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번역-고등비평가

 

1989. 1. 23. 월새.

 

본문: 마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우리는, 신구약 성경은 원본이 있고, 원본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감시켜 가지고 기록한 그 성경을 가리켜서 원본 성경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했고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 했는데 그 원본 성경은 한  권뿐입니다. 창세기도 한 권뿐이요, 출애굽기도 한 권뿐이요, 계시록도 한  권뿐으로 이렇게 된 그것을 하나님이 사람을 영감시켜 기록해 주신 것은 한  권뿐인데, 그 한 권 가지고 우리가 다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서기관들과 또  학자들이 성경을 그것을 처음에는 베꼈습니다. 그래서 그것 보고 베낀 그 성경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베낄 사(寫)자, 성경 원본을 보고 베낀 거.

 그러면 사본이라고 하면 구약은 히브리어 그대로 베낀 것이고 신약은 헬라어  그대로 베낀 것이 사본인데, 이제 베낀 성경을 또 보고 베끼고 또 보고 베끼고  이렇게 자꾸 베끼니까 거게서 사람들이, 다 은혜받은 사람들이 베끼지마는  하나님이 원본을 기록할 때에 역사하심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들이 한결같지  못해서 영감의 충만할 때도 있고 또 모자랄 때도 있고 이러니까 사본은 글자들이  더러 틀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베낀 것과 저 사람이 베낀 것이 다른 그런 것을 그 성경 밑에  보면 일이니, 이니, 삼이니 그래 놓고 자잔하게 글을 써놓은 그것은, 위에 그 표를  해 놓고 이것은 어떤 사본에는 이렇게 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본에는 이렇게 돼  가지고 있다 해서 사본과 사본의 차이 있는 것을 나타내서 기록한 것입니다.

 또 이것을 같은 히브리어 헬라어로만 이렇게 베껴 놓으니까 히브리인들과  헬라인들만 성경을 볼 수 있지 그 말을 모르는 사람들은 보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그것을 또 번역을 합니다. 이 나라 말로 번역하고 저 나라 말로 번역한 것을  가리켜서 번역 성경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성경은  한국말로 번역한 번역 성경입니다.

 이런데 이 번역을 할 때에 자기네들이 이 세상 생각을 가지고 인간들의 말에  맞지 않고 인간들의 지식 판단에 맞지 않을 때에는 맞도록 기록을 하려고, 그렇게  번역을 하려고 사람들이 애를 씁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에 그 가나 잔치 때에  포도주가 다해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다했다고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요 계시에 기록된 것은 다  하나님이 주관 하셔서 그렇게 말하게 했는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렇게 거기서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도무지 이것은 윤리에 불칙한 말이라 이래 가지고 거게 '여자여'  한 것을 '여인으로' 그래 번역돼 가지고 있나? 여자여 한 것을 여인이여 이랬나?  본래는 여인인데 여자여? 그거 좀 뭐 잘못된 걸 내가 그전에 봤는데, 너무 그래  하는 것이 자녀가 부모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불경하다 해서 그걸, '여인이여'  한 것을 '여자여' 그래 놨어? 그전에 그 성경을 봤나요? 처음에는 여인이여 했고  뒤에는 여자여 했고, 여인이여 하나 여자여 하나 뭐 같은 말인데, 거게 좀 처음에  번역한 것이 여인이여 이랬고 나중에는 여자여, 여자여 하나 뭐 여인이여 하나 뭐  별 차이가 없는데, 나중에 천주교 번역에는 '어머니여' 그렇게 번역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꾸 그래 변해 나갈 것입니다.

 인제 인간의 상식에 맞게, 인간의 제도에 맞게, 인간의 그 윤리에 맞도록 자꾸  그렇게 성경을, 원본은 그거는 어쩔 수 없지마는 번역 성경은 자꾸 그렇게 번역을  해 나오는 데에서 성경의 바른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거게도, 내가 그걸 어떻게  봤나, 내 눈으로 안 본 건, 전부 내가 그 전에 본 건 잊어버렸어. 내가 그것을  발견했는데. 처음에 발견하고 '어떻게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을 할 수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다' '이런데 여게 지금 큰 뜻이 있다' 했는데 그 뒤에  번역 나온 것 보니까 그걸 조화를 시켜 가지고 그렇게 별로이 들어도 흉하게  들리지 않도록 그렇게 번역을 해 놨더라고. 그렇게 지금 자꾸 변해 나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여게 엊저녁에 제가 오후 예배를 보고 가 가지고 이 겨자씨 비유의 겨자씨에  대해서 또 사람들이 어떻게 말했는가 그걸 보기 위해서 컴퓨터 성구 사전이라고  하는 그 사전이 제일 상구 사전으로서는 세밀히 돼 가지고 있는 사전인대 그것을  좀 찾아보라 했습니다. 누구에게 그걸 좀 찾아보라고 이러니까 거게 찾아 나와서  겨자씨가 나왔는데 거게 평을 뭐라고 해 놓은 게 아니라, '이 겨자씨는 씨 중에  제일 작은 씨라고 이렇게 말했는데 이것도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 것은 씨  중에는 난 초씨가 제일 작은데 이렇게 말했기에 이거 맞지 않는다.' 또 그렇게  말해 놓고,  이 나무, 이 풀이, 채소가 커서, '나물이 커서 나무가 됨으로서 공중에 나는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한 여게 대해서 또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이 나무는  그렇게, 이 겨자씨 나무는 큰 정자나무 모양으로 그렇게 커지는 게 돼서 뭐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그래 와서 살 만한 그런 나무는 아니다. 일년초요 잘 살면  이 년 살기 때문에 속히 자라서 나물이나 나무같이 되어지는 그런 채소인데, 거게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살 만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나무,  새들이 와서 공중에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조롱할 일이다.' 이래 가지고 이리 저리 찧고 깎아 가지고 이래 비틀 트려서 이래  놨다 말이오.

 그래 놓으니까 보는, 학자들은 자꾸 책만 들여다 보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는  이런 것만 들여다 보니까 보는 사람은 '이거 무식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지  이거는 씨 중에 제일 작은 씨로 말하면 난초씨인데, 또 그렇게 나무가 돼서  공중에 나는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하지마는 새들이 와서 집을 짓고 살 만한  그런 큰 정자나무는 아닌데 이래 놨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게 차마 그걸  성경을 틀렸다고는 못 해도 이랬는데 뒤에 또 그래 놓고 나중에 합리화시켜서  이렇게 깃들인다고 이래 번역하는 것이 옳기는 옳다' 이러는데,  내가 그걸 들을 때에 '야, 네 요놈의 새끼야. 네가 이놈아 난초씨가 제일 작다  하지만 씨가 네가 지금 몇 억만 가지인지 네가 아나? 네놈이 아는 중에는  난초씨가 작지마는 난초씨보다도 더 작은 것을 주님은 아실 때 몇 백 종류가  있는지 모른다. 네가 씨 중에 제일 작은 씨를 들어서 말하려고 하면 너보다  주님이 더 많이 들어 말할 것이고, 그분이 그런 걸 다 창조하신 분인데  모르겠느냐?' 요런 게 요래 가지고 성경에 대해서 확신을 자꾸 죽입니다. 확신을  죽이요.

 모든 씨보다 작은 씨라는 것은 큰 씨 있고, 중간 씨 있고 작은 씨 있는 이거는  종자 중에 큰 데 속했나 중간에 속했나 작은 데 속했나? 이러니 이게 작은 데  속했다는 그것도 모르고 '난초씨가 제일 작은데 이것을 작다고 말했다. 제일  작다고 말했다.' 이래 가지고 훼방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주재이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제 생명을 지금이라도 거두면 못 사는 하나님, 제 두뇌를 만드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지금 말씀했는데, 이 말씀을 저희들이 인간들의 모든 상식  지식 가지고 '틀린 것이 뭐 있나?' 이렇게 비판해 가지고 달려들려 하는 이것이  벌써 가증즈러운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학자들이 신앙을 가지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보니까 겨자씨가 씨 중에는 작습니다. 작은 씨라니까 안 보고도 작은  씨인가보다 이렇게 믿고, 보니까 또 작은 씨입니다. 그런 자에게 이 성경이  해당하지 그걸 꼬집어 가지고 자꾸 반대하려 해 가지고 '요보다 작은 씨가 없나?'  요렇게 보니까 난초씨, 난초씨보다도, 제가 알기는 난초씨, 난초씨보다 더 작은  씨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네까짓 게 그래 똑똑하면 씨 중에 씨 종자가  몇 종자나 되는지 아느냐? 주님이 지으신 당신이 아시는 대로의 종자에 네가  십분지 일만치 알겠나? 백분지 일만치 알겠나? 또 난초씨보다 작은 것은 얼마나  네가 많은지 그보다 작은 거는 없는지 네가 어찌 아느냐?  이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볼 때에 원본은 획 하나도  틀림이 없고, 획 하나도 틀림이 없다고 주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틀림이 없고, 또  사본 성경은 사람들이 베꼈기 때문에 베낀 데에는 잘못 베낄 수가 있다 하는 걸  또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또 번역 성경에는 이 나라 말 저 나라 말로 번역을  했기 때문에 번역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못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  근본은 틀리지 않다.

 그러니까 성경은 틀리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신 것을 자기가 믿고  모르면 '이 성경은 틀림이 없는데 내가 틀렸지,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틀리지는  않았는데 내가 틀렸지, 그러면 내가 틀릴 게 어떤 점이냐?' 주님의 말씀을 바로  알려고 애를 쓰고, 틀리게 말씀하시지 않았으니까 바로 말씀했으니 바로 말씀하신  이것이 어떤 것인가? 이렇게 성경을 정확 무오한 말씀으로 인정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자기가 성경과 자기와 틀렸을 때는 틀림없이 자가가 백 번이고 만 번이고  자기가 틀렸고 성경은 틀림 없으니까, 틀린 자기가 틀리니 자기 틀린 것을 고쳐서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일치가 되려고 따라가려고, 애를 써야 될 터인데,  요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말이지, 성경 말씀, 하나님이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을 틀렸느냐 안 틀렸느냐? 제가 어북 논평을 하려고 달려들고 제 좁짝한 그  지식에 들어맞으면 '요거는 틀림 없다' 안 맞으면 '아무래도 이 성경은 뭣인가  이렇다' 이래 가지고 교만한 자는 '성경에는 이거 틀리는 말이 많다' 어떤 자는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이런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몰라서, 식물학이니,  무슨 동물학이니, 무슨 지질학이니 이런 걸 몰라서 이렇게 말씀해 놨다' 이렇게  가증스럽게까지 자꾸 나아가게 된다 그거요. 그런 것이 가증스러워.

 그러면 이 비유하신 것은 뭣 때문에 이런 비유를 했는가? 씨 중에 작은 써, 왜  겨자씨를 하필 들어서 말했느냐? 이게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말씀한 것이기  때문에 깨달으려고, 바로 깨달으려고 이걸 애를 써야 될 터인데, 달려들면서 '보자  내가 대 학자이기 때문에 이거 뭐 잘못된 거 없나?' 색경을 써 가지고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물이 나무같이 되어 가지고 새들이 와서 깃들인다' 하니까  거게는 새둥치 집을 지어 가지고 살 만한 그런 거는 아니라고 이렇게 떡 이래  놓으니까 그것도 마귀란 놈이 사람의 마음을 확신을, 어리석은 자의 확신을 더  한다 말이오. 확신을 했는데, 성신의 감동받은 사람은 확신이 헐리는 게 아니라  그럴수록 그 가증스러운 그것을 아주 미운 마음을 가지고 '그놈의 새끼' 이래  합니다. 이러고, '제가, 하나님이 말씀해 놓은 말씀을 제까짓 놈이 뭐라고 틀렸느니  말았느니 가증스렵게 말해? 네까짓 놈이 뭐인데?' 이렇게 더 확신이 들어갑니다.

 거게 말하는 것은 새들은 공중에 날아서 날아다니는데, 저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농촌에 보면 그런 뭐 채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엉이라 하는 그것도  조그만한 씨지마는 심어 놓으면 그게 커 가지고 나중에 어북 가지같이  되어집니다. 또 아주까리 나무라는 그것도, 아욱이라 하는 그것도 잘 심어 놓으면  그게 어북 커서 커집니다. 아주까리 나무 그거는 다 갈아 가지고 종자도 하지마는  나물 먹기도 하기 위해서 하는데 그런 거는 보면 어북 한 잘 크면 2미터 가량  큽니다.

 제가 이 겨자씨, 어떤 내가 책에 보니까 고가 이 메타가 큰다든가 일 메타가  큰다든가 그래 있습디다. 그 일 메타 크는 채소들도 보면, 새들이 뭐하러 왔느냐?  그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저 둥구나무가 좋으니까 저게 쉬어 가자' 하고 그래  오는 게 아니고, 그 겨자씨 나무에 거게 그 가지에 그늘에 쉬는 그런 새는 무슨  새냐? 저 공중에 새떼로 날아가는 새가 아니고, 밭에 와 가지고 뭘 주워 먹으려고  그래 오는 새입니다. 주워 먹으려고, 여름에 보면, 여름에 더울 때 보면은 이놈이  거기 와서 뭐 주워 먹으려 하다가 원청 날이 되게 쬐면 새도 말이요 입을  벌립니다. 입을 벌리고 할딱할딱할딱 이래요. 할딱할딱 이러다가 인제 그 채소  가지에 앉아 가지고 거게서 좀 쉽니다. 뭐 주워 먹으려 왔다 말이오. 주워 먹으러  왔어.

 주워 먹으러 왔는데, 그거 자꾸 새기면 주워 먹으러 왔으니까 아무리 겨자씨가  작지마는 종조리 새는 아주 맛있다고 딱 주워 먹어 버립니다. 그러면 이제 그  심어 놓은 종자가 땅 속에 심겨지지 않고 위에 드러나 놓으면 새에게 딱 주워  먹혀 버립니다. 새는 이 세상 사람 말하는 건데 이 세상 사람에게 그만, 뿌리박혀  가지고 있지 않고, 믿는 사람이 요동하면, 믿는 사람이 하나님과 박혀지고  하나님이 정해 준 그 위치에서 요동되면 그만 그거는 날아가버립니다. 그래서  이거는 요동성을 방어하는 말이라 하는 것을 제가 언제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들이 몇십 개라도 주워 먹어도 배가 안 찰 만치 그런 존재지마는  그것이 주인이 심어 놓은 대로 그대로 땅에 박혀 가지고 자라기만 하면 그것들이  와 가지고 거게서 피서도 하고 피난도 한다. 그런 걸 보면은 새들이 보면 농촌에  보면 이래 가지고 이래 있다가 이래 나가서 이래 주먹고 흩이고 주 먹다가 되면  저 채소, 나물은 나물이지요. 나물은 나물이지마는 아욱 나물이든지 또 그뭐  아주까리, 아주까리 그거 열매 맺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거 갈아 가지고  채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채소 하면 그 채소가 보름밥에, 보름밥 먹을 때에는  아주까리 나물이 제일 상등입니다. 맛이 제일 상등이오. 그런 데 보면 가지에  앉아 가지고 이렇게 깃들이기도 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런데 거게서 뭐이냐? 기독자들이 하나님이 자기 심어 놓은 자리가 어데요?  자기의 심어 놓은 자리가 어데지요? 심어 놓은 자리가 어데요? 현실. 자기  현실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각각 현실을 주신 그 현실에 자기가 심어졌는데,  그 현실을 만족하지 않고 현실에서 자리 옮기면 죽습니다. 절단나. '어떤 현실을  줘도 요거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현실이기 때문에 내게 대해서는 천하에 제일  좋은 내가 살 곳이다. 내가 보금자리 칠 곳이고 제일 내게 필요한 현실이다' 하는  요것을 딱 못을 박아 놓고, 요 현실을 이렇게 주셨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거 불만  불평 원망 시비할 수 있는 현실이 되어 있으니까 이거 어찌 되느냐? 주님이  나에게 잘못 준 게 아니고 내가 이해를 못해 그런 거니까 요것을 새겨 놓으면  가장 그 현실이 행복된 현실이 된다 그말이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을 때에 하나님이 하필 몰라서 그리 인도했겠소?  홍해 가로 인도해 가지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지 뒤에는 애굽 병정들이  추격하지, 애굽 병정들이 추격하는 것도 주님께서 추격하도록 만들어 그들이  추격하지 저거 마음이 아니라 말이오. 추격하지 앞에는 홍해 바다지 딱 그래  놓으니까 못 견딜 지경이라. 그래 놓으니까 막 전부 시비새 가지고 모세를  죽이려고 '네가 우리를, 애굽에 있는 걸 끌어내 가지고 공연히,' 지금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아 있지 뒤에는 애굽 병정들이 추격하지 꼼짝도 못하고 여기서  죽도록 너희들이 만든다고 모세를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들었어. 이해를 못  하니까. 그런데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은 춤을 추면서 좋아서 '하나님의 기이한  솜씨를 볼 수 있다. 좀 있어 봐라.' 좀 있어 보니까 이제 홍해 바다가 떡 갈라져  이들은 건너가는데 그들은 뒤에 따라오다가 홍해 바다에 전부 매몰돼 전멸되지  않았어? 이것을 알면 손삑을 치면서 좋다고 '꼬시다, 우리 원수 저놈들 인제 홍해  바다 죽는다' 이렇게 야단을 지길건데 저들이 몰라서 지금 원망 불평했다 말이오.

 우리가 모든 현실 닥치는 것이 조부라운 견해에서 그렇지 영원 무궁의 그거  광범위하게 전체를 보고 해석을 하면 가장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게 해 준 그  현실, 우리가 이해 못 하는 불평하는 현실은 뭐이요? 불평하는 현실은 우리 이성  판단으로써는 이해하지 못할, 이성 판단에 무한히 초월해 가지고 있는 그런 거리  먼 그 현실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거게 유익은 우리 지식 범위 내의 유익이  아니라 우리 지식을 이해할 수 없는 큰 범위에 대수입이 있는 곳이라 그거요.

OOO장로님 이해가 봐요? 이해가 돼요? 세상 학자돌 발 아래 밟겠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고 이 진리를 알아서 세상 학자들을 발 아래 밟아야, 이  도리는 그들에게 먹혀 나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믿음을 가지면 그런 것을 다  밟아낼 수 있어요.

 이래서, 저는 무식하지마는 세상에 있는 학자를, 어떤 학자들을 만나서 좀  충돌되면 충돌되는 그때는 내가 말 못 해요. 충돌이 되면 그때는 내가 그  사람들은 뭐 알고 있으니까 아는 것 가지고 말하고 나는 모르기 때문에 말 못  하지마는 조금 눈 감고 생각해 보면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뿌럭지를  알아서 다 공박을 해서 낼 수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절대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록한 것도 틀림 없고 또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유익되도록 해 주신 것도 틀림 없고 또 그대로 하면 성공하는 것도  틀림 없고, 어기면 멸망하는 것도 틀림 없고,  왜, 사람의 지혜를 왜 하나님이 미련타고 생각합니까? 사람이 요 꾀 조 꾀  부리는데 그걸 미련타고 하나님이 말씀했어요. 미련타고 하는 그 이유는 뭐이요?  너희들이 요렇게 저렇게 말하지마는 그 일을 이루시는 이는 내기 때문에,  너희들이 요러면 꼭 되기 때문에 이제까지 통계 맞춰 가지고 또 요러면 된다  해서 너는 그렇게 했지마는 내가 그때 그것을 이제까지는 그래 했지마는  이번에는 그래 하지 않고 요래 하니까 틀린다 그말이오. 알아듣겠소?  제일차대전에 독일에서 그들이 독가스를 삼십 년을 연구하기를, '이 독가스를 온  세계에다 뿌려버리면 싹 인류가 다 죽어 버리고 우리 독일 사람만 살겠으니까  이놈 독가스를 뿌려야 되겠다' 하고 이제 약은 연구했는데, 그 약을 쳤다가  저거에게로 돌아오면 탈난다 말이오. 저거에게로 돌아오면 탈이고 그러니까 '보자'  삼십 년을 통계를 하니까 그때가 되면 꼭 바람이 다른 데로 불어간다 그것을  통계를 삼십 년 통계를 맞췄다 말이오. 삼십 년 통계를 맞춰 가지고 이제 뿌리면  되지 하고 뿌렸는데 이게 그리 가는 바람이 삼십 년만에 처음 바람으로 꺼꾸로  확 불어 버렸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들에게 가지, 다른 데 가지 많고  저거에게 가 저거 다 죽었어. 전멸이 됐을 터인데 하나님이 그래도 불쌍히 여겨서  공중으로 다 날려 보내고 조금 갔는데도 그들이 많이 멸해졌어. 그래 가지고 그만  독일이 폭 쭈그러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모든 걸 하나님이 실지로 이루시는 이는 당신인데 이 인간들이 '요  통계를 맞춰 보니까 요렇더라, 요거는 요렇더라' '이 등신아, 이제까지는 그렇지만  또 내가 또 요렇게도 할 수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들이 제 생각대로 나가는 건  전부 망칩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봐라, 수십 년 동안 이 통계 그거는 틀렸다.

통계, 네가 성경대로 하면 너는 망한다. 망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십 년 수백 년  통계대로 하면 망하는 것이지마는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수백 년에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빽 돌려서 이게 성공이 되도록 그렇게 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경영은 사람에게 있으나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자꾸 믿으면 되는데 안 믿는 망할 자는 자꾸 망할 길만 찾아들어가 가지고  망합니다.

 이래서, 어제 겨자씨 비유에 대해서 여런분들이 배운 대로 단단히 깨닫고 그걸  사실로 자꾸 또 새기고 새기고 하면 더 맞고 더 맞고 정확해서 나중에는 이건  틀림 없다는 확신이 올 때에 자기가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 생각하면 행하는  사람이 돼져요. 깨닫는다는 것은 제가 뭐 지식적으로 아는 그걸 깨닫는다는 게  아니라 깨닫는다는 것은 이 성경 말씀을 행하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  깨닫는 것은 어떤 것이 깨닫는 것이오, OOO씨? 성경 말씀을 어쩌라고 우리에게  줬지? 행하라고 줬지? 행하라고 줬지? 행하라고 줬는데 그러면 성경 보고 깨닫는  것은 어떤 게 깨닫는 것인가? 어떤 게 깨닫는 것이라? 실행할 수 있도록 아는  것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이래요. 실행 안 하고는 못 견디고 실행을 하는, 실행  안 하고는 안 되는, 실행을 하게 되는 그 깨달음을, 그 앎을 가리켜서 깨달음이라  그렇게 말해요. 이해가 돼요?  이러니까 자꾸 새김질하고 새기고 새기고 해서 이 말씀과 자기 생활과 대조를  해 가지고 자기 틀린 것을 고치고, 말씀이 틀렸다고 달려드는 그게 가증스러운  놈이라. 말씀을 제까짓 게 뭐인데 하나님이 말씀했는 이 말씀을 '이렇다, 저렇다'  논평을 하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고등 비평가들은 거의 다 멸망이라고. 그러기  때문에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렇게 말했어.

 이러니까 어쨌든지 하나님 말씀은 기록된 것도 틀림이 없습니다. 획 하나도  틀림이 없습니다. 정확 무오합니다. 그런데 사본은 그것을 사람들이 잘못 베껴  가지고 안 된 거 있고, 또 번역 성경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 말로 번역을 할 때에  잘못된 것이 있고 그런 거는 있다는 것도 또 인정을 해야 됩니다. 인정을 하면  인정을 하니까 그러면 그걸 못 봐야 될 건가? 그러니까 성경을 전체로 보지요.

성경을 전체로 보는 사람은 성경 한 줄을 써도 상관 없어. 전체로 보고 이래 한  사람은 성경 한 권을 싹 빼 놔도 아무 일 없어. 빼 놔도 다 보면 저 딴데 다  있어.

 그러기 때문에 어쩌든지 성경을 깊이 생각하고 자꾸 이렇게 깨달으려고, 왜?  성경에는 온 세상에 둬도 다 책을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많은 분량을 가진 그  내용을 요 육십육 권에 축소해 가지고 기록했기 때문에 이거는 영감이 아니면  몰라. 이러기 때문에 자꾸 새겨서 깨닫고 깨닫고 이러면 자기가 적게 대해서  자기에게 가르쳐 주는 생명의 도리를 알게 된다 그거요.

 어떤 목사가 내가 금정산에서 집회 하니까, 나하고 친한 목사인데 와 가지고  '조사님,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마구 난도질을 해서 쪼개고 그래 하면, 그게 누가  압니까? 그거 지금 그런 사람들이, 뭐 무식한 분들이 그거 무슨 말을 듣습니까?  이러니까 제발 그래 하지 마십시오. 말고 그저 대체로 이래 쭉 말하면 성령이  와서 가르쳐 주시지.'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건 자꾸 생각하고 연구할 때에  깨달아지는 것으로 그래 가르쳐 주시지, 성령이 감동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는 다 성령의 감동 오면 저절로 애 안 써도 알려 주는 줄로 이래 알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분이 그러기 때문에 '목사님, 나는 그렇게 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자꾸  연구해 보니까 더 같고 깊으니 그것을 인간이 모르니까 천하에 세상에 둬도 못  둘 만한 내용이 있기 때문에. 그를 자꾸 증거해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고래  합니다.' 이러니까 서로 반대가 됐다 말이오. 그런데 그분은 그러니까 OO교파로  가 가지고 또 한참은 또 야단을 지기더니만 어데로 가 가지고 해서 정처 없는  새라. 새 떼, 공중에 나는 새라 하는 것은 아무 그거는, 겨자씨는 땅에 꼭 박혀  가지고 주인이 심어 놓은데 거기 꽉 박혀 가지고 있는데 새 이놈은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거라. 그걸 가리켜 말하는 거라. 그 대조를.

 겨자씨는 주인이 심어 놓은 데 뭐 물난 데 심었든지 어데든지 심어 놓으면 그거  썩었으면 썩었지 거게서 심은 대로 거기 있지 제가 요동 않는다 말이오. 주님이  심어 주시는 데, 주님이 있게 하시는 거기 있고 제 주관과 제가 들어 움직이는  능동의 행동이 없는 그게, 자랄 줄만 알지. 자랄 줄만 알지 겨자씨는 이리저리  장소 옮기는 거는 없어. 새떼는 그거는 제 마음대로 장소를 옮기고 있는 거라.

이러니까 거게서 오만 도리를 가르쳐 줬건마는 강퍅하면 모르게 됩니다.

 이런고로 겨자씨 비유를 잘 새겨 가지고 놓지 말고, 그거 또 이 세상학자들이  가져가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해 가지고 자꾸 신앙을 없앤다 말이오. 깃들이면  거기 뭐 집짓고 산다 했는가? 그런데 집을 짓고 살 만한 그런 나무는 못 된다고.

이러면 웃을 거라? '아이구, 이거 무식한 사람은 이걸 보고 자꾸 해석을 하면서  이래 붙여 대지, 깃들일 만한, 그런 새집 지을 만한 그런 나무는 큰 정자나무같이  그래 되는 거는 아니다.' 이래 놓고 그게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도를 삣고 깎고  훼방하고 지금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도에,  이 도는 창조주 대주재가, 저 생명을 오늘도 죽이려면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이분이 지금,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이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지극히 큰 사랑과 큰 뜻과 큰 능력을 가지시고, 저보다 박사라. 저만  한 게 아니라 저보다, 다 오르는 게 없어. 다 아시는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해  놓은 건데 제가 뭐 조부라운 대자리 가지고 이렇고 저렇고 말하는 게 너무  가증스럽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정확 무오라는 것을 믿고 '틀림이 없다.' 말씀과  나와 틀릴 때에는, 내 생각이 틀릴 때에는 내 생각이 틀렸기 때문에 내 생각이  하나님의 이 말씀과 일치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지, 제가 제 생각을 맞다고  생각해 놓고 '이는 성경이 틀렸다. 이거 틀린 것 가르쳐 내자.' 이래 가지고 하나씩  둘씩 훼방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고등비평가들인데 다 망하고 말았어. 다  멸망이야. 지옥 제일 밑층에 가 있는 것이 고등비평가들이라. 알겠습니까?  그래서 그 말씀을 자꾸 새김질 하고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신구약 성경은 정확  무오한 틀림 없는 하나님 말씀이라. 획 하나도 틀림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내가  모르면 자꾸 알려고 달려들고 틀렸으면 내가 틀렸으니까 내가 그 말씀에 맞도록  나를 고쳐 나가려고 애를 써야 되지, 제가 성경 말씀을 틀렸으니까 고쳐 나가려고  이래 자꾸 번역하는 사람들이 그거 번역을 그래. 보니까 여게도 제일 작은 씨라  또 일본 말 번역에도 보니까 그래 해 놨는데, 요새 번역에는 그런 것도 자꾸 자꾸  이렇게 인간 뜻과 성경과 맞도록 이렇게 해서 이야기 성경이라는 그 성경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에 딱 들어맞게 다 번역을 해 놨어. 이러니까 성경의 권위성과 그  참 특수한 그 진리성을 다 없애 버리고 인간들의 소설 중에 하나와 같이  이야기책 하나와 같이 이와 같이 지금 만들어 가고 있는 마귀 역사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그래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더 강하게 깨달아서 믿어지게 되는  것이라.

 부모님들께서 중간반 학생들을 어쨌든지 이 방학 기간에 새벽기도에 참석을  시키도록 그렇게 해요. 그러고 또 학교에서 과외 수업하는 것이 자기의 가정  사정에나 또 통학하는 데에나 불편하고 또 신앙 생활하는데 불편할 때에는 그런  것은 안 해도 돼요. 괴외 수업하는 그런 것은 안 해도 돼. 그거 정식이 아니라.

정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거 안 한다고 퇴학 못 시키요. 그거 안 한다고 벌도 못  줘요. 그거 '나는 가정에 사정이 그러니 못 합니다.' 하면 그거지 더 못 해. 그러면  못 한다 하면 자구 훼방하지. 훼방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삼일예배  지키기 위해서 삼일에도 못 하고 금요일에도 못 한다. 나는 또 새벽기도 가기  때문에 늦게 열두시나 집에 돌아가 놓으면 새벽기도 못 한다. 새벽기도 가기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은 배짱 있기 때문에 뭐 세상 법대로 됐으면  그거는 그 공부 안 하면 될 것이고,  그래 가지고 왜정 말년에는 일본법에 제재가 돼, 학교 가면 신사참배 하니까  신사참배 않기 위해서 퇴학을 하고 그만 이렇게 공부 안 한 사람 그래도 성공 안  한 사람이 없습니다. 보면 모두 성공한 사람, 그때 성공한 사람들 물으면 다 제가,  그때에 신사참배 안 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그만 퇴학을 하고 그래 왔던 그  사람들 쳐놓고는 위인 안 된 사람이 하나도 없어. 당신을 바라보는 자는, '나를  바라는 자는, 나를 바라는 자는' 자, 내가 말할 거니까 그 다음에 따라해. 나를  바라는 자는, 그 다음에 또 대답해.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저 학생들 입을 좀 벌려.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 당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거짓말쟁이 아닙니다. 뭣 때문에 거짓말  하겠소? 당신이 말한 대로 다 실행할 수 있는데 왜 거짓말하겠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교회 주변 비가 오는데 잘 덕 있게 청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잊으면 큰일 납니다. 또 반사 선생님들은  꼭 공과를 외우고 자기가 실행 실천을 하면 거게서 깨달음이, 사건으로도  깨달음이 있고 자기 몸에 깨달음이 있습니다. 자기 몸에 깨달음을 가리켜서  체험이라고 말하고, 경험이란 자기 사건에서 깨달음을 경험이라고 말하는데 고  깨달음이 있습니다. 깨달음이 확신이 생겨져. 그 확신을 가지고 제자들을  가르쳐야 돼요. 그러고 자기에게 붙여 준 모든 학생들은 자기 마음 속에다 품어  가지고서 길러야 합니다.

 주일학교 남반사들이 밤에 꽃마을에 이십오 명이 가 가지고서 기도하고  왔습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이런 것도 자꾸 따라붙이고 옳은 일에는 자꾸  동참을 하려고 애를 쓰고 또 이게 뭐 그때 보면 별게 뭐 없지마는 티끌 모아  태산된다고 이렇게 이렇게 한 것이 뒤에 모여 놓으면 굉장히 큰 것입니다. '하룻밤  가 보니까 뭐 별 기도하러 가 봤자 별 기도 없더라' 이래도 그것을 일 년을 모아  놓고 십 년을 모아 놓고 평생을 모아 놓으면 굉장히 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옳은 것이면 작으나 크나 자꾸 참석을 하고 놓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되고 또  나쁜 것이면 크다 작다 할 게 아니라 작은 것도 나쁜 게 있으면 그놈이 들어서  전체 다 죽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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