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분설-심신의 기능구원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8일 화후집회 

 

본문 : 마가복음 10장 20절∼31절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라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이 성구를 보고 사람들이 잘못 깨달아서 오해를 가지기 쉽습니다. '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가난해야 구원을 이루지 부자로서는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예수교라, 그러면 예수교는 다 가난한 도요 부요층의 도는 아니라.' 그렇게  생각들을 가지기 쉽습니다.

 이 부자가 예수님에게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럴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성경에서 어떻게 읽었느냐?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이 계명들이 있지  않느냐? 그 계명들을 지키라고 성경에 말씀하지 안했느냐?'이러니까 대답하기를  '예. 이것은 어려서부터 잘 지켜 나왔습니다.' 이럴 때에 주님이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왔다고 하니까 주님이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시면서 그에게 말하기를 '그러나 네기에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 부족한  것이 있으니 이것을 네가 고치고 나를 좇으면, 나를 따라오면 영생을 이루어  가게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그 부자는 마음에 '하나 부족한 것이 있어?  뭐 그것이야 고치면 되지 뭐 못 고칠 것이 뭐 있으며 안될게 뭐 있는가? 하나  부족한 것 있으면 그것을 고쳐서 이제 주님을 따라서 무엇을 이루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주님이 막상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에게다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너에게 오히려 하나 부족한 것 있는 것 하나 있는데, 그것을 처리를 해야  된다. 네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이렇게 살았으니 참 귀하다.'  하시면서 아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면서 '그러나 네기에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네, 한 가지 부족한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영생을 얻을라고 하는 이 영생이라는 것은 중생이 영생 아니고 영생은  건설구원에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영이 성령과 진리로 주님의 부활하신 그  구속을 입은 자들은 다 중생됩니다. 영이 주님의 구속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을 입은 영은 진리와 성령에 움직이면 영생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과 육으로 이래 되어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영이 주님의  공로로 구속함을 입고 성령과 진리로 인해서 다시 살리움을 받았습니다.

받았으면 그 영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생명으로 중생됐느냐? 물론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을 했습니다. 영생하는 생명으로 영은 중생을 했지만 중생된  자에게 영생을 이루도록 하려는 이 영생은 다 건설구원에 속한 심신 기능의  영생인 것입니다. 심신 기능의 영생.

 영이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을 한 사람에게도 심신의 기능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도 있고, 그 현실에서 그 기능이 영생하는 기능으로 영생을 받아서  영생하는 기능이 될 수도 있고, 또 둘째 사망 곧 영멸을 받는 그런 기능으로도  자기 현실 현실에서 이루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영이 중생한 것도 모든 이런 법칙을 다  밟아 가지고, 순서를 밟아 가지고 중생했지 이 법칙을 밟기 전에는 중생을 못  하는 것입니다.

 영의 중생에 대해서 잠깐 말씀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사람을 이분설로 말 하는  것도 다 정통으로 인정을 일반 교계에서 해 주고 또 삼분설로 말하는 것도 일반  교계에서 정통으로 인정을 해 줍니다. 삼분설로 말하는 것은 영. 혼. 몸,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사람들은 세 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 사람이라 해서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영, 혼, 몸, 이래 세 가지로 나 눌 수 있다 해서 삼분설을  주장 하고, 또 이분설을 주장하는 교리는 영 육 이래서 영과 육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람이라 해서 이분설을 주장을 하고 그렇게 합니다.

 삼분설도 성경이 인정하는 삼분설이요 이분설도 성경이 인정하는 이분설이기  때문에 정죄를 피차는 못 하지만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속에 그 암투는 늘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는 말씀하신 대로 고만  진리가 허물어져 가지고 있는 그런 시대나 또 그런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뭐  삼분설이면 어떠며 이분설이면 어떠며 또 사분설이면 어떠며 또 오분설이면  어떠냐?' 거기에 대해서 별 시비 할 만한 그런 가치를 느끼지 안하기 때문에  '이러나 저러나 그것 가지고서 그렇게 논쟁할게 뭐 있는가?' 해서 상관없이 있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성경대로 바로 믿어서 '하나가 틀리면 그 다음에는  수랄은 것이 틀려 진다.' 우리가 지남침은 그 중에서 남북을 가리키는 것인데  거기에서 조금 틀린 것이 멀리 가면 갈수록 참 한 푼 틀린 것이 뒤에 가서는  천리도 만 리도 틀릴 수가 있는 그만침 갈수록 많이 틀려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고쳐서 자기가 인식하고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구별을 버리지 안한 거룩을 가지는 사람들이라'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 지난 시간에 언제 한번 퍼뜩 말하기를 삼분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분설을 똑똑히 이해를 하여야 되고 이분설에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이고, 또  이분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삼분설에 관심을 가져야 되지 그것을 가지지 안하면  다 실수하기 쉽다 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분설을 말하는 것은  영. 물 이 두 가지를 나누어 가지고서, 영물과 물질의 것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분설을 말했으면 그것이 좋은데 잘못하면 삼분설을 무시하고 이래서 '사람은  영혼과 몸이 두 가지라. 그라면 영혼은 뭐 이 영혼인가? 마음이 영혼이요 또  몸은 몸이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 한 가지를 이렇게 저렇게 표현한  것이지 그것은 하나이라.' 이렇게들 생각해 가지고서 만일 이분설을 주장한다면  그 이분설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삼분설을 말하는 사람들도 이분설에 대해서 자기네들이 연구해야 될 그런  점이 있다고 그걸 무시하면 또 실수하기 쉽다 그 말은 사람이 영.혼.몸 이 세  가지로 성경에 분류했지만 혼과 몸은 물질에 속한 것이요 영은 영물에 속한  것으로서 그렇게 영의 것과 물질의 것 둘로 나눌라고 할 때에는 사람은  이분설이라야 맞고, 또 그것을 영물과 물질과 그거를 상관하지 안하고 사람의 그  요소가 몇 가지냐 하는 것만을 말할 때에는 삼분설이 맞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혹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아니한다. 그러기 때문에,  범죄하지 안하니까 중생된 영은 다시는 죽지 아니한다.' 하는 이 말에 대해서,  이 교리에 대해서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안했기 때문에 예사롭게 여겨서 누가 퍼뜩 말하니까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할 때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요 또 자기가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자기가 많는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아! 그런 것 같다.'  하고서 그대로 인정을 하기 쉽지만 자기가 좋아하지 안하는 무슨 상대든지.

인정하지 않는 상대든지, 자기와 무슨 대립이 되어 있는 무슨 사람이든지, 딿지  않는 그런 사람이 주장을 할 때에는 사람이라는 것은 '무조건 틀렸으면 좋겠다.'  하는 고런 마음을 가집니다. '그 주장하는 것이 틀려서 수치를 당했으면 좋겠다.

틀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틀린 것이 없으니 어쩔 수는 없지만  반갑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원죄성, 원죄성, 자기중심인 원죄성을 이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이놈을 원수로 삼아서 싸우지를 못하고 날마다 죽이지를 못하는 이런 것이 우리  연약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거기에 끌려서 고만 연구를 해 보지도 안하고  '틀렸다.' 이렇게 하는 말들이 일어나서 한창 좀 어지러워졌습니다. 또 어떠한  한 두 사람이 들어서 거기에 대해서 잘못 활동을 하면서 바람을 일으켜 가지고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잠깐 좀 어지러움을 받았습니다. 어지러움 받은 것은 이제  말한대로 자기 속에 자기중심인 내편 네편 내것 네것 하는 자기중심이라는  이것으로 인해서 그런 그 실수가 된 것도 있고 또 잘못 들어서 그렇게 된 것도  있습니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영이 중생된 것은  단번이고 중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된 사람은 얼마든지 범죄할 수가  있습니다. 또 중생된 영혼도 얼마든지 범죄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 그것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고만 듣기를 잘못 듣고 잘못 전해 가지고서 그와 같은 문제가  일어났던 것이고, 그래서 그저 잘못 들어 가지고 그런 것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알기를 이분설 삼분설 또 영계에 속한 것 물질계에 속한 것  이것을 구별을 하지 못해서 그렇게 혼란을 일으킨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생된 사람이 범죄한다는 것은 자타가 다 인정할 수 있도록 범죄를  하는 것을 우리가 다 당면하고 자기가 중생됐다고 죄짓지 않는다는 말하지  못하고 그래 '중생된 후에도 죄를 짓는다.' 그것은 다 인정을 하는데, '그러면,  중생을 하고 난 다음에 자기가 범죄한 그 범죄는 어떻게 되느냐? 그 범죄는 비록  몸이 범죄하고 그 마음이 범죄했다 할지라도 그 마음과 몸의 주인은 누군고 하니  영이 주격인데 그 주격 워치의 주격 책임에서, 중생된 사람이 마음과 몸으로  범죄하는 그것은 중생된 영이 주격 위치에서 책임을 져야 되지 않느냐? 책임을  지면 그 영이 범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면, 범죄한 영은 죽어야 되는  것이니까 이제, 범죄한 영은 죽어야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죽는다.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죽는다. 범죄하면 죽는다. 이러니까, 중생된 영이 죽는다 하는 문제에  가고 보니까 그거 좀 멈춤 하고서 그렇게 일사 천리로 주장할 수가 없고 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래 가지고서 머무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가지로 그래  됐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에 아무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가만히 둬 두니까  성령님께서 각자의 마음을 밝게 하셔서 그 문제에 매해서 '중생된 마음도,  중생한 사람의 마음도 범죄할 수 있고. 중생한 사람의 몸도 범죄할 수 있고,  중생된 영만은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아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범죄하면 중생된 영도 죽어야 되는 것이니까, 그러면, 중생된  영이 하루도 볼 때에 죄 안 짓는 날도 있지만 몇 번 죄를 지으니까 그러면  중생된 영은 하루도 여러 수십 번 죽었다가 살았다가 죽었다가 살았다가 그렇게  그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그렇게 자문 자답으로 생각할 때에 '이거 문제다.

이것을 쉽게 다뤄서 그렇게. 속단해서 말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래 가지고  멈추어 있는 사람들, 그래 가지고 지금은 거의가 '다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영은 범죄 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거의가 다 인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도 중생된 사람이 영은 범죄하지 안한다 할지라도 심신이  범죄하는 그 범죄는 중생된 영의 그 주격 책임에서 거기에 영향이 없느냐?  거기에 관련이 없느냐 하는 여기에 대해서 혹 해결을 짓지 못하고 의문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혹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영을 하나님이 중생 시키실 때에 중생은 죄보다 깨끗한 것이  무죄요 무죄보다 깨끗한 것이 의입니다. 이래서, 죄에서 무죄가 되어야 되고  무죄에서 의가 되어지고 그래야 이제 중생하는 이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어떤게 생명인고 하니 절대자이신 자존자이신 완전자이신  주원자이신 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가운데 아무 거리 낄게 없이 완전  그 영도 연결이 되어야, 연결이 되어야 비로소 생명이 오게 됩니다. 그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 한 분만 가진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에게서 생명이 와야  그것이 살아나는 것인데, 하나님에게서 생명이 오는 데에는 죄도 없어야 되고  의로워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영을 중생시키는 그 역사를 이루시기  전에 제일 처음 역사가 뭐인고 하니 그 영이 가지고 있는 이 혼과 몸, 마음과  몸,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자기의 이 심신의 육이 과거에 지은 죄도 그 영이  주격 책임에서 다 부담을 하고, 현재 짓고 있는 죄도 주격 책임에서 부담을 하고  있고. 미래에 지을 죄도 그 영이 주격 책임에서 그 죄를 짊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로 그 영이 가지고 있는 심신의 그 과거. 현재,  미래, 영원의 어디까지든지 범죄가 있는 그 범죄는 전부 그 영에게 단번에 다  책임을 지워서 정죄를 하고, 그 정죄한 것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사죄를 하고, 또 그에게 예수님의 공로를 입혀서, 이는 모든 율법의 온전을  이루고 만족을 이룬 예수님의 대속의 의를 그 영에게 입히고 난 다음에 그 영을  하나님으로 더불어 연결 가지는 이 중생의 영생하는 새생명을 가지게 된 것이  그것이 중생된 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된 영이 자기의 심신이 범죄하는 것은 책임을 지되 중생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담을 시키시고 거기에서 죄 문제를 대속으로 해결을  지우시고 의의 문제를 대속으로 해결을 지워서 단번 대속을 입혀 단번 정죄를  입히시고 단번에 사죄를 입히시고 단번에 칭의를 입히시고 단번에 중생시킨  영생을 가진 영으로서 그렇게 중생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은  중생 후에 그 마음과 몸이 범죄하는 것은 벌써 중생되기 전에 미래의 것을  당겨서 그것을 다 부담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해결을 짓고 난 다음에 중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 후 범죄하는 것은 이미 다 책임을 져서 정죄, 사죄, 칭의를  중생 전에 받은 것들이기 때문에 두 번 받을 수가 없는 것인 고로 그것은 주격  위치의 정죄는 받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신은 주격이 책임지는 것은 책임져서 다 해결이 되어졌지 만 그  심신에게 자체에게 부담되어 있는 것은 해결을 짓지 안했는데 그 자체에게  부담되어 있는 것을 해결 짓는 그 해결은 영과 같이 단번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고 중복적으로 수십차 수천 차례 수만 차례를 걸쳐서 심신의 그 중생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왜 그러면 영은 단번 중생을 했는데 심신은 단번 구속을 입어서  영생으로 중생하지를 못하느냐? 못하는 그 이유는 이 심신이라 하는 것은  단일체가 아니고, 단일체가 아니고 종합체입니다. 마치 몸에 요새 뭐 과학적으로  옛날은 그저 사람의 여러 지체 몇 가지 있는 것만 말했지만 서도 그렇게 사람이  손가락 하나에 그 세포라는 그런 분자가 뭐 수백인가 수천인가 나 또 그것  들었지만 또 잊어 버렸습니다. 손가락 한 개에 세포가 대개 몇 개나 된다  했지요? (아 그런 것 좀 목사님들 알고 있으면 좋아요. 과학 공부에, 아, 여기  ○○ 박사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손가락 한 개에 대강 얼마 됩니까? 한  스무나무 개 됩니까? 세포가 얼마 됩니까? 수억 개 돼? 저 의학 박사가 수억개  된답니다. 수억개) 그 세포가 수억 개나 된대요. 손가락 하나에 그래, 이것은  얼마 전에 발견이 됐어요. 됐는데, 이렇게 몸은 그러면 그 얼마나 많습니까?  또 마음은 그보다 더 신비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많으리라 우리가 추측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심신은 그렇게 복합체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단번이 될  수가 없고. 또 그것은 한 현실에는 그 현실에만 해당되는 요소들이 있고 그  현실에는 해당 안 되는 요소들도 있기 때문에 수많은 현실을 하나님이 주셔  가지고 이 현실에서는 이 심신의 기능을 부활시키고 또 저 현실에서는 저 심신의  기능을 부활시켜서 '이것이 죄의 병기가 의의 병기로 되어진다. 죄의 병기가  의의 도구가 되어진다. 이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젓으로 이렇게  변화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심신의 기능이 중생하는 것, 심신의 기능이 성화되는 것,  그것이 부활되는 것은 수많은 그 현실을 통해 가지고서 중복적으로 그렇게  구속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중생된 영들이 탄식하는 것은 자기의 그 심신의 기능을 부활을 시켜야  영원 무궁토록 부활했을 때에 그 기능을 자기가 자기의 것으로 가지고 사용할  수가 있지 만일 부활시키지 못한다면 그저는 영원히 자기가 빼앗겨야 되고  버리고 가야 되기 때문에 이 '중생된 영들이 탄식을 한다. 중생된 영들도 탄식을  한다. 중생된 우리들도, 처음 살아난 그 열매들도 탄식을 한다.' 그 탄식은  중생된 영들이 탄식하는 것인데 중생된 영들이 탄식한다는 그 탄식이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로마서 8장 몇절에 있습니까? 네. 23절에 있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신 주님도 이 현실에서 영원토록 당신의  수족같이 되어져, 영의 지체가 되어 가지고서 주님에게 수종되어 주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는 이 만물의 중보 역사를 할 수 있는 이 기능인데, 현실에  잘못되면 이것이 법적으로 주님의 구속을 입었지만 현실에서 입은 구속을 벗지만  안하면 되는데 이 입은 구속을 제가 현실에서 '나는 이 구속을 입지 않겠다.'  하고서 그 심신의 기능이 벗어서 현실에서는 순전히 하나님 의지하는 것  바라보는 것 복종하는 것 다 버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현실로  살과 보니까 주님의 구속을 입혀 줬으나 구속을 벗어 던져 버렸다 이거요. 던져  버리니까 그 현실에서는 그 심신의 죽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려고 하면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네게 주리라.' 하는 것은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네게  주겠다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네게 주겠다 했는데 생명이 승리하는 그 생명은  무슨 생명입니까? (○○○조사님, 무슨 생명입니까? 그거는 말 아니야 당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어. 누구의 생명이지? 심신의 생명이라? 자, 맞았소? 응?  아직 뭐 살아나도 안 했는데 살아나는게 있어? 생명이 어디 와 있습니까? 영에  와 있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너에게 있는 생명, 심신이 하나님과 결합된 그것이  생명인데, 하나님과 네기에 결합되어 있는 그 결합이 승리하는 면류관 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생명이 승리해서 그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살렸습니다. 승리하니까 살렸지. 그 죽을 수 있는 것이 죽지 안하고 살아 났지.

그러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그때는 승리를 했지요.

 이러니까, 그 승리를 가져서 살아나는 데에는 거기에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죽도록 충성하라 했으니까 그 정도가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소 쉽소? 어렵고. 또 영생을 얻올라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이제 딴 데 보면 성품도 다하라  했으니까 그 다하는 것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약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그보다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꼭 같이 어렵지 뭐. 꼭 같이 어려워.

 약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기도 참 절대 불가능이라 어렵고 또 사람이 죽도록  충성한다는 그것도 죽도록 충성할라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승리한 거와  같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생각 다하고 성품 다해야  되는 것인데 말로는 쉽지 그것을 계속 다한다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뭐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나 다 꼭 같이 동등 어려움이요. 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가 필요하요. 누가복음  18장에, 거기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그렇게 무정한 법관이지만 그렇게 쉬지  않고 열심히 간구하는 그 힘이 운동하는 능력이 있어서 그 무례한 법관이 소원을  들어줬다. 하물며 사랑하는 그 독생자도 아끼지 안하고 주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들이 밤낮 원한을 풀어 달라고 구하는데 안 주시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빨리 주신다.'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악할지라도 자식이 구하면, 알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또 이제 생선 달라 하면 뱀 줄 자가 있느냐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사랑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무엇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랬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거 해결 다  됩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것 아버지의 성령으로는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틀림없이 받을 수 있는 것이 계약에 다 선포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이렇게 구별하는 것은.

기본구원 열 가지를 말했는데 여러분들 혹 외우는 사람 있습니까?  첫째, 한번 외워 볼까요? 첫째, 예택 구원. 또 예정 구원. 또 창조 구원. 또  대속 구원. 또 중생 구원. 또 하나님의 자녀 구원. 또 천국 시민권 구원. 또 뭐?  세 가지 보증 구원. 그라면 또 자 모든 존재들을 다 이 구원에 자유로 활용할 수  있는 허락 구원이지요? 또 그 다음에는 생명의 부활 구원. 네. 이것이 우리의  기본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 생명의. 몸의 부활 말이지요? 이것은 다 기본 구원이라 꼭  같습니다. 뭐 우리가 꼭 같이 이 구원은 이미 얻어 놨습니다.

 얻어 놨는데, 이제 이 구원 얻은 사람들이 하늘나라 가셔 사는데 그의 심신의  기능이 어떠한가 그것이 이제 구원의 영감의 차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사지는  멀꿈하지만 아마 체중을 달아도 내가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닐 것이고 또  몸둥이가 어북 살도 찌기를 그렇게 약하지 안할 것인데 조그만한 빼빼한 요만한  아이들, 요만한 아이들 그거는 폴짝 뛰고 폴짝뛰고 요래 가는데 나는 요게  내려갈라 하면 더듬 더듬 더듬 떨면서 이래, 벌벌 떨며 이래 갑니다. 그거는  뭐이냐? 속에 육체의 기능이 약해서 그렇다 그거요.

 그런데. 하늘나라의 부활은 꼭 같이 받지만, 부활은 받지만서도 그 심신의  기능이 없으니까 하늘나라 가서 활동을 못해. 하늘나라 활동이 없어. '자 우리  이 우주에 여행 가자.' 하고서 우 가는데 이 영들이 다 우주에 갈라면  물질계니까 물질계의 것을 타고 가야 되는데 물질계의 것을 탈라고 보니까 탈게  뭐 있어야지 뭐. 뭐 탔다가 떨어져 죽을라고? 이러니까, 이 육체의 기능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계에, 육체의 기능이 신령한 기능으로 변화돼 가지고서  물질계에 다닐 때는 이 물질의 기능을 가지고 물질의 모두 활동을 하고, 또  영계에 다닐 때에는 그 마음의 기능을 가지고 또 영계 활동을 하고 이렇게  하는데, 마음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이 몸과 몸의 기능은  땅위에 둬 두고 이 마음의 기능과 영은 같이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하지만 기능 없는 부활을 합니다. 기능은 다 죽었으니까 기능  없는 부활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능 있는 부활하고,  요 내 뒤에 앉아서 이 전자 올겐인가 이걸 타는데 아주 잘 타요, 내가보니까,  나는 그거 타라 해놓으면 뚱땅 뚱땅이나 할까 하나도 타지 못하요. 이러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기능이 없다 말이오. 기능이 없으니까 전자 올겐 타는 데에  등용할라 하면 나는 암만 원서를 내 봤자 나는 낙제요? 나는 가면 '아, 한번 타  보십시오.' 뚱뚱 그러니까 '아, 안 되겠습니다. 그만 가십시오. 낙제하고 퇴자를  만날 것이오.

 기능 있는 이는 가니까 '아, 이 좀 수고해 주십시오.' '월급 얼마 줄라요?'  '월급 십만 원이오.' '아, 그래 안 할라요. '오십만원 주지요.' '아 '그래 안  할라요.' 정말 타면 '백만원 드리지요.' '아 그래 안 할라요.' '그러면 오백만  원을 드리지요.' '다  데에서 사백 오십만 원을 줄라 하는데 한번 물어보고,  거기 오백만 원 더 줄라하면 그리 가지요.' 거기에서 거기에서 오백만 원 준다  '아 나는 육백 만원 주지요.' 자꾸 이래 올라갈 것이라 말이오. 다 같은  사람인데 기능이 있고 없는데 따라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아주 기능이 심히 빈약한 부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참 기능이 심히 충만한 그런 부활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오늘에 결정이 된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이라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현실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 현실에서 기능 부활을 받지 못하느냐? 기능 구속을  받지 못하느냐? 받지 못하는 그 이유는 땅에 있는 것이 욕심나서 땅에 있는 걸  취득하려고, 이 무궁세계 영원토록 필요한 자기 몸 안에 있는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 이것을 팔아 가지고서 세상의 돈을 사고 지위를 사고 권세를 사고 명예를  사고 이래 하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답답하다 그 말이오.

 사람들이 그거 때문에 현실에서 이 기능이 구속 받을 수 있는, 이 기능이  주님의 구속을 입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 구속을 입으라. 구속을 입고 벗지  말아라. 벗지 말고 통과해라. 벗지 말고 통과해라.' 막 여기에서는 손바닥을  치면서 '구속 벗지 말아라. 구속 벗지 말아라. 구속 벗지 말아라.' 이라는데  이쪽의 이놈은 있다가서 '구속 그것을 벗어내버리고 이것을 입으라. 너 구속  그거 안 벗으면 내가 이 세상을 확 잡아 벗겨 버릴란다. 세상을 벗을래 네가  구속 그걸 벗을래? 구속 그까짓 거야 이 지금 무슨 필요가 있노? 이 세상은 당장  필요가 있지 않느냐?' 이러니까, 세상을 벗길라고 애를 쓰니까 할 수 없어  이라다가 '주님, 안 됐습니다. 내가 세상 이것 벗고는 내가 못 살겠습니다.'  세상을 입기 위해서 구속을 벗었으니까, 그 현실에서 벗었으니까, 본인의  자유성에서 벗어 버리는 것을 강제로 입히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성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은 지공 지성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두 현실에서 자기의 영원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이 되는 자기  마음이요 자기의 몸이요 자기의 기능이 되는 이것을 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  텅텅 팔아먹는 이런 자를 보고 주님이 탄식하시기를 그렇게 탄식했습니다. 온  천하를 네가 이 심신의 기능을 팔아 가지고 얻었다 할 지라도, 샀다 할지라도,  온 천하를 얻었다 할지라도 네가 이 현실에서 네 기능될 것을, 네 기능될 것을  빼앗겨 버린 것, 자기를 빼앗긴 것, 자기를 빼앗겨 버렸다했소, 자기 빼앗겨. 그  기능 그체 자기인데. 기능 그게 자기인데 자기의 기능이니까 자기 아니오?  자기를 빼앗긴 그것은 천하를 얻어도 너는 손해갔다.

 또 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새사람은 영생 하는  사람이요. 이것이 구속받은 사람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요, 이것 이 하나님의  자녀이요 하나님의 양자인데 이렇게 주님의 구속으로써 새사람 된 그 자기는  던져 버리고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원수인 자기 아닌 자기, 그게  뭐 입니까? 그게 뭐입니까? 저 뒤에 옛사람, 옛사람, 옛사람, 그놈을 네가  어리석게, 너를 꼬아서 영을 죽인 것이 그놈이 죽였고 심신을 죽이는 것이  그놈이 죽이니까 원수 중의 원수인데, 마귀가 원수이냐 그게 원수냐? 마귀는  밖에서 역사하고 우리에게 제일 큰 원수 내게서 제일 큰 원수는 죄입니까  마귀입니까 사망입니까 옛사람 자기입니까? 옛사람 자기, 고놈이 원수입니다.

 요놈을 원수인 줄 알고 우리는 요놈을 죽이기를 얼마나 힘쓰라고 했지요? 네,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죽는 자 되는 것. 이것은 죽기까지 이놈을 죽이는  일에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죽는 시간까지 싸워서 그 놈을 죽이는  것을 해야 된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성구가 몇 장에 있습니까?  로마서 6장 5절. 네, 5절에 있습니다.

 이렇게 이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온 천하를 얻어도 네게는 큰 손 해  갔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너는 큰 손해 갔는데,  조그만한 직장 하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너도 빼앗겼고, 또 너도  잊어버렸고, 참 너도 잊어 버렸고 원수 그놈을 모시지 안하면 안 되고, 또  영원히 네 지체가 되어지는 그 지체의 기능을 다 빼앗기고 썩을 것을 취했으니  네가 취하는 것이 무슨 직장 가지고 직장을 취하고 그것을 빼앗겼느냐? 네가  무슨 빌딩 집을 취하고 그것을 빼앗겼느냐? 무슨 알뜰한 애인을 이제 차지하고서  그것을 빼앗겼느냐 네가 무엇을 받고서 빼앗겼느냐? 온 천하를 얻어도 네가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했으면 손해 갔다.

 현실에서 자기를 찾아 가지고 자기로 현실을 통과하고 또 현실에서 자기 기능을  살렸으면 천하를 얻은 것보다 수입이 더 크다 이 말씀이 과장한 말씀입니까?  이것이 과장 없는 정확을 얻은 것보다 수입이 더 크다 이 말씀 이 과장한  말씀입니까?  현실에서 자기를 찾아 가지고 자기로 현실을 통과하고 또 현실에서 자기 기능을  살렸으면 천하를 얻은 것보다 수입이 더 크다 이 말씀이 과장한 말씀입니까?  이것이 과장 없는 정확한 말씀입니까? 우리가 정확한 말씀이라 했으니까 뒤에  가서 핑계는 못할 터인데 요것을 쉽게 정확한 말씀이라 그렇게 하지 말고 우리가  깊이 생각해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진실 안 가지면 안 됩니다. 이제  간단하게 우리에게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는 것을 잠깐 좀 공부를 했습니다.

 주님이 로마서 6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면 그 부활하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렇게 했습니다.

'되리라.' 그러면, 죽음의 연합에 우리가 주력을 하면 부활의 연합은 필연적으로  된다 하는 것을 거기에 표현해 놨습니다.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부활에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는 몇 가지 죽음을  하셨는고 하니 두 가지 죽음을 하셨습니다.' 두 가자. 죽음을 하셨는데, 우리도  주님의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해 가지고 우리도 이 두 가지 죽음을 죽어야합니다.

이 두 가지 죽음을 죽으면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해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이  새사람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이 있어야, 몸이 있어야 몸 안에 마음이 담겨 있을 수가 있고  마음이 있어야 그 안에 영이 거처할 수가 있지 몸이 없어지면 마음은 이  물질이지만 물질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물질에 있을 수가 없고, 몸이  있어야 몸을 타고 이 물질계에 머물 수가 있고 그 사람의 몸이 불에 타 버렸으면  이제 그 마음은 이 세상에 못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없으면 그 영은 이 세상에 있지를 못하고 떠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몸이 있고 마음이 있어야 영이 그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마치 물이 있어야 고기가 그 물 속에 머물고 살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두 가지  죽음이 있어야 그 죽음 속에 두 가지 죽음이 있은지 후에 두 가지 죽음 속에  영원한 생명으로 중생된 새사람이 그 속에서 살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죽음  속이 아니면 중생된 새사람은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죽음, 예수님께서 어떤 두 가지 죽음을 죽으셨는고 하니 한 죽 옳은  형벌을 받아서 죽으셨습니다. 죄값의, 죄의 값을 받아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죄의 값은 어떤. 몇 가지 죄인가? 세 가지 죄값을 받아서 예수님의 몸은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 죄는 무슨 죄 무슨 죄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요, 또 자기가 자기 주장하는 자주장하는 자주장의 죄요, 그것이  불의입니다. 하나님 말씀 어긴 것은 죄요, 불의. 자기 주관대로 하는 것. 자기가  이제는 왕이 되고 주장이 돼 가지고 산 그 죄.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배척한 죄  이 세 가지 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받으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 가지 형벌을 받으신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 목적을  무슨 목적으로 이 세 가지, 우리가 지은 세 가지 죄에 대한 형벌을 주님이  받으셔서 죽으셨는가? 무슨 목적으로 우리 대신 이 우리 범죄한 죄의 값으로서  이렇게 죽으신 형벌을 받으셨는가? 그목적이 어디 있는가? 아는 사람 저 뒤에  한번 말해 보십시오. 목적이 어디 있습니까? 목적이 어디 있지요? 무엇을 멸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님이 죽으셨지요? 자, 죄를 멸하기 위해 죽으셨답니다. 아주  신학자입니다. 네, 대신학자요. 또 하나는 사망을 멸하기 위해서 죽으셨답니다.

대신학자요. 또 하나?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네. 이 죄와 사망과  마귀는 이것은 범죄로 인해서 왔기 때문에 이놈은 하나님의 전능으로서도 죽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으로서도 죄도 죽일 수 없고 마귀도 죽일 수 없고  사망도 없앨 수 없습니다.

 왜? 그 배경이, 죄. 사망. 마귀의 배경이 무엇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도  그것을 죽일 수가 없습니까? 그 배경이 무엇입니까? 예?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  당신이 법을 그래 세워 놨기 때문에, 당신이 그래 세워 놨으니 하나님 앞에서  '법이요!' 하면 꼼짝 못 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권세로 '이 죄 이놈, 막  깨트려서 없앨 란다.' '사망 이놈' 호령을 치면서 '멸할란다.' 마귀 이놈을  호령을 쳐 멸할라 하니까 비쭉 비쭉 비웃습니다. '어떻게 멸할 수 있습니까?  멸해 보십시오.' 하나님한테 참 약을 올릴 것입니다. '멸해 보십시오.' '이놈 막  멸할란다.' 이라면, 법이요 법, 법이요 법 법이요 법. 하나님이 입법해 놓은  법입니다.' 꼼짝 못 하고 사망은 우리를 사망시키고. 우리를 멸망시킨 그 마귀와  죄가 밉지만 이거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자, 이제 그 마귀를, 마귀의 일을 멸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사망을 멸 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사망을 멸하고 마귀를 멸하는데, 마귀를 쫓아내는 데에는  무엇을 없애면 마귀가 꼼짝 못 하고 나가 버려야 됩니까? 죄를 없애면 마귀 그놈  꼼짝 못 하고 당장 나가야 됩니다. 그놈은 죄의 주인이기 때문에 죄 없는 데는  있지 못하요. 또 이 사망은 어찌 됩니까? 사망을 없앨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망의 신는 것은 죄요 죄를 없애면 사망 이놈도 꼼짝 못합니다. 마귀 이놈도  꼼짝을 못합니다.

 이러니까, 첫째는 죄를 멸하면 마귀 일도 멸할 수 있고 사망도 멸할 수 있고  하는데, 죄를 멸하는 데에는 이제 하나님의 강하신 능력으로 두드려 패야 이제  죄를 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로 조화를 붙여야 죄를 멸할 수가 있습니까  죄는 형벌을 받아야 멸해질 수 있습니까? 그 방편 이 무엇입니까? 네, 형벌을  받아야 멸해지는 요 한 방편밖에는 없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형벌을  받으셔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사망은 멸해졌고 계는 멸해졌고 악령은  패전을 당해서 박살을 당해서 굴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죽으심  하나는 죄를 멸하고 마귀를 멸하고 사망을 열하기 위해서 당신이 죽으셨습니다.

이 죽음에 우리는 동참해 가지고 연합하는 자가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안에 자기 밖에, 다른 사람에게, 사회에, 우리는 잘못하면 조브라운  마음을 가지고서 인간 대 인간으로 대립적으로 이래 가지고 시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대립해 가지고서 자기 눈을 자기가 뽑는 그런 일을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넓어져야 되고 우리는 큰 대아가 되어야 되고 우리는 대아가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주님이 이 죽으심에 연합한 자가 되면' 했으니까 우리가 연합한  자가 되어서, 주님은 지성 지공법을 향하여서 이 세 가지를 멸했지만 우리는  사심판,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우리의 인간 생활 속에, 인간의 생활, 인간의  활동 속에 있는 죄. 사망. 마귀 이것을 멸하기 위해서 우리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결사적으로 싸워야 하겠습니다. 결사적으로 싸워서.

 그래 이것이 주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자라' 주님이 죽여 놓은 사망을, 죽여 놓은 죄를, 또 죽여 놓은, 쫓아낸 마귀를  우리가 이제 맡아서 나머지기 패잔병 이것을 뒤 수습을 해서 계속적으로,  아직까지도 택자들 속에서 이놈이 왕처럼. 왕처럼 날뛰고 있는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가지고서 '너는 예수님의 대속이 있기 때문에 왕 노릇  하지 못한다. 나가거라.' 기도로 쫓아내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쫓아내고,  사람들을 잘 봉사하고 사랑으로 친목해 가지고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놈과  원수해서 돌아서도록 해 가지고서, 어쨌든지 우리는 자기 안에와 형제들 안에  있는 죄와 마귀와 사망의 이 세력을 멸하기 위해서 우리는 있는 소유도 다  투자할 것이요,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투자해서 투쟁하기로 각오를 하고  이 출전한 자로 계속해서 이 전쟁을 싸우다가 세상을 마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것입니다.

 또 주님이 한 가지 죽으심은 어떤 죽으심을 하셨는가? 이제는 죄를 범 하지  않는 무죄한 자로, 죄 없는 자로 살리기 위해서. 또 의로운 자로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로 살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을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는 완전한 피동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죄를 하나도 용납지 안하고 얼씬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죽으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이 양면 죽으심을 우리 대신해서 죽으신 이  죽음에 우리가 연합해 가지고 우리는 이 죽음에 연합해서 죽는 죽음을  계속해야합니다. (꼬박 꼬박 조는데, 바로 내 앞에 여기서 졸고 있어.

열심쟁이가 너무 열심히 해 가지고 예배 볼 때에 졸면 헛일이오. 잠 마귀가 왕  마귀라.)  그러기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면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이 죽음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죽음이 있는데. 외형 죽음은 늙어 죽는  것도 있고 또 병들어 죽는 것도 있고 또 물에 빠져 죽는 것도 있고, 또 주의  이름으로 죽는 순교의 죽음도 있고, 있는데, 그 죽음에 대해서 차차 깨달아  가니까 좀 다릅니다.

 이래서, 저도 늘 생각하기를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죽음은  늙어 죽는 것보다, 병들어 죽는 것보다, 또 맞아 죽는 것보다, 뭐 차에 치어서  죽는 것보다, 물에 빠져서 죽는 것 이런 변사보다 어짜든지 주를 위해서 순교를  당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참 순교 당한 것이 제일 영광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 참 순교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소원도 가지고 기도도 하고  그렇게 했는데, 이제 알고 보니까 이거 순교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순교를 하든지, 물에 빠져 죽든지, 늙어 죽든지, 병들어 죽든지, 또  어떤 변사를 당하든지 상관이 없는 해결 문제를 받았습니다. 상관이 없다.

 왜? 이 주님의 두 가지 죽으심에 연합한 자가 되어서 안 세 가지를 죽이는 일에  심신과 생명을 기울이고, 세 가지 보존하고 보수하기 위해서 심신을 기울여서 이  두 가지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다가 늙어 죽어도, 병들어 죽어도, 물에 빠져  죽어도 상관이 없다. 그는 할렐루야의 승리를 한 승리의 죽음이다, 이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순교자라고, 어떻게 6,25지나고 난 다음에 순교자가 많이  났고, 또 왜정 말년에도 말년을 지내서 순교자가 많이 났고, 지방 지방이  순교자가 많이 나서 그저 순교자 전기라. 순교자 복자전이라, 순교자 열기전이라  해서, 뭐 순교의 모든 그 종류를 다 말했고 형태를 말 한 그런 책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참 볼 만한 책이요 또 우리가 아주 갈급을 가져야 될 만한 책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주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이 일시에 뭐 다른 것을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세상보고 운동하다가 그들에게 잘못 걸려서 이래도 저래도 못할 판이니까  마지막에는 '이놈 예수 믿지?' 하고 죽으니까 순교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껍데기 참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은 번들번들한 순교의 이름을 가졌지만 속에는  허무한 죽음을 우리가 죽기 쉽겠다. 그렇게 생각이 되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이 두 가지 주님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어 계속하다가. 그 일을  계속 생명 바쳐서 계속하다가 늙어 죽었든지, 갑자기 급사를 했든지, 뭐  뇌일혈로 죽었든지 어쨌든지 계속 그 싸움을 싸우다가 숨이 끝났으면 그는  승리입니다. 그는 참으로 순교자요, 주님이 죽으심에 연합한 승리의 죽음을 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렇게 이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공로를 힘입어서 부활에 연합해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이 새사람이 사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루어지는 것. 새사람이 사는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은 저 두 가지 죽음 위에, 두 가지 죽음 부둑 위에 새 사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죽음이 없는 거기에는 새사람이 머물지를 못하고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두 가지 죽음의 밭에, 두 가지 죽음의 이 옥토 위에. 이 진리  위에 이 투쟁 위에, 이 소망 위에, 이 의지 위에, 이 순종 위에 진리 와  성령으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의 생명은,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생명은 그 위에  이제 성장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새사람의 사는 생활이 외부에서는 두 가지 죽음이요,  속에서는 새생명으로 사는 생명이니, 새생명으로 사는 생명은 외부에는 이 세  가지 죄를 멸하고, 사망을 멸하고, 죄를 멸하고. 마귀를 멸하고, 그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에게 죽기까지 복종하고, 삐뚤어짐 이 없이, 하나님을 이렇게  모시고 섬기는 경건을 하는 그 위에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이 새생명의  참사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것을 잘  기억합시다.

 자. 찬송 하나 하고, '천지 주관하신 주는' 몇 장입니까? 예? 535장. 새찬송  535.

 천지 주관하신 주는 무소 부재하시니  사람 손이 지은 전에 어찌 계심 바랄까  푸른 하늘 보좌되고 발의 등상 세계니.

 우리들이 무슨 집을 주 위하여 세울까  예수 말씀하시기를 물론 아무 곳이나  두 세 사람 모였어도 그들 중에 있으마  집 모퉁이 요긴한 돌 구세주가 되셨고  선지 사도 터가 되며 우리들은 돌일세  주를 믿는 형제 자매 성전 된 것 깨닫세  우리들을 가리켜서 성전이라 하셨네 아멘.

 속담에 그런 말이 있어요. '됫글을 가지고, 한 되배기 한 되배기 지식을 가지고  섬글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한 섬이나 되는 지식을 한 홉으로도 사용 못 하는  사람 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런 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간단 명료하게 이 신구약 성경 육십 육 권의 작은 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얼마 양이 되지 안하는 이 책을 주셨으나 이 말씀은  전지전능자가 다 이렇게 우리에게 나열해서 조직해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둘을 합하면 이루어지는 것, 셋을 합하면 이루어지는 것, 또 이거하고  저거하고 그 사이에 간격에서 이루어지는 것. 이래서 이 말씀은 간단하나 이  말씀은 다 진리요 진리 이치요.

 이러기 때문에, 이 이치는 그저 같은 이치라면 여기에도 그 이치면 맞고 저기도  그 이치면 맞고 저기도 그 이치면 맞기 때문에, 이 한 이치, 밤을 헤아리는 그  계수의 이치라면 콩도 헤아리면 맞고. 또 쌀섬도, 쌀가마니도 헤아리면 맞고  밤도 헤아리면 맞고, 돌도 헤아리면 맞고. 짚도 헤아리면 맞고 자, 그러면  나라는 헤아리면 안 맞습니까? 수는 하나에다가 하나 보태면 둘 둘에 둘 보태면  너이, 이런데, 콩도 그렇고. 콩 세아리는 것 하나 배웠으면 그거 가지고 다른  것들도 그와 같이 계산하면 된다 이거요.

 이거 모양으로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참된 이치이기 때문에 이 이치로,  여기서도 이 이치로 심사해서 연구하면 들어맞고 저기도. 저 저거도 이 이치로  심사해 가지고 요 이치대로 하면, 이 이치대로 하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이  이치대로만 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이 이치대로만 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이 간단한 말씀 속에는 그 무한하신 성령의 은밀 지혜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 말씀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지혜의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의 뭐 또 잊어 버렸구만, 이제 다. 잊어버리면 안 되요.

잊어버리면, 사데 교회가 들은 것 잊어버리고 받은 것 다 잊어 버려 버리니까  살았다는 이름뿐이지 실상은 죽었었어. 이러니까 들은 것은 다시 생각하고 받은  것은 그대로 지켜 행하면 되는 거 라요. 써 먹으면 돼.

 하나님의 지혜의 입문이라. 또 능력의 움싹이라. 그 뒤를 보면-나는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삼각이라. 삼각인데, 삼각 끄트머리는  뽀족하게 조그만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자꾸 들어갈수록 넓어져서 넓어져서 그  안에는 뭐 수천만리라. 그 넓어지기를. 그거 모양으로 하나님의 한 성구도  들어가면 거기에 이치가 넓고 넓고 해 가지고서 무한함의 하나님의 무한하신  분의 그 전지한 지혜가 그 가운데 가득 차 있어.

 아침인가 언제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가 참 알아야 되겠는데 지식은 세상에 두  가지가 있다 했지요? 두 가지 지식. 자, 몇 가지 지식이 있습니까? 두 가지  지식. 손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지식? 두 가지 지식. 이것도 복습을  할 필요가 있어서 합니다. 두 가지 지식. 그러면, 두 가지 지식인데, 하나는  무슨 지식입니까? 하나님의 지식. 하나는? 사람의 지식. 그 지식이 다 어디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왔소.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그만  한 말로 말해서 복되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성공을 시킬려고 이 지식이 와서  역사하고, 한 가지 지식은 파괴를 시키기 위해서 역사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파괴케 하는 지식은, 파괴케 하는 지식은 그 파괴를 시키는데 그 파괴를 어떻게  시키는지. 그 파괴를 시키는 그거는 일생 동안 파괴만 하고 육천 년 동안 파괴만  자꾸 하는데, 파괴만 하는데 그 파괴하는 것은 어떻게 그 모든 사람이나  사업이나 가정이나 모든 것을 다 파괴를 시키는가? 어떻게 파괴를 시키는지  파괴시키는 그 파괴의 꾀를. 파괴의 그 방편을 아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아는  사람 있소? 여기 아는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 봐요. 이 공부했는데 몰라?  그라면 가르쳐야 뭐 헛 일하려고?, 자 파괴의 방법을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저 ○○○ 장로님 한번 말해 보시지요. 웅? 뭐? 그런 말이야 하지만 그 거는  짐작이기 때문에 실력은 없어.)  자, 고것이 파괴를 시키는데, 사람의 지식이 파괴를 시키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 주고 어떻게 위협을 주고 어떻게 헙박을 주고 어떻게 꼬아 가지고 그렇게  하는지 고걸 알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한다고 합디까? 몇 가지 세 가지. 자  따라합시다. 세 가지! 세 가지! 저 뒤에 좀 해요, 좀. 닥치면 다 넘어가고 퍽퍽  쓰러져서 오늘까지 실패만 하고 있오. 이런데 뭐, 생명을 내 놓고 달라붙어야 할  터인데, 세 가지.

 그러면, 세 가지인데 첫째는 뭐입니까? 세상을 바라보라고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세상을 의지하라고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세상에게 피동하라고 세상에,  오늘 이러니까, 주일이라도 그놈이 이리 하라 하면 따라해야 되지 그놈이 저리  하라 하면 저리해야 되지 그놈이 성내라, 하면 성내지 그놈이 시비하라고 하면  시비하지, 아무리 친해도 그놈이 원수 삼으라 하면 원수 삼지, 이것이 들어서 뭐  우리를 꼭둑각시 놀리듯이 놀립니다. 놀려 가지고서 보면 그저 '저 사립이 와  저렇게 금방 서로 죽고 못 산다고 친근하더니만 왜 저리 됐노? 왜 저렇게 원수가  됐노?' 하면 세상이 들어서 원수 되게 하니까 원수가 돼 버렸어.

 오늘도 여기 오는 것이 좋지만 여기에 못 오는 것은, 와야 될 사람들도 못 오는  것은, 왜? 이 세상이 들어서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살살 꼬우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봐라 이렇고, 이렇고 사정이 이렇고 이러니 네가 이래  가지고야 되겠나? 이번에 그 집회 가면, 집회 가고 너 예수 못 믿고 절단 날래  이번에 집회 안 가고 예수를 믿을래? 그 좀, 수지 제산을 사람이 따져 봐야  되지.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되는 것이지 이제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네가 바보 노름을 해서는 되겠느냐?' 그렇게 한다 말이오. 다  거기에 수지 계산 맞추다가 그리 되요.

 세상을 바라보라고, 의지하라고, 복종하라고, 거기에 피동하라고 이래 가지고서  이제 이 세상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그 공작을 일으키는데, 그 현실에서 세상을  의지한 것을, 세상을 바라본 것을, 세상에게 피동된 것을 모조리 하나님의  심판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다 정죄해서 전부 다 소멸시켜  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님의 지식은 이 살리는 일 복되게 하는, 건설하는 일을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를 어떻게 해 가지고서 이렇게 영생과 행복과 몇 가지  이룬다고 했지요. 첫째 세 가지? 5가지. 그러면 첫째 뭐? 천국, 둘째, 부요.

뭐요? 부자 부요. 또 셋째, 기능. 또 넷째 쾌락. 이제 하나 남았는데. 다섯째  영광. 영광. 이 세 가지를 이루는데, 이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서 이 세 가지를  이루는데 세 가지 이루는 구체적 방편은 몇 가지를 하게 해 가지고서 이 5가지  생명과 행복을 이루도록 그렇게 합니까? 이 하나님의 지식이 몇 가지 방편을  씁니까? 세 가지. 세 가지. 요거 놓지 마십시오. 간단하나 요 속에 다  들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잘못하면 어지러워 복잡해져 가지고서 실행하기 쉬운데 요거 세  가지를 단단히 거머쥐십시오.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또  둘째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또 셋째는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이라는데,  그러면, 하나님에게만 복종하려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에게 복종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가지시고 '네가  이것에게 이래 해라 저것에게 저래 해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만물에게  대해서 하는 그것이 누구에게 복종입니까? 하나님에게 복종 모든 만물에 대해서  세상이 시키는 대로하는 것이 누구에게 복종입니까? 세상에게 복종. 하나님께서  이 모든 피조물을 이것은 네가 바라봐라. 지금은 바라보지 말아라 이거는 조금만  바라봐라. 이거는 며칠만 바라봐라. 요거는 그저 몇 번만 바라봐라. 이거는  전면을 바라봐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모든 세상에 있는 것들 피조물을  바라보라고 할 때에 그걸 바라보면 누구를 바라보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데, 그분이 이렇게 바라보라 저렇게  바라보라. 이렇게 의지하라 저렇게 의지하라, 이렇게 복종해라 저렇게 복종해라  하는 그것을 시킬 때에 우리에게 얼마나 바쁘게 시키는 줄 압니까? 번개같이  시킵니다. 번개같이 시켜요. 번개같이 어떨 때는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빨리 따라서, '영물이 번개같이 움직이는데 우리도 거기 따라서 번개같이  복종해서 움직여야 된다'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해 놨습니다. 그 성구가 어디  있지요? 에스겔 1장에 보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이 두  가지를 우리가 하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합니다.

 이런데. 여기 봉독한 말씀에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있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있다.' 참 되게  어렵습니다. '더 어려운 것 있다' 이랬는데 무엇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네.

바라보는 것 의지하는 것 복종하는 것 그것이 모두 다 근 육천 년 동안을 이  세상만을 바라보고 살았고 세상만을 의지하고 살았고 세상만에게 피동되어서  살았던 우리들인데, 안팎이 가득히 그것 이 배 가지고 있고 우리의 모든 잔뼈가  그것을 먹고서 자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어머니의 집이라  어머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가서에는 '어머니의 집이라' 어머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거 먹고 자랐소. 그것을 먹고 자라 왔습니다. 자라 왔는데  우리들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소망을 바꾸라고 하니까 이거  기가 찬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소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면, 소망은 무슨 소망뿐이지요? 저 뒤에 요게 앉았더니만 저 뒤로 가  버렸네, 내가 보니까, 그 멀리 가면 저 뒤에 가다가 저 뒤에 가다가 마지막에는  저 멀리가 가지고서 나가 버려요. 자 우리가 바라보면 바라보는 것 몇 가지나  있습니까? 자, 한번 쳐봅시다. 생명 구원을 생명 구원을 바라보는 것도 있겠고,  건강을 바라보는 것도 있겠고, 또 그 병들었는데 치료를 바라보는 것도 있겠고.

장사의 성공을 바라보는 것도 있겠고, 부자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있겠고 공부  잘하는 것도 바라보는 것도 있겠고, 뭐 세상에 우리가 과거에 소망하던 것이 열  가지입니까 백 가지입니까 대개 몇 가지나 될상 바릅니까? 한번 생각해 봐요.

세상에 있는 것을 과거에 우리가 바라보고 살았었는데 그 바라보고 사는 것의  숫자가 대개 얼마나 될까요? 한 열 가지 되요? 열 가지 넘어? 백가지 될까요? 백  가지도 넘어요. 실은 천 가지도 넘어요.

 날마다 바라볼 것이 생기거든. 날마다 바라볼 것이 생기고 의지할 것이  생기거든 이런데, 그러면, 그 모든 수천 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것들에게  피동되는 것을 싹 끊어버리고 하나님 한 분에게 다 그 모든 것을 바라보니까,  돈도, 돈이 문제라. 돈의 문제는 그라면 세상 것 바라봐 까요? 아니야, 그것도  하나님 바라봐라. 그러면 병든 자가 병 낫는것 그, 그러면 그거는 세상  바라볼까요? 아니 그것도 하나님 바라봐라 전부 도매금으로 막 하나님만  바라보랍니다. 이래 놓으니까 이치에도 이해가 안 되지, 이거는 이제까지 습성도  있으니까 안 되지, 기가 찰 일입니다. 기가 찰 일. 이러니까, 이제 과거에  세상에 있는 것을 바라보던 그것을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랍니다. 이제까지  바라보던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래요.

 '현재 이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혜택을 입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합니까?' '네가 몰랐다. 그것에게 혜택을 네가 입는 줄 알 저만 내사 그것으로  하여금 너에게 혜택을 입히도록 내가 그것을 도구로 쓰고 연장으로 쓰고  밥숟가락으로 쓰고, 그것을 내가 여러 가지 기구로 써 가지고서 그 너에게  해택을, 내가 지켜 주는 혜택이, 내가 입혀 주는 그 혜택이 너에게 그것을  통해서 가서 그런 것이지 그 혜택은 내 것이다. 실은 내것이고 그것이 혜택 입힌  주인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내것을 갖다가 너희에게 전 달해 주는데 전달해  주는 그 기관이요 도구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따라합시다. 그것은! 시은  도구라! 은혜를 베푸시는 데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라! 하나님이 나를  지으실라고 아버지 어머니를 사용해 가지고서 나를 창조하셨으니 어머니  아버지는 하나님이 나를 지으시는데에 크게 수종한 시은의 도구라! 그 틀립니까?  틀려요? 저 뒤에 맞거든 손 들어 보십시오. 네. 맞습니다. 맞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이 네가 과거에는 사망에 속했고, 마귀에 속했고  죄에 속했고, 천한 데 속해서 본 지위에서 타락해서 뚝 떨어져서 만물보다  거짓된 자가 되어졌고. 마귀의 종이 되었고. 사망의 종이 되었지만 이제는 네가  사망과 마귀를 호령 칠 수 있고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만유의  주재의, 아버지의 아들이시요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 할, 천상 천하의 하나님의 집에 너는 청지기가 되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대언자요 대치리자요 대 모든 관할자로 네가 되어 있는,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너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할 왕 인데. 왕인데  종의 때와 같이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과거에는 네가 몰라서 그런 것에다  굽신굽신 했지만 이제는 네가 알고서 은혜의 기관은 은혜의 기관이니,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그걸 사용했으니까 은혜의 기관은 은혜의 기관인  것만치 소중히 여기라.' 그 세상에서 은혜의 기관이 많은데, 사람도 있고 물질도  있고 과학도 있고 은혜의 기관들이 많이 있는데, 은혜의 기관 중에 제일 귀중히  여져야 될 은혜의 기관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어디 말했습니까? 제오 계명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오 계명에.

 이러니까 옛날 어두울 때에는 그 어두울 때 있어서 어두운 노릇을 했지 만  이제는 너희가 승격을 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서 모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너희 것이 되어서 그 모든 것을 통치하고, 사망이나 생명이나 모든  것을 통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지는데 그렇게 삐뚤어지게 어둡게  알아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오는 것이라.

 그러므로. '온전한 은사와 모든 상급이 빛들의 아버지에게로서만 오는 것이요  다른 데에서 오지 않는다. 이러기 때문에 나만 바라봐라. 나만 바라봐라.' 이래  가지고서 당신만 바라보도록 만들라고 애를 쓰고 당신만 바라본다고 뚝뚝하게  바라보지 안하고 당신 바라보는데 당신이 '요래 바라 보라 하면 요래 바라보고  조래 바라보라' 하면 조래 바라보고 아주 하나님께서 번개같이 날뛰어서 '요것  바라봐라 요래 바라봐라.' '예 요것 바라보겠습니다.' '조금 바라봐라.' 조금  바라보고'많이 바라봐  많이 바라보지요.' 이래 가지고 아주 민첩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내 뜻에 합당하다, 내 뜻을 다 이룰 수 있다. 너는 바라보되 미련하게  뚝뚝하게 그렇게 토막 나무 끊은 것 모양으로 그렇게 매력 없이 바라보지를  안하고 아주 민첩하게 지혜롭게 슬기롭게 바라보는구나.' 하셔서 당신이  좋아하시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이제 당신만 바라보고 이렇게 하시니까  무궁세계 가 가지고서 당신만 바라보니까 틀릴 일이 없어. 재 저지를 것이 없어.

삐뚤어진 것이 없어. 낭파될 일이 없어. 의지하는 것도 꼭 같습니다. 복종하는  것도 꼭 같습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복종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얘 오늘은  아무것이에게 가 가지고서 아무것이 시키는 대로 하고 오너라.' 그러면 가  가지고, 거기에 가 가지고 그 사람 시키는 대로 하고 오면 누구에게 복종입니까?  거기 가서 복종하라 했드만 가 가지고 안하고 와 버렸습니다. 안하고 왔소.

그라면 누구를 거역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로마서 13장입니까? '모든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안한 것이 없다'  이래서, 권세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요 성구를 왜정  말년에 보라. 이 신사 참배 하라고 하는 이거 여기 일본 총독의 명령인데.

이것은, 이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안한 것이 없는데 권세에게 복종하지  안하면 심판받는다고 하지 안했느냐? 그들이 신사 참배 하라 하니까 신사 참배를  해야 되지 않느냐?' 이 성구를 이용해 가지고 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많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로 왔는데, 그 권세를 하나님이 주실 때에 범위를 딱  정해 가지고서 줬기 때문에, 그 범위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 권세 가진  자가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 복종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달해서 사람을 복종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 복종케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복종은 하지 안하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안한 것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만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그것을 가지고서 자기에게 복종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종을 전달하는 것입니까 제가 왕이 돼 가지고 저한테 복종하라 하는 것입니까?  자, 그것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수권의 충성이요 월권하는 역적이요?  역적입니까 충신입니까? 역적입니다. 역적에게 복종하면 자기도 역적돼요  안돼요? 역적 되지요.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 복종 다 했지만 '기도하지 말라는  복종은 할 수가 없습니다.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복종할 수 없습니다.' '왕의  명령을 다 복종하지만 신사에 절하라 하는 것은 복종 할 수 없습니다.' 이래야  단일 복종이 되어지는데 단일 복종이 되는데 이것을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그게  모든 사람들이 다 넘어갔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세밀히 알아야  됩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다 넘어가고 미혹에 들게 됩니다. 성경을 다 알고  하는 사람은 마귀라는 놈이 와야 댈 데가 없어. 마귀라는 놈이 와서 이 꾀를  부릴라 하니까 벌써 먼저 질러 가 가지고서 '주여. 이 마귀가 이렇게. 와 가지고  이렇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될 때에는 이렇게 해라.' 미리 딱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거 와 봤자, 와 봤자, 약자가 강자의 종이 됩니까 강자가  약자의 종이 됩니까? 약자가 강자의 종이 되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알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마귀가 와야 이용만 되니까, 마귀가 하나님의  성도에게 면류관이나 씌워주고 가지 다른 것 아무것도 부가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 마귀라는 놈이 참된 아는 성도에게는 안 올라합니다. 안 오고,  가까이 오지 안할라 해. 그래도 하나님께서 성도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 가지고  한번 가 봐라 보자.' 그래 가지고 와 가차고 턱 거석하면 이제 미리 다 준비해저  가지고 승리하니까 가서 실컨 실패만 당하고, 실컨 성도에게 마귀가 이용만  당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에 설 때에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도  없어서는 안 되고, 마귀도 우리를 돕는 것이요, 죄도 우리를 돕는 것이요,  사망도 우리를 돕는 것이요. 악도 우리를 돕는 것이요 모두가 돕는 것이라? 왜?  그런 것들이 나를 넘어지게 할 때에 넘어지지 안하니까 상이 있지, 영광이 있지,  그런 것이 꼬울 때에 유혹 받지 안하니까 승리의 면류관이 있지.

 이런데, 고게 한 마디만 더 하고 그치겠습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가 말 하기를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나와 이 전도, 인간 구속을  위해서 네가 세상에 어떤 것이든지 손해를 보면 이 세상에서 도 여러 배 백 배를  얻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 다 영생을 얻는다' 그 말은.

영생은 그때에 얻는 것이 아니고 지금 얻는 것입니다. 지금 얻는데 왜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 하느냐 하면 내세는 영생하는 내세인데, 영생하는  내세에, 영생하는 내세를 자기가 얻는다 그말입니다. 영생하는 내세를 얻는다 그  말이오. 영생하는 내세를 자기 기능이 다 얻어 자기 기능이 영생하는 내세를 다  얻어요.

 이렇게 어려운 것 세 가지만 이렇게 하고 나면 다 얻는데, 여러 배 백 배를  얻되 무엇을 겸하여 얻는다 했습니까? 핍박을 겸하여 얻는다. 핍박을 겸하여  얻는다. 여러 배를 얻는 거는 좋지만, 여러 배를 얻는 거는 좋지만 핍박이라  하면 고만 절절 매고 항복을 하고 도망을 치는데 이 여러 배 세상 것을,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나 이 모든 것을,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뭐 다 들었겠지요.

다 들었는데 여러 배를 얻고 백 배를 얻는데 얻는 데는 조건이 있으니 핍박을  겸하여 얻는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얻는 것은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핍박은 다  겁을 내기 때문에 이 핍박 있는 것을 다 사람들이 염증을 냅니다.

 그러나 이 핍박을 겸하여 얻지 않고는 얻는 길이 없습니다. 핍박을 겸하여 얻지  않고는 얻는 길이 없습니다. 핍박이라 말은 환란이라 말이요 박해라 말이요,  어려움이라 말이요, '어려운 그 핍박을 겸하여 얻지 핍박 없이 이런 것을 여러  배를 얻는 수가 없다. 이것을 버린 사람은 세상에서 여러 배 백 배를 얻되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이 핍박은 참 박해라 말인데, 핍박이라 말은 박해라는 말인데  어려움이라 말인데 이 어려움을 겸해서 얻는다. 하나님이 주실라면 거저 주시지  와 뭣 때문에 꼭 사람을 달아서 기름을 말릴라고 이렇게 핍박을 겸해서 이렇게  주실까? 핍박 없이 주시면 좋을 터인데. 어떻습니까? 핍박 없이 주시면 안  좋겠소? 어떻습니까? 여기 목사님들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핍박 없이 주시면 안  좋겠소? 하나님이 누리를 괴롭힐라고 핍박을 겸하여 주십니까? 그 핍박을 겸하여  주시지 않고는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핍박을 겸하여 주십니까 우리를 골탕  쥐 먹일라고서 핍박을 겸하여 주십니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익되게 하겠지' 그렇게만 생각지  말고 냉정스럽게, 정직하게, 솔직하게, 논리로 깨달은 대로 말해 보라 그  말이오. 자 그라면. 하나님이 모든 걸 주시는데 꼭 박해를 겸하여 주시는 것을  원하십니까 박해 없이 주시는 것을 원하십니까? 솔직하게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박해가 없이 주시는 것을 원하는 분들 손 들어봅시다. 없이 주면 좋지  와 나쁘다 말이오? 나는 없이 주면 좋을세요. 없이 주면 좋겠어. 박해 없이 주면  좋겠어. 여러분들 다 거짓말쟁이요. 새로 한번 손들어 봐요 박해가 없이. 핍박  없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꼭 핍박을 겸하여 주시는 것보다 핍박  없이 주실 수만 있으면 주셨으면 좋겠다 그렇게 원하는 분들, 핍박 없이 주시는  것을 원하는 분들 이제 하나님이 소원 성취해 주실 것인데 원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핍박 없이 주시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자. 나는  핍박 없이 주시면 좋겠는데. 핍박없이. 공연히 핍박은 죽자껏 싫어하는 사람들  이 뭐 핍박 있게 주는 걸 좋다고 그렇게 합니까?  그런데 핍박 없이 주셨으면 주님도 좋겠고 우리도 좋겠습니다. 아, 고 핍박을  겸하여 주는게 좋겠습니까? 나는 핍박 없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핍박 없이  주는 것을 하나님도 핍박 없이 주시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핍박 없이 주실 때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핍박 없이 주살 때도 있습니까? 예? 핍박 없이 주싶 때도  있습니까? 핍박 없이 주실 때는 없습니까? 핍박 없이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핍박 없이 주십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핍박 없이 주시오. 그  나라에는 핍박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핍박 없이 줄래야 주는 길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참 안타까이 여기시면서 핍박을 겸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이  핍박이, 이 박해가 무슨 박해일까요? 무슨 박해일까요? 고거 알면 참 백  점짜리인데, 공부 잘했는데, 고 박해가 무슨 박해지요? 무슨 어려움이지요? 응?  뭐요? 연단? 저 누가 하나 말하네. 뉘라, 뉘라? 손 들어봐 그 사람. 주님만  바라보고 어짜고.

 그 박해가 무슨 박해인고 하니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에게만  복종하려고 하니까, 그래야 당신이 주시지. 다른 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데 주시면 배나 지옥의 자식이 될 것이기 때문에 줄 수가 없으니까 꼭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고 방편을 통해서,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할 때에 고것이 자기에게 가서 되어지도록 고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박해가 무슨 박 해인고 하니 이 세상  바라보는 것을 끊을라 하고 주님 바라보는 것으로 바꿀라 하니까, 바꾸는  박해요, 이 의지를 바꾸는 박해요, 복종의 능동의 그 능동자를 바꾸는 박해이니,  이거는 바꾸는 바꾸어야 하나님이 주실 수 있고 하나님께 받을 수 있고,  바꾸어서 받아야 유익이 되기 때문에 이 바꾸는 어려움은 어쩔 수 없어 안 겪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핍박을 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습니까!

 그러면, 이제 바꾸는 어려움이 없는 세상에서도 바꾸는 어려움을 기어코 거쳐  가지고 하나님이 주실까요? 네? 하늘나라에 가서는 바꾸라 하면 어떻게 바꾸어야  됩니까? 바꿀라면 뭐 세상하고 바꾸어야 되는데, 하나님 바라던 것 세상  바라보고 이제 그래 바꾸어야 되는데 사망으로 내려가야 될 것 아니겠소?  하늘나라는 이제 바꾸는 일이 없습니다. 다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바꾼 자만  합격으로 다 통과시킵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서 여러 배 백 배를 받되 그  핍박 그 박해를 받는데 박해의 양이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고, 무거운  사람도 있고 가벼운 사람도 있습니다.

 백 배를 받되 박해의 그 양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무거운 사람 가벼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이것이 가볍겠습니까? 어떤 사람에게  가볍겠습니까? 예? 어떤 사람에게 가볍겠지요? (자 ○○○ 선생, 어떤 사람에게  가볍겠소? 저 ○○○ 목사님, 어떤 사람에게 가볍겠소? 예? 적게 바꾼 사람에게  박해가 적다? 그 말 맞소? 예? 그 말 맞소?) 적게 바꾸어 놓은 사람에게는  그라면 이제 많이 바꾸어야 될 일 있으니까 많이 바꾸기가 어렵소 적게 바꾸기가  어렵소? 많이 바꾸기가 어렵지. 많이 바꾸어 놓은 사람에게는 바꿈의 박해가  적습니다. 네? 하나도 안 바꾸어 놓은 사람에게는 바꿈의 어려움이 많습니다.

자, 이거 맞소 틀리요?  이러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 주님에게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읍시다. 십자가를 진자에게는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십자가의 할렐루야!! 자기 부인의 할렐루야!! 이것이 기독교요. 네.

이것이 기독교.

 이러니까, 여기에 육체의 병든 사람들도 왔고 심령의 병든 사람들도 왔는데,  우리가 심령병은 우리가 다 들어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또 육체의 병도 모두  다, 다소는 뭐 다르지만 거의 다 있습니다. 있는데 이것 도 하나님 바라보느냐  세상 바라보느냐? 하나님 의지하느냐 세상 의지하느냐? 하나님에게 복종하느냐  세상에게 복종하느냐? 하나님께서 꼭 요 시비를 걸어 가지고서, 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보다 하나님 의지하고 보다 하나님에게 복종할 때에 여기 온 환자는  육신의 환자도 하나도 없이 다 낫습니다! 다 낫습니다! 다 낫습니다.

 열 문둥이가 나음을 받아 가지고 한 문둥이만 왔고 아흡 문둥이는 저이에게로  다 갔지만 주님께서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낫아 가지고 죄를 짓든지 의를  행하든지간에 이 자리에서. 이 자리에서 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요것만 확정을 지웠으면 하나님께서 그이에게  그와 구원에 없어서는 안될 질병이면 선물로 그에게 두지만 그에게 필요 없는  질병이라면 하나도 없이 뭐 암병이고 소경이고 뭐 귀머거리고 벙어리고 할 것  없이, 앉은뱅이고, 할 것 없이 싹 다 낫아 주십니다. 요것이 낫우는 방법입니다.

 반드시 핍박을 겸하여 주시리라. 그럴 때에 여러분들이 가만히 보면 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을 믿을까 세상을 믿을까? 네. 세상도 믿고 하나님도 믿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세상과 둘이 서로 딱 갈라져서 이거냐 저거냐  보다 어느 것이냐 하는 것을 시험할 때에 그때에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고 그때에  이제 이 현실에서 자! 하나님 바라볼까 세상 바라볼까 하나님 의지할까 세상  의지할까,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할까 세상 시키는 대로 할까?' 요 둘을  현실에다가 하나님이 딱 몰아 붙여 놓고서 주님은 옆에서 서서 '보자 보자. 네가  내것인지 보자. 나한테로 오너라. 나 한테로 오너라.' 성경 말씀으로, 영감으로.

하나님의 종들로 깨우쳐서 '오라 오라' 이러는데, 또 마귀라는 놈도 온갖 수단을  부려 가지고서 '오라 오라 이렇게 합니다.

 고럴 때에 고 자리에서, 고 자리에서, 고 자리의 형편을 성경이 말하기를  정조에 대해서 말합니다. '세상과 벗이 되고저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음행하는 여인 같은 너희들이여' '음행하는 여인이여'  음행하는 여인이라 바로. 여인 같은게 아니고. '음행하는 여인들아 너희가  세상과 벗 되고저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요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세상과 벗된 것이 아니냐? 성령이 너희 안에서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신다는 말을  헛된 줄로 여기느뇨,  고게는 남녀 이성에서 여자를 가운데 두고서 '자, 나한테로 오느냐 너 한테로  오느냐' 요렇게 이럴 때에 자 본 남편에게로 오느냐 간부에게로 오느냐  본남편에게로 오느냐 간부에게로 오느냐? 하나님은 본남편 이 세상은 간부인데  어디로 가느냐? 요 둘을 두고서 가운데서 요래 할 때에, 고때에 평소에  하나님에게 '주여 주여 주여 주여 오만 짓 다 하지만 딱 고때 되니까 싹 하나님  물리치고 싹 돌아서 가지고서 세상하고 딱 합해서 갑니다.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분개하고 얼마나 분하시겠습니까? 그렇지만 자유법을 허락했기 때문에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지만 그 분함은 견딜 수 없습니다. 이래서, 꼭 남녀 이성  관계에서 시기하는 거와 같은, 남녀 이성 관계와 같기 때문에 '음행하는  여인이여' 고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고럴 때에 평소에는 보니까 하나님 잘 섬기지 안한 것 같고 뭐 예사로 지냈지만  현실에서 딱 닥쳐 가지고서 세상에서 오만 것 다 주고 이런 것 다 주고 이래  하니까, 이제 보니까 그 좋은 걸 주니까 그저 '아 좋습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 이놈이 저 한테로 돌아올 줄 알고 '요것도 줄께  요것도 줄께 요것도 줄께' 마구 이래 쌓는데. 자꾸 이래 쌓는데 턱 '나는 너와는  상관이 없어. 나는 본 주인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너는 물러가.' 하면서 썩  배척을 하고 하나님께로 딱 돌아와 서서 하나님 께 딱 안겨질 때에 하나님은 그  이상 만족이 없어. 그 이상 만족이 없어. 하나님 친하는 것이 이래 친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만족이 없어.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애끼지 안하시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거리끼는 모든 시험은 이런 장면을 맺는 것이요,  우리로 하여금 시험하는 이 시험의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때마다 주님을 바라보는 그 눈을 돌리면 안 됩니다. '나의 사랑하고 어여뿐  자야 너의 눈은 비둘기 눈 같다 너의 눈에는 정절이 가득찼다.' 이래서, 주님이  나의 사랑하고 어여뿐 자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주님에게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을 바라 봐서,  당신을 바라보느냐? 바라보는데 시비, 의지하는데 시비, 복종하는데 시비하면서  '주여! 내가 모든 것보다도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이면 됩니다. 당신이 병든  것도 이제 치료를 하려고 하면 또 당신에게 복종하는 일이 안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당신에게 복종으로 하는 것이지만 내가 돈없는 치료를, 또 내가 의학에  가서 치료할라 해 봤자, 자꾸 배 째고 짜다라 그래 봤자 안 되는 치료를, 주님이  내게 돈 줬기 때문에 돈 줘서 하라 하는가 싶어서 가서 돈 가지고 해도 안 되고,  또 째 봐도 안 되고 이런 것이니까 이것은 다른이가 할 능력이 없고 당신만이 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이제 판명이 됐고 당신이 책임졌고, 다른 데 의탁을 시키지  아니하는데 내가 나 와 가지고 다른 데 가 가지고 날뛰었으니까 잘못했습니다.'  '당신만 바라봅니다.' 하고서 바라보고,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에게만 순종해서 당신하고 친근히 해 가지고 당신의 있는 전심전력을  가지고서 다 나를 위해서 애낌 없이 다 투자할 수 있는이런 친교만 가지면,  그분이 해서 내게 유익된 것이면 다 해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럴 때에  우리에게 이제 필요 없는 병은 다 제거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 있는 건강은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서 해결을 지웁시다. 이 지우는 것은 영과  육이 다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고, 아무런 빚지지 안하고  썩씩하게 올바른 하나님의 뜻대로의 진리 방편으로, 진리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든 것을 해결을 지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서 모든 것을  결정 지우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자멸하는 길입니다. 강퍅을 가지지 맙시다. 자기 주장의  자기중심의 그 악독을 가지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사람되어야  됩니다. 이번에 다 치료 받아야 되지, 교만한 자들은 다 물리침을 당합니다.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겸손한 자가 어떠한 자가 겸손한 자입니까?  하나님이 지금이라도 자기를 죽일라면 죽이고 살릴라면 살리고, '모든 생사 화복  흥망 성쇠가 주님에게만 주권되어 있습니다.' 하는 것을 믿는 것이 겸손이요  나는 아무것도 추호도 주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당신에게 이런 자로 상대하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 맡기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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