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00:49
새 사람으로 사는 것
1986. 2. 5. 수밤
본문:마태복음 24장 40절∼51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오늘 공과지 받은 그 공과는 다음 주일 가르칠 공과인데 그 공과는 그전에 많이 공부했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했기 때문에 그 공과만 보면, 여러분들이 공과만 외우도록만 잘 읽고 기도하면 가르칠 때에 성령이 역사하셔서 여러분들도 은혜받고 듣는 학생들도 은혜받고, 다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 자가 함께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과는 두고 지금 오늘 밤에는 요사이 우리가 배우는 말씀을 계속해서 증거할라고 합니다.
성경을 이렇게도 해석을 하고 저렇게도 해석을 하는 줄 알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렇게 해석하는 그것을 발표하는 방편을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가지를 쓸 수 있지마는 그 해석은 하나뿐이지 둘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둘이 없는 것입니다. 같은 진리를 농사짓는 것을 비유로 해 가지고 가르칠 수도 있고, 어부노릇하는 것을 비유로 가르칠 수도 있고 무슨 자기가 공업하는 그런 공업을 가지고도 비유해서 가르칠 수가 있지마는 믿는 이치는 하나뿐이지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교역자들이 모였을 때에 이 말씀을 가지고서 장시간, 구별해야 된다는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게서 배우고 나가면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여게 두 사람이 꼭 같은 형편에서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하는 여게 대해서 ‘그것은 택자와 불택자다. 꼭 같이 살아도 불택자는 지옥 가고 택자는 천국 간다 그것을 여게 말씀한 이 말씀이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지금 이 세상에 십분지 팔 이상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십분지 팔 이상 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여러분들이 배우고 나가 가지고 믿는 사람을 대해서 이 성구에 대해서 말하면 열 사람 만나면 여덟 사람은 다 ‘그것은 택자와 불택자를 말하는 것이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여덟 사람 될 것이고 ‘그것이 택자와 불택자를 말씀한 것이 아니고 새사람과 옛사람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이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열 사람 중에 혹 두 사람 만나든지 그리 안 하면 한 사람도 못 만나든지 그럴 정도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배울 때에 단단히 잡고, 들을 때에 ‘확실히 그거다. 옳다.’ 여게 대한 이 성신의 감동을 받아서 똑똑히 깨닫지 못하면 배워 봤자. 이 형편 되면은 이렇게 살고 저 형편 되면 저렇게 살아서, 일관된 생활을 하지 안하고 자기 형편과 처지를 따라서 얼마든지 변동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 생활은 구원은 이루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같은 형편에 일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하나는 멸망받고 하나는 구원 얻는다 하는 요것은 다 같은 현실에서 똑 같은 일을 한대도 한 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그 일을 하고, 또 중생되지 아니하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옛사람, 지금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으로서 그 일을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은 다니엘과 그 모든 총리들이, 총리가 서이 있었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와 같은 그런 직책을 가진 사람이 그 나라에는 세 사람을 세웠었는데 세 사람이 같은 행정을 하면서 다 다리오 왕의 명령에 따라서 그 왕을 중심해서 행정할 때에 이 다니엘도 다리오 왕의 명령에 따라서 행정을 하기 때문에, 모두 다 그들이 말하기를 저 사람 저걸 없애기는없애야 되겠는데 국령에 대해서는 흠을 잡을 것이 없다. 국령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훨끈 진실되게 다, 요새 말로 백점되도록 그렇게 충성을 하고 있으니까 저 사람에게는 흠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거게 안 믿는 총리도 있고 믿는 총리 다니엘도 있었는데 꼭 같은 일을 하는데 다니엘과 다른 총리와 그 총리노릇을 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다니엘은 새사람으로 총리를 했고 다른 사람들은 옛사람으로 총리를 했습니다. 그러면 새사람으로 했는지 옛사람으로 했는지 그것을 뭘 보고 아느냐? 그 나라에 한 달 동안은 다리오 왕에게만 모두 다 기도하지 다른 데는 기도하면 다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어 죽인다 하는 그런 명령이 전국에 내렸습니다. 내렸을 때에 다른 총리들은 다 그 명령에 따라서 아무 데도 기도하지 안하고 다리오 왕에게 대해서만 기도하는 그런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다니엘만은 평소에는 그렇게 왕에게 잘 복종했지마는 그 명령이 척 내리고 나니까 다니엘은 거게 대해서는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붙들고 네가 이 명령을 안 지키면 네가 사자구덩이에 죽으니까 명령을 지키라고 그렇게 간청을 했지마는 안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때까지는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혼자 독단 걸음을 걸은 일이 없었고, 그들과 하나로 움직였지마는 그때에 다른 데는 기도하지 말라는 고 명령이 내릴 그때는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 일이기 때문에 그때 위반된 일에 반대하고서 그 명령에 복종치 안한 사람은 다니엘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기도 문제가 나기 전까지는 꼭 같은 직장에서 그 중직을 지고 복잡한 그 행정을 하는 데에도 다른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꼭 같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에 하나는 새사람이 하고 하나는 옛사람이 하는데, 옛사람이 하고 새사람이 하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마는 하나님은 보시는데 옛사람이 하고 새사람이 하는 그 표시가 언제 나타났느냐?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그 명령이 나고 난 다음에 그때 확실히 표가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예수 믿는 생활을 다, 우리가 다 같이 일하고 밥 먹고 남의 수하에 쓰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쓰기도 하고 이런 저런 분야에서 다 일하고 우리가 생활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다 이렇게 살고 있으니까 껍데기는 꼭 같은 생활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하나는 새사람이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고서 그 가정을 꾸려 나가는 그 사람도 있고, 옛사람이 그렇게 해 가지고 가정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 보기에는 꼭 같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그 일 닥치기 전에는 꼭 같은 사람같이 보였지마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에 ‘보라. 두 종류의 사람이다. 이 사람은 너거와같이 생활하고 일하고 있지마는 이 사람이 사는 그 사람은 딴 사람이다. 딴 사람인 것을 볼래?’ 그 기도 문제가 턱 나오니까 딴 사람인 것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꼭 그러합니다.
이래서, 다 같이 살지마는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그 심신은, 우리 구원은 영의 구원이 아닙니다. 영은 이미 구원을 얻어서 영원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영은 다시 죽지 않습니다. 영생으로 중생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이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얻는 이것이 우리가 노력해 가지고서 건설할라 하는 우리 구원인데, 자기 현실에서 새사람으로 살면 그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생된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껍데기는 꼭 같이 살지마는 하나님 보실 때에 알맹이가 새사람으로 살지 안하고 옛사람으로 살면 사람 보기에는 모르지마는 옛사람으로 사는 사람의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지옥입니다. 그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꼭 같이 일하지마는 하나는 그 심신의 기능이 천국 가고 하나는 그 심신의 기능이 지옥간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여기 말씀합니다.
그러면, 옛사람과 새사람은 어떤 것이 옛사람과 새사람인가?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인데 영은 영 하나 단일체 하나뿐이오. 육이라는 것은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 이 둘을 합해서 육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도 우리의 고기덩어리도 이것은 한 개같이 보이지마는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여러 수천 요소입니다. 우리 마음이 여러 수천 요소입니다.
우리 몸도 여러 수천 요소입니다. 이래서, 요새는 과학에서 발견하기를 세포인데, ‘이 손가락 하나 세포가 얼마나 되느냐?’ 이라니까 얼마? 삼만 얼마라든가, 뭐 삼억 얼마라든가 그렇게 이 손가락 하나에 세포가 많답니다. 나는 그때 한번 내가 ○장로님한테 물어서 그때 알았는데 그만 기억하고 잊어 버렸습니다. 육도 그 요소가 수많은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은 구원 얻었지마는 심신의 기능이 구원 얻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잘 믿든지 못 믿든지 부활은 꼭 같이 합니다. 이 마음이나 고기덩어리의 형체는 꼭 같이 부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기능은 다릅니다. 능력은 다릅니다. 이래서, 빌립보 3장에 말씀하시기를 바울이,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 가지고 예수님의 부활하실 때에 권능과 같은 그 부활의 권능을 마련하기 위해서 어떤 고난이라도 개의치 아니하고 부활의 권능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그 고난을 같이 동참하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변화될 것이고 죽은 사람도 다 부활할 터인데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부활할 때에 이 몸뚱이, 마음 이 심신의 형체는 꼭 같이 부활합니다. 꼭 같이 부활합니다. 부활하나 속에 있는 기능은 그 다른 것이 사람을 천층 만층이라 하지마는 이 기능의 실력 차이는 억억만층도 더 됩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 보면은 그 형체는 땅에 있는 형체 하늘의 형체 다 형체 가졌는데, 땅에 있는 형체 영광이 따로 있고, 하늘에 있는 형체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하늘에 있는 형체는 하나 예를 들면은 해를 말했고, 땅에 있는 형체는, 하나 이런 밀알이나 모래알이나 이런 걸 가리켜 말했습니다.
모래알 몇 개나 합하면 태양 한 개를 당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기에, 사람은 영과 육 둘이 합해서 사람인데 지금 중생된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심신은 악령하고 악성하고 악습하고 합작이 돼 가지고 심신은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지금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은 지금 중생됐기 때문에 하나님과 성령과 진리와 함께 지금 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새사람입니까 옛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새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영은 영이요, 영은 영이요, 육은 그것은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옛사람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고 말하는고 하니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그 심신이 하나 됐을 때에는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래 말합니다. 그러면, 중생된 사람은 영은 살아 있지마는 영은 아무 활동을 안 하고 있으니까 죽은 거와같이 그렇고, 안 믿는 사람들의 영은 죽어 있고,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은 영과 그 심신은 악령, 악성, 악습과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사는 이 사람이 안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안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영은, 중생된 영은 따로 있고 심신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 돼 가지고 움직일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혈육의 사람이라, 육체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한 자리에 둘이 일하는데 하나는 구원 얻고 하나는 구원 얻지 못한다 하는 그것은 영의 구원을 말한 것이 아니고 심신의 기능 구원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인데, 그러면 심신의 기능이 새사람으로 살면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을, 그때 해당된 기능은 영생을 한다, 새사람으로 살면. 그러면 새사람으로 산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중생된 영과 그 사람의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셋이 단합이 돼 가지고서, 합작돼 가지고서 살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으로 산다 이랍니다.
그러면, 그 영은 벌써 영생 얻어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심신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한 덩어리 돼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 심신의 기능은 현실을 사는 고 현실에서 다 영생하는 기능이 돼 버립니다. 고 현실에 해당된 기능은 영생하는 기능이 되어지고 고 현실에 해당되지 안한 그 심신의 기능은 앞으로 이제 닥쳐오는 현실 현실마다 그것이 영생으로 다 속량함을 얻게 되고, 지나간, 지나가서, 현실이 지나갔는데 지나갈 때에 그때에 그 심신의 기능은 영생이 됐든지 지옥을 갔든지 둘 중에 하나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옥 간 것은 다시 어떻게 복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거는 어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러면 옛사람으로 산다, 성경에 옛사람으로 산다, 육체의 사람으로 산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영은 중생해서 따로 있고 그 심신이, 마음과 몸 이 둘이 주체가 돼 가지고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육체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이 사는 거와 우리와 그 종류는 다른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그 심신으로 사는 것은, 죽은 영은 송장되어 있어 기능으로서는 아무 기능이 없는, 죽은 영은 그저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에 메여 돌아다닙니다. 마음과 고기 덩어리에 메여 돌아다니는 죽은 시체에는 아무 기능 작용이 없기 때문에 작용이 없고,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서 이것으로 하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의 행동이나 믿는 사람이 심신으로 사는 것이나 행동은 꼭 같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은 영이 있고 믿는 사람들은 산 영은 따로 있기 때문에, 영은 없지마는 심신만이 역사해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 행동은 꼭 같습니다.
그러면, 심신만이 활동하고 사는데 그 심신은 무엇이 주관하는가? 그 심신은 악령이 주관합니다. 악령이 주관한다 말은 자기 중심의 마귀란 말입니다. 천사가 자기 중심으로 살다가 타락했습니다. 악령이 주관하고, 악성이 주관한다 말은 자기 중심의 인간 본성이라 그말이오. 이게 타락성입니다. 이것이 이제 인간의 원죄성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던 것이 네가 이거 먹으면 하나님된다 하는 그 말에서 미혹을 받아 가지고서 뚝 따먹고 난 다음데 인간 중심이 돼 버렸습니다. 인간 위주가 됐습니다.
이래서, 믿는 사람이 중생된 영으로 더불어 삼합이 돼 가지고 영, 혼, 마음을 가리켜서 혼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했는데 그걸 마음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영과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세 가지가 합해 가지고 살 때에 새사람, 영만 있을 때에 영, 심신만 둘이 단합돼 가지고 있을 때에 육의 사람, 옛사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면 그 심신의 기능이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다 영생하는 기능이 돼 버렸다. 한번되면 변동이 없습니다. 돼 버렸다.
그때에 새사람으로 살지 아니하고 옛사람으로 살면 그때에 산 심신의 기능은 영원 멸망이 되고 말았다.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옛사람으로 사는 것입니까? 중생된 영은 배척하고 제 마음과 고기덩어리 요 둘이 합작이 되어 가지고서 요것이 악령 악성 악습에게 이용당해 가지고서 그와 합작돼 가지고 사는 것이 옛사람 생활입니다.
그러면,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걸 굳게 잡으십시오.
새사람으로 현실을 살면 고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은 다 영생이 된다. 고 현실에 새사람으로 살지 안하고 옛사람으로 살면 고 현실에 해당된 그 심신의 기능은 영원 멸망을 받게 된다. 그러면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떤 것이 옛사람으로 사는 건가? 중생된 사람이라도 중생된 영은 버리고 그 심신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더불어 합작이 돼 가지고 살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고도 하고, 그것을 육체의 생각이라고도 하고, 육체의 소욕이라고도 하고 그렇게 성경에 발표를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는 다 같이 살고 있지마는 그 심신의 기능이 어떤 사람은 영생이 돼 버렸고, 어떤 사람은 영원 멸망이 돼 버렸고 이것이 현실에서 언제든지 결정돼 가지고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요걸 단단히 알면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을 이제 시간만 있으면 이 시간에 말씀해 드릴려고 합니다.
또, 그다음에는 ‘깨어 있으라. 깨어 있지 안하면은 모든 것 다 도적 맞는다.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으면 깨어 있어 도적이 도적질을 못 하도록 할 것이다.’ 네가 예수님의 재림이, 재림이 되면은 모든 게 다 변동돼 버려서 인간들이 이 세상 제도와 조직을 가지고서 네거다 내거다 하는 그 모든 조직은 다 불타서 다 없애 버립니다. 그 소유권의 조직과 그 모든 되어 있는 그 제도, 조직, 그 모든 나열해 놓은 것 그 전부는 다 없애 버립니다.
없애 버리고 다만 하나님이 영원한 법칙을 가지고만 모든 것을 치리하기 때문에 그 법에 합당하지 안한 것은 다 뺏겨 버립니다. 자기가 아무리 ‘이거는 내거라’ 이렇게 해도 그때는 자기 몸뚱이도 뺏기고 자기 마음도 뺏기고 자기 소유도 뺏기고 자기 기쁨도 뺏기고 자기 평강도 뺏기고 자기 행복도 뺏기고 영광도, 존귀도 권세도 다 뺏겨 버립니다. 세계를 거머쥐고 있는 그 권세도 제딴에는 가지고 있는 줄 알지마는 예수님이 재림 하시든지 그 사람 생명이 딱 끊어지든지 할 때는 그 권세를 싹 뺏들고 다 뺏겨 버리고 갑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서 가진 것은 다 그것은 헛일이다. 하나님의 법도대로 소유한 것만이 그것은 영원한 자기 것이 되어진다 하는 요 이치를 확실히 알고 믿는 자는 손해 보지 않는다 그말이오. 믿는 자는 손해 보지 않는다. 깨어 있는 자는 손해 보지 않는다. 믿지 않는 자는 다 뺏기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서 깨어 있으라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깨어 있는 것과 자는 것이 무엇이 다릅니까? 깨어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산 행동을 하는 것이 깨어 있는 사람이고, 자는 사람은 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행동은 산 사람의 행동이 하나도 없으니까 죽은 송장과같이 그와같이 되어 있는 것을 가리켜서 그걸 자는 것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이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고 새사람으로 살 수 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는데 새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새사람의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안하고 꼭 이제, 죽은 자, 생명이 없는 자들과 꼭 같은 행동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잔다 하는 말이 이해가 됩니까? 잔다는 말을 고렇게 해석을 해 주니까 과연 그게 자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깨달아집니까? 그런데, 이것은 그렇게 쉽게 알아지는 게 아니고 눈을 감고 많이 명상하고 해야 됩니다.
제가 엊저녁에 저녁 식사를 할 때에 어떤 학생이 하나 와 가지고서 테레비에 뭐이 나온다 해 테레비를 그래 좀 보자 합디다. 그러면 보라 이랬다 말이오.
보니까 마침 뭐이 나오는 게 아니라 기계 체조, 기계 체조가 나옵디다. 그 기계 체조가 나오는데 나는 밥 먹으면서 그걸 보고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보니까, 사람인데 나는 새 한가지라. 어떻게 날래고 하는 것이 꼭 새 모양으로 그렇게 날뛴다 그거야. 그런데, 그 사람을 보니까 일생 동안 노력을 해 가지고 그걸 했는데 제일 잘하는 사람을 보니까 이래 가지고서 공중으로 뛰어 가지고서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고 세 바퀴 도는 사람이 제일 일등이라. 그게 보니까 제일, 만점이 데요. 두 바퀴는 도는데 세 바퀴 도는 사람은 없어, 보니까, 고 하나밖에는 없어. 세 바퀴라. 이래 가지고 한번 내려와 가지고 뚝 돌고 또 돌고 돌고 세 바퀴 도는 그게 일등이라, 보니까. 일등인데 그래 도는 것은 하나밖에 없고 옆으로 도르르르 요래 감기면서 세 바퀴 도는 것은 다 한다 그말이오.
하는데, 그래 내가 그걸 보면서 ‘저것이 어데서 나왔느냐?’ 그것이 평생 동안, 그 사람은 또 그것만 하지 딴거는 못 해요. 딴거는 하지를 못해. 고걸 꼭 자기 전공한 거 하나만 하지. 이런데, 그것이 수없는 연습, 그게 벌써 국민학교 들어갈 때부터 연습해 가지고서 그것이 출마를 할라고 하니까 벌써 한 이십 세 되기까지, 벌써 한 칠팔 년, 팔구 년 그 연습만 전공을 해 가지고 그와같이 됐다.
그걸 보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고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금생과 내세에 약속함이 있어서 그 유익이 무한하다 하는 걸 말씀했기에 그걸 내가 보면서 그래 저것도 자꾸 연습하니까 됐는데 우리는 경건을 연습해야 되겠는데 이 연습이 없이, 연습이 없이 하루 종일 딴거 돌아다니다가 주님 한번 옳게 찾지도 못하고 이래 가지고 또 이야기 하고 테레비 보고 이라다가 밥 먹을 때 뭐 주님 감사합니다 해도 주님 보지도 못하고 그저 입에 발려서 이래 해 버리고 말고 그만 피곤해서 자다가 기도해 버리고 이러니까, 하루 종일 한 번도 못 만나지, 일 년 내내 못 만나는 사람 있지, 이러니, 이래 가지고서 무엇이, 이렇게 지극히 큰 어려운 일인데 이 일이 숙달이 되어지겠느냐? 이거 연습이 필요한데 참 연습을 못 했다.
이래서, 하나님의 두려우심도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이제,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인 것을 자꾸 생각하면서 ‘왜 두려우냐? 하나님은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두려우신 하나님이라.’ 두려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일 년만 계속해서 연습했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일은 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전능자는 날 지키신다. 전능자 나와 함께 하신다, 전능자는 나와 함께 하신다, 전능자는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을 일 년 동안만 매일 계속해서 했다고 하면은 전능자가 자기와 함께 하고 지키기 때문에 전능자가 지키는 자에게는, 해할 수 있는 그런 어떤 것이 온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거게 대해서 담대하지 놀라지를 안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거 경건을 연습해, 경건을 연습한다 말은 하나님 섬기는 것을 연습한다 그말입니다. 이 연습이 없이 이래 가지고 되겠나? 놀고 먹을라 하는 거라. 그 사람도 거게서 그런 거 하나 장기 보일라 하니까 그뭐 딴거 하는데 보니까 그 사람을 내가 보니 가만히 보니 조게 조 사람이다 는데 그거는 항상 나오면 그것만 하지 딴거는 못 합니다. 항상 그것만 해요. 딴거는 하지 못해. 그거 하나 할라고 일생 동안 연습을 해 가지고서 그와같이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 섬기는 일을 연습하지 안하고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 너무 우리는 참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공 먹을라고 하니까 그게 되어집니까? 배우면 금방 잊어 버려 버리지, 씨 뿌리는 비유에 보니까 돌짝밭에 뿌린 씨는 그 씨가 먹을라 하니까 돌이 다 방해해서 못 먹어 버렸고, 길가 바닥에 씨 뿌린 거는 그 씨가 그 양분을 흡수할라 하니까 땅이 딴딴해서 새들이 주 먹으니까 먹어 보지 못 해 버렸고, 덤불 밑에 뿌린 씨는 그 양분을 빨아 먹을라 하니까 덤불이 다 빨아 먹어서 먹지 못했고, 옥토에 뿌린 씨는 아무 방해 받지 안하고서 그 종자가 다 빨아 먹을 것 아닙니까? 다 빨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배웠는데 이 말씀이 내 마음 다 먹었고 내 정신 다 먹었고 내 생각 다 먹었고 내 시간 다 먹었고 내 성질 다 먹었고 하루 종일 전부 이 말씀이 내라는 전부 작용의, 인격 작용을 싹 다 먹었으니까 그 말씀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요 새사람으로 살 때에 네 현실 생활에서 심신의 기능이 영생하고 옛사람으로 살 때에 그 네 심신의 기능은 다시 만나보지 못하도록 이를 갈며 슬피 울도록 완전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탄다. 네 눈의 기능, 마음의 기능, 성질의 기능, 총명의 기능, 수족의 기능, 이 모든 정신의 기능, 지식의 기능, 이 모든 기능 이 기능이 우리 현실에서 영생이냐 영멸이냐 하는 요것이 있는 것을 그냥 훌떡 지나가니까 안 돼. 미친 사람 모양으로라도, ‘현실에 내 기능은 영멸이 되든지 영생이 된다.
영멸이든지 영생이 된다. 현실에서 내 기능은 영멸이든지 영생이 된다.’ 이걸 아마 열흘 동안만 자꾸 그렇게 말했으면은 이제 그것이 우리 속에 배어 가지고 ‘현실에 내가 이거는 내 기능을 죽이는 것이다. 이기는 내 기능을 살리는 것이다.’ 알 터인데 한 열흘이나 한달만 해도 될 터인데 이렇게 어려운 일을, 그 썩은 육체의 연습 그것도 그렇게 십여 년을 두 서너 가지를 공을 들이는데 우리는 이렇게 지극히 큰 일을 이것을 너무 우리가 연습하지 안하고 공들이지 안하고 자꾸 복습하지 안하고, 자꾸 실습해서 또 해 보고 또 해 보고, 해 봐야 되는데 이거 도무지 경건을 연습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안 된다는 거, 우리가 이거 느낍시다.
그다음에, 깨어 있어라. 깨어 있으면은 네가 네 소유를 하나도 도적 맞지 안한다.
깨어 있으면 도적 맞지 안한다. 이 깨어 있는 게 뭐입니까? 깨어 있으면 도적 맞지 안해. 깨어 있는 게 뭐이냐? 어떤 게 깨어 있는 것입니까 어떤 게 깨어 있는 거요? 새사람으로 사는 게 깨어 있다고, 여러분들이 이걸 들어서 아는 것이 귀가 복이 있고 여러분들이 복이 있습니다. 다 아는 것 아니오. 다 아는 게 아니라, 깨어 있다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사는 게 뭐입니까? 중생된 영과 내 마음과 내 고기덩어리와 이 셋이 합해서 셋에게 피동되는 생활 이것이 이제 새사람의 생활입니다. 중생된 영과 우리 마음과 우리 고기덩어리가 셋이 삼합되는 거, 이게 이제 새사람이오.
새사람인데 이 새사람은 어데 따라서 움직여 삽니까? 이 새사람은 무슨 힘으로 움직이요? 저 ○선생? 이 새사람은 무슨 힘으로 움직입니까? 이 새사람은 무슨 힘으로 움직여 살고 있습니까? 새사람은, 우리가 뭘로 중생 됐어요? 우리가 무슨 힘으로 살아났지요? 몇 가지로 살아났어요? 우리가 몇 가지 힘으로 살아났습니까? 세 가지.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는 뭐입니까? 예수님의 피공로, 또 하나는 뭐입니까? 영감, 하나는 뭐입니까? 진리 이 셋의 힘은 영원한 힘이요 전능의 힘입니다. 이 힘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요걸 믿어야 됩니다. 이 힘으로 살아났소. 이 힘으로 살아났는데 우리가 전능의 영감으로 살아났고 진리로 살아났고, 진리도 전능이요 영감도 전능이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우리에게 관한 것 금생 내생 영원 무궁의 모든 것을 완성해 놓은 이 공로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이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새사람은 뭐인가? 새사람은 중생된 영과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셋이 합작돼 가지고서 이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살 때에 그 기능은 다 영생이 되어졌고 이렇게 살 때에 그의 소유는 하나도 불타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세 가지 힘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힘으로 이 셋이 단합해 가지고서 사는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의 행동한 것은 하나도 불타지 안하고 그 사람에게 관련된 모든 소유물은 하나도 불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웃음도 불타지 안하고, 그 사람의 말한 것도 불타지 안하고, 그 사람의 금전 거래도 불타지 안하고, 그 사람이 돈쓴 것도 불타지 안하고, 그 사람의 뭐 하는 거, 돈 쓴 것도 하나도 불타지 않습니다. 하나도 없어지지 않소.
새사람으로 살면 저에게 온갖 소유, 지식의 소유도 있고 총명의 소유도 있고 물질의 소유도 있고 지위의 소유도 있고 권세의 소유도 있고 오만 소유 있는데 그 소유가 하나도 도적 맞지않는다. 그 소유는 영원히 저의 것이 된다. 도적 맞지 않는다.
어떻게 살면? 새사람으로 살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무슨 힘으로 사는데? 새사람이 몇 가지 힘으로 사는 것이 새사람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세 가지 힘으로 사는 것이 새사람이라. 세 가지 힘으로 사는데 몇이 단합해 가지고서 사는 것이 새사람의 생활입니까? 셋. 마음꿀 畢桂 영, 영뀀 몸, 이 세 가지가 합해 가지고서 사는 고 시간 사는 것은 고 시간에 해당된 모든 소유는 다 그것은 영원한 자기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 때문에 내 소유도 현실에서 영원한 것 만들고 내 기능도 영원한 것 만들고, 고다음에 또 뭘 말했습니까?
‘깨어 있어 자기가 맡은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주인은 예수님을 말한 것 아닙니까?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종이 복이 있도다’ 때를 따라서 양식 나눠 줄 자,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주는 자가 누구입니까? 깨어 있다고 말하지 안했습니까?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준다는 말은 내 현실 현실마다 나 아닌 이웃 사람에게 배불리 먹여서 그 사람을 강건하게 하고 그 사람을 장성하게 하는 것이 때 따라 양식 먹여 주는 것인데 때 따라 양식을 먹여 준다는 그 양식 먹여 주는 것은 이제 고기덩어리의 사람입니까, 무슨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까? 새사람을 말합니다. 새사람, 영, 마음, 고기덩어리가 하나되어 있는 그 사람을 배불리고 그 사람을 살찌우고 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서 그 사람을 유익되게 한 사람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 사람을 무궁세계에서 하나님이 등용하십니다.
그러면, 이웃에게 양식을 나눠 주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웃 사람에게 양식 나눠 줄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은 그 사람의 마음이 더 천국의 마음이 되고, 그 사람의 고기덩어리가 더 의로운 고기덩어리가 되고, 그 사람의 영이 더 복 있는 영이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의 영 a음꿀 畢桂 a 이 셋이 먹고 배부르고 힘이 더, 배불러서 힘이 있으니까 이 힘 있는 거는 고기덩어리 힘을 말합니까, 이것이 고기덩어리 힘이 힘 있는 걸 말합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의 힘 있는 그 힘을 말합니까, 무슨 힘을 말합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의 힘 이것이 새사람의 힘입니다. 이게 새사람의 힘이요. 영생하는 힘이요, 이건 썩어지고 없어질 고기덩어리의 혈육의 힘 아닙니다. 이제 이 사람에게 양식을 나눠 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그 새사람이 힘이 나고 강건해져서 새사람이 새사람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말이오. 그 새사람이 새사람으로 사는 힘 얻었으니까 배부르니 힘 얻었소. 그 사람이 장성해서 더 힘이 세게 됐다 말이오.
그것이 그와같이 되니, 이렇게 새사람을,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준다 말은 기회 기회 만날 때마다, 기회 기회마다 그에게 유익을 줘서 살린다는 걸 말하는 것이니까 이제,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주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때를 따라 양식 나눠 주는 사람 되겠습니까? 도덕가가 돼야 되겠습니까. 사회 개량주의자가 돼야 되겠습니까, 박애주의자가 돼야 되겠습니까, 이십세기의 문화 건설자가 돼야 되겠습니까, 뭐입니까? 어떻게 하면은 자기에게 해당되었을 때에 그 사람에게 양식을 줘서 그 사람이 배부르고 강건하게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습니까? 거게본문에 뭐라고 했습니까? 깨어 있으면 그렇게 한다 했습니다. 깨어 있으면.
깨어 있는 게 뭐라고 했지요? 새사람으로 사는 거, 새사람으로 사는 거, 내가 중생된 영과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하나돼 가지고서 나를 살려 준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의 힘으로 내가 사니까 내가 새사람 생활을 하니까 그것이 보고 듣고 접촉하는 자에게 전부 양식을 먹여 주는 게 돼서 그 사람의 새사람을 강건하게도 하고 새롭게 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새사람으로 살면 땅 위에서 사람 대우 중에는 새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더 좋은 대우가 없다. 이웃에게 대해서 제일 선한 일이 뭐이며, 이웃에게 대해서 제일 의로운 일, 선한 일, 사랑의 일, 이웃을 돕는 일 중에 제일 이웃을 효력 있게 잘 돕는 그 방편은 무엇입니까? 그 방편은 무엇이오? 뭐이요? 이름이? 대답해 봐. 그래 새사람으로 사는 것, 여러분들이, 이러기에 천하 사람들에게 누가 제일 그 모든 사람에게 선을 많이 행했으며 봉사를 많이 했으며 그 사람을 많이 위했으며 사랑을 많이 했느냐? 내가 자신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이웃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내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이게 사람을 제일 대우한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산 사람이 주인이 올 때에 복이 있도다. 무슨 복이 있어?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시리라.’ 주인은 주님이신데 그 소유를 맡긴다는 그 소유는 땅에 있는 소유를 말합니까 무궁세계의 소유를 말합니까? 무궁세계의 소유가 주체요, 땅의 소유도 다 거기 따라 가는 것이오. 땅의 소유도 자기네들이 이것은 내 영토라고 하는 그거 아니오. 그거 외에 소유권이 따로 있습니다. 소유권도 따로 있어. 어떤 자는, 어떤 자는 통장에 넣고 제것이라 하고, 어떤 자는 법원에다 등록해 놓고 제것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사상으로써 점령해서 제것이라 하고,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민주주의보다 좀 하나 앞선 거 있는 것은 뭐이 앞선 것이냐? 그분들은, 그분들은 이 국경을 가지고서 점령할라고 하지 않습니다.
국경을 가지고 점령할라 하지 안하고 사상을 가지고서 ‘국경이야 관계 없다.’ 냅두고 사상을 점령할라고서 하는 그것이 공산주의의 근본의 정신인데 김일성이 저런 거는 등신입니다. 등신이요, 저거는 저거는 국경을 가지고 점령할라고 하기 때문에 헛일이라 말이오. 국경이야 어데로 갔든지 이 공산주의의 사상으로 점령할라 하는 그것이 마르크스 레닌의 사상인데 그걸 지금 이게 속화돼 가지고서 그 국경을 가지고 날뛰고 있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소련에는 약간 우리야 국경보다도 우리 사회주의 이것만 달성하면 돼진다. 이러나, 중국도 이 순전히 영토주의고 육덩이주의지 그거는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북 저거는 착취주의지 아무것도 아니고, 민주주의는, 민주 정치, 인간의 종다수 가결로 해 가지고서 하는 인간의 자유 의사를 인정해서 자유 의사를 인정하는 이 자유주의, 자유 의사를 인정하는 이것을 가지고 점령할라고서 하기 때문에, 뭐 이 나라도 저 나라도 좋다, 약소국도 좋다, 우리가 다 도와 줄께 어짜든지 민주주의로 이 사상으로 하나 되자 이렇게 그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민주주의 그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토와 국경을 약간 발 바탕을 삼고 있기 때문에 그게 더딘데 기독교는 그게 아니라 국경이 없다 말은 기독교는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없다.
예수의 피와 성령과 진리만 믿으라. 뭐 무슨 민족이라도 믿으면 다 되고, 뭐 내게 대해서 뺨을 쳐도 믿으면 되고 죽여도 믿으면 되고 어짜든지 피와 성령과 진리로만 하나되자 하는 이것을 하기 때문에 힘이 제일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기독교하고 접촉을 하면은 박살을 당해 버립니다. 그까짓 거는 삼켜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소유권도 다 다른 것인데, 이제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면, 첫째 무궁 세계에 하나님께서 목적 정하시기를 당신과 꼭 같은 실력가를 만들어 가지고 모든 것을 위임 통치하기로 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몸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머리가 계획하는 것을 누가 합니까? 머리가 계획하는 것을, 머리가 ‘오늘 나는 지금 대신동 가고 싶다’ 하면은 누가 갑니까? 발로 떠벅떠벅 걸어가지 않습니까? 머리가 하는 것을 그 발이 그대로 성취하지 않습니까, 손이 성취하지 않겠습니까? 이와같이 이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존재로서 그분이 모든 걸 예정하시고 계획하셨는데, 하는 그것을 받아서 성도들이 그대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전개시켜서 다 실현시키는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기에, 무궁세계에 하나님께서 영원 무궁세계의 모든 것을 누구에게 맡길 것입니까? 누구에게 맡길 것입니까? 누구에게 맡깁니까? 새사람에게 맡깁니다.
새사람에게 맡기는데 어떤 사람은 영뿐이지 심신의 기능은 하나도 없어. 부활은 하기는 했지마는 부활은 하기는 했지마는 몸은 뚱뚱해도 힘이 없소. 이게 또 나도 육체의 몸은 어북 뚱뚱하이 이래 어북 좀 크지마는 요 조그만한 꼬마, 저 양산동 가 보니까 고게 한 여섯 살이나 먹었는가, 여섯살 먹는데 조까짓 거 내가 못 당할까 싶어서 ‘그래, 같이 가자.’ ‘예, 같이 갑시다.' 아, 뽈뽈뽈 달아나는데 도무지 따라가지를 못하겠어. 힘이 없으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하면 심신의 기능은 없고, 영은 심신을 지배할 기능이 없고 이래 놓으니까 그거는 하나님의 사명을 맡길래야 맡길 수가 없어.
이러니까 땅 위에서 새사람으로 산 이 사람의 실력은 영원 무궁세계에 실력이라.
땅 위에 새사람으로 사는 이 실력이 영원 무궁세계에 모든 것을 상속받을 자고 하나님을 대행할 그 실력이라 하는 것을 여게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다음에, 때린다. 때리는 것은 이것은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도록 새사람으로 사는 것을 해치는 사람은 주님의 복수가 큽니다. 여러분들이 공연히, 그러면 죽으십시오. 죽는 게 낫습니다. 죽는 게 더 낫습니다. 그래서, 연자맷돌을 목에다 달고 바다에 빠져 자살하는 게 낫다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람 구원할라고 그 사람을 중생된 영과 심신이 하나돼 가지고서, 피공로의 힘으로, 영감의 힘으로 진리의 힘으로 살아난 그 사람이 그대로 살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있는데 가서 만나면 소곤소곤해 가지고서 그 사람의 그 믿음을 확 없애 버리고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옛사람으로 살도록 완전히 믿음을 주 흔들어 버리고 요래 놓고, 만나면 그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네 저주가 얼마나 크겠느냐! 네가 견디겠느냐! 견뎌봐라, 보자! 어데라고! 어데라로 이런 행위를 합니까! 죽으십시오.
자살해 죽으십시오. 그렇게 안하면 밥 먹을 수 없으면 죽으십시오. 자살해 죽으십시오. 그 죽는 게 낫습니다.
어떻게 사람을 만나면 이래 가지고서, 그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중생된 새사람을 절단을 내고 ‘주객으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 주객으로 먹고 마시는 것는 뭐이요? 세상주의를 저도 할 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세상주의의 사람으로 변질시키고 타락시킵니다. 그 자는 죽어야 됩니다! 그 자는 죽여야 됩니다! 하나님의 원수요! 로마서에 그런 자는 죽여 버려라 이랬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런 자를 자기에게서 죽이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이것을 죽이면 삽니다. 이것을 안 죽이고 제가 살면 십 년 살았으면 십 년 산 게 저 망쳤고, 오십 년 살았으면 오십 년 살아서 오십 년 산 게 저 망쳤고, 이놈을 죽여야 됩니다.
하나님이 죽여야 될 때에, 자기가 자기 육을 죽이지 누가 죽이겠습니까? 다른 이는 죽이지 못합니다. 다른 이가 죽이면, 죽일라고 해 주지 않습니다. 뭐할라고 죽일라고 하느냐? 도야지에게 진주 던지면 밟고 물러 오는데 할 게 뭐 있습니까? 제가 안 죽이면 하나님의 사랑이 죽이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죽이면은 모든 생활을 헛되게 하고 차차차차 갈수록이 마릅니다. 스무살 먹을 때보다 서른 살 먹을 때가 비참해지고 서른 살 먹을 때보다 사십 살 먹으면 비참해지고 사십 살 먹을 때보다 오십 살 먹으면 비참해지고 이런 저런 모든 면으로 비참해져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이제 모든 가장 불쌍한 자가 돼 가지고서 이것으로서 악을 행했으면 고놈을 꺾어 버리고, 저것으로서 악을 행했으면 그걸 꺾어 가지고서 비참한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주객으로 더불어 술 취한다 말은 이 세상주의를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 세상주의로 가리켜 말합니다. 이런 것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을 자꾸 음행의 포도주를 먹여 가지고서 정신 없이 만들어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새사람을 손해 보이고 하는 이런 사람의 그 심신의 기능은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우리가, 사람이, 영이 없어도 사람입니다. 영도 인격 존재요 마음도 인격 존재요 고기덩어리도 인격 존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의 인격은 심신의 그 인격입니다. 믿는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 이 셋이 합해야 새사람의 인격이 됩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간다 하는 것은 자기가 현실에서 새사람으로 살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심신의 기능이 그게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놓으니까,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 놓으니 그 사람이 고기덩어리 형체는 하늘나라 갔지마는 기능은 전부 지옥에 있다 말이오. 기능이 지옥에 가 있는데, 그 사람의 반이 지옥 가 가지고 있으면은 이를 갈고 뛸수 있겠소 없겠소? 그 사람의 반 기능이 갔으면은 그렇게 이를 갈고 뛰고 막 안 죽을라고 퍼뜩거릴 수 있겠소 없겠소? 있습니다.
십분지 일만 가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은 구원 얻어서 하늘나라 가 있지마는 그 영 제가 잘못해 가지고 그와같이 했었기 때문에 그 밑에 지옥에 가서 이를 갈며 있으니까 위에 있는, 제 지체가 지옥 가서 이 갈고 있는데 하늘나라 갔다고 그 영이 좋을 리가 있습니까 기쁠 리가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그랬어.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이라 말은 부끄럽고 뜨겁고 미안하고 원통하고 죄송스러워서 견디지 못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새사람으로 살면 심신의 기능이 다 영생이 되어지고 새사람으로 살면 자기와 관련된 자기의 소유는 다 영원한 자기의 소유가 되어지고 새사람으로 살면 모든 사람 봉사하는 중에 이보다 더 제일 큰 봉사가 없어. 하나님이 보고 ‘잘한다’ 할 수 있는 제일 큰 봉사가 없지, 또 새사람으로 살면 하늘나라에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에게 맡겨서 그는 모든 피조물에게 봉사자, 하나님의 것으로 모든 피조물에게 시은자, 제것은 없으면서 하나님 것 받아 가지고 시은을 베푸는 시은의 기관으로서 이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새사람으로 사는 게 중요한데 이제 간단하게 새사람으로 사는 것을 지금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면 어떻게 하면 새사람으로 살아지느냐? 우리는 제일 알맹이가 예수님의 피공로요, 피요, 고다음에는 성령이요, 그다음에는 진리입니다. 진리의 껍데기는 뭐입니까? 진리의 외형이 뭐입니까? 진리의 외형은 말씀입니다. 말씀의 외형은 뭐입니까? 말씀의 외형은 성경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라고 이 성경 말씀대로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성경 말씀대로 살고 싶을 때 그때가 뭐이냐 하면은 중생된 영하고 성령님하고 둘이 내 마음을 달개고 자꾸 쓰다듬고 자꾸 이래 타일러 가지고서 어짜든지 ‘진리로 살아라’ 내가 진리로 살고 싶어 ‘하나님의 뜻대로 좀 살아봐야 되겠다.' 그때에 그것이 내 마음 단독 마음 아닙니다. 단독 마음 아니오. 내 고기덩어리의 단독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이 그 속에 누가 지금 역할하고 있습니까? 중생된 영, 그 속에는 누가 역할하고 있습니까? 진리, 그 속에는 누가 역할하고 있습니까? 성령, 그 속에는 뭐이 역할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공로.
이래 가지고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 그것이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해 준다.’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함께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하나님의 자녀대로 살아라’ 이렇게 증거해 주는 그 증거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내 심신이 살려고 하는 그것이 내 단독 행위입니까 내 영과 성령과 진리에게 순종행위입니까? 순종 행위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 행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뭐 새사람으로 사는 게 별 게 아니오.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 그저 현실에서 ‘나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좀 살아봐야 되겠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봐야 되겠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도 ‘그래도, 내가 살아봐야 되겠다.’ 성경 말씀대로 살라고 애를 써서 성경 말씀대로 살고 보면 내 심령이 밝아 집니까 어두워집니까? 밝아집니다. 심령이 밝아져. 밝아지는 그것이 영감을 만난 것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살라고 하므로서 내 심령이 밝아지는 것이, 진리가 나를 성령에게 소개시켜서 성령하고 접선을 시켰습니다. 접선을 시켰습니다.
또, 자기가 마음이 밝아진 거기에서 또 말씀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쓰다가 보면은, 진리대로 살고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쓰게 되면은 영감대로 진리대로 살라고 애를 쓰는 그 생활이 뭐이 되겠습니까? 그 생활이 뭘하는 것입니까? 영감을 만나 가지고서 내 심령이 밝아져서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살라고 보면, 성신의 감화를 받아서 기도하면 처음에 가 가지고서는 ‘주님이여, 내가 이 돈도 필요하고 이것도 필요하고 이것도 필요합니다. 아무것이 그 사람이 괘씸하니까 어쨌든간에 내가 그 원수를, 원한을 갚아 주옵소서.’ 이래 쌓지마는 성신의 감화와 조금 접촉을 해 가지고 가깝게 되면은 그거는 다 간 곳이 없고 ‘주님이 나 위해서 대속해 주셨으니 주여 이제는 내가 죽어도 죄짓지 않는 자 되게 해 주옵소서. 내가 성신의 감화에 따라서 내가 의롭게 살게 해 주옵소서.’ 진리와 성령이 누구를 소개하느냐? 예수님의 피를 소개합니다. 사죄를 소개하고 칭의를 소개해요.
이래 가지고 사죄와 칭의와 주님의 화친을 이렇게 소개하는 이 소개에 들어가면 이것도 저것도 다 없어지고 이제는 그런 가운데서 ‘아무래도 나는 이제는 참 죽든지 살든지 주님의 뜻대로 한번 살아봐야 되겠다.’ 또 그라니까 성경 말씀에 말하기를 너는 이제 네 힘으로 살라고 애를 쓰지 말고 내 전심 전력은, 전심 전력은 믿음 생활, 새사람 생활, 다시 말하면 진리 생활, 영감 생활,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생활, 예수님의 대속을 지금 우리가 입을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까 입었는데 입은 줄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입은 줄 알라고 지금 성령과 진리가 하는 것입니까? 새로 입혀 주는 것입니까? 뭐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지금 우리가 입는 것입니까 입은 것을 확실히 재인식을 시키는 것입니까? 재인식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입은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을 내가 입은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고 보면은 만사가 형통입니다.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이러면, 나중에 가서 나 할 일은 하나님이 뚜렷이 보이고, 나 할 것은 믿음 지키는 것, 모든 것 다 주님에게 맡겨 놓고 나 할 것은, 당신이 어떤 분인 것을 점점 아는 지식으로 자라가고, 당신을 확실히 믿는 확신하는 것으로 자라가고, 당신에게 모든 걸 맡겨 놓고 당신을 의지하고, 당신의 뜻에 예예로만 순종하는 것 이것만이 나 할 일이로구나 그러면 모든 걸 더해 준다 했고, 그러면 그래 하면 다른 일은 어째 하고? 처음에 믿음 없을 때 다른 거는 어째하고 이랬는데 척 성령이 와 가지고 자기가 새사람이 되고 보면은, 안 될 거 없습니다. 새사람이 되고 보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되고 보면은 자기에게 ‘직장에서 나를 감원을 할라 하는데 어찌 되노? 새사람되고 나면은 감원한다는 것이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걱정이 안 됩니다.
왜? 감원이, 제게 권리 있는 것이 아니고 대주재에게 권리 있는데 내가 대주재 보시기에 감원당할 만한 사람이 돼야 감원당하지 감원당하지 안할 사람이 되면 감원당하지 않는다. 이러니까 감원 안 당할 길이 환하게 보여져 환하게 보여져 가지고서 그 시간부터 회개해 가지고서 감원 안 당할 사람으로 삽니다. 안 당할 사람으로 살지마는 다른 사람이 압니까? 모르는데, 나는 나대로 그대로 사는데 하나님이 마음들을 감동시켜서 보는 사람마다, 감독이 누를 감원을 시킬까 이거 이래 심사하다 보니까 그놈 감원시켜야 되겠다. 하고서 조사하러 가 봤는데 가 보니까 이 사람 하는 것도 이상하고, 이 사람 마음도 당장 이상하게 돌아가 버립니다. 돌아가서 ‘이 사람을 감원해야 된다고 모두 다 이래 지적을 했는데 이 모두 다 이거 못된 사람들이 있구먼, 이 사람 감원하라 하는 거 보니까 이제 감원할 사람이 딴데 있구먼.’ 이래 가지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대해서 백프로 인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인간의 심리를 주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니까, 이제 자기 할 일과 주님 할 일을 따로 구별해 가지고서 이라게 되니까 자기 할 일은 믿음 지킬 것, 새사람으로 살 것, 모든 것은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요 생활해 나갈 때에 우리는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하시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것은 제가 저를 책임지고 날뛸라 하는 그것이 다 무거운 짐진 것이오. 수고는 제가 제 일을 할라고 애쓰는 그게 다 수고입니다. 그게 다 헛일입니다.
주님은, 내 멍에는 그렇지 않다. 주님의 멍에는 뭐요? 주님의 멍에는 모든 것 다 아버지에게 맡겨 놓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것만이 주님의 멍에입니다.
너희들은 내 멍에를 메라 하는 것은 주님 말한대로 꼬박꼬박 순종 요것만 해라.
내 짐은 가볍다. 짐은 가볍다. 짐은 뭐인데? 그 짐은 모든 것 다 주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 한 분 섬기는 그것만이 우리 짐이라. 할 일 없어. 우리 책임은 하나님 섬기는 것. 우리가 꼬박꼬박 메고 한 시간 한 시간 걸어갈 것은 주님의 명령 복종하는 것, 이러면 모든 것 다 당신이 해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 오늘 밤에는 아무래도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새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기쁩니다. 여러분들이 그래 다 새사람으로 산 때가 계속되는 사람도 있고 계속 안 되고 잠깐 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 말이오.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살아서 이리저리 양사방 돌아다녔다. 돌아다닌 그 과거의 흔적을 한번 반성해 보십시오. 반성해 보면은 새사람으로 산 그 시간이 한 토막이 있었든지 한 시간이 있었든지 순간이 있었든지 며칠이 있었든지 새사람으로 산 그것만이 가치 있고 그립고 그때가 그리워,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장소를 찾아 갑니다. 옛날 새사람으로 산 그 장소 있으면 그리워서 항상 사모하고 그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그말이오 그때 좋아서 뛰놀고 막 세력 부리고 뛰놀고 좋았는데 그것을 뒤에 반성해 생각해 볼 때에 후회돼. ‘내가 거게서 망했구나. 그것 때문에, 망했구나.’ 그게 날 망쳤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고, 자기에게 행복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사람이라는 것은 뭘로 행복이냐? 과거로 행복하고, 미래로 행복하고, 현재로 행복합니다. 과거가 사람들에게 근심 걱정 주는 것이 과거가 주는 것입니다. 현재가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또 미래가 고통을, 미래가 절망이니까, 이것도 해 봐도 마음에 희망이 없어. 이것도 해도 모두 해서 절망 가운데 빠지니까 중히 지옥이라 그말이오. 새사람으로 이래 사는 것은,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새사람으로 살면 과거가, 새사람으로 지금 당장 지금 살기를 시작해도 과거가 전부 희망이오. 과거가 자기에게 ‘내가 이래서 원통, 원통, 원통한 것이 새사람으로 딱 살기를 딱 작정하고 보니까 원통한 것이 변했어.
‘주여 감사합니다. 나를 알게 해 주시니 이제 과거 그것이 이렇기 때문에 이것이 나에게 현재 행복이 되고 승리가 되고’ 하는, 과거가 이것이 그 현재에 성공하는 좋은 재료가 됐기 때문에 이것을 사람들이 말하기를 실패가 성공의 거름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과거가 다 행복으로 변화돼 버립니다.
현재가 행복으로 변화됩니다. 미래가 행복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이 혹 이 산천 초목이라든지 이 사회라든지 직장이라든지 자기가 새사람으로 척 변화됐을 때에 보니까, 그렇게 미워서 원수가 가득찼는데 새사람으로 변화되고 보니까 다 귀하고 사랑스럽고, 저 사람하고는 이제 암만 해도 이 원수를 틔울 수 없다. 틔울 수 없는데 새사람이 딱 오고 보니까 못 틔우기는 뭘 못 틔워? 다 틔워져 있다 말이오. 다 틔워 있어. 못 할 일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새사람이 될 때에는 사람에 대해서 ‘저놈은 희망 없어.
저놈은 저거는 억만분의 일도 희망은 없어. 저거는 절대 안 돼.’ 이것이, 우리에게 새사람이 오지 안해서 옛사람이 됐을 때 그렇지 새사람이 되면은 희망 없는 사람 하나도 없어. 새사람이 됐을 때에 희망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희망 없는 사람 하나도 없고, 희망 없는 사건 하나도 없고, 희망 없는 미래가 하나도 없고, 행복된 현실 아닌 것이 하나도 없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새사람으로 사는 여기에 모두 행복이 다 들었습니다. 우리가 망하고 실패하는 것은 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그놈으로, 전부 분석을 하면은 ‘네가 요 고통도 네 중심, 네 위주에서 고통이 나왔다.’ 악으로 전부 고통 다 나왔습니다.
그런고로, 이제, 한 자리에서 같은 사람이나 그 기능이 영생과 영멸이 되어진다 새사람과 옛사람이 사는 여게서 되어진다. 자기가 어떤 모든 소유 그것을 영원히 자기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완전히, 자기가 가지고 내것이라고 해도 하나도 털끝만치도 제것은 하나도 없는 다 뺏기는 자가 될 수 있다. 새사람과 옛사람으로 사는 데서 이것이 되어진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데도 있는 걸 다 팔아 주고서 목숨까지 다 바쳐 준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모든 사람에게 구석구석에 하나도 빈틈이 없이 가득가득찬 봉사와 사랑을 다 주는 것이 되어진다.
그러면, 새사람으로 살면 무궁세계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은 그에게 다 위임 해 가지고 통치하게 된다. 우리가 이 새사람으로 살지 안하면 잘못하면 새사람을 때려서 신앙의 사람을 꺼꿀트려서 절단내고, 사람 만들어 볼라 하면 고게 와 가지고 속삭속삭 해 가지고 고만 버려 버리요. 범죄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지마는 화를 받으리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고, 우리가 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은 그런 모든 소망과 사상을 가지고 이라니까 그만 예수 믿는 사람을 완전히 변질시키고 변화시켜 버립니다. 그것이 주객으로 더불어 마시고 때리고 하는 행동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