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3 14:04
삼대절기
1985. 11. 17주일오전
본문::출애굽기 23장 14절∼17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 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이거 새벽으로 안 나오니까 또, 가르친 말씀을 또 말해야 되고 자꾸 그렇게 시간 이 더뎌집니다. 어짜든지 새벽에 나와서, 지금은 아주 말세지말입니다. 그 준비를 바로 해야 합니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 하나님 앞에 보이라 하는 것은, 구약 시대는 육체의 이스 라엘이기 때문에 남자 여자가 있었지마는 신약교회는 신령한 이스라엘이기 때문 에 우리 사람들이 구원 밖에서 볼 때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지마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구원에 있어서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딸은 없고 아들입니다. 우리가 구원 얻어서 가는 그 나라는 여자는 없고 전부 남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녀 부부라는 그런 결혼이 없습니다. 다 천사와 같이, 과거에 부부 로 지냈던 것을 다 흔적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마는 그런 것보다 초월한 온전 한 것이 왔으니까 온전치 못한 것은 절로 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하나 예를 들면은 사람들이 양자든지 사돈 간이든지 뭐 인간 척의를 말할 때는 가까운 촌수가 생겼으면 먼 촌수는 자연히 없어지고 차차 가까운 촌수를 따라서 계산하는 것입니다.
또, ‘빈손으로 내게 나타나지 마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 이 말씀을 잘못 들으면 추수 감사 절기는 모금 운동인가 그렇게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여게 빈손 으로 말하는 빈손은 물질을 가진 것은 외형이고 여게 말씀한 중심은 유월절 오순 절 장막절 이 절기에 대한 그 감격한 감격 없이 오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다시 말 하면 일 년 내내 유월절 은혜와 오순절 은혜와 이 장막절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은혜에 감격해서 이 은혜의 힘으로 일 년 내내, 장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자 기는 이런 저런 직장 생활을 하든지 뭘 하든지 이 세 가지 은혜에 감격해 가지고 서 산, 이 세 가지 은혜에 감격한 이 감사를 들고 오라 그말입니다. 감사를 가지고 오고, 감사 없이 하나님 앞에는 나타나 봤자 그까짓 거 아무 소용 없습니다. 여게 대한 진리를 깨닫고 일 년 내내, 그때 일시적으로 감사하는 그 감사를 가지는 것 도 못 쓸 것은 아니지마는 그런 것은 주님 앞에 나타날 때에 섭섭하게 하는 것입 니다. 그저 일 년 내내 밤낮으로 이 세 가지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 세 가지 은혜 에 감격해 가지고 이 감격으로 모든 언행 심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생 명이 사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마음에 여게 대한 감사함에 참 못 견뎌서 이 감사하는 뭐 표시를 이렇게 좀 해야 되겠는데 감사하는 표시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정해서 맥추절이라 또 추수절이라 이렇게 정한 그 때가 있으니까 그때에 자기가 이 감사한 표를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모든 준비도,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고 또 그것을 표시할 만한 물질의 준비도 되어 있고 하니까 그때 이제 주님 앞에 이 감사를 하는 그것이 제 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가지고 오는 많은 제물이 내게 무거운 짐이고 아무 소용없다 이랬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짐승이나 곡식 을 가지고서 제사지내지마는 천산에 있는 짐승이 다 내 것이요 땅 위에 있는 모 든 곡식이 다 내 것이요, 내가 길러 놨지 너거 기른 것이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 다.
그러기에, 이것은 다만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 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 곧 우리의 인격 전부를 다하는 그것을 하나님 앞 에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표시로 이런 물질 저런 물질을 가지고서 감 사하는 그런 표를 하는 것이지, 그 알맹이 없이 돈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 런 돈은 연보해 봤자 하나님에게 짐덩이지 그걸 가지고서, 내게 무거운 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걸 하나님께서 거게 따라서 축복을 해 줄라고 해도 하나님의 법이 틀렸고, 또 그렇게 한 걸 저는 또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안 해 줘도 그거 문제이 고, 안 해 줘도 저와 다른 사람에게 구원에 방해가 돼지겠고 또 잘못된 것을 줘도 그것이 항상 그게 구원 이루는 길인 줄 알고 그렇게 헛된 일을 하니까 또 하나님 이 저거를 속이지 안했으나 속인 것이 되어지고 말겠고, 이러니까 무거운 짐이라 그렇게, 근심 걱정이라 그말입니다.
그래서, 여게 ‘빈손으로’하는 그 말은 네가 이 세 가지 은혜를 매년, 그 일 년 내내 감사하는, 감사하는 그 감사에 못 견뎌서 감사하는 그 표로 하나님 앞에 예 믈 드리는 감사의 표를 가져오라 그말입니다. 그래서 여게서, 마귀가 주기를 ‘아, 이래 가지고 기독교는 모금 운동하는가? 하는 그런 마귀의 유혹을 여러분들이 벗 어나고, 물질만 드리는 거 가지고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도 우리가 앞으로 분교 연보할 때에, 말했습니다. 연보를 해 가지고 하나님이 연보할 것에는 반드시 씨와 양식을 더 많이 준다고 했는데 연보해도 궁핍해지면 연보를 하지 마십시오.
연보 잘못한 것이고, 또 연보를 해도 궁핍해도 할 사람은, 썩은 거 그것을 주시는 사 매수 돈으로, 또 장로 매수 돈으로, 다른 사람에게 인정해서 결혼하는 결혼 매 수 돈으로, ‘아, 그 사람 연보하고 그러는 거 보니까 야, 그 믿음이 있다. 저 그 아무것이 한테 중매해 줘서 장가보내야 되겠다’ 이 전부 흉측한 욕심, 흉측한 사 욕을 가지고 했으니까 그게 또 안 된다 말이오.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큰 그 희생의 축복을 세 가지로 해 주셨으니까 감사함으로써 내가 감격해서, 그러면 내가 감격 해서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하나님에게 이 감사를 내가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을 할 까, 하나님에게 돈을 드리면 어데다 공중으로 내던질까, 어째야 되겠소? 하나님에 게 자, 감사해 돈 드릴라고 하면 어째야 되겠어??○○○씨 한번 생각해 봐. 어짜 꼬? 길가에다가 내 버려야 될까, 공중에다가 휙 하나님 받으십시오 이래 버릴까, 우표를 붙여서 보낼까, 어떻게 하겠어?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작 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말씀했기 때문에 ‘아, 이거 가 지고 내가 이 은혜 보답을 사람, 나도 사람을 구원하는 이 일에 해서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 첫째는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격해서 나도 하나 님에게 대우하는 감사의 이 사은의 일을 해야 되겠는데, 사은의 일을 어데다가 할 까? 당신의 소자에게 하라 했으니까 이제 인간을 구원하는 데 하라 했으니까 거 게 하는 것으로써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인간 구원하는 한 방편으로 거기 다 했다 말이오. 그라면 이 연보가 바로 됐어 안 됐어? 고라면 바로 됐어 안 됐 어? 바로 됐어.
바로 됐으면 하나님이 뭉떵뭉떵, ‘아, 하나 네가 바로 했기 때문에 둘 주겠다. 둘 바로 했으니 셋 주겠다.’ 그래서 먼저 분교 연보했는데 분교 연보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 뒤에 모든 것을 조금씩이라도 자꾸, 눈으로 둘러 보고서 이래 쪼매 더 주시고 이래 자꾸 불켜 주시는 것이 있거들랑은 연보하고 그거 없거든 하지 말아요. 하지 말아요. 안 해야 돼요. 그런 연보, 외식 연보 하면 자꾸 자꾸 시험에 들어요. 하지 말고, 먼저 연보한 것도 아마 이거 잘못됐다. 잘못된 걸 찾아요. 잘못 된 걸 찾아서 ‘아, 내가 연보는 하기는 했는데, 물질은 바치기는 바쳤는데 잘못돼 했기 때문에 이걸 회개합니다.’ 이제 물질은 바쳐 놓은 거니까 바쳐 놓은 사후라 도 이제 그것을 뜯어 고친다 말이오. 하나님께 미결로 됐기 때문에, 고것을 다 뜯 어 고쳐서 하나님 보시기에 인제 됐다. 네가 고 방식으로 네가 내가 준 것을 사용 을 하고 고렇게 해라. 사은을 고렇게 해라. 고 방식으로 해라 하고서 고 방식을 바로 되찾으면 연보는 안 했는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왜? 그전에 연보한 그 신용을 보고서 하나님이 새 자본을 주신다 그거야. 그러면 새로 또 살렸어요.
그래 가지고 분교 연보하는데 연보했으니까 보면, 자기가 뭐 한 거 보면 알 거라.
그래서 모두 거석한 사람들은 자꾸 기적으로 삽니다.
어떤 교회는 내가 말 들어 보니까 아, 그 사람이 예수 찍해야 뭐 믿다가 낙심하고 이라다가 뭐 두 달 믿었대요. 두 달 믿었는데, 아, 이거 밥을 못 먹은 사람이 두 달 믿었는데. 그 장사 그거 해 가지고 안 된 장사지마는 배운 도적질이라고 그거 밖에 못 해서 하는데, 이, 두 달 믿었는데 처음에는 영 공으로 이라더니마는 두 달 믿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그게 거석해 가지고서 하루 뭐 하루 몇천 원 벌다가, 그 다음에는 자꾸 또 올라가더니만 만 원을 벌다가, 그 다음에는 하루 뭐 삼만 원까 지 올라가서 삼만 원까지 벌다가 자꾸 이래 올라간다 말이오. 하나님이 모든 거 하시면, 당신에게 딱 들어맞으면 마구 모든 거, 천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네 가 도적질하지 안하고, 일곱 가지 도적질하는 것을 가르쳤는데 일곱 가지 도적질 을 하지 안하고 네가 아주 온전한 물질 생활해라.’온전한 십일조 드리라, 그말은 온전한 물질 생활하라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이라면 내가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이 부어 주나 안 주나, 네 창고에 복을 쌓을 곳이 없이 부어 주나 안 주나 봐라.’ 이랬습니다. 시험해 봐라 이랬어.
그러기 때문에, 구역장들도 그래요. 구역장도 이걸 알려 줘야지. 보자. 네가’ 저거 는 몰라도 딱 구역장이 고 경제 생활을 딱, 자기는 안 되니까 할 수 있다 말이오.
고거 딱 거석해 가지고서 ‘네가 경제 형편이 지금은’ 예를 들면은 ‘오십 점밖 에는 안 된다.’ 예를 들면, 평가해 보고 오십 점밖에 안 된다. ‘보자. 요번에 건 축 연보를 네가 힘껏 했는데 경제 형편이 오십점 실력밖에는 안 되는데 올라가는 가 보자.’ 오십 점된 그대로 있거든, 그대로 있으면은 눈을 떠야 됩니다. ‘아, 요 거는 연보를 바로 못 했구나. 연보하는 데에 온전한 연보를 하지 안하고 요 못된 더러운 것이 섞여 있어 가지고 연보가 헛일 됐구나.’ 고걸 알아서 그 사람에게 고걸 말하지 안해도 연보할 때는 자꾸 깨끗이 하도록, 하나님 앞에 합격이 되도록 이렇게 자꾸 가르쳐야 된다 말이오.
가르치고, 요 사람은 보니까 오십 점 이 육십 점이 됐구나. 말한다 말이오. ‘네가 연보를 할 때는 네가 오십 점인데 지금 얼마지? 네가 육십 점된 줄 아느냐?’ ‘예, 압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네가 자꾸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바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또 새 양식을 주신다는 그 말씀이 네게 믿어지느냐’ ‘예' 믿어지고 어짜고 `하나님께서는 뭐 말씀하신 대로 호리도 변함이 없습니 다.’ 자기가 백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호리도 변함이 없습니다' 확신이 있 어 한다 말이오. 그러면 그게 솔솔하니까 자꾸, 그래서 만들어 가지고, 거지 식구 를 만들어 가지고서 거지 식구가 차차차차 이제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고, 또 병 신이 차차차차 건강한 사람이 되어지고, 우매무지한 미련한 것이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지고, 순 쓰지 못할 인종지 말자가 차차차 쓸모 있는 사람이 점점 돼지고, 자 꾸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목사가, 거지를 부자 만드는 게 목사요, 부자를 거지 만드 는 게 목사요? 한 번 대답해 봐요. 예? 예? 거지를 목사 만드는 거. 이제 목사가 그래 해야 됩니다. 부자를 거지 만드는 게 목사요. 그말 알아 들립니까? 부자를 거지 만드는 게 목사라. ○○○조사님, 무슨 말인지 알아요? 예? 뭐이야? 예? 다 바치고. 다 바치고, 다 바친다 말도 맞을 수도 있지마는, 말이 말이요. 이게 사창굴 을 만들었습니다. 사창굴 업을 하고 이래 가지고 막 도적질해서 마구 죄를 거머들 여서 돈 한 푼 들어오는데 그 돈에 저주는 한 백 개나 따라 들어오는 이놈의 생 활해 가지고서 영 망치는 일을 하는데, 이래서 그런 것을 설교를 해서 잘 가르치 고 이라면은 그걸 폐업합니다. 그러니까 자, 도둑질해서 하루 저녁에 수입이, 도둑 질해 가지고 하루 저녁에 수입이 십만 원이 있던 도둑질을 그걸 먼저 다 없애서 하루 저녁에 돈 한 푼도 그거는 수입이 되지 안하고 이제 그런 수입하던 그런 거 다 없애 버린다 말이오. 그라니까 부자를 거지 만든다는 말이 맞소 안 소? 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가정을 버려라, 세상을 버려라, 하는 게 그겁니다. 버리고 난 다음 에는 그라고는 또 세상을 잡아라. 세상을 잡아 가지고 이용을 해 먹어라. 이용을 해라 또 이랍니다. 그래 가지고 이제, 목사가 거지를 부자 만든다 말은 이와같이 진리로 처리해서 거지 만들어 가지고, 그 다음에 이제 곤란해도 곤란 당할 줄도 알고 절약할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은 밥하고 채소하고만 먹지마는 나는 갈비 없 이는 못 먹습니다’ 이랬는데, 이놈을 빠짝 말려 가지고서 이제는 ‘아이구, 다른 사람이’ 밥하고 먹을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밥만 못 먹으니까 보리밥도 먹고 이 와같이, 그저 밥하고 소금하고만 먹어도 먹을 수 있는 이런 사람을 떡 만들어 가 지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차차차차 귀골을 만든다 말이오. 차차 귀골을 만 들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요.
그래 가지고 나중에 가 가지고 아주 고렇게 바짝 쫄아져서 아주 뭐 이렇게 아주 낮아졌는데 그래도, 어짤 수 없어 하나님이 그래 하니까, 뭐. 고래도 죄 짓지 안하 고 ‘내가 지금이라도 솜씨를 한번 거짓말 한 마디만 하면 뭉떵 한 주먹 가져올 수가 있고, 죄 한 번만 지으면 할 수가 있고, 사기 한 번만 하면 할 수 있다. 있지 마는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이제는 내가 죄를 먹고 마시지 않겠다.’ 이래 가지고 서 고렇게 깨끗하게 요렇게 닦아 가지고서 요래 사니까 차차차차 하나님이 조금 줘 보니까 고게 대해서 인제 진짜가 돼서 ‘아이구 이거 참, 내가 그렇게 깨끗하 게 살라 하니까 곤고하게 살았는데 이렇게 뭐 수입되는 거 이거 순전히 주님의 은혜다,’ 이제 그 다음부터는 전부이 주님의 은혜라. ‘아, 이거 참 수단 좋습니 다.’ 다 이렇게 하니까 `어이 그런 소리 마십시오. 내 수단 아니요. 그거는 주님 의 은혜지. 내가 아는 대로 내 수단이나 내 기능이나 그런 거 아니요, 순전히 하나 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제 전적 주님에게 영광 돌릴 수 있는 그 사람이 됐 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수입한 그거 가지고서 죄를 짓겠소 하나님의 뜻대 로 살겠소? 이렇게 모든 면에서 우리를 하나님만 바라보고 옳고 발라서 영원 무 궁토록 해와같이 빛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계획하는 것을 인 간들이 유치하고 인간들이 무지하기 때문에 이것을 모른다 말이오. 몰라도 하나님 은 자꾸 그렇게 해요.
이러니까, 자, 옳은 목사가 일차적으로 이 부자를 거지 만드는 그것이 일차 착수입 니다. 알겠습니까? 일차 착수. 예수 믿는 것이 부자가 거지되는 것이 첫 순서라.
부자가 거지되는 것이 첫 순서. 그 거지되고 난 다음에는 장 거지로 지내요? 거지 되고 난 다음에는 또 부자되는 것이 그 다음 이차 순서라 그말이오.
그래서, 구역장이 딱 보고서 ‘너는’ 이제 만일 고거 자꾸 통계를 보니까 환하이 안다 말이오. 제게 확신이 나와야 돼요. 확실히 보니까 경험해 보니까 그렇거던.
그러면 담대히 할 수 있어. ‘너는 지금 네가 요래 살기 때문에 너는 앞으로 지금 네가 스스로 거지가 안 되면 하나님이 강제로 거지를 만든다. 스스로 거지라니? 네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게 살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죄의 방편으로 네가 모든 걸 풍성하게 살던 그 생활을 네가 스스로 회개하여서 이제는 할 수 있 지마는 네가 하지 않는 그것이 스스로 거지되는 거라. 스스로 거지가 안 되면 하 나님이 강제로 거지 시킨다. 나중에는 자꾸 그라다가 자꾸 고치지 안하면 그때는 그짓 해도 안 됩니다. 그짓 해도 안 되도록 해 가지고서 곤고하게 만들어 버려.
곤고하게 만들어 가지고 그때는 아무리 할라고 해도, 죄를 지을라 해도 죄 지어도 안 된다 말이오. 나중에 죄 짓고 나면 그 사람 가둬 버려요. 하나님이 감옥에 갖 다 집어넣어 버려 가지고, 그래 가지고 애통히 회개를 한다 그말이오. 이렇게 하나 님이 만드시는 하나님이라.
이러니까, 이제 설교를 해 가지고서 스스로 거지가 되도록 만들고, 인제 거지뿐 아 니라 다른 것도 말이요, 이제 하나 말하면 딴거도 다 그와 같애. 스스로 등신 만들 고, 스스로 등신 만들고, 스스로 등신이 안 되면 강제로 등신을 만들어. 그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스스로 등신된다는 것은 ‘아, 나는 참 무능하다. 나는 무지 무능하다.’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 줄로 스스로 깨닫고 하지 안하면 나중에 가서 참말로 정말로 했는데 안 되고 했는데 안 되니까 자기는 자신이 없 는 그만 그런 아주 무지 무능자가 딱 돼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만들고야 만다.
스스로 거지되고, 스스로 가난한 자, 스스로 약한 자, 스스로 무지 무능자가 되도 록 만들고, 스스로 무지 무능자가 되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을 믿고 바라봄으로 그의 뜻대로 삶으로 그분이 축복과 기적으로 도와 주실 그분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자꾸 이와같이 이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게, 이거 얼마나 거석했는 데 시간이 많이 가서,
그래서 오늘 아침에, 또, 그래서 빈손으로 오지 말아라 하는 요 말을 모를까 해서 지금 말한 것이오.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것은 돈 가지고 오라 말이요, 이제 네가 이 세 가지 큰 은혜에 대해서 감격 없이 오지 말라 말입니까? 뭐이요? 돈 없이 오지 말라 말이요, 감격 없이 오지 말라 말이요? 감격 없이 오지 말라 말입니다.
그러면 감격 있는데, 우리는 하도 외식이 많기 때문에, 감격하지마는 감격하면 그 뭣인가 표시가 나지마는 이제 그 감격 없으면 표시가 없다 말이오. 네가 감격하지 마는 입술로만 가지고 하느냐? 진정 감격해서 감격의 표시가 있을 수 있도록 그 런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라 그말입니다.
시간이 다 돼 버려서. 인제 하나만 조금 말하겠습니다. 유월절은 어떤 절기냐? 하 면은 유월절은 환난 절기입니다. 그 애굽 나라에 전멸 재앙이 내렸으니까 환난 절 기 아니오? 환난 재앙인데, 환난 재앙에서 이스라엘은 해방을 받았고, 자유를 얻었 고, 또 뭣 얻었습니까? 또 하나 얻은 거 있지. 또 뭣 얻었어? 예? 부강? 예. 보물 얻었어. 뭐 금도, 주인, 주인 그 보석 반지 끼고 있는 거 ‘나 보석 반지 안 주면 안 갈란다.’ 아이구 얼른 보석 반지 주면서 보낸다 말이오. 그때 애굽에 있는 보 물은 이스라엘이 싹 다 가져 나왔어. 사백 년 동안 종질해 놓은 값을 싹 다 받아 가지고 나왔어.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라. 이러니까 이제 이 유월절은 환난 절기인데, 환난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해방을 받고, 또 환난을 통해서 이스라 엘은 자유를 얻고, 환난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부강되는 것이 이것이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가 있었는데 신사 참배로 말미암아, 신사 참배로 말미암아 해방을 받았어. 신사 참배로 말미암아 세상에 붙들려서 이 욕심에 붙들리고 이 허 영 허욕에 붙들리고 이 세상에 붙들려 가지고 세상이란 감옥 속에 딱 들어 가지 고서 도무지 자유하지 못하던 자가 이제 세상에 붙들렸던, 신사 참배로 뭐 죽이니 마니 하니까 아이고 돈이고 사업이고 아무것도 안 보이오. 다 내놨어. 알겠습니 까? 그때에 신사 참배의 환난을 통해서 다 내놨어.
6.25에 그 이북 사람들은 이북에서 그 공산주의의 큰 탄압 속에서 이제 월남하면 서 그때 거의 다 해방을 받았습니다. 해방 받아 모두 다 하는 말이 무슨 말하는 게 아니라 옷이니 뭐이니 다 그것을 냅두고 오니 소용 있습니까? 뭐 못 가져오니 까. 도가지를 묻고서 금을 거기 갖다 넣어놨대요. 넣어 놔 가지고 오면서 이제 기 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는 내가 월남하면은 내가 옷 두 벌 을 가지지 않겠습니다. 한 벌만 가지고서 나머지기는 옷 없는 사람에게 주겠고 내 가 땅에다가서 보물을 쌓아 두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라면서 다 회개하고 넘어왔더래요. ○○○목사님은 그때 이북에서 넘어왔소? 넘어올 때 그런 각오 안 가졌어요? 다 가졌어. 가지고 왔는데 또 여기 와 가지고는 또 털어 없애 버렸어.
여기 와 가지고는,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보니까 여기 와 가지고는 또 국제 시장에서 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막 돈을 집어오니까 아예 이북 사람 근방에는 가지도 안할라고 해요. 어떻게 뭐 수단 방법 가리지 안하고 흉측하게 그 라는지. 돈은 모았지마는 신앙은 파이라. 이북이 매맞은 거 또 이남에다 또 매맞 을 수 있는 유물주의로 산다 말이오. 그러니까 연보는 잘하지마는 이제 그런 일이 있다 그거요.
환난을 통해서, 환난을 통해서 해방을 받는 것이 기독자요, 환난을 통해서 자유를 받는 것이 기독자요, 환난을 통해서 부강해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그러니까 이거 뭐 왜정 말년에, 주 남선 목사님은 아무것도 아닌데,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문에 육 년 갇히고 있는 동안에 모든 거 다 해방 받았어. 세상에 이런 데 저런 데 얽매 였던 걸 다 끊어 버렸고, 또 자유, 자유가 뭐이냐 하면 ‘영감과 진리대로 이제 죽 어도 살겠습니다’ 하는 그 자유 받았지, 그라고 난 다음에 거게서 하나님이 부강 을 주시니까 그때 남한에서 이런 목사가 됐다 말이오. 그전에는 찌끄러기라. 목사 로 알아 주지도 안해요. 알아주지도 안했는데 그게 뭐이냐 하면 목사로서 보물 받 은 거 아닙니까? 부강 받은 거 아니오? 알아 듣겠어요? 알아 들어요? 부강 받았 어.
그러니까, 유월절은, 이 기독자는 환난을 통해서 해방과 자유와 그 부강을 받는다 요것을 우리는 늘 기억하고, 또 유월절 환난에는 중요한 것이 뭐이냐 하면은 양의 피가 중요한 것입니다. 양의 피가 중요해. 양의 피가 중요하고, 양의 피는 예수님 이 모든 대형, 대행, 대화친한 그 대속의 공로를 믿는 게 필요해요. 날 이래 했다.
이거는 믿음으로 돼요. 아무 공로도 없고 믿음으로 돼요.
믿음으로 되는 거 피가 제일 중요하고, 고 다음에 둘째로 중요한 것은 뭐이 중요 하냐 하면은 양의 고기가 중요해요. 양의 고기, 양의 고기가 뭐입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이라. 예수님의 피와 살이, 해방자는 양의 고기를 먹어야 이제 해방을 하지 양고기를 먹어 가지고서 얻은 힘이 아니면 못 해요. 해방은. 그런데, 그러면 양의 고기는 뭐이냐? 오늘로 말하면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말씀 하신 거와같이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살 찢고 피를 흘려서 나를 구속해 주신 그 구속을 자기가 자꾸 연구하고 새김질하니까, 새김질하니까 뭣이 배가 부르냐 하면 은 자꾸 새김질하니까 이제 애굽에서 나올 애굽에서 해방되니까 자유 아니오? 자 유 아니오? 그 자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자유할 수 있는 힘이. 그걸 먹으니까, 자유할 힘이 없으니까 곤드레 곤드레 하다가서 자꾸 양의 피 와 살을 먹으니까, 자유할 힘이 생긴다 말이오. 요 말 알아듣겠소? 자유할 힘이 생긴다. 이제 영감과 진리와 주님의 피로 사는 그것이 자유 생활인데 그것이, 그게 참 우리의 본능의 생활인데, 자유 생활인데 이 생활할 수 있는, 주님의 피와 살을 자꾸 연구하고 새김질하니까 이제는 나도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 하는 힘이 나옵 니다. 힘이 나와요. 그게 뭐이냐 하면은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양식을 먹는 것 입니다.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해방할 수 있는 기운을 차리게 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뭣 먹느냐 하면은 또 쓴나물 먹었어요. 쓴나물, 쓴나물 먹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뭘 상징하느냐 하면은 고난입니다. 고난을 먹어야, 고난을 먹어야 자유할 사람이 힘이 납니다. 알겠습니까? 고난에서 자유의 능력을 얻습니다. 고난에서 자유의 능 력을 얻는 것이오. 이래서. 보면 사람이 이 고난은 주님이 시키는 고난이라. 쓴나 물은 주님이 먹으라 하는 쓴나물이라. 쓴나물 먹고 나오라 했거든요. 주님이 당하 라는 고난, 영감과 진리와 주님의 피의 대속대로 살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어려워 지는 고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의 새사람은 강건함을 얻습니다. 알겠습니까?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 고난에서, 고난에서 자유 얻고, 고난에서 겸손해지고, 고난에서 하나님 앞에 환영받는 사람되어지고, 고난에서 깨닫게 되고, 고난에서, 고난에서, 죽여야 될 그 모든 옛사람의 요소는 고난에서 죽어지고 고난에서 이제 예수로 말 미암아 살 새사람의 능력은 강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 람이 고난을 피하면 헛일이오. 피하면 헛일이라.
어떤 할머니가 뭐 리어카 장사하고 있는데 자기가 ‘아, 소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라.’ 이라니까 자기가 보니까 그 길가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 데 가다 보니까 않은뱅이가 이와같이 하고 있더래요. 뭐 하고 있기 때문에 뭐 않 은뱅이가 병신이고 이래서 ‘아마 이 사람을 돕는 것이 이거 저, 소자 하나에게 하는 것이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을 자기가 힘있는 데까지 진뜩 도왔더래요. 진 뜩 도우고 나니까, 도우고 나니, 도왔는데 그날 밤에 기도를 하니까 기도가 환하게 열려서 아주 기도가 열리고 또 수입도 많아지고 그렇게 좋아지더라고.
주를 위해서 고난받는 이 고난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얻어지는 힘, 얻어지는 부 강, 변화되는 변화, 그것을 맛보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를 지고 따 라라 했어. 예수 믿는 사람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인해서 당하는 고난이라는 이고 난, 이 희생이라는 희생 이것을 피하는 사람은 예수 안에 있는 진짜를 맛보지 못 합니다. 이 쓴나물을 먹고 나와야, 쓴나물 먹어야 해방될 힘을 얻어요. 해방할 때 에 쓴나물 먹는 것이 해방할 힘을 얻는, 기운을 차리는 그 양식으로 하나님이 쓴 나물 먹고 나오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고난에서 얻은 힘, 고난에서 얻는 힘으로 이제 영감대로 자유하고 진리대로 자유하고 주님의 피대로 자유해. 피대로 살고 영감대로 하고 진리대로 살 수 있는 이 자유 생활은 고난에서 이 힘을 얻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쓴나물 먹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피가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 양고기가 둘째로 중요하고, 세째 로는 뭐이 중요하냐 하면은 그 무교병이 세째로 중요하고, 쓴나물이 네째로 중요 한데 무교병은 뭐이냐? 무교병은 이레 동안은 무교병만 먹었는데 이스라엘은 평 소에는 항상 떡 가지고 살기 때문에 거기는 떡밖에 없어요.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떡을 만들어 이래 먹고 사는데 그 떡을 만들 때에 그냥 만들어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그만 소화가 안 돼서 그 사람이 못 견뎌요. 이러니까 거기다가, 여기 기정떡 만들듯이 거게다가 누룩을 넣으면 부풀부풀하게 불어서 누룩을 좀 넣어면 이거 부글부글 괴요. 괼 때 그때 이렇게 쪄놓으면은 속에 구멍이 뻐끔뻐끔하게 이래 가 지고서 이래 먹어야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이거 먹었다 말이오. 이런데 이레 동 안은 그거 먹으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 버립니다. 누룩을 넣지 안하고 그래, 누룩 을 먹으면 그만 죽어요. 그래서 그 집에 누룩만 있어도 벌을 받아요. 아무리 떡에 안 넣고 누룩만 있어도 벌을 받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때는 누룩을 다 치우고 떡에다가 누룩 하나도 안 넣고 누룩 없는 떡을 만드니까 땐땐하니 야물아. 그떡을 먹어야 돼.
그 떡을 먹어야 되는데, 그거는 뭣을 상징한 것이냐 하면은, 기독자가 환난을 당하 는, 이 환난은 참 좋은 환난인데, 좋은 수입을 보는 환난인데, 기독자가 환난을 만 나기 전에 무슨 힘을 얻어야 되느냐? 무교병, 누룩 없는 떡을 양식으로 먹는 이 힘을, 무교병을 먹어서 힘을 얻어야 된다. 유교병 가지고 힘을 얻는 게 아니고 무 교병 가지고 힘을 얻어야 된다. 무교병 가지고 힘을 얻는다 말은 무슨 말이오? 이 것은, 우리 사람들은 합해서 하나님의 떡인데 이제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을 취하 고 사람과 더불어 사이 벌어진 거, 사람으로 더불어 서로 성글어진 거. 그런 것이 없는 것이 환난 준비에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환난 준비에 제일 중요한 거, 그 성 근 것이 없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제물을 드릴라고, 예물을 드릴라고 오다가서 누가 너에게 원 망하는 게 생각나거든 먼저 가서 원망을 그걸 해결 지우고 난 뒤에 와서 예물을 드려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거리낀 고런 것 을 낱낱이, 그 사람과 나와 뭐 거리껴 가지고 조그매라도 이래 가지고 멀어지고 벌어지고 한 그런 것을 완전히 해결 지워야 됩니다. 완전히 해결 지우지 안하면 고놈이 들어서 환난 때 그때 자유하지 못하도록 환난을 이기지 못하도록 만듭니 다. 환난에 자유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요. 그때 만일 무교병을 먹으라 했는데 무교 병을 먹지 안한 사람들은, 만일 먹지 안했다고 하면은 그 사람은 애굽에 처져 가 지고서 죽어 버리고 맙니다. 그 사람들에게 맞아 복수 생활로 죽어 버리고 말아 요. 양의 피 없는 사람도 죽어 버리고 말아요.
이러기 때문에, 환난 때에는 환난을 맞이할 환난 준비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주님 의 대속의 피공로요, 둘째로 중요한 것이 양의 고기를 먹는 것이요, 세째로 중요한 것은 뭐입니까? 예? 무교병(無酵餠). 없을 무(無)자, 누룩 교(효)(酵)자, 떡 병(餠) 자, 무교병이라고 하면 누룩 안 넣은 떡을 가리켜서 무교병. 무교병이 세째로 중요 하고, 네째로 쓴나물이 중요합니다. 다섯째로는 앉아서 먹지 말고 짐을 딱 짊어지 고 일어서서, 일어서 가지고서 먹고 그저 요이 땡 하면 출발해야 됩니다. 그래 먹 고 그걸 먹어야 되지, 그거 안 먹은 사람은 가다가 다 넘어져 버리고 말아요. 안 돼요.
그래서, 이제 무교병은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취하는 그것이 무교병이기 때문 에 어짜든지 사람에게 거리낌이 있는 것은 다 해결하고, 내가 거리낌이 있어 가 가지고서 말을 해도 그 사람이 해결 안 해 주면은, 해결 안 해 줘도 나로서는 해 결해서 하나님 보실 때 ‘해결 안 하는 것은 너는 자꾸 그 사람하고 사이가 좋게 화목을 하고 모든 것을 틔울라 하는데’ 그 사람이 지금 앵꼰하이 요래 가지고서 나는 자꾸 이걸 뻐들트리고 같이 일하자 해도 요게 요래 앵꼰하게 그러면 하나님 이 그거 아신다 말이오. 그러면, 그놈만 나쁜 놈이지 너는 괜찮다 그럴 거라, 어찌 됐든간에 사람으로서 자기가 힘 있는 데까지는 사람으로 더불어 거리낌이 없이 그 사이가 한 덩어리가 되도록, 누룩 없는 떡과같이 한 덩어리가 되도록 요렇게 똘똘 뭉친 고것을 세째로 우리가 힘을 써서 준비를 해야 되는 것을 요게 말씀해 서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그랬는데 그게 차차차 신약 시대에 와 가지고는 이 제 나중에 화목의 제물이라 했어. 화목의 제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1985. 11. 17 새벽 본문:출애굽기 23장 14절∼17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 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너의 남자는’ 하는 데 대해서 혹 깨닫지 못하는 분이 있을까 해서 거게 대해 서 증거를 했고, 또 빈손으로 보이지 마라 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모금 운동같이 그렇게 생각을 오해할까 해서 증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다 증 거했는데, 오늘 여러분들이 학생들에게 이 공과를 가르쳐 줄 공과입니다.
매년 세 번이라고 한 것은 이 세 큰 절기를 기념하라, 지키는 것은 기념하라, 우리 나라에서도 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으면 기념을 합니다. 좋아도 기념을 하고 나빠 도 기념을 합니다. 나쁜 것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기념하고 좋은 것도 잊어버 리지 않기 위해서 기념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기념날이 있습니까? 예? 6.25 기념날 있어? 6.25 무슨 행사 있어? 어떻게? 날을 정해 그날, 뭐 행사 없으면 기념이 되는가? 뭐 하는고, 그날은? 날짜야 알지. 그래. 뭐 어떻게 하든지 6.25도 우리 민족이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6.25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6.25는 우리나라에 큰 환난이 와서 많은 민족이 자살 행위를 한 그런 날이기 때문 에, 비참한 날이기 때문에 생각해야 됩니다. 또 무슨 8.15 해방을 했는데 그날은 뭐 기념합니까? 예? 그런 날도 기념을 해야 돼. 좋아서 기념하고 나빠서 기념하고 그런 걸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하고 거게서 늘 그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반성하 고 조심하고 또 자기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난하게 지낼 때의 그때 걸 잊어 버려 버리고 부요하게 지내는 것만 생각합니다. 저 옛날 그런 말이 있는데, 봉네방이라 하면은 아주 요새로 말하 면 여인숙 쳐 놓고 제일 아주 여인숙입니다. 거게는 어떤 사람들만 모였느냐 하면 은 등장꾼이라고 지게를 발이 기다랗게 해 가지고서 이제 쉬면 그만 어데든지 갖 다 놓으면 쉬어집니다. 등장꾼, 등장꾼 지게 아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제, 보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등장꾼 지게 그것밖에 모르는구먼. 아, 여섯. 그런데, 그 사 람들은 아주 참 가난한 노무자요 아주 천한 노무자입니다. 제일 천한 노무자요 가 난한 노무자입니다. 그런 노무자들이 이제 길을 가다가 한 데 잘 수는 없고 하니 까 아주, 봉네방이라 하는 봉네방은 아주 제일 하급 여인숙입니다. 그리 들어갑니 다. 봉네방에 가서 가만히 누워서 들으면 모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전부 다 한번은 잘 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 ‘나는 언제 이렇게 해 가지고서 횡재수를 닥쳐서 크게 한번 돈을 벌었고 또 한번 세월이 한번 났고 이래 높아지 고’ 좋은, 잘 살았던 것만 자꾸 지금 생각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보면 전부 다 잘 산 사람이오. 그렇게 잘 산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비참해졌습니다. 자기의 과거 에 잘 산 것만 자꾸 기억하니까 그 사람은 뭐이 생기느냐 하면은 항상 현재에서 는 불만이고 불평이고 또 마음에 낙망되어지고 또 누구 때문에 못 살았다고 원망 되고 전부가 사망만 나옵니다.
어떤 사람의 집에 가면은 조리를, 조리, 조리, 조리를 달아 놓고, 복조리라 하는 그 거 말고, 조리를 달아 놓고, 또 박지기를, 박지기를 조그만하게 달아 놨습니다.
‘아, 저거는 뭐입니까?’ 박지기, 박지기를 칠을 해서 빨가이 반들반들하게 해 가 지고 박지기를 달아 놨어. ‘저 박지기가 어떤 박지기입니까?’ ‘녜, 저 박지기 는 우리 증조가' 증조면은 조부 위가 증조입니다. 그러면 사대조인데, ‘증조가 저 박지기 가지고서 평생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밥을 얻어 자시면서 그래 가지고 참 애를 써 가지고 나중에 그냥 남의 집에 밥 얻어먹지 안하고 남을 밥을 주고 살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든, 우리 사대조가 고생한 그 고생을 우리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저거는 우리 사대조가 밥 얻어먹은 밥 박지기입니다.’ 그걸 두고서 기념 해서, 그 사람들은 부자가 돼, 자꾸. ‘우리가 그때 박지기들고 얻어먹었던 사람인 데 우리가 지금 이랬으니까 이렇게 사니 얼마나 감사하냐?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 면서, 어이구, 이거 이라면, 우리 사대조는 밥을 얻어먹었는데 우리가 너무 이렇게 윤택하게 부요하게 풍부하게 산다. 안 됐다. 좀 줄여야 되겠다.’ 또 얻어먹은 거 지가 오면은 ‘아, 우리 사대조가 그때 밥 얻어먹고 지내지 안했는가? 우리는 얻 어먹은 사람에게 후하게 하지 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꾸 그 박지기를 생각하 니까 자꾸 좋은 것만 나오요. 옛날 잘 산 것만 생각하니까 자꾸 망할 것만 나와.
그 모양으로 사람도 잠깐 접촉해 보면 옛날 잘 살던 그것만 생각하고 항상 그런 횡재수가 닥칠까 해서 그것만 생각하는 자는 평생 그거 망하고 맙니다. 옛날 고생 한 걸 생각하면서,‘아, 고생할 때 그때도 내가 살았는데 지금이야’ 참 고생한 것 을 생각하면서 그때 사람으로 겸손해지고 낮아지고 그때 사람으로 열심하고 그때 사람으로 절약하고 그때 사람으로 겸손하고 이런 사람은 잘 사는 거라. 기념이라 는 것은 그런 걸 기념하는 것입니다. 좋은 것도 기념하고 나쁜 것도 기념하는데, 여게 일 년에 세 차례 내게 보이라 하는 것은 삼대 절기를 기념하라 그말입니다.
세 가지 절기를 기념하라.
그러면, 이 세 가지 절기를 매년 기념하라는 것은 매년 그날만, 일 주일 동안인데 일 주일 동안만 그러면 그것을 생각하고 기념하라 하는 말인가? 그거 아니오. 일 년 내내 그 세 가지 절기에 감사한 그 일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다 농부이기 때문 에, 생각하면서, 농사를 지으면서 일 년 내내 그날 생각하며 농사지어요. 그날을 생각하며 농사지어. 애굽에서 우리가 그렇게 학살당해 가지고서 그때 참 몽둥이로 가지고서, 그걸 안 하면 아주 뭐 짐승 패듯이 패 가지고서 뚜드려 맞고, 맞아서 죽 은 우리 선조들도 많고 이렇게 하면서 우리가 거게서, 종노릇한 거게서 해방을 받 았다. 우리는 그때 남자는 낳으면 다 죽여 버리고 살리지 못하도록 그런, 애굽에서 압박받은 그 일을 자꾸 생각하고 그 압박에서 하나님이 그런 능력으로 구출해 주 신 걸 생각하니까 점점 자기네들이 현재에 생활하는 것이 감사가 나오고, ‘만족 하다, 만족하다. 우리 너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 하셨 으니 감사하다’ 자꾸 이게 되어진다 말이오. 인제 그게 유월절이오. 유월절, 오순절은 인간이 아무것도 모르니까 망할 짓만 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여게서 인 간이 모르는 하나님의 그 전지의 지혜의 이 십계명을 줘서 생활 법칙을 줬고, 또 그보다도 더 세밀히 신약에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우리에게 줘 가지고서 빠 진 것이 없이 뭐 이래 해라 저래 해라 하는 모든 우리의 언행 심사에 행동할 법 칙을 주셨으니 참 감사하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될런지 모르고, 이 세상에서 는, 유교에는 보면은 항상 하늘님입니다. 항상 하늘님, 천, 천, 하늘 천 자, 천, 천, 하늘 천, 하늘, 하늘. 우리는 하나님인데, 그거는 하늘, 하늘님이라 하늘님,그렇게 해도 유교에서 못 찾았고, 석가모니가 그렇게 찾을라고 해도 못 찾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로 찾은 것은 기독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바로 찾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 보여 주시니까 봤기 때문에 계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요 하나님이 열어 보여서, 열어 보여 주셔서 받은 종교라 그렇게 계시 종교입니다. 오순절, 이렇게 십계명 준 이 은혜를 감사하는 기념하는 날.
또 장막절은, 그때에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이 안보해 주신, 의식주, 모든 생명을 안 보해 준 것을 그것을 기념하는 장막절, 이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마는 은혜 중에도 이 세 가지 큰 은혜를 매일 매시 항상 생각하면서 정한 날짜에 감사하는 기념 강조일로서 일 주간 동안을 지키는 그것이 절기 지키는 것입니다.
삼대 절기. 삼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이것이 절기입니다. 세 가지 절기, 이 세 가지 절기를 그들이 기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 신구약 교회서들도 이 절기를 지키는데, 유월절은 뭘로 지켜 요? 유월절은 주일날로 지킵니다. 주일날. 주일날은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날이 요 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요, 죽고 사신 사활을 기념하는 날이 주일날입 니다. 사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은혜를 받는 날입니다. 그래서, 종자적인 날 이라, 종자의 날이라, 움싹날이라 이래서,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어느 날입니까? 우리 주일학생들은 잘 압니다. 또 주일날도, 또 주일날 스물 네 시간인데 스물 네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은 어느 시간입니까? 예배드리는 시간. 뭐 어떻게 잘 아 는지. 우리 주일학생들도 잘아요. 그래서, 주일날을 움싹날이라, 움싹이라 말은, 우 리 주일학생들도 잘아요. 그래서, 주일날을 움싹날이라, 움싹이라 말은, 씨를 심으 면 움이 안 터 나옵니까? 움이 터 나오는 거 그와 마찬가지로 그날 모든 우리의 전 생애에 발아가, 생애의 움이 트는 날입니다. 움이 트는 날. 그날 움이 터서 그 날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엿새 동안에 기릅니다. 엿새 동안에 그대로 이제 한번 실행 실천을 한번 해 봅니다. 그래, 그래서, 움싹날이라 종자날이라 그렇게 말합니 다.
이라고, 맥추절, 맥추절, 추수 감사절, 맥추는 보리 맥자, 보리 거둘 때라고 해서 맥추라 이라고, 또 추수는 가을 추 자 거둘 수 자 인제, 그런데, 오순절을 맥추절 로 지키고 또 장막절을 추수절로 지켜서 이렇게 지킵니다. 그러면 그거는 그날만 하는 게 아니고, 그날이 무슨 날인고 하니, 주님이, 우리는 이 유월절에 속한 주님 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해 주신 이거와 또 신구약 성경과 영감을 주신 이것과 또 하나님이 영과 육 금생과 내세 영원히 안보해 주시는 하나님의 안보와 이 세 가 지를 일 년 내내 생각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생각하면서. 무슨 일 할 때도 생각해 야 되고, 또 원수를 만날 때도 생각해야 되고, 또 두려움을 만날 때도 생각해야 되 고, 좋은 것을 만나도 생각해야 되고, 또 불쌍한 자를 만나도 생각해야 되고 어데 든지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자꾸 좋은 게 나옵니다. 여러분들 그거 해 봤습니까?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자꾸 좋은 게 나와요.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뭐이 나오는고 하니 생명이 나옵니다. 생명.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영생하는 생명이 자꾸 용솟음을 쳐서 푹푹 솟아오릅니다. 또 이 세 가지 만 생각하면 영원한 완전한 기능, 완전한 기능, 완전한 지혜와 능력, 완전한 지능 이 자꾸 솟아오릅니다. 또 이 세 가지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절대 보호하는 이 안 보가 자기에게 믿어지기 때문에 자꾸 평강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요 세 가지를 우 리가 잊어버리지 안하고 늘 생각하다가 생각한, 일 년 내내 생각한 표시를 뭘로 하는고 하니 이제 추수 감사 주일 또 맥추 감사 주일, 지금은 맥추입니까 추수입 니까? 녜. 지금은 추수지요. 녜, 그렇게 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일 주일 내내 생각한 것을 주일날 이제 와서 기념합니다. 주일날. 주님이 어떤 지극히 크신 분 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낮아지시고 어떻게 천해지시고 어떻게 가난해 지시고 어떻게 고난을 받으셔 가지고서 우리를 이렇게 구출하셔서, 대형해서 구출 했고 대행해서 구출했고 또 대신 원수가 되어서 화친의 제물이 되어 가지고 이와 같이 구출하신 그 일을 엿새 동안 생각하면서 내내 그래 살다가 이제 주일날 되 면은 그 행사를 자기가 실제로 그날을 특별히 기념일로서 주일날 지키면서 그라 면 주일날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데, 학생들에게 오늘 가르칠 것은, 여러분들이 이걸 가르쳐주십시오. 부장들이 말이지, 부장들이 안 나오는 부장들이 있어. 새벽 기도 안 나오는 부장들 있는데 그 안 나오는 부장들은, 여게 있는 반사 선생님들은 벌써 자꾸, 거게 대해서 한목 가르칠 수가 없으니까 그 공과를 해 놓고 자꾸 거게서 지금 더 또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가르쳐서 자꾸 이래 그 깊이 넓이, 깊이와 넓이의 이 지식을 가르쳐 주 는데 그만 부장들이 안 나와 놓으니까 엉뚱이같이 저게 처음에 시발로 움싹으로 조그매 가르쳐 놓은 그것만 가지고 자꾸 이래 말을 해 쌓아니까 밑에 있는 반사 들이 은혜가 안 된다 그말이오. ‘아, 지금 저거는 시발인데 더 깊숙이 좀 은혜되 게 가르치지는 안하고 왜 저라는고?’ 이래 놓으니까 반사들이 그만 부장을 깔본 다 그말이오. ‘부장 아마 저거 새벽 기도 안 나온 게 분명하다, 저거. 새벽 기도 도 안 나온 부장이 뭣 하며 부장이 새벽 기도 안 나와 가지고 뭣 하겠노?’ 그만 이래 놓으니까 반사들의 그만 사기가 떨어지고 용기가 떨어지고 그만 아무 재미 가 없다 그말이오.
여기 저 ○뭐꼬? 이름이 뭐꼬? ○○○이, ○○○선생이 ○○교회에 일등 반사였는 데 그만 이 서부교회로 와 버렸어. 내가 암만 못 오게 이래 해도, 못 오게 얼마나 하니까 나중에 살살 어머니가 오고 요래 가지고 기어코 그만 와 버리고 말아, 오 지 말라고 이랬더니마는. 온 이유가 왜 왔느냐 하면은, ○○○목사님이 거게 목사 노릇 할 때 말이오, 떡 그때 왔어요. 그때 병이 들어 가지고서, 병이 든 거는 믿음 의 병이 들었다 말이오. 이거 심방을 막 죽자 살자 하고 심방을 하고 이래 아와서, 오면은 반가워서, 지금 한번 목사가 보고 싶어서 ‘목사님’ 이라면, 그라면 책을 보다가 나오든지 기도하다가 나오든지 이라면은, ‘아, 심방했어?’ 이래 이라면 참 기운이 나고 `이렇고, 이렇고, 이야기도, ‘아, 여기 가니까 이런 재미 저런 재 미 이런 일이 있습니다’ 이라면 피차 양식을 먹고, ‘그래?' 참 목사는 설교할 재료도 얻고 참 은혜가 더 되고 좋을 건데, 낯이 뻘거이 해 가지고서 썩 눈을 비 비면서 ‘그래, 뭐이지? 뭐 하러 왔지?’ 뭐 하러 오기는 뭐 하러 와? 심방하고 지금 뭐 기쁜 소식 전하러 왔는데 자다가, 말하기도 싫어.’ 말은 안 하지마는 그 만 낯이 뻘거이 자빠졌다가, 누워 자다가 그만 이래 나오니까 기운이 떨어진다 말 이오.
인제, 그러니까, 그거 모양으로, ‘부장 저거 지금 새벽 기도 안 나왔구나.’ 새벽 기도도 안 나온 까짓 놈의 부장이 뭐 부장질해 가지고서 될 게 뭐 있냐 말이오, 있기를? 이래서, 부장 지금 갈자 하는 부장들 많이 있습니다. ‘부장들 갈자.’ 갈 고 싶거든 여러분들이 막 우여차 해 가지고 그만 메어 내버려 버려요. 그만 그라 면 갈아져. 백 목사도 여러분들이 갈고 싶거든 그만 그까짓 그만 여럿이 우 달라 들어 가지고 그만 메어 내버려, 그만. 메어서, ‘에, 안됐습니다.’ 메어서 밖에만 내놔도 뒤에 들어온다 할자라도 그만 목사노릇은 못 합니다. 그래 좀 버릇을 좀 들이라 그말이오, 고치라 말이오.
이랬는데, 이거 부장들이 새벽에 안 나와. 그러니까, 열심있는 부장도 그걸 좀 말 을 해 줘요. 뭐꼬? 아따, ○○○부장, ○○○부장도 오늘 아침에 안 나왔네. 늘 새 벽에 나오는데, ‘아마 오늘은 갈라 하면은, 이거 또 심방해야 되지 또 부장 노릇 해야 되지 또 분교 가야 되지 또 예배봐야 되지, 아무래도 내가 조금 이걸 사용을 마구 하지 말고 좀 제재를 해서 아껴 써야 되겠다’해 가지고서 안 나오는지 늦 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거요. 그래도 그만 떨어지면 안 돼요. 오늘 엉뚱한 소리 할란지 몰라요. ○○○집사님 나왔습니까? 손들어 봐요. 다 안 나왔을 거라. 둘이 다 안 나왔네. 둘이 같이 안 나오고 나오면 같이 나오고 그래.
그래 이 세상에는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들 있는데, 우리가 그저 안 믿을 때에 는, 안 믿을 때에는 죽는 생명 하나 가졌고, 죽는 생명 하나 가졌고, 또 기능은 점 점 망하는 기능 하나 가졌고, 망하는 기능, 또 안보는 나중에 크게 절단나는 그런 안보를 가졌다 말이오. 든든한 안보가 아니고 불안한 안보, 불안한 안보를 가졌어.
이 세 가지 가지고 사는 것이 과거 우리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생명 가진 그 생명은 하루 살면 하루 산 것만치 죽었습니다. 그 거 산 게 아니오.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것만치 생명이 짧아졌습니다. 십 년 살 았으면 십 년 산 것만치 생명이 짧아졌습니다. 칠십 년 살았으면 칠십 년 산 것만 치 생명이 짧아졌으니까 남은 게 조그매밖에 안 남았소. 생명이 점점 사는 거 같 으면 생명이 일 년 살았으면 더 클 것이고 십 년 살았으면 더 클 것이고 칠십 년 살았으면 생명이 굉장히 커졌을 것 아닙니까? 생명이 자꾸 이거는, 생명이 지금 죄로 말미암아 사형을 받은, 사형을 받은 지금 죽어 가는 생명이라 말이오. 죽어 가는 생명이기 때문에, 요거 죽어 가는 생명이라 하는 것을 부장이 똑똑히 느껴야 되고 반사가 똑똑히, ‘과연 다!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육의 생명 그거 다, 다 저 주 받은 죽어가는 생명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확실히 느껴야 된다 그거요. 죽어 가는 생명만 가지고서 안 믿을 때는 살았고, 지금 우리는 죽어가는 생명도 있고 영생을 가져서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도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죽어가는 생명으 로 오늘 살 수도 있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 수도 있고 생명이 둘입니다. 생명이 둘인 줄 알아야 돼요.
또 기능도 둘입니다. 기능도 둘. 그 하나라도 무슨 언행 심사의 행동한 기능, 언행 심사의 행동한 기능으로, 언행 심사 한 그것이 하나도 죽지 안하고 전부 영생이 되는 행동이 있습니다. 조그만한 말 한 마디 한 그것도 그 말이 영생하고, 또 조그 만한 움직인 것, 손으로 움직인 것 그것도 영생하고, 전부 영생하는 기능이 있어 서, 움직이기만 하면은 전부 영생이 되어지는 영생하는 기능도 있고, 또 하나 기능 은 영원히 멸망하는 기능도 있다 말이오. 영원히, 움직이면 멸망할 일 했소. 움직 이면 멸망할 일 했소. 한 일이 전부 멸망할 일만 했어.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육체로, 육체로 사는 사람은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영생을 거둔다’ 이렇게 말했어. 영생을, 영생을 전부 수입하는 그런 기능도 있고, 썩어진 거, 썩어진 거 죽는 거 그것만 자꾸 수입하는 그런 기능도 있다 그거요. 이것이 느 껴집니까?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은 그것은 영생하는 기능으로 살았기 때문에 영감과 진 리로 산 거는 그거는 털끝만치도 죽지 안하고 썩지 안하고 다 영생이 되어집니다.
이렇지마는 영감과 진리를 떠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말미암아 모든 생활하고 있다 말이오. 그것으로, 그것으로 사는 생활은 전부 그거는 썩어진 것입니다. 썩어 진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마음을, 마음을 성신의 감화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우리 마음으로 움직인 것이 전부 영생이 되고 우리가 성신의 감화 치워 버 리고 내 중심, 악령은 뭐이냐 하면은 제 중심의 영이 악령이요, 악성은 제 중심의 사람이 악성이요, 악습은 악령 악성으로 더불어 행동한, 행동해 놓은 그것이 악한 습관이라, 악습이라 말이오. 이래서, 악령 악습으로 생각을 하면은 그게 다 썩어진 걸 거둔다 말이오.
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안보. 예수님의 피가 안보하고 영감이 안보하고 진리가 안보하는 이 안보를 믿습니다. 이 안보를 믿고 그 안보를 받아. 그 안보 받는 것 은 영원히 죽지 안해요. 악한 것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해요. 그 안 보로 살지 안하고 이제 엉뚱한 안보로 살아. 이 세상 안보로 사는 것은 그것은 점 점 고통을 만들고 만다 말이오.
하나 예를 들면은, 노아 홍수 때에, 지금 막 비가 와 가지고서, 비가 지금 와서 점 점, 보니까 물이 자꾸 채여 올라옵니다. 물이 점점 채여 올라와. 채여 올라오니까 모든 사람들은, 물이 채여서 벌써 보니까 저 밑에 동리에 벌써 밑에 집은 물이 들 어오고 이라니까 마구 사람들이 이제 ‘아, 여기 물 들어온다. 이제 피하자.’ 산 으로 자꾸 도망 올라갑니다. 산으로 자꾸 도망 올라가는데 노아는 지금 거기 곧 물이 채여 올라오는데 거게서 지금 배에 뭐 한다고 야단을 지긴다 말이오. 배에 뭐 한다고 야단을 지겨. 이러니까, 모두 말하기를, ‘이 노아 영감, 빨리 와. 거기 지금 물 올라온다. 빨리 올라와. 지금 이렇게 막 바람이 불고 이래 야단을 치는데 지금 배 그까짓 조그만한 거 가지고 견딜상 발라서 그래? 빨리 올라와.’ 올라오 라고 고함을 지르고 안 올라온다고, 거기 아마 친척도 있었을 거라. ‘아, 저 영 감’ 할아버지니 뭐 형이니 동생이니 고함을 지르면서 올라오라고 그라고, 이거는 ‘보자. 이 배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배가 다 됐나 안 됐나? 혹 구멍이나 안 뚫 렸나?’ 자꾸 배를 자꾸 돌보고 이라고 이 사람들은 자꾸 산 위로 지금 도망가고 이라니까, 산으로 피난하고, 안보를 자꾸 산만당으로, 산만당으로 안보를 삼아서 산으로 높은 데로 올라가고, 높은 데 안보로 올라가고 이 노아는 엉뚱이같이 하나 님이 시키시는 대로 배 단속하는 안보를 합니다.
그랬는데, 나중에 어째 됐소? 나중에 보니까, 이제 물이 올라오니까 배가 드부렁이 뜨니까 ‘아이구, 저거 영감타구 저거, 원청 알아 봤지. 만날 배만 붙들고 장 그라 고 이래 쌓더니마는, 뭐 하나님이 시킨다고 또 요러며 똥똥똥 뚜드려 박고 하나님 시킨다고 또 싹싹싹 끊어 가지고 대고 또 하나님이 시킨다고 또 칠갑을 하고 자 꾸 이래 쌓더니마는 저래 뒈질라고 하는구나.’ 그만 배가 둥 뜨니까 ‘이제 저거 는 이제, 이 풍랑에 저까짓 게 견디나? 이제 저거 죽는다’ 조롱을 했을 거라.
‘우리는 그래도 이거 든든하다.' 그 높은 산이 있으니까 높은 산에 기어 올라오 니까, 물이 올라와도 자꾸 기어 올라가니까 된다. 마지막에 어찌 됐습니까? 마지 막에는 누가 피난한 피난이 바로 됐습니까? 노아 피난은 잘 됐소. 노아는 피난도 했고, 서로 네 할라고 내 할라고 하는 생존 경쟁, 생활 경쟁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바다에 몰사해 버리고 나니까 이 온 우주는 누구 것 됐습니까? 허, 이거 누가 힘 도 쓰지 안했는데 우주는 노아 것 됐어.
그 사람들은 어찌 됐지요? 그 지혜 있게 저 노아 영감타구 등신이라고서, 아, 물이 올라오면 지금 높은 데로 피해야 되지 저런 등신 짓 한다고서 그랬는데, 그래 그 사람들은 어찌 됐습니까? 어찌 됐겠지? 가만히 생각해 봐요. 차차차차 물이 올라 오니까 이제 더 올라갈데가 없어. 더 올라갈 데가 없으니까 힘 센 사람이 힘 약한 사람을 막 밟고 이래 쳐 넣고 그 위에 올라 가. 올라서면 얼마나 올라설 거라? 그 래 약한 사람을 사람들이 막 이렇게 발로 쳐 넣고 이래 가지고 그 위에 밟고 올 라갔을 거라. 광경이 환해. 그랬을 거라 말이오. 그래서 사람을 밟고 올라가면 얼 마나 올라갔겠느냐 그거요. 마지막에는 싹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노아는 하나님이 주시는 안보를 택하니까 사람들 보기에는 위험 천만했지마 는 안보만 될 뿐 아니라 큰 유업을 얻었습니다. 이렇지마는 모든, 하나님을 반대하 고, 저거 주장 저거 생각대로 하는 사람들은 저거 지혜대로, 물이 올라오니까 높은 자리로 피해야지. 그렇지 안해요? 인간은 그것밖에 없거든. 인간의 지혜와 생각대 로 한 그 피난한 사람들은 다 물 속에 매몰돼서 전멸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 리에게 하나 크게 한 심판을 보인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에는 안보도 둘이요, 또 기능도 둘이요, 또 생명도 둘이요, 요거 둘이 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 가지고 요걸 학생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줘요. 생명이 둘이다, 영생하는 생명이 있고 죽어 가는 생명이 있고, 또 영원히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영생, 영원 완전의 불변의 불멸의 것을 조성하는 기능도 있고, 이제 이거 암 만 만들어 놔 봤자 결국 그게 다 심판받고 불타고 없어져 버리고 마는 멸망을 만 드는 기능도 있고, 또 영원히 악한 것이나 모든 이런 재앙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 는 참 영원한 피난처가 되는 이 안보도 있고 일시에 사람 생각으로 이라면 피난 이 되고 좋겠다 싶으지마는 마지막에는 완전히 결국이 다 멸망해서 안보가 아니 라 불안으로 사망으로 끝을 맺고 마는 그건 것도 있다.
이제 생명도 둘, 기능도 둘, 또 안보도 둘 이제 여섯 가지가 있는데, 안 믿는 사람 들은 멸망할 거 세 가지만 가지고 살고, 안 믿는 사람도 인제 예수 믿기 시작하면 은 이 다시 세 가지 얻습니다. 우리는 여섯 가지 가지고 삽니다. 여섯 가지. 여섯 가지 가지고 살아. 여섯 가지 가지고 사는데,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해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하는 이건데,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얻은 거 이 세 가지로 살 수도 있고 첫째 아담에게서 얻은 거 이 세 가 지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얻은 거 세 가지로 살 수도 있고 둘째 아담에게서 얻은 것 이 세 가지로 살 수가 있고 이 두 가지로 살 수 있는데,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 그 말은, 첫째 아담 옛사람으로 사 는 걸, 로마인서 6장에 보면은 옛사람으로 사는 것을 완전히 죽이라 그랬어. 옛사 람을 죽이라 이랬어.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아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 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그래 시키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고 하니 새사 람으로 사는 일은 주일날에나 와서 살고 설교들을 때나 살고, 그만 설교 마치고 나서면 옛사람 그놈으로 돌아가 가지고서 전부 그걸로만 살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살아 봤자 이다음에 심판할 때에 보면은 기능은 다 죽여 버리고, 부활은 얻지마는 기능 없는 부활을 얻고 있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옛사람으로 살지 안하고 새사람 으로만 꼭꼭 삽니다. 새사람으로만 사니까 이 사람은, 다 같이 산 거 같았지마는, 다 같이 밭에서 일하고 다 같이 누워자고 다 같이 맷돌 갈고 이랬지마는 하나는 전부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다 같이 껍데기는 산 거 같지마 는 하나는 다 영생을 거두고 하나는 다 멸망을 거두고 만다 그말이오.
이런데, 자, 그러면, 이 새생명으로 사는데, 이 새생명, 영생하는 이 새생명 이 생 명을 우리에게, 이 생명력이 강하도록, 이 새생명이 우리에게 점점 충만해지고 강 하도록 할라고 하면은 뭣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거게서 생각나는 대로 살아야 돼 요? 뭐? 피. 예수님의 피로서 대형 대행 대화친했기 때문에 이를 자꾸, ‘예수님 이 날 사랑하므로 이와 같이 하셨다’ 생각하니까 이제 ‘죽어도 나는 죄는 지을 수 없다. 이제 죽어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내가 죽음이 온다고 하나님의 뜻을 어길 수는 없다. 이제는 내가 하나님과 화친돼 하나님의 아들 됐으니까 하나 님의 아들로, 화친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지, 내가 지금 뭐, 고기덩어리 생명은 이거는 죽는 생명인데, 암만해 봤자 마지막에 최종은 죽고 마는 것인데 살기 위해 그럴 수 없다’ 자꾸 이러니까, 이 세 가지가, 자꾸 삼대 대속을 생각하니까, 자, 그 사람의 모든 생명이 점점 강해집니다. 생명이 점점 강해져.
여러분들, 생명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요. 안 보이나 생명이 없느냐 있 느냐 하는 고거는 볼 수 있어. 생명이 있는가, 생명은 보이지는 안하지마는 생명이 있으면, 그 사람이 죽으니까 뭐 이래 가지고 턱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생명이 돌 아오니까 이거 뭘 에에에 이래 쌓으면서 이거 뭘 꿈질거린다 말이오. 생명이 오면 은, 생명은 안 보이지마는 생명이 활동하고 생명 운동하는 것은 보인다 그말이오.
이제 영생하는 생명도 보이지 안하지마는 이 세 가지 대속을 자꾸 생각하니까 생 명 있는 증거가 나와. 생명 있는 증거가 뭐인가? 생명 있는 증거는 죄 짓지 않는 것이 생명 있는 증거지. 생명 있는 증거는 하나님의 뜻대로 영감대로 사는 것이 생명 있는 증거지. 생명 있는 증거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 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형상대로 요렇게 사는 것이 생명 있는 증거지.
그렇지 않소? 자꾸 이게 충만해지고, 또 멸망할 기능을, 멸망시키는 기능 이놈이 자꾸 와 가지고 방해를 해. 멸망할 기 능을 죽이는 방법이 뭐이요? 멸망할 기능을 죽이는 방법이 뭐이지? 알아야 돼. 멸 망할 기능을, 자꾸 이놈을 키우는 방법은 뭐이요? 배암의 지식을 자꾸 이놈을 연 구하면, 제딴에는 박사가 되는 게 좋지마는 네가 박사 아니라 박박사가 됐다 할지 라도 너는 멸망시키는 그 기능뿐이라. 그거는 멸망시키는 것뿐이지 살리는 거는 하나도 없어. 이런데 영생하는 지능, 영생하는 지능은 어떻게 하면 영생하는 지능 이 점점 강해져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꾸 연구하고, 양심을 써서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도록 하고, 깨달은, 성경보고 깨달은 대로 행하고 또 양심 써서 영감 받 은 그 영감대로 행하고 자꾸 이래 행하면 자꾸 기능이 자꾸 강해져.
기능이라 하는 것도, 자, 사람 힘이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힘 본 사람 손들 어 봐. 힘 본 사람 손들어 봐요. 힘은 안 보여. 힘은 뭣 봅니까? 힘이, 힘이 해 놓 은 일을 보면 안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이거, 나는 이걸 들고 이라는데 아이가 와 가지고 이걸 들라고 이래 쌓아니까 못 든다 말이오. 그러면, 못 들면 ‘아, 힘이 좀 작은갑다.’ 드는 거는 `힘이 좀 센갑다.' 힘은 안 보여도 힘이 역사 하는 거 보면 안다 그말이오. 그 사람 영생하는 기능이 있느냐 하며 보니까, 그 사람이 하 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또 말씀대로 사니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척척 해냅니 다. 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 속에 들어다 던졌는데 불에서 안 타고 나온 그 거 사람이 한 일입니까? 하나님이 하셨다 말이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보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그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을 성공을 시키더 라 그말이오. 그것 보니까 그 속에 기능이, 영생하는 강한 기능이 있다 그말이오.
전능의 능력이 있고 전지의 지혜가 있다 이거요. 그러니까, 자꾸 말씀만 사모하고 영감 받을라고 애를 쓰고 말씀과 영감대로 살라고 애를 쓰니까 이제 전지 전능의 기능이 점점 자기에게 충만해진다 이거요.
안보는 뭐입니까? 안보는 이제 하나님이 크심, ‘아, 전능자가 나를 지키신다, 전 지자가 지키신다, 창조주가 지키신다, 대주재가 지키신다, 만왕의 왕이 지키신다, 만주의 주가 지키신다, 주권 개별 섭리자가 지키신다, 이분이 나의 아버지시요 나 의 주님이시다, 이분이 지키신다.’ 자꾸 이래 지킨다 이라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까 마음이 든든해져요 안 든든해져요? 자꾸 이것을 자꾸 믿으니까 든든해지요 안 든든해지요? 든든해지지. 자꾸. 이제 이거는 뭐 오는 게 아니라 이제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믿으므로 내 마음이 든든해. 믿으므로 자꾸 든든해져. 든든해지는데, 이 든든해지는 이 든든함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도록 ‘믿는 대로 되리 라’ 이랬어. 이러니까, 네가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으면 온 천하 천인 만인이 절단 나는 그 재앙 속에서라도 너는 그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한다 이랬어.
이러니까, 하나님의 전저 전능을 자꾸 믿고 믿고 믿고 믿고 자꾸 이래 쌓으니까 마음에 말이오, 공산주의의, 그것도 못 알아 듣는 모양이라. 공산주의 독침을 말하 니까 어떤 사람이 있다가 ‘독침이 뭐인데 독침을 왜 자꾸 말합니까?’ 이래. 공 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독침이란 거는 주사 같이 조그만하이, 주사같이 이래. 이래 그만 찌르고 그만 똑 눌러 버리면 그만 저는 그만 죽어 버립니다. 골로 간다 그말 이오. 이러니까, ‘이놈, 자, 이거 지금 찌른다, 찌른다, 찌른다, 네가 항복해라. 예 수 안 믿는다고 항복해라. 네가 우리편 되겠다고 항복해라. 네가 공산주의가 되겠 다고 항복해라.’ 자꾸 이래 댄다 말이오. 이러니까, 죽기가 두려워서 그래 그거 거석하는 거라.
그 독침 앞에서도 처음에는 벌벌벌 떨리지만 ‘하나님은 전능자라, 하나님은 주권 개별 섭리자라’ 이라니까, ‘이 독침 가지고 온 이 사람은 누가 만들었나? 주님 이 만들었지. 이사람을 누가 보냈노? 주님이 보냈지. 이 사람이 독침을 가지고 날 찌를라 하는 것은 이제 이것은 누가 이런 주권 개별, 독침을 가져 오게 준비하게 했고 또 걸어오게 했고 했나? 이거 주님이 주권하지.’ 이러니까, 주권하셨으니까 독침을 이래 찌를라고 이래도, 이래 떡 이래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모든 공간과 활 동계를 주권하고 계시니까 주님이 딱 ‘스톱’ 이라면 요래 가지고 더 팔을 못 게 아니라 신령한 것을 더 줘서 자기가 감격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저로 말하면 육체적으로 이 물질 주는 거 그런 것도 뭐 감사하지마는 그것보다도 진리와 영감을 주고 주의 피의 능력을 내게 주셔야 내가 만족하지 물질 그런 거 가지고는 만족하지를 아니합니다. 그거야 안 믿는 사람도 다 먹 고 사는데 뭐 활 동하면 먹고 살지 뭐 못 먹고 살까 무슨 염려가 되겠습니까? 그런 것은 줄 때에 그렇게, 제가 감사는 하기는 했지마는 속에 알맹이 감사이지 그런 데 대해서는 그 렇게 많은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한 진리, 몰랐던 진리를 깨닫게 해 줄 때는 참 감사를 하고, 내 마음이 강퍅해지는데 성신의 감화가 오면은 내 마음이 완전히 백 팔십 도 전환으로 변화되는 그 은혜를 줄 때에 참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입니다.
오늘은 이 절기에 대해서 강령되는 것을 증거할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큰 절기입니다. 제일 큰 절기로 그들이 지키는 것은 제일 큰 은혜이기 때문에 제일 큰 절기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는 뭐인가? 유월절. 유월절은 애굽에서 장자 재앙이 내려서 위에서부터 내리 전멸되는 그 재앙에서 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은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 절 기입니다. 만일 그때에 예수님의 피가 없었으면 이스라엘도 다 한꺼번에 죽었을 것이요 애굽 사람도 죽었을 것이고 애굽 땅 안에 있는 사람들은 사람이고 짐승이 고 완전히, 생명 가진 것은 전부 몰살을 했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이스라엘은 하 나님이 이 피를 힘입어서 네가 구원 얻어라 하는 이 피를, 피의 약속을 힘입어 가 지고 이스라엘들은 이 피 속에 있는 사람들은 죽지 안했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이라도 피 밖에 있는 자는 다 죽었고 피 안에 들어 있는 자는 다 살았습니다. 피 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문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다 이 장자 재앙에서 살았고 그 문 밖에 나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이라도 다 죽었습니다. 자꾸 죽으니까 이 애굽 사람들이 견디지를 못해서 어서 이스라엘을 나가라고 해 가지고 이스라 엘이 거게서 다 해방돼서 나왔을 때에 장자 재앙은 중지가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의 피로 죽음에서 생명 구출을 받았다 하는 것을, 그것을 기념하는 이 절기입니 다.
그래서, 구약의 유월절 그것이 그때부터 시작된 그 하나님의 대속으로 구속하시는 이 대속의 구속 역사를 그때는 그림자로, 실상의 그림자로, 하나의 예표로 그렇게 짐승을 잡아 가지고서 이렇게 나오다가, 유월절 그 기념을 짐승를 잡아 가지고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이런 짐승의 피로 제사드리는 이 네 가지 제사드리 는 일을 계속해 나오다가 이제 그것이 차차차차 온전함을 이루어서 유월절 한가 위 날에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를 베푸셔 가지고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하신 것 은 사죄와 칭의와 대화친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설정해 주셔서 그 공로로 인해서 우리가 이제 영생하는 새 생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유월절에 시작한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쭈욱 짐승의 피로 가지고서 대속하는 일을 계대해 내려오다가 신약 시대에 와 가지고 서 신약 시작할 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왔다.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왔다’ 말 씀하시고, 유월절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닌데 유월절 한가위 날 예수님께서 이 대속의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래서, 이 유월절은 피 절기라, 피 절기라 할 수 있고 또 생명 절기라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피로 인해서 생명을 얻는 거 육체의 이스라엘은 육체의 생명을 얻었 지마는 우리의 이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 아래에 있는 우리들이 예 수님의 대속으로써 영생하는 새생명을 우리가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로 인해서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의 감동의 능력과 진리로 우리가 새생명을 얻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중생한 것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했 는데 이 중생은 예수님의 피로 사죄 받았고 칭의 받고 하나님과 화친돼 가지고서 새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중생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 생됐습니다. 다른 걸로 중생되지를 안했습니다.
또, 오순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오십 일 되는 그날에 하나님께 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간추려서 간단하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일계명으로부터 사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도리를 주셨고, 오계명으로부터 십계명까지는 사람에게 대한 도리를 주셨습니다. 이래서, 그때에 오십 일 만에 십계명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그 십계명을 주셔 가지고서 이 계명대 로 살면 천 대까지 복을 받고 이 계명을 어기면은 삼사 대까지 망한다는, 이제, 사 람이 망하지 안하고 실패하지 안하고 성공하는 그 지능을 이스라엘에게 줬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지능을 받아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이 차차차차 지능을 보충해서 구약 성경을 주셨고 또 지능을 보충해서 이제 신약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래서, 이 오순절, 오순절은 하나님의 계명 절기라 이렇게 할 수 있고, 또 하나님 의 영감과 진리 절기라 이렇게 할 수가 있고, 또 그 절기를 지능 절기라 할 수 있 습니다. 이래서, 이스라엘이 오순절에 지혜와 능력을 받아 가지고 그 지혜대로 살 때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그들을 도와서 모든 일을 성사하게 됐고 이 지능 을 떠나는 자는 아무리 그가 천하에 제일 강자라도 이 지혜를 떠나면은 다 망하 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래서, 지능 절기라, 오순절은 하나님의 지능 절기라, 진리와 영감 절기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장막절은, 출애굽 해 가지고서 사십 년 동안 그들이 나무 가지를 꺾어서 장막 을 짓고 살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의식주 생명, 이 안보를 주셨습니다. 의식주의 안보를 주셨고 또 생명의 안보를 줘서 그들이 농사 짓지 안해도 굶어 죽은 일이 없고, 이 장막절은 그때에 농사 짓지 안하고 길쌈하지 안해도 그 입은 옷 그 한 벌 가지고서 사십 년 지내도 부족함이 없었고,
또 하나님이 만나 가루를 먹여서 농사 짓지 안해도 잘 살았고, 아무런 전쟁 연습을 하지 안해도 강대국들이 치러 왔다가는 다 그들이 패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안보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보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래 나왔는데, 오늘에는 이제 차차차차 그 안보가 우리에게 더 튼튼해지고 우리가 알게 돼서, 신약 교회에는 우는 사자와같이 악령이 저의 때가 이제는, 세 동가리, 세 동가리, 구약 때의 것은 다 지나갔고, 노아 때까지의 한 동가리, 노아 후에 또 예수님 초림 때까지의 한 동가리, 또 이제는 마지막,마지막 동가리까지 왔으니까 마귀는 지금 할 일 없습니다. 두 번 다 지나가고 한 동가리밖에 안 남았어.
이러니까, 성경에 보면은 저의 때가 얼마 남지안했기 때문에 우는 사자와같이 날뛰고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할라고 애를 쓴다고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데, 이렇게 마귀가 날뛰고 있는데 우리들이 신앙 생활 할 수 있도록 우리들을, 준비할 때에는 준비하도록 아무도 침노하지 못하도록 안보해 주시고, 준비하고 난 다음에는 네가 준비를 바로 했나 안 했나 그 실력을 심사하기 위해서 시험을 주시고, 이러니까 그렇게 마귀가 역사해도 우리의 신앙을 뺏지 못하도록 안보해 줘.
그러면, 우리의 영을 안보해 주고, 또 우리의 마음을 안보해 주고, 우리의 고기덩어리를 안보해 주고, 우리의 모든 언행 심사의 행동을 안보해 주고, 우리의 구원을 안보해서 이렇게 주시는 것은 뭐 얼마나 한지?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한 사람에게 천사를 여럿을, 한 천사가 이 천하에 있는 온 세계에 있는 군대들 힘보다도 한 천사가 더 강합니다. 그런 강한 천사가 우리 한 사람에게 몇씩 따라붙어 가지고서 지금 일을 하고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장에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삼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업신 여기지말아라, 그의 천사들이 지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항상 얼굴을 대면하고, ‘아, 이 사람은 지금 이런 의로운 일 했습니다.
아, 이 사람을, 이 사람을 위해서 저 사람이 그렇게 이 사람을 돕는 일 했습니다. 이 사람을 멸시했습니다. 이 사람을 범죄케 했읍니다.’ 낱낱이 고발한 그것이 어데 기록되어 있느냐 하면은 요한 계시 20장에 보면은 고 행동록에 낱낱이 다 기록이 되어 가지고서 있는 것입니다. 그대로 심판 받습니다. 이래서, 장막절은 하나님의 안보를 우리가 깨달아서 감사하는 기념을 하는 것이 그것이 장막절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제 간추려서 강령만 들어 말할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생명이 둘이 있습니다. 생명이 둘이 있소. 또 지능도 두 종류, 있습니다. 지능도 두 종류, 생명도 두 종류, 안보도 두 종류 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해야 합니다.
생명이 두 종류 있는 것은, 하나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입니다. 또 하나는 둘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은, 첫째 아담이 패전했기 때문에 첫째 아담의 자손은 아담이 범죄해서 정죄받은 정죄, 저주 받은 저주, 심판 받은 심판에서 다 사망의 정죄를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는 전부 다 죽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은 생명. 그래서, 죽어가는 생명이 첫째 아담에게서 받은 생명이요, 또 영생으로 점점 자라가는 생명을 받은 것이 둘째 아담에게서 받은 생명인 것입니다. 고것은 참고 절수는 로마 6장 18절과 에베소 4장 13절과 15절을 보면은 고게 똑똑히 기록돼 있습니다.
이래서,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죽어가는 생명 이 생명은, 고기덩어리의 첫째 아담에게 받은 것은, 우리가 땅에 속한 자에게 받은 것은 땅에 속한 형체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하늘에 속한 자에게 받은 것은 하늘에 속한 형체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육체의 생명 이것은 땅에 속한 생명인데 이 생명은 죽은 생명이요 죽어가는 생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루 살면 산 것만치 그만치 생명은 짧아졌습니다. 또 그 사람이 잘 살라고 애를 써서 한 오십 세까지 오십 년 살았으면 오십 년 살라고 애를 썼으니까 그 생명은 오십 년이나 튼튼하게 자랐으니까 튼튼할 줄 알지마는서도 그 사람이 칠십 년 살 사람이라고 하면은 오십 년 살았으면 벌써 오십 년은 다 죽어 버렸고 이십 년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린 아이가 나 가지고서 하루를 지냈습니다. 하루 지냈으면 그 아이는 하나님이 한정해 놓은 생명에서 하루라는 생명은 죽어 버렸습니다. 죽어서 점점, 그러기 때문에, 그 생명은 자꾸 죽고 죽고 죽어서 마지막에 다 되면 아주 이제 그 육의 생명은 완전히 죽어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느라고서 음부에 가 가지고서 대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육의 생명 첫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은 죽은 생명이요 죽어 가는 생명이라 하는 것을 이것을, 죽은 생명이요 죽어가는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거는 사는 생명이 아니오. 사는 생명이 아니고 죽어가는 생명이오. 죽는 생명이오.
이러기에, 죽는 생명이니까, 어떤 나무를 하나 척 베 놨는데, 나무를 베어 놓으니까 처음에는 뭐 벤 나무나 안 벤 나무나 생명이 청청하기가 같습니다. 같지마는서도 하루가 지나니까 시들시들하게 다릅니다. 또 한 열흘 지나니까 그만 잎사귀가 다 떨어져 버립니다.
또 며칠 지나고 보니까 빠짝 말라서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래 생명에서 끊겨진 것이 그것이 당장에는 살아 있는 거 같지마는서도 시간에 따라서, 차차차차 다 죽어 버리고, 죽어 가고 없는 거와 꼭 같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정죄로 사망을 받았기 때문에 사망 받은 데 속한 거는 시간이 갈수록이 점점 이것은 죽어져 가는 것입니다.썩어져 가는 것이오.
또 영생하도록 있는 생명은 어떤 생명인고 하니 이 생명은 자라가는 생명입니다. 에베소 4장 13절에서 15절에 보면은 이제 그리스도에게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간다, 사랑의 뿌리를 받아 가지고서 온전한 데 이르기까지 자라가거라, 온전한 건 누구냐? 그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자로 자라가는 것이 이 새생명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새생명은 뭘로 된 생명인가? 예수님의 피, 예수님의 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사죄로써는 하나님의 심판 문제가 해결되고, 칭의로써는 하나님의 인정하는 하나님의 인정 문제가 해결되고, 사죄는 정죄 문제가 해결되고 칭의는 하나님의 인정 문제가 해결되고, 화친은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가 해결돼서 하나님과 친밀히 이 친교가 되어지는,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지는 이것이 해결이 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이제 성령의 감동이 와 가지고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렸고 또 진리가 와 가지고서 우리 죽은 영을 살려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그 물은 진리를 말하고 성령은 내나 성령을 말한 것입니다.
물은, 물이 무슨 진리인가? 물을 진리라는 것은 베드로전서 1장 23절 이하에 보면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거듭난 것이 아니고 영원히 있고 살아 계신, 항상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살아났다’ 거게는 말씀이라고 밝혀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 우리가 이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우리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가 산 자가 사는 것은 뭘로 사느냐? 우리 사는 생명이 예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의 생명이 됐기 때문에 이 영생하는,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영원히 자라가는 이 생명은 어떻게 사는고 하니, 이 영생하는 이 새생명은 진리로 살아갑니다. 진리로 움직입니다. 진리로 움직이고 영감으로 움직이고 또 예수님의 피공로로 움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공로를 벗어나면 죽습니다. 피공로를 벗어나지 않고 피공로를 입고 피공로 안에서 살고, 또 영감 안에서 살고, 진리 안에서 살고, 진리의 힘으로 살고 영감의 힘으로 살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이것이 새생명이 사는 것이며 이렇게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자는, 불택자 아니고 택자도 지금 아직까지 중생되지 안하고 예수 믿기 시작하지 안한 그 사람은 내나 불택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불택자는 어떤 사람이 불택자인가? 김 일성이가 불택자인가? 김 일성이가 불택자인지 택자인지 나는 모릅니다. 만일 그 사람이 택자 같으면 무신론을 주장하고 이라다가도 마지막 숨질 때라도 회개하고서 주님을 믿고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를 안 믿는, 무신론을 주장하고 망나니노릇을 하는 그런 못 쓸 사람이라도 그게 불택자라고 우리는 단언지을 수 없습니다. 그 언젠가, 택자이면 언제 회개해도 회개할 것이고, 또 예수를 잘 믿는 사람도 잘 믿으니까 택자라 인정을 하지마는서도 잘 믿는 사람도 언제 그 사람이 낙심하고 망령을 부리고서 이제 지옥 갈란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래서, 이 불택자들이 살고 있는 죽은 생명을 가지고서 예수 믿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하루 하루 살면서 죽어가는 생명 가지고서 사는 사람 있습니다. 죽어가는 생명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점점 죽습니다. 죽어가는 생명 가지고 사는 사람. 이 사람은 하루 스물 네 시간 가운데에 한 시간은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았고, 그러니까 한 시간만 산 것이 자라갔읍니다. 고것만 제게는 남아 있습니다. 스물 네 시간 죽어가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생명을 가지고서 지금 하루 종일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죽은 생명으로 산 사람은 썩어진 것을 거둡니다. 죽은 생명으로 산 사람.
이래서, 어떤 사람은 죽은 생명 가지고 살아서 하루 사는 동안에 고만치 더 죽는 그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서 하루를 삽니다.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 하루 살아서 하루 산 것이, 하루 산 것이 그것이 죽어진 걸 마련한 게 아니라 영생하는 것을 마련해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영생하는 생명으로 점점 자라가는 그런 사람의 생애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가운에서 어떤 사람은 죽은 생명을 가지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 있고,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서 영생으로 점점 살아가고 자라가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세상 생활이 고것이 일 분이든지 일 초든지 한 시간이든지 그 사람이 죽은 생명으로 살면은 죽어져 가고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면은 영생이 이루어져 갑니다.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지식이 천하 지식이 다 반대해도 그까짓 지식은 배암의 지식이기 때문에 믿을 것이 없읍니다. 다 거짓말쟁이요.
그런고로, 우리는 고것을 첫째 계산 따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아, 보자. 내가 지금 오늘 종일 살았는데, 종일 살았는데 죽을 생명으로 살았느냐?’ 그러면 저는, 하루, 시간표를 정해 놓고 사는 사람이 그렇게 계산해 가지고서 하루 종일 그래 살았으면 부애가 나서 붉은 걸로 해서 공을 칩니다. 붉은 걸로 이래 공을 치며 ‘오늘 뒈진 생활했다. 오늘 뒈졌다. 오늘 종일 뒈진 일만 했다.뒈졌다. 뒈졌다. 뒈졌다.’공을 해.
‘오늘은 뒈졌다' 이러며, `야 이놈아, 네가 오늘은 뒈졌다. 네 수족도 뒈졌고, 네 모든 지능도 죽었고, 네게 속한 모든 물질도 죽었고, 일도 죽은 일만 했고 전부 죽었다.’ 전부 죽었어. 산 게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모세가 날 수 계산하는 것을 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한 것은 하루 종일 살고 난 다음에, 나는 죽은 생명으로 이제 죽은 일을 하고서 죽어졌느냐, 나는 영생하는 생명을 가지고서 하루 동안 오늘은 산 일을 했고, 산 일을 했고, 또 삶이 점점 견고해서 성장됐고, 생명이, 영생하는 생명이 자라서 견고해졌고 죽었고 이것이 판결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자기가 ‘아, 누구를 만나서 오늘은 진리대로 하루 종일 살았다.’ ‘누구를 만나서 오늘은 이 세상 법칙, 배암의 지식대로 살았다.’ `하루 종일 주를 위해서 살았고, 의를 위해서 살았고, 천국을 위해서 살았고, 하나님의 이 심판법에 걸리지 안할 것으로 이래 살았다.’ ‘하루 종일 땅의 것만 보고서 이와같이 살았으니까 썩은 생활했다’ 이래서 이걸 비판합니다.
비판합니까, ‘오늘 누구를 만나서, 이게 나를 망치는, 망치는, 원수 아닌 거 같으나 실상 원수를 만났구나.’ 오늘 종일 나에게 책망을 하고, 책망을 하고 이렇게 뭐 꼼짝 못 하게 하고 이래라 저래라 하니까 오늘 괴로워서 ‘에이구, 오늘 징그러운 사람 만나 가지고서 오늘 저거 참 아주 기합 단단히 당한다’ 이랬지마는
저녁에 계산을 해 보니까 ‘아, 그 사람 만나 가지고 오늘 종일 영생하는 생활했어. 영생하는 생활.’ 이렇게, 일도 따져 보고, 사람도 따져 보고, 친구도 따져 보고, 직장도 따져 보고, 모든 지식도 따져 보고, 자기의 취미도 따져 보고, ‘오늘 취미는 전부 죽은 취미, 죽은 송장들이 느끼는 그 취미, 그 재미, 그 취미, 그 영광, 오늘 한 것은 이거는 참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아주 조롱하는 것이지마는 이는 참으로 산 영광, 산 취미, 산 수입을 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생명에 대한 지식을 견고히 가지십시오, 생명에 대한 지식을. 사람을 보면 압니다. 자기는 몰라도 다른 사람, 요걸 지식을 확고히 가지십시오. 가져서, 오늘 누가 왔습니다. 와서 말하면은 ‘아, 이 죽은 자가 지금 나한테 와서 말하고 있구나. 죽은 자가 나한테 와서 말하고 있구나. 이 죽은 자가 나 죽일라고 왔다. 죽은 자가 말하고 있다.’ 죽은 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 뭐입니까? 피 없이, 영감 없이, 진리 없이 인간의 자율대로, 인간의 생각대로, 세상 법대로 하는 것이 그것이 죽은 자가 와 가지고서 나 죽일라고 달라드는 거라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에게 박하게는 못 하지마는 속으로 ‘주여, 여기 지금 죽음이 왔습니다. 날 여기서 붙드셔서 죽지 않게 해 주옵소,’이러니까,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살살 꾀우면서 진리대로 살지 못하게, 영감대로 살지 못하게, 예수님의 사죄를 더럽히고, 칭의를 더럽히고, 화친을 더럽히려고 이래 암만 해도 속으로 이래 자꾸 이래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은 나는 이거는 ‘주여, 이 마귀를 물리쳐 주옵소서,’ 이거 지금, 그 사람이 마귀가 아니라 마귀가 그 사람을 붙들고 왔거든, ’물리쳐 주옵소서' 자꾸 이래 기도한다 말이오. 기도하다가 나중에 거석하면 ‘주여!’ 해 버립니다. 이라면 그 사람이 깜짝 놀라 쿡 자빠져 버리요, 그만. 말하다 안 되면.
이래 가지고서, 또, 오늘 누가 왔는데, ‘이 산 사람은, 아주 옷도 더럽게 입고 천하고 이래도 보니까, 아, 이거는 산 사람이로구나. 영생을 가진 사람이 지금 나한테 와서 영생을 하고 있네.’ 영생을 하고 있다니? ‘아, 이 사람 아주 양복을 입고 아주 훌륭한 고관 대작인데 이 사람은 보니까, 이 사람도 영생을 가졌네. 영생하네.’영생하다니? 아, 보니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전부 진리요, 그 생각이 진리요, 영감이요, 또 예수님의 대속의 피를 입고, 사죄를 입고, 칭의를 입고, 하나님과 화친돼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 이거는 산사람이다.’ ‘이거는 죽은 사람이다. 나 죽일라고 왔다.' `산 사람하고 교제해서 내가 이 사람으로 말마암아 생명에 힘을 얻겠다.’ 요렇게 요것을 보고 나서 보면은 환하게 보입니다. 환하게 보이요. 제가 아무리 뭐 세상에 연극을 잘하고 뭐 아이들 말로 뭐 캄프라친가 뭐인가 잘한다고 쌓아도 이거는 못 합니다. 못 해요.죽은 자가 산 양으로 나타내지는 절대 못 합니다. 눈이 어두워 못 봐 그렇지 눈으로 보면은 죽은 것은 죽은 것을 환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산 자는 산 것을 환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제 영생하는 생명과 죽은 생명 요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는 것이 오늘 오전 설교의 첫 강령입니다.
또 둘째로는 지능, 지능이 이제 썩어진 것을 거두는 지능이 있고 영생을 거두는 산 지능이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지능 산 지능이 있다, 지능이 두 가지 있다. 갈라디아 6장 8절에 보면 거게 말씀하기를 ‘육신을 위해서 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썩은 지능, 썩은 지능은 뭐이 썩은 지능인가? 영생하는 지능은 뭐이 영생하는 지능인가? 썩은 지능은 어떤 게 썩은 지능인고 하니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다 없어질 그런 지능들은 다 썩은 지능들입니다. 알겠읍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울수록이 해와같이 빛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면 더 합격으로 이렇게 합격으로 통과 되고 하는, 신구약 성경 도리 이 진리의 지혜와 영감의 지혜, 성경 말씀 요 진리의 지혜와 영감의 지혜 요 지혜 외의 거는 전부 죽은 지혜입니다. 알겠습니까? 판정지우십시오.
세계의 박사의 제일 대박사가 말해도 성경에 위반된 지식이라면 그거는 죽은 지식이오. 성신의 감동에 위반된 것이면 죽은 지식이오. 이거 알아야 됩니다. 죽은 지식, 죽는 지식이 있는데 그 지식이 자기의 지식이 되고 그 지식대로 행하는 것이 능력 아닙니까, 능력?
그러면, 죽은 지혜와 지식은 뭐인가? 영감과 진리가 아닌 것은 *천하* 인간이 다 좋다고 떠들어 쌓아도 다 이것은 죽은 지혜 지식이라, 이거는 죽은 것만 만든다, 지금도 요새 원자 *세상이* 돼 가지고서 *원자* 지식이라면 세계가 이걸로 알고 하지마는서도 원자 지식이 절대로 우리를 살리지는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원자 지식이 영생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원자 지식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통과되고 예수님이 모든 만물을 체질을 다 불로 녹힐 때에, 만물이 불사뤄질 때에 그때에 타지 아니할 거 멸망하지 아니할 것을 원자 지식이 만들 줄 압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하나도 만들지 못합니다. 원자 지식이 못 만드요.
노아 때에 사람들은, 노아 할아버지는 하나님이 이제 ‘네게, 지능은 이게 지능이라. 이렇게 시키는 대로 해라.’ 하니까, 방주를 만들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조롱하고 했지마는서도 그때 홍수가 내려왔을 때에 천하에 있는, 지금보다 좀 미개하기는 미개했는지 몰라도 지금 있는 지식이 그때 종류가 다 있습니다. 지금 있는 과학이 그때 다 있소. 지금 있는 예술이 그때 다 있어요. 지금 있는 그 인걸이 그때도 다 있었습니다. 이랬는데, 홍수 속에 완전히 멸망되고 말았지 하나도 살아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죽은 지식이 있고 산 지식이 있다, 전능한 능력이 있고 또 완전히 멸망하는 멸망의 능력이 있다, 멸망의 능력, 멸망의 능력, 성공하는, 성공과 승리하는 능력, 이 산 능력이 있고 죽이는 능력이 있으니까 요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면, 죽이는 능력은 뭐이 죽이는 능력인가? 죽이는 능력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말마암아, 이 악령, 타락을 시킨 악령과 또 인간에게 자기 중심, 자기 중심의 천사와 자기 중심의 인간성, 피조물 중심으로 한 행동 하나 둘 만들어 놓은 연습, 습관, 구습, 버릇, 이런 것이 다 죽은, 죽이는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는 산 지혜 지식이 있고 또 살리는 지혜 지식이 있고, 산 능력이 있고 살리는 능력이 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죽은 지능이 있고 죽이는 지능이 있고, 산 지능이 있고 살리는 지능이 있다, 이 세상에는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이래 아는 사람이 뭐, 이거 모르면 온 세계의 학문을 통달해서 박사라도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라. 어리석은 사람이라. 요거 똑똑히 가져요. 산 지능 죽은 지능, 살리는 지능 죽이는 지능.
여러분들, 산 지능은 뭐인가? 산 지능은 내나 그것이라. 산 지능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영감이요, 성경 말씀과 영감이 증거하고 있는 피의 능력이요, 이것이 산 지혜 지식이요 또 살리는 지혜 지식이요, 또 이거 아닌 것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혜 지식이요, 이제, 내가 진리와 영감대로 내가 할 때에, 진리와 영감과 주님의 피공로로 할 때에, 할 때에 나를 도와 줘서, 나를 도와 줘서, 내가 하고 나니까 나를 돕는 능력이 있어.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믿음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는 거는 전능이라 말 아닙니까?
우리에게 무슨 전능이 있습니까? 이제 이 세 가지 지혜 지식으로 내게 있는 힘만 다 기울여서 충성만 하면은 모자라는 것은 당신이 보충하기 때문에, 전능이 보충하니까 전능을 이룬다 그말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면류관이란 말은 승리라 말을 면류관이라고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말은,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된 승리를 주겠다, 하나님하고 나하고 연결이 되니까 하나님이 가 하니 나 가, 하나님이 나 하니 나 나 하고, 하나님이 하라 하니 나 하라 하고, 하나님이 하지 마라 하니 나 하지 마라 하고, 이래서, 하나님의 지혜 지식으로 내 지혜 지식 삼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내 능력 삼은 요것이 산 지능입니다. 산 지능.
그러기에, 사람들이 죽은 지능과 죽이는 지능은 마련할라고 살림살이를 다 팔아 넣고 수건을 싸짜매 가지고서 밤잠을 못 자고 야단지기지만 네까짓 게 암만 해 봤자, 천하 지식을 다 통달해도 너는 죽었다, 너는 죽이는 일밖에는 못 한다,무슨 가치 있노? 오늘 네 생명 불러 봐라, 그 지식이 너에게 산 거 하나나 있는가? 살린 게 뭐 있느냐? 없다.
이제 산 지능, 성경 말씀 요 진리, 그 안에 들어간 영감, 영감은 하나님의 능력이오. 영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피의 능력 이 능력의 시키는 대로, 이 능력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성경이 시키는 대로 영감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하나도 죽는 게 아닙니다. 이 피의 능력이 보호하니까 다 돼 버립니다.
또 그래 하니까 이 삼위 일체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다 해 줍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그랬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은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리니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저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뭐라 했소? ‘나를' 뭐라 했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은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의 권세를 다 내게 주셨다’ 이제 하늘의 권세와 땅의 권세를 다 당신이 가지지 안했습니까?
그런데, 당신을 나타낸다 말은 하늘에 있는 거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가지신 당신의 권세를 주님이 계명 지키는 그 사람에게 통해서 나타내겠다 그말이오. 이게 전능자 아닙니까? 이 산 지식, 전지 전능의 지식은 업신여기고 배암의 지식에는 야단을 지기고 날뜁니다.
이러니까, ‘어라, 너 새벽 기도 못 가도, 시험 공부 있지? 공부 부지런히 해라,너 하나님 앞에 버림 당하든지 말든지 너는 학교서 일등만 하면 된다.’ 일등이나 합니까? 하나님께서 머리를 빽 틀어 버리니까 바보되지. 뭐 해? 암만 공부를 잘해도 소용 없어. 공부를 잘해서 서울 대학 우등으로 나왔는데 하나님이 머리를 빽 틀어 놓으니까 돌아 버렸다 말이오.
이거 괜찮기는 괜찮은데 가다가 한 번씩 실수하니까 그 사람에게, 큰 기술자인데 맡기질 못해. 잘 하기는 잘하는데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이나 팩 틀어져 놓으면 그만 엉뚱한 짓 한다 말이오. 빽 틀어져 엉뚱한 짓 하면 그때 다 폭발 시켜 버리고 대 깨 버릴 터인데 그 사람 쓰겠소? 못 써. 이 사람 못 쓴다 말이오. 그 사람을 컴퓨터로 딱 심사를 해 보니까 ‘요 사람은 가다가 일 년 만에 한 번, 혹 이 년 만에 한 번 대실수를 저지른다’ 아무짝도 뭇 쓴다 그말이오.
자, 있어도 소용 없지, 또 이 사람은 실수 안 합니다. 실수를 안 하고 아주 명철하고 명철한 기술자입니다. 이런데도 아무짝도 못 써. 하나님이 빽 틀어 놓으니까 요 사람이 기술자로 들어가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안 해요. 마귀란 놈이 ‘요게 요렇고 요렇고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요래 말한다.’ 이간을 붙여 놓으니까 그 사람 아무도 안 쓸라고 해. 뭐 취직할 데가 있어야지? 아무 쓸모가 없어. 아무리 일등 지식을 가졌지만 쓸모가 없어. 하나님이 망치는 길은 천도 만도 넘습니다. 여러분들! 그 길을 알아야 돼요! 천도 만도 넘은데 뉘 힘으로써 그것을 다 방지해 나갈 것입니까? 안 됩니다. 안 돼요.
이러기 때문에, 당신이 요래라 조래라 당신의 진리와 영감 가지고 하라 하는 대로 하면은 당신이 책임지고 고대로 합니다. 주권을 가지신 전지자가 나에게 시키실 때 내가 고대로 하면 주권을 가지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한 그 자대로, 그 자 시키는 대로 한 고대로 당신이 이루시니까, 당신이 말해 놓고 당신이 전능 가지고 이루는데 누가 방해하겠소? 아무도 방해 못해. 우리가 이걸 믿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부를 못 해도 새벽 기도 나와야 돼요. 학교를 못 가도 이제 주일은 잘 지켜야 돼요. 이라면서 떡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주님이여, 내가 공부를 하는데 학교 가 가지고서 꼴찌 하면 ‘저거 예수 믿는 것들, 등신들’ 이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또 집회 갈 때 꼭 가지요, 주일날 또 시험 공부 안 하지요, 이러니까 집에서 야단이고 이런데 내가 공부도 못 하고 바보돼 놓으면 이제 ‘저거 예수 믿는 놈 예수 때문에 저래 됐다’ 안 하겠읍니까?
이러니까, 주님이여 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옵소서’ 하고서 무릎을 딱 꿇고 ‘총명을 주시옵소서. 아멘’ 하고서 척 보니까 뭐 단어도 외우는데 턱턱턱 단어가 다 외워지지, 또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데 척, 사람이라 하는 것은 초지장 하나 가리워지면 모르는 것입니다. 초지장 하나 가리워지면 모르요.
발명가들이 초지장 하나 가리워지니까 몰라서 자기 당대에 못 하고 삼대에 가도 못 했는데, 초지장 하나만 가리워져 있어. 고 알고 보면은 고 초지장 한 개라. 홱 뒤비치면 돼. 이러기 때문에, 세계에 발명가 중에는 기독자가 발명가가 제일 많습니다. 기독자가 발명가가 제일 많소.
이런데, 산 기능 살리는 기능, 죽은 기능 죽이는 기능, 자, 죽은 기능 죽이는 기능을 좋아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인제 오늘 아침에 배워 가지고 아무도 안 드는데, 그라면, 산 기능 영영히 살리는 기능을 좋아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만하면 다 됐어요. 다 돼요.
요대로 실행만 해요. 실행만 하면 돼요.실행만 하면 돼. 하나님은 거짓말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마디도 거짓말 안 해. 그분은 당신이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 못 해요. 사람도 좀 인격이 있는 그런 사람은, 수양한 사람은 자기 양심을 속이지 못합니다. 자기가 어떻게 천해져도 양심 속이는 일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자기가 곤고해도 한 번 그 사람과 약속 맺은 것을 어기지 안할라고 합니다. 그것보다도, 그 사람에게 책임지고 그 사람이 내 말을 듣고 나를 전적 참 믿고서 내게 순종해서 내 지도를 받았는데 내가 잘못 지도해서 그 일이 낭파됐습니다.
그러면 뚝 시침 떼고 난 다음에 ‘내가 언제 그래 시키더나? 내가 그래 안 시켰지.’ 이렇게 말하면 그런 건 죽여야 됩니다. 그거 죽은 인격이라, 죽은 인격. 딱 자기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러면, 자기 힘이 없으면 사과합니다. ‘아, 이거 내가 그걸 그렇게 지도했는데 내가 지도를 잘못해서 이거 참 이거 낭파됐으니까 내가 죄송하다’ 막 무릎을 꿇고 빌어야 될 것이오. 자기에게 힘이 있으면 그 일을 다 책임진다 말이오.
‘내가 잘못 시켜 가지고, 나 시키는 대로 꼭 했는데 요래 됐으니까 내가 책임진다.’ 제 살림을 다 떨어도 그 책임진 걸, 지도해서 저만 바라고 따라오는 그 사람을 지도해 잘못됐으면 그걸 책임지고 배상을 해 주지 그냥 마는 그는 인간 아닙니다. 사람들도 좀 인격자라면 다 그렇소.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여러분들, 제가 사람돼 본 사람은 알 수가 있어요.
시킨 데도, 시킨 데도, 시킨 것 중에 아홉 가지는 시키는 대로 해 놓고 한 가지 엉뚱한 짓 했으면 일이 되겠소 안 되겠소? 자, 일이 되겠소 안 되겠소?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지도할 때는 아무나따나 이래 지도 안 해요. 아, 내가 잘 똑똑히 모르겠는데 요 일로 말하면 요렇지만 내가 똑똑히 모른다.
왜? 자기가 하나도 숨기지 안하고 속에 있는 걸 다 나한테 다 말하지 안하니까 그거 전체를 내가 모르니까 전체면에 대해서 내가 지도를 할 수가 없다. 네가 지도를 받을라면 네게 있는 그 사실을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를 다 말해라.’ 전부를 다 말하면 전부에 대해서 요거는 요렇고 요렇고 지능 있는 사람이 지도해 줄 수 있다 그말이오.
그러나, 거게서 하나는 말하기 싫으니까 하나는 숨겨 놓고 다른 거 아홉 가지만 딱 말 했으면 아홉 가지면, ‘요게 전부냐?’ ‘고게 전부입니다' 아홉 가지만 대해서 대비했는데 한 가지는 말하지 안했기 때문에 한 가지에 대해서는 지도를 못 했다 말이오. 한 가지 그게 구멍이 나서 빵구가 났어. 구멍이 나 버렸어.
자, 폭탄, 여러분들 여러 수십 톤 되는 폭탄 위에 요만한 구멍 하나 나면 폭탄 그게 폭발돼요 안 돼요? 폭발돼요 안 돼요? 폭발이 이래 돼요. 쉭 그래요. 쉭 그러고 그만 꽝 안 그래요. 거게 구멍이 없어야 되지. 이렇게 하나님의 지도를 처음에서 끝까지 올바로 받아 놓으면 전능이라.
이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기적으로 살아요. 기적으로 살아요. 축복으로 살아요. 시키는 대로 하고 보니까 작은 사람이나 큰 사람이나 모두가 다 ‘아 이것도 기적이다, 저것도 기적이 모두가‘다 기적이라. 낭파같이 보이는데 그게 더 잘 됐고, 다른 사람이 모두 다 ‘야, 이 사람아 그거 낭파당했네.’ `주님은 낭파당하게 하지 않는다.’ 속으로만 가지고서 고대로 해 보니까, 낭파된다 했는데 좀 있다 와 가지고 말하기를 ‘야, 그거 낭파인 줄 알았더니마는서도 그게 오히려 잘됐네.’ 몇 번 그래 보다가 ‘이 사람이 하는 일은 기적이라. 하나님이 함께 하셔.’
이러니까, ‘아이구, 우리 자손하고 너거 자손하고 서로 대립하지 안하도록 서로 화친의 화의를 하자,’약속을 맺었어.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 이삭에게 찾아온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찾아오는, 이 모든 사람이 이 장래가 훌륭하고 장래가 잘될 터이니까 저분들 아니면 안 된다 해서 두려워하고, 멸시하지를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업신 여기지 안하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업신여기는가 봐 보십시오. 안 업신여깁니다. 업신여기는 것은 소금이 맛을 잃었기 때문에 업신 여겼지. 맛 잃은 게 뭐입니까? 맛 잃은 것이 뭣이지요? 맛 잃은 것이, 자, 몇 가지 잃은 것이 맛 잃은 것입니까? 손 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잃어 버린 것이 맛 잃어 버린 것이오? 저 뒤에는 하나도 모르네. 뻐뜩 들어 봐요. 예, 됐어. 요 세 가지. 내나 그거라.
진리 영감예수님의 피공로 잊어 버리고 사는 그것이 맛 잃은 거라. 그걸로만 살면은 쓸 데 없는 거 반대로 쓸모 있고, 밖에 버리는 거 반대로 중앙으로 자꾸 모셔 들이고, 사람에게 밟히는 거 반대로 사람에게 존대 받아요.
이러니까, 이제 우리는 죽은 지능과 산 지능이 있다, 죽이는 지능과 살리는 지능이 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돼요, 이거. 우리가 뭐 능력이 있읍니까? 당신 말씀대로 순종하면 전능이 책임지고 해 주마 했거든.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지.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성공 안 되는 게 없다 그말이지.
또 한 가지는 이제, 지능을 말하는데 지능은 무슨 절기에 속했어요? 지능은 무슨 절기에 속했어요, 지능은? 오순절 절기에 속했어, 오순절 절기.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과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전지 전능입니다. 전지 전능이오.
이제 세째로는 장막절. 장막절은 하나님의 안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잘못 준비를 시켜 가지고서 완전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거짓 안보가 있습니다. 잘못 준비를 시켜 가지고서 완전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거짓 안보가 있어. 이 세상에 거짓 안보가 있어. 거짓 안보가 어떤 거냐?
곧 노아 홍수 때에 노아 외의 사람들은 전부 마귀란 놈이 거짓 안보를 안보라고, 네가 돈이 있으면, 안보된다. 지위 있으면 안보된다. 권세 있으면 안보된다. 신체 건강하면 안보된다’ 떠들어 쌓았는데 암만 해 봤자 소용이 없어.
이 속이는 안보, 잘못 안보는 노아 때에, 노아 홍수 때에 노아는 하나님의 안보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야, 방주 모아라. 일생 동안 방주 모아야 네가 평안하게 살 수 있다. 방주 모아라’ 이라니까 방주만 모았는데 다른 사람은 있다가 ‘저 영감탕구, 만날 방주 먹고 살 거가?’ 조롱을 했다 말이오. 조롱을 했는데, 노아 홍수가 떡 옵니다. 홍수가 오니까 이제 그래도 뭐 친척은 있으니까 안 됐어서 ‘아, 노아 영감 어서 오너라. 형님 어서 오소. 뭐 동생 어서 오라’ 자꾸 오라고 한다 말이오.
오라고 하니까 이 영감은 가지도 안하고 자꾸 배만 돌아봅니다. 뭐 비는 오고 있어서 물이 출렁출렁 자꾸 지금 배에 가까워 오고 지금 뭐 풍랑이 막 바람이 불고 이러니까, 거기에 뭐 그보다 큰 배도 다 절단났는데 그까짓 배가 견뎌내겠습니까?
이런데, 어서 오라고, 지금 저 풍랑에 배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고서 야단을 지기고 이래 고함을 지르니까 이 영감탕구는 그것도 안 보고 자꾸 ‘보자, 여게도 하나님 말씀대로 됐나? 됐나?’ 자꾸, ‘됐나?' 창세기 6장에 보면은 하나님이 명령을 하신 대로 고대로 다 시행을 해서 만들었다 고래 놨어. 고라고 난 다음에 왔거든. 이것만 본다 말이오.
보는데, 이제 와 가지고서 출렁거리니까‘하, 저 영감 저거 참 등신이네.’ 자기네들은 이제 높은 언덕으로 자꾸 실실 기어 올라가니까 물이 안 오거든. ‘곧 빠져 나가지. 설마 이 산이 다 잠기도록 오지는 않겠지.’ 이래 올라가니까 괜찮은데 노아 영감은 지금 이라다 보니까 그만 물이 와 가지고 배가 떠밀려 간다 말이오.
이러니까, ‘아이구, 영감쟁이 저거 죽었다. 하이구야, 할 수 없다. 인제 죽었다. 뒈졌다’ 이라고 이라는데 배가 덜렁덜렁 이래 떠나가니까 그 풍랑에 견디겠소? 이러니까, ‘어리석은 영감 그거 평생 배만 가지고 있더니마는 배 때문에 죽었구먼’ 이랬다 말이오.
이랬는데, 물이 철렁철렁 자꾸 올라오니까 이거는 그만 저 물에 둥둥 떠내려간다 말이오. 물에 둥둥 떠내려가 만일 근방에 있었으면, 누가 노래 짓기를 그래 지어 놨어. ‘아라랏 산 꼭대기에서 배를 모았네’ 이랬는데, 그거 잘못 노래 지었어요.
아라랏 산꼭대기서 만일 배를 모았으면 꼭대기 올라간 사람이, 밑에 전부 다 물 다 들었고 이라니까 배밖에 안남았으면 배에 달라들어서 노아도 다 죽습니다.밑에 바닥에 모았어요, 바닥에서.바닥에서 모았기 때문에, 이제 모든 사람들은 다 쫓겨 올라가 버리고, 저거, 저거 지식으로, 저거 지식으로 저거 지능으로 피난한다고 다리뼈가 성하다고 막 올라갑니다.
올라갔는데, 그리 올라가고, 노아는 배 타고, 하나님이 안보, ‘하나님의 안보, 하나님의 안보라야 안보지’하고서 배를 타고 들어갔는데, 이제 올라오니까 비가 자꾸 와서 자꾸 물이 여기 채여 올라옵니다. 창세기 7장 읽어 봐요. 자꾸 올라가니까 아마 그때 나중에, 올라가니까 사람들 다 있는데 사람 있을 곳, 그라면, 사람들이 모두 잠겨지니까 힘 세고, 힘 세고 한사람은 막 사람을 밟고 올라섰을 것이오. 안 죽을라고. ‘야, 이놈아야 사람을 밟고 올라서면 네가 얼마나 올라갈 거고?’ 막 밟고 야단을 지겼을 거라.
야단을 지겼지마는서도 외나 물이 와 가지고서 모든 사람이 다 이래 침몰되니까 이래 침몰되니까 생명 가진 거는 하나도 없이 싹 몰사했습니다. 그게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안보, 인간의 안보는 그렇게 허무합니다. 하나님 안보는 어리석은 거 같지마는서도 하나님이 내리는 재앙에 하나님의 안보라야 되지 뭐이 감당하겠소? 말세에 지금 모든 것을 불로 사룰 터인데, 불사룰 터인데,그때 여게 하나님이 주시는 피란이라야 피란이 되지 인간이 만든 피란이 소용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의 안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호와로 피난처를 삼아라, 지존자로 거처를 삼아라, 이러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고것이, 노아도 방주가 다 안보가 되어졌고, 오늘도 진리가 우리의 피란처요, 영감이 우리의 피란처요, 예수님의 피가 피란처요. 피 속에 푹 들어가 버리면 아무도 소용 없어. 해하지를 못해.
진리 속에 들어가면 근방에 오지도 못해. 해하지도 못해. 진리 속에 들어간 사람을 뺨을 때리면 손해 봤습니까? 자, 진리 속에 들어 있는 사람 뺨 때렸으면 손해 봤소 이제 상급 하나 더 장만 했소? 상급 장만했어. 진리 속에 있다고, 진리 속에 있다고, 피 속에 있다고, 영감 속에 있다고서 죽여 버려서 죽었으면 어찌 됩니까? 죽었으면 손해 봤소? 손해 봤어? 손해 봤어? 순교 됐어, 순교. 순교.
그 사람의 생명이 끝날 때가 됐으면은, 이 세 가지 피란 속에 들어 있으면 생명이 끝날 때가 됐으면 이미 끝나는 죽는 죽음 가지고서 주님과 진리와 영감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내놨기 때문에, 백지 그때, 그리 안 해도 죽는데 죽는 생명 내놨으니까 폐물 이용이 돼 가지고서 이리 폐물 이용하니까, 일생 사는 거와, 사는 것과 죽는 것이 반반인데 일생 동안 산 것 만침이나 중량이 되는 이 죽음을 이용해서 순교 안 됐습니까? 생명이 열흘이 남아 있으면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못 죽입니다. 요걸 믿어야 돼요. 못 죽입니다. 인제 고 생명이 끝나면은 사랑하는 자를 순교로 보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리석지를 맙시다.
이래서, 안보도 하나님이 주신 안보라야 돼. 하나님이 주신 안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 하나님이 주시는 재미, 하나님이 주시는 성공 전부 우리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야 이거는 완전하지 주님이 주시지 않을 것을, 주님에게 받지 안하고 죄를 지어 가면서 마귀에게 세상에게 받은 거는 전부 그게 다 화근이오, 화근. 그것이 다 화의 뿌럭지가 되고 마는 것이지 하나도 안보가 없어.
그런고로, 오순절에는 이 지능, 지능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요, 장막절은 안보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요, 유월절은 생명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니까 우리는 일년 내내, ‘주님이 영생을 주셨다’ 생각하면 얼마나 좋아요? 아무것도 아닌 게, 대통령, ○ 대통령 양아들이라고도 그때 경주에 왔다니까 사람들이 막 뻘뻘 떨고 야단을 지겼는데, 만유의 대주재, 주권자, 창조주, 자존자, 전지 전능자 이분의 아들 됐으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이분이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또 우리를 택해 놨는고, 우리 위해서 모든 만물을 다 창조했고 모든 걸 예정했고, 뭐 좋아서 미칠 지경이라, 정말로. 생각하면, 생각하면 좋아서 ‘주여 감사합니다’ 밤낮 불러 찬송해도 뭐 모자라지요. 이거 거짓말이 있습니까? 하나도 거짓말 없어.
땅 위에 있는 어떤 권세자, 뭐 카터 대통령의 아들이 됐다 할지라도 그 카터 대통령 좀 있으면 뭐 죽어 버릴 건데 무슨 소용 있소? 이런데, 이거 뭐, 자, 유월절의 감사, 오순절의 감사, 장막절의 감사. 예수님의 대속의 감사, 진리와 영감의 감사, 하나님의 이 삼대 안보의 감사 이 감사 가지고서 매일 살아야 돼요.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근심 걱정이 있는데, 근심 걱정이 있는데 그걸 딴걸로 하면 안 돼요. 언제 보니, 내가 테레비 보니까 스트레스가 나오는데, ‘스트레스를 뭘로 풀랍니까?’ 이라니까 뭐 이래 푼다 저래 푼다 하는데, 뭐 술 먹고 푸는 사람 뭐 또 놀러다니며 푸는 사람 다 있는데 어떤 사람 있다가서 ‘나는 일하다가 풉니다’ 이라는데, 그래 거게다가 푸는 것보다도,
그런 사람들은 그래 푸는데 우리는 뭘로 풀어야 돼요? 우리는 뭘로 풀어야 돼요? 뭘로 풀어야 돼요? 이 세 가지면 다 돼요. 예수님의 피로 풀어요, 피로. 주님의 피를 조금 이래 생각하고 나니까 확 풀려서 ‘주여, 죽어도 죄 안 짓습니다. 뭐 굶어 죽어도 맞아 죽어도, 죽어도 어쨌든간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배반 안 하고 하나님의, 하나님만 모시고,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뭐 하겠습니까?’ 이제 한참 예수님의 피를, 예수님의 피와 살을 좀 먹고 나니까 속에 힘이 나오는 것이 이제 그 어려움 당한 거, ‘하, 주여, 이 어려움의 천 배 만 배 어려움이 와도 문제가 없습니다.’ 어려움에 불끈 눌린 자가 뭐 어려움을 탁 차 버리니까 어데로 날아갔는지 뭐 없어져 버린다 말이오. 이제 피로 이걸 푸십시오.
또 영감과 진리로 푸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보해 주시는 이 하나님의 안보로 푸십시오. 다 풀려 버리요. 이래 놓으면 훌훌 날아가. 세상을 발 아래 밟아. 암만 세상이 뭐라 해도 뭐 상관이 없어.
그런고로, 오늘은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연보는 조금해도 돼요. 어짜든지 이 세 가지를 여러분들이 깨달아서, 이제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의 피, 나에게 지능을 주신 영감과 진리, 나에게 영원한 안보를 주신 하나님의 책임, 이것을 믿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세상과 죄와 마귀를 이기는 생명으로 우리에게 충만케 하시고, 사망과 죄와 마귀와 모든 정죄를 벗어나는 이 영영한 지능을 우리에게 주시고, 온 천하가 불로 타서 다 망할지라도 영영히 망하지 않는 영원한 안보, 오늘에도 내일에도 어데서든지 완전한 안보가 되는 이 안보를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은혜를 갑사함으로 부족하지마는서도 일생 동안 매년 매월 매일 살아온 저희들을 오늘 다시 새롭게 기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날에 주님께서 여게 대한 말씀을 주셨사오니 이 생명으로, 이 지능으로, 이 안보로 모두 충만한 저희들이 되게 하사 세상을 발 아래 밟고 완전히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이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렇게 많은 형제들을 주님 앞에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이제는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들은 모르지마는서도 영원 전부터 작정된 주님의 자녀인데 방황하고 찾지 못하다가 주님을 찾아오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찾았사오니 모든 것을 주께 맡겨 놓고 주님에게 의논하고 *주님에게* 구하고 주님의 돕는 은혜를 입어서 날마다 염려 없이 씩씩하게 담대하게 평강 가운데서 영생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남녀 종들에게도 더욱이 성령의 충만함과 십자가의 사랑의 충만함으로 인간을 건져 구원하는 능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