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1989. 3. 13. 월새

 

본문: 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세 가지를 조심해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해  주십니다. 세 가지를 조심해서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심어 가꾸어 주십니다.

 세 가지 하는 첫째는 내가 하나님의 도리를 들어서 안 그대로 행하는 것이오.

첫째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운 것을 떠내려 보내지 말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요것이 첫째고, 둘째로는 그와 같이 행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데에 다른  것을 말하지 않았고 해서는 안 되는 것만을 말했습니다. 안 해야 될것, 해서는 안  될 것만 말했습니다. 말씀 듣고 해서 안 될 것만 안 하면 저절로 할 것은 하게  됩니다. 할 것을 하는 것은 저절로 되고 안 할 것을 안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안  할 것 중에도 우리가 제일 먼저 안 할 것은 어떤 것인고 하니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접촉하든지, 서로 일로 접하든지, 말로 접하든지, 서로  친절한 사랑으로 접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그 중심을 따져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외모를 보나, 외모를 보나 외모가 뭐인데? 그  사람의 용모와 신장이 외모요, 그 사람의 지위와 권세와 명에와 간판이 외모요, 또  그 사람이 웃고 친절히 하고 성내고 하는 그런 것이 다 외모입니다. 성낸다고  성낸 것만 보지 마라. 웃고 너에게 친절히 한다고 친절히 하는 것만 보지 말아라.

'너희들은 외모를 보지마는 나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고 사람의 중심을 본다'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옷는 그 속에 우리를 삼킬 자기 중심으로 나한테 웃고 달라드는 것도 있고, 또  나에게 친절히 달라드는 것도 있고, 나에게 여러 가지를 도와 주고 봉사하면서  달러드는 것도 있고, 나에게 책망하려고 미워하고 해하며 달려드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게 다 외모입니다. 외모 그것을 보고 우리가 그 사람을 상대하면  멸망받습니다. 웃음 속에도 우리를 삼키는 무서운 독이 들 수 있고 미워 책망하는  그 속에도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그 사람이  무슨 중심을 가지고 나를 상대하느냐? 아무리 친절히 하고, 나를 악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자기를 높여 주면 좋아합니다. 높여 주고 위하고 친절히 하고 해도 그  중심이 하나님이 되지를 못하고 그 사람이든지 어느 인간이든지 어느 세상에  있는 무슨 그런 것이 중심이 되면 그는 분명히 나를 삼키려고 하는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입니다. 목자의 껍질을 입고 나타나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그러기에 남자들보다 여자들은 더 그러합니다. 여자들은 자기 높이고, 자기  친절히 하고, 자기 위하는 간교한 소리에 잘 넘어가는 것이 여성들입니다. 저는  그런 말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잘 다루는 자는 거짓말 하고 꼬우는 자들은  여자를 녹인다. 진실하고 든든한 그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다 배척을 당한다.'  통계를 맞춰 놓으면 그러합니다. 이말 하는 것은 여성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여성들이 정신차려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남자고 여자고 위대하다 해도  사람이 중심을 보지 못하면 멸망합니다.

 내가 어떤, OOO 장로님에게 전화하니까 그 사람이 말하기를 '목사님, 나는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내대로는 사람의 중심을 내가 보고 상대합니다.' 그말 한 마디에  나는 안심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똑똑히 다 알든지 못 알든지 해도 그  중심을 봐야 자기가 망하지 않지, 중심 보지 않으면 굉장한 감언이설의 유혹이  가득찬 세상인 것인 것을 알면 됩니다. 알면 거게 빠져도 나올 수가 있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큰 사람이든지 작은 사람이든지, 어데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있을까마는,  큰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든지 작은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아주 보잘것 없는 그런 사람이든지 위인으로 보이는 사람이든지 어쨌든지  그 사람의 언행 심사로 나를 상대하는 것이나, 또 나를 상대하지 않고도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이나 그런 것을 우리는 살필 때는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마십시오. 외모를 보면 망합니다. 외모는 어떤 것이 외모입니까? 외모는  그 사람의 용모나, 신장이나, 웃는 안면이나, 성내는 안면이나, 나에게 친절하게  하는 것이나, 책망을 하는 것이나 또 물질을 중심하는 것이나, 세상을 중심하는  것이나, 어쨌든지 외모 취하는 것은 뭐이 외모 취하는 것이냐? 창조주 대주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아니하고 그 외에 어떤 종류의 무슨 일의 피조물이든지  그것을 중심으로 하면 벌써 그 사람이 외식자요, 껍데기만 꾸며 놓은 외식자요.

외모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아, 이는 외식자라. 내가 여게 걸리면 죽겠다.' 하고  대비해야 되고, 아무리 더덕거리고 실수가 많아도 그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희망이 있습니다. 실수해도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한 가지 한 가지를 그렇게 따집니다. '보자, 이 일은 이것은 하나님이  중심이었나?' 어떤 사람이 일해 놓은 것을 쭉 봅니다. '하나님 중심이냐?' 제가 이  총공회를 단독 운영을 해 나왔는데,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서 요것 가지고  저는 비판해서 제대로 살아 나왔습니다. 사람들을 시찰해 보내려고 시찰회로  순회를 보냅니다. 순회 보내면, 아무리 부탁해도 가 가지고는 모든 한 일이 제  중심으로 하고 왔습니다. 왔으면 그것은 모든 사람을 죽인 절도요 강도요 이리기  때문에 보내면 보낸 사람이 화를 받습니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은 '네가 이리 이리 했기 때문에 이것이 결국 양떼들을 해친  자기 중심이 아니냐? 악이 아니냐? 이제 다시는 파송하지 않겠다.' 그가 말하기를  '아, 과연 그거는 그리 됐다. 이제 내가 다시는 그짓을 안 할 터이니까 나를 한  번만 더 파송해 달라.' 또 시찰회에, 아니 시찰이 아니고 연중 행사에 당회장으로  또 보냈습니다. 몇 교회를 보냈습니다. 나하고 약속하고 갔는데도 그 일을 하는  데, 내가 따라가 봤습니까? 왔을 때, '네가 이리 이리 했지?' 자기딴에는 잘한 줄  알고 그렇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내나 악이고 네 중심이 아니냐?' 그러고 난  다음에는 다시는 보내지 않았습니다. 안 보내도 그 사람 내가 배척하거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거는 보내지 않고 '너는 목회는 못 한다. 너는 하나님의 일꾼인  중보자는 못 된다.' 말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람들에게, 그 사람을 기르기 위해서, 사람을 하나 기르는 데에는  몇십 년 공이 들어서 애를 쓰는 것인데, 그러면 공들임을 받은 사람은 제가 몇십  년을 애를 써서 봉사하고 섬겼다고 말할 수 있으나 몇십 년을 그 사람을 사람  만들기 위해서 오만 것을 희생해 가면서 연습시킨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내 밑에  여기 목사된 사람들이나 모두 다 장로된 사람들, 장로된 사람들에게는 내가  장로되고 난 다음에 속을 썩혔지 그전에는 뭐 장로 자격 없는 사람들 다 장로를  시켰습니다.

 이번에 OOO장로님도, 어데 저기 와 앉았네요. 내가 장로 되기까지 그를 기르기  위해서 오만 속을 다 썩혔습니다. 그래 가지고 장로를 세웠습니다. 껍데기  보기에는 그 사람이 나를 섬겼지마는 나는 그 사람을 섬기느라고 속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랬는데 장로 세울 때에 모두 다 장로 세우면 안된다고 다 말을  했습니다. 나는 장로를 세울 자격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왜? 가르쳐 보면  간교함이 없고 원리 원칙을 택하는 그런 성분을 가진 사람들은 배신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간교히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모든 목사들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 사람 본인도 그걸 모릅니다. 내가 이래 하는 것이 이것이 간교라,  이간이라, 훼방이라 하는 그걸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내가 말 하기를 '네가 단독 목회를 나가거라' 이럽니다. '단독 목회를  나가거라.' 이 남의 등불에 환하니까 제 빛으로 환한 줄로 알고 있지마는 따로  나가 보면 깜깜합니다. 이래서 '너는 단독 목회를 해 봐라.' 왜? 여게서는 이런  수단 저런 수단 부리니까 어리석은 사람들이 전부 꼬여 가지고 자기를 존대하고  이러니까, 그거는 분명히 하나님이 저주하는 일인데 그 방편을 쓰고 있습니다. 그  방편 쓰는 사람을 그 사람을 쓰지 말라고 해도 그 사람은 옳은 줄 알고 하기  때문에 안 듣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너는 단독 목회를 나가야 된다. 목회를  나가 봐라.' 목회 나가서, 목회 나가면 일이 안 되는 것을 압니다. 자기가. 목회 해  보니까 안 돼. '아, 이거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말 한마디로 요래 말하고 조래  말하고 훼방하고 이간 붙이고, 훼방하고 이간 붙이니까 쭉쭉 따라오니까 '요 방법  가지고 목회하고 사업하면 되겠다' 요렇게 생각을 가지고 하는데, 위에서 그늘  밑에서 하는 것은 길러 놓은 양떼를 죽이는 일로 제 일로 하니까 성공되는 것  같았는데 나가 보면 안 됩니다. 목회가 안 됩니다. 그래서 내가 목회 나가면 거기  나가면 또 실패했습니다. 제가 그 방편 쓰다가 실패했습니다. 또 옮깁니다. 또 그  다음에는 실패를 좀 적게 합니다. 또 옮깁니다. 그 다음에는 실패가 좀 더  적습니다. 이럼으로 해 가지고 하니까 이 이동하는 것을 혼자 독권으로 이동해서  '야, 참 권위 있다.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참 좋다. 저 지위 저 자리를  나도 한번 앉아봤으면 좋겠다.' 그게 무슨 그것도 모르는 데 그게 뭘 하겠소?  이래 가지고 자꾸 독재한다고 욕을 하고 불평을 품지마는 그래 그래 해 가지고  내 밑에 온 자들은 아예 바라보지도 못 할 자들이 다 목사가 됐습니다.

 내가 어제 OOO장로님이 남전도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내가 오층에서  들었습니다. 그분이 꿈에도 목사될 생각 없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무엇을  하겠소? 장로도 어림도 없습니다. 여기 왔기 때문에 장로가 됐고 그 길로 보내면  목사가 됩니다. 그 아들네들보다는 훨씬 나을 것입니다. 장래들이 낫다 말이  아니고 지금 현재는 낫습니다. 전도사로 보내면 이 젊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목회를 좀 낫게 할 것입니다. 이래 만들어 가지고 했기 때문에, 내가 언제  어데다가 전화를 하니까 전화받는 사람이 '목사님, 나는 이런 이렇던 자가 내가  지금 목사가 됐데 목사님, 뭐 환경 그렇다고-내가 섭섭하게 생각도 안 하는데  -마음에 상심하지 마십시오.' '왜,내가 상심하나?' '그래도 목사님 밑에 있는 걸  봐도, 나갈 사람들 나가도 목사가 59명인가 되고 뭐 전도사가 얼마고 장로가  얼마고, 이거는 순전히 목사님으로 말미암아 길러서 자라진 것입니다. 이만침  자랐으면 됐지, 이만침 성공했으면 됐지 더 뭐 또 딴것을 기다리겠습니까? 이렇게  가속도로 하나님이 성공시켜 주시는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내가 말하기를 '내가 뭐라고 낙심하나?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를  위해서 울어라. 내가 낙심하는가 염려하지말고 네 자신이 낙심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또 어떤 사람은 나한테 전화를 해 가지고 '목사님 안심하십시오. 내가  목사님의 수족이 돼 가지고 내가 역사하겠습니다. 그저 내게 대해서는 안심을  하시고 하십시오.' 그래 내가 있다가, 거게 대해서 말을 박절하게 못해서 말은 안  하고 내 속으로 뒤에 '내 수족이 되면 멸망받지. 너거가 내 수족이 되겠다는 그런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자꾸 죄를 짓는다. 작은 일도 하나님을 대해서 했고, 큰  일도 하나님 대해서 했고, 옳은 일도 네가 하나님 대해서 했고, 삐뚤어진 일도  하나님 대해서 한 것을 모르니 왜 내 수족이 되며 내 손발이 되겠느냐? 그것을  고쳐라.' 말 안 했으나 언젠간가 내가 말할 것이고, 본인은 아니까 요 설교를  반드시 그 사람이 받아서 지금 읽을 터이니까 '요거는 내 말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여러분들, 다른 사람을 훼방하든지 꾀우든지 달래든지 속으로 야심을 가지고 그  사람을 제 사람을 만들라고 어떻게 하든지 하는 그것이 전부가 다 저는 사람  대해서 하는 줄 알고 '요 사람을 꼬와서 내 사람 만들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사람에게 대해서 하는 것은 껍데기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에게 대한 것은 너희들에게 대한 것보다  먼저 나에게 대한 것이요 나에게 대한 것은 나에게 대한 것보다 먼저 나를  보내신 아버지에게 대한 것이라 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너희보다 나를 먼저 미워함이요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보다 더 나를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함이라' 요렇게 똑똑히 말샜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막바로 주님에게  하는 것이요, 주님의 피로 생명까지 바친 주님의 양떼에게 대해서 하는 일입니다.

주님이 속습니까? 주님이 꼬여집니까? 주님이 복음 운동에 인간 구원 운동에  방해하는 것은 복수가 제일 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할 때에  이스라엘 구원하는 인도에 방해하는 족속이 있었는데, 그 아말렉 족속이라고  방해했는데 그 족속에 복수는 언제 했습니까? 사백여 년 후에 했습니다.

그때까지야 평탄하고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복수자라. 저는 '하나님의  이름은 복수자라. 하나님의 이름은 미워하는 자라. 하나님은 미움의 하나님이다,'  '내 이름은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내가 잘하든지 못하든지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행하는 것이 곧 누구에게 행하는 것이라고요? 그것이 나에게 행함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회개 스무 가지에 대해서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에 '사람만 대하지말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대하라' 하는 것을 거게 하나 써  넣었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사람에게 대해서 내 언행심사 하는  것이 그것이 그 사람에게만 대해서 하는 것인 줄로 알기 때문에 그런 과오를  범합니다. 그 사람보다 그것이 먼저 주님에게 대한 일이 된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야고보서 3장에 보면 사람의 이 말하는 것은 말 굴레와 같고  배에 대해서 방향을 좌우하는 키와 같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말 한 대로  따라간다 말이오. 그 말은 그 사람 말하는 것 보고 하나님이 보응시킨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대해서 요래 조래 하니까 그 사람 그거 하면 된  줄 알지마는 하나님은 그거 보고 너는 이렇기 때문에 여게서는 정당한 보응, 저게  대해서는 정당한 보응, 하나와, 하나에다가 하나를 보태면 몇입니까? 둘이오. 둘에  둘을 보태면 넷이요. 이것이 수학입니다. 이 수학도 진리이지마는 사람이  언행심사에 행동한 그대로 하나님에게 보응받는 요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어제도 말씀 주신 대로 주홍같고 진홍같이 어떨 지라도 이  시간 우리는 완전자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모든 것 툴툴 다  털어서 버려 버리고 이 시간 완전자 된 것을 깨닫고 '나는 완전자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완전자 됐다. 완전자 됐으니 완전자 생활이 내 생활이다. 완전자  행동이 내 행동이다.' 하고 완전자 되면 그만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상대방들이 '저 사람은 과거에 저렇던 사람인데?' 하고 완전자  된 것을 모르고 그렇게 취급을 한다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그때부터 가만히  있으면 그게 상급이 됩니다. 해가 안 됩니다. 그 사람은 벌써 완전자 됐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저거는 저렇던 자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 핍박은 거짓  핍박이요, 참 핍박이오? 그 핍박은 거짓 욕입니까, 참 욕입니까? 그거는 '아, 저  사람은 과거에 이렇던 사람인데' 하고 그런 사람으로 알고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하든지 그렇게 평가를 하든지 상대하면 그것은 거짓 상대, 잘못 상대입니까  바른 상대입니까? 저 OO교에서 온 분? 잘못 상대지? 더듬거리지 마.잘못 상대야.

거짓 걸로 핍박받는 거라. 가만히 있으면 뭐 어때요? 가만히 있으면 '하늘에 상이  큼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어쨌든지 복된 길을 걸어서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나님께서  가장 구원 이루기에 쉬운 길을 우리에게 주셨고, 죄를 짓기에는 백난으로써  어렵도록 했습니다. 죄짓는 거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죄짓기에는 어렵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만들어 놨고 의를 행하는 것은 쉽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이렇게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서 베풀어 놓으신 것을 우리는 깨닫고,  오늘 아침에는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라' 또 사람을 상대할 때에 결단코 내가,  '이 어리석은 사람 요렇게 꼬우면 내 사람 된다' 어리석은 네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네가 꼬우려고 달려드니 하나님이 꾀이나? 그 사람이 꼬여지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네게 대해서 보응하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꼬운 사람입니다.

 남을 꾀우는 사람은 자기 꾀우는 사람이요, 남을 속이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사람이요, 남을 헐어뜨려 훼방하는 사람은 자기를 훼방하는 사람이요, 남을  북돋우는 사람은 어찌 됩니까? 자기를 북돋우는 것입니다.

 북돋우는 것은 무엇이 북돋우는 것이오? 잡초가 있으면 잡초를 뽑아주는 것이  북돋우는 것이오. 그 사람에게 나쁜 점이 있으면 그것을 이모저모로 말로, 기도로  어쨌든지 그것을 뽑아서 깨끗하게 해서 잘 자라도록 할려고 하는 그 중심을  하나님은 압니다. 우리의 중심을 아요. 이러기 때문에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할 때에 안심하고 할 수가 있소.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살 소망이 있소.

 그분이 안 계신다면, 요새 뭐 세상에서 이런 거 저런 거 하는 건 보면 그거 볼  때는 믿을, 살 수가 없어. 믿을 게 하나도 없어. 전부 이중 삼중 껍데기 가지고  이렇게 하고 있는 그것을 상대하고 그 사람의 지도를 받고 어떻게 살겠어? 그  사람 의지하고 어떻게 살겠어? 그 사람 믿고 어떻게 살겠어? 주님이 안 계시면  참으로 살 소망이 없는 세상이지마는 이렇게 시시비비하고 이중 삼중 십중의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거짓이 가득찬 세상이라도 그분 한 분이 정확히 아시고  정확히 판단하시고 정확한 보응을 시키시는 그분이 계시니까 자기만 조심해서  자기만 바로 하면 될 것이지, 남 천 만이 나를 해해도 결단코 그 해가 나를  해하지 못한다는 요 사실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시간이 또 늦었습니다. 10분 늦었습니다. 빨리 가서 학생들을, 여기 장년반에  참여 못 한 중간반 학생들, 주일학생들을 다 깨워서 빨리 보내서 어쨌든지 어릴  때부터 새벽 예배에 참석하도록 시키십시오. 새벽 예배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 혼자라도 어데 새벽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되지 안 바치면 그  거짓부리요. 항상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사람입니다.

 또 오늘은 새로 산 사택을 청소를 하겠습니다. 왜 청소가 힘드느냐? 그 집은  이억 사천을 주고 샀는데 돈 많은 사람이 돈만 많았지 집 짓는 것은 사람들에게  돈만 줘서 지었기 때문애 아무 짝도 쓰지 못할 집이오. 지금 있지마는 요 다음에  만일 큰 목사가 와서 사백 할려면 그거 속으로 다 뜯어 가지고 고쳐야 되지 안  고치면 못 씁니다. 그 뜯어야 할 집이라. 이래 놓으니까 집을 지어놓고 살지  않았어. 살지 않기를 몇 해를 살지 않았어요. 이러니까 뭐 괴상토 않아. 그 오늘  대청소를 해야 할 거라. 대청소 안 하면 아무도 지금 누구를 줄려고 하지를 않아.

대청소 안 하면 아무도 와서 보고 고만 놀래고 근방에 가기도 싫어해요. 이러기  때문에 대청소를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대청소 하는데 걸레, 또 빗자루, 또 삽,  바께스 이런 것을 가지고 와 가지고 그렇게 청소를 하도록 합시다.

 그만한 사택이 서부교회 목사의 사백으로서는 정상인 것입니다. 이만한 큰  교회면 그만한 사택은 돼야 되는데, 잘못 지어 그렇지 그만한 가치의 사택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 그 말이오. 그래도 내가 거기 있으려 했으면 그런데 이제 그것을  담대히 샀습니다. 잘 샀어요. 싸기는 쌉니다. 집이 그렇기 때문에.

 또 교회 주변 청소, 예배 후 즉시 권찰회 있습니다. 빨리 가서 보내 주십시오.

시간은 자꾸 갑니다. 다섯시 십사분입니다. 빨리 가서 보내 주십시오.

 반사 선생님들 하루 삼십분 기도, 책임맡은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들 자기에게  속한 양무리 이것을 생각하면서 의무를 다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빨리 가서 아이들을 깨워 보내십시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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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9 복과 믿음/ 신명기 28장 1절-2절/ 791017수야 선지자 2015.11.01
3758 복과 믿음/ 신명기 28장1절-2절/ 791018목새 선지자 2015.11.01
3757 복과 화/ 신명기 28장 1절-6절/ 1974. 10. 27 제43공과 선지자 201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