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6:36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본문 : 막 9:21-27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 도와 주옵소서' 이렇게 병든 아이의 부모가 말하니까 '할 수 있거든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뇨?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전능이라는 말인데, 믿음은 전능이라.
이렇게 하나님이 여기뿐 아니라 다른 데도 '믿으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 '믿음은 능치 못 할 것이 없다' 하는 이런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또 기독교는 그러합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말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이니 한 가지 두 가지 몇 가지는 할 수 있을지라도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 '모든 것 다 할 수 있다' '못 할 것 없다' 하는 이 말은 우리가 무엇이든지 할려고 하면 거게 대립됨이 있습니다.
만일 자기가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 하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자가 혹 명이나 되겠습니까? 한 여남은 되겠습니까 몇 십이 되겠습니까 혹 하나이겠습니까?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자라면 그의 권능이나 능력이, 그 능력을 가진 자가, 이 우주와 영계에 그 능력을 가진 자가 혹 몇이 될 수 있습니까 하나뿐일 수 있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이 남반들, 능치 못할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하면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몇이나 될런지? 여러분들, 그 능력과 능력이 꼭 같은 능력이 둘이 있다고 하면 거게는 평화가 있겠습니까 분쟁이 있겠습니까? 이거 알아야 돼요. 분쟁이 있어요. 꼭 같은 능력이 둘이 있으면 둘이 싸워 가지고 능력이 하나될 때까지는 언제든지 투쟁이라 하는 것은 계속이 되고 한 능력이 점령을 해서 제일 큰 능력자가 하나가 되면 그 다음부터는 싸움은 진압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인데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어떤 자라 말입니까? 전능자라는 말입니다.
전능자라는 말이라. 모든 거 다 할 수 있다는 전능자라는 말이오.
그러면, 전능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전능자가 몇이나 있겠소? 전능자가 둘이 있을 수 있소? 전능자가 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확실히 없다는 것이 판정됩니까? 전능자가 둘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둘이 있으면 둘이 박이 터지게 싸워 가지고 하나가 깨져서 이제는 전능자는 하나가 되고 하나는 전능자에게 복종을 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존재를 못 할 것입니다. 전능자가 없애 버릴 것입니다. 이것이 힘의 성격이요 또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그말은 유일하신 분이라, 한 분뿐이신 분이라 하는 그말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그말은 믿음은 제일 큰 그 한 분이신 그분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믿음은 제일 큰 분이 하는 일이다 하는 그말이오. 제일 큰 분이 하는 일이다. 한 분밖에는 없는 그분이 하는 일이다 그말이오.
우리가 믿음은 유일하시고 자존하시고 대주재가 되시고 주권자가 되신 그분과 연합이 돼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전능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뭐이 믿음인고 하니 믿음은 유일하신 자, 주권자, 전지 전능자, 독존자, 유일이라 말도 한 분뿐이라 말이오. 독존자, 그자가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이오. 맞습니까? 맞아요?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말씀은 믿음은 유일하신 분, 독존하신 분, 대주재이신 그분, 주권자이신 그분, 제일 크시고 한 분뿐인, 커도 두 분 되는 분이 아니고 제일 크시고 한 분 되신 분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입니다.
믿음은 사람 사람들이 이 믿음이라 하는 것을 그걸 정의가 바로 되지 안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저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믿으면 다 된다 이라니까 참 믿음이 보배는 보배인데 이 믿음이 뭐인지? 기독교는 전부 믿음으로 다 되는 것인데, 믿으면 영생하고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고 믿으면 뭐 죽은 것도 살고 믿으면 모든 목적도 계획도 달성하고 이러니까 믿음이 지극히 보배로운 것과 가치 있는 것은 알기는 아는데 믿음이 뭐이라 하는 것을 바로 가르친 일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믿사옵나이다' 해서 그만 믿사옵나이다 믿으면 된다. 이래서 믿음의 일부분이 되는 것 인정만 하면 된다 이렇게 지금 다 생각하고들 있습니다.
믿음은 주권자 주재자 유일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홀로 머리가 되시고 모든 것에 타협이나, 타협이나 의논이나 협력이 없이 홀로 일하시는 주권으로 예정하시고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한 분이신 그분이 일하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니 어떻게 하면 그분이 와서 내게 와서 일해 주실 수 있느냐? 그분이 내게 와서 일해 주신다면 그 일은 능치 못할 것이 없고 전능자가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나한테 와 가지고 일을 해주도록 하는 데에는 믿음이라.
이러니까, 이 믿음은 한 말로 말하면 완전자 유일하신 전지 전능자 그분하고 나와 둘이 하나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이오.
믿음은 하나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니까 하나되게 하는 방법이 뭐인가? 하나되게 하는 방법은 성경에 말하기를 순종이라 또 어떤 데는 그분이 이러하신 분인 것을 인정해라, 또 그분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신 모든 이 계약과 이 지식을 인정해라, 그렇게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또 다른 데는 말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이 가르치기를 뭘 가르쳤는고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다 하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또 하나님이 계획을 어떻게 가졌다 하는 그 지식과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 것이라는 그 지식과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며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을 지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사람에게 대해서 피조물에게 대해서 그런 것을 하나님이 필요한 대로는 빠짐없이 우리에게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해 주신 이 말씀을 아는 것이, 첫째 아는 것이 믿음이요, 그러면 아는 것이 믿음이면 아는 것이 믿음 전부인가? 아닙니다. 또 알고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이거는 확실하다'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오. 아는 것도 믿음이요 인정하는 것도 믿음이오. 또 그대로 자기가 원하고 할려고 노력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라면, 믿음이 다 완전히 되었습니까? 그러면 믿음이 다 온전하게 됐습니까? 온전하게 안 됐어. 아직까지도 쪼갱이 믿음이라. 그대로 내가 실행을, 그대로 내가 행할 때에, 행할 때에 믿음이 온전하여집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당신이 가르쳐 놓으신 이 말씀,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에 대한 계약한 이 계약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이리 된다고 교훈한 말씀이요 지도한 말씀이요 또 선포한 말씀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고, 그 다음에는?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소원을 하고, 그 다음에는? 실행하고, 이라면 믿음입니다. 이래야 요거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자, '믿사옵나이다'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 하는 믿사옵나이다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인정하는 믿음이오. 인정하는 믿음. 인정만 하면 된다 그말이라. 인정하면 된다. 그거 안 돼 인정하면 인정을 하는 것을 뭐 무엇을 인정한다 말이요? 인정보다도 먼저 아는 게 먼저입니다. 아는 게 먼저요.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소원하고 행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또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러면 이거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
그러면,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또 원하고 행하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그 무한하신 분이신데 신구약 성경에도 66권에 말씀을 해 놨는데 그러면 66권에 그 66권을 우리가 다 믿고 다 인정하고 다 소원하고 이것은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는 거 이 세 가지는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할 수 있소 없소? 다 할 수 있습니다.
전체를 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다 알 수 있고, 공부를 해 가지고 나중에 성경을 다 읽으면 다 알 수 있지 않소? 다 아는 거 공을 들이면 한꺼번에 다 알 수 있어. 또 다 인정도 할 수 있어. 또 다 소원도 할 수 있어. 다 행하는 것은 한꺼번에 다 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행하지 못해.
뭣만 할 수 있습니까? 뭣만 할 수 있지요? 하는 것을 그러면 다 할 수 없으면 우리가 하나씩 둘씩 자꾸 이래 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안해요? 하나씩 둘씩 해 나가야 되지 안해요? 그러면, 하나씩 둘씩 해 나갈라고 하면 어느 것부터 먼저 해야되겠습니까? 저 양성원 학생들 안 보이는 사람들 더러 있다. OOO교회 조사. 저게 앉았구나.
머리를 숙이고 앉았으니까. 그 양성원학생들 좀 모두 신관이 틀렸는데, 교학실장? 공부를 많이 해 그래 잘 먹이지를 안해 그래? 공부를 많이 해 그러면 그거는 눈이 들어가는게 좋지만 잘 먹이지 안해서 그러면 그 안 되는 돼.
어느 것부터 먼저 해야 되겠습니까? 어느 것부터 먼저 해야 되겠어? 한꺼번에 다 할 수 있어? 또 그라면 시간은 언제 해야 되겠어? 시간은 그 시간 다 할 수 있습니까? 시간도 많은 시간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행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뿐입니다. 행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뿐이오. 또 행할 수 있는 장소도 현장이라는 것뿐이고. 행할 수 있는 그 건도 사건도 현재 당면된 건뿐일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을 다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한다고 하면 어디부터 먼저 시작해서 행해야 되겠습니까? 그 행하는 것은 그러면 우리 마음대로 우리가 소원하는 대로 이게 소원되니까 이거 행하고 저게 소원되니까 저거 행하고 그렇게 소원되는 대로 자기 소원대로 이거든지 저거든지 자기 소원대로 선택해 가지고 행하면 되겠습니까? 어느 것부터 행해야 될란지 행할 그 순서는 어떻게 해야 될란지? 행할 순서는 우리가 선택해야 될란지? 서부교회는 백 목사가 선택해야 될란지 그 나라의 정권자 왕이 선택해야 될란지 그거는 누가 선택해야 돼? 선택권을 누가 가져야 될란지? OOO씨. O집사가 택하면 안 돼? 내가 택해도 안 돼? 백 목사가 택하면 안 돼? 그것은 전지 전능자 완전자 유일자 주권자 그분이 선택해야 되지 다른 이가 선택하면 그분이 따라가겠소? '야 이놈아 내가 하라는 거 하라 했지 나는 저거 하라 하는데 너는 왜 이거 해?' '선택권이 내가 있지 않습니까?' '권리가 있어? ' 선택권이 있는 자는 어떤 자가 선택 권리가 있겠어? 전지 전능자 주권자 완전자 그자밖에는 선택 권리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하되 우리 현실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많은 것 중에 당신이 원하는 그 조건, 당신 원하는 그것, 그것을 뭐인지 그것을 아는 것이 내가 믿음에 필요한 것을 아는 것이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요거는 하나님이 요것을 원하신다' 이것을 알고, '요것은 확실히 하나님이 요것 원하신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또 그것을 소원하고 그 현실에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현실에만 능력 있습니다. 이 현실에만 소용있지 현실에 없는 거는 소용이 없어.
사드락, 메삭, 아뱃느고가 불가운데도 타지 안한 것도 그 안 탄 것은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능력이라 말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아는 능력이요 인정하는 능력이요 소원하는 능력이요 행하는 능력인데, 그것은 그 불 가운데 들어갔을 때 그때에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대로 할 것을 인정했고 또 그것을 소원했고 그대로 자기는 불 가운데서 행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전폭적으로 가 가지고 역사해서 도왔기 때문에 불이 탈 수가 없고 상하지 안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은 무엇과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과 연결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다면 그 연결은 언제 됩니까? 시간으로 말하면 언제입니까? 장소로 말하면 언제입니까? 사건으로 말하면 무슨 사건입니까? 그때 당면한 사건. 거게 내가 연결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그 뜻과 나와의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전능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원하시고 명령하시는 그 뜻,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뜻 거기에 내가 명중만 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입니다.
맞습니까? 맞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명하는 당신의 그 뜻에 내가 맞춰서 그 뜻을 내가 순종할 때에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믿음은 몇 가지가 믿음이지요? 네 가지가 믿음인데 네 가지 믿음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몇 호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사호입니까 삼호입니까 이 호입니까 일 호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인지 저 손가락으로 한번 들어봐요. 제일 중요한 것이 몇 호인지? 저 뒤에. 모두 안 나오던 사람들은 몰라. 오늘 안 나오던 사람이 조금 더 나왔는데 바보같이 몰라요, 지금. 넷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몇호가 제일 중요합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안 든 사람 더러 있네. 들어 봐요, 다 들어 봐. 왜 안 드는 사람 저 왜 안 들어? 왜 안드는 사람 안 들어? 들고 있는 사람 들고 있어 봐요, 좀. 손이 아파도. 왜 안 드는 사람 안 들어? 저 뒤에. 교만해서 안 들어 몰라 안 들어? 몰라 안 들면 바보야. 새벽기도 안 나오는데 제까짓 게 뭘 알 거라, 알기를? 이거 아는 것이 돈보다 낫고 명예보다 낫고 지식보다 나아.
권세보다 나아. 자기 생명보다 나아. 자기 고기덩어리의 생명보다 나아요.
일호가 제일 중요해.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걸 원하고 그걸 행해야 되는 것이지 엉뚱한 거, 하나님의 뜻은 이것인데 딴건 줄 잘못 알고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순종이요 거역이요?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멍군 장군으로 '하나님은 그라지만 나는 또 이거 해 본다' 제 맘대로 하니까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요 대립되는 것이요? 대립되는 거라. 망하는 거라. 믿음 외에는 다 망해요.
얼마나 망합니까? 자, 현실에서 믿음 아니면 망하기는 얼마나 망합니까? 매를 맞습니까 아주 죽습니까 조금 꾸중을 듣습니까? 어째요? OOO집사. 꾸중 듣는 것이 아니고 대립만 되는 게 아니라 완전 영원 멸망이라, 알겠어?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에 삐뚤어지게 알아 가지고 그것을 주장을 하고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면 하나님과 정 대적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래 하라 하는데 저는 이래 하니까. 대적이 되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노여워만 하고 만 게 아니라 그것은 영멸이 됩니다. 그 현실에 해당된 요소는 다 영멸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영생과 영멸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을 늘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데 기독교에서 행동하는 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 뜻 그것을 바로 찾아 가지고 행하는 것이 기독교인데 또 그것이 기독자의 지도자요 목사인데, 그러면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목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합니까? 서로 협의해서 의논을 합니까 당신의 혼자의 뜻을 그대로 주장을 합니까 어떻습니까? 타협합니까? 의논해서 합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목사로 더불어 서로 협의해 가지고, 요새는 협의 혐의, 회의 회의, 헙의 협의로 꽉 찼는데 하나님이 그 목사로 더불어 협의를 합니까 어짭니까? 뭐? 독재해, 독재. 협의 없어. 이래라! 이렇게 독재야. 주권이야. 의논 안 해. 협의는 무슨 협의? 독재하니까 그 독재에 따라서 나는 피동되야 되지 그리 안 하면 내가 영원히 멸망 받아.
그러면, 하나님의 독재의 그 명령을 받았으면 그 목사는 그 명령을 교인들에게 말할 때에 협의를 합니까 독재를 해야 됩니까? 협의해야 됩니까 독재해야 됩니까? 민주주의는 독재입니까 협의입니까? 민주주의가 멸망의 주의입니까 생명의 주의입니까? 멸망의 주의라. 이래도 모르고. 뭐 기독교가 전부 다 그런데.
이래도, 총공회서 기독교는 민주주의라 내놓으니까 목사들이 하나도 몰라. 아는 목사 하나도 없어. 얼마나 어렵기 때문에? 그뿐 아니라. 세계에 목사들이 아는 목사가 눈에 보이지 안해. 미국도 다 민주주의라. 칼빈이 민주주의라. 이렇게 중대한 문제지만 뜨끔거리지도 안하고 도무지 아무 생각이 없어.
기독교는 타협을 하면 멸망합니다. 기독자는 타협을 하면 멸망합니다. 서로 의논해 가지고 이와같이 하면 멸망합니다. 의논은 하면 멸망하는데 의논은 하면 살고 멸망 받습니다. 의논은 무슨 의논합니까? 이렇게 하자는 결정을, 이래 할까 저래 할까 둘이 결정을 합니까? 둘이 하나님의 뜻을 혼자 찾는 것보다 둘이 찾는 게 낫고 둘이 찾는 것보다 서이 찾는 게 낫기 때문에 여럿이 찾는 것을 그거는 민주주의로 찾을 수는 있습니다.
민주주의 여럿이 찾아 가지고 결정을 합니까? 여럿이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을 여럿이 찾지 결정은 여럿의 뜻을 절정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는 여럿이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여럿이, 혼자 찾는 것보다 여럿이 찾는 게 나으니까 여럿이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결정합니까 하나님의 뜻은 찾지 못했지만 여러 사람의 그 뜻을 합해 가지고, 혼자보다는 여럿이 것이 나으니까 합해 가지고 결정을 합니까? 합해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라.
다수로, 여게는 열은 이렇게 하고 열 하나는 이렇게 말하면 열 하나 말한 대로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민주주의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찾을 때는 민주주의에서 머물고 있거라. 그러나 찾아 가지고 요거라 하고 주의로 세울 때에는 하나님의 독재주의를 찾기 전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말아라. 하나님의 독재주의를 찾아 가지고 하나님의 독재주의를 찾아 가치고 제가 죽어도 독재할 수 있는 것이면 주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장하지 말아라 그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나는 서부교회에서 와서 한 거는 대개는 내가 독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면 그대로 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그러면 한번 좀 생각해 보십시오 이라고 하지 의논해서 그 사람이 안따라오면 나 혼자 속으로 해서 이 년 삼 년 후에면 달성하도록 그렇게 했지 인간들하고, 나는 평생에 표어 중에 하나가 '타협은 사망이다' 그 사람이 말하는 거 그 사람 말하는 거, 반 하고 내 말한 거 반 하고 또 그 사람의 말하는 거 혹 셋하고 나 말하는 거 혹 일곱하고 이렇게 서로서로 이래, 요새 말로 뭐 빳다제라 말이 무슨 말인고? 빳다 말이 영어인가? 영어? 그거 이래 서로 이래 흥정을 해가지고 서로 타협을 해서 이래 하자는데 그것은 사망입니다. 그것을, 일생 동안 그것으로 더불어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타협.
기독자는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분의 독재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타협하지 안하고 독재하는 것이 그것이 기독자입니다. 고게 뭐이냐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한 분의 뜻을 바로 찾아 가지고 그 뜻대로 죽어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 하나님 뜻이 이런데 또 이래 한번 이렇게 말하니까 요 조금씩 반반으로 서로 나눠 가지고 너도 삐꾸지 말고 나도 삐꾸지 말고 서로 이렇게 한테 합해 가지고 네 주장도 좀 세우고 내 주장도 좀 세우고 이래 가지고하자는 그자가 뭐이냐 하면 그자가 사람을 죽이는 자요. 자살 행위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믿음은 순종인데 순종은 순종할 그 대상은, 순종할 주권자, 순종할 그 능동자에게 내가 피동되는 게 순종인데 능동은. 몇 개나 됩니까? 내가 순종할 능동은 몇 개나 됩니까? 하나야. 하나인 그거 찾기 전에는 헛일이라.
겨자씨 믿음이라는 것은 뭣을 찾는 것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뭐하고 연결된 것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겨자씨 믿음은 무엇과 연결된 것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OOO. 겨자씨 믿음이?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인데 생명 있는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인데 하나님은 다각의 하나님이시라. 무한의 하나님이시라. 그러면 어느 면에 가 붙어야 연결이 돼? 어느 면에 붙어야 연결이 돼, OOO. 하나님은 이렇게 큰데 예를 들면 이만 이렇다고 하면 여기 가 붙을 거야 여기 와 붙을 거야 여기 붙을 거야 어디 붙을 거야? 어디 붙어야 그분과 연결이 돼? 이거 그만 또 깜깜하네.
어디 가 붙어야 연결이 되지? 옆에 앉은 분. 어디 가, 하나님 어디 붙어야 연결이 돼? 저 OOO. 현실에서 뭐? 현실하고 붙어?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요걸 알아야 돼. 요걸 모르기 때문에 자꾸 망하고 만다 그말이오.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아무리 하나님은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이지만 아무데나 가 불는다고 붙는 줄 알아? 안 붙어. 못 붙어. 어디있어? 그 붙으면 탁 때려서 내뜨려 버려.
알겠소?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 당신의 뜻은 이래 가지고 있는데 당신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와서 붙으면 그것을 붙여 둬요 살리요 물려쳐 버려요? 물려쳐.
당신이 피해. 안 피하면 죽기 때문에. 그게 죽기 때문에 피해.
다만 하나님이 나하고 연결되기를 원하는 그 면을 당신이 원하는 그 면을 나타낼 때 그 면에 가서 딱 들어 붙으면 합작이 돼. 알겠소? 이것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그 뜻에 가서 인정하고 그대로 행동해야 되지 자기에게 대한 뜻은 지금 저것인데 어만 데 붙어 가지고 야단을 지기면 하나님에게 떨어지지 않으면 멸망을 받을 것이고 그리 안 하면 하나님은 떠나 버려서 하나님은 그만 만나지 못해.
엉뚱하게 하나님과 하나될라 하면 하나님은 달아납니다. 어떻게 달아나요? 하나님은 달아나는데 어떻게 달아난다고 아가서에 말했어요? 뭣같이 달아나요? 노루와 사슴같이 달아나? 노루 사슴은 그놈이 성격이 달라. 노루 사슴은 저게 보면 시골에 가면 나무를 깎아서 이래 세워 놨어. 이놈이 보리를 와서 뜯어먹고 이라다가서 뻐뜩 눈을 들어보니까 허연 작대기가 하나 섰거든. 고만 뭐 비판할 것 없이 자기 눈에 자기 생각에 없는 생각지 못한 것이 하나 떡 섰으면 보면 만당까지 달아나. 어디까지 달아나. 그러면 자기 생각에 다른 것이 하나 나타나면 만당까지 도망치는 것이 노루와 사슴이라.
하나님은 자기의 뜻에 맞지 안한 것이 자기에게 접촉이 될 때에는 어디까지 멀어져 버려. 그만 못 만나. 그것을 성령이 말하기를 내가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과도 같다 그렇게 말했어. 노루와 사슴과도 같다 이랬어.
이런데, 제 마음대로 하나님을 접해? 제 마음대로 하나님하고 하나로 들어붙어? 저하고 하나님하고 하나 들어붙어? 안 돼. 하나님의 뜻 그걸 찾는 게 중해.
하나님의 뜻 그걸 찾아 가지고 들어만 붙으면 전능이요 만능이라. 능치 못할 것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자기에게 몇이나, 자기가 들어붙어 있을 수 있는 그 뜻은, 뜻으로만 내가 행할 때에 들어붙는데 내가 들어붙을 수 있는 뜻은 몇 개나 됩니까? 몇 개나 됩니까? 하나뿐이야. 언제 있습니까? 현재에 있어. 장소는? 현장에 있어.
이러니까, 그분의 그 뜻을 찾아 가지고 하나인 거게 내가 접선이 돼야 하나가 됩니다.
이러니까, 기독교는 민주주의니까 너와 나와 서로 의논해 가지고 이래 해야 되지 혼자 해서는 안 된다, 의논해서 이래 해야 된다 그거겠소 하나님의 뜻 하나인 그것을 찾을라고 애를 써야 그것이 기독교가 바른 기독교가 되겠소? 여게서 죽고 살아.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는 민주주의라 깨달은 사람들은 사람의 뜻을 찾습니다. 이 사람한테 가 가지고 이 사람 뜻 묻고 저 사람 뜻 묻고 타협을 해서 이렇게 하지만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하는 요것을 믿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가서 의논하지 안해.
사람에게 의논할라면 '여게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혹 그렇게 묻지.
그래도 참된 기독자는 그것도 묻지 안해. 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자기에게 가르쳐 줄라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주님하고 단독이 이래야 되지.
그래서 그전에 고신의 초창기에는 한상동 목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하고 의논하지 말라는 그건 말을 많이 했어. 사람하고 의논해서 말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돌아다니면서 일만내지 말고 어찌 됐든 간에 은밀히 계시는, 당신이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시기를 모든 사람보다 더 원하시고 계시고 또 나에게 중생시킨 그 영도 찾도록 할라고 애를 쓰니까 딴데 물을 필요가 없고 주님을 직접 단독이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애를 쓰면 다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하고 의논하지 말고 하나님하고만 단둘이 의논해서 행동해라 하는 그것을 많이 했고, 그때는 또 타협하지 말라는 말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 교회가 썩어 질라고 하니까 타협하지 말라는 말이 없어. 그때는 하나인 하나님의 뜻을 찾아라. 또 타협하지 마라 그 말이 뭐 가득 찼었습니다. 가득 찼는데 다 내버려 버렸어.
왜? 그것을 자기가 그대로 믿는 주인공들은 다 죽어버렸고 남은 사람은 몇 사람 안 남았거든. 그때에 주장하던 그런 사람들은 '타협하지 말아라. 하나님 한 분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분하고 의논해라. 그분 한 분만 서로 의논의 대상이 돼 가지고 의논해라.' 한 분들은 거의 다 죽어버렸고 남아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없어.
없는데 지금 그때 안 죽고 남아 있는 사람말고 새로운 사람 가운데에서 배워서 아는 사람들은 그대로 하지만 요새는 인본주의라 말이 없어.
민주주의가 인본주의요 신본주의요? 그것도 모를 거라. 인본주의요 신본주의요? 인본주의라. 이 사람은 이게 어떤고 저 사람은 이게 어떤고 인간들의 의견들을 찾아 인본주의야. 신본주의는 하나님 한 분의 뜻만을 찾는 것이 신본주의라.
이래도 이것도 목사들이 몰라. 다른 진영 목사들은 아는지 몰라도 우리 진영 목사들은 몰라. 암만 배워야 인정치 안하기 때문에 바보라. 이라면 저거 또 쑥떡거려서 '이 서부교회, 교회들이 배워 가지고 자꾸 목사들을 바보라고 이래 쌓아 놓으니 이거 뭐 자꾸 위신만 깨뜨리고 이래 놓으니까 이거 되나?' 바보라 말 그 말 제가 바보인 것을 깨닫고 바보인 줄 알고 바보 안 될라고 애를 쓰면 바보 안 되지.
바보라 말이 듣기를 싫으면 바보라 말을 듣기 싫어하면 그 자기 인간성 가운데에 바보가 그 듣기 싫어합니까 바보 아닌 것이 듣기 싫어합니까? 듣기 싫어하는 거 그 속의 그 사람이 바보라 그말이오. 알아듣겠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라도 정확히 깨달아야 됩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하는 것을 단단히 명심하고 있어야 되고 기독교는 타협주의가 아니라. 기독교가 누구 말만 들어요? 여러 사람 말을 들어야 돼요? 한 분 말 들어야 돼요. 한 분 뜻을 순종해야 돼요. 기독자가 누구하고 여럿하고 의논해야 돼요 한 분하고 의논해야 돼요? 한 분하고 의논하는 그것이, 한 분하고 의논을 해 가지고 의논이 둘이 딱 들어맞았을 때에 그걸 뭐라 해요? 한 분이신 하나님하고 자기가 의논해 가지고 그 의논이 딱 들어맞았을 때에 맞은 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해요? 또 모르네.
여기 양성원 학생들 뭐이라고 해요? 하나님 한 분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 뜻하고 내 뜻하고 둘이 딱 들어맞았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뭐이라고 해, 이 양성원 학생? 안경 쓴 양성원 학생.
그것이 겨자씨 믿음이야. 왜? 그라면 왜 대답 안 하고 점잖이 앉았노? 내야 아니까 뭐 실력 있다 하는 그거야. 잘 알았어. 백 점했어.
하나님 한 분의 뜻을 내가 찾아 가지고 그 뜻하고 딱 들어맞은 것을 가리켜서 그것을 겨자씨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연결된 행동이라. 연결된 행동은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우라 할지라도 그대로 되리라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