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관

 

1987. 1. 4. 주일오후

 

본문: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오전에 성경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했습니다.

따라합시다.

성경관! 성경관! 성경관! 성경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말을 성경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구원에 제일 중요한 것이 성경관입니다.

기본구원은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순전히 하나님의 택함에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행위가 훌륭해도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멸망하는 것이고 아무리 그 사람이 행위가 나빠도 택함을 입은 사람이면 하늘나라는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쓰는 것은 하늘나라 가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심신이 하늘나라 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은 택했으면 하늘나라는 안 갈래도 안 갈 수 없고 택함 받지 안한 사람은 갈래도 갈 수 없는 것이지마는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늘나라 가기로 그렇게 절대 정해져 있습니다. 택한 사람이 하늘나라는 같이 간다 할지라도 그 나라에 가서 실력이나 대우나 영광이나 모든 쾌락이나 부요는 층어리가 심히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힘쓰는 것은 건설구원, 곧 행위구원, 성화구원, 같은 말입니다.

성화구원이라 말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됨으로 구원이 된다고 해서 성화구원이라는 단어를 쓰고, 또 행위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행동하는 그 행동한 대로 구원되기 때문에 행위구원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건설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사람들이 건설해야 되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하는 말인데 내용 뜻은 꼭 같습니다.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성경관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그 사람이 보고 있나 믿고 있나 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관이 잘못됐으면 아무리 애쓰고 자기 소유 몸 생명을 다 바쳐 산다 할지라도 그까짓 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성경에 맞도록 한 행위라면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결단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대로 산 작은 의가 자기에게 있어서는 천지를 얻는 것보다 더 가치가 크고 복된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는 이 성경은 원본 성경을 가리켜 말합니다. 원본 성경은 신구약 육십육 권으로 된 하나뿐이지 또 육십육 권으로 된 것이 둘이 아닙니다. 원본은 한 권뿐인데 이 원본 한 권을 사람들이 보고서 베껴서 만든 성경을 가리켜서 사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본 성경은 많이 있지만 원본 성경은 한 권뿐입니다.

원본 성경은 그 획 하나도 변동할 수 없는 것이 천지가 변해도 그 획 하나도 변동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것인데 사람들이 보고 베끼면서 틀린 것이 종종 있습니다. 성경 보다 보면 밑에 보면 거게도 해 놓고 혹 징계라,해 놓고 혹 근전이라, 이렇게 해 놓은 것은 다른 사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는 것을 나타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다” 그 말은 하나님이 성경을 만드셨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고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하실 때에는 감동으로 하십니다. 그러면 감동이 나타나면 그 나타난 것을 가리켜서 진리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 진리가 또 성경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하는 이 말씀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여게는 만드는 데에는 사람도 들었고, 말도 들었고, 붓도 들었고, 종이도 들었는데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셔 가지고서 직접 당신이 성경을 만드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만드시는 데에 거기에 이용된 것은 사람도 말도 붓도 종이도 이용됐지마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정확 무오하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런 것을 만드셔 가지고 그런 것을 이용해서 우리에게 성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본 성경은 정확 무오합니다. 그러나 사본 성경은 정확 무오하지를 못합니다. 또 번역 성경도 정확 무오하지를 못합니다. 사본 성경과 번역 성경에는 틀린 것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지내야 됩니다. 왜? 그것을 정확 무오하다고 생각했다가는 거게 틀린 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그럴 때에 속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 정확 무오한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진실된 신앙의 사람이 참된 것을 알라고 양심을 써서 노력을 하면 성렴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은 성경이 잘못 번역된 것도 잘못 베껴서 잘못된 사본도 그런 것을 다 가려냅니다. 보면 ‘이거는 틀렸다’ 가려냅니다.

그러고 성경은 전체가 한 진리이기 때문에 모든 성경을 자기가 확고히 알고 바로 알게 되면은 거게 한 두 절수 한 두 권이 빠졌다 할지라도 속에 있는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이렇게 연결성을 가지고 단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성경에 사본 성경과 번역 성경에 틀린 것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실한 자만 이 진실한 도를 알고 구원 얻게 하고 아예 에누리하고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다 거게 걸려서 떨어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목적이 어데 있는가? 목적이 어데 있는가? 목적은 17절에 “이는” “이는” 이 성경을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했는데 어찌 만들었다고 했는가? 거게 대해서 여러분들이 단단히 굳게 잡아아 되지 이 밖에 나가면 이단들이 많고 마귀가 꽉 찼기 때문에 오전에 말한 대로 사람이 무슨 감동된 것으로 그렇게 알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다 말은 하나님의 역사로 됐다 그 말이오.

하나님은 일할 때에 감동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말은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거게 사람도 말도 종이도 붓도 하나님이 만드셔서 그대로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다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무식한 사람의 말이요 억척스러운 말이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 이 말 저 말을 하나님이 인용해서 한 것 아닙니다. 일찍부터 성경을 구약 성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히브리어라 하는 그 말을 만들어 내셔 가지고서 그 히브리어를 그 당시에 가장 건전하고 정확한 그런 말을 만들어 내서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에게 가르치시다가 때가 되매 구약 기록하는 언어로 썼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히브리어도 공부를 안 했고 헬라어도 공부를 안 했습니다. 나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마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모르고 있는 거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는 것은 내가 모르지마는 히브리어 단어 되어 있는 것이라든지 글자가 만들어진 것이라든지 그 획이라든지 그런 것을 자기네들이 눈을 뜨고 자세히 보면 가장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기에 가장 이상적으로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자기들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헬라어인데 헬라어도 말의 단어나 글자나 모든 것 구조되어 있는 것을 거게서 하나님이 이거 참 특수하게 만드셨고 특수하게 쓰시기 위해서 이 언어는 된 것이다 하는 것을 자기네들이 느낄 것입니다.

지금 세계에 방언이 얼마나 많은 방언이 있습니까? 여러 나라의 그 어학이 있지마는 헬라어와 히브리어의 그 글자라든지 그 모든 단어라든지 그 모음 자음이 만들어진 것이 이것은 특수체다, 이거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하게 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으면 그 사람이 히브리어 박사라도 헬라어 박사라도 아직까지 그 면에 눈이 어두워서 뜨지 못한 것입니다.

여게도 히브리어 헬라어 박사는 있는지 모르지마는 공부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줄 압니다. 알면 이 말을 듣고 새로 가서 정신차려 가지고서 한번 모음 자음과 단어와 그 모든 문법 구조를 살펴보면 가장 삐뚤어지지 안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그런 정확 기록을 기록하는 데에는 가장 특수한 그런 특수성을 가진 것이 히브리어 헬라어라 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목적이 어데 있는가? 그 목적을 17절에 말씀했습니다. “이는” 이는 하는 말은 성경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은 하는 그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가?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으로도 마귀의 사람이 있습니다. 택함을 입고 중생됐지마는 그 사람이 현재 행동할 때는 마귀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서 마귀의 자식으로 행동할 때도 있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가 다 마귀의 사람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게는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으로 되는 행동은 털끝만한 것도 섞여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택함 받고 중생 받은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렇게 행동할 때도 있고 마귀의 자식으로 행동할 때도 있고 왔다 갔다가 이렇게 하는 것이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양이 많고 어떤 사람은 마귀의 자식으로 사는 양이 많은 이것이 무궁세계에 갈 때에 그의 영광의 차이며 실력의 차이요 환영과 대우의 차이요 지위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러면 택함 받고 중생된 사람은 다가 아니고 택함 받고 중생된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구원을 이루어 갈라고 할 때에 이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건설구원을 이룰라고 하는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그러면 하나님이 택하시고 중생시킨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이 온전은 대한민국이 볼 때에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이북에 공산주의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미국이나 소련이나 일본이나 세계 어떤 각국에서 이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 인정하는 그런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온전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선한 일이라 말은 사람들이 좋다 깨끗다 칭찬 받는 그런 일이 아니고 선한 일이라 말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의 일을 말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옳다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일입니다.

세상에는 보면 대개 보면은 그 민족 위주로 그 국가 중심으로 전부 다 말하자면 제 중심 제 위주로 한 것이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한 것이 참 믿는 사람에게만 있지 딴데는 없는 것입니다. 이거 다 어려운 일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기에”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행동하는 그 행동을 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행위 온전 사람 온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온전케 되고 그 행위가 온전케 돼서 금생에도 내세에도 하나님의 심판에도 부활 후에도 영원히 가도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는 이 성경을 힘입어서 성경으로 되어야 되지 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는” 하는 것은 성경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성경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주신 것은 이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고 또 그 선을 행하기에, 하나님 중심의 행위에 온전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주셨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주셨으면 성경이 어떻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또 하나님 중심의 행위로 온전케 하는가 그것을 그 위에 말해 놨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어떻게 하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지고 또 하나님 중심의 행위가 온전하게 되어지는가?

그 위에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했어.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의로 교육한다는 이 말을 옳을 의자니까 옳은 교육을 하기에 유익하니 하는 그런 말로 보기 쉽습니다. 그거는 위에다가 “바르게 함과”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여게 의로 교육한다는 이 의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일곱 가지 구원을 주셨는데 일곱 가지 구원 주신 그것이 의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일곱 가지 구원을 주셨으니 그 구원이 의로운 것입니다. 그 구원이 영원히 의롭습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만물에게도 다 환영과 존대를 받을 수 있는 그 일곱 가지 대속입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성경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그 사람으로, 사활의 대속을 받은 사람으로 사활 대속 구원이 잘 자라도록 그렇게 하는 말씀이라 그 말입니다. 자라도록 하는 말씀이라.

그러면, 하나님에게 일곱 가지 대속 구원을 얻었는데 일곱 가지 대속 구원 얻은 그것이 처음에는 움이 트고 그 다음에는 차차 차차 자라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완전히 자라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움만 터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 에베소서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이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받은 이 구원이 차차 차차 자라가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과 꼭 같이 됩니다. 예수님과 꼭 같이 됩니다. 예수님이 일곱 가지를 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일곱 가지를 받아 가지고서 자기가 자꾸 이 일곱 가지로서 자라가게 되면은 일곱 가지를 설정한 예수님과 우리와 꼭 같이 됩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아니고는 일곱 가지 대속을 길러 가지를 못합니다. 일곱 가지 대속 받은 이 구원은 성경 먹고 자라갑니다. 성경을 먹고 자라갑니다. 성경 속에는 뭐이 들었는가? 성경 속에는 일곱 가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그 속에 들었습니다.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잘 자랄 수 있는 요리를 만들어 가지고서 여러 모양으로 이 성경에서 분석하고 분류해 가지고서 성경 안에다가 담아 놨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한 절수 한 절수 보고 그대로 순종하고 보면 그것이 양식이 돼 가지고서 그 사람이 자라게 됩니다. 이거는 육체의 양식이 아니고 심령의 양식이요 인격의 양식이기 때문에 이 성경 안에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이 먹고 자랄 수 있는 양식이 그 가운데 많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양식을 먹고 사람이 자라게 됩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사람은 영생으로 자라가게 된다.” 하는 것도 이 성경에 있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자라간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구원이 자라가는 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 사람되어 가지고 오셨으며 어떻게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으며 어떻게 순종으로 죽으셨으며 어떻게 또 해방과 자유를 주셨으며 또 영생을 주셨는가 하는 것을 자꾸,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 부활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인데 이 성경을 주신 목적이 어데 있는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자라도록 또 하나님 중심의 행위가 온전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성경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을 만들어 주셨으면 성경이 어떻게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는가?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의로 자라가도록 합니다. 의로 자라가도록 합니다.

육체가 자라가는 것도 있고, ‘그 사람은 아주 경제가 많이 자랐다’ 우리 나라를 말하기를 ‘아주 경제 성장이 빠르다. 경제 자라가는 것이 빠르다.’ 그러면 한국이 이 모든 물질로 자라가는 게 빠르다 그 말입니다. 여게는 그런 걸로 자라가는 게 아니고 의로 자라갑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교육이라는 말은 가르쳐 가지고서 길러가는 것을 가리켜서 교육입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 말은 의로 자라가는 데에 유익한 것이 이 성경입니다. 의로 자라가는 것.

그러면 이 성경은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이 이것이 의입니다. 이것이 다 의입니다. 이 외에는 의가 없습니다. 의라 말은 바를 의자 옳을자 의인데 의는 이 세상에서 뭐 온 세계가 이거는 의롭다 해도 그게 다 죄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의로운 것은 예수님의 사활 대속 그 외에는 온전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히브리어 헬라어도 아마 거게 이 성경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가 되어 있을 거다 하는 그 말을 하는 것은 이 의라 말은 한문 글자인데 양이란 양자 밑에 나 아를 써 놓으면은 의가 됩니다. 양 밑에 있는 내가 돼야 의가 된다 하는 그런 것은 그 꼭 글자로 됐는데 중국에서 한문 글자 만들 때에는 그때 그 사람들이 천문학을 보고 만든 것도 있고 모든 형용으로 만든 것도 있는데 이것은 보면 양 밑에, 양이라는 양자 밑에 나 아자를 딱 써 붙이면 의가 됩니다. 양 밑에 있는 사람이라야 의다 하는 그것으로서 그들은 몰랐지마는 그 후에 아는 사람들은 보고 말 합니다.

이래서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가 일곱 가지 구원을 얻었는데 일곱 가지 구원 얻은 게 뭐인가? 제일 겉에는 진리대로 영생하는 것이요, 영감으로 영생하는 것이요, 그 안에는 죄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이요, 사망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이요, 마귀에 대해서 자유하는 것이라, 그까짓 것들이 상관하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인정한 하나님의 의가 구원된 것이요 하나님과 완전 결합의 완전 생명, 완전 능력, 생명이라 말은 실력이라 말이요 힘이라 말인데 하나님과 결합의 생명이라 말은 하나님과 하나됐으니까 그는 완전 실력이라 말도 되고 완전 힘이라 말도 되고 완전 능력이라 말도 되고 생명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이 생명이라는 말의 근본 뜻은 그 힘이라 하는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여러분들 우리가 진리로 영생하는 사람이 알기만 알고 하지 못하는 사람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진리로 영생하는 것을 장성해서 칼을 가져 와도 그 진리로 영생하지 진리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뭐 어떤 고문과 고형을 당해도 그 진리로 살지 진리를 양보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 장성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진리로 진리 생활이 장성해지고 영감 생활이 장성해지고, 아무리 사망이 와서 협박을 하고 어떻게 한다 해도 꼼짝하지 안하고 사망에게 자유하는 사람이 장성해지고, 마귀가 어떻게 미혹하고 침노해도 마귀에게 조금도 침노받지 않는 그 장성한 사람이 되고, 사망이 뭐 어떻게 한다 해도 사망 그까짓 게 상관해 근방에 오지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통과하는 공심판 통과에 장성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결합에 장성한 사람이 되어지는 데에는 성경으로 된다 하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사활의 대속으로 주신 일곱 가지를 장성시키는 데에, 교육시키는 데에 유익하다. 교육이라 말은 우리는 얼핏하면 그저 가르치는 거 이런 교육 저런 교육 하는데 여게는 교육이라 말은 그대로 가르쳐서 기른다는 말입니다.

가르쳐서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의 구원을 가르쳐서 구원의 사람으로 이렇게 장성케 하는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그걸로 장성하게 되면은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 하는 사람이 된다. 온전한 행위를 한다 말이고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 또 온전한 사람, 그라면 온전한 사람이요 또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거는 성경으로만 됩니다.

그 위에, 그러면 성경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로 된 이 새사람 구원 얻은 사람을 이렇게 장성케 하니 그 말씀이 어떻게 해 가지고 그러면 성경 말씀이 일곱 가지 대속 받은 사람을 장성하게 하느냐 그걸 그 위에 말해 놨습니다.

어떻게 해 가지고 장성하게 하느냐? 그 위에 보십시오.

장성하게 하는 것은 교훈으로 장성하게 한다. 교훈이라 말은 가르치는 것과 지도하는 것을 두 가지를 포함해서 교훈이라 말합니다. 이 세상 말로서는 별별 것 썼기 때문에 그거 다 더러워졌지마는 여게 교훈이라 말은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또 이렇게 가르쳐 놓고 또 이리이리 행하라 그렇게 지도하는 거, 인도하는 거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교훈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교훈을 받는 것이 그것이 자기의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그 사람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훈 받는 것이 새사람이 자라가는 것이요 온전한 사람이 점점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성경에서 교훈 받는 것은 누구에게 교훈 받는 것인가? 성경에 교훈 받는 것은 누구에게 교훈 받는 것입니까?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누구의 지도를 받는 것입니까? 녜, 직접 하나님에게 가르침을 받고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치는 가르치심과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가르침이 많지마는 이 성경 가르침 외에는 전부 사람을 죽이는 것이요, 속이는 것이요, 또 죽이고 속이는 것이 아니라도 그것은 잠깐 있다가 풀의 꽃과 같이 없어질 것들이지 그것이 영원성을 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온전성을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에 배우는 것은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이니 그거는 완전한 것을 배우고, 영원한 것을 배우고, 불변한 것을 배우고, 생명을 배우고, 영생을 배우고, 모두가 다 옳고 참돼서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배우는 것이지마는 신구약 성경 이외에 가르치는 것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지마는 그런 거는 다 변해질 것이고, 없어질 것들이고, 다 죽는 것들이요, 망하는 것들이고, 다 그런 것들이요, 다 완전치 못한 것들이요, 다 속이고 속는 것들이라 그 말이오.

왜 속이고 속는 것들인가? 그거 하면 좋은 줄 알고 ‘내가 제일 좋은 학교서 어떻게 되고 지금 과학 노벨상을 받으니 됐다’ 싶으지마는 막상 딱 죽으면 헛일이라. 죽고 보니까 아무 헛일이라.

그것이 하나도 가져 가지도 못하고, 죽고 난 다음에 필요도 없고, 영원 세계에 필요도 없고, 부활할 때에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는 것이라. 그러면 다 그때사 ‘속았다! 속았다!’ 후회하지마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이 성경이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영원하고 참된 것입니다. 요것을 믿는 사람은 땅위에 수많은 지식을 다 분토로 여겼어. 똥오줌과 같이 여겼습니다.

바울이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말은 똥오줌을 가리켜 배설물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거는 다 없어질 것들이요 속에 알맹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이 그것이 알맹이라, 부활할 때에 그때에 자기에게 영원히 남아 있는 그 실력이 그것이 참되고 영원한 것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믿음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 가르침과 지도만 참되다 인정하지 성경 가르침과 성경이 지도함에 반대되는 것은 온 천하가 다 옳다고 말해도 그까짓 거 막바로 발길로 차서 다 바싹 빠사버리고 하나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 거는 전부 부인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래. 복있는 사람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지도하는 그만을 따르지 성경 가르침에 위반되고 성경에 가르침에 위반된 것은 천하 사람들이 찬성하고 다 따라간다 할지라도 거게는 따라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요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사층에도 삼층에도 학생들이 있는데 학생들이 그 함정에 빠져 있지 말고 눈을 확 떠서 이 전체를 봐야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고, 또 피조물들이 있고, 금생이 있고, 또 죽음이 있고, 죽음 다음에 부활이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심판에서 판정받아 가지고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 지옥과 영원한 하늘나라가 있는 것을 우리가 보고 살아야 됩니다.

이 세상 나그네 생활은 오늘 떠날지 모릅니다. ‘나는 일류 대학에 입학을 했으니까 인제 됐다. 이 세계에서 제일 영예스러운 학위를 받았으니까 됐다.’ 하지마는 오늘밤에 네 생명을 부르면 그것이 무엇이 네게 유익하겠느냐?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이 말씀이 곧 너희에게 전해진 이 복음이니라, 신구약 성경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배울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도를 받을 줄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에 가르침 받는 것은 하나님에게 가르침 받는 것이요 신구약 성경에 지도받는 것은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것입니다.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선생님이라고 이라니까 선생님은 한 분뿐이시니 곧 아버지시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선생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 말은 무슨 말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선생이 없다 그 말입니다. 옳은 지도자가 없습니다.

다 성경에 위반된 지도받고 가르침 받은 것은 전부 자살 행위요 자멸 행위요 다 속은 일들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심령이 어두워서 샘 안에 갇힌 개구리 모양으로 이 모든 인간들의 이 중얼거리는 모든 궤휼과 미혹의 감옥 속에 들어 가지고서 헤어나지 못해 그런데 이 학생들 좀 헤어나야 합니다.

“교훈과 책망과” 책망이라 말은 자기의 잘못된 것을 꾸중하는 것이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옳은 책망은 참 복됩니다. 옳은 책망을 받지 못하면 옳은 사람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잘못된 점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점을 사람들은 책망해 줄 이도 없고 또 잘못된 것을 아는 사람도 별로이 없습니다. 사람이 잘못된 걸 이렇게 안다 해도 그 아는 것도 껍데기로 알기 때문에 그게 참 잘못됐는지 잘됐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우상에게 절하지 안한다고서 이놈 네가 잘못 배웠다 하고서 잘못 한다고 책망을 해서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우상에게 절 안 한다고 죽임받은 사람 많습니다. 그러면 우상에 절 안 하는 걸 잘못됐다고 책망하니까 그 책망이 바른 책망입니까? 거짓부리 책망이오. 그 사람은 그 책망을 받아도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안하니까 그 사람은 순교했으나 영광 가운데 조만간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책망할 것을 바로 아는 사람도 없고 또 책망할 것을 바로 안다 할지라도 모두 다 듣기 싫어하니까 바른 책망을 해 줄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요새는 더군다나 더 사람들이 냉정해져서 그 사람이 옆에 어떤 아주 어떤 사람을 쓰리가 와 가지고서 막 주먹으로 대고 돈을 뺏들고 막 이렇게 뚜드려 패고 이래도 옆에 같이 버스를 타고 가도 암말도 안 합니다. 그 말하면 제가 당할 터이니까. ‘그 사람 뭐 죽거나 말거나 돈 뺏기거나 말거나 내가 그런 소리 하다가 내게 화가 올까?’ 해 가지고서 손을 안 대고 말도 안 합니다. 이렇게 냉정하고 무자비하고 잔인하고 정말로 인정이 없는 세상입니다. 또 자기 잘못했다 하면 막 달라듭니다. 이런 세상이니까 옳고 그른 것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안다 할지라도 내게 대해서 잘못된 것을 책망해 줄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책망 받기를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나에게 어떻게 하나?’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그때, 그거 주님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 내가 잘못 했습니다’ 성경에서 책망을 받아서 책망 받은 그 모든 것을 돌이켜 고쳐 나가는 사람이 이 사람이 자기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요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만들어 가는 사람이요 의로 자라가는 사람입니다.

“바르게 함과” “바르게 함과” 이제 모든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바로 가르쳐 줍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대로 말하면 다 바른 말 했고, 성경이 하라 하는 대로 행동했으면 바른 행동 했고, 성경이 사람 관계를 가지라 하는 대로 가졌으면 바른 관계를 가졌고, 성경에 하라는 사업만 했으면 바른 사업 했고, 성경이 하지 말라는 거 안 했으면 다 그거는 잘못된 걸 안 한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교훈, 또 하나는 책망, 또 하나는 바로 하는 것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된 이 새사람을 길러갑니다.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새사람으로 길러가는 데 유익이 된다. 이 말씀은 가르치고 또 지도하고 잘못된 것은 책망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받은 두 가지 영생, 세 가지 자유, 또 하나님의 의, 하나님과 완전 친합의 생명 이 일곱 가지 생명이 점점 장성해서 충만한 데 이르도록 이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오전과 오후에서 성경을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관이 중요하다. 이래서 성경관이라고 따라 읽으라고 세 번이나 따라 읽었습니다. 성경관.

그러면, 성경을 바로 보는 게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성경이 모든 만물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이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라, 성경이 가르치는 인생관, 성경이 가르치는 세상관, 성경이 가르치는 물질관, 성경이 가르치는 이 과학관, 성경이 가르치는 이 세상 부귀 영광관, 성경이 세상 부귀 영광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성경이 뭐라고 가르칩니까? 누가 한번 말해 보시이소. 성경이 세상 부귀 영광을 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성경이 교훈하는 그 교훈을 받아야 되고, 성경이 잘못됐다고 책망하는 것은 빨리 고쳐야 되고, 성경이 이래야 바르다 저래야 바르다 바른 대로 지도하는 그대로 하면 어찌 되느냐? 예수님의 사활로 대속받은 일곱 가지의 의의 사람이 점점 자라게 됩니다. 이게 자라면 어찌 되느냐? 자라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고 모든 행동하는 데 온전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을 상대해 가지고 사는 사람은 죽는 날까지 그 사람의 하는 일이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후회할 일 없어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도 예수님의 대속 때문에 우리에게 성경이 왔으니까 이 성경의 보배로움을 알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합시다.

자, 성경 공부 하기에 시작하지 안한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안 한 사람들 많이 있을 건데.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되니까 왜 거짓말 할 필요가 있소? 성경 공부 시작을 안 한 사람은 안 했다고 손을 들어야지요. 성경 공부 안 한 사람 손 들어 봐요. 요 학생 손 드네. 예뻐요. 성경 공부 시작 안 한 사람들 손 들어 봐요.

성경 공부 시작 안 한 사람, 공연히 거짓말 할 게 뭐 있소? 성경 공부 시작 안 한 사람 손 들어요. 한번 들어 봐요. 한번 들어 봐요.

나도 지금 시작 안 했어요. 나는 그 전에 성경을 공부해서 다 졸업을 다 했기 때문에 지금 또 하면 좋지마는 안 합니다. 지금 공부 시작하는 데는 안 했어요.

그전에 내가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성경 공부를 시작해 가지고서 다 졸업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 모두 뭐 얼추 백점이고 구십팔점되는 거 몇 개 있고는 다 백점이라. 저 서울로 문답을 보내 가지고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 공부 아직 시작하지 안한 거는 안 했다 하지 뭐 때문에 거짓말 하요, 거짓말 하기를? 거짓말 하는 자는 어데 했습니까?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랬어. 이랬는데 왜 거짓말을 해요? 거짓말 하지 말아요. 그거 무슨 큰일이라고? 뭐 어떤 큰 일이 있어도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별로이 없습니다.

자, 성경 공부 시작 안 한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집사님, 성경 공부 시작했어요? 초등강 다 마쳤어요? 초등강 다 마쳤답니다. 초등강을 다 마쳤대요.

저 ○집사 시작했소? 시작했어? 시작했다는구먼.

자, 그러면, 성경 공부 시작한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시작한 사람들? 거의 뭐 다 드네, 보니까. 거의 다 들어. 감사합니다.

이제 마귀란 놈이 우리 서부교회를 보고서 떨 것이고 ‘이놈의 서부교회 저것만 없으면 내가 승리하는데 조걸 어째야 될꼬?’ 떨 거고 하나님은 좋아서 박수하시며 ‘이겨라 이겨라.’ 하셔. 하나님은 `이겨라 이겨라, 서부교회야 이겨라 이겨라.’ 이래.

박수 한번 합시다.자, 이겨라, 이겨.

따라서,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래서, 어짜든지 성경 공부를 시작합시다. 이렇게 많이 성경 공부 시작한 것은 참 대단히 우리가 행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고, 주일학교 학생들 그 구역장들이 모아 놓고 이 방학 동안에 어쨌든지 성경 공부에 재미를 딱 붙여서 또 성신의 감동을 받아서 그만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학교 공부는 정상적으로 밑에, 학교 공부는 이 밑에 성경 공부는 위에 이렇게 층어리를 둬서 성경 공부는 지식의 주인공이고 세상 공부는 하나님의 지식의 종이고 이렇게 돼져야 그 세상 지식 가진 것이 자기에게 유익이 돼지지 세상 지식이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그 밑에 천하게 이용을 당하면 그 사람 망하고 맙니다. 세상 지식으로 인해서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한번 읽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거 무슨 말인 줄 알지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바르게 함과” 이래 가지고서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자꾸 새사람 기르는 데는 제일이라요.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러니까, 예수 믿는 학생 쳐놓고 자기가 아무리 숙제가 많고 이래도 그날 성경 읽는 일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다문 한 장이고 안 되면 급하면 다문 한 절이라도 읽고 공부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그만 공부만 하고 성경 집어 던지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위험한 사람이오. 속히 돌아서야 됩니다.

아무리 새벽이라도 딱 일어나 가지고 공부하면은, 일어나 가지고 잠깐 기도하고 공부할 때에 무릎 딱 꿇고 성경 펴 가지고서 뭐 급하면 많이 못 읽어도 그리 안 하면 한 몇 절 봐도 그리 안 하면 한 장 보는 사람도 있고 학교 가는 학생들은 아마 뭐 한 장 두 장 더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한 장 두 장 보면 많이 봤습니다.

그래 무릎 딱 꿇고 보고 ‘주님이여 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공부할 때에도 잘 기억하고 깨닫게 해 주시고 이 공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고 범죄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 기도하고서 딱 공부를 하십시오.

그라면 ‘아이구 기도하는 시간에 공부 안 하니까 더디겠지’ 아니오.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주면은 그 사람이 뭐 한 달 내 공부하는 것을 한 시간에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머리를 열어 주시면 대번 되고 머리 안 열어 주면 안 돼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정을 지워요. 믿는 데서 능력이 오지 믿지 안하면 소용 없습니다. 요대로 믿기로 작정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양보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 나가야 합니다.

<기도> 주님 이렇게 우리들에게 지극히 큰 능력의 구원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믿고 행하면 전지 전능의 역사와 축복과 기적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믿지 안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 다 고장이 일어나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이제부터는 주의 말씀의 교훈을 따라서 살고 책망을 따라서 고치고 또 바르게 함을 따라서 바로 하여 새사람이 점점 자라감으로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완전히 실력을 갖추어 가지고 무궁세계를 향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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