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관

 

1989. 6. 21. 수새.

 

본문: 베드로전서 2장 1절∼2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훼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참 전심 전력을 구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구할 것 중에 첫째는  정경을, 정경. 바른 성경. 정경을 가지는 은혜를 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됩니다.

성경에는 별별 종류의 성경들을 마귀란 놈이 만들어 내 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본 성경은 한 권뿐인데, 육십육 권 이 한 권뿐인데 그것을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이렇게 원본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 원본을  구약은 히브리어로 사람이 베끼고 또 신약은 헬라어로 사람이 베낀 그것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본은 많습니다.

 또 원어로 그렇게 베껴서 사본된 그 성경을 각 나라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 보라고 한국 말로 한국 사람들이 번역을 했고 또 일본 사람들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 사람 중에 신앙 좋고 성경 많이 읽고 참 성경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는 사람들이 또 일본말로 번역을 해서 세계의 각국 말로 다 번역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번역은 한 번만 한 게 아니고 한 번 번역해 놓고 또 그 뒤에 다른 사람들이  또 번역을 하고 했는데 물론 그 번역할 때에 번역이 보다 좀 정확하게 그 원문  성경대로, 원어 성경이라면은 성경 기록할 때에 기록한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헬라어로 한 것을 가리켜서 원어 성경이라 그렇게 말하고 그 원본 성경이라  하면은 하나님이 처음에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기록해 준 그 성경을 가리켜서  말하는데 원본 성경대로 번역을 할라고 하는 그 말들도 하고 그런 생각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악을 제거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대개는 자기가 참  변화되기를 힘쓰고 행하기를 힘쓰는 그런 사람들 중에는 거기다가 주력하다  보니까 그 어학에 그렇게 능하지를 못합니다. 어학에다가 전력을 기울인 사람들은  또 자기가 변화되는 그 행한 구원에 대해서 그렇게 전력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번역하는 그 사람들이 바로 번역할라고 애를 쓰기는 쓰지마는 그  속에 악이 제거되지를 못했기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가다가는 자기를 나타내고  자기를 유명케 하고 뭐 자기가 뭣을 했다는 이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하는  그런 것들이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번역 성경에는 틀린 게 더 많습니다.

 악령은 어떻게 하든지 성경을 틀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 예수님  믿는 일을 바로 하지 못하고 잘못 믿도록 하는 데에 제일 유력한 그 요령이라  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사본할 때에 어떻게 하든지 이것을 미혹을  시켜서 바로 되지 못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번역할 때에 그렇게 잘못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옳은 성경을 보고 읽는 사람은 깨닫기를 잘못 깨닫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바로 깨달은 사람에게는 행하지를 못하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행하는 사람에게는 그만 교만해 가지고 '교만한 자는 물리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교만해 가지고 하나님과 떨어지도록 할라고 이렇게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바른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뭐 장애하는 것, 방해하는 것들이  얼마나 놓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할 일 중에  하나는 정경을, 꼭 바른 성경을 자기가 가지도록 해 달라는 간구를 하나님에게  해야 됩니다. 마귀가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둘째로는, 자기가 깨닫든지 누가 깨달은 것을 배우든지 상관없소 자기가 깨달은  것이나 다른 사람이 깨달은 것을 자기가 듣고 배워서 깨달은 것이나 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직접 주신 것이나 간접으로 누구를 통해서 주신  것이나 자기가 깨달아 알았으면 그만 자기 것 됐습니다.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어떤 방편으로 주셨더란대도 자기는 바로만, 바른 교리와 신조 행정을 가지기만  하면 됩니다. 뭐 누구를 통해서 가졌다 자기가 직접 받아 가졌다 상관없습니다.

 혹은 직접 받아 가지면 제가 스스로 그것을 깨달은 척 하는 그런 그 사람이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런 위험성이 있지 그 상관이 없습니다. 어째  깨달았든지 깨달았으면 됐습니다. 또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서 깨달은  사람은 '이거는 내가 깨달은 게 아니라' 해 가지고 제것으로 여기지 않는 또  어려움의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그런 것을 다 우리가 배제해야 바른 길을 가지  그렇지 안하면 가지 못하는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모릅니다.

 또 자기가 셋째로는 이 올바른 교리와 신조와 행정을 자기가 깨닫기는 했지마는  그대로 자기가 실행을 해야 실상이 이루어질 터인데 실행하는 이 은혜를 달라고  또 하나님에게 우리는 결사적으로 구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결사적으로 구할  것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입니다. 세 가지.

 그래 이제 이 세 가지를 깨닫고, 깨닫게 해 달라고, 바로 가지게 해 달라고  실행하게 해 달라고 이 세 가지를 나에게 가지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진리는  전력을 기울여서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 더 구할 것 있는 것은 이거는 뭐 중요하기는 하지마는  첫째 둘째 셋째 것만치는 중요하지 안하지마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행하고 난  다음에, 행하고 난 다음에 교만한 자 되지 않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그러면 교만하지 않기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는데 교만한 자는 무슨  증거입니까? 자기가 정경을 가져, 올바른 교리 신조 행정을 가져 또 자기가 실행  실천을 했어, 그런데 교만하지 않도록 기도하는 그 기도는 무슨 기도지요? 다른  말로 하면은 그것이 무슨 기도입니까?  교만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기도는 무슨 기도인고 하니 외식하는 자 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외식이라니? 자기가 실행실천은 했는데  자기라는 그 자기가 올바른 성경, 교리 신조 행정, 행동 실행 이것으로 인하여  사람이 변화가 돼야 되는데 사람이 변화되지 안한 것은 행함에 외식이 들어서  가짜 행위를 한 것입니다.

 행해도 행하면 됐는가? 일 이 삼 중요해서 여게다가 참 자기의 생명을 기울여서,  이거 잘못 가지면 자기는 금생만 실패가 아니라 영원 무궁토록 실패인 것을  깨닫고 이 세 가지를 바로 가질라고 애를 씁니다.

 대개 사람들이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에 나로 하여금 육십육 권 도리를 다 바로  깨닫게 하시고 요대로 실상을 이룰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기도를 합니다. 매일 안 빠지고 아마 거석한 사람들은 다 기도를 할 것입니다.

다른 기도는 빠져도 그 기도는 빠지지 안하고 대개 기도하는 줄 압니다. 저도  빠지지 안하고, 그거 아니면 절단나기 때문에 기도를 합니다.

 이런데도 행하기까지 했으면 다 된 줄로 생각하지마는 그 실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뭐인가 삐뚤어져 있는 건 안 된다 말이오. 삐뚤어지면 그거 실상이 안 돼.

가지고 알고 행해도 뭐이 하나 잘못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를 않는다 그거요.

 그렇기에 이 자연 계시에, 과학은 자연계시고 또 이 만물은 자연계시인데, 나는  과학자가 아니지마는 그래도 논두렁 과학을 알고 있어, 논두렁 과학이라 말은  조작배기 자기가 이 모든 실물들을 보고서 깨달은 그전 과학들. 또 이 자연  만물을 보고서 아는 것, 그런 것도 보면은 꼭 이치가 있습니다. 뭣이든지 그것이  참 백 점이 둬 만치 잘된 것은 거게 관련된 이치가 다 들어맞아 그건 것이오. 그  뭣인가 좀 고장이 날 때에는 거게 이치에 들어맞지 않는 게 있어서 그렇다.

 그러기에 뭣이든지 기계도 그것이 제대로 안 되면 '이거 뭣인가 바로 되지 안한,  요 바른 이치에 맞지 않는 요 뭣이 있다.' 이래 가지고 삐뚤어진 그 이치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잘못됐으니까 왜 잘못됐는가 이치를 찾지 안하고 잘못됐다고  고것을 암만 손을 대도 그 사람은 진전이 없습니다.

 농사짓는 것도 그렇고 뭐 식물도 그렇고 뭘 그 사람이 열심히 해서 하는 데도  그 사람에게 물어 봐서 '이런 거는 어째 이렇습니까?' 이래 물으면 '예, 어째  그런지 그거 뭐 그렇습니다.' 하면 그 사람은 성공이 없소. 그거는 죽자껏 노력만  해 가지고 어째 참 황소 뒷발로 쥐잡기로, 황소 그놈이 뒷발질해 가지고 툭 털다  보니까 어째 그만 쥐가 거기 맞아 가지고 죽었지 그게 뭐 쥐를 몇 마리나  잡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어째 하다 보니까 들어맞은 것이지 그 되는 거는  아니라 그거요. 그건 실패자요.

 그러면 말하기를 '요것은 요렇고 요렇고 시기에 대해서 요래 됐습니다. 요거는 물  준 데 대해 요래 됐습니다. 요거는 또 비료에 대해서 이리 됐습니다. 요거는 그때  온도에 대해 요래 됐습니다.' 뭐 딱 알아 맞춰서, '그런데 그러면 왜 그래  됐습니까. 이래 냅둡니까?' '그게 지금 손이 안 돌아가서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희망이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어려운 것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뭐이며 또 세밀한 것  중에 제일 세밀한 게 뭐이냐 하면 우리가 구원 이루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과학자들 중에, 과학자는 의사도 과학자지마는 이 모든 물질을 연구하는 모든  물질에 대한 그번 종류의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보다는 인체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이 더 세밀합니다. 왜? 그게 더 세밀하게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  연구해서 안 들어맞으면 일이 안 됩니다. 안 들어맞으면 사람의 건강을 제가 도울  수가 없습니다.

 천한 것일수록 거게 대한 모든 조건과 구비 요소들이 숫자가 적고 또 아주  가치가 높은 것일수록이 그 구비 요소의 수도 많고 세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중에 세상에서는 사람의 그 인체에 대한 연구하는 것이 그것이 제일 세밀합니다.

 그러기에 뭐 노벨상 중에도 여러가지 노벨상이 있지마는 제일 사람의 인체에  대해서 유력한 것을 발견해서 노벨상 받은 그것을 제일 가치로 사람들이 삼는  것입니다. 뭐 문학이나 무슨 이런 저런 무슨 뭐 식물학이나 그런 것보다도 인체에  대해서 인간이 큰 해를 받고 있는데 그것을 발견 못해서, 그 공로로써 노벨상 준  그 사람이 제일 어렵습니다. 제일 힘들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사람의 인체보다도 우리의 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우리  구원에 대한 것은 그거 뭐 그런 것 몇억억만 배도 더 되는 그 세밀하고 구비  요소가 많고 복잡한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 물질 물질에 대한  이치보다는, 물질에 대한 이 이치보다는 동물의 이치가 더 복잡하고 세밀할  것이고, 동물의 이치보나는 사람의 이치가 더 복잡하고 세밀알 것이며, 이 육체로  된 이것보다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이것이 신구약 성경이 가르쳐  주는 온전한 사람을 만든다 하시는 이 말하자면 인간 과학이라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얼마나 세밀한 건데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수 믿어 구원얻는 것은  이것은 아주 쉬운 것이고 공짜배기로 이래 알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제일  쉽다고 보다 보니까 가치가 제일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구원은 기본구원은 순전히 은혜라 하는 이것을 많이 해석을 했습니다.

가치가 적어서 공짜배기로 받는 것 아니고 쉬워서 공짜배기로 받는 게 아니라  이거는 공짜배기로나 받지 그 댓가나 그런 것이나 또 인간이 연구해서  깨달음으로 하는 그런 것 가지고는 절대 될 수가 없는, 이 참 아주 인간이 바라볼  수 없는 이 고차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행함은 거게 가담을 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입니다. 순전히 은혜는 은혜이지마는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저 저 존다. 저 편집실에 있는 학생 아닌가? 일 많이  하고도 졸면 헛일이라. 이거 못 깨달으면 헛일이라 말이오. 오늘 아침에 지금  그런 걸 말할라고 하는 것인데.)  자기가 이 참 어려운 줄 알고 달라들어서 우리 이 건설구원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이것이 건설구원인데 얼마나  어렵다는 이것을 깨닫고 자기는 전심 전력 기울여도 안 돼서 주님에게 간구해  가지고 도우심을 입어야 된다 이렇게 알고 그런 사람들마다 기도를 쉬지 안하고  주님에게 간구하고 이런 건데,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자꾸 세밀히 세밀히 파고 들어가고 파고 들어가고 또  깨닫고 깨닫고 자기가 실행해 보니까 또 틀렸다 실행한 가운데서 또 깨달아지고,  붓을 들고 책상에서 논리로 연구했던 그 과학자가 실험을 해 보니까 틀렸어. 이래  가지고 논리 연구한 사람이 실험에서 자꾸 수정 수정되고 이래야 그게 성공되지  자기가 자기 마음에는 꼭 그렇다 싶어서 요렇게 발표를 했는데 실험한 사람들이  보니까 영 틀렸더라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예수 믿는 것도 자기가 깨닫고 실행해 보니까 또 틀렸다  해 가지고 또 고치고, 그러기에 알고 그대로 실행하면은 참 내 제자가 되고 그  다음에는 이제 그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를 진리대로 실행하게 한다 그걸  가리켜서 자유케 한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주신 이 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좀 인식을  하면 좋을 터인데 어렵다는 것을 암만 말해도, 성경에는 기본구원에 관한  성구들이 있는데 기본구원에 관한 성구들을 가지고 '이렇게 다 은혜로 얻는  것인데 그렇게 한다' 이라니까 이 인간들이 마귀 유혹을 받아서 어짜든지  안일주의 쉽게 할라 하는 것, 쉽게 할라는 것,  이래서, 우리 총공회는 예수 믿는 것을 어렵게만 말한다고, 이 백 목사는 어렵게  말한다고 해 가지고 쉽게 말하는 것, 그것을 좋아하는 그게 적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이런데 뭐 전부 공짜배기로 될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니까,  여러분들이 보면은, 신문에 보면 불교인들이 보면 얼굴 압니다. 제일 얼굴이  뚜렷하요. 뚜렷한데 자세히 그 신문에 난 그림만 봐도 속에 알맹이가 없어. 보면  걸어머리만 뚜렷, '으음' 이래 부처를 항상 보고 장 이래 상만 이렇게 할라고 닮아  놓으니까 이째 놓으니까 보면 중들 상과 다릅니다. 중들 상과 목사 상이 달라요.

 또 대개 목사 상은 보면 이거 사기 협잡 횡령하는 것 같은 아무런 그런 용모에  보면 미가 없고 아주 사기꾼같이 그렇게 보여진다 말이오. 그거는 중들 사진과  목사 사진을 비교해 보면은 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거는 아주 뭐 세밀히  날카롭고 속에 참으로 하나님 형상을 닮아서 굉장히 세밀하고 철두철미하고  강하고 날카롭고 그렇게 또 사는 그런 사람들이 또 있다 그 말이오. 그거 다  용모에 따라가요.

 이런데 어짜든지 그만 '쉽게 구원 얻는다'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얼굴은 중  얼굴과 비슷합니다. 목사 얼굴도 중 얼굴과 비슷해요. 이런 건 여러분들이 뭐  말을 무슨 말인지 자기네들에게는 상관이 없기 때문에 말을 못 알아들을 거라.

그래서 우리 구원이 어렵다는 것을 지금 말합니다. 건설구원이 어렵다는 것을.

 자꾸 쉽다는 것을 말했는데 어데 쉽다고 말했습니까? 쉽다고 말한 데도 있고  어렵다고 말한 데도 있습니다. 어렵다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채용을 안 하고  알라고 하지 않습니다. 쉽다고 말한 것은 다 자기가 자기 복음으로 가질라고  합니다. 그건 쉽다고 한 말은 기본구원에 관한 말씀이고 어렵다고 한 말씀은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것도, 이 자꾸 하지만 이것도 뭐 어데 세계에 무슨, 그거 과거에 깨달은 사람  없다 말 아니오. 대개 발표되는 뭐 교리 신조 이 무슨 뭐 조직 신학이라든지 성경  신학이라든지 이 발표돼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주 써내 놓은 데 거게는 들어  가지고 있는 게 적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데 마음이나 생각이나 시간을  기울일 시간이 없기 때문에 전심 전력 기울여서 자기 구원 이루는 데 하기  때문에 깨닫기는 했지마는 발표를 못 해.

 그러기 때문에 천주교에서 이 개혁을 할라고 깨달은 사람들이 수백만  죽었습니다. 뭐 수십만이 아니라 수백만 죽었어. 굉장히 많이 죽었어. 이렇게  죽어도 교리 신조를 양보 안 할라 하다가 죽은 것이오. 옳은 걸 주장하다 죽은  것이오. 또 나쁜 걸 받아들이지 안할라다 죽은 것이오. 옳은 것은 놓지 안할라  하다 죽었고 옳은 것을 가질라고 하다가 죽었고 둘 때문에 죽었어.

 그래서 제가 어제 아침에는 '자기 복음을 가지라' '다른 복음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가거들랑은 이 사람은 문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고 용납지를  말아라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자기 복음을 가져야 된다. 자기 복음은 신구약  성경이 자기 복음이요 이 신구약 성경을 바로 깨달은 것이, 바른 깨달음, 바른  깨달음의 교리와 신조, 바른 교리와 신조 그것이 자기 복음인데 이것을 가져야  된다.

 그러면 바른 것을 가질라고 할 때에 결사적이어야 됩니다. 바른 것을 가질라고  할 때에 자기의 가진 보물은 몇 가지라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보물이 네 가지라,  네 가지. 자, 보물 몇 가지라고? 손가락으로. 자꾸 손가락 들어요. 교만하게 그래  하지말고. 그래야 자꾸 자기에게 박혀진다 말이오. 박혀지라고, 여러분들에게  박혀지라고 하는 거라.

 이 네 가지를, 바른 것을 가질라고 할 때에 네 가지를 다 기울여서, 기울이지  안하면 바른 것이 잡히지 않습니다. 또 바른 것을 가졌는데 바른 것 가진 것을 안  내 줄라고 하면은 어찌 돼요? 어찌 돼요? 또 이 네 가지를 다 아주 기울여서 '네  가지를 다 뺏겨도 이 바른 것은 내가 뺏기지 안할란다' 이래야 안 뻿겨지지. 이  옆에 마귀가 뺏들라 합니다, 하나님이 뺏들어라 하기 때문에 뺏들라 합니다.

 이러면 어떤 사람은 안 뺏긴다고 하다가 자기 소유를 뺏을라 하니까 '아이구,  소유 뺏기면 나 이것 내 주지요.' 어떤 자는 나중에 생명을, '네가 이 안 내놓으면,  이 바른 교리 신조 이 행정 안 내놓으면 내가 생명을 빼앗겠다, 네 밥통을 떼겠다.

생명 빼앗겠다.' 이래도 '생명을 내 줬으면 내 줬지 이거 내가, 바른 깨달음은 내가  영섕을 이루는 것인데 내가 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것도, 바른 것을 찾는 데도 네 가지 보배를 다 기울여야 되고, 바른 것을  찾은 이것을 내 주지 안하는 데도 보존하는 데도 네 가지를 기울여야 되고, 또 이  바로 깨달은 것을 자기가 그대로 사용하고 그대로 살라고 해도 이 네 가지를 다  기울여야 됩니다. 이렇게 그게 어려운 구원입니다. 이 어려운 구원이라는 걸  말하니까 세상들이 다 듣기 싫어합니다.

 교회 가면 아주 쉬운 구원으로서 거기 가니까 '아이구' 숨이 쉬이는 그러기에  '아이구 이제야 됐다. 아이구, 그거 시집살이 총공회 예수 믿는 거 에이 어짜든지  공연히 까다롭게 이래 가지고 고생한다. 이제는 좀 시간이 있어서 뭐 놀러갈  시간도 있고 우리끼리 만나 가지고 얘기할 시간도 있는데 이거는 얘기도 못  하구로 하지.'  그래 나는 얘기를 못 하게 해요. 얘기할 만한 사람이 안 돼 있어. 얘기하면 서로  죽어요, 서로 죽여.

 내가 염려하는 것은 서울 삼각산 기도원에도 이제 주 모이는데, 모이는데 거게  죽이는 것과 대립돼서 싸우는 사람이 내가 보기에는 삼각산 기도원에 모인 사람  중에는 하나도 없어. 우리 OOO목사님 거기 다니시지? 거게 다니시지요? 애나  쓰지, 자기나 애나 쓰지 뭐 '나만 돼지면 되지 뭐 그렇게 할 게 뭐 있는가?'  그라면 벌써 거게서 죽이 는 것을 반대하고 살리는 운동을 하면은 거기서 미움을  받아 가지고 지금 똘똘 몰려 가지고 있을 거야. 몰려 가지고 있소? 몰려 가지고  있으면 그렇고 안 몰려 가지고 있으면 그만 그거라, 뭐 별수 없이. 저거끼리  좋아서 덜썬덜씬하면 그만 그거라고 그만 단정을 지워도 틀림이 없어요.

 그 살릴 만한 것은 가지를 안해. 아예 안 가는 사람들은 또 그거 지혜가 있어서  '내가 가서 살리지 못할진대는 가 가지고 거게 죽고 죽이는, 내가 다른 사람  죽이고 다른 사람에게 죽임받는 그것보다는 거기 안 가는 게 낮다.' 싶어서 가서  참가를 안 해. 서울 기도실에 거기 안 가는 사람들이 누구누구인고 뭐 그것만  보면 또 그거 좀 다르다. 그러면 간다. 가면은 거게서 고독을 가지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당하지 안하고 마찰이 없으면 가짜다. 이 몇 가지만 해도  바로 알 수가 있다 말이오.

 이래서, 쉬운 게 아니고 그 어렵기, 어려워, 그 실상이 이룰라 하면은 어려우면  실상 이루는 어려운 말을 해 줘야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지도자요 선지자지  어짜든지 어려운 것을 우선 좋다고 쉽게만 말하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헛일이라 말이오.

 여기 서부교회 유력한 부자들 또 무슨 권세든지 지식이든지 그런 것 많은  사람들은 서부교회 잘 안습니다. 왜? 오면 아니꼬와서 못 듣기 때문에.

아니꼬와서. 아니꼬와서 못 들으나 그게 틀림이 없는 말이고, 없는 말이라. 제가  지금 듣기 싫으면 나중에 가서 하나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자복을 해도 하니까  이를 구원은 시기가 떠났기 때문에 다 헛일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이래서 찾는 데에 힘이 든다. 자기 복음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데 자기 복음을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힘이 들며, 가진 복음은 그것은 지킬라고 하면은 얼마나  힘들고, 뺏기지 안할라 하면은 얼마나 힘이 드느냐? 이러기 때문에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뺏지 않도록 해라' 뭐이냐? 자기 아는 것  그거 실행을 하면 면류관이 된다 그 말이오. 실행 안 하면 면류관이 안 돼요.

아는 것 그거 깨달은 것 자기 교리 신조 바른 것을 빼앗기면은 면류관 빼앗기는  것이라. 이것을 말했고,  또 오늘 아침에는 지금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 말씀을 지금 오늘 아침에 봉독했습니다.' 요새 양성원 학생들에게는 '설교록을  읽으라' 읽는 데는 아직까지 읽는 데 대해서 남의 통감이지 자기 복음으로 읽지  못하고 받지 못한 사람들아 많아요. 이래서 하나 읽고 뒤에 따라가고 하나 읽고  뒤에 따라가고 이래 가지고 읽어서 이제 이 깨달아 가지고,  읽어보니까 뭐 이것은 내가 내 자랑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지금  말합니다. 나는 그걸 몰랐는데 말하는 대로 나는 주는 대로 이래 말해요. 말을  하는데 나는 말을 사도 요한이를 바울이라고도 말하는 사람인데, 실수가 많은  사람인데 자꾸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어짜든지 하나님이 나를 많아 주관하여  주시고 악령 악성 학습이 침노하지 못하도록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소망 이 네 가지가 붙들고 말해 달라는 그것을 그것만은 내가 항상 일생  기도하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그전에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은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뭐 웃으면서 별명이 있어. '그 사람은 뭐한다고  오늘은 무슨 말씀을 주님이 가지고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증거해 주십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서부교회 와 가지고도 한 십오 년 가량은 언제든지 사석에서나  강단에서나 계속하다가 이제 내가 속화가 됐는지 이제 달통이 돼 그건지 지금은  그런 말 안 합니다. 모두 다른 사람도 거석하고 그라고 이제 그것도 속화돼  그런지 몰라요.

 그런데 이 성경을 성경이라고 말하지, 이렇게 성경이라고 말하기 하나님  말씀이라 한다고 이거 뭐 반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반대를 하는지 모릅니다.

가장 내가 신임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반대를 하요.

 반대를 해도 그걸 양보하지 않는데, 이래 또 그거 이제 하나님 말씀을 '성경 말씀  어데 봅니다.' 이래 되고 난 다음에는 그 마귀가 나한테 말하기를 반드시 '성경  말씀이라고 하지말고 성서라고 하십시오. 성경이라 하면 무식한 사람이고 성서라  해야 됩니다.' 또 그렇게 마귀란 놈이 할 줄을 압니다.

 성서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성경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뺄쭉나게 양보하지 안할라고 그 속에는 얼마나 모든  사람에게 누명쓰고 외롭다고 이래도 이래 되는 것이 그리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설교록을 읽는데 읽을 가치성을 모르고, 읽는 취미를  모르고 이러니까 이거 줄줄 줄줄 내려가는 그런 다른 뭐 박사나 그런 사람들이  써야, 또 저 외국 사람들이 써놓은 걸 번역해 가지고 한국말로 번역한 그건  거라야, 또 번역 안 된 거 저 외국말로 돼 가지고 있는 거 그거라야, 원어로 돼  가지고 있는 거라야,  원어는 그때는 그 말밖에 없기 때문에 원어를 사용, 그 히브리어 헬라어를  사용했지마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아주 고전어라, 야만어입니다. 알겠소? 아주  미개어요, 아주 미개어. 지금 미개국의 말 정도도 세밀하지를 못하고 정확하지  못한 그런 말입니다. 이런데 그거 아는 사람이 원어 아니면 아무것도 안 둬 줄로  이렇게 알고 그걸 주장하기 때문에 그 사람도 그 속에 제가 악이 들어서 자기가  교만해 가지고 다 헛일이라 그거요.

 얼마나 했든지 어떤 신학교에서 히브리어 전공을 한 사람인데, 그 히브리어  박사를 받은 사람인데 그 사람 밑에 있는 그 유력한 목사요. 그 목사가 어떤  집에저 초대를 했는데 나하고 그 사람하고 둘을 같이 초대를 했어. 거기 갔다  말이오. 가니까 히브리어 자랑을 떡 하면서, 지금 히브리어는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가 히브리어 모르는 무식한 목사들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은 횔씬 낫게  깨닫는다고 이걸 주장을 하고 말이오.

 그래 '그렇지 않다, 않다.' 이라니까 자꾸 주장해. 내가 그래서 이거이 순  마귀새끼로구나 이래 가지고 고함을 질러. 남의 집에 초대받아 간 사람이 남의  집에 가서 싸우는 것 모양으로 고함을 지른다는 그게 쉬운 말이 아니라. 고함을  질렀어. '이 귀신같은 소리하지 마라. 어느 교수가 그따위로 가르치더노,  가르치기를? 성령 받지 안하면 안 되는데 안 믿는 사람이 지식 가지고만 다  성경을 바로 해석한다 말이냐? 성령의 감화가 아니면 깨닫지 못한다고 성경에  말했는데 이 성구는 어떻게 할 것이고?' 고함을 지르니까 이 사람은 그거 또  그렇게 할 줄은 몰랐지. 그거 뜨끔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밥하던 사람도  들어왔어. '왜 이래 하십니까?' 이렇게 이거 싸우는가 싶어서.

 지금도 내가 그거 말을 여러 수십 번 했소. 그 속에 자꾸 들어갈 것입니다.

그분도 유력한 분이오. 그래도 그분에게는 아마 평생 이 교훈이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가 히브리어 모르는 목사보다는 성경 깨달음은 더 유력하게 깨닫는다' 하는  그 말로 가르친 그 히브리어 박사 교수가 저한테 말한 것보다도 내가 고함지른  것이 그의 일생 동안에 도움이 돼서 인정은 나를 인정하지 그를 인정하지 안할  것이오. 왜? 세월이 가면 귀속에 대고 한 것이 공중에서 퍼져 나갑니다.

 이래서, 이 그런 글은 보면 자꾸 취미 있게 읽지마는 내가 보니까 이거 이  설교록은 껍데기 말로는 이거 국민하교 말밖에는 안 되는 아주 쉬운 말로 이래  가지고 나는 포 유식한 말 모르기 때문에 쉬운 말밖에는 안 해. 나는 또 자꾸  쉬운 말을, 유식한 말을 할라 하면 좀 알 건데 내가 유식한 말 할라고 하지  안해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성경학교 가니까 영어 공부를 모두 하는대 내가 '우리  한국말이면 랬지' 하고 영어 공부를 하지 안해. 그러니까 에이자(A) 쓰고, 지금도  거기 대해 관심을 못 가지기 때문에 비이자(B)는 또 이래 비이자(B)는 또 옆으로  요라든가 꿔이던가? 에이(A) 비이(B) 시이(C) 그걸 몰라요. 그걸 나는 할라고  하지 안에. 한국말이면 족한데 그것도 못 하는데 그런 거 내 머리에 담는  것보다는 내가 진리 담지.

 그러니까 무슨 소용없은 말은 내 머리에 왔다가는 다 기록이 안 돼 버리고  말아요. 그러나 필요하고 요긴한 것은 몇십 년이 돼도 요거는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사람을 겪어보면 알 거야. '저 사람은 그건 거는'  그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햐, 목사님 총명은 참 굉장하다고, 언제 그런 거 그런  것을 어째 알고 있느냐고.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딱 담아 놨지.

 이래서 갓난 아이가, 갓난 아이. 이제 낳은 아이.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젖을 사모하라 말은 하나님의 도리, 도리와 신조 행정 이건  것이 다 젖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신령한 그 깨달음을 네가 그것을 사모하라.

 여러분들이 지금 설교록을 읽으면서 자꾸 읽으면 깨달아져서 그 속에 내용을 알  거라 말이오. 그 보니까 그냥 줄줄 읽어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 속에 구원 얻는  이치를 전부 말해 놨는데 내가 말한 게 아니라. 나는 그거 내가 어재도 내가 차에  오면서 늘 그런 기도를 했어. '이 양성원 학생들이 어짜든지 이 도리를 바로  깨닫고 여기에서 자기 구원에 유익한 것을 실지로 체험해서 자기의 본능이  돼져서 목마를 때에 물을 마시지 안할 수가 없고 배고플 때에 음식을 먹지 안할  수가 없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돼 가지고 이거 그만 답답해서 설교록을 안 읽을  수 없고 갑갑해서 또 시장해서 힘이 없어서 안 읽을 수 없어서.'  이거 성경은 어렵고 설교록은 쉽습니다. 설교록보다는 성경은 어렵습니다. 이거  성경을 오늘까지 좔좔좔 읽지마는 성경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없다 그 말이오. 이  하나만 봐도 다를 것인데, 성경은 뭐이냐? '성경은 율법이라' 율법이라고 깨닫는데  '그게 틀렸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하나만 해도 이거 놀랄 만한 것인데,  수백 년 동안 모든 사람들이 다 그게 옳다고 이거 보고 있고 자랑하고 있는데,  '이게 틀렸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약이라는 그거는 밑에 여러 말로 말할 때 계약도  들어 있지마는 한 말로 말할라면은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래야 되지  계약이라 하면 안 된다.' 이것만 해도 깜짝 놀랄 터인데 뭐 하거나 저렇거나  도무지 '원래 인간들이 모든 일반 목사들이 모르는 말 안 하는 그런 말 하는  사람이니까 저 뺄쭉난 이상한 말만 하기 위해서 저란다.' 이렇게 괴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구원이 되지 않는다 그 말이오.

 이래서 본능적으로 이 설교록을 안 읽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 마치 목마르니까  마시고 배고프니까 음식 찾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돼서 이 설교록을 안 읽고는 못  견뎌서 읽으니까 평안하고, 읽으니까 기운나고, 읽으니까 힘나고, 읽으니까  해결되고, 읽으니까 자기 마음이 정돈되고 정리되고 깨끗해지고 이 유익을 보는  사람이 돼 가지고 되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내가 기도를 했어.

 나는 설교록을 나는 그래도 읽지 안했어요. 못 읽었어요. 못 읽었는데 이제 저  아래 내가 누구를 시켜서 우리 집에 일하고 있는 이더러 잠깐 좀 읽어 보라고  내가 그때 한 페이지인가 두 페이지인가 읽어 봤어. 읽어보니까 내가 놀랠  만침이라. 나도 설교를 했지 내가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또 아래 양성원 학생들 가서 읽으라고 해 가지고 읽는데 이거 저것 좀 그때  내가 참여해 가지고 한 장 읽었던가, 한 페이지인가 두 페이지인가 읽었어. 읽을  새 내가 들어보고 야, 내가 그래 하나님 앞에 자복을 했어. '내가 이와같이 증거만  했지 나는 읽어서 내 양식을 삼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만 줘서 가르쳤고  고쳤지 나는 가르칠 줄 모르는 이런 손해를 봤습니다.' 이라면서, 학생들이  어짜든지 깨닫고 여기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안 이으면 될 수 없는 이런  본능화되어 지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내가 어제도 차를 타고 거창서 출발해  오면서 계속 차 안에서 내가 기도한 것은 그 기도를 내가 눈감고 계속 했더라  그거요  오늘 아침에 지급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그 속에 '땅에 속한 자는  세상 말 하니까 듣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우리말을 듣는다 말은 이 성경 기자의  말을 듣는다 말이오. 우리말이라면 성경 기자가 말한 것인데 성경 기자의 말  듣는다 말은 성령의 말 듣는다 그 말이오.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말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영감의 음성을 듣는다는 그 말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줄줄 그래 읽어 가지고는 몰라요.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그랬어. '설교록-성경은 내가 맡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교록 세 권 읽으면 신구약 성경 일 독 한 것으로 계산을 해서 그렇게 점수를  매겨서 주겠다.' 그러면, 그래 가지고 설교록만 자꾸 또 읽으면 안 돼요. 설교록을  세 권 읽었으면은 또 신구약 성경을 또 한 독 하고 또 성경 한 독 하고 설교록  세 권 읽고 요렇게만 자꾸 해서 취미를 붙었다면 그 사람은 대부흥사가 됩니다.

대목회자가 돼. 다른 데 없소,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지금 이 주셨기 때문에 딴데  없어. 목회 잘하는 게 딴데 없어  이것만 있으면 설교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심령이 밝아서 교인들 린 이건 것  저건 것 다 봐. 말은 안 하지마는 '저 사람에게 무슨 귀신 들었다 저 사람에게  무슨 귀신 들었다. 저거는 무슨 악이 들었다. 무슨 교만 들었다. 조건 무슨  운동하고 있다.' 하는 그것을 말을 안 하기는 안 하지마는 자기가 아니까 방비할  수 있다 말이오.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 그 사람을 어짜든지 거기서 구출해  달라고 이렇게 기도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발표가 나기 전 모든 것을, 발표가 나기 전 모든 것을 깨닫고 마귀  역사를 기도로써 물리쳐야 되는 것이지 나오고 난 다음에는 힘이 들어요. 저도  오히려 거석한다는 데 서로 믿은 자리는 안심하고 했다가 낭패를 당한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설교록을 이번에 셋 주간 설교록만 읽힐 것입니다.

읽는데 이제 '설교록을 안 읽고는 못 견디겠다. 여게 참 생명의 능력이 여게  들었구나.' 자꾸 읽고 보니까, 자기가 여러분들이 경험을 해 봐요. 자기가 가  가지고 목회를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은 설교록을 자꾸 읽고 가니까 교인들이  좋아합니다. 교인들이 좋아해. 설교록을 자꾸 읽고 가니까 설교할 때에 그  교인들이 설교를 잘 듣습니다. 설교록을 자꾸 읽고 가니까 내나 같은 설교인데  교인들이 은혜받고 좋아합니다.

 왜? 우리 자신이 변화됩니다. 이 설교록을 읽는 가운데서 자체가 변화돼 가지고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 설교록을 사모하고, 설교록  사모하는 사람이라야 나중에 성경을 사모하게 됩니다.

 성경은 여러분들에게 장성한 자가 먹는 딴딴한 여문 음식이기 때문에 잘  먹어지고 깨닫지 못해. 암만 읽어 봐야 몰라. 외운다고 되는 거요? 외운다고 되는  것 아니라. 그거는 꼭 실행이라야 뚫고 들어가는 것인데 그거 아니면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제 설교록을 읽어서 설교록을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갈이  이렇게 사모하게되면은 그 다음에는 이제 성경을 사모하게 됩니다. 성경을  사모하게 돼.

 그래서 저는 이 집회 갔다 와서 이 무슨 재독을 들을라고 테이프를 녹음기에  넣어 놓고 이래 듣다가도 그만 그것 들어 가지고서는 좀 거석하니까 이 성경  들어요. 성경에 좀 여문 것이라야 맛이 있어. 성경이라야 좀 맛이 있어도 성경  해석해 놓은 설교록 가지고는 맛이 없어. 이런데 다른 사람들의 그 저서라 하는  것은 볼 필요가 없어. 그거 틀리니까.

 모든 성서 해석 역사라 하는 그 책 하는데 그만 성서라 하는 데부터 그만  거게서 마음이 정이 뚝 떨어져. '이 사람 정도는 성경을 성서라고 이렇게 말하니까  이만치 떨어져 타락한 사람이니까 이거 볼 게 없구나,' 그라고 난 다음에. 또 조금  여니까 이거는 '누구는 어떻게 성경 해석했느냐, 누구는 어떻게 해석했느냐?' 이  전부 인간 해석한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으로 이래 보기 때문에 완전히 다 틀려  버렸어. 완전히 다 틀렸기 때문에 볼 게 없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바울의 해석을 성경으로 믿을랍니까? 믿을라요? 자, OOO 예수님의  해석은 성경으로 믿을라요? 예수님의 말씀도 성경에 기록되지 안한 것은 옳은  말이니까 듣고 순종하고 믿지마는 성경처럼 믿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딱 요래  가지고 그 이상은 가감을 못 하게 해 놨어.

 이 성경의 권위를 이렇게 하나님이 가르치고 세워 놓은 것인데 이 성경 권위를  막 '누구가 이거 해석한 거다. 이건 누구가 해석한 거다.' 마구 주 찢어 가지고  제가 무슨 하나님처럼 막 찢어서 '이거는 이랬으니 이거 뭐 이거 틀렸고 이러니  이거 틀렸고' 이라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이요 그거 제가 그 책을 보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이라. 모든 걸 심판하고 성경도 제가 비판해. 성경을 어데 비판해,  평가하기를!! 성경을 어떻게 논평해?  성경은 우리는 믿고 순종할 것뿐이지 이미 온전한 성경으로 다 제권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종결을 마쳤기 때문에 더하지도 덜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어데 비판해, 비판하기를? 그런 것을 어데 그런 걸 보고도 내가 혹 그 말을  여러분들이 오해할지 모르는데 나는 그런 책을 나 같으면 내가 보면 그래요. 막  이래 주 그려 버려. 그리고 이래 가지고 주 뜯어 버려.

 왜? 그 책을 보면. 이 세상에, 이거 아주 교만하요. 제가 하나님이로만, 전부. 뭐  성경을 이러니 저리니 논평 다 했지, 또 우리는 지금 성경을 '성경은 논평할 게  아니다. 정확 무오하기 때문에 우리는 믿고 행해야 된다.' 여게만 전력을  기울이는데 이 성경을 들고서 논평하니까 위대한 것 같지마는 우리 신앙을  뿌럭지부터 완전히 박살시켜 때린다 말이오.

 여러분들 요번에 공부한 데 성경 정확 무오성에 대해서 성이 든 줄 알아야 돼.

몇이 든 줄 알아야 뽑아내지. 치료 못 해요. 그것으로 여러분들에게 벌써 성경의  정확 무오성에 대해서 '아이고, 그거는 무식하다. 나는 이거 좀 더 배우고 보니까  유식하다.' 이래 가지고 그말을 듣고 나니까 유식한 줄로 알고서 성경에 대해서  정확 무오성은 여러 분들에게 벌써 금이 갔다 그거요. 이미 금이 갔는데 이거  치료할라면 얼마나 힘이 들어?  금 간 줄도 몰라요, 그게. '아, 그거 참 배울 만한 것이 있고 유익한 것 있고  유식한 것이 있다.' 이렇지 거기 대해서 금 가고 성경의 정확 무오성 이거는  가감할 수 없는 성경을 불가침이라, 침노 못 해. 다만 믿을 것과 행하는 것 그  외에 딴거는 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는 지금 벌써 금이 갔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 내가 말해도 '저거 또 목사님은 무식하게  자꾸 자기 말하는 것만 좋아한다' 그래 할라면 그래 해. 그거야 뭐 옳은 거면 옳다  아닌 가면 아니라 하지 그 이상은 하지 말라 볐어. 그 이상은 할 권리가 없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걸 뽑는 데에는 이제 이 설교록을 자꾸 읽어 가지고  '이게 그와 비교하니까 이거 뭐 어림 비교가 안 되고 어림도 없다. 여게서  깨달아야 되겠다.' 하고서 이 본능적으로 목마를 때 물 마시는 것처럼 자기의  답답할 때에 비 설교록을 자꾸 읽어서 시원케 하고 배부르게 하고 힘 있게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이 병 고칠라고 하고  있는 것이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니다.

 오늘 아침에도 실컷 백 목사 선전했는데 백 목사가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  것이면 하나님 선전이고 내가 한 것이면 내 선전인데 그게 하나님 선전 안 되고  제 선전되면은 백 목사보다도 불쌍하고 가련한 인간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  선전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전을, 하나님이 하신 걸 선전한 것이 되면은  하나님께서 복있는 사람으로 정해 주셔 복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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