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15:29
보배로운 믿음
1981. 2. 18. 새벽 (수)
본문:베드로후서 1장 2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은혜는 하나님 앞에 값 없이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값 없이 받는 것은 가치가 없어서 값 없이 받는 것은 아니고 가치가 다 인간을 탁월한 무한의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값은 다문 얼마라도 치를 만한 그런 것이 없습니다.
“돈 없어도 사서 먹어라” “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거게 돈이라고 표시한 것은 댓가를 말한 것입니다. 댓가가 없어도 사라 그말은 네가 낼 것을 내고 사라 그말이오.
그게 무슨 말인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는 사람으로서는 추호의 댓가도 낼 만한 그런 댓가가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왜? 사람은 다 유한한 것인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은혜는 다 무한성의 것이기 때문에 무한성의 것에 댓가를 낼 만한 그런 것은 추호도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무한성의 요소는 추호도 없고 또 영원성의 요소도 추호도 없습니다. 완전성의 요소도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돈이 없어도” 그말은 댓가가 없다 그말입니다, 댓가가 없어도. “사라” 그말은 댓가는 없지마는 네가 그것을 가지는 데에는 네게 있는 것을 내놔야 된다 그말입니다. 네게 있는 것을 내놔야 된다. 댓가가 돼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댓가는 안 되지마는 네가 내놔야 그것을 네가 차지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다 드려야 하나님이 값 없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영생을 받는 것은 이것이 댓가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을 다해야 주님이 주시는 값 없이 주시는 것을 겨우 받는 노력이 되는 것이고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을 다하지 않으면 주님이 값 없이 주시는 것을 받지를 못합니다.
뭐라고 비유를 해야 될런지? 어떤 힘센 사람이 그 사람에게 거저 주는 것이지마는 값 없이 주는 것이지마는 제가 힘이 약하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 기울여야 비로소 그것을 공으로라도 받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다 놓쳐버리고 받지를 못한다 하는 그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혜라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그것을 가리켜서 은혜라 그럽니다. 그러면 값 없이 우리가 값을 낼 수 없는 그런 것 그것만이 다 영생하는 것이요 하늘나라의 것이지 값을 우리 힘으로 낼 수 있는 그런 것은 다 썩을 것들이요 없어질 것들이지 영원한 것들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의 영생성에 속하고, 완전성에 속하고, 무한성에 속하고, 불변성에 속한 이런 모든 것은 다 우리가 값 없이 받습니다. 그러기에 은혜로 받는다 그말은 이런 것들은 다 값 없이 받는 것인데 이런 것은 어떻게 해야 받게 되느냐? 하나님과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을 앎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 구주라 말은 여게 “하나님과 우리 주” 우리 주라 말은 구주라 말인데 주라 말은 무슨 말을 가리켰는고 하니 우리의 영원 무궁을 책임졌다는 그런 뜻을 표시해서 주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가 되셨다, 우리를 영원 무궁토록 구원에 책임을 지셨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책임을 지셨으면 어떻게 지셨느냐? 예수로 졌다. 예수로 졌다. 하나님이 피조물 되시고 하나님의 모든 그 부요와 영광을 다 댓가로 내놓으시고 또 사람이 되셔 가지고 우리의 모든 죄의 값을 대신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을 대신 행하시고, 또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대신 화목의 제물이 되셔서 화목을 하셔 가지고 우리의 구주가 됐다 그말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과” “우리 주 하나님”이 우리 주가 되시는 데에는 어떻게 되셨느냐? 예수로 됐다. 신인양성일위로 십자가의 대속하심으로 됐다.
됐는데, “이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더욱 많아진다” 앎으로. 앎으로라 말은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어떠하신 하나님이며, 어떻게 우리의 주가 되셨으며,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이것을 우리가 아는 것, 아는 것은 자기가 거게 대해서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또 자기가 지식적으로 알다 보니까 거게 대해서 자기가 관련 있는 그것을 아는 것 그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 언제 내가 여기 보니까 어떤 청년이 기도하는데, 뭐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을 으례히 다 말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을 인식하는 그 인식이 그저 너무도 빈약하고 이러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자기가 깊이 인식하고 확인하고 확신하기 위해서 ‘주는 전능하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렇게 하면서 한 몇십 번 말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님이신 것을 인식하는 인식이 자기에게는 빈약한 것을, 전능하심을 또 자기가 다시 느끼고 느끼고 느껴서 실지로 하나님이 전능하신 이 하나님이심을 자기가 인식하고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돕는다면 문제가 뭐 있겠습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번에 전 대통령이 레이건 대통령에게 다녀오고 나서 거게서 한미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가지고 한국에 대한 그 안보를 자기네들도 같이 책임지고 반공을 같이 힘쓰겠다.
또 여게 한국에 그 모든 병력을 더 현대화시키고 증강시키겠다. 이렇게 두 분이 말한 그것이 발표된 그것을 보고 벌써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다 튼튼히 여기고, 든든히 여기고, 또 저 외국에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한국은 문제가 없다. 이러니까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염려가 없다. 마음놓고 투자하자.’ 이래 가지고 투자하려는 나라가 많이 생겨진다 말이오.
투자하려는 나라들이 많이 생겨지지 또 한국 사람도 든든히 여기지, 그것 뭣입니까? 미국은 우리 나라보다 강한 나라인데 그 나라에 제일 정권을 잡은 그분이 이렇게 돌봐주려고 하니까 우리 나라는 튼튼하다 이런데, 미국이 만일 그보다 더 참 강한 나라가 소련이고 중공이고 이북이고 그 나라 앞에서는 꼼짝 못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그런 미국 대통령이라고 하면은 뭐 한국에 대해서 그렇게 해 놨으면 한국 사람은 김일성이를 두려워하는 그런 것은 다 없어졌을 것이고 오히려 자세를 부리고 다른 데에 세도를 부릴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 보면은 국내에서도 대통령, 우리 나라 대통령 많이 있어봤자, 얼마입니까? 칠 년입니까? 칠 년이요? 기간이 칠 년이지? 찍해야 칠 년 있으면 또 바꿔질 것이라 말이오. 이번에는 정권 이양에 대해서 많이 약속했으니까 그분이 뭐 정권 이양은 틀림없이 할 것이라 그거요.
이러면 찍해야 육칠 년밖에는 돼 봤자 안 되는데 그분과의 조그만한 배경만 있어도, 또 그뿐 아니라 이 시골에서보면은 무슨 면장, 이 동장, 구청장 뭐 그런 조그매만 배경이 있어도 그만우쭐해지고 그 사람이 날뛰는데, 우리 교인 가운데 어떤 사람은 호남, 저 호남 사람들이 호남회라 하는 호남회를 만들었는데 호남회에 거기 전화국에 좀 유력한 사람이 하나 있어서 그 사람하고 연결돼서, 그러면 전화를 자기가 말할 때는 몇 대를 내고 이러니까 그만 그래 가지고 우쭐해져 가지고, 그 사람만 있어도 우쭐해지고 그만 교회 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고 그만 그래 가지고 바람이 들어서 예수 믿는 것도 말고 낙심한 그런 사람을 내가 몇 사람 봤다 그거요.
그런데 참 하나님이, 이 자존하시다는 말을 하지마는 말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 많고, 참 모든 것이 그분이 홀로 자존하셨는데 그분으로 인해서 모든 게 생겨졌어. 그분으로 인해서 생겨졌기 때문에 그분이 모든 걸 들고 있어. 만들어 들고 있기 때문에 탁 놓으면 다 바싹 깨져버리고 다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 말이지.
이런 분이신데, 이분이 창조했지, 이분이 모든 것을 관리하시지, 이분이 전능하시지, 또 모르는 것 없이 전지하시지 이분이 우리의 구주,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이 믿어진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평안할 것이며, 얼마나 담대할 것이며, 얼마나 강할 것이며, 얼마나 세도가 클 것이며, 얼마나 배짱이 있으며 뭘 두려워하겠습니까? 이런데 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마는 믿는다는 이 믿음이 입술뿐이고 그저 하나의, 앵무새라는 새는 옆에 가서 말하면 따라 합니다. 따라 하지만 그 말의 뜻은 하나도 모른다 그거요.
하나도 모르고, 내가 일본서 보니까 ‘곤니찌와’ 하니까 그게 또 `곤니찌와' 이러대요. 이 한국에서는 내가 말하는 걸 그뭐 안 봤는데 거게서는 가 가지고서, 말한다고 쌓기 때문에 그래 한번 말해 보라 해서 ‘곤니찌와’ 하니까, 인사인데. ‘곤니찌와’ 하니까 그게 따라서 `곤니찌와' 이래. 그래도 그 하나도 말 뜻을 모릅니다.
꼭 앵무새가, 성경에 말한 걸 따라서 말은 하지마는 거게 뜻은 앵무새 모양으로 하나도 모른다 그말이오. 만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정말로 알면 그 아는 표가 날 것이라 그거요.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의 구주이신 것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어떤 분인데 이분이 우리 구원을 책임지시고 안다. 이분이 우리 구원을 책임지신다는 이 사실을 알고, 책임을 지시되 어떻게 지셨느냐?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해 가지고서, 또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도 베푸시고, 또 이래도 우리에게 더 모자라는 점이 있어서 영원히 사람되셔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부활하셔서 또 다음에 다시 신인양성일위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오실 거라 말이지.
이 사실을 앎으로 은혜가 너희들에게 아는 것만치 많아지고, 많이 알면 더 많아지고, 그러니까 아는 것이 끝이 있느냐?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무한히 알아야 되니까 이것은 영원히 알아도 자꾸 더 알 것이 있고 또 더 알 것이 있고 이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앎으로” 아는 것만치 은혜가 있게 되고, 더 많이 알면 많이 은혜가 있게 되고, 이러니까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러면 하나님이 높여 주시기를 안 높여 주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이 높여줘도 높아지지를 안한다 그거요. 암만 높여줘도 제가 높아지지를 안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면 네가 높아진다. 하라.’ 해도 `아이구, 어찌 그 일이 되겠나? 그러다가 낭패당하려고?’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그 높여줌을 받지를 못한다 그거요.
다니엘을, 공부할 때에 나라에서는 ‘네가 영양 있는 식물을 먹어야 네가 두뇌가 좋아지고 공부를 감당하지 그렇지 않으면 공부 감당 못 한다. 그러기 때문에 다 왕의 진미를 모두 먹여 가지고서 정치가를 양성시키는 데에 왕의 진미로 양성시키는데 네가 영양 없는 그 채소 그까짓 것만 먹고야 네가 그게 되겠나?’ 과학을 아는 사람인데, 다 그런 사람들이. 영양 없는 그런 것만 먹어 가지고는 머리가 좋지를 안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요새는 모두 이것 먹으면 이 머리가 좋아진다, 저것 먹으면 저 머리가 좋아진다 다 모두 그렇게 그걸 알고 있다 그거요. 이런 건데 하나님께서‘네가 왕의 진미 먹으면 그것은 다 그들은 다 미신 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미신에게 섬겨 그럴 뿐만 아니라 그것이 들어서 사람의 지능을 잘 배우게 한다고 능하게 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물질 물질 합해 가지고서 보편의 것이고 일반적의 것이고 네가 나를 의지하고 바라보고 이래 하면서, 우상기가 있는 그런 식물이기 때문에 안 먹어도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이 하나님을, 하나님이 해 주시려면은 무한히 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니까 네가 어느 것 할래?’ 이래도 ‘암만 하나님이 그렇지마는 음식을 안 먹으면 그것 되겠느냐? 채소만 먹고 되겠느냐? 영양 있는 그런 걸 먹어야 되지.’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깨끗이 사는 일을 못 할 것이라 말이오.
그러나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아벳느고 그 청년들은 했어. 그러니까 하나님이 십 배 지혜를 줘 가지고서, 같이 공부했는데 그들의 십 배 뛰어난 지혜를 얻게 됐어. 하나님이 그래 주려 하지만 하나님을 안 믿으면 그말 듣습니까? 오늘 교인들도 지도해 보면은 ‘네가 이렇게 하면 된다.’ 해도 `예, 그러면 그러겠습니다.’ 대답은 철통같이 약속을 했지마는 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무래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으니까 결국은 그 사람 말하는 사람 지도하는 사람 말을 믿지 않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한다 그거요.
그때에 총리대신이 세 사람인데 세 사람 가운데에서 다니엘을 제일 높여 가지고서 총총리를 만들려고 하는 것을 그 모든 총리대신들이 알고 시기를 해서 ‘다니엘 저놈을 죽여야 되지 안 죽이면 지금 우리 나라에 제일 권세를 다리오 왕 다음에는 저게 가질 터이니까 저놈이 모든 주권을 가지면 인제 우리는 절단난다. 유대인들이 아니냐?’ 이래 가지고서 이렇게 지금 시기하고 있을 때에, 그러니까 그들이 꾀를 내 가지고서 ‘한 달 동안은 다른 데에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그것은 죽이기로 딱 결안을 했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전국이 왕으로 더불어 뭐 왕의 조서를 내려 가지고 딱 짜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틀림이 없다 그거요.
이런데 그 기도하는 것을 보고서 ‘다니엘이 기도합니다. 저놈은 사자구덩이에 집어넣어 죽여야 됩니다.’ 이러니까 왕이 자기 인을 찍어 해 놨으니 이것은 안 넣을 수도 없는 것이고 이러니까 하루 종일 붙들고 사정을 했다 그거요. ‘네가 어쩌든지 한 달 동안만, 기도를 하되 사람 보기에 안 하는 척하고 속으로 기도하고 하는 표시를 내지 말아라. 그러면 너를 살리고, 저놈들이 너 죽이려 한 걸 내가 몰랐다.’
이러는데 ‘이번에는 뭐 참 기도한다고 하다가는 틀림없이 사자구덩이 집어넣어서 인제 죽는다.’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여기는데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죽였다가도 살려낼 수가 있고, 없는 가운데 있게 하실 수가 있는 하나님이시니 아무리 사자구덩이 집어넣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고 하나님이 못 먹게 하면 못 먹지, 못 죽이게 하면 못 죽이는 것이지, 하나님이 그 시간도, 공간도, 요 활동하는 것도, 사자 발 하나 요러는 것도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는데 사자구덩이 들어간다고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 죽어도 또 천국이 있으니 무슨 상관이 있느냐?’다니엘이 하나님을 ‘믿으라.
네가 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너를 살려 준다. 너를 총총리를 아무 어려움 없이 총총리가 되게 할 것이다.’하나님이 그렇게 말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까? 안할 것이라 그말이오. 다니엘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어떤 분인 걸 알기 때문에 서슴지 않고 ‘안 한다. 나는 기도 너거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나는 기도하겠다.’‘그러면 사자구덩이 집어넣어도 좋으나?’`좋다.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도 우리 하나님이 사자로 나를 죽이게 하시면 죽일 것이고 죽이지 못하게 하면 못 죽이고, 내가 여기 있어도 내 생명이 끊어지게 하면 끊어지는 것이지 죽고 사는 것은 우리 주님에게 매였지 아무데도 있지 않다.’이 주님의 권능을 이렇게 주
님이 주권하고 계시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평안이 있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권능을 얻어 가지고 총총리가 돼도 벌써 자기 대적들은 다 죽여버리고 무난히 그렇게 해 가지고 평안하게 지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은혜와 평강은 우리가 받는 데는 몇 가지 면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은혜를 받는데 첫째는 주관의 은혜가 있습니다, 주관의 은혜. 주관의 은혜는 뭣인고 하니 그 참으로 상대방은 은혜를 주지도 안하고 있는데 제 마음으로 제 주관으로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 주시겠다.’ 또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신다.’ 하나님이 보호 안 해도 제 마음으로 하나님이 보호해 줄 것이 인정돼지고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이 인정이 돼지면 자기는 제 주관적, 주관적으로 은혜와 평강을 받을 수가 있다 그거요.
그건 여러분들이 그걸 다 그 말을 알면 알겠는데, 학생이 와 가지고서 ‘엄마, 다른 학생들은 자꾸 선생님에게 뭘 갖다 주니까 선생님이 사랑하기도 하고 친절히 가르쳐 주기도 하고 하는데 나는 엄마가 도무지 아무것도 안 갖다 주니까 나는 미워해서 영 뭐 내가 그 공부 가지도 못하겠다.’ ‘이놈아, 선생님이 그렇지 않다. 그건 네 주관이지. 선생님이 그럴 선생님이 아니다. 네 마음이지.’ ‘아니야. 그것 그러니 내가 안 갈란다. 엄마가 좀 해다 줘라.’그래 엄마가 뭘 사 지고 왔다 그말이오.
사 가지고 와서 ‘이제 선생님을 지금 갖다 드리려고 사 가지고 왔다.’ 이러니까 이놈이 좋아서 그래 놓고 놀러 나갔다 그말이오. 놀러 나갔는데 어머니는 그걸 사다가 또 아이들이 손 댈까 싶어 저 놓은 데 딱 얹어놓으니까 안 보이는데 얹어놨다 말이오. 이놈이 기쁨으로 와 가지고서 인제 그 이튿날 학교를 갔다 그거요. 학교 갔는데, 어머니가 못 갖다 줬습니다. 못 갖다 줬는데 학교 갔다 오더니마는 ‘봐, 엄마. 틀림없어.’ ‘왜?' `오늘은 선생님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보고 웃고 영 안면이 다르지 않아. 오늘은 참 공부를 잘했어.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고 이래서 아주 잘 가르쳐 주고 이러시더라.’그러면 그것 뭣입니까? 선생님이 그래 해 주셨습니까 제 주관입니까? 제 주관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선생님은 그렇게 안 하셨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선생님은 그 뭣이냐 하면 객관이라 그말이요, 객관. 선생님은 그렇게 안 하셨는데 저 혼자 제 주관으로 그럴 수 있다 그말이오.
우리가 은혜와 평강도 자기 주관적인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참 상대방이 나에게 은혜를 줘서 그런, 주려고는 {시장토 안하고 있는데, 시장토,}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제 주관적으로 은혜를 많이 주실 것으로 인정하고 바라니까 자기는 기쁘겠습니까 안 기쁘겠습니까? 좋겠소 안 좋겠소? 좋지요.
상대방은 주려고 들고 서서 주려고 애를 써도 저는 상대방이 자기에게 줄 것이 인정이 되지 안하면은 그 사람은 받을 것으로 모르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기쁘겠습니까 안 기쁘겠습니까? 안 기쁘지요. 이러니까 첫째는 주관면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주관면이 있어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과 주 예수를 앎으로” 이 주관면이 생겨지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그 십자가 못박혀 대속하시기까지 하고 나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 가지고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고’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나를 구원하고 사랑하시기 위해서 오셨으니 나를 놓지 안할 것이라 그말이오. 이걸 앎으로 자기에게 주관적 은혜와 평강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뭣이 생겨지는고 하니, 자기가 그러니까 제 삼자 말이요. 다른 사람들 말이요, 제 삼자가 ‘저 사람이 저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왜 저래 기뻐하노?’ `그것 지금 그 사람 저거 집안이 이번에 장관이 되지 안했어? 아주 가깝다고. 저거 집안이 아주 장관 됐는데 그 장관이 아주 저거, 바로 아주 뭐 촌수가 가까와. 그러니까 요번에 그 덕을 인제 많이 볼 모양이라. 볼 모양인데 이번에 어데 서울 갔다, 어데 갔다 왔는지? 서울 갔다 온 모양이라. 갔다 왔는데 그 사람이 그리 기뻐하는 것 보니까 뭐 한자리 아마 하거나 지금 뭐 좋은 구멍이 뚫힌 모양이라.’ 제 삼자들이 그렇게 그 사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막 대가리 흔드는 걸 보고 그래 여길 거라 말이오.
여기는데 실은 그 사람이 다른 데 볼일보러 갔지 서울 가지 안했는데 공연히 제 삼자들이 그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막 이 세도 있게 서슬 있게 날뛰는 걸 보고서는 ‘저 사람이 며칠 안 보이더니마는 서울 갔다 왔는갑다. 또 그 사람이 저거 삼촌이 장관이 됐다 하더니마는 아마 장관에 갔다 왔는갑다.’ 삼촌이 장관은 무슨 장관? 그 사람은 성만 같은 성이지 본도 다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 말이오.
이렇지마는 제 삼자들이 보고서 그 사람 말을 듣고서 ‘그 사람이 지금 참 그런 권세줄이 있어서 저 사람이 저렇게 좋아하고 세력 있고 저 사람 함부로, 지금 우리 동리에서 저 사람을 멸시했지마는 지금은 만일 저 사람을 멸시했다가는 만일 큰일 난다.’ 그만 모든 사람이 대우를 한다 말이오.
그것은 뭣이냐? 제 삼자의 대우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주관의 것이 생겨지면 주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가 인정이 돼지고 주관적으로 은혜를 받았고 또 하나님의 능력의 이 평강을 받았고 이러면 주관적으로 이걸 가지면은 제 삼자들이 보고서 ‘저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고 하나님의 축복받았고 하나님과 지금 무슨 연줄이 있고’ 이렇게 제 삼자들이 보는 은혜와 평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게 있어야 된다 말이오. 이게 있고 난 다음에 셋째로서는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줄 수가 있다 그말이오.
왜? 그 사람이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하나님이 은혜 주실 것을 인정하지, 하나님의 자기를 보호해 줄 것을 인정하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확실한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주관적인 은혜와 평강이 있을 때에 제 삼자들이 또 보기에 그 사람은 참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고 있다고 하는 그걸 인정하게 되고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은 ‘이제는 네가 모든 수속을 밟았기 때문에 내가 주고 싶어서 원하던 이것을 내가 이제 너에게 줄 수 있다’ 하는 이것이 객관적 은혜라 그말이오. 인제 그러고 난 다음에는 뭣이 되느냐? 그러고 난 다음에는 실질적인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은혜가 인제 와진다 그거요.
그러면 이렇게, 이것이 다 뭣이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가지고서 어떤 노력과 어떤 방편을 다 쓰셔서 해 놨기 때문에 이제는 다 됐으니까 나머지기 조금 남은 그것을 당신이 안 해 줄 리가 없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경영하셔 가지고서} {사람되셔 가지,) 경영하셔 가지고, 모든 것 하늘의 것 다 버리고 사람돼 가지고 오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나를 이 공로를 입히셔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까지 시켜 놨는데, 시켜 놨는데 다 해 놨는데 지금 나를 성화만 시키면 될 것인데 이 성화를 안 시켜 줄 리가 없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어떤 사람은 설교를 할 때에 ‘여러분들, 우리 구원은 목수가 책상을 만드는데, 책상 만드는데 다 만들어 놓고, 다 만들어 놓고 여게 지금 다리가 하나 빠지고 있으니까, 다 만들어 놓고 다리에 못 한 개만 톡 치면 이 다리가 빠지지 안하구로 돼서 그러면 완전한 책상으로 이렇게 지금 완전한 책상이 되는데 못 한 개를 아직까지, 덜 박은 것은 못 한 개를 덜 박았다.
다리도 다 만들어 놓고 이 끼워놓고 빠지지 안하도록 못만 한 개 탁 박으면 되는데 우리의 구원은 전부 다 돼 가지고 있고 이 책상에 못 한 개만 박으면 되는 것과 같은 요런 정도가 남아 있다. 요걸 우리가 믿고, 요것을 믿고 인정하고 요렇게, 하나님이 요렇게 나에게 해 주실 것을 믿고 하면 그만 돼지는데, 인정하면 제가 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인데 이걸 인정치 않느냐?’ 그렇게 하는 설교를 제가 들었습니다.
이래서, 자,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이제, 제 삼자들이 알고 말이요, ‘저 사람은’ 실지로 말이요, 실지로 지금 어떤 이웃 동리 사람이 올라가니까, 그 사람은 모르고 있는데. 모르고 있는데 ‘그 사람이, 아무것이 그 사람이 어데 있지?’ 이러니까, 마침 이 사람이 지금 장관인데 대통령이 있다가서 ‘그런 사람이 어데 있는지?’ 요새는 사람 찾기가 쉽지마는.
‘어데 있는지?’ 말 들으니까 이름을 들으니까 그 사람이라. ‘뭐 어째 생겼습니까?’ `그 사람은 사람은 얌전하고 그런데 눈 위에 혹이 하나 있지.’ 이러거든. 제가 아는 혹이 있는 사람이라. 그 사람이라. 그러면 성이 뭣이지 성 물어보고 또 지금 어째 왔다 하니까 틀림없는 그 사람이거든. 서로 그만 나뉘어 가지고서 그만 찾지도 못했는데 이 사람이 대통령 되고 난 다음에 제 혈육이라 하는 것은 그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 사람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래 그걸 알고서, 그 사람의 뭐 모습을 말하니까 틀림없는 그 사람이라 말이오. 좋아서 ‘네, 그 사람 지금 우리 마을에 있습니다. 그 사람을 제가 가서 찾아보고서 연락을 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 떡 내려왔다 그거요. 와 가지고서 ‘야, 이 사람아, 지금 너거 삼촌이 대통령이 됐다.’ ‘쓸데 없는 소리. 실없는 소리.' `너를 찾던데?' `이 사람이 뉘를 놀려먹으려 하나, 이 사람이 뭐 이따위 소리를 해 가지고 사람을 지금 놀리고 있어?’ 안 듣는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이 그 효력의 세력을 제가 주관적으로 누립니까 못 누립니까? 못 누리고 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참, 이 사람 참.’ 그러면 천치 바보 소리도 못 합니다. `여보시오' 그전에는 뭐 해라 하고 이랬지마는 ‘이 사람아, 그런 게 아니네. 참 그러네.’ 아주 존경을 해서 막 이래 벌벌 떨며 말합니다. 왜? 그 사람이 뒤에 말 한 마디 잘하면 저도 올라갈 터이니까 그만 이렇게 막 존대해서 제 삼자가 그 사람을 이렇게 높이 이래도 그 본인이 안 믿으면 그 효력을 지금 그 사람이 누립니까 못 누립니까? 못 누린다 그거요. 제 삼자가 알고 해도 못 누려.
또 저 위에서 통지가 왔습니다. 그걸 알고서 한번 올라오라고 이렇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특사를 보냈는데 이 사람이 ‘공연히 이것 나를 죽이려고 하나? 나는 그런 삼촌이 없는데. 나를 죽이려고 하나?’ 제가 어릴 때, 어렸으니까 저는 모른다 그말이오. 암만 그래도 ‘아이구, 이것 {아마} 나를 아마, 대사를 보낸 것 보니까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가배.’ 이놈이 그걸 모르고 그만 숨어서 {도망을 빼 버렸다 말이오.} 도망을 빼 버렸다 말이오. 암만 주려 해도 도망 빼 버렸어.
그러면 자, 주관이 믿지 안하니까 제 삼자가 말해도 그것 누리지를 못하지, 또 외나 그 상대방의 객관 상대방이 사람을 보내 가지고 올라오라고 지금 이래도 그걸 믿지 안하니까 누리지를 못하지, 그러니까 우선 초급으로 생활이 곤란하다 하니까 그만 돈을 지금, 요새는 그런 일이 없지마는. 돈을 지금, 아주 가난하게 지내는데 수표를 몇천만 원짜리를 이래 보냈습니다. 몇천만 원짜리 수표를 이래 보내서, 우선 곤란한데 이것 가지고 쓰라고 수표 몇천만 원짜리를 보내니까 그만 이 사람이 그만 상이 새파라이 죽으려 합니다. 죽으려 해.
‘아이구야, 이것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나를 지금 무슨 시험을 하려고 지금 나를 시험해 가지고 이러려 하는고?’ 안 믿으니까 저를 죽이려고나 해하려고나 하는 걸로 알아서 그만 이 사람이 ‘이제는 아무래도 보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든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것 큰 사형을 당하겠는데.’싶어서 그만 도망을 빼고 숨어 가지고서 나타나지를 안합니다.
그게 뭣이냐? 주관이 믿지 않기 때문에 말이지, 믿지 않기 때문에, 자, 제 삼자들이 증거를 해, 또 상대방이 사람을 보냈어, 실질적으로 벌써 효력이 왔어, 이래도 이자가 주관이 믿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 천치요 바보요? 자, 그 사람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아는 사람 손 들어봐요. 그 사람이 곧 오늘 우리라고 인정되는 사람 손 들어봐요. 우리라고 인정되는 사람? 그게 우리야, 우리. 그게 우리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주 예수를 앎으로” ‘앎으로’ 자기 주관 이것이 되어져야, 주관 이것이 되어지면 제 삼자들이 알 만치 돼집니다. 그러면 벌써 상대방은 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말이오. 그러면 그러고 난 다음에 실질적으로 오는데, 이 주관적인 이것이 제일 중요한데, 우리에게는. 왜? 이것 제가 아무리 주관적으로 그러고 있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안 주면 소용 소용 있습니까? 이 상대방에 지금 객관측이 다, 객관면이 다 돼 가지고 있고, 실질면이 다 돼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될 것은 뭣이 돼야 됩니까? 제 삼자면이 돼야 됩니까? 될 건 우리 주관면이 돼야 된다 말이오.
주관면이 돼야 되는데 제 삼자들이 조롱을 합니다. 말하기를, 그 김수길씨가, 김수길 박사. 그분이 내가 한번 언제 권면하니까 그럽디다. ‘저는 택함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나오기는 나와도. 천국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참 영생이 있는 게 확실히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지고, 성경이 확실히 믿어질진대야 그뭐 뭣할 겁니까? 전부 몸과 생명 다 기울여서 믿지요.’
그 사람이 암만 교회 나와서 이래 봐도 ‘이 사실을 믿는다면은 믿는 사람들이 이렇츰 좋은 게 있으면 뭐 생명을 애끼겠습니까 뭘 애끼겠습니까? 있는 것 다 들여서 믿지요. 이런데 그래 보니까 그래 믿는 사람들이 없는 걸 보면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분이 그때 그리 말해요. 자기는 안 믿는다 해요. 교회 나오면서, 그때 집사가 됐는데. 안 믿는다 해.
그러더니마는 그뒤에는 믿어요. 그뒤에는 ‘인제 믿습니까?’ 하니까 믿는대요.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분은 지금 병원 그런 것 다 치우고 뭐 일편단심 믿어. 혹 여기 오는데 오면 찬송하는 것 보면 그 큰 사람이 입이 큰 입을 있는 대로 다 벌려요. 벌려 가지고 막 기뻐서 이래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대속하시기 위해서 하셔서 우리에게 큰 대속을 주시고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소망이 지극히 크고,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이 우리 것인데, 이게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사실을 인정하면 인정하는 것만치 내가 달라질 것이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다니엘이 그렇게 사자굴에 들어가면 죽는데도 그는 기쁘고 즐거워하고 벙긋벙긋하고서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 다니엘 저 사람이 지금 정신이상이 걸렸나? 저거 말대로 참 저거 하나님이 정말로 있는 줄로 저래 알기는 아는갑다, 저거요. 저거 하나님이 참말로 있는 줄 아는가보다, 저거요. 그분이 구원할 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등신은 등신이라 소용 없는 일이지만 속기는, 그러니까 종교가 아편이라. 저 사람이 지금 하나님이 지금 사자구덩이 넣어도 하나님이 살려 줄 줄 알고 저 천치 바보 같은 게 지금 벙긋거리고 웃고 있네.’이렇게 지금 조롱을 하면서도 ‘저거는 참말로 믿기는 믿는갑다.’ 날뛰는 것 보니까. 태연스럽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것 보니까 ‘믿기는 믿는갑다.’ 제 삼자들이 알 수 있지 않소? 제 삼자들이 증거를 받았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도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 수가 있었고, 은혜를 주실 수가 있었고 제가 믿어서 사자구덩이 턱 집어넣었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있었다 말이오.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역사해서 그 이튿날 살아 나오니까 모든 사람들이 그때 ‘과연 다니엘의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로구나.’ 이래 가지고 그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지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는 것은 첫째 순서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치 자기에게 주관적인 것이 생겨집니다. 인정하는 것만치 주관적의 것이 생겨지고, 주관적의 것이 생겨지면 생겨지는 것을 제 삼자들이 압니다. 제 삼자들이 알 만치 제 삼자들이 알고 그만치 되어졌을 때 그게 바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만치는 된 것이기 때문에 객관이신 상대방이신 하나님이 그걸 그에게 주실 수가 있습니다. 이러면 그다음에 넷째로 되는 것은 뭣이냐? 실질적의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아는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니까 어떤 분이 여기 기도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의 전능을’ 그때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전능에 대해서 믿어지지 안하는 것을 믿어야 되겠다는 그것이 자기에게 인식이 돼지고 그때 기도할 때는 성신의 감화가 오면 그때 믿어지는 믿음이 자기에게 콱 생긴다 말이오. 확 생겨서 ‘주여, 주님은 전능이십니다. 전능이십니다.’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확실히 인정이 돼진다 말이오.
인정이 돼져서, 인정이 돼져도, 인정이 돼지니까 된 것 그때 기도할 때 자기가 성화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기에게 구주된 것을 인정하는 그 인정이 되고 되고 해서 기도에서 이제 의심없이 확실히 인정되는 데서 자기는 그만치 변화가 돼지고, 이래도 또 기도하고 나서 나중에 다른 데 돌아다니다 보면 또 희미해진다 말이오. 희미해지는. 또 이래 기도하는 사람은 또 새로와지고. 이래 가지고서 기도에서 몇 번이든지 다지고 다지고 다져 가지고서 자기가 완전히 그 사람이 돼 버려. 그 사람이 되어지는 그것만치 자기는 또 하나님의 은혜가 실질적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성경을 봐야 알게 되고, 기도를 해야 자기 주관적으로 인정이 되어지고, 인정이 되어질 때에 제 삼자들이 볼 만치 인정이 되어지고, 그 인정이 되어지면 하나님께서 볼 때에는 그가 거짓이 아닌 참된 신앙이 있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당신이 은혜를 베풀 수가 있고, 실질적으로 주실 수가 있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해야 믿음이 생겨지고 믿음이 생겨져야 하나님께서 그것을 해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만드는 게 아니오. 돼 가지고 있는데 우리 주관이 제일 고장이 있어 가지고서 믿지 않기 때문에 중단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으면 어떻게 믿을 것이냐? 제삼자가 볼 때에 ‘저 사람 참 믿는갑다’ 인정할 만치 믿어야 그게 진짜로 믿는 것이지 그게 아니면 믿는 것이 아니라 말이오. 거짓부리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