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6:16
믿음과 인내의 산물은 온전
1979. 10. 12. 금야
본문 : 약 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믿음의 온전이나 믿음의 온전이나 인내의 온전이나 사람과 행위의 온전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온전이나 인내의 온전이나 사람과 행위의 온전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믿음의 온전은 어떤 것이 믿음의 온 전인고 하니 믿음은 하나님을 딸는 것인데 자신이 하나님을 따라 하나 님의 그 신성과 같은 속성을 가지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자기가 갖추어 가지는 것이 자체적으로 하나님을 딸는 것이요. 또 뜻과 행위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행위를 딸는 자기 뜻과 자기 행위가 되면 이것이 또 행위에 믿음입니다. 그면 자체가 하나님을 따라 가는 것 좇아가는 것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 본 받아 가는 것 하나님의 제자가 되어가는 것 하나님을 좇는 하나님을 딸는 그 인격성 그것이 자체 믿음이요 자체가 하나님의 그 자체를 따라가는 것이요. 자기의 속성이 이제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가는 것. 옛날 가졌던 자기 속성은 다 버리고 하나님에 속성을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을 가지는 그 것이 자체 믿음입니다.
또 행위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내가 딸는 것 내 뜻을 내가 내 뜻으로 가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딸는 것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 이것이 자기의 마음에 믿음이요. 또 행동이 제대로 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그 행동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 비유켄데 하나님이 가면 같이 따라가고 하나님이 멈추어 서면 멈추어 서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시면 자기도 하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지 안하고 버리면 자기도 버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행하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이것이 몸에 믿음입니다. 마음의 믿음 마음이 하나님을 딸고 몸의 움직임이 하나님을 따를 때에 이것을 가리켜서 행동 믿음이라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면 자체 믿음과 행위 믿음 요 두 가지가 합해서 믿음입니다. 그면 온전한 믿음이 라고 하면 자체가 하나님을 온전히 닮았다는 것이요. 하나님의 신성과 다른 점이 없고 하나님의 신성과 꼭 같은 자기도 인격성을 하나님의 신 성과 같은 그 인격성을 하나님의 신성이 가진 속성과 같은 그 속성을 가진 인격성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이것이 자체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온전한 믿음이라 하나님을 온전히 따랐다 온전히 닮았다 하나님을 딸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다. 뜻도 하나님을 따랐고 행동도 움직임도 하나님을 따랐고 그 속성도 하나님을 따랐고 그 인격성 인격 전부가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하나님은 그 원형적 인격성이라면 자기는 모형적 인격성 하나님의 뜻을 원형적 뜻이라고 하면 자기는 거게 하나님의 뜻에 모형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행동을 원형 행동이라고 하면 자기 행동은 거기 따른 모형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일이 온전히 이루어졌으면 이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 또 온전한 인내는 무엇이 온전한 인내인가? 인내란 말은 계속이란 말인데 하나님의 그 신성과 같은 인격성으로 살려고 해도 가다가 보면은 그만 그렇게 하나님과 같은 그런 신성같은 인격성으로 이렇게 살아가다가 너무 어려운 일이 있든지 너무 좋은 일이 있든지 너무 다급한 일이 있든지 그러면 그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지 못하고 변질된 역연 옛날 믿지 안할 때와 같은 자기의 그 자체의 형상대로 자기의 그 인성대로 요렇게 살면 하나님의 그 형상으로 사는 생활이 계속이 중단된 것이지요. 그 계속이 끊어졌지요. 그러면 계속이 온전히 이루어지지를 못했읍니다. 그 급하든지 수월하든지 어렵든지 편하든지 자기가 하늘까지 높아지든지 저 어떤데 매장이 되든지 어디가든지 하나님의 인격성과 꼭 같은 불변적인 완전한 영원한 참되고 거록하고 의롭고 온전한 요런 인격성으로 계속 생활을 했으면 그 인격 생활이 계속 되었으면 하나님의 모형생활이 계속 되었으면 요것이 계속이 온전이 이루어졌다 하는 것이고 또 뜻고 행동도 펑소에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행동을 잘 구별해 가지고 따라서 살았지마는 그만 복잡해지니까 어떤 과도기에 어떤 위기에 어떤 그 환경이 홍수처럼 몰아쳐 부딪칠 때에 한가지 두 가지가 아니라 수 많은 사건들이 와서 부딪칠 때에 그면 그때에 하나님의 뜻으로 자기 뜻을 삼아 살던 것 이 그만 그때에 그것이 계속하지 못하고 혹은 어떤 인간의 뜻 자기 뜻 형편과 사정 그 주위 환경 그 자연 이런 것을 따라서 자기가 마음과 이 몸이 움직였다면 행위에 계속이 온전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움직임으로만 이렇게 했던 그 행위가 계속 못되었읍니다. 계속 못됐소.
그러나 어떤 그 현실이 부딪쳐져도 하나님의 뜻으로만 움직이고 하나님의 움직이시는 데에만 피동돼 움직이는 요것이 계속 됐다면 인내의 온전함을 이룬 것입니다. 요것이 인내의 온전함을 이룬 것이요. 믿음이 온전하면 온전한 인내를 가질 수 있지요. 또 믿음의 온전하고 살 때에 온전한 믿음으로 사는 그 생활이 요동치 아니하고 일관으로 계속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여기에서도 온전 저기에서도 온전 겨울에도 온전 여름에도 온전 사형장에서도 온전 존귀한 자리에서도 온전 매장되는 데서도 온전 배고파도 온전 풍년져도 온전 어디든지 어디서나 온전한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라.
이렇게 할 수 있겠읍니다 그런고로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인내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는 다 하나입니다. 하나. 하나가 되면 다 되요. 온전한 믿음이라면은 온전한 인내할 수 있고 온전한 믿음으로 온전한 인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행위는 온전한 행위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목표하고 소망 삼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나 같은 말이지마는 그 각도가 다른 것 뿐이요. 언제나 신앙 계속이 온전해야 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은혜가 되고 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온전한 계속이라. 온전한 계속이라. 이럴 때에야 내가 지금은 마음이 쓸쓸하게 변해진다. 내가 또 하나님 외에 뭐 딴 것을 따라 갈라고 하고 있다. 이 하나님의 뜻 외에 다른 무슨 뜻을 따를려고 한다.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그 신성을 내가 소망하고 그 신성을 배우고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그 신성과 같은 인격성이 될라고 내가 했는데 이제는 하나님 외에 어떤 다른 사람이 부럽다.
사람이 내가 표본으로 삼아서 그 사람을 닮아가고 싶은 이기 생겨진다. 이것 믿음이 변해진다 인내가 요동한다.
이러니까 행위와 사람이 이것이 깨어질라고 한다. 온전치 못한 것이 이것이 온전치 못한 사람같이 내가 되어진다. 이렇게 세 가지 각도로 생각해서 자기를 항상 깨울 수 있읍니다. 그면 이 세 가지 배웠읍니다. 온전한 믿음을 우리가 목표로 하고 온전한 인내를 목표로 하고 온전한 사람과 행위를 목표로 합니다.
그면 온전한 믿음인지 믿음 아닌지 어데 서 그것을 심사해서 찾아낼 수 있읍니까? 인내에서 찾아낼 수 있읍니다. 인내에서 온전한 인내가 온전한 계속이 되나 안되나 거기에서 믿음이 온전해졌는지 온전해지지 안했는지 요것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읍니다. 또 자기가 온전한 사람인지 온전한 행위를 하는 자인지 자기의 행위가 온전한지 온전한 사람인지 그것은 어디서 발견해야 됩니까? 그것도 인내에서 발견을 해야 됩니다. 인내가 되나 안되나 거기에서 인내가 계속 하면 그때까지는 온전한 사람으로 온전한 행위로 알고 있으십시요.
그 인내가 요동되면 아 내가 사람이 온전치 못하고 행위가 온전치 못한 이점이 있구나 그것을 발견할 수가 있겠읍니다.
세 가지 그면 우리가 세 가지가 목표입니다. 온전한 믿음 온전한 인 내 온전한 사람과 행위 요 세 가지가 목표입니다. 요 세 가지 연단이 기억하고 언제나 우리는 이것을 발표는 안해도 이 투구를 쓰고 있어야 됩니다. 이 소망에 투구를 쓰고 있어야 되요. 전쟁 가는 사람이 투구 쓰지 안하면 머리 깨지면 몸뚱이 성해도 소용없어. 머리만 성하면 몸뚱이 여간 한군데 뭐 짤라지고 끊키져도 그래도 다소 할 수가 있어.
이런데 소망의 투구를 쓰자. 소망의 투구를 쓰자. 전쟁하는 데는 머리를 보호하는 이것이 투구인데 소망의 투구를 쓰자 이랬읍니다. 소망 이 가장 우리의 활동에 우리의 전투하는 데에 필요합니다. 이 소망이 필요하요. 전쟁 갈 때에 뭐 흉배도 있고 가슴 보호하는 이 (흉배도) 흉배도 있고 또 이거 모든 전신의 갑주도 입고 있지마는 제일 전투에 요긴한 것이 이거 투구입니다. 투구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투쟁하는 이 신앙 생활을 우리가 목표을 달성할라고 지금 이렇게 싸워서 모든 지장과 방해를 다 이것을 극복하고 건설할라고 하는 이 걸음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소망이라 그 말입니다. 소망.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서든지 요 세 가지 소망을 놓지 안하는 사람이라 면 아주 지혜있는 사람이 되고 또 모든 신앙 생활을 기쁘고 즐거움으로 할 수 있읍니다.
세 가지 소망. 내 소망은 믿음의 온전 믿음의 온전 믿음의 온전이 뭐이 그리 좋은데 믿음의 온전은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는 것이요. 진리와 나와 하나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과 나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요.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나와 하나되고 하나님의 능력과 나와 하나되니까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고 모든 행동에하나님과 나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와 하나되고 하나님의 능력 과 하나 되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고 아브라함도 동행했고 노아도 동행했는데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이러니까 온전한 믿음이 이렇게 보배요. 아 어디가든지 나는 온전한 믿음 온전한 믿음 요것이 우리 소망이요. 온전한 믿음 또 온전한 계속 인내란 말은 계속이란 말이요. 인내란 말은 옳은 것을 시작한 그것을 끝까지 계속하는 것이 인내입니다. 죄를 계속하는 기 인내가 아니고 인내는 인내는 옳고 참되고 바른 생명과 신령에 속한 그것이 계속되는 것을 가리켜서 인내라 성경이 말했읍니다.
세상이 쓰는 인내와 다르요. 성경에 말한 인내는 생명과 신령에 속한 그것이 계속되는 것이 인내입니다. 인내에 온전 나는 인내의 온전 계속 온전 계속 온전이란 이것을 자꾸 명상하고 노래 부르고 말하고 이럴 때에 자기는 크게 돕는 힘과 양식이 됩니다.
아 내가 계속 온전 이럴 때에 무엇이 오면 아 이것 또 계속 못하게 되었다. 또 못하게 되는구나. 이래도 내가 이 계속을 빼앗기지 않겠다 이래 가지고 ( ) 계속을 빼앗기지 않겠다. 이러니까 어떨 때는 사람들이 오면 재미 없는 사람이라 해도 왜 계속 그것 안뺏길라고 하니까 그 사람 재미있게 하고 이러다 보면은 그만 계속이 고장날 터이니까 부득이 그 사람에게 재미 없게 해 주더라도 이 계속이 돼야 되겠다 그기요.
이러니까 그저 어떨 때는 이중 삼중으로 이 말하고 저 말하고 이것 생각 하면서도 속에서 인내 인내 인내 온전 이 계속 온전 요것을 꼭 잡고 놓지 안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아 내가 땅 위에 있는기 무엇 때문에 있는 긴데 부자될라고 있는가? 권세 잡을라고 있는가?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 온전한 사람 되어 가지고 뭐 할라고 주님이 이것 위해서 목적으로 정하셨고 십자가에 대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영원히 하나님에게 대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서 영원히 하나님에게 수종들기 위해서 모든 피조물을 섬기기 위해서 행위 온전 뭐 할라고 무궁 세계에 하나님 한분에게 받아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그들에게 충만히 줄 수 있는 영원히 사은할 수 있는 영원히 줄 수 있는 영원히 모든 피조물이 나 아니면 못 살겠다고 하는 못 살겠다고 하는 그런 봉사의 요지 시은의 요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담뽁 다 받는 요지 고 중요한 위치 위로 하나님도 만족하시고 피조물도 만족하는 하나님도 만족하고 피조물도 만족하는 그 위치 고것은 온전한 행위가 고게 있을 수 있는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요 세 가지 소망을 항상 가지고 나가면 우리에게는 크게 빛이 됩니다. 친한 친구를 만나도 아이쿠 온전한 믿음 온전한 인내 온전한 사람과 행 위 온전 온전하면 이 세 가지가 쭉 나오고 행위와 사람이 온전 인내 온전 믿음 온전 온전 다른 사람이 미쳤다 할지라도 속으로 온전 무단이 이래하고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다가서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온전 이래 버리면 다른 사람이 미쳤나 와 이런노 왜 그 사람하고 이야기 하는 가운데에 속에서 지금 전투 했다 말이요. 전투하니까 속에 온전한 이것이 폭발이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온전 안된다. 온전 양보 못한다. 이제 이 세 가지 소망을 굳게 잡고 가야 되는데 요 온전한 믿음과 온전한 인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 요 세 가지가 금생 내세에 굉장히 존귀하고 영광스럽고 권위 있는 것인데 요것이 나오는 곳이 있읍니다. 요 생산지가 있읍니다. 요것이 생산되는 구멍이 있어. 요것이 생산되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은 오늘 저녁에 해석을 못하겠는데 가르치기만 가르치겠소. 그 구멍은 여게 말해 놨소.
3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믿음의 시련이 인내 만들어 낸다. 만들어 낸다 가운데 토막을 말했읍니다. 인내 만들어낸다 말은 인내 만들어낸다 말은 요쪽으로는 온전한 믿음 만들어낸다 말이요. 요쪽으로는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만들어낸다는 말입니다. 시련 그 시련이라는 고기에서 온전한 인내도 온전한 인내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면 온전한 인내가 안되. 온전한 인내가 되었으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되었어요.
이러기 때문에 온전한 인내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 가 앎이라 요걸 우리가 모르고 있다. 이기요. 시련에서 시련에서 요 세 가지가 만들어져 나옵니다. 시련에서 요 세 가지가 만들어져 나오는데 시련이라는 것은 시련이라는 것은 요 세 가지 뜻을 가지고 있읍니다. 시련은 어떤 기 시련인고 하니 첫째는 속에 감추어 있는 그 진가의 실상을 발표시키는 그 역사를 하는 것이 시련이고 떠 하나는 그 속에 잡것이 못쓸 것이 들어 있으면서 쓸것 처럼 들어 있는 못쓸 것이 들어 있는 고것을 제거하는 것이고 못쓸 것이 들어 있는 것을 제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참 쓸모 있는 보배 요것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요것이 시련이요.
우리의 현실이라는 요 현실은 요 세 가지 시련이 이루어지는데 그러기 때문에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왜 시험 당하는데 뭐이 기뻐 그 시험에서 그 시험은 시련하는 시험이라 그 시험은 시련하는 시험이라. 자기가 너무 좋아 어렵다든지 나빠 어렵다든지 그 시험은 시련하는 시험인데 그 시험에서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단점을 알게 되고 아무도 모르는데 내 단점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되고 내 단점을 나와 다른 사람이 알게 되고 나의 장점도 나와 다른 사람도 알게 됩니다. 이래서 알기만 하면 뭐되요. 알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자다가 아는 단점을 이것을 제거할 수가 있고 자타가 아는 장점을 키우고 또 구비시킬 수 가 있읍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보배라 그면 자기 현실의 이 시련이 오는데 이 시련에서 어떻게 하면 이 시련을 잘 받는가 거기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 힘 요것 좀 어렵지마는 자기 욕심 자기 지혜 지식 자기 능력 요 세 가지를 부인 하는 데에서 부인하는 데에서 자기에게 있는 단점인 모든 잡탱이가 다 제거 됩니다. 제거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이 일치되는 현실에는 수입이 없어. 일치되는 현실에서 는 수입이 없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소원과 내 뜻과 내 소원이 서로 대립되는 거기에 수입이 있읍니다. 대립될 때에 대립될 때에 나를 착부인해 버리면 자기에게 있는 모든 단점이 이것이 뿌서져 버립니다. 뿌서져 버리요. 그때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행하게 되면 자기에게 좋은 점이 자라고 좋은 점이 새로 구비되서 부가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현실에서 요것 좀 어려운 말이요. 자기 현실에서 자기 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앙 생활하는 이 신앙 생활과 자기와 이것 마찰이 있어서 마찰이 있어서 자기와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이 되는 여기서 라야 온전한 믿음 온전한 인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나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 내가 신앙 생활 하는 데에 나와 하나님과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마찰이 없는 데에서는 수입이 없읍니다. 마찰 없는 데는 수입 하나도 없소. 사람들은 그러나 마찰 없는 데서 살기를 원하고 있읍니다.
어리석소 마찰없는 데는 수입이 하나도 없소. 마찰이 있는 거기에서 거기에서 자기가 사람이나 행위나 인내나 믿음 요 것이 온전해지느냐 요것이 아주 못써 지느냐 고 결정됩니다.
자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의 도리 이 도리와 자기와 자 기 형편과 사정과 자기 뜻과 자기 비판과 자기 의견과 자기 소견과 자기 소원과 하나님의 도와 서로 마찰이 없는 둘이 같이 일치가 되어 나가는 자리에 수입이 있읍니까 마찰이 있는 자리에서 수입이 있읍니다. 이제 문답식으로 어디가 수입이 있읍니까? 마찰 있는 자리가 수입 있읍니다. 그면 마찰 있는 자리가 수입이 있을 수 있는데 마찰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수입이 있읍니까? 마찰 있는 자리에서 자기 소원과 뜻과 자기 비판과 평가와 자기 의견 자기 주장 자기 외에도 모든 피조물 이것들에 모든 소욕과 모든 의사를 이것을 버리면 버리면 이것을 버리면 그때에 자기에게 무엇이 버려지는 것입니까? 어떤 기 버려지요.
진짜가 버려지요. 찌끼가 버려지요? 네 뭐이 버려지요? 찌끼가 버려지는 줄 압니까? 못쓸 것 이놈이 내 병이고 이놈이 나 죽이고 이놈이 나 무능하게 만들고 천하게 만들고 날 괴롭게 하는 그기 이제 제거됩니다. 그기 제거 되요. 그때에 그것을 버리면 내기에 못쓸 잡것이 다 제거 되어지고 고때에 하나님의 도를 따라서 영감을 따라서 요렇게 나아가면 내게는 온전한 믿음이 거게서 생겨집니다. 온전한 믿음이 생겨진 것 만치 인내할 수 있읍니다. 온전한 믿음이 생겨진 것만치 인내할 수 있는 그 사람은 그만치 온전한 사람이요. 그만치 온전한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실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의 도와 내 형편이 달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니까 고통이 옵니다. 여러가지 고통이 옵니다. 6. 25때 고통 신사참배 때 고통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하면 이런데 이랄라 하면은 이 가정이 낭파다 사업이 낭패다 직장이 낭파다. 뭐 전부 고통이 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니까 고통이 온다 말이요. 그 고통하는 고 자 고통하는 고 자는 고통을 면해서 고통을 면케해서 고것을 잘 살도록 해야 되겠소. 고통하는 고 자는 고통을 주고 주고 해 가지고 고통하는 고 자는 죽이야 됩니까. 그것을 잘 안보해야 됩니까. 저 교역자들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송조사 대답해 봐 죽이야 됩니까 죽이야 됩니다. 그놈이 들어서 우리를 괴롭게 해요. 그 놈이 들어서 우리를 괴롭게합니다. 그놈이 없는 사람은 괴롭지 안해. 그놈이 들어서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것이 들어서러 공연히 고통 주고 괴롭게 하요. 고자 고자가 나 입니까? 그자가 나 아닌 옛사람이요. 그것이 자기입니까? 그기 자기요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요. 원수인 자기라 잘 아요. 원수인 자기입니다. 또 온전한 사람 온전한 인내 온전한 믿음 요 이루어 나가는 것은 그 현재에서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도가 가라고 하는데 하라고 하는데 그것을 할라고 하면 힘이 태산만치 있어야 그 일을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도가 날 그것 하랍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라 하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니까 내 현실에서 도무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이 실력으로서는 건설할 수가 없단 말이요. 건설할 수 없어. 건설할 수 없는 일을 딱 맡겨 가지고서 이것을 건설하라 하니까 자기 역량으로서는 건설 할 수가 없어. 자기 힘에 맞은 것은 건설하라면 하지마는서도 너무 힘에 지나친 것을 건설하라 하니까 건설할 수가 없어. 없는데 고때에 자기가 수입이 있읍니다. 고때에 자기 힘은 백분지 일도 그것을 감당 못하겠는데 하나님이 큰일 맡겨 놨소. 이러면 그때에 백분지 일밖에 안되는 자기 힘만 다 드려서 그 일을 할라고 소망을 하고 그 일을 할라고 달라 들어서 백분의 일도 일을 추지 못할 힘 그것만 착 내 놓으면 요것이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다. 착 내놓으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그 모든 모지라는 것은 당신이 담당해 가지고 다 일으킵니다.
이러니까 그때 쭉 늘어져 그만 그 일을 하도록 해놓고 그 일한 권능을 도로 찾아 갑니다. 안 찾아 가시요. 그 권능은 항상 내기에 있읍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현실에는 수입이 적고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맡겨주실 그때에 큰 수입이 있읍니다. 왜 작으나 많으나 내 것만 다 내 놓으면 나머지기는 하나님이 다 거기에서 전부 보충해 주시는데 보충해 줘서. 그 일을 감당케 해놓고 보충해 주신 그 능력은 가지고 가지 안하고 영원히 내기라 뒤에 계속하겠읍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