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선지자선교회  

1980. 6. 10. () 새벽

 

본문 : 고린도전도 1549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흙에 속한 자는 첫 아담 하와를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첫 아담은 그 형상이 영과 육으로만 된 사람임니다. 흙에 속한 첫 아담 그 형상과 같은 형상을 우리가 입고 있습니다. 그가 가진 그가 영이 있는 것 같이 우리도 영이 있고 그가 이 몸, 이목구비, 수족, 내장, 내부 가진 거와 꼭 같은 육을 가진 우리들입니다. 그가 영이 죽은 것처럼 우리도 죽은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첫 아담과 우리와 육의 형상이 꼭 같습니다. 영의 형상이 꼭 같습니다.

 

이는 사망을 넘어서 완전 영원무궁에 속하지를 못했고 전부 사망과 저주 아래에 속한 자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그렇게 되어 있는 자입니다. 둘째 아담은 하늘에 속한 자니 이는 완전에 속한 자요, 영원에 속한 자요, 불변에 속한 자요, 완전이기 때문에 단일성적인 자입니다. 이는 볼 수 있는 형상이 있고 볼 수 없는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그가 가진 이 인성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도 볼 수 있고 영체도 볼 수 있습니다. 영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신성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제외한 형상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고 여게 말씀하신 것은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제외한 형상입니다. 그러면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은 영 육으로 되어 있는 형상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라고 여게 말씀한 것은 영 육을 제외한 형상이라는 말입니다. 영 육을 제외한 형상이 어떤 형상이 있을까? 영의 형상도 아니고 육의 형상도 아니고 하나님은 영의 형상도 없고 물질의 형상도 없으신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가리켜서 형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 우리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형상인고 하니 그분의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단일성, 완전하고 영원한 지식과, 지혜와, , 사랑, 진실, , 주권 이런 모든 하나님의 그 도적적 그 형상, 지능적 그 형상, 하나님의 그 완전의 속성적 형상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를 들면 완전이라는 것은 모든 것 중에 가장 크고 높고 권위 있고 가치 있는 것이지마는 그 완전은 영의 형체도 있는 것이 아니요 물체의 형체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형체가 없는 무형의 존재인데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형상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그 형상이 무엇이며, 이제 그 형상은 물질의 형상도 영의 형상도 없는 당신의 그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단일성 그 외에 모든 속성 이것이 당신이 말씀해 놓으신 그 말씀에 발표가 됐고, 또 당신이 모든 역사를 하실 때에 그 역사 속에 이것이 나타났으므로 하나님은 어떤 모양이냐 하면, 무슨 우주같다 천사 같다 그렇게는 말 못하고 그분은 이런 성질을 가진 분이요, 이런 뜻을 가진 분이요, 이러한 목적을 가진 분이요, 이런 행동을 하시는 분이요, 그분은 이런 이런 분이라. 어떤 분, 그분은 완전하신 분이라. 그분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분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분의 생각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 경영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나, 이루는 것은 다 그것은 완전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라. 이러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우리는 그분의 형상을 당신이 말씀하신 이 성경 말씀과 영감을 가지고 당신이 말씀하신 그 형상을 우리가 찾을 때에 그렇게 밖에는 못 찾습니다. 그것이 당신이 말씀하신 당신의 형상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과 같이 우리가 된다 그 말은, 예수님의 형상과 같이 된다 그말인데 예수님의 형상 중에 흙에 속한 자의 형체를 먼저 말을 했기 때문에 흙에 속한 형체를 제외한 형체라는 것을 여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흙에 속한 자의 형체인 이 영육을 제외하고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니 곧 하나님의 형상인데, 그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단 말은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니,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 말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예수님의 그 인성의 영육을 가리켜 말씀한 것 아닙니다. 그는 물형이나 영형이나 그런 것이 아닌 그 형상을 말씀했으니 곧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완전성이 예수님으로 통해서 나타났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 단일의 그 완전 지식, 완전 지혜, 완전 사랑, 완전성 이 모든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예수님의 그 인격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성이 나타났고,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하신 행동이 나타났고, 예수님의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 신성과 꼭같은 인성 그것이 신성만이라면 우리는 볼 수 없는데, 완전한 신성을 신성과 같은 인성, 완전한 신성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나타나서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 우리가 볼 수 있었고, 접할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고, 대화할 수 있었고 있었으나 그분의 인성이 완전하신 하나님의 그 신성이 그로 통해 나타났기 때문에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예수님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를 대속하시 가지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도록 이렇게 부르신 것은 무엇 때문에 불렀느냐?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예수님의 이 형상을 우리로 하여금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 그렇게 로마서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형상을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면 예수님의 형상을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 부르셨으니 예수님의 이 우리가 덧입을 예수님의 형상은 뭐인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간추려서 말하면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불렀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니,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의 형상,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지마는 예수님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봤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예수 믿게 된 이것은 뭣 때문에 믿게 됐느냐 하면, 하나님의 형상 맏아들 첫 열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 것처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예수님의 형상 곧 예수님의 입은 하나님의 형상, 그러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예수님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라고 나타내신 거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볼 수 없는 그 형상을 우리로 통해서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행전 1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이제 부활하셔서 승천하실라 할 때에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가 이루어졌으니까 너희들은 그런 생각 가지고 말고 이제 내가 승천하면 보혜사 성령이 너희들에게 임할 터이니까 보헤사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이 나를 보지 못하고 나를 알지 못하는 그 내 형상을 너희들이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라. 내가 아버지의 형상을 너거들에게 보인 것처럼 아버지의 형상인 내 형상을 너희들이 온 세상 땅끝까지 보여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그것을 하시기 위해서 오신다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이 오신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는 그 형상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그 하나님의 역사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영에게 오고, 우리 영에 영에게 온 그 형상이 우리 마음에 오고, 우리 마음에 온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몸에 와 가지고 우리 몸에 온 하나니의 형상이 우리의 행동과 우리 언행 심사와 우리 자체로 통해서 나타나요.

      

그러면 나타나는 그 형상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완전성이 우리 자체를 통, 우리 마음을 통해서, 우리 생각을 통해서, 우리 뜻을 통해서, 우리 소원을 통해서, 우리 경영을 통해서, 우리의 말을 통해서,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해 놓은 일을 통해서 나타나요. 이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그 일이 무슨 일이냐?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일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일이라니 하나님의 완전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되는 일은 어떤 일이냐? 우리가 바로 된 일은 그 일이 다 완전한 일이요, 영원한 일이요, 불변한 일이요, 단일성의 일이요, 완전한 지식의 일이요, 완전한 지혜의 일이요, 완전한 선의 일이요, 완전한 사랑의 일이요, 완전한 진실의 일이요, 완전한 거룩의 일이요, 완전한 의의 일이요 이렇게 완전한 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영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한 것은 어찌 되냐? 말한 것은 완전한 말이라. 인간에게 무슨 완전한 말이 있느냐? 인간에게 없는데 예수님이 볼 수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그 형상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아버지의 완전한 형상을 예수님에 나타내신 예수님이 이제 가지신, 예수님이 나타내시는 그 형상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말은 예수님의 형상이요 아버지의 형상이라. 우리가 하는 말은 예수님의 그 속성대로의 말이요 예수님이 하시는 말이요 아버지가 하시는 말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말은 완전한 말이라. 이러기 때문에 완전한 말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로 불렀습니다. 완전한 말, 완전한 생각, 완전한 뜻, 완전한 소원, 완전한 경영, 완전한 목적, 완전한 준비, 완전한 형상.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그 형상은 어떤 모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활동, 하나님의 작용, 그 하나님이 형상은 하나님의 그 속성, 하나님의 그 활동, 하나님의 이루어 놓으신 결과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나타내셔서 예수님의 하신 일은 다 완전한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하신 일은 아버지가 하신 일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니, 아버지의 그 형상이 나타난 그 형상입니다. 아버지의 완전성이 나타났는데 그 행동, 행동도 아버지의 완전의 완전성의 행동이기 때문에 그 행동도 완전, 생각도 완전 행동도 불변, 생각도 불변, 행동도 영원, 생각도 영원, 행동이나 일이나 그 모든 것이 완전이라는 고 하나에서 나왔기 때문에 천으로 만으로 이렇게 비추어져도 한 불이 비췰 때에 여게 불 하나가 있는데 그 빛이 널리 이래 비취지만 요 빛이 퍼진 것처럼,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지혜로도 나타나고, 지식으로도 나타나고, 사랑으로도 나타나고, 진노로도 나타나고, 욕심으로도 나타나고 모든 것으로 나타났으나 그 나타난 것은 하나의 그 완전성에서 나온 거라. 그러기 때문에 단일성이라.

    

이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을 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말로 해라 일을 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말이 곧 내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서 하시는 말이 내 말로 나와야 되고, 예수님의 하시는 말은 무슨 말인데 아버지가 하시는 그 말이 예수님의 말로나왔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이 언행심사에 모든 움직이기는 움직이고 다른 사람이 내 성질을 볼 수 있고, 내 뜻을 볼 수 있고, 내 감정을 볼 수 있고, 내 노를 볼 수 있고, 이런데 내 노가 예수님의 노요 아버지의 노, 내 감정이 예수님의 감정 아버지의 감정, 내 성질이 예수님의 성질 아버지의 성질 요렇게 되어져.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의 이 완전하심이 인간을 통하여 모든 인간에게 모든 인간을 통하여 모든 만물에게 이렇게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피조물이 있는데, 하나님과 피조물이 있는데 고 사이에서 하나님의 이 완전하심이 일차적으로 그 속에 번져 들어가. 그 속에 번져 들어간 것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충만하게 나타나니

 

고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뭐인가? 고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뭐인가? 하나님의 충만을 가지고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는 고 위치를 가진 고 고것이 뭐인가? 고것이 무엇입니까? 아는 사람 한번 말해 보이소. 고기 뭐이지요? 고것이 뭐입니까? 그걸 몰라요? ? 하나님의 교회, 하나니의 교회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개인 교회가 돼 있습니다. 바로 되면 그 가정 교회가 됩니다. 바로 되면 사회 교회가 됩니다.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 무엇이 합한 것이 교회입니까? . 아 보니까 (이동근) 장로님 결혼식 주례할 때에 들어보니까 한번도 안 빠지대요.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우리 사람의 이 모든 자체와 행동이 하나되는 것이 교회라고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된, 네 기능만 육의 기능, 마음의 기능, 행동 이것만 영생합니다. 요것이 교회입니다. 그 사람이 몇십 년 믿어도 기본 교회만 있지 건설 교회는 하나도 없는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냐? 예수님이 볼 수 없는 아버지의 형상을 온전히 갖춘 것 같이 우리는 처음에 증거한, 증거하려고 사람되어 왔소. 사람되어 오지 않으면 우리가 못 봐. 사람되어서 우리에게 하나님과 꼭 같은 자로 세상에 우리에게 보여주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꼭같은 자, 예수님과 같은 자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연습하는 것은 어떤 것을 연습하느냐? 아버지의 것이 예수님 안에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우리 안에 와서 역사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형상이요 예수님의 형상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기 위해서 우리가 있는 것이요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17편에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다가 남은 것이 있으면 제 새끼라고 자격이 있든지 없든지 제 새끼만 물려 주는 그것으로 살고 가는 것이 땅에 속한 인간들이라. 김일성이도 보니까 제 새끼 물려주데.

 

이거 모양으로 그게 다 자기 중심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깰 때에 무엇으로 만족하리라. 깰 때에 뭘로 만족하라 했습니까? ? 하나님의 헝상으로 만족하리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를 이루었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고것만큼 고것을 가지고 무궁 세계서 영생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룬 것 만치라. 이 하나님의 형상이 뭐인데? (저 조울지 말아요." 하나님의 형상이 뭐인데? 하나님의 깰 때에, 깰 때는 부활 할 때 그말입니다. 잤다가 깨는 것 죽었다가 부활하는 걸 말합니다. "깰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라" 그 말은 하나님에 형상으로 영원히 그것 가지고 산다.

 

그러면 그것이 참 우리에게 만족이 되지 우주를 차지한 게 만족이 안된다.

 

하나님의 형상 이룬 고것이 우리에게 소원이요 고것만이 우리에게 만족이요 족하다 그말입니다. 자기 이룬 걸 족하다 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이 그 외에는 우리의 소원이 없고, 하나니의 형상 그것 외에는 우리에게 만족될 게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 뭐인데? "깰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라."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 가지고 제 것 아니요. 하나님이 것 아닌 것 없어 낯짜구가 잘난 것도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 낯짜구가 잘났다고 내두르면서 또 여자는 낯짜구 잘났다고 요래 요래 싸면서 하나님의 것 가지고 제가 제 욕심대로 실컨 쓰고 남은 거 있으면 또 자기가 줄 수 있는 자손들에게 주고 이제 그것으로 끝이라. 그것 보고 살지마는 "하늘에 속한 우리는 깰 때에 죽었다가 부활 할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라" 그것만이 우리에게 만족이지 그 외에 거는 만족이 안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뭐인데, 우리에게 완전성의 것이 이루어져 있다. 완전성의 것이 많이 이루어졌든지 적게 이루어졌든지 양은 어찌 됐든지 어떤 사람은 완전성의 것이 그는 말에 많이 완전성이 됐고, 그는 세상에서 말을 만 마디를 했는데 만 마디 가운데에 완전성의 말은 한 마디도 없어. 어째 그 사람의 말 가운데 완전성에 말이 한 마디 있어. 행동도 그러하고,

 

어쨌든지 완전성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있고, 영원성의 것이 이루어졌고, 불변성의 것이 이루어졌고, 어떻게 번져 퍼져나가도 그것이 단일에서 나간 그 하나가 번져나간 그 단일성의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져 있고 우리에게 영원 불변의 지식, 영원 불변의 지혜, 완전한 지혜 지식, 완전한 사랑, 완전한 선 모든 완전성, 불변성, 영원성, 단일성이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진 그것만 그때 우리에게 필요하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좋고, 그것만이 그때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도 더 알 것이고 그것만 가지고 살게 된다. 하늘나라는 그것만 갑니다.

 

하늘나라는 그것만 가지 그 외에 거는 다 죽을 때 다 벗어져 버립니다.

 

안 믿는 사람은 죽을 때에 그거 아닌 것을 다 가져 가지고 공심판에서 심판을 받지마는 우리는 아닌 것들은 예수님이 대신 그것 때문에 형벌 받았고, 그것 때문에 대형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 갈 것이 공심판에 가기 전에 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됐기 때문에 심판 가지 전에 그것은 다 제거되 버린다 말이오.

 

그러기에 세상을 떠날 때에 그 사람이 세상으로 제 일등 인물이라 할찌라도 하나님의 형상 이루어지지 안했으면 그것은 땅에서 다 썩어져 버립니다. 그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일 때에 영원히 멸망받을 것이 살아나는 그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구속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했을 때에 이것을 죄라하고, 이것을 가르쳐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사형 선고 받은 이것을 예수님이 다 화목시켜 놨는데 화목시켜 놓은 이것을 제가 입지 안했기 때문에 둘째 사망이 해를 받는다 성경에 말했습니다.

 

이래서 이것을 이룰려고 하니까 이 완전성에 하나니의 형상을 이룰려고 하니까 우리가 무슨 중심이어야 되겠습니까? 돈 중심이라야 되겠습니까, 권세 세상 대통령이나 왕이나 카트 모양으로 그런 대통령이나 그런 것하고 싶은 그 중심 그 위주 그 욕심이라야 되겠습니까, 무슨 욕심이라야 되겠소? 무슨 위주라야 되겠소? 이러기 때문에 이 지극히 큰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입으려는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루는데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가 되지 안하면 이 방편적으로 안 된다 그거요.

 

그러면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이것은 방편입니다. 그러면 이루어지는 것은 뭐이냐?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 중심만 가지면 되느냐? 우리가 행동을 그렇게 해야 된다 그거요.이러니까 하나님의 형상, "너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라." 이 자체가 되는 데에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에 움직임과, 하나님으로 인하여 피동되는 이 피동의 움직임이 아니면 이 일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거요.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 중심에, 위주에, 피동에, 행동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나야지.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환경과 배경을 만나야지. 그 시간과 그 배경이 무엇입니까? 그 시간과그 배경이 어디 있습니까? 그 시간의 그 형편과 그 처지 그것을 이루는 데에 구비해야 되지. 구비되어 있는 그것이 어디 있습니까? 고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현실을 믿음으로 살아라 그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살아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에게 하나님 움직이는 데에 따라 움직임으로 살아라.

 

하나님 움직이는 데 따라 움직이다니 하나님이 이렇다고 지식하시는 그대로 너는 알아라. 하나님이 알게 하시는 그대로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따른 지식이어야 한다. 행동도 하나님에 따른 행동을 해라. 이것을 가르쳐서 믿음이라 말하는데,

 

그래서 이 믿음은 보배로운 믿음이라. 지극히 보배로운 믿음이라. 이 믿음이 뭘 하는데 신에 성품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님에 신성 완전하신 하나님에 신성에 참여해 내가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신성을 받게 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쩌든지 기회가 있는대로 알아야 되지 모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게서 내가 아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서 아는 것이고 말하게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지혜가 있는 사람 아닙니다.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종들이 선지자들이 깨닫은 그 깨닫음이 지금 나열 돼 가지고 벌써 온 그것이 우리에게 대한 교리라고 하고 신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나는 그 공부 한 사람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알려주셔서 내가 말하지만 그들이 말한 거와 같고 내가 말한 거와, 그들이 말한 것이 다른 것은 문제를 두고 연구해서 생각해 보면 이제 그들이 말한 것보다 이 시대에 앞서서 그게서 더 깨달음이 나 가지고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서 하는 것이 암만 봐도 이 가운데에 여러분들을 보고 해서 뭘 하려고 이러는고 나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번져나가 그들에게는 내가 말하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는데 그들과 나와 다른 것은 뭐이 다른가? 그들이 고대로 인격 변화가 되는 것이 나보담 더 많이 변화되고, 그들이 그렇게 참되게 인정해서 고대로 행동하는 것이 나 할 일이요.

      

이러니까 또 그분들이 이 주일학생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남아 있으면 그분들은 장성해지면 내가 깨닫지 못한 것을 또 하나님께서 그분들을 통해서 또 깨닫게 해 가지고 그 시대를 감당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렇게 귀담아 듣지 말고 등하니 하지 말고 만홀히 여기지 말고 여러분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에 배워 가지고 들어야 됩니다. 알아야 됩니다.

 

제가 녹음해 놓은 것을 어떻게 잘못된 것이 있는가 해서 들어 봤습니다. 어제 오전, 오후, 금요일 밤에 것은 내가 못 들었는데 새벽 거는 내가 들었습니다. 들어 보니까 고칠 것이 없는데 하나 고칠 것 있는 것은 그 빌립보 29절에 있는 9절 이하에 있는 말씀을 빌립보서를 처음에 말해 놓고 나중에는 에베소서라 그렇게 내가 말을 잘못했다고 고 에베소라 고 앞에 빌립보서를 말했는데 에베소서라고 성경 이름을 잘못된 그것이 잘못됐습니다.

 

그러나 그 들을 때는 좋지만 녹음을 가지고 듣고 나니까 들을 때는 좋은데 내 속에 박혀 있지 않고 묻혀 나가는 것같은 그런 감을 가졌소. 그런 감을 느꼈소.

 

들을 때는 좋은데 듣고 나니까 내게 뽑혀 나가는 것같애. 녹음기를 가지고 녹음으로 듣지 않고 내가 그 말씀한 것을 눈을 감고 명상하면서 새김질 해서 마음에 그것을 다시 되새겨서 생각할 때는 생각하고 나면 뽑혀 나간 것같이 안하고 내 속에 충만해지는 것 같은데 듣고 나서는 뽑혀 나가는 것 같애요.

 

이러니까 녹음기 이것이 자기 복음은 만들지 못하고 남에 복음으로 만들어서 이 교만케하는 이 미혹의 역활이 많겠다. 그것도 물론 들을 때에 자기가 마음을 다 써서 다해서 무릎을 꿇고 자기 속에 대조하면서 자기 속에 요런 각오와 결심과 자기 지식을 삼아 이렇게 성신의 감화와 함께 들으면 그는 유익이 있겠지요. 그러나 성신 감화 없이 소리만 듣기 쉬워.

 

그러기에 예수님이 전도하는 방식을 문서로도 하지 안했고 또 이렇게 뭐 다른 것으로 하지 안하셨고 꼭 말로 했습니다. 말로 한 것 외에는 예수님이 전도하시는 방식을 쓰지 안했습니다. 말로 했소. 만일 글로 필요하면 예수님이 글을 썼을 터인데 글은 평생에 쓰신 일은 보면 그 음행한 여인에 관해서 땅에다가 글로 쓰신 일이 있는데, '자 누든지 저와 같은 그런 죄가 아닐찌라도 다른 죄도 죄 없는 사람이 있거들랑 그를 정죄해라' 하시고 그 정죄할 그 벌로 날뛰는 자를 아니까 그 사람에 죄를 손가락으로 가르칩니다. 무슨 죄 하니까 손가락으로 쓴 것을 보니까 저를 바로 말했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물러가고 물러가고 이러고 난 다음에 다 그걸 뭉캐 버리고 없애버렸습니다.

 

이는 우리가 말로 전할 때에도 말뿐이면 헛일입니다. 전하는 말과 능력과 성령이 같이 전해야 되는데, 말을 전할 때에 성령과 능력이 같이 전하여 성령의 감화를 받은 자기로서 그 말을 전할 때에 능력을 받아 가진 자기로서 전할 때에 감화를 받는 것은 자기가 진정 소원하는 그 성신의 감화 받았고 능력받은 것은 자기가 그 능력으로 실행을 해서 그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되어질려고 할 때에, 되어질려고 할 때에 그만큼 빈약한 영감과 능력이 같이 전해야 되고, 자기가 실제로 실행해서 만들어 졌을 때에 그 능력과 그 영감이 같이 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전하는 것이 성령과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

 

너희들이 또 행동하는 행동도 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에 그 행동에 능력 있는 행동을 내가 원한다. 껍데기 행동만 있고 하나님이 같이 하지만 그 영생성은 없습니다. 그 완전성이 그 행동 속에 내주해 가지고 그 행동은 완전성에 행동한 행동이 되어야 되지, 하나님이 행동한 그 행동이 그 사람을 통해 나타난 것이야 되지, 하나님 뒤로 두고 저 혼자 행동하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 소용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도인데 아무나따나 그저 예수 믿는다고 교회가 오면 되는 그거는 기본구원 뿐이지 성화구원이나 건설구원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은 택한 자를 보느냐 그 말 아니요. 택한 자 없다는 말 아닙니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 말은 내가 올 때에 하나님의 이 완전성으로 동하고 정하는 이 완전성에 그 움직임을 보겠느냐 그말이오. 정말로 안 보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때가 됐습니다. 이것은 없는 때가 되버렸어.

 

지금으로 부터 근 사백 년 된 전에 이제 이루어졌던 칼빈의 사백 년 전에 깨달았던 그거 검어쥐고 지금 덩얼거리고 있고 그것만이 아니면 이단이라고 말합니다. 그게 하나라도 가하면 이단이라고 생각하요. 그들이 자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소.

 

칼빈이 삼위일체를 알았습니까? 지금 아마 다르요. 칼빈이 예정한 예정이 우리가 믿는 예정대로 믿습니까? 칼빈이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믿는 대로 그 섭리를 믿습니까? 아닙니다. 그때는 그만하면 족하요. 우리는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개미 수염은 요래 요래 요래 하는 건데 개미 수염 하나에 요라고 요라고 요렇게 흔드는 것도 단독은 없다. 이제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들었고 하나님에 그 섭리 고대로에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요 수염 하나 움직이는 게 고것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이고 그걸 하는 것이다. ? 고게 내 눈에 보이느냐?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나에게 이 하나님의 목적인 이 구원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보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들리는 거, 보이는 거, 접촉되는 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에 구원을 위하지 안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게 믿는 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예정이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에 구속의 역사입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그 교리를 저들이 마음에 다하고, 성품과 뜻을 다하고, 산 제사로 제단 위에 올려 놓고 세상을 완전히 떠나서 이 세대를 변하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에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구별하도록 되는 것인데 세상 욕심 가득 가지고 세상에서 다른 사람은 정치해 가지고 높아지는데 나는 목사해 가지고 높아질란다. 다는 사업해 가지고 높아지는데 나는 이제 복음 운동해 가지고 높아질란다. 신학해 가지고 높아 질란다. 내가 욕심 그 욕심 그대로 거기 때문에 이름만 달랐지 이건 자기 욕심이니까 세상을 버린 것이 이닌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변화하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에 온전하시고 기뻐하시고 선하시는 그 뜻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 보다도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 '주여 살든지 죽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게 하나이다.' 아야 이것은 잡아서 제단 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하나님이 만들어 쓰실 수있도록 하나님이 쓰시기는 뭘 써.

 

제가 제 마음대로 '내가 여 있으면 좋겠다.' '여 공산화 될터이니까 아야 미국으로 가야 되겠다.' 제 마음대로 제 몸뚱이 전체를 이사하고 또 그래도 미국서는 가 가지고 무용지물이니까 거서 안 알아 주니까 ', 일은 한국 가 해야 되겠는데' 그라 안하면 어짰고 가족은 여게 다 내비두고 여게 영주권 시민권 다 얻어 가지고 여게 선교사로 파송되 가지고 그러면 여게 돈 월급 받아 먹고 제대로 돌아 다니면서 선교한다고 와 가지고 여서 뭐 세계 복음화 운동이니, 뭣 세계 무슨 운동이니 이래 큰 소리만 하고 돌아다니면서 '자 하나만 할거 있다.' '뭐 할 거 있노?' '꽝 걸면 미국 사람 갈때 그때 나도 시민권 떡 내놓고 하면 나도 같이 따라 간다. 고 기회 놓치면 안 된다.'

 

요것만 명심하고 하는 그런 자를 이 도마 위에 오른 고기와 같이 순교직전에 있는 한국 교회에 그자들을 무슨 신학교 교장으로, 그자들을 신학교 신학자로, 그자들을 무슨 선교사로, 목회자로, 지도자로 다 눈이 어두어졌습니다. 이 말이 안 나가 그래. 이 말을 한국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퍼쳐! 외쳐! 우리가 정신 차려서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아무나따나 쉬운 것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그에 거룩하심과 같이 그분이 콩 팥을 거룩이라 하 그분이 구별하는 것처럼 구별하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미국가 있는 사람들도 피난으로 가 있는 사람 있고, 거게 가 가지고 참 가기 싫지만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간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 거게 복음이 다 식어져 있기 때문에 그래 간 사람도 있겠고, 거게 가서 진리를 배워 가지고 진리를 배우는 것은 배운다는 것은 거게 통계가 되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여게서는 그것이 지금 종합해 가지고 통계를 맞추는 것이 더 희미하기 때문에 똑똑히 그런 것을 참고로 연구해 가지고 와 가지고 이 민족과 더불어 같이 생사를 같이 하고 이 민족에게 이 복음을 전하겠다 하는 그 사람이면 거게 가 있으면 우리에 선교사요 거기 왔으면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서 통계를 못 맞춰서 그래 통계 맞춰 보면 그 사람에 그 사람을 십 년 내지 이십 년을 한 이십 년만 두고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고 환하이 다 압니다. 어떻게 연극하는 것, 일시 연극하는 것, 그것만 보고서 그렇타 저렇타 그렇게 속단과 속인을 합니까? 속히 인정해 그러니까 그것이 미개인이요 야만인이요. 그 사람에 사고에 범위가 좁다 시야가 좁다 그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 안 되려고 하는 거라.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안해.

 

영원 무궁토록 가도 영원무궁을 보면서 자기대로는 자기 나름대로는 영원무궁을 보면서 천 년이 오면 천 년 가도 이거는 변하지 않는다. 만 년 가도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심판에 가도 이거는 주장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이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하지도 말고,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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