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6:28
믿음으로 믿음에
1986. 2. 28. 금밤
본문:로마서 1장 14절∼17절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4절에 ‘빚진 자라’ 빚을 다 갚지 못하고 빚진 자라.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큰 것을 주시면서 전하라 이렇게 했는데 이 지극히 보배로운 것을 자기가 다 전하지 못한 그것을 가리켜서 빚진 자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으로도 자기가 이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다 전하지 못했고, 또 전한다고 해도 이 복음의 그 질과 양을 다 전하지 못했고, 또 자기는 이 복음 때문에 참 생명이 끊겨지는 그런 일을 수없이 많이 당했고, 또 고문과 고형도 심히 많이 당했지마는 아직까지 이 복음 전하는 데에 쓰라고 주님이 주신 그 자본을 다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빚진 자라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빚진 자라는 거, 크게 간추려서 세 가지를 말합니다. 전해 주어야 할 그 사람들에게 다전하지 못한 빚, 전해야 될 그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전하지 못한 빚.
또 전해 준 것도 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의 이 가치를 다 전해 주지 못하고 그저 조금 전해서 주다가 만 것,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전하여지기를 힘을 써서 이게 바로 전해졌으면은 전함을 바로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이 복음 위해서 다 바치지 안 바칠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그 질적으로 양적으로 다 전하지 못한 그 미진한 점을 가리켜서 빚진 자라 그렇게 말을 했고, 또 한 가지는 이 전하는 데에 다 비용으로 써야 할 터인데 다 쓰지 못하고 아직까지 몸과 생명이 남아 있는 그것을 두고서 빚진 자라 이렇게 빚진 자라고 말한 것은 세 가지를 들어서 그가 말한 것입니다.
15절에 「그러므로」 이렇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빚이 졌기 때문에,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인 양성 일위이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자본을 들여서 대속을 해 주셨는데 이 큰, 지극히 큰 값에, 지극히 큰 구원에 팔린 자기인 것을 깨닫고 또 이것을 전하면 전함받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큰 구원이 되는 것인데 아직까지 전달하지 못한 데가 있고, 또 전달한 데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심히 아직까지 미급되어 있고, 또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쳐서 늘 매일 나는 죽노라 하는 십자가의 걸음을 걷고 있지마는서도 자기 생명이 남아 있는 한은 ‘나는 이 복음에 이 생명을 싹 다 바쳐야 될 건데’ 하니까 바치지 못한 데 대해서 항상 빚진 그런 자책감을 가졌고 아무리 충성한다고 해도 항상 다 해서 충성, 주님은 십자가 못 박혀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 대속을 주셨는데 자기는 아직까지 생명이 남아 있는 그 점을 가지고서 빚진 자라는 이런 가책감을 가졌기 때문에 그분의 소원은 어서 있는 대로 이거 다, 맡겨 주신 이 비용을 다 투자하는 그것이 저의 목적이요, 또 전할 수 있는 대로 다 전하고 그 실상의 질적으로도 다 충족히 전하는 그것이 그의 사명인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자책감을 가졌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에, 자기 고난당한 것을 다 말하면서 ‘이러나’ 고난당한 거, 갇히기도 매를 맞기도 또 죽음의 그런 어려움을 당한 것도 많이 있지마는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안하고 그 마음에 항상 눌리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자기 할 일을 다 못 했다 하는 이것이 저의 마음 가운데에 항상 걱정이고 사무쳐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15절에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방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해서 전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늘 마련하고 찾고 있다 했습니다.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그말은 복음보다 나은 것이 없다.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고 더 좋은 것이 없고 큰 것이 없고 복음보다 더 큰 능력 있는 것이 없고 복음과 비교해서, 복음과 비교해서 피조물 가운데에는 복음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좋지마는 이것만은 못하다. 아무리 그것이 좋지마는 이것만은 못 하다. 아무리 이것이 좋지마는 저것만은 못하다. 이래, 좋지마는 그것보다 나은 것이 있고 또 그것보다 나은 것이 있고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게 좋지마는 그거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은 나은 것이 있을 때는 그것만 못한 것은 그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되지 못하고 그것은 그 밑에 들어가는 수치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말은 이 천상 천하에 하나님 외에는, 하나님은 이거 복음보다 으뜸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비교하면 복음을 자랑스럽게 할 수 없지마는서도, 복음이 제일 크다 이렇게 할 수 없지마는서도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 어떤 피조물 그런 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그런 것들보다 이 복음이 으뜸되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고 제일 크고 가치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그말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고 말은 잘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외에는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 중에는 복음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고 복음보다 더 권세 있는 게 없고 복음보다 더 보배로운 게 없고 복음보다 사람들에게 더 필요 한 것이 없다. 복음이 제일이다. 그것을 말해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사경회를 가서 참석하든지 참석하면은 그때는 아주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고 아주 복음을 제일 귀하고 보배로운 것으로 이렇게 첫째를 앉혀 놨다가 그 자리에서 어떤 세상 권세 있는 그 권세를 대하면 고만 복음은 내놓기는 부끄럽고 그 권세 있는 그것이 크고 높아서 그 권세 그거는 아주 존대를 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복음은 거게서 아주 거게 대해서는 그 참 내놓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그렇게 수치스럽게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복음은 신구약, 하나님이 사람들로 더불어 계약한 그 두 계약을 가리켜서 복음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 두 계약은 온 천하보다 귀하고 어떤 권세 있는 거보다도 귀하고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고 사람의 생명보다도 귀하고 이거는 이것과 비교할 것이, 서로 어깨 겨룸을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모든 것을 탁월한 이 가치 있는 것이며 보배로운 것이며 우리 인생과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것이며 또 능력도 아무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을 가진, 다시 말하면 최고라.
이렇게 최고로 나는 믿고 있다 그말입니다. 이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그가 부끄러워하지 안하기 때문에 복음의 일군이 돼 가지고서 일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달래고 여러 가지 말을 하면서 네가 사자구덩이 들어가면 죽으니까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을 할 때에 만일 그 살린다는 것이나 다리오 왕이 말하는 것이나 그 나라의 세력들이나 이런 것을 복음보다 크게 여겼더라면은, 복음보다 크게 여겼더라면 사람은 큰 데에 속하는 것이 필연성입니다. 다 사대주의요. 그런데, 이 다니엘은 뭐 다리오 왕이고 온 천하가 다 날뛴다고 해도 그것보다 하나님이 계약한 이 계약은 그런 걸로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그런 능력을 가졌다, 그런 가치를 가졌다, 그 비교가 될 수 없이 아주 탁월하게 높다 이렇게 이 복음을 믿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시대를 승리했던 것입니다. 노아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복음을 어느 정도 가치 있게 보는지? 자기가 어느 정도 가치 있게 보는가 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시는 것입니다. 현실 줄 때에 반드시 그 현실에서 복음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때에는 그것의 가치를 복음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복음을 이것을 자기가 다른 것을 다 내 줘도,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다 내 줘도 복음을 내 주지 안한 그 사람들은 이 복음의 가치를 그런 것보다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자기가 신앙 생활 하면서 ‘나는 이 현실에서 복음보다 이것을 크게 여겼다’ 또 ‘나는 이 시간에 이 복음과 이거와 비교할 때에 내가 어데다가 가치를 높이 두고 있느냐? 요것을 자꾸 우리가 살펴서 따져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복음보다 낮은 것은 복음 취하고 그게 손해 가도 복음을 취하지마는서도 복음보다 더 크고 좋고 높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때는 그 사람은 복음을 버리고 그것을 붙들기 마련인 것입니다. 요 시간 자기를 생각하면서 ‘나는 복음을 어느 정도 가치 있게 여기나, 내가 어떨 때는 복음을 부끄러워했나, 내가 과거에 그때 이렇고 이렇고 할 때는 그게 복음을 부끄러워한 거 아닌가!’ 그런 걸 생각하면서 자기가 자꾸 고쳐 나가고 이래 하지 안하면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이 복음은」 왜 복음을 천하에 제일로 삼느냐?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말하는 거는 뭣보다 돈보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라면 돈보다 낫게 여긴다 하지마는 그거 그냥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그말은 복음은 천상 천하 모든 거보다 복음은 탁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 다음으로서는 보배로운 필요를 가지고 있다. 또 능력도 그러하다.
그런데,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부끄러워하지 안하는 그 이유가 뭐이냐? 안 하는 그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택한 자에게라고 이렇게 말씀하지 안하고 「믿는 자에게」 했습니다. 아무리 택함을 받아도 믿지 않는 자는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자,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구원을 주신다’ 구원을 주신다 말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완성을 가지는 것이니 대속의 완성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구원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우리에게 약속한 그 소망을 다 실상으로 만들어 가지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러면 우리 구원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참 오묘하게도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이 세 가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완성을 이뤄 놓은 건데 완성을 이루었는데, 영원히 가도 죄 없고 어데든지 언제든지 의롭고 언제든지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되어 있고, 그러면 이보다 더 크고 보배로운 게 없습니다. 여러분들, 천상 천하에 피조물 쳐 놓고 천상 천하의 피조물 중에 제일 존귀한 성공과 승리와 영광과 존귀, 그러면 피조물이면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제일 일등이 되는, 제일 일등된 성공자 영광자 존귀자 권력자 부강자 모든 피조물이 다 환영하는 제일 존귀한 자 그 제일 존귀한 자가 누구입니까? 제일 존귀한 자가 누구입니까? 제일 존귀한 성공을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이 제일 존귀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어떤 것이 구원인가 하면 이 제일 존귀한 그 성공을 내것 삼는 것이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것이 성공이오. 예수님이 성공을 하셨는데 그 성공을 당신 위해 한 게 아니고 그 성공을 나를 위해 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완전 성공, 영계와 물질계의 완전 성공,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도 찬성하면서 다 만점을 찬양했고 하나님도 더 원할 것 없이 만점을 찬양했고, 또 하나님의 그 전지의 입법도 만점이라 하는 그 완전의 성공이라는 그 성공이 그것이 당신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줄라고 우리 대신 위해서 한 것인데 고것을 받아서 완전히 내것 삼는 것이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무죄 완성을 이루어 놓으신 그 무죄 완성을 내것 만드는 것이요, 또 의의 완성,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의의 완성을 내것 만드는 것이 구원 성공이요, 또 하나님하고 서로 내주하면서 하나님하고 영원히 떨어질 수 없이 한 덩어리가 된, 하나가 돼 가지고서 영원히 동하고 정하고 하나된 요 성공이 예수님의 대속의 성공인데 이 성공을 자기 것 만드는 것이 이것이 구원 성공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게 늘 여러분들도 많이 들었겠지마는서도 여게 능력이 됨이라 하는 그 능력이라 말은 어떤 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고 하니 폭발력의 힘을 가리켜서 여게 능력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능력이라고 쓰인 이 말은 폭발 능력을 말할 때에 이 단어를 쓰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나님의 폭발력이라.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이 복음은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안한다. 복음의 가치가 제일 크다는 것을 자기는 인정하고 언제든지 자랑스럽게 이 복음을 가지고서 거리낌 없이 어데든지 가서 전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유대인은 유대인이요 헬라인은 바로 그 가깝게 있던 이방인을 말하는 것인데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그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데나따나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또 이 복음은 뭣이든지 어떤 입장 어떤 처지에서라도 ‘여게서는 복음이 이것보다 낫다. 이것보다 저게 낫다. 복음보다 권세가 있다. 복음보다 크다.’ 복음보다 큰 것이 하나도 없고 복음보다 나은 게 없고 복음이 둘째로 가고 복음 위에 첫째로 갈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데서든지 복음이 첫째다. 그것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폭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했습니다.
그러면, 폭발 능력이라는 것은 요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상황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이 나타나는 형편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이나마이트의 그 폭발력을 말한 것인데 여러분도 뭐 다 알기는 알겠지마는서도, 그 남포 놓는 거, 다이나마이트 그거는 그게 폭발될 때까지는 참 보면 시원치 않습니다. 하루 종일 구멍 뚫으면 찍해야 요만치 바위를 구멍 뚫고 다른 사람은 곡괭이로 쪼면 몇 소쿠리, 야문 돌이라도 쪼아내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종일 요만한 구멍만 뚫습니다. 이래 가지고 거기다가 다이나마이트를 재어놓고, 떡이라 하는 것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이래 볼끈 볼끈 다져서 구멍을 막아 놓고 여기다가 도화선이라는 그 도화선에 다가 불을 대면 픽픽픽거리면서 불이 타 들어갑니다. 픽픽픽 타 들어가는데 이 공기 없는 속이지만 댕겨 놓으면 타 들어갑니다. 픽픽 들어가다가 다이나마이트 있는 데 가서 불이 닿으면 그만 꽝 합니다. 그러면 뭐 아무리 여문 바위라도 다 갈라져 버립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데에는, 이렇게, 마치 깨진 그릇에 물이 새 나오듯이 질질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또 시냇물이 내려가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그저 술술 그저 설설 이렇게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이 구원 능력은 폭발과 같이 쾅! 그만 사람이 터지기 전에는, 폭발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멸시하고 천대를 하지마는, 하나님의 이 구원 능력이 나타나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멸시를 하고 천대를 하고 조롱을 하지마는서도 이 능력이 꽝! 나타나면 그만 천하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다 놀라고 다 복종을 하게 되는 그런 형태로 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노아 때도 다른 사람들은 다 뭐 돈 준비하고, 돈 준비, 권세 준비, 또 호의 호식 준비, 안락한 가정 준비 이런 것만 다 준비하고 있는데, 지식 준비 이런 거 준비하고 있는데 노아는 그런 거는 준비 하나도 안 하고 하나님이 너 배 만들어라, 배를 만들어라 하니까 배 만드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조롱을 합니까? 쫄쫄 곯면서 그 배 만든다고 이라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영감아 고만 그 배 뭐 할라고 만들라고 그라느냐고서. ‘그만 좀 저 아들네들 보내 가지고 돈벌이나 해 가지고서 쌀이나 팔아 가지고 밥이나 좀 배 부르게 해 먹지 그 배는 뭐 한다고 그거 만든다고 쫄쫄 곯며 만날 그라고 앉았느냐?’ ‘하나님이 만들라 한다' `하나님이 만들라 하기는 뭐 하나님이 만들라 해, 하나님이 뭐 할라고 굶어가며 그거 만들라 해? 뭐 소용 있노, 배 그거? 뭐할라고?’ 이 조롱을 했다 그말이오.
조롱을 했지마는 하나님께서 홍수를 들이 내루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물이 차차 채여 올라오니까 높은 데로 가기 마련입니다. 그래 가지고 모두 다 피난 가자고서 저 높은 산만당으로 모두 피난을 가는데 이 노아의 여덟 식구는 그 밑에 물이 철렁철렁 오는 데도, 이래 가지고 떡 이래 있으며 있는데 있고 배만 그놈 거머쥐고 있습니다. 그라니까 아, 오라고, 거기 있다가 빠져 죽을라고 하는가, 저 영감 저거 참 미쳤어, 저거. 가족 다 죽일라고 저란다고서 어리석게 보고 자꾸 올라오라 하는데 거기 있으면 물에 죽을 것 아닌가, 그 조그만한 배 그까짓 거 가지고 뭐 어짤거라고 그라느냐고서 이 산으로 올라오라고.
이라는데, 노아 할아버지는 이 복음의 능력을 과거에 경험해 가지고서 알았다 그거야. 이러니까, 나는 안 간다고서, 인제 물이 차여서 올라오니까하나님께서 ‘배 속으로 들어가거라’ 배 안에 다 들어가고 인제 문을 닫았어요. 문은 닫으니까 그 근방에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 하나도 없어요. 물이 없으면 막 그 배로 달라들지마는서도 다 피난갔기 때문에 그 근방에는 물이 들어왔으니까 사람 하나도 없어.
그 전에 내가 보니까 ‘노아 할아버지 배를 지었네. 노아 할아버지 배를 지었네.
아라랏 산 꼭대기에서 배를 지었네’ 이랬는데 그 노래가 틀렸어, 내가 들어 보니까. 이 꼭대기에서 만일 배를 지었더라면 밑에 막 물이 채여 가지고 지금 그 산망당에 올라왔는데 거기 배 한 척이 있어 보이소. 서로 탈라고 달라들면 아마 그거 타지도 못하고 다 까물러 앉을 거라. 그러니까 평지에 만든 거는 분명하다 그말이오.
그랬는데, 배를 떡 타고 나서 비가 고만 올 줄 알았는데 자꾸 옵니다. 자꾸 오니까 처음에는 낮은 산에 갔던 거는 물에 빠져 다 죽고 제일 높은 산에 있던 거는 있고 높은 산까지 다 물 속에 다 들어가 버리니까 이제는 그때 돈 푼 준비한 사람, 지식 준비한 사람박사 준비 말이오박사 준비한 사람, 돈 준비한 사람, 권세 준비한 사람, 재미 있는 참 깨소금이 흐르는 가정 준비한 사람 이 모두다 그렇게 준비한 사람 있었는데 노아 할아버지는 이거 어리석게 하나님 시키는 대로 등신같이 방주 준비만 했다 그말이오.
이라다가, 하나님이 그만 비를 많이 보내 가지고서 땅이 하나도 없이 전부 물 속에 다 파묻히고 마니까 그때 이 준비한 사람이 다 헛일이라. 그때에 노아의 이 여덟 식구만 홍수 속에서 두렁두렁 떠다니면서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입니다.
홍수 오기 전까지야 누가 그거 알았습니까? 홍수가 올 때도 몰랐어. 이제 높은 산만당에 사람 하나 없이 전부 다 전멸이 될 그때사 모든 인간의 준비는 다 헛일이고 방주 준비한 노아의 준비만 성공했어. 그러니까 그 전에는 다 몰랐지마는서도 그때에 벌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는 그때 갑자기 나타났어.
갑자기 비가 내리고 해 가지고 나타났어.
이번에 중간반 입학식 설교를 저를 하라 해서 제가 입학식 설교를 제가 했습니다.
제가 했는데 내가 이 다섯 가지 준비를 말했어. 이 다섯 가지 준비를 했는데 홍수가 와 가지고서 모두가 다 더부렁더부렁 떠서 다 물 속에 매장해 가지고 있으니까 이 다섯 가지 준비한 사람 중에 누가 제일 준비를 잘했습니까.
여러분들은 무슨 준비할랍니까 하니까 전부 노아 할아버지의 자손이라. 전부 방주 준비한다 해요. 오늘도 불탈 게 그때와 꼭 같습니다.
그때 불이 척, 소돔 고모라 성에 불이 내려온 거와 마찬가지로 이 천지가 불타는 그런 불이 척 내려오면 그때 뭐 오만 거 다 요래 찌지고 요래 찌지고 요래 그리고 요래 그리고 또 박사 학위 얻을라고서 세계에 돌아다니고, 또 정권 하나 좀 더 높은 자리 올라갈라고, 요거 가정에 모든 장비에 대해서 요거 마련하고 조거 마련하고 오만 거 마련하고 짜다라 마련하지마는서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불이 턱 내려오면 다 헛일이라.
복음의 능력은 다이나마이트와 같애요. 그때 벌써 그게 꽝! 그라면 준비한 사람뿐이지 준비 안 한 사람은 그때는 소용없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서 가운데 더부렁더부렁 가니까 그때사 산만당, 높은 산만당에 있는, 사람들이, 저 노아가 지금 저 참 구원 얻었다고서 나도 그 배속에 가면 좋겠다고서 고함을 지른다고 되겠소, 헤엄을 쳐 가지고 되겠소? 꽝! 그라면 헛일이라. 꽝! 그라기 전에 하나님의 이 복음의 능력의 구원은 사람들이 시시하게 여길 때 그때 준비를 해야 되지 벌써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이 보일 때는 그때는 벌써 때가 지나갔기 때문에 준비한 사람들만 얻지 다른 사람은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다이나마이트 모양으로 설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설설 그래 구원하면은 모든 사람이 다 보고서 따라가서 구원 얻을 터인데 꼭 다이나마이트 모양으로 이렇게 그만 아무도 모르게, 시시하게 조롱하고 천대하고 했는데 갑자기 그만 구원이 꽝! 이래 버리고 나니까 뭐 구원 준비할 여가도 없어.
그 암만 구원되는 걸 보고 부러워하지마는 소용이 없어. 왜 그렇게 할까?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다니엘이 ‘야, 한 달 동안만 너거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아라.’ 다리오 왕이 자꾸 합니다. 그럴 때에 벌써 해가 기울어지기까지 그래도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도 안 나타나고 다리오 왕은 자꾸 다니엘에게 사정을 하고 다니엘은 ‘안 됩니다.’ 하고서 이렇게 신강하도록 냅두고 뭐 하나님의 도우는 힘이 조그매라도 능력이 나타나 가지고서 공중에 소리라도 ‘야, 다리오 왕아 그 다니엘에게 자꾸 조우지 말아라.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계속할라 하는데 왜 조아 쌓느냐?’ 요 말 한 마디만 나와도 그거 좀 다니엘이 숨을 쉴 거라. 그런데 아무 흔적도 없습니다. 표도 없어. 흔적도 없고.
‘다니엘 그라면 네가 나 시키는 대로 너거 하나님께 한 달 동안만 기도하지 말라 해도 꼭 한다고 하니 할 수가 없다.’ 그래 모든 역사들을 불러 가지고서 ‘묶으라’ 묶었다 말이오. 묶을 때 그때 능력 안 나타나. 묶어 가지고서 지금 사자구덩이 던질라고 이래 이래 하면서 던질라고 훅 던지면 그만 사자구덩이 들어가 버린다 말이오. 이래 이래 하면서도 ‘지금이라도, 지금이라도 네가 그만 기도 안 한다 해라. 지금이라도 안 한다 해라.’ 그때 그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으면 좀 다니엘도 고생 덜 할 것 아니겠소? 하나님의 능력 안 나타나. 이래 가지고서 훅 던져서 사자구덩이 툭 떨어지고, 툭 떨어지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거야.
왜? 툭 떨어뜨려 놓고 난 다음에는 고만 문을 철컥 닫아 버리고 나니까 그건 벌써 사자가 다 잡아먹었을 것이다 하고 문 털컥 닫고 저거는 뭐 잔치하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사자들 모두 입을 막고 발톱을 봉하고 해 놓으니까 다니엘을 삼키지 못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 다니엘이 살아 나오지 안했습니까? 나와 가지고, 나오니까 그만 다니엘의 원수들은 다 기진해 버렸고 다니엘의 원수들은 다 잡아다 지금 묶어 놓고, 왕도 굴복했고 모든 전국 백성이 다니엘 앞에 딱 굴복을 다 하고 온 전국에 하나님을 섬기는 섬김이 가득 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기 전에 그랬으면 좋을 것인데 왜 사자구덩이 들어가기 전에는 하나님이 그렇게 다이나마이트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베풀지 안하시고 그랬습니까? 왜 꼭 사자구덩이 잡아 들어가고 난 다음에사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시고 그 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베풀어 주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지요? 그래, 아직까지 묶어 가지고 던진다 할 때도 다니엘이 나는 기도합니다 했지마는 아직까지 다니엘이 ‘예, 그라면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할라면 할 수 있는 고 여유 시간이 있을 때까지는 미결이라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그라면 기도 안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고 여유 시간이 있을 때까지는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을 변동하지 안하고 하나님께 완전 순종을 한다 그렇게 판정지울 수는 없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자구덩이 던지기 전에는 그 사람이 나는 기도하겠다고 믿음 지켰지마는서도 나중에 던질라 할 때 이래 막상 던질라 할 때 그때라도 ‘아이구, 그라면 내가 그만 항복하고 내가 그만 기도 안 하겠습니다’ 이랄란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믿음 지키는 일이 변동될 수 없는, 이제는 완전히 믿음을 지킨 것이 다 믿음 지킨 것이 완전히 다 돼 버리고 변동할래야 변동할 수 없는 여유의 시간이 없이 사자구덩이에 들어가 버렸으니까, 던져 들어갔으니까 그다음에 문 닫아 놨으니까 변동해 봤자 바깥에 사람들은 뭐 변동하는 게 보이지 안한다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다니엘이 그 안에 사자구덩이에 들어가 버렸으니까, 사자구덩이에 들어갔으니 그다음에 다니엘이 ‘기도를 안 할 걸 기도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기도 한다는 것이 변동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그러면 다니엘이 기도하겠다는 그 믿음이 끝장나는 때가 언제가 완료가 됐고 언제 끝장났습니까 언제가 완료입니까? 언제 완료가 됐겠습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 생활이 언제 완성이 됐겠습니까? 묶을 때에? 끌고 갈 때에? 사자구덩이 던질라고 얼럭얼럭해 가지고 지금 던질라 할 때에? 언제 다시는 변동 없는 그 믿음에 완성이 됐겠습니까? 이제는 다시 변동할래야 변동 할 수 없는, 여유가 없는 그때가 언제입니까? 사자구덩이 던져졌을 때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 능력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데 그 믿는 믿음이 이제 반 믿음인지 참 믿음인지 지금 믿다가서 언제 변동될란지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능력이기 때문에 그 믿음이 불완전했을 때, 믿음이 반 됐을 때에 하나님이 구원할라 하면은 하나님의 능력이 반 구원할 수 있겠소 온 구원할 수 있겠소?예? 어떻겠소? 우리 ○○목사님 제매. 예? 못 하겠어? 반 구원도 안 돼? 반 지금 중간쯤 믿었는데 그라면 중간쯤 좀 그렇게 믿었으니까 중간쯤 주면 좋지 안 해? 그거는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판정이 안 났기 때문에 안 믿는다 할 수도 있고 믿는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미결이라. 그렇지 안해요? 미결이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그거야.
이래서 다이나마이트의 이 구원 능력이 이거는 필연적으로 안 이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그러면, 이 다이나마이트가 폭발되는 거와같은 그런 형태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것은 왜 그렇게 되는가? 믿을 때에 그 능력이 구원하기 때문에 그 믿음이, 믿느냐 안 믿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 이라다가서 이제 이는 확실히 믿는 것으로 결정되고 다시는 안 믿는다는 그 변동이 있을 수 없는 최종말 고때까지에 이르러서 고때까지 믿을 때에는 이제 그다음에는 믿는 것이 변동될 수 없는 때이기 때문에 믿음에 완성된 때라 그말이오. 고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알겠어요?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폭발 능력이라. 왜 그렇게, 해동되듯이 그렇게 실실 구원하지 안하시고 그렇게 토막토막의 믿음을, 믿음의 댓가로 믿음을 인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토막토막이 다 갑자기 폭발 모양으로 쾅! 터지고 쾅! 터지고 이렇게 구원되는가?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그 믿음에 완료되기를 기다립니다. 믿음에 완료되는 고 때가 하나님의 폭발의 구원 능력이 나타나는 때이기 때문에 고 과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완성이 되고 다시는 그 믿음이 변동될 수 없는 고때에 딱 도달될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안에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맛을 보지를 못해요. 그걸 가리켜 말합니다. 능력이 됩니다’
17절에, 그러면 이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폭발되는데 노아에게는 온 천하 사람을 다 정죄해서 멸망을 시키고 노아의 여덟 식구만 구원 얻는 이 하나님의 능력이니까 이 능력은 온 세계를 전멸시키고 노아의 여덟 식구만 구원한 이 능력이니까 역사에 제일 큰 능력 아닙니까? 이렇게 큰 능력이, 이 폭발하는 이 큰 능력이, 이 능력이 어데 들었습니까? 이 능력이 어데 들었지요? 여기 여반에 좀 대답해 봐 어데 들었소? 그 능력이 하늘에 있소, 땅에 있소, 어데 들었소? 예? 그 능력이 복음에 들었어, 복음에.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이 능력이 복음 속에 들었다 말이오. 복음 속에 들었어.
이 능력이 복음 속에 들었어. 이 두 계약 속에 들었다 그말이오.
그런데 이 계약, 이 복음은, 17절에, 「복음에는」 이 복음이 뭐이기 때문에 천하를 물로 심판해서 천하를 전멸도 하고 또 믿는 자 여덟 식구만 구원하고 나머지기 안 믿는 자는 천하 인류를 짐승이고 생명 있는 것은 다 전멸하고 이렇게 하는가? 온 천하에 있는 모든 생명 가진 거는 전멸을 하고 그런 능력이 어데 이 지금 복음 속에 들었는가? 또 믿는 자는 천하 사람이 다 멸망받는 데도 여덟 식구는 뭐 오히려 영광스럽고 하나도 다치지 안하고 이렇게 구원하는 그 능력이 복음 속에 어찌 들었는가? 홍수가 떡 그치고 나니까 온 우주는 노아의 것입니다. 온 우주는 노아의 것이라.
이 들도 내것 저 들도 내것 저 산도 내것 동양도 내것 서양도 내것 전부 노아 할아버지 것이라. 전부 다 됐어. 이 복음에는 천하의 인류를 전멸하는 능력이 있고 전멸하는 그 속에서도 구원하는 능력이 있고 천하에 있는 모든 소유를 다 노아의 여덟 식구에게 다 이렇게 유업으로 상속시켜 줄 수도 있고 이런 능력이 이 복음 속에 들었습니다. 이 복음 속에. 복음 속에 이렇게 큰 능력이 있다 그말이오. 복음 속에 이 큰 능력이 들었는데 복음 속에 어떻게 해서 복음 속에 이 큰 능력이 들었는가? 한번 좀 알아 봐요. 이 복음 속에 어떻게 해서 이 큰 능력이 들었는가? 보자, 내가 잘 안 보인다. 이 복음 속에 큰 능력이 들었는데 뭐 왜 들었어? 17절에, 복음 속에 무슨 능력이 들어서 이렇츰 막 이럴꼬? 복음 속에 뭣 들었지? 이 큰 능력이 들었습니다. 좌우간 우주를 흔들고 우주를 없애고 있게 하고 뭐 우주를 없앨라면 없애고 있게 할라면 있게 하고 천하 인류 없앨라면 없애고 있게 할라면 있게 하고 이 속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복음 속에는 복음 속에 왜 이래? 예? 백 점이네. 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가 들었다 그말이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뭐입니까, 하나님의 의가? 도성 인신하셔 가지고서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서 사죄, 칭의, 화친의 영생을 주신 예수님의 그 건설해 놓은, 설정해 놓은 공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의는 어떤 의이냐? 이 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의를 위해서 해 놓은 일이 아주 태초부터 해 놓은 일이 큰 일이 있었는데, 태초부터 이 의를 위해서 해 놓은 일이 큰 거 두 가지 있었는데 두 가지가 뭣뭣인고 한번 알아 보시이소. 두 가지가 뭣뭣입니까? 큰 거 두 가지가 있는데 두 가지가 뭣뭣이지요? 인제 우사를 한번 시켜야 될세. ○○○목사님 이 큰 거 두 가지가 뭐 뭐이지요? 하나님의 주권? 조금 새끼를 쳐야 되는데. 주권이면 뭐 뭐 주권이면 주권 영원 자존 주권인데 뭐 주권이면 주권이지 뭐. 예? 뭐라 하노? 큰 거 해 놨는데 하나는 예정입니다.
하나는 예정이요 하나는 창조요.
이 우주에 이런 거 저런 거 자꾸 전개돼 나가는 전개되는 것이 그때 예정대로 전개되는 것인데, 이 의 위해서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영원까지를 설계했습니다. 그 설계한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오. 그거 또 설계한 대로 그대로 모두 다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이 우주에 이런 거 저런 거 영계에도 있고 창조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뭐 위해서 했어요? 예? 의를 위해서 했어. 이 의를 위해서 했어. 의. 의 이게 뭐인데? 의 이게 뭐인데? 의를 위해서 했어. 의. 의가, 이 복음에는 의가 들어 있습니다. 의가 들어 있어. 의가 들어 있다니? 사죄 칭의 화친의 하나님의 목적 완성이 들어 있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목적 완성이 들어 있어.
이러기 때문에, 껍데기는 보면은 뭐 구약이라고 처음 계약 또 신약은 종말 계약 이렇게 하나님이 계약을 두 번 계약을 선포해 놓은 계약이 있는데 구약은 처음에 선포해 놓은 계약이고 신약은 마지막으로 종말로 결론으로서 계약을 선포해 놓은 것이 신약입니다. 구약은 처음에 약속했다고서 구약, 신약은 고 뒤에 신약 시대에 약속했다고 신약, 이 두 계약이라.이 두 계약이 복음인데 이 복음 속에는 굉장한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이 복음 속에는 굉장한 능력이 들어 있어. 이 복음이 큽니까 우주가 큽니까? 예? 우주가 큽니까 복음이 큽니까? 복음이 커. 복음을 위해서 우주가 있습니까 우주를 위해서 복음이 있습니까? 복음 위해서 우주가 있어. 영계는 복음 위해서 있습니까 복음이 영계 위해서 있습니까? 영계가 복음 위해서 있어. 이렇게 복음은 큽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복음대로 순종만 하면 꽝! 그라면 우주가 다 망하고 불타고 절단도 나고 천하고 다 불타도 요 복음을 믿는 자는 타지 안하고 생생하게 노아 홍수 때에 노아 여덟 식구와같이 산다 그것을 여게 다 말씀하고 있다 말이오.
이런데, 그거는 믿음으로 되기 때문에 꼭 구원의 능력이 나타날 때에는 똑 폭탄처럼 나타나게 된다. 왜 그래 폭탄처럼 나타나는가 질질 안 나타나고?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 얻기 때문에 아직까지 믿는다 하지마는서도 믿는지 안 믿는지 있어 봐야 되지.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때에는 아직까지 폭탄 능력이 나타날 수가 없어. 그 다음에 의심할지 모르기 때문에. 의심을 할래야 할 수 없고 이제는 안 믿는다고 할래야 할 수 없고 이제 이거는 믿음으로 끝나 버렸다 말이오. 믿음으로 끝나 버렸으니까 그때는 폭탄이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신 것이 그것이 예수님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지키는데, 믿음을 지키셨는데 아직까지 십자가에 달려 가지고 있어도 폭탄 능력은 안 나타났어요. 안 나타났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어도. 나중에 이제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서 숨이 딸칵 끊어지니까 어찌 됐습니까? 여러분들 모르지? 딸칵 끊어지니까 세상 왕 마귀는 대가리가 파싹 깨졌습니다. 고만 마귀는 고만 손을 들었습니다. 들고 그때부터는 고만 완전히 점령을 당했습니다. 이래서 사망도 생명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이래서 사망을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마귀를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죄를 완전히 멸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택한 자들을 완전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만일 고라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가지고서 지금 피 흘리고 계시다가서 마지막에 아직까지 숨이 떨어지기 전에는 아직까지 안 돼. 숨이 떨어지기 전에는 이 능력이 예수님에게 전폭을 기울일 수가 없어. 이 능력이 예수님을 전적 옹호할 수가 없다 말이오. 왜? 믿음으로 되기 때문에 믿을란지 의심을 할란지 낙망할란지 누가 알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못 나타나고 있다가 ‘다 이루었다’ 해도 안 돼. `다 이루었다' 해도 안 돼요.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이제 생명이 딱 끝났으니까 인제 믿음으로 끝나 버렸으니까 뒤에 의심이라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말이오. 믿음으로 끝나 버렸으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바위가 터지고 자던 성인들이 일어나고 휘장이 갈라지고 막 야단났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마귀의 하는 일은 완전히 실패가 돼 버리고 말았고 이제 사망과 죄와 마귀과 승리하던 것은 예수님이 바싹, 죄도 바싹 깼고 사망도 바싹 깼고 마귀도 바싹 깼고 완전히 깼고 택한 자가 완전히 구원의 승리를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내나 폭발력과 같애.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믿는 대로 되기 때문에 믿음에 완성이 되기 전에는 거게 대한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하마나 하마나, 내가 요만침, 내가 기도 하겠습니다’ 이라니까 하나님이, 기도하겠다 하니까 다리오 왕이 자꾸 조아대니까 조아대니 고만 하나님께서 좀 능력을 베풀어 줬으면 좋겠는데, ‘기도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해도 끝끝내 똘똘 묶어 가지고서 사자구덩이에 집어 넣을라고 지금이라도 항복해라 해도 그대로 능력이 안 나타납니다.
사자구덩이에 툭 집어 던지니까 툭 떨어지니까 땅에 떨어지지도 않게 사자들이 벌떡 들어 가지고서 그만 요 위에 앉히는데 사자가 오니까 이제 뜯어먹을 줄 알았는데 입을 다 봉해 놓고 이러니까 사자 담요 속에서 들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가지고 그때 나타나 가지고 속에서 그날 밤에, 아마 산 사자 속에서 호강 누린 것은 다니엘밖에 없을 거라. 그렇게 그때 벌써, 밖에 사람은 모르지마는 속에 이 다이나마이트의 능력이 지금 나타났다 말이오.
나타났는데, 사자구덩이 안에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다리오 왕을 바짝 눌러서 고만 다리오 왕이 고만 고패를 드리도록 그렇게 다리오 왕을 바짝 점령하도록 하는 것은 다리오 왕이 가 가지고 ‘다니엘아’ 할 때 `예' 대답하는 통에 고만 다리오 왕은 바짝 깨져 버렸어. 또 그날 아침에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서 써억 들려 올라오니까 다니엘을 잡아 죽일라고 하던 그 모든 원수들은 바싹 깨져 버렸어. 또 그들을 다 잡아서 사자구덩이 다 집어 넣고 나니까 고만 그 나라에는 평안합니다.
뭐 다니엘 말만 하면 모두 예 예지 다니엘 항거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요렇게 꼬시게 재미 있게 되는 것이 기독교인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날 때는 꼭 폭발하는 거와같이 고렇게 나타나는 요 비밀을 모르는 데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다가, 가다가 가다가 그만 떨어져 버리고 만다 말이오.
왜정 말년에도 ○목사라 하는 목사가 하나 있었어요. 있었는데 그분이 모두 육 년 반인가 모두 감옥에 들어 있었는데 석 달인가 남궈 놓고, 석 달 남궈 놓고 하마나 기적이 나타날까 나타날까 하는데 그 육 년 뭐 오 개월 만에도 나타나지 안해.
자기 부인이 와 가지고 자꾸 살살 꼬우고 이라니까 ‘에이고, 안 됐다’ 하마나 하마나 기다려도 안 됐으니까 `에이고, 안 됐다.' 안 됐다 하고서 떡 항복하고 나가고 난 다음에 석 달 후에 해방돼 버렸어.
여러분들 요거 단단히 아십시오. 복음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을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이 제일이다.
천하를 망칠라면 망치고 있게 할라면 있게 하고 우주와 영계가 이 복음 때문에 있다. 영원히 복음에게 이용을 당한다. 복음의 것이다.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은 다 이 복음의 것이다. 네가 복음만 믿으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은 다 너의 것이다. 성경에 이렇게 계약해 놨소 안 해 놨소. ○선생, 계약해 놨어? 어디다가? 3장 21절 그래. 21절 이하에 있어.
하나님이 계약해 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복음에는 뭣 때문에 이 큰 능력이 이 능력이 들어 있느냐? 있는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목적이 이 속에 들었지 도성 인신이 이 속에 들었지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의 공로가 여기 들어있지,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여기 들어 있지, 기업이 다 들어 있지 여게 다 들어있어. 이렇기 때문에 이 복음에서는 이런 폭발하는 그 지극히 큰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이 복음대로 살고 보니까 폭발이 나고, 복음대로 살다가 폭발이 났으니까 그 다음에 다시 복음대로 살 용기가 나요 복음대로 살기가 싫겠소? ○○○목사님. 예? 살 용기가 나와? 복음대로 살고 나니까 꽝 터지니까 ‘하 야, 수입이 있다. 재미 있다.’ 또 그다음에 또 복음대로 사니까 또 쾅 터지고 이제 조금 더 큰 거 믿으니까 더 크게 터지고 긴 거 믿으니까 더 길게 터지고 이거 지금 자꾸 터지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제 이 믿어 본 자는 믿어 보니까 또 더 믿게 되고 믿어 보니까 더 믿게 되고 자꾸 믿음으로 믿음으로 자꾸 나아가게 된다. 안 믿는 자는 점점 안 믿고 보니까 자꾸 안 믿게 된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오직 의인은」 이 대속의 공로를 입은, 이 대속의 공로를 확실히 입고 믿는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거 외에 살 게 없어. 믿음으로 사는 거 외에 살 것이 없어. 믿음으로만 살지.
믿음 외에 딴걸로 살 게 있어야지요. 이러니까, 의인들은 믿음으로만 살게 된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이 한번 믿어 보니까 딴거보다 수입이 제일 낫거든. 믿음이 닥치기 기다리다가 믿음 닥치니까 또 믿고 또 믿으니까 더 큰 수입 오고 또 믿으니까 더 큰 수입 오고 자꾸 이라니까 믿음에서 믿음으로 믿음에서 믿음으로 자꾸,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된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자꾸 나아가게 된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밤에 요것을 기억합니다. 요거 다 기억해요.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그 능력의 구원을 받는데 구원은 전부 은혜요. 공짜배기요.
공짜배기인데 이 공째배기를 받는 방편은 믿음이라. 믿음 가지고 뭐 만드는 거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에게 공짜배기로 주는 거 받는 거라. 하나님께서 ‘야, 이것은 지금 물 모양으로 흐르는 거니까 박지기 대라’ 하면 박지기를 대야 되지 박지기 안 대고 산대미 대면 거기 받혀요 안 받혀요? 좔좔 다 흘러 버리지.
박지기 대라 할 때는 박지기 대고 전대 대라 할 때는 전대 대고 또 요리 와서 요 와서 또 받아라 할 때는 요리 와 받고 이런데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데 시키는 대로 안 하는 데는 헛일이라.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당신이 공짜배기로 주는 것을 우리가 받는 방편이라. 암만 잘 믿어도 그 믿음 가지고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구원을 털끝만치라도 만드는 건 아닙니다. 전부 공짜배기로 받는 거뿐이오.
그런데, 받는 방편은 전부 믿음이라. 하나님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그것이 믿음이라 그거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는다는 거 요거 단단히 기억하고 또, 그러면 우리가 이 복음을 믿을 때에 어떻게 그렇게 큰 폭발의 구원이 나타나는가? 복음이 뭐이기 때문에 그런가? 복음대로 순종하면 이렇게 다이나마이트의 이 큰 구원의 능력이 폭발돼서 나라도 변동되고 또 요셉 같은 사람은 내나 질질 감옥소 있다가서 떡 ‘됐다’ 하고서 폭 폭발이 쾅! 그라니까 일자 무식 그게 당장 총리됐어. 애굽 나라의, 세계 제일 강대국의 총리대신 돼 버렸어.
이렇게 복음대로 믿으면 이와같이 되는데 그 이유가 뭐입니까? 복음 속에 뭐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복음 속에 뭐이 들었소? 하나님의 의가 들었어.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도성 인신, 하나님의 목적 이것 때문에 우주를 지었어.
그러니까 이 복음에 들어 있는 이 의가 우주보다 큽니까 작습니까? 어떻소? 우주 억억억억만 배도 더 돼. 우주와 비교를 못 하는 거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 ‘순종하면 구원의 능력이 나타난다 하더라’ 이라면서 순종을 하면서 ‘내가 이 순종한다고 뭐 이 순종한다고 그렇게 큰 능력이 나타나겠나, 내가 순종한다고 이렇게 뭐 지금 내가 사형을 받아 가지고 있는데 여게서 무슨 큰 능력으로 살아나겠나, 내가 지금 살림살이 다 끌어 박아서 지금 아무것도 없는 영 전멸이 되고 있는데 내가 믿는다고 해 가지고 여기서 한번 푹 솟아오를 수가 있겠나?’ 사람들이 그래 가지고 ‘이 성경대로 산다고 해서 여게서 무슨 그런 큰 변동이나 폭발되는 그런 큰 성공이나 신기한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겠나?’ 사람들이 이래가지고 다 못 받는다 그말이오.
‘이 복음대로 믿는다고 그래 나타나겠나?’ 그 나타나는 이유가 뭐입니까? 복음 속에 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어. 의 때문에 그래. 네까짓 게 믿음 지킨다고 네 믿음 때문에 되는 게 아니고 네가 믿을 때에는, 이 복음을 믿을 때에는 복음 속에 큰 폭탄의 능력이 있다. 뭐? 하나님의 의가 들어 있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지켜서 행하면서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한다고 뭐이 되겠느냐?’ 그럴 때에 되겠느냐 하는 고놈을 죽여 버리이소. ‘안 돼? 이 복음은 하나님이 이 복음 성취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고 또 영원히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부활까지 하셨어. 이것 때문에 우주를 만들었어. 이렇게 큰 것이 여기 들어 있는데 내가 당신이 계약한 대로 내가 순종하는데 그 순종에 기적과 축복이 나타나지 안해?’ 그놈을 죽여 버리라 말이오. 옛사람 고놈을 죽여 까뭉케 버려요. 확신을 가지고. 오늘 저녁에는 요 말씀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볼끈 잡아요. 요 진리를 볼끈 잡아요. 물샐틈이 없는데 뭐. 물샐틈 없이 요대로 꼭 잡고 요대로 실행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