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15일 화새

 

본문 : 시1:1-6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많이 했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는 그 순서를  여기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할 때에 그 순서가  어떠한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우리가 성경보는 일도 있고 예배보는 일도 있고. 기도하는 일도  있고, 또 행동하는 일도 있고, 그러면 하나님이 또 우리를 붙들고 축복하시는  일도 있고, 역사하시는 일도 있고, 또 우리의 모든 형편이 잘 형통해지도록  그렇게 하는 일도 있고, 또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너는 됐다 이렇게 인정하시는  일도 있고 그렇게 여러 가지 우려 신앙생활에는 각도가 있습니다.

 이 각도로 신앙 생활할 때도 있고 저 각도로 신앙 생활할 때도 있고 신앙생활은  여러 순서가 있기 때문에 그 순서를 잘못 잡아 가지고 내나 되기는 됐지만 마치  사람이 그 몸에 다 지체들이 다 그대로 구비하고 있기는 있지만 그 지체가 붙을  때 붙어야 되고, 또 그 지체가 서로 몸은 서로 서로 돕고 관계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체가 정도를 넘어서는 안 되고, 또 붙을 때 붙어야 되지 위치가  바로 붙지 안하면 헛일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만일 한 여 나문 살 먹는 아이가 귀만 큰 신짝만 하다먼 그거  괴물이요 병신입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못 받습니다. 괴인이라 해서 병신으로  취급하지 그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데는 다 잘 생겼다  할지라도 팔이 하나가 사람들 한 두 발 쯤 되면 그것도 병신이요 그것도 괴인이지 정상 사람으로 취급을 못 받습니다. 너무 하나가 치우치 게  지나치게 커도 안 되고 또 작아도 안 됩니다. 또 그것보다도 만일 그게 붙을 데  붙지 안하고 귀가 자기의 다른 몸 목에 붙었다든지 이래 되면 그것도 고만  병신입니다. 사람도 지체가 종류대로 있다 할지라도 크고 작은 것도 고게 맞아야  되고, 또 붙은 데도 바로 맞아야 되고, 또 그 다음에 그게 작용을 바로 해야만  고 사람이 병신이 아니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생활도 그와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하고 또 무슨 가정을 다스린다 하면 가정도 꼭 체제적이어야  됩니다. 가정도 체계적이야 되지 눈은 눈에 붙어야 될 터인데 눈이 만일  발바닥에 가 붙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모든 것이 가정도 꼭 눈 될 사람은 눈이  돼야 되고 귀될 사람은 귀가 돼야 되고 입이 돼야 될 사람은 입이 돼야 되고  발바닥이 돼야 사람은 발바닥이 돼야 되지, 발바닥이 제가 발바닥 노릇하기는  섭섭하다고 만일 발바닥이 이마에 가 붙었으면 그 사람은 병신이라 그 발은  끊어서 수술하든지 그리 아니면 병신으로 취급을 당하고, 사람으로 취급은  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행워가 다 그러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떻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야 되느냐? 그 순서가 어떠하냐  하는 데에 다른 데는 더러 있지만, 대개 신앙생활에 대해서 한 부분적으로 이  부분 신앙생활은 이렇게 해라 그 부분에 대해서 해설해 놓은 일은 많이 있지만  그렇게 체계적으로 순서적으로 해 놓은 테는 많지를 못합니다. 여기에는  신앙생활에 그 순서를 잘 말해 놨습니다.

 그러면, 첫째 순서가 뭐이냐? "복 있는 사람은" 이 말은 사람들이 복 하면 그  복을 추접하게 생각하는 그런 못 된 관념이 우리 동양 도덕에는 있습니다. 동양  도덕에는 도덕이나 그런 것, 뭐 의냐 또 거룩이냐 또 의지냐 착하냐 뭐 그런  것만 지금 말하고 있고 복이라 하면 그만 추접한 것같이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왜 그렇게 가지게 돼는가? 복이라는 것은, 우리 동양 관념에는  물질이라 그렇게 보는 그런 못된 안된 어리석은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 좀 복을 넓게 말하는 사람은 오복이라 또 이래 가지고 조금 수다하게  종류를 넓혔습니다. 또 산상 보훈에는 보면 팔복이라 그래서 팔북산이라 하는  그런 데를 따라서 다 그리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복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고 하니, 복은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은혜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 되는  자가 그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복이 있고 또  내세에도 복이 있고 영과 육이 아울러 다 복 있는 그 복을 말하는 것이니까  여기에 복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복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 중에 특별히 우리 한국 교회에서 재건 교회에  최덕지 선생님이라는 그 여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에 그렇게 탄압이 있었지만 사람 보기에는 털끝 만한 것도 그들에게  숙인 일이 없었습니다. 신사참배를 안하고 들어간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거기서 신사참배 때문에 처음에는 시험이 있다가 나중에는 이제 황거 요배. 일본  천황 폐하가 저 동경에 있는데 그 천황을 향하여서 여기서 절을 해라 하는 황거  요배라고도 하고 또 동방 요배라고도 합니다. 그렇게 하라 이랬는데 그때에 다른  사람들은 거의 다 했습니다. 왜? 너무 탄압이 많기 때문에, 그러나 최덕지  선생님은 그걸 안했습니다. 그게 죄다 하고 왜? 사람인데 벌써 수천 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 절 한다는 것은 벌써 그 사람을 신격화됐기 때문에 그게  우상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 내나 신사참배나  그거나 뭐 같은 일이다 이래 가지고 반대를 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고문을  많이 받고 고행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은 감옥에서 나을 때까지 고랑을 차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고랑을 차고 있고, 다른 사람은 고랑을 벗고 갇히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고랑을 차고 있을 때에 여름에는 이게 썩으니까, 온 팔에는  구더기가 자꾸 득실 득실 이래쌓고 쑤시고 이렇지만, 그 뭐 누가 그걸 이 손이  이 손을 도울 수가 있겠소 이 손이 이 손을 도울 수가 있소? 그대로 썩어  나가면서도 신앙의 정조를 굽히지 안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의 표어는 그겁니다. 복입니다. 복. 어짜든지 하나님 앞에 복  받는 자 되자. 영도 복, 육도 복, 그 심령도 복 이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당신이  성도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주고자 하시는 것은 내가 다 받는 사람 되겠다  하는 그것이 그분이 복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는 언제든지 말이 표어가 그만  복이요. 이러면 복 못 받는다. 이래야 복 받는다. 이게 복 받는 길이다. 그 복  하나로 해석을 다 해 버려요.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는  그것이 복이다 그렇게 해석했기 때문에 그분은 그랬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분이 재건 교회를 창설했는데 그분이 여자다 보니까 아무래도 좀  생각하는 것이 이렇게 범위 넓게 생각지를 못하고 치우치는 점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치우치는 점이 무슨 점이 치우쳤느냐 하면 제일 많이 치우친 것은 이는  신사참배한 사람들은 다 이것은 정조를 판자들이 요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기  때문에, 성경에 그런 자를 인사도 하지 말아라 하는 고 성구를 가지고  고린도전서에 있는 고 성구를 가지고 그만 절교를 했습니다. 말을 안 합니다.

일반 교인들과 말을 안하고, 불신자들 하고는 말하지만 신자로서 믿던 사람이  신사참배한 사람, 또 이거 동방 요배한 사람 그 사람과는 말을 안 했습니다.

절교를 했소. 그것이 그들에게 제일 단점이었습니다.

 여기에 ○○교파에 있는 ○○○목사님 ○○○목사님 다 이런 목사님들이 그분을  존경하고 참 그분 앞에서는 말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분은 뛰어난, 그  고문과 고행을 당해도 신앙을 굽히지 안했는데. 자기네들은 그 고문과 고행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처음에는 동방 요배 안하려고 이래 반대를  했지만 너무 고문과 고행이 심하니까, 그뭐 이것을 꼭 이것 때문에 이렇게  형벌을 당할 게 뭐 있냐 하는 것을 이렇게 은연 중 생각도 하고 의논도 하다시피  하면서 그 뭐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산 사람에게 거리만 좀 먼 것뿐이지  뭐 딴거 뭐 있겠느냐 이렇게 해석을 해 가지고 동방 요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 분은 어떻게 사람은 사람인데 서로 마주 보고 볼 수 있는 사람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지 볼 수 없는 수천 리 밖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벌써 그거는 다 우상성을 가지고 신성화한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  그래 가지고 했는데 그리 다 존경을 했습니다. 존경을 했는데 그분들이 처음에  나와 가지고 차차 차차 절교하는 일을 그 일을 더 심하게 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재건 교회 다니는 사람은 일반 교인들 하고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교제를 끊는  그 절교를 했습니다.

 이라니까, 거기서 이 동방 요배한 하나님의 남녀 종들이 '아, 저게 너무 좀  치우치지 않느냐' 하는 데서 그분들을 좀 깔봤습니다. '치우치지 않느냐?' 만일  그걸 안하고 이래 나갔으면 그분들 앞에는 머리를 들지 못할 것이고 그분들이  모두 다 주도권을 쥐고, 뭐 ○○교파에 만일 그분들이 ○○교파의 일 했으면  ○○교파로 갈 것이고, 그분이 무슨 재건 교파라 하면서 재건 교회로 다  따라갔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그렇게 지나친 고 흠점이 있어서 고게서 위로를  받고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저거 너무 지나치게 치우쳐 간다 그렇게 됐었고. 고라고 난 다음에  이제 우상은 다 도말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그때 지금보다는 시골에서는 미신을  많이 섬기기 때문에 그 구정, 음력 정월 말이오. 음력설에는 되면 정초에 모두  다 동리마다 조산이 있고, 또 섬기는 저거 뭐 동신이니 뭐 산신이니 하면서  제단이 있고, 또 거기에는 금계(禁界)줄을 쳐 놓습니다. 새끼를 원 새끼로  이렇게 꼬아 가지고 거기에다가 미역도 달고 또 숯도 달고 고추도 달고 또 인제  소나무 가지도 달고 이래 주렁주렁 달아 가지고 금계줄을 쭉 쳐서 이래 놨는데  그 금계줄 쳐 놓은 그걸 하필 그 동리 사람들 통과하는 그 길에다가 딱 이래  커다란 높으게 사람들이 손도 대이지도 안하는 한 두 질이나 되도록 높다랗게  이래 딱 쳐 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금계 줄 밑으로 가야 된다 그거야. 그  금계줄을 본 사람 손들어 봅시다. 그래도 언간히 봤습니다. 좀 있으면 이거 다  뭐 이건 다 옛날 얘기 같은 이야기이지 모를 거야. 그분들은 그 아래로 통과를  안 할뿐 아니라 거석한 사람은 통과를 안 했습니다. 통과를 저도 그 밑으로  통과를 안해 가지고 길도 아닌데 삥삥 둘러서 그래 갔었습니다.

 그라고 여기에 저 수원지 가면 도리라고 내나 이래 쭉 이어 놓고 이래 나무  걸쳐 놓고 수원지 입구에 그래 해 놓지 안했습니까? 수원지 저 위에, 그거  봤어요? 수원지 저 산에 올라 갈려 하면 그 길에다가 나무 큰 걸 이래 쭉, 나무  큰 걸 한 개 이래 떡 이래 밑에 기둥 두 개를 가지고 이래 떡 해서 사람  들어가는 길 반이나 위에 되고로 해서 이래 떡 해 놨습니다. 해 놨는데 한 번도  그 밑으로 들어가 본 일은 없습니다. 갈때는 다른 사람 말은 안해도 가면서 그  기둥 밖으로 해서 요리 가지 그 밑으로는 가지를 안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들은 그 밑으로 안 갈 뿐만 아니라 가 가지고 기어고 조사지만  어디든지 올라 가 가지고 그놈을 당장 뜯어서 그만 치워 버립니다. 동리  사람들은 지금 공들인다고 해 놨는데 가 가지고 그걸 그만 뿌질라 버리고 새끼를  뜯어 가지고 전부 새끼를 태워 버린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암만 바빠도 그거  태우고 가야 되지 뭐 그냥 가지는 안합니다. 이래 놓으니까 그만 동리에서  핍박이 있어 가지고 뭐 많이 맞았습니다. 여기서 그라다가 맞고 맞아도 그분들은  그런,거는 겁내지 안하기 때문에 맞고, 또 저 동리 그라다가 맞고, 이라니까  그게 일어나 가지고 공연히 그거는 뭐 자기 피하면 되든지 그러면 그리 안 가고  피하면 될 터인데. 그걸 뜯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또 절에 가면 만일 절에  갔다고 하면 부처 다 절단 냅니다. 부처 그만 들어서 내던지고 막 또 이랍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공연히 지나쳐 가지고 핍박이 있어서 복음 전도에 많은 지장을  일으킨다.

 이러니까, 그분 내나 하는 일이 하나 틀려 둘 틀려, 뭐 좀 지나치게 틀리는  것이 하나 둘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 동방 요배 안 한 것이 만일 잘한 일이고  좋은 일 같으면 저분들과 같이 해서 그분들이 저렇게 실수하지 안 할 터인데  그거는 우리가 한 것이 괜찮다' 이렇게 위로를 받고 안심을 했고, 그러나 동방  요배한 것이 잘못입니다.

 또, 저는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동방 요배 처음 들었는데 교회 가니까 그  교역자가 예배 볼 때 뭐 한다고 '다 일어섭시다.' 이래서 그때 일어섰습니다.

일어서니까 동쪽으로 돌려 향합시다. 그 좀 이상하다 그거야. 이상해서 그러나  돌려 향하지 안하고 이래 섰다가 앉았습니다. 보니까 일어서라 말은 뭐하려고  하니 일어섰지만 동쪽으로 향하라 하는 것 보니까 이거 뭐 아무래도 이거 뭐  필요 없는 일 하라 하는 거니까 교역자가 필요 없는 일 하라 하니까 나는 그때  앉았었습니다. 앉았는데, '그때 설명을 하면서 '동방 요배 안 하고는 예배 보면  다 우리가 취체(取締)를 당하기 때문에 그래 뭐 큰 죄가 아닌데' 말하기를  '옥중에 나오는 모든 목사님들도 옥중에서도 다 하고 있고 소식을 들으니까 이거  뭐 그럴 필요가 뭐 없다 해서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앉았습니다.

안하고 앉았습니다. 안 하고 앉았는데 그때 그 교회에 동방 요배 안 한 사람이  혹 저 하나 뿐이든지 아마 저하나 뿐이기 쉽거나 그리 아니면 혹 몇 사람 있을  거나 그럴 것입니다. 그 뒤에는 어디든지 안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래서 그만 그  권위가 떨어져 버리고 나중에 가서 이것 너무 지나쳐서 아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깃발을 들고 나가는 이 깃발이 옳다 이래서 ○○교파가 자신만만하게 그때  나갔습니다. 만일 그들이 치우치지 안했으면 그렇지 안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옳은 길을 걸었다  할지라도 거기서 잘못된 점이 하나씩 둘씩 나타나게 되면 다른 사람이 그 옳은  길을 따라 오는 힘이 빈약해지고 또 반대되는 그 길을 걸을 때에 그 길을 걷는  용감이 생겨집니다.

 우리 총공회 진영도 생긴지 얼마 안 됐지만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몇몇  사람들이 들어서 그렇게 또 어떤 사람은 슬슬 우리 행정하는 것을 헙니다.

행정하는 것을 허는데 우리 행정하는 것이 성경대로 꼭 바로 맞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 육신주의를 자꾸 말 하는데 그것을  앞세우지 말라고 뭐 환갑잔치 그런 것 필요가 없다, 생일잔치 그런 것 필요가  없다, 또 추도식 그거는 안 해야 된다. 이러니까 이런 것 가지고 틀렸다고 자꾸  이렇게 티를 잡고, 또 백 목사님은 아주 독재라 이젠 이 말이 자꾸 나오다가 또  어떤 사람은 백 목사님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이라 한다 또 이렇게까지 되고  이래 가지고 꼭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아 그 진영에 그렇다면 이런 거는 잘못이  아닌가 이래 가지고 자꾸 권위를 떨어트립니다. 또 권위를 떨어트리기 위해서  이단이라 하는데 참 잘못됨이 없이 권위가 떨어지면 하나님이 그 잘못됨에  대해서 분개해 가지고 잘못됨이 없는데 권위를 떨어트릴려고 하면 하나님이  분개해서 잘못 때문에 그의 편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영이 중생된 영은 죄 짓지 않는다, 뭐 이런 문제도 이래 가지고 그것  때문에 저게 이단이라. 또 이단이 많았습니다. 제가 고려 신학교 다닐 때부터  이단이 많았었는데 그거 차차 차차 수정되어서 이단이라고 하던 것이 지금은 다  거의 인정을 다 하게 됐습니다. 인정을 다 했는데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그거는 인정을 안하고 있다가 지금은 아마 한국에서는 거의 반수이상은 인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른 세계는 다른 나라는 그런데도 생각도 안합니다.

한국같이 예수님을 성경대로 좁게 믿을라 하는 데는 없고 다른 데는 전부  인화주의로 사람 사람이 서로 화평해서 인화주의로 나가고, 또 화평주의로  나가고 모든 것을 다 타협주의로 나가고 이래 나가지 꼭 성경대로 뭐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렇게 뾰족하게 하는 그런 것은 미개인이라 이렇게 말하고 그게 다  신사적으로 그렇게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는 몰라도 한국은 거의  인정하게 됐었습니다. 이렇게 옳게 나가는 것을 권위를 떨어트리는 데는  이단이라, 삐뚤어졌다 그 말이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그러면, 삐뚤어졌다 하는 데에 삐뚤어졌다 하는 거기에 삐뚤어졌다 한 다고  손해가 가느냐? 절대 손해 안 갑니다. 삐뚤어졌다 하는 데에 그말에 따라서  피동이 돼 가지고 삐뚤어진 일을 할 때에 손해가 가지 아무리 삐뚤어졌다고 해도  거기에 피동되어 삐뚤어진 일을 하지 안할 때에는 하나님은 삐뚤어지지 안한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축복 아닌 축복이 있습니다. 축복 아닌 축복, 욕을 하는데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또 훼방을 아주 삣고 깎고 훼방을 하고 훼방을 하는데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왜? 그거는 뭐이냐? 훼방 받을 만한 훼방거리가 있고  욕을 얻어 먹을 만한 원인이 있어서 욕을 얻어먹을 때에는 회개치 안하면 그  욕대로 됩니다. 그러나 그 잘못이 없이 거짓 걸로 핍박을 받을 때에 그때에 주를  생각하고 참고 있으면 그것이 축복이 됩니다.

 어떤 사람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망한다고 자꾸 그리 쌓으니까 사람이 속으로  웃으면서 '아, 저 사람들이 참 자꾸 축복을 한다.' 왜? 축복을 한다 하면서 그  사람은 생각하기를 '아, 저렇게 예수 믿어 망 한다는 소리를 주님이 귀가  있으니까 들으시지' 자꾸 그렇게 말할수록 주님은 자기의 끝이 되시고 자기에게  복을 줄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 아닌 축복이라. 모든 욕을 하고 핍박하는  것은 축복은 축복이라 그렇게 해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복을 생각했습니다. 그저 이라면 복을 받나 못 받나? 그  하나라도 복을 생각하니까 그 복이 어디까지 나갔느냐 하면 황거 요배 그것도 안  하는 데 까지 나갔어요. 황거 요배를 하면 이거 복을 받겠나 안 해야 복을  받겠느냐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말씀이든지 한 말씀을 붙들고 자꾸  나가면 그 다음에는 많은 말씀이 다 관련이 되고. 하나가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 네, 순서를 말합니다. 우리 신앙 순서는 벌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또 성경을 읽고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들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우리는 신앙생활을 어디서부터 시작하겠다. 고 시발점을  출발점을 어디다가 둬야 하느냐 하면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한다.' 요것이 다 마음 문제입니다. 요게  마음 문제요 마음 문제.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한다  그 말은 자기중심의 경영을 자기중심의 주장을 자기중심의 말을 자기중심의  계획을 자기중심의 운동을 자기중심이라 말은 개인 자기중심이나 모든 피조물  중심은 다 그거 자기중심이요 피조물 중심이기 때문에 악입니다. 뭐이든지  우리는 마음에 첫째는 활동이 있어야 되는데, 첫째 우리 신앙생활의 순서는.

우리 마음은 '보자 이 말이 피조물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도  되고 피조물도 위하고 그라면 피조물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요 하나님 중심이  피조물 중심으로 하나 될 때가 많습니다. 하나 될 때가 많고. 어떨 때는 피조물  중심하려 하면 하나님 중심 버려야 되고 하나님 중심하려 하면 피조물 중심을  버려야 되고, 이 둘을 다 취할 수는 없고 둘 중에 어느 것이든지 하나만 취해야  되는 그런 때가 온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활동 이 신앙생활에 제일  먼저입니다.

 마음의 활동이 신앙생활에 제일 먼저인데, 마음의 활동을 그러면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마음의 활동이냐? 첫째 마음의 활동은 이것이 하나님 위주 하나님  중심이냐? 하나님을 빙자해 놓고 이게 실은 사람 위주요 사람 중심이냐? 그것을  찾을라면 찾을 수 있다 말이오. 낱낱이 찾아요. 낱낱이 찾을 수 있어.

 그러면, 요새 지금 복음 운동이라는 운동은 많지만, 그 운동을 이렇게 살필  때에 이게 하나님 중심의 운동이냐 인간 중심의 운동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세상  중심이냐? 이런 걸 살펴보면 그만 뚜렷이 나타나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슨  중심의 꾀를 좇지 안한다 이거는 계획을 말 합니다. 피조물 중심의 그 경영이나  계획이나 그리 되면 그것을 자기는 좇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 때에 안 믿는 사람들이 정치하는 것이  그것이 다 하나님 모르기 때문에 피조물 중심이 아니겠는가 국가 중심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에 우리는 거기에 좇아야 되나? 악인을 좇지 안 해야 된다  했습니다. 안 해야 되니까, 그라면 거기에 대해서 반대해야 되겠느냐 성경에  말하기를 '권세는 위에서부터 오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권세를 복종치 안하는  것은 심판 받는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내가 참된 충성을  다해라. 또 주인에게 참된 충성을 다해라. 상전에게 참된 충성을 다해라. 왜? 그  주인의 주인이 있고 상전의 상전이 하늘에 있다. 상전의 상전이 하늘에 있다.

우리 한국은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지만 한국 대통령은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위에 하늘의 대통령이 있다 그말이라 말이오. 대통령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그렇게 주장을 하지만 그걸 가만히 살펴 볼 때에 이것이 나는 하나님이  나를 땅 위에 세워서 이 자리에 세워 가지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일을 하라고  이래 하셨기 때문에 이 일은 하나님에게 복종이 되느냐 안 되느냐? 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시킨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그렇게 복종을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요게서 구별이 됩니다. 성경에 위반된 일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람은 알지 못하고 저는 하나님이 위에 계시는 줄 모르고  이러니까 제 맘대로 벌로 이래 말은 했지만 내가 그 말을 들을 때에 '요 일은  하나님 중심으로 요 일을 할 수가 있다. 요 일은 하나 넘 중심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래서 고게 구별되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그 일을 저는 '이분이 말하는 것은 주님이 이분에게 권세를 주셔 가지고 이분을  붙들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분이 말하는 것은 이것은 주님이 성경에 나에게  이걸 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이분이 지금 나에게 이 말을 하라 하는 거는  주님을 알든지 모르든지 주님이 그를 통해서 나에게 시키는 일인 줄 알고 나는  지금 주님에게 복종으로 복종합니다.' 요렇게 해석을 하고 복종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래 하다가 나간 사람들이 다 국가에 뭐 세금 바치라는  것이라든지 군인 복무라든지 이런 것 다 알뜰히 하는데, 신사참배를 해라  이라니까 이거는 못하겠다. 이거는 암만 하나님 중심으로 암만 신사참배를 할라  해도 하나님 중심으로 할 수 없게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은 '안  합니다. 또 주일을 어기도록 주일을 범하도록 주일을 예배 보지 못하게 이래  거석하고 하니까 이것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이 시켰느냐? 이 일을 또 저가  모르든지 알든지 이 정치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시켰느냐? 하나님이 주일을  지키라 했지 주일을 지키지 말라 하는 그런 거는 성경에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은 하나님 중심으로서는 그 정치가나 그 행정의 명령을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 이래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에 첫 순서가 뭐이냐 하면 첫 순서가 '나는  하나님 앞에 복 받는 자가 되겠다.' 하나님이 복을 줘야 되지 뭐 제가 아무리  잘나 봤자 소용없습니다. 신명기 28장에도 보면 자기 일하는 것도, 제가 며칠  전에도 그걸 생각했습니다. 엊저녁에 제가 이 마당에 다니면서 내가 생각하기를  '아, 참 하나님께서 한국에 복을 주신다고 하면 한국에 있는 이 새 한 마리도 풀  한 포기도 전부 복을 받는다. 떡반죽 그릇에 복을 주시고 또 모든 짐승의  새끼에게도 다 복을 준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좀 그것은 좀 뭐 다 일반은 그렇게 볼라고 하지 마십시오 만 보면, 뭣이 어떤  토지에 보면 곡식이 잘 됐습니다. 곡식이 잘돼도 하나님이 복 줘서 잘된 것과  사람이 노력해서 잘된 것과 표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복줘서 잘된 것은 볼 때에  그 속속들이 까랑까랑하게 아주 하나님의 축복 받아 그러니 축복 받았으니까 그  식물들이 뭐 참 생기를 받아 가지고 좋아서 펄펄하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래  하는 것은 다 그게 묻어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약이 묻어 가지고 있든지 그 뭐  딴 무슨 해충이 끼어 있든지 그리 아니면 거름을 많이 해 그러니까 거름독이  올라 있든지 그 보는 눈 가지고 보면 아주 깨끗지 못하다 그말이오.

 사람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서 축복 받은 사람과 사람의 노력으로 열심히 노력을  해 가지고 이렇게 올라 간 사람은 그 사람이 좀 위대하고 훌륭하다 뭐 이렇게  한다 해도 자세히 밝은 눈으로 보면 거기에 무엇인가 해독이 끼어 있기 때문에  얼마 가지 안하고 그 끝이 좋지 못할 그런 것이 보여진다 고말이오. 사업도  그러하고 식물도 그러하고 하나님이 복을 줘서 복을 받은 사람이 있고, 복을  받지 못하고 제힘으로 지금 야단을 지기고 있는 그 사람이 있고. 복 받은 사업이  있고 복 받은 식물이 있고 복 받은 모든 물건이 있고, 또 복을 받지 못하고  인간의 힘으로서 해 가지고 하는 것이 있다 그말이오.

 첫째는 하나님 앞에 복 받아야 되겠다 요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첫 순서입니다.

하나님에게 복 받아야 되겠다. 복 있는 사람 되어야 되겠다. 어디든지 이러면  복을 받을 수 있나 없나? 내가 오늘 아침에 지금 여기에 드러누웠으면 복을 받을  수 있나 없나? 내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를 드릴 때에 이런 생각을 가진  거는 복을 받을 수 있나 없나? 첫째 복을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 첫 순서고.

 복 생각하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이제 마음의 행동이 둘째 순서입니다.

마음의 행동, 마음의 행동인데 마음의 행동은 어떻게 하느냐? 마음으로서 모든  것을 접촉할 때에 이것이 하나님 중심이 될 수 있는 일이냐?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이거는 피조물 중심이고 하나님 중심은 아무리 끌어 다 대보고 분석을 해  봐도 하나님 중심은 아니다. 피조물 중심이요 자기중심이요 인간 중심이다.

이거는 구별할려면 할 수가 있습니다. 중심을 구별해서 자기가 피동해야 되지  중심을 구별해서 피동하는 것이 그것이 둘째인데, 둘째 순서는 중심을 구별해서  피동하는 것,  또, 이것이 그 다음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고' 하는 이것도 다 다른  사람이 하는 운동을 말합니다. 하는데,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한다 그말은 번연히  현저히 성경 말씀에 위반된 그 일을 따라 가지 않는다 말이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말은 번연히 현저히 성경에 위반된 그 일을 쫓아가지 않는다 말이오.

아무리 친근하고 내가 이제까지는 아무리 존경을 하고 했다 할지라도 성경에  위반된 일이면 나는 그걸 따라가지 않는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그 길은  아예 그 자리 서지를 안한다 말이오. 성경에 현저히 명문되어서 성경에 이거는  위반되다 할 때에는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사정이 딱하고 아무리 그 사람이 내게  거석하고 아무리 자기 욕심에 뭐 해도 요것은 성경에 위반되다 할 때에는 고게서  딱 중단하고 가지 않는 요것도 마음의 행동에 지금 따른 것이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한다' 이것은 자기가 어디까지 갔을지라도 어디까지  갔을지라도 이제 나는 할 만침 했다. 이제는 할 만침 했다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큰 시험입니다. 자기는 뭐 기도를 하든지 무엇을 이래 하든지 하면 그만 이제는  할 만침 했다 이래 가지고 자꾸 그만 자기는 오만이라는 말은 자기는 벌써 그 한  일에 대해서 무엇의 반대인고 하니 '나는 부족한 자입니다.' 하고 갈급. 갈급과  가난, 갈급과 가난과 반대되는 것이 오만입니다. 갈급과 가난에 반대되는 것이  오만이오.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해야 된다. 요것도 그 마음의 행동이요, 또  몸의 행동까지 나오게 됩니다. 요 세 가지가 합해서 행동입니다.

 첫째는 복을 생각해야 되고, 둘째로는 이제 세 가지 행동을 우리가 구별을 해서  해야 되고, 고라고 난 다음에는 셋째는 뭐인고 하니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라면 이 두 가지 순서가 통과하고 난 다음에 성경을 봐야 성경이  은혜가 돼지고 또 깨달아집니다.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요것이 셋째입니다. 성경에 대해서가 셋째. '여호와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한다' 묵상하는 것은 거기에 뭐이 나와야 자꾸 묵상이 나와지지  아무 나오지 안하면 묵상이 됩니까? 암만 성경 말씀을 생각해도 자기가 생각해도  나오지 아니하면 묵상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을 생각하니까 거기에 자꾸 꿀이  나온다 말이오. 단꿀이 나와. 성신의 감화가 와서 깨달음이 새로 깨달음이  나오고, 또 깨달음이 나오고 그러니까 자꾸 깨달음이 나오니까 깨달음이 나오니  내 마음은 평안해지고 밝아지고 내가 평소에 이기지 못했던 죄는 멀어지고  쓸데없는 소용없는 욕심은 멀어지고. 그만 자꾸 그리 돼지니까 자기가 자기를  봐도 아주 제법 성자다 할 만침 그렇게 자꾸 자기가 깨끗해진다 그말이오.

그것이 셋째 순 서입니다. 셋째 순서,

 첫째는 복, 둘째로는 마음으로서 세 가지 구별하는 행위, 고라고 나면 성경  맛이 있습니다. 셋째로 이제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을 새김질합니다. 새김질하고,  이제 그라고 나면 넷째가 뭐이냐? 그리 되면 넷째가 자기의 사상이라든지  의지라든지 자기의 욕망이라든지 그런 게 청청해집니다. 왜? 모든 자꾸 이 세  가지 하는 데에서 병든 병균을 털었기 때문에 병균을 다 없애 제해 버렸고 자기  속에 병과 같은 쓸데없는 생각, 쓸데없는 욕심, 쓸데없는 감정, 쓸데없는 복수,  쓸데없는 시기, 쓸데없는 원망, 쓸데 없는 낙망이 모든 잡된 것이 싹 이것이  그만 제거돼 버리니까 이러니까 아주 자기가 아주 청청해진다 말이오.

 그러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됩니다. 요 넷째가 시냇가에 심은 나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이제 그러니까 그만 자신이 깨끗해져서, 자신이 뭐 때문에 깨끗해져?  하나님으로 깨끗해졌고 하나님과 연결돼 깨끗해졌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든든하다 그말이오. 자신이 깨끗해져 자신이 용기가 있어야 되고  용감이 있어야 됩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다 이래 이깁니다. 나라서 말하는데 그  나라를 어찌 개인이 항거하겠습니까? 온 교파가 말하는데 고 그 교파를 항거해서  싸우겠습니까? 그 속에 자꾸 불이 나온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  연결 돼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더 참을 잡았고 더 옳고 바른 걸  잡았으니까 그 삐뚤어진 것이 아무리 커 봤자 벌써 깔본다 그말이오. 아무리  말해 봤자 깔보고 말하고 보니까 자꾸 그것이 양식 밖에 안 돼. 그 삐뚤어진 걸  말하니까 나는 더 새로와져서 더 옳게 바른 것이 더 발라져야 되고 더 주장해야  되고, 무신론을 주장하니까 나는 하나님 계시는 걸 유신론을 더 강하게 주장이  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넷째가 자기가 깨끗해지는 것 자기가 깨끗해지고  새로와집니다.

 깨끗해지고 새로와지니까, 그 다음에 다섯째는 뭐이냐? 다섯째는 이제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인데 복이 와 가지고 그의 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분명히 보여진다 그말이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 하는. 그것은 자기 그 인격이 말이요 인격이  그리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 사람 하는  일을 오데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는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술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이 그게 보여진다 그말이오. 자기가 겨울에 온상을 해  놓고 이걸 따시게 하는 그거 와 봄이 돌아오면 온상(溫床)한 것도 아닌데 모두  다 이게 봄이 돌아오니까, 하나님의 역사로서 따뜻한 봄이 돌아오니까 모든 것이  속잎이 나오고 그 모든 것이 다 살아나서 생기를 얻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고 우리가 볼 때에 '아, 저 사람의 하는 일은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다. 저 사람은 되기는 잘됐지만 하나님이 복을 줘서 잘된 게  아니라 지금 제힘과 인간의 힘 가지고 빠당빠당해서 저거와 같이 하고 있다.

그렇지만 뿌리가 없기 때문에 그까짓 것 마릅니다. 저거는 얼마 안 가서 마른다.

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에 저 일은  아무래도 망칠라 하면 더 강성되고 더 흥왕되지 상해되지를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그만 복 받은 사람이다. 복 받은 물건이다, 복 받은 일이다, 복 받은  농사다, 복 받은 토지다, 복 받은 나라다. 뭐 이것이 복으로 가지고 모든 것을  한번 심사해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신앙 행위에 오늘 아침에 요 말씀은 신앙 행위의 순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잘못하면 이 성경으로 시작하는데 그게 아니야. 믿는 사람이 제일 첫  순서가 뭐입니까? 복. 둘째로는 행위, 구별하는 행위 그라고 나면 어찌 됩니까?  예? 그라고 나서 성경을 읽어야 맛이 있습니다. 그래야 성경 읽어야 맛이 있고  성경에 깨달음이 나오게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어찌 됩니까? 넷째가 뭐입니까? 시냇가에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청청하다 그말이오. 마르지 않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자신이 생기가 나옵니다. 자신이 생기가 나와요. 그러면 생기가  나와도 '아, 저 사람이 보자 돈으로 얻은 생기인가? 사람들이 자기 배후에  배경에 사람들로 인해서 생기를 얻은 생기인가? 저 사람이 무슨 자기 이제  기술을 하나 획득했기 때문에 기술로 인해서 생겨진 생기인가? 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기 얻은 사람이냐?' 눈으로 보면  볼 줄 아는 사람은 볼 수가 있습니다.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봐요. 그  사람이 생기 하나님으로 인해서 생기를 얻어져야 돼요.

 하나님으로 인해서 생기를 얻어지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그라면 인제 그  다음에 뭡니까? 몇째입니까? 다섯째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도움이 있다.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그 일을 하나님이 도우신다. 도우는 게 분명히  도움이 보인다.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 도와서 역사하시는 것이 보여진다.

이렇게 이제 되어지는 요것이 우리 기독자의 신앙 행위의 순서라. 신앙생활의  순서라.

 이래서, 그러면 순서가 틀리는데 자꾸 성경만 읽어야 성경 맛이 없다 말이오.

성경 맛이 없어요. 암만 읽어야 잠이나 오지 성경 맛이 없어. 성경 맛이 없는  것은 뭐이냐? 둘을 순서가 끊어져 그렇습니다. 성경 읽는데 성경 읽어야 읽을  재미도 없고 깨달음도 없어지는 것은 두 순서를 빼놨기 때문에 기둥을 하지  안하고 그 위에 스라브하니까 그 스라브가 공중에 얹혀 가지고 있을 리가  있습니까? 내려앉지.

 그러면, 그 순서 둘이 뭐입니까? 성경 보기 전 앞서 두 순서 있는데 무슨  순서입니까? 복, 구별하는 행위 요것을 하면 구별하는 행위를 하면 거기서  마찰이 있겠습니까? 세상이 좋아야하고 형통하겠습니까? 마찰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배를 얻되 핍박을 겸하여 얻으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찰이 있어요. 마찰이 있으니까 성경 말씀 읽으니까 맛이 있거든,  마찰이 있는데 성경을 보니까 이렇다 이렇다 아니 하나님이 이렇다 이렇다  하니까 그까짓 것 피조물이 해봤자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 사람이 성경을 봐야 맛이 있고 세상에 투쟁이 있는 투쟁이 있으면서 성경  봐야 맛이 있고 깨달아지는 것이지 세상에게 종이 돼 가지고 거기 꺽꺽  끌려가면서 성경 암만 봐야 성경이 무시 밖에는 안 당하지 맛이 없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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