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사업과 신앙절정

 

1982. 4. 7. 수새

 

본문 : 계 2:18-29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기에 귀는 육의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격의 귀를 말합니다. 인격의 귀는  양심입니다. 양심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이 바로 들려지지 양심이 없는 자는  들려지지 않습니다.

 이 두아디라 교회는 아주 좋은 점이 많습니다. 19절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이 점으로 힘을 쓰니까, 사업, 사랑, 믿음, 또 인내 이 면으로 힘을 쓰니까  처음보다 차차 차차 이 면이 익숙해지기도 하고 또 자기 보기에 점점 중요성과  필요성과 가치성을 느끼기도 하니까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고 더 충성합니다.

 첫째가 예수 믿는 데에 복음사업, 뭐 진리사업, 개혁사업, 신앙사업, 신학사업,  우리 나라는 신학교가 저 무슨 이름은 잊었는데 신문에 나왔는데 몇백 개, 몇백  개라던가. 이번에도 인가 없는 신학을 다 폐쇄한 것이 많다고 이래 신문에 보니까  이렇게 났습니다. 그런 것 다 사업입니다.

 또 전도하는 것, 또 목회하는 것 이런 것도 다 사업이라면 사업 중에  하나입니다. 문서운동, 엑스포 74, 또 아따 그 이름이 뭐 잊어버린 유명한 그분  이름이 뭐이더라. 빌리 그레함이던가 그분 운동 같은 것이 모두 이런 것 다  사업이라면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업을 점점 열심히 하고 더 크게 하고 진실되이 한다. 사업을 잘한다, 이  세상 사업 아니오. 복음사업입니다. 복음사업을 잘 하고 또 복음사업을 하려고  하니까 사람을 서로 손을 잡아야 되기 때문에 사람을 손을 잡아서 아주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한 이런 일을 합니다.

 이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람을 손을 잡아야 될 터이니까 또 사람끼리 서로 아주  화합을 하고 단합을 하고 서로 사교를 잘 해서 자주 만나고 모이고 이래 가지고  이 일을 잘 합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까 서로 화합해야 되겠으니 사랑을 가져야 되겠고 또 이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할  것이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잘 찾아서 성경 말씀대로 그 법칙을 씁니다.

 그것에 믿음을 지킨, 믿음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인데 믿음을  지킵니다. 또 이렇게 이 일을 해 나가려고 하니까 가다가 애로가 많이 있습니다.

또 파란과 곡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참고 견디고 잘 해 나갑니다.

 이러는데 이 일을 처음에 시작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차차 차차 더 열심히  진실되이 충성되게 해 나갑니다. 이러면 우리 서부교회도 이렇게 한다면 이  사람은 성자라고 생각할 것이고 성녀라고 생각할 것이고 뭐 장로 목사 다 될  사람이라고 인정을 할 것입니다. 또 일반 교계에서는 더욱 더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진노의 대상이 됐습니다. "내 눈은 불꽃 같다" 그말은  내가 네 행위를 보고 있다 그말입니다. "내 발은 빛난 주석 같다" 그말은 빛난  주석으로 밟으면 전부 다 박살이 되어 버립니다.

 왜. 너를 멸할 것이고 또 너로 더불어 합동된 자들도 내가 다 멸하겠다 회개를  해라. 두아디라 교회에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자 있다 그들에게는 다른 책임 지을  필요가 없다. 네가 지금 해 나가는 그대로만 하라.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다.

 이세벨의 교훈에 물들고 그 교훈에 설복을 당하고 끌려서 간음하는 자 행음하는  자 이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받고 너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해도  좋다.

 이렇게 음행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으니 너는 별 다른 짐 지울 것 없고 이 일을  네가 내가 올 때까지 계속 가지고 있으면 네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될 것이고  또 장차 모든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통치권을 내가  너에게 줄 것이고 또 새벽별을 내가 너한테 주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옳습니다.

 지금도 껍데기 교회는 수가 많고 참 교회는 숫자가 적습니다. 정통이라면 어떤  정통이라도 참신자 없는 정통이 없고 또 거짓부리 외식신자 없는 정통이  없습니다.

 우리 서부교회도 참신자도 있을 것이고 거짓부리신자도 섞여 있습니다. 섞여  있는 그 진짜와 가짜가 어디 표 나느냐. 사업 보고도 표 안 나고 사랑 보고도 표  못 나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산다는 그 껍데기 믿음 보고도 판단 못하고 또 그  사람이 계속성이 있는 것 가지고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점점 처음보다 나중이 더 높아져 간다고 그것 가지고도 인정 못  합니다. 다만 요는 이세벨의 교훈에 설복을 당하고 물이 들어서 간음을 하느냐,  음행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부부된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하나님의 신부가 기독자들인데 하나님의 신부를 음행하는 간부는 성경에 세상을  가리켜서 간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짝되어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만 상대하고  그분에게만 순종하는, 그분 뭐 법칙을 지키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그분이  시키시는 이 일을 잘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고 또 인간끼리 서로 화합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 그분만을 상대한다 그 말이오, 간단하게 말해서. 그분만 상대하는  자는 네가 이모 저모가 모자라도 상관없다. 다른 짐 지울 필요없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의지하고 나만 상대하고 나에게만 피동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사탄의 깊은 것, 20세기의 문화를 몰라도 관계없다.

 20세기의 세상 문화, 교회 안에 있는 교계 문화 그거 몰라도 상관없다. 네가  나하고만 부부됐으면 됐지 딴것은 뭐 없어도 모자라도 좋다. 네가 나를 배반하고  피조물과 짝이 되어 가지고 어떤 위대하고 큰 일 했다 할지라도 나는 싫다  그말이오. 우리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면이  아무리 훌륭하고 구비하고, 뭐 도덕면, 경제면, 방영면, 또 처리면, 민첩하고  아름답고 아무리 좋아도 남편인 자기 남편만을 바라 보지 않고 간부를 가지고  있으면 아주 못난 것 썩은 것은 몰라도 싫어합니다. 당장 버릴 것이오. 또 성경에  그 연고 있으면 이혼해도 된다 이래 왔소. 그래서 우리 사람들이 그런 것과 꼭  같습니다. 하나님도 꼭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사람을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참 그만 상대하고 그에게만 그저  순종해서 그분 시키는 대로 하면 어리석어서,

 어떤 내가 책자를 보니까, 남편이 요구하기는 어떤 아내를 요구하느냐. 아주  명철하고 그런 사람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요새는 아이큐를 보는데, 아이큐  60이라야 좋은 아내가 된다 그렇게 기록해 놨습니다. 그것은 60이라, 나는  모르는데 그거 바보랍니다. 아주 바보. 이래 가지고 남편이 당장 즉사할 독약을  타서 줘도 남편이 주니까, 다른 사람이 옆에서 독약이라 해도 독약을 줄 리가  있느냐 하면서 안심하고 그 독약을 받아서 꿀떡 꿀떡 넘어 삼킬 수 있는 그  아내가 제일이다. 어떤 남편이 그것을 요구하는 그런 써 놓은 것을 봤습니다.

과연 잘난 사람이면 그럴 것이오. 그럴 것이오.

 하나님도 그것입니다. 무식해도 좋고 병신이라도 좋고 못나도 좋고 등신이라도  좋고 무능해도 좋고 당신만을 상대해서 당신만 믿고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만  좋아하고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으로 인하여 자기의 모든 것 다 만족하고  충만하고 해결 지을 줄 알고, 당신이 주는 가난이라면 가난도 좋겠다. 모두 다  좋기 때문에 준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렇게 순종하는 이것을  하나님은 만족히 여기십니다.

 이렇게 하나님하고 딱 들어 붙은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앞으로 천상 천하에  모든 것을 통치합니다. 그분하고 들어 붙기만 들어 붙으면 그분의 전지도 그의  전지가 되고, 그의 전능도 그의 전능이 되고, 그의 완전도 그의 완전이 되고, 그의  모든 선한 것이 그의 것이요, 그분의 하시는 모든 일은 그가 하는 것이오.

그러니까 하나님 대리 노릇을 피조물에게 할 자가 누구냐. 이자입니다.

 이러니까 권세를 줘서 철장으로 질그릇 깨트리듯이 모든 만국을 통치하는  권능을 내가 네게 주겠다. 또 새벽별을 주겠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우리가 힘써야 되지, 하나님은 제일 원하시는 것이 당신만을  상대하는 것, 당신만을 상대해서 당신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하고 당신 때문에  사람도 사귀고 당신 때문에 남편도 귀중히 섬기고 당신 때문에 아내도 사랑하고  당신 때문에 원수도 사랑하고 당신 때문에 자녀도 기르고 당신 때문에, 당신  때문에, 당신으로 인하여, 당신으로 말미암아 이것만 원하십니다. 다른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이것이 있고 난 다음에 원하시지.

 당신만을 바라보면서 당신 때문에 쑥떡을 해 가지고 와도 고맙고, 당신 때문에  아무 돈이 없으니까 이거 아주 험한 음식 보리 등 겨를 가지고 개떡을 만들어  가지고 왔어도 고량진미보다 낫다 그말이오. 거지는 아무리 위하고 섬기고 하면서  개떡 찌꺼기를 가지고 온 것보다 아무리 미워해도 고량진미를 해 가져왔으면  맛이 있지마는 만유의 주재이기 때문에 그렇지를 않아. 만유의 주재이기 때문에.

거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데 한번 전인해서 간접으로 들었는데, 어떤 유력한 목사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집회를 가 가지고 사경회 하는데 참 어떤 할머니가 은혜를 많이 받고  대접할 것 없고 하도 그래서 개떡을 해 가지고 이것을 한 넙데기를 갖다가  드렸는데, 아주 가난한 사람인데 그 강사가 그걸 받아 가지고 이런 것 먹고  강사가 맥혀서 설교도 못 하라고 이런 것 가져 왔느냐고 획 집어던져 버렸다  말이오. 그만 그 시간부터 암흑이라. 사경회를 못하고 말았어. 그만 말고  말았다고. 암만 해도 은혜가 있어야지, 깜깜한데. 그래 그분이 그 죄를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가는 곳마다 이런 말을 증거 한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전 인격을 바랍니다. 천하에 제일 잘난 사람이 찌끄러기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것보다 천하에 제일 못난 자가 다해서 섬기는 것 원합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자기 다하는 것  이것 가지고, 다하는 것 가지고 주의 하시는 모든 사업 하는 것, 온갖 선 하는 것,  복음운동 하는 것, 인간 구원하는 것, 이런 것 이것 가지고 전부 다 가지고  이렇게 일해도 당신을 상대함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어.

 엿새동안에, 엿새동안에 이 모든 우주를 다 만들어 놓고 우주의, 당신이 만들어  놓은 그것들이 뭐 이렇게 저렇게 휘떡거리는 것이지 당신이 만들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만을 상대하는 이것을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 회개하라고 회개할 기회도 주고, 회개할  깨달음도 주고 이래도 회개를 안 하니까 멸망을 받는다 이거요.

 내가 양성원에도 이 가르치는 첫 시간부터 늘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가르침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하나님만을 좀 더 바라보고 더 의지하고 더  좋아하고 더 두려워하고 더 상대해서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이 세상 상대하는  것을 하나씩 둘씩 다 끊어서 하나님에게 솔빡 상대해서 하나님을 상대함으로  그분에게 피동 되어 가지고 이런 것 저런 것 하는 이것을 만드는 일 하면  하나님이 기뻐해서 그분에게 축복을 주실 것이고, 뭐 세계에 있는 지식을 다 갖다  준다 할지라도 그것을 줌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이 하나님과 가깝던 것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과 멀어진 것이 세상 눈이 뜨여서 차차 세상과  가까와지고 이래서 하나님을 상대,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것이 흐리게 만들면 저는  저주받습니다. 저는 저주받소. 저는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미워하시오.

 이러니까 세상에 있는 지식도 내어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과학자가 과학을  말하면, 보라. 이 과학 봐라. 세상에 안과 박사가, 눈 박사가 말하기를, 눈 봐라.

눈 봐라. 이 눈에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만들었으니 누가 이것을 만들 수가 있겠느냐. 아버지 어머니가 만들었다 말이가.

아버지 어머니가 여기에 대해서 100분지 1이나 아나. 모르는 것이 어떻게  만들겠노. 이것이 다 하나님이 만든 것 아니냐. 이 안과 박사는 안과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그 능하신 것과 하나님의 무소불능, 하나님의 그 지혜,  하나님의 세밀, 하나님의 철저 이것을 가르쳐서, 이 사람 눈 박사에게 눈을  배우다 보니까 눈 고치는 그것은 껍데기 고치는 것인데 알맹이는 눈 고치려 하다  보니까 그만 하나님하고 가까워져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 사람이 되어 버렸어.

또 되고 나니까, 눈으로 하나님 알았지 그 다음에는, 이러니까 이 분이 만들었기  때문에 광대하게 만드시니 눈은 눈대로 똥그라이 그것만 만들어서 꼭 갖다 끼워  놓은 것이 아니고 이거 전신과 연결이 되지, 손가락 끝에서 눈이 멀게도 하고 또  눈이 밝게도 하지 이렇게 연결이 되지, 이렇게 만드신 분이 이 사람 저 혼자만  아니라 모든 인류 전체와 연결이 되지, 만물과 연결이 되지 이래 놓으니까 실은  만물 박사가 됐소. 이러면 그 안과 박사는 그는 이세벨의 교훈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 그는 이세벨의 교훈을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 가까이 만들고 그 이세벨이  우상을 가져 오니까, 이 우상은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

 이세벨 가지고 이세벨 행위가 안 된다. 이세벨 네 행위는 나쁘다 이래 가지고  무신론에서 유신론을 더 배우고, 모든 과학 만능에서 과학을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더 가까이 알게 되는 이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할 때에,  제가 부흥강사로 가 가지고 일주간 동안 설교할 때에 그 교인들이 하나님과  가까워졌느냐 멀어졌느냐, 하나님만을 상대하느냐 세상에 무엇을 상대하게  되느냐. 일주간 내내 가 가지고 저만 소개를 해 버리고 말씀은 구경을 시키고  소개만 저를 떡 해서 저와는 가까워지고 저는 사모할지라도 하나님은 사모하지  않도록 했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목회자도 그렇고 강사도 그렇고 신학자도 그렇고  권찰도 그렇고 모두 다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살리는 말이라 말이오,  훼방하는 말이 아니고.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한 너에게 다른 짐을 지을 필요가 없다.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다른 짐을 지울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은 다  간음했는데 하나님하고 짝자쿵, 하나님의 부부, 하나님의 신부가, 하나님 신부가  하나님은 그대로 섬긴다고 하면서 간부하고 음행 했다.

 간부는 뭐인데. 피조물을 가리켜서 간부라 했습니다. 피조물이 왜 간부가 되느냐,  피조물이 하나님과 관계된 이 관계를 끊어서 피조물이 관계되면 그것은 다  피조물의 간부입니다.

 피조물로 인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정확해지면 그 피조물이 뭣 됩니까.

남편이 사다 주는 선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됩니다.

 그러기에 언제 요한계시 17장을 설교하면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선물 될 수도  있고 간부 될 수도 있고, 음행의 포도주 될 수도 있고 참람되고 가증한 아주  아름답게 꾸며 놓은 여인도 될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 하나님만을 상대할 것이 하나님만  상대해 가지고 안 되겠다. 아무래도 이것은 아무 것이를 친해야 되겠다. 뭐  어째야 되겠다.

 하나님을 상대하는데, 하나님이 네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너거 남편을 섬겨라.

아내를 잘 사랑하고 다스려라. 친구를 어떻게 해라. 하나님 때문에 된 부부는 그  부부가 아무리 더러워서 원수 원수 원수 중에 원수지마는 하나님으로 인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안 살려고 해도 하나님 때문에 버리지 못합니다. 변경하지 못하고  아무리 괴로워도 아무리 아파도 할 수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된 것이 약한 것 같으나 강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세벨의 교훈,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인데 이방 여인이오. 그 여인이 아주  아름답고 잘나고 구변 좋고 수단 좋았습니다. 이래서 아합 왕이 그것에게  피동되어 행정했소.

 오늘의 세상이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은 이 세상 지식을 말합니다. 문화를  말하요. 이것이 바로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이 들어서 세상과 더불어 하나님만을  상대할 것을 이것을 옮겨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상대케 한 이것이 음행이라  이 일을 시킨 것이 뭐이냐. 세상 지식이라. 이것이 음행의 포도주라.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더 증거 하는 그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세상에 통달한 지식을 가졌으나 하나님의 선물로  가진 자도 있고 이것을 음행의 포도주로 가진 자도 있소. 내가 이거 있으니까  이거 가지고 일하겠다 하는 그자는 음행의 포도주 가진 자요.

 이러므로 제 지식, 제 지식 자랑하고, 히브리어 박사는 불신자라도 히브리어  모르는, 히브리어 그 원어 모르는 목사보다 구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에는 잘  압니다, 구약성경의 뜻은 잘 압니다. 해서, 세상에 거기서 우등생되는 그 학생이  와 가지고 이 말을 나한테 하다가 혼났습니다. 저 ○○○집사님 저 뒤에 와서  있네. ○○○집사님 집에 내가 초청 받아 가지고 내가 그랬어.

 이러기 때문에 내가 그때 말했어. 고함을 질러 버렸소. 말해도 안 들어서.

어디라고 이런 소리를 하고 있노, 있기를 무한한 성령의 말씀을 유한한 인간의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고 인간 지식 가지고 인간 지식 통달한 사람이 그  지식 가지고 다 알 수 있어. 고함을 질러 버리니 그만 쑥 들어가 버렸어.

그분하고 지금 나하고 좋습니다. 고려신학교, 진짜 고려신학교를 지금 세워  가지고 나간다고 하는 ○○○목사님이오, ○○○목사님.

 신학 강단에서 뻔뻔스레 이 말 하니 그 이세벨의 벌써 물 먹고 이세벨의 교훈을  가지고 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들이 히브리어 원어를 공부함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어 원어는 목사 돼 가지고 성령의 감화 받는 것보다도  히브리어만 잘하면 구약 성경은 잘 알고 헬라어만 잘하면 신약 성경은 잘 안다.

이러니까, 어학하는 데에 성경 아는 것이 있지 하나님만을 상대하는 데서 성경  아는 것이 없다 했으니까 완전히 이세벨로 그 신학생들을 전부 음행하고  간음하게 만들어 놓은 것 아닙니까. 정신 차려야 돼. 정신 차려.

 이러면 저 목사는 반지식론이라. 지식을 반대하는 반지식주의라. 왜  반지식주의라, 공부할 수 있는 대로 공부를 시켜라 하는데, 공부를 잘하라고  하는데. 치우치면 안 되고 말귀를 못 알아 들으면 헛일입니다. 말 각도를 모르면  안 돼요.

 지금도 두 말 할 것 없이 신학교는 다, 처음에는 진리 진리 개혁 해 가지고 나와  가지고 정통 하지마는 마지막에는 이세벨을 용납해서 신학자들은 다 이세벨이  되고 말고, 또 그 신학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이제 세상하고 간음하는, 간음을  하게 되는 것이 이것이 신학의 역사입니다. 별 것이 뭐 있는 줄 압니까. 여기에  정신차려 있지 않으면 안 돼.

 이러니까 개혁해 나온 것이 좀 있으면 또 그리 되고 그리 되고. 어쨌든지 우리  양성원은 모든 지식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지식은 하나도 필요 없습니다.

천하 지식을 다 가지고 와도 다 불 사뤄 버리지 하나도 필요 없어.

 무식이든지 유식이든지 무슨 지식이든지 양성원의 사람들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에 대한 지식이 점점 커지고 정확해져서 그분을 알 대로  바로 알고, 그분을 바로 알고 그분을 바로 상대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살 수 있는  이 사람만 만들어 놓으면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이러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줘서 철장으로 질그릇 깨트리듯이  깨트리게 하시지. 이거 외에 딴것이 뭐 있습니까. 그분 살았소. 그분이 살아 계셔.

그분이 눈이 있어. 모든 것을 환하게 다 보고 있소.

 "내 눈은 불꽃 같다" "나는 빛난 주석" 밟으면 질근 질근 다 부셔져 버린다.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슬기롭습니다.

 왜. 그분이 제일 크신 분이기 때문에 그래. 그분만을 바라보는 무식자를 버리지  않아. 그분만을 바라보는 병신을 버리지 않아. 그분만을 바라보는 말 못 하는  벙어리를 버리지 않아요. 공연히 자기 힘 가지고 일하려고, 이 세상 지혜 가지고  일하려고, 지혜 가지고 일하려고, 뭐 이런 인간 심리를 연구해 가지고, 인간 심리  연구해 가지고, 심리 연구해 가지고 그것 가지고 일하려 하는,

 주일학교는 이것은, 주일학교 아무 것도 아닌데, 심리 연구 버리고 하나님만을  바라고 하는 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이렇게 크게 키운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라.

우리가 잘나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 한국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  들었다 그말이오. 우리에게 뭐 그런 것이 있습니까.

 그래 내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자꾸 그것을 증거해. 다른 데서 오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교훈만 합니다. 아동들의 심리를 연구해 가지고 그 비위에 맞추고  재미있게 하는 그런 방편 하나도 안 쓰고, 아동 심리 연구가 아니고 하나님 심리  연구이고 아동 심리에 맞도록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심리 맞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것을 언제든지 말 안 해도 말을 합니다. 그것도 옳은 말이 됐으면  하나님 앞에 상급이 굉장히 클 것이오.

 그런고로 이런 것 가지고 일한다. 이런 무슨 역사를 알아야 되겠다. 방편을  알아야 되겠다. 심리를 알아야 되겠다. 수단을 알아야 되겠다. 요새 하도 능란한  세상이 됐으니까 테레비를 봐야 되겠다.

 거기에도, 방송에도 볼 것이 있습니다. 통신대학을 들으면 좋습니다. 듣는데  그것이 이세벨의 교훈도 될 수가 있고, 그것이 이세벨의 교훈도 될 수가 있고  하나님이 나에게 귀한 선물로 주는 자연계시도 될 수가 있어, 자연계시도. 아예  그것이 이세벨 될 수 있는 것은 하지 말아야 돼.

 그러고 테레비라 하는 것은 그만 그것은 실은 뭐 뉴스고 뭐이고 안 보는 것이,  전체로 말하면 안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 보아서 유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벌써  거기 있는 것 다 능가해서 말해 봤자 이용만 되지 그것이 하나도 실력 있고 참  책임 있는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저 무시하고 하나의 구경거리로 보는  사람이면 됩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테레비에 이렇게 말합디다, 무엇이든가 테레비는  정확무오로 알아. 무엇이 음식 만들어도 말한 것이 테레비에서 말한다고,  테레비에서 말했다고, 테레비에서 말했다고, 테레비에 나오더라고. 테레비는  하나님처럼 여기는 자는 그자는 볼 자격이 없어. 보면 안 돼.

 그러고 여덟 시 이후에 테레비 보는 자는 그자는 점점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제가 일해 봤자 내나 여기에 사업, 사랑, 믿음, 인내, 점점 더해졌어. 이래도  하나님 앞에 적이오. 하나님의 종들을 꾀워서 간음하게 했으니까 하나님이 그  분노를 거기다 쏟을 것 아니겠소. 정신차려 살아야 됩니다. 정신차려 이북에서  칼을 갈고 있는 저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는 평강에 평강을  더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 않는 자를 이제 바짝 쫄아서 녹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래 녹으나 저래 녹으나 녹기는, 다 녹기는 다 마찬가지로 녹기는 녹지마는  천당 가보면 아무 것도 없어. 기름 준비하느라고 힘드는 사람은 신랑  맞이했지마는 마지막에 급해서 당황하고 수고한 사람은 버림당했지 그 무슨  수고가 소용이 있습니까.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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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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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3 복을 받는 순서/ 시편 1장 1절-6절/ 840131화새 선지자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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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1 복을 받는 순서/ 시편 1장 1절-6절/ 870926토새 선지자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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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1 복음을 전할 때 주의할 점/ 마태복음 10장 2절-17절/ 840205주전 선지자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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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9 복음의 능력/ 로마서 1장 15절-17절/ 860228금새 선지자 2015.11.01
3738 복음의 능력/ 로마서 1장 16절-17절/ 830619주후 선지자 2015.11.01
3737 복음의 능력-하나님께 맡길 것/ 로마서 1장 16절-17절/ 830708금야 선지자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