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22:56
믿음이 무엇이뇨
1987. 12. 2. 밤 (수)
본문:히브리서 11장 1절∼3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공과지를 받았으면 한번 읽는 것을 같이 따라서 생각해 봅시다.
본문.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 제목. 믿음이 무엇이뇨? 요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서론.
전 기독교는 믿음으로 살아나고, 믿음으로 건강하고, 믿음으로 성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고 부강하여진다. 믿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믿음으로 영생한다.
본론.
첫째,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들과 계약으로 약속되어 있는 생명과 평강과 지능과 축복과 그 외에 모든 좋은 것을 다 실상으로 만들어 내것을 삼아 영원히 가지고 살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보다 더 부자되는 방법은 없다.
둘째, 믿음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무궁하고 무한한 모든 것을 귀로 듣고 읽어 보기만 하지 참인지 거짓인지 그 실상은 하나도 보지 못한다. 이런 것들을 실상으로 내가 볼 수 있도록 하여 주는 것이 믿음이다.
셋째, 믿음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사람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모든 비밀 지극히 크고 작은 현재 것 영원의 것을 정확히 알게 하여 주는 것이 믿음이다.
결론.
믿음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사람과 합한 행위의 결실이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영감으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틀림없는 사실로 알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사람 할 일이요, 틀림없다 인정하고 행한 그것을 실상으로 책임지고 만들어 주시는 이는 주 하나님이시다. 변동은 사람 믿음 고장이지 하나님은 추호도 변동 없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
문답.
첫째, 믿음이 무엇이뇨? 답에, 믿음은 우리에게 선포하신 계약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는 대로 실상이 되게 하시는 이는 누구시뇨? 답에, 계약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믿는 대로 실상을 만들어 주시는 일도 간혹 실수가 있느뇨? 답에, 실수는 억억만의 일도 없습니다.
광고합니다.
반사 선생님들께서는 공과를 다 외우도록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외우고 많이 눈감고 생각하면 거게 있는 진리를 자기가 알게 될 것입니다. 눈감고 외우고 눈감고 명상하고 그대로 실지로 살아보면 자기에게 확실한 경험과 체험이 생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면 자기가 된 것만치 학생들에게 전달해 갑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먹고 소화해서 어머니의 피와 살이 되고 난 뒤에 그것이 젖이 돼서 아이에게 나갈 때는 영양이 됩니다. 먼저 이 공과는 반사 선생들님의 자기의 양식이 되고 자기라는 사람이 되어진 것만치 학생들에게 이 은혜가 전달됩니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계속 나오도록 힘씁시다. 날이 추워도 일찍 자고 준비해서 계속해서 나와서 우리가 믿음 준비를 잘해야 되겠습니다. 또 지하철 공사로 교회 건물이 피해입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공과를 못 받으신 분은 나가실 때에 다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공과는 늘 우리가 많이 배웠고 잘 아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는 말은 우리가 믿는 믿음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면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해 주시마고 약속되어 있는 모든 것을, 약속만 되어 있지 실상은 아닙니다. 그런데 약속되어 있는 그 모든 것을 내가 그 약속을 믿고 그대로 행하면 실상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가 소망하는 그 모든 것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계약을 맺고 그 계약서를 선포해 놓은 것이 구약과 신약 이 성경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계약되어 있는 계약 모든 조건들이 기록된 것입니다.
계약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참되다 인정을 하고 그대로 행하면 요게 믿음입니다.
그러면 문서로 되어 계약으로 되어 있는 그것이 실상이 됩니다. 실제가 이루어집니다. 실상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모든 소망하는 모든 것이 실상이 된다 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다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성경에 글로는 우리가 보고 읽습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들이 말씀으로 전해 줄 때에 듣기도 합니다. 듣기도 하고 읽어 보기도 하지마는 그것을 실상으로 우리가 보지는 못합니다. 실상으로 보지는 못하는데 믿음은 어떤 것인고 하니 그대로 알고 그대로 실행을 하면 우리가 실상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은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들어 자기 것 삼아 가지도록 하는 것이 믿음이요, 믿음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실상으로 자기가 보고 알아서 똑똑히 알고, 또 자기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 줄 만치 그렇게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로 더불어 계약해 놓은 그 계약을 내가 실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내것을 삼으려고 하면 그대로 믿고 행해보면 압니다.
믿고 행하면 실상이 이루어져서 제가 실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성경에 기록했지마는 그게 참인지 거짓인지 말로만 그래 기록했는데 너무 성경에 기록한 것이 하도 크고 높으고 어려운 일이라 도저히 될 수 없는 일로써 참 거짓말같이 다 들려지는 그런 어마어마한 약속들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어보고 하나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그것으로 끝나는 사람들은 들은 그 모든 것을 ‘거짓말 많이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거짓말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신구약 성경은 전부 거짓말 책이다.’ 다 사람들이 그렇게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 너무 어려운 일이요 너무 큰 일이요 ‘그런 일이 어떻게 우리가 그대로 행한다고 해서 될 것인가?’ 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여깁니다.
그러나, ‘보자. 참말로 되는가 안 되는가 해 보자.’ 그대로 실행한 사람은 `과연 그대로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확실히 보게 됩니다. 실상을 만들어 가질 것은 믿으면 실상이 만들어져 가지고 자기가 가지게 되고 또 알 수 있는 것은 믿기 전에는 모르지만 믿으면 확실히 자기가 알게 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인간은 아무도 모르는 그 비밀, 인간의 사상이나 지식이 근방에 가지도 못하는 그 깊은 속에 있는 것, 높음에 있는 것, 멀리 있는 것, 너무 커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 작아서 보지 못하는 것, 인간의 지능으로써는 도저히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그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완전히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이 계약한 모든 것을 다 실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자기 것을 삼아서 누릴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은 자기가 듣고 읽기만 하지 실상이 있나 없나 하는 그 모든 듣고 본 그것을 실상으로 자기가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믿음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그 깊고 오묘하고 높은 모든 지혜와 지식을 사람에게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이 세 가지를 한다고 히브리 11장 1절로부터 3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모든 것을,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모든 것을 네것을 실상으로 삼고 싶으냐? 믿어라. 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을 네가 실상으로 보고 알고 싶으냐? 믿어라. 또 인간의 지식이 도저히 상상도 못 할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와 지식으로만 알 수 있는 그 무한한 것을 네가 알고 싶으냐? 믿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소망하는 것을 실상으로 만들어 자기 것 삼을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모든, 성경에 문서로만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실상으로 제가 볼 수 있도록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문서로 기록되어 있는 모든 것을 자기가 실상으로 보도록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문서에 기록된 그 실상을 다 보게 됩니다.
또 믿음은 인간이 생각도 못 한 상상도 못 한 높고 깊고 광대한,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그 모든 사실을 인간이 알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유교에서는 ‘생부지 사부지라’ 사람이 나는 것도 어떻게 해서 나는지 모르겠다.
‘사부지라’ 죽는 것도 어떻게 죽는지 모르겠다. 나기 전에는 어떻게 되어 있었으며 죽은 후에는 어찌 되느냐 그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유교의 선배들이요, 불교에는 조금 정직지 못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람들이 나기 전에는 이랬을 것이다. 죽고 난 다음에는 이럴 것이다.’ 추측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보다 더 양심 없는 모든, 종교 중에도 순 아주 야비한 종교 창설자, 또 모든 철학자, 양심이 없는 그런 자들은 본듯이 ‘이럴 것이라 저럴 것이라’ 하는 것을 말했으나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그 모든 말이 다 거짓된다는 것이 확실히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모든 것을 다 말씀했습니다. 우주가 있기 전에는 어떻게 됐으며, 또 우주가 어떻게 생겨졌으며, 뭐하려고 만들었으며, 누가 만들었으며, 우주의 끝은 어찌되며, 인생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세상에 왔으며, 또 어데로 가며, 세상에 사는 것은 이것이 어떻게 되나 하는 것을 하나도 남김 없이 하나님께서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지 않는 자는 이것이 사실이나,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 이 사실이나 이것을 그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릅니다. 하나님이 참되게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을 참되다 인정하는 자는 다 하나님의 지식과 꼭 같은 지식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지식이 아는 대로 인간에게 알려 준 대로 그대로 아니 그것이 정확하게 아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라는 것은 능치 못함이 없다 이랬는데 믿음은 어떻게 해서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가? “믿는 대로 되리라” 네가 믿는 그대로 실상이 이루어지리라 했습니다. 믿는 그대로 실상이 이루어지리라.
믿음은 뭣인가? 믿음은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둘이 합동한 모든 역사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말은 인간이 믿는 믿음 그것 가지고 능치 못할 것이 없는 것 아닙니다. 인간이 믿을 때에,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것을 알고 참되다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그것이 인간의 믿음입니다. 그게 뭐 하는 것 아닙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계약한 말씀을 바로 그대로 알고 인정하고 행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믿는 것은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주어서 믿지마는 믿는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세 가지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 인정하는 것 그대로 행하는 것 세 가지. 그것이 뭐 되는 것 아닙니다.
그렇게 믿을 때에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계약주가 ‘네가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하겠다’ 하는 계약주 그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신 그 하나님이 우리가 믿을 때에 계약해 놓은 그대로 실상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실상을 이루어 주십니다.
또 내가 모르는 것을 믿을 때에 실상을 나에게 보여 줘서 알게 하십니다.
또 내가 모르는 모든 지식을 당신이 내가 믿을 때에 정확하게 바로 알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결론에, ‘믿음은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사람과 합한 행위의 결실이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영감으로 말씀하신 모든 것을 틀림없는 사실로 알고’ ‘틀림없는 사실로 알고' 이것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틀림없는 사실로 알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사람 할 일이요’ 이러면 사람은 이것만 하면 다 했습니다. 이게 사람 할 일입니다. ‘사람 할 일이요’ ‘틀림없다 인정하고 행한 그것을’ 사람이 행한 그것을 ‘실상으로 책임지고 만들어 주시는 이는 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틀림없다’ 하는 것을 자기가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틀림없다' 믿고 ‘이 말씀은 털끝만치도 틀림없다. 천지는 변해져도 이 말씀은 하나도 틀림이 없다. 틀림 없다.’ 이렇게 알고 행할 때에 이 말씀을 선포해 놓으신 하나님이 책임을 지고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은 우리 사람이 행하고 행할 때에 그대로 실상을 만들고, 환하게 우리에게 알려 주고,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바로 알게 해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십니다.
이래서 문답에, ‘믿음이 무엇이뇨?’ 문답에 일호가 `믿음이 무엇이뇨?' `믿음은 우리에게 선포하신’ 선포했다 말은 신구약 성경에 선포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포하신 계약을' 계약은 구약은 처음에 계약한 것이요 신약은 그다음에 계약한 것입니다.
‘선포하신 계약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게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이거는 우리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
‘믿음이 무엇이뇨?’ `믿음은 우리에게 선포하신 계약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이게 믿음.
둘째로, ‘믿는 대로 실상이 되게 하는 이는 누구뇨?’ 믿기는 우리가 믿는데 믿는 그대로 실상이 되도록 하는 것은 누구이뇨?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가 썩어 내음새가 나는데 예수님께서 ‘네가 죽은 자를 살려낼 것을 믿으라’ 믿었습니다. 믿는 것은 마르다가 믿었지마는 믿는 거야 쉽지마는 믿는 대로 그대로, 계약한 그걸 믿는 대로 그대로 살려내는 일은 그게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믿는 것은 마르다가 믿었고, ‘주님이 말씀하시니 틀림없이 살려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알고 틀림없다 이렇게 인정하고 돌을 굴려 놨습니다. 고것은 마르다가 했습니다. 마르다가 했는데 죽은 자를 살려내기는 누가 살려냈느냐? 주님이 살려냈습니다. 주 하나님이 살려내셨습니다. 답에, ‘계약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대로 실상이 되게 하는 이는 누구뇨?’ `계약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계약하신 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이와 같습니다.
셋째로, ‘믿는 대로 실상을 만들어 주시는 일도’ 우리가 믿기만 하면, 계약한 것은 우리가 믿기만 하면 주님이 실상을 만들어 주십니다. 믿는 것은 우리가 믿고 실상을 만든 이는 계약하신 주님이 계약하신 그대로 실상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고로 ‘믿는 대로 실상을 만들어 주시는 일도’ `믿는 대로 실상을 만들어 주시는 일도 간혹 실수가 있느뇨?’ ‘간혹 실수가 있느뇨?' 혹 열 번 가다 한번 실수나, 백 번에 한번 실수나, 천 번에 한번 실수나, 만 번에 한번 실수나 ‘실수가 있느뇨?’ ‘실수가 있느뇨?' 답에, `실수는 억억만분의 일도 없습니다.
실수는 없습니다.
우리에 믿는 것이 고장이 나 가지고서 안 돼서 실상이 안 돼지고 우리에게 환하게 보이지를 안하고 또 모든 지식을 우리가 모르지 우리가 믿기만 하면 당신은 약속된 소망은 실상을 만들어 주시고, 보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환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또 우리가 모르는 모든 필요한 지식은 다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이렇게 큰 선물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해서 “너희들이 악할지라도 자식이 부모에게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배암을 줄 자가 있겠느냐? 너희들이 악할지라도 이런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선하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들에게 이렇게 해라 내가 이렇게 해 주마 그렇게 말씀하신 그대로 우리는 믿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시지 안하고 반대를 하겠느냐?” 답답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아무리 사람도 아주 못쓸 인간 그런 인간이 아니라면 어린 아이와 약속할 때 어린 아이에게 ‘네가 이것을 이렇게 해라, 내가 무엇을 해 주마.’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한 대로 해 주지 어린 그것을 꾀우고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위해서 생명까지 바쳐 주신 주님이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 주겠다” 이렇게 약속을 뚜렷히 선포해 놓으시고 우리가 그와같이 할 때에 내몰라라 하고서 그와같이 변동할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거짓말 한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우리를 속인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데, 우리가 왜 주님을 믿지 못하는가? 왜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신실히 말씀하셨는데 왜 우리가 아는 대로 인정하지 안하고 행하지 안해 가지고서 주님이 지금 들고 있는 것을 받지 못해 가지고 우리가 비참하게 되는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속에 던지울 때에 ‘너희 하나님이 너를 구원할 수 있느냐?’ ‘내가 불 속에 들어가서 죽는 것이 주님의 뜻이면 내가 죽지마는 당신의 뜻이 아니면 안 죽고 또 살리려면 살릴 수 있다. 그분이 내게 제일 좋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는다. 절대로 불이 나를 죽이지 못한다. 사자가 죽이지 못한다. 그분이 죽게 하셔야 죽지, 타게 하셔야 타지 그분이 타게 하지 안하시면 불은 나를 못 태운다. 그분이 나를 죽게 하지 않으시면 사자가 나를 죽이지 못한다.’ 이것을 믿을 때에 주님은 신실히 해 줬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까지, 모든 부요도 다 내놓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이분이 우리에게 “네가 이렇게 해라, 내가 이렇게 해 주마.” 하신 이것이 신구약에 있는 모든 계약인데 우리가 어떻게 이분을 믿지 안하고, 해 준다 하는데 ‘그래도 되겠나?’ 이렇게 하고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건 이것 참 저주받을 일입니다. 얼마나 망령된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기록된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아는 대로, 참되다 하셨기 때문에.
아는 대로 참되다 인정하고 우리는 행할 것뿐입니다. 행하면 당신은 다 실상으로 우리에게 만들어 주십니다.
필요하면 만들어 주시고 없으면 안 만들어 주시고, 또 지금보다 요다음 얼마 후에 만들어 줘 필요하면 얼마 후에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만들어 주시는 것은 틀림없이 만들어 주시는데 시기는 당신이 가장 유리할 그런 시기를 선택해서 만들어 주실 것이오.
또 믿는 그것을 세상에서 없어질 것으로 주지 안하시면 영원한 것으로 주시지 그분은 우리에게 거짓말하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속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무궁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것으로 판단하느냐? 그분을 참되다 인정하고 속이지 않는 분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분으로, 그분이 말씀하신 거는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이행하신다고 당신을 믿어주는 이것을, 인정하는 그것을 당신이 제일 의로 대접해서 영원한 나라에서 대우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어떻게 하나님을 믿었느냐 하는 그것을 그대로 우리에게 평가해서 대우합니다.
그러기에 땅위에서 믿으면 그대로 된다는 이것은 이것을 봐서,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에서 당신이 말씀하신 작은 것 ‘이거 해 보니까 그대로 된다. 이것도 해 보니까 주님이 해 주신다. 저것도 해 보니까 해 주신다.’ 이것을 보고서, 성경에는,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 무궁세계에 우리에게 주신다는 그 계약이 아주 크고 그것이 큽니다. 그게 진짜입니다. 이 세상에 주는 것보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실상을 이루어 주시는 이것을 경험하고 체험함으로 계약에 죽은 후 부활 후에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는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을 우리가 만들기 위해서 지금 세상에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자는 하나도 믿지 안하고 죽어 부활하고 어떤 자는 전부 믿어 부활하니, 성경에 있는 걸 전부 믿음으로 얻는데. 믿어서 부활한 자는 하나님이 하신 것은 전부 다 제것이라. 안 믿는 자는 하나도 없어.
그러기에, 믿고 싶으냐? 네가 땅위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 봐라. 해 보면 ‘아, 과연. 해 보니까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 보니까 그대로 착착 되어지니 ‘이제는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틀림이 없다’ 독자 이삭도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시키는 대로 하면 아마 번제로 드리면 이삭은 번제로 드리기 전보다도 훨씬 좋은 이삭이 될 것이고 번제로 드리면 재가 살아나 가지고서 아이 낳고 자손을 많이 낳을 것이다’ 요것을 믿는 게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많이 명상해서 자기가 확실히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음 가지지 못하는 것은 제일 불쌍한 사람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부자되는 방법이 뭣입니까? 주님이 계약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믿는 대로 다 주님이 해 주십니다.
믿기는 우리가 믿고, 믿음이 뭐 하는 것 아니오. 믿기는 우리가 믿고, 믿을 때에 계약을 선포하신 주님이 그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게 되는 것은 그것은 제 믿음으로 걸어간 것 아니오.
믿을 때에 주님이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안 믿을 때에 그는 주님이 걸어오게 하실 수가 없는고로 물에 빠졌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이번 토요일 밤에는 다 와서 예배당에서 자고 새벽에 출발해서 하나님 앞에 두 시간 반을 바치도록 하십시오. 그만 이불 안 덮어도 와서 누워 잘 수 있도록 톡톡한 옷을 입고서 바로 여섯시에 그만 출발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함부레 옷을 다 준비해서 입고 오고 정 올 수 없는 분들은 시계를 틀어 놓고, 또 그래 안 되는 분들은 자기 집에 전화가 있으면 자기 구역장에게, 또 그 부장에게 ‘나를 지금 몇시에 깨워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 사랑에서 여러분들을 깨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어짜든지 토요일날 밤에는 예배당에 팔백여 명의 반사들이 다 와서 누워 자도록 하고 주일날 새벽에 여섯시에는 나서서, 우리가 따지지 말고, 신앙이라 하는 것은 조건 신앙은 안 되고 신앙이라 하는 것은 모든 계산을 하는 그런 신앙은 못씁니다. 신앙은 믿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하도록, 내가 한 세 시간 넘어 떨고 있으면 하나님이 감동되셔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십니다. 이러니까 학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일날 아침에는 여섯시로부터 일곱시 여덟시 여덟시 반까지 두 시간 반을 추운데 벌벌 떠십시오. 자기 맡은 학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떠십시오. 그럴 때에 주님은 감동되어서 여러분들에게 소원을 이루어 주셔서 구원할 그 모든 여러분들에게 속한 생명들을 살려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