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

 

1987. 3. 23. 새벽 <월>

 

본문:마태복음 5장 29절∼30절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 말씀이 굉장한 난해절입니다. 해석을 하기가 참 어려운 절수고, 쉽게 생각하지마는 이리 맞추면 안 맞고 또 저리 맞추면 맞고 또 저리 그쪽에 맞추면 안 맞고 그 관련을 시켜야 할 그런 뭐 금생 내세 영육 건설구원 기본구원 전부가 다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서로 모순돼서 이 참을 발견할라 해도 발견하지 못할 만치 그렇게 어려운 절수입니다.

이 절수를 여러 날 아침 했는데 그 날에 아침에 한 설교를 좀 알아듣기가 좀 모두 다 심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힘들어서 그걸 이해를 못 하기 쉽고 지금 말하는 그 학생도 요 이틀 새벽 설교하는 데에서 그 진리를 잡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거게서 마귀 시험에 든 겁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 지금 이 말씀 하는데 그 해석은 많이 했으니까 내비두고 간추려 제가 써놓은 걸 말합니다.

첫째, 한 범죄로 전신 범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범죄로, 무슨 죄든지 한 범죄 하면은 전신이 다 심신이 죄인돼 버리고 맙니다. 중생된 영은 여게 빠지고 중생된 영 외에 것은 무슨 그 죄를 범하든지 하나 범하면 자기 마음과 몸 전부는 다 죄인된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을 합니다.첫째는 한 범죄로 전신 범죄가 되는 것을 여게 말씀합니다. 한 범죄 지으면 뭐 그것만 거석하지 다른 거는 다 범죄 안 하고 다른 거는 의를 행하면 제가 의로운 줄로 알지마는, 예를 들어 그 사람이 백 지체 가운데에 아흔아홉 지체가 의를 행합니다. 아흔아홉 지체가 의를 행하고 한 지체가 범죄를 하면은 아흔아홉 지체가 의를 행했고 한 지체가 범죄했기 때문에 그까짓 거야 백분지 일 범죄하고 백분지 구십구는 의를 행했으니까 자기는 그래도 의가 많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아흔아홉 지체가 의를 행했는데 한 지체가 범죄하면은 아흔아홉 지체 전부가 다 죄인이 됩니다. 다 죄의 심신이 됩니다. 요것을 여게서 강조한 것인데 이것을 좀 알아듣기가 심히 힘이 듭니다. 한 범죄로 전신 전심신이 범죄가 된다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또 둘째로는 한 지체로 전지체가 실족하게 된다. 그러면 다른 모든 지체는 다 깨끗하고 성화돼 있다 할지라도 한 지체 그것이 마귀의 것이 돼 놓으면 한 지체 그것을 가지고 온 전지체가 다 실족하게 된다.

사람들은 의를 행한 그 의의 덩어리만 보고서 위로를 받고 안심을 하지마는 의의 덩어리를 볼 게 아니고 죄의 덩어리를 봐야 됩니다. 의는 한 의를 행했다고 전신이 의로워지는 건 아닙니다. 의를 행한 것은 한 의 그것뿐입니다.

그것뿐인데 그만 범죄하면은 범죄하는 것은 한 범죄로 전신 범죄가 된다. 한 지체의, 불의의 병기, 한 지체가 이거 잘못돼 있으면 한 지체 그것으로써 전 심신의 지체가 다 실족하게 된다 하는 그것을 여게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체라면 마음의 지체도 있고 몸의 지체도 있는데 몸의 지체도 그 참 수가 많아서 들어가면 나중에 그 외부 지체도 있고 내부 지체도 있어서 내부 지체는 내과에 속했다 하고 외부 지체는 외과에 속했다 하고 이라는데 거게 그 세포까지를 말하면 그 숫자는 굉장히 많은 것이지마는 마음의 지체는 더 많습니다. 마음의 지체는 더 많은데 그 지체를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데 그 지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나 그 한 지체 그것으로서 모든 지체가 다 실족하게 된다.

한 범죄로 모든 심신이 다 죄인돼 버리고 만다.

그러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고는 인간이 구원 얻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 여게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우리가 아는 대속보다도 모르는 대속이 많습니다. 우리가 아는 거야 몇 가지 압니까? 그러나 모르는 대속이 더 많습니다.

많은데 우리 구원 얻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상대하고 공심판을 벗어났는데 그리스도의 심판은 예수님이 대속하신 자들을 네가 대속을 입고 있느냐 안 입고 있느냐, 예수님의 인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예수님의 인정이오. 요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공심판은, 공심판과 그리스도의 심판이 다른 게 뭐인가? 공심판은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가지고 심사하는 그것이 공심판인데 그 공심판의 조목도 우리가 억만분의 일도 모르고 또 행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신성과 신성이 사람되어 온 이 인성이 합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그것을 다 대행했습니다. 대신 행해서 우리에게 의를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그거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조그만치도 사정 없이 법대로 그것을 다스려서 한 조문도 거게서 빼지 안하고 전부 적응시켜서 심판해 가지고 한 법에도 걸리지 안한 그 대행을 해 가지고 우리에게 칭의를 입혀 주신 것입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사람의 이 육체가 약해 가지고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이래서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신 것이 예수님의 대행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심판이라는 것은 그게 아니고, 그것은 예수님이 다 담당하셨기 때문에. 담당하셨기 때문에 공심판은 받지 안하고 이 사심판인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가 인정하면 되고 인정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가 인정해서 그 대속을 입혀 주면 되고 너는 이 대속을 입힐 수가 없다고 인정을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심판과 그리스도의 심판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 주신 것이 한 가지뿐이라면, 한 가지뿐이라면 그 사람은 한 가지뿐이기 때문에 두 가지를 할 수 없습니다. 주신 것이 한 가지뿐이기 때문에 한 가지 가지고 하면은 그 사람은 합격을 시켜 줍니다. 인정을 합니다.

또 그 사람은 백 가지를 줬습니다. 백 가지 줬기 때문에 백 가지를 줬으니까 백 가지 힘만 쓰면 할 수 있는데 아흔아홉 가지를 했습니다. 아흔아홉 가지를 하면은 주님이 인정치 안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심판에는 이 사람과 이 사람의 행위를 말하면은 두 사람이 꼭 같은데, 꼭 같은데 하나는 주님이 인정을 해서 합격을 시켜 주시고 하나는 인정치 안해서 불합격을 시켜 주십니다. 그러면 자기는 이 겉어머리 외형을 보고서 결과를 보고서 이와같이 말하고 있지마는 그리스도는 결과를 볼 뿐 아니라 결과보다도 그 원인을 봅니다. 당신이 그에게 얼마를 줬느냐? 이것을 가리켜서 닷 냥중 금을 받은 자 있고 두 냥중 받은 자 있고 한 냥중 받은 자가 있어서 두 냥중 받은 자는 암만 늘궈 봤자 넉 냥중밖에 안 되고 닷 냥중 받은 자는 하나도 안 늘궈도 본전만 해도 닷 냥중 됩니다.

그러면 겉어머리로 보면은 하나도 안 늘군 그 사람의 가진 중량이나 두 냥중 가진 사람이 배나 불군 증량이나 이 둘이 비교하면은 누가 많습니까 하나도 안 늘군 사람이 많습니까 늘군 사람이 많습니까? 안 늘군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 안해요? 장사해서 늘궜다 말은 불궜다 말이오. 장사해 가지고, 제가 노력한 것을 가리켜서 장사로 그리 비유한 것인데, 노력을 하나도 안 한 사람은 닷 냥중 가지고 있고 죽자껏 있는 노력을 다해도 넉 냥중밖에 되지 못했으니까 결과를 본다면은 누가 위를 가야 되겠습니까? 닷 냥중 가진 사람이 위를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안해요? 대우를 더 받게 됩니다.

이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닷 냥중 가진 사람은 쫓겨나야 됩니다. ‘너는 내가 준 자본 가지고 장사해서 늘구지 안했다. 내가 준 은혜 가지고 은혜 준 그대로 실상을 이루지 안했다. 이는 은혜 준 대로 실상을 다 이루었다. 그러니까 두 냥중 받은 자가 넉 냥중 됐고 또 닷 냥중 받은 자는 은혜 주신 대로 그걸 실상을 이루었으면 열 냥중이 될 터인데 이거는 닷 냥중 그대로이기 때문에 쫓겨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정에 따라서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인정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 같은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볼 때에 자기 행동과 저 사람의 행동 비교하면은 저 사람의 행동보다는 내가 위에 있기 때문에 내가 이제 구원은 더 좋은 구원 얻어 가지고 있을 것이라 이렇게 생각이 되지마는 하나님이 주신 자본이 있기 때문에 그걸 가지고 그리스도가 인정하고 안 하는 데에서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의 이 대속을 벗겨버리고, 대속을 벗겨버리고 입혀 두고 있고, 입혀 놓고 있고 벗기고 하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당신의 그 자유권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은혜받은 그 양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는 은혜를 많이 줬고 적게 준 거게 따라서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찾는다” 이랬어.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

적게 준 자에게는 적게 요구하신다.” 이러기 때문에 많이 가진 사람은 주님에게 자본 받은 것이 많기 때문에 많은 그 결과를 가져야 되는데 사람들은 그 받은 바의 은혜 자본은 생각지 안하고 자꾸 가지고 있는 그 결과만 보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것은 그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법은 그 결과를 중하게 여깁니다, 그뭐 자기네들 모르기 때문에.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결과만 중하게 여기 가지고 아무리 원인이 어떻다 할지라도 결과에 죄 없으면 없는 걸로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원인은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과보다도 원인을 중하게 여깁니다, 원인. 하나님이 준 게 얼마냐? 원인을 중하게 여겨.

나는 법을 공부 안 해서 그걸 잘 몰라요. 법이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내 보기에는 그래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고 이 모든 기독교 진리는 원인을 중하게 여기는 것 같애. 저 우리 법학 박사 저기 앉았는데 법에서는 원인을 중하게 여깁니까 형법에 따라서 결과를 중하게 여깁니까? 나와 꼭 같네요. 법학 박사가 나하고 같구먼, 거게 대한 깨달음은.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은 원인과 그걸 생각하지마는 하나님의 공심판에는 그게 없습니다. 결과고 원인이고 하나도 사정이 없이 꼭 그대로만 심판하는 것이 공심판입니다. 그러기에 거게는 하나도 하후하박이 없이 공심판했는데 예수님만이 그걸 대행했지 아무도 대행할 자가 없습니다.

이러니 이거는 예수님이 대행해 놨기 때문에, 공심판에 대행해 놨기 때문에 당신이 더 주고 싶으면 더 주고 덜 주고 싶으면 덜 주는데 그에게 먼저 자기에게 가르쳐 주신 것과 깨달은 것과 또 주신 모든 은혜가 있어.

이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니까 한 시간에 달리면은 아마 건강한 사람은 한 시간에 달리면은 한 사오십 리 안 달리겠습니까, 막 달음질 치면? 사오십 리 달리지마는 이거 주시기를 누운뱅이 건강을 줬기 때문에 누운뱅이 이거는 한 시간 막 죽자껏 해 봤자 그게 뭐 한 오 리나 가겠습니까? 그걸 다 계산해 가지고 준 대로 하나님께서 많이 주면 많이 받고 적게 주면 적게 받는 그것이,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를 생각지 안하고 이렇게 심판하는 것이 공심판이요 그 주신 원인과 결과를 인과를 자세히 생각해 가지고 사를 붙여서, 하나님께서 원인이 이렇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리 됐다 이렇게 보여지고 또 저 사람은 원인이 많았는데 이리 됐기 때문에 너는 불합격이다, 이렇게 말한 이것이 사심판인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범죄로 전신 범죄가 되는 것과 한 지체로 전지체가 실족하게 되는 것을 여게서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는, 한 지체로 열한 가지 구속을 벗습니다. 한 지체, 한 지체 실족으로써 열한 가지 구속이 확 벗겨져 버립니다. 확 벗어버립니다. 확 벗겨. 열한 가지 구속을 확 벗겨 버립니다. 이제 그거는 그리스도가 벗겨 버립니다. 그리스도가 열한 가지 구속을 벗겨 버립니다.

열한 가지 구속을 벗기면 영에 대해서 벗깁니까 이 육에 대해서 벗깁니까? 영에 대한 것은 벗기지 못해. 영은 그 실족이 없습니다. 영은 영원 무궁에 영생으로서 완전히 단번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은 구속받고 난 다음에 범죄하지 않습니다. 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또 처음부터도 영이 범죄한 것 아닙니다. 에덴동산에 영이 범죄해서, “범죄한 영은 죽으리라” 하는 것은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 심신이 범죄한 것을 주격 책임에서, 주격 책임인 그 책임성에서 영이 정죄받아 가지고 죽은 것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건 하나님의 속성인데 하나님의 속성은 범죄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래서, 한 지체로 열한 가지 구속은 벗고 또 지극히 큰 능력과 이 심신의 기능의 역사는 중단됩니다.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은 뚝 떨어져서 상관 없어버리고. 또 자기에게 있는 심신의 성화된 기능은 역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이 심신이 성화될 때에, 우리 심신이 성화돼서 심신이 성화된 기능을 가졌습니다. 심신이 성화된 기능을 가졌으면 이 기능이 두 가지입니다.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기능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능 속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심신 속에서 역사하는 기능이 있고, 그러면 이거는 하나님의 기능입니다. 이건 순전히 객관 역사요 객관의 은혜 능력입니다.

능력이고, 자기 심신이 연습해 가지고 됐는 그 심신 자체에 연습해 가지고 되는 그 기능이 있으니 이것은 인적 요소요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은 신적 요소입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 성화 기능에는 신적 요소와 인적 요소 두 가지 요소가 있으니 신적 요소는 가 버리고 인적 요소는 이것이 죄와 마귀에게 사로잡혀 가지고 그대로 있기는 있지마는 아무런 작용을 하지 못하고, 독립성이 없기 때문에 작용을 하지 못하고 저보다는 강한 이 마귀의 세력이 사망의 세력이 그래 하기 때문에 거게 억제당해 가지고 그것을 이기고 꿰뚫고 나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큰 능력과 심신의 기능의 역사는 중단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중생된 영은, 중생된 영은 어찌됐느냐? 중생된 영은 어떻게 되느냐? 중생된 영은 성령과 함께 탄식하고 고민합니다. 탄식하고 고민합니다. 이래서, 성령도 탄식을 하고 중생된 영도 탄식을 합니다.

이래서, “우리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진 우리들도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곧” 뭐라 했습니까?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이렇게 살지 안하고 이라기 때문에 성령도 탄식하면서 고민하고 중생된 영도 탄식하면서 고민하고, 그러니까, 중생된 영은 이 심신 속에 들어 있으니까 그것을 로마서 7장에 말하기를 “원치 안하는 육체의 세력이 와 가지고 나를 끌고 갈 때 내가 원치 안하는 데로 끌려가고 있다. 끌려가고 있어 오호라 나는 괴로운 자다. 끌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고 남음이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그러면 영육이 우리 영육 생활이 각각 나뉘어집니다. 그러기에 새사람은 어떤 것이 새사람이냐? 새사람은, 새사람이라면 영육이 합한 걸 사람이라 하는데 새사람이라 하면 중생된 영과, 그 심신이 중생된 영과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말합니다. 새사람이라 그렇게 말하고, 새사람이라 참사람이라 말하고, 또 속사람은 어떤 게 속사람이냐 하면은 영은 살았지마는 이 심신 이거는 살아나지를 못하고 있어도 영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속사람과 겉사람 요렇게도 발표하고, 또 참사람이라,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 온전한 사람이라 하는 그거는 이제 영육이 합해졌을 때에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이러기에 범죄하면 그 심신은 마귀 이놈에게 사로잡혀서 악령 악성 악습의 것이 되면은 이 심신만 되지 그렇다고 해 가지고 영이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성령과 함께 탄식과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족케 하는 것을 정리하면, 실족케 하는 것을 정리하는 것은 끊어버려서 정리하는 것도 있겠고, 끊어서 정리하고 뽑아서 정리하는 것도 있겠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그것을 회개해서 돌아서 버리면 그게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양도천 목사는 자기 이거 성에 대해서 자꾸 실수하고 범죄하니까 그는 그만 거세를 해 버렸어. 성기를 그만 끊어 버렸어. 성기가 없습니다. 끊어 버렸습니다. 이놈이 그렇다 해 가지고 그만 이 성구를 보고 이놈을 끊어야 내가 범죄 안 하겠다. 끊어 버렸습니다. 끊어도 그 끊은 거 가지고 다 된 게 아니라, 그 끊어 가지고 다 되는 게 아니고 끊었지마는 또, 고기덩어리는 끊었지마는 마음은 끊지 못하기 때문에 고기덩어리는 끊어도 마음은 또 기능은 범죄할 수가 있다 그겁니다.

이래서, 어쨌든지 끊어 버리든지 뽑아 버리는 그런 것도 있고 또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서 완전히 그것을 끊어 버리고 고쳐 버리면, 고쳐서 고치고 나면 그것이 제거돼 버립니다. 고치면 이거 끊으면 즉시 의로워집니다. 즉시 의로워집니다.

자에게는 “죄 마귀 사망이 주권하지 못하고” 하는 것은 왕노릇하지 못하고 대속을 벗은 자에게는 왕노릇을 합니다. 그게 주권을 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은 벗었다가 입었다가 입었다가 벗었다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벗을 때의 그 시간은 자기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래 만일 일생 동안 예수 믿으면서 벗고 살고 입고 산 시간이 하나도 없었으면 그 사람은 어찌 됩니까? 그 사람은 그 영 구원은 얻었고 기본구원인 이 몸의 형체 이거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되기 때문에 마음의 형체 고기덩어리의 형체 이 형체와 중생된 영은 가지마는 속에 기능은 없습니다. 기능은 없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 기능이 없다 하면은 이 팔은 이래 있지마는 팔의 힘은 하나도 없고, 기능도 여러가지 아닙니까? 팔의 힘은 없고, 나는 이거 팔의 힘은 그래도 이래 있지마는 나는 영어 쓸 줄을 모릅니다. 에이 자 요거는 요리 하나만 쓰고 요거는 쓰지마는 뭐 다른 사람 보면 뭐 그 영어 쓸 줄 아는 사람은 이이래 막 내흔들어 이래 하고 또 하는데 그거 나는 쓰는 기능이 없어. 그거 이 세상에 배우지 안했기 때문에 기능이 없어. 또 그것을 다른 사람 보면 좔좔좔 읽는데 나는 또 그걸 못 읽어. 인제 그런 게 다 기능입니다.

기능인데 하늘나라 가서는 그런 기능은 하나도 필요가 없고 무슨 기능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믿는 기능 또 그대로 행하는 기능 이것만 남아 있어. 왜? 세상 모든 지식은 다 폐할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소용이 없고 이제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말씀의 이 진리를 아는 기능, 또 영감을 아는 기능, 또 진리대로 행하는 기능, 영감대로 행하는 기능,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그 모든 충만한 무한의 그 능력으로써 행하는 그 신적 요소 그것만 간다 그 말이오, 신적 요소. 그러면 신적 요소화된 것만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일생 동안 장로 노릇 잘합니다. 목사 노릇 잘합니다.

아주 모든 일에 자선 사업이니 구제 사업이니 다 잘합니다. 아주 그라니까 다른 사람 볼 때 ‘그 사람은 성자라. 그 사람은 성자라.’ 이라는데 아무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데 한 지체가 범죄하고 있습니다.

눈이 범죄하든지 손이 범죄하든지, 자기 마음 속에 무슨 시기라는 지체 그놈이 범죄하든지, 정이라는 지체가 범죄하든지, 이거 이러기 때문에 그걸 대개 크게 말하면은 정과 욕심 두 그놈이 이 마음의 지체로서는 강한 것입니다. 정, 욕심, 또 무슨 기억이라는 기억, 감정, 그것도 다 그런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안하면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자기가 그와같이 의롭게 했기 때문에 도덕면으로 보든지, 사회면으로 보든지, 윤리면으로 보든지, 뭐 민족면으로 보든지, 국가면으로 보든지, 인류면으로 보든지, 자기 그 사람의 무슨 경제면으로 보든지, 의무와 책임면으로 보든지, 모든 봉사면으로 보든지 다 깨끗한데 자기가 한 지체 그것이 잘못돼 있으면은 모든 거 해도 아직까지 다 미결로 돼 있습니다, 미결로 돼 있어.

그래 미결로 돼 있는데 미결로 돼 있는 그것이 죽을 때까지 그 하나를 회개하지 못하면 그 하나 때문에 전체는 미결로 다 정죄받아 가지고 지옥불에 던지게 됩니다.

이라는데 만일 그 사람이 죽기 전, 죽기 전 한 일 분 전에 회개하는 사람도 있고 십 분전에 회개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완전히 그때는 세상 다 버려 버리고 하늘나라 소망만 가지는 그 완전 회개하는 그 시간이 일 분도 있고, 이 분도 있고, 십 분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며칠도 있고, 몇 달도 있고, 몇 해도 있고, 몇십 년도 있고, 완전 회개를 해 가지고 몇십 년 사는 사람도 있고 하는데, 그 십 분 회개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어찌되느냐? 이제까지 했던 그것이 다 미결로 있다가 십 분 회개를 하면은 자기 전신에는 죄악의 지체가 하나도 없이 완전해졌기 때문에 십 분 동안에 이제까지 해놨던 거 다 등용이 돼 버립니다.

그때 전체가 완전하게 돼 완전에 속해지니까 완전에 속해지지 못한 거 한 지체 그놈 때문에 이것이 다 정죄받아 가지고 있다가 한 지체 그것이 십 분 동안 회개하니까 회개하는 그 동안 이것이 합해 가지고 이제 천국 가게 됩니다 천국 가게 되나 그게 손해가 뭐인고 하니 한 지체 고거는 일 분 동안 회개했으면 일 분 동안 회개한 그것만 지금 가고 있고, 그러니까 그것만 가고 다른 것이 거석하니까 하늘나라 가서 고거 가기는 갔지마는 부족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이 여게서 성화된 그것이 부분이 적기 때문에 다른 지체는 건강한데 이거 눈 하나가 잘못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눈 하나 잘못된 것은 그때, 우리가 논리적으로 본다면 고쳐졌으니까 인제 완전히 고쳐지지 안했나 이랬지마는 고쳐지기는 고쳐졌는데 그 눈이 성화된 것이 양이 심히 적기 때문에 말하자면 이 다른 사람은 백 개를 보는데 그사람은 한 백분지 일밖에는 보지 못한다는 그런 실력이 되고 맙니다.

그래 내가 어제도 그런 말 들었는데 어제 초상난 집에 그거 초상난 그분이 직분은 없는 모양이라도 믿음이 좋았답니다. 믿음이 좋았는데 그래 가니까 못 견뎌서 자꾸 고민을 하고 뭐 이라고 이라더니마는 딱 말씀을 전하고 기도를 딱 하고 나니까 그만 평안해 가지고 그만 누워 자더라고.

또 요번에 ○○○목사님 어머니가 세상 떴어요. 아버지 세상 뜨고 난 다음에 그만 계속해서 장례 지내자마자 또 세상 떴어. 떴는데 그래도 그렇게 세상 뜰 때까지도 둘이 영감 할멈이 이렇게 살면서 봉사하고 그 할멈은 남편 봉사하고 남달리 이래서 그 죽을 그때까지 자기네들이 노력해 가지고 이렇게 뭐 돈은 벌지 안하지마는, 자녀들이 줘서 먹고 살지마는, 여게서도 돈을 ○목사가 보내고 이래 가지고 살지마는, 그 봉사를 했다 말이오. 봉사를 그때까지도 그 힘 있는 걸 다 기울여서 봉사했어. 그 열녀라. 내가 열녀다 이랬어. 봉사했어. 열녀라.

힘이 뻣뻣하이 이래도 ‘아이구, 나는 피곤해서 못하겠다’ 이래 가지고 가정 의무나 책임에 대해서 몸이 뻣뻣해 가지고 지금 죽을라면 아직 감감하이 뭐 힘이 많이 남았는데 힘이 그래 말하자면 한 백분지 오십만 있어도 ‘아이구, 나는 피곤해 못 하겠다.’ 백분지 구십이 있어도 ‘나는 피곤해 못 해.’ 그런 자는 하늘나라 가면 아무것도 없어. 그걸 알아야 돼.

그랬는데 그래 인제 그이가 뭐 아무것도 모르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래 가지고 보면 얼굴이 거석하고 고통스럽고 고민을 하고 자꾸 이래 가지고 하더니마는 그전에는 교회 안 나왔는데 그래 옆에서 가 가지고 전도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딸들이 말해도 그 말 한 마디도 못 알아듣고 이렇더니마는 예수 믿는 이치를 쭉 말하니까 눈을 뜨고서 자꾸 좋아하면서 이라더래요.

그래 ‘믿겠나?’ 하니까 믿는다 하고. 그래 그래 가지고 말씀을 전하니까 그만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게 변화가 돼지고 평강이 오는 것이 환하게 보여지고 또 호흡도 그만 평안해지고, 그래 기도하니까 그만 잠을 자더래요. 그만 자더래, 평안해 가지고. 그게 뭐이냐? 그때 마귀가 손을 뗀 겁니다. 그때 온전한 회개하니까 마귀가 떼 버리니까 접선이 된다 말이오.

나도 그런 것을 그 한 이 분 예수 믿는 사람 봤어요. 제 장인이라는 노인이 참 아주 그 골짝에 인기 있고 호랑이라 말이 있고 또 아주 말 잘했는데, 도야 많이 들었지마는 안 믿고 늘 반대하고 이랬었는데 나중에 마지막 죽을 때에 이 분 회개했어. 내가 저아레 말한 것이 그 노인이야.

가니까, 다 죽어간다 해서 가니까 새카마이 해 가지고 누웠는데, 새카마이 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누워서 겨우 숨만 빨딱거리고 말도 못 하고 이래 누웠었는데 내가 들어가니까 그 송장이 벌떡 일어서요, 그만. 뻘떡 앉아요, 그만 일어서. 막 시커머이 해 가지고 막 눈을 부릅뜨며 나한테 막 이래 가지고 달라들어. 내가 있다가, 마귀 이놈 작용인 걸 알아. 고함을 질렀어 ‘사탄아, 물러가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뒤로 쿵 넘어가요.

넘어가고 난 다음에 ‘지금 예수를 믿겠느냐 지옥을 가겠느냐? 예수 믿겠느냐?’ 이라니까 모가지를 꺼떡하며 예수 믿는다 해. ‘그라면 회개를 해야지’ 자꾸 울어요. 눈물 좔좔 좔좔 흘려요. 평생 말 잘하기 때문에 잘하는 말 구변 가지고 죄를 많이 지었으니까 말로 한 죄를 회개해야 된다고 내가 이라니까 혀를 내 깨무는데 그만, 혀를 내 가지고 이래 깨무는데 새카매져 버려. 그래서 그 물어서 뭐 끊어 봐야 그렇고 ‘회개해야 온전을 못 이루니 예수님의 대속을 믿으라’고 이렇게 말하고 이라니까 그만 얼굴이 벌개지고 그만 환하게 돼져 버려, 새카만 얼굴이.

이라고 난 다음에, 가족들이 다 앉았지. ‘기도하자’ 기도하고, 기도하는데 내가 빨리 했어요, 곧 갈 것 같아서. 이 분 동안 내가 기도하고 나니까, 한 이 분도 안 됐어, 기도하고 나니까 벌써 가 버렸어. 그래 인제 그때 그 가족들이 그때 다 믿었어. 다 믿어 가지고 지금 하나도 안 믿는 사람 없어. 직계 사람들은 다 믿어요. 그거 내나 그래 가지고 ○○○목사 됐습니다.

사람이, 대속은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것을 말하고, 다섯째로 그 본인의 심신에게는, 그 본인의 심신. 그 본인의 심신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이 독재하지를 못합니다. 본인에게는, 본인의 심신에게는 예수님의 대속도 독재하지 못하고 성령도 독재하지 못하고 진리도 독재하지 못합니다.

진리도 전지 전능이요 성령도 전지 전능이요 예수님의 대속은 전지 전능의 완성을 이룬 완성해 놓은 것인데 이 세 가지 능력도 본인의 심신에게는 독재하지 못합니다. 독재하지 못하고 죄에 대해서도 독재할 수 있고 사망에 대해서도 독재할 수 있고 악령에 대해서도 독재할 수 있고 온 세상 전체에게도 독재할 수 있습니다. 독재할 수 있는데 다만 본인의 심신에게는 독재하지를 못합니다. 요거 알겠습니까? 독재하지 못합니다.

왜? 능력이 없어 독재 못 하느냐? 독재해 버리면 그만 뒈져버리기 때문에. 죽으면 헛일이니까 이거 독재해서 만들면은 완전한 인격성이 안 되는 자유성이 없는 이거 짐승같이 자유성 없는 것이 돼 버리기 때문에 자유성을 살려야 하나님의 형상이 돼지는 것이지 하나님의 형상은 제일 자유성이 중요한 것인데 이 강제 독재하면 자유성이 없기 때문에 자유성을 두고서 얼마든지 자유성을 안 죽이기 위해서 강제 독재하지 못하고 이러는데, 우리만 말이요, 우리만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나만 죄를 대적할라 하고 사망을 대적할라 하고 마귀를 대적할라 하고 나만 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죄 사망 마귀 세상을 나만 반대하면, 우리가 반대할 세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반대할 실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반대할 실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요거 말해. 그만 그칠 거야. 반대할 실력이 있어요 없어요? 죄 사망 마귀 이 세상에게 반대할 실력이 우리 자체에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없어. 어림도 없어 없어. 그것에 만분지 일도 못 당해요, 모든 인간 다 점령하고 있는데. 만분의 일도 못 당해요.

못 당하는데, 못 당하나 나만 이것을 반대하면, 나만 이것을 반대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환영하면 그 다음에 누가 들어옵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들어오요. 성령이 들어오시요. 진리가 들어오요.

성령 진리 예수님의 대속이 들어오는데 그것을 좀전에 말하기를 이제 성화되면은 우리의 인적 요소가 있고 신적 요소가 있으니 객관 세력이라 말이오. 인적 요소 이거는 힘 없지만 신적 요소가 그때 들어옵니다. 들어오면은 이 신적 요소가 나한테 들어와 가지고 나를 붙들고 역사할 때에는 어떤 능력으로 역사합니까? 전지 전능으로 역사합니다. 세상을 독재할 수 있어. 세상이 암만 달라들어도 강제로 눌러 꺾을 수 있어. 죄와 사망을 마귀를 강제할 수 있습니다.

왜 강제할 수 있나? 예수님이 이미 다 이겨 놨거든. “내가 세상을 이겼다” 예수님이 다 시합해 가지고 전쟁해 가지고 다 이겨 놨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유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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