고 돈이 가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돈은 와야 감사하고 또 병은 가야 감사하고 가난도 가야 감사하고 이런데 다 같은 사람인데 믿는 사람인데 두 사람이 한 사람은 돈이 오니까 감사하고 또 한 사람도 돈이 오니까 감사하고 두 사람이 다 돈이 오니까 감사합니다. 돈이 가니까 한 사람은 그 감사가 없어지고 한 사람은 감사가 그전에 돈이 왔을 때에 감사하는 그 감사를 고만한 양의 감사 고만한 정도의 감사를 하지 안하고 고보다 더 도수가 높은 감사를 합니다. 그 왜 그렇겠습니까. 그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것이 자기 목적과 소원을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소원하신 그것을 자기 목적과 소원으로 바로 가진 그 진실한 사람입니다. 진실한 사람인데 그러면 올 때 감사하는 것보다 돈이 갈 때에 감사를 더한다. 왜 그런고 하니 돈이 올 때나 갈때나 자기 목적 달성하는 데에는 꼭 일반적인 꼭 같은 그 필요성을 가지고 있고 같은 효과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같이 감사해야 될 터인데 어떻게 해서 감사를 더 하는고 더 하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왜 더 하는고 하니 효력은 이용 가치는 같고 그 효력은 둘 다 같지마는 자기를 생각할 때에 자기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돕는 일이 아니라면 자기로서 는 그 래도 돈이 없어서 경제에 곤난 당하는 것보다도 경제에 풍부 당하는 그것을 일반적인 사람이 다 원하고 또 자기도 그것을 원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 데 하나님이 이렇게 돈이 없어지게 하는 이일을 하지 안했으면 자기에게 만일 선택을 하라고 해서 자기가 내가 부한 것을 선택하겠느냐 가난한 걸 선택하겠느냐 너는 어느 것을 원하겠느냐 자기에게만 맺겨 뒀으면 아마도 부한 것을 선택하고 가난한 걸 선택하지 안할 터인데 이 선택을 자기에게 맡겨 주지 안하고 하나님이 맡으셨기 대문에 자기에게 거슬리는 이 일이 필요할 때에 이 거슬리는 이 일을 이루어지게 해 가지고 자기로 하여금 이 목적을 달성하게 하시니 만일 하나님이 자기에게 좀 이 면에 대해서 맺겼더람녀은 자기는 부요한 그 면을 택하는 데에 주력하고 가난한 면을 택하는 데에 주력하지 안했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 본능과 자기 비유와 자기 성격에는 그 가난한 그 면을 택하는 그것보다도 부요한 그면으로 기울어지기 쉬운데 하나님이 이걸 맡았기 때문에 자기 성미에 맞기를 (부요가 맞는 것 보다도 아니라) 가난이 맞는 것보다 부요가 많이 맞는데 자기 본질과 본성에 거리 먼 것을 하나님이 일으켜 줘 가지고서 목적 달성을 하게 했기 때문에 거리 먼 것을 일이켜 줬으니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이고 자기에게 맡겼으면 극설 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리겠습니까. 이것도 처음으로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듣기가 어렵습니다. 하나 비유를 할라면은 그 비유가 될런지 안될런지는 모르지마는 약간은 그저 되겠습니다. 그 부모 가 그 자녀에게 음식을 주는데 이 아이는 단 것만 좋아합니다. 단 것만 좋아하고 씁은 것은 싫어합니다. 싫어 하는데 이 아이 자기에게 지금 그 찬장에 단 것도 많고 쓰운 것도 있고 매운 것도 있고 뭐 신 것도 있고 온갖 기 다 있는데 이 아이에게 선택해서 네가 먹으라 하면은 항상 단 것만 택해 가지고 먹어서 편식을 해 가지고서 이 몸이 약해질 터인데 자기가 그 음식을 선택해서 먹도록 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선택해 주니까 부모가 선택해 주니까 어떨 때는 단 것 주고 어떨 때는 신 것 주고 어떨 때는 떫은 것 주고 이럴 때에 단 것 줄 때는 좋고 떫은 것 줄 때에는 싫고 이런데 어떨 때는 씨워서 견딜 수 없는 먹을 수 없는 걸 떡 준다 이기요. 주니까 이거는 참 못 먹겠어 저 혼자 자기에게 식물을 선택해서 자유로 먹으라고 해 줬으면 이거는 씨운 것은 평생 안 먹고 단 것만 먹었을 터인데 부모가 자기 체질을 보고서 모든 것을 조절해 가지고서 음식을 주니까 씨운 것을 준다 말이요. 그러니까 씨운 것을 만났을 때에 그 아이가 나 혼자 내가 선택해 먹으면은 단 것 먹고 씨운 것 이기야 내가 택해 먹지 않을 것이다 이 씨운 것 이것이 내 몸에 유익하기 때문에 부모가 주시는 것인데 이것은 이 음식 선택을 나에게 맡겼고 그 내 자유대로 하라 했으면 이 씨운 음식 이것은 내가 먹지 안했을 것이다 이런데 이 부모가 선택해 주기 때문에 씨운 음식 이것이 내게 필요한 걸로 선택해 주니 씨운 걸 줄 때마다 이는 참 부모가 날 생각해 준 것이다 단걸 줄 때 그때는 부모가 선택해 안줘도 이기야 내가 선택해 먹을 수 있는데 그 독하게 쓰운 그것은 그걸 먹게 될 때에는 이야말로 부모가 나에게 강권해 먹이지 않으면 내가 이걸 먹어야 필요한 몸에는 이걸 안 먹으면 내가 절단이 난다 그 아이가 바로 깨달았다면은 그 부모가 자기 구미에 맞인 않는 그것을 줄 때마다 구미에는 맞지는 안하지마는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부모가 내 지식보다 높은 지식을 가지고서 나를 참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 하는 그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그 말이요. 아이들도 느낍니다. 안다 말이요.
아는 아이는 알지마는 서도 모르는 놈은 왜 이 날 해롭게 할라고 지금 나를 미워서 쓰운 것 주셨는가 이렇게 꺼꾸로 생각하는 그런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그 이 쓰운 것 먹기 싫은데 와 이걸 주는고 그러면 네게 해로운 것을 주느냐 그때는 멈칫해 가지고 해로운 것을 주지 안하지마는 그래 쓰운데 어짜노 이러면 서 자기가 판단하기를 해로운 걸 주지는 안하지 유익하기에 주기는 주지 마는 내게는 쓰워서 안됐는데 이라는 놈 있고 그보다 좀 더 깨달은 놈은 이걸 주니까 야 이거는 쓰다 하니까 먹을 걸 생각하니까 좀 상을 징그리면서도 그 그걸 먹으면서 그 느낌이 있다 말이요. 야 쓰운 걸 주니까 단 것 줄 때보다 이 쓰운 것 줄 때는 날 사랑하는 기 더 강하다고서 왜 단걸 주면은 그거 내가 잘 먹을 터이니까 그리 힘 안 들어도 되지마는 이 쓰운 걸 주니 내가 안 먹을라 하니까 기어코라도 먹도록 해가지고 야단하는 것은 내게 대한 관심이 단걸 줄 때보다 더 관심이 강해지고 커지고 더 그렇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그것을 어린 아이들 때 느낀다 이기요. 아이들도 느끼요. 그 어린아이그래 뭐 저는 제가 그 그때 여섯살인가 먹을 때에 내 배 안에 뭐 이런 기 뭉쳐 가지고 있었어 뭉쳐 가지고 있는데 그 소태 소태라고 아주 쓰운 기 있습니다. 그걸 꾸어 가지고서 새 까맣게 요 똑 콩알만침 해 가지고서 이것을 먹으라 하는데 그씁기가 어떻게 쓰운지 뭐 그걸 먹을 때마다 부모에게 대한 원망하지 안하고 먹을 때마다 거게 대해서 내가 감사를 했어. 이거 참 내게 유익된 내가 이거 싫어 하는 이걸 내게에 이렇게 유익하게 유익하기 때문에 요걸 없애기 위해서 내가 이 싫어하는 이런 약을 구해 가지고서 부모가 먹게 하니 이것은 부모의 사랑이 아니면 내가 싫어하는 일을 뭐할라고 해줄 턱이 있나 내가 싫어해도 기어코라도 내게 유익한 것은 하는 이것이 부모의 사랑이라 하는 그것을 제가 조그만할 때 요만할 때 느꼈소. 그걸 느끼 가지고서 그걸 먹으면서 늘 속으로 참 부모님께 감사를 하고 또 먹을 때마다 또 부모에게 말을 했어. 나 이 약 먹었습니다.
그 먹었다고 하면 내가 먹는데 그 먹었다 하면은 부모가 좋아할 줄 알고 나 그 시간에 그 약을 먹었습니다. 그 쓰운 약을 먹었습니다. 야 너 잘했다 참 착한 사람이다 이래서 그걸 먹었다 하면 좋아할 줄 알고 부모에게 먹었다고 말했고 또 그걸 먹으면서 이거 나를 사랑해서 내 몸에 이 병이 있는 걸 내가 먹기 싫어하는 걸 싫어할 줄 알면서 도 이것을 먹게 해 주시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다 이래서 그때부터 그 말로 표시느느 못해도 그 부모의 사랑은 자녀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거기에 요새 말로 하면은 제재받지 않는 그 말을 그때는 그런 말 모르지마는 거기에 이제 그 꺽어지거나 지지 안하고서 기어코라도 내게 유익된 것은 하라는 것이 부모다 하는 그것을 제가 6살 그때 어릴 때에 그것을 느꼈소. 지금 아마 지금 아이들은 그때 아들 요 랑하면 지능이 뭐 얼마나 빠르고 또 더합니다.
이러니까 아마 요새 아이들은 한 말 할 줄 알면 그 아이에게 말하면 그 얘기를 다 알 것입니다. 다 들을 것이요.
이와 마찬가지라 이기요. 오늘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이 목적을 달성 하는 데에는 온갖 그것이 구비한데 그 구비한 것이 어떤 것이 구비한 그 우리 모릅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돈이 필요한지 가난이 필요한지 삶이 필요한지 죽음이 필요한지 매가 필요한지 그 칭찬이 필요한지 이거 모른다 이기요. 우리는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목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여 내기에 무엇이 필요한지 나는 모릅니다.
당신만이 이 필요한 것을 아실수 있고 또 나는 안다 할지라도 그걸 내가 구비할 실력이 없습니다. 당신만이 이것을 구비할 그 실력이 계십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내가 어리석어서 어떨때에는 싫다 하고 어떨때에는 좋다 하고 이것이 너무 유지하기를 아주 뭐 무지한 짐승 같이 이러니까 내가 싫어하든지 좋아하든지 마다 하든지 기어코라도 내 구원에 필요한 것을 적응시켜서 이 구원을---(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