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2:35
성경관
본문 : 이사야 34장 16절∼17절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시며 친수로 줄을 띠어 그 땅을 그것들에게 나눠 주셨으니 그것들이 영영히 차지하며 대대로 거기 거하리라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마귀가 어두운 사람들에게는 구약은 육체의 이스라엘들에게 관한 말씀이고, 신약은 신약 교회에게 말씀하신 말씀이라 그렇게 유혹을 하는 그런 유혹에도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구약 성경은 볼 필요 없으니까 없애고 신약 성경만 하면 된다 그런 주장을 하는 신학 박사들도 있고 목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참 가짜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그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예수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어떤 사람은 구약만 필요성을 느껴서 열심히 상고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신약 성경만 상고를 하고, 그것 다 기형적인 신앙이요 원만한 신앙은 되지를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구약과 신약 가운데에 어느 한 성경만 늘 자기가 열심히 상고하고 다른 성경은 아예 들여다 볼라고도 하지 않는 그런 치우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다 잘못입니다.
성경은 할 수 있는 대로 구약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주욱 계속 해서 빠짐없이 전부를 읽어서 상고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대체적으로 말하면 구약의 뜻을 신약에서 가르침 받을 수 있고, 또 신약의 뜻을 구약에서 가르침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개는 신약 해석은 구약에 있고 구약 해석은 신약에 있는 것이 대개입니다. 또 이 성경 해석이 저 성경에 있고, 사복음 성경 해석이 또 다른 편지서에서 나타나 있고, 또 구약에 나타났고, 이래 있기 때문에 성경은 내리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성경에도 모든 뜻이 다 포함돼 있지만 우리들은 그만한 그런 지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성경을 읽은 가운데에서 뜻을 바로 깨닫을 수가 있기 때문에 신구약 육십 육 권을 늘 계속 내려 읽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 말씀은 다른 세상 책들과 다릅니다. 세상 책은 그 기록한 말 속에 아무런 살아서 계속 역사하고 있는 그런 역사가 없읍니다. 그저 말을 했으면 그 말은 하는 그때에 말한 사람 없어지면 그 말은 죽은 말로 되어 있읍니다. 그 말한 사람이 살아 있다 할지라도 그 말한 사람의 권위에 따라서 그 책에 기록한 그 말이 권위도 있고 없어지고 또 멸시를 당할 수 있읍니다. 그 사람이 없이지면 그 말을 아주 무능한 말로, 다른 사람이 하나 기억이나 하지 실지로 역사하는 힘은 없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로 기록한 이 문서 말씀은 참된 이치요, 참된 이치라 말은 자존자 창조주의 뜻이란 말입니다. 진리라 말은 대주재의 뜻이란 말입니다. 그분의 뜻이요,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이 친히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를 하십니다. 말씀을 해서 처음에 기록할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말씀 속에는 진리가 있고, 이 진리 속에는 하나님이 내재하셔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보존하시고 관리를 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상고할 때에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요, 이 말씀을 상고할 때에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그 하나님을 대우할 때에 곧 그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책과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말씀이 처음에는 없는 가운데서 이 모든 물질계의 것을 창조했고 또 물질계 아니라도 신령계의 것도 그것도 내나 실물들입니다. 그런 것을 창조했읍니다. 없는 가운데서 그런 것을 창조하신 말씀이요, 지금은 창조하신 것을 그것을 심판해서 멸하는 역사를 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천지를 불에 태우기도 하고, 물에 침몰도 시키고, 또 이 말씀이 세계에 있는 모든 민족들을 헤치기도 하고, 또 번식도 시키고, 멸망도 시키고 하나 하나의 모든 전쟁들을 승리케도 하시고 패전케도 하시고, 또 그 지역을 복되게도 하시고 황무지가 되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고 하니, 없어질 모든 변동될 것들을 일차적으로 만들어 놓으시고 일차적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을 이차적으로 그것을 좀더 완전하게 영원하게 불변하게 그렇게 재창조를 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우주를 만든 그 능력을 가지신 이 말씀이니 이 말씀을 이렇게 어떻게 크시고 권위 있음을 우리가 자꾸 바른 인식을 가질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이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라, 전능의 말씀이라, 전지의 말씀이라, 이 말씀은 썩을 것을 썩지 안할 것으로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죽을 것을 죽지 안할 것으로 재창조하시기 위해서, 이 말씀은 모든 존재들의 행함에 따라서 심판하는 말씀이라, 거게 따라서 심판해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보응시키는 계속 살아 섭리를 하시는 말씀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자꾸 이렇게 알고 믿을라고 애를 써야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 속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악령은 자기 중심으로 날띈 천사가 악령이요, 또 악령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사는 그 인간성을 가리켜서 악성이라. 또 악령과 악성이 그대로의 행동한 그런 것을 가리켜서 악행이라. 악행이 두 번되면 악습되고, 세 번되면 악습이 되고, 한 번 두 번 자꾸 연습해서 짙어져 가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업신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요, 이 책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요, 이 책에 기록된 이 내용은 인간들이 뭐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읽을 수도 있고 책을 집어 던질 수도 있으나 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거게 대한 합당한 보응으로 자멸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서는 연경회라고 해 가지고 성경 공부하는 일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을 시작은 모두 해놓고 도무지 하지 안하고 있는데, 물론 우리가 이 말세를 당했고 마귀란 놈들이 헛 일을 많이 시키고, 마귀가 헛 일을 많이 시키고, 이러니까 공연히 분주합니다. 안 할 일을 해서 분주합니다. 사람이 못 사는 것은 게을해서 못 사는 게 아니라 너무 부지런해서 못 삽니다. 아, 부지런하다고 못 사는가? 부지런하다 말은 안 할 일을 자꾸 해서 못 삽니다. 사람이 일생 동안 고생하는 것은 안 할 일 해 가지고 실패한 그 굴지를 메우느라고 죽는 날까지 고생합니다. 그래서 성경 공부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또 이 세상에서 이것도 알아야 되겠다 저것도 알아야 되겠다. 물론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그 학생의 직업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되고, 또 다른 무슨 어떤 직업가든지 성인들은 이런 사업 저런 사업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에 그 일에 주력을 하지만 그것도 항상, 성경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을 떠나다니? 그러면 성경을 떠나지 않고 어떻게 장사를 할 수 있는가? 네, 성경을 안 떠나고 장사해야 됩니다. 안 떠나고 장사한다 말은 아무리 물건을 사고 팔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늘 생각하면서 장사합니다. 심지어 길을 걸어가도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아, 내가 이래 가다가 저게서 오는 저 사람을 만날 테니까 저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되나? 내가 지금 찾아가는 이 사건은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되나? 내가 이 가는 걸음에 주님이 동행해 주시지 안 하시면 이 시간이라도 차에 치여 가지고 직사할 수도 있다. 아, 뭐 차 없는 데야 무슨 상관 있느냐? 차 없는 데도 하나님이 이 시간 나와 같이 하지 안해 주시면 내가 어느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떨어져 가지고 어떻게 참혹한 변사를 할란지도 모른다. 또 주님이 내 생명을 연장시키지 안 하시면 지금도 가다가 엎어져서 급사할란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그 역사를, 하나님의 섭리를, 하나님의 계약을 이렇게 늘 생각해서 하나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어떻게 그리 살까? 그것은 사람이 쉴새 없이 숨은 쉬야 된다 하면 밤이고 낮이고 쉴새 없이 숨은 쉬야 된다 어떻게 그렇게 쉬지 않고 숨을 쉴 수가 있는가? 하루 한 번 쉬든지 뭐 몇 시간 만에 한 번 쉬든지 하지 밤이고 낮이고 순간도 숨 쉬지 안하고 숨은 꼭 계속해서 쉬야 되는가? 계속해서 쉬어야 됩니다.
계속해 쉬면 산 사람은 숨을 안 쉬는 것 보다도 쉬는 것이, 숨을 쉬는 것이, 호흡을 하는 것이 더 수월합니다. 호흡을 안 할라고 하면 참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된 새사람 영은 영감과 진리와 주의 피에 이 연결을 안 가지고는 찰나도 못 삽니다. 그러면, 거게 피동된 심신도 그러합니다. 성화된 사도 바울 그런 이는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를 잊어버리고는 일 분도 살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잊어버리고 일 분 사는 그 생활은 심히 어렵고 죽을 지경이었다고 나중에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의 사람은 지금 파묻히고 쳐박혀 가지고 도무지 동작을 하지를 못하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 있는 이 사람이 활동을 하고 세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안 생각하고 사는 시간은 없고, 그저 자면서도 이거 생각하고 저거 생각하고, 뭐 또 이거 사모하고 저거 사모하고, 이런 연구 저런 연구 세상 일을 생각지 안하는 시간이 없어. 뭘 생각해도 생각해. 길을 가면 그냥 이 길만 슬슬 가는 줄 알아도 길 가면서도 이거 생각하고 저거 생각하고 세상 걸 생각하는데, 이와같이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은 차차차차 그것을 바꿔서 둘이 앉아 얘기해도 말씀 생각하고, 또 재미있는 일을 해도 재미 있으니까 재미있는 가운데서 말씀 생각하고, 또 어려운 일 있으면 어려운 데서도 말씀 생각하고, 급한 일 있으니까 급한 일 있으니 말씀 생각하고, 죽을 지경의 어려운 일 당하니까, 또 죽을 지경의 어려움 당하니까 말씀 생각하고, 말씀을 생각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는 것이 그것이 피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진리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 움직임이오, 진리가 우리의 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움직임이요, 영감과 주의 대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 움직임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주의 피와 진리와 영감으로 호흡하고, 또 이 세 가지로 움직이고, 또 이 세 가지로 비판하고 평가하고, 또 이 세 가지로 동기가 되고, 이 세 가지로 목적이 되고, 이 세 가지로 방편이 되고, 이 세 가지의 힘으로 삽니다. 아,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니 이 죄에 대해서 죄를 지을 수 없다. 그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 하루 한 번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한 달에 한 번만 되는 게 아니라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 항시 자기에게는 계속되고, 또 내가 진리와 영감에 복종해서 진리와 영감대로 살아야 되지 하는 그것이 항시 계속되고, 또 자기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그 신성에 참여하겠는데,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신격성,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그 속성에 계속 참여해서 그 속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는 생각을 못해도 진실로 살고 있습니다. 진실로 살고 있고, 자기는 그 뚜렷이 말을 못 해도 사랑으로 살고 있고, 자기는 거룩으로 살고 있고,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으로 살고 있고, 의로 살고 있고, 그러면 자기 자체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이루면 하나님과 공통성 있는 속성이 여덟 가지고 공통성 없는 속성이 네 가지인데, 그 속성이 자기 곧 속성이 돼 가지고 그 성질, 그 마음, 그 뜻, 그 생각, 그 취미, 그 정신, 그만 그 사람이 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에는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이 타율이기 때문에, 남의 법이기 때문에, 타율이기 때문에 이것이 어렵지만 차차차차 가지가 가까이 접해 가지고 한 시간 한 시간에서 이 타율이 자율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 생각이오. 그러기에 떠날 수 없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리라든지 영감이라든지 주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 것을 삼은 것은 떠나지 않습니다.
자기 것을 어떻게 삼는가? 현실에 자기가 이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진리와 나와 결합을 가지지 못하게 할라고 주위 환경에 온 세상이 달라들어 가지고 꾀웁니다.
이 세 가지와 나와 연결된 이 연결을 끊을라고 오만 좋은 거 다 갖다 줘요. 오만 좋은 거 다 갖다 줘요. 실은 이것을 끊지 안 하고 사는 사람이면 그 사람에게 상상도 못 할 돈도 갖다 줍니다. 돈 줄께, 지위 줄께, 권세 줄께, 이런 미를 줄께.
그러기에 남자라면 이 세 가지와 끊쳐지지 안하고 사는 사람에게 그 사람을 유혹시킬라고 왕의 아내라도 데려다 줄 것이요, 어떤 미인이라도 다 데려다 줍니다. 또 여자에게도 그러합니다. 좋은 거는 다 줄라 합니다. 좋은 것을 다 줄라고 자기에게 널름거리며 보여도 이제 이 세 가지를 삣기지 안할라고 그 유혹을 받지 안하고 하는 것이고, 그러면 마지막에는 탄압을 놓습니다. 이제 이 세 가지를 끊지 안하니까 강제를 가지고 이 세 가지를 끊도록 할라고 이제 강제 탄압을, 사람한테 그걸 말은 못 해도 온갖 탄압이 다 옵니다. 다 탄압이 실상으로 오는 것도 있고, 상상으로 오는 것도 있고, 또 간접으로 오는 것도 있고, 또 자기에게 멀리 보이면서 오는 것도 있고 별별 게 오나 이 현실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를 내가 배반치 아니하고 이 셋과 나와 합해져서 합해지면 이 셋은 지극히 크고 나는 거게 대해서 아무 존재가 없기 때문에 이 지극히 큰 셋에게 내가 붙어 살고, 거게 속해 살고, 거게 매달려 살고, 그것의 것이 되어서 살면 그만 이것은 완전이요, 영생이요, 전지 전능이기 때문에 그 큰 분에게 속할라고.
이 세상에서도 사대주의를 조롱을 합니다. 뭐 동양에서는 사대주의라, 사대주의 안 하는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사대주의 안 하면 틀렸습니다. 민주주의는 사대주의 아닙니까 사대주의 없는 거는 그건 자살 행위입니다. 이 민주주의는 이상 야릇해서 잘못하면 자살 행위요 이러기에 민주 주의 정치가 돼 가는 데는 반드시 그 고장과 패단들이 많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 사대주의가 정식이오.
작은 자가 큰 자에게 속하고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속하는 것이 정한 이치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지극히 큰 이 세 가지에게 속할라고 하면 현실에서 이 세 가지를 버리지 안하고 이 세 가지보다 뭐이 세상에 좋아서 그것을 취하고 세 가지를 버릴 때에는 이 세 가지는 제가 잊어버렸습니다. 온 세상을 다 내어 놓고 빼앗기고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겨도 이 세 가지는 내가 놓지 않겠다 내가 이 세 가지에게 속해 살겠다 이 세 가지의 것이 되겠다. 이 세 가지 안에서 살겠다.
그리 되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소금이 맛을 잃지 않는 것이다. 소금은 기독자를 가리켜서 소금이라 하고 기독자의 맛은 뭐이 맛이냐? 맛은 피와 성령과 진리를 맛이라고 하는데, 이 맛을 잃지 안하면 쓸모 있어 중앙으로 영접해 들인다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렇게 존대함을 받는다. 맛을 잃으면 쓸모 없는 일 했다 쓸모 없는 존재됐다. 그러면 밖에 버린다. 이 생명 밖에 버려 버린다 예수 안에서 밖으로 버린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게 된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들에게 짓밟히는 자가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현실에서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빼앗기지 안할라고, 놓지 안할라고 하면 있는 것을 다 팔지 안하면 사지 못한다 비유에 보화를 만난 사람이 보화를 만나고 난 다음에는 보화가 묻힌 그 밭을 사 가지고 보화를 제것 삼을라고 감추어 놓고 난 다음에 있는 걸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거와 같다 이랬습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와 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이 대속의 공로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보배인지 모릅니다. 이 대속의 공로가 우리에게 해방 준 것이 그 해방의 범위가 얼마나 큰지 모 릅니다. 우리는 갇혀 있는 걸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많고 넓고 무섭고 무서운 그 무형의 감옥에서 구금에서 우리를 해방시켰고, 우리를 무한의 수많은 광대한 구비한 자유를 줬고, 또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그 구비한 여러 수천도 수만도 넘은 구비한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약속되어서 연결 되게 됐고, 지극히 큰 소망.
성경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거룩하심같이 깨끗하심같이 되라' '이것은 사람을 정죄하는 말이지 그렇게는 될 수 없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큰 유혹입니다. 성경이 정죄하기 위해서 이렇게 되라. 못 될 것을 되라 해 놓고 못 하니까 네가 죄인이지 정죄하기 위해서 그런 약발스러운 그런 방편을 취한다고 하면 나는 하나님 안 믿겠습니다. 하나님 대항하겠소. 지옥 가도 대항하겠소. 어떻게 하나님이 안 될 일을 시켜 놓고 그리 안 하면 그렇게 '네가 못했지?' 하고 정죄 하기 위해서 그래 하는 그는 하나님이라도 내가 능력은 당신을 못 당하지 만 내가 죽어 지옥에 가서라도 항의한다. 인정 안 한다.
하나님으로 나는 숭배 안 한다. 그렇게 하겠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십니다.
되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할 수 있고 거룩할 수가 있고 깨끗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예수님의 대속으로 주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화친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꼭 같은 자 된다 말이오. 하나님이 원형이라면 우리는 모형입니다. 원형이면 모형, 비유컨대 하나님은 생화라면 우리는 조화입니다. 능력만 다른 것뿐이지 그분과 꼭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큰 구원이 예수님의 피 속에 있기 때문에 이 피를 깨달은 사람들은 죽어도 피는 안 내놓습니다. 자기 몸뚱이가 어떻게 돼도 피는 안 내놓습니다. 고문과 고형을 당해도 고문과 고형에서 죽었지 피는 안 내놓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피는 안 내놓습니다. 영감도 안 내놓습니다. 진리도 안 내놓습니다. 이 세 가지 외에 우리에게는 보배는 없습니다. 이 세 가지만 우리 것을 삼았으면 하늘과 땅의 것은 다 내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나는 그의 것이요 그의 지으진 모든 것은 다 유업으로 상속받은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현실에서 이것을 내어 놓지 안하고 가지게 되면 점점 쑬모 있고, 창조주와 피조물들에게 쓸모 있고, 또 어디나 제일 가치 있는 쓸모 있는 것이 된다. 그러기에 점점 중앙으로, 하나님 중심의 세계가 모든 존재인데, 하나님 중심으로 점점 끌려들어가고 끌려들어가고 영접해 데려가고 자꾸, 등장하고 등장하고 승격하고 승격하고 영전하고 영전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딱 불어서 하나님의 수족같이 되어지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해서 자기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이렇게 현실에서 피와 성령과 진리를 안 내줄하고 할 때에 안 내주면 안 내주면 땅에 있는 걸 내줘야 됩니다. 땅의 것도 안 내주고 이것도 안 내주고 둘은 안 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내줘야 이걸 안 내줄 수 있습니다. 이걸 안 내줄라 하면 땅의 걸 내줘야 하고 땅의 것을 안 내 줄라면 이건 내줘야 됩니다.
그럴 때가 무슨 때냐? 그럴 때가 이거냐 저거냐 둘 중에 어느 것이냐 하는 것이지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고 둘 다 가질 때에는 그때는 가지는 때가 아닌 것입니다. 이래서 밤증에 신랑이 왔지 밤중 전에 오지 안했다는 것이 그게 비유가 내나 다 이 전체를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땅에 속한 것을 내어주고 하늘에 속한 이 세 가지를 자기가 취하고 잡아봅니다. 이거를 잡기 위해서 이것을 아깝지만 내놓고 이 셋을 잡아봅니다. 잡고 난 다음에는 뭐 됩니까? 잡고 난 다음에는 참 내 제자가 되고, 잡고 난 다음에는 사람이 당장 변화가 됩니다. 그만침 변화가 됩니다. 참 내 제자 된다 말은 예수님 형상화된다 말이오. 예수님 꼭 닮은 자 되고 예수님과같이 된다 그 말이오. 그만치, 한목 다 되는 게 아니라 그만치 됩니다.
그러면, "진리를 알지니" 그라고 나면 새로 자기가 과거에 이제 행한 그 진리를 다시 알게 됩니다. 다시 알게 되면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다시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진리는 생명보다도 귀하고, 몸뚱이보다도 귀하고, 온 천하보다도 귀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귀한 것을 주고 천한 것을 잡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러기에 진리로 자유하는 것이 진리를 내놓고 세상으로 사는 그거보다 쉽고, 그것은 죽는 거와같이 어렵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안 믿기가 어렵고 예수 믿는 거는 쉬워. 안 믿기는 어렵고 예수 믿는 거는 쉬워. 여러분들도 조금 지켜서 주일을 지키니까 여러분들 주일 지키기가 쉽소 안 지키기가 쉽소? 만일 누가 주일을 못 지키구로 한다면 여러분들이 그냥 안 지키니까 '아, 오늘은 수월하게 잠자고 좋겠다' 그렇습니까? 안 지키기가 쉽소 지키기가 쉽소? 안 지키는 것은 지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만일 주일을 못 지키구로 하면 목숨을 걸고 주일을 지킬라고 할 것이오. 그래서 주일 지키기 위해서 몽둥이를 맞고 집에서 쫓겨나고 주일 지키려 하다가서 이제 목을 끊겨서 순교를 당하고, 그래도 주일 지켜야 되겠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 가지로 모든 진리는 다 그렇습니다. 주일 지키는 것만 그렇습니까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지켜보고 난 다음에는 지킴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성화된 그 부분은 그것은 안 지키기가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려워. 안 지키는 것은 죽는 것보다 어렵고 지키는 것은 사는 것같이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사람이 이 걸음은 걸어 본 사람은 점점 걷고 안 걸어본 사람은 점점 못 걷게 됩니다. 그러기에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지고 깨끗한 자는 점점 깨끗해집니다. 이제 죄를 지어서 죄에 취미를 누린 자는 그 사람은 죄의 취미에 붙들려 가지고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죄에 취미도 있거든 하물며 의의 취미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아, 죽는 취미도 있는데 사는 취미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망하는 취미가 있는데 성공하는 취미는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짓밟히고 천대받는 취미도 있다면 존대받는 취미는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떠난 취미는 다 이 사망에 속한 이런 취미들이오. 하나님 말씀을 지킴으로써의 취미는 맛을 못 봤으니까 겁을 내 가지고 안 달라들지 맛 본 자는 이거는 죽는 망하는 취미, 죄 짓는 취미보다 몇천 배, 몇만 배 이거는 더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이런 모든 보배로움이 성경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도 공과에서 가르칠 때에, 빛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인데 하나님 법칙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이것이 빛이 되는 그 능력이다. 그런데, 그러면 하나님 말씀 가운데는 몇 가지 방법이 들어 있느냐? 두 가지 방법이 들어 있다 이랬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들어 있으니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방법,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 방법, 그 두 가지 방법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돼 있다 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제가 오층에서 들었습니다.
이제 이 신구약 성경에는 이 보배로운 둘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의 전부요,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의 전부입니다. 첫째로 우리에게 모든 더러운 것을 깨끗이 치료하는 그 치료의 전부가 예수님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요긴한 그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내가 망하고 흥할 것도 다 예수님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담당해서 망할 것을 담당했고, 죽을 것을 담당했고, 모든 실패를 다 담당했으니까 예수님 안에 내가 어떤 멸망을 가졌어도 예수님 앞에 떡 가지고 가면 그만 그게 치료됩니다. 해결이 돼 버리요. 아, 내가 아무것도 없는 것도 예수님에게 가 가지고 구하면 그만 예수님이 중보자 돼 가지고 다 주시오.
이렇게 보배로운 예수님이 성경 안에 내재해 있고, 또 이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금생에 치료받을 거, 또 금생에 필요한 거 영원 내세에 필요한 거 그것을 마련하는 방법이 다 이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아, 뭐 대학에도 말 들으니까 대학에도 의대가 제일 어렵다고, 의대는 다른 데는 사 년 졸업 맞는데 여게는 육 년이라야 졸업 맞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또 그 후에는 항상 이 년은 더 많이 공부를 한다 하는데 그거 뭐이냐? 돈벌이하는 것이요, 그것 돈벌이하는 거. 돈 벌이하는 거 공부하는 것인데 사람 병 고쳐 가지고 돈벌이하는 거, 그 돈 벌이하는 거 좋으니까 그걸 모두 머리 싸짜매서 하는데 많이 해봤자 천하 재물을 다 가져봐도 정함이 없는 재물이라. 아, 의술은 천하에 제일이 의술인데' 하나님이 훼딱 뒤집어 놓으면 의술이 많음으로 고생하고' 배는 쫄쫄 곯습니다. 또, 하나도 써먹지도 못합니다. 좋아 봤자 몇 해 써먹고, 또 그것도 이분이 직 틀어놓으면 다 헛일이라 그 말이오. 그러나 이 신구약 성경에는 그런 거와 비교 못 할 보배가 다 들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 오늘도 만나 가지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다른 모든 책보다 성경을 많이 읽어라. 성경에 보배로운 게 다 들었다.' 그라면서 내가 한번 물어봤어 성경에 대해서 네 가지 다 아느냐?' 이래 물으니까 세가지 알고 한 가지는 몰라요. 그래서 '그거 네가 잘 알아 가지고 나 한테 '한번 대답해 봐라' 또 어떤 사람 만나 가지고 '네가 성경을 읽어 보며 성경 안에는 세상 지식에 뛰어난 지식도. 그 가운데 들었고 명철도 들었고 오만 거 다 들었다.' 그라면서 그 사람에게 이제 자기 형편에 따라서 안심하고 걸어갈 것을 잠깐 말해 준 적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에 이런 보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성경을 이렇게 펴야 될 터인데, 이 성경에는 참, 이 성경에는 모든 존재, 창조주도 이 성경 안에 들었소. 모든 피조물도 이 성경 안에 들었소. 이 성경 안에는 모든 존재가 이 성경 안에 다 들었소.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차지해야 창조주를 차지하고 성경을 차지해야 피조물을 차지하고 성경을 차지해야 우리의 모든 원수를 다 정복하고, 성경을 차지해야 모든 사망을 다 이기고 성경을 차지해야 영생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 성경 안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들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의로운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데 이 성경의 권위, 성경 안에 보배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뒤퉁스레 '성경은 버려도 공부는 해야 되겠다.
성경은 던져도 무슨 이 세상 것은 잡아야 되겠다.' 어리석습니다. 성경에 대한 가치를 우리가 알도록 자꾸 궁구해야 되겠고, 또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주일 학교 반사들이나 또 권찰님들이나 또 목사님들이나 성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하다. 성경 이상 가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모든 독서량보다도 성경을 더 많이, 성경을 읽은 양이 더 많아야 된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정확 무오하기 때문에 그대로 확실히 믿어야 된다. 한 말씀도 빼지 말고 그 말씀대로 실행을 해야 된다. 성경은 어디든지 가지고 가야 된다. 가지고 다녀야 된다, 물론 방 이 구석에서 저 구석에 갈 때는 성경을 안 가지고 다니고 또 방 이 방에서 바로 그 옆에 방 갈 때에는 성경을 안 가지고 가지만 실은 그것도 가지고 다녀야 됩니다. 우리는 무슨 급한 일이 있을란지 모릅니다. 만일 이 방에 있었는 데, 이 방에 성경 두고 저 방에 갔었는데 갑자기 그 집이 꽝 무너지면 언제 성경 가질러 무너진 그 칸에 성경 가지러 오겠습니까? 성경은 정말로 꼭 손에 들고 다녀야 되겠습니다.
성경 안 들고 다닐라면, 안 들고 다닐 수가 있어. OOO목사님은 성경을 들고 다니지 안해요. 성경을 가지고 다니지 안해요. 또 신학교 강의로 가도 성경을 안 가져와요. 다 외어요 다 외우니까 오면 몇장 몇절 줄줄 외우고, 또 어디 줄줄 외우고, 그러니까 머리 속에다가 다 이 보배기 때문에 다 넣어 놨어 여러 나라 어학들을 공부한 사람은 그 두뇌에 어학을, 여러 나라 방언을 집어 넣은 그 가지 수만 하면 성경을 머리 속에 집어 넣을 거라. 집어 넣을 건데, 어학 그거는 해 봤자 가치 없는 건데 거게는 전심 전력 기울여서 두뇌에다 다 집어 넣지만 신구약 성경은 외운 박사가 적어. 신구약 성경을 어학 모양으로 공부해 가지고 만일 외웠다 그 하면 이 말씀이 자기를 막 들고 돌아다니고 메고 돌아다닐 것이오. 천하게 유명해서 바로 견디지 못 할 만치 전 세계에서 초대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치를 압시다. 알아서 어짜든지 연경회에서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십시오 그 보배로운 성경을 대번에 그렇게 알 수 있습니까? 연경 해 가지고 오십 점도 맞고 육십 점도 맞고 칠십 점도 맞고 사십 점도 맞고 그래도 자꾸 해요. 또 한 번 해 가지고 그래 했으면 이제 하고 난 다음에는, 또 두번째 또 새로 합니다. 또 두번째 지나가고 또 거석하면 또 세번째 또 새로 합니다. 만일 그래 가지고, 다 백 점 맞도록 자꾸 이리 하고, 그라면 이제 그 성경이 나를 들고 다닙니다. 내가 어디 갈 때에 사람 만나면 그 성경이 앞서 가르쳐 주시요. '아, 이 사람 삼가라 이 사람 멀리 해라. 이 사람 말을 듣지 말아라. 이 일은 네가 손을 떼야 된다. 이 욕심은 가지라. 이 욕심은 가지지 말아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슨 일 하는고 하니 깜깜한 밤중에 갈 때에 "우리 발의 등불이라" 이랬어. 우리 발에 등불이라. 이 말씀이 우리 발자국 떼놓을 것을 가르쳐 준다 그말은 우리 현실에서 이 현실을 어떻게 지금 처리해 나가야 되겠느냐 하는 그 현실에 한 자국 한 자국 발 떼놓는 것을 빠지는 데 떼놓지 안 하고 든든한 데 떼놔서 든든한 그 처사로 한 사건 한 사건을 처리해서 진행해 나간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우리를 지키지 우리가 이 말씀을 지키는 거 아니요 이 세상에 인간들의 그 말은 내가 그 말을 지키느라고 골탕을 쥐먹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키느라고 골탕 쥐먹는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은 말씀이 우리를 지킵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키지 우리가 말씀 지키는 게 아니오. 우리가 어떤 어려운 데라도 '네가 이 말씀을 내놓으면 살 것이고 이 맡씀을 내놓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마귀란 놈이 요래 꾀우는 것인데 내가 그 말씀을 안 내놓으면 내가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 말씀을 안 내놓으면 말씀이 그 사람을 지켰기 때문에 그 사람 매 한 주먹 맞은 것도 하나도 헛되지 않습니다. 전부 상급이 다 돼요. 맞은 것보다 죽으면 지극히 큰 상급, 곧 내일 모레 부활할 것이니까 지극히 큰 상급이 됩니다. 또 생명이 끝날 때 되면 끝나지만 생명이 끝날 때가 안 됐으면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상급만 만들어 주지 그 생명을 털끝만치도 해하지 못합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키지 우리가 말씀 지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동정녀 마리아가 이스라엘 법에서는 처녀가 아이 배면 돌조산 무더기가 돼 가지고 죽는 것인데 마리아가 예수님을 뱃속에 모시고 나니까 배가 뚱뚱하니 자꾸 이래 커지니까 모든 사람이 보니까 당장 돌로 쳐서 돌조산 만들 거 아닙니까? 이런데 말한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베들레헴, 자기 시골 모두 자기 집안 사람들 있는데 가서 그 거석했으니까 환하게 다 알 것 아닙니까? 결혼 안 한 것 다 알지 않소? 아무도 말 안 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지켰소, 예수님이 마리아를 돌조산으로 죽이지 못하도록 지켰습니까, 누가 지켰소? 예수님이 지킨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우리 속에 우리가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고 이 말씀을 버리지 안하고 있으면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했는데, 이 말씀이 천지를 창조했는데 지음받은 그까짓 것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항거할 수가, 이 말씀이 그 속에 계셔서 그 사람이 이 말씀에게 속해서 이 말씀의 것이 돼 있고 이 말씀의 보호를 입고 있는데 이 말씀에 지음받은 것들이 뭐 어떻게 하겠소? 요 진리를 깨달아야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떠들어도 호령을 칩니다. 왜정 말년에 야단을 지겨도 호령을 쳐. 왜? 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진리는 나를 지키고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니 사람 네가 어렵게 할 것이가?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믿으면 멸시당하고 박해를 당해.
이러니까, 이 말씀을 읽는 데에서 생겨지고 듣는 데에서 생겨지고 지켜 행하는 데에는 점점 이 말씀이 나의 것이 되고 나는 이 말씀의 것이 되어 지는 것이니까 읽는 것부터 해야 되지 읽는 것을 안 읽으면 어떻게 되며 듣는 것을 해야 될 터인데 듣는 걸 안 듣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어서 참으로 말세에 이 구원을 바로 이루고 세상을 이기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이 구원을 얻을라거든 성경 열심히 읽어야 됩니다. 읽어야 돼요. 성경 읽지 않는 사람 쳐놓고 그 사람이 구원 바로 이룬 사람 없습니다. 성경을 읽지 안한 사람 쳐놓고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연경회에 처음에 입학한 걸 보고 한 달에 구십 원만 내도 그 월급까지 주고도 다 넉넉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줄었든지 한 사람에게 350원을 내야 그 월급을 줄 수 있습니다. 현재 빚져 가지고 있는 것이 백 얼마가 빚이 져 가지고 있습니다. 일꾼들은 할 일이 없으니까, 아무도 성경 연구의 그 교안을 받아 가 가지고 성경 연구를 하지 안하니까 사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박아 놓고 그대로 있고, 이라니까 이제 빚이 졌다 그 말이오 연경을 여러분들이 하는 것이 대학하는 거보다 낫고 뭐보다도 연경을 해서 내 심령이 밝아져 가지고 정신이 까랑까랑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거 저것을 해야 되지 미치괭이가 뭘 합니까? 정신 이상자가 무슨 일 합니까? 천치 바보가 뭘 하겟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지혜요, 능력이요, 우리의 치료요, 우리 몸에는 양약입니다. 자, 연경회에 가입한 사람 손들어 봅시다. 가입은 제법 했는데, 지금 잘하든지 못 하든지 연경을 계속하고 있는 분 손들어 봅시다 계속하고 있는 분은 사분지 일도 안 되네. 다 회개를 하고 하십시오 이제부터는 다 가입하고 다 연경하십시오.
이래서, 어짜든지 성경 읽어야 됩니다. 그 마귀란 놈은 성경한테는 집니다. 그 왜정 말년에도 그렇고, 인민군 때도, 그렇고 어디든지 성경 가지고 성경으로 이기지 우리는 못 이깁니다. 무슨 말하면, 그들이 말하면 그들이 말할 때에, 무슨 말 할 때에 '나는 그거 못합니다.' 하면 당합니다. '나는 그거 못 합니다.' 하면 나 혼자 날뛰기 때문에 소용없어. 그래 할 때에 '아, 성경에 이렇고 저렇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으로 대답을 딱 합니다. 대답하면 그 사람이, 이상합니다. 성경으로 대답 하면 그 사람이 그만 꺾어집니다. 꺾어지고 아, 성경을 할 게 아니라 자기가 말하라고. '아, 나는 내 말은 못 합니다. 나는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성경이 하라는 대로 내가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이 대답하지 내가 어떻게 대답하겠소? 내가 성경 나는 어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할 때에 어떤 강하고 악독한 자라도 해하지를 못합니다. 아, 사자가 무슨 선해 그렇습니까 말씀대로 했기 때문에 사자가 그를 해하지 못했어. 불도 해하지 못했어.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전능이오.
이런데, 이 말씀을 우리 속에 들어가야 이 말씀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전능자가 되는 것인데, 이 말씀이 우리 속에 계시면 모든 피조물들은 우리에게 다 발둥상이 되고야 마는 것인데, 왜 이 성경 말씀을 우리가, 이 보배로운 말씀이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왔는데 왜 우리가 이 말씀을 이렇게 등한히 합니까? 그게 하나님의 은혜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지혜와 총명을 줘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받은 사람들은 처음에 믿으면서 그만 이 성경보다 더 우리에게는 보배가 없다. 이 성경에 죽고 사는 것이 다 들었다.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다 들었다. 우리의 과거에 수많은 절단난 모든 것도 다 이 성경에 복구할 수 있는 이 길이 다 성경에 들어 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대속 있고 성경 있으면 다 됐다.
이래서, 세계에 유명한 싼다싱이라 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다가, 성경 읽기 시작하니까, 거게는 인도니까 얼마나, 열대 지방이니까 얼마나 덥습니까? 그만 있으면 살이 익는다 말이오. 그런데 거게 가 가지고 성경을 읽다가서 해가 돋아오니까 햇볕에 쬐여 가지고 온 몸이 어떻게 이거 뭐뭐 굽히다시피 그래도 그 굽히는 줄도 모르고 자꾸 지금 성경만 읽습니다. 왜? 성경에 보배가 있기 때문에, 그 보배가 있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고, 또 성경을 읽으니까 성경이 자기를 변화시켜 주니까 자꾸 그 변화를 받으니까 이제 햇볕이 쬐여서 뜨겁게 하는 것보다도 변화시키는 그 강도가 더 강하기 때문에 햇볕이 상관이 없어. 아, 이라다가 인도에는 뭐 왕벌이라 하는 통벌이 이만 하답니다. 이만한데 그게 쏘면 사람이 죽는답니다. 쏘면 죽는데, 이런데 보니까 그 벌이 와 가지고 이마를 탁 쏴서 이래 툭 불켜도 쏜 줄도 몰라. 그래 가지고 그렇게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래 가지고 이제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전부를 삼아 가지고 일생을 바쳐서, 그만치 기적과 표적을 많이 나타낸 사람은 성경에도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석가모니도 석가모니 저 불상을 만들 때에 그거 소라 고동이가 여기 붙은 것은, 나는 전설에 들으면 그 사람이 물 가에 가 가지고 자꾸 이 명상하다가 명상을 하도 거석하니까 소라 고동이 올라와 가지고 이 위에 이마에 불은 것도 몰랐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그거는 그럴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썩은 것도 그렇게 하지만 암만 그렇게 연구하고, 그 사람이 얼마나 절제했으며 얼마나 연구했습니까?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절제 생활했으며 얼마나 조심했으며 얼마나 철두 철미했습니까? 그래도 생명의 길을 못 찾았어. 생명의 길을 못 찾아.
석가모니가 생명의 길을 못 찾았어. 다 사람을 넘어지게 미끄러지게 다 멸망 가운데로 빠지게 했지 생명의 길을 찾지를 못했어.
이랬는데, 예수님의 피공로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우리의 생명길로서 주심을 받았으니까 얼마나 복입니까? 이러니까 성경에 대해서 우리가 좀 이렇게 가치를 알아야 될 터인데, 성경 가치를 어찌 알 건가? 성경 말씀대로 해 보면 가치를 알아. 아,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씀을 가치 없는 줄 알았지만 저 깊은 데 가서 던져라 해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보니까, 말씀의 가치를 알아 가지고 이제 모든 거 다 던지고 주님을 딿지 안했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행해 본 자는 성경 말씀의 가치를 알고, 가치를 안 자는 있는 것을 다 팔아서라도 성경 말씀을 버리지 안할라 합니다. 있는 것을 다 뺏겨도 성경 말씀을 버리지 안하고 성경 말씀대로 행하고, 성경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고, 성경 말씀대로의 일을 하고, 성경 말씀대로의 지식을 가질하고 요게만 전 소욕을 가지지 딴걸 취하지 앉습니다. 이거 취하면 다 돼. 아, 하나님 잡으면 하나님이 모든 걸 다 만들었으니까 하나님 잡으면 다 될 것 아닙니까? 이러면 이제 할 거는 하고 안 할 거는 안 하게 해서 다 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느껴 보십시오. 믿음이 생겨지고 심령이 밝아올 때에는 이상합니다. 심령이 밝아져 오면 그 사람이 낙망이 돼서, 비관이 돼서 죽을 지경에 있던 사람이 이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탈선되기 쉬워요 기도만 하는 것은, 성경을 자꾸 읽는 것은 탈선이 안 돼 성경을 읽어 가지고 이제 성경으로 말미암아 기도까지 영감까지 은혜를 받게 되면 눈이 훤히 뜨입니다. 눈이 뜨이면 세계가 바꿔집니다. 모든 사건이 바꿔집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내가 어찌 됐지? 내 형편이 어찌 됐지?' 이렇고 저렇고 그 모든 어려운 일 모두 죽을 지경이라고 뭐 자살을 해볼까 어짤고 야단을 지겨 쌓았었는데, 그만치 어려운 일이 있었는데 척,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공로가 턱 와서 내가 변화한 새사람이 되고 보니까 우습습니다. '내가 왜 그랬던고? 왜 그렇게 걱정했던고? 걱정할 게 뭐 있나? 아무 걱정할 게 없는데.' 만사 형통이라. 만사가 태평이라. 세계가 달라져. 이라고 나서 보니까 과거에는 어떻게 할꼬 이랬는데 안 될 게 없어. '하면 되지. 되지 하면 되지' 얼마나 될 건가? 썩 잘되지. 어떻게? '아, 전능자가 내 배후에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면 당신 전능이 도와 주시니까 안 될 게 뭐 있겠느냐?' 이러니까 당장 소망으로 가득 찹니다. 이러니까 사람에게 대해서도 '저 놈은 희망이 없어' 했는데 내가 떡 변화되고 난 다 음에는 '왜 그 사람이 희망 없어? 아, 되고도 남지.' 되고 되고 되고도 남는다 말이오. 모든 일에 절망이 다 소망으로 바꿔집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꿔집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꿔집니다. 모든 고통이 평강으로 바꿔집니다. 이제는 나는 무능이니, 무능이 전부 이 능력으로 다 바꿔져 버리요 이상합니다.
그라고 나면 모든 일을 살피는 데도 명철해서 과거에 몰랐던 거 척척 척척 다 알게 되고, 또 이거는 이래 하고 저래 하고 다 하게 되고, 또 그래 하니까 힘도 나고, 되기도 잘 되고, 요 재미를 본 사람은 말하기를 그날에 할 일이 복잡하거든 오늘 할 일이 바쁘니까 언제 여가 시간 없다 날뛰지 말고, 할 일이 복잡하거든 네가 성경 읽고 기도하기를 평일보다 많이 하라. 성경 읽기와 기도하는 것을 평일보다 더 많이 하고 보니까 그 복잡한 일이 복잡하지 안해. 복잡한 일이 공연히 안 할 생각했고, 안 할 걱정했고, 안 할 염려했고, 안 할 대적했고, 그 사람이 적이라, 뭣이 어떻다, 뭣이 이게 방해고 저게 방해고 막 복잡 해서 수를 세어도 머리가 아파 못 견났는데, 성경 읽고 기도해 가지고 영감이 내 심령을 새롭게 해 내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보니까 아, 백지 소용없은 그런 생각, 그거 아무것도 생각할 거 없고 이것만 하면 되는 데, 이거 하면 되는데, 몇 가지 하니까 일이 간추려져 버리고 일은 성공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존 웨슬레인가, 그 사람은 말하기를 '할 일이 분망하거든 그날 아침에는 성경 많이 보고 기도 많이 해라 그라면 복잡한 일이 네게 간추려져서 간편한 것으로 보여질 것이다 간편하게 보여질 때 그때에 그대로 하면, 안 할 일은 안 하고 할 일은 해서 반드시 좋은 성과를 볼 것이다 네가 복잡하게 되거든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복잡하게 되기 때문에 네가 벌로 덤벼 가지고 복잡한 그것을 네가 부지런히만 하면 될 줄 알고 부지런히 하다 보면 안 할 일을 해서 저질러 가지고 네가 들어서 이리 얽고 저리 얽어 가지고 네가 너를 결박시켜서 꼼짝 못 하게 만들어 가지고 너는 고통과 번민 가운데서 실패한다.' 그렇게 말 했습니다. 이 신앙이라 하는 건 자기가 경험해 봐야 알고 체험해 봐야 알지 예수 믿는 것같이 좋은 게 없고 기쁜 게 없고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역부러, 기도하라고 '하루 30분씩 기도해라. 또 연경회에서 성경을 연구하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라다가 혹 걸려서 옳은 자가 되어질까 싶어서 하는 것이지 항상 억지로 그래 가지고 참에 걸려서 능동으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그것은 항상 '에이, 괴롭게, 자꾸 기도하라 하고 뭐 하라 하고 괴롭힌다.' 저에게는 괴로움을 주는 사람만 되고 말지 저도 헛된 수고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헛된 수고를 하지만 그라는 가운데에서 혹 시동이 걸리면, 차 모양으로 나중에 시동만 걸리면 성경 보지 말라 해도 자꾸 보고 기도하지 말라 해도 기도하고, 이제 이놈 기도한다고 몽둥이로 때려 주면 눈 감고 있다고도 눈 감고 기도한다고 두드려 대면 눈을 뜨고 기도합니다. 눈을 뜨고 기도해. 눈을 뜨고 기도하고, 성경 본다고 성경을 내던져 버리니까 거기 앉아서 눈도 감지 안하고 눈 뜨고 성경 또 읽고 또 읽고, 자꾸 외우고 요래 하니까, 6년 동안 감옥에 갔던 분들이 나왔는데 나중에 성경 박사가 됐어. 주남선 목사님도 찬송가를 백 스물 몇 개인가 찬송가를 외웠어요. 그 양반 재주가 없어서 신학교 9년 만에 졸업했어요. 9년 만에 졸업했는데, 백 스물 몇 개를 외웠지? 눈 감고 눈 감으면 뭐라 하니까 눈 뜨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을 읽어서 성경을 얼마나 많이 외웠는지? 그래서 나오더니만 당장 말합디다. '여러분들 성경 외우십시오. 제일 가까운 거 짧은 거 유다서를 외웁시다.' 그때 거창 지역에 있는 교역자들은 유다서 전부 다 외웠습니다. 성경 유다서를 외울라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책은 없고 생각하고 생각해 가지고 유다서를 외우고, 또 이사야서를 외우고, 또 생각해 가지고 또 시편을 외우고 이래 가지고 6년 동안에 성경을 읽어 성경 박사들이 됐어. 그래 그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뭐 성경을 가르치는데 어떻게 능하게 가르치는지, 밖에서 있는 사람들은 다 성경 무식꾼이고 다 망할 짓만 실컷 해 놨고, 거기 간 사람들은 복만 만들어 놨어.
이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이런 기회에 성경 공부합시다. 자, 성경 연경회에 이제 입학할 사람들 손 한 번 들어봅시다. 입학할 사람들 손들어 봐. 가입할 사람들 없네. 가입할 사람들 손들어 봐. 지옥갈라 하나, 모두? 성경 연경회에 가서 90원이면 가입해요. 90원이면 가입하고 이제 한 달 동안 공부할 것을 90원이면 사 가져 와요. 그러면 한 달 내 공부할 수가 있어. 한 달 90원만 내면 한 달 내 공부할 교안을 가지고 올 수 있어 그 묻는 말 답만 쓰면 돼. 연경회 입학할 사람만 손들어 봐요 입학할 사람들만. 여게는 왜 안 들어? 지옥갈건가? 영은 안 가도 심신의 기능은 지옥 가요. 예? 돼 있는 분들, 그라면 안 든 분들은 다 했는가, 그라면? 다 그렇츰 돼 가지고 있을라고? 자, 그라면 연경회에 이제 새로 입학할 사람과 또 입학한 사람 손들어 봅시다. 입학한 사람과 입학할 사람 손들어 봅시다. 설마 여기야 빠짐이 없겠지. 아, 그라면 빠지지 안하고 전부 다 들었구만.
네, 그라면 내가 좀 오산을 했습니다. 어짜든지 해 가지고 성경 공부합시다.
주님이 요한복음 8장에 말씀했습니다. '내 말이 네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말씀이 우리 속에 없으면 예수님 팝니다. 여러분들, 무슨 일을 당했을 때에 말씀이 내 속에 척 나타납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주님은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신다' 원수를 대할 때에, 대적을 대했을 때에 내 속에 말씀이 툭 튀어 나을 때에는 그 말씀만이 아니라 곧 하나님이시요 영감이시요 진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말씀을 턱 의지해 가지고 호령을 치지.
아 6.25때 인민군들이, 그 사람들 뭐 옆에 50명이고 60명이고 주루룩 끌어다가서 구덩이 저거더러 파라 하고 죽여 버립니다. 이러니까 안 믿는 사람 막 쩔쩔쩔 매고 뭐 죽을 지경입니다. 아, 있는데 인민군이 총을 가지고 예배당에 예배 보는데 그 출입구를 저 뼁 돌아서 가지고 출입구에 서서 총을 탁 놓으면서 고함을 지르면서 오라 할 때에, 그때 속에 말이 안 나오면 안 돼. '주님은 돕는 자시니 사람이 어떻게 하겠느냐! 강하고 담대하라' 자꾸 이 말씀이 나온다 말이오 이 말씀이 나오니까 호통을 치지 '거게 앉아서 예배 보시오!' 고함을 지르니까 주저 앉아 고함을 지르니까 주저 앉아 주저 앉으면서 떡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하면서 주저 앉거든. 제 말이 아니라 이북에서 믿다 나온 사람이야, 모두. 그러니까 있다가 자꾸 저 상관에서 지금 빨리 안 잡아오면 안 된다고 지금 잡아 가지고 오라고 이렇게 하니까 지금 독촉하는 시간이 있으니까, 급하니까, 또 가서 빨리 저 데리고 나오라고. '빨리 데리고 나와' 이라니까 OOO목사가 저 올라오는데 저 들어오는 거 보고 '어디 들어오노, 들어오기를! 안 나가나!' 고함을 지르니까 그만 이 강단 명령이 무서우니까 그 인민군 암만 그래 해도 그만 뒤로 나가더라 말이오.
그것은 우리 속에 성경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할 때에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오.
그 말씀이 하나님이 아니요 진리나 그 말씀과 하나님과 동행 하기 때문에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해서 '성경 말씀이 이렇다. 우상에 절하지 말아라.' 하는 이 말씀 있으니까 '우상에 절하지 말아라' 이 말씀이 그라니까 그 말씀과 하나님이 같이 계셔. 그라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아!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줄 아십시오.' 이러니까 이 말씀을 우리가 평소에 알고 외워 가지고 내 속에 계시지 안하면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지 않습니까? 말씀이 우리 속에 없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올 수가 있습니까? 말씀을 통해서 영감이 오고 영감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 내재 해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가 영접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말씀 공부를 해야 됩니다.
양성원에 있는 그 학생들은 그 신구약 성경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그 신구약 통신과를 며칠 동안에 했느냐 하면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일 주일 동안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구약 성경 다 했고, 그 다음에 또 신약 성경 다 했고, 이제 그 다음에는 외우라 했는데 다 외었는지 모르겠어. 이 다음에 시험을 칠 것입니다. 이렇게 막 날라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걸 하루 뭐 또 모르니까 하루 한 문제도 못하고, 두 문제도 못 하고 이러니까 그만치 여러분들은 다 떨어져 있고 약해 있고 그만큼 믿음이 적은 자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그만츰 성글어 있고 좁아져 있으니까 죽자껏 날뛰어야 될 것 아닙니까? 지금 갈 일이 천 리를 가야 되는데, 천 리를 가야 되는데 구백 리 쯤 간 사람도 막 도망을 치는데 이제 십 리도 못 간 것이 도망 안 치고 느릿느릿하면 어짤 겁니까, 하기를? 그 사람들 몇 배 애를 써야 되지.
이러니까, 이제부터는 여러분들이 꼭, 부엌에서 일하면서도 그 문제를 외워요.
문제를 외우고, 또 그 성경을 읽고, 또 일하면서도 자꾸 이래 생각하면 주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이 가르쳐 주시면 그 답안을 가르쳐 주시는 것만 가르쳐 주시는 게 아니라 내 속에 능력을 줘요. 평강을 줘요. 이 주님이 나하고 같이 하니까 일을 하면 척척 돼. 일을 하면 척척 돼요. 그걸 경험해야 돼요. 척척 돼요.
저도 집사로 있을 때에 이제 그때 성경 공부를 좀 열심히 하는 때인데, 이 거창읍에 가면 교역자회에 가면 나는 집사니까 아주 밑에 찌그러기 아닙니까? 산따로라. 밑에 찌그러기인데, 이제 뭣을 말을 하면 목사님들 전도사님이 쭐쭐 따라다니요. 나는 그거 몰랐어. 줄줄 따라다니는데, 나중에 말하기를 '아, 그 백 집사 다니는데 따라다니면 이상한 말이 나와, 이상한 말이 나와서 들려서,' 뭐 꿀이 나온대요. 꿀이 나오고 젖이 나와서 자꾸 따라다닌대요.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자꾸 이래 존대해 이러니까 어디 가서 일을 해도 뭣이 일이 저절로, 어짠지 밉상으로 보일 건데 밉상으로 보이지 안하고 자꾸 존대해. 하나님이 같이 하십니다. 사람에게 밉상으로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사람에게 존대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사람이 멸시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사람이 나를 꾀어서 망쳐 버리게 하는 그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모든 것이, 마귀는 부리는 신이기 때문에 시켜 가지고 그 우리 행동에 따라서 보응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주신 이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하고 이라면 하나님께서 뭣 때문에 그라겠습니까? 자꾸 되게 하시요 이라니까 뭐 잠깐 동안에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가 있지. 모든 민족 위에 뛰 어나는 세계 부자를 주면 부자할 사람 있어? 부자 줘도 깨달은 사람은 부자보다도 설교 한 번 잘하는 게 낫고, 부자보다도 진리 하나 깨닫는 게 낫지 진리 없는 부자 되는 그까치 거 원치를 안합니다.
OOO목사도 내가 말 들어보니까, 다대포에 자기가 양자로 갔는데 양부에게는 재산이 큰, 배도 많고 큰 부자인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양자 재물이 많은데 제사 지내면 양자 재물 다 줄 것인데, 이제. 제사 지내고 양자 재물 타느니 제사 안 지내고 신앙의 자유하는 게 낫다 해 가지고 가서 '나는 이거 양자 재물 안 할 거고 제사 안 지내고 나는 신앙 자유할랍니다.' 하고 그래, 그 많은 양자 재물 다 내버려 버리고 온 것이 OOO목사님이라. OOO목사님보다 더 크게, 크게 있는 거 싹 버리고 소유와 몸과 뭐 생명 다 버리고 나온 사람들 꽉 찼습니다. 여러분들.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난 다음에는 안 버릴 자가 하나도 없어. 천국은 보배와 진주 그 가치를 알고 난 다음에는 자기 있는 소유를 팔아서 그 진주와 보화를 사지 안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랬습니다. 이 예수 믿는 이치를 알아야 되니까 성경을 읽어야지 성경을 안 읽고 어떻게 우리가 알 것입니까?
이러니까, 마귀란 놈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을 성경 읽는 것을 제일 두려워합니다.
성경 읽는 것을 제일 두려워해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성경 못 읽게 합니다.
여러분들이 '뭐 성경 읽고 싶으면 읽지.' 아니, 읽어 보십시오. 방해가 있는가 없는가? 성경을 읽으면 속에서부터 방해 나옵니다. 성경을 읽으면 '무슨 일이 있는데 그 일부터 해야 되겠는데' 성경을 읽으면 할 일이 꽉 찼소. 성경을 읽으면 할 일이 꽉 차 '아, 그 일이 급한데 그 일부터 하고 성경 읽어야 되겠다.' 그것은 내 속에 귀신이 들어와 가지고 지금 나를 유혹시키고 있는 것이오. 그거 안 해도 성경만 읽으면 해결 되는데. 성경 읽으면서 '무슨 급한 일 있으니까 아, 그 일부터 하고 성경 읽어야 되겠다.' 그만 그래 가지고 성경 못 읽게 합니다.
내 속에 있는 그 놈을 억압을 해 가지고 성경 읽게 되면 내 몸 밖에서 갑자기 어떤 사람이 왔습니다. 와 가지고 급하게 찾습니다. 찾으니 이거 또 귀신 또 왔네' 하기야 하지. '귀신이 또 왔네. 이 성경 못 읽게 하는 귀신이 왔네.' 암만 친한 사람이 뭐 동역자라도 '또 귀신 왔네' 이라면서도 안 갈 수 없어 가면 그만 성경 못 읽게 됩니다. 그럴 때에 이기면 큰 능력이 나옵니다. '이제 그 사람도 버려서는 안 되겠고, 진리도 버려서는 안 되겠고, 진리냐 사람이냐 둘 중에 하나 버릴 것 같으면 사람 버리고 진리를 안 버려야 되지만, 이거는 진리도 안 버리고 사람도 안 버리고 할 수 있다면 해야지.' 하고 이제 가서 잠깐 만나면서 자꾸 속으로 성경 말씀을 자꾸 속으로 생각하고 자꾸 연구하면서 그 사람 만납니다. 그 사람 만나니까 그 사람이 무슨 사건으로 왔으면, 꽉 주님이 요긴한 말씀 한 마디 딱하고 난 다음에 가라 합니다. 한 마디 딱 한 것 가지고 다 돼 버려요. 그러고, 그렇지 안하고 놀러 오고 나를 미혹시키러 왔으면 내가 성경 말씀 자꾸 생각하고 하니까 가라 소리 안 해도 자꾸 생각하니까 그 사람이 있어 봤자 재미가 없고 마귀 그놈이 거기 있다가는 죽을 지경이거든. 거기 있다가는 그 사람에 감염돼 가지고 이 사람도 성경 읽게 되면 그 사람도 그만 뺏길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마귀 그놈이 '어어 가자. 가자.' 얼른 그 사람 붙들고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이래서 한 번 이겨 보면 그 쾌감이라는 것이 굉장한 쾌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라고 보면 성경 읽는 이 보배로운 일을 하지 못하게 마귀란 놈이 얼마나 방해를 하는지 모릅니다.
또, 성경 읽으면, 이제 성경을 읽으면 자꾸 또 다른 탈선으로 또 시킵니다. 자꾸 읽기만 읽어서 다독주의로 자꾸 이 성경을 '내가 몇 장을 읽어야 되지?' 거게만 관심돼 가지고 성경이 뭐인지 아무리 열 장을 읽고 나야 그 속에 뭐이 있는지 아무것도 몰라. 그거 읽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이 뒤에 말하겠는데, "너희는" 너희라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한해 말입니다.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여호와의 책이라 말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여호와의 책이라. 자존자, 창조주, 주권자, 주재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나님,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 지극히 크신 분이 우리하고 맺은 계약이라 그 말이오. 여호와의 책이라 말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계약을 맺은 계약책이라 그 말이오 계약책 아, 이 계약에 어기면 대번 죽는데. 이 계약에 어기면 그까짓 거 암만 강한 자라도 죽는데. 아, 계약에 선악과 먹지 말라는데 먹으니까 당장 안 죽어 버렸습니까? 이제 일시 죽는 게 아니라 영원히 죽고 사는 거, 망하는 거, 흥하는 거, 영광스러워지고 천해지는 것이 이 가운데에 다 있어.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자세히라 말 가운데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정신을 똑 바로 차려 가지고, 양심을 써서, 바로 여게 영원히 죽고 망하고 흥하는 것이 여게 있으니까, 요 계약에 있으니까, 요라면 죽고 요라면 살고, 요라면 성공되고 요라면 실패되고 이것이 있으니까, 마치 과학자가 그 물질을 화합시킬 때에 요것을 조금 더 넣으면 사람을 죽이는 약이 되고, 요걸 조금 덜 넣으면 필요한 것이 되어지고, 요것을 빼면 아무 가치 없는 것 되고, 요것을 넣으면 아주 보배로운 참 약이 되어지고, 조금 더 넣어도 덜 넣어도 빠져도 안 되는 거, 이런 것도 그런데 이제 이 신구약 성경의 이 계약은 조금 어기면 안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계약을 빨발발발 떨면서, 조종사가 자기가 조종을 하면서 그 방향을 측량하는 것이라든지 그 공간 측량하는 것이라든지 그 모든 시간을 따져 가지고 요 조금만 틀려 버리면 탈선돼. 공중에서 그만 탈선이 돼 버리면 갈 곳을 몰라. 방향을 몰라, 산천 보고는 몰라. 그래 가지고 방향을 찾지 못해 가지고 떨어져 죽는 일이 많다 말이오. 그런 사람도 그걸 가는 노정을 조심해서 이거 틀릴까 싶어서 자세히 정신 차려 가지고 이렇게 하지 먼 눈 팔지 안하는데 우리는 거기다 요량하면 이 성경책은 얼마나 중대한 것을 가지고 있고 세밀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정신을 똑 바로 차려서, 여기 생사가 있는 줄 알고 앙심을 써서, 진실을 써서 이렇게 이 성경책을 읽어야 알지.
그러면, 성경책을 읽는 데는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이 성경책 속에는 누가 있어요? 이 성경책 속에는 누가 있어요? 하나님이 계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성경책을 읽을 때에 이 책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 감동을 받도록 우리가 읽어야 됩니다. 감동을 받도록. 그분이 볼 때에 '이놈 버르장이 없는 놈 아무리 네가 철이 없지만, 이놈은 내가 가까이 하면 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 피해야 되겠다' 내가 성경을 읽는데 내재하신 하나님이 피하게 하는 일도 있고, 하나님께서 감동받는 일도 있기 때문에 이 성경은 다른 서적과 같이 멸시할 서적이 아닙니다.
자, 앞으로 이 성경을 지금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이 성경 공부를 지금 하기로 결심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열심히 열심히 합시다. 하고 열심히 공부합시다.
오후에는 이만하면 됐어. 이제 이 말씀 다 가르칠라 했는데 뒤에 따라서 가르칠 터인데, 새벽 기도 나와요. 알면, 알면 뭐 이 말씀을 떠나서 못 삽니다. 저도 처음에 예수 믿을 때에 이 말씀을 보니까 어떻게 좋은지, 하나님의 은혜야.
술도가하면서 술도가는 집어 던져 버리고 이 성경만 읽었습니다. 사흘 동안 성경 읽고 난 다음에 술도가 치워 버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 성경 읽을 때에 궁둥이 여러 번 터졌어요. 방석을 깔았는데, 또 터지면 터졌는지 말았는지 또 하고 나면 물이 찔찔 나다가 또 엉겨 붙고 또 터지고 이래 몇 번 이래 터지며 봤어. 워낙 재미가 있어서. 그때 성경을 읽지 지금은 성경을 읽을래야 읽을 시간이 없어 이것도 해야 되지 저것도 해야 되지 그래 못 읽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어짜든지 여러분들에게 연경회를 열어서 성경을 공부하라 하는 이것을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인데,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이니까 이 기회에 성경을 알뜰히 공부를 하십시오. 권사님들도 어찌 됐든간에 연경회 가입해 가지고 이걸 꼭 통과를 하십시오. 그러고, 요새 또 통신과 하는 것을 요게 냈는데 요새 낸 거는 가짜배기라. 뭐 조화를 해서 어째 그만 이래 뭐 범벅을 해 놨어. 옛날 것을 찾아 가지고 지금 하고 있으니까 어짜든지 이것을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OOO목사도 이 공부를 하는데 그때 냉돌방에 있으면서 몇 달 석달했는이 반 년했는가 해 가지고 이것을 다 이제 했는데 거의 다 백 점 맞았습니다. 그게 아마 제가 목회할 때에 제일 큰 밑천이 되고 능력이 될 거라. 또 자기 일생 동안 사는데 그 말씀이 운전합니다. 그 말씀이 '이라면 안 된다' 이 성경 말씀이 '이라면 안 된다. 저라면 안 된다' 이래도 '아, 어렵다.' '해라. 해라.' 용기도 이 말씀이 주고 길 방향도 이 말씀이 가르쳐 주고, 빠져서 함정에 빠져 죽을 것도 이 말씀이 가르쳐서 빠지지 않게 하고, 또 승리하는 방법도 이 말씀이 주고 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 영생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우리가 너무도 등한히 한 것을 이것을 회개하고 어짜든지 열심히 해서 성경을 많이 읽읍시다 내가 이 말 하고 난 다음에 주님이 날 기뻐하는 걸 봤어. 주님이 '야, 너 게을배기 보고는 네가 거석하지만, 네가 그 지혜가 있어서 성경을 공부하라 하고 기도를 하라 해서 내가 그거 널 그만 단점이 있고 나쁜 점이 있어도 내가 관용하고 내가 참고 기다린다.' 이렇게 하시는 거 같아.
그래 저도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이랄라고 지금 오늘도 지금 양산동 갑니다. 한 번도 안 빠집니다. 가 가지고 저 양산동 산에 가 가지고 천막 안에 가서 잠깐 성경 보고 기도하고 그래 옵니다. 오늘도 갑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제 한 번도, 비가 오든지 뭐 언제든지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내가 마음에는 하루도 안 빼고 꼭 여게 와 가지고 성경 보고 기도하고 이래 하겠다. 이걸 계속하게 해 주옵소서.' 이래 하나님께 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라고 '또 새벽 설교나 이 설교를 빠지지 안하고 꼭 계속해서 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 다른 목사님들은 일흔 여섯 살이 안 돼도, 젊어도 일 주일 내내 그거 못 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한 번도 빼지 말고 새벽 설교, 삼일 설교, 금요일 설교, 주일 오전 오후 설교 하게 해 주옵소서.' 자꾸 이렇게 기도하고 지금 합니다.
이러니까, 그 내가 깨달은 건 나만 힘쓰면 모든 성도들이 다 힘 쓰겠고, 나만 되면 성도들이 되겠다 하는 그 말씀을 하나님이 해 주시기 때문에 그래 열심히 하니까 여러분들도 열심히 해서 어짜든지 예수 믿는 성공 합시다. 예수 믿는 성공하면 모든 거 다 성공 다 됩니다. 자, 예수 믿는 성공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봅시다. 네, 예수 믿는 성공합시다 이것만 하면 다 돼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거만 하면 다 돼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했습니다. 마음을 찢어서 결심합시다 결심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이 성경 공부할라고 하면 어떤 애로가 있을 것이다. 어떤 애로가 있어도 양보하지 않겠다.' 하는 그 강한 입지를 우리가 세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