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22:46
사랑
1979. 7. 11. 수새
본문:마태복음 24:12-13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랑과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면 모든 경영과 노력이 다 헛됩니다. 참 사랑이 자기의 생활의 근원이 된 이 이후에만 영생인 건설구원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두 가지 종류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는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전 하나님의 목적에서 나타나셨고 하나님의 목적으로 나타나셨고 인간의 사랑은 에덴 동산에서 배암으로 인하여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배암은 해와를 사랑하는 음행을 해서 해와는 이 사랑을 받아 들였고 해와는 이 사랑으로 아담을 사랑하므로 아담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선악과를 주었고 아담은 해와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이 선악과를 받아먹었던 것입니다. 그 사랑을 분석하면 겉은 다 상대방을 좋아하고 위하고 유익 되게 하려는 꺼풀을 가지고 있지마는 속에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를 위주로 또 상대방을 배반하고 자기를 위주로 한 방편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꺼풀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요 이것으로 사망은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로 인하여 본능적인 사랑을 하나님이 그대로 역사 하시는 것이 있으니 곧 식물이 먼저 난 잎사귀가 다음에 나는 새순을 위하는 일을 하고 곤충과 짐승이 자기로 말미암아 난 후세를 위하는 일을 하고 인간이 자기에게서 난 후손을 위하는 일을 하나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번식 역사로 인한 번식기간에 하나님이 작용하시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번식이 중단됩니다. 자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없어도 보존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자연적으로 이것은 철거가 됩니다. 그것이 모든 식물 곤충 동물 인간들에게 다 일하고있습니다. 그러기에 본능적으로 애미가 새끼를 번식 고 생육 번식 그과정까지를 사랑하는 그것은 능동의 것이 아니고 창조 역사에 따른 운동들이니다. 그 외에 땅위에 있는 모든 인간이 가진 사랑은 미움을 사랑으로 가장한 사랑이니 이것의 결과는 모든 불행과 영원한 교통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미움을 가장한 사랑과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서 고것이 생육할 기간 창조섭리로 인한 본능적 사랑이 순간 있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움은 어떤 것이 미움이며 또 사랑은 어떤 것이 사랑인가 미움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피조물 위주 중심 타를 배반하고 자기를 위주로 중심으로 한 것이 이것이 미움이요 이것이 악입니다.
이것이 미움이요 이것이 악입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가장한 것은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위하고 유익되게 하는 자기가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러기에 미움에다가 꺼풀은 이런 꺼풀을 입혀서 가진 그것이 미움을 사랑으로 가장한 사랑인 것입니다. 참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것인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곧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예정 창조 하나님의 섭리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심이 아니고 순전히 상대방 피조물을 위하시는 것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되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리라는 그런 것을 하나님이 욕망하심이 아니고 당신이 만족할 수 있는 피조물로 무한을 향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것 이것으로 영원 계속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랑과 미움을 잘 구별하지 않으면 모든 구원 역사는 헛일입니다.
성경에는 기본적 회개인 기본적 회개를 말씀한 성구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기본적 회개 회개의 씨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중생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인 이것이 회개요 씨요 곧 생명입니다.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되었다고 말씀하신 이 씨입니다.
또 성경은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 있고 그 중간에 끼어 있는 방편에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방편은 누구든지 다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종자 곧 동기와 목적이 문제지 그 자라는 방편은 다 같습니다. 히브리서 6장에 다 같은 밭에 식물을 심었는데 흙도 같고 햇빛도 같고 비가 비와 이슬이 오는 것도 같고 꼭 같이 받는데 그 종자가 가시나무 종자라면 가시나무가 자랍니다. 채소가 종자라면 채소가 자랍니다. 이와 같이 그가 종자가 미움이냐 종자가 사랑이냐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랑의 종자도 그 방편으로 자라고 미움의 종자도 그 방편으로 자라는데 이 종자가 틀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의 그 계명을 다 지켜도 그는 미움만 장성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위 인본주의 교회입니다. 어제도 어떤 목사님이 책을 한 권 가지고 와서 이 목사님에게 아무래도 이것을 보여 드려야 되겠고 또 좀 거기 대해서 어떤가 좀 열람을 좀 원한다고 이렇게 말하나 그것은 껍데기 나를 흔드는 말이고 아주 권위 있는 것으로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내가 말하기를 먼저 온 책도 내가 한 두서너 폐이지 여기 두서넛 다 본 것이 두서너 페이지 밖에 안 봤는데 그래도 탈선의 길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영했으나 그 근본에 대해서는 말하지를 별로 한게 없더라 (그로)말았는데 종자가 틀리면 허사입니다.
지금은 종자가 문제입니다. 벌써 방편은 방편만 보는 사람들은 기독교나 이종교나 세상 다른 사상이나 거의 그 방편은 다 같은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이 동을 향해서 가는 사람도 내나 오른발 왼발 바꿔 디디가고 서를 향하고 가는 사람도 오른발 왼발 바꿔 디디가고 빨리 가면 빨리 가고 느리게 가면 느리게 가고 그런데 향방이 벌써 동을 향한 자는 암만 빨리 간다고 동이 서가 되는 것 아닙니다. 서를 향한 자가 아무리 빨리 간다고 (재치있게)간다고 해서 서가 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향방이 문제입니다. 오늘은 사랑이 들어서 세계를 죽이고 악한 것이 성하므로 불법이 성하므로 하는 것은 거짓 사랑이 성하므로 알맹이를 말하면 미움이 성하므로 고것을 똑똑히 표현할라면 자기르 사랑함이 심하므로 하는 것이 디모데후서 4장에도 말씀을 해 놨고 또 요한계시 18장에도 이것을 총 결론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아니면 그 삶은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그에게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사랑을 가질 수 있으니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그 사랑은 인간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인간에게는 전지가 없다는 말과 같고 전능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영생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완전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기에 사랑은 전지 전능이요 완전이요 불변이요 영원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 사랑을 가질 수 있고 또 이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는 그에게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사랑이 있는 거 같으나 그것은 순전히 미움입니다. 고급 미움이요 지능적 미움이요 그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어떤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냐 택함을 입은 자가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예정적 구원을 입은 자 창조적 구원을 입은 자 섭리적 구원을 입어 그리스도를 중보로 모신 자 그리스도를 중보로 모신 자 또 중보인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사랑 껍데기로 사죄를 입은 자 중간 껍데기로 칭의를 입은 자 알맹이로 하나님과 연결된 중생을 받은 자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중생을 받고 또 하나님께서 이 알맹이 사랑을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영감의 사랑을 주셨고 또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을 주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보다 크기 때문에 자기보다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자기보다 큰 자를 사랑하는 길이 없습니다. 자기보다 큰 자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게 사랑하는 긴가 자기보다 큰 자가 자기보다 작은 나에게 나보다 큰 것을 주실 때에 내가 그것을 받아서 커지는 것이 나보다 큰 자를 대우하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자체가 어떤 자체가 되야 되느냐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체로 완전히 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으로 완전히 물 들었고 완전히 성화 되었고 완전히 동화된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자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에 성화되서 하나님의 사랑화되서 그 형태가 하나님의 사랑의 형태입니다. 또 그가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동화돼서 그 사랑으로만 움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는 것이요 자기에게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화 되지 아니한 것이 없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한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것이 예정의 구원의 것이 창조의 구원의 것이 섭리로 대속의 것이 영감의 것이 하나님의 나타낸 66권이 계시 이 진리의 것이 되고 이거 아닌 것은 자기에게 없는 것이 하나님을 완전히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받은 것이요 피조물로서는 완전한 사랑의 모형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형적 사랑이요 이 사랑의 완전한 모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는 완전한 사랑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가 자기 자체가 자기 요소가 영의 요소 마음의 요소 육의 요소 모든 자기의 생애의 요소 이 전부가 하나님의 사랑의 것이 되는 것이 이것이 자기 완성입니다.
자기에게 어느 요소도 근본인 하나님의 목적 예정 창조 또 거기에 건설인 그리스도의 구속 그것이 아름답게 광채 있게 빛나는 그 색깔 곧 믿음의 행위 하나님으로 인한 사죄의 행위 칭의의 행위 동거 동행의 연결의 행위 곧 과실을 맺는 가지는 하신 과실 곧 이것이 깨끗해 지는 거 세상에 빛이 되는 거 이것이 우우로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함을 입은 것이요 옆으로 아래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는 자체가 되어지는 것이 이제 피조물 대 완성을 이룬 자체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기 요소 전부는 자기 요소 전부는 자기 요소 전부는 사랑만을 할 수 있는 이것이 되는 것이 자기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면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어떤 것이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에게 입은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주는 것이 이것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예정적 구원을 그에게 주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것이요 이는 다 그의 영과 마음에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사랑을 내가 받은 그대로 그에게 섭리의 사랑을 줍니다. 내가 구주로 모신 내 구주를 그의 구주로 전하는 것이 이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영감을 그에게 전해서 그가 이 영감을 받도록 하는 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은 이 계명을 그에게 주어서 그도 이 계명을 가지게 하는 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내가 사죄받은 이 사죄 그에게 주어서 그도 사죄받고 내가 칭의받은 그에게 주어 그도 칭의받고 내가 하나님에게 연결된 중생을 받은 그 중생을 그에게 주어 그도 중생을 받고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이 믿음을 지키는 믿음을 받아 그에게 믿음을 전해 주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껍데기도 사랑이어야 되고 알맹이도 사랑이어야 됩니다. 만일 알맹이 사랑을 가지고 껍데기 사랑을 가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기는 사랑이 없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모든 역사는 역사는 궁극적으로는 알맹이서 되고 역사하는 이 운동적으로는 껍데기로 돼 나갑니다. 껍데기서 됩니다.
모든 열매가 꺼풀이 되고 알맹이가 되고 겉에서부터 커 들어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알맹이가 있으면 껍데기가 없을 수 없고 껍데기가 있으면 참 껍데기가 있으면 알맹이가 없을 수 없는데 알맹이가 있으면 필연적으로 껍데기가 있고 또 참 껍데기가 있다면 알맹이가 있습니다. 알맹이와 껍데기가 합해야 이것이 잘 자라가지 알맹이가 있다 할지라도 꺼풀이 상처를 받았으면 이는 자라가지 못하고 상합니다. (사랑은)상합니다. 껍데기가 온전타 할지라도 알맹이가 병 들었으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기독자의 완성은 겉도 사랑이요 알맹이도 사랑이라 요것의 흠점을 고쳐서 이것의 온전함을 이루면 기독자는 온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껍데기를 온전히 이루어 껍데기를 온전히 이룬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사랑의 껍데기를 온전히 이룬다는 말이 무엇이지요. 사랑의 껍데기를 온전히 이룬다 껍데기 사랑이 온전히 되어지는 것이니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기 주관과 자기 사상과 자기 지식과 자기 자체 요소 전부가 이 전부가 껍데기 사랑은 이 전부가 우우로 하나님에게 하나님에게서 우우로 하나님에게서 주시는 것을 다 받으려 다 받으려고 하는 이 자체가 그에게 있는 것만 내가 받아 가지고 그외의거는 다 죽고 (썩은 것인줄)알고 그에게 있는 것만 받으려는 자가 되어지는 이것이 위에 대한 사랑의 꺼풀을 가진 것이요 또 피조물에게 대한 사랑의 꺼풀은 자기 자체 전부는 피조물 상대만 그것이 좋아하고 그것만 위하고 그게 행복되기를 원하는 그만을 위하는 자기의 지식 자기의 사상 자기의 목적 자기의 성품 자기 전부로 되어 있는 이것이 이제 껍데기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이것 암만 있어도 알맹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제 이것을 가진 것이 껍데기 사랑이요 알맹이 사랑은 이제는 하나님에게 하나님에게서 주시는 이것을 목적을 입었고 예정을 입었고 목적을 입었고 예정을 입었고 창조를 입었고 구속을 입어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었다는 얻은 이것이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그 다음에 받을 것은 뭐입니까. 진실입니다. 진실.
그 다음에는 이제는 기본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내가 죄와 관련 없는 자가 죄와 관련 없는 생애를 의와의 연결된 의의 생애를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생애를 이루는 이것이 이제 구속을 진실히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완성 된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에게 아무리 하나님에게 받아 가질라 해도 헛것이요 쭉쟁이입니다. 쭉쟁이. 이것을 현실 현실에서 받는데 현실 현실에서 받는데 현실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것과 배암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을 받는 것과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은 이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을 받는 것이요. 이것을 받지 안하고 피조물에게서 받을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배암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꺼풀 사랑을 가졌으나 알맹이 사랑을 하지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또 인간을 자기가 어쨌건 꺼풀 사랑을 가져야 됩니다.
인간을 사랑하므로 내가 그가 그를 모든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하고 모든 사람이 행복된 것이 그것이 내 행복이고 모든 사람이 참 기쁨 것이 참 성공이 내 성공이고 그를 위해서 자기는 노력하지 안할 수 없고 그를 위해서 자기가 자기를 위하지 못하고 그를 위해서 자기 전부는 다 투자해서 그가 잘되면 좋아하고 그것으로 자기 성공으로 여기는 자기의 소망과 목적과 기쁨이 자기의 욕망이 자기에게 있지 안하고 자기에게 있지 안하고 상대방에게 있는 이 꺼풀의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사랑의 꺼풀을 가진 것이요 아무리 이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그것만이 그에게 줘야 되지 그거 외에 다른 거 주면은 벌써 알맹이가 병들었습니다. 알맹이가 병들었으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알맹이가 병 들었으면 그는 조만간에 껍데기는 따라가는 것입니다. 조만간에 껍데기는 따라갑니다.
우리 배집사님 참 몇 해 동안 신앙생활 잘했습니다. 이랬는데 그저 아주 건강한 사람이요 두 달 전에 건강한 사람이요 두 달 전에 건강한 사람인데 속에 알맹이가 병이 딱 들고 나니까 건강이 소용없어. 두 달이 지나니까 껍데기까지 완전히 절단나서 이제 그는 김해 묘지에 가서 있습니다.
이것이 다 우리에게 자연 계시입니다. 자기가 겉이 아무리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은 됩니다. 그것은 되요. 자기가 순간 생각이라도 자기의 성공이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안하고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들어오고 나면 더러워서 텁텁해서 개워 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기뻐야 자기 기쁨이 되지 다른 사람을 슬프게 하고 자기 기쁨으로 자기 기쁨으로 기뻐지는 그것은 우리에게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그 참 성공과 행복 그것을 밤낮 그것만 생각지 안할 수 없고 그것만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 때문에 자기를 위한 잠도 못자고 자기를 위한 쉬지도 못하고 자기를 위한 먹지도 못하고 자기를 위한 오만 장수법도 무슨 건강법도 있지마는 쓰지 못하는 그것이 필연적으로 그렇게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이 그것이 기독자입니다. 그것은 다 쉽습니다.
아마 목회자로 나선 사람들 중에는 그 반이 다 그 꺼풀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그 속에 알맹이가 어느 모라도 병들면 헛일입니다. 그 알맹이는 무죄의 알맹이라야 되지 죄가 있으면 안됩니다. 의의 알맹이라야 되요 사죄의 알맹이라야 되고 칭의의 알맹이라야 되고 하나님과 동거 동행의 알맹이라야 됩니다. 이 알맹이가 움직이는 것은 곧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는 그것이 곧 알맹이가 나타난 행동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병 들지 않아야 되지 어느 부분이나 병 들었는데 그걸 치료하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그래서 요번에 그 우리 배 집사님에게 출상 예배에 가서 제가 설교를 하기를 이것을 설교를 했소. 복된 사람 복이 세 가지인데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회개도 신앙도 정리하지 못하고 땅에 것만 욕망하고 거기에만 모든 인연을 다 연결해 가지고 주근 날까지 건강하게 있다가 달칵 아픈 줄도 모르고 그만 달칵 죽는 거 이것이 기독자에게 복인데 이것은 뭐이냐 세상 복이요 이것은 하늘나라에는 저주요 세상 복입니다. 이거는 세상 복이요 이것을 원하지마는 그게 제일 불상한 사람이요.
고 다음에 복은 죽기 전 다문 얼마 동안이라도 자기가 세상과 인연을 끊고 하늘과 인연을 자기를 의지하고 위주로 중심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위주로 이 땅에 있는 모든 소망과 애착은 바꾸어서 하늘에 것으로 이제 평소에 바꾸지 못한 것을 평소에 정리하지 못한 것을 평소에 끊지 못한 것을 평소에 연결하지 못한 것을 다문 몇 달 동안이라도 고통 중에 있으면서라도 이것을 정리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그런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진 사람이 이 사람이 하늘나라의 소자요 하늘나라에 작은 복을 받는 사람이요.
하늘나라 복은 작은 복이지마는 하늘나라 복을 받은 사람이요 제일 하늘나라의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 병 들지 않았는데 병든 자와 같고 감옥 가운데 있지 않았는데 감옥 가운데 있는 자와 같고 사형을 받지 않았는데 사형받은 자와 같이 이렇게 되어 자기는 병든 사람이 정리되고 옮기고 고치는 그와 같은 것을 자기가 건강 중에 스스로 만드는 환란 스스로 만드는 병 스스로 만드는 고통에서 완전히 정리할 것을 정리하여 하늘의 사람으로 완전히 정리 정돈돼 가지고 그 건강한 요소를 가지고서 하늘의 준비를 하고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줄 수 있는 대로 전해 줄 수 있는 이 사람이 제일 행복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제일 행복된 사람이요 이래서 인간이 기독자가 이 세가지 복인데 그분 두 가지 복을 받았어. 그래서 그 조금만 세상을 살아가면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해서 이제는 삶이라는 소망은 집어던져 버리고 이제는 죽는다는 요게 단단히 입각해 가지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 하나님에게 대한 소망 요 소망만 가지면 조금 고통이 물러가고. 이래서러 하다가 그래 세상을 끝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껍데기를 암만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요번에 양성원 학생을 이분이 2학기 요 이제 한 학기 남았지 남았는데 이번 학기는 성경 연구하기를 성경에 있는 죄의 종류를 성경을 보면서 기록해 봐라 그 다음에는 성경에 인간이 범한 죄를 낱낱이 기록해 보라 하는데 기회가 얼마든지 있는 거 아닙니다.
에서가 기회를 놓치고 난 다음에는 저 뒤에 빗장이 나왔으니까 자꾸 저래 툭닥거리면 그러면 그 대번 부서지는데 이 기회가 또 여러분들이 앞으로 지금 이것을 연구할 기회가 없습니다. 있으리라 생각해도 연구할 기회없소. 지금 알차게 연구하지 않으면 앞으로 연구할 기회가 없소.
이러니까 그것을 연구해서 바로해 나가면 자꾸 자기 눈이 열려서 근본을 알것이요.
이 주석들이 다 거의 껍데기요 다 방편들만 말하고 있고 속에 근본 종자를 찾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종자를 찾지 못하면 헛일이요. 사랑을 아무리 말해서 사랑의 방편을 아무리 말해도 사랑의 종조 종자 사랑의 종자 그것이 아니면 헛일입니다.
이번에 뭐 성서백과 사전이 나와서 아나왔다 하는데 어제 내가 그 책을 송 목사를 줬어. 송 목사님을 그 좀 열람해 보라 했는데 그렇게 많이 해 볼 것 없고 몇 가지만 보면 이기 겉 껍데기에 있는지 중간 껍데기에 있는지 알맹이에 있는지 종자에 있는지 종자는 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죄 칭의 새 생명을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하나 방편에 지나지 못할 수가 있소.
그런고로 이번에 이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단단히 알고 이제 그저 여기에 저게 자꾸 이 모떼기 저 모떼기 각도들만 이래 말해서 비지 껍데기만 다 이래 벗겨놓은 것이니까 이제 가가지고 여러분들이 깊이 새겨서 인간의 말로 표시할 수 없는 그 내용을 영감으로 여러분들이 알아야 거기에 감화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 돼야 이제 양떼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도 돌아가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