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6:23
믿음안에 사는 것
1986. 12. 29. 새벽 (월)
본문:갈라디아서 2장 19절∼21절 내가 율법으로 말마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다 세 가지 죄를 범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요, 또 이 사탄하고 합작된 죄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다 범한 죄인이라, 이러니까 율법대로 우리는 범죄한 값을 인해서 이미 죽어 있는 자입니다.
영은 단번에 죽었고, 영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는 죽은 자를 창조하지 아니하시지마는 창조되면 역연 사람 되기 때문에 창조되면 되는 동시에 우리는 정죄 아래에 있어서 죽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영은 지음만, 산 자로 지음만 받았지 지음 받은 동시에 우리는 정죄받아 죽은 자들입니다.
또 우리의 심신은 정죄를 받아 죽었으나 이 심신은 단일체가 아니기 때문에 영과 한꺼번에 정죄받아 죽었지마는 영은 단일체기 때문에 단번에 죽었고 우리의 심신은 수많은 종합체이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죽어서 세상을 떠날 때는 완전히 육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사는 것이 사는 것인 줄로 이렇게 알지마는 한 시간 살았으면 그만치 많이 죽었습니다. 십 년을 살았으면 그만치 많이 죽었고 그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이 한정하기를 얼마를 한정해 놨든지 육의 생명은 시간이 가면 가는 것이 자꾸 자기가 죽어서 마지막에 다 죽어 버리는 것이 그것이 육체의 생명이요, 영의 생명은 단번에 죽었습니다. 영은 하나로 되어 있는 단일체요 단일성이지마는 이 심신은 수많은 지체 세포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심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율법으로 인해서 우리가 벌써 죽어 있는 자입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율법으로 인하여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인데, 율법으로 인해서 우리는 죽은 자인데 예수님이 내 대신 죽음의 댓가를 내셨으므로 내 영은 살아날 수 있는 그런 해방을 받았고 이 심신은 산 자 됐습니다. 왜?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를 한 죄에 둘을 형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죄를 다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는고로 우리를 형할, 형을 할 수 있는 그런 법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산 자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공로를 본인이 믿든지 안 믿든지 법적으로는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죽을 이유가 없는 자 되었는데, 이렇게 법적으로는 우리가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법적으로는 죽었지마는 실상은 우리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이런 존재가 됐습니다. 왜? 예수님이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안 죽어야 된다 그거요.
이랬는데 이런 법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공로와가만히 있거라. 여게 있는 여학생 하나 뭐 중간반 학생, 반사 하나 안경 쓴 거 하나 와 있었는데 그거 요새 안 보인다. 그거 어데 가 또 처박혀 앉아 죄짓고 다니노? 이거 참 탈이야. 낯빤대기만 좀 뺀드그리하면 어느 놈이 주워먹는지 어떻게 하는지 그만 눈에 안 보이요. 안 보이고 나면 눈구멍이 쑥 들어가 가지고서 무슨 어데 가 돌아 다니는지 그래 가지고 그만 학생도 뚝 떨어지고 그만 살살살 숨어서 어데 가 숨어 않았는지 콧등이도 안 보이요.
그거 저 망치는 것입니다. 연애한다고 그거 결혼되는 것 아니요, 자기만 더러워졌지. 또 그만치 하나님 앞에서 작대기를 그었으니까 벌써 저주가 그만치 쌓였지 그게 자기에게 유익된 것 하나도 아니오. 어리석지.
내가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꼭 그런 줄 알면 그까짓 거 치리를 하든지 이럴 건데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이제 나는 볼 때 그 모두 다 그런 것이 그래 가지고 그게 사고 아니냐? 보면 그만 하나님하고 멀어져 버리요. 감감하게 멀어져. 여기 와 늘 앉았는데 그것도 안 보이고 그 옆에 같이 앉은 것도 안 보이고, 안 보이네, 보니까. 그 무더기가 안 보이네. 참 불쌍해.
이 공로를 법적으로 입은 자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대속의 공로로 인한 성령과 진리로 우리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면 살아나는 그것은 본인이 알게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모르게 살아납니다.
살아나면 살아나고 난 뒤에 혹은 즉시, 혹은 몇 년 뒤, 혹은 몇십 년 뒤 믿는 행위가 나타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에, 마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안하지마는 바람이 불면 그 분 바람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바람이 동풍이 불었다 서풍이 불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와 같다.
나무가 서쪽으로 기울어지면 동풍 불었구나. 또 남쪽으로 기울어지면 북풍 불었구나 하는 거 아는 것처럼 중생되면 중생된 그 활동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인 것을 믿는 자 된다. 전도하면 전도 받아서 ‘예수 믿겠다’ 하는 그것은, 믿기로 작정하고 하는 그것은 중생이 아니오. 그것은 벌써 중생된 자가 예수님 믿기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율법에 범죄했으면 죽는 것 아닙니까? 법적으로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라” 이는 하나님을 향해서 이제는 영원히 살기 위함이라. 이거는 법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그래 됐다 말이오.
20절에 “내가” 이 사람은 법이라 하는 것을 이걸 그래서 내가 그전부터 나는 깨달은 게 있어서 ‘사람을 공부를 시킬라면 법을 시키라. 법을 시키면 법에 대한 이치를 알기 때문에, 법을 또 악용하는 것도 있지마는 그래도 법을 배운 사람은 좀 무법하게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법 없이 행동을 하지는 안해. 그래도 법이 있기 때문에 뭐 잘못 깨달아도 법대로 뭣을 할라고 그렇게 좀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법을 한 사람이 법을 악용하는 것도 있지마는 그래도 법을 모르는 사람과 법을 아는 사람이 다릅니다. 또 이 사회의 물을 먹어서 사회성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또 달라. 사회 물을 먹은 사람은 그렇게 사회에 거슬리는 그런 아주 깜깜한 벽창호같은 그런 짓을 못 합니다. 또 윤리를 자꾸 배워서 안 사람은 윤리를 어기는 그런 일을 못 하고 도덕을 배운 사람은 도덕에 어기는 그런 일을 많이 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알고 있기 때문에.
법에 걸리면 꼼짝을 못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법이 권력이 없어 그렇지 법에 걸리면 꼼짝 못 합니다. 우리 나라 같은 나라는 뭐 법치 국가라고 말은 하지요.
‘우리 나라는 법치 국가라’ 법치 국가라 말은 정권이 다스리는 게 아니고 법이 다스린다 그말이오. 법치 국가라 말은 법이 다스린다. 그러기 때문에 법에 죄인이면 죄인이요 법에 의인이면 의인이지 법대로 꼭 하지 법을 어겨서 사람들의 뭐 권리대로 이렇게, 암만 대통령이라도 대통령 마음대로 못 하고 꼭 법대로 한다. 그래서 법치 국가라 하는 말은 자랑하는 말이오. 우리는 법으로 다스리는 법대로 사는 그런 나라이다 하는 말인데 실은 우리 나라는 법대로 하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이래서 법대로 하면은 무서운데 법을 저 말단의 법을 무르게 하니까 그게 다 올라가 가지고, 흐리게 하니까 그게 다 올라가 가지고 그게 어데까지 올라가느냐? 대통령까지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제 한번 아이가 그 아이가 뭐 육범인가 칠범인가 했는데 또 갇혔다 해. 갇혔다 해서 ‘그러면 육범이나 칠범이니까 요번에는 좀 거석할 거다’ 이래 말하는데 나는 그때 말했어. ‘들어가면 그만 나온다’ 경관들이 그걸 잡아다가 넣으면 검사가 있다가서 ‘너거 친척 없나?’ ‘아무도 없습니다.’ `가까운 친척 아무 아는 사람도 없나?' `아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여게서 법원에서 통지를 해 가지고 이 아이를 책임을 지겠다 하면 그만 너는 나간다. 그러니까 그럴 사람 없나? 그렇게 해 줄 사람 없나?’ ‘그렇게 해 줄 사람 있습니다.’ 그래 그 사람한테 통지해 가지고서 오라 해서 ‘이 사람에 대해서 지금 자기가 책임을 지겠나? 그러면 내 보내 준다.’ 누가 그런 가운데 있고 ‘내가 책임질 터이니까 그만 내 보내 주이소’ 하지, 인간들이 법을 또 알면 제가 책임 못 지면 거석하지만 암만 못 져 봤자 상관 없으니까. 그래 가지고 뭐 몇 번이나 나왔습니다. 그게 그 검사들이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판사 하는 행동이었고.
그래 그것을 조그만한 일이지마는 서부교회서 그걸 많이 쳤습니다. 이 법에서 이런 행동한다고 많이 치고 나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 한 두서너 달 지나고 나서는, 나도 말했지만 다른 사람도 많이 말했겠지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많이 개정이 됐습니다. 이래 됐다가 또 지금 또 지금 그렇게 더러워지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러니 그게 저거끼리의 무법하게 행동하는 것이 대통령한테도 무법하게 행동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뭐 일국의 수상이지마는 대통령 욕하기를 대통령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을 두서넛만 모여도 데모한다 하면서 이와같이 참람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법치 국가가 아니오.
여기보다는 미국 나라 같은 나라는 법치 국가입니다. 그 나라는 그 레이건 대통령도 뭐 법을 가지고 말할 때는 꼼짝을 못 하고 법으로 가지고 자꾸 이래서 법을 뭐 해석을 해서 이래 나갔으면 나갔지 무법하게 못 하지마는 또 거게도 지금은 좀 법이 아이들 말로 사바사바가 있어. 이래 놓으니까 그게 법치 국가가 별로 없어.
이런데 하나님은 법치 국가입니다. 아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법치 국가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뭐 이 세상 법 가지고서 이렇게 빈정거리면 되고, 요렇게 변증하면 되고, 요렇게 뒤벼놓으면 되고 하면 되는 줄 압니까? 하나님의 법은 절대 법치입니다. 그 법에 어긴 거는 꼼짝을 못 해요. 꼭 법대로 다스리는 하늘나라입니다. 참 우리가 가는 나라는 법치 국가요. 이러기 때문에 법에 안 걸리도록 할라고 애를 써야 되지 법에 어긋나면 안 돼.
그 법이 뭐이냐? 우리에게 그 법을 미리 알려 줬어. 그 법이 신구약 성경이 법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이 법조문을 가지고 자기를 세워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범죄를 해도 법 조문을 딱 가지고 법으로 인해서 해방을 받도록 딱 그 법조문의 조건을 가져야 됩니다.
만일 있다면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나로 더불어 변론하자.
그러면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된다.” 요 성구를 딱 거머쥐고 ‘주님이여, 내가 이런 죄를 범했는데 주님이 주님의 대속으로 사해 주시마고 하지 안했습니까?’ 요걸 딱 가지고 사해 달라고 기도하고 이제 사함받은 것을 딱 알고 요와 같이 지금 하면은 ‘네가 이놈 이런 죄를 지어 놓고,’ `나는 주님에게 고해서 사함받았습니다.’ 요한일서 1장에도 또 말해. 고하면 사함받는다 했어.
그러나 알고 짓는 죄를 가리켜서 고범죄라 했는데 고범죄는 어떻게 해요? 사함 받아요 못 받아요? 사함받습니까 못 받습니까? 성경에 또 못 받는다 했어. 그러면 그거는 어째 하는고? 고거는 회개를 해야 돼요. 회개하면 돼요.
뭣이든지 법을 딱 근거해야 힘이 있고 끝까지 하나님의 심판에 가 가지고도 담대하지 법을 근거하지 안하면 소용 없어. 법 근거하지 않은 그거는 아무리 천하 사람이 다 달라들어 봤자 법에 근거 없으면 안 됩니다, 그거는. 변동할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고범죄는 안 돼. 고범죄는 언제든지 회개할 때까지는 그 죄가 장 그대로 있다가, 죄되는 징계와 저주가 그대로 와 있다가서 제가 고치는 동시에 하나님의 저주가 머물고 있습니다. 중단하고 있어요. 중단하고 있으나 ‘보자 네가 고쳤는데’ 계속할 때까지 중단하다가 이제, 계속하다가, 고친 게 계속하다가 고친 게 또 중단되면은 하나님의 중단됐던 저주와 징계가 또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내가 죽은 거는 어째 죽었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형을 받아 죽었기 때문에 내가 죽은 것이라 말이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내가 못박혔으니까 죽었지 안했습니까?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지금 살아 있다 말이오. “내가 산 것은” “산 것은” 산 거 현재사 아닙니까? ”산 것은” 하니까 현재사라 말이오. 내가 지금 현재 살아 있는 것은,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가 지금 이제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살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니까 주님이 내 대신 죽었기 때문에 곧 주님의 죽으심은 내가 죽은 것이고, 내가 죽었는데 또 지금 살아 있습니다. 죽었는데 현재, 죽기는 법적으로 주님이 내 대신 죽었으니 내가 죽은 것인데 내가 지금 살아 있다 말이오. 내가 살아 있으니 “내가 산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리스도 지금 내게 살아 있다 말이오. 내가 살아 있는 거는 내가 산 게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게 와 가지고 지금 살아 있는 셈이라 말이오.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지금 그러나 내가 지금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는데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건 내가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산 계산인데 말이요, 법적으로 산 계산인데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도 이 고기덩어리가 살아 가지고 꾸물거리고 살고 있는 것은 “육체 가운데에 사는 것은” “육체 가운데에 사는 것은” 사는 것이라 하니 이거는 현재사입니까 과거사입니까 미래사입니까?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현재사입니다. 현재 지금 살고 있는 것은 그말이오.
“사는 것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지금 내가 법적으로 죽었는데 지금 내가 육체 가운데서 실상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신 것이니 곧 이게 뭐이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요 진리를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줄려고 오늘 아침에 요 성경을 본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지 믿음을 떠나서는 우리가 살 수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떠나면 자기는 멸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중생된 사람이지마는 중생된 영은 다시 죽음이 없지마는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자꾸 구원을 이루어 가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 믿음 안에 살면 그때 산 심신은 기능이 살고 영생하고 그 현실에서 믿음을 떠나서 살면 믿음 떠나 사는 그 심신의 기능은, ○○○? 너 예배드릴 때 대가리 들어, 눈을 똑 뜨고. 예배만 보면 쿡 숙여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믿음 안에서 우리가 살아야 되지 믿음 안에서 살지 안하면은 우리 죽습니다. 믿음 안에서 살지 안하면 우리의 심신은 그 시간에 산 것은 다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법적으로 다 살게 됐고 우리가 또 영이 살았고 우리는 사는 이 믿음을 주님에게 받았지마는 믿음 밖에 나가 버리면 죽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방주 밖에 나가면 죽는 것처럼 우리는 믿음 안에 있으면 살고 믿음 밖에 있으면 죽습니다.
그러면 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믿음 안에 있어야 그 심신의 기능이 영생으로 살지, 그러면 한 시간 믿음 안에서 살았으면 한 시간 산 그 심신의 기능은 영생을 다 가졌습니다. 또 그다음 시간에 내가 믿음을 벗고 살면 그다음 시간에 산 그 심신의 기능은 영원히 죽어 버립니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항상 산 그것이 사는 줄 알아도 그 요소가 이 시간에 해당된 요소 있고 그다음 시간에 해당된 요소 있고 해당된 요소가 요 시간에 지나갔으면은 고거는 지나가 버렸습니다. 고거는 살고 그 심신의 기능은 지나가 버렸어. 한 시간 살았으면 한 시간 심신의 기능의 모든 요소와 정력과 세포 그거는 벌써 소모돼 지나가 버렸어.
지나갔는데 영생으로 지나갔느냐 그것이 영원히 멸망으로 지나갔느냐? 멸망으로 지나갔으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았다고, 그건 구속받은 것이 다시 죽었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라고 말한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그 시간에 믿음 안에 살았으면 영생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 안에 사는 요 믿음 안에 사는 것이 뭐이 믿음 안에 사는 것인가? 요것만 말하고 그칩니다. 믿음 안에 사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자기 것 된 것을 믿는 믿음 안에. 그러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내것이라.’ 자기 것인 것을 믿는 그 믿음, 자기 것인 것을 믿는 그 믿음, 또 자기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 삼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 삼은 자기는 예수님의 것이 된 것을 믿는 것, 예수님의 것이 된 것을 믿는 것.
그다음에 셋째는 예수님의 것이 된 내니 이제는 내가 내 마음대로 살지 안하고 내가 내대로 살 자유가 없고 나는 내가 살고 있기는 있는데, 내 눈도 내 눈, 내 귀도 내 귀, 입도 내 입, 수족도 내 수족, 몸뚱이도 내 몸뚱이인데 이제는 예수님의 피에 팔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이제는 이목구비 수족과 내 마음 전부를 예수님 당신의 것이니 당신이 당신 뜻대로 당신 주장대로 사용할 수가 있지 내 마음대로 하나 사용할 수가 없는 거라. 요것이 뭐이냐 하면 믿음 안에서 현재 사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하는 것은 요 믿음은 세 가지를 말합니다, 세 가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내것 된 것을 믿는 믿음, 이러니까 사활의 대속이 내것 된 자기 것으로 가진 자는 예수님의 것이 된 이것을 믿는 믿음, 예수님의 것이 된 이것이 이제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서 사는,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사는 요것이 이제 마지막으로 셋째 믿음입니다. 요렇게 살기 위함이라.
그러니까 믿음 안에 살면 산 그것은 영생이 되고 아무리 모든 조건을 주님이 다 구비해 놨지마는 내가 현실에서 믿음을 벗어버려 버리면 그때는 이미 다 산 자, 법적으로 됐지마는 자기가 다시 죽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라 요렇게 밝힌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 안에서 사는 거,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야 심신의 구원이 되는 것인데 믿음 안에 사는 이 믿음 안에 산다는 이 믿음은 몇 가지 믿음입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세 가지 믿음입니다. 이거 똑똑히 알아야 돼요.
이것을 알기가 어려워, 여러분들은 자꾸 이래도 뭐 ‘암만 그래야 다 그 말이지’ 이러지마는.
이것을 지금 뭐 여기 ○○○목사님 요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있는 요걸 저 뭐꼬? 양성원의 도서실에 가면은 주석이 많이 있는데 그 주석을 좀 찾아보라고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니라’ 하는 요 믿음이 뭐라고 해석이 됐는가? 예수님의 공로를 믿는 것이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자기 것 된 것을 믿고, 자기는 주님의 것된 것을 믿고, 이제는 주님의 것 되었으니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아니라 주님에게 피동으로 사는 것이라 하는 요렇게 깨달아서 해석한 해석이 많지를 못하다 말이오. 나는 못 봤기 때문에, 못 봤기 때문에 어찌 됐는지 모르지마는 별로이 보면 그래 놓고 별로이 없어, 모두.
그래 나는 그래서 주석 있던 거 전부 여기 저 편집실에다 다 보냈어. 아마 뭐 얼마나 될란지. 한 짐 되는가 두 짐 되는가 모르겠어. 얼마나 가져갔노, 그때? 모르나? ○○○조사님 어데 있나? 저 있지. 다 짊어져 보냈어. 소용 없어. 암만 봐야 하나도 쓸모 없는데 뭐 필요가 있어? 요걸, 요런 것을 기억해야 돼요. 믿음 안에서 살아야 이 심신 구원이 되는 것이지 믿음을 떠나 살면 아무리 예수 믿는다 해도 심신의 구원은 안 됩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은 자기가 현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 살면 됩니까, 몇 가지 믿음 안에 살아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세 가지 믿음 안에. 요걸 단단히 기억해야 돼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자기 것 된 것을 믿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면은 그거는 뭐이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라고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어림도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율법에 행해도 하나만 걸려도 자기는 죽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믿음 중에 제일 중요한 믿음이 무슨 믿음입니까? 자기가 행하는 믿음입니까, 사활의 대속이 자기 것 된 것을 믿는 믿음입니까, 자기가 주님의 것 된 것을 믿는 믿음입니까? 이 세 가지 가운데에 첫째는 대속을 자기 것 된 걸 믿는 것, 자기가 주님의 것 됐는 거 믿는 거, 이제 주님의 것 됐으니까 주님에게 복종으로 사는 것 요 세 가지인데, 일호 이호 삼호인데 일호 이호 삼호 가운데에 제일 어느 게 귀중합니까? 삼호가 제일 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삼호가 제일 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그러면 또 일호가 제일 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또 이호가 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남 뭐 남 드는 거 보고.
그러니까 일호를 잘 못 들어, 보니까. 못 들고, 모두.
일호요, 일호, 일호가 제일 중요해. 일호가 제일 커. 일호가 제일 중요해. 일호가 아니면은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도리가 없어. 하나님하고 원수된 것이 화친될 수 없어. 어떻게 우리가 화친이 돼요? 암만 제까짓 게 율법을 행하고 아무리 생명을 다 바쳐서 하나님하고 산다 해도 하나님하고 화친 못 해요.
화친도 못하고,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도 못 하고, 죄, 사망, 마귀에게 자유도 못 하고, 하나님 향한 영생도 못 합니다. 예수님이 대신 해 주신 것을 내가 믿음으로 내것 만들어야, 먼저 내가 피난해 가지고 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이호가 내가 주님의 것 되는 것이오. 삼호는 이제 그대로 피동으로 사는 것이오.
그러면 일호를 자기 것 참 바로 만들었는지 안 만들었는지, 일호를 자기 것 만들었는지 안 만들었는지 뭘 보고 압니까? 예? 이호 보고 압니다. 일호와 이호를 자기 것 만들었는지, 자기 것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것을 아는 증거는 뭐입니까? 삼호를 보아서. 그러면 이호가 된 일호라야 이제 바로 된 것이고 삼호가 된 일호 이호라야 바로 된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바로 된 것은 마지막 삼호에서 안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종전같이 교회 주변을 청소합시다.
그라고 삼십 분 기도 이거 꼭 기억하시고 우리가 지킵시다.
지금 한 오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이겠는데 이 장로님들, 또 이 중요한 뭐 모두 책임을 지고 있는 분들, 또 중간반 반사들 빨리 다 참석해요. 반사들, 또 주일학교 반사들도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다 참여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졸업하기 전에, 졸업하기 전에, 그걸 기억해요. 졸업하기 전에 반사가 그 학생을 될 수 있는 대로는 자기가 거머쥐고 자기 밑에 보조반사를 만들어서 주일학교 예배 볼 때에는 자기와 함께 보조반사가 돼 가지고 그 학생들을, 졸업하지 안한 학생들을 잘 관리하도록 그렇게 보조반사를 시켜서 보조반사의 실력을 기르도록 그렇게 애를 쓰고 주일학교 예배를 보고 난 다음에는 이제 그들을 거느리고 사층으로 가든지 이층으로 가든지 학생들 갈 수 있는 데로, 자기는 이층에 오고 싶어도 학생들이 사층으로 가기를 원하면은 사층으로 따라가야 되고, 벌써 그 자유가 없어요. 자꾸 신앙은 자랄수록이 자유가 없습니다. 신앙은 자랄수록이 죄에 대해서는 자유하지마는 사람에 대해는 자유가 없어. 저 마음대로 못 해요. 남 하자 하는 대로 그대로 해 줘야 되지, 죄 되지 않는 것은.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네가 어렸을 때는 네 임의로 다녔지마는 장성하면 너를 다른 사람이 띠 띠우고 원치 안하는 데로 끌고 간다. 그거 뭐이냐 하면 순교 당하는 걸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층에 가서 예배를 보고, 그라면서 사 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 자기 밑에 보조반사를 하면서 중간반 사 년을 졸업한 셈입니다. 그라면 졸업장을 줍니다. 졸업장을 주고 난 다음에, 사 년 졸업 맡으면 그다음에는 뭣 됩니까? 그다음에 반사들, 그다음에 뭣 되지요? 예? 초절했어. 원반사. 알겠소? 이제 주일학교 졸업한 학생이 대번에 자기가 데리고 있으면 뭣 됩니까? 보조반사 되고 또 보조반사로서 중간반 사 년을 졸업 맡으면 뭣 됩니까? 바로 원반사 됩니다.
그때까지 원반사를 만들어서 길러야 돼. 원반사가 되도록 기르고 원반사가 이제 그다음에는 고등부 삼 년 졸업 맡으면 뭣 됩니까? 그다음에는 권찰 됩니다. 권찰.
지권찰도 되고 원권찰도 되고 그 자격대로 그와 같이 될 수가 있어요. 권찰 됩니다.
이러니까 그걸 잘 알아서, 그러면 반사가 자기 보조반사가 되도록 그렇게 졸업하기 전에 벌써 그걸 잘 결정을 지워놔요. 졸업하기 전에 벌써 결정을 지워서 자기 보조반사를 만들든지 뭘 만들든지 이와같이 지금 만들어요. 만들고 자기가 자기 보조반사를 만들 수 없는 형편이 된다든지 자기가 어디로 이사를 간다든지 또 자기가 무슨 군에 간다든지 혹 이럴 때에는 자기가 보조반사 만들지 못하니 그다음에 부임될 그런 반사에게 인계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그 보조반사로 사 년 동안을 기르지 못할 그런 사람이면 일차적으로 구역장에게로 가야 됩니다. 제 마음대로 어데 중간에 올리지를 못해요.
구역장에 가 가지고서 ‘이 사람은 내가 앞으로 보조반사로 내가 맡아서 미처 기르지 못할 사람이니까 못 하겠으니까 이거는 구역장이 어떻게 구역장이 맡아 가지고서 구역장이 기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구역장이 중간반에게 맡기든지 구역장 그 처분대로 하십시오’ 하고 구역장에게 맡기요, 구역장 사람이기 때문에.
구역장에게 맡겨 줘야 됩니다. 제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
구역장은 자기가 다 데리고, 자기가 데리고 그것을 보조반사로 길러 가지고서 보조반사가 반사되고 자꾸 이렇게 길러 가지고 해서 나중에 그 원반사를 만들고 또 그것을 권찰을 만들고 자꾸 이래 가지고 길러서 자기 밑에 길러 가지고 나중에는 구역장이 되도록 지금 자기 밑에서 지금 자라고 있다 말이오.
○○○권사님 구역장이 지금 몇이나 돼요? 구역장이 서른너이라. 자기 밑에 구역장이 서른네 명이라. 이제 들면 서른네 명이 쭉 들면 다 들려 올라와.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심판대 가면은 잘만 기르면 상이 많아요.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면은 떡 자, 이제 어떤 사람은 ‘보자 너는?’ 이라면 구역장은 나가야 돼. ○○○권사님 나가야 돼. 나가서 같이 뒤에 앉아서 그 책임을 져야 되거든. 대신 계산해야 돼요. 또 ‘여게 목사는 누고?’ 또 백 목사 따라나가야 된다 말이오. 따라나가 가지고 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래 심판을 합니다.
그래 성경에 있어요. 성경에 다 말해 놨어요. “대신 회계할 자처럼”이라 해 놨는데 고거 말이 애매해. “대신 회계할 자로” 회계를 한다 말이오. 자기, 본인은 아니지마는 그 회계에 동참해 가지고서 같이 책임을 가지고 회개한다 그거요. 계산한다, 회계라 말은 ‘회개’ 고치는 게 아니고 계산한다 그말이오.
심판 앞에서는 다 계산이 돼져요. 그러니까 상도 있고 심판도 받아. 이러니까 그렇게 해서 인계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지금 곧 권찰회가 시작되겠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다 참여해 가지고서, 바쁜 사람은 잠깐만 참석하고 자기 또 맡은 직책에 지장 없도록 가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