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23
생명이신 그리스도
본문 : 골로새서 3장 1절-4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위에 '그러므로' 하는 말은 그 위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2장 20절 이하에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이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그 말은 배암의 지식으로 살았고, 다시 말하면 배암의 지식인데 세상 지식으로 살았었는데 세상 지식으로 살던 자는 죽었다는 말입니다.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세상 사람과 같이 이 배암의 지식, 인간 지식, 세상 지식 이 지식에 너희들이 따라 사느냐 이 지식을 따라서 사느냐. 우리는 그 지식을 따라서 사는 자는 벌써 죽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서 살지 그 지식 따라서 산 자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가 세례 받는 것은 죽었다는 그 장례식을 하는 것이요 그것이 또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는 아주 상관을 가지지 말라 그 말입니다. 상관을 가지지 말라는 그 말은 '이것은 하나님 말씀 외에 이것도 다소나마 그래도 이용 가치가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해서 이용 가치가 거기에 먼지만치라도 섞여 있다고 그렇게 생각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따라서, 그게 세상이니까 말씀을 따라서 세상 그것을 이용 할려고, 그것을 우리의 이용물로 하나님의 선물로 그것을 우리가 사용하지 그것에게 털끝만치라도 복종할 만한 가치는 하나도 없다, 그것을 이용할 이용 가치는 있다. 마치 잡아 놓은 쇠고기가 우리에게 먹는 데에 우리 식료품이 되고 우리에게 유익이 있는 거와 같이 그런 것이지 그것에게 털끝 만치라도 복종할 그런 가치는 없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늘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용하는 것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용하지 못한다. 진리는 우리가 이용하지를 못한다.
그러기에 진리에게는 우리가 순송하고 복종하고 이 진리의 보호 아래, 이 진리의 슬하에 우리가 사니,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보다 무한히 큽니다. 무한히 크고 높기 때문에 이 지식의 혜택을 우리가 입고 이 지식의 보호를 입고 이 지식의 인도를 받고.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고 살아납니다. 그러나 배암의 지식, 사람의 지식, 이 세상 지식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게 복종하는 이런 복종할 만한 가치는 하나도 없다. 거기에는 하나도 복종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복종 안 해야 되면 얼마나 복종 안 하도록 돼 가지고 있느냐? 복종하던 자가 죽었다. 그것에게 복종하던 자는 죽었기 때문에 아예 그런 것에게는 털끝만치도 복종할 자는 죽었기 때문에 복종할 수는 없고 복종하시는 않고, 그러면 그거 뭐 하려고 가졌느냐? 그것을 이용한다. 우리가 우리 구원을 이루는 데에 그것을 사용한다. 그 지식과 우리와는 차원이 달라서 우리는 산 자요 그것은 죽은 것이기 때문에 죽은 것을, 쇠고기를. 우리가 죽은 쇠고기를. 죽여 놓은 쇠고기를 우리가 삶아서도 먹고 뭐 구워서도 먹고 하는 것처럼 이 세상 지식 그거는 죽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필요한 대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거는 이용을 하고 구워 먹고 그거는 우리 양식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지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는 그런 능력은 하나도 없다. 그런 가치는 하나도 없다.
그것을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그 말은 옛사람으로, 옛사람으로 상관하던 그런 상관은 전혀 가지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어떻게 살았느냐? 이 세상 배암의 지식에 따라서 살았습니다. 배암의 지식에 복종해서 살았고. 살았는데. 이제는 과거에 배암의 지식을 상관하던 그 상관 같은 그런 성질의, 그런 본질 본성의, 그런 관계성의 상관을 전혀 하지 말아라 하는 자가 죽어 버렸다. 하는 자가 죽어 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자이다. 그러면, 우리는 중생된 자로 그것을 상관합니다. 22절에 '이 모든 것은'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이것을 쓰면 쓰는 거만치, 내나 죽었고 다시 살았는데 쓰는 것만치 죽은 행위 되고 죽은 것이 자꾸 커져 가는 것뿐이다 하는 말입니다. 거기에 복종하면 말이오. '쓰는 대로' 이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걸 말하는게 아니고.
'쓰는 대로' 그에게 복종하는 대로, 복종하는 거 만치 썩어진다. 복종하는 거만치 죽어진다. 우리가 요렇게 이 세상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을 구별을 해야 됩니다. 세상에는 지식이 두 지식이 있다.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요. 세상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 그런 말을 벌써 뭐 얼마나, 여러 수십 번도 들었을 것이고. 수백 번은 몰라도 수십 번은 아무래도 다 들었을 것입니다. 이러나, 자기가 깨닫고 요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거기에서 우리의 실패가 다 부패에 돌아갑니다.
그것을, 거기에 복종하기 때문에 부패에 돌아갑니다. 세상 법칙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이러면, 하나님의 법칙은 이래야 된다 하고 세상 법칙은 이래야 된다 하는데 우리가 아무래도 세상 법칙대로 할 때는 뭐이냐 하면은 세상 법칙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거. 그걸 인간 말로는 쓴다고 말하나 실은 해부해 들어가면은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라. 그러면 다시 부패해지는 것이다. '쓰는 대로' 쓰는 것만치 말이오. 콩알만치 썼으면 콩알만치 부패됐고, 주먹덩이만치 썼으면 주먹덩이만치 부패됐고, 그저 순간을 썼으면 순간 그거 다 부패 됐고, '부패로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사람의 명이라 말은 곧 인간 지식이라는 말이요 배암의 지식이라 말이요 이 세상 지식이라 말입니다. '사람의 명령과' 그대로 순종하니까 명령이 된다 말이오.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또 그 가르치는 대로 그걸 따라서 움직이느냐. 그러기 때문에 은밀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게만 복종하고 또 의에만 복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게만 복종하고 성령에게만 복종하고 또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하여 살아야 됩니다. 인하여서.
'가르침을 좇느냐 이런 것들은' '이런 것들은'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인데, 하나님이 명령해서 이래라 해 가지고서 섬기는 일이나 복 받는 일이나 또 자기에게 난제 해결하는 일이나 그런 것을, 숭배라는 말은 이렇게 섬긴다는 말인데 섬긴다는 말 속에는 자기의 문제 해결을 그로 말미암아 해결을 받고 자기에게 모든 병든 거 잘못된 것을 다 그에게서 고침을 받고 또 새로워지고 온전해지고 온갖 축복 평강 기쁨 뭐 성공 이런 거다 그것을 그에게서 얻을려고 하는 거, 그에게서 얻을려고 하는 그것이 숭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것은 거기에 피동되지 말라는 것이요, 섬기지 말라는 것은 숭배하지 말라 그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타락한 인간들의 그 타락성, 악성 악성 속에는 뭐이 들었는가? 악령이 들었는데 악령과 악성에서 나오는 그 숭배지. 악령과 악성이 가르치는 그 숭배니까 만물보다 거짓된 타락성 원죄성 그런 것이 발견했고 발기했고 그런 것이 명령하고 그런 것이 지도를 하고 시발을 한 그런 것이지, 자존자 그분이 모든 것을 다 만드셨고 그분이 주장이 되셨는데 자존자 그분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이 아니다. 그 말입니다. '자의적 숭배라'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또 그것이 뭐 섬기는 것도 그것대로 섬기는 것이고 겸손한 그 모든 것도 그것도 그것들이 가르치는 대로 그대로의 사람이 돼 가지고서 그대로의 처세 합니다. 이러니까 그것도 다 자의적 겸손이라. 하나님 말씀이 너는 죄인이라 하는 대로 죄인으로 알아야 될 터인데 그저 죄인이라 하는 것도 그거, 효성하는 것도 그거, 좋은 거 나쁜 거 전부 그놈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다 죽었다 그 말이오. 다 죽었다.
'자의적 숭배와 자의적 겸손과 또 몸을 괴롭게 하는데' 이런 거니까 겸손할라 하고 그것대로 살라 하고 또 그것을 섬길라 하고 이라니까 고생스럽지요, 그것을 자의적으로 하지 말고 진리와 영감대로 또 속에 중생된 사람의 주격인 그 영의 움직임을 따라서, 영의 움직임은, 영은 성령과 진리의 주의 피의 움직임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우리의 영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할 때에는, 영은 세 가지로 살아난 세 가지 힘을 가지고 그 영이 우리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이래 하기 때문에 거기에 떡 따라 순종하면 된다 그거요. 이런데, 이미 하는 그 움직임에서 그대로 움직이면 이것이 다 영생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것이 그대로 움직임이 아니고 피조물 제 독단에서 발원된 움직임이라, 피조물 제 독단에서.
이러니까,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이러니까 이것도 다 헛일이고,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그 '몸을 괴롭게 하는데' 그 몸을 살리는게 아니고 전부 고통 준다 말이오. 고통 주는 거, 우리가 영감과 진리와 새생명으로 사는 것은 몸을 죽이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죽으신 것은 죽은게 아니라 그 몸이 완전히 살았습니다. 다시 죽을 수 없는 몸으로 살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로 고생당하는 거, 진리로 이래 연보를 하든지 뭐 진리 때문에 뺏겼든지 손해 보든지 한 거는 그 재물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그 재물이 잠깐 보관 되었던 내가 보관했던 것이 보관 노릇을 잘 하니까 주인이 이제는 보관물이 아니라 아주 내것으로. 영원히 내것으로 취급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인데 보관해 가지고 있는 것이요. 보관해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다 제 마음대로 도적질해 가지고 마귀에게 빼앗기는 것도 있고, 보관 노릇을 잘해서 이것은 내것이 아니라 주의 것이니까 주의 것으로, 주의 종이니까 주님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이렇게 사니까 죽은 눈이 볼 때에는, 죽은 눈이 볼 때에는, 죽은 지식으로 볼 때에는 없어진 것이요 손해본 것이요 작아진 것이요 죽은 것이요 망한 것이지마는 그게 죽은 눈으로 보면 그런데, 산 눈 하나님의 지식으로 보면 그것이 보관했던 것이 영원히 제 것이 됐고 또 유한한 것이 영원한 몸이 됐다.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완전한 몸이 됐고 영생하는 몸이 됐고 그렇게 된 것이니까,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죽는 것 없고 손해 보는 것 없고 작아지는 거 없고 없어지는 거 없는데. 이제 이 세상 의문에 속한 그것은 아주 그것을 가지고서 잘 섬기는 일, 뭐 섬기는 일 그러니까 그거 섬기면 뭐이 나올 줄 알고, 또 그렇게 자기를 알아서 아주, 겸손이라 하는 것은 자기 아는 것인데 세상 지식 가지고서 자기를 이런 자라고 아주 겸손히 주의를 해서 이렇게 살고 하는 그런 것이나 또 이게 모두 다 말하면 괴롭게 하는 것뿐이고 죽게 하는 것뿐이고 헛된 고통이라 그 말이오.
'괴롭게 하는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아주 그렇게 모두가 다 죽게 하는데.
죽도록. 죽도록 하는 것인데, 지식이 달라 놓으니까 죽도록 하는 것인데 아주 지혜로운 생활같이 보여지고 아주 또 그것이 참 확고성 있는 것같이 보여집니다.
요새 꽃마을에 가니까 아주 중들이 집을 크게 짓고 자꾸 점령합니다. 이라니까 그 세력들이 큰 거 같고 또 그들이 섬기는 것도 뭣이 효력이 있는 것 같고 하지마는 그거 전부가 다 죽는 운동입니다. 죽는 운동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전부 계획한 것도 죽었고 마음먹은 것도 죽었고 바친 성심성의도 죽었고 행동도 죽었고 피도 죽었고 모든 일도 죽어 전부 다 사망뿐입니다. 내가 우리 부산 지역에는 기도실이 없어서 교역자들이 모두 이리 저리 흩어져 가지고 이라니까 이거 좀 믿음이 흔들려서 자꾸 그저 겨우 유지하는 것은 여기서 금요일날 오고 이래 하는 그거로 유지하지 도무지 샘물 파는 일이 좀 성글어진다 말이오. 이래서 이 기도원을 하나님께서 어데 기도실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실 터인데 어디인지를 몰라서 김해도 한 군데 붙여 놓고서, 또 거기인가, 꽃마을인가, 또 여기에 양산동이 있으니까 거기에인가 이래 가지고서 생각하는데, 어제 내가 하나 만날라 하다가 못 만나서 내치 공을 들이다가 바침 전화를 해서 만났는데 만나니까, '그 집이 어찌 됐습니까?' '네, 팔라고 내놨습니다. 내놨습니다.' 내놨는데 삼천 팔백만 원까지 줘도 안 팔라고해서 아마 삼천 팔백 한 오십 만 원이나 좀 더 주면 팔지 안할까 이렇게 말을 하는데 그거 하나만 사면 우리가 다 모여서 기도실을 쓸 수 있겠는데, 말하기를 척 그 사람이 말하기를 '스님, 스님들이, 스님들이 그것을 살라고 그렇게 합니다.' 이제 중들이 살라고 한다 그거요. 절 하려고. '뭐 하려고?' 내가 '뭐 하려고' 하니까 '아마 절을 하려고 그라는 갚습니다' 그렇게 말해요. 그거는 인제 나한테 약을 올리는 것이고 지금 경쟁을 붙일 그런 말이라, 내가 말을 들어 보니까. 우리를 중들 하는 거와 같이 생각해요, 그사람들은.
내나 중들이 불교하고 우리는 예수님 믿고 이라니까 같은 그런 무슨 유사의 종교로 그렇게 알고 있어서 그렇게 말해. 그러니까 '아, 이거 참 기독교에도 필요하다고 지금 그걸 살라 하는데 기독교에만 아니라 불교에도 필요한 거 갚습디다. 그 스님들이 와 가지고서 그걸 살라고 합디다' 그렇게 말해 그런데, 이종교, 모든 기독교 외에 이종교 그 모든 종교들이 하는 그섯은 아주 절제도 있고 의지도 있고 겸손도 있고 성심 성의도 들었고 공도 들었고 다 이렇지마는 그거는 다 괴롭게 하는 거, 죽도록 만드는 거. 전부 다 죽게 만드는 거. 그런 거는 괴롭게 하는 것뿐이지,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그 말은, 육체 좇는다 그 말은, 심신이 주인이 돼 가지고 사는, 그것이 그 속에 악령 들어 가지고서 심신이 주인이 돼 가지고, 영이 주인이 돼야 될 터인데 심신이 주인이 돼 가지고서 마음 저 하고 싶은 대로, 또 몸뚱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하고 싶은 대로 몸뚱이 하고 싶은 대로 이 심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건 전부 사망이라 그말이오.
심신 이것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건 전부 사망이라. 이러니까, 심신이 하고저 하는 이것을 다 죽이고, 이것을 금지하고, 심신이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고 심신이 그 중생된 주격인 영의 명령대로 복종해야 사는 것인데 그 명령대로 복종하지 안하고 심신 이놈 제 마음대로 자꾸 날뛴다 말이오. 마음도 암만, 찬송하면서도 이제 찬송만 할라 해도 이 마음이 찬송할 때도 벌써 대판도 갔다가 서울도 갔다가서 저 미국도 갔다가 뭐 오만데 다 돌아다닙니다. 찬송 한 번 할 때도 이 마음이 얼마든지 제 마음대로 돌아다녀. 이거 참 뭐 이 마음이라 하는 건 얼마나 날랜지 모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연상이라, 연상이라 이렇게 말하는 것인데 이거는 뭐 자주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녀. 돌아다니는데. 이놈을. 조심이라 하는 건 마음을 볼끈 붙들어 매 가지고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내가 싸우는 것이 허공을 치는 거와 같은 그렇게 싸움을 하지 안한다. 내가 나를 쳐서 복종하는 이 싸움을 하고 있다' 바울이 말했다 말이오 고린도전서 9장에, 9장 끝절에.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 이것을 쳐서 복종을 하고 몸을 쳐서 복종해서, 예수님의 마음과 몸이, 예수님의 마음과 몸이 어떻게 했느냐? 예수님의 마음과 몸은 예수님의 영에게 복종했고 영은 또 신성에게 복종해서 그렇게 뭐 십자가에 못박히셔도 한 번 아야 소리도 못 했어. 한 번 아야 소리도 못 하고 아프다 소리도 못 했고, 꼭 우리를 대속하고자 하는 그 대속은 그 세포 하나도 대속에 대해서 반대하는 자가 없었고 억지로 이렇게 대속하는게 아니고 세포 하나까지도 원하고 원함으로 대속을 했다 말이오.
이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공의 눈이 딱 보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보자.' 뭐이든지, 세포 하나라도 반대하면 그거 내나 그것이니까, 죄는 손가락 하나가 죄 지으면은 온 전신이 죄 지은 거 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세포 하나라도 자원하지 안하고 억지로 강제로 우리를 대신하게 되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지하신 눈으로 딱 보고 살폈는데도 그 세포 하나도 억지가 아니고, 부득이가 아니고, 끌려서가 아니고 다 자원하는 우리의 대형 대행 대화친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는 뭐 하나님의 지공법. 지성법에서 지공법이니까 본인이 꼭 원하는데 그걸 강제로 하면 그거 강제라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공법이 이제 여기에 대해서 어쩔 수 없어 복종했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내가 어데 말하다가 그래 나갔지. 또? 예? 네,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이놈을, 우리는 이것이 벌써 법적으로는 죽었는데, 죽고 이것이 지금 법적으로는 살아났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죽은 자로 살지 안하고 살아난 자로 이 마음도 몸도 살아야 될 터인데 이것이 제 마음대로 합니다. 우리가, 이 심신이라는 이것이 법적으로는 이것이 벌써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같이 죽었고 또 법적으로는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뭣이 죽었느냐 하면은 이 심신을 주관하던 그놈이 죽었습니다. 악령 악성 악습 그것이 죽었고, 우리는 이제 주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이게 살아났는데, 이제 이 마음과 몸 이것이 제 마음대로 자꾸, 옛날 버릇이 있어서, 옛날 버릇이 있어서 옛날 버릇으로 자꾸 그 마음이 제 마음대로 할라 하고 자꾸 이렇게 한다 말이오. 자의적으로 할라 한다 말이오. 자의적으로 할라 하는데 '이것을 금지하는 데에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금지하는데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이러니까 산 생활은 한내끼도 하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유익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3장 1절에 말한 '그러므로' 이렇기 때문에라는 말을 가리켜서 '그러므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실려고 신성을 가지신 그 신성은 완전한 신성입니다. 예수님의 가지신 신성도 완전한 신성이요 또 인정도 완전한 사람입니다. 뭐 조금도 사람과 다른 무슨 것이 없고, 다만 특수인이라 하는 것은 성령으로 잉태해서 된 것뿐이지 되어진 그 사람은 우리와 꼭 같은데 죄만 없습니다. 우리와 꼭 같은데 죄만 없소. 우리보다 능력이 무슨 탁월하거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똑 같은데, 똑 같은데 죄가 없고 죄가 없는 그 인성이 신성과 한 격위를 이루어 가지고서 생활할 때에는 우리 사람이 사람에게 부담된 거, 사람이 잘못한 거, 또 사람에게 부담된 거, 또 사람이 서야 할 위치 그 모든.
말하자면 인간 노릇 하는 거, 인간 살이 하는 거, 인간의 살이 하는 그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하시는데, 우리 전부 택한 자들을 똘똘 뭉쳐서 예수님께서 대신 지금 인간 살이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 살이를 할 때에,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요 우리보 다 뭐 강하거나 또 크거나 무슨 그런 능력이 있지 않습니다. 꼭 같은, 꼭 같은 인성인데 다만 신성과 한 격위를 이루어 신성으로 동하고 정했습니다. 신성으로 동하고 정하고 우리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까지 예수님의 인성은 조금도 변해지지 안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변질시킬라 하는 것이 악령과 악성의 역사요. 예수님의 인성이 털끝만치도 변질되지 안하고. 예수님의 인성은 털끝만치도 변질되지 안하고, 고 인성을 아주 변질시킬라고, 신성을 변질시킬라고 마귀가 달라들지 안했고 예수님의 인성을 변질시킬라고 무슨 도덕면이나 지능면이나 활동면이나 모든 시발면이나 결과면이나. 마귀가 첫째 아담을 이렇게 정복해 가지고서 제대로 변질시켜서, 그러기에, 인간이 타락은 본지위에서 지위만 타락한게 아니라 변질이 돼 버렸습니다. 이랬는데, 고와 같은 지금 인성을 조그마치라도 악령과 죄와 이것으로 말미암아 변질시켜 볼라고 애를 써 털끝만치라도. 세포 하나라도 변질만 됐으면 고것으로 인해 가지고서 마귀는 승리하고 패전하는 건데 변질할라 했지만 변질은 하나도 안 했습니다. 안 하고, 다만 한 거는 뭐이냐? 이것이 변질시킬라고, 변질을 시킬라고 형벌 주고 변질 시킬라고 괴롭게 하고 변질을 시킬라고 자꾸 괴롭게 형벌 주고 이라니까 이것이 변질 안 하려고 하다 보니까, 변질 시킬라고 하고 안 할라 하고 이라다가 이제 조그마치도 변질은 되지 안하고 변질시키기 위한 고난은 오만 고난을 다 받았습니다.
그러면, 고난 받으면 변질 될까 하는 고난 준 그 고난이 우리가 이미 그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의 것으로서 제가 사로잡아서 이리 저리 성전 꼭대기에 끌고 올라가고 마음대로 이와 같이 해도, 해도 자행은 하나도 없고 죄 지은 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변질되지 안하고 다만 그 형벌만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하신 것은 우리 대신 그 형벌만 받았고 우리 대신 하나님에게 복종 했고 이러니까, 예수님의 인성. 그 영육에 대해서는 형벌받은 것뿐이지 조금도 변질된 것은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변질이 안 됐으니 그 몸의 세포 하나도 죽일 수가 없습니다. 변질되지 안했으니까. 또 그 마음 하나도 죽일 수 없습니다. 그 영도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붙드는 데에는 몸뚱이뿐이요 영도 암만 형벌을 주지마는 영이 형벌만 받았지 영이 형벌 받음으로서 범죄 하지 안했기 때문에 죽지는 안했다 말이오. 범죄 안 했기 때문에. 또 마음도 아무리 형벌을 줬지마는 형벌은 받았으나 범죄하지 안 했기 때문에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 몸도 아주 형벌은 줘서 어떤 고문과 고형을 다 당했지마는 변질되지 아니하려고 함으로써 이렇게 서로 대립돼서 싸우다가, 예수님이 도전하신 셈인데, 이라다가 마지막에 저희는, 이 할 대로 다해서 더 할 수 없도록 그만 있는 거 다 전부 하나님께 순종으로 죄 짓지 않는 것으로, 또 우리를 대신해서 형벌을 받음으로, 형벌만 받았고 자체가 변질되지 안함으로서 숨이 딱 끊어졌다 말이오. 숨이 딱 끝나 버렸으니까 마귀는 다시 심문할 수도 없지 다시는 고문할 수도 없게 돼 버리고 그 전체는 완전히 승리해 버렸고 다시 재대로 고문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것으로서 마귀는 완전히 패전을 해버리고 거기에서부터 손을 들었습니다. 일본 나라가 팔월 십 오일날 천황 폐하가 손을 들기로 이래 선포를 한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 그만 마귀는 완전히 졌습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둘째 아담으로 더불어 실력 대결 해 가지고서 대결해서 마귀가 패전했기 때문에, 과거 우리가 패전해서 마귀의 것이 된 거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마귀가 패전했기 때문에 마귀는 우리의 것이 됐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도로 찾아 가지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그 영은 뭘 했는가? 그 영은 하나님에게 매달려서 하나님에게 부르짖는 일을, 구하는 일을 했고, 또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는가?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지성 지공의 하나님에게만 전부 향해서 우리를 대속하려는 여기에만 향해서 거기에만 피동됐지 털끝만치라도 마귀 이놈이, '나한테 절 한 번만 해라. 나 한테 절 한 번만 해라. 나한테 조그마치만 피동해라' 조그마치라도 피동만 하면은 이제 고거 가지고서 다 재판하면은 되겠는데 털끝만치도 마귀와 죄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형벌을 어떻게 해도 형벌만 받았지 피동되지 안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공 지성법에 완전으로 인정을 받아 가지고 우리의 대속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몸은 우리의 형벌을 받아서 죽었습니다. 죽었으나, 그 몸은 형벌만 받았지 형벌 받음으로서 더러워지지 안했고 하나님과 연결되고 죽지 안했기 때문에 그 몸은 영생하는 몸으로서, 완전히 죽은 것이 이제. 죽은 것이. 제한된 몸, 또 마귀에게 침노를 받을 수 있는 그 몸이 이제는 마귀가 다시 침노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침노할 수 없는 완전 영생하는 몸으로 완전히 승격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그 죽음은 형벌로 죽었지 그 자체가 더러워지지 안했기 때문에 그 몸은 세포 하나까지도 전부 영생활 수 있는 것으로 다 완전히 승격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제자들에게 '내가 가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기 때문에 가 가지고 있을 곳을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내가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영접하리라' 다시 온다는 말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셔 가지고서 아버지에게 갔다가 온다 그 말입니다.
아버지에게 갔다 오는 거. 갔다 오는 거는 법궤 위, 법궤 위 금단 그 위에 그룹 사이 거기에 있는 속죄소 거기에가 이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인데. 형상으로 그래 놨는데 거기에까지 가서 해결짓는데. 갔다가 온다고 이라는 것은 죽으셔서 거기에 갔다가 온다고 이라는 것인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에 영과 혼은 운명하실 때에 즉시 승천했습니다. 즉시 승천해서 강도에게 '너와 나와 함께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이래 낙원에, 영과 혼은 낙원에 가서 계시고. 그런데, 예수님은 신인 양성 일위인데 그 인성 중에 그 마음, 혼이라는 마음, 또 영 이는 함께 낙원에 갔지마는 몸뚱이는 아직까지 낙원에 못 갔다 그 말이오. 못 갔는데,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난 다음에 만질라 하니까 '나의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의 아버지에게로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나를 만지지 말아라 만지지 안했는데, 만지지 안하고 조금 있다가는 만지라 하는 것은,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만지지 말아라. 이제 만지라 말은 올라갔다 왔다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육체, 부활하신 그 몸은 그때에 올라가서 몸이 거처할 완전 승리를 결정을 지우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있을 곳을 예비한다는 것은 영이 살 곳 또 우리의 혼, 우리의 마음이 살 곳, 우리의 몸이 살 곳 이것을 완전히 다 승리했기 때문에, 승리했기 때문에 이제 승리한 그 승리로서 확정을 짓고 그래야 될 터인데 확정 지으러 영과 혼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운명하시는 그 시간으로부터 즉시 올라가 가지고서 모든 것을 다 해결을 지웠고 예수님의 몸은 그때까지 땅에 있었기 때문에 그 몸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이제 승천하셔 가지고서 확정을 짓고 다시 왔습니다. 지금은 다시 와 가지고 우리와 같이 계시는데, 세상 끝날까지 같이 계시는데 우리에게 같이 계시는 것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는 인성에게 딱 들이붙어 가지고서 신성으로 더불어 결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들을 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 지금 데리고 가는 판이요 지금. 데리고 가는 판에 우리가 자꾸 이와 같이 하면서 승리해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죽는 것은 죄값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몸이 죄 짓지 않는 몸으로서 어쨌든지 없어졌다고 하면은 그거는 없어진게 아니고 죄 짓지 않는 몸이 없어진 것은 영원히 침노를 받지 안 하는 완전한 영생하는 것으로 완전히 승격되고서 성화되는 것입니다. 뭐 아무리 살아서도 죄 지었으면 그것은 내나 죽는 것이 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이나 몸이나 영은 벌써 완전이 됐고, 이것은 죄를 짓지 않고, 죄 짓지 않는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중생된.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셋으로 인하여서 산다는 말이요. 또 거기에 피동되어 산다는 말이요, 다시 말하면 다시 살아난 자 새사람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안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하는 그 말은 이 몸뚱이.
이 몸뚱이 이게 인간들 보기에 죽여 버리니까 죽지 않습니까? 죽지마는 주님에게. 복종으로 죽었으니까 너거 보기에는 죽은 거 같지마는 죽은게 아니라 이제 다시 죽지 아니할 것으로서 완전히 승격됐다.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완전히 변화됐다 그 말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살아서 믿는 자는 어떤 자인가? 영도 살아서 믿습니다. 영도 살아서 믿고. 또 우리에게 살아서 믿는 자 있다 말은 영도 살아서 믿고 또 우리에게 혼도 살아서 믿는 거 있고, 죽은 것이 살아 납니다. 죽은 것이 살아나 가지고 살아서 믿는 혼이 있는데 그 혼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떠날 때는 순교를 하든지 뭘 하든지 할 때에는 영하고 우리의 마음하고는 바로 즉시 낙원으로 갑니다. 천국 대기소로 즉시 올라가게 되고 이 몸은 그때에 처져서 있지마는 부활한다 그 말이오. 처져서 있지마는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 부활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 밤에 말씀한 거와 같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그러면 어제 비유로 말한. 자연 계시를 가지고 말했는데 이 몸에 모든 어떤 훌륭한 몸이라도 생명 떠나면 그것이 다 썩어져 버려요. 뭐 아주 얼굴이 미인이라, 굉장히 미남 미인이라도 생명 떠나면 그만 푸르죽죽하게 그만 송장 돼 버립니다. 생명이 돌아오면 푸르죽죽하이 송장이더마는 기절했다가 돌아오니까 혹은 한 달 혹은 두 달 되니까 내나 옛날 얼굴이 생겨지고. 또 생명이 돌아오니까 첫째는 자기 마음이 살아지고 자기 몸이 살아나고 또 그 다음에는 다시 활동이 살아나니까 자기 소유들이 다 살아 납니다. 그러나 생명 끊어지면 다 그만이라.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명이신' 이 생명이라는 말은 육체의 생명이라 말이고 우리의 인격의 생명, 우리의 인격의 생명. 또 하나님의 모형의 생명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참사람의 속성의 생명, 이 참사람, 이것이 살아난 그 생명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생명인데, 그 생명이 그라면 대속하신, 세 가지 대속하신 이 생명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생명도 되어 있고 또 그리스도가 와 가지고 우리의 생명도 되어 있습니다. 내나 예수님의 대속이. 그리스도의 일을 실천한 것이 예수님의 대속이요, 또 예수님의 대속이 벌써 영원 전 이 일을 경영하시고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그안에서 이 그리스도가 창조했고,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창조했으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새끼로 그리스도와 꼭 같은 자로 이렇게 기르기 위해서 그때 창조하셔 가지고서 이랬는데, 그리스도가 때가 되니까 도성인신 해 가지고서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양성 일위라 말은 양성 일 격위라 말입니다.
양성 일 격위라, 양성 일 격위라, 양성 일 격위라. 양성 일 격위 돼 가지고서 맡은 직분이 뭐이냐? 일위라, 한 위, 일위라. 이래 가지고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 내가 뭘 이래 말하다가 이래 나갔지? 뭐이지? 예? 예? 그래, 옳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로 생명이신데, 그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인데.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인데 곧 뭐이냐?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 그 말은, 그리스도가 우리 생명이라 말은 영원 전의 것을 뿌리로 박아 가지고서 거기에서 부터 연결돼 와 가지고서 앞으로 지금 어떤 가지가 피고 어떤 잎이 피고 어떤 꽃이 피는 것으로서 앞으로 자라나가겠느냐 하는 그 형편을 가리켜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 그러면 우리가, 우리가 움직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움직임이라, 우리 힘은 그리스도의 힘이라,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그리스도가 자라가는 것이라. 또 우리가 앞으로 얻을 영광은 그리스도의 얻을 영광이라, 그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제사장의, 제사장 힘이오. 우리의 힘은 뭐이냐? 제사장 힘이오.
우리 힘은 제사장 힘이지, 제사장 힘은 무진장입니다. 제사장 힘은 무진장으로 우리가 받지마는 제사장 힘이 아닌 독사와 같은 악령 악성의 힘은 자꾸 이 제사장의 힘이 오면 그거는 죽습니다. 제사장 힘이 오면 죽어요. 그러기 때문에 헌 부대, 헌 부대는 새 술 넣으면 터져 버려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도리는 육신적으로 살고 이 세상적으로 사는 것은 이게 오면 죽는데 죽이는 것이라. 자꾸 죽이는 것이지, 그게 자라지 않는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도로 가지고서 이 세상 소망 그것을 이루어 갈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오. 오면 죽습니다. 그러면, 오면 죽으면 예수 믿는 사람은 전부 거지 된다 말인가? 아니야. 악령과 악성으로만 죽음에 속한 것은 다 죽어 버리고, 저거가 원하는 거는 죽어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부자만 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권세가만 되어서 이렇게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셔 가지고서 이렇게 우리가 자꾸 그리스도로 자라갑니다. 그리스도의, 알아 듣기 쉽도록 말하면 새끼 그리스도로 자라갑니다. 또 그리스도의 꼭 모형으로 자라 갑니다. 보니까 꼭 그리스도와 같은데 실은. 그리스도는 자존자시요 창조주신데 우리는 그리스도와 꼭 같은데 피조물인 고것만 다릅니다. 피조물인 고것만 다릅니다. 그러면, 예수님도 인성이 신성과 일 격위를 가지고서 이렇게 완전을 이루셨는데 우리는 일 격위는 안 되지마는 일행은 됩니다. 일행. 동거 동행은 된다 그거요. 이래 가지고, 그러니까, 동거동행은 되니까 예수님께서 첫 열매 맺음과 같이 우리도 모든 요소가 그와 같은 요소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둘째 열매로 된다 말이오. 처음에 감 열었으면 두번째도 감 안 엽니까? 세번째도 감 열지 않소? 이런 영광의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를 기르는 것이 이것으로 기르고, 기르는 것이 이것으로 기르고, 기르는 것이 어디서 길러지는가? 길러지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에서 길러지는 것이니까 이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그직임이 무슨 움직임인가? 그것이 제사장 되는 움직임이요 선지자 되는 움직임이요 왕이 되는 움직임이니까 그게 전부 다 영생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이래 움직였는데, 이래 움직여 가지고 자라니까 그리스도가 뒤에 하늘과 땅의 것을,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는데 통일됐을 때에 그때에 그리스도가 영광으로 나타나는 것은 왜 영광으로 나타납니까? 영광으로 나타난다 말은 모든 피조물들이 다 감탄하고서 주라 시인하고 찬송하고 다 좋아하고 환영한다 그 말이오.
와 화영하는가? 자체 완전이라 그런가? 아니야. 자체 완전이 아니고, 이 모든 피조물이 타락으로 인해서 저거 혼자 살라고 날뛰다 보니까 영원 멸망을 받았는데 영원 멸망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다시 이같이 희생해 가지고 이것을 구출했기 때문에, 제사장 선지 왕직을 가지고 이 일을 살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영이 나타날 때에 영광스럽게, 모든 것이 통일될 때에 영광스럽게 나타난다. 영광스럽게 나타나는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면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은 이제 말한 대로 그렇게 당신이 없는 가운데 지으신 것이 당신 배반했다가 멸망받은 것을 당신이 또 이 세 가지 직책을 해 가지고서 영원히 살게 했으니까 모두 다 감사 찬송 할 거 아니겠습니까? 찬송하는데, 우리는 뭣 때문에 그 영광 중에 나타나는가? 우리도 그 형상대로 우리가 자랐고 또 우리가 앞으로 그 일을 영원히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광이 앞으로 있고 또 우리가 받는 영광 뭐인가? 과거를 가지고 영광을 받는 건데 과거 영광 받는 거는 뭐인가? 우리가 제사장 선지 왕이 우리 마음의 움직임에서 몸의 움직임이 됐기 때문에, 마음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은 전부가 다 제사장 노릇 한 그 움직임이요 선지 노릇 한 움직임이요 왕 노릇 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에게 다 이웃에게 유익 준 거뿐이라 말이오. 유익 준 거뿐이니까 다 좋아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이 이런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똑똑히 깨닫고 굳게 삽시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똑똑히 모르면, 어쨌든지 주님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주님 잊어버리지 말고 주님 떠나서 살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됩니다. 말을 하면서 주님 떠나서 말을 않도록, 설교를 하면서도 주님 잊어버리고 저 혼자 날띌 때 많이 있습니다. 저 혼자 날띌 때 껍데기는 되는 것 같지마는 속에는 벌써 끊어졌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제일 순위의 첫째 순위가 에베소 교회인데. 에베소 교회에 말하기를, 너는 잊어버렸다. 버렸다. 버렸다, 떨어졌다. 어디서 떨어져? 버렸다 떨어졌기 때문에. 버리고 떨어져 가지고서 그와 같이 하기 때문에. 네가 버리고 떨어져 가지고 했으니까 자동차가 세게 달리니까 달리다가, 달리다가 벌써 안에 있는 엔진이 고장났고 이래서 기능은 하나도 없어져 버렸는데 달리던 그 힘으로 주루루루룩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네가 위에서 벌써 버렸고. 네가 이 처음 사랑,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으로 네가 살아났고 네가 굳게 됐는데 그 사랑 네가 버렸지. 또 어디서 끊어졌는지 아나? 이러니까, 진리와 영감과 그리스도의 이 대속에서 끊어졌기 때문에, 완전에서 끊어져 가지고. 가던 그 속도에서 네 모두 다 참고 견디고 또 진리를 증거하고 거짓된 것을 드러내고 이렇게 오만 봉사나 사랑이나 의나 진실이나 성결 운동이나 이와 같이 했지마는 너는 나무를 베 놨으니까 벌써 생명이 끊어졌으니까 이파리는 청청하지마는 시간 따라서 그거는 바짝 마르는 거와 마찬가지로 너는 그와 같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요것을 기억해서 주님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주님 놓지 안해야 돼. 주님 놓은 생활은 다 헛일이오. 주님 떠나서 말한 그 말은 제가 아무리 설교를 많이 해도 그 설교는 다 죽은 설교요. 끊어졌다 말이요. 그거는 찰나 찰나로,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속지 말아라. 너희들이 죄를 지으면은 마귀의 자식 되고 의를 행하면 하나님의 자녀와 같이 돼진다. 그러면 즉시 마귀 자식 됐다가 즉시 하나님의 자녀 되다가 즉시 즉시 그리 되는 것이지 한 번 하나님의 자녀 됐다고 쭉 우리 심신이 하나님 자녀로 있는게 아니고. 또 마귀 자녀로 돼 가지고 있다가도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요동 시켜서 변동될 수가 있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나님 놓지 말아요. 밤이나 낮이나 무슨 일 하든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같이 일해요. 또 하나님께 물어서 일해요. 우리 안에 완전자가 들어 있기 때문에 선생님도 완전한 선생님이요, 지도자도 완전한 지도자요, 능력도 완전한 능력이야. 그분이 모든 면이 완전이니까 완전이 내 안에 있으니까 내 안에 있는 완전을 쓰지 뭐 몸 밖에, 이분을 버리고 딴데 가서 움직일 필요가 뭐 있습니까? 완전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기도록에 등록된 사람은 육천 팔백 칠십 육 명입니다. 모두 다 등록하시고 그렇게 시도하노록 힘씁시다. 그서 잊어버리지 말아요. 잊어버리지 말고 똑 권면해서 온 가족끼리 다 권면해 가지고 다 이 삼십 분 기도하는 거 꼭 해야 됩니다. 이 삼십 분 기도하는 것이 이것이 진합태산이오. 삼십 분 기도하는 것이 이것이 무슨 구원 이루는 방편을 했느냐 하면은 티끌 모아 태산 된다는 거와 마찬가지로, 삼십 분씩해서 모으면은 한달 이면 얼마요? 삼십 분이니까 열 다섯 시간 아니오? 삼십 일이면 열 다섯 시간. 열 다섯 시간이면 열 달이면 백 오십 시간. 이러니까, 우리가 한 시간에, 한 시간에, 백 오십 시간에 올라갈 그 높은 산을 한 시간에 올라 갈라 하면 세상에 올라갈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백 오 십 시간에 엉금엉금 기어서 뚜꺼비 기듯이 이래 올라가도 올라가는 그 산을 한 시간에 올라갈라 하면 날짐승 아니면 올라가지 못한다 그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렇게 하루에 반 시간씩을 이를 위해서 하나님에게 부르짖었고 이렇게 한 이것이 모여 가지고서 앞으로 뭐 어려움이 당한다 해도 그 어려움은 그저 날아가듯이 날아가도 남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걸 잊어버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