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20:56
복음의 가치성
본문 : 마 10:14-2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어디를 가든지 사람 상대를 제일 조심해서 거기다가 진심전력을 기울여 할 것.
왜? 사람에게 대한 그것이 하나님과 자기와 다른 사람과 금생과 내세와 모든 사물과 그 성화 그것이 전부 거기에 다 매였습니다.
그 사람이 첩첩 산중에서 일생 동안을 파전을 파고 있어도, 아무도 만나는 사람 없지만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실은 제가 몰라 그렇지 사람에게 대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일 고것을 잘못하면 이제 말한 그 모든 것이 실패요, 그것을 바로 하면 이제 말한 그 일곱 가지가 다 바로 됩니다.
내가 이 파전 해 가지고 밥 먹고 살아야 된다 하지만 밥을 뭐 하려고 먹고 살며 무엇 때문에 먹고 사느냐? 그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자기에게 대해서 모든 인류에게 대해서 금생에 내세에 대한 것이 전부 그 하나로 다 이루어집니다.
아주...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 중에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제일 귀중히 취급해서, 이 당신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 예수님께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주시고 예수님은 그것을 다 받아 가지고 영원히 아버지의 대리 노릇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신 일은 또 우리를 불러 가지고 예수님의 모든 대리의 일을 하도록, 이래서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생활인데 그것이 막바로 내가 사람에게 대한 그 생활이요, 사람에게 대한 그것이 모든 피조물에게 대한 생활이니, 우리에게 직책을 주시는 것은 어떤 지역을 통치하는 그런 조브라운 직책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대해서 하시는 그 직책을 우리에게 맡기시려고 우리를 불러서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 직책을 어떤 사람은 가끔 가다가 드문드문 하나씩 맡는 그런 성근 직책을 맡은 사람 있고, 좁을, 아주 좁은 그 범위의 직책을 맡은 사람 있고, 넓은 범위의 직책을 맡은 사람이 있고 그것이 전 모든 존재에 대한 자기의 영원을 마련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그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하나님의 충만이라 그 말은,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영원히 계속해서 봉사하고 은혜 베풀고 또 그를 통치하고 하시는데 그 일을 대리 맡긴 것이 교회요 교회의 분자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상대할 때에 자기가 혼자 앉았으면서도 사람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굴 안에, 골방 안에 앉아서 사람을 많은 사람을 상대합니다. 자기가 몸으로 상대하는 것도 있고, 마음으로 상대 하는 것도 있고, 사상으로 상대하는 것도 있고, 자기의 성품으로 상대하는 것도 있고, 욕심으로 상대하는 것도 있고, 지식으로 상대하는 것도, 영감으로, 영으로 상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대한 상대가 제일 중요합니다. 왜?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네가,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나오지 못하는 것인데 인간인 네 속에서 축복과 저주가 나오는데, 네가 이 축복하고 저주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 하나님의 모형인 것을 모르느냐? 네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 막바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네가 모르느냐?' 야고보서에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을 오늘 아침에 첫째 읽는데 말씀했는데, 복음을 전할 때에 네가 그 복음의 가치와 복음의 권위, 그 복음이 네게와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하다는 그것을 아는 것만치, 믿는 것 만치, 네가 가진 것만치 전할 때에 상대방에게 건너가지, 네가 거기에 대해서 가지지 못하고 입술만 가지고 가서 전하면, 또 입술만 전해져서 입술로만 예수 믿는 사람 이런 사람 만드니까 그것이 도리어 배나 지옥의 자식을 만드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가서 전할 때에 그 사람이 받지를 아니하고 싫어하거든 네가 거기에서 나오라' 2천 마리 도야지가 죽었지만 한 사람이 귀신에게서 해방을 받았으니까 한 사람의 가치는 도야지 2천 마리보다 더 가치 있어서 그것이 필요할 때에는 얼마든지 주실 수 있는데 가다랴 사람들이 예수님 떠나기를 원하고 사람 가치보다 물질 가치를 크게 여겼습니다. 오늘에는 도야지 2천 마리보다 도야지 한 마리 가치를 사람 가치보다 크게 여기는 사람들로까지 타락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가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이 거기에 가서 보니까 좋은 피아노 있으니까 '피아노가 복음보다 낫다.' 가서 보니까 좋은 양옥에 살고 있으니까 '양옥이 복음보다 낫다.' 높은 권세 잡은 사람한데 가보니까 '아이구, 으리 으리 권세 있으니 권세가 복음보다 낫다 ' 네가 어디를 가서 전하든지 전하는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네가 전하는 복음보다 낫게 평가되어 네가 그것이 부러워서 네가 그것을 먼지만치라도 네가 사상적으로나 욕망적으로나 평가적으로나 사모적으로나 이렇게 네가 사람이 변화된 것이 먼지 만침 변화되어도 변화됐으면 그 복음 전한 것은 다 그 헛일이다. 네가 전한 복음보다 더 좋은 게 있는데, 사람들은 좋은 것 하지 나쁜 것 하겠느냐? 네가, 그게 더 좋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복음 전하면 무슨 소용 있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의 가치를, 복음의 권위를, 그 복음이 자기에게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얼마나 필요하다는 이것을 자기가 먼저 알고 믿고 자기가 가지고 전할 때에 그것이 상대방에게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말로는 그래 하지만 그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 자는 전해 봐야 전함을 받은 그 사람도 '이것은 남을 기만시켜서 속여서 하는 말이지 실상은 뭣만도 못하다'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전부는 다 헛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전하고 받지 않거든 네가 그 성을 떠날 때에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하는 이것이 하나의 형상을 가지고 우리에게 교훈한 상징적 교훈입니다.
발에 먼지라는 것은 발에, 발을 싹 씻고 나와도 소용없습니다.
사람은, 이러기 때문에 전도자는 누구든지 전도하되, 뭐 도구로 전도하는 사람도 있고 별별 있지만 참 전도하는 사람은 벌써 인생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세상을 초월한 사람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초월한 사람. 이것보다 뛰어난 가치, 하나님 다음으로 가치 있는 이것이 복음이라는 것. 이 복음은 자기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되어지게, 하나님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을 자기 것을 삼는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을 전하는 교역자로 나선 사람이 상대방을 위해서, '너 물 좀 달라' 하고 그걸 끄내끼로 삼아 가지고 생수를 주기 위한, 상대방을 유익되게 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구출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그런 것은 요구할 수가 있지만 자기를 위해서 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자기 위해서는 변호할 것도 없고, 자기 위해서 변호한다면 죽었소, 벌써. 자기 위해서는 변호할 것도 없고, 자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위해서는 노력할 것도 없고, 자기 위해서는 무엇을 계획할 것도 없습니다. 모두는 다 욕심이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주님을 하는 데에는 이 세상에서 밭을 사야 그 밭속에 보배가 있기 때문에, 이 세상살이를 바로 해야 주님을 자기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하는 것이지.
이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의 소망하는 것이 전부 복음 이것만이 소망되어야 되는데, 이 복음은 하나님과 피조물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이요, 이 복음은 자기를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요, 이 복음은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과 그 사이에 자기는 중간 왕 노릇 하는, 중간 왕 노릇을 지금 마련하는 것이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런데, 복음에, 전 욕망과 전 동경과 전 소원과 계획이 복음에 있지 아니하고 이 복음을 팔아 가지고 돈을 만들고 학비를 만들고 또 자기의 의식주를 만들고 하는 그것이 참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하고 답답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그 사람은 복음으로 인해서 평생 고생을 당할 것이오. 평생 고생을 당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인해서 고생 당한 사람 아닙니다. 복음을 인해서 그는 자기의 평생소원 성취를 다 한 사람이오. 가장 쾌락을 누린 사람이요, 가장 만족을 누린 사람입니다.
너희, 제자가 선생 대우 받으면 됐고, 종이 상전 대우만 받으면 됐고, 거기에 속한 자가 호주 대우 받았으면 됐지 뭐 불평이냐? 모든 사람이 나를 대우한 대로 그대로 대우하는 것은 그것이 나와 같다고 대우하는 것이요, 나와 같은 소속과 입장과 그 자체가, 또 사역이 나와 같은 사역을 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니까 나와 같이 대우하는 것이니 내가 그 대우 받은 그것이 어찌 됐느냐? 아버지 우편에 앉는 그 대우가 아니냐? 이런데 너희들이 지식이 꺼꾸로 되어 가지고, 비판이 꺼꾸로 되어 가지고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큰 교회 가라 하면 좋아서 입이 벌컥 거리고 작은 교회 가라 하면 시투룽하고 이것이 복음을 가진 사람 아닙니다.
이것이 복음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오. 복음을 지금 팔려고 하는데, 복음을 팔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많은 데 가서는 팔면 좀 많이 팔릴 건데 사람이 적으니까 잘 팔리지 않겠다. 부자 많은 데 가서 팔면 돈을 많이 받을 터인데 부자가 적은 데 가서 팔면 돈을 적게 받겠다. 전부 복음을 팔아먹는 도적이요 강도라 그거요. 이리라 말이오.
이러니까 복음의 가치를 모르면 안된다.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네가 어데 가서 전하든지 나올 때에 먼지만치도 그것이 묻지 않았느냐?' 이러기 때문에 복음이 귀하다. 이러기 때문에 복음이 귀하다. '너는 도야지로구나. 참 네가 불쌍하다. 네가 순전히 짐승이다. 영원에 대해서 네 알속은 하나도 차리지 못하고 있구나.' 이 게 복음을 가진 자라 그말이오.
손양원 목사님은 복음을 가졌어. 그렇게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목사마다 부흥사마다 오는 자에게 다 구경을 시키니까 전부 입이 떡 벌어져 '당신은 이렇습니다.' 이런 자인데 손양원 목사님을 구경시키고 나니까 나오더니만 '너는 도야지다 네가 짐승이지 너는 성도는 아니다.' 왜? 복음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복음을 일주일 내 주고 가서 나중에 저거 집에 들어오니까 복음은 안 받고 그걸 받고 있으니까 도야지라 그말이오.
'내가 전한 복음은 이런 것 억억억억만 배도 더 큰 것인데 이 큰 것을 모르고 네가 이것만 아니까 그거는 순전히 수성으로 짐승 성질이요 짐승 지식이요 짐승의 욕망이지 사람의 욕망은 아니다.' 그 분은 복음을 가진 분이라. 이 복음을 가졌어야 복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가지. 복음을 가지지 못하고 복음보다 나은 것이 많이 있는데. 복음보다 나은 것이 많으니까 거기 가니까 제가 거기화되고 거기에 속하고 자기가 변질됐지 상대방이 변질되지 않는다 그거요.
복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가치를 모르는 자가 복음을 팔려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복음을 팔아먹는 자는 하나님이 그 보응을 하십니다.
도구와 같이 이용은 합니다.
농사짓는 데에는 시골에 가면 쟁기가 제일 중요한 농구입니다. 경운기가 아마 지금은 제일 중요한 농기일 것입니다. 있는 집에는 이렇지만 그걸 농사짓고 난 다음에 누가 밥상에 앉으라 합니까? 저 곡간에 갖다가 쳐박아 놓지. 잘 대우하면 기름 때 벗겨내서, 부려 먹기 위해서 기름 때 벗겨내서 곡간에다 쳐 넣어 놓지.
그걸 농사짓기 수고 했다고 밥상에 앉으라 하고 농사짓기 수고했다고 방 안에 호주로 모실 자가 누가 있습니까? 도구와 사람이 다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이용을 해도 자기는 목회를 하기 때문에 평생 고생이오.
목회를 하기 때문에 평생 섭섭하고 분하고 합니다. 이러니까 목회하고 난 다음에 정년퇴직으로 한 사람은 그저 겉어머리는 말 안 해도 한숨뿐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탄식뿐인 사람이 많을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목회한 것이 후회다'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정년퇴직을 자기는 안 하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너무 노망이 들어 가지고, 목회자들이 나이가 많으면 노망들어 가지고 목회는 하지 않고 망령들어 큰 소리만 떵떵 하고 이러니까 이거는 할 수 없어서 '내가 많은 사람들의 거치는 목회자를 제거하는 데에는 나도 정년퇴직을 해야 되겠다' 해서 했을 것이라.
했지만 자기가 정말로 가진 복음이 있으면 정년퇴직 했다고 앉아 있을 수 있습니까? 이제는 정년퇴직을 했으니까 마구 교회와 교계를 망라해 가지고 자꾸 드리 올 것입니다. 거기에 복음이 있으니까 복음 받으려 자꾸 올 것이오. 오니까 아마 그 사람이 피곤해서 방안에서 일을 잘 못할 것이오, 피곤해서, 자꾸 피해야 되지.
'여기에는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산골로 피해야 되겠다.' 첩첩 산중에 피하면 그 첩첩 산중이 대로가 될 것입니다. 사람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오고 가고 자꾸 할 것이오. 어디로 피해도 그 사람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 말이오.
왜 그런데 복음을 가진 사람이 배척을 당해? 복음을 가지지 아니하고, 복음을 무엇만은, 복음을 가졌지만 무엇만은 못하다. 복음을 가졌지만 이 복음은 뭐 돈만은 못하다, 지위만은 못하다, 권세만은 못하다, 저축만은 못하다. 지위만은 못하다. 복음보다 나은 것이 많으니까 이 사람에게 가니까 복음보다 나은 것 있으니까, 제가 그것 부러움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포도주를 마셔서,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오지 복음을 주고 오지를 못한다 이거요.
그러기에 전도자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내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내가 어떤 사람에게 '네가 목회를 해라.' '나는 목회할 자격이 없습니다. 못합니다. 내가 말을 못해 못하는 거 아니고, 웅변을 토하지 못해 못하는 것 아니고, 진리를 몰라서 못하는 것 아니고 나는 자격이 없어 못합니다. 목회자를 존대하는 것은, 목회자는 잘 났든지 못났든지 자기의 전부를 제단 위에 제물로 잡아 올려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이 목회자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실력이 없어서 목회를 못합니다.' '목회자를 이렇게 존대하는 것은 이분은 전부를 주님의 제단 위에 바쳐 놓은 제물이다 이것 때문에 존대하는데, 존대는 하기는 하지만은 어떤 사람은 볼 때에 그것이 아니고, 그것 때문에 존대하는 데 교역자는 목사라는 이름 가지고 존대하는 줄 알고 전도사라는 이름 가지고 존대하는 줄 알고, 권찰이라는 이름 가지고 존대하는 줄 알고, 그것으로 존대하는 줄 아는 사람은 참기는 참지막 말의 벼락을 가지고, 입 펀치의 벼락을 가지고 대가리를 바짝 부셔 놓으면 싶지만 차마 그래도 모든 대중이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고 그대로 둡니다.' 하는 사람 나는 몇 사람 만나 봤습니다.
복음은 어데든지, 어데를 가도. '네가 그것을 살리는 것도 이 복음이다. 네가 순전히 유물주의로구나. 유물주의의 네 물질 그것도 그 물질을 영원히 살려 가지고 가지려면 이 복음을 가져야 된다. 모든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 천한 것을 존영케 하는 것이, 거짓된 것을 참되게 하는 것이, 없어질 것을 영원한 존귀로 이렇게 존귀의 것으로 하는 것이 이게 복음이다.' 갈수록 너는 더 이 복음이 필요하다. 돈이 필요하지 무슨 소리냐? 얘, 돈이 필요한 인간아! 너는 더 이 복음이 필요하다. 이 복음이 아니면 돈에게 너는 치어 죽는다. 이 복음이 들어가야 그 돈이 네 돈이지.
이렇게 복음의 가치를 알아서 어데 가도, 어데 가도, 아무 데, 높은 지위 권세 어데 가도, 어떤 문화국에 가도 복음 외에 자기는 먼지만한 것도 가져올 것은 하나도 없어. 거기에 가서 보니까 자기 가진 복음보다도, 복음이 더 크고 좋으면 그거는 가지지만 복음 외에는 거기에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고 먼지만한 것도 붙일 것이 없는 이 사람이 복음의 가치를 안 사람입니다.
내 어떤 사람의 전기를 읽어 보니까 그분이 회개를 했는데, 자기가 한 번도 주님의 이 복음보다, 복음보다 낫게 여기고 크게 여기고 복음을 잊어버리고 그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불란서 파리에 가 가지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네 시간 동안을 복음을 잊어버리고 거기에 마음이 쏠려 가지고 그것만 본 그것을, 네 시간 동안 그와 같이 허탄한 그 참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그것을 보고 자기가 마음에 깊이 회개를 하는 그것을 전기에 써 놓은 것을 봤습니다. 산다씽 그 사람이 그랬습니다. '네 시간 내가 암흑 가운데 빠져 가지고 있었다.' 그런고로 발에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것을 잘 기억하고, 거튼 거튼만 말하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 우리가 어떤 환경과 형편을 만나든지 그것은, 내가 좋은 환경을 만나는 것, 또 나쁜 환경을 만나는 것 이것 전부가 다 그 환경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달려가서 주님을 접하게 하려는 것으로, 주님이 그 모든 것을 인해서 주님과 가까와지기를 원하시는 이 역사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자기에게 이는 참 둘도 없는 역사에 제일 불행스러운 환경이 자기에게 왔다고 하면 그 환경은 분명히 그 환경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가까이 가 주님으로 더불어 밀접해지자는 주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주님 앞에 가까이 가면 그것이 이용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리가 그와 같이 하는 것이 목자에게 갔으면 무슨 상관이 있어, 그까짓 거? 그러면 세상에 좋은 것을 준 것은 그것은 하나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만일 세상에서 좋은 환경을 준 것은, 좋은 환경 줬으니까 그 환경 가지고 재미있게 살라는 것 아니오. 남보다 더 재미있는 부부 결합, 남이 부러워할 만치 참 재미있는 아내, 재미있는 아내, 재미있는 남편, 어떤 사람 내가 말 들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에는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참 좋은 아내 취해 가지고 가정살이를 했으면 하는 것은 하나님 다음에는 부럽습니다. 나는 좋은 남편 취해서' 뭐 돈이고 지위고 권세고 모든 것보다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 상대의 부부가 자기는 소원이고 보배라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에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좋은 남편, 좋은 아내, 좋은 자녀, 좋은 친구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도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밀접해지자는 그 목적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지, 자기를 볶아 죽이려고 하는 그것도 그것으로 인하여서 하나님과 밀접해지자는 그 소원으로 주신 것이지, 이거나 저거나 하나님이 주신 목적은 같습니다. 이거나 저거나 결과는 같습니다. 이거나 저거나 이용 가치는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다가오는 현실은 이용 가치도 같고 또 필요도 같고 결과도 다 같은 중량의 결과를 이루고 같다. 그러기 때문에 중량이 같은 이것을 네가 확실히 깨달아라. '모든 것에 지족함을 내가 깨달았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러니까, 이렇게 범사가, 이것이 만유의 주가 나를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주신 것은 그와 나와 밀접해지기를 원하는, 못난 것이 뒤에 따라오면서 자꾸 밀접해지자 하면 피하지만 이 잘난 분이 따라오면서 합하자 하면 안 좋겠소? 대통령이 자기하고 자꾸 친교 맺자 하면 좋지 않겠소? 왕이 친교를 맺자 하면 좋지 않겠소? 대통령과 왕과 같은 분입니까? 이 친교를 가지고자 하는 분이 창조주시요 주재자시요 주권자가 아닙니까? 이러니까 이 비밀을 깨닫고 자기 현실을 평가해야 되지 이걸 모르면 안 된다 하는 것을 여기에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는 뱀 같이 하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라' 뱀 같이 하라 말은 마귀 같이 하라 말이오. 세상 같이 하라 말이오. 세상은 마귀의 것입니다. 네가 세상 지혜를 가지라. 또 영감을 가지라. 그러면 어짜라고? 먼저 말한 세상 지혜는 뭐인가? 세상 지혜를 네가 영감으로 사용해라.
이러니까 지식이 우상이 된 것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이지, 그 지식이 있어야 요리를 하지? 세상이 있어야 요리를 하지? 사람이 세상에서 죽어 버리면 그 사람의 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것을 하나 가졌으면 그 하나를 가지고 복음이 필요합니다. 복음 가지고 하나밖에 못 살리요. 둘 가지면 둘 살리고, 서이 가지면 서이 살리고, 열 가지면 열 살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뱀의 그 모든 지혜, 세상 이것은 지혜라면 거기에 다 속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 것을 가지라. 그 위에 성령의 것을 가지라. 그러면 모든 것이 성령에게 이용당하도록 하고 또 그를 위해서 있도록 하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다 이게 다 일관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 다음에 '사람을 조심해라' 왜? 네가 조심할 것은, 네가 잘했든지 못했든지 네 사실을 하나님의 공회에 송사하든지 고발하든지 이 세상 법정에 고발하든지, 네가 인인 관계의 그 상관을 가질 때에 상대방이 이런 방편으로, 좋은 방편으로나 나쁜 방편으로나 고의적이 아닌 방편으로나 어떤 방편으로든지 네가 한 것이 하나님의 공회와 세상 법정과 이 두 가지에 송사되는 이 비밀을 네가 알고 송사되어도 후회할 것이 없도록 네가 하라.
네가 아무리 철통같이 친밀한 부부, 부부야 생사의 운명이 같고 행불행이 같으니까 이거야 참 한 몸 중에 한 몸인데, 이래도 그 부부가 네게 대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나 세상 법정 앞에, 공회는 이 우리 총공회 같은 이런 걸 말합니다. 그러면 그 둘이면 다요. 그 앞에 송사할 자인 것을 알고 네가 행해라.
어찌 하든지 송사를 다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송사할 자인 줄 알고 네가 행해라.
그러기에 너는 '이 사람이야 내가 어떤 일을 해도 관계없지' 그게 막바로 네 원수로 화해진다. 이걸 모르기 때문에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자식이 부모를 죽는 데 내어 주고 부모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준다' 이 복음으로, 복음으로 되는 것도 있지만 복음으로 되는 것이나 그거나 꼭 같다 그말이오.
이렇게 사람은 입장이 변해지고, 소속이 변해지고, 욕망이 변해지고, 주위 환경이 변해질 때에 인간은 거기에 따라서 변해지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을 네가 불변의 존재인 줄 알고 상대하지 말아라. 그 사람이 너를 암만 좋아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는 그 환경, 소속. 주위, 형편, 사정, 처지이기 때문에 너를 좋아하지,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그것 때문에 널 좋아하지 그 주변의 것이 너를 원수로 삼아야 될 때에는 원수로 대번 삼게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인인 관계를 이 비밀을 알고 네가 인인 관계를 가져라.
그러면 네가, 이래서 네가 한 것이 '이렇게는 나는 될 줄을 몰랐다.' 하면 네가 어리석은 사람이다 이와 같이 될 것을 네가 알고 살고, 이와 같이 되었으면 어쩔 것이냐? 네가 잘해 가다가, 잘하다가 복음을 인해서 네가 어떤 송사를 만났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네가 죄를 지어 가지고 송사를 만났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저게는 하는 방편은 하나뿐이다. 하나뿐인데, 성공하는 방편은 하나뿐인데 잘못되는 방편은 둘이다. 성공하는 방편은 하나뿐이다. 뭐이냐? 그때에 두 길이 있으니까 네가 복음으로 인해서 송사를 만나서 갔든지- 루터가 그때에 천주교 교파에게 송사 만나서 잡혀간 것, 예수님이 송사 만나 가지고 빌라도 앞에 갔던 거와 같이 네가 잘해 가지고 송사를 만났든지, 네가 무슨 참 고의 아닌 어떤 죄를 지어 가지고 송사를 만났든지 만났으면 네가 할 일은 뭐이냐? 그것이 네가 죄를 지어 가지고 송사를 만나서 법정 앞에 공회 앞에 섰어도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송사를 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네가 거기에 서게 된 것은 목적은 하나다 그런데 네가 거기에 서게 됐을 때에 복음으로 네가 섰으면 네 할 방편이 이렇겠고 네가 범죄해 가지고 섰으면 네 할 방편이 이렇다고 생각지 마라. 거기에 서게 한 이가 주님이시요, 네가 거기에 서도록 하신 주님의 목적은 하나다. 그러니까 그 목적이 네 거기에서 할 일이다.
거기에서 할 일인데 네가 하는 인은 두 가지가 있으니까 하나는 망하는 것이고 하나는 성공하는 것이다. 뭐이냐? 거기에서 너를 위해서 변호하고, 너를 위해서 변호하는, 너를 위해서 네 생각대로 네 마음대로 네 지식대로 하는 것은 너 망치는 일 된다. 네 생각대로 네 마음대로 네 소원대로 네 생각대로 하는 것은 너 망치는 것 된다. 네가 거기서 복음을 위해서 증거가 됐더란데도 그러하다.
방편은 두 가지 있으니 네 생각대로 하지 말고 그때에 네 속에서 너를 말하게 하는 그대로 따라서 말을 해라. 그대로 따라서 말을 하면 네가 수많은 범죄를 하고 거기에 들어왔을지라도 복음을 네가 증거하고 간다. 하나님이 누구시며 복음이 무엇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간다. 네가 거기에서 의로 인해서 그 입장에 섰을지라도 속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성령이 말하게 하는 대로 그대로 네가 거기에서 말을 해야 복음을 열매 맺고 가지 그렇지 않으면 헛일 한다. 사람 관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은 이렇게 변해진다. 대우는 내 대우와 같은 네 대우를 해 주거든 족한 줄 알아라. '이제 받는 핍박과 장차 얻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했습니다.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핍박은 뭐입니까? 주님이 대우받은 대우입니다. 주님이 받은 대우가 핍박이오. 본디오 빌라도가 대우받은 대우는 그는 환영이요 유지요 권세입니다.
그랬는데 그 대우는 그 대우로 인해서 망해 버렸어 예수님은 그 대우로 인해서 존영해졌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너를 하는 자야 어떻게 됐든지, 사람을 하나님께서 악용하는 사람도 있고 선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손 양원 목사님을 송사했는데 송사한 그 사람은 참 악용을 당했소.
어쨌든지 자기는, 이렇게 악을 행한 자를 해 가지고 악용당하는 것도 있고, 또 선을 행한 자를 해 가지고 악용당하는 자도 있고, 그 송사하는 자는 악용당하는 자요 그에게는 유익이 없는 자인데, 구원이 안 되는데, 당하는 것은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잘해서 당하든지 못해서 당하든지 너는 증거라.
그런고로 우리가 성경에서 복음의 지혜를 배워 가지고 이 지식을 바꾸어서 이대로 가져야 되지 예수 믿는 것을 세상 지혜 가지고 하려고 하니까 헛일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라, 헌 술은 헌 부대에 넣어라' 새 술은 복음이오. 헌 부대는 율법과 세상 모든 인간들의 지식입니다.
헌 부대 그것은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지만 복음은 이것을 초월해서 무궁세계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 영생성의 것을 건설하는 것이 이 복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복음은 거기에만 쓰이지 세상에 넣으면 다 깨져 버립니다. 세상도 깨지고 그것도 깨지고 다 깨져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삼가서, 자기 행한 것이 영원한 것이 됩니다.
가룟 유다는 영원합니다. 가룟 유다는 영원한 가룟 유다요. 그 사람은 영원한 가룟 유다요. 그 사람은 잘 이용은 당하기는 당했지만 너는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