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2:08
설교록의 가치성
1989. 7. 15. 새벽.
본문: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십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심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이번 주간으로서 양성원 학생들의 공부는 방학이 됐습니다. 그 동안 여섯 주간인데 셋 주간은 이런 저런 여러 과목을 공부했고 셋 주간은 설교록 읽는 일만 시켰습니다.
또 성경 과목은 제가 맡아 가지고 있는데 성경 백 독을 해야 된다는 그 구비는 성경을 백 독 하는 것이나 설교록을, 만일 설교록을 백오십 권을 읽었다고 하면은 성경 오십 독 한 것으로 인정을 하겠다 그렇게 해서 설교록 세 권 읽으면 신구약 성경 한 번 읽은 것으로서 읽은 거와 같이 그렇게 인정을 해 주겠다 하는 그런 약속을 양성원 학생들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설교록 세 권이 신구약 성경을 한 번 읽는 것의 그런 권위적으로 가치적으로 있다는 그런 말이 아니고 어쨌든지 성경을 가르쳐서 성경에다가 전소망을 두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설교록은 제가 설교한 것인데 설교록의 그 모든 목적과 중심이 신구약 성경을 의심 없이 믿는 자 되도록 하려는 그것이 목적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만 읽으면 사람들이 그만 지내보내 버리고 성경에 대해서 그 믿음성과 가치성이 그들에게 실지로 깨달아지지를 못하기 때문에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설교록을 세 권 읽으면, 한 권을 세 번 읽으면 세 권 읽은 거와 마찬가지기 때문에 세 권을 읽으면 신구약 성경 한 번 읽은 거와 같은 그런 성적으로 그렇게 인정해 주겠다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셋 주간 읽어서 설교록 제 일권, 제 일권을 어찌 됐어? 다 읽었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어찌 됐어? 다 읽고 나서 좀 더 읽었어? 얼마나? 한 권 읽고 두 권째 시작해 가지고 한 삼분지 일 쯤이나 읽었답니다.
그래 읽혔고, 또 숙제를 내기를 그렇게 했습니다. 이번에 방학 동안에 자기가 성경을 몇 독 했으며 설교록을 몇 권 읽었는가 하는 그것을 새로 삼학기 개학할 때 그때에 그 성적 보고를 가지고 오라.
또 그러고, 그러면 이번에 방학 때 읽은 거는 얼마, 방학이 되거 전에 자기가 예수 믿기 시작한 때부터 성경 읽은 것은 몇 독, 혹 그후에 설교록이 나온 지 후에 설교록 읽은 것이 몇 독 이것을 총 계산을 해서 가져오라. 그러면 성경 백 독 읽은 데 대해서 그것을 계산하겠다, 인정을 하겠다 그렇게 숙제를 내고 보고를 다 부탁을 했습니다.
그란 것은 너무도 이 세상이 어지러워서 우리 눈을 다 빼 갑니다. 우리 눈을 다 빼 가서, 제 눈을 제 구원에 유익되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눈이지마는 제 구원에 유익되게 눈을 사용하지 못하고, 또 귀도 사용하지 못하고, 또 혀도 사용하지 못하고 이러니까 수족도 사용하지 못 합니다.
이래서 전부 이 귀신이, 그래서 귀신 공부를 조금 했는데 귀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다 점식해 가지고 전부 귀신 놀음만 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런 것도 지금은 말하지마는 나중에 이것이 총결산이 되어지면은 뒤에 가서 이제, 세계는 점점 좁아져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한다' 하는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 한다' 그말은 물론 비행기도 있고 뭐 해도 있고 여러가지 타고 다니는 그런 기가 있어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빨리 타고 가고 오기도 하고 여기서 미국이 뭐 독일이 뭐 영국이 얼마인데 거게 비행기로 갈라 하면은 뭐 몇 시간 안 돼서 잠깐 가고 이러니까 빨리 왕래합니다.
이제 그런 것을 말하는 것보다도 중심은 하도 지식이 더해서 이 세상 마귀의 지식이 발달이 되고 최고로 유혹이 발달이 되기 때문에 세계가 좁아진다, 세계가 좁아져서 뭐 여게 앉아서 온 세계 소식을 다 들을 수가 있고 또 세계의 그 형편과 광경을 다 볼 수가 있습니다.
요새 뭐 테레비 말 들으니까 여기 한국 것을 일본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미국 사람들이 더 잘 보고, 또 세계 각국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먼 데 있는 그 사람들이 더 소식을 잘 듣고 여게서 나는 그 일을 내나 동시에 그 사람들도 같이 보고 있다고. 그런 것을 뜻해 말한 것이오.
이렇게 세계가 좁아지고, '지식이 더한다' 말은 하나님의 지식이 더해진다는 말이 아니고 인간이 자꾸 지식에서 지식으로 연구해서 자꾸 이렇게 조직하고 망라하고 이렇게 건설해 나가기 때문에 물샐틈도 없이 그렇게 모든 이 인간 지식이, 인간 지식이, 인간 지식은 다른 데 나온 것 없습니다. 전부 배암의 지식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지식 배암의 지식 둘뿐입니다. 요것을 사람들은 어리석게 생각하고 하지마는 제가 배암의 지식 그 세계에 들어가 놓으면 저 일생 동안 걸어가도 그 한쪽 모통이도 끝을 보지 못합니다. 배암은, 사탄은 우리 사람들보다도 지능이 높습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지식과 사람 지식 둘만 닮도록 그렇게 했고 둘에게만 복종하도록 그렇게 했고 딴거는 없습니다. 이런데 배암의 지식을 사람의 지식이라고 말하면 좀 어려움이 적을 것이고 세상 지식이라고 말하면은 어려움이 덜하지마는 요것을 꼭 바로 정질 정색 정명대로 '하나님의 지식 외에 거는 전부 마귀 지식이다, 사탄의 지식이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다.' 요렇게 딱 정의를 하면, 아직까지는 세계가 넓습니다. 이래서 여기 서부교회서 백 목사 말하는 것을 온 세계가 지금 각 교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들 많습니다. 이러니까 이게 통계가 안 돼 그렇지 이것이 총결산이 딱 돼서 통계가 되면은 그때는 그를 두지 않습니다. 전체가 뭉쳐 가지고 멸할라고 애를 쓸 것이고, 또 그러나 저희들 마음대로 멸해지지는 않습니다. 저희들보다 더 강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당신의 할 대로 하시지 그런 것에게 제재받지는 아니합니다.
이래서 '빨리 왕래한다' 세계가 좁아서 연락도 빨리 되고 또 보는 것도 빨리 봐서 세계가 한 자리에서 한 물건을 보는 것처럼 이렇게 모든 것을 빨리 보고 빨리 연락되고 빨리 기억하게 된다.
그거 나는 그걸 모르는데 컴퓨터 세계가 난다 하는데 내가 언제 여기 편집실에 가 보니까 뭘 사온다 하면서 말하기 때문에 '그거야 어찌 그리 되겠노? 그래 될 리가 있느냐?' 하니까, 그거 물으니까 그리 다 된대요. 그래 가지고 책이 다 나온대요.
이러니까 이 컴퓨터로 가지고 이래 하면 뭐 그것을 알기도 계산도 모두가 빠르고 통계도 빠르고 기억이 전부 똘똘 뭉쳐서 하나가 돼 가지고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리켜서 '빨리 왕래한다 지식이 더 한다.' 이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지식과 배암의 지식이 지금은 인제 섞여 있으니까 모르지마는 나중에는 둘이 둘로 딱 갈라져 버립니다. 갈라져서 '네가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고 속할래 배암의 지식을 네가 인정하고 속할래?' 이 두 가지로 딱 갈라지게 되기 때문에 그때에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한다고 하면 배암의 지식과 전적 대립이 될 것이고 또 배암의 지식을 인정한다 하면 하나님과 전적 대립이 되는 둘로 똑 갈라지는 이런 세계가 빨리 다가옵니다. 그 모든 장본을 보지 않습니 까? '빨리 왕래한다. 지식은 더한다.' 이런데 모든 사람들은 그러하지마는 '물 위에 세마포 옷을 입고 섰는 자에게 물으니까 모든 걸 다 말해 주더라 말했습니다.' 물 위에 사람이 설 수 있습니까? 물 위에 못 섭니다. 물 위에 못 서는데 어떤 자만 서느냐?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일반적 법칙이 아니고, 일반적 자연 법칙이 아니고 이 초자연 법칙, 믿음 법칙, 믿음으로는 뭐 물 위에도 서고 물 위에 걸어가기도 하고 오만 거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아무래도 이거 설교록을 빨리 읽혀야 되겠다 해 가지고 그런 생각을 가져서 읽혔습니다.
그래 내가 이제 양성원 학생들 더러 만나 가지고 이래 물으니까 '이 뭘 좀 깨닫느냐?' 물으니, 아는가 싶어 물으니까 '설교록을 그전에 이래 볼 때보다도 요번에 자꾸 이래 상고해서 읽으니까 저희들이 생각한 것 외에 딴것이 들어 있는 것을 이제 조그매씩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 학기에도 이 설교록을 좀 계속해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해서, '그것은 너거가 집에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가 있지 않느냐?' 이번에는 전부 이 사학년서부터 내리 설교를 다 시켰습니다. 설교를 다 시켰는데 설교를 다 잘합니다. 뭐 그 사람들이 그런 설교만 했으면 어데든지 사경회 부흥회 가 가지고 할 수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에 그 지식들이 전부 편식입니다. 일방적인 지식이고 전체을 파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설교 하나 하는데 그 설교에 대한 안팎에 전체의 그 뜻을 파악을 다 하지는 못했고 그걸 지금 남의 지식을 자기가 가질라 하다 보니까 일부분적만 그때 보게 되니까 그 지식에서 지금 정백팔십도의 반대로 대립되는 그런 지식을 지금 상반되는 지식을 보지 못하고 전부 일반 화되어지는 그런 지식만 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저는 설교를 보고서 평하기를, 말 잘하는 것도 뭐 태도 좋은 것도 그런 것도 모든 것도 그런 것보다도 이 사람이 도를 아는 넓이가 얼마나 되며 깊이가 얼마나 되며 또 그 구비가 얼마나 되느냐? 그 면을 제가 살펴 가지고 평가를 해서, 어떤 사람은 '이거 위험하다' 이것은 벌판이로 날뛰기 때문에 뒤에 가서 그 가치를, 참 믿음이 뭐이냐? 믿음이, 믿음은 뭐, 믿는 사람들이 믿음 믿음 그래 쌓아니까 얼마 전에는 신문에 '믿고 삽시다. 믿고 삽시다.' 어떤 농장에 가 가지고 이래 떡 거석하니까 농장에 뭘 하나 사면서 이라니까 '아, 믿고 삽시다. 믿어야 안 됩니까? 믿고 삽시다.' 이제 그것을 또 귀신들이 그렇게 쓰는데 믿는 것은 영원 자존자이신 완전자이신 그분만 믿고 그분의 말만 믿고 그분의 인도만 믿지 딴거 믿는 거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은 그분만이 보이지 않는 그분에서 모든 보이는 것들이 다 나왔고 또 모든 보이는 것들은 이렇게 저렇게 천태 만상 이렇게 천지 만엽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마는 결국은 그게 다 똘똘 뭉쳐 가지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또 하나님을 말미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 하는 이 사실을 인정해서 하나님 외에는 우리를 대속하신, 이 예수님의 대속은 완전자이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겁니다, 다리.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완전자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완전한 것과, 모든 완전한 것과 우리와의 그 사이에 다리를 놔서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이 주홍 같고 진홍 같은 붉은 죄인된 우리들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하고 요래 아주 창조주와 피조물 관계는 있지마는 한덩어리가 딱 될 수 있도록 요렇게 결합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어떻게 인정하며 영원 자존하신 분을 어떻게 인정하느냐? 또 그분 인정하고, 그분의 뜻을 깨달아 인정하고, 그분의 행사를 인정하고, '모든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하는 요것을 알아서 이 전체를 아는 이것을 믿음이라 하고 이것을 따라서, 그래 자유의 율법이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이 자유는, 이 자유는 모든 만물의 자유요 공산주의에게도 자유 모든 것에 자유인데 그들이 뒤에 가서 이 자유에 위반된 것은 다 그것은 정죄해서 멸해지고 이 법에 딱 맞는 거는 요것은 곤충도 잘살 수 있고 마귀도 이 법에 속하면 잘살 수 있는 그런 완전한 율법입니다.
이래서 아무래도 이것을 빨리 조그매라도 인식을 시켜야 되겠다 해 가지고 읽히는데 제가 이 설교를 해도, 나는 늘 말하기를,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밖에는 안 했습니다. 이래서 나는 뭐 지식으로 많은 독서를 하고 열람을 해 가지고 무슨 조직적으로 이래 하는 것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이 내게는 공부도 못 하게 하시고 심심 산골에다 넣어 놓으시고 그저 하나님의 성경 말씀 읽고 또 그대로 또 행해보고 읽고 행해보고 이런 가운데에서 깨달아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배운 거와 달라서 세상 일반 교계에서 배운 거와 너무 차이가 많기 때문에 그뭐이단이란 말을 많이 들었고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그걸 그렇게 말 안 하지마는 지금도 백파니 뭐 총공회파는 이단이라고 이래 가지고 전부 조롱하고 있습니다. 우리 진영 가운데서도 다 믿으며 믿는다고 따라간다 하면서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것을 제가 증거를 했는데 저도 증거한 거 하나도 내가 글 보고 연구하고 누구의 서적 보고 연구한 것 아니고 그저 성경 읽고 내게 깨달아지는 대로 할 수 있는 거 행한 것 여게서 깨달아졌는데 깨달아지고 또 지금도 깨달아 설교하는 것은 설교하다가 깨달아져서 설교하지. 증거하지.
그러니까 이것은 내가 아는 대로는 이거 순전히 내 주관의 힘이 아니고 객관의 힘으로서 붙들려서 내가 알게 됐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하고, 또 뭐 우리 OOO목사님이니 이런 이들은 미국 가서 공부를 했다고 해도 차각차각 순서적으로 그렇게 공부를 아주 순서적으로 정규적인 그런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는 참 으뜸이 간다 할 만치 그만치 정규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하는데도 특별히 교리사 교회사, 이런 깨달음 저런 깨달음 깨달음의, 모든 사람들의 깨달음의 역사를 공부했고 이 랬는데, 그분들이 와 가지고 제가 증거하는 이것을 보는 데에 얼마나 틀렸는지 모르지마는 틀린 게 있거든 나한테 말을 해 달라고 내가 부탁을 갔다 오는 사람마다 부탁을 합니다. 하는데 틀린 것 뭐 틀린 것이 있으면서 나한테 말 안 해 주는지는 몰라도 '틀린 게 뭐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게 참 틀림이 없어 그런지 틀린 게 있는데 나 듣기 좋으라고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또 내가 죽고 나면은 그때 '봐라 이게 틀렸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틀린 것이 있다 할지라도 제가 생각하기는 이 깨달음과 교리와 신조가 정확하다.
또 그 뒤에 혹 대립되는 것은, 칼빈 주석도 제가 봅니다. 이래 보면은 어떤 것은 종착을 하지 못해서 도중이기 때문에 지금 그분들이 그래 말하고 자꾸 따지고 따져 들어가면은 결국은 이게 옳다 하는 그런 결론이 난다는 그런 것을 자꾸 여러가지 지금 이래 경험해 가지고 마음에 자신을 점점 얻어 가지게 됐습니다.
이래서 성경은 다 같지마는 아무래도 양성원 학생들은 우리가 목회자를 지금 기르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이 설교록을 그라면 지금 뭐 육십 몇 권이 나왔는데 육십 몇 권을 설교록을 삼백 권을 읽으면은 성경 백 독 한 것이 됩니다, 삼백 권을 읽으면.
삼백 권 읽으면은 자연히 이 설교록에 대해서 이면 저면 여러 면을 그래 가지고 해 놓은 것을 나중에 다소라도 좀 알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은 자기네들이 사람이 이 설교록에 기록된 이 교리 신조 행정과 같은 사람이 되어지고 모든 행위가 되어지고 소망이 되어진다면 그때 이 복음이 바로 전해지지 않겠느냐 이래서 그래 읽으라고 했고, 또 요번에 설교를 모두 시켰습니다. 시켰는데 설교는 잘합니다. 어 데든지 가면은 '저런 소리를 어데 하는고?' 해서 그참 놀랠 만한 그런, 저희들이 모르는 그런 지식이 담겨 있는 것을 다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원만하지를 못하고 전체적이 아니고 한 지체적인 한 부분적인 것만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탈선될 그런 위험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거, 이 눈을 고칠 의사라고 하면은 전신을 다 전체를 다 알고 눈을 알아야 될 터인네 전체는 모르고 눈만 떡 알아 가지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눈 버리기 쉽다 말이오. 진신과 그 눈은 다 연관성이 있는 것이지 눈만 따로 돼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그런데 이와 같은 일방적인 지식이라 염려가 되기 때문에 설교록을 좀 많이 읽으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오늘 이 서머나 교회는, 서머나 교회는 이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아주 칭찬받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다음에는 서머나 교회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이 두 교회가 일곱 교회 가운데에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받은 교회인데 이 서머나 교회는 그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게 뭐 9절에서부터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뜻이 무슨 뜻인고 하니 모든 존재관이, 모든 존재관이 또 모든 움직이는 이 모든 활동관이, 또 모든 종결을 맺는 결말관, 결과관, 종결관이 주님과 하나되는 이것을 첫째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가 그 부분적인 신앙을 가지지 말고 이 신구약 성경 말씀에서 모든 존재관이라면은 두 가지입니다. 피조물과 창조주 이 둘이 합해서 존재입니다. 모든 존재입니다. 모든 존재에 대한 관이라 말은 관이라 말은 그것을 어떻게 보나? 거게 대한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인생관이라 하면은 인생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인생애 대한 지식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인생애 대해서 아는 것을 가리켜서 인생관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사물관이라, 그런데 존재관이라 말은 자존하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이 전체를 어떻게 보느냐? 천인 만인이 보는게 다릅니다. 석가모니가 보고 말한 게 다르고 공자가 보고 말한 게 다르고, 맑스가 보고 말한 게 다르고, 철학자들이 보고 말한 게 다르다 그거요.
다른데 이 존재관에 대해서 천인 만인이 다 다른 소리 하고 있는데 그런 걸 다 배재해 버리고 자존하신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정확 무오한 당신의 지식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발표해 주셨기 때문에 이 정확 무오한 이 하나님의 발표한 이 지식과 내가 존재관에 대해서 같기를 하나님이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같아져야 됩니다.
모든 존재관이 하나님의 이 존재관과 같이 피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을 줬습니다.
또 이 모든 피조물들과 창조주의 이 조화성, 이 관계성, 이 관계성이 어떻느냐? 이 모든 관계성 이 것을, 관계관,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이 관계관을 바로 알도록 하기 위해서 준 게 신구약 성경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요래 삐뚤어졌나 조래 삐뚤어졌나, 천 가지 만 가지로 삐뚤어진 게 있는데 요래 삐뚤어진 건 요런 보응을 받고 어쨌든지 하나님과 삐뚤어진 건 다 전멸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된 것만 남아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모든 이 움직임이 굉장한 움직임들이 있고, 뭐 계획 이라는 움직임도 있고, 또 조성하는 움직임도 있고, 결실한 움직임도 있고 오만 움직임이 있는데 모든 움직임이 당신과 같은 거 요것만 남굽니다.
이래서 모든 존재관, 모든 서로 상호 조화되는 조화관, 모든 결말관 이것이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지 식대로 요대로 되는 것만 남구지 그 나머지기 거는 다 소멸해 버리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 온갖 유혹이 있어 가지고 하나님이 말씀해 놓은 이 말씀은 시시하게 여겨서 저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땅에 떨어져 있고 하나님의 말씀은 시시하고 멸시를 당하고 인간들이 한 말, 인간들이 가치를 인간들이 한 말 희귀한 말, 기이한 말, 묘한 말, 뭐 또 우리 정서를 움직이는 그런 감정의 그런 말 이런 말만 전부 가치 있게 말하고 생각하고, 또 모르는 거, 백지 추측 추상해 가지고 저 궁구적으로 뭐 어떻고 어떻고 하다는 이런 것 말하는 것 이런 것만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가치로 알기 때문에 전부 그걸 지금 다 가치로 알아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거는 뭐 한글로 썼지 어린 아이들도 다 읽는 것, 이걸 알라면 사전을 찾아 봐 가지고 이래서 한 줄을 읽을라면 모든 사전을 영어 사전 찾아야 되고, 독일어 사전 찾아야 되고, 세계에 모든 그 유력한 사전들을 다 찾아 가지고 해야 한 줄을 읽어 나갈 수 있는 이래 쓴 글이라야 가치 있고 이거는 참 고급 가치고 이거는 아주 고등 지식이다 이라지 인간이 보통 누구든지 알 수 있도록 써서 인간의 죽음과 삶, 멸망과 구원, 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자존하신 하나님 이런 것 말해 놓은 거는 시시하게 이거는 하나의 신화 중에 신화로 그만 이래 여기고 만다 그 말이오.
이래서, 조만간에 예수님께서 이것을 다 출출 털 터인데 출출 털어서 모든 만물관이, 만물관, 존재관, 모든 사물관, 모든 소망관, 계획관, 모든 것을 조성을 하는데 조성관 이 모든 것이 당신과 하나되어서 움직인 그것만, 당신과 꼭 같은 것만 듭니다! 당신과 꼭 같은 것만 들고 나머지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쓸어넣어 버려. 당신과 꼭 같은 것만 들고.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요한계시 21장을 보면은 거게는 하나님인지 성인지 사도인지 뭐 길거리인지 꼭 같애. 다 같애. 근본이 하나라, 이러니까 이러기 위해서 이번에는 설교를 더러 시켰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말씀 본 것은 모든, 모든, 만물관이라 할까 뭐 사물관이라 할까? 모든 데 대한 지식이 하나님과 같은 지식을 가져야 됩니다. 사람에게 대해서든지, 죄에 대해서든지, 의에 대해서든지,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든지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된 것만 남궈 놓고 나머지기는 다 사뤄 버려요.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은 모든 지식이 다 폐해진다 했어. 다 없어져 버려.
이러니까 모든 것을 성경을 보고 이제, 뭐 어떤 석가모니가 말한 것도 그것도 전부 세상에는 전부 사람 죽이는 말인데 거짓말 반 거짓말 말이오. 반 거짓말이 아니면 온 거짓말이라. 온 거짓말보다 반 거짓말이 독이 더 많애.
이러니까 여게서 하나님과 일치돼 나가는 이것이 지금 우리, 지식으로 하나되는 것. 지식으로 하나되고 그 다음에는 행동으로 하나되고 그 다음에는 자체로 하나가 돼야 돼요, 자체로.
하나님하고 나하고, 하나님 안에 우리가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이러니까 하나님하고 우리하고 영원 무궁토록 창조주와 피조물의 그 구별은 되어 있지마는 하나님인지 우리인지? 우리 안에 하나님 있고 하나님 안에 우리가 있고 이래 가지고 하나되기 때문에 모를 만치, 그러나 다만 영원히, 따져 들어가 보면은 창조주와 피조물이 그것이 혼합되지는 안해요. 언제나 창조주는 창조주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 한테 동거 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양성 일행이라 하는 것을 제가 발표를 했습니다.
이걸 말하고 또 하나 우리가 알 것은 뭐이냐? '죽도록 충성해라 '죽도록 충성해라 모든 지식이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 일을 힘쓰고 그 다음에는 네가 있는 여유의 힘을 다해 가지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하나님을 휘하는 그 일 해라. 경건을 해라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은 가거든 이 방학 기간에, 이거 자꾸 내가 말하는 게 아니고 이제 성경, 잘못하면 치우치니까 성경 읽고 설교록 읽고 성경 읽고, 설교록은 성경을 소개하는 거 성경을 깨닫게 하는 것이지 설교록이 뭐 성경 같이 권위 있는 거는 아니나 성경을 자꾸 바로 알도록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그 소개하는 자를 잡고서 실상인 성경 말씀을 찾아 만나야 되겠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다음 방학을 지내고 오면 사람이 달라지도록, 이거 우리 교역자회도 이래 딱 이래 거석할 때에 이래 보면은 '저거는 뭐이 무슨 면이 달랐다. 무슨 면이 다르다. 저라면은 나중에 동쪽으로 삐뚤어져 나가겠다.
서쪽으로 삐뚤어져 나가겠다.' 하는 걸 환하게, 하나님처럼은 알 수 없지마는 하나님 비슷하게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꼭 지식이 하나님과 일치가 돼야 되겠고, 또 모든 소망과 경영이 다 일치가 돼야 되겠고, 그러면 모든 공작인 이 행동이 일치가 돼야 되겠고 이라는 가운데에서 나중에 하나님과 그 사람이 창조주와 피조물이지마는 꼭 같애서, 피조물이 볼 때에는 다 하나님으로 보고 그 안에 들어가 보면은 하나님과 피조물과 구별이 돼 있고 이렇게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 믿는 거는 세상에 밥하기보다 쉽고 아주 쉽습니다. 이거는 은혜로 받는다 말은 너무 어렵고 인간이 안 되기 때문에 공짜배기로 받는다는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얼마나 세밀하고 얼마나 복잡한 것인데 이거는 사람이 할 수 없지마는 자기에게 있는 자본만 다 들여서 죽도록 충성하면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일차 창조하신 그분이 오셔 가지고 비차 창조로 완전케 하는 이 구원인데, '예수 믿는 데 너무 힘쓰면 안 된다, 너무 전력 기울이면 안 된다. 그라면 일찍 뒈진다. 서 목사 봐라. 전 목사 봐라. 일찍 뒈진다. 그러니까 어짜든지 잘 조절해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된다.' 하고, 이거 지금 예수님 믿는 데 죽도록 충성하라는, 자기는 있는 대로 죽도록 충성을 다했는데 하나님이 남겨 두시니까 남아 있고 살려 두시니까 남아 있고 이런 요것이 이 예수 믿어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방편인데 요것을 박살을 낸 것이 오늘 세계 교회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거 죽도록 충성하면 그 미친 소리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면을 정신을 차립시다.
엊저녁에 그 설교한 전도사는 우리집에 아이인데 그거 나는 엊저녁에 기쁩니다.
그거 그 어째 그래 예수 믿어서 믿기는 믿었지마는 교역자가 되고 또 이 강단에 어짜든지 설교하는 것만이, 뭐 설교야 잘하지는 못했지만 설교하는 것만이 그거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엊저녁에 전화가 오기를 '불의를 행한 영육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 간다 그말을 한 마디 했는데 그 심신의 기능이라고 말하는 건데 그 말 그만 영이라고 말해서 잘못했으니까 그것을 말을 해서 그거 좀 들은 시람들에게 그거 좀 말을 좀 해 주이소' 그렇게 전화로 해서 내가 그 전달을 합니다. 뒤에 결론지울 때 보니까 알기는 바로 알고 있는데 그말은 실언이라 하는 그것을 알 수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이래서 어쨌든지 오늘 아침에는 이제 하나님과 나와의 모든 만물관, 인생관 생사관, 성패관, 흥망관, 희로에락관 전부가 하나님과 같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같아야 된다는 요것을 여게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고 서머나 교회가 같앴어. 주님과 같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가 귀한 교회라.
같은데 그러면 같고 난 다음에 어짜는가? 그 다음에 같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할 일은 뭐이냐? 죽도록 충성이라. 죽도록 충성할 것.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양성원 학생들은 꼭 거게서 다른 것을 하지말고 자꾸 읽으면 사람이 변화돼 나가요.
지금 빨리 가서 주일학생 중간반 학생들을 깨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저 다른 것 없어. 천하의 지식은 다 똘똘 뭉쳐도 그것은 생명 없는 물건을 보따리에 싼 것뿐이라. 보따리에 싼 것뿐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외에는 생명이 없어. 그러니까 잡탱이 죽음을 싸놓은 거 그런 보따리 자꾸 가지고 의지하지 말고, 들고 돌아다니며 '나는 이런 보따리가 있다' 암만 보따리 있어야 거기 생명이 하나도 없어요. 요걸 확실히 깨닫고 믿는 거게서 능력이 나오고 그것이 구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