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4:19
불행에서 구출 받는 법
본문 : 단 6:19-24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요사이 우리 한국 교회와 한국 민족에 대한 형편을 연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 전 국가 중에 위급한 처지에 있는 나라요 민족이요 또 교회들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 우리를 여기에서 구출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런 것 저런 것 여러 가지 상대들이 있지마는, 또 조건들이 있지마는 그것은 하나님과 그 계약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그들이 할 방편이요, 예수님의 피로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로서는 하나님이 구출하시는 이 외에는 다른 방편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알아야 합니다.
제일 위급한 처지에 있는 우리들인 것을 알아야 하고, 또 여기에서 구출하실 분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것이 없는 것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어디로 피한다고, 무엇을 의지한다고, 또 대적들에게 아부를 한다고, 다 스스로 속는 것뿐이지 실효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처지에서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출하실 수 있는 이 구출을 받는 데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필요하냐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 현실에서 우리와 계약을 선포한 우리 구주이신 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과 그의 뜻이요 법칙이요 명령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기 현실에서 관련된 사람이면, 물건이면, 일이면, 두려움이면, 또 아름다움이 면, 온갖 현실에 접하여 있는 그것들을 먼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이런 입장에서 구원 얻을 희망은 없습니다. 구원은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당면되었을 때에 그것과 맞붙어서 관계를 맺고 해결을 지으려 하는 것이 전인류인데 우리는 그것을 초월해서 아무리 급해도 하나님과 그 뜻부터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아무리 목숨을 빼앗으려는 두려움 앞에서라도 그것보다 하나님과 그 뜻을 먼저 생각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는 방편에 첫자욱이라고 발자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환경에 다시 끌려 나가지 말고 이 하나님을 내가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하는 자가 되고 그 계명을 사랑해야 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사랑하는 자가 되고, 또 그러다가 자기 현실에 끌려 나가지 말고 자기의 마음을, 목숨을, 힘을, 뜻을, 성품을, 자기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는 이 사실을 깨닫고,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영생의 법칙으로 준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계에 제일 불행하고 위급한 이 현실이 세계에 가장 영광되고 행복된 그 결과를 끌어올 수 있는 이 유일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법칙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주신 법칙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것과 그 속에 내재하는 영감입니다. 대체로 그 법칙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웃에게 대해서, 모든 사물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간단하게 가르쳐 놓으신 도리입니다.
이 도리는 강령을 들어서 말을 하면 이러합니다.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는 이것입니다. 전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가 나와 내 도를 인하여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전토를 손해를 봤으면 내가 여러 배 백 배를 갚아 주겠다" 말씀을 하셨고, "또 나와 내 도를 인하여 생명을 빼앗긴 자는 생명을 다시 찾아 생명을 구할 것이요 생명 때문에 나와 내 도를 버린 자는 죽으리라" 이렇게 간단하게 성경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계에 제일 불행이라면, 위급이라면, 참 도마 위에 올려 놓은 고기와 같은 이런 가련한 처지라면 처지를 만나고 있는 여기에서 구원하실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인데 구훤 받는 그 구체적인 방편은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것입니다.
"네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면 이 모든 구원을 받을 것이요 치우치면 실패한다" 하는 이 말씀은 크게 말해서 창조주와 피조물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창조주만 사랑하고 피조물을 사랑치 아니하면 너는 창조주로 치우쳤기 때문에 너는 구원에 참가치 못하고 패망한다. 또 네가 하나님은 사랑치 아니하고 피조물인 너나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하면 이것도 치우친 것이기 때문에 너는 패망한다. 피조물로도 치우치지 말고 창조주로도 치우치지 말아라. 그러면 구원을 네가 받는다.
그러면 창조주와 피조물을 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동시에 되는 것이라 하나님 사랑이 사람 사랑이요 사람 사랑이 하나님 사랑이나 논리적 순서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함이 먼저요 그를 사랑함으로 피조물을 사랑하는 이것이 제이 순위가 되겠습니다.
이런데 기독자들이 대개는 하나님을 성경 법칙을 보고 믿다가 낙심을 하고 돌이켜 다시 안 믿을 때와 같은 그 생의 법칙을 취해서 이름만 믿는 사람이지 실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맛 잃은 소금과 같이 되어서 사람에게 천대받고 하나님에게도 버림받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은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을 줄을 모르고, 인간과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법칙은 외부적이요 직관적이요 직감적이기 때문에 쉬워서 사람에게 대해서 선하게 공의롭게 진실되게 사랑으로, 또 만물에 대해서도 삼가서 이렇게 해 보니까, 이렇게 해 봤자 아무런 도움은 오지 아니하고 오히려 상대방들에게 피해만 받게 되니까 '일 대 일로 살아야 되지,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야 되 지 그는 나에게 악을 행하는데 나는 선을 하고 그는 나에게 빼앗으려고 하는데 나는 주고 이러니까 이것이 아무리 계산상 봐도 이것은 될 수가 없다.' 해서, 사람들이 처음 믿을 때에는 이 피조물에게 대한 법칙을 하나님 법칙을 지키다가 차차 믿어 가면서 이 법칙을 버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피조물과의 이런 관계를 맺어야 그게 치우치지 않아서 일이 성사가 되는 것인데 하나님은 자기와 머니 깨닫지 못하고 가까운 것만 깨달아 행하다 보니까 실패해서, 벌써 실패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세상에서는 일 대 일로 이렇게 악은 악으로, 독은 독으로, 사기는 사기로, 협잡은 협잡으로, 투쟁은 투쟁으로, 경쟁은 경쟁으로 이렇게 사람 대 나,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나를 향하는 것처럼 나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향해야 되지 공연히 하나님 법칙 지킨다고 하다가 실패다.' 해서, 믿는 사람들이 처음 믿기 시작할 때에는 그 사람이 인간면이나 사회면이나 윤리면이나 도덕면이나 경제면이나 제법 예수 믿는 참 빛을 나타내다가 한번 두번 어려움을 당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이 법칙을 포기하고 말만 신자지 안 믿는 사람과 꼭 같이 사는 것이 오늘 믿는 신자들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대로 살다가 실패한 자들, 또 지금도 이렇게 하다가 실패를 아직 보지 못하고 이대로 하는 사람, 실패를 조금씩 보니까 '야, 이래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이 생애 법칙을 바꾸자' 하는 중에 있는 사람들, 아직까지 경험이 없고 철이 없어서 앞으로 그대로 나가면 망하고 패전할 그 길을 출발하는 사람, 계속 걷고 있는 사람, 걷다가 주저하고 있는 사람, 걷다가 '안됐다. 돌아서야 되겠다.' 하는 사람, 아예 걷다가 돌아서 가지고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사는 사람,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순전히 패망만 있고 다른 것은 섞여 있지 않는 패망의 길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예수님의 피로 구속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으면 나도 안 믿을 때와 같이 일 대 일로 그렇게 살면 인간적인 성공과 효력은 얻을 수가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이 법칙을 주시고 지키지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이 치십니다.
네가 아무리 나한테 도움을 구해도 내가 눈도 뜨지 않는다. 아무리 네가 간구해도 귀를 너에게 기울이지 않는다. 왜? 네가 안 믿을 때와 같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생애 법칙을 인간에게 대해서 행하고 사물에 대해서 행하고, 안 믿을 때는 요긴할 때에는 주일도 빼고 할 수 있는데, 너는 아무리 모든 만물이 절단나도 주일을 지켜야 되는데 네가 물질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안 믿는 사람과 같은 법칙을 지키기 때문에 내가 도무지 네게 대해서 계약한 대로 내가 축복을 줄 수가 없다.
또 네가 사람에게 대해서도 상대방이 네게 대해서 모든 불의한 것으로 대하는 거기에 너도 꼭 같이 불의한 것으로 대했기 때문에 내가 네게 대해서 구출하시는 이 은혜를 줄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네가 피조물에 대한 내 법칙을 지키지 아니했기 때문에 계약대로 내가 너를 모든 사람에게 짓밟히게 하고 만민에게 흘을 것이고 복 대신에 저주를 내가 네게 부으리니 가는 곳곳마다 저주요 만나는 것마다, 심지어 네 식탁 위에도 하나님의 저주가 있으리라. 이러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하나님의 덕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그 법 지키지 않았다고 하나님에게 매를 맞지, 그 법을 지키다가는 인간에게 악에 대해서 악의 힘이 약하니까 악에게 지고, 사기 협잡에 대한 힘이 약하니까 강한 사기 협잡에게 패망되고, 욕심의 그 세력에게 내 욕심이 약하니까 그에게 패전하고, 이러니까 이 방편은 인간 대 인간에도 약화되어 하나님에게도 채찍 맞고 이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맞는 그것은 그분들이 모르고, 하나님을 부인하기 모르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수 믿으면 점점 등신 되고, 점점 어리석은 자 되어지기 때문에, 패전하고 하나님 하나님에게 채찍 때문에 모릅니다.
약자 되고, 점점 '도는 좋기는 좋은데 예수 믿으면 사람이 약화되고, 또 우매해지고, 박력이 없고, 경쟁과 투쟁력이 없기 때문에 선도는 선도지마는 그것은 안됐다. 이러니까, 마치 아편을 먹든지 주사를 맞든지 하면 아편 중독으로 그 아편에 취해 가지고 저만 좋아서 날뛰지 실은 정상을 잃어버린 미치괭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교만 믿으면 거기에 도취돼 가지고 저만 좋지 인간 대 이 모든 사회나 모든 일에 박력이 없어서 그는 다 패역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두말 할 것 없이 기독교는 아편이라.' 하는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판정 지우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은 악으로 사는 세상에 내가 악을 버리니까 패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임 가지고 돈벌이 하는 그 시장에서 나는 속임을 버려 버리니까 속기는 하고 속이지 않으니까 저는 패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현 한국 기독교요 세계 기독교입니다.
피조물에게 대한 법칙을 지키다가 경험이 있어서 실패한 자는 '이까짓 법칙 치워 버리고 마음으로만 하나님 믿고 행동으로는 역연 이 죄의 법대로 살아야 된다.'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다 선각자요 선구자요, 그 다음에는 이렇게 살다가 아무런 효력이 없으니까 '돌아서 볼까? 그래도 하나님 법대로 살아야지.' 망설거리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람, 그중에 어떤 사람은 실패를 하나도 안 해 봤기 때문에 '전부를 다해 가지고 하나님 법대로 살아보자.' 하 면서 피조물에게 대한 하나님의 법칙대로 이렇게 사는 사람, 이러니까 사는 사람은 좀 있으면 그 법칙을 버리고 돌아서려고 할 사람들이요, 돌아서려고 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돌아설 사람들이요, 돌아선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과 꼭 같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는 많은 수는 없지마는 국가적으로도 또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이 법칙을 피조물에게 대해서도 지켰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고 양쪽 법칙을 다 지키는 이 한가운데 이 중앙을, 중용을 이렇게 걸어 감으로 인간들이 상상도 못하는 초자연의 능력으로 국가적으로 성황하고, 또 사회적으로도 성황하고, 가정적으로도 성황하고, 개인적으로도 성황하는 이런 일이 시대 시대마다 있었고, 또 뜨문 뜨문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앵글로 색슨족도 튜톤족도 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를 받아 가지고 아주 탁월한 세계에 뛰어난 민족들의 이름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세계 각국에 없는 나라가 없습니다. 제가 공산 정치하에 있는 그 나라를 가서 한번 보고 싶다고 하면 제일 첫째는 하나 있고, 둘째는 '거기에 있는 형제들도 이 복음으로 구출했으면' 하는 갈 마음은 둘째고, 하나는 거기에서도, 노아의 홍수 중에 모든 사람은 멸했지마는 노아 여덟 식구는 홍수의 도움을 받아 가지고 홍수로 인해서 구원을 얻었다 이것처럼 무신론 유물주의로 신자는 전멸을 시키는 그 도가니 속에서도 참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인간에게 대한 이것을 올바로 관계를 가져 치우치지 않는 한가운데의 이 길로 걸어가는 그 사람들이, 불 속에 있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사자굴 속에 있는 다니엘처럼 그런 인물들이 거기에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 세력들을 다 제거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보라, 내 능력이 어떠한가 보라.' 하는 그 보여 주고 계시는 것이 그곳에도 있으리라, 그것을 구경하고 싶은 것이 저의 제일 소원 중에 하나입니다.
제가 만나지는 못했지마는 소문을 듣고 존경하는 이기선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이기선 목사님이, 벌써 연세로 말하면 세상을 떴을 때인데 어떻게 해서 세상을 뜨셨는지, 그렇지 않으면 살아 계시면서 '하나님은 주권자라, 전능자라, 만왕의 왕이시라.' 하는 것을 그들 통치 위에 있는 탁월한 권능을 가지고 통치하고 계시는 것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을까? 지금 못 보면 이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대 가도 반드시 하나님이 계약하신 대로 그대로 된 것인 것을 구경하리라, 그러나 그때보다 지금 구경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마음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자리에 있으면서 이것을 위급을 모르고 딴데로 망명을 한다고 해도 어리석은 일, 아예 미리 그들에게 공산국가의 깃발을 들고 아부를 하고 또 지금 지하 운동 하는 데에 비밀히 접해서 그 운동비를 대 주고 이렇게 해도 어리석은 일, 또 불신자의 안 믿을 때의 그 방편이 이것이 효력 있으니 그 방편대로 살자 이래도 어리석은 일, 지금 이대로 살다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다가 지켜볼까 말아 볼까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그것도 어리석은 일, 그러면 지금 지키면 되니까 열심히 지키지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이렇게 하는 그것도 어리석은 일, 우리가 살 길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맺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맺음으로 이 피조물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법칙을 지키는 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이것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우리의 살 길은 이 길 한 길뿐입니다.
기독도가 천성을 향해 갈 때에 가는 앞에 보니까 큰 사자가 두 마리가 길 가운데 떡 있는데 그것을 보고, 그 길로밖에는 천성을 하늘나라를 못 가는데 가려 하니 사자가 있으니 가면 잡아먹힐 터이니까 가지 못했는데, 거기에 전도자가 말하기를 '네가 가되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오른쪽에 있는 사자에게 네가 물려 죽고 왼쪽으로 치우치면 왼쪽에 있는 사자에게 물려 죽는다. 네가 한가운데로만 가면 사자의 뒷발을 묶어 놔서 너 하나 지나갈 만한 그런 간격이 그 사이에 뚫려 있다.' 이것으로써 기독자들이 나아갈 때에 앞에 장벽이 맞는 데에는 하나님으로 치우쳐도 망하고 피조물로 치우쳐도 망하고, 하나님과 피조물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요 관계를 올바로 맺은 여기에는 사자가 암만 있어도 그 사자는 가로 탈선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모든 위험과 장애들을 다 하나님이 둬두셨지 치우치지 않는 이 중앙으로만 이렇게 가면 거기에는 시온의 대로라, 아무것도 거침없이 갈 수가 있다 하는 하나의 비유를 한 것처럼 우리의 가는 길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대한 그 관계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 온 성경이 많이 가르치고 있지마는 하나씩 들어서, 다니엘 한 사람은 온 전국이 하나도 빠짐없이, 심지어 왕도 자기 어인을 찍었기 때문에 왕까지도 이 다니엘을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어서 죽이는 이 단합이 돼 버렸고 다니엘은 기도를 안 한다 하면 살지마는 기도를 한다고 하면 자기는 죽는 길 그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저의 하나님이 돼서 함께 하시지마는 인간은 저희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고 기도를 안 하려고 하면 인간들은 죽인다는 그것이 이제 일단 중단이 되지마는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고, 이 사이를 만난 이것과 오늘 우리들의 입장과 꼭 같은 입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어떤 사람은 '야, 앞으로 적화될는지 모르니까 예수 믿는 것 아예 안 되겠다. 미리부터 치우자.' 그 자는 다니엘 입장에서 '기도하지 않겠다. 하나님 섬기지 않고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하는 그자이기 때문에 그자는 그것으로써 죽습니다. 한다 하면 또 그들에게 죽임을 받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할 일은 제일 위기의 입장에 있는데 하나님밖에는 구원할 자가 없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그 계명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그 계명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그 계명을 사랑함으로 모든 걸 다해서 지키는 이것밖에는 구원 얻는 길이 없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다 처음에는 신앙을 시작했다가 돌아서 버렸고 지금 신앙생활 하는 데에서 아무 효력을 보지 못 하고 실패를 하고 하는 그것은 뭣이냐? 이것은 피조물에게 대한 법칙은 지키지마는, 껍데기는 지키지 마는, 외식 신앙은 가지지 마는 하나님과의 관계 법칙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알맹이 신앙을 가지지 못하니까 다 쭉정이기 때문에 이것은 날아가 버리고 만다.
그러면 알맹이 신앙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지는가?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에게 포로가 되어서 마구 끌고 가다가 빨리 안 따라오는 것은 모조리 죽여 버렸습니다. 먹이지도 않고 마구 몽둥이로 때리면서 가다가 안 따라가는 것은 죽여 버리고 가고 이래 가지고, 그 뭐 짐승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그렇게 천물로 바벨론으로 끌고 갔던 그 포로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이 나타나는 것은 그 나라 왕이 '자, 전국에서 포로된 자들 중에도 좀 희망 있는 그런 자는 특별 학원을 두고 그를 육성해 가지고 우리 정부에서 채용하도록 그렇게 하라.'하면서 그 가운데에 다니엘과 몇 사람이 거기에 뽑혀서 들어갔습니다.
왕이 명령 내리기를 '왕의 진미를 먹여서, 그들에게 높고 넓고 복잡한 학을 연구시키기 때문에 영양이 충족해야 되니까 어쨌든지 왕과 같은 그런 진미를 먹여서 이래 하라.' 이럴 때에 다니엘 1장 8절에 보면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먹지 않기로 그는 뜻을 정하고 그대로 이행해 나갔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와 같은, 하나님 믿다가 천대출 받아서 그렇게 될 때에 그는 깨닫기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 바라보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은 이 죄값으로, 우리 선조가 이렇게 한 이 죄값으로 이렇게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소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의 법을 지키지 않은 이 값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여기에서 지키지 않으면 더 지금 포로보다도 더 지금 참혹하게 우리 민족과 내가 될 터이니까' 포로당해 가면서 그는 잡아 가지고 가는 바벨론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멸시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손에 붙여 가지고 우리 민족으로 이렇게 공포에 억눌리게 한다.' 해서, 바벨론으로 잡아 가지고 가는 사람들의 무력의 악독의 위협보다도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또 거기에서 이렇게 뽑혔으니까 우쭐했었을 것인데, 우쭐했을 것인데, 그 포로 중에서도 참 특수생으로 나라에서 선출했으니까 우쭐했지마는 그는 하나님 외에는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진미를 왜 안 먹으려 했느냐? '하나님을 내가 바라보지 않다가 나와 민족 이 이렇게 망했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면 죽는 것도 좋고 사는 것도 좋지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 외에는 내가 받지 않겠다. 이 나라에서 무슨 높은 벼슬을 준다고 내가 하나님 배반하고 이것 바라지 않겠다. 또 하나님이 나를 이 학생 중에서도 당신이 나에게 지혜와 총명과 능력을 주시면 내가 받지 이 식물로 인해서 받는다는 이것 내가 하지 않겠다.' 그 다니엘이 거기에서 뜻을 정한 것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에게 애착과 미련과 사모를 둔 이 외에 하나님을 사랑한 이걸 옮기지 않았고,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바라보지 딴 걸 내가 바라보지 않겠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요동치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걸 요동치 않은, 그 다니엘은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지 아니함으로 절단 난 그 멸망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못 맺은 것을 깨닫고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제일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바벨론에서 그때에 얼마나 참혹하게 죽였던지 참 성경에 보면 알 것입니다. 이래도 그분들을 두려워하는 거기에서 그것보다 하나님 두려워하는 이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는 것인 줄 알고, 하나님보다 이걸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끊겨지는 줄 알고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했고,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소망했고,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 일을 함으로 그는 10배의 지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그가 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서 선출당했을 때에 그분은 일일이 하는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이것은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똑 같은 사람이요 무지 무능자입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옳고 바르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큰 자리 가도 낮은 자리 가도 어디서든지 하나님으로 인 해서만 지혜도 얻고, 지식도 얻고, 능력도 얻고, 사는 것도 얻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그런 영광이나 지위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순종을 함으로 오는 지위면, 권세면 무엇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을 알았고, 하나님이 이런 관계를 가졌고, 6장에 보면 그분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했으며 피조물을 어떻게 사랑했느냐? 그 사랑한 것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거기에 보면 다니엘은 자기가 다리오 정권을 만나 가지고 거기에서 채용을 당해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서 모든 사람이 보기에 '이 사람은 자기 맡은 행동에 대해서 조그만치도 흠을 잡을 것이 없고 정죄할 것이 없다.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은 하나도 정죄할 것이 없다. 삐뚤어진 것이 없다. 다만 그는 하나님 섬기는 그 일에 저촉이 되도록, 하나님을 섬기니까 하나님 섬기는 일에 저촉되는 그런 일 만 만들어 놓으면 죽어도 하나님 법칙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는 다 하나님 배반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래서 모든 사람이 알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 배반하는 일이 없는 것과 하나님의 법칙 어기는 일이 없는 것,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의뢰하고 그분의 법칙을 지키는 이 사람으로 단정이 됐고, 사람들에게 대해서 흠이 없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하나님 법에 거리끼지 않는 것은 어떤 법이든지 인간에게 지켜서 하나도 거리낌이 없게 했다. 이렇게 거기에서 그들이 증거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 다니엘은 사람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심기고 높이고 두려워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이것으로 사람들에게 관계를 가졌고, 하나님의 법칙을 어기지 못하는 이 사람이요 그 법대로만 산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고, 하나님 법에 어기지 않는 그 법은 다 하나님을 위해서 지키고 사람을 위해서 지켜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김으로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가 암만 죽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 법을 사람에게 대해서 어길 수 없고 하나님 법도대로 사람에게 하고, 하나님 법에 어기지 않는 그 일이면 인간에게 대한 그 법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다 지켜 나왔다 하는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사자굴을 앞에다 두고 기도하나 안 하나 하는 이 계명을 가지고 신강할 때에 한 군데는 사자구덩이가 있고 또 한쪽 편에는 전 백성들이 거기 주모자가 있어 가지고 다니엘을 미워해서 시기해서 다니엘을 살해하려 하는 그런 원수들이 있고, 또 인정적으로 떼기 어려운 다리오 왕의 그 간곡한 사정을 하는 정이 있고, 이 사이에 끼어 있었지마는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하나님을 사랑함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 이것이 요동치 아니했기 때문에 다니엘은 이 소식을 듣고 그에게는 두려움이 털끝만치도 없었습니다. 또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인정에도 조금도 피동되지 않았고, 그 수많은 원수들에게도 조금도 피동되지 않았고, 사자굴의 그 죽음에도 조금도 피동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만 순종하는 이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됐던 것입니다.
이러니까 왕이 그 이튿날 사자굴 앞에 가서 말하기를, 그 왕이 좋아서 한 말 아닙니다. 분해서 한 말입니다. '다니엘아 다니엘아, 네가 밤낮 섬기던 그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밤낮 그를 두려워하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바라보고 그를 의지하고 그의 계명이라면 사자 굴에 들어가도 지키던 이 다니엘아, 이렇게 네가 바라보고 의지하고 섬기던 그 하나님이 정말로 너를 구원하기에 능력이 있었느냐? 너를 구원할 만했느냐?' 하나님께 분개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럴 때에 다니엘은 '왕이여, 만세수나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가지고 사자의 해하는 것을 다 봉했기 때문에 나를 하나도 해하지 않았음으로써 내가 편히 있습니다.' 다리오 왕은 휘뜩 뒤벼졌습니다. 그때에 다리오 왕의 신관, 다리오 왕의 신관도 다니엘과 같은 신관으로 바꿔져 버렸고 다니엘의 그 인격과 신앙에도 완전히 존경돼서 그는 그 동화됐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가 말하기를 '이는 뭣 때문에 이와같이 하셨느냐? 내가 죄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내가 삐뚤어지지 않았고, 사람에게 대해서도 삐뚤어지지 않았고, 왕에게 대해서 내가 삐뚤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이 왕의 법이 기도하지 마라 기도해라, 하나님은 기도하라 하고 왕의 기도하지 말라 하고 이 법이 둘이 충돌이 됐을 때는 부득이 왕의 법을 버리고 나는 하나님 법을 지켰지마는 하나님 법에 위반되지 않은 인간 법을 내가 하나도 안 지킨게 없었고 또 하나님 법은 내가 하나도 어긴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삐뚤어진, 죄라 말은 삐뚤어진 것인데 인간의 세운 제도와 법칙과 모든 조직 예의 도덕에 내가 삐뚤어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에 천사를 보내 가지고 나를 구출했습니다. 내가 또 왕에게도 내가 추호도 내가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증거를 했고 왕이 그 뒤에 '이는 참으로 세계에서 섬길 만한 참 신이다. 그는 섬기는 그에게 대해서 책임을 지셨다.
이렇게 밤낮 섬기는 다니엘에게 대해서 책임을 지셔서, 우리나라 국력이 무슨 소용 있느냐? 책임을 지셔 가지고 죽음에서도 살렸고 그는 모든 생활에서도 이를 지켜서 의롭게 살게 하셨다. 이는 섬길 만한 하나님이다. 이 하나님을 만일 누구든지 욕하고 대항하면은 그 모든 가정은 다 멸하겠다.' 하면서 대적하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그 사자굴에 도로 넣어서 처형을 시켜서 없앴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와 같이 살아 나왔을 때라도 들어갈 때라도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니엘을 시험하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요 하나님의 개별 섭리하는 걸 믿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그 대적들에게 미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미움이 있어서, 인간으로 말미암아 발기됐다고 미움이 있으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그들을 잡아다가 사자굴에 던져서 처형을 할 때에 그때에 다니엘이 거기에서 개운하고 괘씸하든지 꼬시다 시원하다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또 하나님은 그 역사를 중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그들을 왜 살리려고 구출하지 않았는가, 사랑으로 구출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제가 월권적으로 그와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것이 사자구덩이를 옆에 두고 기도할래 안 할래 하는 이 입장을 만났을 때에 그에게 기쁘고 즐겁고 평안해.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고 이제는 참으로 멸시 천대 배신했던 이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던 것을 하나님 계명 지켰고, 생명 바쳐 하나님 사랑치 못했던 것을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을 모든 절망에서 바라보고 하는 이런 좋은 기회라는 것을 자기가 인정이 되고 믿어졌기 때문에 그의 마음과 그의 태도와 그의 행동은 이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평소에 모든 성공이 하나님 한 분에게 있다는 것을 다가보지 않고 '이것이 이것은 성사해 준다, 저것은 저것이 성사해 준다' 하여 소망을 어만 데다 두는 그것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요,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고 하나님보다 어떤 현실의 그것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 당신이 보호하면 인간이 우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고로 하나님의 그 크심과 하나님의 그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 하신 약속과 하나님이 이행하신 그 진실과 하나님의 계약을 바라 봐, 하나님에게는 아무것도 드릴 것 없습니다. 이분이 이런 분인 줄 알고 내가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가 도와 줄 것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고 그의 계명 지키는 것뿐이요 인간들에게는 그 법도대로 이렇게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어려움에서 구출할 수 있는 한 길뿐인 이 길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여기에 입각하면 개인도, 가정도, 우리 사회도, 한국 교회도, 따라서 이방도 다 구원받을 것이요, 이북과 소련과 중공도 다 구원받을 것이요, 우리가 이것을 하지 못하면 그들도 망하고 우리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여러분들, 십자가상에 죽으신 그 한 분은 세계와 우주와 만물을 구원합니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의 신앙으로 예루살렘을 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나 한 사람에게 이 나라와 세계의 생애의 생사가 달려 있는 이것을 우리는 책임져야 됩니다. 공연히 과장한 말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