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1:54
믿음
1980. 9. 27. 토새
본문 : 누가복음 17장 5절 - 10절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 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 뿐이라 할찌니라
사도들이 주님에게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믿음은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간단하게 말씀해 주셨고 또 믿음이 차차 더해가는 방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은 어떤 것이 믿음인고 하니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순종하는 이것이 믿음의 외부요.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하나님에게 소속한 자가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고것이 믿음의 내부인 것입니다. 그것을 여게 가르칩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지만 믿음이 어떠한 것인 것을 저희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기 때문에 믿음에 그 실상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믿음인고 하니 일반적으로 자기가 자기 주관이 자기 주관이 하나님을 하나님에 대한 그 모든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렇게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자기가 인정하는 것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 자기가 인정하는 그것을 믿음이라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이렇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믿었습니다.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것은 어데까지나 자기 주관 행위입니다. 이것도 믿음에 속한 것은 속한 것이나 아주 믿음의 극외부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자기 생각대로 인정하는 것, 그 속에 하나님의 명령에 내가 순종하는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순종하는 것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믿음의 외부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딸치마는 자기 생각대로 딸코 자기 뜻대로 하나님을 따라합니다. 그저 무엇이든지 여게 대해서 믿사옵나이다.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은 이렇게 이렇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런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근거해 가지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것이 일반적으로 받는 믿음이라 하는데 그것도 믿음이지만 그 믿음은 아주 극히 외부입니다.
왜? 거게서 시작을 해 가지고 차차 자라서 자기 주관대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명령이라 뜻이라 교훈이라 할 수 있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처음에 말한 그 믿음에 알곡이 되겠습니다. 알맹이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말씀하신데 따라 딸른 것, 그러면 하나님께 순종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이렇게 할 때에 순종하는 그 순종, 순종이 되겠는데 그것이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 인정보다는 진실한 믿음입니다. 이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거, 이것이 좀더 진실한 신앙이 되겠습니다.
아 그보다도 더 참된 신앙은 어떤 건가? 하나님과 실제로 자기가 결합이 되서 하나님과 자기와 결합이 되어 하나님과 자기와 결합이 되어 하나님이 어떻게 움직이신 그 움직이심에 피동되어 자기가 움직여지는 것, 그것이 이제 믿음의 알맹이 그 진실한 믿음이 되겠습니다.
그 제자들은 이 첫째 둘째의 이 믿음을 생각하고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이렇게 말할 때에 주님은 첫째 둘째의 그 믿음을 초월한 세번째 말한 그 진실한 믿음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믿음이 네가 하나님을 딸는다는 것이 네 주관대로 딸는 그게서도 머물러 있지 말고, 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그 믿음에도 머물러 있지 말고, 하나님과 참 결합이 되서 주님이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그 일이 내 말로 나타났다.' 그러면 네가 지금 움직이는 움직임은 내가 움직임이 아니고 내 안에 주님께서 움직이셔서 그 움직임이 나를 통해서 나타난다. 바울이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그 사심이 그 생활하심이 그 움직이심이 나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바울이 말한 것처럼 이 첫째의 믿음 그것에 오만해 앉았지만 말고 그게서 나아가서 두번째 말한 그 믿음에 나아가서 그거게서 오만해 가지고 주저 앉아 있지 말고, 세번째 말한 하나님과 그 연결이 된 그 연결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너는 마치 하나님의 수족같이 되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역사대로 내가 움직이는 이 믿음에 나아가도록 하라. 이것을 가르쳐서 겨자씨 믿음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내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한 네 믿음이 있었으면 겨자씨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주 지극히 작은 씹니다. 지극히 작은 씨나 그 속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생명력은 어떤 땅에 심기워져도 흙이라면 거게는 그 작은 생명이지만 그 생명이 흙에 있는 온갖 것을 다 정복을 해서 이용을 합니다. 이용을 하고 그것에게 해를 보지 않습니다.
아 땅이 뜨뜻해도 정복하고 그 따신 온기를 생명 씨가 이용하고 또 땅에 있는 썩쿠는 그런 비료기운 그런것도 이용하고 또 생명이 없으면 썩카버리는 모든 수분도 이용하고 온도도 이용하고 생명이 없으면 썩카비리는 모든 수분도 이용하고 온도도 이용하고 생명이 없으면 흙이 정복해 가지고 흙 제것을 만들어서 흙과 같이 되는데 삶은 호박씨를 한 섬을 심어도 생명이 없으면 그것은 얼마 안가서 흙이 점령해서 흙과 같은 것이 됩니다. 흙이 됩니다. 흙의 것이되어 흙이 됩니다.
그렇지마는 생명있는 그 씨는 겨자씨가 가장 작은 것이지마는 그 생명의 힘이 한섬되는 생명없는 호박씨를 썩쿠는 그 땅에 심어도 생명있는 겨자씨는 그 땅에 있는 그 모든 썩쿠는 그 썩쿰의 것, 썩은 것 또 썩쿠는 수분 또 썩쿠는 그 온도 그런 것을 다 삼켜서 오히려 크게 자라게 된다. 이것이 생명있는 씨인데 작아도 그런데 이것은 내가 믿음은 처음에 말한 그것도 믿음이지만 아주 껍데기 두번째 말한 그것도 믿음이지만 껍데기 세번째 말한 하나님과 네가 참으로 연결이 되어 내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아니고 하나님이 이제는 너와 연결되어 하나님이 너를 써서 하나님이 너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너를 사용해서 하나님에게 사용되는 하나님의 지체가 되어 하나님이 움직이심으로 그에게 피동되어 움직이는 요것이 산 믿음인데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그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생명입니다.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제대로 움직이는 것이 사망입니다.
그러면 자기 주관대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도 아직 그것이 죽은 것이요, 또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를 좋아 지키는 것도 그것도 죽은 것이요,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점령하고 자기를 하나님께서 주장하셔서 하나님이 주장하여 하나님이 주가 되고 하나님이 동기가 되고 하나님이 주권자되어 하나님이 나에게 자유하심으로 나는 그에게 피동이 되고 이용이 되어 그대로 움직이는 이것이 하나님과 결합한 행위인데 요 세번째 말한 요것이 믿음이요, 요것이 산 믿음이라. 요것이 생명이 있는 믿음이라 말입니다.
아무리 보기에 작거나 크거나 네가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이 작고 크고 상관없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이 너를 주장하시고 하나님이 너를 주권하시고 너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 하나님이 당신하고 싶은 대로 너를 움직이는 그것이 되어지면 하는 말입니다.
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네가 요렇게 요 결합되어 있으면 요것이 기독자의 완성이요 요것이 목적입니다.
요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내게서 어떤 행사가 되겠느냐? 뽕나무를 뽑혀 뽕나무 저러더 '뽕나무야 뽑히라.' '내가 바다까지 가거라.' '바다에 심기워라.' 이것이 도무지 역사에 없는 일이요. 이제까지 역사 세계에 없던 없었던 일이요. 이것이 또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요. 뽕나무가 제가 사람이 여러 아람되는 뽕나무라면 다 그래될 터인데 어떤 뽕나무는 명하면 되고 안 명하면 안되면 안되는 것이니까 뽕나무라면 부득이 제일 큰 것을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여섯 아람되는 그 뽕나무가 저절로 체험으로 땅에서 뽑힌다는 그것이 도무지 비합리요, 비과학이요, 또 비자연이라. 자연이라 말은 이제까지 역사에 없었다 그말입니다. 그 비자연이요, 비합리요, 비과학이요, 비통계라. 또 그것이 그 큰나무가 제가 바다까지 가는 그것도 도무지 없는 일이라 그말도 아닌 소리라.
흘러 내려가는 물에 떠내려 가기는 내려갈 수 있지만 내려가는 물에 어떻게 나무가 심겨질 수 있어. 이 도무지 이치에 안 맞는 일입니다.
인간 힘과 인간과 역사에 하나도 안 맞는 일입니다. 안 맞는 일이라도 내가 뽕나무에게 명할 것이요. 내가 하나님에게 결합돼 가지고 살고 그가 너에게 자유를 하시고 너는 그에게 피동이 된다면 너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초자연의 모든 것을 경영할 수 있고 또 소망할 수 있고 또 역사할 수 있다.
이렇게 뽕나무에게 이런 명령을 한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과 결합이 됐으면 성경에는 인간 이치에 인간 과학에 인간이 역사 세계의 모든 역사에 인간 문화에 이해 못할 그런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다 이런가 저런가 의문중에 있을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을 네가 인정만 될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을 다 네가 하는 자가 되어지리라 하는 자가 되어지리라 요 좀 어려운 말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나 또 영감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이렇다 저렇다 법도를 주셨고 약속을 주셨고 또 지식을 주셨고 이렇게 한것은 이것이 왜 우리가 모두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느냐 하면, 이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과 맞지 안하고 우리 지식, 우리 생각, 우리 뜻에는 전연히 이것은 맞지 안하고 이것은 물에 넣어도 붙지도 안할 불에 넣어도 타도 안할 말과 같은 아주 허무 맹랑한 말도 아닌 이 사람이 백 년도 못살아 뻐덕거리는데 영생이라니 이거 도무지 말이 아니라 이거요.
이제 인간이 비합리적이라, 비과학적이라, 비통계적이라, 비자연적이라, 이 비역사적이라, 비인지적이라, 인간의 지식적이라 말, 인간의 지식적이라 다 인지식적이라 하는 전부 이런 것인데 이런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도 못하고 이대로 살지도 못하고 모순 가운데서 고통이라 말이요.
성경대로 하기는 해야 되는데 이거는 번연히 죽는 일인데 자꾸 산다고 하니 고만 죽을 요랑하고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떻게 한번 해볼 수 있기는 있겠는데 그래도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안 되는데 이러니 부득이 해서 자기 볼 때에 아주 쉬운 것, 작은 것, 약한 것, 아주 작은 것 그런 것을 제가 '어라 손해 볼 요랑하고 해보자' 이러니까 고렇게라도 하는 사람은 해 보니까 되니까 '야 우리 인간이 아는 지식뿐만이 아니구나!' '인간이 아는 지식뿐이 아니요 인간이 아는 지식밖에 이걸 초월한 지식이 있구나!' '이거 꼭 안되는 줄 알았는데 된다.' 이래 가지고서라도 차차 차차 하나씩 밟아 올라가 가지고 이제 인식하는데 나아가니 이게 참 눔뱅이 걸어가는 걸어가는 걸음이지만 이래 하지만 이것 조차도 해보지 안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은 말씀대로 구경하고 하나님 말씀은 그렇다 하지만 우리 생활은 실상 이래 있어야되지 그래서는 안된다 이러니까 이중 생활하게 된다 이거요. 그것이 왜 믿어지지 않느냐 그거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오.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 믿어져도 한번 속을 요랑하고 해보자 한 사람은 되어지니까 '아 되어지는구나!' 요렇게 눔벵이가 구불라가는 것처럼 조금씩 이제 전진이 되가겠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에 이제까지 인간 살아온 것과, 인간 경험, 인간 체험, 인간 행위, 인간의 지식 여기에 맞지 않는 것은 왜 맞지 않느냐? 죽은 인간의 지식에게는 산 하나님의 지식이요 하나님의 것이기에 안 맞을 수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없는데 이제 내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연결이 되어 하나님으로 네가 동하고 정하고, 너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하나님은 너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은 네게 대해서 주장하시는 분이 되어지고 너는 거기에 팔다리가 주장하지 못하고 자기가 주장하는 대로 팔을 오므릴려면 오므리고, 뻗칠려면 뻗치고, 이거 뻗히게 하면 팔이 뻗치고, 오므리게 하면 오므리게 되고, 뻗히게 하면 뻗히게 되고 이것이 제 주장대로 하는 아니라 내 주장대로 팔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지체가 되어 하나님이 주장해서 너를 움직이는 요것이 결합된 그 산 움직임인데 요것이 겨자씨로 비유한 것인데 요렇게 되어지면 내가 뽕나무를 뽑혀 바다에 옮겨 심기져라는 이와 같은 것도 다시 말하면 이것은 인간의 그 주관, 인간의 지식, 인간의 경험, 인간의 체험, 인간적인 인간적인 지식입니다.
인간적인 지식에 인간의 지식에 정반대 되는 그것도 정반대,되는 그것도 너에게는 의심없는 인정이 된다. 의심없는 인정이 되어서 그대로 행하게 된다.
의심없는 인정이 되어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은 다 네가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은 다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주장은 다 이것이 네 주장이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너에게 역사하신 그 역사대로 너도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행하게 된다.
그러면 뽕나무에 명령하는 거 그 명령하는 거 믿음으로 명령하니까 그 뭐입니까?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뽕나무에게 명령하는 것 그 명령이 무어이냐?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한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한 그 명령대로 뽕나무에게 명령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자기에게 인식시킨 그 인식대로 자기가 피조물에게 대해서 행동한다 그말입니다. 피조물에 대해 행동한다. 그러면 그 피조물은 어떻게 되느냐? 그 피조물은 너희 행동하는 행동에 응하게 된다. 순종하게 된다 응하게 된다.
그러면 그 행동이 그 사람의 행동이 무엇이기에 그 뽕나무가 순종할까? 그 사람의 행동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행동이 무어기에 그 뽕나무가 뽑히래도 뽑히고 또 바다에 심기워지라니까 "심겨지리라." "또 네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너에게 있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워라 해도 그것이 바다로 날라가 가지고 바다에 던지워 지리라" 말씀했는데 그러면 그렇게 산을 옮기져라 명령했고 또 뽕나무를 이렇게 뽑혀 옮겨져라 명령했으니 그 사람이 그렇게 명령했는데 '그 명령에 뽕나무가 복종하고 바다가 복종하였으리라' 이랬습니다. 여게 "그것이 너에게 순종하였으리라" '그것이 너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랬는데 그 사람이 명령하는 명령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순종했겠습니까? 그 명령이 무슨 명령이지요? (이진헌) 목사님, 하나님의 뜻입니까? (송종섭) 목사님 바로 그 사람이 뽕나무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직접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그 하는 일은 하나님이 했습니다. 그만 하나님이 당신이 이렇게 되라 하신 데에만 된기 있습니까? 천지를 없는 가운데서 생기져라 하니까 생기졌습니다. 그분은 전능자시기 때문에 그분이 명한대로 그대로 이루어 집니다.
그러면 이루어지는 것은 뽕나무가 제가 그렇게 합니까 그 당신이 이렇게 되라 하시는 그분의 전능이 그일 합니까? 그렇게 되라고 하신 그분이 그렇게 되라는 하는 그것이 뭐이냐? 되라고 하는 그것은 끄트머리 표시요 되라고 하시는 그대로의 일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시라 말이오.
없는 가운데서 '천지야 생겨져라' '바다야 모든 그 생물을 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다에게 명한 것으로 나타난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한 그거로 나타난 그것은 하나님 천히 그 역사를 하시는 그것을 표시한 것이라 그말이오. 표시한 그대로 하나님이 역사해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루어졌어. 바다에게 명할 때도 공중에 명할 때도 육, 땅에 이 육지 땅에 명할 때도 명하시는 그 명령은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 친히 하신 것을 이제 표시하신 것이요.
그 표시는 그 피조물 그 피조물에게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통해서 하시는 요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피조물을 통해서 바다를 통해서 생물을 지으셨고, 육지를 통해서 모든 이 식물들을 지으셨고, 공중을 통해서 공중에 거처하는 것들은 지은 것은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그것을 통하여 지으시기 때문에 인간의 표시로써 네가 이렇게 해라 명령했고 명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명한 것은 하나님이 명하셨고 또 명할 때에 그러면 그 자체를 무시하고 땅을 무시하고 바다를 무시하지 안하고 그것을 대우해서 그것을 통하여 그게 속한 것을 그걸 통하여서 당신이 하시기로 표시해 그것에게 알라고 바다에게 알리고, 땅에게 알리고, 육지에게 알리고 그것을 통해서 또 일하시는 일하셔서 그것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하셔 그것이 한것 같이 이렇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뽕나무에서 명령하신 것은 이 뽕나무에게 알린 것이요. 또 그 사람에게 명령해서 그 사람이 뽕나무 명령한 것은 그 사람에게 알려서 그 사람을 빼내 버리지 안하고 그 사람을 그 통해서 그 사람을 위해 관련성을 가지고 해서 그 사람에게 알려 그 사람을 통해서 뽕나무에게 명령했는데 그 명령이 그 사람을 통해서 통과해서 한것 뿐이지 그 명령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그 명령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또 그 사람은 뽕나무에게 절단해 가지고 '뽕나무야 네가 뿌리까지 뽑혀 뿌리가 뽑혀 저 바다에 심기워저라' 이렇게 그 사람이 뽑히라 심기워져라 말하지 안하고 뽕나무에게 명령하니까 뽕나무가 또 그렇게 뽑혀 가지고 바다에 심기워졌으리라 순종하였으리라 했다 말이오. 그렇지. '하였으리라.' 그러면 그 뽕나무에게 명령해서 알린 것이 사람이 알렸지만 실은 하나님이 알렸고 사람이 알렸고 뽕나무가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쓰고 하고 또 뽕나무가 그와같이 됐다.
그러면 뽕나무가 옮겨서 바다에 심겨지는 것, 뽑히는 것, 옮기진 것, 심기전 것, 그것에 그 역사에 대해서 그 역사에 대해서 뽕나무는 그 역사를 제가 한것 같이 제가 한것이 됐다 말이오. 제가 한것이 됐으니까 뽕나무는 그 옮겨지는 그게 대해서 뽕나무 저는 제가 한 것이 됐고, 또 이 사람은 사람이 제가 명령해 가지고 뽕나무가 옮겨졌으니까 또 사람 제가 한 것이 됐고, 또 하나님이 그렇게 해 가지고 한 것이니 하나님이 하신 것이 됐고,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뽕나무를 통해서 이렇게 모든 역사를 하셨는데 이것이 '교회는 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니라' 하는 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네가 하나님과 결합이 되서 참 하나님이 너를 주관하시고 네 안에 사시고 네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네 모든 영과 육이 다 동하고 정하여 그분 소원대로 그분 주관하는 대로 동하고 정하는 그분이 너와 이 결합이 연결이 되 가지고 그는 주인이 되고 너는 그 소유가 되고, 그는 주권이 되고 너는 그에게 피동이 되고, 그는 그 자체가 되고 너는 그 지체가 되고, 이렇게 해되면 이게 믿음인데 이게 믿음의 알맹이 인데 이게 이렇게 되면 하나의 예를 들었습니다.
뽕나무, 산을 인간의 이치에 맞지 안해서 머뭇거리고 사람들이 주저하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의 하나님이 당신이 지식하고 있는 당신이 지식하는 그게 실상이라 말이오. 인간이 거짓되기 때문에 인정이 안되지 그것이 실상이라 그거요.
실상 실상인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식하시는 요 지식 이 지식이기 때문에 그것이 너희에게 다 지식이 된다. 그 내가 하나님과 연결이 안되서 아직까지 인간과 연결되어 인류와 연결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이 내게 부인이 되어지지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으면 하나님의 지식은 네 지식이 됐고 하나님의 지식이 반대되는 인간의 지식은 그것이 너희에게 마지 안해서 그것에 다 네개는 비합리가 될 것이요. 안긴의 지식은 비합리기 될것이요. 하나님의 지식은 너희에게 합리가 되어지고 인간의 지식은 비합리가 되어지고 인간과 내가 합해 가지고 있고 하나님과 합하지 안했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은 합리요.
하나님의 지식은 비합리라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너희에게 고대로 요기 사실이라 하는 인식이 될것이고, 인식된 고대로 네가 모든 만물에게 대해서 행할 것이다. 인식된 고대로 행할 것이다.
그만 인식되는 것이 인간들은 다 저거 저런 인식을 가진다 저거 틀린 인식을 가진다 하는 그 인식이 너희에게는 이게 사실이라 인식이 될 것이고 인정이 될 것이고 인정되는 그것을 그대로 네가 만물에게 행할 것이다.
"명하라" 명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한 그대로 만물에게 뽕나무에게 행하는 것이 된다 말이오. 행할 것이다. 그럴 때에 그 모든 피조물은 다 순종하게 된다.
그대로 되게 된다. 그대로 되게 된다. 그대로 된게 된다.
그러면 바다에게 생물 내라는 것, 바다 그까짓기 종자를 종자 그것은 바다가 물고기는 자라지만 바다가 뭘 내겠소. 이랬는데 바다가 모든 생물을 냈습니다.
땅이 모든 이 식물들을 냈습니다. 그러면 낸 그것은 바다가 그걸 냈는데 바다가 낸것이 됐기 때문에 그는 영원히 바다의 것입니다. 바다를 바래보고 삽니다. 참 바다의 자손입니다.
이랬는데 그 생물이 그렇게 생겨진 것은 그것은 껍데기로 보면 바다가 했고 껍데기로 보면 바다가 했는데 그 껍데기로 보면 바다가 했고 또 바다의 것인데 바다의 참 자기 기업인데 이랬는데 그 생물을 바다에 만들어 명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또 명한대로 그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루어지게 한 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다만 그 바다를 무시하지 안하고 바다를 대우해서 바다에게 할 대우를 하고, 바다에게 줄 영광을 주고, 바다의 권위를 주고 이래서 하나님이 그 속에서 역사해 가지고 바다와 육지가 큰 일을 했고 영광스러워졌고 이와같이 오늘은 내나 그때와 같은 때다. 하나님과 너와 결합이 되면 성경에 나타난 모든 비합리적인 인간 너희들이 이해 못할 또 더우기 영감으로 너희에게 나타난 인간이 이해 못할 그것이 너희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그것은 뭐이냐? 네가 하나님과 떨어져 있고 인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이 됐으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과 연결 돘으면 그것이 이해가 안 되는 아니고 이해가 될 뿐만이 아니고 그것이 네 지식이 된다. 그래 가지고 네가 네 지식이 될뿐만 아니라 그래도 명한다. 그래도 이제 네가 행하게 된다 그대로 행하게된다. 그대로 행하게 되면 행하게 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행하는 것이 네가 행하는 그대로 행하는 네가 행하는데 네가 행하는 속에 속은 하나님이 너를 내꺼풀을 쓰고 너를 꺼풀 쓰고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또 네가 뽕나무에게 말할 때에 뽕나무가 그렇게 지금 뽑혀져가 바다에 심겼으니 뽕나무가 행한다. 뽕나무가 행하는데 뽕나무가 행하는 꺼풀 속에 사람이 행하는 네가 행하는 그 행함이 그 속에 들었고 네가 행하는 뽕나무가 행하는 꺼풀 속에 네가 행하는 행함이 있고 네가 행하는 그것은 껍데기라. 네가 행하는 껍데기, 네가 행하는 껍데기 속에 내가 그 일을 행하여 그 일이 다 이루어진다 하는 고것을 요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인간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인데 하나님과 결합이 되면 인간이 인정 안되는 그것이 다 인정되어 네 지식이 되고, 그와같이 행하게 될 때에 껍데기는 뽕나무가 하는 것이니까 뽕나무가 했으니까 뽕나무가 영광 받을 것 아니요.
뽕나무가 한 것 같은 그 이 뽕나무가 했지요 뽕나무가 했는데, 뽕나무가 한 행한 고 속에는 네가 했고 네가 한 고 속에는 내가 하여 내가 전능자기 때문에 하면 다 됐지. 안 될게 하나도 없다.
그와같이 뽕나무도 순종하고 바다도 순종하고 다 순종했어. 바다가 순종했으니까 제가 했지. 이랬는데 그 속에 하시는 이가 하나님으로 그 일이 이루어진다 요 믿음의 비밀을 말씀했습니다. 요 믿음은 썩지 않고 그 어데든지 요 믿음은 요 땅은 세상을 말하는 것인데 요 믿음은 세상을 탁월한 그 온전이기 때문에 세상을 탁월한 온전이기 때문에 세상 뭐 이런 것 저런 것 비유로 말한 것, 흙의 온도나 수분이나 그 모든 각각 각종의 그 비료 기운 그 모든 비료의 요소 그런 것이 생명 없는 것은 다 막 썩쿤다 말이오. 썩쿠어 가지고 다 땅을 만들어 그렇지 않소.
비니루 그것도 오래되면 썩는답니다. 비니루 그것도 오래되면 썩어 뭐이든지 들어가면 다 썩카서 흙을 만들어 버려. 세상은 만들어 버려.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도 세상의 것이라. 석가모니도 세상 것이라. 세상 것 안된 것은 하나도 없어. 세상 만들지마는 이제 요 비밀 요것이 되 가지고 있으면 전부 세상을 정복해서 산다 말이오.
뭐 온도도 삼키고 수분도 삼키고 그 바짝 마른데 수분이 가면 그만 썩습니다. 땅 속에 들어가는 것이 생명없는 것이 바짝 말라노면 그 안 썩다가 그 수분이 꿉꿉해지면 고만 썩어. 또 밭 구둘에나 그 모든 질소분이 들어가면 썩어버린다 그말이오. 뜻뜻하면 또 더 잘 썩어.
이런데 썩쿠는 그 세상이지만 세상화시키는 세상이지만 세상화 시키지못한 인간이 없지만 세상화시키지 안하고 세상을 전부 이용해 가지고 이것이 더 자라게 된다. 세상을 정복해서 이용하게 된다. 그것을 가르쳐서 겨자씨 믿음 내가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하지만 믿음이 어떤 것이라는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그것은 뽑는 능력, 옮기는 능력, 심는 능력 인자 다른 걸 인용하지 안하고 그것을 비유해서 말하는 것은 우리는 전부 뽑는 역삽니다. 우리는 뽑는 역사, 일생 동안 사는 것이 쓸데없는 것을 뽑아 버리고 또 위치가 잘못된 것도 뽑아 버리고 또 옮기고 또 하늘나라에 심고 세상에 뿌리박아 있는 뽑아올리는 박혀 있는 이것을 뽑아 가지고 하늘나라에 옮기고 하늘나라에 심으는 것이라 말이요. 이것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했는데 고 다음에 믿음이 더하여지는 방편을 간단하게 그 다음에 말했습니다.
양을 먹이고 밭을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양 먹이고 밭갈면 되느냐? 양 먹이고 밭가는 그것이 주인을 위해서 양을 먹이고 밭을 갈아야 되지, 그 주위 위해서 양 먹이는 것도 밭을 가는 것도 하는 것이지 주인을 위함이 아니면 그까짓거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네가 신앙 생활의 어떤 행위를 해도 그게 주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가치 있고 주를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되지, 주를 위하지 아니하는 것이라면 네가 천하를 복음화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아무 소용이 없어. 그 하나님이 당장에 하실 수 있습니다.
네가 어떤 민족을, 사회를, 국가를, 교회를 아무리 네가 회개시킨다 할지라도 회개를 다 시켰다 해도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이 나 위해서 나 위해서, 나 위해서 나 위하는 것으로 그것이 한게 되야지 나 위하는 것으로 하지 안하면 소용이 없어.
자 밭을 수천 평을 갈았으니까 막 골이 빠지게 갈았습니다. 갈았지만 제가 갈고 싶어 갈았던지 또 제 무슨 소용에서 갈았던지 주인과 관련없으면 주님은 밭갈았다고 야단치요. '왜 네가 내 밭을 건방지게 네가 왜 갈아.' 주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어. 그게 주인을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땅 위에 사는 생활이 주를 위하는 하나님이신 우리 주를 위한 주를 위하는 그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크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까짓거 소용없다는 그걸 말합니다. 요것이 믿음 더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뭐 그 일하는 그게 큰 줄 알고 무슨 양을 먹이는 거, 인간 구원이 큰 줄 알고 밭가는 것, 무슨 회개를 일으키는 것, 그 개량시키는 것, 이런 큰 줄 알지만 그까짓거 아무것도 아니라.
사람이 그것 좀하면 그게 큰 줄로 제가 알고 있는데 고만 교회만 쪼꼬매만 부흥시켜서 좀 커져노면 아주 제가 큰 일 해서 뒤로 저뻥 하는데 아무 필요 없단 말이오.
'네가 천하를 개량시켜도 소용 없다.' 네가 나 모르만 소용없고, 나 섬기지 안하면 소용없고, 나를 높이지 안으면 나를 위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고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그래 가지고 돌아오니까 '아 내가 이렇게 많은 일을 했으니까 이제 나를 대우해 주나' '필요없다.' 뭘 좀 이렇게 주를 위해서 그것도 하고, 또 주인 위해 그것도 하고, 종이 주인을 위해서 하고 또 '아이구 아이구 이거 고만 늦었습니다.' 조금 점심 때가 늦었으면, 점심 때가 늦었으면 '내가 이렇게 밭도 갈고 일하는데 뭘 대접하지를 안하고 아이구 늦었으니까 아이구 고만 밭갈다 보니까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잘못됐습니다.' 그러면 주인을 있다가서 '무엇 때문에 갖다 밭 그까찟거 크나 내가 크나?' '왜 점심 때가 됐는데 점심 안하고 지금 그따위 짓만 했어.' 야단칠터이니까 '아이구 사과를 할 일이지 앉아 먹겠느냐' 이와같이 자기가 그렇게 그런 일을 하다가 보니까 주님에게 대한 일이 등한히 되어졌으니 이거 큰 죄를 지어서, '주여 당신이 조물주요 당신이 혼자 모든 걸 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에게 대해서 자기에 기울어진 지성과 지공에 대해서 기울어진 주님을 향한 주님에게 자기를 받혀 주를 섬기는 그것이 등한히 된 그것을 그거 하다 보니까 일하다 보니까 그리 기울어졌으니까 그게 주님에게 대해서 등한히 된 이것을 회개를 하면서 잡수실 걸 준비를 해 가지고 주 위해서 했으니 잡수십시오.' '아니다.' 잡수시도록 하고 또 수종을 들고 이렇게 난 다음에 자기가 먹는 것 이 먹는 것은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큰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큰 것이 아니고 내가 당신에게 붙들려서, 당신이 나를 붙들고 당신의 뜻을 이루는 그게 크지, 그게 성령의 소욕이지, 당신이 나를 붙들고 당신의 소원 이루어지는 그게 크지, 내가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루는 그게 큰게 아니라 그말이오.
이것이 당신이 잡수실 때에 수종들고 그 후에 먹고 마시는데 "이렇게 했다고 사례하겠느냐" 이렇게 했다고 사례를 바래는 그것이 하나님과 끊어지는 노릇이라 말이오. 하나님은 어떻게 큰 분이신데 이분은 어떻게 큰 분이신데 나는 어떤 존잰데 이분과 결합되는 이 관게를 바로 알고 이래야 결합이 될터인데 "그렇게 했다고 그 주인이 사례 하겠느냐" 사례 하나도 하지 안하고 마땅히 할 일을 했는데 주인은 마음에 만족이 하지 안했다 할 수 있는 '주인이시며 또 저는 아이구 이래했지만서도 그 주인에게 만족이 이루어질 일을 못해서 무익한 종이라.' 이것이 결론이 되는 이것이 하나님과 인생이 결합되는 그 방편이요, 비밀이라.
인간이 하나님보다 크게 있고 하나님이 저와 같이 되었고 제가 하나님보다 높아져서 그 하나님이 제 수종된 자와 같이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 위차가 바로되어 있지 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이 안된다 하는 것을 여게 가르쳐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결합이 안 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과 결합이 안 됩니다. 잘 가 새김질해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