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1:22
믿음
본문 : 요한복음 6장 54절-57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주님의 피와 살과 구속받은 성도들의 그 구원 관계가 어떠한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천지가 변치 않는 것보다 더 확고한 말씀이지만 이 사실을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합니다. 성신의 감화에서만 인정할 수 있는 어려운 사실입니다.
54절에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있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린다'하는 말씀이 기록됐습니다.
영생은 우리 성도들에게 언제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중복적입니다. 영생이 그 속에 있다가 없다가 그렇게 하는 영생입니다. 중생된 생명은 언제나 내주하지만 영생은 그 사람에게 하루 한 시간 있다가 없어지는 일도 있고 계속 그 속에 영생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생은 그 사람이 지금 살고 있는 지혜와 힘, 또 산 그 생애의 일, 이 세 가지가 없어지는 것도 있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것도 있습니다. 성도 안에 멸망하는 멸망의 지혜와 능력이 있을 때도 있고 영생하는 지혜와 능력이 속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또 성도가 행동한 것이 영원히 천국에 있어 하나님과 모든 이웃과 자기에게 유효하게 쓰여지는 영원한 일도 있고 그 일이 세상에서는 천지를 울렸다 해도 다 멸망되고 없는 그런 행동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껍데기는 사람이 행동하는 것이요 그 알맹이는 진리와 하나님이 조성하는 일입니다. 인생의 지능 껍데기 속에 하나님의 지능이 알맹이가 되어 하나님의 지능에 따라 인간 지능이 움직여질 때에 그것이 영생의 힘이요 해놓은 모든 행동이 다 영생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행동한 그 기능은 영원히 그 사람에게 살아 역사합니다. 그 행동도 영원히 하나님과 이웃과 그에게 필요있게 쓰여지는 행동입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기능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기능이 인간 기능 안에서 역사할 수도 있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기능이 자기 기능이 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움직이는 자기 움직임이 되므로 자기의 모든 해놓은 일이 영원히 보존될 뿐만 아니라 영원 무궁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될 그 최종으로 쓰여지는 이 영생이 되기를 사람들은 원하지만 믿는 사람이 이 영생을 가질려고 온갖 노력의 방편을 해도 못가지기 쉽습니다. 결심도 하고 선도 사모하고, 의도 사모하고, 화평도, 절제도, 계속 성의 의지도 별별 것을 사모해도 그것으로서는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할찌라도 극히 미약 합니다.
다만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일 그 크신 분으로서 주님이 천한 나를 위해 어떻게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세 가지 대속을 주신 이 사실을 자기가 연구하고 생각하고 점점 깨달아 느껴짐으로 자기에게 생각도 새로운 생각이 나올 것이고, 소원도 새 소원이 나올 것이고, 작정도 결심도 비판도 평가도 모두 움직이는 그 마음의 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의 마음의 힘이, 생각의 힘이, 결심의 힘이, 그때에 그렇게 깨달아 하고 싶은 그 지혜의 지혜가 막바로 하나님이신 주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의 지혜요 능력입니다. 그럴 때에 그 마음, 그 소원 그 결심 가지고 그대로 행할 때에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것이 껍데기는 사람이지마는 속의 알맹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겉은 인간 역사요 속은 하나님의 역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어떤 명예를 생각해서 어떤 목적을 생각해서 땅위에 별별 인간을 유혹시키는 소망들이 많고 욕심들이 많고 인간들이 좋아하는 그 모든 인간의 목표들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생각해도 힘이 나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생명도 바칠 수 있는 힘도 나옵니다.
정치가들 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생각하고 생각하는 그 영웅심은 생명도 아끼지 않는 그런 힘도 나옵니다. 또 자기가 명예나 도덕이나 그런 것을 사모해서 그 목적을 위해 생각하고 힘을 써 그 속에 굉장한 깨달음의 힘과, 결심의 힘과, 용기의 힘, 몸과 생명과 소유를 바칠만한 그런 힘도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사욕의 온갖 어떤 종류의 정욕을 생각해도 그 생각하는 끝에 자기의 심신을 다 기울려서 그 일을 달성코저 하는 그런 힘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하의 사람들이 다 그 생각에서 그 욕심에서 그 목적에서 나오는 힘 가지고 모든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는 영생하는 요소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속에 천만 억억만민의 속 결심 속에도 하나님의 지혜나 능력이나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소욕은 그 속에 섞여 있지 않습니다. 거기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러나 구속받은 성도들이 나를 구속하신 주님의 피를 생각하고 주님의 살을 생각해서 어떻게 크신 분이 어떻게 작은 나를 위해서 어떤 그 사랑으로 어떤 희생을 하셔서 나를 구속하시고 영광의 소망이 있게 하셨는가 하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또 되생각하고 아는대로 범위를 넓이 생각하고 깊이 생각하여 생각하는 가운데 깨달음이 나오고 감동이 나오고 힘이 나오고 욕심이 나오는 그 전부가 다 영생입니다. 요것은 세상이 전혀 부인하는 것이요 성신의 감화를 받은 자들이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 기독자는 별별 거짓 기독교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복음의 사역자가 되겠다 큰 개혁가가 되겠다 큰 부흥사가 되겠다 세계를 한번 변화를 시키겠다 어떤 위대한 대 목회자가 되겠다 다 좋은 생각이지만 그 속에는 영생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 그 설교를 여러분들이 들을 때에 아주 잘 했다고 유창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을 내가 나무랬습니다. 그 사람은 피도 잊어버렸고 주님도 다 잊어버리고 자기 배운 것 줏어대어 자기만 이렇다는 사람으로 나타내려는 그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못씁니다.
여러분들 세계의 대 부흥사라고 결단코 그 속에 영생이 있는 것 아닙니다. 아주 사람보기에 초초하다고 그 속에 영생없는 것 아닙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아옵고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니이다' 예수님의 대속이 어디서부터 근원되 나왔으며 나온 그 유래의 과정이 어떠했으며 어떠한 사랑으로 어떠한 계획으로, 어떠한 큰 투자로, 어떠한 광대하심으로 구속하셨는가 하는 것을 자기에게 많든지 적든지 있는대로의 그 지능을 다해서 '주의 피와 살을 양식 삼으라' 그 말씀은 주의 피와 살로 얻는 힘 지혜의 힘이나 마음의 힘 주님의 피와 살의 그 공로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힘, 자라가는 자람, 해놓은 일 그것만 참되다 그말이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 말씀은 다른 양식들은 다 썩어질 양식들이요 참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것으로 인한 힘으로 자라고 일하고 한다 할지라도 그 힘도 그 자란 것도 일해놓은 것도 다 참된 것은 아닙니다. 다 거짓부리입니다. 귀가 있는 자는 들을 것입니다. 다 거짓부리요.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은 다른 것은 다 썩을 양식이라 그말이요.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그를 살리리라' 하신 말씀은 피와 살을 먹는 자 그 속에는 벌써 영생이 역사한다 그말이요. 주님의 피와 살을 양식삼아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하여 얻어지는 힘.
인하여 생겨진 욕심, 인하여 생겨진 지혜 그것이 막바로 영생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지혜요 주님의 능력이요 그것이 주님의 소욕입니다. 주님의 욕심, 주님의 소욕이요.
그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음료라' 그 말씀은 인간이 고기 덩어리의 양식이야 물질을 먹어야 되지 뭐 딴 것 사다 먹을 게 있습니까? 여기에 양식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은 인격의 양식과 마음의 양식, 정신의 양식, 욕심의 양식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욕심이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자기에게 생겨진 욕심 그 욕심이 강해진 욕심 그것이 막바로 성령의 욕심이요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고 주님이 누구시옴을 그의 계획이 얼마나 광대함을 모든 것은 그에게 지음받은 것이라 이것은 비교를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이 사실을 깨달음으로 인하여 자기에게 생겨지는 지혜가, 힘이, 욕심이 소원, 그 사람이 하고 있지마는 그것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것이 막바로 주님의 것이요. 인간의 생각, 욕심으로 나타났지만 알맹이를 보면 주님이시요.
그러기 때문에 성도가 주님을 중보로 삼지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 못갑니다. 암만 기도해도 헛 일입니다. 암만 부르짖어도 헛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중보자십니다. 주님을 덩더꿍이로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어떠하신 분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어떻게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과정을 그 범위를 그 광대하심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깨달음이 나오고 그 깨달음으로 인하여서 욕심이 변화되고 힘이 변화되고 그전에는 아주 인간을 막 엎어칠만한 힘이 있었으나 나중에 주님의 피와 살을 깨닫고 보니까 그 힘이 자타를 죽이는 힘이기 때문에 집어 던져버리고 주님의 피와 살을 먹음으로 생겨지는 힘이 따로 있어 지혜가 따로 있어 모든 사람을 사기 협잡 횡령에서 마구 착취할 그런 지혜가 있었는데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가 사모하고 보니 거기서 나오는 힘이 나오는 것만큼 이 힘은 줄어지고 썩을 힘은 다 없어지고 예수님의 피와 살의 힘으로 바꾸어집니다.
이 양식이 참되다라고 하신 말씀은 주님의 피와 살의 공로를 자기가 생각하므로 생겨지는 힘 그것이 참 힘이라 그 말이요 영생하는 힘이라 말이요 그것이 참 힘 그 외에는 참 힘이 없어. 세계의 과학이 어떤 일들이 뭐라해도 그것도 힘이지만 주님 오시면 다 불타버립니다. 아무 힘없어 그 힘을 의지하고 살던자마다 그것이 멸해질 때에는 같이 멸망 받습니다. 여러분들.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하신 이 한 말씀이라도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생각 지식있는 대로 생각하고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길게 멀게 생각하고 과거적으로 태초부터 생각하고 자존부터 생각하므로 나온 그 지혜가 참 지혜다 생각을 하므로 나온 그 힘이 참 힘이다 생각을 하므로 생겨지는 소원과 욕심 그것이 참 욕심이요 참 소원이다 그게 뭐이냐 영생이다 그것이 껍데기는 나요, 알맹이는 하나님이신 주님이시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로만 된다 피로만 이루어지지 피를 떠나서는 안된다.
그러기에 네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므로 얻어지는 생겨지는 지혜와 힘 생겨지는 소원과 욕심 그것이 참이요 영생하는 것이지 그외에 내가 어떤 인간을 접촉하므로 사물을 접촉하므로 시대를 접촉하므로 네가 어떤 피조물로 얻어지는 힘이나 소원이나 욕심이나 지혜나 행동이 굉장히 찬란하다 할찌라도 한말로 다 멸망이다 영생이 없다.
이러기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그 속에 벌써 영생이 역사한다 주님의 지능이 역사한다 그말입니다. 그 사람은 성령의 소욕대로 움직이니 그의 모든 움직임이 다 영생이다.
이러니까 마지막 부활할 때에 그것은 다 부활할 요소들이다 영원히 부활해서 하늘나라가서 역사할 영생할 요소들이다. 그 외의 것은 제가 세계에서 어떻게 유력하게 유명하게 활동했다 할지라도 죽을 때에 그것은 다 없어지고 부활할 때는 그런 기능은 없습니다. 부활할 때에는 권능없는 고기덩어리만 형체만 부활하지 속에 기능은 하나도 없는 자로 부활합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라' 어떻게 해서 그 다음에 해석해놨습니다. 55절에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어떻게 해서 그와같이 되는가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주님의 피와 살을 자기가 자기의 전부로 삼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에게 상관이 없어 만물의 적이라 만물의 원수라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하나님과 자기와는 사이가 화친해서 연결이 되고 모든 피조물과도 화친해서 연결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보자요 모든 피조물과 나 사이에 중보자라.
이러기 때문에 그 분이 아니면 안돼 그런데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내가 그 안에 있기를 아버지가 내 안에 있어 모든 역사를 이루심으로서 흠없는 완전 승리를 이룸같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내가 그 안에 있어 나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이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버리고는 어떤 성자 성녀라도 주님의 피와 살을 잊어버리고는 하나님과 사귈 수는 없습니다. 연결은 안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을 삼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겠다 주님은 어디 계시면서 살리십니까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까 땅에 계십니까? 요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못믿는 일이요 꼭 조작배기 같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삼는 자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와 계시고 주님의 피와 살로 양식삼지 안하고 복음 운동으로 세계를 구원하겠다 몇백만 교회를 세우겠다 대혁명가 대 개혁가 대부흥사가 되겠다 내가 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몸과 생명을 바치겠다 좋지마는 거기에는 계약이 없습니다. 주님의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나니' 떨어지지 안했소 나는 그 안에 있고 그는 내 안에 있나니 어떻다는 말이요 그는 내 안에 있고 나는 그 안에 있나니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사는 것 같지마는 내가 사는 것 아니라 아버지가 사는 것이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사는 것처럼 내 피와 살을 양식 삼아 먹는 그에게 나는 그 안에 거하고 그는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로 인하여 사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이 안 믿는 일이라 신자들이 안믿어.
그런고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는 이 말씀은 주님의 피와 살은 절정이니까 죽음으로 끝나지 안했습니까? 주님 대속의 이 공로를 자기가 아는대로 생각하고 연구하고 대속의 공로와 자기와의 어떤 관련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깨달음으로 힘나는 그 힘이 바로 주님의 힘이요 생각나는 그 지혜가 바로 주님의 지혜요 소원하는 그 소원이 주님의 소욕이라 그 주님이 그 안에 계셔서 그와같이 하는 것이라 아버지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완전 생애가 이룬 것같이 인생이 내 피와 살의 공로를 사모하여 이 공로로 인하여 자기의 모든 기능과 모든 발원을 삼는 그 자에게는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시는 것처럼 내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 생애를 성공한 것처럼 그는 나로 인하여 사는 생애를 성공하게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말은 참된 양식이라 말은 참 힘을 얻는 양식이라 그 말이요 참 힘을 얻는 양식이라 그말이요 지혜의 힘, 능력의 힘, 소원의 힘, 또 자라는 것이 마지막에 부활할 참으로 자라서 인간이 아무리 세계를 움직일만큼 크다 할지라도 죽으면 송장이요 부활할 때는 지옥이야 예수믿는 사람도 부활할 때는 아무 것도 없어 기능이 없어.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릴 것이요' 성도야 네가 참힘을 얻고 참으로 자라고 참 일을 하고 마지막 부활할 때에 영생으로 부활할 자는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요기에서만 가능하다 다른데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므로 생겨진 지혜와 능력과 욕망과 행동이 아니라면 성공 같으나 실패요 인생을 구원한 것 같으나 다 멸망이요 왜? 거기는 주님이 역사적으로 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중생시킨 중생적으로는 주님이 우리 안에 항상 계시지마는 역사의 주님으로서는 우리 안에 계실 때도 있고 계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하신 것은 역사적인 주님으로서는 우리 심신속에 내주하시지를 않기 때문에 내주하시기를 원해서 말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로마서 6장 5절 이하에 보면 '나의 죽음에 연합한 자가 되면 나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되어' 주님이 부활하신 것은 새생명 산 소망에 속하므로 새생활 할 수 있다는 말이요. 나면서 앉은뱅이는 다른 사람 천만 인이 말했지만 소용없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라' 예수의 이름을 인계받아 전하는 사도로 된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할 때에 그가 그 전도의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려고 버득거리는 그것 가지고 된 것 아니요.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지마는 일으킨 그것 가지고 된 것 아니요 그것은 껍데기 인간 행동이요 본인의 힘쓰고, 협조하는 힘쓰는 것인데 뼈와 발목을 힘있게 한 것은 보이지 않으신 그 분이 다분히 당신이 맡겨 주신 그 복음의 전도를 통해서 당신이 책임지고 일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자는 기독교의 신비는 저는 접하지 못합니다. 다 이러나 저러나 썩을 것 다 무익한 걸 하고 있지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그를 인정할 때에 와서 역사해, 보이지 않는 그 분이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인정하는 그 인정에 따라서 움직여요 주님의 피와 살을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은혜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그 힘으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하나님의 선물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교제로 대속의 공로로 인한 연결로, 대속의 공로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받아지는 것으로 이것으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가 주의 피와 살을 참된 양식으로 인정하는 자요 그 자에게는 영생이 있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내가 그 안에 있다' 피와 살을 먹을 때에 그 안에 있어, '영생이 있고' 하신 것은 잘못하면 영생이 없을 수 있다는 그말이요.
'너희들이 미워하면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느니라' 문을 두드리는데 문을 두드릴 때에는 영생이 그 속에 없어 영접해야 영생이 있지 영생은 왔다 갔다 합니다. 중생시킨 생명은 그렇지 안해요.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그 말은 양식은 힘을 얻게 하는 것이요 자라게 하는 것이요 힘얻고 자라면 일하지.
그러기에 인간이 참 사람의 힘, 참 지혜의 힘, 참 능력의 힘, 참 것 모두 참 것에는 예수의 공로를 사모하므로 거기에 감격된 그 감격으로 말미암아 되어지지 제가 복음을 위한다고 해도 딱 쪼게 해부를 해보면 별별 허영심과 허욕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주님에게는 상관이 없어 주님의 피와 살에 감격한 그 소원, 그 결심, 그 욕심, 감격으로 인하여서 얻어진 그 지혜와 능력이 아니면 다 가짜요 다 썩은 것이요 다 제것이요 주님의 적이요 다 왕된 자의 왕이요 그것은 원죄인 자기 중심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 운동하는 자 많고 목회하는 자도 많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자 많습니다.
이러기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에게는 나는 그 안에 그는 내 안에 있다'고 하셨으니 어떻다 말이요? 있나니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처럼 그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인하여 삶이 된다 그 말이요.
어리석지 맙시다. 공연히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예수를 믿으면 예수 안에서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자타를 망치는 그런 고라의 길과 그런 멸망의 가인의 길 그런 패역한 길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순진하십시요 깨끗하십시요. 순전히 주님만 바라보십시요. 자기를 위하지 마십시요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하십시요. 거기에 영생이 있습니다. 뭐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이름을 팔아 가지고서 자기를 위하는 그런 무서운 죄를 짓는 사람은 참 어리석은 사람이요 어쨌든 주님의 피와 살로 인한 힘이 아니면 가짜요 주의 피와 살로 인하여서 성장된 것이 아니면 마지막에 부활 못합니다. 그것이라야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주님을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하시려면, 들어와 계시게 하려면 주의 피와 살을 먹어야 됩니다. 주의 피와 살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사모하고 느끼고 그것이 먹는 것이라. 마음으로 먹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새김질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연구하는 것이 먹는 것이요 깨닫는 것이 그것이 영양을 취한 것이요.