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가치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28일 주전 

 

본문 : 창세기 5장 1절∼32절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셋은 일백 오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 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 사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 삼십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팔백 구십오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야렛은 일백 육십이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육십이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 팔십이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여기 기록된, 에녹은 우리의 인간 도리를 가르치시는 계시로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여기 아담의 자손을 가인도 기록지 안했고 아벨도 기록지 안하고 셋을  기록한 것은 그들은 다 끝났기 때문에 인류 시조로서 신앙 계대된 자손들을  기록하느라고 셋에서부터 기록한 것입니다. 가인은 살아 있었지만 그거는  구원에서 제적됐기 때문에 수로 치지를 아니한 것입니다.

 여기 기록한 기록이 모든 사람들이 부모에게서 출생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일찍부터 자녀를 낳은 사람 있고 또 늦게 자녀를 낳은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녀를 많이 낳은 사람이 있고 또 적게 낳은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햇수를 좀 장수를 해서 오래 산 사람이 있고 아주 짧게 살다가 죽은 사람 있고  그렇게 여러 종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녀를 많으면 그 것을  행복이라 그렇게 다 평가했고. 또 장수하면 그것을 행복이라 그렇게 평가했고,  또 물론 지위나 권세나, 또 재물이나 뭐 명예나 그런 것을 갖추어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을 행복된 사람이라 그렇게 평가하였을 것이고. 또 살아 있는 동안에  건강함으로 이렇게 저렇게 모든 평강을 누리고 기쁨을 누리고 있으면 그 사람도  다 행복된 사람이라 그렇게 당시에 말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다 그렇게 다  우리가 평가하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이 5장에서 가르치는 것은 그 사람이 장수를 했든지 단명을 했든지,  자녀가 많든지 적든지, 또 그 사람의 형통이 부강하든지 빈약하든지 간에  여기에는 두 가지로만 평가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뭐 어떻게 그래 살고  잘 살고 건강하고 소원 성취대로 다 하고 자녀 많이 낳고 또 훌륭한 자녀들을  많이 낳고 이렇게 살았다 할지라도 다 사망한 사람들이 있고, 사망에 삼켜져서  다 사망한 사람들이 있고, 그러니까, 그들이 온갖 행복을 가졌지만 사망이 들이  덮쳤을 때에는 그 행복이 있는 것만치 다 통곡으로 바꾸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장수도 통곡으로, 건강도 통곡으로 권세도 통곡으로, 지위도 통곡으로, 모든  부요도 통곡으로, 훌륭한 자녀도 다 통곡으로 그 모든 것은 다 사망이 덮칠 때에  모두가 다 통곡으로 변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인생의 이렇고 저렇고 하는 모든 시비 평가하는 그 모든  것이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라면 크나 작으나 좀 오래 있으나 일찍 없어지나 꼭  같다는 것을 여기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계시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좋아도 망하고 죽고 아무리 나빠도 망하고 죽고. 망하고 죽는 것은. 사람들의  시야가 좁아서 거기 대해서 좋다 나쁘다 그렇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지 인생에게  사망이 와서 덮칠 때에는 이 사망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뭐  크나 작으나 많으나 적으나 좀 아름다우나 흉하나 꼭 같은 그 사망의 비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여기 말씀 해 주십니다.

 그러고, 거기 한 사람, 18절에 보면 에녹이라는 그 한 사람은 같이 살고  결혼해서 자녀 낳고, 좀 수명은 오래 살지를 못했습니다만 그렇게 살다가 그  사람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끝이 망하고 죽었는데 에녹은 망하고 죽음이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그는 생명과 평강으로 영생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데려 가시므로 다시 세상에서 보지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창세기 5장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도리를 자기 복음으로  받을 사람은 어떻게 하는 사람이 이 창세기 5장에 기록한 것을 자기 복음으로  받는 사람인가?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두 가지로만 평가될 수  있으니 하나는 결말이 망하고 죽었다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하나는 망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평안하고 영생한다 하는 그것으로서 평가됐습니다. 하나는  사망이요, 하나는 생강입니다. 생강. 이거 뭐 안 하는 말인데 제가 만들어  가지고 단어를 쓰다 보니까, 이거 좀 우스꽝스러운 말이지만 한번 익혀 봅시다.

사망. 따라합시다. 사망! 사망! 사망! 생강! 생강! 생강! 네, 생강이라 말은  생명과 평강이라는 말이요 사망이라 말은 죽고 망한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5장에서 이 두 가지에 대한 가치를 평가할 줄을 모르고 이 두 가지를  벗어나서, 두 가지를 깨닫지 못하고 두 가지를 잊어버리고 나서 자기가 어떻게  평가를 하고 어떻게 좋은 것을 취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가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창세기 5장에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계시는가? 뭣 때문에 우리에게 이걸 주셨는가? 다 기록할라 하면 온 세상에  두어도 기록한 책을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양이 많은 양 중에서 불과 이  신구약 한 권만, 한 권에 간추려서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는데, 그러면, 온  세상에 가득 찰 그 많은 책 중에서 요 한 권을 뽑았고 이 한 권에 기록한 기록  가운데서 이 창세기 5장이 기록됐으니까 대단히 중요한 말씀 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5장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뭐인가?  여러분들이 부채 그런 거 부치면 자꾸 덥습니다.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렇게 시원하게 해 주시는데 감사하다고 견뎌야 되지 자꾸 덥다 그  반동을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는 더 더위를 줘 가지고 견디지 못 하게 할  것입니다. 이번에 하기 아동 성경 학교 할 때에 날은 덥고 자리는 좁고 만 수천  명이 모였으니까 뭐 고민한 장소에서는 도무지 견디지 못할만한 그런  더위입니다. 아주 그럴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바람과 따시고 추운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혹 주의 뜻에 거리끼지  안한다면 우리에게 좀 서늘하게 해 주셔서 학생들이 이렇게 아주 폭서가 되는 이  중에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모여 가지고 있어 도 예배드리고 난 다음에  더웠다는 그런 감을 뒤에 남기지 안하도록 해 주옵소서 하는 것을 기도했습니다.

모두 다, 장년반들도 기도하고 중간반 뭐 유치반들도 기도하고 다 모두 한심해서  기도한 줄 압니다. 기도하고, 저는 믿음이 모자라서 기도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서늘하게 해 주셨는가 한번 볼라고 내려가서 봤습니다. 내려가 보니까 참  서늘해요 참 시원해서 어떻게 시원한지 '어떻게 이래 시원할까? 뭐 또 선풍기를  달았으니 거기만 시원한가 했더만 선풍기 안 단 곳도 또 시원합니다. 꼭 같이  시원해요. 그래서. 이번 하기 아동 성경 학교 때에 '아,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하는 그것이 깨어있는 사람이면 알았을 것이고 하나님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지난 번 팔월 집회 때도 그때에 일년 중에 제일 더운 때요, 몇 해 만에 제일  덥다고 하는 그런 아주 폭서의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창 집회 가서 있는  사람들은 더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덥지 안했습니다. 덥지 안했고 '서늘한  가보다' 이랬는데, 비 안 오는 날 없었고 또 옷 적시는 날 뭐 설거지하는 날  없었고, 비는 왔는데 아무것도 설거지 할거는 없습니다. 설거지하게 비가  와야지요? 이러니까, '옛날 이스라엘에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던 주께서 보통  한 삼십 사도 이상. 한 오십도 이상 올라가는 그 사막에 더운 줄 모르고 오히려  춥다 할 만치 구름 기둥으로 덮으신 하나님 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이 주님이  지금도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 기도 했는데 그때도 들으셨고.

그래서 이번에는 기도할 때에 '장생골 집회 때에 서늘하게 해주신 주님이 지금도  늙지도 안하고 쇠하지도 안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능력으로 좀 시원케 해  주실 수가 있지 않습니까' 기도했는데 우리에게 아주 서늘하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또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더운데, 우리  교회는 다 예수를 잘 못 믿어서 복을 많이 못 받아서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  놓으니까 에어콘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다른 데는 에어콘을 많이 만들어 놓고  이래 가지고 선선한데. 그러니까, 이제는 돈이 없으니까 하나님에게 그저 돈 안  주고 얻을 수 있는 거 공짜배기, 은혜밖에는 구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일도 하나님께서 서늘하게 해 주셔서 덥지 않도록 그렇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모두 기도했는데 오늘 보니까 공기가 대단히 선선하게 하나님이 해 주시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감사해야지 자꾸 더 망령을 부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는 더 더위를 단독 다 당하도록 할 것이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을 조부랍게 생각지 말고 큰 포부를  가지고 광대하게 아주 담대히 이렇게 비판하고 평가하고 '거기 대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창세기 5장이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두 가지만 보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뭐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나, 오래 살아도 사망. 건강해도 사망,  부자라도 사망. 자녀 많이 낳아도 사망, 잘난 자녀들 낳아도 사망 없어도 사망,  못난 거 낳아도 사망 마지막에 사망이라 하는 것으로 다 모든 것이 정리돼  버리고 말았다. 그래 사망하니까 쪼끔 뭐 몇 해 더 살고 사망이나 일찍 사망이나  자녀 많고 사망이나 적고 사망이나 꼭 같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생살이에 있어서 사망이냐 생강이냐. 생명과 평강. 사망이냐 생강이냐 이  둘로만 인생의 생애를 평가해야 되지 이둘 외에 다른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  눈이 어두어서 자가 욕심에 미혹돼 가지고 소경 놀음하는 것이지, 속는 것이지  아무 가치있는 슬기로운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활은, 내 생활 하루 생활이든지 한 시간 생활이든지 이  생활은 사망이냐 생강이냐.' 생명과 평강. 사망이냐 생강이냐 이 둘로만 우리는  가치를 평가해 가지고 결정지워야 되지, 뭐 아들이 많다 적다, 너거 아들은 아주  삼류 학교에 다니는데 우리 아들은 일류 학교에 다닌다.' 일류 학교 다니면 뭐  할 것이고, 네가? '저거는 그저 나이도 몇 살 안 먹어서 늙어 쪼글쪼글하지만  나는 나이가 이렇게 많아도 팽팽하다' 네가 팽팽하면 마지막에 안 죽을 것이냐?  건강이나 쇠약이나 다 자손이나 무 자손이나 부자나 가난하거나 뭐 모든 것이  구비하게 아주 호화롭게 사나 고통스럽게 사나 이런 것을 너희들의 인생의  생애의 가치로 삼지를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생의, 인간의 생애의  가치로 삼지 말아라. 둘로만 가치를 삼아라. 뭐냐? 하나는. 망하고 죽는 거,  이래도 저래도 결과가 망하고 죽는 그 한 길이 있고, 또 이래도 저래도  평강하는. 영생하고 평강하는 그 길이 있으니까 이 두 가지로만 평가해 가지고,  네가 생명과 평강하는 그 길에는 뭐 고생스러워도 그 고생이 길지를 안할 것이고  또 영광도 길지 안 할 터이니까 아무리 떫더라 개염이라 하는 개염 요만합니다.

떫더라 개염 한 개를 못 먹으랴라고 그까짓 거 이 세상에서 하룻밤 나그네 같은  생활에 고생인들 못 견디며, 또 좋은들 얼마나 좋을 것입니까? 이러니까. 그런  것을 네 인생의 생애의 가치로 삼지를 말라는 큰 교훈을 가지고 우리에게 교훈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좋아서. 가족에 자기 아내가 '여보, 저 집에는 뭐 피아노를 샀고 뭣 샀고  어떻고 어떻고 어떻고 뭐 자녀가 무슨 일류 대학을 갔고' 아무리 갔다 할지라도  '예, 그래요? 그러면, 그것이 생명과 평강에 속했습니까 사망에 속했습니까?  대관절 그거나 좀 말해 보십시오.' '아, 그거 생명과 평강에 속했습니다.'  '아이구, 그라면 가치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참 비참하고 아주 참혹하고  허무한 사람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그래 평가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의 그  생애가 생명과 평강에 속했소 사망에 속했소? '아, 생명과 평강에 속했습니다'  '나사로는 그 보십시오. 생명과 평강에 속했습니다. '아, 여보 생명과 평강에  속했으면, 하루밤 나그네 생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도 생명과 평강에 속했으면  그 사람은 승리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구비하다고 해도 그 사람의 그  생애가 사망에 속했다면 그 사람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여보, 인생의  생애를 평가하기를 사망이냐 생강이냐 요 둘로만 평가하고 그 사이에 지저분한  그런 평가를 하지 마십시오. 아내가 말하면 이렇게 그 남편이 아내에게 이 모든  평가하는 평가와 비판하는 것을 이렇게 가르쳐 주는 남편이 돼야 되지 '아,  그래? 거기 피아노 하나 샀어? 나도, 우리는 피아노. 그라면 둘 사지.' '그  사람이 뭐 과장 됐어? 나는 그라면 국장 되지.' '그 사람은 회사 하나? 나는 둘  가지지' 네가 그따위로 아내에게 말하면 너는 비참하고 가련하다 마지막에 가죽  껍데기 휘떡 벗고 나면 남편에게 '네가 나 속였다, 나는 나한테 속고 말았다'  해서 원수가 되고 마는 것이 지옥입니다. 여러분들 알겠소? 결혼을 해도 그렇고  결혼 상대를 구해도 그렇고 모든 게 다 이렇습니다. 인생 생애의 평가에서는 뭐  돈 많고 뭐 논 많고 권세 많고 지위 많고 없고 불쌍하고 약하고 건강하고 행락이  많고 아주 근심 걱정이 많다고 그것으로써 평가하지 말아라! 인생의 생애의  평가는 망하고 죽느냐, 살고, 영원히 살고 평안하냐 이 두 가지로만 평가하라.

 남편도 그럴 것이요, 아내도 남편에게 '여보. 미안하요' '뭐이 미안합니까?'  '아, 저 사람은 저 지금 좋은 빌딩을 하나 샀는데 나는 이 셋집으로 안 날 끌고  다니니까 미안합니다.' '여보, 하나님의 말씀에 인생의 생애의 평가를 몇 가지로  하라 했습니까?' '몇 가지요?  그거 무슨 소리요?' '아. 칠월 마지막 주일날  설교하지 않습디까? 오전에 설교했는데 몇 가지로만 평가하랍디까?' '아, 두  가지 그래. 두 가지' '두 가지 무엇이지요?' '사망과 생명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무것이가 빌딩을 사고 그랬으니까 그런 걸랑 평가하지  마십시오. 그 지저분한 그까짓 거야 많아도 적어도 상관없는 것이고 마지막에  결말이 다 좋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분이 지금 모든 생애하는 그  생애가 그 생명과 평강에 속했습니까 사망에 속했습니까? '아 그거야 뭐 죄를 물  먹듯 먹고 양심 쓰지 안하고 하나님의 계명 지키지 안하고 이래 하니까 사망에  속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지금 셋방으로 얻어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뭐에  속했습니까? 사망에 속했다면 나는 당신에게 불만과 불평과 원망과 시비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사는 것 이 무슨 사망될 만한 그런 원인이 있습니까? 다  생명과 평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믿음 생활이 아니었습니까?' '믿음 생활은  믿음 생활이지 '여보. 그러면. 사망과 생강과 바꿀 수 있소? 당신은 눈이 어둡고  좀 모자라요. 이러니까, 내 남편으로서는 좀 불만스럽소' 왜? 요 두 가지로만  인간 생애의 평가를 하고 재세의 평가를 하는 그런 남편이 돼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아내가 돼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부모가 돼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자녀가  돼 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친구가 돼 주는 것이 이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지 그  안에 지저분하게 많으면 뭐 할 것이며 오래 살면 뭐 할 것이며 밥을 많이  먹었으면 뭐 할 것이며 또 기쁘면 뭐할 것이며 건강하면 뭐 할 것이며  병들었으면 무슨 상관 있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오전 이 창세기 5장에서 인간 생애의 평가는 두 가지로만 하라  하는 것을 자기 복음으로 듣고 요대로만 여생을 사는 사람들이 되기로 작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아내도 그저 남편에게 '아. 아무 것이는 유행 옷을  지금, 또 그분은 또 유행 옷을 또 사서 입었대요. 아마 그거 한 사만 원  줬겠는데. 유행 옷을 사서 입었대요. 이렇게 말하거든 그 남편이라도 하나 살아  있거들랑은 '그러면, 그 옷이 사망에 속했는지 생명에 속했는지 둘로만  평가하라고 했으니까 그래 좀 평가해 보지요.' '그거 야 뭐 사망에 속했지요,  뭐. 좋은 옷이라고 사망에 속했습니까? 말씀을 어겨서 계명 지키지 안하고 주님  사랑치 아니하고 하는 그 생애 가지고 만든 옷이니까 사망에 속했지. '그러면,  당신도 그 옷을 입고 싶습니까? 그 옷 하나 해줄까요? 내가 지금 있는 거기서  속이면 하루 많이는 못 속여도 내 직장에서 뒤에 감옥에 갈지라도 당장 속이면  뇌물 오만 원도 받을 것이고 십만 원도 받을 것이고 또 몇 십만 원도 사기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래 가지고 좋은 옷 사 입힐까요?' 이라니까.

'아이구, 안 하겠습니다.' 이럴 수 있어서, 여러분들이 인간의 생애, 인간의  생애의 가치관을 바로 이렇게 가졌을 때에 모든 일은 정리되고 기쁘고 즐겁고 참  가치있는 인생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생 생애의 가치를 평가할 때는  요 두 가지로만 평가하라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에녹은 영생과 평강을 누렸는데 그 사람은 무엇을 하다가 그렇게  했습니까. 무슨 생활 하다가? 여기 말하기를 에녹도 다 같이 자녀도 낳았고  살림도 살았고 뭐 오만 일 다 했소. 했는데, 다만 그 사람이. 에녹이 육십 오  세까지는 그는 일반 사람과 같이 살았지만 육십 오 세부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데려감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안하고 영생과 평강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땅 위에서 어떤 큰 것을 경영한다 할지라도, 큰 것을  경영한다 할지라도, 세계를 위한다 할지라도. 전인류를 위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민족을 위하고 어떻게 국가를 위하고 어떻게 가정을 위하고 어떻게 20세기의  문화 건설을 위한다 할지라도, 다 좋은 일은 좋은 일인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면 좋은 일이지 만 하나님 버리고 마귀하고 동행하면서 하면 다 사망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나머지기 거기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뭐 근 천 살이나 이렇게 살고 했지만 그들은 다 마귀와 동행했기  때문에 결국은 사망 의 결과를 맺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은 뭐입니까?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은 그저 내 뜻  내 주장 내 욕심 내 좋은 대로 하지 안하고 하나님 좋아하시는 하나님의 계명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 흑 삐뚤어지는 일이 있어도 그래도 아주 울타리 밖에 탈선은 안  됩니다. 속에 중앙에 명중은 안 되지만 그래도 탈선은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울타리 안에 있지 울타리 밖에 나가지는 안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아주 제일 중앙 유교의 중용지도라 하는 그 중앙 제일 중추점에  거기 입각해 가지고 사는 것은 뭐 이냐 하면 영감을 따라서 사는 것이 제일  중심을 따라서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자기가 성경 지식에 대해서 유식 한 이도 있고 무식한 이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알고 있는 성경 말씀대로 그대로 현실에서 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아는대로, 설교 말씀을 듣고, 들은 대로  그대로 자기가 행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 죽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아니함으로 죽었는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안하는 것은 어떤 거와 동행하는가? 마귀와 동행하는 것이 이것이 사망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귀와 동행한다는 말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 마귀와 동행하는 것이요.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이요, 모든  자기중심의 습관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애의 가치는 사망이냐 생강이냐 요 둘로만 인생 생애의  가치를 평가하라 요것을 단단히 붙들고. 그러면. 인간 생애의 수많은 방편들이  있는데, 이런 방편도 있고 저런 방편도 있는데. 뭐 사교 방편도 있고 또 국제,  국교 방편도 있겠고 또 이런 복술 방편도 있겠고 과학 방편도 있겠고 이렇게  상업 방편도 있겠고 뭐 수많은 인간의 생애 방편.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는 생애  방편이 천도 만도 넘습니다. 넘지만 너는 인간의 생애 방편을 둘로만 정해라.

뭐이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마귀와 동행하는 것.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뭐인데?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것,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애와, 하나님의 말씀이야 어찌 됐든지 간에  저 하고 싶은 대로, 인간들이 요구하는 대로 인간들이 부탁하는 대로 인간들이  명령하는 대로 인간들이 시키는 대로. 이렇게 하나님이 시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한 길이 있고.' 하나님 외에 인간들 자타간에 인간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길이 하나 있으니. 이 두 길 밖에 없으니까. 네가 인간의 생활의  방편이 천도 만도 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 이 외의 거는 정승이  돼도 사망 생활. 왕이 돼도 사망 생활, 세상을 주름 잡아도 사망 생활, 세계의  재물을 다 가져도 사망 생활, 어떻게 사람을 많이 얻어서 인성을 쌓았다 해도  사망 생활. 천하 인간이 다 존대해도 사망 생활 그거는 사망 방편뿐이다, 다만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만이 생명 방편이다 요래 단숨에 우리가 평가하고  정해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생의 가지도 둘로만 정하라. 인간의 생의 방편이  수천 수만도 넘지만 고게서 다만 두 가지로만 평가하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거 하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사는 거야 천 개든지 만 개든지 그까짓  거야 억만 개든지 상관없어. 하나님 말씀 어겨 사는 그 거는 전부다 다 한  가지입니다. 그거는 다 동등이야.

 이래서. 우리가 '아, 자, 어떤 생애가 가치있노?' '아, 저 집에는 참 저렇게  가치있게 산다. 또 저 남편은 저리 가치 있다, 저 부인은 저리 가치 있다 저  직장은 좋다. 저 회사는 저렇다' 인간의 생의 가치를 네가 둘로만 평가해라.

생명과 평강에 속했느냐? 죽고 망하는 데에 속했느냐? 요 둘로만 구별해라. 네가  쪽발로만 걸어가라. 요 둘로만 네가 평가하라. 그라고 난 다음에 '아, 저 집에는  뭐 무슨 방편을 취해 가지고 저 사람들은 뭐 일류 대학에 지금 진학하는 방편을  취했고, 그 사람들은 아주 남보다도 선견자가 돼 가지고 선진 국가에 가 가지고  모든 것을 먼저 보고 와 가지고 후진 국가에서 사니까 그 사람들은 마구 돈을  끌어 담는다네' 뭐 선진 국가의 그런 절 본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거 다  좋습니다. 과학도 좋고 사업도 좋고 취직도 좋고 공부도 좋고 다 좋습니다.

좋으나, 그런 것을 지저분하게 다 그래 할라고 하면 사람이 거기 빠지기  쉬우니까 다만 둘로만 네가 구별해라. '보자' '아, 그 사람 지금 공부는 일류  대학에 갔단다' '그러면, 일류 대학에 갔어? 하나님의 계명 순종.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계명 지키는 것으로 일류 대학에 갔나?' '그래 계명 지키는  대로 아, 그 사람은 주일날 시험치는 데는 안가고 주일날 시험 안 치는 데 갔고,  주일날 다 시험 치다가 마지막에 면접하는 거, 면접하는 것은, 면접하는 것은  주일날 한다는데' '그 사람 주일날 그라면 면접했나?' '주일날 면접 안 했어.

면접 안 했지만 입학이 됐어.' '그러면, 그 사람은 계명 지키며 일류 대학  갔구만? 그는 복있다, 그는 생명과 평강이다.'  뭣이든지, 좋든지 나쁘든지, '아, 그 사람은 지금 요번에 취직할 것인데 그만  취직하지 못하고, 공부를 실컨 해가지고' '아, 그 사람은 공부를 한 십오 년  가량이나 공부해 가지고 그만 취직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누워 있네. 아무 데도  출세도 못 했네' '왜 그런가?' '그것이 계명을 어기다가 그러면 사망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것은 계명 지키다가. 주일날 시험 치라 하니까 주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시험을 못쳐서 그래 됐다' '그러면 계명 지키다가 세상에서 패배자가  됐구만. 계명 지키다가 세상에서 천물이 됐구만. 계명 지키다가 세상에서 매장이  됐구만. 계명을 지키다가 세상에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됐구만 그러면. 그  사람의 취한 그 방편이. 취한 방편이 거지가 되고 천하게 됐으니까 그 사람의  취한 방편이 잘 됐습니까 못 됐습니까? 그 사람의 취한 방편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한번 손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희미하게 들지 말고 확신 있거든 확신이 들어요. 확신 있거든,  잘 됐어. 그 이상 좋은 방편 없어요. 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이  다입니까? 세상 너머 영생이 있어.

 '너는 이 세상 일생 동안 살면서 내 계명 지키느라고 출세도 못 하고 사업도 못  하고 천물 천물 그래도 내 계명이 그 모든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세상 모든 만복보다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으니까, '내가,  하나님 내가 뭐이 좋아서 그랬느냐? '아, 하나님 한 분이' 좋습니다. 그것보다  낫습니다.' 이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무궁세계에 하나님께서. '너는 그 짤막한  그 세계에 그래 살았기 때문에 영원한 세계에서 나 하나가 모든 것보다 좋은 줄  알기 때문에 나 하나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 되겠다' 했으면 모든 거 다  아닙니까? 여러분들 눈을 멀리 뜨고 멀리 보고 삽시다. 근시자가 되지 말고 멀리  보고 포부를 넓게 가지고, 근시자로 당달 봉사 모양으로 짤막짤막하게 그렇게  보고 사는 그런 소인이 되지 말고 좀 큰 포부를 가지고 원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생애 방편은 수많은 가지가 있지만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거 고거  하나 있고. 그 외에 하나 뭐 계명 어기는 그까짓 거야 천이나 만이나 그까짓 게  다 사망할 방편이기 때문에 칠 것도 없어. 볼 것도 없어.

이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 한 방법만 내 생애의 방법인 줄  알고 지킬 것이고, 또 내가 보는 사람도 하나님의 계명 지키면 서 사는 그  사람만 내가 볼 일이지 하나님 계명 어겨서 사는 그까짓 거야 어겨 가지고 뭐  정승이 되든지 어겨 가지고 뭐 대장이 되든지 어겨 가지고 뭐 부자가 되든지  사장이 되든지 어겨 가지고 뭐이 되든지 그까짓 거 좋으나 나쁘나 볼 것도 없어.

도매금으로 다 한가지이기 때문에 볼 것 없다. 무가치하다. 무가치하다.

무가치하다 다 사망이다. 따라 합시다. 무가치한! 무가치한! 사망이다!  무가치한! 사망이다! 뭐 무가치한 사망의 방편인데 볼 게 뭐 있으며 배울 것이  뭐이며 부러워할 것이 뭐입니까? 요렇게 믿음으로 단정짓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생애의 방편은 두 가지라,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말씀대로 사는 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요, 나머지기는 다 사망할 것이기 때문에 고까짓 거 볼 필요도 없어.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도 없어. '아이고, 우리는 젊은 부부가 참 만 나 가지고  좋다. 깨소금이 흐르는 가정이다' 암만 해도. 그라면, 뛰룩뛰룩 있다가 '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걸음이가?' '동행하는 걸음은 아니야.' '그라면 그거 뭐 들  것도 없고 볼 것도 없고 가치로 평가할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어.' '아, 그  사람들은 참 가정에 깨소금이 흐르게 참 재미있게 살 아서 온 동리 사람이  부러워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 계명 지키는 생활이가?' '아, 계명을  지키는데 그렇잖아' '하, 그거 가치 있다' 계명을 지키는, 계명을 지키고 안  지키는 데서 무가치 가치로서 결정해야 되지 뭐 있는 거 보이면, 좋으면 계명  지키면 더 좋고 또 나빠도 계명 지키면 좋고 천하 인간 중에 제일 박복하고  불행스러워도 계명 지켜서 그 길 갔으면 제일 행복된 생활입니다. 요거 우리가  기억합시다.

 기억하고 한 가지 여러분들에게 참고로 두 가지만 줍니다. 참고로 두 가지 주는  것은, 계명 지키는 사람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계명  지키는 길을 가리켜서 십자가의 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무슨  길인고 하니 먼저 죽고 뒤에 살아나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기를 다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는데, 우리는 죽음 없는 세계에서  살아야 됩니다. 죽음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되는데 참고로 삼을 지혜 두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따라합시다. 두 가지 기쁨! 세상이 빼앗지  못할 두 가지 기쁨! 이것이 우리 생애입니다.

 두 가지 기쁨이라니? 하나는 무슨 기쁨인가? 내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현실을  만났을 때에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평안하고 좋을 터인데, 나 하고 싶은 대로  할라 하니까 평안하고 좋고 괜찮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그 계영 지키는 생활을 할라하니까 고통이  옵니다. 고통이 와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할라하니까 여러가지 애로와  마찰과 고통이 옵니다. 고통이 오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버려 버리면  그만 평안이 옵니다. 왜? 세상하고 합작되니까 세상에서 아무런 대적이 안  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쁨 두 가지를 가져야 되는데, 첫째 기쁨은 우리는 오늘 갈란지  내일 갈란지 모르는 사람들인데 우리가 가 가지고 영원히 모시고 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요. 주권자이시요, 창조주이시요, 대주재신데, 자. 우리  현실에서, 우리 현실에서 이분을 기쁘시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분을 섭섭하게  하고 자기 기쁘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현실에서 자기 기쁘게 하고 이분 섭섭하게  했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둘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자 자기 현실에서. 그거 모두 실지로 느껴 봐야 알아요, 느껴 봐야. 자. 밀에  부하가 있습니다. 부하가 있는데 이제 아주 그 높은 지위입니다. 상관이 있는데  상관을 위할라고 하면 자기에게 좀 애로가 닥치고 그 애로를 피해서 자기 좋게  할라고 하면 상관을 섭섭하게 절단을 내야 되겠고 이럴 때에 그때 그 현실을,  현실을 상관 위하는 것으로 살았으면 기쁠까요 자기 위하는 것으로서 상관을  버리는 것으로 살았으면 기쁠까요? 어떤 게 기쁘겠습니까? 어떤 게 기쁘겠소?  네, 그때에 자기가 좀 어려 워도, 어려워도 상관을 위하는 것으로 살았으면 곧  상관 만날 터이니까 그때에 기쁘고 즐거울 것입니다. 자기 위하고 상관을  절단나게 하는고 자기 편리하기 위해서 고라고 나면 그 사람이 기쁩니까  즐겁습니까? 양심에 가책이 되고 께꾸름하이 궂은 고기 먹은 모양으로, 썩은  고기 먹은 모양으로 아주 고통이 될 것입니다. 뭐이든지 다 그렇소.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기는 지금 땀을 뻑뻑 흘리는테 사장의 유익을  위해서, 사장 일을 위해서. 다른 사람은 다 집어 던지고 가는 것을 그 일을  챙겨서 일을 그래 했을 때에, 이래 했을 때에 자기 마음이, 다른 사람은 다  버리고 갔는데 자기는 오 회사 일이 낭파 될 것이라서, 주인은 사장은 모르지만  자기 마음에 낭파 될 것이니까 '아무래도 내가 좀 힘이 들고 괴로와도 이거  회사에 낭파될 일 이거, 전기 스위치를 안 껐으니까 이거 절단 날 터인데 이거  좀 힘이 들어도 전기 스위치를 끄고 좀 이래 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그  회사를 위기에서 구출했으면 자기 마음이 기쁘겠소 고통스럽겠소? 기쁘지  않겠소?  기쁘고 그라다가, 그러면 기쁘지요. 기쁘다가 또 그 다음에 사장이 그 걸 알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그냥 갔는데 그때 그 지금 사장이 그걸 알고 지금 막 이  회사는 절단난다 싶어서 지금 이제는 보니까 직원들이 다 태만해 가지고 그만.

전기 스위치를 안 꺼서 지금 곧 조금 있으면 불이냐 가지고 탈 건데 뭐 사장이  그걸 알고, 뭐 뭐라 하노? 그 신호해 주는 걸 뭐라 합니까? 예? 신호 오는 거  뭐라고 하제? 건축가가 알지 안하나? 예? 신호 오는 거 뭐라 하더라? 아따 그놈,  건축하는 사람은 아는데, ○장로님 알 건데, 왜, 저 화재 나면 우는 거 뭐라  합니까? 예? 아, 경보기인가 뭐인가, 지금 경보기가 우니까 이 사장은 이제 절단  났다 싶어서 마구 지큼 죽자 살자 달려오니까 회사는 직원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는데, 와 보니까 이제 한 사람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지금 그 모든  전기 스위치를 다 끄고 지금 그래 지금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게 이제는  절단났다 싶었는데 와 가지고 보니까 다 그 사람이 방지해서 괜찮다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그때 사장 왔을 때에 기쁠까요 안 기쁠까요? 예? 기쁘겠소 안  기쁘겠소? 기쁘지. 요것이 기독자의 기쁨의 두 가지입니다. 알겠습니까?  기독자의 기쁨.

 내가 어려움을 당해도 나를 대속하신 주님,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시요 전지  전능하신. 대주재이신, 영원히 내가 모시고 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함으로  내 현실에서 그분 때문에 내가 어려움과 괴로움을 당하는 그 때에 그분을  생각함으로 인해서 오는 기쁨, 그분을 생각함으로 인하여 오는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가지 못 합니다. 예 빼앗아가지 못해요.

그래 가지고 죽으면 슬픕니까? 그래 가지고 죽을 때에는. 기독자가 기독자가  순교당하는 것은 뭐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순교당하는 것 아니오. 자기  신앙양심에 주를 위함이라, 이건 틀림없이 주를 위함이라 하는 그 신앙양심에  확고할 때에는 죽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교자 순교할 때에  담대한 자가 누구냐하면 신앙양심에 가책 없이 순전히 주님을 위하는 것이라는  요것에 확신을 가진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아픔이  없습니다. 이거는 참 신비한 것이라서 겪어 보지 못하면 모르는 이 신비한  세계의 것입니다 이 기쁨이 우리 기독자의 기쁨이요, 그 현실에서. 현실에서  자기가 희생되고 주를 기쁘시게 하고 자기가 손해보고 주님 유익되게 하고  이렇게 한 그 기쁨 그것은 얻어 본 자밖에는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그날 종일 일하다가서 오늘 가만히  생애를 생각해 보니까 오늘은 '아. 내가 거기서는 유익을 취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유익을 취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면제해 줬지'  그러면, 그날 생애가, 그날 생활한 것이 전부 다른 사람을 위하는 생활이 됐고  다른 사람을 돕는 생활이 됐고 참으로 양심으로 생각 할 때에 참으로 인격  생활이 됐고 참으로 누구든지 보면 '아. 그 사람 은 참 모범할 만하고 기념할  만하고 그 사람은 본받을 만하고 우리가 참 그 사람은 다 환영할 만하며 '칭찬할  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자기 생애가 하루 종일 이루어졌을 때에 그때에 그  사람이 저녁에 기도할 때에 기쁨이 올란지, 하루 종일 '아. 돈이 왔다. 이 돈이  왔다. 이 사건이 해결됐다'. 해결 됐다는데 그걸 계산을 그날 밤에 대 보니까  '요것은 그 사람에게 못 할 일을 했네. 그 사람에게 억울을 끼쳤네. 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그 사람이 요걸 알면 날 잔인하다고 복수를 하겠네' 이래서. 모든  사람을 해하는 그런 일로 자기에게 무슨 수입이 되고. 또 그렇게 한 생애를  주님이 보고 계시고 그럴 때에 그날 밤 돈을 보고 기쁠까 자기 올바른 정의의  공의의 생애를 한 그것으로써 기뻐질까 뭘로 기뻐질까요? 우리들이 그런 거  사소한 일 아닙니까?  사소한 일이지만 우리는 그럴 때에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 그 일은  일이 잘됐다 할지라도 그거는 께꾸름해서 마지막에는 먹지 못해서 토해내뜨리는,  '아, 안 됐다 께꾸름해서', 이거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내던지는 거와  마찬가지로 안 믿는 사람도 양심이 그런 것입니다. 나중에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서 그 사람에게, 사람이 남에게 잔인한 일을 하면, 불택자들도 잔인한 일 하고  나면 그 사람 폐인됩니다. 왜? 잔인한 일 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장 그게  끼여서 '내가 이랬는데' 그러면 그 사람이 활기를 띠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자신을 가지지 못하니까 그 사람이 망하고 만다 그말이오. 하물며 우리  기독자의,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난 우리들이겠습니까? 영감을 받은  우리들이겠습니까? 영감 받은 우리들 이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았으면 나를  영감시킨 그 영감이 나를 기쁘게 할까 슬프게 할까? 내가 영감대로 살고  진리대로 살았으면 내 마음을 주관하는 그 성신의 감동이 와 가지고 나를  감동시켜서 행복되게 할까 나를 고통스럽게 할까, 그 영감이 와서 나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영감이 와서 나를 기쁘게 합니다. 이거는 체험을 해 봐야 알아.

기쁘게 해요.

 기독자들이 크고 작은 데에서 자기 양심 생활에서 기쁨을 얻지. 물질에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조그만한 '아이들도 그렇소. 아이들에게도 제가 조그만한  선한 일 하나, 조그만한 사탕 하나 남에게라도 주고, 아이들에게 뭐 형제에게  친구에게 주면, 자기 사탕 한 개 있었는데 한 개 그걸 자기 혼자 먹지 안하고  그걸 딱 갈라 가지고 반쪽씩 갈라서 동무에게 주면 그 아이에게 기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이 겪어 봤소? 안 겪어봤소?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있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런 존재입니다. 그것이  본성이오.

 이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린 아이들이라도 주러가는 거는 좋아하고 받으러  가는 거는 싫어합니다. 자, 다른 사람 앞에 얻으러 가길 좋아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다른 사람에게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어린 아이들도  말이오, 심부름 시켜서 '아, 이거 아무 집에 이 거 좀 대접할 것인데 이거 좀  음식 좀 갖다 드려라' 하면 서로 가져갈라 그 합니다. 서로 가져 갈라고 해요,  서로 가져 갈라고. '아무것이 집에 가 가지고, 우리 집에 없는데 고거 좀 주인  모르게 살며시 훔쳐 가지고 오너라' 그라면, 훔쳐 가지고 오라 하는데 갈라고  하는 아이 있소? 예? 가 그 싶은 아이 있겠소? 없어. 우리 인생이 돼 먹기를  그렇게 돼 먹었다 그거요.

 안믿는 사람들은 자기 상관에게, 자기 주인에게. 또 자기 어른에게, 아, 아내도  무슨 일 할 때 자기가 오늘 좀 땀이 뻑뻑 흘려도 남편을 생각하고 서 남편  기뻐할 일. 오늘 땀을 뻑뻑 흘리면서도 남편이 오면 이 아이들 시커머이 해  놓으면 거석할 것인데 오늘 좀 땀을 흘려도 아이들 빨래를 쏵 빨고 아이들  목욕을 쏵 시키고 이래 가지고 이래 놓으면 기쁘고 즐겁다 말이오. 기쁘고  즐거워. 이제 아이들 그래 놓으니까 남편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겁고, 그  아이들에게 어머니 노릇한 거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겁고, 또 깨끗한 옷 입힌 거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겁고. 몸 씻겨 놓으니까 기쁘고 즐겁고 막 기쁨이 꽉  찼습니다. 기쁘고 즐겁고, 그러다가 남편이 지금 직장에서 땀을 뻑뻑 흘리면서  이래 가지고 지금 건드래 건드래 하고 이래 오는데 와 보니까 아이들을 깨끗이  씻어서 옷을 깨끗이 입혀서 아이들이 모두 시원해서 좋아서. 갔다 오니까 '아빠  아빠'하며 달라듭니다. 그라면 그 남편이, 그럴 때에 남편은 어떨 것이며, 그  아내가 남편이 척 와서 아이들 보 그 '여보' 부를 때에 어떨까요? 부를 때  욕할라고 부를 줄 알겠소? 칭찬 할라고 부를 것이 환하다 그말이오. 그 남편이  오면. 남편이 오면 '아이구 오늘 왜 이래 일찍 오노' 그렇겠습니까 얼른 오면  싶으겠습니까? 예? 시커멓게 해 놓으면 '아이구, 벌써 오네. 씻기지도 안하고  이래 놔서 이거 오늘 또 꾸중 들어 놨네' 이렇는데, 만일 그래 깨끗하게 했으면  남편이 오면 얼마나 기쁘며 얼른 오면 싶을 것 아니겠소? 이러면 그때가서  자기도 모르게 오면 '아이구, 오늘 더우시지요? 오늘 수고했습니다.' 아이들  보고 아, 내야 뭐 장 하는 일 그런데 이 아이들이 어째 이거 뭐 말끔한 데 이거  씻기고 옷도 이라고 다 이렇게 했어요? 아, 오늘 참 수고 많이 했습니다. 아주  수고했다고 이렇게 칭찬하고 '여보, 내가 당신은 내가 씻겨 주지요' 하면서 아내  목욕시켜 줄란지 모릅니다. 알겠소? 만 가지가 우리 인간은 다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두 가지 기쁨, 우리가 주를 위해서 계명 지키는, 그  현실에서 생활을 하면 우리 속에 성신의 감화가 우리를 기쁨을 줍니다. 양심이  우리를 기쁨을 줍니다. 우리에게 있는 그 진리 지식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을, 주님을 생각하니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 기쁨을 가지고,  한 가지 기쁨은 주님이 오시면 우리에게 어떤 기쁨을 주십니까? 그럴 때에  주님이 오시면 어떻게 칭찬하며 또 주님이 우리에게 뭘 주시겠습니까? 이러니까,  계명 지키기 위해서 손해볼 때에 주님을 생각하고 자기 신조와 교리를 생각하고  양심을 생각할 때에 자기 주관적 기쁨이 생겨지게 되는 이것이 우리 기독자의  기쁨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 주를 위해서 손해를 봤는데, 손해를 봤는데  손해보고, 이래 주님 위해서 계명 지킴으로 인해서 요번에 이 사업은 절단났다,  계명 지키다 보니까 단골 다 떨쳐서 사업 절단났는데, 계명 지켜서 사업은  낭파된줄 알았는데 나중에 낭파가 아니고 오히려 크게 성공 돼 가지고 온다  그말이오.

 간단하게, 요셉이가 감옥소 들어가 가지고 거기 가서도 항상 요셉이는 기쁨이  충만한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사람으로 살았는데 그 삶은  요셉이의 주관, 주관 기쁨이요 평강인데, 주관 평강을 그때 뭐이 줬습니까?  요셉이에게 뭣이 들어서 요셉에게 기쁨과 평강을 줬습니까? 요셉의 진리 지식,  또 신앙양심, 또 주님을,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 이것으로 인해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기쁘고 즐거웠소. 그러기 때문에 감옥 안에 있어도 기쁘고  즐거웠소. 이랬는데, 토막 토막이 다 그런 토막이지만 마지막에 그 사람이 애굽  나라의 총리 대신이 됐을 때에는 그때는 무슨 기쁨입니까? 십자가의 죽는  기쁨입니까 부활에 속한 기쁨입니까? 부활의 기쁨이오. 주를 위해서 손해봤는데  주를 위해서 크게 유익이 되는 그것이 부활의 기쁨.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기쁨과 부활의 기쁨 이 두 가지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입니다. 기독자들이 십자가의 기쁨을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를 고통스러운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승리를 하는 줄 알아도 실은 승리 못하고  나중에 가 보면 다 잡탱이고 다 뽀금뽀금 구멍이 뚫어져서 다 헛일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를 위하는 십자가의 기쁨, 또 부활의 기쁨 이 두  가지 기쁨이 기독자의 기쁨인 것입니다. 요 두 가지 기쁨.

 그러므로, 오늘은 몇 가지 배웠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두  가지? 어? 두 가지? 또, 세 가지? 세 가지? 세 가지로 하는데, 세 가지 하면 좀  너무 간단해. 이삼 육. 여섯 가지. 오늘 배운 거 여섯 가지입니다. 여섯 가지를  단단히 기억해요. 요 여섯 가지가 우리의 인격의 전부입니다. 요 여섯 가지면  세상을 이깁니다.

요 여섯 가지면 어떤 데서라도 항상 행복되게 살 수 있고 여유있게 살 수 있고  담대히 살 수 있고 모든 최종의 전체는 다 자기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것은 다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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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4 생사의 갈랫길/ 요한복음 3장 25절-30절/ 800120주후 선지자 2015.11.04
3333 생사의 갈랫길/ 요한복음 3장 22절-30절/ 800120주전 선지자 2015.11.04
3332 생사의 갈랫길/ 요한복음 3장 25절-30절/ 1980년 4 공과 선지자 2015.11.04
3331 생사화복의 원인/ 신명기 28장 1절-19절/ 840704수야 선지자 2015.11.04
3330 생사화복의 원인/ 요한일서 3장 8절/ 890626월새 선지자 2015.11.04
3329 생애 법칙/ 마태복음 6장 33절/ 790824금새 선지자 2015.11.04
3328 생애법칙 네 가지/ 창세기 9장 20절-27절/ 810528목새 선지자 2015.11.04
3327 생애법칙-기쁨의 결과 맺어지게/ 누가복음 2장 12절-14절/ 871225금새 선지자 2015.11.04
3326 생애의 지침/ 에베소서 5장 15절-18절/ 820330화새 선지자 2015.11.04
» 생의 가치/ 본문 : 창세기 5장 1절-32절/ 850728주전 선지자 2015.11.04
3324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절-32절/ 850731수새 선지자 2015.11.04
3323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절-32절/ 1985. 7. 28.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5.11.04
3322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21절-24절/ 850731수야 선지자 2015.11.04
3321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8절-27절/ 850802금새 선지자 2015.11.04
3320 생의 가치/ 창세기 5장 1절-32절/ 1985년 16 공과 선지자 2015.11.04
3319 생의 방편/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40530수새 선지자 2015.11.04
3318 생의 본능/ 히브리서 11장 5절-6절/ 870201주전 선지자 2015.11.04
3317 서머나 교회-5대관/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871122주전 선지자 201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