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설교록

 

1989. 6. 22. 양성원 경건회

 

본문: 갈라디아서 1장 6절∼17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좆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라 하나님께 좋게 하라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여기 11절에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바울이 이렇게 성경을 기록한 바울 서신은 어느 성경이든지 다 그러하지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논한 게 아니고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 사도로 보내기 위해서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 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혈육과 의논하지 안하고 아라비아로 가  가지고 자기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으로 더불어 듣고 배우고 또 기록할 것은  성경에 기록하고 그렇게 했다고 여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는 성경 기록한 것을 말하고, 또 저도 이 성경 깨달음을 제가 누구한테 배운  것 아닙니다. 뭐 주석이나 이런 것 또 누구한테 배운 것, OO신학교는 제가 제일  일회에 와서 입학했는데 나흘 있으니까 나중에 그만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도로 가겠다. 내가 뭐 여기 있어봐야 배울 것도 없고 하니까 내가 지금  급하니까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하고 그래 나와 가지고 그 뒤에 한 십여 년 한  아마 육칠 년 후엔가,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이거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어데다가 붙이나?' 그런 것 때문에 걱정이  돼서 모든 현실 교회들을 다 살피는 가운데에 고신이 제일 그래도 보수고 진리고  이래서 그 후배들을 귀속시키기 위해서 내가 고려신학교 입학을 해 가지고 그래  거게서 졸업을 했습니다.

 거게 가서 내가 사 년 동안 있는 가운데에 내가 성경 배운 것은 별로이  없습니다. 배운 것은, 배웠다면 오종덕 목사님에게 좀 배웠고 다른 무슨 뭐  목사님들이나 교수 강사 그런 분들에게는 가르치는 것이 항상 저와는 너무 맞지  안하고 거리가 멀어서 배우지 안하고, 제가 존경하기를 오종덕 목사님을 제일  존경했습니다.

 그분에게 제가 명심하고 있는 것은, 옳은 것을 배워 가지고, 삐뚤어진 것은 배울  것이 없고 연구할 필요가 없고 옳은 것만 배우고 난 다음에 옳지 않은 것은 다  삐뚤어졌다고 하면은 된다는 요렇게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는 안 했으나 '옳은  것을 알아 가지고 옳지 않는 그런것들을 닥치면 저절로 아는 그 방편이 좋다'  하는 그 말을 그때 하는 것을 제가 깜착 놀라서 들었습니다. 그분에게 그것을  들었고,  또 생명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이요 떨어지면 사망이라는 그  깨달음을 저도 그때 듣고 아멘이 되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또 하나 더 배운 것은 내가 직접은 안 들었지마는 고려고등성경학교 학생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물이 무너지니까 또 새로 파고 무너지니까 또 새로 파고 자꾸  이래 하니까 학생들이 답답해서 '이거 한번 파 가지고 무너지지 안하도록 어떻게  했으면 좋을 터인데 이래 하니까 이거 손해 아닙니까?' 그렇게 말할 때에 그가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말하기를 '나도 세상적으로 보면은 한 번 파고 헛일하고 두  번 파는 거는 손해인 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에게 대한 것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얼마든지 하나 가지고 섬길 것보다 둘 가지고 섬기는 게, 죄가 안 될 때는  둘 가지고 섬기고 둘 가지고 섬기는 것보다도 셋, 넷 가지고 섬기는 것이 그것이  좋다. 주님을 섬기는 데에는 자본이 많이 들수록이 좋으니까 너거가 한 번 파  가지고 무너지지 안해서 할 때는 우물 하나 파지마는 열 번 무너져 가지고 열 번  파면은 우물 열 개를 파 가지고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이요 주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 하는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내가 간접적으로 들었습니다.

 듣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릴라고 할 때에 그 말씀을 듣고 밤새껏 장작  패서 준비하느라고 힘을 그 썼다고 그라면서 이렇게 거게 나무가 많이 있지마는  어떻게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일을 더 힘들여 할까 하는 그것에서 장작을  여기서 패 가지고, 거게 나무 꽉 찼는데 짊어지고 갔다.' 이 비밀을 말할 때에  제게 대해서 크게 동감이 됐었습니다. 뭐 다른 분들은 그런 데 대해서는 별로이  말하지 안하고 항상 이제 유전으로 내려오는 그 학자들의 유전되는 거 그것만  자꾸 이래 말하는데 그래서 저는 그런 공부는 거기 있어도 별로이 하지를  안했습니다.

 OOO목사님이 역사를 가르치는데 그분은 가르칠 때에 그저 역사에 대해서  그뭐 거기 기록한 대로 그거 읽어 주고 또 연대 그런 것 기억시키고 사람 이름  기억시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데 대해서 아무 취미가 없었습니다. '책에 있는 거  연대 있으면 되지 그걸 외우는 게 무슨 필요 있나? 역사를 공부할라면은 과거에  어떤 역사가 어떤 역사를 낳았다, 그라면 현재 이 역사는 앞으로 어떤 역사가  자손으로 나오겠다. 그걸 알아야 우리에게 방비도 되고 또 준비도 되는 것이지  그거 있는 거 그거야 뭐 책 읽으면 될 터인데.'  또 그러고 역사라 하는 그런 것도 내가 그때 어떤 좌석에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거 독서를 얼마나 했느냐?' 독서한 걸 가지고 자랑을 하고서 '이 책에  기록돼 있다, 이 책에 역사책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걸 듣고서  내가 암말도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말하기를, 나는 당사자가 아닙니다. 제삼자로  옆에 듣고 있었는데 '역사책은 뭐이든지 책은 다 믿는그만. 신구약 성경 외에는  믿을 책이 하나도 없다. 고의적으로도 한 것 있고, 무능해서 한 것도 있고, 미혹을  받아 한 것도 있고. 거짓부리가 많이 있는데 책에 기록돼 있다 책에 성경 외 에  책에 기록해 있다고서 책을 그렇게 보증으로 세울 만한 그런 권위 있는 책이  어데 있노? 신구약 성경밖에는 없다' 내가 그런 말 하고 말았는데 그때도  그랬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이번에 설교록을 읽을 때에, 제가 또 먼저도 여기와 가지고  내나 이 말씀을 봤습니다. 자기 복음이 있고 남의 복음이 있으니까 자기 복음을  이번 이 삼 주간 동안 설교록을 읽을 때에 확실히 정하십시오. 자기 복음을.

 '우리 지금 총공회 목사들 가운데 자기 복음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이 없습니다.

모두 환경과 주위에 따라서 피동되는 그런 사람들이지' 이게 내 복음이라'  자기 복음이라 말은 자기의 교리와 신조와 행정으로 확고하게 요래 거머쥐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어데든지 말만 하면 다 따라가고 이러니까 뭐 안 따라갈 게  없고 뭐 말하자면 남자라는 것은 다 자기 남자요. 이와같이 그 창기 모양으로  그저 뭣이든지 주장만 하면 다 들어 가지고 자기가 자기 교리 신조를 삼을라고  합니다.

 이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그런 가치로 여기는 것은 그 교리와 신조에게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기울여서 지키고 그것이 영원한 구원이 된다는 것을  부인하고 그거 이 세상 학문 모양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값을 싸게  생각하고 값을 싸게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은 자기의 교리  신조가 없으니까 얼마든지 형편에 따라서 변동합니다.

 그러니까 조선 교회가 그렇게 많이 믿었고, 또 이북에서 선천 고을이라 하는 그  고을은 하도 전도가 잘돼서 모든 사람이 다 믿고 그때 말로는 넷 집이 믿지  않는다고, 전 군내에는. 그래 시장이 안 된다고. 그래 인제 아예 주일날은 시장 안  되고.

 나중에 거게 그 선천 고을에서 온 OOO목사님이라고 좀 유력한 목사님입니다.

그 목사님 동생이 목사님인데 저를 청해서 집회를 말해서 내가 거기 가서 집회  인도를 했습니다. 그때 물으니까, 그걸 얘기를 하니까 '그때는 그런데 지금은 한  집도 안 믿는 집이 없습니다. 다 믿습니다.' '그러면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  문제에는 거게는 그라면 승리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겠구먼?' 내가 이래 말하니까  '한 사람도 없었다고. '이북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북에서 신사참배 이긴  사람들은 다 이남 목사들이 거기 가 있는 사람들이지 이북 사람들은 하나도  승리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고 합니다.

 그래 그렇게 이거 복음이라는 것은 참 받을 때에 잘 받아야 되지 잘못 받아  놓으면 그거 제가 변동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복음을 받는 데에  어릴 때부터 이 복음을 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마는 복음을 받았다 해도 자꾸  잡탱이가 자꾸 들어와 가지고 쑥물을 먹여서 이 잡것을 해 놨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지금 복음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교리와 신조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자기 교리는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지키고 따라가는 교리와 신조인데  그렇게 교리와 신조의 가치성도, 또 어떻게 지켜서 행해야 된다는 그 방편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정도의 그 정도도 모르고 자기 주관대로 그저 어려움  없이 안일주의로 이렇게 나갈라고 하는 그런 정도에 믿기 때문에 다 헛일입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지금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너 예수  안 내놓으면 죽인다' 하면은 '자기 생명을 내놓고 그래도 신앙을 지킬 것이다'  하는 그런 사람이 누군가 그걸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평신도는 있을지라도 목사  가운데는 별로이 없습니다. 몇 사람 안 되요.

 그걸 여러분들이 짐작해 보면 안다 말이오. '저 사람은 지금 만일 생명을 내놓고  교리와 신조를 지켜야 된다고 하면은 그때 지키겠나?' 지금 주장하는 거 보면  아니까. 지킬 필요가 뭐 있습니까?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걸.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어짜든지 여러분들의 교리와 신조를 확정을 하십시오.

제가 세 권을 읽든지 한 권을 세 번 읽으면 성경 한 독 한 것과 같은 그런  인정을 해 준다. 그러면 설교록 세 권 읽으면 성경 한 권 읽은 것만한 그런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성경은 많이 읽도록 하는 것은 성경을 깨달도록  하려는 것이니까 이제 성경은 뭐 설교록 그거야 억만 권이라도 성경 일 페이지도  당하지 못하는 것이지마는 그래도 깨닫고 쉽게 말한 것이니까 그 세 번 읽으면은  신구약 성경 한 번 읽은 것만치는 그 사람이 깨달음에 유익을 보겠다 해서  그렇게 제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과거도 무슨 설교록을 몇 권 읽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성경, 세 권 본  것이면 성경 한 권을 본 것으로 그래 계산을 해서 저한테 보고를 내십시오.

그라면 성경 백 독 하는 데에 대충을 제가 계산해서 할 것입니다.

 그라고 여게 바울이 자기 속에서 이방에 복음을,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자기가 보고 난 다음에 사람들에게 외부에서 귀로  눈으로 들어서 오는 그런 것을 상대하지 안하고 자기 속에서 지금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증거해 주는 그 증거를 받을라고 애를 써 그라는 데는 많은 사람을  접촉하는 것보다 접촉 안 하는 게 좋기 때문에 모든 걸 떠나서 아라비아로 가  가지고 삼 년 동안 거게서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그가 받아  가지고 했기 때문에 그분이 깨닫고 이 계시한 이 계시가 내나 성령님이 하신  것이지마는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세밀히 가리켜 놨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저 자꾸 사람들에게 들어서 눈으로 보고, 사람들이 저서해 놓은  걸 눈으로 보고 또 귀로 듣고 이렇게 해 가지고 알려고 하는 이것보다도 성경은  우리에게 다 제정해 놨기 때문에 가감을 못 합니다. 그러면 일정해서 화정을,  완료를 완결을 해 놓은 이 성경을 보고 우리는 깨달을 권리는 있습니다. 뭐  성경이 이 성경은 틀리니 옳으니 하는 그런 거는 우리가 논평할 시기가 벌써  지나갔습니다. 벌써 완료가 됐기 때문에 이는 정화 무오한 성경인 것을 깨닫고,  물론 정확 무오라 하는 것은 원 본 성경 한 권을 말하는 것이지 사본 성경도  인간이 하기 때문에 틀릴 수 있습니다. 그때 그분들도 얼마나 조심해 했느냐  하면은 하나님이라는 그런 성구가 나오면 언제든지 기록하던 그 붓을 다시 새로  씻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기록을 했습니다.

 그렇게 조심해서 했지마는 마귀는 또 틈을 타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키가 한 자나 더하겠느냐' 하는 그 키를 다른 사본에는  생명입니다. '생명을 일각이나 더 하겠느냐' 이랬는데 거게는 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나도 그렇게 키라고 생각지 안하고 생명으로 그렇게 알고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자기가 받고 또 우리  안에서서 역사하시는 그분과 교제를 하고 또 그분에게 모든 것을 물어서 판정을  지우고 또 그분이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나를 붙들고 역사해 가지고 일이 되도록  그렇게 하려는 이것을 우리가 주시해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설교할 때도 사람 보고, 자기가 대상이 있는데 우리의 상대방이 있는데  상대방을 교인들을 상대방으로 보는 것도 좋지마는 그것보다도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그 상대로 보고 그분과 서로 상대하는 그 상대가 바로 돼  가지고 바로 됐느냐 안했느냐 하는 그런 것은 이제 교인들의 반응을 보는 그런  것도 참고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16절.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그러면 요걸 우리도 가져야 됩니다. 우리는 성경 기자가 아니라도,  성경 기록할 그 자기 내재 역사를 그럴 게 아니고 이미 완성되어 있는 이 성경을  깨달음에 대해서 자기 안에서 역사해주시는 그 역사를 자기가 찾고 연결되고. 그  도움을 받아서 하는 이 일을 우리가 하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그러기에 외부에서 오는, 외부에서 오는 그런 것을 상대하고 하는  사람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이래 성경 깨달음의 해석도 그 주식을 보지 안하고, 제가  말하는 것은 '주석을 보지 말아라. 주석을 보지 말고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깨닫고 난 다음에 그리고 난 다음에 주석을 봐라.' 깨닫고  난 다음에 주석을 봐서 '이러니까 내가 깨달음이 주석과 같다' 깨닫고 보면은  '주석 이거는 껍데기고 이거 나에게 깨닫게 해서 깨달은 이 깨달음이 이게 참  알맹이고 바로 됐다' 이렇게 해야 되지,  자기 안에 역사하는 것은 역사할 수도 없고 역사하는 그 역사를 접할 수도 없이  전부 눈으로 귀로 외부에서 오는 걸 다 접해 가지고 이러니까 그분을 결국은  사귀지 못하게 되니 자꾸 사람들은 외식이 되고 자꾸 부패하게 된다. 그분과  연결에서만 생명이 된다 하는 그것을 다 경험하고 체험한 가운데에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도 이거 깨달은 깃은 사람에게 배운 것은 별로이 없습니다. 성경 보고  내가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깨달아지고 내 속에서 가르쳐 준 걸 받아서 내가  깨달아져서 전파하고 이렇지 뭐 다른 이거 서적에 이렇다 또 뭐 주석에 이렇다,  별로이 보지 안했는데 혹 지금은 신강이 있으면은 주석을 봅니다. 또 난제 될  때는 주석을 봅니다. 이래 봐서 이래도 참 별로이 틀린 것이 없이 하나님이 알려  주셨고 그 알려 주심을 받은 데 대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래서 여러분들도 꼭 요번 이 셋 주간 좀 싫어도 읽으면서, 아까  OOO목사님이 '이제 이만치 됐으니까 모두 각자들이 읽도록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을 아무래도 아직까지 각자들이 읽어서 안 되겠고 하나가 읽고 그 뒤에  따라가면 억지로 졸면서라도 이래 따라가게 되면은 좀 내용을 알란지 좀, 그렇지  안하고 그만 읽으라 하면 줄줄 읽어 버려서 속에 뭐인지 전혀 모릅니다. 이렇기  쉬우니까 그래 하자 이런 말했었는데 어짜든지 이번에 자기 복음을 확실히  정하십시오. 이거 자기 복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거나 저거나 다 그만  영접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복음 딱 정한 사람은 뭐 어떤 사람이 해도 그게  아니면 아닌 그것을, 자기가 옳다는 말이 아니고. 아닌 그것이 있으면 그것을  거머쥐고 반드시, 그렇게 많이 없으니까. 그걸 비판해 가지고 판단하면은 '요거는  옳기는 옳지만 아직까지 어리다. 요거는 비유컨대 산을 올라오는데 요거는 십  메타 올라와 가지고 지금 보고 말한 것이다. 요 사람은 백 메타 올라와 가지고  말한 것이다. 이 사람은 천 메타 올라와 가지고 말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나보다  훨끈 위에 올라가서 지금 보기 때문에 내가 지금 모른다.' 그러면 더 파고  들어가고 더 나가면은 나중에 앞으로 가서 알아질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면 먼저  간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뒤에 오는 사람을 알 수가  있어요. 이러니까 이번에 자기 복음을 확실히 확정을 해서 앞으로 흔들리지  안하는 그런 사람이 참 되기를 원합니다.

 이거 무슨 이 교역자회도 모이면은 먼저 OOO목사가 그만치 그라는데도 제  복음이 없기 때문에 거게서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제 복음이 있으면 그것을  듣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목회하러 나간 사람이 그만 학교서 잡종세 그것  받는 거 그걸 법적으로 지금 그걸 못 받게 한다고 그걸 고발해 가지고 다시 그  사람들이 그만 받았던 걸 도로 내 주도록 하기까지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은  우리는 우리 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말하지 말고 그라면 그 사람들이  반감 가지고 아동을 잘 보내 주겠느냐? 그 사람이 우리 복음에 방해하는데 우리  아무 상관 없는 거 가지고 복음에 방해되는 그런 적을 만들게 뭐 있겠느냐?' 거게  대해서 말하면 전부가 다 '그렇다' 이라면은 그 사람도 시험에 들지 안하고 거기서  '그거 잘못됐습니다.' 이라고 말 것인데 전부 그 말하는 것을 안 됐다고 틀렸다  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 것은 내가 자꾸 말하는 것이 내가 전하는 복음을 그들이 생명으로  받았으면 감사해서 못 견딜 건데 제 복음으로 받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대립입니다. '저놈의 영감탕구 얼른 뒈져 버리면 우리가 평안하고 좋겠다'  이러니까 그게 전부 마귀에게 속한 것이지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그때 하도 분해서 '너희들이 도무지 젊고' 요한 일서에 보면은  '젊은 사람들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요' 하는 그 말했는데 그러면 청년들이  잘못된 그것을 이렇게 말해 가지고 그걸 고칠 수 있는 것인데 이거는 그런 것도  없어. 그래서 내가 그때에 '내가 지금 사십만 됐으면 뭐 이거 OOO이 데리고  어데 지하실에 가 제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이거 담판을 지우지 이까짓 걸로  하지는 안하겠다. 어떻게 목회를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또 그래 가지고 목회하는 사람이, 사람이 저거 집에 왔다고 뚜드리고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불에 타서 분신 자살했습니다. 분신 자살했는데 그 사람들이  소상한 것을 가지고 와서 있지마는 그걸 내놓으면 어지러울 것이고 결국은  주님의 이름에 욕되지 유익될 게 없겠다 싶어서 내비두고 있습니다. 이런데 그걸  알고도 거게 대해 아무 대항하는 그런 말 하나도 안 해. 이러니까 그게 뭐이냐?  제 복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느하스가 이스라엘의 그 범죄하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이 진노하셨는데 그  창으로 남녀를 꼽아 가지고 꿰뚫어 가지고 어깨에 메고 오니까 그게 하나님의  노가 풀어졌습니다. 악한 것은 미워하지만 그 호주되는 사람이 가정에 무슨 나쁜  일, 하나님의 노여운 일이 있으면은 호주가 아주 노발하고 진노하고 이라면은  하나님의 노가 풀려지지마는 그거 가족이 삐뚤어진 하는 거 있어도 그만 설설  덮어두면은 하나님이 분노하십니다. 가족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소. 또 진영도  그렇소. 내가 그걸 말하지 안하면 주님은 우리 총공회에 같이 하지 않습니다.

아니하고 분노하십니다. 그래 내가 그런 거는 아니라고 이라니까 저거한테 미움을  당해도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노는 풀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번에도 뭐 대구에서 앉은뱅이는 아니지마는 반신불수 됐던 사람이  '일어나는 거 그런 거 또 이런 병 저런 병 낫은 그런 것도 그것이 뭐이냐? 누가  안수 기도를 했소 뭐 했소? 그거 이 복음이 하나님의, 전하시는 복음이면 이  증거로 이렇게 해 주신다' 내가 그래 기도, 여럿이 기도할 때 그 기도밖에 안  했어. 그것도 하나님의 증거로, 이번에도 백 몇 십 명인가 이렇게 나았는데 그거  한 집회에 그렇게 많이 낫는 수 없는데, 그래 여기서 암만 해도 그걸 거짓말로  취급하면 그만이라. 또 그거 그만 아무리 해도 그만 없으면 좋지.

 그러니까 대구 집회 때에 사람이 많이 모인 게 싫으니까 어찌 됐든간에 사람은  현재에 훨씬 많은데 보고는 적다고 보고가 습니다. 그거는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에. 자리 보면 다 알지 안해요? 이러니까 다른 교회서 왔는지?  또 뭣이 됐든가 이 적과 기적이 그런 거 낫우고 은혜가 있으면 배가 아픕니다.

'그만 은혜가 없고 백 목사님이 그만 입을 벌리지 못하고 그만 끙끙거리다 말고  그만 그렇게 설교가 은혜 있게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심보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게 뭐이냐? 이 복음 받은 사람들이라. 이 복음을 받아 가지고 제 복음을 삼지  못하고 이 복음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이 복음으로 옛사람 자기를 높이는  이용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속에 악중에 악인 그것이 뻗어 가지고 역사하고  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알아 돼요.

 노아 홍수 때에 물에서 구원 얻은 사람이 여덟 식구뿐인데 지금도 이렇게  쌓지마는 나중에 가서 참 이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 가지고 갈 사람들은 많지를  못합니다. 노아 때나 같소. 그러니까 우리가 이미 믿는 대로는 그런 좋은 구원  이루어 가지고 가도록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모든 이 세상 넓은 세상에서 종교가 많은데 기독교를 믿게 된 것이  다행이다. 기독교 가운데에 이제 이 장로교 교리와 신조를 믿게 된 게 다행이다.

장로교 교리 신조에서도 맞지 안해서 거게서 좀 튀어난 총공회 교리와 신조를  믿게 된 것이 다행이다' 하는 그걸 절실히 느끼는 사람이면 자기가 이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죽어도 행하고 그라면 구원 얻지마는 이 교리 신조를 그렇게 가치  있게 여기지 안하는데 무슨 죽도록 충성할 리가 있습니까? 충성 안 합니다.

지금도 뭐 신앙 생활 한다 하는 것이 너무 성경과는 거리 먼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번 셋 주간 동안에 이 설교록을 읽으면서 자기 복음을  확실히 정하십시오. 어떻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든지 뭘 보든지 이래 가지고 두  사람을 구별해야 됩니다. 옛사람과 새사람. 옛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사람이요 새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거듭난 사람이  새사람이니까 '내가 성경은 읽으니까 잠이 오고 소설을 읽으니까 재미가 나서  잠이 안 오고 그라면 내가 무슨 사람인가?' 거게서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구별하는 것처럼 이렇게 '이 기독교 서적 가운에서도 이 서적을 읽으니까  재미있는 거는 이것은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또 이 책을 읽을 때에 재미있고  하는 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그런 것을 자기가 시험해 가지고 자기가  연구해서 자기가 구별을 해야 되지 그거 구별하지 안하면은 옛사람을 새사람과  바꿔 버리면은 다 헛일 아닙니까? 사람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헛일이라. 그러면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그거 구별하지 못하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 어데  있겠습니까?  이래서 이번에 설교록을 여러분들이 읽고 이라니까 어찌 됩니까? 마음에 읽는  가운데서 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상 바릅니까 하나님과 멀어지는 상바릅니까?  그거 여러분들이 다 체험하고 있을 것이라 말이오. 또 읽는 데에 그만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와지는지 세상과 멀어지는 그것도 여러분들이 확실히  여러분들에게 역사돼서 알 것이라 그말입니다. 또 읽으니까 내가 자꾸 이거  새사람이 좋아하는지 옛사람이 좋아하는지 그것도 알 수가 있을 거라.

 그래서 내가 오늘 아침에 OOO목사님더러 '학생들이 읽어 가는 데에 어떻던가?'  내가 이래 좀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여러분들이 어쨌든지 이 설교록을 읽을  때에 모든 책보다도 재미가 있고 은혜가 되고 자꾸 이라면은 이 읽는 가운데에  자기가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자기에 세 옛사람은 죽어지고 새사람은 자꾸  새로와지고. 세상은 멀어 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인본주의는 멀어지고  신본주의와 가까워지고 자꾸 이렇게 속이 새로워지는 이 경험과 체험을 하는  가운데서 나중에는 목마르면 물 마실 줄 아는 것이 본능처럼 자기가 답답한 일이  있으면은 '아이구, 설교록 좀 읽어야 되겠다.' 설교록 읽으니까 마음이 안정이 돼,  모든 문제가 안정이 돼, 정신이 모두가 다 긴장이 돼져, 또 소생이 돼져 이떻게  되는 이것을 결과를 보고서 취미를 붙여 가지고 일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일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은 몰라도 저 지난 주간에 성서 해석 역사라 하는 그 책을 읽으면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자꾸 멀어지고 성경에 대해서 권위라든지  정확무오한 여부가 자꾸 흐미해지고 이래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간절한  그런 마음이 일어납디까 흐려집디까? 어? 거짓말하지 말고 뭐 똑똑히, 흐려집디까  더 긴장이 돼집디까?  나는 그 책을 저가서 오층에서 들을 때에 '이거 큰일났다' 그래 내가 O목사를  불러 가지고 말했어. '이것은 내가 보니까 아닌 것을 많이 말해 놨는데 이것은  목사님이 선택했거들랑 그들에게 읽기만 하도록 하고, 혹 단어를 모르면 단어를  가르쳐 주고, 술어를 모르거든 술어를 가르쳐 주고, 그 말의 뜻이면 그런 거는  가르쳐 주고, 거게 대해서 목사님의 옳은 변증을 하지 마십시오. 옳은 변증을  하니까 그 책이 도로 권위만 올라가지 신앙들은 흐리게 됩니다. 그라고 또  시험치는 것도 그러니까, 그거 자꾸 시험치면 그 책만 자꾸 읽고 시험치니까 책이  취입돼 가지고 그 사람 만들어 버리면 뭐합니까?' 내가 그런 말 했었어.

 그래서 시험을 안 치고 했는데 마지막 시험친 문제가 무슨 문제던고 모르겠어.

무슨 문제 시험 쳤어? 깨닫는 방법? 그래 성경 바로 깨닫는 방법인데 바로  깨닫는 방법을 거게 많이 해석에 대해서 많이 말했는데 바로 깨닫는 방법을  답안을 뭐라고 써넣었어요, 그래? 학생은 뭐라고 써넣었어? 실천할수록  깨달아진다. 네, 또 그 다음에? 영감과 믿음으로. 또 그 다음에는? 모두 그런  답안들 했겠지. 성경을 바로 깨닫는 데 대해서 문제가 나왔어? 바로 연구하는 법?  바로 깨닫는 법? 성경에 대해서 올바른 해석법이 뭐이냐? 그랬구만. 해석법이  뭐이냐? 예. 그런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저 O집사님이지? O집사님 어떻게 했어?  O조사가? 그 한번 해 봐.

 네, 성경의 올바른 해석법은 첫째 성경의 권위성을 믿어야 됩니다. 성경의  권위성을 믿지 안하면 안 돼. 권위성을 믿어야 돼. 성경의 권위성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 하는 이것이 성경의 권위성입니다.

 성경의 권위성을 믿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뭐 영감. 내재적 영감 받고 뭐 받고  하지마는 다 영감 받고자 하지만 영감인지 악마의 마귀의 감화인지 뭘 알  것입니까? 그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 구원에 대한 유일한  법칙으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이 성경 말씀대로  행해야 되는 것이니까 이 신구약 성경의 권위를 믿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또박또박 요대로 실행하는 데에서 깨달아지지 실행하는 거 외세 깨달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책상 위에서 암만 해 봤자 소용없어.

 그러니까 신학자들이 대개는 신앙이 없습니다. 또 신학교가 다 부패합니다. 왜  신학교가 자꾸 부패해집니까? 개혁하고 나면 그 뒤에 부패해지고 개혁하면  부패해지고 자꾸 부패해집니다. 부패해지는 그 이유가 자기네들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나중에 가서는 다 각자들이 자기의 주장을  성경보다 권위를 높여 세워서 여기 교수가 있으면 교수가 이 성경을 이  학생들에게 정확 무오한 이 하나님의 구원 법칙으로 이렇게 인식해 줘야 되겠다  요 중량과 자기가 지금 알고 있는 그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시켜 줄라고 하는 그  중량과 비교하면은 이거는 한 열 근을 되면은 이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해 줄라 하는 것은 한 근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봐요?  온 세상이 그렇습니다. 이래도 죽는 줄 모르고 죽는다 그거요.

 어쩌든지 그러니까 이번에 OOO조사도, 그 사람 재주 있어요. 재주 있어서,  여기 왔나? 박사 학위를 그걸 가질라 하는 거 내가 못 받구로 했어. 왜 못받게  했으냐 하면 하나님에게 자기가 굴복해서 종되는 그런 일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판 그거 없는 게 좋다. 간판 있으면 또 미혹이 많습니다. '박사니까 청해  가지고서 강의하자' 그래 가지고 거기 오는 사람 많아요. 뭐 그 사람 가는데는  내게는 더 많이 옵니다. 다 그때 하지마는 아예 그 사람들이 알기를 '백 목사  저거는 암만 청해 봤자 안 온다'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또 만일 내가 간다면  그거 모임이 다 뿌숴져 버리고 다 그거 그만 재를 집어 넣어 버릴 터이니까 또  그 사람도, 또 그 사람들도 나를 청하지 안해요.

 제가 OO노회에 가입청원 했을 때에 OO노회에 백 조사가 오면은 이  OO노회가 지금 막 흐트러지고 이럴 터이니까 이제 자꾸 탈퇴하기를 그만  철회하기를 얼마나 원했든지 내가 '너거 이 노회록에 회의록에 기록해서, 내가  여게 가입할라고 했지마는 I.C.C.C에 가입할라 하기 때문에 나는 가입할라 하는  청원서를 다시 철회해 주기를 원해 가지고 어기서 가입했던 걸 철회해 가지고  나갔다 그걸 기록해라.' 하니까 '네 기록하겠습니다.' 기록까지 하고 내가 나왔어.

 그뭐 I.C.C.C야 누가 아요? 모르지. 저게 일자 무식이 저게 뭘 아는고? I.C.C.C에  대해서 반대하다가 한상동 목사님하고 저하고 금이 갔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이  I.C.C.C의 그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받고 난 다음에 내가 찾아갔어요. 찾아가  가지고 '목사님 우리는 아무것도 없고 찍해야 하나님과 진리 이것뿐인데, 우리  실력이요 자본이 이것뿐인데 이만하면 족하지 그뭐 I.C.C.C에 가 가지고 학위를  받으면 뭣 할 것이며 그런 것 뭐 합니까. 그거. 그거 제 마음에는 칭치 않습니다.'  이라니까 그분이 말하기를 '형님, 나도 그걸 안 받을라고 애를 썼었습니다. 했는데  어째 그만 받아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행사를 안 하면 되지 않습니까?'  요렇게는 말하고 단둘이 앉아 이렇게 말했지마는 나가니까 '지금 백 조사님이  이렇게 말하는데 그말이 맞아. 내가 이 행사를 안 해야 될 거라' 막 그 사람들이  우 나서 가지고 '왜 행사 안 할까보냐?' 자꾸 역설하니까 이게 요동치 안해야  되는데 그라고 나니까 아만 거기 거석해 가지고 나중에 그거 때문에 그분하고  나하고 이래 대립이 돼 버렸어. 대립이 돼서 나중에는 '백 조사! 무슨 뜻으로 그런  설교를 해?' 하면서 그때 내 강도사 인해 설교한 바로, 총노회인데. 그때에 그래  됐어.

 이러니까 뭐 I.C.C.C 누가 압니까? I.C.C.C면 그때 막 제 일이라고 떠들고 모두  야단을 지겼는데. '그 I.C.C.C는 그거는 정치주의기 때문에 틀렸다' 이걸 말했는데  그 OOO목사님이 그때에 I.C.C.C를 어째야 되느냐?' 내가 여기 서부교회 집회를  하니까 사람을 내려보냈어요. 그래 내가 가지는 못 하고, 지금 모양으로 또 전화도  없어요 그때는. 사람을 보내서 연락을 해서 '그것은 기독교 정치주의기 때문에  거기 가서 가담하면 안 된다' 그것을 말을 했었어요. 해서 그분이 정치주의에 가담  안 했어요.

 안 하니까 OO노회에 내가 가입 청원할때 그분은 벌써 이미 경기노회원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때에 내가 그 말을 함으로써 내가 가입 청원낸 것을 철회하는  일을 하고 난 다음에 그분도 보류노회에서 탈퇴를 했습니다. 경기노회에서 나  하고 난 다음에 그 뒤에 며칠 지나고 난 다음에 탈퇴를 했습니다. 그 탈퇴하고  나니까 그때에 나하고 OOO 목사님하고. 다근 사람은 없고 단 둘이 그때에  나섰었습니다.

 나섰다가 그 뒤서 나뉘어져 가지고 그분은 서울에서 증거하라 하고 나는 부산서  증거하겠다 하고. 또 거게 또 증거해 보니까 서로 자기 교훈을 세워서 왕되조자  하는 것 때문에 신강하면 안 되니까 '그러면 너는 서울 해라 나는 부산 하겠다' 그  뒤에 서울 암만. 오라 해도 안 갔어. OO신학교서 그렇츰 오라고 쌓아도 안 갔어.

그 전에 내가 좀 얼마 다닐 때에는 그만 제가 가면은 다른 시간 다 입에 버리고  전부 학생들이 전부 통반으로 저 있는 동안에는 한 주간 동안 통반 공부를  했습니다. 다른 과목 다 치우고. 이래도 그뒤에 자꾸 오라 해도 제가 안 갔었어요.

 IC.C.C.가 그렇다는 것도 그것도 밖에서 들었지마는 내 안에서 가르쳐 주시는  이로 말미암아 '그게 아니라'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가 그때 그랬지 그때는  뭐 거기 대해 소문 난 때가 아니오. 그건 별로이.

 이래서 그저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알려 주신 내가 안 게 아니고 성경을 말세에  깨달음에 대해서 알려 주신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이걸 자세히 읽으면서, 그  사람이 돼 가지고 읽어야 돼요. 요 읽을 때에 여게 설교와 사기와 사람이 하나가  돼 가지고 나가야 깨달아지지 자기가 건너다 보고 이 설교록을 읽으면은 뭐인지  모르고 그냥 미끄러져 나가 버리고 바로 속에 내용을 깨닫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요번 삼 주간 동안에는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이 설교록을 많이 읽어  가지고 설교록이 본능적으로, 마치 본능으로 목마르면 물마시고 싶고 배고프면  밥먹고 싶은 것처럼 이렇게 본능적으로 이 설교록을 안 읽으면 안 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되면 목회는 문제가 없습니다.

 이 자꾸 다른 것 다 냅두고 다시 그런 것 다 뱉아 버리고 성경과 목회설교록 요  두 서적만 자꾸 읽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 신앙이 쇠잔해질 리가 없고  뒤떨어질 리가 없고, 약화될 리가 없고, 그거 설교에 막힐 리가 없고, 마구 설교할  것은 자꾸 있고 젊은 독수리처럼 자꾸 소생돼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면  교회는 자꾸 부흥이 돼져요. 이런데 이거 성경도 안 읽지 설교록도 안 읽지 이래  놓으니까 항상 목회하는 주장은 저입니다. 자기 주관이오. 옛사람 자기요. 육체의  생각 가지고 목회하니까 항상 목회해 봤자 목회가 됩니까?  그래서 이번에 자기네들이 읽어보니까 어떻게 해요? 읽어보니까 자꾸 뭣을  여기서 성경을 자꾸 이렇게 뭣을 성경을 가르쳐서 이라는 게 좋아요 이 설교록을  읽는 것이 더 좋아요 뭐이 좋아요? 설교록 읽는 것은 이거 내게 또 하나님이  영감시켜 깨달은 걸 쭉 읽어서 자기 것 만드는 것이지마는 지금 가르칠라고 하면  그렇게 많이 가르치지를 못해요.

 이러니까 설교록 지금 뭐 몇 권이라던가? 육십 권이라든가? 육십 권을 읽으면  그 중간에 빠지기는 빠졌지마는 제가 그러니까 삼년 사년 오년 육년 칠년 팔년  구년, 올해 칠년째니까 이제 만 육 년 동안 성경 가르친 것을 다 여러분들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가속도로 빨리 봐지지 않습니까? 보니까 재미가 있어요, 어때요?  어때요? 왜 모두 말 못 하는가배?  나도 이 설교록을 이래 놓고 난 다음에 내가 보지를 안했어요. 안했는데 며칠  전에 다른 사람에게 이 설교록을 읽혀 가지고 한 두서너 페이지를 봤어요. 읽어  보니까 아주 은혜가 돼서 또 여기 와서 여러분들 거석할 때에 내가 두  페이지인가 읽었지, 같이? 읽어보니까 이거 나도 이 가치를 몰랐어. 아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해 주신 것이지 뭐 내가 무슨 작성해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입에 나오는 대로 설교해서 그대로 녹음된 것입니다. 내가 무슨 거기서  앞뒤를 맞춰서 뭐 문법에 맞추고 수사학법에 맞추고 이런 것 아니야. 그저 내  깨달아진 대로 그대로 해 버렸어요.

 이러니까 그래서 우리 양성원 학생들이 성경과 이 설교록 둘만 하면은 족하지  그외에 딴것이 필요없다는 이 사람들만 되면은 하나님께서 총공회를 세워 가지고  목회하는 이 목회에 뚜렷이 지금 세상에 빛이 되도록 이렇게 할 터인데 그런  사람들이 없어. 좀 있으면 제가 왕되 싶어서 그만 이 교훈보다도 위에  올라서니까.

 이래 가지고 이 설교록 하니까 '나도 목회설교록 내야 되겠다' 또 이래 가지고  뭐, '또 나도 성경 공부 해야 되겠다' 그래 내가 OO목사도 성경 공부 할라 하는  것을 내가 그랬어요. 성경 공부 하라고, 그 전에는 할라 하기 때문에 '뭐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야지' 이랬는데  그뒤에 내가 이거 뭘 하나 본 다음에 '이거 내가 책임이 있다' 내가 그래 전화를  해 가지고 '가르친 데 대해서 그것은 내가 찬성하는 그것은 나는 취소하겠으니까  찬성도 부정도 아니고 하니까 혼자 생각대로 해서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께  영감받아서 가르치도록 하고 내가 가르치라 해서 가르친 것으로서 하는 그런  것은 내가 취소한다.' 그거 말을 했어. 그뒤에 지금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지  몰라도 내가 그렇게 말했었어.

 우리는 하나 하나 말한 것이 그게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중대합니다. 이래서 '많이 스승되고자 하지 마라. 선생이  되고자 하지 마라. 선생된 자는 받을 심판이 중하니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아마 요번에는 좀 거석해도 이 줄줄 읽지 말고 하나가 읽으면서 또  O목사님은 여기 있으면서 하나씩 질문을 새 보십시오. 질문을 해서 아주 깊이  거석하도록. 아주 말은 쉬운 말로 했는데도 속에 뜻은 대단히 넓고 깊습니다.

이걸 읽으면은 여러분들의 그만 간보가 널펑하이 사람이 커지고 넓어질 것이오.

 네, 잠깐 기도합시다.

 주께서 주의 복음을 위하여 이 기관을 세우시고 목회할 종들을 양육하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게서 참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주님과 주님의 뜻과 주님의 목적과 그 방편을  잘 배우고 깨달아 이대로 행함으로 주의 뜻이 온전히 저희들을 통하여 다  이루시는, 영광을 받으시는 무리들이 되도록 주님이 축복해 주옵소서.

 밖에서 받아들이는 그런 것 그것은 가지고 목회할 수 없는 것인 것을 깨닫고  항상 주님에게서 친히 받아 성경을 통하여 깨닫고 또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이  깨달음을 참고로 삼아 가지고 언제든지 주님과 연결되어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저희들이 됨으로 양떼에게 전파되는 것은 전부 주님의 것이 전파되어서  양식이 되고 생명이 되고 지능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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