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4:06
믿음
1980. 6. 22. 주일 오전
본문 : 요한복음 14장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히브리 12장에는 보면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신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주가 되시고 또 믿는 자가의 주가 되시고 믿음으로만 구원하실 수 있는 구주시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며 또 나를 믿으라. 근심은 불행의 모든 것을 대표해서 한 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는 영육과 금생과 내세에 모든 불행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중보자 예수님을 믿으라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이나 육이나 세상이나 하늘나라나 믿음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도 영과 육 세상과 하늘나라의 모든 하나님의 구원을 사람들에게 주실 때에 믿음으로만 주십니다.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수가 없고 또 우리도 믿음이 아니면 하나님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셔도 우리가 받아 가지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우리에게 금생과 내세 영원의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또 하나님이 믿음으로 주시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만 받아 가지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택자들은 믿음을 버린다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믿음을 버린다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꼭같고 하나님이 소용이 없습니다. 또 본인도 믿음을 버리면 뭐 예수님을 믿으나 안 믿으나 꼭같습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은 구원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가 있고 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믿음으로만 그것을 받아 가지고 내 것을 삼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방편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받는 방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필요 없고 또 우리도 살 필요도 없고 있어 봤자 있는 것만큼 불행스럽고 비참해지지 하나 좋을 거 없는 것입니다.
인생이 믿음이 없으면 차라리 안 난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안 날 수 없어서 나게 되고, 안 살 수 없어 살게 되지마는 믿음이 없으면 그 본인에게는 불행뿐이지 좋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떤 것이 믿음인가? 믿음은 첫로 하나님과 자기와의 다른 것을 다 제거해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이질적인 것, 또 그 이성적인 것, 모든 이행적인 것, 하나님과 자기와의 본질에 다른 것, 본성에 다른 것, 또 모든 움직임에 다른 것 하나님과 자기와 다른 것을 이것을 미리 없애 버리는 것이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과 그 사람과 다른 것은 다른 하나님의 것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그 사람의 것이 절단나 버리고 맙니다. 지금은 천 종류 만 종류로 이렇게 모두 저 잘난 재미로 제각각 이렇게 살지마는 차차 차차 하나님께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일 시키는 때가 있습니다. 통일시킨다 말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 하나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이 하나되게 하는 때인데 하나가 되어 있지 않는 것은 크든지 작든지 전멸입니다. 옛날 노아 홍수 때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문화 건설이 다 홍수 속에 매장이 돼서 하나도 남김 없이 전멸을 당했습니다. 그 전멸 당한 그것은 하나님과 다른 것이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과 다르기 때문에 당신과 틀리기 때문에 당신과 대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모조리 쓸어서 홍수로 한번 대청소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고 하나니의 심판이 시작이 되면 이제는 큰 정리를 하시게 됩니다. 종말 정리 대정리입니다. 노아 홍수는 임시 정리요.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시 가지고 심판하실 때에는 이제 종결적인 정리를 하게 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과 다른 것은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간에 뭐 천하 인간이 이거 아니면 우리 다 죽습니다. 이것 아니면 우리 다 죽습니다. 이거는 꼭 있어야 됩니다. 천하 인간이 다 해도 하나님은 눈도 꼼작 안하시고 당신에게 맞지 않는 것은 쏵 내리버립니다. 이제 이것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이며 최종적인 정리입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해 가지고 영원함을 가지도록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에 준해서 삽니다.
요새 사람들 아주 지혜 있습니다. 눈을 깜작 깜작해 가지고 보자 앞으로 우리 나라 정권은 세계의 정권들은 무엇을 무엇의 가치를 떨어트리고무엇의 가치를 올리는가? 계산해 보자 해 가지고 뭐 가치가 떨어진다는 그걸 알면 즉시 즉시 그걸 마 내서 팔고 어찌됐든간에 그 옮겨서 가치 앞으로 있을 것을 바꾸어 가지려고 야단을 지깁니다. 네 대단히 지혜롭습니다.
하지마는 근시자라 멀리 보지 못하고 제 눈앞에만 보기 때문에 고런데는 참 슬기로운데 원대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 원시 못하는 소경이요. 소경. 아 그까짓 거야 올라가 봤자 내려가 봤자 떨어져 봤자 뭐 올라 붙어 봤자 별 거 없는 것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먹을 것과 입을 거 있으면 족한 것이고 거게서 자기 정신 싸 가지고 이제 때를 맞춰서 미리 올라갈 줄 알고 손 썼다 내려갈 줄 알고 손 썼다 하고 제 딴에는 웃고 즐거워 하고 근심하지마는 그 다 소인들이라 그렇게 같은 것입니다. 같소. 뭐 이러나 저러나 그 결산은 꼭 같습니다.
그러기에 포부가 크고 눈이 밝은 원시하는 사람들 멀리 보는 사람들 인간이 아이에서 그대로 장년이 되었을 때 어찌 되나 하고, 장년 때를 보는 아이는 그때부터 준비가 다릅니다. 그러면 그리 준비했으면은 다 같이 죽마고우로 컷지마는 어른이 되면 하나는 쑥 위에 올라 있고 하나는 저 밑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좀 멀리 봤기 때문에 그렇소.
또 그보다도 자 어떻게 하면 내 노령 때와 늙었을 때 내 자손 때에 좋겠느냐? 이래서 안 믿는 사람이 말하기를 선을 쌓은 집에는 남은 경사가 있다. 이러니까 아 내 당대만 볼 게 아니라 후손도 봐야 되겠다 또 젊은 청년 때만 볼 게 아니라 늙어서도 봐야 되겠다 조금 멀리 봅니다. 그래 가지고 늙을 때를 보기 때문에 젊을 때만 생각하고 살지를 못하고, 젊을 때에 좀 모순됨이 있어도 늙을 때를 생각하고 조절을 하고, 또 자기 당대만 생각할 게 아니라 후손을 생각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조절을 하고, 그 다 모두 눈이 조금 조금 멀리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것도 좋고 보지마는 그보다 큰 것이 있으니 인간은 살고 있지마는 죽는다 하는 그것을 보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어찌 되느냐?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의 생활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고 난 다음에 부활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질이 다른 거, 그 본질과 본성이 다른 것, 행동이 다른 것, 자체가 다른 것, 이 다른 것은 모조리 애끼지 않고 유황불 구렁티로 다 쓸어 보내 버리요 이제 이것이 최종 정리인데,최종정리인데 이 정리가 인생을 기다리고 있는 이 사실을 보는 멀리 보는 눈을 가진 자는 지내갈 이 세상이야 이렇든지 저렇든지 아무래도 죽을 생명이니까 이것 뭐 살아 있는 것이냐 고생스럽게 살든지 넉넉히 살든지 또 자손들도 결국은 심판받아 가게 되니까 자손들이 잘 먹고 잘 입는 거, 못 먹고 못 입든지 그거는 다 필요하지마는 사소한 일들이다. 사소한 일들이니 아무래도 이 하나님의 심판에 나와 내 행동과 내 인질이라는 이 인격성이 하나님과 이질된 이것을 어떻게 하든지 정리를 해야 되겠다.
이래서 세상이야 죽 먹고 배 고프고 억울하고 수고는 많이 하고 값은 적게 받고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뭐 그거나 그거나 그까짓 거 잠깐 있다가 지나가는 것이니까 아 그거는 큰 문제 아니고 하나 하나 그 행동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다 들어날 모양이니까 손해는 봐도 손해 봐서는 안 되겠다 남에게 어떤 그 억울함을 당한다 할지라도 남을 침략이나 참해나 착취나 피해나 이런 일은 안해야 되겠다 이래서 이제 조심해서 사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고 저 등신 바보다 이러면 되는데 그것 못 하니까 등신이다 아 불끈 가 눈을 부릅뜨면 되는데 그것 못하니 등신이다. 이렇지마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과 이질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다. 하나님과 다른 그 인격성을 죽이고 뽑고 고칠려고 애를 쓰는데 그런 마귀적인 그런 인질을 내가 만들 수 없다. 그 사람은 멀리 보고 큰 것 보고 사는데 가깝게 보는 자는 다 등신이라 합니다.
이러기에 멀리 보는 자는 가깝게 보는 자를 안타깝게 여기고, 가깝게 보는 자는 멀리 보는 자를 업신 여깁니다. 집집마다 자식들이 부모를 업신여깁니다. 업신여기는 이유는 왜 그러냐? 부모는 좀 멀리 보는데 자녀들은 가깝게 밖에 못 보니까 가깝게 보는 제가 지혜 있고 제대로 하는 데에 멀리 보는 그 부모는 제 의견대로 그렇게 당장 효력 있는 일 하지 못하니까 '아이구 우리 부모는 어리석어.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아빠도아무것도 몰라. 아 이러면 되는데' 야 임시만 보면 그렇지마는 길게 보면 그렇지 않다 해도 그걸 못 보니까 등신으로 봅니다. 그러니 모두 잘났소.
요새는 무식한 사람들이 다 유식한 사람들을 천치 바보라고 말합니다. 어리석다고 말하고 요새는 점점 아이 세계가 됩니다. 멀리 보는 자보다 가깝게 보는 자가 세력을 잡고, 가깝게 보는 자가 왕이 되고, 유식한 자보다 무식한 자가 권세 있는 자 되고, 왕이 되고 내일도 모르고 막 가는 자가 제일 왕입니다.
이런데 요새는 누가 정치가가 될런지 모르지마는 이 가깝게만 보는 깡패 불량패 이런 멀리 보지 못하고 생각나는 대로 누가 말하면 픽 따라가고 하는 그런 어리석은 것이 왕이 되고, 세력을 가지는데 이것을 하나씩 숙청을 한다고 하니까 조금 그 세상적으로 조금 소망이 보여집니다. 이런 것을 숙청을 한다고 하니까 학생들은 무기 휴업이 아니라 휴학이라고 휴업을 딱 시키받는 거 그 지혜롭게 했습니다. 아 공부 안하려 하는 학생들 공부시킬 필요가 뭐 있소. 그 공부 안 시키면 되는 것 공부하지 말지. 공산주의 앞잡이가 돼 가지고 데모 한 그게 뭐 잘났다고 잘했다고,내가 모르지마는 신문에 보니까 그 뭐 공산주의자들이 나서 가지고 그들이 다 지도자 되고, 제일 처음에 발기인 되고 그분들이 다 충격해서 그런데 그런데 4.19때 학생들이 한번 어째 황소 뒷발로 쥐잡듯이 어째하다 보니까 그랬는데 그때도 내가 말들으니까 학생들이 하는 게 아니고 교수들이 먼저 나서서 하고 뒤에 학생들이 따랐대요.
이러니까 그만 학생 만능이 됐고 선지자가 됐고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전부이 모르는 사람이 다 돼버렸어. 이랬는데 요번에 두 번 데모로서 우리 나라는 팍 꺼꾸러졌습니다. 이랬는데 요번에 그 데모는 환하게 나타나니까 잘했다고 자랑할 수 없지 그래 놓으니까 학생 콧대가 납작 눌러진 거 그 꼬십니다.
저거가 뭘 안다고 모르지만 집집마다 왕이요. 내일도 모르고 장래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근시자가 뭐 안다고 알기를. 우리 교회도 학생들 많지마는 거머쥐고 말해 보면 참 희망성은 있지마는 현재로서는 등신인데 소경인데, 성경에 보면 말세가 되면 그 청년들이 정치 않고 앞뒤를 모르는 어린 아이가 이제 정치가 된다 했어.
어린아이 임시만 보고 사는 자는 내일까지 보는 자를 등신이라 하고 내일까지만 보는 자는 명년까지를 보고 계산해서 사는 자를 등신이라 하고, 명년까지만 보고 사는 자는 인간이 늙어서까지 보고 사는 사람을 등신이라 하고, 늙어서까지만 볼 것 아니라 자손 후손 대대를 보고 사는 사람을 등신이고 못났다 하고 금생만 보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무궁세계를 보고 사는 사람을 등신이라 합니다.
이래도 여러분들 이 모든 존재는 스스로 있는 거 아닙니다. 자연히 있는 것 아니요. 또 무엇이 하나가 진화가 돼 가지고 있는 그 어리석은 괘변가들 진화론자 모양으로 그렇게 진화돼 된것도 아닙니다. 이것을 지으신 분이 있소. 또 이것의 주인이 있습니다. 또 이것을 지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것을 세밀히하나 하나 주권적으로 관리하시고 섭리하시고 조정하시는 이 모든 것을 운용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없으면 탈이지마는 그분이 있다고 하면 어찌 됩니까? 자 지으신 분이 있어. 주인이 있어. 주권자가 있어 전체의 섭리자가 있어. 모든 창조의 목적이 있어. 이분의 것, 아닌 것이 없고 이분의 것 아닌 것을 먹는 게 없고 이분의 것 아닌 것을 마시는 것이 없고 순전이 이분의 것이요 자체도 이분의 것이요. 이분의 것 먹고 마시고, 이분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이분을 대적하는데 이분이 그 배상을 뒤에 받고 심판을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이거 다 모르고 삽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심판에 걸리는 죽음에 걸리는 죽을 때 후회되는, 부활할 때에 후회되는, 심판대 앞에서 후회되는, 영원무궁세계 유황불 구렁티에 후회되는 그 일을 담대히 배짱 있고 무서운 줄 모르고 합니다. 그게 무지하기 때문에 근시자기 때문에 그 배짱부리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도 부활도 영생도 생각 않고 우선 좋도록만 수단 방법을 가지지 않고 막 검어 닥치라 먹어라 입어라 놀자 가지라 올라가자 하는 사람은 잘난 거 같지마는 그는 근시자입니다. 소경이라 멀리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다른 것을 정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돼야 될 터인데 하나님과 같지 않는 자체 하나님과 같지 않는 그 인격 하나님 같지 않는 그 인질 인성 하나님과 같지 아니하는 모든 희로애락 하나님과 같지 아니하는 소원 하나님과 같지 않는 경영 하나님같지 않는 행동 이것을 낱낱이 정리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정리하는 것이 믿음이요.
예수 믿는 사람 믿는 것이 돈벌이하는 것이 믿는 것인 줄 압니다. 지위나, 권세나, 명예나, 영광이나, 존귀나, 안일이나, 수명 장수나 이거하는 것이 믿는 것인 줄 압니까? 아닙니다. 그것을 하지마는 믿음의 목적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거 해도 그거하는 거기서 껍데기는 그거 하지마는 그거 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자기와 다른 것을 정리하는 그 일이 자기 할 일이요.
그것이 농사를 지어도 장사를 해도 정치를 해도 어떤 문화를 연구해도 자기는 그거하는 것이 자기라 사람 보기에는 그거하는 같지마는 그것을 하면서 하나님으로 할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거 있고 자기가 하는 거 있는데 실은 그 하나님이 하시는데, 제가 하는 줄 알고 하나님과 대립되는 그 일을 해도 하나님이 하시니까 그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해서 됐지 제가 된 것 아니요.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질, 동성, 동소원, 동의, 동편, 동목적, 동성취 이래하는 사람 있고 자기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행동해도 하나님이 되기는 되게 합니다.
이러니까 반대되는 행동해도 되니까 저는 그래 된 줄 아요. 폭 속았소. 폭 속았어. 요것을 믿는 게 믿음인데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 상하였다가 나은 것 보고 산다 고기 성신의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 그렇게 해도 됐는데 그렇게 해도 안 될 때 있습니다. 안 되는 그게 뭐이냐? 꼭같이 했는데 와 안 되느냐? 꼭같이 했는데 될 때는 하나님이 고 일을 해서 됐고 네가 해 된 게 아니라 안 될 때는 하나님이 않고 너 혼자 하니까 안 된다 고걸 봐서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는데 미련하자는 그 해서 됐으니까 제가 해서 된 줄 알고 고렇게 하면 되는 줄 알고 자구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주권 의지로 모든 것을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대로 주권 능력을 혼자 이를 이루십니다. 재창조를 합니다. 이것을 사용하시고 저것을 사용해서 일으키십니다. 도야지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지마는 도야지는 한 배에 새끼 열 다섯 마리 놓은 거 제가 봤습니다. 그것이 도야지 새끼에 제가 만든 것 같으면 그래도 좀 알긴데 좀 무식이요. 도야지 만드는 데서는 전 무식입니다. 아무것도 모르요. 속에 종류나 몇 가지 기관이나 있는 줄 압니까 모릅니다. 모르는 자가 어떻게 만들겠소. 하나님이 도야지를 사용해 가지고 도야지를 만드시는 하나님이시요.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만사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믿음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 어떤 물건, 웃는 일, 우는 일, 좋은 일, 손해 보는 일, 유익된 일, 급한 일, 수월한 일 현실이라는 그 현실 현실마다 고 모든 현실은 하나님과 자기와 다른 것을 이것을 소탕하도록 하나님과 자기와의 다른 것을 이것을 다 제거해 버리고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 되도록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 다른 것을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는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요 현실에서 인간들은 현실 현실마다 그 현실에서 자기 인정만 자꾸 만드요. 요게서도 자기 인정 한 번 더 만들고 저게서 더 만들고 나이가 많아서 머리가 파뿌리가 되기까지 허해지면 일생 동안 안 생활에서 저만 인정하고 이러니까 늙은이 무릎팍 세우듯이 늙은이 고집 늙은이 욕심 모든 데에서 저만 인정해 놨거든 저만 세워 놨거든 이러니까 자기를 꺽고 자기를 부인하기가 제일 어려운 것이 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잘 늙은 사람은 자기는 하나도 없고 완전히 부인해 버리고 하나님만 인정하고 그것을 일생 동안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고 현실에서 자기를 인정할려 합니다. 자 여기서 저는 요렇게 할라 합니다. 요리해야 되겠는데 성경 말씀은 요렇게 하라 합니다. 이래 요래 할까 하나님 시킨 대로 요래 할까 옆에 사람들이 있다가 '야 그 성경대로 하면 안 된다 이래 해라' 그러면 나를 인정할까 하나님을 인정할까 둘이 두고 누구를 인정하고 누구를 부인할까? 이래 쌌다가 옆에 사람이 하나 와 가지고 거듭니다. 거드니까 거드는 힘을 받아 가지고 아 이 사람도 있고 모든 사람이 이러니까 이제는 저하고 하나님하고 맞붙으니까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할까, 자기를 인정하고 하나님 부인할까 하다가 옆에 사람들이 와서 붙으니까 사람 중량이 무거워졌습니다.
이러니까 눈 질끈 감고 여게 대해서는 하나님 부인하고 이제 나와 이 말하는 이 사람들을 인정하자 인간 인정으로 그 현실을 통과합니다. 이것은 멸망할 행위입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들이 택한 자라도 마귀에게 꼬인 사람들이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현실에서 아무래도 하나님 소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신 대로 이렇게 해야 이게 옳지 평가적으로 비판적으로 이게 옳지 그런데 내 생각은 이러네 만물보다 거짓된 네까짓 게 네 일도 모르고 네 생명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만물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네까짓 생각이 뭐 주장을 해. 입닥쳐. 아 하나님께서 이래 하라고 하지마는서도 아무래도 이러면 무엇이 손해가고 뭐이 손해가고 그래서 안되겠는데 자기 속에 자기한다 그래도 닥치지 못해.
아무래도 이래하면 내 장래가 문제가 되고 무엇이 문제 사업 문제, 사업 문제 요것도 욕심이 자꾸 주장을 합니다. 요것은 완전히 죽이야 될 터인데 안 되니까 '주여 내 속에 나를 죽이는 원수 이놈이 있습니다. 이놈을 완전히 부인케 해 주옵소서 이를 꺽어 주옵소서'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너는 잔소리 마라' 주여 당신의 명령대로 단행 나가니까 이놈 척 죽어 버렸습니다. 네 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이것이 인간 부인이고 하나님 인정입니다. 이것이 만물 부인이고 하나님 인정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셋째로 믿음은 자기와 세상을 뒤로 두고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찾아가는 것이 왜? 그분 만나야 되겠고, 그분에게 제일 좋은 것이 있고, 그분만이 나에게 참 책임을 지시고 나에게 모든 생명과 평강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실력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또 그분이 이미 세상에 아무래도 할 수 없는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고 앞으로 사랑하실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요 한 현실에서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나함으로 하나님과 나와 가까와졌고, 또 한 현실에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내 욕심을 버리고 성령의 욕심대로, 요 현실에서 나와 세상은 뒤로 두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소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따라서 현실 생활을 하나 통과하고 보니까 또 하나님과 나와 가까와졌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넷째로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내가 이제는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당신에게 속하겠습니다. 난 당신에게 속하겠습니다. 난 당신에게 속하여 살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것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붙들리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자유하시고 나는 당신에게 완전히 내 사욕이나 자율이나 자유나 주관이나 완전히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완전히 내어 놓고 맽기고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다 뺏기고 싶고 당신의 것이 되고 싶고, 내 욕심도 내 소원도 내 전부도 전부가 당신의 것이 되고 당신이 주관하셔서 나를 붙드시고 나대로 살지 말고 당신이 나를 통하여서 당신대로 내 생애를 이루어 주시옵소서 하는 하나님에게 속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섯째는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본체 결합은 피조물과 창조주기 때문에 안되지마는 완전자요 불완전자기 때문에 안되지마는 다른 면으로 하나님과 결합이 됩니다.
요 현실에서 나타난 요 성질로서는 내 성질 버리고 하나님 성질 취해서 내 성질이 하나님의 성질을 따라서 이제 성질 결합, 요게서는 내 욕심은 뚜렷이 이것이였는데 하나님의 소욕은 이것이니까 내 욕심과 하나님의 욕심이 달랐는데 내 욕심을 꺽어서 하나님의 욕심대로, 현실에 하나님의 소욕대로 함으로 내 욕심과 하나님의 욕심이 고 면으로 결합이 됐습니다.
현실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다른 것을 하나님과 나와의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님과 나와의 둘 되어 있는 것을 낱낱이 결합해서 요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고, 저 현실에서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는 요 재미에서 하나님과 나와 하나되는 이 재미에서 욕얻어 먹고도 억울하고도 참 병이 들고도 병이 들어도 그래도 찾아가서 악수하고 그래도 속이 없는 창자 없는 못난 사람들이 이제 고게서 화평하고 친근하고 함으로 요게서 그 사람 수입은 못보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원수된 우리에게 대해서 하신 예수님의 그 참사랑의 성경 그 성경에 하나되려고 하나되려고 수입이 딴 데 있어.
믿는 사람은 세상이 모르는 수입을 가지는 것이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이 모르는 것을 하나 하나 만들어서 저축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이 모르는 걸음을 걷고 세상이 모르는 근심 세상이 모르는 그 근심을 근심으로 하고 있어. 세상이 모르는 기쁨. 이래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이 믿음 가지고 결합을 합니다.
내 지식은 이런데 주님은 지식은 이렇다. 둘이 싸우다가 이제 자기 지식을 꺽어 하나님의 지식에 속해서 하나님의 지식으로 고 면에는 내 지식 삼아 하나님의 지식과 내 지식이 고 면으로 결합이 돼서 하나가 됐습니다. 지식 결합, 성질 결합, 소원 결합, 기쁨 결합 이제 하나님 근심하는 고 근심이 내 근심, 과거에 내 근심과 하나님 근심 달랐는데 이제는 내 근심은 부인하고 하나님의 근심, 그 근심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심은 영원한 근심이거든 내 근심은 그거 버리는 것이 복인데 어리석었다 그말이오. 멀리 보니까 이제는 근심도 결합 모든 면으로 믿음이라는 요 현실에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자기와의 결합을 만드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래서 믿음은 믿음은 전능자, 전지자,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완전자, 영원 불변자 이는 상상도 못하고 우리가 말은 하지마는 그 무한성을 측량할 수 없어. 사람이 그 무한성에 잠겨서 생각하다가는 이틀이고 사흘이고 나흘이고 밥 먹을 줄도 모르고 그만 아무 퍼가 누워 그 생각에 잠겨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고 생각하다가 당신이 내게 대해서 하신 일을 생각하다가 당신이 내게 대해서 소망을 두신 지극히 큰 소망을 생각하다가 이러다가 자는 것도, 피곤한 것도, 밥 먹을 것도 잊어버린 그것이 단신기도입니다. 그게 단식기도요.
아 내가 며칠 채워야 이제 세상에 나가서 한번 자랑을 할 터인데 명예가 올라갈 터인데 해서 간소한 식품으로서 요만한 것 먹어도 영양이 차지고 물만 마시면 되어지니까 고런 것 준비해 가 가지고 이제 며칠만 되면 사십 일 단식기도가 지내갑니다. 이제 사십 일 채워서 사십 일 단식기도했다고 남 알게 자랑하고 하는 사람 단식기도하고 나오고 난 다음에 안 잃은 사람 나는 하나도 못봤소. 이렇고 난 다음에 능력 잊어버리지 안한 사람 하나도 못봤소. 그러고 난 다음에 실패 안하는 사람 못봤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외식에 미혹받고 매수당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어떤 구변에도, 어떤 능지에도, 어떤 간사에도, 어떤 외식에도 매수당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바로 아시고, 바로 판단하시고, 바로 정리하시는 이분이 거짓으로 가득 뭉쳐 있는 세상에 이분 한 분이 없다면 자살하고 맙니다. 이분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 있소.
아무것도 봐야 믿을 것이 없어. 생각할 것이 없어. 전부 그의 기술이 능하고 모지래는데 따라서 의인 죄인이 있지. 전부다 보면 거짓뿌리 뿐이라. 이분만이 믿을 수 있어. 이분만이 바라볼 수 있어. 이분이 살기 때문에 살 소망이 있어. 이분이 아니면 살 소망이 없어.
이래서 이제 믿음은 이분과 거처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처소를 같이 하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할 것이요 우리가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함께 거처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자기와 거처를 같이 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동거를 마련한 것이 하나님과 자기의 동거를 마련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나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내 안에 계셔 상호 내주 동거하는 동거를 마련하는 것이 믿음이요.
일곱째로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 같이 움직여 같이 행동하게 동행하게 하나님과 나와 동행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일행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 하나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은 이래하고 나는 이래하고 그런 게 아니라 하나를 내가 하고 싶은데 하나님도 하고 싶고, 하나님 하고싶은데 나도하고 싶고 하나님과 나와 하나를 행하는 것이 하나로 하는 것이 하나님과 나와 둘이 이래 동사하는 것이 아니고 동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 둘이 하나가 되어 가지고 행하는 것이 이것이 일행인데 신인 일행을 이루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과 다른 것을 제거할 길이 없습니다. 현실을 주셔 가지고 하나님께서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내 욕심에 거슬려도, 내 자신에 거슬려도, 내 가정에 거슬려도, 내 지위에 거슬려도, 내 명예에 거슬려도, 내 생명에 거슬려서 내 생명이 죽는 이런 일이 있어도 내게 거슬려지는 그것을 현실에 요래라 저래라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것이 뭘 할려고 그렇게 시키시느냐 그것이 하나님과 나와 다른 것을 제거하기 위해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나를 부인하는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요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 현실에서 고렇게 하라 하는 것이 고것이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하나님에게 속하게 하는 것이요. 내가 만물에 돈에 속한 사람, 인간에 속한 사람, 정권에 속한 사람, 애인에게 속한 사람, 뭐 정실에 속한 사람, 명예에 속한 사람 암만 속해 봤자 그까짓 게 저 구원하지 못하는데 이런데 속한 것을 이제 하나님에게 속하도록 만들어. 하나님이 죽어야 내가 죽지. 하나님이 죽어야 여러분들이 죽지. 하나님이 실패해야 여러분들이 실패하지. 하나님이 빠져야 여러분들이 빠지지.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다섯째로 고 현실에서 고렇게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하는 고것이 거슬리지마는 고것이 하나님과 자기와 한 덩어리 만드는 것입니다.
여섯째로 그것이 고 현실에서 고렇게 요래라 조래라 하는 그것은 고렇게 안하면 하나님과 자기와 동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와 거처를 같이 하기 위해서 고렇게 시키시는 것입니다. 고것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동거하는 방편이요 동거하는 공작입니다. 동거하는 공작이요. 동거하는 동거를 만드는 공작입니다.
일곱째로 그것이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되어 영생하는 이 일을 하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일행하는 그 일을 만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고로 믿음은 지극히 보배로운 것입니다. 공연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괴로운 것을 시키는 것 아닙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심판받을 때에 그때에 제거될 것을 오늘에 제거하려면 믿음 지킵시다. 자기를 멸망시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구원할 하나님을 인정해서 인정하려면 믿음을 지킵시다.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서 만나고 싶거든 믿음을 지킵시다. 하나님과 거처를 같이 전능자와 같이 거처하면 아무도 해할 자 없소. 하나님과 거처를 같이 하고 싶거든 믿음을 지킵시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한 덩어리가 되고 싶거든 믿음을 지킵시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일행하고 싶거든 믿음을 지킵시다. 단정지웁시다. 말만 가지고 안 됩니다. 하면 돼.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은 보배 중에 보배입니다. 왜 세상이 왜 나쁜 세상입니까. 세상이 없으면 현실이 없습니다. 온 세상이 많지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현실만 필요합니다. 현실은 나에게 세상에서는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왜? 현실은 믿음을 쓰고 만들어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기도)
주님 믿음에 비밀을 알려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믿음의 이 유래와 믿음의 권위와 믿음의 효력을 밝히 깨닫게 하사 마음, 생명, 뜻, 힘 전부 다 해서 믿음 하나를 지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영원한 구원을 온전히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세계를 받고도 믿음을 줄 수 없는 이 사실를 굳게 잡고 현실에서 무엇 때문에 믿음을 뺏기거나 양보하거나 하는 이런 일이 없도록 성령님으로 우리 각자들에게 천하에 흩어진 구속 받은 성도들에게 이 일을 이루어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