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09
생각으로 연결
1986. 4. 9. 수새벽
본문:요한복음 6장 54절∼55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는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영은 단일체의 것이요 단일성의 것입니다. 육은 심신을 합해서 육이라 합니다. 여게 대한 깨달음은 동일하지를 아니하고 그 깨닫는 것이 너무도 수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은 마음의 부분들이 영이요 육은 이 혈육의 이것들이 육이라 그렇게 깨달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래서, 영이라는 말은 성경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으나 곧 마음이 영이요 양심이 영이요 이성이 영이요, 또 어떤 분들은 이성적 영이라 이성과 같은 그런 영이라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 영과 마음은 그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마치 손바닥으로 비유하면은 손등은 영이요 손바닥은 마음이라 이렇게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상 하나가 있는데 그 책상에, 한 책상인데 그 책상에 한 모때기가 살아난 것처럼, 책상같이 되어 있는 건데 한 모때기가 살아난 것처럼 그 중에 한 부분이 살아났으니 그것이 산 영이라 중생된 산 영이라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다 마음과 영을 하나로 그렇게 보고 마음과 영은 아주 딴 존재로 그렇게 보지를 않는 것이 다대수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대한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문제냐 하면 우리에 신관이, 신관이 제일 중요하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인관입니다. 사람을 어떻고 보느냐? 다시 말하면 인론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논평하느냐 하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그것이 영이요 또 영의 형상대로 지은 것이 마음이요 마음의 그 형상대로 지은 것이 몸이라. 이래서 하나님은 영이 나타내고 또 영은 그 마음이 나타내고 마음은 몸이 나타내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의 영이 하나님을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지고 무슨 다른 마귀나 뭐와 그런 거와 연결이 되면 그런 것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런 것 아닙니다.
영은 전용물이지 이것도 쓰고 저것도 쓰고 여게도 쓰이고 저게도 쓰이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영은 쓸 수 있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데서만 그는 살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 영을 통해서 나타내서 하나님의 능력도 그 영이 나타내고 하나님의 지혜도 하나님의 그 모든 사랑도 모든 속성도 다 그 영이 하나님과 꼭 같이 이렇게 나타내서 창조주요 피조물인 그것은 다르지마는서도 피조물이면서 창조주의 모든 것을 다 그대로 정확히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의 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흙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는데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니까 생령이 됐고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는 흙으로 지어서 모든 동물을 다 흙으로 지었는데 동물을 흙으로 지은 거와같이 그런 흙으로 지었을 때는 다 동물처럼 그렇게는 돼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하나님과 연결된 참 영생하는, 영생할 수 있는 그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생기를 불어넣으니까 그때부터 작용이 일반 동물과 다른 그런 탁월한,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런 작용을 영이 할 수 있고 영은 그 육을 통해서 나타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을 그 앞에 갖다 놓고 이름을 어떻게 짓나 하고서 이렇게 보시니까 그 말한 것이 그대로 다 이름이 됐고 또 하나님이 그것을 보실 때에 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연결되니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나타내서 했기 때문에 거게는 아무런 착오가 없었습니다.
그라다가, 영은 주격이요 이 심신은 피소유격인데 배암이 와 가지고 이 심신을 꼬와서, 꼬울 때에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을 때는 누가 제일 선봉장이 돼 가지고 역사했는가? 고기덩어리가 선봉장이 되고 그 다음에 마음이 고기덩어리를 따라서 움직이고, 마음은 영을 따라 움직여야 되는데 영을 따라 움직이지 안하고 이렇게 움직이고, 영은 그라면 마음을 따라 움직였는가? 영은 마음을 따라 움직이지 안하고 영은 그 심신을 주격되어 있으면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의 법을 고기덩어리가 범할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마음이 따라서 범해 가지고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먹음직하고 이래 가지고서 그 다음에 보암직하고 지혜로울 만치 탐스럽기도 하다. 차차차차 그거 발동하는 것이 몸이 먼저, 육이 먼저 발동하고 마음이 다음에 발동해 가지고서 이것들이 범죄하으로써 영은 하나님과 끊겨졌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질의 것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에 그때부터 죽게 됐습니다.
그래서, 영이 죽은 다음에는 영은 존재하기를 존재하지마는서도 아무런 작용을 하지를 못하고 없는 거와 같은 그런 것이 돼 버렸고 이제 심신이 들어서 모든 것을 주관하게 된 것입니다.
육체의 소욕이라 육체의 사람이라 하는 것은 영의 작용이 아닌 심신만의 작용을 가리켜서 육체의 생각이라 육체의 소욕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범죄했을 때에 영은 단번에 죽었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작용도 하지를 못하고, 존재하기는 존재하지마는서도 기능적으로는 없는 거와 같은 그런 존재가 됐고 그럴 때도 이 육은 살아 있었습니다. 이 심신은 살아 있었습니다.
심신은 살아서, 영은 죽어서 아무런 기능 작용이 전혀 없었지마는서도 이 심신은 그 작용이 있어서 오랫 동안 심신의 기능 작용을 한 것이 구백여 년 근 천 년 작용을 한 사람도 있었고 뭐 육백 년 삼백 년 사백 년 모두 이렇게 작용을 하다가 이제 그 육의 생명이 있는 것이 다 끊어지면 마지막에는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어서 죽게 되는 것인데 그것이 육의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이 죽는 것은 그것은 이미 범죄로 영은 단번에 죽었고 죽은 영이 가지고 있는 심신의, 사형받은, 정죄로 사형받은 그 심신이 그것이 그 생기가 그것이 단일성 단일체가 아니고 모든 종합성이요 종합체기 때문에 차차차차 그게 죽고 죽고 죽어 가지고서 마지막에 다 죽을 때에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죽는 것이 마음도 단번에 죽는 게 아니고 마음이 차차차차 모든 사람들이 정신이 감퇴된다 노쇠된다. 그거 노쇠되는 것이요 또 몸의 모든 고기덩어리의 기능도 차차차차 노쇠해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살고 있는 것인 줄 알지마는서도 실상은 그것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우리 죽어가고 있는 그것을 영을 살렸고, 영은 단번에 죽었는데 단번에 살렸고, 단번에 살린 것을 가리켜서 물과 성령으로 살아났다. 물은 진리를 말하고 영은 성령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데 그렇게 살아난 것은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는 영으로 났다 하는 그 영은 위에 ‘영’자는 성령을 가리켜 말하고 밑에 영으로 살아난 것은 영이라 하는 것은 사람의 영을 가리켜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은 단번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또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지마는서도 이 심신은 살아나지를 안했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의로 인해서 산 것이지마는서도 육은 죄 아래 있어서 아직까지 죽고 있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은 살아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됐지마는서도, 아들이 됐지마는서도 아직까지 심신 이거는 구속함을 받지 못해서 그 중생된 영들이 하나님의 이 대속, 하나님의 의, 이 대속과 또 영감과 진리와 또 중생된 영 이 넷이 합해 가지고서 고 심신을 구원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들이’ 하는 그 말은 그것은 중생된 영들의 단체를 가리켜서 그 복수를 말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탄식하면서 지금 원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몸의 구속을 기다림이라 이랬습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림이라. 그것은 심신의 기능이 살아나는 것을 그것을 원하고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에덴 동산에서 그 심신은 살아서, 범죄한 이후에 아담 해와도 그 지위에서 쫓겨나서 타락이 됐고 그 변질이 됐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련된 거게 대해서 많이 감퇴되었고 쇠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세상에 대해서는 모를 것을 많이 알았고 또 안 볼 것을 많이 봤고 또 접하지 안할 것을 많이 접했고 누리지 안할 것을, 맛보지 안할 것을 많이 맛봐 가지고서 그것이 이제 타락한 후의 고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범죄하기 전 하나님이 주체가 되고 영은 그의 모형대로 지어서 그의 소유가 돼 가지고 하나님에게 피동돼 가지고 작용할 때의 기능과 거게서 끊쳐져 가지고서 작용하는 기능은 이것은 죽고 산, 생사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후에 아담 하와가 말한 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을 아담 앞에 내놓고서 이걸 한번 이름을 지으라 할 때와 같은 그런 정확 무오성은 없었습니다.
순전히, 영은 존재하지마는서도 기능적으로서는 완전히 죽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은 영이 완전히 죽은 것을 가리키고 영이 죽었기 때문에 주격이 죽었으니까 그 피소유격인 이 심신도 사형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그 말은 영이 완전히 죽었다는 말이요 심신도 사형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종합체기 때문에 중복적으로 죽지 단번에 죽지를 아니하기 때문에 죽은 자가 자꾸 이렇게 움직여 살다가 마지막에 세상을 떠나는 그것이 마지막 죽는 것인데 그 죽은 자는 뭐가 들어서 그러면 작용했는가? 심신도 피동의 것이요 다 영도 피동의 것인데 영은 하나님께 피동되고 심신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그 영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사는 것인데 그 줄이 끊어지고 나니까 그 줄을 끊은 자가 들어와 가지고서 주인공이 돼 가지고 왕이 되었으니 그것이 불신자들 심령 속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들어와 가지고 그들을 주관하고 있다 그렇게 에베소서 2장 1절 이하에 보면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중생되기 전에 죽은 것은 이 꺼꾸로 돼 가지고 죽었고, 고기덩어리가 앞장을 서고 마음이 그 뒤를 따르고 영은 뒤를 따른 것은 아니지마는서도 영이 통치해야 됐을 텐데 영이 통치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죄는 육신이, 고기덩어리와 마음이 범죄했는데 정죄는 영이 먼저 정죄를 받아 가지고서 죽었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것은 고기덩어리부터 죽었고 이제 하나님께서 왜 영을 하나님이 순전히 객관의 능력으로 살렸느냐 하면은 영과 육이 죽었기 때문에 거게서는 자체로서 살아날 만한 그런 아무 존재가 없습니다. 없어서 하나님께서 그 영을 순전히 하나님의 단독 능력으로 영을 살리시고, 영을 살릴 때 그때에 심신은 살아나지 안했습니다. 영만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고렇게 똑똑히 밝혀서 이래 말했고.
영이 살아나고 난 다음에는, 그 영이 살아난 것은 어떻게 살아났는가? 죽은 것이 죄로 인해서 죽었고 또 죽고 난 다음에는 악령이 주장을 해 가지고서 죽고 이랬기 때문에 다시 살릴 때에는 영을 살리고 나서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을 관리하는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직접 관리하는 일을 하지 안했고 언제든지 영을 통해서 관리하십니다. 영을 통해서 심신을 살리지 영을 통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직접 사람의 심신에게 역사하지 안하고 언제든지 영을 통해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한다 하는 그 우리는 뭐인가? 그 우리는 내나 영육으로 된 사람인데 ‘증거한다’ 그러면 증거는 누가 하고 증거를 받는 자는 누가 증거를 받는가? 증거를 하는 자는 성령과 영이 증거를 하고 증거를 받는 자는 누구입니까? 누구요? 심신입니다. 마음과 고기덩어리 너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자꾸 인식을 시키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준다 이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이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밤에 재독하는 것을 저도 들었는데, 우리가 살아나는 방법이 뭐인가? 새사람도 여섯 가지요 옛사람도 여섯 가지인데 새사람 여섯 가지 중에서 둘이 고장이 나 가지고 옛사람이 되고 또 고장난 둘이 다시 복구되면은 새사람이 되는데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것은 무한한 능력과 은혜를 베푸는 시은의 능력과 존귀한 영광을 가진 것인데 그 새사람으로 살면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은 모든 존재 가운데에 가치나 능력이나 그런 것이, 따지면 평가적으로나 실력적으로나 그것이 모든 존재 가운데 몇등이 된다고 했습니까? 삼등.
삼등입니다. 삼등인데 일등은 창조주이고 이삼등은 피조물인데 이등은 예수님의 인성이 이등이요 우리는 삼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성이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는 것은 그것은 신인 양성 일위에 언제든지 떨어지지 않고 일위로 이러나 그 일위의 신성은 근본부터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요 인성을 살리기 위해서 신성이 늘 인성을 붙들고, 신인 양성인데 한 격위를 이뤘다 말은 한 위치의, 또, 한 직책의, 한 업무의, 책임의, 의무의 이것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신인 앙성 일위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신인은 하나님과 사람. 양성은 신성과 인성, 일위라 한 격위가 됐다, 한 격위를 이루었다, 한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서 이행하게 됐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 둘이 죽었는데 그 둘은 그것은 물질입니다. 그것은 물질이요 다만 영의 모형으로 움직일 때에 그것이 산 것을, 산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악령을 따라서 움직일 때에 죽은 생활하는데 그래서 악령과 연결되면은 그것이 죄를 범하는 불의의 도구가 된다 이랬어. 불의의 도구. 도구와같이 불의의 도구가 되고 의의 병기가 되고,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병기가 되고 죄에 드리면 죄의 병기가 된다 이랬습니다.
마치 말하면 비유컨대 어떤 그 칼에 있는데 아주 좋은 참 인간을 구원할라 하는 그런 명의사의 손에 그 칼이 있으면은 죽는 사람을 그 칼로 수술해 가지고서 사람을 살리는 데 쓰지마는서도 살인자의 손에 있으면 그 칼로 가지고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것이 하나 도구인 거와 마찬가지로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은 도구와 같은 것이라서 이것이 하나님에게 쓰이게 되면은 의를 행하는 의의 도구가 되고 죄에게 쓰여지게 되면은 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심신은 이것은 이용물이 되어지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마는서도 이거 심판받을 아무 주격 책임이 없고 주격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 주격 책임이 없기 때문에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은 악하다.
이게 죄의 도구가 돼 가지고 이 마음하고 몸하고 죄를 범하니까, 범했으니까 이 심신은 이것이 아주 악한 것이다. 이래서 그 몸을 악으로 이렇게, 죄로 이렇게 보는 교리들도 있고 이 몸을 죄로 봐서는 안 된다 이거는 하나의 물질이기 때문에 아무 주격 책임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영이 죽으면 죽고 따라 죽고 이렇지마는 이거는 아무 책임이 없다. 이래서, 이 물질을, 물질은 하나의 물질이기 때문에 심신은 물질이기 때문에 물질은 아무 주격 책임이 없다 이렇게 깨닫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또 이 몸이 이것이 악한 것이라 이렇게 보고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 목사님은 이 몸은 악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화장을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때 그것을 삼각산에서 처음에 제가 가 가지고, 나는 ○○○ 목사님 만나기 전에 그때 내가 머리를 깎았었고 또 만나기 전에 사람들을 통해서 그분의 깨달은 깨달음과 저 깨달음이 비슷해서 그분도 나 만나기를 원했고 나도 그분 만나기를 원했고 좋아했었습니다.
했었는데, 그분이 지금 깨달아 가지고 가르치기 때문에 이분의 깨달음이 이게 좀 모두 서 가지고 권위로 인정하면 우리 한국 교회가 살아날 수가 있겠다 이래서 마음에 대단히 아꼈습니다.
제가 그때는 두번째인가 가서 참여를, 집회에 두번째 참여했는데 참여할 때에 그때에 이 육이라는 거 이거 몸이라 하는 거는 순전히 악덩어리다 죄덩어리다 이래 가지고서 이놈의 욕심을 듣지 안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서 아주 금욕 생활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남녀 이성은 완전히 그분은 금욕을 하고서, 이성욕은 금욕을 하고서 살았습니다.
그랬는데, 그래 이 물질은 순전히 악의 덩어리라고 이렇게 말해서 이게 지금 아무래도 큰 기대를 가졌는데 이게 틀리면 사람들이 ‘봐라. 틀렸다.’ 이렇게 하고서 그렇게, 이 귀한 진리를 이거 다 반대하고 매장할 것이기 때문에 이거 안 됐다. 이래서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가지고서 강사실에 제가 들어가서 단둘이 있으면서 그걸 얘기를 했습니다. ‘일반 모두 다 학자들이 다 이 육이라는 이것은 악령 그놈에게 이용을 당하면 죄의 도구가 되고 이거 또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하면은 의의 도구가 된다고 이래서 이것은 악한 것이 아니고 아무 악도 될 만한 그런 것도 아무것도 없고 여게 붙들리면 이거 되고 저게 붙들리면 저게 되는 그런 것이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만일 이걸 그리 되면은 물질 개악설이라. 물질은 다 악하다. 물질 개악설은 이거는 물질은 다 악한 것이다 하는 물질 개악설로 주장하는 그것은 벌써 이단으로 다 온 세계의 학자들이 다 정죄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거게 대해서 거게 거리낌이 됩니다. 그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진정 애끼는 말로 그랬었는데 그래 뭐 들을 때 보니까 달갑게 듣지를 안하는 거 같애요. 그러더니마는서도 고다음 시간 증거할 때에 나오셔 가지고서 증거하시면, 와서 그저 배우러 왔으면은 배우기나 할 일이지 거게 대해서 말한다고서 그거 물질이 순전히 악덩어리 아닌가 하는 그것을 아주 강하게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분이, ○○○ 목사님 ○○○목사님이 서울에 개혁 신학을 하자고 할 때에 그때에 저를 같이 하자고 이라는 것을 나는 같이 하지를 안했습니다. 안 하고 내가 말하기를 해 봤자 또 이거 개혁 신학하다 언제 또 어데로 또 갈란지 모르기 때문에, 따라가다가 떨어지면 목사님들은 여게도 저게도 들어갈 수가 있지마는서도 우리는 따라가다가 떨어지면 참 그 허무한 사람되기 때문에 아예 같이 안 할랍니다 이라니까 그래 뭐 웃으면서, 내가 그거 개혁 신학 시작하기 전에 동래 있을 때에 가 가지고서 ‘그 개혁 신학 해도 하다가 나중에 또 ○○에 들어갑니다.’ 이라니까 ○○에를 들어가?’ 이라면서 그 사모님이 옆에 앉았다가, 조사님은 이렇게 자꾸 이래 뭘 생각하기 때문에 머리가 저래 셌다고서 그렇게 나한테 빈정거린 농담을 했습니다.
그래 내가 나왔는데, ‘인제 뭐 얼마 안 있으면 두고 보면 알 것 아닙니까?’ 그래 서울에 개혁 신학을 하고 그때 같이 하자고 하고 나는 안 한다 하고 지금 그래 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여게 저와 같이 나가는 ○○ 목사님도 ○○○목사님도 그때 그 개혁 신학교에 입학을 해 가지고 거게서 졸업을 하고 목사 장립은 우리 진영에 와 가지고 장립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 목사님이 개혁 신학교 강사로 나갔습니다. 강사로 청해서 강사로 나갔었는데 강사로 나가 가지고 가르치다가 그만 서로 대립이 돼서 나왔는데 무엇이 대립이 돼 나왔느냐 하면은, 그때 가르치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탁월했습니다. 탁월함을 가르쳤습니다. 탁윌함을 가르쳤었는데 그들이 뭐를 찍탈 잡았느냐 하면은 그거 내나 육은 순전히 악이라 이래서 그 물질 개악설은 이거는 이단으로 정죄받은 것이 세계가 다 정죄하고 있는 건데 물질 개악설을 말하니까 거게서도 ‘이거는 틀렸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서로 타협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돼서 ‘그러면 나는 여게서 안 가르치겠다’ 하고서 그만 나왔습니다.
그때 ○○○ 목사님이 거게 가르치는 것으로서 인기가 대단했고 모든 사람들이 ‘아마 저 저래 뭉치니까 저 신학이 제일 낫겠다’ 해서 사람들이 거게 또 물의를 기울일라 할 때에 그걸 ○○○ 목사님도 아십니다. 아셨는데 그만 그라니까 ‘그라면 그까짓 거 내가 가르쳐 가지고 내가 이용만 당할 게 있겠느냐? 내가 깨달은 대로 못 가르치면 그럴 거 없다’ 하면서 고만 거게서 나와 버렸습니다. 그때 그래서 거게 나왔습니다.
이단이 제일 어데서 제일 많이 나오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그 창조와, 그러기 때문에 신관에 대해서 이단이 제일 많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이단이 신인 양성 일위인 이 그리스도관에서 둘째로 이단이 많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인간론에서 이단이 많이 나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뭐 별 그 나올 틈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종말론인 내세론, 내세를 말하는 이 내세론 이거 또 말세론 이런 데에서 이단이 많이 생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 여섯 가지 중에, 지난밤에 재독을 들으니까 둘이 이 고장이 나 가지고서 둘이 고장이 났을 때에는 둘이 이것이 넷을 따라서 움직이면,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을 따라서 움직이면 이것은 새사람이라 이거는 참 완전한 것인데 이 여섯 중에 넷은 변하지 안하고, 하나님이신 성령도 변하지 안하고 또 진리도 변하지 안하고 예수님의 대속도 완성을 했기 때문에 변하지 안하고 중생된 영도 변하지 안하고 이 넷은 변하지 안하지마는 그 중에 둘 이거는 아직까지 이것이 완성이 되어 있지 안하고 했기 때문에 살았다 해도 부분적으로 한 분자가 살았지 전체가 살아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이게 살아도 또 나머지기는 항상 죽은 것이기 때문에, 죽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과 동질이요 동성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그 유혹을 많이 받고 있는고로 항상 악령 악성 악습 이것은 언제든지 우리의 심신을 꼬와 가지고서 자꾸 심신을 꼬와서 제게로 돌아오라고 이렇게 꼬우는데 제게로 돌아가면 고만 그때는 옛사람이 되어지고 또 이 넷이 합해 가지고서 이 심신을 다시 돌이켜서, 악령 악성 악습을 배반하고 돌이켜서 돌아오게 하면 이제 이게 다시 또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은 새사람됐다 옛사람됐다 새사람됐다 옛사람됐다 하는 것은 단지 그 둘이 변질됐다가 다시 복구됐다가 변질됐다가 복구됐다 하는 것으로서 옛사람 새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옛사람이라는 것은 새사람 됐던 것이 다시 돌아갔을 때에 그것을 옛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불택자들은 옛사람이라 말을 하지 않습니다.
불택자는 옛사람이라 말이 없습니다. 그거 다시, 중생 됐는데 그 심신이 옛사람과 같이 돌아가 버렸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유혹이라' 유혹이라 말은 누가 유혹하느냐?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유혹을 합니다. 그놈이 유혹을 하는데 ‘구습을 좇는’ 그 말은 구습을 따라간다 말인데 옛날 죄 지었던 옛날 과거에 죄, 온갖 죄에 대해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거게 대해서 익숙하게 재미가 붙어 가지고 있는 그것을 보여 주면서 이게 재미있지 않느냐 하면서 그거 따라가도록 그렇게 만든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새사람으로 사는 데에는 둘을 뺏기지 안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야 됩니다. 둘을 뺏기지 안하도록. 그러니까 중생된 사람은 범죄를 누가 하는가? 범죄하는 것은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범죄합니다.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범죄하면은 에덴 동산에서는 고기덩어리와 마음이 범죄하니까 죽었는데 어찌 지금은 고기덩어리와 마음이 범죄해도 죽지 않는가? 중생된 영이 그러니까 중생한 후에 고기덩어리와 마음이 범죄하니까 에덴 동산과같이, 영이 죄 짓지 안한다 할지라도 심신이 범죄하니까 영이 주격 위치에서 범죄하는 것이니 영이 죽을 수밖에 더 있는가? 그런데 어떻게 해서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고서 그렇게 말을 하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중생된 영은 어떻게 해서 범죄 않는가?
그거 지난번에 증거하다가, 아래인가 증거하다가 말았는데 거게 보니까 그 빌립의 설교 듣고 모두 거게 성경에 ‘일심이라’ 그거는 하나님이 기록한 거라. 그들이 일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따랐어. 또 시몬은 전심으로, 전심으로 그 세례도 받았고 전심으로 따르면서 협조를 했어. 전심 일심을 했지마는서도 실은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는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이 도에는 분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다.
네 속에 악독이 가득 찼다. 그거 무슨 말이요? 그렇츰 열심이 있어도 소용 없다 말이오.
그 시몬이가 불신자냐? 시몬이 불신자 아닙니다. 시몬이가 사마리아 사람으로서 구약 성경 보고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시몬이는 하나님 믿는 사람으로 유명했어. 그 사마리아 성을 다 점령했어. 사마리아 성에 시몬은 이는 참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렇게 다 인정할 만치 된 사람입니다. 그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뭐 하나님 다 공경 다 했어. 성경도 다 봤어. 그들은 성전이 예루살렘이 성전이 아니고 딴데 산당을 지어 놓고 섬겼습니다.
어짜든지, 지난밤 재독의 그 말씀을 자꾸 들어야 됩니다. 모두 교만해서 내야 그거 재독을 들어? 또 한번 뭐 설교록에 나오든지 또 하는 녹음을 가지고 하든지 뭐 하든지 하면 되지 이래 하지마는 그래도 또 달라. 그거 벌써 가치를 무시하면은 그분은 등신이 아니야. 이 성령도 등신이 아니고 성부 성자도 등신이 아니고 주님의 피도 등신이 아니고 진리도 등신이 아이야. 진리는 무인격 이치의 존재이지만 등신은 아니라. 없는 가운데 인간의 모든 지혜와 총명과 이 심리들을 만들어 내신 분이라, 그분이. 멸시를 안 당한다 말이오. 벌써 이걸 멸시하면 벌써 멸시를 하면 하나님은 그 멸시하는 자에게 가면 그거 죽여야 되니까, 안 그래? 멸시하면은 뭐이냐? 그분은 떠났다 그 말이오. 그분은 떠났어. 멸시하면 떠나 버리요. 같이 하지 안하고. 왜? 같이 하면 죽이기 때문에.
이러니까,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우리는 이 영은, 예수님의 피공로를 왜 먼저 말했느냐 하면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지 못해요. 진리도 우리에게 오지 못해요. 우리에게 오면 우리를 죽여야 돼. 죽여야 되기 때문에 자꾸 죽이는 거밖에 하지 못해.
그러니까, 예수님의 피공로가 없는 사람은 한 시간 지내가면 죽고 두 시간 지내가면 그만치 많이 죽고 세 시간 지내가면 그만치 많이 죽는데 누가 죽입니까?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지 안한 사람을 누가 그거 죽입니까? 죽이기를 누가 죽이지요? 누가 죽입니까? 죽이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와 진리가 죽이고, 이 진리가 죽입니다.
진리가 자꾸 죽이요. 그거는,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에게는 심판의 하나님이요 정죄의 하나님입니다. 심판의 하나님이요 정죄의 하나님이요 사망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의 피공로를 보고 이제, 와서 보고 이제는 살릴라고 옵니다.
살릴라고 오는데 피공로 없는 거는 다 죽입니다. 피공로. 피공로 없는 거는 죽이니까 택자에게는 할 수 없이 피해서 하나님이 피할 수밖에 없어. 하나님이 피해 가셔야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냈는데 그 독생자를 믿지 않는 그것으로서 정죄받는다 이렇게 말했어. 믿지 않는 그것으로 정죄받는다.
또, 우리를 고소는 누가 하는가? 모세가 고소한다 말은 하나님의 율법이 고소한다 그 말이오.
법을 지키는 법인들이, 법인들이 말이지. 법원에 떡 앉아 가지고서 검찰청에 떡 앉아서 그라면 검찰청에 앉아서 뭐 검찰청에는 제일 검사장이 높다 하던가 뭐 검사장이 떡 앉아 가지고서 이런 죄 저런 죄 육법 전서를 읽거나 뭐 이런 법서를 보고서 이 정죄 저 정죄 자꾸 주 꿰어 맞춰 정죄하면서 너는 지금 하나님의 법에서 정죄받을 줄 모른다 하면은 그 사람 외식이오. 알겠습니까? 비록 존귀한 자리에 있으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과 같다.
지금 이런 거 저런 거 자꾸 판단하고 있습니다. 재판을 판사가 지금 판단하고 있으면서, 네 위에 하나님의 영원 법전,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서 지금 나를 하나 하나 고수하는 지금 검사가 있고 정죄하는 판사가 있는 그걸 모르고 나는 판사노릇 하면서 검사노릇하면서 내 위에 판사와 검사를 모르는 사람은 멸망할 짐승과 같은 사람이라. 우리가 모든 일이 다 그래요. 제가 사장노릇하면서 제 위의 사장은 모르고 지금 월권으로 날뛰니까 그게 외식이요 어리석은 자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지금 우리가 넷은 변하지 안해요. 넷은 변하지 안하기 때문에 넷은 뭐 생각할 것도 없어요. 넷은 변하지 않는데 다만 심신 이놈이 변해지는데 심신 이놈에게 뭐를 소개해야 됩니까? 이 심신은 뭐하고 화목을 붙여야 됩니까? 예? 이 심신을 뭐하고 화목을 붙여야 됩니까? 이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 뭘 이별하고 지금, 이별해 가지고서 죽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것을 자꾸 돌이켜서 ‘야, 네 주인은 영이다. 너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받았다. 너는 진리가 너를 살릴리고 와 있다. 또 성령님이 너를 살릴라고 와서 있다.’ 그라면 몇 입니까? 살리러 와 가지고 지금 살릴라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넷, 넷이 지금 살릴라고 애를 쓰고 있어.
이렇게 살면 삼등돼. 이렇게 살면 삼등. 이렇게 살면 삼등돼요. 잘나고 못난 거 필요 없어. 이것은 인간을 지식을 무한히 탁월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이 이 낮은 세계에서 뭐 지저분하이 이런 거 저런 거 하는 것이지 이 위에 쑥 올라가면 그까짓 게 상관이 없어. 아, 창조주 하나님. 그 다음에, 피조물인 예수님의 인성. 그 다음에 우리라. 그러면 진리는? 진리는 그 위에 전체 이거 법칙이라. 다 법칙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 법칙 우리도 그 법칙 하고 있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변하지 않는 이 네 가지와 이 심신과 자꾸 연결을 시켜야 됩니다.
연결을 시켜야 되는데 이 육은 심신이 육인데 육과 피와 연결시키고 육과 성령과 연결시키고 육과 진리와 연결시키고 육과 중생된 영과 연결을 시키는데 이 넷은 부절히 쉬지 않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넷에 연결만 되면은 지극히 존귀한 자가 됩니다. 이 넷에게 연결되면은, 이 넷이 연결되면 살았소. 이 넷에게 마음이, 이 넷에게 이 두 마음이 연결되면 살아요.
연결되면 이 몇이 됩니까? 수가 몇입니까? 여섯. 이 여섯이라. 여섯만 단합되면 이거는 모든 존재 가운데에 삼등의 위치를 가지는 것이 우리 대속받은 사람들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연결되는 데에는 자꾸, ‘나는 중생됐다. 나는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공로를 입어 살아났다. 나는 살아났다.’ 자기 주격이 살아났다는 것을 자꾸 인식해야 됩니다. 살아났다는 것을. ‘나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다.’ 살아난 그자가 자기요. 그자가 자기입니다.
그래서, 이걸 자꾸 말해야 됩니다. ‘나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영감은 하나님이요 진리는 또 우주를 창조한 실지 시공을 한 존재가 진리요.
진리니까 이제 ‘나는 살아났다. 나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다.’ 이렇게 살아난 자체라는 것을 자꾸 말합니다. 자꾸 말해서 인식을 시키요.
살아난 것을 자꾸 인식을 시키고 또, 그러면 자꾸, 이거는 믿어야 돼요. ‘나는 살아났다. 나는 산 자다. 나는 살아났다.’ 이것은 믿으면, 자꾸 믿으면 돼요.
믿으면 기본구원을 가졌습니다. 믿으면 기본구원을 가졌는데, 믿고, 그러면, 이 기본구원을 가지고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건데 ‘나는 중생돼서 나는 산 자다.
영생을 가졌다. 그거 내가 이것이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다. 나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모든, 하나님과 원수된 데 대해서 다 완전 해결을 지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완전 해결지웠다.’ 그러니까, 자꾸 자기는 중생된 것인 것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자꾸 이와같이 말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이 마음에게 자꾸 연결을 시킵니다. 예수님의 피를, ‘예수님의 피와 연결해라. 예수님의 피와 연결해라. 예수님의 피와 연결해라.
영감과 연결해라. 진리와 연결해라.’ 예수님의 피와 연결하는데 예수님의 피는 그라면 분류하면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예수님의 피와 연결해라. 또, 영감과 연결해라. 진리와 연결해라.’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연결하는 것은, 자기가 이 세 가지, ‘나는 사죄를 받은 자다. 나는 칭의를 받은 자다. 나는 화친을 받은 자다.’ 자꾸 이 연결을 하고 또 진리를 연결하고 또 영감을 연결하고.
연결하면 우리의 마음이 먼저 연결하고 그 다음에 몸이 연결되는 것인데 마음의 연결은 어떻게 하면 연결됩니까? 연결하는 것은, 이 네 가지와 연결하는 것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연결하는 뭐 밧줄로 연결을 시킵니까? 뭐 못을 박습니까? 뭘로 연결합니까? 뭐으로 연결해요? 이거 교역자회 때에 내가 그것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첫 시간에 내가 말했는데. 뭘로 연결합니까? 생각. 생각.
이게 중요합니다. 생각으로 연결하는 줄 아십시오. ‘아, 나는’ 그라면 다른 거 저절로 따라가요. ‘나는 이 세 가지로 중생된, 나는 영생으로 살아난 내다.’ 자꾸 생각해. ‘나는 살아난 나다. 영생으로 살아난 나다.' 나는 그러기 때문에 살아났는데 어떻게 해 살아났느냐? 예수님의 피공로로 살아났으니 이 세 가지로 살아났는데 예수님이 내 잘못 이것을 대신하기 위해서 죽으심으로 이걸 나를 사죄를 주셨고 대형을 했고 죽으심으로 죽기까지 하셔서 대행을 했고 죽기까지 하셔서 화목의 제물이 됐고 이러니까 자꾸 이걸 생각해요. 그게 뭐이냐 하면은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피와 살을 먹는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러면 진리는 뭘로 연결합니까? 진리도 생각해요. 진리는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거 그만 말씀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뜻인데 신구약 성경에 우리와 계약되어 있는 말씀이 이게 진리라 말이오.
자꾸 성경 말씀을 생각하고, 또 그러면 생각하는데 영감은 뭐입니까? 영감은 내 주관이 생각하면은 내 주관을 탁월한, 내 주관이 아닌 내 주관을 초월하는 생각이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내가 이 진리를 거석해서 느끼면 내가 느끼는데 인간 주관의 느낌이 있고 인간 주관의 느낌의 이 수평선 이상의 느끼는 것을 자기가 알 거라 그 말이오. 깨달음도 알 거라 그 말이오. 내가 이렇게 깨달았는데 내 주관의 깨달음이 아니라 주관을 탁월한, 내 주관의 깨달음이, 주관으로 실컷 깨달았는데 그 깨닫지 못하던 것이 주관으로 깨달은 거 그 이상의 확고하게 깨달아지는 게, 확신이 생겨지는 게,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다 그 말이오. 그게 성령이야. 그게 영감이야. 이라면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니까 그러면 이것이 끊어지지 안하면 살아요.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기를 사울이 얼마나 열심이 있었지마는서도 그 사람은 이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그 사람은 진리의 적이 돼, 일대 적이 됐어. 구약 성도들이 많았지마는서도 그때, 성도 중에 제일 예수님의 적이 누구냐 하면은 사울이라. 기독자의 적이 누구냐? 사울이라. 제일 열심 있는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성령의 인친 표를 받아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성령의 인치기를 기다려라.’ 성령이 옳다 해야 되지. 그들이 뭐 때문에 안식일을 범했다고 예수님을 죽였는가? 안식일이 구약에서 나온 거 아닙니까? 구약을 근거해 가지고 죽였다 말이오. 죽였는데 이제 문서만 지켰지, 문서만 지켰지 하나님이신 영감은 그들이 받지 안했어. 그러니까 영감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도 다 됐는데 영감을 무시한 사람들은 안 됐어.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러 가는 것도 자꾸 기도하러 가서 기도만 한다고 되는 거 아니오. 기도하러 가는데 기도하지 말아요. 이 연결부터 해요. 기도하는 게 뭐이냐 하면 그거 자꾸 이거 때문에, 이거 때문에 연결 못 하고 저거 때문에 연결 못 하고 뭐 사람 때문에 연결 못 하고, 이래서 저는 작정을 그래 했어요. 내가 또 먼저 이래 하다가 고만 그 일을 하다가서, 매일 기도산에 그 천막에 가 가지고서 한 번씩 가서 기도할란다. 이래 하고 나서 그만 못 했다 말이오. 내가 그만 병이 나 가지고 못 했어.
못 했는데, 병 났는데 그 마귀란 놈이 어느 틈으로 나를 잡아 옹쳐서 내가 그때, 그거 분명히 성령이 나에게 가르쳐 주셔 가지고 작정했는데 그걸 하지 못했느냐? 이래 보니까 둘 때문에 못 했어. 두 가지 때문에. 두 가지 고걸 타 가지고서 마귀란 놈이 들어왔어.
하나는 뭐이냐? 하나는, 제일 중요한 거 뭐이냐? 꼭 여덟시에 자야 되는 건데 여덟시에 자지 안했어. 내가 그거 할라 하면은 내 뭐 팔십이 다 돼 가는 영감으로서는 할 수 없는 몸인데 나로서는 여덟시에 자야 여덟시에 자 가지고서 세시에 일어나서, 그러면 여덟 시간 아니오? 여덟시, 아홉시, 열시 열 한시, 열 두시, 한시, 두시, 세시, 이러니까, 세시에는 지금 일어나는 게 됐는데 자는 것은 하다 보면은 그만 열시 열 한시 그라면 그만 그거는 괜찮은데 그게 들어서 다 못 하게 했다 말이오. 그러면 잠 자는 시간을 지키지 못해 가지고서 이것이 제일 실패의 원인이고 그 다음에는 먹는 시간을 지키지 못해 가지고서 원인된 것이 둘째고. 이것만 지켜 놓으면 딴거는 다 지킬 수가 있겠어요.
그러면, 내가 그걸 발견하고 난 다음에 기록해서 이제는 내가 기록을 하기를 몇 시에 뭐 밥 먹고 또 어데서 좀 있다 어데 가서 자고, 이래 가지고서, 여섯 밤은 오층에서 자고 하루 밤은 저 기도실에 가서 자고 또 밥은 여게서 먹는 거, 저 먼저는 그런데 이제는 밥하는 사람이 항상 따라다녀야 됩니다. 따라다녀 가지고서 이제 여게서 밥할 때 있고 따라다닐 때 있고, 이렇게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런데, 이제 나에게 대해서 제일 방해물은 뭐이냐? 방해물은 내가 이 잠자는 시간이 이것이 절단나는 이게 내, 죽느냐 사느냐 앞으로 환난에 승리하느냐 실패 하느냐? 요 승리의 실패는 요게 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그 기도하는 것도 여러분들이 가서 기도한다고 가서 뭐, 기도 안 된다는 것이 기도를 자꾸 기도 뭐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달라고 한대도 하나님이 밉상으로 봅니다. 가 가지고는 연결부터 해야 됩니다. 연결부터 해야 돼. 연결부터 하는데 그 연결부터 하는 것은 제일 하기 쉬운 것이 뭐이냐 하면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 진리입니다. 그러면 쉬운 거 있지 안해요? 겨자씨 믿음도 있고 또 씨 뿌리는 비유도 거석하고 성경의 어느 말씀이든지 한 말씀을 가지고서 그거 자꾸 이거 새김질 하면서 대조하고 또 이라다가, 이라면서 또 예수님의 피공로도 또 이래 생각하고 이라니까 피공로 생각하면 사죄 칭의 화친 생각하고, 또 진리 생각하고 자꾸 이래 생각하니까 영감이 옵니다. 영감이 오는 것은 영감 오는 표가 뭐입니까? 영감이 오는 것은 언제부터 영감입니까? 저 ○○○ 목사님. 영감은 언제부터 영감입니까? 언제부터 영감이요? 하루 비둘기 재 못 넘어간다고, 저 ○ 목사님은 자꾸 여기 가서, 여기 가서 그저 한 다섯 달 대천사노릇하고 또 여섯 달씩, 자꾸 여섯 달로 돌아다니고 옮겨가면 되는데 옮겨가면 나는 제일이다 또 이래 보니까 고만 교만해 가지고 또 헛일이겠지. 있어 보면 또 가라앉아 헛일이지. 안 돼요. 신앙은 늙는 거 아닙니다. 절대 안 늙습니다.
왜 신앙이 늙습니까, 늙기를? 고기덩어리의 힘이 늙어서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점점 더 강해지고 더 거석하는 것이지. 늙어지는 것 아니라요.
내가 이제 뭐 물었지? 영감, 그라면 한번 또 다른 사람 한번 물어 봅시다.
언제부터가 영감이요? ○○○ 목사님. 생각하는 데서? 이거 정확한 대답을 못 하네. 저 ○ 목사님. 영감이 뭐이요? 저 ○ 조사. ○○ 교회. 자기 주관을 탁월한 깨달음이야. 요걸 꼭 잡아야 되는 것이지. 자꾸 생각하면 자기 주관은 요거뿐인데, 그래 자꾸 생각하니까 자기 주관 외에 자기 주관보다 훨씬 뛰어난 느낌이 오고 깨달음이 오고 원함이 오더라 말이오. 고게 영감이라. 아무나따나 해야 되는 줄 압니까? 롯이, 망하는 롯이 뭐입니까? 조건을 찾지마는서도 아브라함은 조건보다 하나님의 축복을 찾지 안했습니까? 뭐 여게는 장소가 나쁘다. 여기 골짝이 솔다. 뭐 무대가 솔다. 그게 다 마귀가 하는 소리라.
만일 예수님께서 지금 오셔 가지고서 저,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우리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 어데요? 우리 남한에서 높은 산 제일 높은 산이 어뎁니까? 제주도 한라산이 높으나? 한라산 꼭대기에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만일 거게서 지금이라도 설교하고 있으면은 아마 제주도가 사람이 빡빡해서 아무 뭐 사과 밭이고 밀감 밭이고 사람이 꽉꽉 차서 없을 거라. 안 그렇겠소? 나도 갈라 하겠는데. 이러니까 장소가 뭐이? 장소가 뭐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이게 주님과 자기에게 있는 거라. 주님과 자기에게.
이게 믿음이오. 공연히 과장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털끝만치도 과장은 없습니다.
요렇게 하는 사람은 목회가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이 고만 자꾸 이 심신 이놈을 단속해 가지고서 너이와 자꾸 연합을 시킬라고 이라는데 거기서 무슨 교만이 나오겠어? 거기서 무슨 죄가 나오겠어? 이런 게 용납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 생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생각을, 우리 마음을 쓰는 것이. 다른 거 많이 있지만 우리 생각만 자꾸 이렇게 하면은 그 다음에 돼져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가르치고 배워도 못 하는 거는 그런 거는 나중에 정죄밖에 못 받습니다.
뭐. 이제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거둔다고 많이 배웠으니까 많이 행하는 거 하나님이, 주시기는 주님이 주셨는데 많이 배워 가지고 행하지 안하면 저는 더 정죄를 더 받지.
이러니까, 우리 진영 교역자들은 전부 게을해. 놀아요. 뭐 이거, 이거, 그거 하나를 자기가 캐내야 될 터인데 캐내지 안하고 이래 놓은 거 이것만 읽어 주는 것도, 읽어 주는 것도 집구석에 앉아서 아이들 데리고 응얼응얼하고서 마누라 데리고 이와 같이 자빠졌고, 이래 가지고서 살만 띵띵 쪄 가지고 이래 가지고서 원고는 읽어보지도 안하고, 원고일랑 한 번도 안 읽어보고 이래 가지고 와 가지고 원고보고 읽으며 떠듬떠듬 이래 읽으니까 밑에 사람이 어찌 살거라? 이렇게 안일주의자들 이거 적이 아니고 뭐입니까? 이거 적기독이 아니고 뭐입니까, 이거? 이리가 아니고 뭐입니까, 이거? 절도요 강도가 아닙니까 이거 뭐입니까? 이 목회자들 다 회개해야 돼요. 너무 게을해요.
내가 어제도 말하기를 그거 원고보고 설교하나 그거 다 외워 가지고 하나? 원고를 그거는 원고 그게 성경입니까, 어데? 그걸 읽어보고 익히고 난 다음에는 성경을 보고서 성경에 이런 뜻이 들어 있구나 하는 그것을 깨닫고 그라고 나서 원고 안 보고 설교해야지. 내게 어떤 목사가 있다 말하기를 저 ○○○ 조사가 그 사람 좀, 그 말은 안 해도 내가 말 들으니까 그래. 그 사람 좀 위험합니다. 왜? 그 사람은 원고를 다 불살라 버리고 원고 없이 설교한다 하기 때문에 그거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래 듣고 위험하다고 보는데 나는 내가 말을 그래 했어. 그것은 그 사람이 원고를 불태운 거는 다 속에 집어넣어 놓고 필요 없으니까 다 태웠기 때문에 그 태운 것은 다 그 사람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원고 없이 설교하는데 원고 없이 다 외워 가지고 제것 만들어 가지고서 설교하는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이 진리를 무시해서 원고를 태워 버린 그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거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그 본인이 여기도 앉았는데 내가 본인에게 그와 같이 말했어. 그래 내 견해가 틀림없다 그거야.
이런데 왜 ○○○ 조사님은 왜 또 이거, 교회는 부흥이 안 되는가? 안 되는 원인을 그걸 자꾸 좀 생각해 예? ○○교회 가 가지고도 죽자 껏 애를 쓰는 게 보여. 애는 쓰는데 ○○교회 가서 억지로 자립은 했지? 가서 자립은 시켰어.
자립은 시켰지마는서도 쫄쫄 굶어서 자립했지 밥을 잘 먹고 자립하지는 안했지? 그랬지? 예? 그랬지? 굶었지, 그때? 또 ○○교회 가 가지고서 또 그거 자립했지? 자립했지? 거기서도 굶었지? 이제 ○○교회 가 가지고는 굶지는 안할 터인데 어짠지 교회가 부흥은 안 되고 항상 고만입니다. 그거 뭐인가 원인이 있다 그거야. 찾아요. 녜.
이렇게 갈 길을, 사람들이 갈 길을 몰라서 여게 불로 가야 되나, 불로 가야 되나, 방언으로 가야 되나, 지시로 가야 되나, 어데로 가야 되나? 이 세상 정계를 움직여서 이 세상 사교로 가야 되나? 어데로 가야 되나 모르는 이 혼란되고서 방황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얼마든지 힘써서 밤낮으로 가도 갈 길이 남아 있고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이 길을 환하게 가르쳐 놨는데 우리가 안 간다면 우리가 어찌 되겠습니까, 지금? 뭐 백 목사 가르친 거, 백 목사 가르친 거 아니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오. 내가 가르친 거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박사나 됐으면 ‘아, 박사기 때문에.’ 나는 일자 무식이오. 일자 무식은 아니지마는서도 국민학교 오학년 하다가 말았어. 아무것도 몰라. 또 기억력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에이 비이, 씨이 자는 뭐 씨자를 요래 쓰던가 그거는 내가 좀 그러고 그거 그 다음 글자도 몰라요,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