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1988. 3. 22. 화새벽

 

본문 : 누가복음 16장 9접-10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요사이 늘 이 말씀을 가지고서 계속하는데 여기에 대한 해석은 벌써 다 알고  있는 줄 압니다.

 이대로 우리가 살 때에 생명도 능력도 성장도 되고 그저 읽어 들어 기억만 하고  있으면 이 말씀이 우리를 정죄하는 말씀이 됩니다. 행하면 구원의 실상이 되고  행하지 않고 지식대로만 가지고 그치면 나를 정죄하는 율법이 됩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가’ 하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우리 믿는 성도들 신약 성도들 전부를 다 향해서 말씀한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해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다 저주받은 물질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이라고 말씀한 것은 저주와 정죄 사망을 받은 이  물질계에서 살고 있는 물질계 전부를 가리켜서 여기에 재물이라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이것을 무슨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재물이나 물질이나 이런 걸로만 생각하면  범위가 안 맞습니다. 우리 자신도 영 외에는 다 이 물질이요 또 이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영물은 아니고 물질입니다.

 그러면, ‘없어질 때에’ 이것들은 다 한 번 그 형체도 없어지고 또 그것들의  모든 본질과 본성도 다 없어집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다 불타서 없어지고 또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떠나서 다 없어질 것입니다. 일단 없어졌던 것이 다시  부활해 가지고 그가, 생명 부활하든지 심판 부활하든지 부활해 가지고 영원한  천국과 지옥으로 그렇게 보응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은 없어질 이 물질계에 나와 판련된 모든 것을 다 총칭해서 말한  것이고,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곧 그 위에  말씀하시기를 빚진 자를 불러다가서 빚을 탕감해 준 그 빚진자를 가리켜서  여기에 친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말하되 기름 백말진 자 밀 백석 진 자에게 불러 가지고서 흑은 오십 혹은  이십으로 그렇게 탕감한 그것을 위에 말씀한 곧 사람을 이 죄에서 벗겨 준 거,  죄에서 벗어나게 해서 죄를 벗겨 준 거, 다시 말하면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한  거,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를 가지고서 사람을 죄에서 구원한  그것을 가리켜서 빚 탕감했다 그렇게 위에는 말씀했고 이다음에는 그런 말을  새기지 안하고 친구를 사귀라 이랬습니다.

 우리가 땅 위에서 사람을 사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화평과 이  사랑을 심히 강조해서 말세가 돼 갈수록 온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한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공산주리도 한덩어리되고 또 종교도 다 하나가 될 것이고 기독자도  전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기독자와 정반대인 무신론자와도 다 하나가 될 것이고  다 하나가 됩니다. 이것은 전부 사랑주의 화평주의를 가지고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속에는 이것이 다 친구를 사귐이 아니고 완전히 원수가  되어지는 그런 실상을 이루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나중에 일곱 머리와 열 뿔로 더불어 다툰 그 결과에는 어린 양과 어린  양에게 속한 진실한 자 고것만 많지 안한 양이 뭉쳐 있지 나머지기는 전부가 다  하나됩니다. 열 뿔 말한 것은 땅 위에 크나 작으나 힘이라고 하는 그런 것들은  다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화평주의 또 사랑 이렇게 해서 과거에는 기독교 중에도  천주교와 개혁교는 참 누구보다도 적이 되었었는데 그런 것은 다 경계선이  없어졌었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오셨다고서 말씀하신 이런 말씀은 해당이 안 되는 그런 때가 됐습니다.

 이래서, 모두 다 가속도로 지금 이 화평주의 평화주의 사랑주의로 이렇게  나가고 있는데 여기에도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랬습니다.

 ‘사귀라’ 이랬는데 이 사귀는 이것을 그 위에 표시해 놓기를 빚 탕감해주는  그것을 여기에다가 다시 끌어다가 사귀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러기에, 참 이 화평이라는 것은 복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이렇게 죄에서  사망세서 악령에게서 하나님의 원수의 입장에서 구출해 가지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가지고서 인간을 구원하는 그 외에는 영원한 대접도  없고 사귐도 없고 화평도 없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기이하고 좋은 때가 됐습니다. 분명히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고 이렇게 모든 사리와 모든 인인  관계를 다 이 복음을 기준해서 이 복음 중심으로 상관을 가질 때에는 마지막에  어찌 되느냐? 어린 양에게 속한 진실한자만이 자기와 대립이 안 되지 그외에  있는 수많은 기독자 수많은 종교가 수많은 모든 이 세상에 사상가들과  주의자들과는 대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대립되는 것을 심히 무서워하고 또 화평하는 것을 심히  보배로 여기지마는 복음과 대립되는 것은 우리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이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또 복음으로 화평되지 않는 이 화평은 우리가 가치로  삼아서는 유혹에 빠져서 사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친구를 사귀라는 것은 곧 인간을 이  복음으로, 멸망에서 구원하는 그것을 사귀는 것으로 말한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없어질 때에’ ‘내가 죽었을  때에’내가 죽으면 다 그런 거 뭐 암만 아껴도 없어지고 아무리 많이 가지나  적게 가지나 다 없어집니다.

 ‘없어질 때에’ 없어질 때는 우리는 현실에 쓰고 나면은 고다음 현실을 닥치면  과거 된 거는 다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없어지는 계속적인 것을 중복적인  것을 말하지 안하고 이것은 단번인 마지막에게 상을 떠나는 죽음을 말합니다.

죽고 난 다음 부활 때 곧 무궁세계를 두고서 탕합니다.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저희가’ 이거 ‘저희가’하는데 이거  복수를 일반적으로 위에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니까 그와 같은 연관성을  가지고서 ‘저희가’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친구를 사귀라 하는 것은 친구 사귀는 것은 단수로 사귀는 것인데, 단수로  사귀는 것인데 단수로 사귄 것이 그것이 뒤에 그 사귐을 받은 사람들이 이 사귄  사람에게 대접할 때에는 복수로 썼습니다  우리가 사귀는 것은 내가 그 사람만 대접하는 것인 줄로 생각하지마는 언제든지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은. 독립을 할 수 없습니다. 또 개별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구속받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주님과 하나가 되어서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떨어진 그 모든 지능은 다 불타  버리지마는 우리의 이 삭람 본체라는 이것은 떨어지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그 한 사람에게 대해서 한 것이 곧 주님에게 대해서 했기 때문에  ‘저희가’ 나는 한 사람 대접했는데 대접받은 사람이 복수가 나옵니다.

대접받은 사람이. 나는 사람에게 대접했는데 사람에게만 대접한 게 아니라  사람과 주님과 함께 대접한 일이 됐기 때문에 복수가 나와서 ‘저희가’  ‘너희에게’ 또 대접을 받는 것도 단수가 받지 안하고 복수가 받습니다. 내가  대접을 받는 것도 받을 때에 나 혼자 받지 안하고 주님과 같이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땅 위에 구속받은 자에게 이 복음으로 관계하는 것이나 또  이 세상 법도를 가지고 관계하는 것이나 그것은 내가 그 사람 개인에게 대해서  해치고 또 대우한 그것이 아니고 해친 것은 사람 아니고 주님과 함께 해치고 또  대우하는 것도 주님과 함께 대우한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사람에게 행하는 것은, 그 사람을 해하는 것은 곧 주님을  해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치는 것은 주님을 치는 것이요 또 그 사람을 이렇게  존대하는 것은 곧 주님을 같이 존대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에 ‘저희가’ 대접받은 자가 대접할라고 할 때에 대접하기를  저희가 대접한다, 저희가 이렇게 다시 무궁한 영원한 처소에서 대접한다. 대접할  때에 ‘너를 대접한다 하지 안하고 ‘너희를’ 이와같이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사람에게 행하는 그것이 곧 대속하신 주님과 그 사람에게  대해서 행한 것이요 또 그 사람을 구원한 것은 곧 내가 그 사람과 주님을 구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한 것이 주님을 구원한 것이요 인간을  죄에서 벗겼으면 벗긴 것만치 주님의 죄를 벗겼습니다. 인간을 거기에서 멸망에  빠뜨렸으면 멸망에 빠뜨린것만치 주님을 멸망에 빠뜨린 것입니다.

 왜? 주님은 영원히 나뉠 수 없는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주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주님과 떨어지지 못하는 고로  곧 그 사람의 죄짐을 벗기는 것은 주님이 그 사람의 죄짐을 짊어 진, 그 짐을  벗겨 주는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러기 때문에 없어질 거 가지고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바꾸는 것이 이 방편 외에는 없고, 또 자기가 주재이시며 주권자이신 이  만왕의 왕이신 이분을 사귀는 시기는 오늘밖에 없습니다. 이 현재밖에 없지  이분은 뭐 무궁세계는 모두가 다 사귈라고 하지마는 그때는 엄격한 그 지위가 다  수립되고 모든 것이 판정됐기 때문에 그때는 그저 실력있는 대로 대우될  것뿐이지 사귀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사귀는 일은 주님을 사귀는 것은  지금이라는 이 현실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 무한하신 분을 사귀어서 영원한 그분으로 더불어 친교를  가지는 그분과의 관계를 가지는 그 일은 오늘에 복음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는 요  방편 외에는 다른 방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반사 일을 하든지 권찰 일을 하든지 평신도로서 오늘 전도받은  사람이 내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든지 뭐 성직자 전도사 목사노릇을  하든지 어떤 노릇을 하든지 이것이 다 곧 영원무궁한 주님과의 관계가 결성되는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그 한다는 것이 한 것만치 그에게 품삯은 있어서 한  댓가는 있을 지라도 주님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대우하는 것으로 한 것만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선지자 노릇도 했고 또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이렇게  귀신도 쫓아내고 그런 능한 일을 많이 하지 안했습니까 이럴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한 상급이 없는 거는 아닙니다. 있지마는  주님과의 걱접 친교를 맺는 일은 주를 위한 것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경건  외에는 주님과 친교 맺는 일이 없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래서, 오늘 아침에 다시 또 말하는 것은 언제나 내 자신도 주님과 떨어져서  있는 그 시간은 찰나도 없습니다. 언재든지 주님은 내 안팎에 계시고 나도 주님  안팎에 있습니다. 나도 주님 안에도 있고 주님 밖에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이 결함이 이미 되어 있는 건데 이  멀어지지 않는 이 결합으로 살면 주님이 대속하신 대속은 완전히 자기 것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기가 예수님의 이 대속을 벗어 버리면 그거는  어짤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대우하는 것은 벗지 않고 사는 것이요 또 입고 사는  것이요 또 주님이 하시는 그 일을 하는 것이 주님을 사귀는 것이요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자신도 주님과 찰나도 떨어질 수 없어. 내가 범죄할  때에는 내가 주님에게 죄를 입히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현저히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욕을 보이는 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피를 속된  것으로 여기는 자는 곧 주님을 지금도 현재에 고난을 주고 있는 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내 자신이 주의 구속을 벗으면 상관없는 게 아니라 구속을 벗을  때에는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 박는 행동을 한다 그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두 번 십자가에 못 박는 행동을 하기 때문에 한 번밖에 안 박혔기 때문에  깊이 해석을 하면은 거기에는 속량이 없습니다. 알고 짓는 죄는 속량이 없다는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내 자신도 주님과 분리할 수 없는 자신이요 또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사람을 사람 하나로만 생각지 말고 그 사람과 주님과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돼 가지고서 있는 것을 내가 생각하고 상대해서, 그 사람에게 잘못하는  것이 주님에게 잘못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해하는 게 주님을 해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이 주님을 욕하는 것이요 그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 주님을  대우하는 것이라. 주님과 불가분의 이 대속으로 결합되어 하나 되어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고, 다만 본인이 벗으면 벗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이든지 영에 대한 거는 벗을래야 벗을 수가 없고 이  심신의 건설구원에 대한 것은 벗으면 벗어 버립니다. 그 벗기는 언제 벗는가?  현실에서 벗는데 벗어 버렸으면 그 벗은 그것은 주님과 구속의 상관없기 때문에  멸망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기억해서 우리는 어데서든지 ‘나는 불의의 재물로 살고  있다. 이것 가지고서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그러면 이 시간에도 주님과 나는  사귈 수도 있고 주님과 원수 될 수도 있다.’ 벗으면 원수됩니다. 영원히  원수입니다. 영원히 원수이기 때문에 상관없는 멸망입니다.

 현실에서 주님의 구속을 영은 벗지 않고 심신은 벗을 수도 있고 입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잇고 있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대우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것이 대우하는 것이요 벗는 것이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요 두 번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 되기 때문에 주님은 두 번 못 박히지 안했기 때문에 그 죄는 저 죄만 남아  있다 하는 그것을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요것을 기억해서 어데서든지 ‘이 자리에서는 내가 주님 사귈 것이 뭐인가?’  고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기억하고, 우리는 이 복음은 좌우에 이한 날선 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뭐  효력이 있고 그대로 능력이 역사하고 자기에게는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제일 정죄를 크게 받고 멸망받는 것이 이 복음을 저를 위해서  이용하는 그자가 제일 화가 큽니다. 이 복음을 자기를 위해서.

 자기가 이 복음의 주인이 돼 가지고서 자기를 위해서, 자기중심인자기 위주로  이 복음을 이용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자기를 부인하기 전에는, 자기중심인 악이  남아 있고는 복음에 언제든지 적기독 노릇을 하지 참 된 기독자의 노릇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든지 ‘여기에서는 주님 사귀는 것이 어떤  것인가? 친구를 사귀는 게 어떤 건가?’ 이것을 생각해 가지고서 그것만 찾아서  행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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