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13:59
불심판 면할 사랑
1982. 4. 21. 수야
본문 : 벧후 3:1-1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 등사한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앞으로 이것을 인쇄할 때에 원대지는 오른편으로 제일 밖으로 내어 쓰고 그 다음에 소지는 그 다음으로 쓰고 오른편에서 쭉 이래야 되지 중간에 이렇게 하는 것 이거 복잡해서 안됐습니다.
1대지 읽습니다.
주님 맞이할 준비는 우리들의 마음과 행위로 준비하여 의가 이루어질 때에 이루어진 의만이 불심판을 면하고 새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한 집이 불타도 놀라고 한 도시가 전소된다면 더욱 놀랄 것이다. 이보다도 어느 한 나라가 불덩어리가 된다고 하면 이는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이보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 우주는 전부가 불덩어리로 화해질 역사의 전무후무한 두렵고 떨리는 제일 큰 사건이 우리 인생들 앞에 놓여 있다 이 일은 오늘인지 내일인지 얼마 후인지 뜻밖에 닥친다고 하셨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심히 애곡하며 죽음의 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든다고 하셨다. 이 때에는 만물이 불타 녹아지고 모든 인생들의 선악관에 모든 행위가 그대로 드러나 고정된다. 고정된다 말은 드러난 그대로 그만 영원히 변동 없다 말입니다. 고정된다.
이렇게 역사에 제일 큰 두려운 변동이 급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악령의 미혹으로 자기의 온갖 정욕에 마음이 어두워져 이를 생각지도 못하고 날마다 큰 위험 속에서 모르고 살고 있다. 노아의 때에 홍수로 멸망한 그보다 뜨겁고 두렵다. 이 대환난을 피하는 데에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행동으로 의를 이루는 것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첫째, 마음은 전심이 재림하실 그날에, 그날의 환난에, 생각에 다 집중하여야 하고, 둘째, 소망은 그날 불탈 때에 멸망하지 않고 남아 있을 그것만을 소망하고, 셋째, 그날에 후회될 것과 소원될 것, 영광될 것과 보배 될 것 이런 것들만을 현재에서 준비하라고 하셨다.
큰 둘째, 둘째의 첫 소지, 우리가 이 대환난을 피할 우리의 준비의 행동은 경건만을 표준으로 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행하고, 둘째, 힘써 만드는 경건은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여야 한다.
셋째 대지에, 언행심사로 만든 경건을 가지고 이룰 의는 무엇인가.
첫째, 의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룬 것이 의인데 하나님의 뜻은 그 수가 심히 많으니 어느 뜻을 이루어야 하는가가 문제이다.
둘째, 하나님의 속성대로 한 것은 의이지마는 불심판을 면할 의는 어떤 종류의 의인가. 우리는 성경을 유일한 법칙으로 삼아 이 의를 바로 찾는 것이 구원 이루는 데에 첫 순서가 되는 것이다. 이 의는 아버지께서 주님에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신 것과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명령하신 것이 같으니 이것을 바로 찾아 행하는 것이 곧 불심판을 면할 의가 되는 것이다. 주님과 우리에게 이루어야 할 의는 원형과 모형으로 차이만 있지 꼭 같은 것이니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현실에서 그 뜻대로 하는 이것만이 구원 준비다. 이리하여 참 사랑의 온전함이 이루어졌을 때에 심판은 이겨 벗어나게 된다. 그런고로 우리의 전부는 자타의 구원을 위하여 매진하는 여기에만 심신은 기울어져야 한다. 이 큰 대환난을 준비 없이 땅의 것만 보고 사는 것은 참으로 비참하고 가련한 생애이다.
(그 끝에 새로, 거기 기록 안한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사랑의 희생에서 지극히 큰 희생까지 지체나 아낌없이, 인색 없이 기쁨으로 즉시 하여야 한다. (다입니다.)
주일학교 학생들과 중간반 학생들에게 첫째로 알릴 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 불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학생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으로 불심판이 오는 이 불심판의 두려움을 그들에게 어떻게 그 실감을 가지게 가르친다 할지라도 실지로 불심판의 그때 두려움의 뭐 억만분의 일도 두려움을 그들에게 인식시켜 주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불심판의 두려운 것을 이것을 그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인식을 똑똑히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한 집이 불타고 또 한 동리가 불타는 것 저는 봤는데, 한 동리가 불탈 때에도 굉장했고 또 도시에, 조그만한 도시에 한 3분지 1, 6·25때 이렇게 불타는 데도 뭐 굉장합디다.
이런데 한 나라가 타도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전쟁난다 해 봤자 그까짓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계가 아니라 이 해도 달도 별도 전부 불덩어리가 되어질 이 두려운 것을 학생들에게 인식을 시켜야 하고 또 우리 장년반도 이 사실을 인식을 하도록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악령은, 예수님 재림 때에 불심판으로 이 모든 우주가 불덩어리 될 이 사실을 악령은 자꾸만 가려 가지고 인식하지를 못하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뭐 어떤 사람은 참 남북이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공산주의로 적화될 터이니까 어서 강대국으로 피난 가자 하는 그 사람은 그래도 마음이 조금 진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두 종류가 남아 있소.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가 되는지 뭐인지 거기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날 그날 제 욕심만 채워서 이루기 위해서 거기에만 분망하고 있는 그런 제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은 그저 적화가 되든지 말든지 첫째는 하나님에게 매달렸으니까 여기에서 믿음 지켜서 하나님의 보호로 그까짓 것을 다 이기고 멸하지 하는 그 생각과, 또 내 조국과 민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하지 나만 피해서 어떻게 한다고 그렇게 할 수 있나 그렇게 생각이 돼서 있는 사람들은 다 고급 인물들입니다. 이 참 귀한 인물들이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없이 욕심에 부닥쳐서 정신없이 욕심을 이루기만 전력을 기울이고 정신없이 지내는 그런 사람은 제일 하등 인물입니다. 제일 하등 인물은 이 본국에 남아 있고, 중등 인물은 다 도피해 갔고, 상등 인물들은 본국에 그대로 수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이러하거든 하물며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일이 참 오늘 오실런지 하루 지체가 될런지 언제 오실런지 모르는데 그때 오면 그거 뭐 나라가 있습니까, 과학이 있습니까, 잘난 사람 있습니까, 돈이 있습니까. 전부 불덩어리화 다 돼 버립니다.
그만 그때는 죄의 둘로만 갈라집니다. 죄의 둘로만 갈라져서 죄는 전소가 되고 의는 그때 해와 같이 빛날 것이오. 의는 마치 불이 타면 다른 것은 다 타지마는 금은 타지 않고 도리어 반짝 반짝 빛을 내는 것처럼 그때에 크게 이렇게 구별이 될 것입니다.
이런데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서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는가.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마귀가 욕심으로 변화시켜 가지고 욕심을 일으켜서 이 욕심에 사람들이 끌려 가지고 욕심으로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서 이렇게 큰 사실을 생각지도 못하고 그날 그날 욕심에 끌려서 욕심 달성하려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정반대로 하나님이신 성령님과 또 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고 재림 때는 이렇게 크게 변동될 일이 있으니 네가 잘못된 것도 지금 고칠 수 있고 또 네가 좋은 것을 할 기회는 없을지라도 좋은 것을 소원만 해도, 소원하다가 주님 재림하시면 악을 소원하는 자 아니고 좋은 것을 소원하니까 좋은 것은 이루지를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은 의인 축에 갑니다.
이러니까 이런 자기 문제에 대해서 정리 정돈 정비할 것도 심히 급급하고 또 모든 것이 다 불살라지니 이것도 큰 문제인데 이것을 성령이 알도록 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마귀가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켜 가지고 가루는 이것을 가지고 그만 어두워서 여기에 대해서 생각이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전쟁 난다는 이 떨리는 떨림보다도, 전염병이 와 가지고 쓸고 내려간다는 그런 떨리는 것보다도, 땅위에 어떤 무서운 두려움보다도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이 불심판이 두렵다 하는 이 두려움을, 모두 내가 보니까 조는 사람 더러 있는데 전부 자기 욕심에, 내 가 아는, 내가 아는 욕심, 내가 아는 욕심, 내가 아는 자기 근심 걱정 거기에 눌려 가지고 여기에 와 놓으니까 전부 눈이 감겨서 자고 마는구만요. 이 말씀을 들어 깨달아야 그런 난제가 해결이 되는데 이 말씀 들을 때에는, 해결해 줄 이 말씀 들을 때에는 졸고 기회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문제 그 일 때문에 꽁꽁 앓고 그 욕심 때문에 한 없는 고생하고 참 불쌍합니다.
이것을 첫째로 성경에 있는 대로, 성경에 없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사람들을 두렵게 떨리게 하면 협박하는 것이 되겠고 위협하는 죄가 되겠습니다. 성경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은 깨달아지면 마구 녹아질 것입니다.
이러니까 첫째 중요가 뭐이냐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이 닥치는 불심판이 어떻게 어렵다는 것을 자기가 깨달은 대로 말해서, 주일학교 반사들이면 학생들에게 인식을 똑똑히 박아 줘야 될 것이고, 중간반 반사들이든지 부장들은 그 학생들에게 불심판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이 불심판의 두려움을 그들에게 깊이 박아서 인식시켜 줘야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이 불탈 때에 과학이 보증하는 그까짓 것 과학이 불타 버립니다. 과학이 불타 버리요. 과학이 불타니까 그것도, 과학 만능이라 하지마는 과학자들이 그때 다 참 대낭패를 당할 겁니다.
과학도 불타고, 모든 정권들도 불타고, 세계의 문화도 불타고, 뭐 잘난 사람도, 미남도, 미인도, 예술도, 돈도, 행락도 전부 불탑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부부 결혼을 좋아하셨는데 신랑과 신부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할 것이다. 큰 맷돌을 들고 바다에다 풍 빠뜨리면서 이 돌이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것처럼 신랑과 신부들의 그 짝짝한 재미도 다시없을 것이다 이랬습니다.
왜. 하나님 두려워하고 섬기라고 만들어 준 것인데 인간들이 하나님은 집어 던져 버리고 그 주신 은혜 축복 그놈만 가지고 거기에 기울어져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밉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미워서 하는 것이 요한계시 18장에 내려다 보면 압니다. 거기 있습니다.
이렇게 불타질 때에 그때에 남아 있을 것은 뭐인가. 남아 있을 것은 의가 남아 있다 이랬습니다. 의가 남아 있다 이랬는데, 여기에는 의라고 이렇게 말했으나 모든 성경에서 보면 노아 때에는 모든 계명이, 하나님의 계명이 많지마는 방주 만들라 하는 이 계명 지킨 사람이 구원 얻지 이 계명 지키지 않은 사람은 다 멸망 받았습니다.
이것 모양으로 말세에도 하나님의 계명이 많지요. 수없이 많지마는 그 하나님의 계명이 많은 중에 불심판을 면할 계명은 뭐인가 불심판을 면할 계명은 뭐인가.
불심판을 면할 계명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불심판을 면할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이면, 이렇게 모든 것이 불에 타서 풀어지지마는 사랑은 남아 있다, 사랑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이렇게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의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라고 말한 의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뜻대로 이룬 그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고 왜 의라고 말했을까. 다른 성경에는 사랑이라고, 중심 되는 계명이 사랑이라는 것을 말씀해 놨지마는 여기에는 사랑이라고 하지 않고 의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한 뜻이 있습니다.
뭐 있느냐. 말세가 되어 갈수록 전부 사랑 세계가 됩니다. 말세 되면 단체도 사랑, 나라도 사랑, 정치도 사랑, 사회도 사랑, 공산주의도 사랑, 민주주의도 사랑 전부 사랑입니다. 이북에서 오는 방송 들어 보면 그 방송하는 사람들이 어버이의 사랑, 어버이의 사랑, 김일성의 사랑, 우리가 볼 때는 김일성이가 저거 전멸을 시키고 있는데 김일성 사랑, 김일성 사랑, 어버이의 사랑, 또 이남에도 사랑 모두 다 사랑이오.
이런데 성경에도 사랑만이 그때에 남아 있다 했으니까 이 세상에 말세가 되어 갈수록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강조하고 사랑을 말하니까 그러면 세계는 불탈 것이 없겠습니다. 전부 다 사랑이니까. 첫째 아담의 사랑이 있고 둘째 아담의 사랑이 있으니, 첫째 아담의 사랑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 사랑인데 이것으로 인간이 망했고 둘째 아담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인데 이 사랑은 인간을 구원했습니다.
의라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만든 사랑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뜻대로 만든 사랑.
하나님이 성경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영감으로 인도할 때에 영감대로 성경대로 형제에게 한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도 성경 말씀대로 영감대로 언행심사를 행동했으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 말합니다.
아무리 부부간이라도 첫째 아담의 사랑 그것을 말하지 않고 부부간이라도 그 부부간의 말이나 행동이나 태도나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영감대로 그 사람에게, 아내에게도 하고 남편에게도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또 그렇게 해서 보여 주고 영감과 진리대로 하고 영감과 진리대로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가리켜서 왜 표준 계명이 사랑인데 여기에는 의라고 말했는가. 의로 만든 사랑을 말합니다. 의로 만든 사랑.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만든 사랑.
이래서 그 위에는 경건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말세에 불심판을 면하는 것은 사랑으로 준비하는 것 외에는 딴것 없습니다. 자기가 사랑의 말을 한 것은 타지 않고, 사랑의 행동을 한 것은 타지 않고,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무엇을, 말을 했든지 행동을 했든지 어쨌든지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한 것은 타지 않고 다 심판을 이기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으로 하다니,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하다니, 사랑으로 일을 하다니, 사랑으로 하는 것이 뭐인가. 사랑으로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는 그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는 것 이것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누가 했는고. 사랑한 분은 예수님이 사랑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합격이 됐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만족히 여기시고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예수님에게 다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모든 이름 위에 예수님을 뛰어나게 높은 지위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잘했다고 칭찬하시고 이렇게 예수님께 제일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또 아버지의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줬습니다. 뭐 했다고. 사랑의 완성했다고.
사랑의 성공했다고 다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제, 예수님이 아버지의 이 명령받은 것과 같이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았는데, 예수님이 아버지에게 만족히 하고 아버지의 이 높이 드심 얻은 것과 같이 우리들은 예수님의 원하시는 대로의 일을 잘 하면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높이 들려 이 불심판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그 사랑을 가지고, 택자들에게 이 사랑을 가지고 줌으로 아버지가 만족하시는 그대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사랑을, 형제에게 이 사랑을 주어서 이것이 성공이 되면 주님이 아버지 명령받아 성공한 것과 꼭 같이 우리는 주님 명령 받아 성공한 사람들은 이 불심판을 다 면하고 영원 무궁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모든 것을 우리들이 상속으로 받아 가지고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불심판을 면하는 데에는 무엇을 만들어야 불심판을 면하는가.
사랑의 완전을 만드는 것이 불심판 면하는 것인데, 사랑이 하나가 이루어졌으면 하나 그것은 불심판 면하고, 사랑이 열이 이루어졌으면 열 그것은 불심판 면하고, 사랑이 전부 다 사랑으로 되어 버렸으면 전부가 불심판 면하고 사랑으로 된 것은 면하고 사랑으로 되지 않은 것은 전부 불타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된 행동, 사랑으로 된 일, 사랑으로 된 그 사람, 이 사랑으로 된 것만 이 심판을 이기고 다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불심판을 면하는 데에는 우리의 전심전력을 기울여라 했는데, 간절한 소원 마음을 다 기울이라 했는데,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라고 말씀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불심판을 면하는 데에는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무엇을 만들어야 되느냐. 전심전력 기울여 가지고 사랑을 만들어야 됩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사랑을 만들어야 됩니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사랑을 만든 그것만 불심판을 면하고 남아 있지 사랑을 만든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은 그것은 다 불타 버립니다. 사랑을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만 남아 있고 나머지 기는 전부 불타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사랑을 만드는 데에, 사랑 만드는 데에 전심 다 기울여야 되겠고, 사랑 만드는 데에 전력을 다 기울여야 되겠고, 사랑 만드는 데에 우리 돈 다 기울여야 되겠고, 사랑 만드는 데 우리 권세 다 기울여야 되겠고, 사랑 만드는 데 자기 구변 다 기울여야 되겠고, 사랑 만드는 데 자기의 모든 실력, 지위, 권세, 사업 전부 사랑 만드는 데 우리는 다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마지막에 자기 목숨까지도 사랑 만드는 데 다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사랑 만드는 데에.
그러면 사랑 만드는 데에 투자하면 사랑이 두 가지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사랑을 만들면 완전 멸망을 받습니다. 또 한 사랑은 만들면 완전히 구원을 받습니다.
이러니까 사랑을 만든다는 이것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야 되지 사랑을 구별하지 않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야 됩니다.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랑은 인간 생각대로 사랑하는 사랑은 전부 땅에 속한 첫째아담의 사랑, 다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자기 정욕대로, 자기 또 주관대로, 자기 피통대로, 자기 혈통대로, 자기와 친근히 하니까 사랑 그것은 인간 첫째 아담의 사랑이기 때문에 멸망을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만드느냐. 의로 만들어라 이랬소. 하나님의 사랑을 의로 만들어라, 하나님의 사랑을 의로 만든 것 아니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여,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그 앞에서, 보이는 데에서, 들리는 데에서나 접촉하는 데에서나 말하는 데나 행동하는 데에 꼭 하나님의 이 성경 말씀대로 성신의 감화대로 그대로 해라. 이것이 인제 참 사랑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 외에는 참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에 잘못하면 자기, 어떤 사람은, 동무 좋아하는 사람은 동무 좋아하는 동무를 좋아함으로 그 동무에게 자기 생각대로, 자기 성질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있는 것을 기울여서 사랑해 줍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혈통이 같기 때문에, 자기와 피가 같기 때문에 또 사랑하는 그런 것도 또 자기 생각대로 이래 사랑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욕심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대해서 말도 성경 말씀대로 하고, 내가 행동도 성경 말씀대로 하고, 또 그에게 대한 모든 지도나 주선이나 모든 판단이나 성경 말씀대로 나무랠 것 나무래고 칭찬할 것 칭찬하고 성경 말씀대로 미워할 것은 미워하고 책망할 것은 책망하고 이래 참 붙들어서 높여 줄 것 높여 주고 꼭 성경 말씀대로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형제를 사랑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성경 말씀대로 영감대로 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껍데기는 의요, 껍데기는 의요 알맹이는 사랑입니다. 이것만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남은 때에 우리의 가지고 있는 것을 어디다가 투자할 것인가. 사랑 만드는 데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사랑 만드는 데에. 또 우리의 실력을 다 어디에 투자할까. 사랑 만드는 데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지위나 권세나 사업을 어디다가 투자해야 될까. 사랑 만드는 데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내 몸뚱이 젊음도 사랑 만드는 데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건강도 사랑 만드는 데 투자해야 되겠습니다. 이 목숨도 사랑 만드는 데에 투자를 해야 되겠습니다.
사랑 만드는 데 투자하다니. 주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주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 되면, 사랑하는 사랑이 되는, 사랑하는 사랑이 되는, 사랑하는 일이 되는, 사랑이 되는, 사랑하는 일이 되는,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해야 되지, 그 사랑이 뭐이냐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언행심사를 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자체가 되어지고,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하나 보려고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함으로 하늘의 부요를 다 내놨습니다. 우리를 사랑함으로, 지위 권세를 우리 사랑함으로 다,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전부 투자 다 해 버렸습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한없는 천대와 멸시를 받아도 참았습니다. 한없는 곤욕을 받아도 참았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주님이 대신,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죄값은 주님이 대신 받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못하는 것을 도와서, 우리가 할 일을 도와 가지고 대신 해 주셨고,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됐는데 대신 화친하려고 애를 썼다 말이오.
지금도 가만히 보면 이 사람하고 저 사람하고 둘이 원수가 됐는데 원수된 이것을 주님이 화목 제물 되기 위해서 죽기까지 했으니까 원수된 것을 그 중간에서 제가 화목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속을 다 썩히고 들은 것도 안 들은 척하고 또 없는 것도 있는 척 하고 있는 것도 없는 척하고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친을 가지도록, 교회와 교회 사이가 화친해지도록, 원수 사이까지도 화친해지도록, 인간은 하나님과 화친하고 이렇게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지도록 화친, 하나님의 원수 된 일을 하나님과 화친하도록 하는 것 모양으로 화친 이것을 위해서,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화목해지고, 하나님과 인간끼리 이렇게 친근해지고, 인간은 인간끼리 친근해지고 이것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속도 썩히고 손해도 보고 참 기도하고 욕도 얻어먹고 억울함도 당하고 또 희생도 하고, 또 그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을 조그만치라도 의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안 들으니까 말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새벽기도 나와야 할 것이니까 안 나오니까 새벽에 가 가지고 깨우면 욕을 하고 이래도 또 깨우고 이러니까 배척을 해도 그것을 기어코라도 옳은 사람 만들어 보려고 이러니까 나중에 가서 이것이 제발로 새벽기도를 나오고 나중에 가서 그것이 자라 가지고 주를 위해서 나도 생명 바치겠다, 일생동안 독신으로 이와 같이 바치기도 하고 별별 일이 있다 말이오.
이 의인 만들려고, 인간을 죄를 회개해서 죄 짓지 않도록 하려고 이래 가지고 이 일 위해 내가 하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라 말이오.
이것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이것만이 불심판을 면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무궁세계 하나님께서 냉수 한 그릇의 수고한 것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것은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상급을 결단코 주님이 잊어버리지 않고 상급을 다 베풀어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가 불심판을 면하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이외에 딴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랑하는 것, 주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 이 희생하는 것이 단번에 됩니까. 처음에는 형제를 위해서 지극히 작은 것을 희생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것을 희생해 가지고 차차 커진다 말이오.
요새 보니까 우리 서부교회는 참 좋은 복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반사들이 이것이 학교에 다니면서 부모네들이 학비 주는 것, 학비 주는 것 이것도 또 일용돈 쓰라고 주는 것 한 푼도 과자 한 봉지 안 사 먹고 이것을 애껴 가지고 아무것이가 토큰 안 주면 그것이 주일날 안 나올 것인데 토큰을 줘야 된다고 이래 가지고 자기 가난한 살림에 부모에게 학비 타 쓰니까 남은 돈 얼마 있으니까 근근히 졸여 가지고 이 돈을 가지고 토큰을 한 주일에 몇 사람씩 토큰을 내 주고,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주님이나 위해서 이렇게 하셨는데 나도 형제를 사랑해 이 일을 내 힘대로 한번 해 보자 이래 가지고 그것이 과자 사 먹는 것 안 먹고 일주일 동안 모으니까 뭐 60원인가 뭐 모이고, 60원이면 토큰 하나 됩니까. 60원 모아 가지고 그거 가지고 자기 동무 하나를 토큰을 주면서 이거 주며, 아나 받아라. 오늘 차비 내 낼께. 이래 가지고 토큰을 하나 사 주고, 이런데 어떤 반사는 보니까, 자 엿새동안 일할 것인데 토요일날은 반날 일하고 심방 하느라고 일 못하지, 닷새 반 일해 가지고 근근히 먹고 살면서 남은 돈은 토큰에 다 들여서 일주간 동안에 뭐 들이는 것이 얼마요. 뭐 상당히 많이 들어요.
몇만원 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주일학교 반사 중에. 있는 대로 그러면 거의 싹 바쳐요. 지극히 작은 데서 이렇게 하는 사람, 있는 자에게는 더 많이 줘서 더 풍성하게 한다고. 이렇게 사랑이 생겨지는 자에게는 사랑을 더하고 더해서 사랑의 부자가 되도록 이렇게 만듭니다.
이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사랑에 부자가 되니까, 내가 돈벌이 해 가지고 내 재산 가지고 인간 구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몸과 생명을 막 바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헌신해서 목회자 나서는 사람들이 참 이것이 목회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야 세상 돈벌이보다도 목회 생활 하는 것이 제일 평안하고 대우 좋고 참 인기고 이러니까 그래 목회 하는 그런 삯군 목사도 있고, 그것도 좋기는 좋습니다. 그것도 뭐 세상 일하는 것보다는 삯군이라도 일은 하게 되니까.
이렇지마는 참된 일꾼들은 이 사랑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내가 주님 위해서, 주님이 나 위해서 다 가난해졌으니 내가 어떻게 하면 주를 위해 가난해지고, 주님 나 위해서 천해졌으니 내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천대받아 볼까.
주님이 나 위해서 고생당했으니 나도 주를 위해서 고생당해야지. 주님 나 위해서 죽었으니 나도 주 위해 죽어야지.
오종덕목사님이, 주아위사(主我爲死)하니 아주위사(娥主爲死)라, 주님이 날 위해 죽었으니 나도 주를 위해 죽어야 되겠다. 평생 노래는 그래 불러도 하나님이 허락 안 하니까 주님 위해 죽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그만 늙어서, 그만 늙어서 아파서 죽어 버리고 말았소. 참 주를 위해서 살다가 주를 위해서 생명이 척 끊어졌으면 그 얼마나 영광스러운데 그렇게 못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평생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하여 어떻게 하면 주님이 날 사랑한 그 체를 받아서, 주님이 날 사랑하는 것은 원본이고, 원본. 원본이고 그 원본을 갖다 본을 받아 가지고 그 사본으로, 사본과 같은 나도 주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해 보지. 이것을 소원하고 다 목회에 나오고 또 복음 전도에 다 나선 것입니다.
우리 그 장목사님이라고 지금 우리가 한 달에 3만원씩을 전도비를 보태 주는데, 그분이 전국에 돌아다니면서, 저 아래도 전보가 왔습디다. 왔는데, 돌아다니며 그저 외치다가 붙들려 가 뚜드려 맞고 갇히고 이래도 전국에 돌아다닙니다. 그래 만날 때마다 그렇소.
만날 때마다, 목사님 이번에 기도 좀 해 주이소. 안수 기도 좀 해 주이소. 이번에 가면 죽을지 모릅니다. 어쨌든지 이번에 가 생명을 내 놓고, 생명을 바쳐 일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번에 인제 몇백만이 지금 모여 가지고 있는 거기에서 전도할 터인데 이번에 가면 죽을런지 모릅니다, 어쨌든지 기도해 주십시오.
그분은 만날 죽는단 말이오. 어떻게 하면 주님 나 위해서 다 바쳤으니까 나도 주 위해 다 바칠까 이것이 소원이야. 그것이 불심판을 면하는 것입니다.
무궁세계는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형제를 사랑함으로, 주님 사랑하고 형제 사랑하니까 만물 사랑이 다 되어 버려. 주님과 형제를 사랑한 그것이 눈꼽째기만하면 그것만 천국에 가 가지고 지금 있습니다.
부활, 뚱뚱한 부활은 하지마는 부활의 힘은 그것이 눈꼽째기면 눈꼽째기만한 힘, 팔뚝만한 힘이 있으면 팔뚝만한 그 힘, 주님과 이웃을 사랑한 그 일만 천국에 가 가지고 영원히 있을 것이고, 그 행동만 있을 것이고, 그 행동한 실력만 있을 것이고, 그 사람만 무궁 세계에서 존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심판은 하늘나라에 입문이오. 불심판의 이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은 천국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예 죽을 때 다 없어져 버리고 하늘나라 못 갑니다.
불심판 면할 이것이라야 죽어도 안 죽고 무궁세계 그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불심판 준비, 이 두려운 불심판 준비를 우리가 해야 되는데 불심판 준비는 사랑으로 밖에는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준비하는 것.
사랑은 뭐이 사랑인가. 사랑은 이 복음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암만 그 형제를 위해서 일생동안 돈을 벌어 가지고 막 주고 업고 다니고 뭐 두터쓰고 다니고 보듬고 다니고 아무리 해 봤자 죽을 때는 다 멸망이오. 불심판 오면 다 타 버리고 맙니다.
다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주님이 사랑해서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놨으니까, 세 가지 공로를 베풀었으니까 이 공로를 형제에게 입히기 위해서는 주님이 세 가지 공로를 건설하기 위해서 당하신 그 고난을 우리도 당해야 됩니다.
우리도 형제에게 이 구원을 주는 데는 형제 잘못을 내가 대신 담당도 하고, 형제 할 일을 내가 하기도 하고, 형제를 죄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 형제를 의인 만들기 위해서, 형제를 이 하나님께로 화친하고 인간끼리 화친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속을 다 썩어서 희생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그 말은, 화평이란 것은 인간을 하나님하고 이렇게 화목하도록, 인간하고 화목하도록 이래 만드는 그 정신 그것이 하나님의 정신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정신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그 정신 받았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요소를 가진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이거 마귀에게 걸려서 날마다 이런 저런 분주한 데서 예수님의 재림에 불탈 것에 대해서 생각이 없는데 여기에 관심을 아주 뜨겁게 가져야 됩니다. 뜨겁게 가져 참 예수님의 재림에, 불심판에 대해서 미친 사람, 미친 사람같이 그와같이 될 만치 되어야 돼.
내가 불에, 불난 데 미친 사람 보니까 그 사람은 정신 이상자가 됐는데 항상 그거라. 말이 나오면, 불, 아 불이야, 불이야, 불. 아 불 난다 하면 그만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버려, 그만. 그래 가지고 옷도 벗고 이래 돌아다니고 미친 사람 봤습니다.
그것 모양으로 불심판에 대해서 미칠 만침 우리 마음이 되어져야 됩니다. 그만침 암만 두려워 해도, 두려워 해도 우리가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불심판의 이 두려움을 이거 우리가 깨닫고, 오늘 닥칠지 내일 닥칠지 모르는데 불심판에 타고 멸망받고 없을 그런 것을 자꾸 보고 할 것 아니라 우리가 늘 구별하는 생활은, 구별한다 말은 따진다 말이오. 이러나 저러나 따진다 말이오. 구별한다 말은 따진다 말이오.
구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경건이 되나 안 되나. 경건이 뭐인데. 하나님 위하는 것이 뭐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이 뭐인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 내 계명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옛 계명이나 새 계명이나 내 계명은 옛 계명이요 새 계명이다. 그것은 뭐이냐.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라. 이것뿐입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사랑이 뭐이냐. 사랑이 인간을 죽이는 무서운 독한 사랑이 있으니 그놈의 사랑은 우리의 원수요 그 사랑은 던져 버려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은 무슨 사랑이냐. 이 사랑은 내가 형제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대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내를 좋게 하는 그것이 사랑 아니오. 아내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
아내가 잘못 가면 잘못 간다고, 또 암만 싫어도 하나님 말씀대로 이렇게 해서 아내를 자기가 접촉하는 가운데에 하나님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고 말씀대로의 행동을 하고,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하고 결혼하고 나서 보니까, 결혼하고 나서 일년이 지나고 보니까 그 남편이 하나님 말씀대로의 사람이 됐고 영감대로의 사람이 됐으면 그 남편 사랑한 것이오. 결혼하고 나서 보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의 사람, 영감대로 사람은 안 되고 세상 화려, 사치, 돈대로의 사람이 됐으면 그 아내 그 남편은 아내와 남편을 죽인 원수입니다. 이 다음에 가서 보십시오. 서로 남편이 원수라고 주먹 내고 아내를 원수라고 주먹 내고 그런 원수 복수가 얼마나 많을는지.
이러기에 사랑만이 준비하는 것인데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이냐.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하나님이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이 오신 것이 사랑이요, 오셔 가지고 하신 그 모두가 사랑입니다. 그 체를 받아 가지고 우리도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대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러니까 이 일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이 이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어젠가 오늘 주일학교 총무부장에게 말하기를, 이 주일학교 토큰에 대해서 학생 부담이 얼마 몇 프로가 되며, 또 구역장 부담이 얼마가 되며, 반사 부담이 얼마가 되며, 교회 부담이 얼마나 되느냐. 그 액수를 빨리 조사해서 보고 하라.
그래 놨는데, 그것이 오면 그 다음에는 또 뭘 할 것이냐. 그러면 학생이 자기 차비로 하는 것은 그것은 조사할 필요가 없고 그것은 총계만 내면 되지마는 학생으로써 자기 동무 학생에게 토큰 하나라도 이것을 줘서 구원하는 그것이 사랑인데, 구원하는 이 구원에 투자하는, 봉사하는 것 이 일 하는 학생 있으면 그것을 보고를 하고, 또 반사가 어느 반사는 얼마 자기가 토큰을 대며 또 구역장은 얼마 그 토큰을 대나. 또 우리 교회에서 토큰을 대는데 교회 토큰 하라고 연보를 해 준 것은 개인이 했느냐 어느 부에서 했느냐 그런 것을 한번 세밀히 해서, 조사해서 알아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은 뭣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은 암말도 않고 그것이 되어 나가지마는 그렇게 하는 것은 어쨌든지 선을 격발 시켜 가지고, 선을 격발 시켜서 사랑 준비하는 이 일에 모두가 다 기울어져 가지고 모든 사람이 하나도 빠짐없이 이 사랑으로 불심판을 면하는 이 준비를 하는 데에 동참하는 이런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연보는 어떤 부자에게, 어떤 목사도 그렇소. 목사도 보면 어떤 부자에게 하나 앞에 연보 시키는 것이 가난뱅이 백 명한테 연보 시키는 것보다 낫습니다. 백 명 해 봤자 하나 앞에 만원씩을 시키면 백만 원인데 만 원씩을 시키려 하면 참 그것은 힘들고 뭐 어렵지마는 부자 하나에게 가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만 백만 원 안 나옵니까.
이러니까 어쨌든지 속성으로 부자에게 가 가지고 연보하기를 힘쓰는 그런 사람 있고, 어떤 목사는 거기에다가 힘쓰지 아니하고 과부의 엽전 한 푼이 온 부자들이 낸 연보보다도 낫다는 주님의 말씀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이 성심 성의를 다 기울여서, 자기에게 있는 것의 몇 프로를 바치느냐, 가난한 것은 백프로 다 바치기 쉽거든. 이러니까 그것이 이제 양이 크다 말이오.
이래서 온 교인들의 가난한 교인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연보를 다 하도록 이면으로 애를 쓰는 사람 있고, 그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연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 연보의 그 신령한 연보를 보고 권면하는 것이고, 부자 찾아다니며 하는 것은 껍데기 연보만 보고 하는 사람이니 그 사람이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껍데기 교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돈 많은 사람에게는 찾아다니면서 이와 같이 심방도 잘하고 그 사람만 자기 사람으로 딱 엮어 거머쥐고 돈 없는 사람들은 네야 가든지 말든지, 야고보서에 말씀한 대로 이렇게 하는 그런 목회자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다음 주일날 가르칠 것은 불심판의 두려움을 첫째 가르쳐야 할 것, 불심판을 면하는 그 방편, 불심판에 타지 않고 면할 것은 사랑, 사랑의 일이 타지 않고 있을 것이고 사랑의 행동이 타지 않고 있을 것이고 사랑의 그 실력이 타지 않고 있을 것이고 사랑의 사람들이 타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을 준비할 것. 사랑을 마련하는 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이고, 자기 지혜 총명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이고, 시간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이고, 힘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이고, 몸뚱이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이고, 자기 목숨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이고, 자기 지위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여, 인기도 사랑 만드는 데 다 들여요, 사랑 만드는 데. 사랑은 어떻게 만드는데.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이렇게 한, 우리를 구원하신 그 체를 받아 가지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소원하시는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이 날 구원하기 위해서 하시는 그대로 체를 받아 가지고 나도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대로 하는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는 데에 모든 것을 다 들이되 우리가 한목 큰 것 하려고 말고 지극히 작은 것부터 연습을 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주일학교 학생들이 다른 구역장에게나 또 반사 선생님에게 토큰을 받아 가지고, 토큰을 받아 가지고 그 차비로 오고 자기는, 이러는데 나도 한번 해 보자, 차비는 받아 가지고 오고 자기는 차비를 모아, 자기 쓸 차비를, 자기가 올 차비를 가지고 그 동무를 하나 차비를 대서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이거 안 주면 이 형제가, 지금 이 동무가 주일 범할 터인데 이거 하나 줘 가지고 동무를 데리고 오늘 주일날 가 보자. 이렇게 하면 받고 주고, 받고 주고, 받는 것도 받아야 되고 주는 것도 주고 이래서 서로 사랑하라, 받고 주고 하는, 이래 가지고 우리 서부교회에 주일학교 학생들이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사들이 이렇게 하니 학생들도 자라면 더 할 것입니다. 벌써 반사들이 낙심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귀한 일을 시작했는데 이 일을 낙심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토큰 들여 가지고 학생들 데려오도록 돈 문제 가지고 하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그것을 설교하면 내가 여기 마귀가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사랑을 하면 할수록 자꾸 사랑이 커집니다. 자꾸 강건해지고 커집니다.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바치는 사람 있습니다. 생명을 바치되, 생명을 바치되 내가 하나님의 교리와 신조를 배반치 않기 위해서 내가 죽지, 참 순교, 이 교리와 신조를 위해서 나는 죽지, 그 사람이 있고, 주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생명을 바치는 사람 있습니다.
제가 언제 해방 직후에 마산에서 집회하니까, 모두 신사참배를 안 하고 갇혀 가지고 옥에 있다가 나온 사람이 있는데, 제가 가니까 환영을 이래 하면서, 아이구 조사님도 신사참배 안 했다지요, 이러면서 환영을 하면서 그때 이러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 사람들에게, 네 이놈들 지져 먹든지 볶아 먹든지 구워 먹든지 마음대로 해라 내가 절대 신앙은, 내가 예수님 배반치 않는다. 내가 신사참배 하지는 않는다. 구워 먹든지 삶아 먹든지 볶아 먹든지 뭐 지져 먹든지 마음대로 이놈들 해라. 내가 신사참배 안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서 이겼다고 말하는데, 그말 들으니까 내가 그만 가슴이 철렁거려서 설교할 용기가 안 나. 어떻게 기가 차는지. 이건 악독으로 이긴 것이지 사랑은 하나도 없다 말이오. 그래 그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내가 이 생명의 도를, 죽어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이 계명을 어기면 지옥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나는 신사참배를 안 해야 되겠다 이래야, 이들이 도를 받게 하기 위해서 안 해야 되겠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해야 됩니다.
사랑함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구원이 이르지.
내가 만일 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안 되고 이들을 멸망시키는 것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에서 할 때에 수월하고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에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해 봐야 돼요. 이 사랑의 동기에서, 사랑의 목적에서 하지 않으면 다 헛짓, 헛일입니다.
그래 제가, 신사참배 때문에 일본 부장이 마지막까지 와 가지고, 하루 꼭 한 번씩 올라옵니다. 올라와 가지고, 신사참배 어떻게 하려느냐. 못 한다 하고.
마지막에는 할 수 없어 저 화산이라는 만당에 가 가지고 그만 거기에서 단식 기도하다가 이제 승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신사참배 하라 마라 하는 것을 못 들었습니다.
이랬는데 이 사람이 해방이 탁 되고 나니까 거기에 있는 부장으로 있던 사람이니까 날 만났다 말이오. 만나니까 신사참배 하라고 하도 자꾸 괴롭게 하고 애를 먹였으니까 그 사람이 그만 내가 만나면 절 죽일까 싶어서 겁이나 가지고 막 이래 만나 가지고 이래 거석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래 내가 조금도 거석하지 않고 과자를 이만한 것 한 봉지 사 가지고 와서 이거 아이 갖다주라고 어쨌든지 참 수고를 많이 했는데 내가 그래 한 것은 자기를 사랑함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전한 것이니까 가거든 부디 예수 믿으라고. 예수님 믿는 것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시켜서 날 연단 시켜 그러니까 조금도 거석하지 말라고 이래 그러니까 그 사람이 부장으로 있고 다닐 때 이렇고 이런데 그래 놓으니까 절을 하고 막 기뻐하면서 가서 꼭 내가 예수 믿겠습니다, 예수 믿겠습니다. 그런데 가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모르지마는 아마 믿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불심판에 두려운 것이 준비는 우리는 사랑으로밖에는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준비하는데 간절한 소원, 마음에 간절한 소원이 뭐입니까. 간절한 소원.
이 사랑의 완성,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우리는 마음이 간절히 다 기울여야 되겠고, 우리가 이 생활 할 때, 이러면 이 형제를 구원하는 사랑이 되겠느냐, 형제를 구원하는 것이 사랑이라. 구원하는 것 외에는 사랑이 없어. 이거 이러면 이거 형제 구원이 되겠나 안 되겠나.
이래 가지고 암만 따져도, 이러면 돈은 유익하지마는 형제 구원은 안 되겠다, 이러면 형제 구원을 이거 구원을 막는 일이 되겠다, 이 구별은 전부 형제를 구원하는 구원밖에는 사랑이 없으니까 여기에다가 우리가 전부를 기울여야 되겠는데, 기울이면서는 큰 것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지극히 작은 것 자기가, 내가 이때에 오기가 난다. 오기가 나지마는 오기대로 하면 이 형제에게 구원을 못 주겠다. 어라, 오기를 참아라. 이 조그만한 것 이것이야 그까짓 것 주먹으로 한방 쥐어 박으면 싶으지마는, 어라 그러면 구원이 안 된다. 참아라. 참으니까 그것이 더 달려들어 뚜드려 팹니다. 맞아도 또 참아라.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형제에게, 그 형제에게 구원이 되도록만 하기 위해서 못 참을 것도 참고 하기도 하고, 견디지 못할 것 견디기도 하고, 손해 안 볼 것 손해 보기도 하고, 하기 싫은 일 하기도 하고, 참기 싫은 것 참기도 하고, 말하기 싫은 말도 하고, 하고 싶은 말도 또 중단도 하고 이렇게 어쨌든지 불심판 면하는 이것은 무궁세계에 갑니다. 불심판이 안 와도 불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된 것 그것만이 무궁세계 가지 불심판 못 면할 그까짓 것은 무궁세계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무궁세계 갈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 사랑된 것 이것밖에는 가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사랑을 이루도록, 사랑을 만들도록 노력합시다.
사랑은 뭐이 사랑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의 구속으로서 형제를 구원하는 것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암만 밥 줘도 사랑 아니오. 아무리 병이 든 것을, 아주 불치병을 돈을 줘서 낫아 줘도 사랑 아닙니다. 낫아 줘서 그것으로 인해 그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됐으면 사랑이오. 예수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사랑이지. 예수 믿는 것, 믿어서 구원 얻는 것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전부 멸망이지.
이러니까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전심전력을 기울입시다 이렇게 이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피곤치 않으면 때가 되면 거둡니다.
이러니까 반사 선생님들, 또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남녀 지권찰님들, 권찰님들, 또 평신도들 부르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이 사랑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 가지고 형제 구원하는 이 사랑을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생명까지 아낌없이 다 바쳐서 이 일을 성공하도록 합시다. 이것 외에는 가치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 일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에 이 일 할 수 있는 자본을 당신이 다 주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형제의 구원에 도움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 만일 자기가 하는 행동이 형제 구원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형제 구원에 손해가 되면 그 일을 하면 심판 받을 일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내가 이러면 형제 구원에 도움이 되겠느냐 저러면 구원에 도움이 되겠느냐, 이러면 다른 사람에게 형제 구원에 힘을 주겠느냐 이러면 형제 구원에 힘을 떨어지게 하게 되는 것이냐. 이것을 우리가 살펴서 전심전력 전 생활이 형제 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다 기울이는 이 사랑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결심을 합시다 작정을 합시다. 어쨌든지 형제를 구원하는 이 사랑에 전심전력 다 기울입시다. 고요히 각오하면서 내가 이 참에 이렇게 사랑 못한 것이 어떤 것이 있었으며 앞으로 사랑, 어떻게 할 것이 사랑할 것이 어떤 것이 있느냐.
내가 사랑하려고 하면, 형제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대로 영감대로 살려고 하면 무슨 마찰이 오겠느냐. 내가 지금 끊지 못한 것이 뭐이냐. 내가 이거 저버리지 못한 것이 뭐이냐. 내게 무슨 더러운, 사랑에 대해서 적이 되는 더러운 습관이 있느냐, 습성이 있느냐. 모든 것을 여기에서 고요히 살펴서 이놈을 마구 해부를 해서 쪼개서 다 치료를 받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