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아는 방법

 

1986. 12. 20. 새벽(토)

 

본문: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기도합시다.

우리들을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사 주님의 것을 만드시고 주님이 설정하신 일곱 가지 대속을 우리 것 삼아 주신, 주님의 것으로 영원히 살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새로운 창조의 역사요 이 역사 외에는 인간의 어떤 사람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조그마치도 여게는 상관도 아무런 이룰 수도 없는 이 사실인 것을 확실히 저희들이 믿는 저희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성령님이 오셔서 이 비밀을 확신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그저 평신도로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보다 이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나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좋은 점은 어떤 것이 좋은 점이냐? 성경은 이리도 해석하고 저리도 해석하는 그 해석이 많은데 거기에 수많은 해석들이 있는데 수많은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고 거게 옳은 것은 하나뿐이다 하는 이것을 깨달아서 ‘성경 한 절을 가지고 그 사람의 신앙과 구원이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좌우된다. 성경 한 절 잘못 깨달음에서 구원과 멸망이 완전히 결정되는 것이다. 또 성경 한 단어를 위로 붙이면 멸망이고 아래로 붙이면 구원 된다.’ 이 성경에 정확성을 자기가 거게서 깨달아서 ‘성경은 정확히 모르면 안 된다’ 이걸 알면 신학에서 유익을 보는 사람이고, ‘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니까 그 성경은 이래도 저래도 아무나따나 주 대서 해석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아는 사람은 그 사람은 신학으로 멸망을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을 네가 어려서부터 알았다, 안다는 것은 그러면 신구약 성경이 육십육 권이라 창세기는 뭣뭣이 있고 계시록에는 뭣뭣 있다 성경의 그 내용을 이렇게 저렇게 성경 공부도 하고 또 성경을 외우기도 하고 많이 읽어서 성경을 다독을 해 가지고서 많이 읽기도 하고 한, 그래서 성경에 있는 여러가지 지식을 아는 그것을 가리켜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그거 아는 것을 가리켜서 “네가 알았나니” 이렇게 말을 하는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능히” 성경의 그 능력을 아는 것을, “네가 어려서부터 네가 성경을 알았나니” 하는 것은 성경의 그 권위, 성경의 권위 아는 것을 가리켜서 말했는지, 성경의 내부에 이런 저런 모든 논리와 주장들과 이런 말씀들과 이런 것들이 있다 하는 그 내용에 이런 저런 그 모든 사건이나 단어나 그런 거 안 것을 가리켜서 여게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말하는 것인지 성경의 어떤 능력을 가졌다는 성경의 그 능력 그거 안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인지 뭣을 말한 것인지?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하는 것은 성경 안에 이런 내용 저런 내용, 이런 역사 저런 역사, 이런 인물 저런 인물, 그런 내용 이런 인물들이 있는 내용의 그런 것을 아는 것을 가리켜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하는 말인지 성경의 능력을 네가 알았나니 하는 말인지 뭐입니까? 성경에 이런 저런 내용이 있는 것을 네가 성경을 많이 읽어서 알았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으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성경의 권위성, 성경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성경의 그 정확 무오성 권위성, 성경의 권위성, 성경이 어떤 능력을 가졌다. 성경의 그 권위성을 알았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여기서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손을 드는데 그겁니다. 이제 말한 그거요. 그 전에 말한 것 아니오.

그런데, 그것을 다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이 성경의 권위성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

그러기 때문에 요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는데 해석이 천 명이 해석했으면, 천 명이 각각 해석을 했으면은 그 천 명 가운데 맞은 것이 열 개겠습니까 스무 개겠습니까 백 개겠습니까? 몇 개나 되겠습니까? 그 몇 개나 되는고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하나뿐입니다. 성경의 바른 깨달음은 하나뿐이지 그걸 바른 깨달음을 이런 비유로도 가르칠 수 있고 저런 비유로도 가르칠 수 있고 이런 걸 저런 걸 예를 들 수 있고 그런 거는 뭐 그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몇백 가지 몇천 가지 들 수 있지마는 거게 이치는 하나뿐입니다. 그 하나인 이치 그것을 잡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이래서, 김현봉 목사님이 주석, 어떤 주석가들 주석을 보고서 ‘그 사람의 주석은 죽은 책이다’ 죽은 책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데 말했어요.

‘그 사람의 책은 죽은 책이다.’ `어떻게 죽은 책이라 합니까?’ ‘거게는 그저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 것뿐이고 너는 어떻게 믿느냐? 자기는 어떻게 믿는다는, 자기는 어떻게 깨닫는다는 그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 안하고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저렇게 깨달았다고 소개만 하기 때문에 그거는 생명 없는 책에 지나지 못하지 그 사람의 신앙은 생명이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하나라는 그걸 잡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라는 걸 잡았는데 바로 잡았으면 어떻고, 하나라는 걸 잡았으면, 하나라는 것만 잡았으면 좋습니까, 하나라는 것을 잘못 잡았으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 알겠습니까? 바로 잡았으면 그거는 산 사람입니다.

그래, 조금 말이지, 여게 ○○○선생이 미국 가서 공부하다가 와 가지고 이제 거게 대해서 한 성구에 이런가 저런가 그것에 대해서 이제 좀 눈이 떨어져 가지고 알라고 ‘이건가 저건가 요게 요렇게도 말할 수 있고 조렇게도 말하할 수 있는데 이건가 저건가 그것을 참된 걸 바로 알아야 되겠다’ 하는 거게 대해서 가치성을 알게 된 그걸 보고서 ‘이제 살기 시작한다. 좋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먼저도 전화로 제가, 저한테 전화로 몇 가지 묻기 때문에 돈 든다고 이래제가 학생이니까여게서 전화를 해 가지고 그것을 내가 전화로 가르쳐 준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신신학이니 이단이니 하는 것이 많은 게 틀려 그런 거 아닙니다. 자기가 신학 전공을 이래 할 때에 한 교리가 틀리면 그거는 마지막은 전부가 다 틀리게 됩니다. 한 교리가 틀렸는데 그게 틀렸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하니까 그걸 옳다고 자기는 변명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가 틀리면 모든 성경을 결국은 그대로 해석하기 마련입니다.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성경은 능히” 성경은 능히 하는 이거는 넉넉하다 그말이오. 성경은 가능성이 있다는 그말보다도 여게는 “성경은 능히” 성경은 이 일을 완전히 이룰 수 있다 하는 그 능력을 “성경은 능히” 하는 것을 여게는 좀, 그저 그럴 수 있다 하는 게 아니라 “성경은 능히” 하는 요것은 절대성을 가진 능력을 말합니다. 성경은 절대적으로 너희들의 구원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면 “능히” “성경은 능히” 성경의 독자적 그 권위성, 독자성 권위성, 이 권위성은 절대성입이다. 절대 권위성입니다.

그러면 “성경” 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말해요. 이 진리를 말합니다. 성경책이 그런 권위 있다 말 아니고 “성경” 하는 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 밑에 말해 놨습니다. 이 “성경은” 하는 것은 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책이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이 진리, 진리가 뭐인데?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뭐인데? 영감. 그 내용을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성경은 능히” “성경은 능히” 이걸 자꾸 이래서 우리가 성경에 바로 깨달음으로 자꾸 능력을, 그 안에 있는 권위성을 바로 깨달아, “성경은 능히” 하는 것은 성경의 독자적, 성경이 독자적 권위성을 가지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뭐, 그거 다 같은 말이라도 예를 들면은 ‘부산 시내에 있는 불을, 이 등화를 오늘은 밤새껏 켜 놔라. 밤새껏 켜 놔라.’ 하는 그말을 어떤 사람이 다니면서 외치는 그 말과, 여러 수백 번 다니며 외쳐서 켜 놓으라 말과 저 위에 그 나라에 정권 잡은 ○대통령이 예를 들어 말하면 ‘어느 날 밤에는 부산 시내에 불을 끄지 말고 전부 등을 다 불을 켜 놔라.’ 이래 말했으면 그날 밤에 여게 부산에 불이 켜집니까 안 켜집니까? 켜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켜집니다.

왜? 부산 시내에 있는 모든 그 행정원들이 다 불을 켜도록 동원하기 때문에 불이 켜집니다.

그러면 그 말이 정권을 만일 내놓은 사람,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그 말이 다릅니다. 다른 것은 그 말 한 사람이 권위가 있기 때문에 그 권위가 있어 등불이 켜지는 것이지 그 사람, 말한 사람이 정권에서 물러갔다든지 그 사람이 세상을 뜨고 없었다든지 할 때에 그 말이 그렇게 권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람과 권위와 같이 있어 사람 때문에 말이 있는 것이지 말 자체가 권위 있는 것은 아니라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이 말씀은 권위가 있지 그 말, 하나님 아니고,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가정으로서, 하나님이 없어지지 안하지만 하나님이 없어졌다 할지라도 그 말씀의 권위는 그대로 있고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여게 성경의 독자적 권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여게 대해서도 믿는 사람들이 여러가지로 믿는 사람들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전능자가 말했기 때문에 그 말씀은 전능의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주권하시는 분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 말씀은 주권하신 분의 말이기 때문에 주권의 능력을 가진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말이오. 그건 다 가짜입니다. 그거는 헛일이오. 이걸 모르고 벌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말이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이라 권위 있는 것 아니고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권위 있지만 그게 아니고 그 권위는 다 없애 버린다 할지라도 성경의 이 진리는 자체가 독자적인 그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 성경 말씀인 것입니다.

이래서 지난밤에도 이 성경 말씀은 어떻게 지혜 있고 통달하고 어떻게 명철한 사람이, 아무리 명철한 사람, 또 세상에 모든 지식을 통달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이 성경 읽으면 뭐 이거 한글로 써 놓은 이 성경 읽으면은 얼마든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천하의 지식을 다 가지고 천하에 제일 명철한 그 선천 후천의 명철한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성경 말씀을 업신여기고 읽을 때에 이 성경이 그에게 알려지지를 않습니다. 또 이 성경 말씀이 그 사람을 모르게 할라고 하면은 그 사람이 아무리 명철해도 한 마디도 모릅니다. 읽기는 읽고 외우기는 외우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도 성경에 대한 이 생명의 능력의 효력은 하나도 모르고 또 받지도 못하고 또 쓰지도 못합니다.

이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받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 아무리 말해도.

쓰지 못한다 말은 아무리 그 사람이 평생 이 성경을 증거한다 해도 생명 역사는 하나도 거게 역사하지 않는다, 쓰여지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거 뭐 하나만 알아도 알면 모두 다 아는데 이거 암만해야 껍데기로 알고 도무지 성경의 내용을 바로 알라고 하지를 안해요.

성경의 독자적 능력성, 독자적 권위성 이것을 신학에서 말을 하고는 있습니다.

이러나 성경의 독자적 권위성이라 하는 것을 아는 것이 너무도 천박하고 좁고 편백돼 가지고서 바로 아는 데는 근방에 가지도 안 했다 그말이오. 얼마나 이게, 성경 말씀이 이렇게 성경 말씀은 크고 넓고 깊고 길다는 걸 이걸 알아야 될 터인데 모두 우리는 성경을 권위 없게 봐요.

그러기 때문에 말하기를 성경에 대해서는 뭐라 했습니까? 모든 책의 독서량보다도 성경의 독서량이 뭐라 했습니까? 많아야 된다고 했어, 많아야 된다고 했어. 성경에 있는 것을 모든 것을 다 믿고 또 순종하고 또 뭐라 했습니까? 마지막에 뭐라 했소? 성경을 뭐라 했습니까? 뭐라고 말했소? 어데든지 가지고 다니라 했다 말이오. 그것도 얼마나 중요하고 중량이 큰지 모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요 믿음에 대해서도 믿음관, 이 믿음관, 믿음관이 이것이 다 삐뚤어져 가지고 있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다. 뭐 천의 구백구십구는 삐뚤어져 있소. 천의 하나나 맞아 있을까.

그저 이 시장에서 믿는 거, 뭐 인간끼리 서로 믿는 거, 모든 이 과학을 믿는 거, 또 이 연사를 믿는 거 이런 거 모든 그런 데 믿음이라 하는 것은 뭐 그게 천 종류 만 종류도 넘는데 그런 믿음을 다 가져서, 시장에서 만든 믿음, 과학에서 만든 믿음, 윤리에서 만든 믿음, 불교에서 만든 믿음, 공산주의에서도 만든 믿음이 있지 않습니까? 공산주의가 공산주의 사상을 믿는 믿음이 있고 불교인은 불교를 믿는 믿음이 있다 말이오.

그러면 그런 믿음과 이 믿음이 같은 믿음입니까 아주 딴 믿음입니까? 그거는 누가 만들었소? 그 믿음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인간이 만들었고 마귀가 만들었습니다. 그 믿음은 다 죽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다 장막집에 속한 것이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입니다. 이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이 그저 이 세상에서 사람 사람끼리 믿는 거, 또 윤리적으로 믿는 거, 도덕적으로 믿는 거, 이 종교에서 저 종교에서 서로 믿는 거 그 믿음과 같은 믿음으로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렇게 나타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지 그 밖에 있는 믿음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니까 뭐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그리스도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이라는 이 믿음은 그 믿음의 존재가 천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부터 시작됐습니까 후에 시작됐습니까? 전에부터 시작 돼. 그 연고를 말하는 거라. 얼마나 나이가 많은가? 나이는 창조보다 나이가 많고 예정보다 나이가 많고, 하나님이 제일 나이가 많고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둘째로 나이가 많고 셋째로는 그때 이 믿음이 시작됐다 그말이오.

“그리스도” 그러면 그때 시작된 믿음이 언제 완성이 됐습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서 이 믿음이 완성됐기 때문에 이 믿음은 거게만 전용되지 아무나따나 믿는 믿음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자꾸 텁텁해서 썩어서 텁텁하다 말이오. 어찌 텁텁한지, 텁텁해서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것도 저것도 좋다. 사람들이 까끌까끌하지를 안해. 사람은 밤송이 같아야 돼요. 꼭꼭 찔러야지. 요모 조모 밤송이같이 그 사람은 요모 조모 각도가 뾰족뾰족해서 뭐 뭐이든지 틀리면 딱딱 틀렸다고 다 끊겨지고 그래서 에스겔서 1장에는 ”단쇠 같다.” 쇠를 녹히면 뭣 됩니까? 쇠를 녹히면 뭣 돼요? 땐땐합니까 물입니까? 쇠를 녹히면 물이 돼. 물 같지마는, 물 같지마는 그거는 안 타는 데는 물 같지마는 타는 데는 닥치면 확확 다 타 버리는 거라 그말이오. 그러면 믿는 사람은 아주 그 진리에 대해서는 부들부들하지마는 비진리에 대해서 틀리는 데 대해서는 남구지 안하고 다 절단을 내 버리고 태운다 그말이오.

믿는 사람이 이렇게 좀 속에 까끌해, 예수 믿는 사람은 믿어가면은 뼈가 강합니다.

속에 뼈다귀가 강하요, 속에. 속에 깨갱이가 있습니다. 강하요.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인데 예수 믿을수록이 무골호인이라.

그러니까 불교인은, 불교인은 사진 보면 이 사람 불교인이다 알 수 있어. ‘음’ 부처와 같소. `음' 이라지마는 예수님 잘 믿는 사람은 막 까끌까끌하이 밤송이 같은 거라, 밤송이. 전부 날카로운 면모칼 같애. 그 사람이 예수 잘 믿는 사람이오.

이러니까 조그마치라도, ‘요건 요거가 틀렸다.’ 그러니까 책망을 잘 잡아.

`요거는 요게 틀렸다.’ 어떻게 까다롭다 말이요, 까다로와. 예수 잘 믿는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입니다, 까다로운 사람. 까다로운 사람이면서 다만 사람에게 대해서 용서하는 것이 크고 또 용납하는 게 크고 이러나 옳고 그른 걸 몰라서 이와 같이 그런 게 아니고 옳고 그른 걸 요걸 까끌까끌하게 다 알아서 세밀히 알지마는 거게 대해서 참고 견디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른 척하고 지나가고 이렇지마는 거게 대해서 그 마음 한번 요래 가진 거 조래 가진 거 행동 요래 한 거 낱낱이 다 아는 것이 그게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암만 있어야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모릅니다. ‘저 사람은 요래 보면 요런 사람이고 또 보니까 또 그게 아니고 저래 보면 저런 사람이고’ 그러면 이래 보면 이런 사람이고 저래 보면 저런 사람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만치 돼져야 알지 그리 안 하면 모른다 그말이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요 믿음은 딴데 있는 믿음이 아니고 요 믿음은 예수님의 이 구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구원 요것만 믿게 하는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요것만 믿게 하는 믿음이오. 이 믿음 가지고 친구도 믿고 뭣도 믿고 딴데 믿구로 한 믿음입니까? 이 믿음이 딴데 쓰입니까 안 쓰입니까? 요것도 여러분들이 지금 아직까지 구별하지 안하고 있다 말이오. 요 믿음을 딴데 씁니까 안 씁니까? 딴데 쓰이요 안 쓰이요? 부모가 자식을 믿고 자식이 부모를 믿고, 친구가 친구를 믿고, 아내가 남편 믿고 남편이 아내 믿는데 거게 요 믿음 씁니까 안 씁니까? 요 믿음이 거게 쓰이요 안 쓰이요? 쓰인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안 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뭐인지 몰라.

요 믿음은 상관이 부하 믿고 부하가 상관 믿고, 자식이 부모 믿고 부모가 자식 믿고, 자식이 부모 믿는데 자식이 부모 믿는 거기에 쓰이는 믿음입니까 안 쓰이는 믿음입니까? 거게 안 쓰이는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못 들어.

안 쓰여! 아무데도 못 써. 요 믿음은 아무데도 못 써.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는 요게만 써. 알겠습니까? 요게만 써.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이 믿음은 다 혼잡시켜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사람들을 다 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어디든지 믿는 그 믿음인 줄 알기 때문에 요 믿음을, 요 전용이란 믿음, 요 믿음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권위 있으며 요 믿음은 뭐하기 위해서 난 믿음,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라 할 때에 걸어가다가서 빠졌는데, 네가 믿음이 적은 연고라, “적게 믿는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적게 믿는 자. 그 믿음은 요 믿음과 다른 믿음입니까 요 믿음입니까? 요 믿음입니까 요 믿음과 다른 믿음입니까? 요 믿음과 한 믿음이라고, 요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봐, 이래 놓으니까 몰라. 이 믿음이야, 이 믿음. 이 믿음. 왜 손 안 들어? 이 믿음은 다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구원, 우리가 받는 구원, 예수님의 도성인신, 어데부터? 우리의 구원이 어데부터 시작했습니까? 우리의 구원이 어데서부터 시작했습니까? 천지 창조 후에 시작됐습니까 창조 전에 시작됐습니까? 창조 전. 그러면 예정 전에 시작됐습니까 예정 후에 시작됐습니까? 예정 전.

불교는 언제부터 시작했다 했습니까? 천지 창조 전입니까 창조할 때부터입니까? 창조할 때부터니까 창조 후 여러 천 년 후입니까 창조할 때부터입니까? 여러 천 년 후야. 이천 몇백 년 됐으니까 지금 역사는 육천 년이 다 돼 가니까 삼천 수백 년 후에, 천지 창조 삼천 수백 년 후에 된 것이고 우리 구원은 천지 창조 전, 예정 전, 하나님이 자존해 계시고 이호로 있는 것이 우리의 구원의 시발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알아야 되는데 이걸 모르기 때문에.

이거 뭐, 모르겠어. ○○목사님 아들이 자기가 여기 있는 모든 설교를 정리해 가지고 가면서 이만하면 미국을 뒤비뜨릴 수 있다고 지금 갔는데 가서 설교를 할라 해도 설교를 못 해, 이민권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 어떤 사람이 요것만 가지고 가면 어디든지 가면 가는 데는 뒤비뜨립니다. 가는 데는 뭐 박사든지 뭐이든지 가는 데는 만나면 다 깨져 버리고 맙니다. 만나면 말이지요. 자기네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안 되면 논리로 해서라도, 성경 가지고서 서로 논리한다 해도 다 논리적으로도 이기고 권위적으로 이기고 이깁니다.

그러나 이거, 유일한 하나님이, 유일한 하나님, 유일한 하나님, 오직 한 분된 하나님, 유일한 하나님, 유일의 진리, 유일의 구원, 이 하나뿐인데 이 하나라는 것을 다 떠글뜨리고 보니까 여러 수십 수백 수천 만도 넘으니까 그만 창기 신앙이 되고 창기 구원이 된다 그말이오. 지금 이걸 깨달은 사람은, 문선명씨가 종교 통일을 말하다가 요새는 종교 연합을 말해. 내가 신문 그거는 참 안 보고 혹 볼까 안 보는데 그날은 빼 보고 싶어. 빼 가지고 착 펴니까 종교 연합이라는 말이 주간신문에 있어요, 주간신보에. 그거는 문선명씨가 발간하는 그 신문입니다.

이런데 그거는 뭐이냐? 이거 기독교가 뭣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하고 모든 이종교하고 같이 탈 수 있다 말하는 거라. 기독교가 이 모든 이종교와 다른 아주, 아주 그거는 이종교와 판이한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소리 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지식은 있지마는 제 눈에 가리워져 가지고서 진리를 모른다 자기가 그거요.

이런데 이거 말할라면 한정 없고, 그런데 “성경은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그러면 우리에 주시는 이 기독교 구원 이 구원은 뭘로 가지고서 이 구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과학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열심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진실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희생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뭘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이 구원에는 뭣으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른다” 구원에 이르면 그러면 이 구원에서 구원에서 지금 구원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구원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열 사람이 구원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으면 열 사람이 다 같이 갈 수도 있고 그 열 토막으로 갈 수도 있고 하나는 조금 멀고 하나는 더 멀고 하나는 더 멀고 더 멀고 더 멀고 이렇게, 억억만 명이 이 구원을 향하여 간다고 하면은 억억만 명이 다 가면은 꼭 같이 가는 것이겠습니까 억억만 명이 억억만 그 단계로 억억만 그 단계로 억억만 층어리로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억억만 명이 이 구원을 향하여 지금 이루어 가고 있으면은 그 층어리가 억억만 층어리가 될 수 있습니까 한 층어리밖에는 없을 수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억억만 층어리가 될 수 있다 그거요.

알기 위해, 여러분들이 알기 위해 자꾸 이런 잔소리를 지금 하고 있다 말이요, 자꾸. 이런데 ‘아, 한 소리 또 하고 한 소리 또 하고.’ 제가 모르기 때문에, 한 소리 또 한다 그말은 제가 모른다는 그 사람 증거라.

이 구원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구원은 얻으면 다 얻었지.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 얻으리라 했으니까 믿으면 구원 얻었지.’ 이러니까 구원을 하나로 본다 말이오. 구원의 이 층어리를 모른다 그말이오. 구원의 이 층어리를 모르기 때문에 여기 “구원에 이른다” 구원에 도달한다 그러니까 시작도 있고, 중간쯤 간 사람도 있고, 더 많이 간 사람도 있고, 아주 다 가 가는 사람도 있고, 아직까지 도달은 못했지만 곧 도달할 사람도 있고 층어리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말했는데, 이런데 깨달아야 된다 말이오.

구원은 이렇게 이래 나는 지금 오 리 갔나 십 리 갔나, 나는 지금 이제까지 출발도 안 하고 있나? 출발해 가지고 한 자욱 떼 가지고 있나?나는 지금 구원에 가까이 있느냐? 뭘 구원에 가까이 있어? 생명의 자유라면은 이 세상에서 사망이 어떻게 와서 사망이 공산주의 독침 사망이 오든지, 뭐 독약 사망이 오든지, 고문과 고형 사망이 오든지, 무슨 사망이 오든지 어떤 사망이 와도 그 사망의 종이 안 된다 그말이오.

사망의 종이 안 된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망의 종이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여게서 자, 목사님들 가운데 한번 말해 보이소. 사망의 종이 안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목사님? 사망의 종이 안 된다는, 사망의 종이 안 돼야 자유하는 것이라. 사망의 종이 안 된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죽음이 와도.

○○○목사님? ○○○목사님? 사망이 와도 죄짓지 않는 것이 자유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말해서 먼저 내가 교역자회 때에 사망에 자유, 마귀에게 자유, 죄에 자유, 이 자유는 잘못 해석하면 삐뚤어지기 쉬우니까 요 자유라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서 죄짓지 않는 고거 하나를 자유로 한다고 이렇게 말한다고 그거 착각하기 쉽다고 내가 그것을 한 몇십 번 말했을 것인데. 귀넘어 들으니까 안 들어.

그라면 뭐 이래도, ‘아, 지금 뭐 목사님 자꾸 잔소리 많이 한다.’ 이렇게 듣기 때문에. 뭐 진리라 하는 그거는 똑똑히 못 잡고 있어. 그 사람은, 그래 말하는 건 요다음에 가 자유라 하는 것을 이런 기회에, 요런 기회 닥치면 요래 되고 저러면 저리 됐으면 모른다 말이오. 승리하지 못합니다. 그저, 사망에게 종이 되지 안하고 사망에 종이 되지 않는다는 그말은 사망이 와서 어떻게 말해도 죄짓지 않는다는 말이요, 사망에 자유한다는 말은 사망이 뭐라고 말한다 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요, 그걸 그만 요래 못을 박아 놔야 요다음에 환난 올 때에 더듬지 안하고서 그대로 나가지 더듬으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런데, 자, 이 구원의, 이제 여러가지를 배웠습니다. 구원은 한 층어리가 아니다.

구원을 지금 이루어 가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점차적으로 이루어 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억만분의 일 이루었고, 어떤 사람은 억만분의 이를 이루었고, 어떤 사람은 억만분의 삼을 이루었고, 억만분의 어떤 사람은 몇천을 이루었고, 어떤 사람은 억만분의 억을 이루자마다 죽습니다. 땅위에 다 이루었으면 땅위에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층어리가 있다.

그런데 이 구원은 뭘로만 이룰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만 이룰 수 있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거 과거사입니다.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살아 있기는 내가 살아 있는데 지금 사는 모든 작용은 그리스도께서 한다 그말이오.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그분을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이것도 그저 개 머래 먹듯이 이렇지 요걸 새기지 않기 때문에 능력이 안 나온다 그말이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하나님이 지금 이와같이 지금 우리를 대속하신 공로를 베풀었는데 거게 조그마치라도 침해하면 안 됩니다. 그외에 딴게 없어.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사람이 행위를 잘해 가지고서 행위로 말미암으면,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를 잘함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헛되이 십자가에 못박혔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대속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인간이 의가 되는 것이지 믿음 외에는 어떤 행동이 있어도 그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것. 요 얼마나 어려운 건지 모르는데 여게 대해서 자꾸 두루뭉싱이로 그만 범벅타령을 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자, 믿음으로만 우리 구원이 이루어 지는데 이 믿음은 뭘로만 믿음을 만들 수 있습니까? 믿음은 뭘로만 만들 수 있습니까? 믿음은 뭣이 만들며 뭘로만 만들 수 있습니까? 믿음은 뭐이 만듭니까? 믿음은 뭐이 만드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지고, “말미암아” 믿음을 사용해서 그말입니다. 성경은 그 믿음을 네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면 믿음을 만든다 말이오.

믿음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것도 성경이요 우리가 성경이 만들어 주는 그 믿음을 내가 받는 것도 성경입니다. 성경으로 내가, 하나님이 성경으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고, 내게 성경으로 이 믿음을 만들어 주시고 만들어 주시는 이 믿음을 받는 것도 내가 성경으로 받습니다. 알겠습니까? 그외 다른 게 없어. 이거는 절대성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은 우리 구원에만 전용하는 믿음이라.

모든 사람이 믿는 믿음, 자꾸 예수 믿는다 자꾸 이러니까 ‘우리 믿고 삽시다’ 어떤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 `믿어라' 예수 믿는 사람 ‘너거 믿음주의 아니가? 너거 믿음의 도 아니가? 믿음의 도니까 서로 부모를 믿어라, 자녀를 믿어라, 친구를 믿어라, 모든 사람 믿어라, 다 이런 거 다 농사도 믿음으로 지어라.

믿어라.’ 그러면 그 믿음은 어데만 씁니까? 그 믿음은 어데만 쓰요? 그런 데 쓰는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에만 전용하는 믿음이라.

그러니까, 농사를 지으면서 하나님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제 이거 우리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은혜로 이 축복해 주시면 된다 하는 것을 믿는, 그러면 하나님이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만 믿는 것이지 딴 데 믿는 거는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이 믿음 가지고서 자식이 부모 믿는 그 믿음에 써먹습니까 안 써먹습니까? 자식이 부모 믿는 그 믿음을 이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까 다른 믿음입니까? 같은 믿음 아니야. 다른 믿음이라. 성경이 믿으라는 그것만 믿는 것이 그것이 이 믿음이오. 성경이 믿는 믿음이라는 건 그거 뭐이냐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만을 믿게 하는 그 믿음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믿음을 자꾸 키우면, 믿음을 강하게 키우면 구원이 커지겠습니다. 이 믿음을 강하게 키울라고 하면은 점점 기를라 하면 믿음을 기르는 데는 뭘로 가지고 기릅니까? 믿음을 기르는 데는 뭘로 가지고 기릅니까? 성경 말씀 가지고 기릅니다.

그래서 요 성경을 좀, 성경도 까끌까끌합니다. 성경도 한 절수를, 한 마디를 말이요, 성경 그 한 마디를 그 단어를 위로 붙이면 아주 딴거 되고 아래로 붙이면 아주 딴거 되고 그 한 마디는 고거 그대로, 그거 또 독립적으로 둬야 또 정확하게 될 때도 있고 위로 붙여야 될 때 있고 아래로 붙여야 될 때 있고 그 단어를 단독으로 독립성을 가지도록 해야 되는 것도 있고 이러니까 성경은 이렇게 힘드는 것인데 그러면 그걸 다 어찌 배울 것인가? 제가 머리가 암만 좋아도 성경 다 못 배웁니다. 성경은 그저 믿으면 배워집니다. 하나 믿으면 백도 더 알아집니다. 이러니까 자기 부인하지 안하는 사람은 성경은 절대 모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성경을 아는 방법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면 자신이 변화되고, 변화되고 나면 새로 성경을 알아져. 그러면 그 성경대로는 자유합니다.

어짜든지 하루 삼십 분 기도 요거 꼭 빼면 뒤에 큰 낭파당합니다. 요 삼십 분 기도 요걸 안 빼고 꼭 계속해야 됩니다. 계속 안 하면 앞으로 큰 환난에 자기 일생 동안 신앙 생활한 거 톨톨 털어서 마귀 입에 톨톨 털어 넣어 주고 맙니다.

왜정 말년 신사참배 때에 조선 교회에 신앙들은 다 마귀 입에 다 털어 넣어 버렸고 남은 신앙은 몇 사람 안 됩니다. 그것이 종자가 돼 가지고 다시 이 교회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그 종자가 없었어.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서 간 그 종자가 거기서 다시 살려 일어날까 일본에 있는 기독교는 다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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