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청지기의 고민

 

1982. 6. 14. 월새

 

본문:누가복음 16장 3절~4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우리는 누구나 다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이 청지기 직분을 참 깨끗이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대속을 받았으면 온전히 주의 것으로 살아야 할 것이지만  온전히 주의 것으로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불의한 청지기인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청지기이니 앞으로 어떻게 되겠느냐, 앞으로  어떻게 되겠느냐?’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 고민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다 불의한 청지기가 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첫째로 가질 것이 뭐이냐? 고민이 있어야 됩니다. ‘내가 이 세상  살이를 언제까지나 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살이가 끝나면 어찌 되나?’하는 이  고민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 고민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 참 불쌍합니다.

자기의 과거는 현재하고 연결을 시켜 봐야 됩니다. 자기의 과거는 현재에  연결시키지 아니하고, ‘과거는 과거로 그대로 두고’ 이런 소리를 사람들은  잘하는데 그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생명 없는 사람이오. 어떻게 과거가 내  과거인데 내 과거 그것을 과거대로 끊어 버릴 수가 어떻게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지만 기독자는 그게 아닙니다.

과거는 이랬는데 현재는 어떠냐? 과거와 현재가 같으냐? 과거와 현재가  변해졌느냐? 과거보다 현재가 타락이냐? 과거보다 현재는 뛰어났느냐?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이것이 있어야  돼. 이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

이 사람은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지혜를 가졌습니다. ‘과거에는 내가 청지기  일을 이래 했는데 이제 내가 청지기 직분을 빼앗긴다. 과거에는 청지기 이런  권리를 가졌지만 이제는 청지기 직책이 곧 빼앗겨진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서 비교해 봤습니다.

또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서 비교해 봤소. ‘내가 현재는, 아직까지는, 청지기  노릇을 쫓겨나갈 사람이지만 아직까지도 이 직책을 면직당하지는 아니하고  계산할 때까지 몇시간이든지 며칠이든지 남아 있는데, 앞으로는 어찌 되느냐?  내가 이 직책을 빼앗기고 난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현재와 미래를 여기에  연결시켜서 내가 현재에 이렇게 살고 보면 앞으로 어찌 되겠느냐?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인생이오. 짐승은 그 범위가 좁습니다. 짐승도 그 미래에 대해서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있지만 그 한계가 좁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짐승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저는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강아지 새끼, 개가 새끼를 낳아 가지고 에미가 돌아다니니까  따라 줄줄 따라다닙니다. 따라다니는데, 에미는 도랑물을 훌쩍 건너 버렸습니다.

건너면 이 개 새끼, 강아지들이 아무리 이래 가 봐도 건너 뛰려고 우쭐 우쭐  하다가 물에 빠질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건너 뛰지를 못하고 고민해 가지고  깽깽거립니다. 아무래도 건너 뛰면 안 되겠으니까 깽깽거려요. 깽깽거리면 할 수  없어서 큰 개가 도로 건너 옵니다. 그게 뭐이냐? 건너 뛰면 빠진다는 그 미래에  대한 것을 예산하는 그런 머리가 있는 것이라 그거요.

사람은 그 범위가 조금 넓어. ‘내가 이렇게 하면 늙어서 어찌 되느냐?’ 젊어서  늙어서를 생각하고, 아이 때에 장성한 사회인이 되고 난 다음을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고 그 이상 가지 못하는 그것이 또 짐승 한가지입니다. 늙으면  어떻게 할 것이 아니라 ‘죽으면 어찌 되느냐?’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비로소  일반인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일반인을 초월한 사람들이 대개 종교 창설자,  종교가가 되는 것입니다.

병아리도 보면 암탉이, 어미 닭이 이렇게 높은 데 올라갑니다. 훌쩍 뛰어  올라가면 병아리들이 올라가려고 애를 쓰다가 쓰다가 못 올라가면 마구  삐약거리고 울면서 돌아다닙니다. ‘이리 가면 올라갈 수 있을까? 저리 가면  올라갈 수 있을까?’ 이리 가 봤다가 저리 가 봤다가 양사방 돌아다니다가 어째  올라갈 길 있으면 그 길을 찾아 가지고 올라갑니다. 그것도 다 예산이 있고 다  욕망이 있고 미래에 대해서 계산하는 게 있다 그말이오.

그렇지만 ‘내가 이 병아리로 이렇게 살아 가지고 커 가지고 알을 낳고 또  자라고 이리 되면 뭣 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더 이상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찍해야 그래 봤자, 알 낳아 봤자 인간의 밥밖에 안 되고, 살쪄 봤자 마지막에는  찜닭으로 들어갈 것밖에 없는 것인데 딴것이 없지만 하나님이 그 이상을 모르게  했기 때문에 거기에서만 한계를 짓고 사는 것이라 말입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어떤 인생은 그만 당일치기로 족하게 사는, 그렇게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것은  인생이 불쌍한 사람이오. 인간은 세상에 늙어 죽을 때까지를 생각하는, 그  범위를 넓혀 준 그 사람이 좀 복을 받을 희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아니라. 죽고 난 다음에 영원 무궁까지를 생각해서, 그것이  없으면 불쌍해. 이러니까 침대 위에 누워서, 요 위에 누워서 하루니 이틀이니  눈물 흘리면서 ‘인생이 불쌍하다. 인생이 불쌍하다. 오히려 짐승이 낫다. 아,  짐승보다도 식물이 낫다. 감각 없이 자라는 식물이 낫다. 인생이 제일 불쌍하고  비참하다’ 하는, 인생의 비관을 고민을 가지는 이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목마른 자라, 이 사람이 진주 찾는 사람이라.

산다씽도 그 사람이 그 나라에 왕의 조카인데, 아주 유망하게 길러서 조카지만  앞으로 정권을 옮겨 주려고 이랬는데, 이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고민스러워서  아무리 그 끝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하니까 이제는 그만 ‘안 됐다. 그 끝이  없으면 그 인간살이를, 그 고민스러운 살이를 살아 봤자 무슨 소용 있느냐?’  결국은 남 속이고 자기 속고 하는 것뿐이라고, 기차 시간에 네루 위에 가 가지고 베개를 베고 차가 오면 그만 그 차에 탁  치어서 자살을 하려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가, 고민하고 있으니까 빛이  나타나더니만 공중에 소리가 나기를 ‘산다씽아! 산다씽아!’ 부르시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겠노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 짐을 지라 나는 너희에게  평강을 주겠노라’그 성구의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가지고 그  시간부터 기독자가 된 것입니다.

기독자가 되고 나니까 자기 삼촌이 그렇게 세상 그 왕위를 상속해 주려고 하던  그분이 와 가지고 사정을 하다가 하다가 안 되니까, 개종한 것을 다시  돌아오라고 하니까, 삼촌이 도복을 입고 앞에 무릎을 꿇고 와 가지고 울면서  산다씽에게 빌었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네 소원대로 다 해 줄 터이니까 네가  부디 다시 종교를 개종했던 것을’ 기독교 신자 됐던 것을 돌아오라고 할 때에,  그때에 그 고민이 그에게 제일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양보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생명 내 놔서 죽는 것보다 최고의 시험이라 자기 말로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안 되니까 자기 부모네들이 도시락을 싸서 주면서 도시락에다가 약을  넣어서 싸 줬습니다. 먹고 죽으라고. ‘네가 이 도시락을 가져가서 먹으라.’  도시락을 으레 그런 줄 알고 가지고 와서 보니 벌써 시퍼런 불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독약을 넣어서.

이렇지만 ‘부모가 나에게 먹으라고 하는 것 이것 먹지 않으면 이것 불효요  불순종이니까 내가, 부모를 공경해라 5계명을 근거해 가지고 내가 이것 먹는  것이 옳지. 죽어도 먹어야지. 주님이 독한 것을 먹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이것을 나는 5계명을 지킴으로 먹고,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셔서 안  죽으면 이것은 또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그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도시락을 먹고 난 다음에 그때 그만 그것이 심하니까 거기에서 그만 죽으려고  기절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메어다가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에 가니까 벌써  독약을 먹은 지가, 벌써 창자가 다 녹아서 희망이 없다 했습니다. 희망이  없으니까 부득이 병원에 그냥 눕혀 놨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의사가 나오니까  완전히 완치되어 버렸습니다. 완전히 완치가 되어 버렸어.

그래 그 의사가 그것을 보고, 선교사가 입원을 시켰는데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계신다고 해서 그 의사도 믿는 사람 됐고, 그런 시련을 겪은 것이 성  산다씽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무엇인가 자기의 해결 짓기 전에는 만족이 안 되는 그것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진실은 뭐이냐? 완전, 완전 참된 것, 둘이 아닌 것 하나,  완전이라는 그것을 잡기 전에는 고민과 번민을 가진 사람이 진실입니다.

성경 진리를 깨달은 사람도 진실한 사람은 이 사람은 이렇게 해석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해석하고, ‘이렇게도 해석하고 저렇게도 해석하는가보다.’ 둘을 잡고  만족하는 사람은 진실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진실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어찌 둘일 수가 있겠느냐?’ 이래서 고민을  가지고 이러다가 참 자기에게 ‘아, 요거라.’ 이것은 뭐 천하 인간이 다  반대해도 ‘이거라’ 하는 그것을 잡고야 만족하는 그 사람이 진실성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 청지기이기 때문에 내가, 불의한 청지기가 이제  이 청지기 노릇을 언제까지나 할 것이냐? 이 청지기의 생애가 끝날 때가 있지  않느냐? 끝나고 난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쫓겨나고 난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쫓겨나고 난 다음의 것을 쫓겨나고 난 다음에 아는 사람은 소용 없어. 쫓겨나면  어찌 되느냐 하는 걸 쫓겨나기 전에, ‘쫓겨날 나이니까 쫓겨나기 전에 뭐 할  일이 없겠느냐?’ 쫓겨나고 난 다음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땅을 파자니, 빌어먹자니’ 이것 다 아니라 그말이오. 쫓겨나기 전에는 어째야  되느냐? ‘아, 할일을 알았도다.’ 이것을 잡은 것이 진주를 잡은 사람이요  보화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기독자는 다 이래 가지고 이 걸음을 걷는 것이오. 이 걸음 걷다가도 그만  잘못하면 이런 욕망이 없이, 미래적 영감이 없이 그날 그날에 오늘 누구  만났으니 됐고, 누구에게 심방했으니 됐고, 권면했으니 됐고, 오늘 생활 성전  지었으니 됐고, 이와같이 그날 생활로 그만 끝을 내 버리면 죽는 날이오.

그날 생활이 반드시 미래와 연결되어 가지고 계산이 되어야 된다 말이오. 오늘  이 생활이 미래에 어찌 되느냐? 미래와 연결시켜. 과거는 현재와 연결시켜서  계산이 계속해야 되고, 현재는 미래와 연결시켜 가지고 계산이 있어야 되지 이  계산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 계산이 있어. 미래에 대해서 계산이 있어. 계산이 있고 당장에  행동 개시를 했어. 빚진 자를 불러 왔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탕감하다가 ‘나가라.’ 이제는 계산했습니다. ‘나가라.’ 이러니까  나가면서, 쫓아내면서 주인이 보니까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지혜있게 일했다.’  우리는 옳지 않은 청지기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고, 이제 세상을 떠날  때에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갈 때에 ‘지혜롭게 행했다’하는 이 사람이 되어져야  됩니다. 지혜롭게 하는 길은 한 길뿐이라. 뭐 이 길도 저 길도 여러 길 있는  것이 아니라 빚진 자를 탕감시켜 주는 이 한 길밖에는 없습니다.

봉사도 그저 ‘오늘 봉사 했으니까, 교회에서 말해서 봉사했으니까 기쁘다.’  그것은 다 죽은 생활이요 근시자의 생활입니다. 봉사하면서 오늘 봉사한 것을  미래에 주님 만날 때와, 또 미래에 앞으로 모든 교인들이 와서, 자꾸 와 가지고  장소가 모자라게 될 때에, 주일 학생들이 넓게 앉게 될 때에 미래에 ‘이래  놓으면 앞으로 학생들이 넓게 앉겠다’하는 그것도 가까운 미래를 연결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제 주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되느냐? 이렇게 하는 것을  죽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느냐? 오늘밖에는 할 수 없다. 언제 끝날지 아느냐?’  이렇게 미래에 원대한 그 먼데를 연결시킬수록 그것이 바로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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