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2:24
성경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6절∼17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형체가 없습니다. 물질의 형체도 없으시고 영의 형체도 없으십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완전자시요 무한자시요 영원자이시기 때문에 형체 속에 갇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본체의 어느 부분도 볼 수 있는 그런 형체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무형의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의 본체는 무한이요 영원이요 완전이십니다. 그의 능력은 전지 전능자시요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나타나실 때는, 그 본체가 나타날 때는 영감으로 나타납니다. 감동으로 나타납니다 영감으로 나타난다 말은 영은 하나님 영(靈)자, 영감이라는 '감'자는 감동 감(感)자입니다. 느낄 감(感) 자, 감동 감(感)자인데. 하나님이 감동으로 나타난다 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는" 그 말은 좀 알기 쉽게 길게 늘여서 한 말씀입니다. '하나님' 한 것은 곧 한문 글자로 말한 것은 영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는 그 감동을 가리켜서 '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한 말은 '모든 성경은 영감으로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그 본체는 영원히 우리가 보지를 못합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보지를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완전자시요 영원자시요 무한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가 접해서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성화를 받아도 형체를 가진 유한한 존재요 그렇게 하나님 같은 그런 완전을 가지지 못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을 만날 때에 그 완전과 배치되기 때문에 배치된 것이 절단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자체가 불완전해서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또 하나님도 우리를 보면 우리가 다 소멸되기 때문에 우리를 보시지 안하고 멀리 계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 영원 전 스스로 홀로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홀로 계셨는데 그분이 홀로 계시면서 당신이 역사하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활동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본체는 보이지 안하나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일이 있었으니 첫째 역사가 뭐인고 하면 하나님의 감동이 목적을 정하신 그 감동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목적이 정해졌습니다. 목적은 하나님의 감동이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안에 어떤 자를 만드시기를 당신이 추진시킨 것이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택했다 하는 하나님의 택함은 예택입니다. 우리가 있고 난 다음에 택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런 이런 것을 만드시겠다고 미리 예정적 택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안에 택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목적 정하시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으니 하나님 목적은 그리스도의 형태대로, 그리스도의 그 윤곽대로, 그리스도의 모양대로 그 목적은 이루어져 가게 된 것입니다. 마치 물을 그릇 속에 담으면 그릇의 모양과 같이 물이 되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그 목적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그때는 몰랐지만, 그리스도는 사람 말로 표시하면 곧 기름 부음인데, 몰랐지만, 그 후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을 다스리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 사사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역사로 나타내셨으니 곧 기름 부음이라는 그런 뜻인데 세 가지를 기름 부음을 부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고 선지자를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고 왕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래서 '아, 그리스도는 세 가지 직책을 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알게 됐습니다.
이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예택을 하신 그 예택된 것은 어떻게 미리 그렇게 하시기로 택하셨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한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의 존재를 만드시기 위해서 예택하셨다 하는 것을 그후 하나님의 섭리와 영감을 인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리스도 형상대로 택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영원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그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셨으니 곧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하는 하나님이라 하는 그 뜻을 가진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이래서, 그 안에 예택돼서 만들어질 것들도 그릇에 따라 물의 형체가 되는 것처럼, 다 비유는 실상과 같지는 안하지만, 제사장의 형상과 선지자의 형상과 왕의 형상으로 우리가 만들어진다 하는 것을 여러 성경에 이모 저모에서 깨달아서 우리들이 그것을 조직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래서 하나님의 직분의 이름이라 그렇게 모든 깨달은 성경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공통 해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자라는 것은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와 꼭 같은 모형적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는 근본 원형이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모형적 그리스도라, 마치 생화가 있고 조화가 있는 것처럼, 생화와 같이 그렇게 만든 것이 조화인 것처럼 하나님은 생화라면 우리는 조화같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같이 만든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랜 후 신약에 와 가지고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구원을 이렇게 저렇게 이루어 가지고 마지막 우리 이루어 놓은 구원을 검사 받을 때에 우리의 이루어 놓은 구원을 검사를 받을 때에 어디서 받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받는다 이랬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서 받는다 그 말은 그리스도의 모형이 어떻게 어느 정도 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그것을 심판 받아서 그리스도 모양 외의 것은 이것은 다 제거해 버리고 그리스도의 그 모형대로 된 것만 그때에 남겨 둡니다.
그리스도의 모형대로 된 것만 남겨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리스도가 처음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그때에 일하신 분이 그리스도가 일 했습니다. 또 물 위에 운행하셨다 하는 그분이 곧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또 에덴 동산으로 아담 하와를 인도한 그 영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 하나님이 곧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또 아담 하와가 뱀에게 꼬여 가지고 범죄하여 숲속에 숨었을 때에 찾아오신 하나님이 곧 그리스도십니다. 또 그렇게 범죄한 인류 시조를 짐승의 가죽을 벗겨 가지고 무화과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있는 것을 벗기고 가죽 꺼풀을 벗겨 가지고 입혀서 그의 몸의 안보를 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영인 그리스도인 그 하나님이 나타나셔 가지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쭉 하나님의 사람들, 노아 때나 그때에 나타나셔 가지고 사람들을 관할하시고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려는 그 역사를 하신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렇게 역사하시다가,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왔으니 그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왔다 그 말은 이 세 가지 직책을 가지고 세 가지 직책을 당신이 행하심으로 인하여 세 가지 직책의 사람들이 만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 하늘의 영광이나 권세나 존귀나 모든 것이 다 무한하신 부요자인데, 무한하신 부요자셨는데 그 무한하신 부요를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그 희생을 하여서 십자가 못박혀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것이 뭐인고 하니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책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을 하시고 당신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났으니 곧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렇게 요한복음 1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람이요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 형상으로 나타나셔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너희들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요14:9) 그렇게 말씀하신 그것이 그리스도의 선지직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정권을 가진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서 악령을 승리함으로 악령은 주님에게 사로잡히게 됐고 그 주님은 악령의 왕이 됐고 악령의 주인이 됐고 악령의 상전이 됐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후로는 사탄이 예수님의 종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사탄은 사람을 왕권을 가지고 해하지를 못했고 상전인 예수님의 지배를 받아서 예수님의 이용물로 사탄 노릇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왕권을 가진 사탄의 대적이 아니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점령한 당신의 물건과 같은 이런 마귀를 이용물로 삼아 가지고 우리를 연단시켜서 마귀의 온갖 유혹을 다 분별해서 알도록, 마귀는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대적해서 넘어지게 하나 우리가 기본 구원을 얻어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고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우리들은 기본구원을 얻었는데 기본구원을 얻은 자들이 얻은 기본구원을 버리지 안하고 얻은 기본구원을 귀중히 여겨서 이 기본구원을 받아 가지고 기본구원을 받은 자로 살면 악령의 유혹이나 대적이나 그 모든 것들을 다 감당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정도 한계 내에서 제한적으로 악령이 우리를 대적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것이 뭐인가? 그것이 그리스도의 왕직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귀가 왕 되었던 것을 예수님께서는 그 왕권을 다시 탈환해 가지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하는 권세를 다 가지게 되셨다고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볼 수 없는, 무형의, 완전의, 무한의, 영원의 이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었는데 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알 수 있도록 나타나시는 그 책임을 지신 분이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본체는 하나이신데 하나님이 당신을 이 피조물로 더불어 화합할 수 있도록 그 화합 역사를 이룰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셨으니 곧 그리스도가 나타나 목적을 정하시고 거기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을 하셨고 또 창조를 하셨고 또 보존을 하셨고 모든 것을 주권 의지로 개별 섭리를 하셨고 섭리 중에 그리스도가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우리를 구속해서 완전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을 완성시켰고 의를 완성시켰고 죄를 완전히 없애는, 죄를 완전히 전멸하는 그 일을 완성하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에는 종종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런 말씀을 많이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다 하나님이, 우리가 접할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가까와질 수 있는 데까지, 더 가까와질 수는 없는 거기는 가까워지면 우리가 소멸되기 때문에 그분은 불의를 소멸하는 불이요 완전이 아닌 것을 소멸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제 완전해도 우리의 완전이라 하는 것 '온전케 하려 함이라,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라' 이 온전과, 하나님의 완전과 비하면 우리의 완전이라고 하는 것은 욥이 영감 받아서 약간 말했는데 때묻은 옷과 같다 그렇게 했습니다, 때묻은 옷과 같다. 그래서, 피조물에게, 피조물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탁월한 온전의 그 깨끗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본체를 대할 때에는 우충충충하고 그렇게 어둡고 더럽고 이렇게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완전을 대하면 불완전한 것이 다 소멸되기 때문에 우리의 불완전함으로서의 온전, 제한된 완전. 제한된 완전 이것이 무한한 완전에게 접할 때에는 소멸되기 때문에 소멸을 피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수가 없고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지금도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영원히 하나님은 볼 수 없다 그렇게 당신이 발표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게 아니고 그가 무한히 거룩하고 거룩하고 완전하고 깨끗하고 깨끗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본체를 상대하면 본체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셔 가지고 그렇게 사십 년 동안이나 애를 쓰셔서 연단시키시고 난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다 들립니까? 다 들리면 저 뒤에 손을 들어 주십시오. 네, 아주 이번에 이 마이크 시설을 대단히 잘 했습니다. 이거 돈을 줄라고 하면은 몇 십만 원이 아니고 몇 백만 원 줘야 됩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걸 돈 한 푼도 안주고 공으로 시켰습니다. 이거는 ○○○조사님하고 우리 ○기사, ○집사님하고 둘이 봉사로 이와 같이 했습니다.
제가 소리 때문에 하도 안타까와서, 이래 모이는데 소리가 이거 제일 중요합니다. 소리 안 들으면 아무 소용없기 때문에, 이래서, 본 교회서 소리를 그것을 잘 만들라고 대구 달산 교회집회 가보니까 거게 소리가 잘 돼서 이 소리를 누가 했느냐 이라니까 대구에서 제일 유명한, 유력한 사람이 그것을 설치했다 이러기 때문에 당장 그분을 불렀습니다. 돈을 얼마든지 줄 터이니까 이것을 설치해 달라 이렇게 초대를 했습니다. 그 분이 와가지고서 만들어 가지고 할라고 이리 저리 아무리 해 봐도 '달산교회는 되는데 여게는 안됩니다. 안 되는 이유는 서부교회는 집의 구조가 다릅니다. 이렇게 높고 낮고 이래 공간도 뜨고 이래서 이것 때문에 안됩니다.
별별식을 많이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고만 자복을 하고 가 버렸습니다.
'여기는 못하겠습니다' 하고서 굴복하고 갔습니다. 또 서울에 가보니까 사직동 교회서 그거 잘됐고, 빌리 그레함 목사니 그런 분들 할 때 보니까 그 소리가 잘 나오고, 또 라디오에 들으니까 중앙청에서 발표를 할때에 소리가 좋고 잘 됐기 때문에 이제 서울에 그걸 누가 하는고 해서 그 사람을 찾느라고 애를 썼습니다.
또 그 사람을 찾아가지고 또 해 봤습니다. 또 안 됩니다. 안 되는데 ○○○ 조사님이 자기가 연구를 해 가지고서 의자 밑에다가 뭘 어째 어째 하고 이래 가지고, 오랫동안 참 뇌심을 했습니다. 그걸 말 안 하는 것은 상급이 좀 줄어질까 싶어서 말을 안 합니다.
이야기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장인이 사위를 보고서, 사위는 그림이나 그리고 있으니까 저놈 못 쓸 놈이라고 자꾸, 예술이나 하고 화가가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렇게 업수이 봤는데, 그 사위가 병풍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병풍을 하나, 거기다가 시냇물을 그려 가지고 하나 줬는데, 그거 하나의 신화입니다. 그 장인이 정승인데 장인이 누워 자며 들으니까 시냇물이 꼴꼴꼴꼴꼴 내려가는데 어떻게 기분 좋은지, 그래 '아 그 병풍은 시냇물이 꼴꼴 내려가는 소리가 난다' 이래 놓으니까 그만 어떻게 유명하게 됐는지 그거 병풍을, 아마 요새 돈은, 내가 짐작을 해요, 모르지만 몇 십억을 줄 터이니까 그걸 달라, 몇 십억 가지고 되겠습니까? 몇 백억이라도 줄 겁니다. 이래 가지고서 아, 이 병풍을 팔아 버렸다 말이오. 이제 돈을 잔뜩 받고 팔았는데, 그 사위를 불러 가지고 '야, 나 병풍 하나, 하나만 더 만들어 달라' '예, 그렇습니까? 만들어 드리지요, 만들어 드리는데에는 하나 조건이 있습니다. 이거 하나 만드는데, 오 년을 더 과부 노릇을 해야 될 것입니다. 이 하나 만드는데 오 년 감수를 했기 때문에 한 더 만들라 하면 십 년을 감수해야 되니까 이제 따님이 십 년 과부 노릇을 해야 될 것입니다.
자기 십년 감수하는 생명을 바쳐서 그래 했다고 이래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이 모르지마는, 어제도 ○기사를 혼을 냈습니다. 내고, ○○조사님도 중간반 맡은 조사님인데 혼이 났습니다. 이래도 그거 모르는 것 아닌 것입니다. 서부 교회에 엠프 소리, 지금은 그 돈이 적은 돈이지마는 저 남해 ○○교회에서 그때 뭐 십 몇 만 원인가 이십 몇 만 원인가 받고 있는 것을 오십만 원을 드릴 터이니까 와서 수고를 해 달라고 오십만 원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네가 빨리 복음 전하는 전도사가 될라거들랑 후배를 길러라, 후배를 기르지 않으면 못 나간다.' 후배를 기르라 했는데 후배를 기른다고 한 것이 ○기사가 길러졌습니다. ○기사 마음에는 '내가 내대로 됐지 뭐 내가 배우기는 뭐 배워?' 어림도 없습니다. 그걸 내가 엠프 기사가 아니라도 엠프 기사보다 더 압니다.
그거. 이랬는데, 이제 지금은 혼자 감당을 하고 있습니다.
○○○조사님은 중간반을 책임지고 있는데 중간반 책임지고 있으면서 내가 소망을 어데까지 소망했느냐? 이것이 힘을 쓰고 자꾸 이러니까. 중간반은 그 선배가 서영준 목사님이 지나갔고 송용석 목사님이 지나갔고 다 일등목사가 지나갔는데, 이제 애를 쓰니까 그들에 못지 않게 자꾸, 모자라지마는 애를 쓰니까 자꾸 비슷하게 따라갑니다. 내가 생각에 '아, 저게 내가 죽고 나면 서부교회 후임이 될 것 아닌가? 저게 애를 쓰면 후임 될 것 아닌가? 그만치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목사님이 잠시 ○○○교회 갔다가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 중간반 부장을 내가 시키지 안하고서 부목사로 내가 들여놓을라고 했었는데 그때 또 ○○교회에 그리 가게 되는 그런 일이 있어서 그리 가게 다시 됐습니다.
이래서, 기대를 가졌는데, 이 하루 비둘기가 재 넘어 가지 못한다고 하루 비둘기가 호독호독 거리지만 잿만당 중간에 가다가 똑 떨어져 버립니다.
떨어지는 거 모양으로 이렇게 힘을 쓰고 호독거리는데 벌써 늙어졌다 그말이오.
어제 이 늙어졌기 때문에 내가 혼을 낸 것입니다. 처음에와 같이 그렇게 아주, 지금 혼담이 있는 처녀처럼, 혼담이 있는 처녀는 자꾸 분 바르지 안해요? 분 바르고 닦지 안해요?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예수님으로 더불어 결혼할라고 일편단심에, "지아비를 위해서 예비한 신부 같다" 그렇게 요한계시록에 말씀했습니다. 그렇게 지금 갈급으로 준비하지 안 하고 벌써 어북 쭈글쭈글한 할마이같이 됐기 때문에 내가 야단을 쳤습니다. 야단을 쳤는데, 야단침으로써 그 약발을 받아 가지고 새로 처녀가 됐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처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목사들도 오면 그 목사가 '벌써 저거는 벌써 결혼해 가지고 아이 몇 낳은 삼십 세 되는 부인이다, 오십 세 되는 부인이다, 아들이 많이 자라 가지 그 벌써 육십이나 환갑 진갑이 다 넘은 부인이다' 그거는 망령입니다. 아무 요라면 조랄까 애를 쓰는 그런 무슨 애쓰는 그게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걸 나는 그렇게 평가합니다. 너는 쭈그러진 할마이다 너는 벌써 아이 두 서넛 낳았다, '아이 낳은 나를 어쩔 것이고?' 그러니까 벌써 그 남편에게 대해서 그래 마음먹는 것은 아이 두 서넛 낳고 난 다음에도 이혼을 당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주 교회를 부흥시키고 난 다음에도 그런 교역자는 주님에게 이혼 당해서, 쫓겨 나가게 됩니다. 이거는 항상, 오십 세 돼도 처녀 목사, 지금 혼담 있는 처녀 목사. 육십이 돼도 처녀 목사, 교회가 많이 자라도 처녀 목사, 내가 지금 실지로 만나 보지는 못했지만 조용기 목사에 대해서 나는 장점을 봅니다. 그는 처녀 목사입니다. 그는 지금도 처녀 목사요. 어떤 사람은 뭐 그거 자꾸 소개하니까, 순복음교회 소개하니까, 나는 그 소개를 하고 나는 그분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왜? 그분이 그래 지금 한 오십만이 됐는지 몰라도 다 조롱을 하지만 저거는 근방에 가지도 못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룻밤 노력하는 것을 저희들이 일 년 해도 노력을 못합니다. 그만치 노력을 하고 있는 처녀입니다. 그분 뭐 하는 걸 봐도 한 번도 '이제는 됐다' 교만하고 망령부리고 오만한 자리 앉아 가지고 그렇게 늙은 추태를 보이는 것이 없고 항상 처녀처럼 애쓰는 그런 거 봤습니다.
우리 진영에는 지금 내가 볼 때에 처녀 목사가 몇 없습니다. 처녀 목사가 몇 없고 처녀 조사도 몇 없습니다. 딴 데서 이동해서 가면 이동해 가고 난 다음에 어떤 교역자는 한 달 동안은 처녀 목사 됐다가, 처녀 조사 됐다가 석 달 지나면 달라집니다. 내가 자랑하는 게 아니라 아마 우리 진영 목사 중에 처녀성은 내가 제일 앞섰을란지 모릅니다. 나이는 제일 많지만 왜? 여러분들보다 내가 힘을 더 씁니다. 나는 예수 믿은 후에 옛날을 지나고 지금 내가 자꾸 이래 보면서 제일 마음에 갈급하고 마음에 무거워지고 내게 자꾸 단점이 자꾸 많이 나와서 자꾸 죄인 돼 가는 것이 그것이 자꾸 좀 더 돼 갑니다.
이것도 여러분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봅니다. 나는 내 말 안 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이건 모든 교역자들이 다 벌써 얼마만 되면 다 살만 번드르. 살. 물론 은혜 살도 있지만 번들번들 찌고 몸만 자꾸 살로 뚱뚱해지고 그만 뭐 뒤적거리고 어쩌든지 요래야 편할까 조래야 편할까 어째야 편리할까 도무지 자꾸 좋을 것만 생각하지, 어떻게 해야 주님께 대해서 내가 지금 올바른 자가 될까 하는 그런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마음이 눌리는 그것이 없어진다 그말이오.
내가 몇을 봅니다. 저기 처녀 목사인데 저 처녀성을, 나는 그렇게 주장 가져.
일등 처녀성, 암만 어려도 일등 처녀성이면 내가 말하기를 저것이 우리 진영에서는 제일 앞서는 큰 교회를 목회 할 수 있고, 어떤 사람 말하기를 '아, 교회는 이삼백 명 더 이상이 되면 그거는 정상이 아니다. 대교회주의니까' 대교회주의 안 된다는 너는 대교회를 못 해! 죽어도 못 해! 어림도 없어! 공연히 그라며 죄나 짓고, '나는 대교회를 만들지 못하니까 나는 죄인이다' 이렇게 회개를 해도 뭐 될똥말똥 할 것인데 오히려 대 교회를 빈정거리고 소교회 그것이 옳다고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목사들 많이 있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주님께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저주를 줍니다. 저주를 주요. '이 밉상스러운 놈아! 네가 얼마나, 늙어서 그렇지 내가 권리가 유한하냐?' 자꾸 은혜가 많으면 자꾸 모아들고 이제 참으로. 그러면 예수님이 지금 오셔 가지고 목회를 하신다면 뭐 세계가 모아들어 가지고 한국에 왔으면 한국에 차고 뭐고 막 꽉 찼을 것입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예수님이 뭐 목회하면 이삼백 명만 데리고 있을까요? 거기 그때 벌써 모인 것이 오천 명이 됐으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얼마입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오억만 명도 더 된다 그말이오.
이래서, 저거 처녀 목사니까 저게 이제 될거다, 처녀 목사면 자꾸 부흥됩니다.
부흥되는데, 보면 그만 그 목사가 벌써 구멍 가게 다 만들어 가지고 수지 다 계산해서 이만하면 자녀 교육도 시키겠고 이만하면 옷도 해 입겠고 이만하면 밥도 먹겠고 이만하면 여비도 가지겠고 이만하면 다 됐다 이러니까 이거 아들 딸 다 낳고 시집 장가 다 보내 줬으니까 '뭐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 낳은 나를 어짤 것이고? 아들이 저렇츰 다 지금 장성해졌는데 날 어짤 것이고?' 그래 가지고 실패한 얘기가 한 마디 있습니다. 뭐이냐 하면 어떤 환갑 진갑 다 지내 놓고 난 다음에 이제야 날 어짤까이 하고 이 할마이가 젊을 때 실수한 것을 딱 말했다 그말이오. 말하니까 그 영감이 그만 이혼할라 합니다. 자녀들이 암만 말려도 기어코 이혼했단 말이 들립니다. 기어코 이혼을 했어요. 아들 딸 손자까지 많이 낳았지만 기어코 이혼했어. 좋은 실화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예화라고 생각이 돼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목사가 벌써 죄인의 자리에 서지 못하고 죄인 자리에 옮겨서 자기 의인 자리에 섰고. 자꾸 설교하고도 또 가루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루었다 가루었다, 하나님 은혜를 가룬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이제 하나님 은혜를 충족히 전했다' 마치 겨자씨 비유에 이제 자기가 자기 한 일이 자기에게 보이니까 우쭐해지고 나 한 일을 안 알아주는가 대우 안 해 주는가 이렇게 벌써 생각하는 그것이 돼 있으면 다 헛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처녀 목사는 아가서에 보면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창틈으로 나를 엿보고 있다' 그렇게 한 성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처녀 목사요 이것이 처녀 신자입니다. 이거 지금 혼담이 있으니까 이때야 지금 자꾸 혼담이 있으니까 이렇게 다듬을까 저렇게 다듬을까? 오고 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어떻다고 이랄 터이니까 실컷 다듬소. '신부가 지아비를 위해서 단장 한 거와 같더라 예루살렘이 그와 같더라' 예루살렘이 그와 같다 말은 하나님의 교회가 그와 같다는 그말입니다. 창틈으로 보는 것, 자, 사랑하는 아내가 마당에 돌아다니고 뜰에 돌아다니니까 딱 대면해서 보면 봤기 때문에 뭐 수습을 해 가지고 뭐 정신 딱 차리고 이랄 터이니까 그 진상을 보기 위해서 문에다가 문종이에다가 바늘로 하나 딱 구멍 뚫소. 바늘 하나 구멍 뚫으면 밖에서 보입니까? 안 보이지.
거기다가 동공을 대고 딱 보면 다 보인다 그말이오. 보이면 자기 아내가 이리 돌아다니고 저리 돌아다니고, 지금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남편이 보이면 긴장하지만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덤빕니다. 그걸 다 본다 말이오. 다 오니까 그 진상이 마구 '저 외식으로 이렇게 하지만 속으로는 저런 사람이로구나' 이래 알기 때문에 이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하는 주님이 창틈으로 나를 엿보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어디서 지금 날 보는가' 항상 주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이와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은 주님이 보시니까 자꾸 고친다 말이오. '아, 주님이, 주님이 보신다.' '여기 옷이 떨어져서 구멍이 나왔다. 아내가 남편, 지금 약혼할라하고 있는 남편이 보는데 아이구 머리가 너불너불하다. 아이구 고대를 안 했다. 뭣 낯에 검정이 묻었네. 또 내가 걸음걸이 이런 것도 찌빽찌뻑하니 안 됐다' 더 얌전스럽게 요래 가지고 요래 요래 하며 어쩌든지 맵시있게 이래 걸을라고 애를 쓴다 말이오. 이 모양으로 주님은 나에게 흠점을 항상 보고 계시니 어디서 보고 계시는지 모른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항상 보고 계시니 자꾸 그저 자꾸 고칠 거밖에 없고, 잘못된 거밖에는 없고, 불충성한 거밖에는 없고, 이라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나는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아이와 같이 무능한 자라'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으나 이러므로 내가 죄인이라, 모든 것을 아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의 심판 앞에 내가 설 터이니까 이러기 때문에 항상 걱정이라' 이래서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고민한다' 이랬어. 자. 무거운 짐을 지면 처음에 무겁습니까 뒤에 무겁습니까? 차차 무겁다 그말이오. 예수를 믿어서 나이가 많아져 갈수록 자꾸 짐이 무거워지고 마음이 더 눌린다 말입니다.
왜 그런데 목사는 왜 자꾸 마음이 안 눌리고 '이만하면 됐다 하고 배짱을 부리고, 배짱을 부리고 큰 소리를 하고. 하나 봐야 처녀성은 한 내끼도 없고 이건 마구 깡패성이라. 이제 술 먹고 이래 가지고 뭐 거석하면서 뭐 내가 거석하니까 마구잡이로 사는 그년, 마구잽이로 사는 그런 여인, 여자 깡패, 여걸, 여자 부랑자 이런 거 모양으로 그러니까 주님을 어떻게 만날 것입니까? 주님이 어떻게 그런 자를 붙들고 일하시겠습니까? 그런 자를 붙들고 일해 가지고 교회가 좀 커 놓으면 옆에 사람 다 죽이구로? 그자에게 배가 고프지 안하고 배가 부르면 다 그만 뭐 옆에 사람은 그 서슬에 살지 못할라고? 회개해야 돼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참 좋은 말씀 나왔습니다. 이 교역자들 어쩌든지 처녀성을 되찾으십시오. 예수님으로 더불어 지금 약혼해 놓고 결혼할 터인데, 이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으로 더불어 결혼할 사람들이 결혼 준비하고 있는, 우리는 '약혼한 처녀들입니다. '신부가 지아비를 위해서 단장한 것 같다' 이것이 우리의 정상입니다.
그래 엠프 기사로 나오다가 고만 이렇게 쭈욱 나왔는데, 공을 몰라준다 그 그러니까. 이게 꼭 공을 몰라 줘도 가만히 덮어두면 이게 뒤에 가서 툭 나오면 참 좋기는 좋을 터인데 이걸 말 안 해 주면 이거 삐꾸고 돌아가 그 자꾸 깨뜨려질 터이니까 . 아주 깨버릴 터이니까 할 수 없어서 복을 좀 감할지라도 조끔 말해 줘야 돼. 조끔 말해 줘서 칭찬하면 성경에 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서는 받을 상급이 없다 했지. 적다 했어? 그렇게 성경 보면 안 돼 그것도 할마이가 돼서 그래. '요 말한 거 요거 틀리나 어쩌나' 하는 요래 돼져야 되지 뭐 '틀려 봤자, 또 틀리기도 하지 뭐' 이래 되면 그게 내나 할마이 목사라.
따라 합시다. 할마이 목사! 처녀 목사! 할마이 목사! 처녀 목사! 이제 간판을 붙여 놔서, 이제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을 때에 '아, 우리 목사님이 요새는 할마이 목사가 자꾸 돼 간다 늙어 간다. 아 자꾸 우리 목사는 자꾸 젊어져가고 자꾸 처녀가 돼 간다.' 이래야 교인도 살고 교역자도 살고 다 서로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우리가 접하기 쉽도록 그렇게 애를 씁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요 완전하신 분이시요 지극히 크신 분이신데 그분과 우리와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에 우리가 몰라. 그분에게 지음을 받았지만 우리는 그분을 몰라요. 그분을 모르기 때문에 그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이 모양으로 저 모양으로 자꾸 역사해서 나타내시기 위해서, 당신을 나타내 보일라고 하기 위해서 이런 역사 저런 역사를 했는데 그 역사를 가리켜서 둘로 나누어 가지고 하나는 자연을 통해서 나타내 보여서 자연 계시라고 하고. 하나는 특별히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하셔서 특별 계시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자연 계시는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창조와 모든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인간들의 형형색색의 모든 인간들의 마음의 구조 이런 것들이 다 하나님이 내신 자연 계시입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 그게 전부가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소.
하나님을 이 모로 알리고 저 모로 알려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이 이 모든 거로 어떤 분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로마서 1장에 '만물을 보아서 그를 알지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락하기 전에는 이만해도 다 심령이 밝은 사람들은 됐었는데 타락하고 심령이 어두워지니까 부득이 해서 또 특별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특별 계시를 주셔 가지고도 또 안 되니까 또 성신의 감동으로 이렇게 하셔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쩌든지 우리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하나님을 알도록 할라고 애를 씁니다. 하나님을 알면 뭐 할라고? 하나님은 참 우리에게 그분 한 분이면 다요 전부요 하나님의 뭐 지으신 것이 많이 있지만 그분 한 분만이면 지으신 그거보다도 크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이분을 모르기 때문에 안타깝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서 우리가 푸근하게 그분의 품안에 떡 안길 수 있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 말이오.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릴라고.
그분이 또 모든 거 다 가지고 그분의 부요를 알릴라고, 그분이 부요하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게 없다 말이오. 그분의 부요를 우리에게 알려 줄라고, 또 그분의 지혜를 알릴라고 그분의 능력을 알릴라고, 이것만 알려주니까 자, 좋은 것만 알려 놓으니까 버르장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또 거룩을 알려. 세밀히 구별하시는 구별을 알릴라고 이래 가지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질투라, 하나님은 미운 것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저래서 우리에게 나타내셔 가지고 나타낸 것은 어쩌든지 하나님과 우리와의 대립되지 안하고 거슬리지 안하고 그분과 하나 되면 그분의 전부가 다 우리 것 됩니다. 그분이 만드신 것은 영계 것도 있고 물질계 것도 있고, 크게 나누면 이 두 가지. 영물도 있고 이 물질의 물질도 있고 이런 것인데, 이것은 다 그분이 만들었는데 우리를, 그분을 아는 것을 따라서 점점 우리의 지위를 높여 가지고 지위를 높여서 그분과 가까이 해 가지고 마지막에 목적하고 원하는 것은 그분 자존하시고. 그분 밑에 모든 만물들이 있고, 영계나 물질계나 천군 천사들도 다 있고, 만물 위 하나님 아래, 이래서, 만물은 하나님의 발등상을 삼으셨고 만물 위 교회를 하나님의 몸으로 삼았다 이랬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데 교회의 머리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은 머리되고 우리는 그의 몸 되고 만물은 모두 우리의 소유가 되고 우리가 다 관할하는데, 그러면, 만물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만물은 그가 우리만 하면 족합니다. 만물은 하나님이 없이 우리만 하면 족합니다.
이래서, 만물에게 필요한 것을 모든 것을 영원히 충만케 해 줘 가지고 만물을 얼마든지 모든 것에 행복되게 할 수 있다 말한 것입니다. 뭘로 가지고? 하나님의 것을 받아 가지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해 줄 수 있는 것이 교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위치가 이게 우리의 위치입니다.
이것을 알게 할라고 하나님이 애를 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는데 나타나신 그 과정을 보면 나타나신 그 순서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에 제일 처음에 나타나신 것이 그것이 영감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본체는 아닙니다. 본체는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들이 이걸 잘 알아야 되지 이것 잘못 전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또 이단이라고 또 욕을 많이 할 것입니다. 내가 욕 얻어먹는 게 좋지만 자꾸 이단이라 하면 이 복음이 가리워지고, 이제 교인들이 와서 들을라 해도 '거기 가지 마라 이단이니까 가지 마라' 이란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들 죽는 것이 안타깝다 그거요.
제가 양산동 기도실에 가 가지고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미끔하게 아주 훌륭한 청년이 하나 왔읍디다. 청년이 와 가지고 인사를 하면서 '이거 뭐 할랍니까?' '이거 기도실입니다.' 이라니까 '그러면, 여기는 어느 교파입니까?' '아 교파는 초월해서 누구든지 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라니까 그분이 아주 좋아하면서 수고를 많이 하신다고 참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면서 '수고하십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 이랬는데 나를 묻기 때문에 '네, 저는 백 목사입니다' 이래 놨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렇게 존경하고 이렇게 하면서 '여기는 교인이 없습니다. 나는 여기 어느 교회 다니는데 그 교회에서 주일이면 나 하나를 보고.
우리 가족 하나를 보고 여기까지 차를 보내서 우리 혼자 타고 갑니다. 우리 가족만 타고 갑니다. 맘에 미안한데 좀 전도 좀 해서 다문 다른 사람 하나라도 같이 타고 가야 될 터인데 인제 전도 좀 해 주이소. 전도 좀 합시다' '예, 하지요. 앞으로 여기도 믿을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내가 그라니까 그분이 좋아서 기대를 했는데.
그 이틀인가 지내고 난 다음에 그분을 길가에서 만났다 말이오. 길가에서 만났는데 먼데서 보니까 그분이라. 나는 지금 반가와서 이렇게 반가와서 인사할라 하는데 거기서부터 뛰어요. 거기서 막 뛰어요. 뛰어 가며 이래 가는데 내가 옆에 쑥 지나가면서 내가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이라니까 '예' 이라고 뛰어가 버려요. 내 마음에는 알긴 알았지. '저기 또 약물 먹었구나. 쑥물 먹었구나' 알기는 알면서도 '아, 운동하시는구먼요, 내 이랬지. 미안할까 싶어서 '운동합니까' 이랬다 말이오. 그래 인제 아침 운동하는 양 가버렸다 말이오. 그 다음에는 또 내가 보니까 저기 오는 데 보니까 이리 오기는 오는데. 그리 오기는 분명히 올 사람은 올 사람인데 저리 길을 달리해서 달리 가더라 그말이오. 아마 똑똑히는 모르지만 '그거는 이단자이기 때문에 인사도 말아라. 인사도 말라고 하지 안했느냐? 말을 대화를 하지 말아라' 아마 그렇게까지 단속을 한 모양이라.
그러니까, 그 교회는 분명히 쪼그만한 교회일 것이요, 그 교회가 절대 부흥이 안 됩니다. 왜? 성령을 훼방하는 게 뭐이냐면 옳은 것을 훼방하는 게 성령을 훼방하는 겁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 자기 교인 하나 그리 뺏길까 그 욕심을 가지고 안 뺏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성령의 소욕이 아니고 사욕이라 그말이오.
여기 있는 사람이 어디 가든지 가 가지고 구원 잘 이루면 좋고 또 자기에게 없으면 딴데. 아이가 있는데 젖이 안 나오면 여기 와 있을 거라. 어머니가 죽었다 말이오. 아버지가 있는데 아버지 젖이 나오요? 아버지 젖을 암만 빨아 봐야 안 나온다 말이오. 안 나오니까 아버지가 자꾸 다니면서 젖을 얻어 먹여 키웠어. 얻어 먹여서 지금 여기 와 있는데 아마 ○○○라는 그 집사가 여기 와 있을 거 야. 젖을 아버지가 얻어 먹였어요. 내가 그걸 봤어요.
이러니까, 그 아버지가 가만히 보면 벌써 자존심도 있는 사람인데, 저 젖 많은 사람이 있으면 그만 오면 '아이구 오십니까?' 이렇게 하고 뭣 좀 드려라 뭣 좀 드려라 자꾸 이래 대접해. 이라면 저 사람 속으로, '아나, 젖 좀 한번 좀 빨아 먹어라' 하며 젖을 먹여 주요. 젖 달라 소리는 안 하고 자꾸 대접을 하고 뭐 친절히 하고 이래 쌓는 것은 젖 좀 얻어 먹일라고 하는 것이오. 그래 젖을 얻어 먹여서. 얻어 먹여서 키웠고, 또 젖이 없으니까 그때는. 요새는 뭐 좋지만 그때 벌써 사십여 년 전이기 때문에 그런 게 없는 때입니다. 이라니까. 자기가 밥을 넣어 가지고 입에다 씹어요. 입에 씹으면 침하고 씹으면 그게. 저 새들도 그래 키웁니다. 씹으니까 그거 벌써 소화가 다 되는 거 아니오? 젖이나 거의 같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걸 암죽을 끓여서 먹이고 이래 가지고 이래 길렀는데, 그런데, 길러 가지고 어북 뚱뚱하니 신체가 건강합니다. 신체가 건강하고 자녀도 많이 낳았고 집사고 예수님을 잘 믿습니다. 믿는데. 그걸 보고 그거 참 어머니는 제 젖통에서 나와 가지고 먹이지만 얻어 먹이는 것은 공력이 더 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너거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키운 것을 잊지 말아라' 내가 감동을 받았어. 제 새끼 제가 낳아 가지고 젖먹여 키우는 건 그래 감동 안 받는데 그렇게 얻어 먹이는 것은 감동이 되는 것이 '참 자녀에 애정이 저렇게 크구나. 참 자녀를 위해서 수고를 많이 했다' 거기서 그 어머니의 공로와 수고를 미루어서 제가 많이 깨닫고 좀 알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게 젖이 안 나오면. 제가 하나님의 말씀 먹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제가 그대로 실행하고 경험하고 체험한 그것을 신앙 간증으로 이제 교인들에게 먹여 주면 그게 젖이라 그말이오. 말씀대로 자기가 살고 말씀대로의 행위가 되고,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지고. 거기서 자기의 경험하고 체험하고 자기가 이루어진 그 구원을 간증 설교를 이와 같이 할 때에 그게 젖이 된다 말이오. 이런데, 이래 못 먹일라거든 여기 가서 저기 가서 부지런히 좇아다녀요. 좇아다니며. 벌로 좇아다니면 쑥물 먹습니다. 쑥물 먹으면 죽어.
보면 안다 말이오. 이거 먹으면 이거 내 양에게, 내 새끼에게 이거 먹이면-이거 살이 찌겠나 안 되겠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말이오.
알 수 있는데, 양에 해가 되겠느냐 살이 찌겠느냐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이걸 하면 내게 유익이 되겠느냐 안 되겠느냐 양떼들이 나에게 인기를 끌어서 나에게 집중해서 나를 대접하겠느냐' 저 대접할 연구만 하고 있기 때문에 그거 그것이 뭐이냐 하면 양의 껍질을 입은 뭐입니까? 이리! 또 그게 뭐입니까? 절도! 또 강도!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절도 목사, 강도 목사. 이리 목사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떻게 하면 그 양떼들에게 살이 찌고 영양이 되고 유익이 될까 이거는 생각지 안하고 '어째야 인기를 끌꼬?' 이래 가지고 인기 끌 연구만 하니까 전부 외식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고, 성령이 같이 하지 안하는데 무슨 소용 있습니까? 성령이 같이 하는 데는. 성령 같이 해 달라고 부탁도 안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칭 와 가지고 그걸 하겠소? 구하라 주시마고 계약을 선포를 해 놨는데.
그러기 때문에, 얻어다 먹이는 거 그거 공이 더 큽니다. 어떤 사람 보니까 그래요. 이제 세상 떴는데 홍순철 목사님은 얻어다 먹이오. 자기에게도 있지만 젖도 많이 나오기는 나오지만 얻어다 먹인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저 ○○○교회 있을 때에 막 교인들을 독촉해 가지고 전부 다 데리고 옵니다. 자꾸 가자고 이래 해서, 자기에게 대해 은혜 받고. '다른 데 가지 마라, 나한테 은혜 받아야 되지.
나는, 내가 은혜 살며시 가서 받아 가지고 와 가지고 이거는 내 은혜라 이래 가지고 할라고 하는 그것도 좋아요. 그것도 열심히만 하면 좋습니다. 뭐 누가 하든지 관계없으니까 열심히 하면 좋지 않습니까? 이래라도 하든지, 그래 하는 것보다도 그라면 데리고 가요. 자꾸 '가자.' 왜? 누구에게 배운 사람을 알 때에 은혜가 더 되는 작용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 사람이 죽어도, 우리가 뭣을 할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 대단히 심령이 밝아지고 분별성의 지혜가 됩니다.
또, 제가 종종 '주남선 목사님은 이럴 때에 어떻게 했을까?' 내가 이렇게 생각하면 뭣이 참지 못하고 부애가 나 가지고, 나는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이럴라 할 때에는 '주 남선 목사님은 어떻게 하셨지?' 이래 생각하면 주남선 목사님은 암말도 안 하시고 그저 꾹 참으시고 있으니까 주 남선 목사님을 생각하면 내게 인내성이 새로와집니다. 인내성이 움이 돋아나요.
내가 만나지 못했지만 주기철 목사님이나 이기선 목사님이나 생각할 때에, 생각하면서 '아, 주기철 목사님은 어쨌을까? 입장이 어렵고 난처했지만 쐈다.' 평양에서 신사 참배 가결될 때에 '이거는 국가 의식이 아니고 우상 숭배입니다!' 고함을 지르고 그라고 난 다음에 묶여 들어갔습니다. 그때에 한국 교회가 다 절단 났는데 그때 그분 이 들어서 그걸 외쳤습니다. 그런데, 외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교인들이 보니까 조선 그때 조선, 나라 국호가 조선이었는데 조선 교회들이 주 모아 가지고 이래 하는데 거기 보니까 큰 용이 한 마리 와 가지고.
이와 같이 지금 입을 벌리고 와 가지고 이와 같이 물라고 하는데 보니까 주기철 목사님이 큰 칼을 빼더니만 치니까 용의 모가지가 달아나 버리더라고. 용의 모가지가 끊겨지니 막 꾸불텅이를 치더라고. 거기서 그래도 한국 교회의 생명이 연장됐다 그말이오.
한국 교회의 생명은 그래도 신사 참배 승리한 사람. 이렇게 저렇게 승리한 그 사람들이 해방 후에 일했고 그 사람들로 말미암아 모든 불이 일어났지, 그 사람들이 한 거기서 일어나 나 가지고 자꾸 이래 일어났지 처음에 다른 데 불이 없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생각할 때에, 어떤 어려운 자리에서도 주기철 목사 생각할때 '아, 주기철 목사님은 이럴 때에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죽기가 두려워서 증거할 거를 증거 못 하는 이런 비겁의 선지자가 되었을까? 안 했다.' 또 엘리야를 이래 생각해 보면 엘리야가 아합 왕으로 더불어 거석할 때에 그때 생명을 찾고 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이제는 아합 왕 앞에 가거라' 할 때에 그 엘리야가 주저하고 지체했던가? 가 가지고 외쳤습니다. 외쳤을 때 그 외침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역사는 깨어지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지자에게는 비겁이 큰 암병입니다. 비겁보다도 더 큰 암병이 없습니다. 선지자에게는 비겁이 첫째 병이요 둘째 병은 그라다 보니까 교만이 둘째 병이요. 선지자는 대개 성질이 급하고 딱딱하고 이라기 때문에 이제 그만 교만해지기 쉬운데. 교만이 둘째 병, 비겁이 첫째 병. 셋째 병은 계속성이 없는, 인내가 부족한 거. 인내가 부족한 거 이것이 선지자의 셋째 병이라.
어제 상급을 묻는데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선지자에게 상을 제일 먼저 베풀었어.
뭐 큰지 작은지는 모르지만 아마 선지자 상이 제일 클 거 같아. 선지자 상은 뭐이냐 하면 선지자는 어떤 게 선지자냐 하면 미리 미래사를 아는 것이 선지자 아닙니다. 우리 한문 글자로 말하면 먼저 선(先)자 알 지(知)자니까 먼저 아는 것이라 이렇지만 선지자라는 그 뜻은 인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것을 과거 것이나 현재 것이나 그런 것을 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나타내는 그것이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그 충만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뭘로 옵니까? 말씀으로 옵니다.
말씀으로 올 때 그 말씀이 돈도 되고 생명도 되고 능력도 되고 다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갖다 주는 것이 그것이 선지자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피조물 그 사이 조화를 잘 맞춰 가지고, 조화를 잘 맞춰 가지고 서로 툭 부딪혀 깨지지 안하고 잘 조화를 맞춰 가지고 하나님께는 사람이 좋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좋도록 이렇게 잘 화합을 붙이는 그 역사 하는 것이 제사장 역할인 것입니다. 왕의 역사는 하나님 한 분의 그 주권 단일 통치를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다 통치해서 통일 통치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 왕의 직책인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에, 이렇게 볼 수 없는 무한히 탁월하신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날라고 애를 써서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줄라고 애를 쓰고 또 우리가 당신을 알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당신을 알 그 또 당신은 우리를 알고 계시지만 당신을 알면 우리가 당신에게 대해서 어떻게 접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이렇게 알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그대로 하면, 하나님은 지성 지공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고 삐뚤어진 거 가지고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든지 우리가 하나님같이 깨끗해지면 자꾸 얼마든지 복을 막 주실 수 있지만 삐뚤어지면 줄 수가 없다 말이오. 죄는 삐뚤어진 것이, 틀린 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래 보면 모든 만물을 볼 때, 요새는 과학이 발달이 돼서 이제 이 모든 만물 모든 식물들에게 대해서, 햇빛이 어느 식물 어느 식물이나 모든 식물에게 다 유익을 주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햇빛을 의인과 악인에게 비춰 주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는데. 이제 그것을 볼 때에 하나님은 만물을 다 사랑하시고 세밀히 간섭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기 없지만 조그만한 모기 한 마리 그것도 모르지만 아마 과학에서, 의학에서 그걸 연구하면 모기 한 마리 속에도 사람이 모를 굉장한 내용의 세밀한 구조가 있을 것입니다.
또 거기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나 하나 모든 식물 하나라도 세밀히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줄이 세밀히 있습니다. 모기 한 마리에게도 하나님과 연결성이 굉장히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이 요라면 요라고 조라면 조라고, 또 식물 하나에게도 하나님과 보이지 않은 연결성이 다 있어 가지고 그분이 요래 함으로써 자라고 조래 함으로 자라고 이 모든 것이 돼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이 하물며 우리들에게 대해서 어떻게 세밀하시며 어떻게 연결돼 있으며 어떻게 우리를 아끼시며 어떻게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어떻게 음으로 양으로 우리가 아는 것으로 모르는 것으로 그의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충만한가 이것을 자꾸 알아 가지고 그런 분인 줄 알고 안심하고 이분에게 떡 달라들면 되는 건데, 암만 갈라 해도, 하나님이 말씀해도 '아이구 가다 죽을라.' 자꾸 하나님 앞에 가지를 못하고 죽을라 죽을라 해 가지고 하나님을 자꾸 멀리한다 그말이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뭐이 멀리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멀리하는 것이 뭘 멀리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이 제일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제일 접하기 쉽도록 가까이 나타난 하나님이 있으니까 그 하나님이 뭐입니까? 이런데, 목사님들은 이걸 잘 모를 거야. 속에 선입적 관념, 못 된 관념이 있기 때문에 잘 모른다 말이오. 그 말이 안 들리지만, 여기는 다 보니까 제일 가깝게 나타난 것이 성경이라. 하나님이 가까이 나타난 것이 성경이라.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인가? 성경이 하나님 아니오. 하나님께서 제일 우리에게 가깝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성경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 부인하는 것이요 성경을 무시하는 것이 하나님 무시하는 것이요 성경을 멀리하는 것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요 성경을 자꾸 사랑하고 찾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 그말이오.
어제 어떤 외국에서 온 친구가 어제 절 만나 가지고 뭘 묻기 때문에, '신학을 공부하는데 목사 준비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래서 내가 거기 말하는 중에 그랬어. '성경을 사귀십시오.' 성경을 사귀어서 성경하고 친해 가지고 성경 떨어지기가 싫고, 밤에나 낮에나 자꾸 성경이, 자기 아내가 자기 사랑하는 남편 사모하듯이 자꾸, 그 말은 내가, 그거는 안 했지만 자꾸 성경에 정이 들어 가지고 성경이 사모되고 애모되고 성경 보면 좋아하고 자꾸 기뻐서 이렇게, 그만 성경하고 친하는 습성을 딱 들여서 성경 떨어져서는 못 사는 것, 결혼의 첫사랑으로, 결혼한 첫사랑에 그 남편이 어디 가니까 그 부인이 빠짝 말라 버리데요. 바짝 말라요. 남편이 어디 가고 나니까 살이 뚱뚱 쪄 가지고 자유 세계 닥쳤다 하는 그런 여자 있는데 그거 못 쓸 여자야. 남편이 어디 외국에 어디 가고 나니까 얼마 동안은 암만 위로해도, '그저 하나님 바라보고 사시오' 이래도 '아, 예. 그렇기를요' 해도 자꾸 얼굴이 마르고 밥맛이 없다 말이오.
보고 싶어서.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하고 정을 들이십시요. 성경하고 정이 들어서 성경을 떠나서는 살지 못하고 성경을 보고 싶고 자꾸 그렇게 되도록 하십시오' 내가 그 말하니까 그분이 있다가 '성경을 볼라 하면 자꾸 봐야 되겠는데, 이성적으로는 봐야 된다고 이라는데 볼라 하면 잠도 오고 이래 가지고 자꾸 성경 보기가 싫고, 자꾸 다른 거는 자꾸 친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고 듣고 싶고 이러고 요새 아이들로 말하면 테레비 요거는 자꾸 보고 싶고 듣고 싶고 하지만 성경은 보고 싶지 않다 말이오 성경하고 정이 안 들어서.
우리에게 제일 접촉하기 쉽게 가깝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무엇입니까? (성경!) 이거 지금 딴데 가 놨으면 성경을 하나님이라 한다고 굉장할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하고 친하면 하나님하고 친한 것이오. 성경과 동행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오. 성경을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오. 성경을 이렇게 높이 섬기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오.
성경보다, 성경보다 쪼끔 나와 거리가 멀어서 성경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사귀어 가지고 그 안에 있는, 더, 더 하나님이 똑똑히 나타나신 똑똑히 나타나신 그 하나님을 내가 만날라고 애를 쓰는데 그 하나님은 뭐입니까? 말씀! 말씀! 자꾸 초절적으로 뛰어 올라가지 말아요. 안 돼요. 말씀! 말씀은 하나님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내게 나타나셨습니다. 말씀 동행하면 하나님 동행이요 말씀 접하면 하나님 접함입니다. 말씀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두려워 떨며 섬기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지식만 해 가지고 이용하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모시는 것이오. 하나님 말씀은 우리보다 위에 있습니다.
성경도 우리보다 위에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내가 모시고 나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게 복종하고 말씀을 섬길 우리들입니다.
이 말씀은, 말씀은 우리 사람 말로 했기 때문에 사람 말로 하는 거, 사람 말로 한 것을 문서로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문서 속에는 사람의 말, 하나님의 말씀, 사람이 말할 수 있도록 나타난 그 말씀이 있었으니 그 말씀이 곧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역사한다 말이오. 이거는 우리가 하나님을 접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만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래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그러면, 성경과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니까 성경과 동행하는 것은 전능과 동행하는 것이 됩니까 안 됩니까? 전지와 동행하는 것이 됩니까 안 됩니까? 병신을 훼딱 고쳐서, 앉은뱅이를 휘떡 고쳐서 빳빳하게 살아나도록 할 수 있는 능력과 동행하는 것이 됩니까 안 됩니까? 이러니까, 어제 어떤 사람들이 여럿이 와 가지고 나를 기도해 달라고. 나를 하나님 앞에 미움받아 쫓겨나도록 할라고 자꾸 애를 쓰고 있다 말이오.
여기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성경으로 나타나, 말씀으로 나타나. 말씀으로 나타나고 난 다음에 더 가까이 보아서 보니까 뭐입니까? 뭘로 나타났습니까? 진리! 진리로 나타났어. 또 진리를 잡고서 더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가니까 뭘로 나타났습니까? 영감! 영감을 가지고 가까이 가니까 어찌 됩니까? 하나님은 계신 줄만 알고 바라보기만 바라보지 가까이 갔다가는 죽어요.
이래서, 하나님의 본체는 우리가 접할 수 없고 하나님이 우리와의 이와 같이 접할 수 있도록 가장 가깝게 이래 해 놨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보여 줄라고 하면 이래 등을 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등을 보고, 앞은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등을 보라 이랬는데 하나님의 등을 보라 말은 하나님의 역사하신, 나타낸 그 역사를 보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것도 내나 볼 수 있는 그 형체로 나타난 그가 하나님이 하나의 계시의 방편으로써 그렇게 신비한 계시의 방편으로 나타난 것이지 하나님의 본체는 아닌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서 또 여기 학자들은 미혹을 받지 마십시오. 빨트는 '하나님은 무한하니까 그분은 접할 수가 없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우리와는 만날 수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만났느냐 못 만났다,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신다' 긍정 부정으로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빨트주의인데 그거는 아닙니다. 이거는 긍정 부정이 아니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나타나시기를 원하고 나타날라고 애를 써서 나타나고. 나타나시되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당신의 본체는 우리에게 나타나시지를, 나타나서 우리에게 접하면 우리가 상하기 때문에 그렇지를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 자가 없고 앞으로도 볼 자가 없다' 이렇게 성경에 말해 놨다 그말이오. 그거는 왜 그러냐 하면 그는 지극히 거룩하시기 때문에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최고로 우리가 가까이 당신을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영감이라 그말이오.
영감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본체는 아닙니다 영감은 본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받아라' '성령으로 중생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성령으로 중생됐다 그말은 성령의 역사로 중생됐다 그말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중생됐다 말은 하나님의 역사로 중생됐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중생됐으면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본체가 계시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이 우리를 살렸기 때문에 그 무한하심은 우리의 뿌럭지입니다. 그 무한하심은 우리를 돕도록 돼 가지고 있고 그 무한하심은 우리와 함께 있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한하심을 우리가 힘입어서 우리가 그 무한자와 같이 그렇게, 무한자가 아니면서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아 가지고 그분이 하신 거 같은 그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도록 되어진 것이 그것이 이제 영감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일 처음에는 성경을 만나고 사귀십시오. 성경을 만나고 사귀고, 초절해 가지고 '말씀' 하지말고, 이제 처음에는 '성경이 뭐라 하노? 내가 성경대로 살아야 되겠다. 성경대로 살아야 되겠다. 모든 우주는 성경대로 된다.' 우주를 무엇이 하고 있습니까? 우주는 성경대로 되고 있습니다. 우주는 성경대로 되고 있소. 우주는 성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주를 이 모든 것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루고 있다니? 무엇이 우주를 이루고 있다 말입니까? 말씀이 이루고 있다 말입니다. 말씀이 이루고 있다 말은 무엇이 이루고 있다 말입니까? 진리가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진리가 이루고 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영감이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래서,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자꾸 기도해 달라고 하는 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느냐? 이번에 사람병을 완전히 고쳐서.
사람병 고치는 것은 사람병은 무엇이 사람병인고 하니 영병이 사람병이요, 마음병이 사람병이요, 몸의 병이 사람 병이니까, 몸의 병은 그거는 뭐이냐 하면 행동병도 몸에 들어갔고 마음 병은 마음 자체도 잘못된 게 병이고 마음의 작용들이 잘못된 것도 마음의 병인 것입니다. 이 병이 든 것을 하나님께서 요번에 완전히 고쳐서 그리스도의 모형이 꼭 되도록,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우리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던지 우리를 보고, 모든 사람이 보고 '하,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된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찬미된다는 것은 우리를 보고 모든 사람들이 보고 '하! 하나님이' 하나님을 찬미,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찬미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찬미가 된다고, 이렇게까지 깨끗하고 깨끗하고 온전케 이렇게 고치시는뎨, 이렇게 고치시는 것은 누가 와서 고칩니까? 하나님이 고치시지요.
하나님이 고치시요. 하나님이 고치는데 우리가 가장 접촉하기 쉽도록 당신이 우리에게 나타나 주셨으니 그게 뭐입니까? 성경! 성경은 책인데, 이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접촉하기 쉽도록 나타나신 것이 성경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우리가 접하기 쉽도록 나타나신 것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신성은 하나님이신데 신성과 인성이 일위가 돼 가지고 요리 보니까 사람이요, 요리 보니까 사람이니까 사람에게 딱 붙어 가지고 이래 보니까 신성에, 접하기를 신인 양성 일위같이 접한 거와 같이 내가 인성을 통해서 신성을 접하게 되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 우리가 영병이나 마음병이나 고기덩어리병이나 이 병은 누가 고치느냐? 백 목사가 고쳐 주요 하나님이 고쳐 주시요? 자, 백 목사가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하나도 없네요. 왜 그런데 나한테 자꾸 말하고 있어요? 안 돼요, 그라면 큰일나요. 예를 들면 말이요.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이 직접 오셔 가지고 고쳐 주실라고 애를 쓰는데, 고쳐 줄라고 오시는데 고쳐 줄라고 와서 애쓰는 그분만 영접하면 돼요. 그분 붙들고, 그분을 붙들고 '고쳐 주십시오' 이라면 된다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와 가지고 고쳐 주실라고. 당신이 와서 고쳐 주실라고 이제 당신에게 붙들고 '고쳐 주십시오' 이라기를 원하는데 백 목사가 있다가서 쭉 가로 나와 가지고 나서 가지고 '하나님이여 이 사람 고쳐 주십시오' 이라면 하나님이 뭐라고 해? '이 건방진 새끼야, 건방진 새끼야. 나서' 이럴 거라 말이오. 요새 아이들 말로 '빨리 사라져' 이럴 거야, '빨리 사라져.' '지금 나하고 직접 교제를 하고 직접 관계를 맺을라고 하는데 네가 뭐 사이에 들어 그라느냐? 너 할 일은 지금 날 소개할 것 뿐이라. 날 소개해.' 여러분들, 지금 내가 성경을 소개하는 것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성경 만나 가지고, 이제 여러분들이 성경 만나 가지 고 가 일을 해결을 지워요. 이제는 '주여? 내가 성경대로 살겠습니다. 성경 모시고 살겠습니다. 성경과 동행하겠습니다. 성경대로 살겠습니다. 성경이 인도하면 죽든지 살든지 하겠습니다. 성경의 것이 되겠습니다. 이라면 그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신, 우리에게, 성경으로 우리에게 접하기 쉽도록 나타나신 그 주님이 오셔 가지고 그것을 고쳐 줄 거라 말이오. 고쳐 주시는데,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고쳐 주실 수가 있어 이거는 예수 믿지 않는 자는 이것만 하면 병 다 낫아.
이러나, 이거는 예수 믿기를 입학을 해 가지고 좀 안다 그말이오. 아는 자는 그거 가지고 안 돼, 이러니까, '아, 이제는 내가 성경을 어겼습니다. 성경을 반대했습니다. 성경을 무시했습니다. 이 죄를 회개합니다.' 회개하면 주님이 기뻐하시지요 기뻐하셔서 기뻐하시지만 아직까지 만족이 없습니다. 이라니까, '주여. 내가' 이라다가 이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무시했습니다. 말씀을 어겼습니다. 말씀을 배반했습니다. 내가 이제 현실에서는 말씀을 배반치 아니하고, 말씀을 배반치 않고 말씀과 내가 꼭 동행해서 말씀 인도를 받겠습니다.' 이라니까 어떤 자에게 대해서는, 저기 목사 할망타구 또 하나 있다. 우리 ○○○목사, 어서 처녀 돼. 할마이 되지 말고 처녀 돼. 졸았는지 안 졸았는지 내가 그거는 모르지만 뭐 입을 이래 가지고 하니까, 안 졸았어? 안 졸았으면 돼. 안 졸아도, 태도가 그래. 막 이래 가지고 막 이를 갈아붙이고, 이를 갈아 붙여야 돼요. 보니, 보면 얼굴에 지금 간절해서 막, 이제 '이거 놓으면 죽는다' 이라고 막 달라붙어야 되지, 뭐 슬슬 이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는 헛일이라.
주님은 우리에게 뭘 원해요? 이리 가운데 있는 양떼가 이리가 두려워서 목자에게, 가시덤불이고 뭐고, 개울이고 뭐 가시덤불이고 그것도 모르고 구렁텅이도 모르고 마구, 이리가 무서우니까 밑에 가시덤불이고 구렁텅이고 개울이고 그것도 보이지 안하고 목자에게 달라붙는 거 이걸 원한다 말이오.
죽든지 살든지 그것도 생각 안 하고 막 달라붙는 거 그걸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이래 그런 걸 가져야 되지 이제까지 암만 말해도 그 사람이 되기는 커녕 이거는 전부 할마이가 돼 가지고 이제 뭐 '아이 낳은 날 어째, 환갑 지난 날 어째?'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할마이 목사들이 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탈이라 그말이오. 다 처녀로 다시 새로와져 버려요.
이제 성경과 동행하니까, '이거 내가 성경을 내가 무시했습니다, 성경을 내가 애독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내가 가지고 다니지 못하고 성경 가지고 다니는 걸 부끄러워하고 내가 성경 안 가지고 다녔습니다' 우리가 기도제목 가운데 성경에 대해서 첫째는 뭐이지요? 예? 또? 마지막에는? 마지막에 넷째는 성경을 언제든지 가지고 다닐 것. 이랬는데, 이제 성경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가지지 못한 그것을 회개를 하면 주님이 좋아서 '아, 그래 됐어. 왔어?' 이래 인사하고. '됐어.
왔어?' 이라며 인사하지만 속에 마음은 주지 않습니다. 마음은 주지 안해요.
이제 처음으로 믿는 사람은 그만하면 벌써 병 다 나아요. 이걸로 병낫아 줘.
이제 성경으로 온 그 주님에게, 병 고침을 받을라고 애를 써야 되지 백 목사 가지고는 안 된다는 그걸 알아야 돼. 만일 내가 그때 기도해 주면 '이 건방진' 그게 '건방진' 하나님은 그렇게 안 하지만 내 입으로서는 '건방진 새끼야, 어서 꺼져, 어서 날아가 버려. 어디라고 속에 들어가지 그 얼청거리고 있어?' 주님이 그리 할 거라 그말이오. 이거 밉상이라 말이오. 내가 그걸, 지혜가 있기 때문에, 지혜를 그때 하나님이 열어 줘서 그걸 내가 안 하거든 '아이구, 나 하나님 앞에 쫓겨납니다. 안 됩니다. 어찌 됐든가 하나님 직접 만나 가지고 이제 고침 받으십시오' 그래 가지 그 보내니까 그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옳다 이렇게 생각했는지 혹 '아, 기도 안 해주고' 그렇게 하지 안했는가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는지, 내가 그 때에 그렇게 기도 안 해 준 것이 옳고 기도해 주면 내가 간교한 인간이 된 것이라. 간교한 인간. 간사한 말 안 할라고 간교한 일 안 할라고 그게 내가 밤낮 기도인데 내가 그 일은 할 수가 없어. 말씀을 들어 깨달을 때에 돼 성경을 영접하면 돼. '주여, 이제는 내가 이제는 내가 가 가지고 모든 서적들 다 버리고 성경을 애독하겠습니다. 성경에 내 죽고 사는 것이 있는 걸 알았으니까 이제는 성경을 놓지 안하고 성경을 떨어지지 안하고 내가 성경을 따라서 살겠습니다.' 이라면 그만 병 확 다 나았어, 이제 처음으로 온 사람들 그거 가지라고요. 그거 가지면 그만 병 다 나아요. 그렇게 작정하면 병 다 나아.
쪼끔 믿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라면, 말씀대로 가지고 안 돼. 안 되고, '아, 내가 이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내가 괴롭든지 즐겁든지 주님의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만해도 병 나을 자는 병 낫는다 말이오. 어린 신앙은 그만 해도 병이 나아요. 그보다 더 장성한 신앙은 말씀이 아니고 '내가 진리대로 살겠습니다.' 말씀과 진리와 달라요? 어제 ○○○교회의 어떤 청년이 와서 하나 묻는데, '말씀과 진리와 영감이 다릅니까?' 이래 물어. 그거 대단히 좋은 청년이야. 좀 구별하며 들으니 그래. 뭐 구별 안 하고 그만 예사롭게 그래서 듣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속에 꽉 박히지를 안해요.
말씀과 동행해서 병 나을 사람. 진리와 동행해서 병 나을 사람. 그러면, 말씀은 진리 아닙니까? 곶감 접말 하네. 말씀과 동행하면 진리와 동행이지 뭐 그래? 달라요. 그러면 말씀은 진리 아닌가? 말씀이 진리입니다.
이런데, 진리와 동행한다는 것은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그 사람의 진리입니다. 이게 그 사람의 진리요.
요한 1서 2장에 '성경은 사람들에게 배우지만 네가 어떻게 행할 것은 사람들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네 속에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가르쳐 주나니 그대로 거하라'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진리입니다. 모든 성경은 진리나 자기에게 해당된 진리는 다 아닙니다. 자기에게 해당된 진리는 자기 현실에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 진리는 하나님의 뜻이오. 그 뜻을 찾아 가지고, 그래도 병 안 낫는 사람은 이제는 내 현실에서 내게 대한 내 진리,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내 현실 거기에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 '내가 그거 찾아 가지고 그대로 살겠습니다' 할 때 병 다 나아. 이만하면 다 나아.
이래도 안 낫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주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 수준이 높은 사람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되 그래 가지고 안 나아.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함 가지고는 안 나아. 그 위에는 뭐입니까? 영감.
뜻이지만 '하나님의 성신의 감동이 같이 하는 성신이 나와 동행하는 여기서 살겠습니다' 할 때 그 병은 낫는다 그거요. 알겠소? 이러니까. 병 낫는 법이 이것이니까 여러분들 무슨 병이든지 안 나을 병이 없어. 앉은뱅이도 나을 수 있고 문둥이도 나을 수 있고 암병도 다 낫고 뭐 전부 다 나을 수 있어.
지난번에 대구 집회 때에서 하나님이 은밀한 역사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역사. 다른 사람 못 봐도 본인은 볼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본인이 말해서 볼 수 있는 것 그런 역사를 나타낸 그것만을 기록하라 했는데, 기록해서 본인들이 그것을 기록해서 냈는데 기록해 낸 것을 보니까, 병 종류가 일백 이십이나 나왔어. 병도 많은 모양이라. 일백 이십 종류 병이라니까 병도 참 여러 종류가 있어. 백 이십 종류. 또 낫기는 몇 개나 나았어요? 육백 십 팔 명이라. 한 사람이 서이도 너이도 나았어. 이러니까, 육백 십 팔 명을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 말이오.
이래서 그것을 내가, 그 전에는 무슨 관념을 가졌더냐 하면 관념 가지기를 잘못된 관념으로서 이제, '그런 뭐 표적이니 그런 이적이니 그런 것은 그거 초대 교회에 있지 지금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신학자의 말을 내가 들었다 그말이오. 신학자는 제일 최고의 성경 알고 가는 사람인 줄로 이렇게 알았었는데 그들이 그렇게 말해. 그렇게 말해서, 나는 처음에 믿을 때에 이라니까 표적이 나타나. 문둥이도 위해서 기도하니까 문둥이가 낫고 앉은뱅이도 다 나으니까, 낫고 이랬는데. 이제 그라니까 집회할 때 뭐 이런 사람이 주 모아들고 이라니까, 이거 이라니까 오히려 구원 운동이 안 되고 틀리겠다. 이래 가지고 그때 그걸 자꾸 옆에서 들어오길 모두 다 직접 안 들어오고 간접적으로 오기를 '아, 표적 나는 그거는 위험하다. 그거는 지금 하나님 역사가 아니다' 자꾸 이래 쌓고, 그거는 가치 없고 말씀만 말해야 가치 있는 것으로 자꾸 이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걸 나도 자꾸 없애 버리고 제재해 버리고 그걸 수치로 알았다 말이오.
수치로 알고 이라니까, 내가 그렇게 아니 나도 그걸 주장을 하지도 안하고 그래 놓으니까 낫기는 많이 나았는데 나았다 소리를 하지를 못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낫고 난 다음에 삼 년 동안을 숨기고 말을 못 했어. 말을 못 하다가서 그래 그 뒤에 여러 해 후에 자복하는 사람 봤어요. 이래서,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창자가 썩어서 구멍이 나 가지고 이거는 병원에 가서 수술해 끊어 내기는 끊어 내지만 이거 살까 모른다. 이래서, 월요일 날 수술하기로 작정했는데 그 사람 수술 안 하고 내가 뭐 죽기는 죽을 거 대구 집회에 가 가지고 이제 하나님 낫아 주시면 낫고 그래 안 하면 그만 뭐 이래도 저래도 죽을 거 그란다고 왔다 말이오. 와 가지고, 그런 사람이 뭐 메여 왔다고 말하는 데 나는 바빠서 가 보지도 못하고 저 버드나무 강물 가에 있다 하면서, 거기서 스피커가 가니까 거기 누워서 소리만 듣고 있어. 소리만 듣고 있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죽을 지경이니까 소리 듣는 데는 이제 정신을 차려 들었겠지. 나도 한번 가 봤어. 돌아가며 보니까 거기 있기 때문에 위로하느라고 기도해 주고 이랬었는데, 나중에, 그런 사람이 올 때는 걸어 오고 와 가지고 '이거 이상하다' 이래서 병원에 가 보니까 '이거 어짠 일이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완전히 나았습니다.' 구멍 다 막혀 버리고 완전 치료가 돼서 사진 보니 완전 치료라.
이래도 이거는 '아이구, 예수 믿어 병 나았다' 예수 믿어 병 나았다 하는 것이 이것이 어떻게 수치스럽든지 그 사람이 그것을 발표를 못 했어요. 천하게 여겨 발표를 못 하고, 또 구역장도 그 소리하기가 부끄러워서 그 구역장도 말하지 못했어. ○○○권사님 구역이라.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고 이라니까, 그걸 아주 천하게 봤다 말이오.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내 창자에 손을 대 가지고 치료했으니까, 하나님이 치료했으니, 의사가 치료한 게 크요? 하나님이 치료해 준 게 크요? 그러면, 치료된 것이 크요 하나님이 내게 와 가지고 그와 같이 지금 역사한 게 큽니까? 꺼꾸로라. 전부 막 소경을 만들어 놨어. 이래 놨었다 말이오.
이랬는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거 아니다' 아니다 하는 것을 내가 알았다 말이오. '이 신학자들이 껍데기 신학자들이니까 이적이 안 나타나. 믿지 않기 때문에 이적이 나타나는가? 저거 안 나타나니까 자꾸 이제 입으로 종알종알 하는 이것만 주장을 하지 이적을 말했다가는 신학자가 다 박살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라' 이걸 내가 알았다 말이오.
이걸 알고 난 다음에 '아니다' 하나님께서 옛날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만 해 가지고는 사람들이 믿지 안했어. 믿지 안했는데. 그때 이스라엘 말년이니까, 믿지 안했는데 그들이 모두 말하기를 '당신이 하늘로부터 온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야인 것을 뭘로 보고 알겠습니까?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주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왜 그렇게 말했느냐? 그 시대가 왜 그렇게 말했느냐? 그렇게 말한 이유는 전부, 이스라엘 벌써 종교 말년 때가 됐으니까 그때 나타난 교리와 신조는 다 외우고 있어요. 외우고 있으니까 이 사람도 설교하면 꼭 같은 설교 저 사람도 설교하면 꼭 같은 설교 뭐 설교는 다 하고, 귀신도 설교하면 그대로 설교, 무신론자도 와서 설교하면 그대로 설교, 다 할 수 있다 말이오. 다 할 수 있으니까 설교만 보고는 알 수가 없겠다 말이오. 설교만 보고 알 수가 없어. 오늘도 그 시대가 됐습니다. 오늘도 그 시대가 됐어. 설교는 전부 다, 다 천사들이요 다 성경 학자들이요 다 진리를 외치고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다 같은 뭐 굉장한 설교를 하니까 이거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다. 이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는 것은 그 사람 말 들어 봐서는 전부 진짜니까.
어떤 목사님이 있다 말하기를 '요새 전부 내가 다 정통이라 다 정통이라 하는데 말 들어보면 다 정통인데 어느 게 정통이고 어느 게 가짜인지 알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저 먼저 교역자회 때에, 어느 목사님이 우리 교역자회 때에 외쳤습니다.
이랬는데, 뭐 알 수가 있어야지? 이러니까, 모르니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그것을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라' 그러면, 인간이 하지 않는 하나님이 와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보여지면 '아, 여기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이 설교가 마귀 설교이고 하나님에게 미워하는 설교가 되면 하나님께서 거기서 일을 할리가 없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너희들이, 하나님이 악인을 듣겠느냐 의인을 듣겠느냐' 예수님의 말을 듣고 다 그대로 이루시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지 악인의 말 듣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이 기도해 가지고 되는 거 보니까 예수님이 의인이 아니겠느냐' 나면서 눈 먼 소경이 할 때에 그렇게 증거를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나는 그걸 구했어. '주님이여' 내가 그걸 속으로는 발표는 금년에 했어요. 교역자회 때 금년에 발표했지만 내 속으로는 작년부터 구했습니다. 구한 것이, '주님이여. 이렇게 모두 다 여기서 여기가 진리라 저기가 진리라 여기 부인하라 저기 부인하라 자꾸 서로 다 이렇게 말을 하니 나도 의심스럽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모여 놓고 그때 작년 쯤 말하면 몇 천 명밖에 안 모였었는데 그때 모일 때 '이렇게 모여 놓고 이 설교를 하지만 이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시는 설교인지, 내가 성경보고 내 주관으로 깨달아 가지고 나 혼자 하는 설교인지 우리가 이래 나가는 이게 운동이 복음 운동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운동인지 아닌지, 이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당신이 하는 것이 라고 하면 표적을 보여 주시옵소서' 작년부터 내가 구했습니다.
작년부터 구했는데, 작년에 대구 집회 때에 본인들이 말을 해서 나타난 것이 일백 육십 이 명이 나타났고 작년에 이 장생골 집회에서 일백 팔십 얼마가 나타났고 올 오월 달에 육백 여 명이 나타났습니다. 육백 여 명이 나타난 것이 사람이 뭐 안수한 것도 아니요 주무른 것도 아니요 그분들이 또 거짓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네들이 다, 무슨 '앞으로 나았다 해야 낫는다' 그런 광고하지 안했어요. 다 낫고 난 다음에 오래 있다가, '이거 나았다가 도질라 도질라' 이라다가 도지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낫아 줬는갑다 이거 말하지 안하면 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숨겨두고 가룬 것이 되니 증거하지 안한 것이니까 하나님이 노하시겠다' 그래 가지고 다 기록해서 나온 것이 육백 십 팔 명이라 그거요.
이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표적이 내가 구한 것이기 때문에 표적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이 병 나은 것도 좋지만 나는 병 나은 데 거기 기쁨이 있지 않습니다. 거기 기쁨이 있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거기 대해서 나는 기쁘고, 또 내가 증거하는 것이 이단이나 그런 것 증거 했으면 안 들어 주실 것인데 그 증거 한 것이 하나님이 기뻐서, 거기 대구에서 한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전함을 이루었다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라 하는 그것을 내나 그 집회 동안에 했습니다.
그때 내가 해석하기를 '나사렛'은 하나님이 지극히 높은 데에서 낮아져서 이제 사람되어 나사렛에서 사람 되어온 낮아지신 그것을, 토막을 가르쳐서 나사렛이라 말하고. 예수로 말한 것은 우리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나타내서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로 말하는 것은 이 공로를 이제 입어서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제사장 선지자 왕을 만들라고 하는 이 운동 하나님이 낮아지신 운동 하나님이 대속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운동,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 만들기 위해서 하시는 운동, 순전히 하나님이 낮아지심에서부터 대속하심에서부터 부활로 우리를 그리스도인 만들라 하는 이 복음 운동, 이 복음 운동은 이 모든 우주도 이 복음 운동 위해서 있고 모든 전개되는 모든 운동들도 이 전개되는 것도 이 복음 운동 위해서 예정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모든 존재는 이 복음 운동 위해서 이제 창조됨을 받을 이 모든 존재들이고 이 모든 이것이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고 서고 없어지고 일어서고 하는 이것은 다 이 복음 운동을 위하는 주권 개별 섭리시고. 이 전부가 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운동이다. 이 큰 운동을 믿어라! 이 운동을 믿어라.
이 운동이 너희들을 낫게 하신다! 이래 가지고 육백 십 팔 인이 나았다 그거요.
이 성경 해석이 바로 됐고 했다는, 하나님이 그렇게 찬동하고 하나님이 바로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주신 거기 대해서 나는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이번에는 내가 늘 기도하기를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교회서도 광고하고 어쨌든지 이번에는 사람병을 완전히 고쳐서, 모든 인간병 든 자가 장생골에 모아 가지고 인간병을 완전히 치료받고 나가도록.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이렇게 해 달라는 것을 기도했습니다. 인간병은 영병 마음병 고기덩어리병인데, 여기서 해석을 잘못 들은 사람은 '아, 중생된 영은 죄도 짓지 않는다고 말해 놓고 영병은 무슨 병이야?' 해 가지고 아마 오해를 하기 쉬울 것입니다. 아예 여러분들이 해석해서 그분에게 오해하지 않도록 충분한 해석을 해 줄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나 알고 제 구원이나 이루고. 제 구원 이루고 나면 다른 사람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전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의 병은 영의 병은 죄 짓는 병이 아니고 무능병입니다. 무능도 병입니다.
무능병은 뭐이 무능병이냐 하면 영은 자기의 마음과 몸을 소유한 주격이요, 자기 마음과 몸을 잘 통치할 수 있는 주권자요, 자기 마음과 몸을 이렇게 자유 자재 할 수 있는 주권자요. 자기 마음과 몸을 이렇게 잘 달래서 마음과 몸이 영이 제일 좋다고 영에게 딱 들어붙어 가지고 영과 한 덩어리가 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 영의 성공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영들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영은 중생은 하기는 했지만 그 중생된 영이 마음을 한 번도 통치하지 못해. 암만 영이 이렇게 말해라 해도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 둘이 합작이 돼 가지고 끌고 달아납니다. 끌고 달아나니까 이 중생된 영은 질질질질 끌려 가지고 '원치 안하는 데로 끌려가는 도다' 그 성구가 어디 있습니까?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여기서 영병 고치는 것은 영이 이제는 그 마음을 통치해서 영이 명령하는 대로 마음은 예 예 하면서 복종하고. 또 몸은 영과 마음이 통치해서 영과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예 예 순종하고, 이렇게 해서, 그러면, 이 마음이 어디까지 순종하느냐? 그 마음이 자기가, 마음이 과거에 가지고 있던 그런 모든 물든 색,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서 물들어 있는 그거 그 색깔 다 벗어라 할 때 홀딱 벗어버린다 말이오. 알겠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마음이 친해 가지고 있는데, 그 간부 옷을 입고 이게 수치인 줄 모르기 때문에 정신을 딱 차려서 '그 간부 옷을 벗어라' 이라니까 '예' 하면서 홀딱 벗어 버렸다 말이오 악령 악성 악습의 모든 옛사람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이제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밤낮으로 묵상하는도다' 하는 그 마음과 같이 그 마음이 성경에 애착하고 진리에 애착하고 또 말씀에 애착하고 영감에 애착이 돼 가지고 이제 아무것도 안 봐. 아무것도 안 보고 영만 보고 있습니다. 중생된 영만 보고 있어.
영만 보고 있으면 영을 왜 보고 있습니까? 왜 보고 있소? 그 마음이 영을 왜 보고 있느냐 하면 영을 보고 있으니까, 영을 자세히 보니까 그 속에 무엇이 있거든. 뭐이 있어요? 그 속에 뭐이 있어요? 중생된 영을 가만히 보니까 알송알쏭알쏭한 게 아뜩아뜩하게 보일 듯 보일 듯 하고 아른아른하이 아슴하게 보이는데 좋은 게 보인다 말이오. 아주 좋은 게 보여. 그게 뭐일까? 영감이야.
영감, 영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우리의 심신에게 증거해 준다고 로마서 8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마음이 영만 좋아하고 영이면 다다 하면 탈 일 건데 영을 좋아하는 것은 영 속에 뭐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데 영 속에 뭐이 있느냐 하면 영감이 그 속에 있다 말이오. 영감이 있는데, 그러니까. 영을 좋아하다 보니까 영감을 좋아하게 됐지 영감을 좋아하다 보니까 볼 수는 없지만 그 위에서 큰 빛이 나오는데 그 빛 본체는 내가 보지 못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그 빛을 이같이 보고 좋아한다 그거요. 이래서 이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드는 것이 영의 병 치료되는 것이오. 우리 영이 이런 영이 돼 가지고 있어야 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의 영은 그 마음을 통치해 가지고. 예수님의 영은 신성이 있고 영이 있었는데 신성에게 절대 복종하는 그 영이었는데 그 영은 그 심신을 얼마나 통치했습니까?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죽지만서도 그렇게 우주적인 고난을 이렇게 당했지만 그 마음이 아픈 데에 찰나라도 아픈 데 그리 그 마음이 그렇게 어만 눈동자, 그거 뭐라 하노? 어만 눈 뜬다 하나? 헛 눈 판다 해? 헛 눈 떴소? 안 떴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렇게 고통의, 육이 고통해서 육이 아프니까 막 부르짖고 또 마음도 몸의 원형이기 때문에 아프고 이래도, 아픈데 거기 조금 '아야' 요래도 안 봤어. 그게 예수님의 영이 그 영과 그 안에 있는 영감만 보라 했기 때문에 아픈 데에 찰나도 그 눈을 뜨지 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은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에 만족을 이루고 완성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영은 예수님의 마음을 그렇게 통치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또 어떻게 통치했습니까? 예수님의 몸을 그렇게 했지만 세포 하나도 '아이구 아프다, 억울하게 당한다' '아야로 나가지 않고 세포 하나도 전부 우리의 형을 대신하고 우리의 행동을 대행을 하고, 대형 대행하는 데만 전심 전력을 기울였지, (저기 목사님인지, 저기 잠깨요. 그거 쉬운 것 아니라. 쉬운게 아닌데. 이렇게 얼마나 어렵다고서. 저기 목사님인지 모르겠다. 이제 할마이 목사 될라고? 안 돼. 처녀 목사 돼요.) 이렇게 세포 하나도 예수님의 영을 어기지 안했습니다. 몸으로서는 어기지 안했습니다. 그 마음으로서는 예수님의 영에게 그 마음이 복종하는 것이 하나도 틈이 없이 다 그대로 복종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영은 예수님의 신성에게 하나와 같이 그와 같이 복종해서 하나로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이것이 우리 표준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표준입니까? 엘리야가 표준입니까? 베드로가 표준입니까? 사도 요한이 표준입니까? 에녹이 표준입니까? 아브라함이 표준입니까? 우리 표준은 뭐입니까? 우리 표준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표준은 예수님이시요. 맏아들이라고 했어, 맏아들. 그분도 그렇고 우리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랬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생산했다 그말입니다. 탄생했다 그말이오.
이렇게. 우리 영이 자기의 소유인 이 심신을 통치해야 될 터인데, 처음에 있던, 산 영이 되기는 됐지만 이거는 어리고 힘이 없어 가지고 심신을 통치 못해서 이 심신 이것을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뱀이 와서 살살 꼬우니까 이 심신이 영에게 지도 받지 안하고 영을 버리고 엉뚱하게 뱀에게 가 가지고 미혹받아 가지고 이것들이 벌 장난했기 때문에 죽기는 누가 죽었습니까? 제일 처음에 누가 죽었소? 영이 죽었어. 범죄한 영은 죽는다 했는데, 영은 범죄하는 게 아닙니다.
범죄한 영은 죽는다, 영이 왜 범죄를 했어? 주격 책임에서 그 심신을 통치 못한 그 죄값을 영이 받아야 된다 그말이오. 영 자체는 범죄 안 했으나 주격 책임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범죄한 것이라.
'영은 범죄하지 않는, 범죄 할 수 없는 존재다. 영이 타락했으니까 그 영을 악령이 이제는 이용을 하고 부려먹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 오늘 신학자들이 다 신학의 견해입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그러합니다.
아닙니다. 영은 악령이 부리지를 못합니다. 영은 범죄를 못 합니다. 그런데 왜 범죄한 영이라고 말했는가? 그것은 주격 위치에서 범죄가 된 것입니다. 영은 뭐이기 때문에? 영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된 것인데 영이 죽은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의 작용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능이 죽었습니다. 기능이 죽어서 작용을 하지 못합니다. 기능이 죽어서 작용하지 못하지 그 영이 변질된 것 아닙니다.
중생하는 것이, 영이 중생하는 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것은 우리 영이 뭐 죄된 것이 새로워진 게 아니고 이것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는데 본연 생겨지기를 하나님의 모형으로 생겨졌기 때문에 원형으로 말미암아 모형은 있는 것이요, 원형으로 말미암아 모형은 점점 새로워지고, 모형이라 하는 것은 원형을 자꾸 닮아가는 것이요 원형을 자꾸 나타내는 것이 그것이 모형이라 말이오.
조화는 생화를 나타내는 것이 조화 아닙니까? 그와 같은 이치요.
이러니까, 이렇게 나타내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영인데 그 영이 하나님의 원형을 나타내지 못하고 나타내는 기능이 죽었다 말이오. 죄와 허물로 기능이 죽어 버렸어. 기능이 죽은 거는 육이 범죄한 그 심신이 범죄함으로 인해서 뻐뚤어진 거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배반한 거는 심신이 배반했지만 그 영이 주격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영이 배반한 것이 되고 말았다 말이오. 주격 위치 주격 책임에서. 이랬던 것을 이제 중생시키는 것은 다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영과 진리와 새로 재연결이 됐습니다. 재연결된 그것이 영이 중생된 것입니다.
재연결 됐으니까 중생된 영은 이제는 그것이 작용을 하는데 무슨 작용합니까? 진리의 작용하고 영감의 작용하고, 진리와 영감이 뭐인데? 예수님의 피의 역사가 그거 전부 진리 뭉텅이요 영감 뭉텅이요.
이래서, 우리의 영이 산 영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영은 살았지만, '영은 의로 인해서 산 것이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살아났으나 '몸은 죄로 인해서 죽은 것이니라' 몸은 죄로 인해서. 영은 살고 난 다음에도 몸이 죽어 있다 그렇게 성경에 말해 놨어.
로마서 8장 10절 '영은 의로 인해서 산 것이니라' 하는 영에 대해서 대신학자가 영에 대해서 해석하기를 '그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뒤는 그 주장이 사그라졌습니다. 거기는 사람의 영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영병 든 줄을 알아야 됩니다. 영병 든 것을 탄식하는 사람이면 뭐 마음병 그까짓 거는 저절로 낫습니다. 영병에 지금 가치를 두고 영병 치료 받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마음병 그까짓 거는 벌써 돼 가지고 있어.
영병과 마음병을 치료받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고기덩어리 병은 벌써 확 다 나아 버렸어. 다 나아 버렸다 말이오. 이게 낫는 방법이라.
너무 시간 많이 갔기 때문에 이제 그만 하고 앞으로 계속해서 영병 마음 병을 제속해서 증거하겠습니다. 여기서 지식을 바꿔요. 지식을 바꿔요. 내가 이제까지 배워서. 내가 배워 가지고 내가 강단에서 주장한 그것을 이렇게 달리하면 '저 목사 변했다. 장생골 집회 갔다오더만 저거 변해져 버렸다. 과거에 이라더만 그런가?' 자꾸 그 사람들이 변했다 이라니까 변했다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사람에게 인기 끌기 위해서, 인기 끌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고쳐 틀렸다 하면 내가 박살되겠다' 주를 바로 영접하고 고치기 위해서 박살을 당하면 주님이 높여 줍니다. 제가 저를 보장할라 하는 거기서 천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바리새 교인과 제사장과 서기관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모른 거 아니오. 처음에 교훈이 그는 옳고 자기네는 틀린 것을 거기서 저거 위신과 저거 존재를 저거 가치를 깨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 깨지 않기 위해서 말씀을 저버렸는데, 그 다음에는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분명히 알았지만 그 다음에는 자기 위신이 깨질까 싶어서 예수님을 저버린 게 아니라 그때에 부활하신 주님을 저희들이 알고 난 다음에 부활하신 이분이 예수님이다 하면 그들이 돌을 가지고 다 쳐죽일 것이기 때문에 생명이 아까워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이오. 처음에는 자기가 위신이 염려가 돼 가지고 위신을 아껴서 부인했고, 나중에 가서는 생명이 아까워서 부인했고, 마지막에 지옥에 유황불 구렁텅이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후회가 될 것입니다. 생명이 위험했을 때는 생각하기를 '그때 내 위신이 떨어질지라도 그때 그만 예수님의 교훈이 옳다 하고 딱 돌아설걸.' 지금은 생명을 내 놓아야 되니까 문제다' 생명을 내 놔야 되는 문제니까 못 하지만, 생명 내 놓으니까 못 하는 것이 내가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설 때는 '그때 그만 죽어도 홱 돌아 설 걸' 후회가 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바로 믿읍시다. 썩어진 자기 위신. 예수 버리고 진리 버리고 자기 거짓으로 똘똘 꾸며 가지고 만든 목사 위신 그까짓 거 버려야 됩니다! 그거 안 버리면 저는 죽습니다! 그 목회가 되는 게 나중에 강도 되고 절도 되고 양을 잡아먹는 이리가 되고야 맙니다!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할딱 벗고 깨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