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대절기

 

1981. 11. 15. 주일오후

 

본문 : 출애굽기 23장 14절 - 17절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구약은 신약 시대를 위하여 계시된 것입니다. 구약의 목표는 이루어 놓은  신약입니다. 신약은 구약에서 말씀한 이 도리가 완성된 것이 신약입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은 어렸을 때요, 신약의 이스라엘은 장성한 때인 것입니다. 외형은  차이가 있으나 그 속에는 한가지입니다.

남자는 이렇게 여기에는 말씀한 것은 이것이 곧 신약 시대 영원을 그림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남자라고 표시한 것은 하나님의 장자의 그 기업을  상속받을 자들을 표현한 말입니다.

구약에는 이렇게 한 형식 계시기 때문에 남자들만 그래 했지마는 신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그러한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딸과 아들이 없습니다. 전부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기업을 받을 유업을 받을 아들들입니다.

여기에 맥추절 수장절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얼핏보면 보리 가을에 보리가지고  하나님 앞에 연보하는 것이 맥추절이라 또 수장절은 가을곡식 가지고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이 수장절이라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그 절기를 지키게 하시고 그 절기를, 유월절 절기를, 오순절 절기를,  장막절 절기를, 그것을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표시해서 유월절 절기를 무교병  절기라 그렇게 말을 했고, 오순절 절기를 맥추절이라 그렇게 했고, 장막절  절기를 수장절이라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간단하나마 우리에게 도리를  밝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월절 곧 양의 피로 구원함을 받는 예수님의 이 구속을 받는 생활은 무교병  속에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것을 하나 예표로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구속은 화평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화평의 복음의 신을 신고, 화평,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심 같이 우리도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피의 구속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자기가 멸망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육으로도  구원하고 영으로도 구원하고서 육으로 구원하는 것을 그걸 구원해서 영의  구원까지 이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웃을 구원할 때에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가 아무리 낮아졌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 위해서 지옥까지 낮아진 이걸  생각할 때에 머리를 들지 못하고 다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자기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어떻게 많은 소유를 희생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부요를 다 내 놓으신 것을 생각하고 다시 무익한 종이라고 갈급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형제를 위해서 어떻게 희생을 한다 할지라도 손해를 보고 억울함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님이 자기를 위해서 모든 고난 다 받으시고 대신 죽기까지  대신 행하는 일을 하셨고 대신 원수 갚음을 받았고 지옥까지 가신 이것을  생각하고 사람들이 어디까지 주의 복음을 위해서 살아도 자기는 무익한 종이요  불충성이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 이렇게 결론을 짓는 것이 그것이 그  연고인 것입니다.

이래서 무교병절이라 그렇게 했고, 또 이 구속을 맥추절이라는 것은 그때는 아무  공업이 없고 농업뿐이기 때문에 전 생애가 다 농업입니다. 그 농업 껍데기는  농업이지마는 농업 속에는 주님이 피로 구속하신 것, 영감의 도리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 것,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 주신 것, 이것을 자기의 농사짓는 그  농업 속에서 이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봄에만 그럴 것이 아니라 수장절이라 가을에도 농사를 짓는 것도 거두는 것도  가꾸는 것도 이것을 사용하는 것도 그 전 직업이나 자기의 처소나 형편이나  사정은 다만 이 구속받은 자가 살고 있는 처소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땅에 있는 장막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땅에  있는 장막이라 말은 우리의 모든 형편 사정 처지 자기의 지식의 형편이나 지혜의  형편이나 권세의 형편이나 지위의 형편이나 그 모든 것이 다 장막집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에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떤 세상 속에서 살았든지 그 세상은 다  벗고 가기 때문에 장막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장막집이 무너지면 영원한 처소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은 영원무궁세계에  우리가 가서 살 위치 지위 권세 인정 영광 환영 대우 그 모든 것 이것을 총칭  말해서 처소라 자기 있는 곳이라, 자기 있는 곳이라. 자기는 영과 육으로 된  자기입니다. 지식도 자기는 아닙니다. 자기가 머물고 있는 자기 처소입니다.

자기가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도 권세는 자기는 아닙니다. 그 권세를 가지고  권세 속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무식도 자기는 아닙니다. 그 무식 속에 자기는  들어 삽니다. 어떤 기술의 능력이 강해도 그것은 자기는 아닌데 자기가 그것을  입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영육은 아닙니다. 영육은 부모에게서 날 때에 그  영육, 중생된 그 영육, 영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나서 살고 육은 하나님의  구속을 받아서 살아나는데 그 육이 경건을 연습하면 경건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을 입으면 경건을 입어서

어떤 사람은 지식을 많이 연습하니까 그 지식을 입고 그 심신의 심신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심신의 요소가 지식을 하나도 입지를 못하니까 벌거벗은  심신입니다. 자기가 많이 연습해서 기술을 가졌으면 그 기술은 자기의 몸에  요소가 그 기능을 입었습니다. 그 지식을 입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땅에  있는 장막집이라 영원한 처소가 하늘나라에서 오는데 이 처소를 덧입어야 된다.

이것을 입지 안하면 벗은 자들로 살게 된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추수절이라 해서 뜻밖에 오순절이 변해서 추수절이 됐습니다.

장막절이 변해서 수장절이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왜 그렇게 변한 게  아니고 그 속에 있는 장막절, 그 속에 있는 오순절, 그 속에 있는 유월절, 그  절기 속에 있는 자기, 그렇게 살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주일학교와 중간반에서 부활과 생명에 대해서 가르쳤는데 오후에는  제가 그 말씀을 다시한번 더 강조해 줘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가졌으나 오전에  대한 이 말씀을 오전에 증거 했으니까 좀 더 충분히 알도록 증거 해야 되겠다  해서 오후에 증거하게 다시 된 것입니다. 오후는 처음에 계획보다  바꾸어졌습니다. 고 다음시간에 언제 한 번 더 증거 하겠습니다.

유월절은 피의 은혜를 우리가 기념하는 것인데 그때는 일 년에 세 차례로 이렇게  했으나 우리는 맥추절이라 추수절이라 이래 가지고 두 번 지킵니다. 이 두 번  지키는 이것은 하나의 형식이고 우리는 언제나 일생동안 계속해서 이 절기의  관련된 그 은혜를 이 절기에서 가르쳐 준 이절기가 형식계시로서 가르쳐준 이  은혜를 우리는 계속 입고 살아야 합니다. 피의 은혜를 하나님의 영감은혜를  하나님의 안보은혜를 우리가 언제든지 기념한다는 것은 우리에게서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피의 은혜는 이것은 자체가 된 것입니다. 피의 은혜는 자체요. 피의 은혜를 받은  피의 은혜에 자기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피의 은혜의, 은혜의 자기로 피의  은혜의 자리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피의 은혜의 자기로 어데서 살 것인가? 하나님이 살게 하신 그 처소에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살게 한 처소라니 자기의 형편 사정 자기의 사업이라면 사업  그것도 하나님 피의 은혜로 된 자기 이 우리 자체가 피의 은혜로 된 자기입니다.

피의 은혜는 자체입니다. 자기 된 것입니다.

피의 은혜로 된 자기 피의 은혜의 자기 피의 은혜로 된 자기 피의 은혜로 된  자기가 어떤 사업 속에서 산다. 어떤 지위 속에서 산다. 어떤 가정 속에서 산다.

어떤 애정 속에서 산다. 서로 부부가 사랑한다면 부부의 애정은 얼마나 뜨겁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밀접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피의 자기 속에 뚫고  들어가면 죽습니다. 이것은 언제든지 피에 자기로 살게 해 주신 처소입니다.

마치 다 같은 방 안에 있으면서 한 사람은 바둑 두고 한 사람은 장기 두고 한  사람은 악기를 다루고 한 사람은 노름을 하고 한 사람은 춤을 추고 한 사람은  글공부를 하고 한 사람은 연구하는 것처럼 그 방안에서, 방안에서 이것 저것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떤 현실이든지 어떤 상태든지 어떤 생활이든지  어떤 입장이든지 어떤 처지든지 이것은 우리가 살 처소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살 처소요. 우리가 살 방이요. 방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거처할  방이요. 그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것이 자기인 줄로 알면 그것이 자기 생활인 줄로 알면 이는 외식자입니다.

내나 육으로 돌아가서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사업하는 그것이 우리도 아니요.

우리 생활도 아닙니다. 사업하는 그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내가 이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로 살게 하신 처소입니다. (이것 잘 안 들으면 몰라.

○○○장로님 학교 선생 그것도 자기 생활이 아니라. 자기 업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처하게 하는 주는 방이라. 자기 처소 자기 처소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뭘로 살긴가? 유월절 주의 피로 구속받은 자로 그 안에 삽니다.

학교 선생이라는 처소를 주면은 그 처소 안에서 구속 받은 자로 살고 어떤  회사를 경영하는 그 사장의 사장이라는 처소를 주시면 그 사장이라는 그  사업이라는 그 사업을 하는 사장 위치 그 처소입니다. 그 처소에서 자기는 피로  구속받은 자기로 삽니다. 그기나 자기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감옥에  가두었으면 감옥 그것도 내나 자기 처소입니다. 그 감옥에서 피로 구속받은  자기로 삽니다. 자기를 사형으로 이 세상이 제 것이 아니고 세상이 제 것이  아니고 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해서 사형을 주면 그  사형 그것도 자기가 거처할 처소입니다. 그 사형에서 자기는 사형 속에  사형이라는 방 속에서 삽니다. 사형이라는 방 속에서 주의 피로 구속해서 죄  없는 자 되었으니 죄 없는 자로 그 속에 삽니다.

또 제 마음대로 자유대로 사는 불의로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사는  의로운 자로 삽니다. 또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를 예수님이 죽기까지 구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친한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삽니다. 사형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사형 속에서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의,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것 불의, 하나님께 피동되는 자기로 삽니다. 자기는 하나님께 피동되는  자기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기로, 자기는 죄가 없는 자기로 이 자기로  어데서든지 그것은 이렇게 이 자기로 피로 구속받은 자기로 이것은 자기입니다.

피로 구속받은 자기로 그 속에 삽니다.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처소에 따라서 처소에 따라서 자기가 변해지지는 않습니다. 변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 처소에 따라서 이런 일 저런 일 할 일은 다릅니다. 자기는  변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어떤 현실이라도 자기가 결혼해서  결혼의 첫사랑이라면 얼마나 뜨겁겠습니까? 결혼의 첫사랑 그것도 구속받은  자기로 살 수 있는 잠깐 주시는 방어입니다. 잠깐 주시는 처소입니다. 그기나  사형이나 감옥이나 사업이나 같은 처소입니다. 거기에서 구속받은 자기로 살려고  그 처소주신 것입니다. 이런 처소 줘도 구속받은 자로 살고 저런 처소 줘도  구속받은 자로 살고 처소가 달라지니까 구속받은 이 자가 변해집니다. 그때  배반한 것은 어쩌냐? 구속받은 이 자가 변해집니다. 그것은 주의 구속을 배반한  것이요. 기념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때 배반한 것은 어쩌냐? 구속받은 자가  배반할 수 있느냐? 구속받은 자는 배반치 못합니다. 구속받은 자는 배반치  못하는데 구속받지 안한 자가 구속받은 자를 까뭉게 버리고 그 심신을 다스려서  자기 아닌 그 자기 아닌 자기인 것이 자기를 지금 원수로 아는 것이 그것이 이제  거기에서 자기가 되어 가지고 날뛸 때에는 처소 주는 데에서 딴 자로 사는  것입니다. 딴 사람으로 삽니다.

그러기에 어떤 것이라도 그것은 다 우리가 사는 처소라 하는 것을 단단히  명심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로 저런 현실로 바꾸어 줍니다. 어떨  때는 재미있고 어떨 때는 외롭고 어떨 때는 쓸쓸하고 어떨 때는 우쭐해지고 어떨  때는 아주 밟혀 쳐들어가고 어떨 때는 빼앗기고 어떨 때는 그 높아지고 어떨  때는 낮아지고 어떨 때는 환영을 받고 어떨 때는 배척을 받고 하는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살 처소라, 주님이 구속받은 나로 여기에서도 네가 한번 살아봐라. 네,  살지요. 저게서 한번 살아봐라. 네, 살지요. 어떤 처소를 줘도 이 구속받은  자기가 거기에서 감당하고 사는 자 이 자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서 우리는 죄없는 자로 삽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의입니다. 불의는 자기 주관 자율 이 세상 인간의 법, 주님 외에  딴 것들에게 피동되고 딴 것들의 주장대로 하는 그것이 모두 다 불의입니다.

구속받은 자, 의로운 자, 죄없는 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해 하나님의 아들 된  동행자, 이 자로 우리가 살 처소이니 그 처소를 혹은 자기 할 일이라고 그  처소를 자기의 행복이라고 그 처소를 자기의 불행이라고 그 처소를 자기라고  착각하면 안됩니다. 사장이 자기 아니요. 그거는 자기 처소요. 예, 아무리  사형을 받은 사형이라도 그거는 자기 아닙니다. 사형은 자기가 살게 하는 자기가  살도록 하는 하나님이 잠깐 동안 자기에게 주신 자기가 머물 수 있는  처소입니다. 우리는 그건 다 벗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어떤 것이든지 그것이 처소인데 자기라고 착각해도 안됩니다.

자기 일이라도 생각해도 안됩니다. 그것이 자기 속에 있다고 생각해도 안됩니다.

그것은 벗을 장막들입니다.

그러면 이 장막 안에서 구속받은 자기가 하나님이 이 장막을 주시면 그 장막  안에 자기는 머뭅니다. 저 장막을 주시면 저 장막 안에 머뭅니다. 자기가 자기로  살고 자기를 변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로 주시는 장막 어떤 처소를 주시든지  처소에서 사는데 어떻게 그 안에서 사느냐?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 주님이  나에게 주신 법칙대로 삽니다. 주님이 이 처소를 주시면 그 처소 안에서 주님이  주신 법칙대로 삽니다. 저 처소를 주시면 저 처소 처소에서 주님의 법칙대로  삽니다. 사형이라는 감옥이라는 고문과 고행이라는 처소를 주시면 고문과  고행이라는 그 방 속에서 고문과 고행이라는 그 처소 속에서 피의 구속받은 내가  주님이 주신 법도대로 그 방 안에서 삽니다. 그 처소에서 삽니다. 사형이라는  처소 속에서 삽니다. 그것이 오순절 기념하는 것입니다.

또 그 안에서 주님의 안보를 받아 삽니다. 주님의 보호를 받아 삽니다. 사형  속에서도 다리오 왕이 내가 너를 보호하면은 네가 사자 안에서 죽지 안하고  살터이니까 내가 너를 보호해 주마 내가 너를 보호해 줄테니까? 내 말을  들으라고 하루 종일 말했지마는 주님의 안보 주님의 안보 외에는 나는 믿지  않습니다. 주님의 안보만 나는 받습니다. 그는 사자 앞에서도 주님의 안보로만  살았습니다. 그는 사자 구덩이라는 그 처소 속에 주님의 안보로 그는 평안히  살았고 주님의 법칙으로 그는 살았고 구속받은 자기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땅 위에 우리에게 해 주시는 모든 것은 유월절의 구속을 받은 나를  주님이 주신 이 법칙대로 주님의 안보를 힘입어서 살게 하신 처소인 줄 알고  우리는 모든 처소에서 삽니다. 그러면 우리는 처소에 연단입니다. 이 처소에도  이 세 가지를 나타내고 저 처소에도 이 세 가지를 나타내 그 처소가 어떻게  변해져도 이 세 가지는 변하지 안하고 이 세 가지로 삽니다. 그것이 자기의  연단이요. 그것이 다른 말로 말하면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다 같이 같은 입장 같은 처지에서 사나 각각 다릅니다. 같은 처소에서  사는데도 그 사람이 받는 안보는 다릅니다. 바른 안보는 달라, 바른, 받는  안보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의 안보를 받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의  안보를 받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과학의 안보를 받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지능의 안보를 받고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보 요거 외에는 자기 안보로 삼지 안하고 이 보호만 받아  가지고 사는 것이 고것이 한자리에 같이 있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땅 위에 수많은 안보가 있지마는 안보는 오직 주께서 주시는  이 안보만 자기 안보로 삼지 다른 안보를 바라지 않습니다. 안보를 바꾸지  않습니다. 법칙을 바꾸지 않습니다. 자기를 바꾸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디서든지  꺾어지지 안하고 바꿔지지 안하고 구속받은 자기로 주님이 주신 내 생애  법칙으로 세상이 다 달라 들어서 멸해도 다 달라 들어서 멸하면서 내가 주는  안보 있으니까? 네가 이안보만 받으면 멸한다. 멸해져도 주의 안보 안에서  멸해지지 주의 안보를 변경해서 다른 안보를 받는 받지 않는 이것이 뭐이냐?  그이의 의지의 연단이요. 행위의 연단이요. 자기 연단입니다. 우리는 무궁세계를  향하여 영원을 앞두고 하룻밤 나그네 같은 이 세상에서 무궁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무궁히 너는 어떤 처소에서 살 수 있다. 어떤 처소도 나는 감당할 수  있다. 너는 요런 처소 이상에는 살지 못한다 하는 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이  오늘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습니다. 아무리 돈  많아도 그거는 육체입니다. 아무리 권세 많아도 육체입니다. 아무리 대가리가  좋아도 육체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온갖 이십세기의 문화를 제 발단적으로  제일 앞선 구비했다 해도 육체입니다. 신체가 좋아도 육체입니다. 구비한 가정이  되어도 육체입니다. 얼굴이 잘나도 육체입니다. 건강해도 육체입니다. 많아도  육체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이 잠깐 있다가 시들어집니다. 잠깐 있다가  시들어지요.

또 거기에 메여있는 아무리 영광 있어도 그거는 풀의 꽃과 같습니다. 잠깐 잠시  잠깐이면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져 아름다움이 없어진 것같이 육체로 된 모든  것은 그러합니다. 육체로 안 된 것이 무엇인가? 주의 피로 주의 법칙으로 주님이  책임지신 주의 안보로 요거로 된 것만이가 육체 아닙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떨어져 그 아름다움이  없어지나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토록  영원무궁토록 있도다' 하는 이 진리가 너희에게 요래 '예수 믿어라' 하는 이  복음이 곧 영원한 말씀이다 했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여러분들 좋은 걸 보거든 그와같이 좋은 자가 얼마전에 있었는데 다 죽어서  가버렸습니다. 다 놓고 갔소. 거머쥐고 독해도 다 놓고 갔고 강해도 놓고 갔소.

미녀 미남이라도 다 송장되어서 갔소. 네, 천하 권세를 다 잡아도 갔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으니 잠시 잠깐 후에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 아름다움은 없어집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느니라"  요 말씀대로 된 것은 영원무궁하다. 너희들에게 전한 이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어떤 것이 오든지 그것은 내 것도 아닙니다. 내 사업도  아닙니다. 나도 아닙니다. 그것은 피로 구속받은 내가 내게 주신 주의 법칙대로  주의 안보를 입어서 살 수 있는 처소라고 아십시오. 단정을 내리십시오. 처소인  걸 단정 지우십시오. 확정해야 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이대로의 사는 것이 삼대절기를 계속 지키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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