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론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8일 목전집회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5절∼17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어제까지는 하나님께서 서늘하게 해 주셨는데, 참 거의 추울 만치 서늘하게 해  주셨는데. 오늘은 또 여러분들이 또 잊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서늘하게 해 주실까요 덥게 해 주실까요? 아마 내 마음  같아도 덥게 하겠습니다. 덥게 해 주겠어. 왜 덥게 해 주실까 왜 덥게 해  주실까요? 밉상이라서? 당신에게 달라 붙으라는 것이오.

 어쩌든간에, 그분이 뭐 자존자고 영원 완전자신데 우리 이거, 죄인 이거 뮈이  좋아 그런지 어쩌든지 우리에게 참 좋아서 하나님께서는 전소망과 기업을 삼고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도 당신에게 간절히 소원하는 것을 당신은  소원하시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줄 알고 간절히 소원 할 때에 주님이  그때 재미가 있다 말이오. 그럴 때에 슬그머니 '그래 덥나? 그러면 서늘히 해  주지.' 이러니까 제 생각에도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 냅두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기도 안 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 혼자 불미 속에 들어 간 거  모양으로 혹독해서, 더워서 못 견디게 발동을 하도록 하고, 기도한 사람은 그  옆에 같이 앉았어도 서늘서늘 하도록 그렇게 해 주겠습니다.

 아마 하나님은 나같이 마음이 이렇게 좁지 안하니까 안 그럴 것 같아도 안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의 좁은 마음을 당신이 만드셨소. 우리의 좁은 마음을  당신이 만드셨고, 우리의 시기 마음을 당신이 만드셨고 우리의 미워하는 마음을  당신이 만드셨고 우리의 다정다감을 당신이 만드셨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인 것을 깨닫고 모든 사람 그것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의 자연 계시입니다.

 더우면 기도하고, 덥습니까? 안 덥습니까? 그라면 개적으로 기도해요. '주여  서늘하게 해 주옵소서' 뭐 길게 하지마. '주님 서늘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만 그라면 돼요. 자꾸 그래 덥거든 또  기도하고 기도하고 자꾸 기도하시이소. 그래 가지고 아주 선선하게 그래서 나는  염려되는 것이 요새 한창 날이 더워야 곡식이 잘되는 데 '우리 집회 동안에 며칠  서늘하니까 주상면 이 곡식이 잘못 될까 해서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도 잘되게 해 주셔야 되지 우리로 말미암아 덕을 봐야 되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 봤다 하면 그 하나님께 영광되지 안하고 안 되니까 그렇게 그런 생각 한번  가져 봤습니다.

 금번에 우리가, 여기 17절에 말씀한 거와같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그러면, 사람 온전을 우리가  소망하고 왔습니다. 여기서 뭐 무슨 새 말이나 묘한 말이나 강단에 가 가지고  팔아먹을 말이나 그런 말이나 여기서 간추려 가지고 갈라고 그리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여기 참석해 가지고 우리가 소망하는, 우리가 목적하는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집회를 참석하고 제일 보배로운 것을 우리가 잡아야 되겠고  찾아야 되겠는데, 그러면 어떤 것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내가 할 건가? 나는 이  집회에 참석하는데 그 가치를 어디다가 둘 건가? 강단에 가서 팔아먹을 그  설교에다가 가치를 두는가, 그렇지 않으면 예수 믿는 상식에다가 가치를 두는가?  상식 암만 있어 봤자 설교 팔아서 돈 많이 받고 암만 인기 끌어 봤자  소용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다같이 온전한 사람이 내가 되어져 가지고 가겠다 하는  여기다 가치를 두고, 다 같이 우리가 여기 참여한 이 목적을, 소망을 우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겠다는 이 소망을 다 가집시다. 처음에는 모르고 이렇게 저렇게  그런 잡된 소망을 가졌을지라도 이제 소망을 바꿔서, 처음부터 그 소망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겠고, 또 아직까지 가지지 못한 사람도 있겠는데 그런 사람들도 다  '내가 이 집회에서 온전한 사람이 이제 되겠다. 참 사람으로 주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을 내가 주심을 받겠다. 옛사람은 다 죽여 버리고 새사람으로 내가  완전히 고쳐 주심을 받겠다.' 이것을 제일 욕망으로 가지고. 그 다음에 가질  욕망은 '선을 행하는 일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행위를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이런 내가 능력을 받겠다.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겠다.'  온전한 행위를 하는 능력을 받으면 그것이 자기에게 좋은 배경도 되고 좋은,  아름다운 세마포 옷도 되고 또 그런 가운데서 온전한 사람은 나오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온전한 행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사람만 돼 놓으면 설교할 것 뭐 준비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목사가 좋은 설교할라고 설교에 준비하는 목사는 껍데기 목사요 그  목사는 목회 옳게 못 합니다. 항상, 성경 보는 것도, '설교를 어떻게 묘한  설교를 할까, 은혜 있는 설교를 할까?' 하는 그것은 껍데기 목사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내가 어떻게 하면 참사람이 될까, 온전한 사람이 될까, 이제는 내가  털끝만한 죄도 범하지 않고 살겠다. 이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고 주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되겠다.' 이 사람되지 못한 것을 항상 고통해서 고칠라고  애를 쓰고, 사람되지 못한 게 어디서 나오는 데? 사람되지 못한 것이 뭘로  표시가 됩니까? 행동으로 표시가 됩니다. 사람되지 못한 것이 행동으로 표시가  됩니다. 이러니까 '아, 이 행동 나오는 거 보니까 이 사람이 잘못 됐다.' 이래  가지고 행동을 고칠라는 것보다도 사람 고칠라고 하다 보니까 행동을 고쳐야  되겠으니까 사람 고치기 위해서 성경을 읽습니다.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 고쳐진 것 만치 그것을 얘기하면 그게 설교요. 그게 간증이라. 그게 다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는 것도 설교를 하기 위해서 보는 게 아니라 사람  자기가 참사람 되기 위해서 성경을 봅니다. 자기가 올바른 행위하기 위해서  그래서 성경을 봅니다. 그런 사람이면 그저 말씀을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자꾸  들어도, 자꾸 들어도 모자라서 자꾸 들을 것이요, 그런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읽고 나서 보니까 아이 또 새로 한번 읽어야 되겠다, 읽고 나니까 또 새로  읽어야 되겠다 읽고 나니까 또 새로 읽어야 되겠고, 새로 읽어야 되겠고, 새로  읽고 나니까 또 좀 깨달아지니까 이 좀 잊어버려지니까 또 새로 한번 읽어 봐야  되겠다, 자꾸 읽어보니까 거기서 새로 자꾸 깨달아지고 깨달아지니까 고칠 것이  자꾸 나오고 이라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제 처음으로 입학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성경을 볼 라고 산에 가 가지고 계획을 했는데 가서 보다  보면 그만 그 장 보지 못하고 그만 거기서 시간 다 가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그것이 괜찮은 거다' 내가 그랬어 '괜찮은 거다' 처음에는 그거 없으니까  성경을 거머쥐고 이 성경의 뜻이 뭐인가, 자꾸 이거, 성경의 뜻이 뭐인가 자꾸  알라고 이렇게 하면 귀신 들어옵니다. 그리 하면 안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이 성경의 뜻이 뭐인가, 이렇게 알려고 생각하지 안해도  성경을 읽으면 자연히 자기에게 알려집니다. 자기에게 알려주요. 알려지면 주욱  성경을 읽으면 알려 주고, 알려 주고 나서 또 읽으면 또 새로 알려 주고 또 보면  새로 알려 주고, 그저 알려고 애를 쓰는 그런 욕심을 가지지 말고 자꾸 성경이  나에게 뭘 가르치고 있는가 하고 자꾸 읽으면 이제 껍데기서부터 차차 차차 자꾸  알아집니다. 알아지는 것은 어째, 그렇게 자꾸, 한목 안 알아지고 차차  알아지는가? 알아지는 건 제가 성경 보는 가운데에서 사람이 차차 차차  변화됩니다 사람이 변화가 되니까 자기의 모든 견해가 다 변해집니다. 이래서  성경을 더 깊게 깊게 이렇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가 자기가 참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 데에 갈급을 가지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질라고 애를 쓰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질라 그 하다 보니까  온전치 못한 행위가 나오는 걸 볼 때에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 면을 보고  애를 쓰는 사람, 온전한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온전한 행위가 저절로  됩니다. 이걸 배워요. 온전한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온전한 행위가  저절로 됩니다. 온전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온전한 설교는 저절로 나옵니다. 또  온전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온전한 교회 행정은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교회 행정을 잘해야 되겠다' 행정을 잘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결국은 마귀 노릇하고 맙니다.

 이거는 이해 못 할 말일 것인데, 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느껴질 것입니다. 교회  이런 문제 저런 문제가 있으니까 이 행정을 어떻게 할까, 그 행정을 바로 할라고  애를 쓰고 연구하는 사람은 나중에 뒤에 가서 맞춰 보면. 지나가고 난 뒤에 보면  마귀 놀음밖에는 한 게 없습니다. 이거 다 이래 고쳐요, 여기서. 그러면 온전한  정치를, 바른 정치를 할라고 하면 어디다가 힘을 쓰면 바른 정치를 할 수  있습니까?  *** 온전한 행위야. 이거 알지도 못하는데 실지 어떻게 그렇게 생활을 하겠소?  이라니까, 자기가 교회 정치를 바로 할라고 요래 꾀를 쓸까 저래 꾀를 쓸까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면서 묻고 의논하고 야단지기는 것은 귀신 놀음밖에는 못  합니다. 교회 문제가 있으면 그게 대해서 나는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온전한 행위를 취할까? 자기 행위의 흠점을 찾아 가지고 자꾸 그걸 고치고,  자기가 언행심사의 행위를 바로 할라고 자꾸 거기다가 주력을 하면 그 언행  심사를 바로 할라고 자꾸 이래 주력을 하다 보면, 아, 교회 문제는 누가 해결해  버렸는지 저절로 스르르 다 풀려 버렸어. 저절로 풀려. 자기에게 속하고 관한  행정이기 때문에 자기 행위를 바로 하고 보니까 그만 그 행정이라 하는 것은 그  봄날되면 얼음 녹듯이 쏵 녹아 버리고 다 없다 말이오.

 이라고 나니까 그 깔고리를 가지고, 쇠깔고리를 가지고 자꾸 이래 따각따각  긁는 장로가 있고 집사가 있는데, 이 따각따각 긁는데 이거 긁는 걸 내가  '저놈의 깔고리를 어떻게 해야 조걸 뺏들고. 저놈의 깔고리를 어떻게 내가 지금  자끈 부숴 버릴고?' 자꾸 인제 지금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놈의 깔고리가 자꾸 더  강해집니다. '어라. 내비 둬라. 내나 행위가 온전하게 해야 되겠다.' 하고 자기  행위를 자꾸 온전케 하고 말에도 흠이 없고, 생각에도 흠이 없고, 그 안면에도  흠이 없고, 눈초리도 흠이 없고 행동에도 이런 행동 저런 행동 다 흠이 없는  온전한 행위를 이래 할라고, 애를 써. 그 행위 하다 보니까, 이놈의 그때, 이  쇠깔고리 어찌 됐는고 싶어 가보니까 그거 벌써 다 쭉쭉 다 뻐드려져서 그만  없어져 버렸어. 보니까 쇠깔고리 다 뿌질라서 다 치워 버렸어.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보면 교회마다 시비 없는 교회가 없고 문제없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거 자기가 경험할라 하면 그래도 몇 십 년  걸려야 경험이 됩니다.

 정치를 바로 할라면 정치에다가 관심 두지 말고 자기 행위에다가 관심을 두면  정치가 자연히 됩니다. 또 자기 행위를 바로 할라 하면 어디다가 관심을 둬야  된다 했지? 자기 행위를 바로 할라 하면 '내가 행위를 바로 해야지, 언행 심사를  내가 바로 해야지, 내가 언행 심사를 바로 해야지.' 자꾸 그라면 됩니까? 안 돼.

거기서 안 돼. 어디서 해야 됩니까? 온전한 사람이 내가 되겠다고 온전한  사람되겠다고 거기다가 주력을 하다 보니까 행위는 저절로 돼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자, 우리가 여기서 요번 집회에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에 주력을  하고, 그랄라면 온전한 행위가 되어져야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온전한 사람될라 하면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고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면 모두  평안한 평화 세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설교를 할라고 주력할 것이 아니고 설교는 어떤 설교가 제일  잘하는 설교냐 하면, 설교는 어떤 설교가 제일 잘하는 설교지요? 웅변 설교라야  돼요, 세밀한 뭐 모든 기독교 철학 말이요 이 세상 철학 말고, 기독교 철학적인  설교라야 잘 하는 설교입니까, 여기 저기 광문다학으로 주 종합해 놓은 그  설교라야 잘 하는 설교입니까 설교는 제일 잘하는 설교가 무슨 설교지요? 설교는  말을 하지만 그 말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진리가  들었고, 진리 속에 영감이 들었고, 영감 속에 예수의 피가 속에 들어 가지고서  피와 성령과 진리가 그 속에서 역사하는데 그것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나타나면 그 셋의 역사가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나면 반벙어리라도  좋습니다. 반벙어리도 버버버버버버버버버버 이래 말해도 그 속에 결실 맺는  것은 피가 맺고 성령이 맺고 진리가 맺는 것이지 인간의 웅변이니 뭐 지식이니  하는 그까짓 게 맺는 것은 다 땅의 것이지 하늘의 것은 하나도 안 맺어지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 기독자들의 모든 것이 장성하는 데에는 소나무 장성하는 거 같이  장성한다 했어요 장기짝 포개는 거같이 장성해진다고 했어요? 그거 때문에  문제가 돼 가지고 많은 문제가 있었던 모양인데, 장기짝이라 말한 것은  '장기짝은 죽은 건데 우리는 산 건데' 그 말 나올만 합니다. 그거는 죽고 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제 우리의 자라는 것은 은혜 받은 그것 이 자꾸  이렇게 확대돼 나가는 것이 아니고 자꾸, 하나 은혜 받은 거기다 가서 하늘에서  새로운 은혜를 받고 새로 은혜 받고 자꾸 은혜가 자꾸 포개, 쌓여진다 그말이오.

쌓여져 가지고 우리는 다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 지식이 자라는 것은 한  지식이 자꾸 이것이 지식에 자꾸 늘어나 가고 늘어나 가지고 그런 게 아니라 한  지식에다가 성경 한 성구의 지식을 또 가지고, 또 한 성구의 지식을 가지고 이래  가지고 한 성구, 두 성구, 세 성구, 네 성구 자꾸 이래, 하늘의 것을 자꾸 얻어  가짐으로써 지식이 자라는 것입니다.

 영감도 그렇습니다. 영감도 한 영감이 자라는 게 아니라 또 새로 영감 받고  영감 받고, 그러면 그 영감이 점점, 한 영감은 영감이지만 그 영감이 요런 데  해당되는 영감 저런 데 해당되는 영감, 이만치 감동되는 영감 이만치 감동되는  영감, 또 이만한 범위에서 활동하는 영감 이만한 범위에서 활동하는 영감 한  영감이지만 그가 자꾸 이만한 범위라는 현실에서 받은 영감은 이만한 범위에  감당할 수 있는 그 영감이고, 또 그러면 자꾸 우리 현실을 하나님이 키워  주십니다. 자꾸 키워 주시요. 키워 주시는 데 따라서 거게 현실에 담당할 만한  그 영감도 점점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어제 장기짝으로 말했는데 그것은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것이 자꾸 소나무 자라듯이 자라는 게 아니고 그  은혜는 가지고 그 은혜 위에 은혜가 자꾸 이렇게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새것이냐 하면 마치 그 햇빛이 쪼우는데, 태양은 하나  비추어졌데 내게는 빛이 꼭 똥글똥글하니 이 만큼밖에는 안 옵니다. 안 오니까  또 이거 빛이 안 온다, 조금 가리워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뚫으니까 또 이 빛이  이만큼 옵니다. 또 뚫으니까 또 이만치 오고. 또 뚫으니까 이만치 오고 자꾸  새로 옵니다, 자꾸 오는데 이제 나중에 확 다 뚫으니까 빛이 확 다 들어온다  그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리워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가리운 걸  찾아서 틔우면 자꾸 오기 때문에 한번 이 빠꼼한 뚫힌 그 은혜 가지고 자꾸 뭐  할라 할 게 아니라 자꾸 거기서 은혜 가로막고 있는 것을 자꾸 제거하면 또  은혜가 또 오고, 더 크게 오고 크게 오고 크게 오는데. '그라면 하나님 은혜가  종류가 많고 여러 개가 되는가 보다.' 여러 개가 되는 게 아니라 이제 한 분  하나님에게서 오는 은혜이지만 가리워져 가지고 그것이 자꾸 이래 제한돼 있다가  자꾸 이래 많아진다 그말이오.

 우리에게 오는, 그 뭐 다 비유는 잘 안 되지만, 지금 우리에게 물이 와 있는데.

지금 물이 한 드럼 와 있습니다. 또 물이 한 드럼 왔습니다. 또 한 드럼이  왔습니다. 이제 한 드럼 한 드럼 되는 물 이게 자꾸 이게 커 가지고 이렇게 지금  많아진다는 그게 아니고, 소나무 크는 거는 그래요. 소나무 크는 거는 그게 자꾸  크고 많아져요. 땅의 것을 먹고 땅의 것을 먹고 커지지만, 우리는 물이 한  드럼에 또 한 드럼이 와야 두 드럼이고, 또 한 드럼이 와야 세 드럼이고 또 한  드럼 와야 네 드럼이고 그래 되는 것이지 한 드럼이 그게 커져 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 그것은 땅의 것을 먹고 자라 가지고 오는 게 아니고 땅의 것  세상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고, 저 하늘의 은혜가 자꾸 새로 와 가지고  우리에게 쌓여 가지고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람병을 고쳐 가지고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가야 되겠는데, 그 사람병 고치는데 제일 사람병 중에 큰 병이 무슨 병입니까?  큰 병이 영병입니다. 영병이라 하면 아, 중생된 영은 죄를 짓지도 않는다  했으면서 영병은 무슨 병이라? 영병은 무슨 병이라? 알기 쉽게 영병이라 하는데,  영은 중생된 영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고. 무슨 불의가 없습니다. 성령님과  언제든지 하나돼 가지고 움직이지 성령님을 배반하는 일이 없습니다. 영생으로  중생했다 하는 것은 영원히 성령을 배반치 않고 하나님과 끊어지는 일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영은 자기의 심신을 아주, 사도 바울같이 그렇게  잘 사로잡아 가지 그 아주 그렇게 마음과 몸을, 육을 잘 다스리는 영도 있는데,  어떤 영은 그 심신을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는 그런 중생된 영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중생된 영이 자기의 소유인 심신을 잘 다스리는 자가 되도록  할라 그 애를 쓰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냐 하면 첫째는 중생된 영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심신의 육으로 더불어 서로 화친을 취해야 됩니다. 화친을 취해서 영은 육을  사랑하고 육은 영을 존대하고 이렇게 서로 화평을 취해서 화친을 가져야 되고.

그 다음에는 영이 육을 잘 통치해야 되고, 또 육은 영에게 잘 복종해야 되고.

그래서 영은 육에게 주권을 가지고 육은 영에게 절대 복종하는 그런 일이 돼야  이제 그 영이 장성한 영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은 가치가 꼭 같으냐? 가치가 같지 않습니다. 중생 된  영이라고 가치가 다 같지 않습니다. 이래서, 그 영이 자기 마음을 통치하고  주권하고 또 애호하고, 이래 가지고 영과 육이 밀접하게 단합이 돼 가지고  이렇게 하나가 되어져야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중생된 영이라도, 각각  다른 것은 뭐이 다르냐? 능력이 다릅니다. 능력이 다른 거는 중생된 영이 흠점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흠점이 없어도 그 중생된 영의 실력은 그 심신에게  있습니다. 심신이 잘 순종해서 통치를 받으면 그 영은 장성하지만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영은 권력이 없습니다.

 이래서, 어떤 영은 이 세상을 살 때에 자기 심신을 구출해서 심신의 기능을  온전히 살려 놓으니까 그 영이 영계에 다닐 때에는 신령한 마음의 그 모든  기능을 가지고 영계에 돌아다니니까 다른 것은 영계에 영이 활동할 수 있는 타고  다니는 영의 도구, 영에게 필요한 모든 타고 다니는 뭐 비행기라든지 무슨  승구나 모두 다 이런 모든 온갖 기구, 그 기구가 어떤 영은 구비해 있는데, 어떤  영은 그 기구가 하나도 없으니까 하늘나라 가도 가만히 앉았기나 하지 아무것도  못합니다.

또 어떤 영은 이 물질계를 돌아다니려고 할 때에 그 육의 기능을 가지고 기능을  타고 물질계에 돌아다니는데, 육의 기능이 변화돼서 신령한 기능으로 변화되는데  이래 타고 다니는데 어떤 영은 기능이 없으니까 이 우주에도 와 봤자 자유하지도  못하고 아무데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무용지물과 같이 그와 같이 돼 버립니다.

그것으로써 영의 능력이 있다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도 자라간다 할 수 있습니다. 자라간다는 것은 자체가  자라가는 게 아니라 그의 권위가 자라갑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소유가  자라갑니다. 그의 모든 기구들이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영이  우리 마음을 어디서든지 자유 할 수 있도록. 아시아에서, 바울이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울면서 예루살렘에 가면 잡아죽일 터이니까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바울은 그런데에 붙들리지를 안했습니다. 그 마음도 몸도 다 하지만 바울이,  영이 마음을 통치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바울을 거슬리는 일이 없었습니다. 몸이  거슬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마음도 거슬리지 않고 몸도 거슬리지 안하나 마음과  몸이 거슬리지 안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때에 무엇이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 떨면서 고린도전서 4장에,  두려움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병을 고치는 것도 무엇이 고치는고 하니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고칩니다.

 또 마음의 병은 어떤 것이 마음의 병인고 하니, 마음의 병은 마음 안에  하나님만이 계셔야 될 터인데. 이 성령님만 우리 마음 안에 계셔야 될 터인데  우리 마음 안에 이 모든 잡된 것들이 자꾸 출입을 합니다. 이래서 아가서에 잠근  동산이라. 거기는 참 신랑만 출입하지 다른 거는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는 잠근  동산이라. 그것은 하나의 비유로 말한 것인데.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 우리에게  나타나신 성령님만 우리 마음 가운데 와 가지고 계셔야 될 터인데 우리 마음  가운데에 성령님 외에 딴것이 와서 있는 것이 그것이 마음의 병입니다.

또 성령님과 진리가 우리 안에 와 가지고 우리 마음 안에 있어야 될 터인데 그외  딴것이 이 모든 세상 인간 생각 잡탱이 그런 것들이 와 있는 것이 그것이 마음의  병입니다.

또 주님의 대속의 피만 와 있어야 되는데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의 피의 공로만  와서 있지 안하고 다른 모든 이런 세상에서 이런 인연 저런 인연 뭐 혈육 정실,  지방 정실, 동류 정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 와 가지고 복잡하게  있는 그런 것이 다 우리 마음의 병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병이 고쳐져서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만이 우리 마음 가운데에 이제 계시는 것이 그것이 마음이 깨끗이  치료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쓸 데 없는 이런 생각이 나고 저런 생각이 나고,  이런 욕심이 나오고 저런 욕심이 나오고 이런 뜻이 나오고 하는 그거 전부  마음의 병이 들어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이제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할지어다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시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에 피, 성령. 진리만 계셔서. 그러면 우리가 주관적으로는  주님의 대속의 이 피공로를 자꾸 사모하고 사모하고 우리 주관으로는 그  사모하는 일을 하고 내 안에 계시는 피와 성령은 피가 들어서 내 안에 역사하고  성령이 들어서 역사하고 진리가 들어서 내 마음을 주관하는 거. 내 마음을  주관하도록 진리가 주관하고 성령이 주관하고 주님의 피공로가 내 마음을  주관하는 그것이 이제 내 마음이 능력 있는 마음이 된 것입니다. 능력 있는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강건해지는 것은. 병이 없으면 뭐이든지 튼튼해지지  안해요. 병이 없으면 튼튼해지는데 병이 있으면 약해진다 그거요. 그러면 우리  마음에는 진리와 성령과 주님의 대속의 피만이 내 마음 가운데에 계시면 내  마음에는 모든 나를 상해할 그 모든 병은 다 없어졌습니다. 없어졌으면 내  마음은 강건합니다. 강건해 가지고 내 마음이 강건하면 건강한 마음으로 가지고  능력 있는 마음으로 역사하는 것은 어떤 것이 능력 있는 마음으로 역사하는고  하니 내속에 있는 진리가 내 마음을 움직이고, 영감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주의  피공로가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내 마음의 움직이는 것은 주님의 대속의 피에  피동되고 영감에 피동되고 진리에 피동되고 이렇게 피동되는 이것이 그 마음이  능력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래서, 육체의 소욕이니 성령의 소욕이니 말하는 것은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를 들어서 말한 건데, 우리 마음에는 감정도 있고 기억도 있고 감상도 있고  모든 이런 저런 기관이 많이 있는데 우리 마음에 욕심이라는 한 기관이 있는데  그 욕심을 성령이 주관을 하실 때는 그만 성령의 욕심이 돼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 병드는 것은, 육체의 욕심으로 된 그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육체의  욕심이라 하는 그말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욕심이 아닌 것은 다 육체의  욕심입니다. 뭐 민족 욕심이나 국가 욕심이나 명예 욕심이나 지위 욕심이나 돈  욕심이나 온갖 정욕 욕심이나 어떤 욕심이든지 그것은 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육체의 소욕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육체의 소욕은 사망이요' 이래. 망하고  죽는 것이라. 사망이요, 영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라고 이랬습니다. 영의  소욕이라는 그 영의 소욕이라는 그 영은 무슨 영입니까? 사람의 영입니까  하나님의 영입니까? 거기는 영은, 사람 영도 영, 하나님의 영 이러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어려운데 영의 소욕이라 한 그 영은 하나님 영입니다. 하나님 영  (靈)자. 그것이 치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 마음이 병든 것은 어떤 것이 병든 것인고 하니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모든 것으로 되어 있는 그 마음은 다 병든 마음입니다. 이제  병든 마음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치료를 받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치료를 받는 것은 우리 마음이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모든 세상적인, 인간적인, 악령적인, 악성적인, 악습적인 그런 모든 병이 든  것을 이제는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이래 바꾸어 가지고 악성이 하나님  중심이 되고, 또 하나님 위주가 되고, 또 이제는 진리가 주관하고, 영감이  주관하고, 또 주님의 피가 주관하고 하는 그것이 이제 병을 고쳐서 건강한  심령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말하는 것은 그것은  하나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인데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꾸 마음 가운데 자꾸  생각하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꾸 생각하면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내 마음을  주장하게 됩니다. 내 마음을 주장하게 되면 대속의 공로가 주장한 그것은 전부  다 마지막 날에 살아날 일들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내 마음을 주장해  가지고 움직인 것은, 그 움직임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는 언제든지 하나가  돼 가지고 움직입니다. 서로 나눠질 내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하는 그 말씀은 주님의 대속을 자꾸 사모하고 사모함으로써 이제 주님의 대속이  내 마음을 주관하게 되면 내 마음의 움직인 것은 다 그것이 영생할 움직임이라.

마지막에 이제 다시 살린다 그 말은 이 심신의 기능인데 마음의 기능은 세상을  뜰 때에 그 영과 더불어 함께 낙원에 가지만 몸의 기능은 그때 같이 가지를  못합니다. 이거는 같이 가지 못하기 때문에 머물러 있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그때에 같이 가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한 그 영생하는  그것이 무엇이기 때문에 그 행위가 영생하는가? 그 행위는 성령이 한 행위요,  진리가 한 행위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마음이 병든 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사람의 마음으로 있는  것은 다 병든 마음이요, 그러면 그 마음이 치료함을 받아서 고침을 받은 것은  어떻게 된 것이 고침 받은 것인가? 예수님의 피의 마음이 되고 영감의 마음이  되고 진리의 마음이 됐으면 그것이 인제 그 마음이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치료받은 그 마음은 산 마음입니다. 산 마음이면 산 마음이 작용하는  것은 어떤 작용을 하는고 하니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인데 그 셋에게 피동되어  가지고 그 셋의 것이 돼 가지고 그 셋으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을 하기 때문에  그거는 다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어떤 그 일면으로 해석을 하면 우리 마음은 자루와  같고 우리 마음은 이런 쌀자루 모양으로 자루와 같고, 우리 마음 안에는 이제  쌀이 든 거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피와 성령과,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가  그 안에 가득 담겨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렇게 묘사해서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자루가 터지든지 어쩌든지 자루가 벌어질 때에는 그 속에  쌀이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벌어져서 마음에서 생각 나오는 것은 전부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자루와 같다, 그와 비슷하게 해서 우리 마음은 집과 같고  피와 성령과 진리는 주인과 같다 그렇게 해서 고린도전서 3장에는 비유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달리 비유하면 그런 비유합니다. 우리 마음은 그대로 있는데, 우리 마음을  과거에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악령 악성 악습이라는 이 새카만 물을 들여  가지고 -비유입니다.- 새카만 물을 들여서 우리 마음이 새카만 그 껌둥이가 돼  있었었는데, 이제는 그 물을 새카만 물을 탈색을 시켜서 쏵 빼 버리고 물을  들이기를 아주 새파란 청색을 들였습니다. 성전 지을 때에 청색실이라고 하는  그것은 생명성을 가리켜서 그 청색이라고 그렇게 성막 지을 때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거 비유입니다 그래서 새파란 물을 들였습니다 생명의 물을  들였습니다. 생명의 물을 들였으니까 우리 마음이 새파래졌습니다.

 그 생명의 물이 뭐이냐 하면, 뭘로 들였는고? 주님의 진리로 물들였고 영감으로  물들였고 주님의 피공로로 물들였기 때문에 우리 자체는 언제든지 피조물이요,  진리는 그것이 피조물이 아니요 그 자존하신 하나님의 요소요, 영감도 하나님의  역사의 요소요, 예수님의 피공로도 하나님이 친히 오셔 가지고 인간들에게  접선된, 하나님의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가 결합해 가지고 신적 요소가 인적  요소를 담당하고 연결하고 접촉하고 사귀고 건너오기 위해서 그렇게 인적 요소를  가진 것이 예수님의 인성이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 공로로 물이 들었습니다.

 물이 드니까 여러분들 베쪼가리에 말이요, 까만물 들였던 것을 그 탈색을 시킬  수 있소 없소? 없습니까? 탈색하면 어찌 됩니까? 본 베쪼가리가 되지요. 본  베쪼가리가 됐는데, 새카만 할 때는 모두 이래 새카만 베라 이래 했는데, 이제  거기다가 새파란 물을 들여놓으면 누가 보고 뭐라 할 것입니까? 새파란 베쪼가리  아니겠소? 이러니까 그걸 겉에 우리가 이래 보는데 내가 보는 이 베쪼가리를  이렇게 보니까 보니 베쪼가리 새파랗습니다. 새파란 베쪼가리입니다. 뒤에도  보니까 새파란 베쪼가리라. 앞에도 보니까 새파란 베쪼가리라. 옆에도 보니까  새파란 베쪼가리라. 아래 위도 보니까 새파란 베쪼가리라. 그 속에는 뭐이  들었지요? 그 속에 든 거는 뭐이요? 그 속에는 베가 들었어. 그 속에는 베가  들어 있는데 속에 든 베는 무슨 베요? 어떤 색깔이요? 흑색 된 베쪼가리를  탈색을 시키니까, 보니까 하얀 베쪼가리라 말이오. 하얀 베쪼가리다가서 이제  푸른 물을 들이니까 새파란 베쪼가리가 됐어. 그랬는데 이 베쪼가리에 앞에도  푸르고 뒤에도 푸르고 옆에도 푸르고 위에도 푸르고 아래도 푸르고 전부 다  푸릅니다. 이 새파란 데 새파란 속에 든 거는 뭐이 들었습니까? 흰 베쪼가리라.

 그래서 이제 하나님에게서 우리가 지음을 받을 때에 이 육이라는 이것은  물질인데. 이것은 무색이라. 그것을 과거에는 내가 말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동안에 많이 가서 새김질한 사람은 아멘하고 이해가 되어서 그 도가 커단해서  많이 넓어졌을 거고, 거기 대해서 그게 어떻게 무색이? 이해가 안 된다 안 된다  자꾸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거기 대한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이라.

 오늘 아침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질문을 하는데 그 예정에 대해서 질문 해.

내가 처음으로 만났어. 처음으로 안 만났다면 내 밑에 있는 사람이나 이렇게  동역자가 떡 말하면 그럴 때에는 - '이제 하나님의 예정이라 하면 은 사람을 죄  짓는 것도 하나님이 그 죄를 짓게 한 것인데 죄를 짓게 해 가지고 하나님이  노하시는 것은 뭐입니까? 노하시는 것은 왜 노하시는 겁니까? 그러면 하나님  혼자 연극하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좀 생각하기는 생각한 모양이라. 내가  그럴 때는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 믿소 안 믿소? 또 이원론이요 삼원론이요  일원론이요, 뭐 믿소?' '일원론이오.' '아, 그라면 그만 거기 돼요.' 이거  일원론하고 하나님의 예정하고 하나님의 주권하고 한테 붙이니까 서로 모순돼서  바글바글 그라고 자꾸 모순이 많지만 한참 오래 돼 놓으면 모순 같은 게 나중에  일치가 딱 된다 말이오. 그때 도통이 되는 거라.

 그랬지만 좀 인제 조금 소개해 줬는데 그거 가지고 안 돼. 여기 지금 그  목사님이 계실 거야. 여기는 그것도 모르네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표시할  때에 성전으로 표시해서 우리는 집과 같고 하나님은 주인과 같다. 그러면  주인인데, 하나님은, 하나님이 뭐이 하나님인데? 이제 진리 영감 예수님의  피공로가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 앞에 오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대속한 데는 인성이 들었는데? 인성은 우리의 중보자라.

그러기 때문에 인성과 신성의 일위의 주님이신데 그 신성은 하나님이시요 인성은  변화돼 가지고 그 인성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과 접선이 됩니다. 인성을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접선되지를 못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 안에도 인성이  들어 계셔 가지고 우리의 구주가 되어 계시요.

 이러니까 베쪼가리 물을 들이면 베쪼가리 물을 들이니까 베쪼가리 뺑뺑  돌아가니까 색깔이 무슨 색깔이요? 새파란 색깔 아니요? 새파란 색깔이지? 그  속에는 실은 하얀 베쪼가리가 들어 있다 그말이오. 하얀 베쪼가리가. 베쪼가리가  물이 들어 가지고 들어 가지고 있어. 이런데 그 하얀 베쪼가리가 어디 들어  있어? 아, 그거는 네가 푸른 색깔 탈색시켜 보라고. 탈색시키면 하얀  베쪼가리뿐이지 그렇지 안해요? 탈색시키면 하얀 베쪼가리밖에 더 있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천 년 만 년 가도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과 대속의 공로가  우리에게 떨어지면 우리는 내나 피조물 하얀 베쪼가리요, 아무것도 없는  그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물질밖에는 안 되다는 그거요. 우리가 자꾸 그와같이  변화됐다고 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되거나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자꾸 말하는 것이니까 이래도 못 알아들으면. 하나님이  그렇게 말해 놨어 이래도 못 알아들으면 뭐 뭘로 어떻게 가르치겠소?

 그래서 우리 마음이 병든 것은 어떤 것이 병든 마음인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마음이 병든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무슨 마음인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치료를 받아야 되겠다 말이오. 이  자리에서 치료를 받아요. 이 자리에서 치료를 받는데 여기서 지금 마음병을  고치자 그말이오. 마음병 고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마음병 고치는가 이것을  가르치지 안하고 배우지 못하면 마음병 고치는 걸 '내가 선한 맘 먹었다.' '악한  마음을 먹었으니까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한 마음을 먹어야 되겠다. 나는 정직한  마음을 먹어야 되겠다.' 제까짓 게 그렇게 하나 헤아려 가지고 평생 헤아려도 다  헤아리지도 못합니다. 악을 다 헤아리지도 못하고 선도 헤아리지도 못하고 뭐  어찌된지 몰라요, 그만. 그 속에 뭐 이런 종류 저런 종류 속에 파묻혀 가지고  그만 물에 들어간 자가 숨도 못 쉬고 허푸허푸하다가 그만 익사해서 죽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속에 들어가면 이게 마음을 이거 죽은 마음을 살리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 죽은 마음은 악한 마음이요, 산 마음은 선한 마음이니까 이거 이  마음을 이걸 고쳐야 되나 저걸 고쳐야 되나. 제까짓 게 고칠라 하면 천 가지 만  가지도 넘으니까 이놈 고칠라 하고 저놈 고칠라 하다가 그거 다 둘러 마셔  버리고 그만 물에 빠지는 것같이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그 속에 들지  안하고 우리에게 그 마음 치료하는 것을 간단하게 해서, 그만 간단하게 하는데  간단한 이것을 자꾸 늘여뜨려 나가면 천도 만도 억만도 자꾸 늘어져 나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간추려서 강령을 이와같이 지금 말해 주면 잡고 고쳐야  되지, 거기서 또 엉뚱하게 다 냅두고 저 구석지기 들어가 가지고 뭐 자잔하게  뒤뚱스러운 소리하고 하면 고치기가 어려울 것이라.

 마음의 병이 들었는데, 마음 병든 것은 어떤 것이 마음 병든 것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의 마음 된 것이, 그것이 마음 병든 것입니다. 그것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마음입니다. 그것이 옛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는 다  마음병이 이렇게 다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고칠라고 하면 이제는 어떻게 되느냐? 피가 주장하고 성령이  주장하고 진리가 주장해서 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악령, 악성, 악습의 껌정물을  들여놨던 그 베쪼가리다가, 원단에다가 이것을 탈색을 시켜 버리고 이제는  새파란 물로 염색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주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우리 마음을 다 물을 들여서 우리 마음이 전부 진리화되고 영감화되고  주님의 대속화됐어. 대속의 것이 됐지, 대속에게 속했지 대속을 믿음으로 대속  믿는 거 됐지. 대속에게 속했지, 대속의 것이 됐지 대속과 하나 됐지, 대속으로  움직이지, 영감의 것이 됐지, 영감으로 움직이지 진리의 것이 됐지, 진리로  움직이지 진리에 속했지 이래 되는 것이 이것이 마음병 고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 마음병 고치는데 마음병 고치는 데는 몇 가지로 마음병을 고쳐야 됩니까? 세  가지로 마음병을 고쳐야 된다 그거요. 세 가지로 마음병을 고쳐야 되는데. 세  가지로 마음병 고치는 것이 그것이 이제 언제 고칩니까? 현실에 고칩니다.

현실에 고치는데 날 중에는 주일날이 제일 중요하고 그 시간 중에는 예배시간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 시간에는 이제 현실을 닥치면 그때는 이  고기덩어리로 시공하는 것이고 고기덩어리로 하지 안하고 나머지기 하는 것은 이  시간에 다 할 수 있다 말이오. 이 시간에 다 할 수 있어요. 이 시간에 내 마음을  진리로 가득 채울 수 있고, 내 마음을 영감으로 가득 채울 수 있고, 내 마음을  주의 피공로로 가득 채울 수 있어서 이 시간에 내 마음이 주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를 과거에는 믿지 못 하던 것을 이 시간에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서 이제 더  믿어진다 말이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믿으므로 이 시간에 이 세 가지를 내 마음이 믿음으로, 이  세 가지를 믿는 마음이 됨으로써 이제 이 치료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세 가지를  믿음으로 인해서 나는 이 세 가지 것이 됐다는 것을 이제 알아서 세 가지 것이  됩니다. 이 세 가지에 속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것이 되고, 이 세 가지에  속했고, 이 세 가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와 하나가 됐습니다. 이 세  가지로 더불어 함께 움직입니다. 움직이니까 다 됐어.

 다 됐는데, 하나만 남았어. 하나 남은 것은 뭐이냐? 이 고기덩어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그 고기덩어리의 행동을 해야 되겠는데, 이것은 여기서 하지 못해요,  여기서 하지 못해요. 왜 못 합니까? 현실이 와야 되지. 신사 참배 안 할라고  여기서 마음으로 그랬지만 고기덩어리로 신사 참배 안 하는 것은 신사 참배 안  하면 죽인다 하는 그 현실이 와야 그때 내가 신사 참배 안 할 수 있는 행동이지  그전에는 안 된 다 그거요.

 그러니까, 이 시간에 마음병을 고쳐 가지고, 마음병 고친 이 마음병 고친 것이  이제 잘 고쳐졌는지 안 고쳐졌는지 뒤에 마음병 고친 것이 완전 치료, 완전  진단, '너는 완전히 나았다.' 완전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언제 받지요? ○  장로, 순종할 수 있는 그 현실에 이제 완전 치료 받는 거라. 그때 가 가지고  가서 그때 가서 보니까, 현실을 당할 때에 보니까 주의 피로 행하고, 진리로  행하고, 영감으로 행하고, 보니까 영감으로 행하는데, 사람의 마음은 마음인데  그 모든 마음에 쓰는 것. 그 현실을 당할 때에 마음 쓰는 거 이래 마음씨를 쓰는  데 보니까 아무리 시기할 수 있는 그 현실이 온다 해도, 인제 시기할 수 있는  시기에 시기하고, 미워할 수 있는 시기에 미워하고, 욕심 낼 수 있는 시기에  욕심내고, 부애 낼 수 있는 시기에 부애 내고, 이제 이런 거 저런 거 다 그때에  병든 것이 나오나 안 나오는가 알 수 있다 그거요.

 그럴 때에 이제 원수를 맺을 수 있는, 이거야 원수 안 맺을 수 없는데 그런  현실 닥쳤을 때 원수를 척 맺는다면 그때 그것은 병이 나온 걸까 고친 게 나온  걸까요? 병 나왔어, 병. 그 병 아닙니까? 분해서 '이거는 참 미워서 못  견디겠다.' 미워서 못 견디겠는데 이제 분한데 말이오. 천인 만인도 그 분함은  참을 수 없는데, 그때 보니까 한 사람은 아무리 마음 치료를 했는데 그때 그만  보니까 분함이 나와 버립니다. 하나는 암만 그래 해도 분함이 안 나옵니다. 그  분함이 나온 사람은 치료가 바로 됐소 치료가 좀 부실하게 됐소? 도졌다 말이오.

그 병이 도졌어. 하나는 암만 그래도 그런 게 없어. 그 사람은 병이 도지지  안하고 잘 치료 됐어. 이게 완전 치료됐어. 건강 진단을 받았어. 완전 치료됐어.

 이래서 마음병은 어떤 게 마음병이냐 하는 것을 그만 간추려서 뭐 이런 거 저런  거 천도 만도 넘는 그거 다 지저분하게 말할라 하다가 보면 그만 그 바람에 쐬여  가지고. 떠밀려 가지고 죽어 버려요. 제가 언제 저 지난 주일인가 이랬는데,  물에 가서 그때 뭐 바다에 해수욕 갔다가서 빠져 죽었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  소식을 내가 한 두서넛 들었는데. 그때 내가 가만히 눈감고 생각하니까 바다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숫자가 적은데 이놈의 인간 욕심 속에 빠져 가지고 죽는  사람은 많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모든 거 하고 싶다 보니까  그만 거기 빠졌다. 이래서 이게 귀하다 저게 귀하다. 이 방법이 좋다 저 방법이  좋다, 이 가치가 좋다 저 가치가 좋다. 가치 좋은 거 찾아 돌아다니며 이것도  가치 있으니까 할 만하고 저것도 가치 있으니까 할 만하고 이래 가지고 이 가치  저 가치 좋다고 이것도, 이것도 내 버릴 게 아니라 이것도 좀 하고 저것도 좀  하고 자기가 꼭 필요 있는 거, 필요 있는 것만 한다고 하다 보니까 욕심 속에  빠져 가지고 그건 뒈졌다 그말이오. 이 무슨 말인지 뭐 좀 감상이 좀 돼집니까  실감이 나옵니까? 실감이 나와야 돼. 실감이.

 이래서 병든 거는 그만 간단하게 악령, 악성, 악습이라. 따져 들어가면 자기  중심 피조물 중심, 자기 위주 피조물 위주. 돈 위주는 뭐입니까? 그게 자기  위주라. 그러면, 이 세상에 자기 위주, 자기 중심 그거 아닌 것은 없어. 그거  아닌 것은 없는 그거 다 인간이 병든 거라. 마음에 병든 거. 마음에, 무엇이든지  그 중심으로 하는 건 다 병이라. 이러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피 영감, 진리는,  진리도 하나님 중심 위주를 말하고, 영감도 하나님 위주를 말하고,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 중심 위주를 우리 대신 해 가지고 우리에게 전가시켜서 은혜로  주어, 끼쳐 주신 것이 예수님의 피공로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마음병든 이것을, 마음병을 알고 이걸 고치도록 해야 되지,  마음병든 사람은 그 마음이 자꾸 병신 노릇만 하고 자꾸 병만 자꾸 발생을  시키기 때문에 비용만 들어가고 고통만 당하고 하나도 소용은 없어. 인간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마음은 자기에게 백해 무익입니다. 이익은  털끝만치도 없습니다. 이익은 털끝만치도 없는데 하루 종일 사는 생활을 그  사람을 만일 심사해 가지고 분석해 본다고 하면 전부이 병 고름나오고, 뭐 냄새  나오고 전부 병만 나타난 것뿐이지 성한 데 쓸모는 하나도 없다 말이오. 그것도  짙어 놓으면 다른 사람이 고쳐 줄라고 그 병을 만일 고름을 좀 짤라하다가는  당장에 뺨 맞습니다. 저 해친다고. 이러니까. 벌써 이 병든, 마음의 병인지,  마음의 건강인지, 마음의 치료인지, 이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찌 달라 들어  가지고 그 사람을 치료를 해 줄 수가 있겠소? 어떻게 그 병이, 이 병으로 너  죽는다고 지적해서 말을 해 줄 수가 있겠소? 말하면 막 억울하게 말한다고  사람을 달라 들어서 물고 집어 뜯고 이랄 건데. 이것을 그렇게 받아넘길 게  아니라 깊이 깊이 느껴서 참 새겨야 됩니다. 우리는 다 수술을 받아야 돼.

수술을 받는 것은 요새 보니까 뭐 마취제 해 가지고 전신 마취를 시켜 가지고  이래 하는 것인데. 한번 죽었다 나와야 되는 것이지 죽기 전에는 안 돼요.

치료받아야지 치료받지 안하면 항상 해 봤자 내나 옛날 옛사람으로 사는  것뿐이지 새사람으로 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간단하지 안해요? 그만 퍼뜩 아, 마음병은 뭐이냐? 말도 이 말이 그라면 내  중심이가, 이 말이 내 위주가? 이 계획이 내 중심이가, 내 위주가? 내 위주의  취미가, 내 위주의 재미가, 내 위주의 지금 유익 이해 따지는 이해냐, 내 위주의  계획이냐? 그러면 내 위주, 내 중심 그것 이 악성입니다. 악령은 그렇게  권고하는 악령, 그러면 그건지 그것만, 악만 가지고 따지면 되기 때문에. 그뭐  요거 간단하게 악령 악성 악습으로 우리 마음이 병들었다. 그러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것을 치료해야 된다 이것만 가지고 생각하면 다 됩니다.

생각하면 다 구별하고 다 진찰해서 알 수가 있어요.

 이렇게 생각, 이 간추려서 이 강령. 이 벼릿줄이 강령을 딱 거머쥐고 이것만  거머쥐고 가지고 진찰하면 다 진찰이 되는데, 이 고를, 벼릿줄과 같은 강령을  집어던져 버리고 난 다음에는 이게, 이게 뭐 병이가 이게 성한 것이가 병이가  성한 것이가 제까짓 게 암만 찾을라 해 봤자. 큰 밀림 속에서 제가 뻐뜩 봤던  돌을 찾지, 밀림 속에서 돌 찾기보다도 더 어렵소. 이거 막 호호양양한데.

인간은 그 마음병이. 마음병 구멍이 꽉 차 가지고 있는데 뭐이 뭐인지 어찌  알겠소?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열쇠를 악령 악성, 악습으로 인간의 마음은 병들어 있다.

이거 치료하는 데에는 주님의 피공로와 성령과 진리로만 치료할 수 있다 이걸  가지고 자기가 뭣이든지 그만 생각하면 돼. 이거 병든 것 아니가? 내가 이  마음이 병든 마음이냐, 이 생각이 병든 생각이냐, 이 욕심이 병든 생각이냐,  이게 치료 된 생각이냐? 이 감정이, 이 분함이, 이 기쁨이, 이 자존심이, 병든  마음, 병든 마음의 자존심이냐, 이것이 치료받은 마음의 자존심이냐? 우리는  자존심 가져야 됩니다. 자존심 가져야 되지만 자존심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

하나는 병든 자존심, 병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전부 병든 것이라. 완전히  치료된 마음에서 나온 것은 전부가 다 산 것이요 다 생생하게 다 살아 있는  것이라. 요거 간단해요, 이렇게 해 가지고 자기가 하나씩 둘씩 치료해서 그것을  연습해서 숙달되면 알지만 이걸 모르는 사람은 평생 제 딴에는 된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보면 그 속에 파묻혀 가지고 죽고 말았다 그말이오. 이거 얼마나 바로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병을 그렇게 좀 생각해 가지고 애타게, 마음병 든 것이 고기덩어리의  병보다 훨씬 더 한 것인데, 고기덩어리의 병보다는 영의 병이 훨씬 더한 것인데,  이렇게 뭐 영의 병에 대해서 그 생각이나 가졌으며 그런 말이나 합니까? 요새  강단에 영의 병이라는 말을 나는 도무지 듣지 못하고 뭐 짜다라 뭣이, 팜프렛  책은 짜다라 오는데 암만 읽어 봐야 영의 병이니 마음의 병이니 몸의 병이니  사람병이라 하는 것은 한 마디 냄새도 없고 들어 보지도 못하였습니다. 모르는데  뭘 고치겠소, 고치기를? 이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게 중요합니다. 듣는 사람도  한 가지라. 듣는 사람도 뭐 그거는 예사로 '원 저래 하는 것이라' 이라지, 개  머래 먹둣이 암만 들어 봐도 또 뭐 맛을 몰라. 자기가 먹어 보고 고쳐 보고,  봐야 그게 눈에 띄지.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고기덩어리의 병이 있습니다. 고기덩어리의 병은 성경이  하지 말라는 움직임을 움직이는 그것이 고기덩어리의 병들입니다. 성경이 하지  말라는 걸 하는 그것이 다 고기덩어리의 병이요. 그게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의  병이요,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의 병. 그 다음에는 이 세상에 과학들이 병이라고  지적하는 그것이 이제 고기덩어리의 병입니다. 이런데 거기서 그보다 제일 큰  병이 뭐이냐면 그것이 영에게 복종하지 안하는 그것이 이 고기덩어리 병의 제일  큰 병입니다. 이러니까 과학이 지적하는 고기덩어리의 병.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행동의 병 또 뭣 남았습니까? 성경 말씀대로는 했는데 영감대로  하지 않은 그것도 병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고기덩어리의 병 이것도 고칠라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성경대로 하지 안한 병과 영감대로 하지 안한 병이 다릅니까 같습니까? 그거  한번 말해 봐요. 달라요 같아요? 어째 다른고, 누가 다르다 해? 달라요? 어찌  다릅니까?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안한 병, 영감대로 하지 안한 병 그거 둘 다  같해요 달라요? 달라? 어데 저 다르다 하나, 저 다르다 한 사람 한번 손들어 봐.

누가 다르다 했어? 왜 담대히, 예 저기 한번 대답해 봐 한번 말해봐. 성경  말씀대로 하는데, 예? 동기가 달라? 동기가 달라요? 예, 동기가 다르고 결과가  다르고 목적이 다르고 모두 다르구만, 시간과 장소가 다르다. 고만 다, 예? 네  그러면 됐어, 성경 말씀대로 안 하는 것은 일반 성경대로 살지 안한 것이고,  이제 영감대로 살지 안한 것은 자기 진리를 지키지 안한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것이 모두 다 진리입니다. 모두 다 진리지만 그 진리 중에 자기 진리가  있습니다. 자기 진리. 그게 다 병이라.

 그러면, 고기덩어리의 병은 과학이 지적하는 게 고기덩어리 병이라. 이거는  코병이 들렸다 뭐 암병이 들렸다. 뭐이 들렸다 하는 그거 그거는 과학이  지적하는 병입니다. 과학이 지적하는 병이 그게 고기덩어리의 병이요, 또 이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안하는 것이 고기덩어리의 병인데. 그게 고기덩어리의  행동병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이제 영감대로 하지 안한 그것이 고기덩어리의  병인데 그것이 행동병인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병. 마음병은 몇 가지요? 마음병은 세  가지, 고기덩어리 병은 세 가지, 영병은 또 몇 가지지? 영병은 어떤 게 영병이라  했어요? 한번 해석해 봐요. 무능병. 위로는 흠이 없어요.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까지 위로는 흠이 없어. 그런데 아래로 흠이 있어. 그 심신을 어쩌지 못한  것이 다스리지 못한 것, 이용하지 못한 것이지요? 다스리는 거와 이용하는 거와  달라요. 이용하지 못한 거. 또 하나만 더 있어 다스리는 게 뭐 통치인데.

화합하지 못한 거. 이 영과 이 육이 못 떨어지도록 육이 영에게 막 달라붙어서  영 자기 아니면 못 살겠다고 이렇게 아주 친교를 가져야 되는데 영과 육이  친교를 가지지 안하면 그것이 병입니다. 친교 가지지 못한 게 병이오. 그  다음에는 이것을 다 통치라고 다스리지 못한 것이 병입니다. 이것을 사용하지  못한 게 병이라. 이거 이리저리 사용하지 못한 게 병이라. 그라면, 영의 병이 몇  가지요? 세 가지. 마음의 병이 몇 가지입니까? 고기덩어리의 병이 세 가지.

 여러분들 이걸 단단히 기억해 가지고 놓지 말아요. 여기서는 말하니까 알아  들리지만 여기서는 들리지만 이 진리는 진리라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요대로입니다. 요대로인데 그만 이 자리를 떠나고 나면 믿음이 없어져 버려요.

이 자리를 떠나면 믿음이 없어서 '그래 말하는데 어찌 그런가? 여기서는 아멘  됐지만은 그때 그만 나중에 '그 어찌 그럴까?' 그 다음에는 또 나중에 가서는  '뭐라 했던고?' 다 잊어져 버려요. 여기서 놓지 말고 단단히 강직하라 그거요.

 자, 그라면 영병, 마음병, 고기덩어리병 총 몇 개입니까? 삼삼 구 아홉, 얼마나  기억하기 좋아요. 삼삼 구 아홉. 이것을 실지로 자기가 해 가지고 깨달아 보면  맛이 있고 일도 바쁘고 또 하나씩 병을 고치면 아주 병 고치면 시원한 거,  여기서 뭐 고기덩어리 병 고치러 온 사람들 많은데 그것도 고쳐지면 얼마나  마음이 개운합니까? 이런데 고기덩어리병이 셋인데 둘은 알지도 못하고 하나만  지금 가리고 하고 있습니다. 자, 고기덩어리의, 고기덩어리의 과학으로 말하는  과학으로 말하는 그 병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그 병이 행동병에서 나왔습니다.

딴 데서 나오지 안했어. 행동병에서 나왔어. 행동병이 몇 가지인데? 두 가지.

 그라면 성경대로 하지 안한 그 병은 어디서 나왔어요? 영감대로 하지 안 한데  거기서 나왔어.

 그러면 마음의 병은, 마음병은 세 가지인데, 그 마음병은 어디서 나왔어요?  마음병은 진리를 업신 여기는 데서 마음병이 나왔어요. 영감을 업신 여기는  데에서 마음병이 나왔어요. 예수님의 피의 대속을 자꾸 먹지 안하기 때문에  마음병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그 자잔한 것 다 냅두고 고기덩어리의 병은  마음의 병에서 나왔고 마음의 병은 영의 병에서 나왔습니다. 영이 병들지 안한  에덴 동산 처음에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에게 병이 없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서 자꾸 기도해 달라고 그렇게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는 그 영병, 마음병, 고기덩어리병 쏵 다 나을 수 있어. 하나님이 다 낫우어  주시기를 원하고 다 낫우어 주실라고 벌써 당신이 모든 이거 공작하는 것을  보니까 다 낫우어 주실라고 지금 역사를 하고 계시는데 그 고침 받는 방편을  바로 잡아야 되지 그 달리 잡으면 그 병이 낫지를 안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고치기를 누가 고쳐 줍니까? 백 목사가 고쳐 줍니까? 백  목사가 혹 하나라도 고쳐 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까? 없어. 하나도 없어.

다만 고치는 것은 뭐이 고치요? 자, 뭣이 고쳐? 네 성경이 고치요. 또? 말씀이  고치요. 또? 진리가 고치요. 또? 영감이 고치요. 또? 인제 하나님이 그 다음인데  영감이면 그만 다 고쳐져 버려요. 다 고쳐져.

 이러니까, 이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의 병은 뭣이 와서 고쳐 주지요? 성경이  고쳐 줘. 이걸 똑똑히 알아요. 오늘 안 믿는 사람 여기 처음 오는 사람은 성경이  고쳐 주니까 성경만 볼끈 잡아요. 이래서 성경을 믿고, '이제는 나는 성경에  속하겠다' 성경에 속하고, 성경의 사람이 되고 성경과 동행하고, 성경에게  복종하고. 이러기로 한번 작정해 봐요, 그만. 이러기로 작정했는데 언제 병 낫게  해 달라고 자꾸 말할 것 없이 작정하고 보니까 그 아픈 게 다 어디로 갔다  말이오. 다 낫아 버렸어요. 작정만 하면 암병도 낫고 오만 게 다 낫아요. 이거는  안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택한 자가 아니라면 안 되지만 하나님의 택한  자라면 안 믿는 자기 때문에 그에게 이제 알려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암병  낫우기가 힘이 드요? 안 드요? 하나님께서 힘들겠소 안 들겠소? 안 들어. 암병  억억만 개면 힘들까요? 억억만 개도 안들어. 이거 하나님이 당신 믿구로 하는  것인데, 성경을 믿고, '아,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

성경이 우리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다 하더라' 성경을 믿고, 또? 성경에 속하고,  또? 성경의 것이 되고 또? 성경과 함께 하고, 또? 복종하고, '내가  이러겠습니다' 하고 단정짓고 '주여, 내가 이러겠습니다.' 작정하면 당장에  낫는데, 뭐 당장에 나아. 어떤 병이라도 나아요. 병원에 가 가지고 뭐 몇 백만  원 들어도 못 낫우고 할 병 당장 나아요.

 그런데. 또 그래도 안 낫는 사람 있거든. 그게 예수 좀 믿는 사람은 그거  가지고는 안 나아요. 당신이 욕심이 있거든. 이미 그거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낫우어 주시지를 안해요. 그러면 그 사람은 낫우어 주지 안한 사람은  성경을 다 그렇게 믿고, 그 다음에 그보다 좀 위에 올라가서는 뭐입니까?  이제 성경은 이렇다 하고 그만 성경을 믿으면 돼. 어떤 사람은 말이요, '이  귀신이 와 가지고 애를 먹이는데 이 성경만이면 된다' 어디든지 성경만 가지고  다녀요. 성경만 가지고 다녀도 귀신이 달라들지 안해요. 잘 때 성경을 딱 머리  곁에 딱 놓고 자면 귀신이 오지 안해서 잠을 잘 자고 그만 성경만 잊어버리고  나면 귀신이 와 이 성경이 권위가 있어.

 성경이, 이 책이 권위있습니까? 이 책 속에는 저 무한함이 들어 왔는데 그분이  이래 우리들이 접촉할 수 있도록, 우리가 접촉하기 쉽도록 우리와 교제하기  쉽도록 쭈욱 뻗혀 나왔는데 제일. 우리 무지한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접촉할 수  있도록 제일, 사람에게, 무지한 사람에게 가까이 와서 딱 들어붙어서 접촉해서  온 그 하나님이 뭐입니까? 성경. 성경을 하나님이라 하면 그렇지만, 몰라 그렇지  '성경을 하나님이라' 하면 아, 그 사람은 성경을 하나님이라 하니 성경 귀중성을  자꾸 말하고 성경의 권위성을 말하니까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성경을  하나님인 줄 안다.' 그래 가지고 저거 딴에는 또 이제 무식하다고 이단이니  뭐이니 자꾸 또 벌 소리를 지껄여 쌓는다 그말이오. 성경이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이 성경에 왔습니다. 쭈욱 오셔 가지고 성경이라는 꺼풀을 떡 입고  나타나셔 가지고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이러니까 그 성경에 하나님이 오셨어.

성경이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이 성경으로 나타났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성경을 맞이해서 성경 '이제는 내가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내가  믿습니다. 내가 성경의 정확무오를 내가 믿습니다 이제 나는 그전에 불교나 믿고  뭐 이런 거 다 믿고 성경 믿는 거는 다 거짓말인 줄 알았지만 성경을 내가  이제는 내가 믿습니다. 성경은 절대 권위 있고 성경대로 되는 것을 내가 믿고  성경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성경 믿습니다. 나는  이제는 성경에, 과거에는 뭐 부처에 속했고 뭐 어디 속했고 어디 속했고 뭐  속했지만 이제는' '나는 성경에 속해서 삽니다. 또 이제는 내 주인은  성경입니다. 나는 성경의 것이 돼 가지고 살겠습니다. 나는 성경의 사람입니다.

나는 성경의 것이라. 나는 이제는 성경 떠나서는 못 살겠습니다. 성경과 항상  동행하겠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베뢰아 성도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도 더 신사적인  것은 성경 말씀에 그런가 저런가 상고하기 때문에 자꾸 믿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권위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성경이 가자 하면  가고 오자 하면 오고 성경하고 동행하고 성경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것만  작정하면 그만 병 나아.

 왜 그렇게 작정하면 병 낫우는가? 하나님께서는 병든 거 치료하기는 쉬운데  제일 당신이 어려운 게 뭐인고 하니 인간들에게 이 자유를 줬기 때문에 강퍅한  사람들이 이거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에게 접하기 쉽도록 나타나셨는데 믿어주지  않는 게 제일 문제라. 믿지 않는 것을 믿구로 하는 게 제일 문제라.

이라니까 이제 '성경은 정확무오하다, 성경에는 내 죽고 사는 것이 성경에 있다,  내가 복되고 화되는 것이 성경에 있다. 병 낫고 병드는 것이 성경에 있다. 나는  성경에 속했다. 나는 성경의 것이다, 성경과 동행하겠다 나는 성경의 인도대로  나는 따라가겠다.' 이 마음만 하면 주님이 마음의 소원한 게 되기 때문에 육신의  병 그저 암병이고 뭐 무슨 장 암병이든지, 뭐 자궁 암병이든지, 무슨  위장암이든지 뭐이든지 뭐 말 할 것 없어. 무슨 병이라도 그만 이걸 믿으면 안  믿는 사람에게는 그만 낫우어 주시오.

 이런데 이것을 또 어떤 사람은 안 돼요. 안 되는 사람 그 사람은 벌써 이것은  알았기 때문에, 마치 고기를 구울 때에 굽지는 안하고 그슬리기만 살큼 그슬리는  거 모양으로, 이것 모양으로 예수 믿어 되지도 못 한 것이 날 수만 가 놓으니까  입으로만 알고 귀로만 알아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이거는 이래 가지고는  하나님이 안 돼. 이래 가지고 '내가 뭐 성경을 믿습니다. 성경에 속했습니다.

나는 성경의 것입니다. 성경과 동행하겠습니다. 성경 떠나지 않겠습니다. 성경  인도대로 따라가겠습니다.' 이리 쌓아도 입술로만 그래 쌓기 때문에 이 자에게는  하나님이 속지 않는다 말이오. 그거는 도수가 더 높아져야 되지 그래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래 안 되는 자는 이제는 말씀에 나아가야 돼. 성경 위에 말씀에 나아가야 돼.

말씀에 나아가서 이제는, 나는 말씀을 믿습니다. 말씀 믿는 사람이 돼야 돼. 이  병 낫는, 지금 병 낫는 그 방법을 가르쳐 줘요. 이러니까 여기서 다 병이 다  나아 버려요. 안 낫는 자는 안 믿고 요대로 안 하기 때문에 안 낫는 거라. 남녀  노소간에 다, 안 낫는 자는 안 믿고 안 행하기 때문에 안 낫아. 말씀을 내가  믿습니다. 말씀을 믿고 또 말씀의, 또 둘째? 그 꼭 같은 거라. 말씀에게 속하고  또 말씀의 것이 되고, 또 말씀과 동행하고. 또 말씀에게 순종하고, 이라면 또  낫아.

 처음에 낫고 처음에 성경으로 치료 받고, 성경으로 치료 받지 못한 사람은  말씀으로 치료 받고, 말씀으로 치료 받지 못한 사람은 인제 그 위에 뭐이라요?  진리, 이제 진리로 또 치료를 받아요. 진리. '참 곶감 접말하네 성경이나  말씀이나 진리나 다 같은데 자꾸 그래 쌓아니까 그거 내가 모르겠네' 말씀과  진리와 다릅니다. 말씀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통틀어 놓고 내가 말씀대로 살라고  하는 그것은 말씀대로 살기는 살았는데 진리는 위반했습니다.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했다고 이제 십자가 못박아 죽였는데 말씀대로 했소 안 했소? 말씀대로 지켰소  안 지켰소? 지켰는데, 그게 진리대로 행했는가? 진리대로 행하지는 못했어.

진리는 위반됐어. 영감에는 더 위반됐어. 그래서 거기서 안 나은 사람들은 이제  진리와 또 짜매요. 진리와 몇 가지요? 몇 가지요? 내나 다섯 가지라. 자꾸 다섯  가지 변동 없어. 자, 진리를 어쩌고? 진리를 믿고, 또? 진리에게 내가 속하고.

또? 진리의 것이 되고 또 진리와? 또 함께 하고, 또 진리에게 복종하고.

이라니까 병이 쑥 나았다 말이오.

 이래서 치료하는 방법이 이런데, 이 법을 내가 시키지 안하고 뚱딴지 같이 백  목사 잡고 기도만 해 달라 하는데, 백 목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밉상으로 본다  말이오. 네가, 내가 지금 뭐 병 고치는 거 내가 무슨 뭐 병 고치는 게 나 할  일이냐? 병 고치는 게 나 할 일이 아니고 이거 멸망에서 믿어 가지고 구원  얻도록 할라 하는 것이 내 지금 안타까와서 피까지 흘려서 이렇게 구속해  놨는데, 진리를 믿을 수 있도록, 제가 아파서 급해 놓으니까 이 진리를 믿으려고  하는데, 진리 믿도록 해서 네가 가르쳐 주고 이 믿으면 낫는다고 이 소리하면  내가 좋아할 건데 그 소리는 안 하고 떡 '내가 기도해 주지요. 기도하면  낫지요.' '이 건방이야 이 건방이야.' 주님이 나 건방하다 하겠소 안 하겠어요?  건방이다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잘한다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내가 그리  하면 주님에게 곱상으로 보이겠소 밉상으로 보이겠소? 밉상으로 보이지.

밉상으로 보이는 일 안 해요.

 어떤 사람은 그거 벌로 이래 해 가지고 이적이 한번 나타나니까 벌로.

밉상스럽게 봐. 왜? 그거 팔아 먹을라고. 이적이 나타나니까 그거 가지고, 그게  뭐냐? 그거 그만 악이 들어와 가지고 '내가 이렇게 한다, 내가 이렇게 한다'  이래 가지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날뛰다가서 이적 행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망하는 것은 다 그래 망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적 행했소 안 행했소? 그 끝이  사도 바울 망했소 안 망했소? 망했는가 안 망했어. 주님은 이적 행했소 안  행했소? 망했소? 안 망했어. 거기 악이 들어서 마음의 병이 들어서 악령, 악성,  악습이 뭐 병이지 마음병이 들어 가지고 그랬다 알이오. 병이 들어 가지고 어떤  사람은 몇 번 그래 놓고 난 다음에 자꾸 광고를 들이 해서 뭣이 어째 낫고 어째  낫고 자꾸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그걸 가지고 이제 자꾸 돈을 받습니다.

인제 이거 그래 가지고, 그라면 돈부터 내야 낫우어 주시지. 또 이래 가지고  돈부터 연보를 합니다. 연보를 하고 난 다음에는 안 낫아도 나은 걸로 믿어야  낫지. 또 이래 또 인제 믿으라고 이랍니다. 이래 억척이 자꾸 이라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그만 깡통이 돼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아무것도 없는 깡통이 돼  버리고 말아.

 이제 진리로 낫우지 못한 것은 어떻게 낫우어야 되지? 영감으로 낫우어야 돼.

이제 영감이면 다 낫아요. 영감으로 어쩌라 말이요 그래? 영감으로 어쩌라  말입니까? 또 다섯. 영감을 믿고, 영감을 인정한다 말이오. 인정하고 따른다  말이오. 영감을 믿고, 또? 영감에게 속하고, 또? 영감의 것이 되고, 또? 영감과  동행하고. 또? 영감에게 복종하고 이라면 다 낫지. 이래도 안 낫는 것은 그게  있어야 좋기 때문에 안 낫는다 그거요. 아무나 따나 그래 합리주의로 해석하는  겁니까? 성경이 그래 놨어. 바울이 눈이 아픈데 말이오. 눈이 아픈데 그걸  하나님 앞에 낫우어 달라고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준 은혜가  족하다. 약할 때에 강하여지느니라. 네가 만일 그게 다 거석하면 다른 사람들이  너를 지나치게 존경하고 네가 교만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제 찌르는 가시로  내비뒀다.' 그렇게 말씀했어.

 나는 이 양 눈에 다 백내장이 있어요. 백내장이 있은 지가 한 15년 됐어요.

양눈이 다 양쪽에 다 그 명시 박히는 백내장, 양쪽에 다 있는데 이것을 내가  하나님께서 기도했어요. 기도하면서 안 낳아 주는가 기도하고 이라니까  기도했는데 낫아 주지 안해. 만일 이게 낫으면, 아, 뭐이든지 하면 낫는다  이랬는데, 이제 이게 안 낫음으로써 네가 암만 기도해야 네가 낫우는 게 아니다.

네가 낫우는 것 같으면 네 백내장 낫우지. 암만 해야 백내장 안 낫아요. 그 안  낫워 주시는데 이게 조그만한 것. 이게 또 뭐이 그 이 쌀내끼 삼분지 일쯤한 저  요거, 뭣이 젖같이 조그만한 것 하나있어요 이게. 이게 있는데 요까짓 거야 안  낫겠나 하고 한번 내가 기도 해 봤어. '주님이여 요거 낫아 주시옵소서' 하니까  낫아 주시기는 커녕 더 또글또글 해져. 백 목사 기도를 여러분들이 바라지 말라  말이오. 백 목사 기도로 낫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공로를 영접 할 때에 낫는다 그말이오.

 자 그런데 이제, 그러면 다시 한번 복습을 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는데 제일 처음에 하나님이 우리 피조물들에게  가까이 오실 때에 영감으로 오셨습니다. 영감으로 오신 것은 내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내가 접촉 할 수 있도록 오신 하나님이 영감입니다.

 또 영감으로 와도 우리가 둔해서 접하지 못하니까 진리로 오셨습니다. 진리로  오신 것은 진리는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은 진리십니다. 하나님이 진리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진리는 내게 오신 하나님으로 내가 대접을 해야 됩니다.

그 진리는 내게 오신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인격성이 있는 인격성 존재는  아니지만 전지 전능의 힘을 가진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를 살릴 수도  있고 우리를 치료할 수도 다 있는데 죽은 우리를 살리는 데에 이 진리는  참가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우리 죽은 영을 살릴 때에 이제 이 진리는  참가했습니다. 우리 영을 이 진리가 들어서 살렸습니다. 진리가 살렸으면 진리  혼자 살렸는가? 아, 진리 속에는 영감도 있고 예수님의 피도 있어. 그렇기  때문에 진리가 살렸다고 해도 괜찮고 영감이 살렸다 해도 괜찮고 예수님의 피가  살렸다고 해도 다 괜찮아요. 이 셋은 합하여서 하나입니다 단일성의 비밀을  가지고 있어. 나타날 때는 이렇게 저렇게 나타나지만 속은 하나이라. 삼위일체와  한 가지라.

 또 이제 진리라도, 우리가 진리는 무형이라. 진리는 우리에게 안 보인다  그말이오. 진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진리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그 하나님이 말씀. 말씀은 비로소 우리 귀로 볼 수 있어.

말씀은 우리 귀로 볼 수 있는데, 이 볼 수 있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는데 그래도  이제 모르는 우리들에게 더 가깝게 만나고 접촉할 수 있도록 나타나신 하나님이  성경이야.

 이것을 쪽 거석해 가지고 거기서 여러분들이 그래 가지고 은혜 있게 살아야  되지 거기서 또 반박하는 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만 그 사람들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 그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대로 깨달아서 그라는 것이니까 이제 못  깨달아서 그라는 사람도 있고 또 뭐 달리 깨달아서 그라는 사람도 있고 이러는  것인데, 이제 이것을 알고,  이제 그러면 자 한번 또 재독합시다. 하나님이 제일 처음에 우리들에게 알리고  접촉하고 우리를 친근하고 우리와 더불어 하나 되기 위해서 제일 처음에  나타나실 때에 뭘로 나타났어요? 또 그래도 안 되니까 그 다음에 뭘로  나타났어요? 또 그 다음에 뭘로 나타났어요? 또 그 다음에 뭘로 나타났어요?  성경으로 나타났어요.

이런데 그 권능은 같습니다. 그 권능이 같아요. 권능이 같은데 이제 거기는  생명도 있고 지혜도 있고 능력도 있고 다 있어. 다 있는데 다만 이제 성경으로  나타난 것은 인간들이 이렇게,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입으로 읽을 수 있고  그렇게 나타났는데, 성경이 나타났는데 이 성경은 다른 책과 다릅니다. 다른  책과 달라. 이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요. 말씀 안에는 하나님이신  영감이 있어요. 영감 안에는 하나님이 계셔요.

 이러기 때문에, 이제 한번 다시 공부합시다. 성경과 동행하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보호를 믿는 사람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의 안보를 믿고 입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이제 전쟁이 없으니까 그런 일이 더러 없는데. 과거 6.25때에 전쟁할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 어떤 장교가 전쟁을 갈때에 자기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성경을 꼭 가지고 가라' 성경을 가지고 가 성경을 여기다가 딱 넣었는데,  넣고 있었는데. 성경을 넣었는데 탄환이 와서 그 복장을 탁 때렸는데. 여기  가슴을 때렸는데 성경이 있는 거기를 탁 때렸는데 그 탄환이 어디 가서 머물렀다  했지? 시편 91편에 딱 와 가지고 중단됐더래요. 탄환이 거기까지만 오고 그걸  뚫고 들어오지를 못했어. 그것이 거짓말로 지어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맞았을  때, 맞았으니까, 콱 뒤로 넘어 갔으니까 '나는 죽었다 이랬는데, 아, 보니까  죽지 안했고 피도 안 나는데 가만히 보니까 여기가 맞아서 지금 그 구멍이  뚫혔는데 거기 보니까 성경이 딱 있어서 다 뚫히고 거기 딱 시편 91편에 거기 딱  가 가지고 딱 그만 탄환이 머물렀더래요. 성경이 그 사람 살렸어.

 그런고로, 성경이 하나님이 아니로되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나타났다 그거요.

우리에게 가깝게 하기 위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성경이 뭐라  하노?' 하는 것은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어라. 천인 만인이 말해도 성경이  나를 구원해 주지 다른 데는 없다. 성경 구원을 받을란다.' 하는 그것이 막바로  전능자 하나님의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걸 믿어요. 이걸 믿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자꾸 지금, 하나님이 증거하게 하는 것이라. 믿어요. 성경을 떠나지  안하고 성경과 동행하면서 성경과 동행하면서 '아, 나는 죽어도 성경대로 한다.

나는 성경과 동행한다. 성경 떠나지 않겠다. 나는 성경 모시고 있겠다.' 이래서  성경을 우리가 소유물 가지듯이 가지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모시고, 믿는 것이  모시는 것이라. 성경을 모시고, 성경을 이렇게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성경을  힘입고, 성경 보호 안에서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예 예로 복종하는, 이 성경을  이만한 권위로 인정하는 자에게는 이만큼 성경이 역사하게 하시고, 이만한  권위로 인정하는 자에게는 이만한 권위로 역사해 주시고 이 성경을 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보다 이 성경을 뛰어난 권위로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이대로 이  성경에 나타나신 성경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네가 뭐하는 대로 된다고? 믿는 대로 되리라. 따라합시다.

믿는 대로 되리라! 내가, 네가 믿는 대로의 하나님이 돼 주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성경을 이제 공부한 대로 이대로 똑 믿고 요대로 인정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다 인정해야 되지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 무시하는 것이고, 성경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 버리는 것이라 말이오. 성경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되  귀로만 알 수 있도록 나타난 게 아니고 이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나타났고  우리 입으로 읽을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용이하게 가깝게 쉽도록, 가장 쉽도록 나타난 것이 성경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속에서 역사하는 건 다 같습니다.

 그러면 성경이나, 또 성경 안에 뭐 있습니까? 말씀. 그러면 말씀은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라. 이렇게 믿어요. 이게 나가면 다른 사람이 찢고 쪼개고  별별 욕을 하지만 그런 욕 듣지 말고.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하는 그 말씀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제이 위의 성호의 성자의 이름을 가리켜서  말씀이라 한 것인데.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말한  것이오 이 말씀이 뭐이냐? 영감이 나와 가지고, 나왔는데 그걸 진리라 하고  진리가 뭐이냐면 이 말씀인데 이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우리가 접촉하기에 가장 용이하도록 접촉하게 한 것이 성경이요, 그 다음으로  접촉하기 쉽도록 한 것이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나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다. 말씀이라는 이 껍데기 속에 하나님이 와서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 대접하는 것이요, 말씀 섬기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말씀 위하는 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이요, 말씀 믿는 것이  하나님 믿는 것이요, 말씀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 의지하는 것이요. 말씀의  보호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는 것이니 그럴 때에 내가 말씀을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믿어야  돼요.

 이제 믿는 걸 껍데기로 막 이래 가지고 믿으니 얼마나 이래 가지고 나는 많이  속고 있었어, 이 교리와 신조, 말라 빠져 버린 교리만 가지고 그 칼빈이  말했으면 칼빈이 영감 받아 가지고 하는 칼빈의 영감은 책에다 써 가지고  전달하지는 못하고. 칼빈이 영감 생활할 때에 말하는 그것만 전달했으니까 말에  영감이 따라왔습니까? 따라오지를 안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껍데기 말만  가지고 이라고 영감은 빼내버리니까, 영감은 빼내 버려 놓으니까 영감의 역사가  있을 수가 있어야지 권능의 역사가 있을 수가 있어야지. 표적이 있을 수가  있어야지? 없으니까 그 말은 잘해서 막 이게 제일이다 이렇게 학자로 이렇게  외치고 막 이렇게 사람을 꽉 눌러 놓고. 학생들이 신학교 가면 이거 너 공부 안  하면 안 된다. 안 외우면 안 된다. 이 점수 못 따면, 채점 해 가지 그 학위 안  준다. 또 그라고 졸업 안 시켜 준다. 또 이라면 박사 안 시켜 준다 이래  놓으니까 그거 따기 위해서 죽자껏 이래 공부하고.

 저도 신학교 다닐 때 보니까 그만 그것 때문에 시험칠 시기가 가까와 오면 새벽  기도 없습니다. 아, 새벽 기도 없으니까 목사들은 생각할 때에 '이거 가르치는  이까짓 거야 새벽 기도 하나님만 못 하는 데 이래 되겠나?' 이라니까 '새벽기도  내일부터 안 나오는 사람들은 벌을 세운다 휴학을 시킨다. 정학을 시킨다.' 이리  쌓아도 이불 폭 둘러쓰고 전등 안에 놓고 요래 살며시 요래 가지고 공부합니다.

고래 가지고 공부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설교하고 나서 '이제 모두 통성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면 후닥닥 그렇습니다. 다 가고 말이오. 그런 사람들 목회 옳게  못 해요. 아무리 시험이 그래 쌓아도 이것보다 하나님 낫다 싶어서 하나님하고  교제를 하고, 그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남아 있었어, 한 둘 남아 있는  사람은 다 거기서는 목회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요, 권위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평가를 바로 할 줄 알아. 교수들이 가르치는 학문 그것보다 내가 사귀는  하나님이 더 비중이 크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그 교제를 집어던져 버리고 이제 시험 잘 치겠다고 그렇게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거요.

 말씀을,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신 하나님인 것을 깨닫고 이 말씀에게 우리가  상대할 때에. 말씀을 내가 지식으로 가지는 것 아니오. 이 말씀은 우리가 모시는  말씀이요, 우리가 섬기는 말씀이요, 내가 이 말씀에 속한 말씀이요, 내가 속한  말씀이요, 내 왕이 되는 말씀이요, 내 주가 되는 말씀이요. 나는 이 말씀에게  죽자껏 복종하는 것으로 끝을 마쳐야 할 이 말씀이요, 나보다 무한히 탁월한  말씀이요, 나를 모든 면으로 얼마든지 행복되게 해 줄 수 있는 전능의 말씀이 이  전지의 말씀이요, 완전의 말씀이요, 사랑의 말씀이요, 내가 이 말씀 배척이  하나님 배척이요, 이 말씀. 환영이 하나님 환영이라 왜? 이 말씀이 하나님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나타났거든.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당신의 모든  구원 은혜 역사가 그 말씀으로 나타났는데 우리 접하기 쉽도록 말씀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이 말씀에 대해서 내가 대우하는 대로, 믿은 대로 바라보는  대로, 순종하는 대로, 하나님에게 직접 순종함과 똑같은 대우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다 보응하고 다 대우해 주신다 그거요.

 이런데 오늘은 얼마나 천해졌던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 세상 학문 중에 하나와  같이 여기는 그런 목사들이 있고. 성경 말씀은 그거는 뭐 한글로 썼고 이러니까  암만 무식자라도 보고 이러는데. 뭐 ABC 뭐니 나는 그거 모르지만 이제 외국어  이런 거 가지고 이라는 이것이 권위가 있는 줄 알고. 그러니까 성경 말씀보다도  이 세상 무슨 학자들이나 대학자나 대철학자나 무슨 그런 거 이거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그런 거 하나 떡 알면 이걸 떡 한 마디 내 놓고 나면 막 큰 소리를  합니다. '너희들은 모르는데 나는 이거 이런 대학자의 말한다'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뭐 주먹을 휘두르고 막 어깨를 벌리고 야단을 지긴다 말이오. 그것은, 그  말은 피조물의 말인데 속에는, 뱀에게서 나온 말인데 사람을 죽이는 말이라,  그래서 그거는 무슨 지식이라? 죽은 지식. 뭐 하는 지식? 죽이는 지식 이렇게  말해놔서 마음에 마귀 그놈은 참 밉기는 미울 거라.

 하나님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만들고 이제 영원히 진동되지 할 것을  만들라고 나타나신 그 일군이 말씀입니다. 그 권위를 가진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지금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설교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모든 열국을 다  파괴하고 건설하고 뽑고 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이 말씀인데, 자기 말과  그 하나님 말씀과 가치를 혼돈하고, 땅위의 유명한 사람의 말과 하나님 말씀과  혼돈해서 오히려 유명한 사람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도 더 권위 있게 생각하는  그 사람이 무슨 목사야? 그 사람이 무슨 설교를 해? 그 사람의 설교에 뭐 사람이  살아나? 못 살아나요. 절대 못 살아납니다.

 그런고로, 자, 말씀에 대해서 다섯 가지. 또 하나, 뭐? 믿고, 자꾸 따라 해요  잊어버리고 말고, 자꾸 그 말씀에, 다시, 믿고 또? 속하고 또? 것이 되고 또?  같이하고, 동행하고 또 복종하고. 이라면 다 돼. 이라면 전능자와 동행입니다.

전지자와 동행입니다. 주권자와 동행입니다. 대주재 만왕의 왕과 동행입니다. 그  자를 누가 해하요? 이래 하는데 좀 다를까요? 안 달라요. 꼭 같습니다. 여기서  다 치료를 받으십시오.

말씀 속에 진리, 진리도 그래요. 진리는, 말씀은 공통적인 말씀, 대중적인 말씀.

진리는 개별적인 진리, 개별적인 진리. 그게 구별이 있어요. 로마서 12장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라 하는 뜻을 분별하라  하는 그 뜻은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까 그 개인 본인에게 해당된. 그 사람에게  해당된 그 사람의 진리입니까? 달라. 성경은 사람에게 배우되 네 진리는  사람에게 배워서는 못 배운다. 누가 가르쳐 준다 했어요? 기름 부음이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고차원에서는 영감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이 내게 대한  뜻을 내가 지켜서 행하지만 영감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내게 해당된 진리를 내가  행한다 할지라도 행하는 것을 성령이 볼 때에 만족해서 '됐다. 내가 동행해  주지.' 하는 그게 영감인데. 암만 그 자기에게 해당된 그 자기 진리를 지켜도  마음 다하지 안하고 목숨 다하지 안하고 힘 다 하지 안하고 뜻 다하지 아니하고  그 진리만 지킬 수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심사원이라. 심사해서 딱 볼 때  이것이 아무래도 지극히 거룩하신 분에 합당치 아니한 행동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너는 온전타 인정하실 수가 없다 그거요. 온전타 인정하는 것이 성신으로 도장을  꾹 찍는 거라. 이것이 영감이라 그말이오. 거기면 다 돼요. 그러면 다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 오전에 지금 말씀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는데 하나님을 찾아서 헤매이고. 하나님을 만나기 쉽고 사귀기 쉽고  동행하기 쉽고. 하나님을 내가 배반하고 또 환영하고 동행하고 하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을 존대하는 것을 몰라서 다 마귀란 놈이 요래 꾀우고 조래  꾀우고 하기 때문에 이에 거기 대해서 분별 없이 행해 가지고 다 절단나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는 하나님을 우리가 똑똑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친 것이 이제  오늘 오전 공부입니다. 이 외에 뭐 이 외에 신론에 대해서 이런 신론 저런 신론  많이 있지만 그거는 다 부스러기요. 부스러기라. 그거는 저절로 돼. 알겠소?  여기서 다섯 가지로 하나님이 나타나셨으니 나타나신 이 다섯 분만 영접하면 그  나머지기는 다 저절로, 영접하면 다 되는 거라. 영접하면 다 돼요. 아, 불하고  나무하고 대 가지고 나무에다가 불을 쌓아질러 놓으면 불이 댕기면 거기 뭐  고기도 굽고 밥도 하고 오만 거 다 할 수 있어요. 그거 모양으로 이제 뭐  하나님은 뭐이 이런 하나님이라. 이런 작용한다 저런 작용한다 하는데 그 모든  거 하나님 찾으면 거기서 자동적으로. 필연적으로 다 돼 나와요.

 이러기 때문에, 강령을 지금 가르친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괄시하며 배척하며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모시는 것인가? 하나님과 어떻게 하는  게 동행하는 것인가? 전능의 하나님을, 이제 자기가 지금 어떤 공산주의에서  생명이 위급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라면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건데,  구원하실 수 있을 건데, 이 하나님을 내가 찾아 야 될 터인데, 이 하나님을  찾으려고 주여.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암만 불러봤자 그래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그때에 이제 오늘 오전 공부한 것을 턱 거석하면 그만 하나님 대번 착  만난다 말이오.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딱 들어붙어 버려요. 이 방편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대번 착 만나 가지고 들어붙는다 그거야.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에게 나타난 중에서 제일 대목으로 제일 최고로 하나님에게 가까이,  하나님을 제일 가깝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무엇을 만나는 것입니까? 영감  만나는 거 영감 전에는 뭐입니까? 진리는 누구 진리입니까? 자기 진리는 언제  있습니까? 현실에 있어. 현실에 있는데 자기의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 내  이 현실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내 진리요 그것이 진리라 말이오. 말씀은 다  공통적으로 전부 다 신구약 성경 속에 있는 게 다 말씀입니다. 그러면 점점  좁아진다 말이오. 점점 좁아져 가지고 이제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하는데 영감은 뭐입니까? 그대로 하는 것이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딱 보실 때에 옳다 인정이 딱 돼서. 옳다 인정했을 때에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신 후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 이러니까 이제 영감은 옳다 인정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제 주님 만나는 것을 여러분들이 연습했으니까 잘 만날 수 있다  말이오. 자, 이제 주님 만날 줄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제는 주님 만날 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다 들었다. 영 마귀 이놈 절단나네. 우리 주님 만나면  마귀 그까짓 놈은 혼나서 다 달아나는데 자, 주님 섭섭하게 해서 주님 삐꿔서  달아나게 하는 그 행동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주님 삐꿔서 섭섭해서 나를  버리고 도망치시도록 하는 그 행동이 뭐인지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또 이거는  못 드네. 이거는 또 못 들어. 왜 못 듭니까? 못 들기는, 성경 배척하는 것이  주님 배척이지, 말씀 배척이 주님 배척이지 진리 배척이 주님 배척이지, 영감  배척이 주님 배척이지, 그러면 주님 섭섭해하시지. 자, 여러분들 이제 주님은  전지 전능자이신데.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신데, 만물의 대주재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신데 이분을 못 가구로 볼끈 붙잡고 '죽어도 못 놓습니다. 못  갑니다.' 못 가구로 볼끈 붙잡는 방편을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인제 이거  됐어. 그것만 하면 돼요. 그러면 뭘 붙들어요? 이제 껍데기 밖에서부터? 성경을  볼끈 잡고 놓지 말아요. 그 다음에는? 말씀을 볼끈 잡고 놓지 말아요. 그  다음에는? 진리를 볼끈 잡고 놓지 말아요. 그 다음에는? 볼끈 잡고 안 놓으면  주님 못 갑니다. 날 버리고 못 갑니다. 절대 못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이 시간에 이 사람이 돼 버려야 돼요. 여러분들 이  지식으로만 이렇게 할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돼야 돼. 이 사람이 되는 데는 여러  수백 번 수천 번 연습을 해야 되지 그리 아니면 안 돼, 연습은 한 자리 앉았어도  자꾸 연습할 때에, 자꾸 밤새도록 잠꼬대 하듯이 '나는 주님이 같이 하십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성경의 것입니다. 진리의 것입니다. 영감의  것입니다. 나는 말씀의 것입니다. 성경의 것입니다.' 자꾸 이렇게만 하다가 보면  나중에 그만 피곤해 가지고 '그랍니다. 그겁니다.' 하고 나서 그만 슬그머니  자버린다 말이오. 밤새도록 기도한 것 헛일이요 헛일 아니요? 다 헛일이야.

예수님 이름을 안 붙이면 헛일이거든. 이러기 때문에 한 마디 해 놓고 그게  식어지기 전에 딱 그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면 도장을  딱 찍어 놨으니 주님이 꼼짝 못 합니다. 이제는 손만 내고 있소 이루어 주시도록  기다리고만 있어 이루어 주시도록만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 이 방식을 아는 사람 이 사람에게는 마귀가 기절합니다. 아마  여기 마귀 이놈 죽을라고 할 거야. 죽을라고. 이제 그놈 술책을 다 알고 이제  그놈 술책에 빠지지 안하도록 다 해 놨으니 마귀 볼 일 다 볼 것 아닙니까?  마귀는 여기 근방에 오지를 못하는데 그 놈이 지금 저 아래께는 어떤 한 사람을  쥐고 고함을 지르면서 그 부근에 있는 사람들을 유혹할라고 했는데. 그거 저  어디 이 소리는, 말씀은 들리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는 못 하도록 해야 되니까  마귀 수입 없으니까 그 사람 아마 거기 가 가지고는 조용하게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손해 보는 그것 때문에 마귀가 들어서 자꾸 그라는 거라. '그  사람이 왜 그라노' 이래 물으니까 아, 주일학교 반사까지 한 사람이랍니다.

이랬는데 어디 기도원인가 어디 가 가지고, 내가 똑똑히 듣지는 못했어도 말은  들었는데 그 말이 신실한지 몰라도 어디 기도원인가 갔다 와 가지고 그만 그  정신이 이상이 됐다 이라는데, 요새 기도원에 아무 데나 돌아다니면 되는 줄  알아도 되는 것 아닙니다.

 기도원은 말이지. 내가 서울에 있는 우리 동역자들에게 말하기를 '기도원을  만들라고 하지 마라. 기도원 만들라 하면 운영비 크다. 기도원은 만들라고 말고  기도원은 꽉 찼으니까 기도원에 가서 자꾸 말씀을 전해라.' 이 기도원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이라면, 전하면 사람들이 와서 은혜 받고, 은혜 받고 나면 그  다음에 또 한 다음에 또 오고 또 오고 자꾸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은혜 받아  가지고 연보 나오거들랑 기도원에 다 줘 버리고,  또 이라면 그 사람들이 아주 요번에 집회를 할 건데 하면 사람이 많이 모아야  저거 돈벌이가 된다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욕심 차리고  또 우리는 우리 욕심 차리고 그래 각각 그래. 그러니까 돈 연보 나오는 거는 쏵  비용에다가 쏵 줘 버리면 그 사람들이, 광고는 그 사람들이 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면 연보 많이 나오고. 연보 많이 나오는 것은 '그 현재 있는 실비 그거  제하고 나서는 기도원에 다 주니까 그 사람들이 환영하고 광고도 잘해 주고  편리하게도 잘해 주고 자꾸 또 그 사람이 선전해 주고, 이라니까 기도원 지을라  말고 있는 기도원에 다니면서 자꾸 말씀을 전하라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지금 내가 조금 젊게, 하나님이 젊게만 젊게 해주면 내가 지금 좀 더  돌아다니겠는데 이거 뭐 이래 돌아다니다가는 아마 내가 맡은 서부 교인 담당  이거도 잘못 하겠다 싶어서 이라고 있는데. 요번에는 왔는데 하나님께서 나도  병을 낫아 주신 모양이라. 하나도 피곤치를 안해요. 또 저녁으로는 뭐 이리저리  하다 보니까 잠은 그렇게 많이 자지는 못해. 자꾸 사람들이 와 가지고 대개는  10시, 11시, 뭐 12시 될 때도 있고, 이렇게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라는 데도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두시 반이나 되면 깨워 줍니다. 깨워 주시면 그때 일어나  가지고 뭐 재미있게 하나님하고 둘이 속살거리기도 하고, 또 그래도 무슨 그때  성경을 보면 보던 각단 성경 보지, 무슨 말씀 전할까 그 성경 보지 않습니다.

보던 각단 성경 보지. 그때 뭐 내 속에 있는 대로 간증하는 것이니까.

 이번에는 우리가 사람병을 다 고칩시다. 사람병 고치면 영병 마음병  고기덩어리병 다 고쳐지는 거라. 고치기는 누가 고치요? 하나님이 고친다 하면  좀 거리가 멀어. 누가 고치요?, 피가 고치요, 주님의 피가 고치요. 또 누가  고치요? 영감이 고치요. 또 누가 고치요? 진리가 고치요, 자, 여기 등불이 오면  어두움이 빡빡 쎄우고 있어요 쫓겨 달아나요? 아, 등불 오면 어두움은 쫓겨  달아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오면 이 모든 질병과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미암은 것 다 쫓겨 달아나는데. 그 모든 질병은 마음의 병이나 고기덩어리의  병이나 그 모든 것은 악령 악성, 악습의 무기입니다. 그것의 무기요. 그놈의  무기인데, 이제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오면 그만 그것은 다  도망쳐 버리요.

 여기 병 나은 사람 없어요? 이번에 와 가지고 병 나은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봐요. 가짜야. 하나도 없는 가배. 하나도 없어? 병 낫고 숨겨서 안 나았다  하면 나중에 가서 더 재발돼요. 안 돼. 병 나으면 나았다 하고 그렇게 해서 자꾸  간증을 해야 되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가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이  사실을, 하나님이 너에게 큰 일 행하신 것을 네가 가서 너거 마을에 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해라." 그렇게 말씀했어. 하나님이 내게 큰 일하신 것을 내가  증거 하는 것이 주님 대접이요, 증거 안 하는 것이 대접이요? 그 일하신 것을  크게 여기는 것이 대접이요 그까짓 거야 하는 것이 대접이요? (크게 여기는 것)  그러니까 그런 것도 여러분들이 조그만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내게 와서 하신  것은 지극히 큰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에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어떤 게 함께 하시는  것인가, 내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어떤 게 영접하는 것인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게 동행하는 것인가? 이제 전능과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게 동행하는  것이며, 전지와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게 동행하는 것이며, 완전과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게 동행하는 것이며,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것이  동행하는 것이며, 만주의 주로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게 동행하는 것인가? 그  일국의 무슨 조그만한 장관만 동행해도 우쭐해지고 대통령만 동행해도  우쭐해지고 그래 되는데 만왕의 왕과 동행하는 것이 이제 미국 나라 대통령하고  동행하는 거만 좀 못 합니까 많이 못 합니까?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하고  동행하는 것이 미국 대통령과 동행하는 것만 조금 못 합니까 많이 못 합니까? 더  큽니까? 몇 배나 큽니까? 많이 커요? 무한히 커.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정말 믿습니까? (아멘) 확실히 믿습니까! (아멘) 믿으면 주님이  만족하시요. 믿을 때는 당신이 반드시 믿음의 대상으로서 믿는 대로 그 책임을  져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믿는 대로 책임을 져 주시는 주님이시요.

다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주께서 믿음의 말씀을 주셨고, 진리를 주셨고, 영감을 주셨고. 주님의  피의 공로의 능력을 주셨사오니 이 공로로 말미암은 모든 선물을 다 저희들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옵고,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영원히 치료해 주실 것을  또 믿습니다.

 금번에 나타내 주신 이 말씀대로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셨사오니 이대로 믿는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옵소서. 믿는 자에게  하나님으로 다 역사해 주시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저들에게 다  약속하신 대로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모두가 다 깨끗해지고 완전해지고  부요해지고 능력 있게 하여 주시옵시고 영광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선포하신 말씀대로 믿는 대로 모든 고기덩어리의 병. 마음병. 영의 병이  완전히 고침을 받아 다 새사람으로 참사람되고 영광의 찬미의 사람되게  하시옵소서.

 이제 오후에는 연보 하겠사오니 주님께서 함께 하사 이렇게 생명 운동을  일으키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일으키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일으키는 이  일에 동참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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