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02:06
새벽기도 안하는 사람
본문 : 막1:35-39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쫓으시더라
기독자의 생활은 언제든지, 무슨 일이든지 먼저 준비가 있고 그 다음에 행동을 했습니다. 준비 없이 행동한 그런 일들은 없었습니다. 모든 선지 사도들이 다 그랬고 또 성도들도 그랬습니다.
미리 준비하는 것은 주님과 자기와 합해 가지고 모든 것을 경영하고 또 그뒤에 일을 착수해서 성사를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새 날을 맞이하면서 새로 닥치는, 평생에 자기가 처음 만나는 새 날인데, 또 다시 만나지 못할 그 새 날인데, 새 날을 만날 때에 그날의 첫 시간, 모든 것이 이렇게 활동하기 전, 또 다른 아무것도 접하기 전 자기의 그 하루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도와 주시기로 약속하신 지극히 크신 구주를 모신 것을 깨닫고 믿는 사람 이라면 그분으로 더불어 만나서 의논할 그런 한적한 곳을 찾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벌써, 자기야 뭐 자기 직업상 직무상 어떤 형편에 있을지라도 자기가 모든 지저분한 만물을 접하기 전 주님을 만나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분으로 더불어 의논을 하고 해야 되겠다 하는, 모든 만물이 움직이기 전, 또 분주하고 복잡하기 전, 또 한적한 고요한 시간, 자기는 무슨 예배당이든지 안 되면 산이든지 또 아주 어렵게 사는 그런 사람이면 자기 침실에서든지, 그렇지 않으면 여반들은 무슨 부엌에서든지 어데든지 모든 걸 접하기 전 주님을 만나 가지고 의논을 하고, 그분의 의사를 듣고, 그분과 의논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입고, 또 그분의 지도를 받고 이렇게 하지 안하고는 마치 어데 끌려가고 잡혀가는 거와 같이 정신없이 자기가 모든 것에게 부딪혀서 끌려가는 그런 감을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자기의 무슨 직무상 어떤 일이든지 업무상 어떤 형편이라 할지라도 새벽을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상대해서 일할 만한 그런 새벽기도를 하는 그런 일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하면은 뭐 자기가 자기 직업상 어떤 직업이라도 그 직업을 버려야 됩니다. 자기가 만일 의사직을 해서 항상 자기는 열두시까지 남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을 하고 열두시에 자니까 새벽에 일찍 깰 수가 없어서 늦게 깬다. 이러면 제딴에는 무슨 의로운 일을 하는 것 같지마는 없는 가운데서 우리를 만드시고 십자가의 대속을 하시고 또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은 그까짓 거 고기덩어리 병든 것 의사노릇 하라고 우리를 만든 것도 아니고 또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푼 것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도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자기의 직책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그 주시는 것도 모든 것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주시는 것이지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것 아닙니다. 인간이 이렇게 저렇게 뭐 사회 생활이나, 국민 생활이나, 자기의 가정 생활이나 어떤 젓 하는 그것을 그것 하라고 우리 지어 놓은 것 아닙니다. 또 십자가의 대속하신 것 아닙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의 사람과 행위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자가 되기 위해서 그런 것은 거기에 하나의 필요한 그런 조건들이지, 그를 위한 한 예비 조건들이고 이용 조건들이지 그것이 우리의 목적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큰 회사를 경영하니까 많은 사람들을 써서 큰 일을 제딴에는 큰 일이라 싶어서 큰 일을 경영하니 그 많은 사람들을 다스릴 만한 그런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 거게 대한 연구를 하고 하다 보니까 열두시가 지난다. 한시가 지난다 이러니까'으례히 나는 할 일하고 새벽기도를 나갈 수가 없다' 해서, 제가 모든 만물이 다 분주하게 활동해서 한적하게 주님을 만날 기회 없이 이것에게 독촉받고 저게 독촉받고 끌려서, 송아지 코 꿰어 가지고 끌리듯이, 개가 홀랭가지에 끌려 가지고 끌리듯이 끌려서 이 사건에 이 모든 사람에 형편에 끌려 가지고 일어나서 그날 하루를 만나 가지고 제게 지혜가 많든지 적든지 그 지혜대로 모든 환경을 접촉해서 산다는 그것은 참 불행스러운, 인간만으로 사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요 그의 욕망도,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이의 욕망도 모르는 사람이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의 큰 것도 알지 못하는 무신론자요, 그 사람은, 무신론자요 유물주의자입니다.
또 자기는 어떤 무슨 일에 특별한 무슨 행정청에 있어 가지고 그와 같이 한다든지 무슨 어떤 중역에 있으면서 그런다 할지라도 자기는 매일 하나님 앞에서 새벽 한적한 그 시간에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주님에게 모든 지도를 받고, 또 간구를 하고, 그분을 만남으로 내 심령이 새로워지는데, 사람은 이 물질 빛 이런 것 가지고 우리 마음이 밝아지는 것 아닙니다. 진리로 밝아지고 영감으로 밝아지고, 영감과 진리가 뭣 하는 건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내것을 가지고 증거할 것이요 진리 안으로 인도하리니''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제일 외부적은 하나님 말씀으로 밝아지고 그 다음에는 영감으로 밝아지고 그 다음에는 주님을 만남으로 최후 밝아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데 그 일을 하지 못하고 항상 자기는 어떤 피조물 뭐 물질이든지 자기는 대과학자가 돼 가지고 뭐 어떤 물질 연구에든지 눈 뜨고는 물질 접촉해 가지고 제딴에는 그거 이용하는 것 같지마는 거게 피동이 돼 가지고, 과학자는 전체가 물질 피동자입니다. 저거 눈이 어둡고 마음이 조부라와서 제가 무슨 물질을 파고 들어간 것 같지마는 그게 물질 피동자요, 물질 끄는 대로 가는. 기껏 가 봤자 풀 한포기를 연구한 풀 한포기 박사가 됐다고 하면은 그 풀 한포기에게 끌려서, 제가 파고 들어간 게 아니라 풀 한 포기에 끌려서 일생동안 들어간 것뿐인 것입니다. 풀에 피동자된 것 뿐이오.
무슨 세균 박사라고 하면은 제가 세균을 제가 아는 게 아니라 세균에 피동되어서 일생 동안 세균에 끌려 가지고 세균 만나 가지고 끝마치는 세균 피동자니까 그도 하나의 유물주의자인 것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무가치한 것 아닙니다.
첫째 하나님 섬기고, 또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또 하나님께 피동돼서 이런 것 저런 것 사는 것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최귀의 피조물이 인간이지 그렇게 인간이 천한 것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 배반하고 하나님 없는 데에 그만 살기를 원하는 제 힘으로만 살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합당한 보웅으로 하나님도 안 계시고, 하나님의 창조한 것도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의 은혜도 아무것도 없고 저만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구더기도 죽지 아니하는 유황불 구렁텅이라는 것입니다. 불 이면 타 버리면 그만인 줄 알아도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인데,또 우리는 구속받은 성도들인데 자기가 벌써 새벽기도를 나오지 못할 만한 그런 사람이면 자기의 혼은 완전히 빼인 사람입니다. 자기는 완전히 팔린 사람이오. 세상에게 팔려서 종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만 가지 명철을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가 사람된 사람으로서는 구속받은 사람으로서는 자기에게 대한 준비를 하지 못 하고 준비 없이 모든 것에게 끌려서 이렇게, 개가 흘랜갱이에 끌려 가지고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끌려서 죽는 날까지 가다가 끝난 사람이기 때문에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 인간이 서로 상호 협조의 일을 일으킬라고 하면은 밥 하는 사람도 있어야 되겠고 짐지고 오는 사람도 있어야 되겠고, 모심는 사람도 있어야 되겠고, 또 의사도 있어야 되겠고, 빨래 하는 사람도 있어야 되겠고 다 있는 것 모양으로 모든 것이 온, 한 몸에 여러 지체가 각각 제 직분을 합해 가지고 한 몸을 이루는 젓처럼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인생에게 이런 것 저런 것 자기의 할 일 맡긴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그 사람이 쉽기 위해서 하나의 노자요, 또 그 일을 하는 하나의 장소요 또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의 이용물들이요 과 정들이지 그게 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어떤 업을 해도 새벽 미명 주님 만나서 먼저 모든 자기의 경영하고 또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을 유일하신 주님 만나 가지고 주님과 의논도 하고 또 주님의 그 빛을 받아야 정신이 차려 집니다. 사람은 얼마나 어두운고 하니 자기가 하나님을 엎드려서 하나님을 사모만 해도 마음이 밝아지고 하나님한바 의논을 할라 해도 마음이 밝아지고 하나님께 뭘 사정을 고해도 마음이 밝아지고, 또 하나님 앞에 잘못한 걸 찾아도 마음이 밝아집니다.
이렇게 마음이 밝아지고, 이러니까 모든 사고 방식이 아주 달라버립니다.
그러면 자기가 사고하는 것,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그런 것 자기가 원하는 것 계획하는 것이 아주 바꿔집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가 '새벽 미명에 주님 만나야 되겠다' 하는 이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은 자기가 새벽 미명에 주님을 만나는 그 시간을 만나기 전 사람과 만나기 전 자기의 사상과, 만나기 전 자기의 계획과 만나고 난 다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볼 것입니다. 또 달라진 그것을 눈을 떠 가지고,-그게 다 마귀가 아닌데 마귀의 운동이요 마귀의 군대들이라 그말이오. 이 사물 모든 인간 접촉하면 자기가 분명히 눈감고 주님 만나 가지고서는 이리 가야 되겠다고 한 것이 그것이 그대로가 아니고 모든 접촉하는 데서 정반대로 '이리 가야 되겠다' 하는 주장이 다시 나옵니다. 견해가 나옵니다.
나오고, 그러면 '내가 기도할 때에는 이리 갈라고, 그래 가야 옳고 그리 꼭 가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그리 간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이리 간다. 이렇게 다짐까지 한 일이 왜 지금, 지금은 그것이 그렇게 허무하게 잘못됐다고 무슨 착오나 체면술에 걸린 자나 어데 귀신에게 끌린 것 모양으로 그렇게 생각이 돼지나? 이게 내가 하나니 만났을 때가 착각이가? 지금 내가 이 모든 사물과 인류를 만났을 때가 착각이가?' 이것을 혼돈하는 사람 있습니다.
이만큼 틀린다 그거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만나 가지고는 그러다가 일어나 가지고 또 이 모든 만물 만나니까 자기의 모든 계획이나 과징이나 하루 종일 생활 하는 방편이 홱 바꿔져 가지고 '이래야 되 겠다' 이래 가지고 나가다가, 어떤 사람은 '이상하다. 새벽 미명에 그날 하루를 주님 앞에다 내놓고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얘기하고 문의할 때는 이랬는데 그후에 이 모든 내 실 생활에 모든 사물과 인류들을 만나고 나니까 이리 되고 이것이 둘 모순되니 어느 게 어느 것이냐?' 이러다가, 지혜 있는 자는 요것을 비교해 볼 때에 '그러면 이리 하는 것을 이리 하고 난 다음에는 뒤가 어떠냐?' 뒤에 이래 하고 난 그것을 그뒤세 살피고 살피고 오래 동안 살피면 그때는 잘 됐는데 잘된 끝에는 망함이라, 실패라.
이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대로 사는 사람이 뭐 총 결론을 말하면 마지막에 죽을 때는 다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게 헛되다.
내가 하루 종일 한 것이 헛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워 자 수고의 생활 한 것이 다 헛되도다.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그따위 수고는 하나도 안 하고 꼭 할 수고만 한다 말이오. 할 수고만 하면 밥 안 먹는다 말입니까? 하나님이 시키는 할 수고만 하면은 저도 잘살고 하나님이 좋아서 이럴 건데.
이 둘을 비교해 보고, 비교해 봐서, 비교도 안 해 보고 그날, 뒤에 어찌 되든지 하기만 해 가지고서 당장 눈 앞에 되는 그것만 보는 인간은 그리 가고, 일을 하고 난 다음에 '그 결말이 어찌 되느냐?' 그 결말을 살펴 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때 내가 하나님 만났을 때에 생각한 그대로 했으면 어찌 되겠나? 그대로 만일 해서 내가 일생 동안 걸어왔으면, 그때 하나님을 만나 생각할 때는 이렇게 이떻게 하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대로 일생을 걸어왔으면 어찌 됐겠느냐? 하나님도 더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도 만났겠고, 하나님의 특별 보호도 만났겠고 초자연의 인간의 역사도 만났겠고, 정말로 가치 있는 그 일을 했을 터인데 헛일이다.' 그렇게 그걸 통계해 가지고 계산해 보는 사람은 이리 가고, 또 그보다도, 그러면 내가 주님 만났을 때에 나와 또, 주님 만났을 때에 사람은 틀린 사람이고 이제 새로 만물과 인간을 접촉했을 때에 이제 만난 나, 자기 말이오. 자기가 두 사람이니까 이 사람과 이 사람을 볼 때에는 분명히 주님 만나지 안하고 모든 사물과 인간을 만나 가지고 주장하는 그놈은 옛사람이기 때문에 죽여야 될 놈이라.'네 지체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네가 죽지 안하면 살지 못한다. 죽여라. 하는 그 원수라는 것을 발견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갈급하고 답답해 하는 것은 자기가 사람노릇을 못 하는 그 일에 그 입장에 그 처지에 있음을 답답히 여기고, 자기가 어떤 어떤 일 할 때에는 심령도 밝았고 정신도 발랐고 또 마음도 깨끗했고 옳았고, 그래서 그런 일 할 때에 그때에는 자기가 자기를 볼 때에 '야, 참 내가 성녀다. 내가 성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으며, 이런 마음을 가지며, 이런 정신을 가지며, 이런 소원을 가지며, 이런 마음을 가지느냐? 참으로 주님이 흘리는 눈물을 흘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쁨을 가지고, 주님이 애타하시는 애타함을 가지고, 주님이 소원하시는 소원을 가지고,' 가만히 성경을 보니까 주님과 비슷한 자기가 되어질 때에 자기가 놀라고 참 기뻐하고, 그것이 기뻐서 그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아 무것이 있어도 도무지 마음에 만족되지 안하고 자기에게는 평강이 없다는 그런 말을 들을 때에, 예수 믿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좀 만나본 사람이라.
이러니까 그런 면으로, '자, 내가 주님 만나 엎드려 가지고 있는 그때의 나와 또 내가 인간들과 모든 사물들을 만나고 난 다음에 나와 정 나는 그때 그 사람 미쳤고 또 그때 그 앞에 만날 때는 이 인간 만나 가지고 어제 종일 생활하는 그 사람이 미쳤고, 이 사람은 저 사람 미쳤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이 미쳤다 하니까 어느 젓을 택해야 되느냐?' 하는 이 시비에서 어떤 사람은 점점 의로워져서 이놈을 죽이기까지 해서 이놈을 밤낮 용납시키지 안하고 죽일라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을 부인해 버리고 이놈을 살려서 이놈대로 죽는 날까지 사는 사람 있습니다. 살아봤자 결과는 멸망이오. 저가 뭐할 겁니까? 그러기 때문에 새벽기도를 자기가 새벽 미명의 이 새벽 시간을, 하 루를 두고 주님으로 더불어 만나서 의논하고 해결지울라 하는 이것이 없는 사람은 불쌍하고 가련한, 살았으나 죽은 사람 같은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은 짐승 같은 사람이요, 제가 암만 잘나도 짐승입니다. 저는 육체로 사는 사람이지 내가 짐승이라 하는 게 아니라 육체로 사는 사람을 가리켜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육체가 되었으니' 그래 말했고 그것은 다 짐승 생활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벌써 자기에게 대해서 전혀 준비 없이 사는 사람이라.
준비, 새벽기도를 못 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사 준비 없이 항상 어떤 환경에 끌려가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자유가 없는 사람이라. 자유가 없는 사람이요 준비가 없는 사람이요 모든 자기 환경에게 끌려가는 사람이니까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벌써 배암에게 끌려서 지금 배암이 하라는 하고, 가자는 대로 가고, 배암이 필 요하다 하는 대로 필요하다 하고, 배암이 좋다 하는 대로 좋다 하고, 배암이 가치 있다고 하는 대로 거게 대해서 평가도 거게 피동이요, 비판도 거게 피동이요, 방편도 거게 피동이요, 모든 욕망도 다 거게 피동이라. 그러니 제가 죽을 수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니까 예수 믿어야 기본구원만 있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만물보다 거짓된,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속에 더러운 온갖 정욕, 뭐 물욕이나 명예욕이나 다른 음욕이나 모든 것 다 온갖 정욕인데, 온갖 정욕, 죽억야 될 그 정욕대로 일생을 끌려서 살아, 자기의 좋은 청년의 정욕도 거게 다 뺏기지, 진액도 다 거게 뺏기지, 귀중한 시간도 다 뺏기지, 징성도 거기 다 뺏기지, 신경도 다 뺏기지, 하루 종일 수지되는 진짜되는 정신은 거게 다 뺏겨서 거기 다 있으니 이래 가지고 있다 망칩니다.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합니까? 지금은 한국만이 아니고 노아 때, 소돔 고모라 성, 요한계시 18장 돼 가지고 지금 급박한 때입니다.
사람이 알지는 못합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지마는 나도 이거 예수님 재림 때까지는 안 있겠나? 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렇게 지금은 아주 말세지 말입니다. 그래도 그 말을 성경에 있는 말이지마는 지금은 준비하라고 하나님이 말 하라고 해서 말하지 좀 있으면 그런 말을 하면 말을 못 하도록 입을 막아서, 암만 말할라 해야 들을 사람이 없도록 갖다 가둔다 그거요.
어떤 자가 여기 집을 지으면서 말하기를 '야, 목사가 자가용 타고 다니는 게 잘하나 못하나?' 여기 어떤 우리 일하러 온 자가 떡 그래 말하니까 대답하는 자가 하나도 없더랍니다.
목사가 걸어다니는 그 봉사를 하고 그 수고를 하고 그러면 이런 무슨 노동일 그런 수고를 하면 그거 하면 그러면 힘 진액 거기 다 바치면 하나님의 음성을 어찌 들으며, 성경 연구는 어떻게 하며,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 모든 무리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의논은 어떻게 할 것이며, 또 제일 필요하고 요긴한, 생명을 바쳐야 되고 자기 생명을 내놓고 말을 해야 그 사람이 살아날 터인데 그런 말할 그런 준비는 어데 있을 것인가? 거게 바치는 것이지 그런, 그것도 좋은 일이지마는 맡은 일이 각각 다르니까 그런 내게 대한 그런 썩은 일에 일 분이라도 바치는 게 그거 아까운 것입니다.
어제도 여게 옥상에 방수를 해야 되는데 방수를 암만 시켜야 그걸, 금방 시켜 놔도 또 삐 뚤이 되고 도무지 안 되니까 하나 하나 자꾸 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어 내가 방수를 해야 되겠다.
어제는 아침부터 어떤 조사가 하나 와 가지고 한 두서너 시간, 권찰회 하고 난 다음에 또 얘기를 해서 열시에 내가 아침을 먹게 됐는데 그러고 나서 또 그거 어제 종일 그거 하면서 하루 종일 그래요. '주여, 이거는 참 내게 대해 해당이, 아니 이거 썩은' 내게 대해서는 썩은 일이라. 다른 사람 아니지만 내게 대해서는 썩은 일이라.
내가 그것보다도 지금 더 중요하고 지금, 한국이 망하느냐 흥하느냐 이 인류가 어찌 되느냐 하는 그 중요한 일이 내게 있는데 그 과정을 하지 못하고 이거 하니까 '이거 썩은 일이요 애터지는 일이다.' 하루 종일 마음에 고민을 가지면서 그 일을 했습니다.
했는데 어제 인제 그만치 밑절미는 다 잡아서 이제는 나 없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또 그래 놓고도 나중에 끝을 보니까 또 그렇츰 말을 했지마는 꺼꾸로 할라고 '이 위에 여기는 막 세멘으로 바르면 안 됩니까?' 이 큰 집이 가만히 있는 줄 알아도 집을 두 번에 지으면 이 큰 집이 가만 안 있습니다. 장 이렇습니다. 이 집이 항상 이래 이래 하기 때문에 속이 이래 갈라져 가지고 있어. 그걸 못 갈라지구로 붙 일라면 이런 팔뚝 같은 철근으로 가지고 이어도 안 됩니다. 안 돼요 지금. 그래 하지 않습니다. 자꾸 이래 움직이는데 이거 둘이가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이래 벌여뜨려 놓고 방수를 해야 되는데, 그래 놓방는데 '위에 가서 또 세멘으로 딱 바르면 안 되겠느냐?' 바르면 거게 안 갈라지면 어만 데 갈라지고 또 내나 물새고 안 된다 말이오. 암만 가르쳐도 헛일이라.
이러니까 그것까지는 어제 해 놓고 인제 시켜 놓고 난 다음에는 내가 딴 일 해야 되겠다 이랬습니다. 딴 일 무슨 일? 어떤 참, 정승 부인이, 정승 부인인데, 그 징승이 앉아서 앉았다가 누웠다가 이래 누워서 '이 나라가 지금 위급하게 됐으니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운명을 건지며 이 백성들의 한없는 살생이 될 터인데 이 전쟁을 어떻게 하나? 어떻게 이걸 방어해야 되나?' 이래 가지고 지금 고민을 하고 이래 있으니까 그 부인이 있다가 '저렇게 잠도 안 오고 멀거니 저래 자빠졌을 게 뭐이라? 일어나서 좀 뭐 하다 못 해 무슨 일이라도 좀 하지.' 이러다가, 나무가 없어서 일꾼 하나가 가 가지고 일꾼이 나무를 깔 비를 한짐 해 가지고 짊어지고 오니까 '아이고 수고했습니다.' 뭐 수 고했다고 자기가 마음을 뭐 가다듬지 못할 만치 수고했다고 이러면서 참 애쓴 것 감탄을 하는 그까짓 게 무슨 정승의 아내가 되겠느냐 그 말이오. 그런 거는, 그런 거는 일개의 노무자의 아내가 되고 그것만 가치로 삼기 때문에 그런 자라야 되지 제가 모르는 가치의 일이니까 그걸 모른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이렇게 큰 일 이거는 가치로 알지 못하고 제가 '내가 사장이라' 아침부터 제가 분주하게, 일꾼만 시켜서 제 뭐 회사 될 그거나 경영하고, 암만 돼 봤자 하나님이 은혜 안 주시면 헛일이라 그거요.
암만 해 봤자 '악한 자의 쌓아놓은 재물은, 불의한 자들의 쌓아 놓은 재물은 의인을 위해서 있다.' 이랬습니다. 이십세기 문화가 이래 돼 나가도 이것이 의인들을 위해서 있고 예수를 믿어도 진짜로 믿지 않는 그런 가짜들 미혹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선진국 그래 문화가 많이 발달됐으니까. 잔뜩 저거 위해서 있는 줄 압니까? 그렇게 문화가 발달돼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자껏 일해야 그 비용을 낼 수 있고, 소비세를 제가 내야 된다 말이오. 그 소비세를 내야 되고 이래 가지고, 차도 조금 더 높은 것, 하나 더 편리한 것, 이 문화라 하는 게 다 그것이오.
이러니까 인생의 시간과 정력과 정성과 모든 것을 솔빡 도둑해 먹는, 여게 소비하고 저게 소비하고 이래 만드는데 그래도 그런 데에 미혹받지 안하고 자기 먹을 것과 입을 것 있으면 족한 줄 알고 남은 시간 다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해 가지고 인간이 모르는 일, 인간이 모르는 일 요한일서 3장 1절 이하에 아버지도 모르고 그러기에 우리도 모르고 우리 하는 일도 몰라 세상이 모르는 일 하는 그것이 기독자의 하는 일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가치가 기독자의 가치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능력이 기독자의 능력입니다. 세상이 모르는 두려움이 기독자의 두려움이오. 그런 그들과 우리와 세계가 다르다 그거요. 이런데 이 사람이 되는 데에 한적한 곳에서 주님 만나지 안하고 어떻게 될 거냐 그말이요? 새벽기도를 못 나오는 자는 제가 무슨 짓을 해도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요 귀신에게 흘랭이에 흘켜 가지고 자유 하지 못하는 자요. 짐승 생활이라.
그러면 자기가 눈 뜨고 한 그 일대로 하는 그것이 자, 뭐 주를 위해서 살았다 하겠소? 전부 마음의 수지, 정성의 수지, 자기 몸의 정기의 수지, 모든 진액의 수지, 이거는 홀빡 다 제 욕심대로 전부 해서 욕심대로 했으면 뭐 건설했나? 욕심대로 해서 썩어졌다 그말이오. 딴거 없어. 다 썩어진 것뿐이오. 그거는 백에 하나도 남지 안해. 욕심대로 해 썩어진 것뿐이라. 이랬지 그것을 주님에게 바쳐 산 게 뭐 있습니까? 주님은 제일 수지를 바치는 그걸 받지 그거 전에는 못 받습니다.그거 전에는 받으러 오면 그걸 바치면 하나님이 불로 소실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자는 피해야 해요.
이러기 때문에 '너희가 성전인 것을 째닫지 못하느냐?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할지니라.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 시느니라.' 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쩌끄러기 바치는 그런 것 다 멸해야 되니까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을 수가 없어. 암만 주여 주여 해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를 못해 들어오지를 못하니까 하나님의 뜻을 모르지,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지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지, 하나님이 경영하는 경영을 모르지 하나님의 뜻을 모르지, 귀하고 천한 것 모르지, 살고 죽는 것 모르지 제까짓 게 통통 소경이 돌아다니니까 구렁텅이에 빠진다고 말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므로 새벽을 주님 앞에 바치지 못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자기에게 대해서 준비 없이 팔려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준비 없는 사람이오 또 새벽 미명에 주님을 찾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오 그것이 주님을 믿지 않는 표적이오. 주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표적이오.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표시라 그말이오. 의지하지 않는 표시요. 주님을 바라지 안하는 표시요.
주님에게 무엇을 지도받고 물어서 의논해야 되는 그것을 부인하는 표시요. 저 혼자 사는 자라는 증거라 그말이오! 무슨 가치 있는 일을 제가 한다고 해 가지고 '뭐 저런 사람들이나 새벽기도 하지 내가 새벽기도?' 새벽기도 나오는 것을 아주 못쓸 이 모든 천물들이 나오는 그런 인간인 줄 압니다. 제까짓 게 새벽기도 한번 나왔다가 제 비위에 맞은 설교 안 나온다고 그만 하고, 너 위해서 하나님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 그날 첫 시간, 만물을 접하기 전 첫 시간 하나님 앞에 나와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 가지고 의논하고, 그분에게 부탁도 하고 그분이 뜻이 뭐인지 지도도 받고, 또 한 분 하나님에게 치료도 받고 그날 하루의 모든 정비가 한적한 곳에서 주님 만나는 데서 정비가 다 되고 되는 것인데, 그래 가지고 출발해야 되는 것인데 이것 없이, 그래 예수 믿지 않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 그날부터, 누가 말하는 게 아니라 예수 믿는,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아무라도 주님을 믿기로 첫 주일 지나고 난 그때부터 거거는 예배당이 없는 곳이라. 예배당에 갈라 하면 한, 거게 한 십 리는 약 십 리 될까 십 리 좀 못 될까 그러니까 뭐 산골길이기 때문에 가지 못하고 이러니까, 요새와 같이 도로 있을, 때가 아니라.
믿는 그날부터 그 동산에 산에 가서 가족들을 다 어린 것도 다 데리고 가 가지고 거게서 새벽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그래 오고 새벽기도를 그래 계속하고, 내가 계확적으로 '이거는 주를 위해서 이거는 새벽기도는 안 나가야 되겠다'하는 그 외에는 새벽기도 안 나간 일이 없습니다. 그날은 새벽기도 나가는 것보다 새벽기도 안 나가야 내가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지 나가 안 되겠다 하는 그거 외에는 안 한 일 없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다 좋아졌고 가정이 다 모두 거창 함양 합천 이 삼 군에서는 우리 가정을 제일 일등 가정이라고 자녀 일등 자녀라고 이랬는데 서부교회 와 가지고서 요렇게 그만 다 망쳐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나도 잘못이 있지마는 서부교회 교인들도 거게 대해서 배상할 것이 상당히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교역자 가정에 대해서 교역자 가정을 귀하게 여기지 안합니다. 전부 질투해서 시기해서 그런 것뿐이라. 그래 가지고 뭘 실수하면, 그 버르장이 아주 고쳐야 됩니다. 주일학교 반사들도 그만 거게 집사 아들이 하나 있으면 그게 공격의 대상이라. 다른 사람 잘못 한 것도 그 집사 아들 욕하고 '네가 집사 아들이 그럴 수 있느냐?' 그 아이는 나쁘지 안한 것도 다른 아이 나쁘다고 나무랄 데에 그걸 나무란다 말이오. 또 그보다 장로 아들이 있으면 더 그렇소.
목사 아들 그러니까 목사 아들 그러니까 그만 목사노릇 안 할라 해.
우리 집에 셋째 아들은 교회서 자꾸 그러니까 '뭐 교회면 교회지 자꾸 뭐 그럴 게 뭐 있나? 내가 잘못하지 안했는데.' 이래 가지고 자꾸 이것 뭐, 그래 놓으니까 교역자 아들이라고 업수이 보고 자꾸 이러니까 그 아이가 그만 뚜드리는 깡패 소문이 났어. 저거 동무들을 막 뚜드려 패고 이래 가지고.
그래 내가 그걸, 내가 지금 생각하니까 잘못했어. 판단을 해 가지고 그런 놈은 때려야 되고. 그거 네가 때릴 힘이 있으면 네가, 참으면 참지 네가 지면 안 된다. 이걸 사리 판단을 해서 판정을 지워야 될 건데 무조건 눌러버리니까 서부교회 교인 노릇 못 하겠다고 다 도망쳐서 가 버렸어.
이래 가지고 만났으니까 서부교회 교인들 강퍅한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가 봐야 상이 없어. 구원이 별로 된 게 없어. 회개를 안 해. 뭐 예수를 믿소? 지금이라도 6. 25와 같은, 신사참배나 뭐 이런 것 와 붙으면 내놓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란지 모르요. 혹 주일학교 학생들에 많을 것이고, 중간반에는 혹 있을 것이고 장년반에는 있으리라'그거 생각되는 사람 별로이 없습니다. 왜? 예수 믿는다 하지만 껍데기 예수 믿지 속으로는 전부 진짜는 제 욕심대로 다 하고 찌꺼기 나머지기 찌꺼기 그것만 가지고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그런 외식자들이기 때문에 뭐 주를 사랑함이 있어야 주를 위해 순교를 하지? 그러기에 새벽기도 안 나오는 자면 그자가 분명히 지금 귀신에게 흘려 가지고 죄 짓는 데에 정력을 다 뺏긴 자입니다.
'뭐 나는' 어누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보니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이 다 부자거든.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부자된다' 이래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는 놈도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 그말이오. 어리석어.
그거는 제가 현재 뭘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분주하니까 늦게 자니까 아침으로 늦게 일어나는데, 늦게 일어나도 일은 그 일을 해 나가도 자기는 버리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년에는 반드시 비참해집니다. 마지막에 죽을 때는 후회가 가뜩 찼을 것이오. '내가 늙기 때문에 죽기 때문에 내가 생활 한 게 잘됐다'그런 생각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새벽 미명에 새벽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짓지 않는 그 사람은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오, 저 혼자 살 수 있다는 사람이요, 제 눈에 보이는 조건만 좋으면 살 수 있다는 사람이요, 의지도 안 하는 사람이요, 바라보지도 안하는 사람이요, 거게 의논도 안 하는 사람이요, 그분에게 뭐 구할 것도 없는 사람이요, 준비 없는 사람이요, 환경에 모가지 홀켜 가지고 끌려다니는, 잡아죽일 짐승같이 끌려 돌아다니다.가 그러다가 그만 뒈져버리고 맙니다. 뭐 가치있소, 있기를? 어리석으면 안 됩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는 가족들에게도 말 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을 칼 이라.
이러니까 말해서 안 들어도 자꾸 그 말 하면 칼이 쑤시면 옛사람 그놈은 뒈지고 새사람은 살아난다 말이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이거 기도해야 되겠다. 그만 '오늘 아침에 기도하라' 이 말만 할라 해도 또 안 되니까 또 말씀을 하는데, 어쩌든지 여러분들이 그날 첫날 첫시간 주님하고 딱 만나 가지고 모든 게 '요래야 된다 조래야 된다. 요거는,' 그것이 결정 안 되는 사람은 허공을 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제가 돈을 벌어도 헛일이요, 돈 그게 우리 구원입니까? 돈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합니다. 우리를 괴롭히기만 하지. 자기 필요 이상의 재물이 자기에게 아무 소용 없어. 그것이 모두 자식들을 싸우게 만들고 뭐 만들고 그래요.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 만났어. 얼마 되지도 안하는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이거 아프고 보니까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니 내가 죽고 나면은 재물 얼마 있는 것 저거 큰자식 작은자식 이래 서로 싸우고 시비하고 할 터이니까 이 일을 어째야 되느냐?' 이래서 그거 지금 걱정이 나온다고. 지금 좀 걱정이 나오지. 하나도 유익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부를 시키라 하는 공부 시켜야 되지 억지로 공부시킨 그것이 지식이 그 사람을 망치지 하나도 유익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하고 의논해서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가지라 하면 가지고 말라 하면 말고, 먹으라 하면 먹고 굶으라 하면 굶고, 입으라 하면 입고, 어느 정도에 살라 하면 살고, 하나님 전지자 전능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 시키는 대로 해야 뒷병이 없고 좋지 만물보다 거짓된 제 생각대로 마귀 생각대로 해 가지고 좋은 게 뭐 있겠습니까? 인간의 전체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망했다' 한 말로 결론 지을 수 있고, 하늘나라 가 가지고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 하고 싶은 대로 순종해서 이루었다' 할 것입니다.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합시다.
지금 남권찰님들은 일곱 분인가 여덟 분인가 저 팔복산에 기도하러 갔는데 거기 장소는 좋습니다. 좋아서, 기도하러 갔는지, 관광하러 갔 는지, 소풍하러를 갔는지, 거게서 하나님을 진노를 만드는지, 하나님이 기뻐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오는지? 자기네들 뭐라 해도, 사람은 이중으로 연극을 할 줄 안다 해도 연극 못 합니다. 실은 밝은 눈 앞에서는 연극을 못 하요. 그러니까 거기 가서 하나님하고 밀접하게 접하고 왔으면은 그 사람들에게 빛이 있을 것이고, 지혜가 있을 것이요, 성령이 머물고 계실 것이요, 사상이 달라졌을 것이요, 소망이 달라졌을 것이요, 성질이 달라졌을 것이요, 완전히 변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있지만 거게서 저는 뭐 무슨 외식으로 은혜 받았느니 한다 해도 보면 압니다. '너는 가 가지고 엎드려 가지고 내내 마귀 노릇만 했구나.' 어떤 사람은 가 가지고 엎드려 가지고, 그게 그냥 여기 집에서는 용기가 안 나니까 엎드려 가지고 그 기도하니까 거게서 다지고 다져서 제 욕심만 다져 가지고 욕심만 강하게 해 가지고 몇 배나 지옥의 자식이 돼 가지고 오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식기도 하는 사람 산기도 하는 사람 그런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 그거요.
그러니까 한적한 곳에 가기는 간 게 잘됐는데 무슨 일을 하러 갔는지 결과가 어찌 되련지 지금 잘해 가지고 오기를 바라면서 나도 기도하고 또 지금 잘돼야 될 건데 하는 그 맘을 가지고 있는데. 보면은 요래 하고 돌아다녀. 그전에도 가 봐야 아무 변화가 없어. 변화가 없으면 기도 잘못한 것이라 그말이오. 끊지 못하는 죄악을 끊었어야 그 기도를 바로 했지, 버리지 못하는 것 버렸어야 바로 기도했지, 자기가 안 하던 일을 옳은 일을 할 수 있어야 기도를 바로 한 것이지.
사람과 그 능력이 변해 가지고 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 '야, 기도하러 가지 마라. 그만 이 일이나 해라.
뭐 기도한다 해도 기도가 뭐인지도 알지도 못하고. 기도하러 가면 하나님 만나 가지고 자체가 하나님화로 이렇게 돼져야 되는 것이지 뭐 거기 가서 심심풀이나 가서 한번, 가만히 가 가지고. 한번 풍경이나 보고 또 자기 사욕, 자기의 모든 욕심, 온갖 정욕 그거나 지금 계획해서 그거나 계획하고 그거나 더 활발스럽도록 만들어 가지고 오니까 무슨 소용 있느냐? 그만 가지 말고 여기서 그만 일이나 해라.' 내가 그렇게 말한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결혼 상담이 있는데 이 결혼 상담회 안 모이겠습니다. 모아봤자 다른 사람 안 모이지, 그리고 이제는 결혼 상담에, 그 신고 안 한 사람 신고하고 그 남반은, 뭐 총각이 없어서 처녀를, 딸을 치우지 못하겠지 처녀가 없어 총각을 치우지 못하겠지, 그거를 그 은혜 역사를 막는 자가 누구냐? 권찰들이 전부 다 막고 있습니다.
아무리 요거 보면은 요 총각도 요거는 괜찮아서 어데 결혼시킬 만한 그런 자리가 있어도 '요거는 괜찮으니까' 요걸 가지고 조롱을 하면서 '요걸 가지고 우리 구역에 이익되도록 고거 요래 낚아 들여서 우리 구역에 유익되고 우리 구역에 식구나 하나 더 붇도록' 요렇게 아주 흉측한 사욕, 그따위 사욕을 가지고 전도를 해서 마귀당을 만들지 무슨 소용이 있을 건가? 참 잔인하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혼사에 방해하는 자는 만장 가운데 때려 죽어도 죄가 남는다 하는 그런 말이 있어. 다 우리 전국에 다 홀러 가지고 있습니다. 그거 왜 그렇느냐? 결혼에 대해서 그 두 사람의 행복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두 사람의 행복을 생각지 아니하고 제를 유익하기 위해서 제 근본으로 해 가지고 제 중심으로 제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그런 자는 만장 가운데 때려 죽일, 사형 죄라 그말입니다.
대개 나는 오빠, 그까짓 거 믿지 마십시오. 오빠가 부모보다 더 보 배로운 오빠도 있지마는 믿을 수 없는 오빠들 있어. 왜? 오빠라 하는 것이 여동생 있으면 '요걸 내게, 누구에게 결혼시켜야 내게 유익할까?' 제게 유익한 그 결혼 상대를 택하지 여동생에게 영적이나 육적이나 행복될 그것을 표준해 가지고 택하는 오빠 별로 없습니다. 별로 없어. 전부 도적놈들이요,알겠소? 다 모두? 정신을 똑 바로 차려야 된다 그말이오.
심지어 부모네들도 그렇소. 부모네들도 저거 자체에 행복이라는 그 것보다도 어떻게, 옛날은 딸은, 여자가 귀해서 딸은 대게 팔아먹습니다. '저거는 뭐 나락, 석 섬 받을 것이가 넉 섬짜리가 되나, 논 한 마지기 짜리가 되나 두 마지기짜리가 되나?' 이런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거는 평생 내가 가지고 고생할 건데 임자에게 떼 맡기니까, 떼 맡기니까 저거 그래도 갈 때에 뭘 좀 많이 해 줘야 되겠다.' 그래 해석을 해 가지고 또 인제 결혼비를 많이 들이는 그런 사람도 있고. 이것도 저것도 다 헛일이기 때문에 우리 서부교회서는 하는, 서부 교회서 하는 것이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주 잘하는 것이오. 어데 가도 바로 하는 것이요, 그거.
이러니까 수지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예수를 믿읍시다. 예수를 믿어. 그렇게 자기, 뭐 남의 결혼에 대해도 나 나, 내 구역 내 구역, 나 나, 무슨 사람 만나도 떡 만나면, 무슨 말만 하면 '내게 어찌 되나?' 이 사람 만나면 '내게 어찌 되나?' 나 나, 그놈 때문에 너는 지옥 가고 너는 하늘나라의 구원을 얻어도 벌거벗은 자로 구원 얻게 된다. 네가 네 원수다.
이러니까 뭐이든지 말도 제 지도, 저 좋게 하는 것, 멸망받을 그놈 위하면 좋다 하고 그놈에게 바른 소리 하면 그만 듣기 싫다 합니다. 그만 듣기 싫다 해.
그러니까 막 욕을 하고 그렇게 해.
어제도 내가 어떤 전도사한테 말했는데 나는 심혈을 기울여서 말 하는데 저 소원대로는 한 마디도 않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렇다 말이오. 듣기 싫어서 '목사님은 나를 자꾸 쫓아내는 식으로 그와 같이 지금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그렇다고 나갈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네가 사람이 틀렸기 때문에 그렇게 들려진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한테 바른 말 해 주지 하나님 앞에서 삐뚤어진 말을 간교하게 하겠나? 너 간교하게 해 주면 좋을 줄 안다. 너 말하기 전에 내가 다 말하지. 이것 아니냐?' 그것 내가 말했어.
'너 좋구로 할라 하면 네 소원에 원하는 대로, 그것도 그럴 수 있지. 그러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 보지. 하면 네 마음에 좋을 것이다. 좋을 것이지마는 너는 좋지만 주님은 네 이놈 하니까 내가 네보다 주님을 보고 살아야 되지 내가 그래 할 수가 있느냐?' 그렇게 다 말했어. 결론에는 어떻게 갔는지? 또, 뭐 여러 교역자를 만나니까, 또 만났는데 거게 대해서 한 마디 꼭 할 말이 있지마는 하면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면 진주는 밟고 달라들어 상할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 요것을 말하면 그 사람에게도 유익이 없고 결국은 그 결과적으로는 효력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둬 둬서 말 안할 수밖에 없어. 그저 그래 그래 하니까 좋아하고, 그래 또 어떻게 그래 수습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거요.
여러분들 똑 바로 삽시다. 어쩌든지 우리에게 욕하는 소리는 손해 하나도 없습니다. 핍박하는 소리는 손해 하나도 없어. 나쁘다 하면 나쁜 것 있으면 고치면 되고, 나쁜 것 없는데 나쁘다 하면은 참으면 복될 것이고, 만고에 손해갈 게 뭐 있습니까? 옳은 것을 칭찬해도, 옳은, 것을 칭찬한다 할지라도 옳은 것 칭찬했으면 공연히 세상에서 그만 없어질 것에 상급 다 받고 하늘나라에서 상급 받을 게 없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옳은 것 없는데 칭찬 받으면 그 값을 제가 내야 될 것이고, 또 그래 가지고 제가 우쭐해 가지고 올라가서 또 망하는 그 일 하고, 백해무익이지 유익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저 옳은 말 자꾸 해요. 우리가 공부하는 데에 자식 공부는 해야 되겠고 새벽기도는 안 나와야 되겠고, '새벽기도, 저게 엊저녁에 공부한다고 몇시까지 저래 공부했는데 새벽기도 가자고 깨울 수가 있느냐?' 공부를 좀 적게 하지! 그래도 그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아니고 예수 밖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다 성공이 있지 절제 못 하고 어떤 것에게 피동이 된 그 사람은 전공자라 해도, 전공은 주님 섬기는 것만이 전공할 것이지 세상에는 전공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저것 모든 걸 골고루 이래 해 가지고 이제 주의 뜻을 이루어야 되지 무엇을 하나 전공할 만한 그런 가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어.
주님을 따르는 믿음 그것 하나만이 전공하지 그분만이 완전자이기 때문에 거게 대한 것만 전공할 것이지 세상에는 완전솬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요것을, 요것에 일생 동안 전심전력 기울여서 할 만한 가치 있는 일 그런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말귀를 말이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만 안 되지, 들으려고 애를 써야 될 터인데. 만날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말을 해도 육십육십육 마귀 말밖에는 못 한다 그거요. 오늘 아침에는 결혼 상담 없습니다. 기도를 충분히 하고 가도록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