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2:47
성경론-하나님의 말씀은 전능
본문 : 누가복음 1장 37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여게 대저라는 말을 대개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틀립니다. 대저라 말은, 모든 것보다 더 확실하다는 그런 뜻을 나타내서 대저라고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대저라 말은,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세상에는 다 되는 일들이 있지만 어떤 것보다도, 이런 것도 되는 일이 있고 저런 것도 되는 일이 있고 세상에서는, 쌀을 가지고 밥을 하면 밥이 되고 또 나무를 가지고 불을 피우면 불이 피워지고 또 물로 씻으면 깨끗해지고, 그런 것도 됩니다. 물로 씻어서 깨끗해지는 것보다, 나무를 불로 태우면 타는 것보다, 쌀로 밥을 하면 밥이 되는 것보다. 세상에 되는 것이 많지만 그런 모든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그대로 된다 하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저란 말은 이거 우리나라 말로는 좀 번역하기가 안 됐은 데 보다, 어떤 것보다, 세상에 이런 것도 되고 저런 것도 되는 일이 많이 있지만 되는 일이 많이 있지만 어떤 것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그대로 된다 그걸 가리켜서 말합니다. 쌀로 밥 하면 밥이 되는 그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것보다 더 절대성 있게 그대로 된다 그런 것을 나타내서 대저라 말을 붙였는데, 이 대저란 말을 그만 대개라고,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 것도 있지만 대충 되고 혹 안 되는 것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그렇게 요 말이 번역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대저라는 말 이것을 잘못 새기면,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 보기에 그거는 안 된다 해도 다 되다. 사람 보기에 이거는 절대 안 된다 하는 그것도 다 된다. 다 되는데, 석유 기름에다가 불을 붙이면 불이 붙는 그것도 붙지만, 석유에다가 불 붙이면 불 붙는 그것도 붙지만 그런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대로 된다는 것은 이거는 절대 가감도 없다. 절대성 가진 것이다 이렇게 표시한 것인데 그만 대저란 말 붙이니까 사람들이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다 그대로 되고,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것은 다 그대로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한 능력을 가졌다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인간들이 볼 때에 '안 된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은 다 그대로 된다. 사람들이. 사람이 아버지 없이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그런 것이 인류 역사에 전 통계이지만, 하나님이 아버지 없이 남편 없이 아이 낳는다 하니까 마리아는 깜짝 놀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 이 땅 위에 이런 것도 되고 저런 것도 되고 모든 되는 그것보다 하나님 말씀대로 되는 그것이 제일 으뜸가고 제일 확고하고 그거는 가감 없고 변동성 없다 하는 그것을 천사가 말할 때에 마리아는 그래도 좀 멈추었습니다.
이라다가, '마리아 네가 알다시피 대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은 수태도 못 해본 여인이요 벌써 나이가 늙어서 노인이 아니냐? 그랬는데 하나님께서 잉태 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대로 잉태가 돼 가지고 지금 육 개월이 지났다' 이라니까, 그걸 증거를 대니까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구나. 평생에 아이 낳아 보지 못한 나이 많은 노인이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아이 밴 거 보니까 나는 지금 남편이, 사나이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남편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이렇게 말씀하신 이것도 하나님의 능력이고 말씀하셨으니까 그대로 되겠구나' 하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하시옵소서 할 때에 천사는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해 가지고 예수님이 나셨습니다. 그때에 쓴 말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다 그대로 된다. 된다면 되고 안 된다면 안 되고 그렇지 된다고 하셨는데 온 세상이 달라들어서 방해한다고 해서 안 되지 않는다. 또 안 된다고 한 것은 안 되지 인간이 다 달라들어서 합세해 가지고 된다고 해 가지고 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 함이 없다. 하나님 말씀은 뭐이든지 다 그대로 할 수 있다.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할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전능이라 하나님 말씀은 전지라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전지 전능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 우주와 영계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크고 능력이 있습니다. 왜? 영계를 뭐이 만들었으며 우주를 뭐가 만들었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엇이 만들었는가? 말씀이 만들었습니다 말씀.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뜻은 변개할 수가 없고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에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다 전능의 말씀이라. 전지의 말씀이라 영원 불변의 말씀이라, 진실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가감도 없고 변동도 없고 이렇게 불신임 받을 만한 그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절대성을 가진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기록해 놓은 이 성경 말씀은 전능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요 하나님이 이 말씀 안에 계셔 가지고 이 말씀이 가는 데에 하나님이 동행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버리면 곧 그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되고 이 말씀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게 되고 이 말씀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되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씀에 피난하면 곧 전능자에게 피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전지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2장에, 하나님의 명령이나 말씀이나 같은 말입니다.
'아버지의 명령은 영생인 것을 내가 안다.' 영생인 것을 알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씀을 떠나면 죽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면 영생하는 것을 주님이 아셨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말씀을 떠나지 안하고 이 말씀대로 행해서, 이 말씀대로 행한다고 우주를 점령하고 있는 악령이 그 모든 부하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온갖 박해를 하 면서 이 말씀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버리라. 네가 이 말씀대로 안 하면 우리가 천하 영광을 다 주겠다' 이랬습니다.
'나한테 절 한 번만 하면 천하 영광, 이 천하는 내가 지금 다 차지해 가지고.
아담 해와를 잡아 넘겨서 이기고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그 모든 이 우주를 물질계의 것을 내가 아담으로 더불어 전투해서 이겼기 때문에 이제는 아담에게서 탈환해 가지고. 탈환을 해 가지고 이 모든 우주는 내건데 네가 내게 절 한 번만 하면 이 모든 걸 다 주겠다' 사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그렇게 사탄이 말하는 것이 성경 말씀에 없는 말을 하고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안하기 때문에 그런 말은, 제가 우주를 차지하고 있지 만 절대 그 말은 안 이루어진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시고 그에게 절하지 안하고 그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그의 말씀을 어기는 그 모든 행위와 삐뚤어진 그 사탄에게 딿지 안하고 사탄을 대항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그에게만 경배할 것이니라' 할 때에 사탄은 물러가고 천사는 수종들게 됐읍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영생하는 능력을 가진 것을 믿었습니다.
또, 이 마리아에게 온 이 천사는,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능력을 가졌다' 그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또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사람을 이렇게 저렇게 올바로 교훈해 가지고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다니엘 같은 그런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다른 신들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이것을 지키지 못하도록 사자 구덩이의 형벌을 두고 사람들을 다 강권했습니다. 그럴때에 다 그 강권에 죽기 두려워서 끌렸지만 다니엘은 안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배반하면 자살을 취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다른 것들에게 기도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는 그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능자의 보호를 받고 전능자의 인도를 받고 전능자의 편이 되고 전능자에게 속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도 해할 수 없고 사자도 해할 수 없지만 말씀을 떠나면 천하 사람이 다 들어서 보호할라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 밤에 지금 증거할라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의 능력을 가졌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이 말씀을 영접해서, 이 말씀을 영접하는 것은 전능을 영접하는 것이요, 이 말씀과 함께하는 것은 전능자와 함께하는 것이요, 내가 이 말씀에게 소속하는 것은 전능자에게 소속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막바로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쉽도록 나타나기 위해서 가까이 갈 수 없는 전지 전능의 이 하나님이 말씀이라는 이 외모를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잡았느냐 하나님을 잡았고. 이 말씀과 같이 동행하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되고. 이 말씀을 배반했느냐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되고. 이 말씀을 의지하느냐 전능자를 의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은 전지 전능의 능력을 가졌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졌고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바로 영생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영생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전능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전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나님 말씀은 영생이라고, 하나님 말씀은 전지 전능의 지능이라고 이렇게 성경은 말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믿지 않는 데서 다 실패를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만 그런 게 아니고 저 말씀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말씀은 다 그러합니다.
하나 예를 들면, 그 사람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거짓말 한 마디만 하면 많은 돈을 취할 수 있는 그런 현실을 닥쳤습니다. 또 그 사람이 거짓말 한 마디를 안 하면 자기 사업이 그만 절단나는 그런 일을 닥쳤습니다. 또 거짓말 한 마디를 하면 거게서 안 죽고 살아남을 당하고 거짓말 안 할라 하 면 목숨이 끊어지는 그런 현실을 만났을 때에 사람들은 다 정직한 말을 하 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좋지 못한 줄 알면서도 거짓말 안 하면 너무도 해가 크고 또 자기에게 아주 어려움이 오기 때문에. 그 거짓말과 어려움과 비중을 달아 볼 때에, 거짓말을 안 하는 게 좋기는 좋지만 거짓말 안 하는 그것과 자기 목숨과 비중을 달아 볼 때에 아무래도 거짓말 안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내 목숨이 중하다, 또 거짓말하는 것이 안 된 줄은 알지만 거짓말함으로써 자기에게 큰 재물이 온다든지 큰 무슨 자기에게 크게 유익 되는 그런 일이 올 때에는, 거짓말은 그거는 않돼서 하면 손해이지만 거짓말 손해와 이 유익과 비중을 달 때에 이 비중은 거짓말한 그 거짓말과 비중을 달면 거짓말을 만일 만원짜리 손해라고 하면 거짓말함으로써 한 천만 원이나 유익이 된다고 하면 그래도 유익이 되지 않느냐 해 가지고 수지 계산을 맞춰서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말씀을 어기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얻는 그 수입과 하나님 말씀을 버린,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내가 얻은 수입과 내가 버린 하나님의 말씀과 이 둘의 가치의 비중을 달아서 버린 하나님의 말씀이 내가 버리고 얻은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백 배나 천 배나 더한다고 하면 말씀을 버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버리고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취할라고 하는 것은 말씀의 가치보다 내가 취하는 그것이 더 내게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씀을 '버리고 다 그런 것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땅위에 어떤 것을 취했다 할지라도 그것과 이 말씀과'비중을 달면 비중이 어찌 되는지 그것을 우리가 바로 정가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을 버리는 것이 전능을 버린 것이요, 전지를 버린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버린 것이요, 하나님의 전부를 버린 것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버린 것이요, 하나님의 보호를 버린 것이요. 하나님 버리니까 그것이 내가 마귀에게 끌려가는 것이요, 사망에 끌려가는 것이요, 죄에 끌려가는 것이요. 끌려가는 것이니까 하나님 말씀 버리고 일시에 무엇이 유익이 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 말씀의 가치를 바로 깨달으면 말씀과 그것과 바꿀 리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내주고 그런 것을 취하는 것은 말씀의 가치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입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너 지금 기도하면, 너거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사자 구덩이에 넣어서 사형을 시키겠다' 이렇게 말할 때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하라는, 기도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기도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내가 지키느냐,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지키고 이 말씀을 내가 배반치 안하고 이 말씀을 내가 모시느냐, 하나님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을 내가 가지느냐 내가 내 생명을 가지느냐, 생명을, 육의 생명을 가질라고 하면 하나님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을 버려야 되겠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가질라고 하면 내 생명을 버려야 되고 이러니까 그때는 다니엘의 육의 생명과 하나님 말씀과 둘이 그 비중이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하나님 말씀의 그 중량과 자기 육의 생명의 중량과 두 가지 중량을 달 때 에 하나님의 말씀의 중량이 컸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지 안하고 가지고 자기 육의 생명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가치있고 얼마나 능력있고 얼마나 보배라는 이것을 우리가 자꾸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이걸 인식하지 안하고 이것이 대번에 인식이 되느냐 하면 말로 논리는 된다 하지만 서도 그것을 또 하고 또 하고 자꾸 그라면,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은. 이 우주보다 하나님 말씀은 더 가치가 크고 더 존귀하고 능력있고 우리에게 더 필요합니다. 이 우주도 필요하지만 우주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필요합니다: 자꾸 이것을 우리가 연습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보다 하나님말씀이 내게 더 필요하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도 필요하지마는 이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 필요합니다. 더 필요한 것을 알게 해 주 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고도, 또 '이 더 크신, 더 큰 것을 나로 하여금 믿게 해 주옵소서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래서, 자꾸 기도하고 우리가 연습해서 이제 우리 지식에 벌써 '하나님의'말씀과 비교할 것이 세상에는 없다, 하나님 말씀과 비교할 능력도 없다 하나님 말씀과 비교할 보배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를 보호하는 그 어떤 보호도 하나님의 말씀의 보호만 같지 못하다'자꾸 이렇게 우리가 연습하고 우리를 숙달 시켜서 우리의 지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하나님 말씀은 전능이라, 예를 들면 어떤 장사하는 사람이 참 그 장사를 하는데 거게 거짓말 한 마디 하면 한 몇만 원 돈을 벌겠는데 거짓말 한 마디 하면 몇만 원 돈을 벌겠는데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직하라는 그 말씀을 버리는 것이 되니까 하나님 말씀 정직하라는 그 말씀을 버리고 한 이만 원 돈을 벌까, 그만 이만 원 돈을 벌지 아니하고 벌 돈을 벌지 아니하고 손해보고 하나님 말씀에 정직하라는 이 말씀을 내가 버리지 안하고 요 말씀을 지켜서 요 말씀을 내가 영접하고 이 말씀을 버리지 안하고 내가 이 말씀을 내가 모실까 이 두 가지를 비교할 때 에 하나님의 말씀이 돈 이만 원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만 원을 취하고 하나님 말씀을 버릴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라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만 원 아니라 더한 이천만 원이 앞에 닥쳤는데 이천만 원 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라는 이 말씀, 정직하라는 이 말씀은 이천만원보다도 더 크다고 생각하면 정직하라는 그 말씀을 가지고 이천만원을 취할 것을 버리고 정직하라는 말씀을 가질 것입니다.
또 그 정직하라는 그 말씀이 거짓말하지 말아라, 정직하라 진실하라 하는 이 말씀이 내가 현재 닥친 데에 만일 예를 들어서 한 몇 억 몇 억이 그만, 당장 몇 억이 생길 수 있고 지금 어째 거기서 거짓말 한 마디하고 딱 도장이나 찍든지 하면 그만 몇 억이 수입이 될 수 있는데 이 몇 억과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 말씀과, 정직하라는 말씀과 비중을 달아 볼 때에 이 비중이 자기에게 몇 억만 원이 닥친 몇억만 원보다 이 말씀의 가치가 더 크다고 봐야 이 말씀을 가지고 이 몇 억 이라는 것을 던져 버릴 것입니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이해 타산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가 정직하기 어려울 때에 그때에 진실하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하는 이 말씀을 내가 지킬 때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 말씀 은 거짓말하지 말아라 할 때에 내가 이 말씀을 지켜서 거짓말을 안 하면. 이 말씀을 지키느라고 거짓말하지 안하면 이 말씀을 지키느라고 거짓말하지 안하는 그 정직은 그 정직 그것이 전능의 능력을 가진 것이요 전지의 지혜를 가지는 것이요 대주재의 그 모든 유업을 내가 받아 가지는 것인 것을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하면 거기서는 정직을 지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네가 주일을, 주일을 네가' 박 기천 전도사님에게 감옥에, 감옥에 한 달포 가둬 놨다가 주일날이 됐는데 '이제 너를 내 보낼 터이니까 그러면 오늘 이 각목 각재 말이오, 네모배기 재목. '각재 요거 하나만 좀 져다가 저게 갖다가서 놓고, 네가 전도사인데 한 달 동안이나 가둬 놓으니까 설교도 못 하고 하니까 대단히 미안하다. 그러니까, 이 각재 저거 져다가 저게 좀 갖다 놓고 나가서 주일을 봐라 그렇게 인민군들이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박 기천 조사님은 내가 그라면 각재 저거를 져다 놓으면 주일을 범하는 것이 되어지고, 주일 범하는 것 과 내가 지금 나가 가지고 또 교인들 앞에 가서 설교를 하고 같이 예배를 보고 가족들도 만나 보고 이라는 것과 이 두 가지 비중을 달고 달고 이래 달 때에 아무래도 주일 지키는 이것보다는 내가 여기 감옥에 갇혀 가지 그 있는데 놓여 나가 가지고 목회도 하고 가정도 돌보고 이 고생도 안 하고 하는 그거와 비중을 달아 볼 때에 주일 지키는 그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그것을 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으면 박 기천 조사님은 그것을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박 기천 조사님은 그런 거, 가서 설교를 몇 번 하고 가족을 뭐 어떻게 하고 교회가 어떻게 되고 또 자기가 감옥에서 놓여서 자유하고 하는 그 모든 걸 똘똘 뭉쳐 봐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주일을 범하는, 그거 범하고 그거 얻는 거보다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그거 취하지 못하고 내나 감옥에 갇혀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교회 가 가지고 예배도 보지도 못하고 하는 그런 거와 다 뭉쳐서 볼 때에 주일 지키는 이것이 그보다 가치가 있나 없나 그렇게 비판 비교를 해 가지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박 기천 조사님은 그때 말할 때에 '오늘은 주일이'라 안 됩니다.' 주일 지키는 가치가 큰 줄 알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나중에 그래 가지고 그걸로 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주일 지키는 것과 자기 목숨과 비중을 달아 볼 때에 자기 목숨을 뺏기고 주일 지키는게 낫지 주일 범하고. 주일 지키라는 그 하나님의 말씀 어기고 육신의 생명 사는 그것이 손해인 줄 알았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을 내주고 주일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는 주일 지키라는 그 말씀의 가치를 알았고 이 말씀은 전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하나님 말씀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켜 가지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다니엘처럼 꼭 죽을 것인데 그 말씀의 능력이 그를 도와 가지고 살게 하는 일도 있고,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안하는 것은 그것은 그 말씀이 저의 것 됐으니까 말씀이 저의 것 됐으면 하나님이 저의 것 됐고,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모든 진리는 다 자기 것이 됐고 이미 죽을 생명 가지고 자기가, 완전히 자기는 진리의 것이 됐고 진리는 자기의 것이 돼 가지고 끝을 마쳤기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살아 나온 것은 남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서는 더 유익이 있었지만 서도 본인에게는 유익이 되지 못하고 그것은 제 이 유익이지 제일 유익은 되지 못했다 하는 것을 우리가 평가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라, 말씀이 하나님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에 말씀하고 동행하니까 하나님하고 동행하고 말씀을 버리니까 하나님 버렸습니다.
그러면 하나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아주 자기를 미워합니다. 그 사람이 미워하니까 그 사람이 미워하니까 나도 미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주 밉상스러운 일을 많이 하는데, 그러니까 그 사람은 내게 원수입니다 원수인데 성경 말씀은 뭐라고 말합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그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그것이 성경 말씀인데,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그 말씀은 전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내가 지키는 것은 전능을 내가 모시는 것이요 내가 전능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힘들고 하기 싫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 그 자체가 전능을 가졌습니다. 그 말씀 자체가 전능을 가졌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게 아무리 그렇지만 원수를 사랑함으로서 내가 전능자가 된다면 그거 뭐 못 할 거 뭐 있겠습니까? 또 성경에 화목하라, 화평하라 화목하라는 그 말씀도 전능을 가졌습니다.
화목하라는 그 말씀이 전능한 능력을 가졌고 전지의 지혜를 가졌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겼는데.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전능이 요 하나님의, 전지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인 그 전지 전능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주시는 생명 그 생명이, 하나님의 전능과 전지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하는 생명 그 생명이, 그 생명이 요 현실에서는, 그 생명이 요 현실에서는 무슨 껍질을 입고 왔느냐 하면 화목이라는 그 말씀의 꺼풀을 입고 왔습니다. 꺼풀을 입고 왔는데 내가 아무리 화목하기가 힘들지만 내가 화목할 때에, 그 화목은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는 게 아니 라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내가 그 계명은 내 계명이 되고 나는 그 계명의 것이 되고 계명과 나와 하나 되는 것이니까, 그 계명을 내가 지키지 안하면 계명과 나와 이별하는 것이 되고 나는 계명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지만 계명을 지키면 그 계명과 나와는 하나 되고 이제 계명은 내것 되고 나는 계명의 것 되고 이래 되는데.
그 화목하라는 그 계명이 요 시간에는,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화목이라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해당될 때 있고 정직하라 하는 것이 해당될 때 있고 또 겸손하라는 그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또 부지런하라 하는 것이 해당될 때도 있고 또 용서하라는 그런 말씀이 해당될 때도 있고 또 기뻐하라 하는 말씀이 해당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 이 나에게 내 현실에 해당되는 그 말씀은 내가 자동적으로, 내가 자동적으로 그 말씀을 지켜질 수 있도록 그런 말씀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꼭 현실에는 그 말씀을 지키기 어렵도록 어려운 그 말씀이 나옵니다. 현실에는 지키기 어려운 말씀이 반드시 그 현실에는 해당된 하나님의 뜻이요 내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키기 쉬울 때는 지키지만 어려울 때는 그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다 그만 그 말씀을 버리고 저 좋은 대로 그렇게 합니다. 어떨 때는 좀 편하기 위해서, 어떨 때는 좀 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어떨 때는 좀 자기 오기대로 하기 위해서, 어떨 때는 자기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기쁘기 위해서, 어떨 때는 다른 사람을 좋게 하기 위해서 어쨌든지 저 좋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그 말씀이, 네가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그 말씀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이 막바로 하나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요거는 여러분들이 알기 위해서 말하는 것이지, 알게 하기 위해 말하는 것이지, 말하는 것이지 그 게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행사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이 내가 원수를 사랑할 수 없는 그 현실에 그 때에는 요때는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성구는 무엇이며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뭐일까?'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내게 대한 명령이요 내게 해당되는 성구입니다. 그러면, 그 성구가 내게 해당되는 그 현실을 닥쳤다 말이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요 하나님 명령이요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인데, 그 원수를 사랑하는 그 계명 그 성구. 그 명령, 내게 대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뜻 그것이 하나의 그저 이런 법칙으로만 보고, 하나의 법칙으로만 보고 하나의 도덕의 교훈으로만 보고, 바로 고때에 해당된 그 말씀이 전능의 능력을 가진 전능이라,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지키면 전능을 내가 가졌고 사랑하지 못할 때에는 그 전능을 내가 팽개쳐 버렸고, 전지를 가졌고 전지를 팽개치고, 영생을 가졌고 영생을 팽개치고, 그러면, 그때에 내가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계명을 지켰으면 고때에 지킬 때에 거게 출전한. 거게 출전한 거게 등장된 심신의 기능은 영생돼 버렸습니다.
심신의 기능은 영생이 됐습니다. 그러면, 영생이 됐으면 영생된 그 기능은 어떤 능력자입니까? 영생된 그 기능은 어떤 능력을 가진 기능이겠습니까? 전능의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왜? 그것은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인적 요소의 기능이지만. 껍데기는 기능이지만 그 기능을 주관하고 있고 그 기능을 주권해서 그 기능을 앞으로 능동적으로 그 기능을 피동시킬 그 능동은 곧 하나님의 전능이기 때문에 거게 피동되는 그 기능은 전능의 기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떤 성구든지 내 현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 또 해당되는 성신의 감화, 감화는 말씀보다도 더 세밀하고 더 확고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현실에 나타난 성경 말씀이나. 나타난 성경이나 나타난 영감이나 그것을 우리는 하나의 말로, 하나의 문자로. 하나의 무슨 논리로 하나의 교훈으로, 하나의 무슨 도덕으로 이렇게, 이렇게만 생각하고, 곧 그것이 ' 그것이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서 내가 그 시간에는 내 기능이 전능자가 되고 영생자가 되고 완전자가 되어지는 이것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고 요동치 안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내 현실에 어떤 성구든지 그 성구를 하나의 무슨 도덕론으로, 하나의 교훈의 말로, 하나의 지도의, 지도로, 하나님의 아주 훌륭하고 귀한 선한 말로 이렇게 우리는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 현실에 해당 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말씀 내가 지켜 봤자 사귀어 봤자, 내 목숨 뺏겨 가면서 지켜 봤자 목숨 뺏겨 가면서 지킬 가치 없고, 내 재물 다 절단 나가면서 그 말씀 내가 안 뺏길라고 그 말씀 안 놓을라고 내가 그 말씀을 모셔 봤자 내 직장이 떨어져 가면서 그 말씀을 내가 모시고 가져 봤자 가질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여기서 우리는 다 실패를 하고 마귀란 놈이 요렇게 유혹을 해 가지고 우리가 다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모든 성경은' 하는 것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 성경에 있는 그 전부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사도행전 20장에 '이 말씀은 너희를 능히 든든히 만들어 가지고 거룩한 자 속에 들어가게 하고 거룩한 자들이 누리는 그 기업을 네가 누릴 수 있도록 이 말씀은 너희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고생해 가면서, 예를 들면 힘센 장정이, 이 어린 아이를 아듬고 잘 보호하고 또 건강한 군인이 병신된 상이 군인을 업고 이래 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업고 가 그 내가 보호하고 가고, 이 말씀은 내게 짐이 되고 나는 이 말씀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는 것으로서 우리가 요렇게 이 하나님의 말씀관을 잘못 가지 그 있는 데에서 우리는 다 실패하고 맙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칠계에 대해서 어느 민족보다도 엄격히 다뤘는데. 칠계 중에도 미혼한 처녀가 만일 음행하면 다 저 빈들판에 놓고 돌을 던져 가지고 돌조산을 만들어 가지고 그래 사형을 시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수백 년 내려 왔습니다.
그것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잉태하시는 그 준비를 하나님이 시켜 가지고 일찍부터 그렇게 나왔던 것입니다.
이랬는데, 마리아가 요셉으로 더불어, 그때 약혼은 어릴 때부터, 날 때부터 약혼하기 때문에 약혼은 했지만 아직까지 연령이 안 돼서 결혼 안 했는데, 마리아가 잉태 해 가지고. 조그만한 처녀가 잉태했으니까 배가 이렇게 부릅니다.
이러니까, 자기 이웃 사람들은 '저거 결혼도 안했는데 아이가 지금, 저 마리아가 아이가 배 가지고 저렇다' 다 알 것이 그 또, 그랬는데 해산은 어디 가서 했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로 호적하게 해 가지고 자기 집안끼리 모아 가지고 호적하는데 다윗의 자손인고로 베들레헴에 가 가지고 호적하게 됐습니다.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하게 되는데. 호적하러 모인 데는 저거 가까운 친적들이 다 모았습니다. 서로, 뭐 우리 하는 말로 말하면 형 동생 아저씨 조카 뭐 할아버지 뭐 하는 전부 저거 집안끼리 다 한테 모여 가지고 있는 그 가운데서 마리아가 해산을 했으니까 그거야 시집가지도 안한 게 낳았으니까 당장 돌로 들어 칠 거 아닙니까? 배가 뿔룩하이 돼 있는 그거 모든 사람이 아는데 그 마리아가 잉태한 데 대해 가지고 아무도 말한 사람이 없었고, 베들레헴에 가 가지고 또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낳는데도 말 구유에 낳아 가지고 낳았지 또 목자들이 와 가지고 떠들지 천사들이 와 떠들지 이러니까 뭐 시집가지 안 하고 남편 없이 아이 낳은 마리아에 대해서는 그 유대 나라의 국법에 환하이 드러날 건데, 다 드러났으니까 그는 사형 사형 사형일 터인데 입도 하나 못 벌렸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는 마리아는 그런 생명이 위험한 그 런 국법 아래에서, 종교법 아래에서, 가까운 친척들 옆에서 속에 배어 있는 그 아이를 강직하고 열 달을 지내느라고 큰 고생을 했습니다. 사람 생각에는 '저거 매일 매일 생명을 내놓고 그 뱃속에 있는 예수님을 보호하고 강직하느라고 애를 썼다' 다 그럴 것이고, '참 죽을 고비를 매일, 매일 죽으며서 모시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 법령 앞에서 종교법 밑에서 이웃이 다 알고 있으니까 하루 하루의. 곧 처녀 잉태는 그거는 돌로 던져서 사형을 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그 가슴이 도근도근 하고 눌리기를 얼마나 눌렸을까?' 그러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 배안에 모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보호하느라고 크게 참 고통을 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데, 잉태되고 난 다음에 아무도 마리아에게 대해서 너 언제 시집갔으며 어떻게 아이 배었느냐 묻는 사람 없었고, 해산하고 난 다음에도 묻는 사람 없었고 그 뒤에 물어서 정죄한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배 안에 있는 예수님을 보호했습니까 예수님이 마리아를 보호했습니까? 예수님이 마리아를 보호했기 때문에 아무 인간들이 거 게 대해서 해하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게 뭐이 그런가?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네가 아이 배 낳아 가지고 모든 인간들의 구세주가 되고 그 나라는 영원하리라 만왕의 만주의 주로서 이렇게 영원히 메시야가 될 것을 말씀하신 그대로 다 됩니다. 그대로 다 돼요. 인간 전 법칙이 다 멸살시킬 수 있는 그런 사건이지만 아무도 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말씀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계약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 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 사실도 우리가 의심 없이 믿어야 되고. 믿는 데 서 능력이 나옵니다. 안 믿으면 소용없어. 믿어야 하고, 또 내 현실에, 내 현실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내 현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 현실은, 우리 현실은 아무 성구라도 막 지키는게 아니 그 우리 현실에는 요 성구를 지켜야 할 때도 있고 저 성구를 지켜야 할 때 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마다 달라서 현실마다 지킬 성구가 따로 있다 그말이오. 그거 이해가 됩니까? 현실마다 지킬 성구가 따로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성구를 지켜야 할 때 엉뚱한 성구를 지킬라면 지켜집니까? 엉뚱한 짓이지 그게 됩니까? 네가 참으라 할 때에 참으라 하는 그 참기 어렵고, 참기 어려운 그때는 참으라는, 네가 참으라는 그 말씀이 해당된 성구에 그때 거게서 참는 거는 하지 안하고 자꾸 전도한다고 자꾸 입이나 씨부렁거리고 또 무슨 그저 논쟁이나 하고 이라면 해당되지 않는 그 일을 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에, 우리는, 참으라는 그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기도하라는 그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이럴 때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이럴 때는 용서하라는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이럴 때는 원 수를 사랑하라는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이럴 때는 구제하라는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이럴 때는 용서하라는 성구가 해당될 때도 있고 그 현실에 따라서 해당되는 성구는 각각 다르더라 그말이오. 그거는 이해가 됩니까?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르니까. 현실마다 지켜야 할 성구는 각각 따로 있는데 그 현실마다 지켜야 할 성구는 꼭 하나이지 둘은 아니고 거게 해 당된 성구가 따로 있다 하는 이것은, 자, 우리가 동감인지 나만 생각하는 것인지, 그러면, 그 현실마다 거게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는 것은 다 확실히 이해가 됩니까? 이해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그라면. 이거 이해가 되면 좀 쉬운데, 그래.
거게 해당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해당되는 말씀은 대개 그 현실에서 지키기 어려운 말씀들입니다.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내가 지킬 필요가 있는 것이지 지킬라고 하지 안해도 저절로 되는 그런 것은 그거 내게 뭐 내 가 지키는 게 뭐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내 현실에 해당되는 성구는 반드시 지키기 어려운 그것이 해당되는 성구입니다. 정직을 하기. 여기는 거짓말 안 하기 참 어려운데, 거짓말 안 하기가 심히 힘들고 현실에서는 하나님이 거짓말하지 말라하는 그 성구가 해당됩니다. 가만히 앉아 가지고야 그래 분할 게 없지만 지금은 분해서 말이지 분해서 이가 갈리고 분해서 막 사지가 떨립니다. 어떻게 분해서 분해서 사지가 떨려져. 사지가 떨려지는데, 그러면, 그 현실에 분해서 사지가 떨려지는데 그 현실에 해당되는 성구는 무슨 성구이겠습니까? 분을 내지 말고 참아라 하는 그 성구가 거게 해당되는 성구인 것입니다.
미워서 못 견디는데, 미워서 이거 죽여 볼까 어째 버릴까 지금. '이걸 당장 어떻게 해서 이거 그만 없애 버릴꼬' 이렇게 그만 참 미워서, 견딜래야 미워서 못 견디는데 그때에 해당된 성구는 어떤 성구이겠습니까? 예? 원수를 사랑하라 이거 기가 찹니다. 미워서 죽여 버리면 싶은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성구가 고때 해당된 성구라 그거요. 이러니까 지키기가 어려운데 고때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그 성구가 내가 그 성구를 지키기 어렵지만 그 성구는 전지 전능을 가진 성구요 영생을 가진 성구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지키기가 어렵지만 서도 이 성구는 전지 전능의 성구요 영생을 가진 성구이기 때문에 내가 요 성구를 지키면 나는 그 시간에 전지 전능자가 되고 영생을 가진 자가 되어서 그 시간에 해당된 내 마음의 기능과 내 몸의 기능, 원수를 미워해야 될 터인데 미워하지 안하고 사랑하는 그 사랑은, 그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이 심신의 그 기능은 그것은 영생을 가졌고 그 기능은 전능을 가졌고 그 기능은 전지를 가졌고 그 기능 은 완전히, 이룬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때에 우리 현실에 우리에게 해당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전능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기에, 내가 현실에서 해당된 요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할라고 온 세력들이 달라들어서 나를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내 생명보다 .더 커서, 이 성구의 능력은 세상이 나를 죽여도 죽일 수 없는 영생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고 또 죽여도 영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 세력이 암만 달라들어도 그 세력을, 모든 천명이나 백 명이나 어떤 정부에서 나 나라에서나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 능력과, 내 현실에서 내게 해당된 그 하나님 말씀 그 계명 곧 하나님의 뜻 성구인데,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말씀과 나를 대항하는 그 능력과 우리는 그 세력을 비교해 보고 그 능력도 비교를 해 보고 가치도 비교해 봐야 됩니다. 비교해 볼 때에 이 능력 이 온 나라가 달라 들어서 이라니까 이 능력이 크지만 내게 해당된 그 성구는 이런 것들을 만들고 만들고 이런 것들을 통치하고 이런 것들의 억억만 배도 더 강한 능력을 가진 이 성구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깨닫고 잡을 때에 우리는 그 현실에서 이 성구를 버리고 무엇을 얻는 이런 사람들이 되지를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저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을 우리가 붙들고 내 현실에 어떤 말씀이든지 말씀은 그 말씀 지키기가 아무리 어렵고 그 말씀 지키면 당장 지금 죽는다. 그 말씀 지키면 죽는다 이랬지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불미 속에 넣을라 하는 그 세력 그것보다도 이제 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지키는 하나님의 말씀은 불미에 넣을라 하는 그 세력의 억억만 배도 큰 줄 알았기 때문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놀래 떨지 안하고 오히려 웃으면서 그들을 참 안타깝갑게 여겼고 비웃고 그저 마음에 서글프게 아주 시쁘게 여기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 현실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그 말씀, 그 말씀 아니라도 그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그 행위를 온전케 할 수 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내 현실에 고때 해당된 요 성구도 전지 전능의 사랑의 생명을 가졌고 모든 성구도 다 가졌는데 모든 성구도 다 가졌지만 내게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 성경 모든 말씀이 내게 한번 해당이 될 것도 있고 안 될 것도 있으니까 해당 안 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모든 성경에 있는 그거는 다 내비두고 내 현실에 당장 내게 해당된 요 성구는 전능의 능력을 가진 성구라, 전지의 지혜를 가진 성구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의 주권의 권력을 가진 성구라, 영생을 가진 성구라, 이러기 때문에, 바로 이 성구가 영생을 가졌기 때문에 이를 버리면 영생을 버린 것이요 이를 버리면 전능을 버리는 것이요 전지를 버리는 것이요 이는 완전을 버리는 것이요 세상을 취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 말씀한 것은, 뺏겼다 말은 현실에서 제가 자기에 게 해당된 그 성구를 지키면 그는, 성구를 지키면 곧 영생을 얻었고 전지 전능의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됐기 때문에 이거는 우주보다 네게 있어서는 가치가 크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밤에 이제 증거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성경에 있는 말 한 마디라, 또 이거는 좋은 교훈이라 이거 뭐 공자의 교훈이나 또 무슨 석가모니의 교훈이나 무슨 도덕가의 교훈이나 하는 거 모양으로 '이는 그저 좋은 교훈의 말씀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요것을 우리가 회개해야 된다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지 안 했습니까? 능치 못하심이 없다 말은 영생의 말 아닙니까? '내가 한 말은 곧 아버지의 말씀인데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인 것을 나는 안다' 이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번에 가서 성경관을 배웠는데, 성경관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하나의 종이쪼가리, 책, 그것의 그것뿐인 줄 알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천하게 봅니다. 이래서, 뭐 성경을 이렇게도, 번역하고 저렇게도 저거 마음대로 하지만 성경은, 성구 하나는, 한 성구는 전 인류 모든 것보다도 더 권리가 무한히 탁월해 있습니다. 전 인류를 전 부 다 뭉쳐도 그 성구의 획 하나를. 하나를 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지키라 했으면 이 말씀을 내가 지키면 내 기능은 전능의 기능이 되고 전지의 기능이 되고 영생의 기능이 돼 버렸고 버리면, 버리면 그 글자 몇 자를 버린 게 아니고. 말 몇 마디를 버린 게 아니라 전능을 버렸소. 전지를 버렸소. 영생을 버렸다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이거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믿지 않고 딴걸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믿기 때문에 주일 하나 범하지 안할라 그 생명을 내놓고 다 그렇게 했지 그렇지 안하면 뭣 때문에 그렇게 생명을 내버리겠소? 주일 지키라는 그 계명 하나를 가질라고 하니까 생명 안 내 놓고는 가질 수가 없어서 생명을 내놓고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한 성구 한 성구를 지킬 때에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현실에서, 현실에 해당되는 하나님 말씀이 없을 때는 없습니다. 현실에 하나님 말씀을 지킬 때에는 이렇게 큰 비중이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계명을 지키지 이 비중을 모르는 그 사람은 성구를 지키지 못합니다. 성구를 지키지 못하도록 천하 마귀가 다 달라듭나다. 옛 사람은 전부 똘똘 뭉쳐 다 뭉치가 돼 가지고 이래 달라드는데 이 성구를 지킵니까? 못 지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 비중이 큰 것을 이 가치가 큰 것을 우리가 깨닫고 우리 힘있는 대로 다, 지킬라고 생명 버려도 다 지키고, '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못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나라도 거머쥐고는 못간다.' 이제 다 버리고 지키는 것은 다 버리고 지키는 것은 가진, 버릴 거 그것보다는 이게 가치가 큰 줄 알기 때문에 가치 적은 거를 버리고 큰 걸 잡지 않습니까? 가치 적은 그것이 내게 효력 있는 것보다 이것이 더 효력있는 줄 알기 때문에 효력이 없는 거 가치 적은 거 능력 없는 거 버리고 능력 있는 거 취하고, 내게 더 복된 것 취하고 복이 적은 거 다 버리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걸, 자기에게 있는 걸 버릴 자가 뭐 있습니까? 그러니까 있는 거 다 버린다 했으니까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다 보다도, 몸이나 소유나 생명이나 모든 다 보다도. 뭣이 크다 말입니까? 신구약 성경이 크다 말이오? 소유나 몸이나 생명보다 현실에 네게 해당된 그 하나님의 말씀은 중량이 심히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심히 크다. 무슨 중량이 그 속에 들었는데? 전지가 들었다, 전능이 들었다 영생이 들었다, 완전이 들었다 든 것을 깊이 파고 속에 파고 들어가 보니까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신다. 완전히 우리가 관념을 바꿉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는 하나님 말씀을 업신여기지 맙시다.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지 맙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돈 몇 푼데도 팔고 자기 더러운 욕심에도 말씀을 팔고 자기의 더러운 취미에도 팔고 자기의 감정에도 팔고 인간 안면에도 팔고 인간의 모든 어려운 사정에도 팔고, 그렇게 싸고 헐하고 가치 없는 말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보다 가치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