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1984. 4. 21. 토새

 

본문: 요한일서 3장 16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랑은 하나님만 가지신 것이지 우리 사람들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우리가 사랑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생명입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그 사랑의 능력입니다. 사랑은  지혜입니다. 사랑은 지혜요, 또 생명이라는 말은 힘이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생명이요 사랑은 지혜요 사랑은 힘의 능력이요, 또 사랑은 심한 기쁨이요 또  사랑은 쾌락입니다. 또 사랑은 평강입니다. 사랑은 인내입니다. 모든 보배로운  것이 다 사랑 안에서 나옵니다. 모든 보배로운 것을 다 합류해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은 하나님은 전능자시요 전지자시요 자존자시요 완전자시요  창조주시요 주관자시라. 그러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목적도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의 발동이 목적이 됐고. 또 사랑의 그 활동이 예정이 됐고, 또  사랑의 그 활동 작용이 창조가 됐고, 또 사랑의 그 역사가 모든 것을 보존하는  보존이 됐고, 섭리가 됐습니다.

 사랑 없는 지혜가 없고 평강이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건설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피조물들이 받아 가지고 그 사랑을 가졌을 때에 살기도  하고, 지혜 있기도 하고, 능력 있기도 하고. 또 쾌락과 평강을 누리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도합니다. 전부 다 생명의 힘입니다.

 사람들의 말에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하는 그것이 여인으로서는  자기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인데 그 자녀에게 대해서 잘 감당하게 되는  그것은 뭐이냐? 그것은 여인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다 하는 말입니다. 모든  동물들이나 곤충들이나 모든 식물들이나 그런 것이 다 자체로서 가질 만한  지혜가 아닌 그 자체가 그런 지혜를 가질 수 없는 것들인데 그 자체를 초월한  지혜들을 가졌고, 또 능력들을 가졌고, 질서와 조직들을 다 가지고 있으니 그  모든 것은 다 이 사랑이라는 이 사랑의 작용에서 그 모든 것이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이로써 우리가 사랑을 알고' 그러면 사랑이 뭐이  사랑이라는 것을 이로써 알게 됐다. 그러면 사랑은 보니까 하나님만이 가지신  사랑인데 그 사랑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힘이  모든 죽으신 일과 살으신 일, 주님이 우리를 대속해서 죽으신 일에 그 능력도,  또 영원히 사람으로 부활하심의 그 능력도 전부 다 이 사랑의 힘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전지한 지혜자시지마는 우리에게 대해서 영원의 영원을  잘 아시고 하나도 살펴서 흠점이 없이 우리를 사랑 하신 그 지혜도 하나님의 그  사랑의 작용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랑 있는 곳에 지혜가 있고. 사랑이 있는 곳에 능력이 있고,  사랑하는 그 상대방에게 대한 지혜가 있습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는 여인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에게 대해서는 아주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 같은 그 어머니가 그  아이에 대한 지혜가 뛰어나고 능력도 뛰어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능력도 지혜도 다 사랑의 발동이요 작용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무엇을 알라고도 하지 안하고, 또 사랑이 없는 곳에 알라는 그런 사색도  없고 연구도 없고, 또 거기에 대한 원만한 그런 지혜나 지식이 작용을 할 수  없고 있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만일 그 본체가 사랑이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은 아주 가장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일 사랑이 아니고  지혜뿐이라면 그분에게는 전체가 다 멸망뿐이요.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가장  자존한 것 만침 가장 홀로만 가진 그런 비참한 결과 맺는 것이 필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거리도 있고, 또 하나님의 노력도  있고, 또 하나님이 맺어 놓은 열매도 있고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랑은 사랑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사랑에서 지혜도 나오고,  사랑에서 능력도 나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하나 예를 든다면 어떤 무엇을 사랑하든지 사람을 사랑  하든지 물질을 사랑하든지 무슨 운동을 사랑하든지 무엇이든지 사랑이 거기에  가야 거기에 대한 연구도 생기고, 또 지능도 나오고 활동도 나오고 열매도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 없이 대하는 데에는 거기에는 아무런 올바른  작용은 있을 수 없고 다 파괴뿐이요, 건설이나 개량이나 회개나 또 개선이나  섭리나 노력이나 그런 것은 전척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읽을 때에, 이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라, 하나님의 사랑을 그려 내놓은 것이 성경이라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상고하면 사랑에 대한 그 지식을 차차 차차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연구할  때에. 하나님의 이 모든 말씀은 피조물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말씀이니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라 이렇게 이것을 깨닫고 성경을 연구하면 곧 그것이 능력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능력이 어떤 것이 능력이라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능력은 실력이 능력입니다. 지혜는 올바른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악한  지혜가 있고, 의로운 지혜가 있으니, 옳은 지혜는 살게 하는 것이요, 나쁜  지혜는 죽게 하는 것이요, 옳은 지혜는 건설하는 것이요, 나쁜 지혜는 파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능력은 다 주님에게서 나왔지 다른 데서 나온 것이 아닌데 그 능력은 둘이라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하나는 파괴의 능력이요 하나는 건설의 능력인 데 어떤 자는  건설의 능력을 취하여 건설에게 속해서 건설의 능력이 그를 붙들고 일하게  하시고, 파괴의 능력에 속해서 파괴의 능력이 그를 붙들고서 파괴의 그 결과를  역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자유성을 가지고 건설의 능력에 속할 수도 있고 영접 할 수도  있고 파괴의 능력에 속할 수도 있고 영접할 수도 있는 그것은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의 법칙에서 의를 취하면 건설의 능력에 네가  소속하고 그 능력이 와서 역사하게 되고. 삐뚤어진 것 죄를 네가 영접하게 되면  파괴의 능력이 와서 네게 역사하고 너는 파괴의 그 능력에게 속하게 된다 하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난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지금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 사귀는 것은 둘이 있는데 하나는 모든 피조물을 사귀는  사기이요, 또 한 사귐은 창조주 자존자를 사귀는 사귐인데. 피조물을 사귀는 그  사귐에 유일한 법칙이라 말은 제일 좋은 법칙이라 말이 아니고 유일이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뿐인 법칙이라 그말입니다. 제일 좋고 제이 좋은 것이  아니라 제일 하나 고 뿐입니다. 하나뿐이라는 것을.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발표로서 유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을 사귀는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은 하나뿐인데 그 법칙은 피조물을  삐뚤어진 데서 해방 시키는 것이다. 죄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모든 삐뚤어진  데에서 해방시키면 살고 삐뚤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작용할  때에는 삐뚤어진 것을 발생하기 쉽고 삐뚤어진 것이 장성하게 되면 사망을  낳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 죄라 말은 삐뚤어졌다는 것을 한 마디로 표시해서  단어로 말하기를 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이 모든 피조물을 사귀는 것이라.

 그러면, 죄에서 해방하는 것이 인생만을 죄에서 해방해서 구출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이 어찌 모든 피조물을 사귀는 것이 되는가? 녜. 피조물이 이 우주가  하나님 앞에 저주받게 된 것이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 다스리라 했기 때문에 이 타락하지 안했으면  이 우주를 참 자유자재로 통치할 수 있을 터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통치하지 못하는 그 인류가 지금 우주 세계라, 우주 시대라, 또 우주인들이라  이라면서 이 우주에 발을 내 디디놓고 조금 생각하는 이것이 차차 차차 지식이  열려 가지고서 그런 면에 대해서 좀 눈을 뜨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는 모든 이 우주의 대표자요 대리자요, 또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  피조물에게 대해서 창조주의 대리자요, 또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피조물의  대리자요, 창조주의 대리자요 피조물의 대리자가 그것이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었는데 그것이 타락해 가지고서 본 지위에서 쫓겨나게  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타락했느냐? 범죄함으로 타락한 그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임했으니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가 임한 것은 그 타락한  사람들에게만이 아니고 일반 생육법으로 나는 모은 전 인류에게 그 정죄함이  왔고 저주가 왔고, 또 모든 피조물의 대표가, 되는 사람이 그렇게 범죄했기  때문에, 모든 우주가 다 저주 받았던 것입니다.

 이래서, 창세기 2장과 3장에 보면 모든 만물이 다 사람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서 만물들도 사람에게 저주해서 과거에는 모든 만물이 인간을 섬기기를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서 하나님처럼 섬겨서 복종했던 것인데 이 범죄한  이후부터는 모든 피조물들이 사람들을 저주해서 가시와 엉컹퀴를 내 준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피조물을 사귀는 것은 피조물의 대표인 택자들을 우리가  죄에서 해방시켜서 구출하는 이것이 곧 만물을 구출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들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자유함에 이르는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이랬습니다. 자유함에 이른다 말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었으니 진리와 성령대로 사는 것이 제 중심이요  본성이요 본능이요 소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 영감과  진리대로 살기를 그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그 소망이 뭐인가? 그들이 그럼으로 말미암아 썩을  것이 썩지 안하는 것이 되어지고, 또 그 모든 물질 그것들도 만물을 새롭게 하는  그 새로움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모든 형제를 사귀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친구를  사귀라 말은 좁게 말하면 택자들을 죄에서 구출하라, 멸망에서 구출하라는  말씀이요, 넓게 말하면 모든 피조물을 구출하라는 말씀이요, 더 넓게 말하며  음부에 있는 것들까지도 구출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음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주님을 주라 시인하여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중심으로 경배를 드린 것입니다.

 또 하나 사귀는 것은 그 하나님을 사귀는 것인데,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일이지마는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나타나신 그 독생자를  인해서 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또 접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서 그렇게 말하느냐?' 요한복음 1장에 말씀하시기를,  '이제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그 독생하신 하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을 보여 주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이' 독생하신 하나님은 신인 양성 일위로 오신 분이 흘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타나신 하나님이시요, 신인 양성 일위를 가지신  예수님이시오, 또 그 신성이 성자의 그 위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귀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불의의 재물로 모든  피조물을 사귀라. 불의의 재물로 자존자 창조주를 사귀라, 구주를 사귀라,  주님을 사귀라. 그러면 이것이 다 왜 불의한 것이라? 일단 타락을 가졌던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구속을 받아도 이것이 일단 썩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함을 입기  위해서 다시한번 없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재림하실 때에, 흘연히 변화함을 받는다 하는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죽지 안하고 죽음을 보지 안하고 변화함  받았으면 좋겠다. 이래서 죽음을 보지 안하는 그런 변화 받기를 사람들이,  -(○○○씨 눈 감고 그래 있으면 속에 마귀 들어가 꾸벅꾸벅 졸면서 자꾸 이래  졸면서 사람들한테는 외식으로 가지고서 눈을 감고 은혜를 받는 듯이, 그 마귀란  놈이 우리에게 들어와 놓으면 망할 지혜는 어떻게 있는지. 또 자면서 더 은혜  받는 듯이 아주 감탄한 듯이 이랍니다.)- 우리가 이 불의한 것을 가지고서  피조물을 사귀고 창조주를 사귑니다. 그러면 없어질 때 이거는, 언젠간가  없어집니다.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에서 너희를 영접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왜 우리가 피조물을 사귀느냐? 피조물을 사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빚진 그 죄빚을 벗겨 주는 것이 그것이 죄짐을 벗겨 주는 것이 그것 이 형제를  사귀는 것이요 모든 택자들을 사귀는 것이요, 그것을 사귀는 것이 만물을 사귀는  것이 되고, 그걸 사귀는 것이 모든 피조물 전부를 사귀는 것이 되고, 그것  사귀는 것이 곧 그렇게 사귀라고 명령하신 분이 당신이기 때문에 당신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것이 또 하나님을 사귐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 말을 너희에게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이 사랑을 행하려고 하면은 꺼꾸로 된  지식으로서는 이것을 죽는 것이요 다 고통하는 것이요 손해 보는 것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고 말씀을 덧붙여서 내가 너희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산 기쁨. 영원한 완전한 기쁨 피조물과 더불어 다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이 기쁨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런데, 내 계명을 지키라 하는 내 계명은 뭐이냐? 내가 너희들을 사랑 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형제를 사랑하라 하는 그것이 계명의 강령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계명의 강령대로 했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되겠고. 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느니라' 그 계명 지키는 것이  당신을 사랑함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이 또 주님을 사랑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피조물을 사귀는 것이 하나님을 또 사귀는 것이요 또 하나님과 직접  관계해서 하나님을 사귀는 것은, 사랑의 교제를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이 부요와 빈부를 초월한 사랑으로 나타난 그 사랑의  주님과 내가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은 나도 빈부를 초월한 그것으로서 주님으로  더불어 사랑의 교제를 맺을 수 있고,  또 주님이 빈부를 다 자본으로 삼아 가지고 빈부를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셨음으로 우리를 사랑하게 됐지, 빈부를 통하지 안하고 빈부를 이용하지  않고는 우리를 사랑하실 수 없었는 그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도 빈부를 이용하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할 수 없어서 주님으로 더불어 사랑의 교제를 맺는 데는  우리가 빈부를 이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이 당신이 지극히 높은 데에서 지극히 낮아지심으로서 높고 낮아진 아주  이렇게 지극히 높은 데서 지극히 천해지는 이 귀천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귀천보다 우리를 사랑하심이 더 크셔서 그 귀천을 다 투자해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을 이 귀천을 다해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는 데에는 우리도 이 귀천을 다 드려서 주님을  사랑할 수가 있지 귀천을 드려서 날 사랑하신 그 주님을 내가 사랑하는 데에는  교제를 하는 데에는 귀천이 들지 안하고는 안 됩니다. 내가 가장 존귀하게 있을  때에 존귀해질 때에 그때에 주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때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은 지극히 존귀하실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지극히 천해지는 그 천해짐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면 존귀할 때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천해지실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당신이 존귀와 그 천함을 우리를 위해서 순전히 이것을 가졌었고  취하셨고 당하셨습니다.

 이러니까, 그 귀천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신 그 주님을 교제하는 데에서는 우리가  귀해서 주님의 사랑의 교제를 가질 수 있고, 천해서 주님의 사랑의 교제를 가질  수가 있고, 또 귀(貴)에서 귀를 희생하는 데에서 주님을 우리가 사랑의 교제를  가질 수가 있고, 우리가 또 천함을 달게 받는 거기에서 주님으로 더불어 사랑의  교제를 가질 수가 있는 것이 우리의 사귐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귀는 것이 이  사귐이요,  또 당신이 당신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당신은 완전자이신데, 당신은 평강의  주인공이시요. 그는 영영한 왕이시요 그는 자존자시요 알꽈와 오메가신데 그  분이 그럴 때에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가장 평안할 때에 우리를 사랑했고, 가장  안락할 때에 우리를 사랑했고, 가장 그분이 튼튼하게 알파와 오메가로 계실 때에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 주님을 우리가 교제하는 데에는 이 사랑의 교제를  하는 데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다 튼튼해서 아무런 물샐 틈 없고, 염려할 것  없고, 가장 평안하다 이 때는 아무 염려 없고 모든 면이 완전하고 완전하고  완전하고 든든하고 든든하고 평안 하다 할 그때에 우리가 그 주님을 사랑하는 그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답답할 때에는 주님에게 부르짖지마는 평강이 있을 때는 주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어려움이 있으면 주여 부르지마는 고만 우리는 평안하고  모든 것이 다 안락하게 되고 안정이 돼지면 그만 주님을 찾지 안하고 우리는 그  안락에서 안락 누리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헤매고 어리석게 거기에서 고만 방심  방탕으로써 지내다가 또 환난을 끌어 오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또. 주님이 죽음에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보면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죽으시기 전에  예언으로 말씀하신 것인데 살았을 때도 그러하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서  최후의 생명이 남았고, 최후의 피가 남았고. 최후의 힘이 남았고, 최후의 그  총명이 남은 그 최후에 남은 것을 다해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그 사랑하는 것이  다 이루었다 하신 다 이루었다 하시고 아버지에게 그 영혼을 부탁하신 것이  당신을 위해서 부탁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해서 부탁하신 대속적 부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끝까지 고난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이것으로써 끝나지  안하고 우리에게 그 완전히 이루어 놓으신 대속을 우리들이 가지고 누리고  영생하게 하는 데에는 당신이 또 창조주가 피조물을 입지 안 하고는 안 되기  때문에 영원히 피조물 입으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까지에 그 사랑의 역사와 또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에 그 사랑에 역사는 경중이 꼭 같고 그  중앙이요, 둘이 꼭 같애서 둘이 합해서 우리에게 완전한 그 구속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요와 가난에서 주님을 교제할 수 있고 우리는 높음과  낮아짐에서 주님을 교제할 수 있고. 우리는 평강과 고난에서 주님을 교제할 수  있는 이 교제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입니다. 그러면. 이 교제를 하는  것은 안 해 봤자 그것이 불의한 것이요, 안 하면 불의한 것인데, 하면은 함으로  불의한 것이 의로운 것이 돼서 썩을 것이 썩지 안 할 것이 되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되고, 죽은 것이 산 것으로써 이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움인  사망에 속한 것이 이제 사랑인 생명으로서 옮겨지고 귀속되고 전환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삶이요 우리의 교제요 실상은 이것이 생명이 사는  생활이요 사랑이 사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그런데 왜 성경에 이런 말씀을 해 놨느냐 하면은 우리가 타락을 함으로  말미암아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지어  주신 지음을 받은 본 지위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타락했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피조물이 어떻게 하면 영생을 하며 피조물이 어떻게 하면 평강을  누리게 하며 피조물이 어떻게 하면 행복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그 법칙을  하나님이 주셨는데, 마귀가 우리를 꼬아 가지고서 그 법칙에 정반대되는 법칙을  우리를 꾀어서 미혹시켜서 주기 때문에 그 반대되는 법칙을 우리들이 여러 수천  년 동안 대대로 해 내려 온 그것이 우리에게 유전이 되어 있고 꽉 배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잘 못된 선입적 관념과 대대의 경험하고 체험하는 그 전부해  봤자 그래 가지고 그 결과는 죽었는데 죽었지마는 죽음이라는 그 결과가  죽었다는 그것을 계산하지를 못하게 악령이 다 미혹을 시켜서 그 결과가 죽었다  별 수 있나? 죽었다 하는 그것을 계산하지 못하게 하고 언제든지 산다 산다 이  사는 것으로만 계산해서 살기 위해서 죽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죽는 것이 인생이요. 죽지 않기 위해서 죽음을 피한다는 것이  죽음을 취하는 것이 그것이 악령이 요렇게 우리를 꺼꾸로 정반대로 전환시켜  가지고서 타락시킨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이해를 못하고 그런 이 타락한 요  기존 지식과 선입적 관념.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고 한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이것이 우리에게 꽈 배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법칙을 말합니다.

 낮아지는 데서 사랑해라, 가난해지는 데서 사랑해라, 죽어지는 데서 사랑해라.

그런고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이 궁색한 소리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 마귀가 준 지식이 가득 채여서 이런 것이지 이 지식을 다 집어  던지고 벗어나고 보면 그것이 원칙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흙이 이 식물이 이것이 하나님 법칙대로 뿌리는 땅에 박아야 이것이 사는  것이고 줄기는 이 공중을 향해야 사는 것이 그 식물의 생의 법칙인 것처럼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에게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그 모든 생활이 하나님으로 기어들어가는 이것이라야 다  이것이 영생이요, 피조물의 행복이요, 피조물의 안보요 피조물의 평강이요 이게  되는 것인데, 이 법칙을 했기 때문에 이 법칙에 배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법칙으로 보면 모순되고 이 법칙으로 보면 희생이 된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지 실은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그게 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험하여 찾는 사람이 적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고 평탄하다 말은 이 마귀에게 받은 꺼꾸로의  지식으로 볼 때에는 그것이 평안하고 생명으로 가는 길은 험한 길이지마는 실상  성신의 지혜와 총명으로 바로 볼 때에는 생명으로 가는 그 길은 평안해서  넘어지지도 안하고 자빠지지도 안하고 그 길로만 가면 구불어 가도 사는 것이요  평강이요 성공뿐이요, 이 사망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그 길은 가면서 조심해도  죽고 힘써도 죽고 정신 차려도 죽고 주의해도 죽고 아무리 알뜰히 해도 죽음  외에는 다른 것을 취할 길이 없는 것이지마는 우리의 기존 지식이 썩었기 때문에  너거 썩은 지식으로 보면 이렇다 하는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지음을 받을 때부터 우리가 본질 본성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사모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에게 행복되는 것이요 지혜가 되는 것이요, 또 어데서든지 나는 하나님  높이는 것 어데서든지 하나님 높이는 것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것 하나님  유익되게 하는 것 하나님을 높이는 것. 또 하나님 평안하고 좋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곧 나를 좋도록 하는 것이요 나를 부요하게 하는 것이요 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요, 나를 높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이 마귀의 법칙으로 말하면 하늘나라는 내려가는  것이 내려가는 것이 하늘나라 가는 길이다. 썩은 법칙으로 썩은 이 마귀의  지혜로 보면 자기가 천해지는 것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존귀해지고, 자기는 천해지는 그것이 자기가 존귀해지는 것이요, 하나님은  부요해지고 자기는 거기에서 가난해지는 그것이 부요해지는 법이요, 하나님은  기쁘고 즐겁고 자기는 이렇게 근심 고통으로 나가는 것이 그것 이 기쁨을 누리는  그것인데 우리에게 이 지식이 잘못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 지식으로  이해하도록 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 지식 가진 자로서 그 지식을 완전히 바꾸기  전에 그 지식을 가진 자로서 네 가진 지식으로 말하면 이렇다. 좁고 험한  길이다.

 네 지식으로 보면 네가 낮아짐으로 주님을 존귀케 하는 것, 네가 가난해짐으로  주님을 부요케 하는 것, 너는 없어지고 주님은 양어지고 말하자면 네 것은  없어도 주의 것은 있어야 되겠고. 너는 낮아져도 복음은 높아져야 되겠고 주님의  이름은 높아져야 되겠고, 영광은 높아져야 되겠고, 주님의 그 권위는 높아져야  되겠고, 네가 낮아지고 주님을 높아지게 하는 그것이 네 썩은 지식으로 볼  때에는 네가 주님을 위해서 낮아지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그 수건을 완전히 벗고  수건을 벗고 마귀의 지식을 완전히 벗고 보면 그것이 주님을 높이는  그것만으로써 너는 높아지는 것이요, 그 피조물이 그렇게 네 높아지는 그 원리  원칙이 그렇게 되는 것이라.

 그 분을 높아지게 그분 높아지기를 원하는 그 본질과 본성을 가진 고것이 뭐냐?  산 것이요, 그것이 그 높아지는 본질과 본성이요 높아질 수 있는 근본적인  법칙입니다. 고게 진리입니다. 진리인데, 그 진리를 새삼스럽게 제가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같이 손해가는 것같이 보여지는 것은 네 썩은 지식으로  생각할 때에 그렇다 그말입니다. 근본이 그런 것입니다.

 또, 그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법칙을 내놨고. 또 자기는 이  전신으로 말하면은 한 세포에 지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 전신에게 모든  피조물을 한 몸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은 모든 피조물을 한 몸으로 생각한다고  하면은 우리는 그 전신에 하나의 세포와 같은 분자입니다. 지극히 작은  분자입니다. 그 분자의 세포의 생명이 전신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  위하는 그것이 자기 위하는 유일의 법칙이지 그 외에는 자기를 위하는 법이 없게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인데, 썩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고, 우리 썩은 지식  가진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주를 위해서 형제를 위하는 것 같지마는 형제  위하는 것 그게 바로 자기를 위하는 것이 바로 바로 위하는 그것이 정상으로  바로 위하는 것이요 그게 썩은 지식으로 보니까 형제를 위하는 것같이 하는  그것이 되는 것인 데. 위하는 것 같이 함으로 했는데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면  자기 위한 것으로서 결과가 맺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잘못된 지식이 잘못된 지식으로 견해하면은 이렇다,  잘못된 지식을 가진 네 지식으로 볼 때는 이렇게 해라 그래야 네가 사는 것이다.

죽어야 산다. 네가 살라면 죽는다 하는 그런 말이 다 인간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요 그 지식을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꾼 자에게는 그  말이 해당치 않습니다. 그 말이 해당치 않습니다.

 그게 네가 죽어야 산다. 죽어야 산다. 썩은 지식으로 볼 때에 죽어야 사는  것이지 산 지식으로 보면 그 죽어야 사는 죽는 그게 사는 것이요 죽는 그게 사는  것이요, 죽는 그것이 창조주에게 귀속되는 것이요, 창조주의 안보를 받는  것이요, 창조주 안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요, 창조주와 진리와 이 사랑의 보호를  받는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그것이 생명이요 사는 것이지 거기에 사망의  위험성이 있는게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말이 아니요. 그게 막바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그게 사랑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안보 속에 들어가는  것이요, 진리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피조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지 피조물이  해할 수 없는 자가 되는 것인데 우리의 썩은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자꾸 이렇게  지금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것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런고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우리가 부패했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가진 것은 불의한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구속으로 말 하면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을 보관 하고 있는 것이요. 주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데 보관하고  있는 것 이것 아무리 사용해서 빚을 탕감해 준다고 해도 주인의 것 없어지지 제  것 없어지는 것 아니요, 주인의 것 없어지고 제 것 없어지지 안하는 것인데  없어짐의 효력은 제가 받습니다.

 또 이것은 다 두고 갈 것이요, 불의의 재물로 말하면 이건 다 없어지고 다 두고  갈 것 없어질 것인데, 없어질 것 가지고서 영원히 자기의 있어질 것을 만드는  것이 이것이 그 이웃을 사귀는 것이니까 이거는 전체가 다 안 팎이 다 생명의  말씀이요 살러는 말씀이요 전부 생명 덩어리인데 우리에게 이 마귀의 지식이 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순되고 착각되고 오해되고 이래 가지고서 분주 복잡하게  돼 있습니다. 이것이 또 있어야 좋기 때문에. 우리에게 타락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 이게 있어야 이런 모든 모순 가운데서 이것을 간추려서 다 경험해 나왔기  때문에 무궁세계는 타락이 없습니다. 무궁세계는 타락할 자가 없습니다.

타락시키는 자가 마귀인데 마귀의 지식을 얼마나 능가해 가지고서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진리는 지식이 바다의 넘침 같이 충만 해지기  때문에 그때는 타락이 없습니다. 그때는 반역이 없습니다. 패역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에 패역을 부려서 오늘 빽 틀면 코르록 팩할 고  생명이 있다고 그 젊음이 있다고 고거 가지고 배짱을 부리니 참 불쌍하고  가련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짝이 없어.

 내가 며칠 전에 들었는데 아주 그 사람 청년이라 신체가 건강하답니다. 직장도  좋은 직장 가졌고, 신체가 건강한데, 그 사람은 또 건강하면서 장수하겠다고  아침마다 등산 간답니다. 또 등산 가 가지고서는 거기에서 약수라는 그 생수  가져 와 가지고서 언제든지 생수 마시고 등산하고 또 출근하고 하는 것이 유일한  재미인데 그날 아침에도 등산 가서 생수 들고 와 가지고서 생수 마시고 이제는  식사 다하고 양치하러 갔는데 안 나와. 가보니까 양치하러 가 가지고 고만  그대로 죽어 버렸어. 그 건강한 청년이, 우리 집에 사모 ○○○ 권찰에게 내가  들었습니다. 바로 그분은 알아요. 요 집을 알아요.' 요 이웃에 바로 가깝게 있다  하면서.

 참 어리석소. 의지할 것 없는 것을 의지하고 의지할 아무런 실력 없는 것  의지하고 바라볼 만한 아무런 가치 없는 걸 바라보고. 실력 없는 것을 바라보고,  또 뭘 등을 대 가지고 배짱 낼 수 없는 참 그런 불쌍하고 가련한 것뿐이지  거기에 대해서 반감이나 섭섭함이나 괘씸하거나 뭐이나 할게 하나도 없어.

불쌍하고 가련한 것뿐이지.

 그런고로, 어리석지를 말고 오늘이라는 이 기회를 놓지 맙시다.

 내가 며칠 전에도 말했지마는 어떤 사람이 글을 쓴 것 보니까, 기회라는 놈은  머리는 더풀더풀하고 꼬리는 매끌매끌하다, 그러기 때문에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를 기다리다가 기회가 올 때에 불끈 잡고 이용을 해야 되지 만일  기회를 기다리지 안한 사람은 기회가 턱 닥친 걸 보고서 그 기회를 이용할라  하면은 꼬리는 매끄럽기 때문에. 다 떨궈 버리고 말지 기회를 붙들어서 이용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기회는 머리는 더풀더풀하고 꼬리는 매끌매끌하다 하는  그런 그 묘사한 그런 글을 제가 읽은 적이 몇십 년 전에 있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너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그가 너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하지 안한 것이 나에게 하지 안한 것이니라.'  이런고로 우리는 불의의 것, 또 주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 이것 가지고서  옆으로는 모든 피조물을 사귀야 되겠고 사귀면 영원무궁에서 피조물이 환영하는  것.

 그렇습니다. 백 명이 있는데 백 명 아니 몇 천 명이 있는데 몇 천 명이 있는데  몇 천 명을 두고서 설교를 하는데 거기에 한 사람이 환영하지 안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설교자에게 고통입니다.

 그거 우리가 많이 느낍니다. 보면 알아. 얼굴을 보면 마귀의 얼굴이 돼져  가지고서 불평을 떡 품고 있는 걸 본다 말이오. 그 환영하지 안하는 사람 한  사람이 있으면 수 천 명이 환영해도 그 사람의 마음에는 절대 평강이 없습니다.

마음에 평강 이 없는 것 우리가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이 우리를 환영한다면 그게  천국 아니겠소? 그게 기쁨 아니겠소? 우리는 환영하는 자리에는 가고 싶고,  환영하지 안하고 참 자기를 반대하고 자기로 더불어 친교를 가 지지 못한 자리는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거는 우리 지옥입니다.

 그런고로, 피조물을 오늘에 사귈 수 있는 기회요, 또 오늘에 창조주시요 우리의  구주가 되신 이 주님을 사귈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방편에서 사귀면 당신의 사귐이 원만한 사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늘나라에 존귀에서도 사귈 수 있고 땅에서도 사귈 수 있고, 이러니까,  당신이 우리를 그렇게 세 가지로 사귀신 그 주님을 우리가 세 가지로 직접  사귀어서 직접 친교를 이 교제를 땅 위에서 맺어 놓은 그것 가지고서 영원히  삽니다. 거기에는 새로 만드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살이는  영원히 종자요 영원의 터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참 복 있는 이 입장에서 있고, 소속에서 있고, 또 복 있는 이  복음을 우리가 배워서, 인간이 이거 압니까? 이렇게 복 있는 소식을 들었는데  우리가 여기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몰두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것이 참 저주  중에 저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엘리사가 말하기를 당신의 영감을 갑절이나 달라 하는 엘리사가  뭐 별 걸 구한게 아니요 우리들도 영감 외에 다른 걸 구할게 없습니다. 왜?  영감이 와야 이것을 바로 알지 영감이 아니면 다 꺼꾸로 아니까 영감보다 우리의  더 귀한 것이 보배로운 것이 어데 있습니까? 있기를. 우리에게 있는 것이야  영감으로 바로 깨닫고, 아무리 못나고 가난하고 한 냥쭝을 받았고 뭐 조그매  받았다 할지라도 당신에게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작게 받았으면 작은  것 가지고서 충성하면 되고 많이 받았으면 많은 것 충성하니까 우리에게  대해서는 모지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있는 걸 다 가지면 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의 깨달음이 문제요, 또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강한 감동이  문제요.

 이러니까.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이리 되는 것은 마귀의  꺼풀을 벗지 못하고 저주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마귀 이놈은  우리가 호령치면 나가는데 왜 이놈이 나가지 안하고 있는가? 안 나가는 것은  마귀의 것을 우리가 욕심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의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놈이 안 나갑니다. 하나님도 나가라 소리 못합니다. 내거 여기 있는데  내가 주인공이 여기 있는데 하느냐고서 그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힌다. 하나라도 네가 가지고 갈라 하면 안 된다. 다 내어놓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나누면 이 구원은 언제든지 지장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해야 되지 나누면 안 됩니다. 나눠 가지고는 이 구원을 이루어 가기에 참 좀  불가능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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