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관

 

1987. 1. 2. 새벽 (금)

 

본문: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전서 4장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 그렇게 말씀했읍니다. 우리에게는 지극히 큰 세 가지 능력이 와서 있는데 그 능력의 하나는 예수님의 사활 대속입니다. 사활이라 말은 죽을 사(死)자, 예수님이 내 대신 두 가지 죽으심, 내 죄의 형을 대신해서 죽으시고 또 내 의무와 책임을 대신 하시되 죽기까지 하셔서 죽으시고 또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이 사활의 대속을 주님이 하신 것이 우리에게 제일 큰 능력입니다.

이 일곱 가지 대속을 자기가 자기 것을 삼고 그 삼은 증거는 자기를 주님의 것 삼은 것이요 자기를 주님의 것 삼은 증거는 자기가 사는 것이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주님이 자기를 주관하셔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그것이 주님의 것 된 증거입니다. 그 증거가 이루어지지 안할 때에는 우리는 거짓부리라고 인정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요, 그 다음 능력은 성신의 감동입니다. 또 그 다음의 능력은 진리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이 감동과 진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왔지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사람들은 접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의 그 은혜가 셋이 있으니 하나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요, 하나는 성령의 감동 곧 하나님의 감동이요, 또 하나는 진리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하나님의 감동이라 말이 내나 성령의 감동이라는 말씀입니다.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데에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 것 삼고 자기는 주님의 것 삼고 주님의 것 된 자기는 자기가 자기로 사는 게 아니고 이제는 자기는 있기만 있지 죽은 셈이기 때문에, 주님이 대신 죽었으니 자기가 죽은 셈이기 때문에 육체 가운데 있는 우리는 내가 나를 주장해 사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나를 주장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주장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 일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는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왜 중요한고? 성경은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왔지 그리 안 하면 이 성경은 우리에게 오지를 못합니다. 성경이 둘째로는 중요한데 성경이 곧 하나님의 감동이요,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대속의 공로를 믿는 일을 첫째 하고 둘째로는 성경을 우리가 접촉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늘 우리가 생각하고 사모하고 항상 새로와져서,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이 우리에게 새로와지고 늘 접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해서, 뭐 할라고 생각하고 사모하는가? 생각하고 사모하는 것은 믿을라고 생각하고 사모합니다.

자꾸 생각하고 사모함으로 믿어지게 됩니다.

믿어지는 것만치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것이 된 것만치 자기는 주님으로 살고 자기로 살지 않습니다.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으로 인하여서 자기의 언행심사가 동하고 정하지 자기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 말이오. 그래서 첫째가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고 사모해서 믿는 거.

그 다음에 할 일은 뭐인고 하니 성경을 접해야 됩니다. 성경은 뭐인데?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과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둘째로는 우리가 자꾸 접해야 됩니다. 접촉을 해야 된다 말은 성경을 읽고 듣고 또 성경을 생각하고, 그러면 상고한다는 거, 상고한다는 말이나 생각한다는 말이나 같습니다.

생각하는데, 우리는 지금 성경 공부를 참 주님이 하라고 이렇게 권고를 하셔서 교회적으로 성경 공부하기를 시작했읍니다. 그 시작한 지가 얼마나 됐읍니까? 일년 한 팔개월 됐읍니까? 일년 한 팔개월 됐는데 아직 시작도 안 한 사람들 많고 또 시작한 사람들은 벌써 초등강을 마쳤고 고등강 마친 사람들도 더러 있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일년 팔개월 동안에 분주해서 성경 공부는 한번도 시작도 하지도 못하고, 물론 일반적으로 성경을 읽기야 읽지마는 그렇게 주력하는 좋은 방편을 사용해서 성경을 접하지는 못하고 그저 분주했었는데 그 분주한 그런 일이 다 지나가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다 썩은 일입니다. 썩은 일이요 다 육체의 일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썩을 사람만 자꾸 키우고 썩을 사람만 강하게 만들어서 썩을 사람으로만 살지 영생할 사람은 자꾸 파묻고 약하게 만들어서 영생할 사람으로는 살지 못합니다. 썩을 사람이 강건한 것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하는 그 사람만 자꾸 강건해지니까 그게 강건해 봤자 마지막에는 다 죽어서 지옥 갈 것들이지 하늘나라 갈 것은 아닙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살이를 같이 하고 세상을 떠날 때에 자기의 마음의 그 모든 기능들이나 마음의 힘이라 말이오. 마음의 온갖 힘 그것을 가리켜서 기능이라. 기능이라 말은 기술이라 하는 기(技)자하고 능력이라는 능(能)자하고 그래서 기능이라 이렇게 말한 겁니다.

마음의 온갖 그 지혜와 힘을 가리켜서 기능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기능, 몸의 온갖 기능 그런 모든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버리고 자기의 영과 심신의 그 형체만 가지고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 가니까 하늘나라 가면 아무짝도 못 쓸 사람입니다. 세상에 그 나라에 제일 과학적으로나 권세적으로나 무슨 재벌적으로 제일 실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땅의 것으로 자기가 된 그런 것은 하늘나라 가서는 하나도 없읍니다.

그것을 홍포 입은 부자가 된 형편을 주님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하나를 내어다가 기록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줬읍니다. 그러면 홍포 입은 부자가 모든 것이 구비했지마는 막상 그가 세상을 떠나고 보니까 세상에 있는 그런 걸 그대로 가지고 갈 줄 알고 그 형편이 그 나라에 가서 그대로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하나도 없읍니다. 물 한방울의 실력도 가지고 가지를 못했읍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에는 “스스로 속지 마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그 말은 하나님은 너거한테 속지 않는다 그 말입니다. “사람의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나니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그 말은 이 세상 나그네 세상 이 세상살이를 위해서 노력한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을 위해 심는다 말은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과 영감과 진리를 위해서 사는 자는 “썩지 안 할 영생을 거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사모하고 노력할 것이 예수님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이고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믿어지도록 튼튼케 하기 위해서 두 가지 역사가 왔으니 곧 성신의 감화와 진리입니다. 그러면 성신의 감화와 진리가 한테 뭉쳐 있으니 곧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이렇게 자꾸 공부하고 접하고 읽고 외우고 사모하고 하는 것은 일곱 가지 대속을 더 확실히 믿어지게 하는 역사요 또 자기의 구원을 바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경을 공부하게 됐으니까 참 행복스럽고 다행스럽습니다.

제가 어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구역장인데 분구된 그 구역은 다 그래 할 수가 없고 자기가 지금 거느리고 있는 그 구역 식구들을 먼저 하면 따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요새 주일학교 학생들을 많이 말하니까 자기 구역에 속한 그 주일학교 학생들 먼저 육학년 졸업 맡을 학생들을 모아 가지고 성경 공부를 시킨다고.

그래서, 다른 데는 그러니까 예배당에 뭐 장소가 너르니까 이 구석에 저 구석에 그 학생들을 전부 불러 모아 놓고 성경 공부를 시작하도록 제일 처음에 한 문제를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묻는 것도 한번 쓰라 해 가지고 써 주고 또 답도 써 주고 이래 가지고 ‘외워라. 요것을 많이 외우지 말고 요 한 문제만 네가 묻는 거와 답을 외워라.’ 그러면 어북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외우라 하고 나니까 좀 있으니까 ‘선생님 외웠읍니다’ `그러면 외우나? 한번 외워봐라.’ 또 외워보라 하니까 하나가 외우니까 ‘나도 외웁니다 나도 외웁니다’ 하는데 그만 그 시간에 전부 한 문제 문답을 다 외우더라고.

그래서 또 그 다음 것을 말하며 ‘요걸 또 가서 외워 가지고 오너라’ 했더니마는 저거가 외우는데 칭찬하고 재미가 있으니까, 방학 아닙니까? 몇 시에 모인다 하니까 벌써 와 보니까 그 시간에 다 모여 있더라고. 그래 인제 ‘어제 숙제로 줬는데 그 어찌 됐노? 외우는 사람 있나?’ 그러니까 전부 손을 다 들더라고. 그래서 한번 외워봐라 그라니까 또 쭉 외우더라고.

그래 가지고 지금 인제 차차차 공부를 시작해 나왔는데 그래 가지고 ‘너희들이 지금 요것이 요 묻는 말, 요렇게 물었는데 답은 이제는 너거가 해 봐라. 답을 요 답은 요것은 성경 몇 장 몇 절로부터 몇 절 안에 있는 답이니까 읽어 가지고 답을 써 봐라.’ 그래 또 읽어 가지고 답을 쓰는데 뭐 아주 곧 잘 쓰더랍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 성경 공부를 시작해서 하고 있다 그래 그 말을 들었는데 아주 좋은 아주 일을 시작했읍니다.

제가 저도 생각한 것이 아무래도 이거 중간반이든지 유치반이든지 장년반이든지 뭣인가 지금 좀 기절해 가지고 있는 거 같애, 기절해 가지고. 사람이 기절하면, 아이들 이래 뭘 좀 거석하면 딴다고 안 하요, 딴다고? 딴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효력이 있읍니다. 아주 급소를 이래 거석하면은 제일 급소는 코 밑에 그런 데 급소, 사람의 제일 중심으로 되는 여기 신경으로서는 제일 급소기 때문에 이런 데에 손을 대면 잘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데는 안 대야 되지. 급소에 침을 찌르든지 하면은 그만 코 밑에는 찌르면 송장도 움직인다 합니다. 그렇게 급소를 침을 찌르면 그때 깜짝 놀래 가지고 그래 가지고 좀 생기가 도는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런데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을 뭘로 시킬고? 이거 첫째는 새벽기도를 좀 일으켜야 이들이 깨어나지 그래 안 하면 모두 기절해 가지고 있으니까 새벽기도를 해야 깨어나겠다. 또 이 좀 성경 공부를 시켜야 깨어나겠다, 또 산기도를 가야 깨어나겠다, 이래서 반사 선생님이든지 권찰님이든지 자기 식구를 자꾸 거머쥐고 움직여야 되겠어요. 평소는 학교에서 볼끈 거머쥐고 놓지를 안하고 있으니까 그놈을 뺏들라 해야 뺏들 수가 없어. 이미 잡은 권세가 있어요.

제가 동물의 왕이라 하는 지금 동물 나온다고 아따 뭐꼬? 테레비에 그걸 하며 지금 동물 세계가 나옵니다, 한번 보이소 이래서 그래 내가 그걸 보니까 이 조그만한 여우가 뭐 하나 짐승 하나 잡아 가지고 먹고 있는데 그 옆에 호랑이가 왔으니까 호랑이하고 여우하고는 그거 뭐 말할 수 없이 호랑이 보면 여우는 그만 기절하는 겁니다. 그래도 여우 이놈이 음식을 식물을 잡아 가지고 먹고 있으니까 호랑이가 달라들지 못해요. 달라드니까 응얼거리면서 자꾸 먹어재끼니까 뺏들어 먹지를 못 해요, 가만히 보고 있지. 그것들도 체면이 있으니까 남이 잡아 놓은 걸 그렇게 하지를 못해. 이놈이 그래 놓으니까 막 급하게 먹고 나중에 겁이 나니까 그만 도망을 쳐 버리니까 나중에 호랑이가 그걸 먹더라 그거요.

그거 모양으로 이제 학교에서 볼끈 삼켜 가지고서 이걸 잡아 삼켜 가지고 막 놓지 안하고 이래 학생들을 먹고 있으니까 이거 언제 그런 기회가 없어. 그러나 이거 방학을 하니까 슬그머니 내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요런 기회에 이걸 단단히 차고 앉아 가지고 이걸 붙들어 놓으면 그 다음에 암만 공부 시작을 해도 잡힐 수가 있겠어. 그래서 이 방학 기간을 잘 이용해야 되겠다 이래서,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래요.

그래 내가 어떤 교회에 청년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청년 관리하는 목사라요.

목사인데 ‘어떻게 하노?’ 이래 물으니까, `그 뭘 하노?' 이라니까 뭐 이라고 저라고 하는데 그만 그 학생들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이거 시키고 저거 시키고 자꾸 이것저것 자꾸 시켜대는데 그 시키는 그 일이 뭐 가치 있는 일이냐 하면은 내가 보기에는 그런 일은 가치 없어 시킬 만한 일이 못 된다 싶어요. 그래도 자꾸 그래 시킨대요.

‘그라면 뭐 결과가 어찌 되노?’ 자꾸 이것저것 자꾸 시키면 붙들린답니다.

이거저거 자꾸 시키면 붙들려요. 그러니까 아무 가치 없어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자꾸 이래 시키면 붙들려.

이 데모하는 것이 그 사람들이 뭐 가치 있고 없고 그런 걸 평가하는 게 아니고 그게 나오기를 근본 공산주의의 지하 운동, 공산주의자들이 그 책 중에 사회주의 책이 있읍니다. 사회주의라 하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이 모든 인간이 서로 합해서 공존 공영으로 다 같이 동등으로 잘 살자 하는 그런 간단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게 사회주의인데, 그 사회주의는 그전에 왜정 말년 때는 그게 세력을 가지고 저 숨어서, 내나 여게 만주에 마적단이라고 있어요, 마적단. 말 타고 다니며 도적질해 먹는 마적단이 있는데 마적단이 사회주의에 하나의 물이 들어 가지고 이 부자 것 있으면 뺏들어 가지고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가난한 사람에게 뺏들어 주고, 그놈 제가 벌어 가지고 주지 안하고 남의 것 뺏들어 가지고 주는 그것도 선한 일인 줄 알고서 그렇게, 사회주의의 뿌리를 파면 그게 내나 공산주의가 장성해서 잘되면 사회주의 됩니다.

지금 소련은 사회주의에 가깝고 이북은 이거는 순전히 공산주의에도 제일 말단 공산주의기 때문에 좀 소련이 조금 인간성이 좀 있읍니다. 소련보다는 더 중공은 더 사회주의에다가 민주주의 약간 좀 물이 들었고 등소평 그이가 자랄 때에 구미에 가서 구미 그 문화를 많이 공부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방편상 그라고 있지 공산주의를 사회주의로, 사회주의를 민주주의로 이끌라 하는 그런 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 속에 나오는 사상이 좋으니까 모두 다 지금 그 사람을 세력을 주고 했는데 그분이 지금 뭐 요새 보니까 이 민주주의의, 민주화시킬 그런 조금 움이 트고 있읍니다, 보니까.

이렇게, 모두 다 사람들이 자기로서 이렇게 이런 거 저런 거 자꾸 사상을 받아 가지고 되어 나갈라고 애를 쓰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성경 공부하게 되면 좋은 거는 좋은 겁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래서, 자, 이거 산으로 끌고 다닐까, 또 들로 끌고 다닐까, 예배당으로 끌고 다닐까, 낮에 끌고 다닐까, 밤에 끌고 다닐까, 이거 자꾸 끌고 다녀야 되겠다.

이래서, 여자가 남자를 끌고 다니든지 남자가 여자를 끌고 다니든지 하면 그거는 좀 거게서 잘못하면 후유증이 생기지마는 이 남반이 남반 끌고 다니는 건 그래도 뭐 아무리 그 사람이 나쁘다 해도 이 세상보다는 좋고 그래도 성경 말씀을 가지고 신앙을 말할 터이니까 이거는 도움이 되겠는데 우선 이 끌고 돌아다니는 이 연습을 시켜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을 제가 많이 느꼈읍니다.

끌고 다니는 이런 연습을 시켜야 되겠는데 이거 전부 모두 게을해 가지고 자꾸 땅에 가라앉아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 뭘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 생각을 저도 가졌는데 그래 엊저녁에 어떤 사람 말 들으니까 학생을 그렇게 그 성경 공부들을 방학 동안에 시킨다. 방학 동안만 하면은 아마 얼마까지는 하리라 그 진도를 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그래 했다면 그거 큰 성공입니다.

반사들도 중간반 반사들은 자기 밑에 있는 학생이 지금 방학이니까 제가 게을해서 뭐 언제 그래 할 여가가 없어. 게을한 자는, 게을한 반사, 게을한 권찰들은 나서면 할 일이 없읍니다. ‘아이고, 심방도 안 하고 이거 구역 식구도 이렇고 이러니까 뭘 좀 구역 식구들을 좀 힘을 주고 어쨌든가 부흥을 일으켜야 되겠는데 뭘 해야 될꼬?’ 할 일이 없어. ‘모두 심방하라고 자꾸 목사님도 자꾸 모구역장도 그래 쌓으니까 심방을 해야 되겠는데, 심방을 오늘 해야 되겠는데 어디로 가 볼꼬?’ 갈 곳이 없어. 그런 거 안 느꼈읍니까? 심방할라 해도 갈 곳이 없어.

자, 그런 거 경험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심방할라 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 없는 거 경험한 사람? 손 들어 봐, 경험 있는 사람? ○○○권사님 경험 없어요? 왜 손 안 들어, 그러면? 손을 들어야지. 손을 들어야 다른 사람들이 ‘아, 저분도 손 드는 거 보니까 우리도 들어야 되겠다.’ 이렇지. 그게 천국문 가로막는 거라. ‘○○○권사님 저런 이는 손을 안 드는구나. ○○○목사님 저런 이는 손을 안 드는구나. 장로님들은 손을 안 드는네. 우리 아주 말단 이런 것들만 손을 드는구나.’ 이라면 그게 뭐이요? 천국 가로막는 거야 천국을 틔워놓는 거야? 가로막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

또 가로막는다 하는 것도 손 들라 하면 ‘그런 거는 우리 같은 것들이 들지 보니까 장로님들은 안 들고 권사님들은 안 들더라.’ 장로님들이 들면 ‘아이고 장로님도 든다. 우리도 들어야 되겠다.’ 이럴 건데, 그런 경험, 그런 경험 여기 반사하는 사람이면 경험 없는 사람 하나도 없을 거라.

○○○목사님, 경험 없읍니까? 있을 거야. 나서면 심방할 데가 없어. 할 일 없어 ‘어디로 갈꼬?’ 또 사람을 만나면 할 말을, ‘그 교인을 만나 무슨 말 할꼬?’ 할 말이 없어.

이래도 이제 시작을 해 보면 나중에 가서는 그 사람에게 가서 말 해야 될 터인데 그 기운이 없어 죽을 지경이면서도 그 사람 만나 놓으니까 할 말이 많아서 자꾸 말을 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그 말을 하고 난 다음에 쭉 뻐드러진다 그 말이오.

또, ‘저 아무것이도 가 봐야 되겠는데’ 누워서 일어날라 하니까 힘이 없어서 이래도 또 ‘아무것이도 가 봐야 될 터인데 아무것이도 가 봐야 될 터인데’ 이래 나서 놓으니까 벌써 자기 몸에 대한 그 메타기가 딱 가리키고 있다 그 말이오. ‘내가 이라면 너무 과로인데, 과로인데, 과로인데, 과로인데.’ 하면서도 ‘그래도 한 집만 더 가 보고 가자, 한 집만 더 가보고 가자.’ 자꾸 이래 가지고 나중에 오면 그만 뻐드러져, 그만. 죽을 지경이라. 이래도 갈 곳이 많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렇게 자꾸 일으켜 놓으면 자꾸 되는데 일으키지 안하니까 안 돼. 아까 그 학생들 청년들 관리하는 목사한테 물으니까 자꾸 청소년들은 자꾸 끌어야 된대요. 이거 시키라 저거 시키라 아무 가치 없는 것도, 야, 손 씻어라, 발 씻어라, 뭐 씻어라, 휴지 주워라, 지금 아무 데로 몇 시에 모이라, 또 모였다가 또 이제 헤어져라. 또 몇 시에 모인다. 자꾸 쉴새 없이 이래만 하면은 그 청년들이 붙들린대요.

그 데모하는 것도 전부 그거라, 지금 하는 게. 그 뭐이냐 하면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에게 물먹은 그런 것들이 책자를 이래 보고서 생전 안 보던 책을 보니까 뭐 별게 있는 줄 알고 이거 읽고 있는데 그래 가지고 자, 그냥 읽으라 하면 안 돼요. 읽고 ‘우리 오늘 저 아무 산에 가 모이자. 몇 시에 모이자.’ 또 몇 시에 모이면 그 아무것도 없어. 몇 시에 모이면 또 이래 가지고, 뭐 과자 사탕 하나도 안 주요. 그거 주면 돈 드니까 저거 돈이 있소? 모여 가지고서 ‘너 그 책 읽어 봤나? 그 몇 페이지 읽어 봤나?’ 몇 페이지 읽은 고거 한번 이야기 하고 난 다음에 ‘또 헤어지자. 헤어져 가지고 또 오늘은’ 거게 또 내일 모이자 하면 안 돼. ‘내일은 아무 데 모이자' 또 그리 모이고. 산에 가 여게 저게 만날 산에 가 몰고 돌아다니고 들로 돌아다니고 또 그 다음에는 집에, ‘내일은 아무것이 집에 모이자, 몇 시에 모이자.’ 몇 시에 모이자 하는 그게 재미가 있는데 그게 무슨 뭐 있는 줄 아는 거라. 암만 거기 모여봤자 소용도 없는 건데.

이래 가지고 ‘너 아무 데 가다가 몇 시 돼서 그 나무 밑에 가 봐라. 그 나무 보면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 나무 밑에 보면 뭐이 쓰여 가지고 있을 거다.

그거 보거들랑 그걸 네가 딱 내고 고게다가 종이다가 요런 말을 써서 넣어 놔라.’ 이래 가지고 자꾸 찾고 돌아다니니까 나무가 있는데 그 밑에 보니까 종이가 뭐 있는데 보니까 글이 쓰여 있거든. 글이 쓰였는데 거게 뭐라고 쓰였으니까 고거 딱 거머쥐고, 이거 누가 쓴지 모른다 말이오. 또 뭘 써 가지고 갖다 놓는다. 또 그래 놓고서, 자꾸 그래 잡아 돌립니다.

돌리니까, 한참 잡아 돌리고 나니까 ‘야, 이거 전부 우리가 지금 운동하는 것이 마구 우리 전국을 딱 규합이 되고 전부 뺑 돌아 가지고 이와같이 전부 우리 모든 이 동지 사상가들이 전부 마구 이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고 전부 면적을 다 차지하고 있구나.’ 이거 빙 돌아. 그게 재미요. 그게 뭣이 있는 것 같이.

거게 보면 거게 ‘너는’ 몇 날 어느 시에 거기 딱 열어 보니까 `너는 어느 날 어느 시에 아무 데 가 봐라. 아무 데 가면 돌팍 밑에 거기는 돌을 뒤치면 뭐 있을 터이니까 그걸 내면 뭣이 있을 터이니까 그것은 네가 가지고서 그걸 보고서 그 시키는 대로, 보면은 어짜라 하는 그게 있을 터이니까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해라.’ 이래 놓으니까 사람이 다니면 힘드니까 한 놈이 들어 가지고 이라니까 그 몇십 명이나 이래 돌아 다닌다 말이요, 아무 생각도 없는 것들이. 그래 자꾸 돌아다니니까 돌아다녀서 ‘자, 데모하자.’ 하니까 와 나선다 그 말이오.

이런 악한 것도 이런데 좋은 운동을 자꾸 이러면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까 얼마든지 될 거라 그거요. 이래서 어디로 끌고 다닐까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래 엊저녁에 어떤 권찰이 와 가지고 ‘이 방학 동안에 어찌됐든간에 이리이리 나는 그걸 했는데 이걸 해 보니까 아마 방학 동안에 어데까지는 이 학생들을 끌 수 있다.’ 만일 방학 동안에 그걸 끌었다고 하면은 그만 그거는 그만 얻어버렸소.

벌써 그 하는 동안에 달라졌을 거라.

또 그때 말하기를 그런 말 해요.○○○씨라 하는 그분이 제일 성경 공부는 앞서 고등강까지 다 했어요. 마쳤어요. 끝마쳤는데 그이가 보니까 영 달라졌더라.○○○ 손 들어 봐.○○○씨 손 들어 봐. 손 들어 봐. 가짜 했구만. 가짜 했어. 오늘 아침에 봤을 건데 어데 가 처박혀 앉았는지 그리 안 하면 안 나온 모양이라.

‘인제 뭐’ 그거 참 큰일납니다.

성탄 때 뭐 성탄 그게 구원 아니라. 성탄 그게 구원 아닌데 성탄 축하하고 난 다음에는 ‘아, 이제 성탄 축하했으니까 할 일 했다.’ 하고 턱 펴 가지고 누워놓으니까, 언제 내가 한번 말했지. 여기 왔나, 오늘 또? 오늘 왔나 안 왔나? 여기 저 ○장로님 막 열심히 그때 ‘오늘 분교 가서 뭐 하고 뭐 하고 마구 했읍니다.’ ‘아이고 수고했읍니다' 했더니마는 그만 그날 밤 `아이고, 할 일 다 했으니까 이제 좀 쉬어 보자.’ 척 이래 놓으니까 내외분이 다 안 나왔어.

‘○○○집사님?’ 하니까 또 거기도 안 나왔어. 오늘 아침에도 어데 가 지금 앉았는지 모르겠다. 저 뒤에 와서 앉았구나, 인제. 그래 이제 그건 구원이 아니오.

그거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거 구원이 아닙니다. 그거는 구원이 아니오.

이 성경 공부하는 것이, 성경 공부하는 것이 구원입니까 구원 아닙니까? 성경 공부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구원이 아니야.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이거 구원 자체가 아니라 그거요.

이런데 성경 통신과 공부는 벌써 고등강까지 다 했는데 오늘 아침에 물으니까 어데 가서 지금 부끄러워서 처박히고 손을 못 드는지, 그리 안 하면 오늘 새벽기도 못 나오고 지금 그만 처박혀서 누워 자 버리는지 모르겠다 그거야.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이든지 구원은 자기가 이뤘으면 그 구원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구원은 이룬 것만치는 그건 자꾸 더 커져 나가는 것이지마는 구원을 이루는 방편은 그거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그 방편만 힘썼다가 그만 나중에 구원은 그만 알맹이는 떨어뜨리기 쉽다 그 말이오. 껍데기는 알맹이 때문에 있는 것인데 껍데기 그게 구원인 줄 착각하는 사람들은 껍데기만 해 놓고 알맹이는 그만 땅에 떨어뜨리기 쉬워.

그거 모양으로, 그래 인제 그 사람 말로는 그래요. 언제 시장에 보니까, 자기가 조금 과장은 했는지 ‘성경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효력 있더라’ 하는 그걸 더 증거하기 위해서 아마 조금 보탠 거는 있기는 있는 줄로 내가 좀 그래 생각하고 있는데, 말하기를 그래요. ‘뒤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저 참 아주 세련한 사람, 세련 받았다. 옷을 입은 것이든지 행동을 보니까 아주 세련된 사람이 있다, 이래서 저게 누군고 보니까 뒤에 보니까 ○○○라 하는 그이더라.○○○씨더라. 보니까 영 사람이 변화됐고 얼굴도 변화됐고 뭣도 변화,’ 변화는 됩니다. 그 말은 참말이야. 그렇게 많이는 변화됐는지 몰라도 변화는 된다 말이오. 변화는 돼서 ‘아주 세련되고 영 사람이 요새는 영 아주 달라졌더라.’ 내가 말하는 것은 성경을 자꾸 이래 공부하면은 사람이 달라진다. 사람 달라지는 그거는 자기 구원입니까 구원 아닙니까? 그건 자기 구원이라. 사람이 성화되는 것은 자기 구원이라 그거요.

그런데 어짜든지 성경 공부를 하고, 성경 공부를 해도 잘못 하면은 효력을 못 보고 그만 공부하다가 떨어집니다. 성경 공부를 할 때에 바로 하면 자꾸 공부를 더 하게 되고 힘이 납니다. 성경 공부할 때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여게 말해 놨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데 교훈과” 그러면 성경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지식으로 ‘성경에 뭐 있는가?’ 알기 위해서 지식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있읍니다. 성경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경에 지식은 뭐 어떻게 한다 했읍니까? “지식은” 뭐라 했소, 성경에? “지식은 교만케 한다” 이랬읍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성경 지식을 알고 그 성경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 지식 가질 목표로 하면은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교만해집니다.

성경을 지식으로 공부한 사람은 교만해져 가지고 그 사람을 갋지도 못합니다.

마구 성경을 거석해 놓으니까 악도 독도 이거 뭐 모든 것을 다 그게 면역성이 생겨 놔서 도무지 양심에 가책된 것도 상관도 없고 뭐 그만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되고 맙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데는 첫째 어째 공부 하느냐? 교훈을 받기 위해서 공부합니다.

‘성경이 나를’ 교훈이라 말은 가르치고 훈계한다 말이오. “네가 이렇고 이렇고 하니 이렇게 해라” 성경에서 교훈을 받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성경에서 책망받기 위해서, ‘성경이 뭘 꾸중하는고 보자. 성경이 이 성경은 내게는 뭣을 지금 성경이 책망하고 있는고 보자.’ 성경이 자기를 책망하는 것을 찾아서 볼라고 자꾸 읽으니까 ‘이 성경이 내게 책망하신다. 이거 내가 성경이 책망하시는 것이니 내가 이거는 고쳐야 되겠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성경에게서 책망을 받는, 자기가 책망받기 위해서 공부하면 성경에 책망받은 사람은 사람들에게 책망을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성경에 책망 받은 사람은 사람에게 책망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 요○? 안 받아. 성경에 책망받아서 책망받을 거 다 고쳐 놨는데 뭐 사람에게 책망받을 게 있어야 받지? 알겠어요? “책망과 바르게 함과” 그러면 성경 공부할 때 내가 ‘보자, 어떻게 하면 바로 살며, 말은 어떻게 하면 바로 하며, 사람 관계는 어떻게 하면 바로 하며, 일은 어떻게 하며, 내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며, 출근은 어떻게 하며, 또 내가 밤에는 어떻게 하고 낮에는 어떻게 하며 어떻게 해야 바로 하는가?’ 바로 하는 요것을 배우기 위해서 또 성경을 공부를 하라 그 말이오.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의로 교육하기에” 이래 가지고서 의로 교육한다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의인데 하나님의 의는 뭐이냐 하면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사활의 대속 이것이 의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의요. 이 사활의 대속 이것이 의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이래 처음에는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해 가지고 뭐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꾸 가르쳐서 사활의 대속으로 더 가깝게 만들고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에게 자꾸 충만케 만든다 그거요.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래 가지고 뭣 되느냐? 그라면 뭐? 그라면 어찌 됩니까? “이는” 그렇게 하면은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오.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사람이요 중생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자꾸 온전케 된다 말이오. 이렇게 하다 보니까 온전케 해요.

그러면 성경을 지식으로 공부하면은 점점 어떤 사람 돼요? 교만한 사람 돼요.

알겠읍니까? 이러니까 이 성경을 성경 학교 공부하고 신학 공부하고 외국에 유학 하고 하는 거는 교만이 있어 가지고, 그까짓 거 글자 아는 거 그까짓 거 가지고 되는 줄 알아? 어림도 없소. 신학 배우는 거는 목회하는 거 백분지 일 지식도 안 됩니다. 이래 놓으니까 교만 가지고 ‘나는 박사인데’ 이래 놓으니까 박사가 도무지 못 알아듣습니다.

우리 진영 박사는 하도 내가 박살을 내 놔서 우리 진영 박사는 뭐 박사들이 다 박살이 나 가지고 그만 다 이제 박사가 간판을 안 내놓습니다. 아예 박사 생각도 안 하고 지금 그래 뭐 ‘이거 아무래도 배워야 되겠다’ 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딴데 가면 이 박사라 하면, 인제 아무 목사가 오는 게 아니고 그만 ‘아무 박사’ 목사보다 박사가 크니까 간판을 항상 박사로 합니다. 그건 죽은 박사라. 알겠소? 그거는 사 자를 선비 사(士)자를 쓸 게 아니라 죽을 사(死)자를 해. 아주 그만 박살이 났다 그 말이오. 그거야.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선한 일 행한다 말은 하나님 중심 위주의 생활이 점점 온전해진다 그거요. 이러니까 성경 공부하는 것이 그거는 이래도 저래도 좋습니까 잘못하면 안 하는 것보다 나쁩니까 좋습니까? 어떻습니까? 성경 공부 잘못하면 어때요? 잘못하면 나빠져요.

알겠어요? 안 하는 것만 못해. 나빠져. 또 성경 공부를 잘 하면은 어찌 돼요? 온전한 사람되고 행위가 하나님 중심의 행위되고 이러니까 좋아지지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성경 공부를 하되 공부를 하면서 ‘성경에서 내가, 사람에게 교훈 받지 않고 성경에서 교훈 받겠다’ 성경에서 교훈 받기 위해서 공부하고, 또 성경에서 잘못된 거 지적을 받아 가지고서 책망받기 위해서 공부하고, 또 성경에서 바로 옳은 교육 받기 위해서 공부하고, 이라다가 보면은 나중에 가서 온전한 사람 되고 온전한 행위를 하는 실력가가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성경 공부 좀 모두 시작해야 되겠소. 그래서 자, 구역장들, 구역장들 손 들어 봅시다. 구역장 된 사람은 손 들어 봐요. 구역장들 좀 손을 뻐뜩 들어 봐요. 내가 보니까 손이 안 들리는데 안 그럴 건데. 저 구역장 아닌가? 저○권찰 구역장 아니요? “집사? 아직 구역장 아닙니까? 왜 손 안 들어, 그라면? 믿기도 더럽게 믿으며 모두 시키는 대로 하지도 안하고. 구역장 손 들어 봐요, 모두. 이 구역장님들, 또 자,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손 들어 봐. 남구역장은 손 들었나? 남구역장 손 들어 봐요. 남 구역장은 좀 병신이 덜 됐다. 또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 손 들어 봐요. 녜. 반사 선생님들이 젊은가 팔이 제일 잘 올라온다.

이제 오늘 아침에 말 들은 대로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학생들 마구 잡아 돌리요.

잡아 돌려. 나쁘게 돌려도 그것들이 쭐쭐 따라가서 막 좋아하고, 젊은 청소년들은 마음과 신경이 앉아 못 있읍니다. 막 이래 가지고 자꾸 금방, 그렇지 안 해요? 아이들 보면은 주일학교 지금 반사 선생님 설교하고 있는데 설교 들으며 옆에 아이들하고 짭짝짭짝 장난합니다. 짭작짭짝 장난하고 또 이라고 이거 못 견디요.

그거 못 견디는 그게 기운이 있어 그런 거라. 이러니까 이걸 자꾸 내 돌리면 자꾸 끌고 돌아다니면 돼.

이러니까, 나쁘게 끌고 다녀도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능력 있는 성경 공부, 또 ‘자, 그러면 오늘은 너거 아무 날’ 그것도 좋아하는 거라. `몇 날 몇 시, 시간 어기면 안 된다. 몇 시 그날에는 어데서 모이자.’ 또 모이는 곳 작정을 해.

모이면 공장 모퉁이도 좋아요. ‘아무 데 거기 사거리 있지? 사거리 거게 모이자.’ 이라면 모여 가지고 그 시간 딱 그래 그저 딱 모이고 난 다음에는 뭐 할 일도 없어. 모이면 거기서 또 무슨 말이나 하고 ‘어디로 모이자.’ 자꾸 이래 끌고 다니면 되는데, 성경 공부로 끌고 다니고, 산기도로 끌고 다니고, 철야 기도로 끌고 다니고, 또 어느 시간, 아홉시 열두시 ‘오늘은 아무 데 가 기도한다’ 기도하는데 그때는 돌아가면서 ‘네가 기도해야 된다’ 이 기도를 하면 또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아야 잘 한다’ 이 기도들 잘 해요, 모두. 이라며 또 칭찬하고 이라면 그라고, 또, ‘한번 읽어 봐라. 네가 하는 거 한번 읽어 봐라.’ 또 읽고 난 다음에 또 이라고 뭐 자꾸 또 그래 뭐, 다른 것도 뭐, ‘자, 오늘은 모인다. 모여 가지고 뭣하는고 선생이 뭣 하는고 잘봐라. 모인다.’ 모이고 난 다음에는, 딱 속으로 말하기를 ‘너 오늘 모이면 네가 성경 읽는다. 성경 읽을 때 네가 잘 읽어야 된다.’ 그라면 다른 사람은 모른다 말이오.

‘자, 오늘은 지금 여기 모인 것은 아무것이를 성경 읽히기 위해서 모였다. 성경 한번 읽어 봐라.’ 이라니 이놈이 집에서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좔좔좔좔 읽는다 말이오. ‘야 잘 읽는다. 언제 그리 성경을 많이 읽어 봤노? 참 능하다.’ 이래 놓고 난 다음에 또 이래 자꾸 이래 주 잡아 돌려서 어짜든지 방학 동안에 잡아 돌려 가지고 뽈끈 붙들어서 하나님에게 붙들리구로 해야 되겠어. 알겠읍니까? 이래 산기도, 새벽기도, 또 성경 공부, 또 낮에 기도 시간, 또 ‘오늘은 우리가 모여 가지고 전도 한번 해 보자’ 이래 가지고 꼭, 하고 싶은 대로, 많이 하면 안 돼요. ‘오늘은 꼭 석 장씩만 전한다. 누구든지 아이한테든지 어른에게든지 전한다.’ 이래 가지고 자꾸 그러면 그 딱 모이면 ‘오늘 석 장, 자, 석 장 전하고 난 다음에는 어디로 모이자.’ 또 모이면, 모이고,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주님의 재림이 가까와 올수록 더 모이라 했읍니까 모이지 말라 했읍니까? 더욱 더 모이라 했지요? 이랬는데, 무교회주의 있어, 무교회. 우리 한국에도 무교회주의가 들어와 있읍니다.

일찍부터 들어왔어요. 일본에 내촌감산씨가 그이가 뭐 깨달은 거는 깨달았지만 그이 속에는 무서운 무교회주의가 있기 때문에 그게 들어서 교회를 망치고 맙니다. 여게 한국에도 ○○○씨니 하는 이들, 여기 ○○○박사니 그런 이들은 다 무교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읍니다. 알겠읍니까? 아주 우리가 이렇게 다 성자같이 생각하지만 속에 무교회주의 사상이 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교회니 그런 교회도 무교회주의 사상이 들었어요. 이러기 때문에 그 물들면 큰일 납니다.

성경에 더욱 모이라 했는데 거게는 무교회주의는 ‘모일 필요가 없다. 자기 집에서 개적으로 믿어야 된다.’ 이라기 때문에 그게 들어서, 우리 한국에 와 가지고도 들썩거리고 막 하지마는 한국은 처음부터 씨를 잘 받았기 때문에 그 무교회주의가 와 가지고 힘을 못 씁니다. 일본은 무교회주의가 거의 다 점령해 가지고 교회를 완전히 뒤비트려 버려서 그만 산앙 완전 박살 내놨다 말이오. 이 좀 넓게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 돼요.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놓지 말고 꼭 계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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